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엄숙-장엄美 종묘,「동양의 파르테논」칭송받아

  • 입력 1997년 12월 3일 08시 13분


서울 종로4가. 번잡한 이곳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있다면 놀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종묘(宗廟)다. 같은 세계문화유산인데도 석굴암 팔만대장경에 비하면 종묘의 인기는 초라하다. 별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한다. 「조선조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지낸 곳」이란 사실 정도. 대체 어떤 비밀이 숨어있기에 찬란한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종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탁월하고 가장 한국적인 목조건축물. 서양건축가중에는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극찬하는 이도 있다. 종묘의 압권은 정전(正殿·국보 제227호). 정전은 남문에서 보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길고 거대하다. 정면 25칸(중앙 19칸이 신위를 모신 감실)에, 지붕의 좌우는 1백m가 넘는다. 동시대 단일건축물로는 세계최대인데다 독특한 조형을 자랑한다. 대지와 한몸을 이룬듯, 그 끝없음은 안정감으로 이어진다. 거대하지만 군더더기나 지루함이 없는, 힘찬 간결함으로 엄숙함을 자아낸다. 정전에 반복적으로 배치한 기둥은 장엄의 극치다. 기둥의 한 끝에서 맞은편을 바라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다. 경외 신비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정전 앞, 땅끝까지 길게 펼쳐져 있는 월대(月臺·땅보다 높게 돌을 깔아놓은 부분)역시 장관이다. 동서 1백9m, 남북 69m에 달하는 묘정(廟庭)의 월대는 안정을, 무한 반복되는 기둥은 왕조의 영속을, 하늘 끝까지 수평으로 날아갈듯한 지붕은 영원과 무한을 상징한다. 건물만이 아니다. 담으로 둘러싸인 정전의 묘정은 그 자체로 완벽한 공간이다. 묘정 밖은 울창한 숲이지만 내부엔 나무 한그루 없다. 묘정에서만 하늘을 볼 수 있다. 하늘로 통하는 곳은 묘정뿐이다. 조상, 신(神)과 만나는 곳이기에 하늘의 영적인 힘이 충만토록 한 것이다. 엄숙과 정밀(靜謐), 그리고 침묵.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원의 공간. 종묘는 일체의 과장이나 허식을 철저히 배제한다. 더하고 뺄 것이 없다. 고도의 절제와 생략, 반복과 대칭, 격조있는 공간처리, 나아가 깊은 내면까지 감추어 드러내는 상징성…. 종묘는 1394년 이성계가 한양천도 이후 제일 먼저 세운 건축물. 모셔야할 신위가 늘어나자 세종은 1421년 정전 옆에 영녕전(永寧殿·보물 제821호)을 지었다. 현재 정전에는 서쪽 제1실 태조 신위를 비롯해 공덕있는 왕과 왕비 신위 49위를, 영녕전엔 기타 신위 34위를 모시고 있다. 폐위된 연산군 광해군 신위는 제외됐다. 가장 한국적이어서 세계문화유산의 지위에 오른 종묘. 그러나 현실은 안타까움이 앞선다. 눈에 띄는 세계문화유산 표지판도 없이 담옆엔 쓰레기차만 서있으니….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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