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가정의 아이들]『버려진 자식』 충격… 방황…

  • 입력 1997년 10월 2일 19시 55분


『네 엄마는 자식을 버린 나쁜 사람이야. 꿈에라도 만날 생각 하지 마라』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네 아버지다. 너는 절대 아버지 같은 남자가 되면 안된다』 김모군(15·서울 N고 1년)의 부모는 94년 봄 이혼했다. 그 후 김군의 아버지(40·상업)는 술만 마시면 잠자고 있는 김군을 일부러 깨워서라도 전처(36)에 대해 온갖 욕설을 퍼붓는다. 김군의 어머니도 아들이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찾아올 때마다 외도를 일삼던 남편을 헐뜯으며 신세한탄을 해댄다. 이혼 가정의 「홀부모」 아이들은 「철천지 원수」가 돼 버린 부모가 엄마 또는 아빠와의 혈연을 강제로 끊으려 할 때 심한 정신적 갈등을 느낀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郭培姬)부소장은 『이혼으로 부부의 연(緣)은 끊겨도 부모 자식간의 혈연관계는 그대로 남는다』며 『이혼 전의 가족관계를 강제로 단절하면 아이는 「나는 버려진 자식」이란 느낌을 갖게 돼 정서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인간관계에 자신감을 잃고 성인이 돼서도 결혼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다는 게 곽부소장의 설명. 정부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 90년 개정 민법에서는 선진국처럼 양육권이 없는 부모도 정기적으로 아이를 만나 정(情)을 나눌 수 있는 「면접교섭권」(Visitation Right)을 신설했지만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가정법원 판사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이혼부모는 부모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심정은 아랑곳 하지않고 『벌금을 내더라도 그 못된 아빠(또는 엄마)와 만나게 할 수는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 부모가 파국으로 치뉵瀯 때 한 쪽 귀퉁이에 소외돼 있던 아이들은 이혼 이후에도 부모의 한풀이나 대리만족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심한 자기 상실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혼한 아버지(45·인테리어업)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최모양(16·서울 C중 3년)은 지난 여름방학 내내 단 한번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7월의 어느 주말 친구들과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아버지가 정해준 하루 일과표의 공부시간을 못 지켜 그 벌로 외출금지 명령을 받았던 것. 최양은 『아빠가 「엄마보다 더 딸을 잘키우고 말겠다」면서 직장에서도 매 시간 전화를 걸어 나를 챙긴다』며 『솔직히 「이건 관심이 아니라 감시」란 생각을 떨칠수 없다』고 털어놨다. 부천 성가병원 신경정신과 최보문(崔寶文)박사는 『홀부모가 먼저 이혼에 따른 정신적 갈등과 심리적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이는 결코 올바른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최박사는 홀부모들에게 △이혼은 아이와 함께 풀어가는 「3차 방정식」이라는 생각을 가질 것 △이혼을 죄악시하는 사회적 편견에 파묻혀 스스로를 천시하지 말 것 △전 남편(아내)에 대한 감정을 아이를 통해 풀려고 하지 말 것 △사회적 경제적으로 당당하게 「홀로서기」를 할 것 등을 당부했다. 『시댁 식구들로부터 「전업주부로만 살 것」을 강요당하며 늘 풀이 죽어 있던 엄마가 이혼 후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어요. 엄마랑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엄마의 선택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4년 전 이혼한 어머니(45·대학강사)와 단 둘이 사는 이모양(12·초등학교 6년)의 당당한 목소리다. 〈이훈·부형권·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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