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계사 철웅 대선사,31일 첫 대중 설법

  • 입력 1998년 3월 31일 08시 36분


대구 팔공산 파계사(把溪寺). 아홉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 있는 용담(龍潭)을 지나 1㎞ 정도 험한 산길을 오르면 성전암(聖殿庵)이 나온다. 성전암은 93년 입적한 성철(性徹)스님이 8년 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 않고 참선하는 것)를 했던 곳.

낙락장송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들어앉은 이 조그만 암자에서 20년간 산문(山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수행에만 정진해온 철웅(哲雄·65)대선사. 그가 31일 파계사 진동루 앞에서 은거 후 처음으로 대중 설법을 한다.

적묵실(寂默室)이라 적힌 선방문을 열고 나온 노스님은 화통한 ‘호랑이의 눈’을 하고 있었다. 기둥에 쓰인 ‘장부는 모름지기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있어야 한다(장부자유충천기·丈夫自有衝天氣)’는 호방한 글귀 그대로. 이런 기운이 있어서일까. 스님은 “여기 있어도 공부하기 힘든데 온갖 탐심(貪心)이 이는 세상에 나가면 수행에 자신이 없어질까 봐”라며 겸손하게 산문불출의 이유를 밝힌다.

“손가락은 다섯이지만 결국 한 주먹이야. 수천 개의 가지를 가진 나무도 한뿌리에서 나왔지. 생명의 근본인 뿌리를 알아야 해. 그게 내 마음속 부처를 만나는 길이야.” 철웅스님이 일생 동안 의문을 품어온 화두는 ‘이 뭐꼬(시심마)’. 이 세상은 무엇이며 진리란 무엇인가. 부처를 찾겠다고 나선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이 화두를 풀기 위해 철웅스님은 통도사에서 3년간 장좌불와 수행을 했고 성전암에선 하루 3시간씩만 잠을 자며 참선과 독경, 선무술 등으로 구도에 정진해 왔다.

철웅스님의 진리에 대한 설명은 기독교 불교 유교 철학 의학 음악 등 동서고금 각 성현들의 가르침을 넘나든다. “너와 나, 선과 악을 구별하는 분별심이 온갖 탐심과 만병을 발생시키는 게야. 분별심의 선악과를 뱉어내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처럼 자타일체감을 이뤄야 해. 불성(佛性) 신성(神性) 중용(中庸) 격물치지(格物致知)도 다 생명의 근원을 설명하는 다른 말이지.”

현재의 위기에 대해 철웅스님은 “인류 역사상 위기가 아닌 적이 있느냐. 경제 위기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거짓과 욕심, 허영과 사치에 빠진 지도자와 국민의 마음이 황폐화되어 발생한 ‘정신적 위기’라는 것이다.

57년 해인사 운허당 이학수스님과의 인연으로 출가했던 철웅스님. 79년 성전암에서 은거를 시작하고 이제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었다. 마음 같아선 10년 정도 더 수행을 하고 싶다. 그런데도 이번에 대중 법회를 갖는 건 그동안 쌓은 법력을 나눠주라는 주위의 간곡한 부탁을 더이상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

날이 어둑해질 무렵, 스님을 만나고 팔공산을 내려오는 길의 소나무숲에서 나는 바람 소리가 더없이 청량했다.

〈대구〓전승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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