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30대주부의 가계부 경제]물가급등에 한숨만 는다

입력 1998-01-21 20:15수정 2009-09-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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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박모씨(39)는 이달들어 아이들이 마시던 배달우유를 끊었다. 아침 식탁에서 우유를 찾는 아이들에게 “외할머니네 집에 가서 사달라고 해라”고 농담을 했지만 가슴이 아팠다. 정이 든 애완견 3마리도 내보냈다. 아이들 우유를 끊는 상황에 계속 수입 사료를 사먹일 수 없었다. 그녀는 요즘 가계부 들여다 보기가 겁난다. 수입이 줄고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올라 아무리 구조조정을 해도 지출이 늘어만 간다. 박씨가 지난해 12월에 지출한 비용은 모두 1백35만원선. 해가 바뀌면서 밀가루 설탕 등 생활필수품 가격이 크게 올랐다. 지난달처럼 생활하다가는 30% 정도의 추가 지출이 예상된다. 대기업 차장인 남편 월급은 1백49만원선. 지난해말에는 상여금이 나오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월급이 총액기준으로 10% 깎였다. 박씨는 지난해 11, 12월 주부 모니터로 활동해 월 50만원 가량을 가계에 보탰다. 그것도 두달하고 그만이었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주부 모니터를 모두 잘랐다. 수입에서 대출금 상환 등 이것 저것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빼고 보니 92만원 정도가 남았다. 이 돈으로 네식구가 한달을 살아야 한다. 가장 큰 지출은 자가용 유지비. 그녀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 구입한지 12년이나 된 승용차를 처분할 생각을 하고 있다. 휘발유값이 자고나면 오르는 것 같다. 남편이 출퇴근 때만 사용해도 연료비가 9만2천원에서 11만5천1백원으로 늘었다. 김포로 출퇴근하는 남편은 요즘 차를 두고 매일 좌석버스를 탄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내 돈 내고 술마셔 본지가 오래됐다”고 말하길래 “주위에서 인색하다는 소리가 나오니 너무 그러지 말라”고 충고했다. 남편도 가계부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아이들 과외도 끊었다. 수학 학습지를 사서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공부한다. 막내인 딸아이에게는 직접 피아노를 가르친다. 박씨는 한달에 두차례 할인점에서 장을 본다. 밀가루는 1㎏ 4백원에서 1천3백원으로 두배 이상 뛰었다. 이제는 그것마저도 사기 힘들어 얼마 전부터는 튀김가루를 쓰고 있다. 설탕과 상추도 똑같이 50%씩 올랐다. 난방용 석유는 20ℓ들이 한통에 1만5백40원이던 것이 몇차례 인상을 거듭해 43% 이상 뛰었다. 박씨는 20일에 한번씩 20ℓ들이 6,7통을 주유소에 직접 가서 사온다. 그녀는 가계부를 덮으며 “직장을 잃은 분들에게는 행복한 고민으로 비쳐질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남편이 감원당하지 않고 출근하는 것만도 고맙다는 이야기다. 〈이 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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