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조용훈/오지호의 「사과나무밭」

  • 입력 1999년 4월 30일 19시 45분


배꽃이 비처럼 불꽃처럼 몸을 사를 무렵 사과꽃은 개화하였다. 힘차고 당당한 가지에서 미친 듯이 만개한 사과꽃은 과수원을 다시 한 번 새하얀 불꽃으로 활활 태웠다. 어느새 달려온 바람이 사과나무 가지의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자 흰꽃은 추락하며 연분홍 향기를 날리기 시작했다.물결치는 꽃잎은 향기와 뒤범벅되어비상했다가 추락하기를 반복한다. 그 때마다 미세한 빛이 꽃잎 사이로 물결치며 요동쳤다. 새하얀 불볕. 빛으로 타는 낙화.

오지호의 ‘사과나무밭’이다. 봄에 피는 과수꽃으로는 가장 늦게 개화해 일찍 진다는 꽃. 만개에서 이미 낙화의 아픔을 전하는 꽃. 그런데 화가는 그 아픔마저 안정된 보색대비와 색채분할로 처리함으로써 보는 이를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로 이끈다.

‘만상이 흘러가고 만상이 흘러오고. 조용하여라. 한해만 살다가는 꽃들’(이진명, ‘청담·淸談’중)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는 꽃처럼 살다 가는 미물인 것을. ‘자연을 환희로써 채우는 싱싱한 봄이 찾아왔을 때 저 디오니소스적인 흥분이 눈뜨게’되지만, 인간과 자연은 어차피 한 세상 살다 가는 ‘우주조화의 복음에 접한’(니체, ‘비극의 탄생’ 중) 삶이라는 통찰 같은 것. 비극도 환희도 한 얼굴이라는 그런 통찰 말이다.

조용훈(청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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