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율로 풍자한 「공산주의 억압」…쇼스타코비치 전집 나와

  • 입력 1997년 8월 22일 08시 26분


음악을 받아들이는 시각에도 착시(錯視)현상이 있을까. 드높게 울려퍼지는 트럼펫, 타악기의 육중한 리듬. 1937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대표적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초연됐다. 마침 그가 당(黨)으로부터 「형식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뒤였다. 우렁찬 피날레에 청중들은 갈채를 보냈다. 당 간부들은 「쇼스타코비치가 굴복했다」 「사회주의의 승리를 음악에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절친한 제자이자 친구였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이 피날레를 잘 들어보라. 누군가 등 뒤에 칼을 대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웃어라 웃어」라고』 로스트로포비치의 지적은 훗날 그에 뒤이어 쇼스타코비치의 아들 막심이 서방으로 망명, 부친의 평전 「증언」을 내놓음으로써 사실로 밝혀졌다. 『아버지는 이 교향곡에서 승리의 찬가 대신 (공산정권의)끝없는 억압을 표현하셨죠』 쇼스타코비치의 날카로운 음악 속에는 따끔한 풍자가 숨어 있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지휘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전 15곡 전집이 염가음반으로 출반됐다(텔덱). 90년대 들어 차례로 선을 보였던 14곡에 덧붙여 73년 모스크바 아카데믹 심포니를 지휘한 14번 교향곡이 추가로 삽입됐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 1번(1925년)부터 15번(1971년)까지 그의 교향곡 하나하나는 구소련 역사의 거의 모든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의 교향곡은 느낌으로 쓴 러시아의 연대기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지적이다. 『그는 자기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냈다. 그가 음악으로 쓴 역사는 말(言)로 쓰인 것보다 심오하고 가치가 크다』 로스트로포비치야 말로 그런 증언에 적합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만난 이후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을 내놓을 때마다 받았던 찬사와 비난, 기쁨과 슬픔을 그는 매번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 런던 교향악단과 미국 내셔널 교향악단을 번갈아 지휘(14번 제외)한 전집음반에는 로스트로포비치가 곁에서 들여다본 쇼스타코비치의 내면풍경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로스트로포비치는 번스타인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쇼스타코비치 해석가들이 한껏 당겨놓았던 빠르기를 모스크바식 전통에 따라 다시 환원시켜 놓고 있다. 템포가 느려졌지만 금관의 저음이 충실해져 특유의 「강건함」이 살아 있는 점도 전집의 장점으로 꼽힐 만하다.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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