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크루서블」,마녀사냥 그 가공할 광기『번득』

  • 입력 1997년 10월 2일 19시 55분


아주 오래전 먼 나라 얘기다.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있었던 일이니까. 모든 것이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던 시절이었다. 영악하고 성숙한 소녀 에비게일은 그 종교적 분위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친구 몇명과 숲속에서 벌거벗고 춤추며 악마의 의식을 흉내낸다. 이들의 은밀한 장난은 목사에게 들키고 만다. 『악』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던 소녀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소녀 두명은 놀란 나머지 다음날까지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건 악마의 장난이야』 목사는 외부에서 악마 퇴치 전문가와 재판장을 불러들인다. 두려움에 빠진 소녀들은 목사의 조종대로 『악마를 봤다』 『그건 목사댁 흑인 하녀였다』고 「증언」한다. 잡혀온 흑인 하녀. 윽박지르는 주인님들앞에서 『나는 악마가 씌웠었다』고 「자백」한다. 『악마가 혼자 왔던가? 다른 누가 옆에 있던가』 벌벌 떠는 하녀옆에서 울부짖는 외침. 『사라가 있었지? 난 여덟아이를 낳았지만 한명만 빼고 모두 죽었어. 아이를 받은 사라가 죽인 거야』 사라가 잡혀오고, 「마녀 사냥」은 끝없이 이어지고, 또 다른 「마녀」가 계속 생겨난다. 마을사람 전체가 마녀가 될 판이다. 공포에 질린 소녀들의 연극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집단적 광기에 빠져든다. 한편 존 프록터와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마을에서 존경받는 지주. 그러나 그들에게는 말못할 아픔이 있다. 프록터가 에비게일과 관계를 가진 뒤 부부사이는 소원해진 상태. 프록터와의 하룻밤을 잊지 못하는 에비게일은 마녀를 잡아내는 「주의 사도」가 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프록터의 아내를 표적으로 삼는다. 아내를 잃게 된 프록터. 재판장에게 간음죄를 고백함으로써 집단적 광기에 종지부를 찍으려한다. 재판장은 엘리자베스를 불러 확인한다. 『당신의 남편이 에비게일과 간음죄를 지었는가?』 고통스러워하던 엘리자베스의 대답은 『NO』. 에비게일의 사악한 의도를 밝힘으로써 사태를 뒤집으려던 프록터의 의도는 좌절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됐음을 밝히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제 선택만 남았다. 양심을 팔아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 자신의 이름과 자존심과 진실을 굽히지 않고 죽어갈 것인가. 맹목적인 공동체의 어리석음, 「인민 재판」의 뒤에서 탐욕을 채우는 자들, 희생자들의 영혼을 뒤흔드는 갈등. 오래전 먼나라 얘기는 어느새 우리도 알고 있는, 우리들의 역사가 되어 가슴을 후벼판다. 『작품의 가치는 그것이 나를 얼마나 감동시키느냐에 달렸다』고 했던 원작자 아서 밀러(82)의 예술관은 이 작품에서 그대로 실현된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처럼 사회 문제를 개인의 절절한 아픔에 투영하는 그의 빼어난 재능이 보석처럼 빛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위노나 라이더 주연. 영국 출신의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인 니콜라스 하이트너가 감독하고 아서 밀러의 아들인 로버트 밀러가 제작했다. 3일 개봉. 〈신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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