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ABC]조기유학 급증세…서울 자퇴 중고생 40% 증가

  • 입력 2000년 9월 20일 19시 03분


중학교 3년생 아들을 둔 주부 강모씨(40·서울 서초구 방배동)는 요즘 아들의 과외 때문에 속이 상한다.

아들과 실력이 엇비슷한 아이들을 모아 애써 과외 그룹을 만들었는데 개학 후 금방 깨졌다.

“과외 그룹을 만들기 바쁘게 유학가느라 한두명씩 빠져 과외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없어요.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 10명 가운데 5명이 아이들을 미국 캐나다 등지로 유학 보냈어요. 저도 아들을 유학 보내야 하는 건지 고민이에요.”

정부가 지난달 조기 유학 전면 자유화 입장에서 후퇴해 조기 유학 자격을 중학교 졸업 이상으로 정할 방침이지만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학생들이 줄지 않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말까지 유학이나 이민을 목적으로 자퇴한 중고교생은모두 192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79명보다 4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중학생은 1146명으로 고교생보다 오히려 많았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833명)보다 37.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의 C중학교는 올 들어 18명이 유학을 떠났으며 D중학교와 J여중은 각각 16명씩 유학을 떠났다.

공인표(孔仁杓)구정중학교장은 “부유층 자녀들은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전에 대부분 떠났으며 이제는 중산층으로 조기 유학 붐이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 없이 조기유학을 떠났다 현지 적응에 실패하고 몇 달 만에 되돌아온 경우도 많다.

올 1월 미국 텍사스주로 유학을 떠났다 3달 만에 돌아온 서울 A고교 2년생 박모군은 “영어에 자신이 있었지만 화학 과목의 원소 이름까지 영어로 배워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면서 “심지어 먼저 유학간 한국 학생들이 ‘신참’을 따돌리는 ‘왕따’ 현상도 있어 생활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12월 어머니와 둘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유학 갔다 올 4월 돌아온 서울 B고교 2년 장모군도 “아버지 동생들과 떨어져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면서 “가족끼리 헤어져 사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 안된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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