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정수]『삶이 드라마 일때 드라마는 삶이다』

  • 입력 1997년 12월 13일 08시 15분


『아버님까지 모실 수 없어. …그래! 나 속물이야. 그럼 헤어지면 될 거 아냐』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다보면 한번쯤 들었음 직한 대사다. 아내는 화를 내면서도 남편이 『미안하다』고 접고 들어오기를 기대하지만 「감정의 부메랑」이란게 그게 아니다. 『그래! 원한다면 헤어져줄게!』 MBC의 주말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시청률이 3위까지 성큼 올라섰다. 숫자도 숫자지만 그대(박상원)와 내(최진실)가 벌이는 결혼 속의 작은 행복과 「전쟁」, 주변 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의 모습이 화제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딱 「눈높이」의 리얼리티가 시청자들을 끌어당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신혼 살림집에 들이닥쳐 막 수다를 떨고 나간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 김정수(48).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20년 가까이 살고 있다는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앞 개정역을 떠나는 지하철을 탄다. 물론 사람들은 그가 최불암 김혜자 차인표 최진실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손짓몸짓을 움직이는 대단한 작가인 줄 모른다. 그러기에 5호선에 몸을 싣는 사람들의 표정을 마음껏 뜯어보고 대화를 훔친다. 3년 전 중년여성의 홀로서기를 그렸던 MBC 「엄마의 바다」의 「지하철 박」도 그렇게 탄생했다. 수경이와 그가 닮지는 않았을까. 극중 경북 영덕으로 설정된 동규의 고향은 김정수가 태어난 전남 여수의 옛 체취와 닿아 있다. 그가 6남매의 장녀인 것도 허풍쟁이 아버지와 바람둥이 시동생, 모델지망생 시누이 등 극중 바람 잘 날 없는 나무 같은 동규의 집안을 연상케 한다. 『나는 내가 최진실 같다고 주장하는데 딸은 생김새 때문에 그런지 자꾸 김혜자쪽에 가깝다고 해요. 우리 형제들은 동규네보다 훨씬 평범하고 재미없게 살아요. 특정인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 힘겹게 정착한 30, 40대의 고백입니다』 눈높이 맞추기와 함께 너무 멀리가 아니라 적당하게 뛰쳐나간 웃음의 과장법이 드라마의 재미를 보탠다. 『우리 얘기네』하고 느끼는 순간 최불암 차인표 김지영 등 고정관념을 벗은 연기자들을 만나게 된다. 스타만 인기를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작가도 그렇다. 무엇보다 드라마의 안정적 인기 때문에 시청률이라는 지긋지긋한 채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가끔 가는 횟집이나 시장통의 「아줌마 자문단」이 『옛날 내 생각이 나더라. 이렇게 가면 어때요』라는 식으로 툭툭 던지는 「압력」이 지난해부터 심해진 안구건조증의 괴로움을 덜어준다.『81년부터 12년간 「전원일기」를 썼습니다. 「자반고등어」 같은 일일극은 힘들어요. 더 나이들기 전에 마치 텃밭에 씨를 뿌려 푸성귀를 따듯 그렇게 삶이 스며든 드라마를 쓰고 싶습니다』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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