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범신씨, 8년만에 장편「침묵의 집」펴내

  • 입력 1999년 6월 29일 19시 30분


『나는 요즘 소설을 생각하면 ‘내가 아주 슬픈 사랑을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 박범신(53). 무엇이 슬픈가? 우선 한없이 자신을 몰아세워야 하는 소설쓰기의 업보 때문일 것이다.

93년 그는 돌연 ‘절필’을 선언했다. 인기 대중소설을 쓴 그에게 따라붙는 비판들. 그는 눈 질끈 감고 그것을 무시하기보다는 3년간 ‘도대체 나의 글쓰기는 무엇인가’를 원점부터 다시 짚어보았다.슬픔의 또다른 이유는 ‘늙어간다는 자각’이다. 그는 “진짜로 늙은 사람은 ‘나이든 이의 현명함이 좋아보인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8년만에 내놓은 장편 ‘침묵의 집’(문학동네)은 파멸을 무릅쓰고 작가처럼 중년의 슬픔과 허무를 온몸으로 않아내는 남자의 이야기. 절필 이후 첫 장편으로 97년부터 1년여 문화일보에 연재했던 ‘신생의 폭설’을 개작했다.

50대의 주류회사 자금담당 이사 김진영.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라면집에 가서도 ‘계란 빼고 주세요’라고 할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왔으나 뒤늦게 격렬한 섹스를 동반한 늦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연상의 시인 천예린.

결국 김진영은 가족과 직장을 버리고 천예린을 좇아 북아프리카 유럽 러시아의 바이칼호에 이르는 긴 여행을 떠난다. 파멸로 치닫는 긴 행로. 그러나 자신은 ‘언제까지나 죽은 고기나 찾아다니는 삶을 거부하라’는 내면의 부름이라고 자부한다.

주인공이 내뱉는 독백은 영혼을 잃어버린 한국적 성공모델에 대한 비판이다.

“욕망의 확대 재생산…제가 소유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미처 모르고 더, 더, 더라고 부르짖으며 살아온 나의 반평생. 그 직진보행의 활주로를 위태롭게 미끄러지는 내 조국, 나의 이웃”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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