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소설집「무늬」,8가지 무늬로 찍어낸 여자의 삶

  • 입력 1998년 3월 2일 08시 45분


난형난제(難兄難弟). 여덟명의 얼굴을 쪼르르 줄세워 놓았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말이다.

송우혜 김지수 한정희 송혜근 윤명제 전경린 은희경 박자경. 동아일보 중편소설 부문 당선으로 당당히 작가가 된 그들. 등단연도로는 선후배를 따질 수 있지만 글쓰기현장에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선의의 경쟁자들인 그들이 책 한권을 묶어냈다. ‘무늬’(문이당).

동인지 발간은 올해로 세번째. 각자 갈 길이 바쁜 그들이 오직 이 책을 위해 한편씩 중단편소설을 써내는 이유는 ‘맨 처음 작가가 됐을 때의 그 마음을 잊지 말자’는 다짐일 것이다.

뜻은 같아도 ‘무늬’는 여덟가지. ‘이땅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지’ ‘사랑은 여전히 희망일까 아니면 물거품같은 것일까’를 묻고 대답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각자가 옹이처럼 갖고 있는 삶의 경험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꼼꼼한 독자라면 그 다름 속에서 여덟명의 작가가 갖고 있는 닮은꼴을 발견하게 된다. 권태 학대 불륜으로 파국을 맞는 부부관계, 기를 써봐도 ‘2류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이라는 존재, 흑과 백, 정품과 모조품으로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 삶의 모호함…. 써내려가면서도 진저리를 치지만 그들은 결코 그런 현실을 분칠하거나 피하지 않고 덤벼든다. 어떤 거짓화해와도 쉽게 타협하지 않는 그 옹골찬 싸움꾼의 기질이 이들을 만만찮은 여성작가들로 키워냈는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그들의 메마른 진술을 모자이크해보자.

‘사람에게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 정(남편)과 결혼이란 것을 하면서 나는 자신있었다. …인간에게 신의 사랑을, 그런 절대의 사랑을 나는 바라지도, 가능한 일이라고도 결코 생각 않는다.’(박자경 ‘무늬’)

‘두 아이를 낳는 동안 뱃속은 활짝 열린 트렁크만큼 넓어졌다. 잠시 절제를 잃으면 그 트렁크는 이내 허섭쓰레기로 차버리는 것이다. 찢어진 양말짝들, 헝클어진 털실 뭉치, 망가진 로봇, 먼지 덮인 신발짝, 마른 밥풀이 묻은 주걱, 얼룩이 진 수건, 빈 화장수병, 비틀어진 철사옷걸이, 구겨진 쇼핑백….’(전경린 ‘오후4시의 정거장’)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을 통해 자신의 고통스러운 자아를 나르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치밀었다. 우리는 이미 정해진 시간과 인생의 에피소드들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도 내가 만들 수 있는 행복이나 불행같은 건 없을 것 같았다.’(한정희 ‘이웃집으로 들어가다’)

‘지금 눈앞의 저 낯모르는 사람이 피를 콸콸 쏟는다해도 몇분후면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계기로 그를 사랑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가 고개만 조금 숙여도 내 가슴은 미어질 것이며 그의 시선이 가는 방향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할 것이다. 특별한 사람이란 없다. 관계에 의해서 특별해질 뿐이다.’(은희경 ‘너는 그강을 어떻게 건넜는가’)

그 매운 눈매는 그저 일상을 헤집기 위한 것은 아니다.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진정한 화해나 용서, 깨달음은 없다고, 사는 일에 진을 다 빼본 사람만이 ‘우리들 삶의 본질은 바람에 나는 겨처럼 가볍고 덧없는 것이 아닐까’(송우혜 ‘스페인춤을 추는 남자’)라고 홀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그들은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동인중 윤명제는‘오직글을쓰기 위해’ 수십년간 종사해온 국립병원 임상심리치료사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이번 작품집에 낸 ‘그녀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에서 그는 노동력과 생식기능이외에는 어떠한 존재가치도 인정받지 못하는 갯마을 여자들의 갇힌 삶을 생생히 드러냈다.

한국을 떠나있는 동인도 모국어를 통한 문제의식은 끊임없이 확장된다. 현재 미국에 있는 송혜근은 ‘낮보다 환한 밤’에서 인종차별을 받으며 자란 이민 2세대 중년여인 수지의 사랑과 배신의 기억들을 통해 ‘여자이자 유색인종’이라는 이중의 멍에를 걸머진 삶들의 정체성고뇌를 그려냈다.

폼페이 유적을 보며 ‘뜨거운 화산재가 목덜미를 휘어잡아 죽음으로 몰아넣을 때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못한 채 그저 돈항아리를 향해 뛰어가던 사람, 오븐에 닭고기를 넣거나 수세미로 때를 닦아내던 사람처럼 나는 단지 어리석은 일상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젊은 날의 어리석었던 사랑을 반성하는 한 중년남자의 고백을 쓴 김지수(‘폼페이의 아득한 날’). 그는 현재 독일에 거주중이다.공통의 산고를 거쳐 또한번 약속한 생산물을 내며 여덟명의 작가들은 아주 조금 우쭐해했다.

‘세상이 끝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어느 철학자의 비장한 선언처럼 우리는 여전히 동인지를 묶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웃는다.’(머리말중)

〈정은령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