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모습 잃은 신도시]'비평준화'에 사교육의 천국

  • 입력 2000년 9월 28일 18시 56분


정국(11·초등학교 4년) 정환(6·유치원) 두 아들을 둔 주부 송영미씨(36·경기 성남시 분당구 효자촌)는 아이들 교육문제로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 정국이는 학원을 보내지 않고 있지만 처지는 느낌이 들어 조만간 뭐라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다. 정국이 또래 친구들을 보면 국어 산수 자연 사회 4과목과 영어 글짓기 피아노는 기본이고 체육까지 학원을 다닌다. 한 달에 드는 학원비만 60만∼70만원. 정환이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월 30만원 하는 유치원에 보내고 집에서 각종 학습지를 시키고 있다.

두 아이를 남들만큼 가르치려면 학원비로만 월 100만원이 넘게 든다. 송씨는 “학교수업이 사교육(私敎育) 받는 것을 전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원에 안보낼 수 없는 실정”이라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수행평가를 대비해 엄마들이 과열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성남 분당과 고양 일산은 ‘사교육 천국’이다. 사교육비 부담으로 학부모들은 등허리가 휜다. 신도시 사교육 열풍은 이 지역의 고교 비평준화가 가장 큰 원인. 분당은 서현고, 일산은 백석고로 대표되는 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 한다. D유치원―T, N, S초등학교―N, I중학교―서현고, 분당고, 이매고(분당). P, M유치원―O초등학교―O중학교―백석고, 백신고(일산). 이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학부모들은 무리하게 사교육비를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내신성적과 선발고사를 종합 평가해 학생들을 선발하지만 내신비중이 70%를 차지하다보니 음악 미술 체육 등 전과목을 잘하지 않고는 명문고 진학이 불가능하다. 학원강사 하수원씨(28)는 “중학생이 되면 종합반 학원은 기본이고 집에서 개인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많다”며 “교육열이 서울 강남지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고 강조한다. 분당구 정자동과 수내동의 한 초등학교 주변은 명문으로 소문이 나면서 주위 집값이 다른 곳보다 평형별로 1000만∼2000만원씩 올랐지만 집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최근 분당과 일산에서는 조기영어 교육붐이 일면서 외국계 영어 유치원 10여곳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평균 비용은 월 50만∼70만원이지만 아이들이 몰려들어 성업 중이다.

이런 현상은 학부모들의 높은 학력 수준, 경제적 여유와 무관치 않다. 서현고와 백석고 학부모들의 학력 수준은 대졸 이상이 70%를 차지한다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신도시의 과열된 교육열은 오히려 신도시를 떠나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능력 밖의 사교육비와 과열 경쟁이 싫어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고 평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11월 의정부로 이사갈 예정인 이정희씨(37·고양시 덕양구 화정동)는 “내년이면 큰딸을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과열 교육경쟁에 시달리는 분위기가 싫어 의정부로 이사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성남지부 김연숙 교육부장(39·여)은 “비평준화로 인해 분당, 일산 등 신도시 학생들이 소질과 적성을 계발해야 할 시기인 초 중학교 때부터 너무 심한 입시지옥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릇된 교육열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남교육청 유옥희(柳玉姬)학무국장은 “현재 도교육청에서 교육개발연구원에 평준화와 관련된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라며 “공청회를 통한 여론수렴을 거쳐 과열된 교육열을 가라앉히는 대안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끝―

<성남·고양〓남경현이동영기자>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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