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사이언스 ⑦]「스타쉽 트루퍼스」

  • 입력 1998년 2월 24일 19시 51분


‘로보캅’과 ‘토털 리콜’로 SF영화팬들을 열광시켰던 폴 버호벤 감독의 최근작 ‘스타십 트루퍼스’.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 ‘우주의 전사’를 각색한 이 영화는 곤충 외계인과 싸우는 우주방위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외계인과의 전쟁’이라는 정당화된 폭력성 속에서 개인의 희생과 집단의식을 강조하는 ‘군대’에 대한 조롱과 함께 그 속에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 용기와 패기가 이 영화의 주제다. 특히 특수효과의 귀재로 소문난 감독의 영화답게 일곱 종류의 곤충 외계인과의 잔혹한 전투 장면은 매우 사실적이다. 이 영화에 재미있는 곤충이 등장한다. 여자의 성기를 닮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두뇌 곤충’이 바로 그것이다. 곤충 외계인의 우두머리인 이 녀석은 촉수로 사람의 두뇌를 빨아먹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지식과 지능을 얻게 된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뇌를 먹으면 뇌속의 지식까지 가져올 수 있을까. 이 만화같은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다. 62년 제임스 맥도널과 그의 동료는 편형 동물인 플라나리아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그들은 학습시킨 플라나리아를 다른 플라나리아에게 먹여서 학습된 내용이 전달되는가를 알아보았다. 접시에 담긴 플라나리아에게 불빛을 비춘 후 전기충격을 가한다. 그러면 플라나리아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전기충격의 고통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불빛을 비춘 후 전기 충격을 가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플라나리아는 불빛만 비춰도 몸을 동그랗게 만다. 파블로프 박사의 조건반사 실험과 같다. 이렇게 학습된 플라나리아를 갈아서 다른 플라나리아에게 먹였더니 다른 플라나리아 역시 불빛만 비춰도 몸을 동그랗게 말더라는 것이다. 학습된 내용이 전달된 것이다. 기억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학습을 통해 DNA 서열이 바뀌고 그로 인해 특정 단백질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기억이 단백질의 형태로 뇌속에 저장된다는 것이다. 플라나리아는 소화기관이 따로 없기 때문에 DNA 서열이나 기억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옮겨가서 학습된 내용이 전달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기억이 단백질의 형태가 아니라 뇌세포들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전체적인 네트워크 속에 저장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만약 기억이 단백질이라면 우리는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기억 단백질’을 이식하거나 캡슐에 넣어 먹음으로써 똑똑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단 원숭이 골 요리를 함부로 먹는 것은 금물. 볼을 긁고 방안을 돌아다니며 박수를 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 박사과정·jsjeong@sensor.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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