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그림자」'억압받는 무의식' 공존-화해 길찾기

  • 입력 1999년 10월 29일 18시 29분


▼'그림자' 이부영 지음/한길사 펴냄▼

그림자. 사람들은 그림자 앞에 늘 ‘어두운’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왠지 스산하고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그림자.

최초로 그림자를 발견한 인류의 조상은 그걸 보고 깜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나를 따라다니는 또다른 나에 대한 두려움. 그림자는 그런 것이다.

신경정신과전문의로 칼 구스타프 융 심리학의 권위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마음 속의 어두운 반려자’인 그 그림자를 추적한다. 또 융의 그림자 개념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내면, 전통 속의 문화를 들여다본다.

융이 말하는 그림자란 무엇인가. 인간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열등하고 부정적인 측면. 자아로부터 배척되어 무의식에 억압된, 자아의 어두운 성격이다. 그림자는 자아와 비숫하면서도 자아와 다른, 그래서 자아가 가장 싫어하는 열등한 성격이다. 나 자신이되 나 자신이 아닌 것.

그림자는 주로 험악하거나 야비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림자는 개인을 넘어 집단무의식에도 적용된다. 집단적 파괴충동이 대표적인 경우.

그림자는 외부의 대상에 투사된다. 개인적으로 보면,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거북하거나 불편한 감정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그림자의 투사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집단적 투사도 당연히 일어난다.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인종갈등, 전쟁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의 첫번째 매력은 융 심리학의 세계를 어렵지 않게 소개한다는 점.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림자 개념을 통해 민속 종교 사상 속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읽어낸다. 이 대목에 문화를 바라보는 신선하고 풍요로운 시각이 있고 이것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다.

특히 우리의 놀이문화 무속신앙 등을 해석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그 한 예가 탈춤. 탈춤엔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도덕규범에 위배되는 온갖 부도덕한 그림자가 연출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당시 사회에서 허용되는 의식과 억압받는 무의식의 그림자가 공존과 조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탈춤은 그렇게 사회의 통풍구 역할을 했다. 인간 무의식의 그림자를 집단적으로 표출하고 해소함으로써 빛(의식)과 어둠(무의식·그림자)의 조화를 이루었던 지혜.

저자는 그러나 요즘 우리에게 이같은 자세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이지메나 왕따 같은 잘못된 ‘그림자 의례’가 만연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림자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림자의 의미를 무시할 때, 인간은 오히려 그림자의 반격을 받는다. 민족분쟁 이념대립 등 그림자의 대결로 점철된 우리의 20세기가 그러하다.

어둠과 그림자를 통할 때 진정한 빛이 드러나며 그림자는 인간에게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메시지다. 334쪽, 1만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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