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씨 여섯번째 시집 ‘길의 침묵’ 펴내

  • 입력 1999년 10월 15일 18시 45분


시인 김명인(53·고려대 인문대 문예창작과 교수)이 여섯번째 시집 ‘길의 침묵’(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현실의 근원적 고달픔과 한없는 시공간이 맞닿으며 빛을 발하는 이미지, 내면 풍경의 스산함을 딛고 서늘한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영원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가을 밤 기자와 시인은 시집을 뒤적이며 밤늦도록 대화를 나눴다.

●나방 된 새들 몇 편대 비행,/비행운도 없다. 날아가 닿는 곳/어딘지 몰라라, 다만 아득해라(하늘 누에)

―수록된 모든 시에서 흐름과 떠남의 이미지가 읽혀진다. 그래서인지 ‘길의 시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내게는 타고난 역마살과 오랜 방랑벽이 있다. 그 방랑은 의식의 아득한 시초 속에서 움트는 것이다. 나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 자체가 떠남이라고 본다.”

●소진(消盡)이 내 길이라면 나는 모든 길 끝이/어둠 속으로 놓여나려고 뿔뿔이 저를 거두어가는 것을/물끄러미 지켜본다(소태리 점경·點景)

―현실의 고단함이 짙게 투영된 구절과 자주 마주치지만, 그 현실은 언제나처럼 무한(無限)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읽힌다.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 것인가,초월하는 것인가.

“곤궁한 현실은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조건이자 존재의 내밀한 근원이다. 쓸쓸하고 고독할 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실을 딛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현실에 대한 초월이다.”

●내가 이 물가에서 그대 만났으니/축생(畜生)을 쌓던 모래 다 허물어 이 시계 밖으로/이제 그대 돌려보낸다(다시 바닷가의 장례)

―소금, 모래 등 분말이 중요한 물질적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다. 무엇을 상징하는가.

“바닷가에서 자란 내게 모래와 소금은 중요한 원형의식을 이룬다. 또 소금은 정련된 정신으로 다시 태어남을 뜻하는 것이다.”

●바닷가 황혼녘에 지펴지는 다비식의/장엄함이란, 수평을 둥글게 껴안고 넘어지는/꽃수레에서 수만 꽃송이들이 한번 활짝 피었다 진다(다시 바닷가의 장례)

―누군가는 이 시집에서 ‘세상 것들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이 언어들 사이로 번져나가고, 허무의 아우라(Aura·靈氣)를 두른다’고 말했다. 시작(詩作)을 통해 초월의 순간을 느끼는가.

“어떤 시인이나 그렇겠지만, 시를 쓸 때 스스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경이감에 빠진다.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 허무란, 실존의 한계를 전제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공허한 초월이나 되풀이되는 모습을 보이는 대신 온몸으로 허무를 끌어안고 싶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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