[흔들리는 가정]결식아동-노인가출-이혼 다시 급증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34분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3년 만에 닥친 불황이 단란했던 가정을 다시 산산조각 내고 있다.

결식 아동과 청소년 수가 올해 크게 증가했으며 빈곤층 이혼과 노인 가출, 이민 등 ‘가정 결속도’를 나타내는 모든 사회적 지표들이 악화됐다. 문제는 ‘대량실업에 의한 가정해체’로 단순화할 수 있었던 IMF 때에 비해 현재 진행중인 가정해체 현상은 그 양태나 정도가 훨씬 심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가정붕괴 실태〓올해 6월부터 경기 안산시 한 선교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선영(8·여·가명) 석훈(4·가명) 남매.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는 지난해부터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올해 5월 가출했다. 이후 아버지가 폭력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남매는 선교원에 맡겨졌다. 선교원 목사는 남매를 처음 본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남매 모두 영양실조와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가정을 잃은 충격 때문인지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으며 다른 사람과는 말도 나누려 하지 않았다. 마치 자폐증 환자 같았다.”

건설 중장비 운전을 하는 강모씨(50). 지난해부터 일감이 뚝 끊어져 생활비를 거의 대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올해 3월부터 아내 최모씨(49)가 파출부 일을 나섰다. 그리고 부부는 6월 심한 말다툼 끝에 20년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했다. 최씨는 “남편이 돈을 못 버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매일 시비를 걸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다양한 가정 해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지난해 벤처회사를 차렸으나 수익을 내지 못하자 “가족 보기가 부끄럽다”며 집을 나와 하숙을 하고 있는 김모씨(34·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경우가 그 예다.

또 “한국이 싫다”며 부모나 자녀와 이별, 아예 이민을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이민알선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예전에는 일가족 전체 이민이 대다수였으나 요즘은 개별이민이 크게 늘고있는 추세라고 한다.

▽악화되는 지표〓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의 결식 초등학생수는 98년 1만5572명, 99년 1만9008명이었던 것이 올해는 9월까지만 해도 2만236명으로 급증했다. 결식 중학생도 올해 9월까지 7446명으로 지난해 4115명을 벌써 훌쩍 넘었고 결식 고교생은 지난해 8763명의 2배가 넘는 1만8595명을 기록했다. 결식아동은 대부분 부모가 이혼하거나 아예 집을 나가는 등의 극단적인 가정 해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 가정법원이 집계한 올해 11월까지의 이혼 재판건수는 9742건으로 IMF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던 98년(9302건)이나 지난해(1만52건)와 비슷한 수준.

하지만 빈곤층의 이혼은 증가 추세다. 빈곤층이 주로 법률상담을 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이혼이나 양육권 분쟁 등 ‘가사 호적부문’관련 법률상담이 6만537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만5485건보다 크게 증가했다.

또 올해 10월까지 경찰청 가출 신고센터에 접수된 60세 이상 노인가출은 2310명을 기록했다. 한달 평균 230명 꼴로 올 연말이면 2800명에 육박할 전망이어서 98년 2078명은 물론 지난해 2549명도 훨씬 뛰어넘을 전망이다.

▼전문가 진단 처방 "어려울수록 따뜻한 사랑을"▼

전문가들은 “70, 80년대 급속한 개발시대를 겪으면서 확립된 ‘가장은 역시 돈을 벌어야 제 역할을 다한다’는 사고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런 사고 때문에 돈을 못 버는 가장은 스스로 ‘위신이 추락했다’고 느끼며 가정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李勳求)교수는 “가장의 실직 등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그로 인해 가장들이 갖게 되는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다’는 식의 심리적 공백이 가정 해체 현상의 더 큰 원인”이라며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더 따뜻이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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