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경씨 새장편소설 「내안의 깊은 계단」 출간

  • 입력 1999년 10월 8일 19시 29분


‘죽음도 둔덕처럼 이지러져 자연의 한 부분이 된 곳. 집착을 버리라는 메시지와 함께, 삶과 죽음의 순환을 지혜로서 일러주는’.

작가 강석경(49)이 말하는 천년고도(古都) 경주의 모습이다. 94년, 2년여의 인도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그는 그곳으로 거처를 정했다.

‘길을 걷는 사람이 내일 스러질 풀 같아 보이던’ 인도에서 그랬듯, 그는 죽음이 친한 형제처럼 생활 가까이를 장식한 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 인도에서의 체험은 일찌기 장편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96)로 형상화했다.

뒤늦게 궁금증을 풀어주듯, 그가 내놓은 새 장편소설에는 경주의 무덤과 유적들, 그 사이를 공기처럼 떠도는 ‘편안한’ 죽음이 짙게 투영돼 있다. 창작과비평사에서 내놓은 ‘내 안의 깊은 계단’.

“윤회(輪廻)를 믿고 있어요. 사람과 함께 그가 지은 업(業)도 윤회하며 떠돌죠. 발굴현장을 떠돌다 보면 그런 생각에 깊이 젖게 돼요. 누구의 무덤일까. 육신은 사그라지고 부장품과 자취만을 남긴 사람들…. 소멸과 재생이 되풀이 되는 삶의 기나긴 길….”

그는 소설에 현장감을 불어넣고자, 또한 고고학의 만만치 않은 재미에 빠져 5년 동안이나경북지역의 유물발굴현장을빼놓지 않고따라다녔다고 한다.

소설에서 경주를 상징하는 인물은 젊은 고고학자 강주. ‘땡볕 아래 엎드려 발굴을 끝내면, 보고서 써내는 데만 이삼년씩 걸리는’ 지루한 업무 속에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연극연출가인 사촌형 강희는 그와 극명한 대립을 이룬다. 소유욕과 성취욕으로 똘똘 뭉친 그는 강주의 약혼녀 이진에 대해 내밀한 욕망을 키우던 중 강주가 교통사고로 죽자 이진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만다.

강희의 여동생인 소정은 후실(後室)의 딸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사랑을 거부하는 여인. 그러나 중국여행중 일본인 히로를 만나 진정한 그리움에 눈뜨게 된다. 소정은 히로를 ‘죽은 강주의 선물’로 여긴다.

“업의 윤회를 그리면서 소정의 삶을 통해 제도, 인습에 대한 비판도 제기했죠. 한국사회에서 제도란 인간을, 특히 여성을 고려하지 않는 맹목의 실체일 수 밖에 없어요.”

강석경은 경주 주변 왕릉을 화보와 함께 소개하는 에세이집도 준비하고 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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