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아니 건축가 이상을 아십니까?

  • 입력 1999년 8월 31일 18시 59분


시 ‘오감도’ 소설 ‘날개’ 등을 남기고 요절한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은 원래 건축가였다.

경성 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입학한 그는 일본 학생들을 제치고 수석졸업했다. 그는 1929년부터 33년까지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에서 근무했지만 남아있는 그의 설계도면은 하나도 없다. 이러한 가운데 건축가로서 그의 재능과 감각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건축 100년전’(8월31일∼10월28일)에 전시돼 일반에 공개됐다.

▼ 한국건축 100년展 전시

조선건축회에서 펴낸 대표적인 건축잡지 ‘조선과 건축’ 표지 디자인. 1922년부터 해방직전까지 발행됐던 월간지 ‘조선과 건축’은 해마다 건축인들을 대상으로 표지 디자인을 현상공모했다. 1등 당선자의 작품은 1년간 이 잡지 표지로 사용됐다.

이상은 1930년도 공모에서 1등과 3등을 동시에 차지했다. 2등은 일본인 히토스키였다. 이상의 당선 작품은 독특한 글자꼴의 한문제목과 아라비아숫자 ‘1’과 ‘5’를 이용한 기하학적 도안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심사평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의장면에서 흰색을 바탕으로 한 기교가 뛰어난 작품”이라는 설명이 들어있다.

▼1930년 공모서 1등

이는 목원대 건축도시공학부 김정동교수의 소장품. 70년대초 이 자료를 구입한 김교수는 “건축잡지에 공개한 적은 있지만 전시회출품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건축가로서의 이상을 연구한 김교수는 “이상은 뛰어난 감각을 지녔지만 식민지상황과 요절로 인해 채 피어나지 못한 안타까운 건축인”이라고 말했다.

▼당시 심사 "기교 탁월"

김교수는 이번 전시회에 19세기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남 순천시 송광사 도면 등 2백여점의 소장자료도 출품했다.

건축문화의 해를 맞아 마련된 이번 전시회는 국내건축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꾸며졌다. 개항 이후 밀려온 근대화물결 속에 우리 건축이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총 12개 주제로 나눠 350여점의 사진과 도면으로 보여준다. 명동성당 등 개화기 건축물부터 서울 강남의 포스코사옥에 이르기까지 국내 건축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02―762―8090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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