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8월 20일 18시 4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봉신연의’는 중국 명대(明代)의 장편소설이다. 작자는 육서성(陸西星·1520∼1605)또는 허중림(許仲林·?∼?)으로 전해진다.
이 작품을 낳은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도교의 그것이다. 우주는 천계(天界) 선계(仙界)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하계(下界)로 이루어졌는데 그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인의 자질이 없이 선계에 사는 이들이 있었고 사람들 가운데엔 하계엔 살기엔 너무 뛰어난 이들도 많았다.
마침내 우주를 지배하는 실력자들은 이들을 한데 모아 신계를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신(神)은 서양의 초자연적이고 강력한 존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넋과 비슷한 뜻을 지닌다. 그래서 신계에 들어가 신이 되려면 사람들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목숨을 앗는 계기는 기원전 12세기 초엽에 은(殷)왕조가 주(周)왕조로 바뀐 역사적 사건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주가 은을 정복하는 과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아 그 전개과정을 충실히 따랐다는 점에서 역사소설의 빛깔을 띠지만 초자연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초자연적 힘들이 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환상소설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서유기(西遊記)’와 ‘평요전(平妖傳)’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우리사회엔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고전인 ‘봉신연의’가 마침내 소개된 것은 반갑다. 이 책은 중국어 대본을 일본어로 평역하고 다시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평역이므로 일반독자들이 읽기 쉽지만 원작에서 너무 벗어났다는 느낌을 주는 곳들이 있어 좀 아쉽다.
지금 우리사회엔 중국고전들이 원작에 충실한 번역 대신 평역이란 형태로 소개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몇가지 미묘한 물음들을 불러온다.
충실한 번역도 아니고 뚜렷한 창작도 아닌 평역이란 작업의 성격과 지위는 어떤 것인가? 특히 평역과 원작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평역만을 읽은 사람은 과연 그 작품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 작품을 진지하게 논할 수 있는가?
바람직한 것은 물론 충실한 번역이 출간되는 것이다. 그러면 위에서 제기한 물음들의 심각성은 많이 덜어질 것이다.
△소설가 △46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 △장편소설 ‘비명을 찾아서’ ‘역사속의 나그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