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사람들/태국아카족]문자없어 조상이름65명 암송

  • 입력 1997년 6월 5일 08시 19분


이름이 무척 정겹게 들리는 아카족. 태국 현지 발음은 「아까」에 가깝다. 그러나 「아카」라는 본 뜻은 아무도 모른다. 아카족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91년 태국 치앙마이 일대 깊은 산중의 카렌족 마을로 오지트레킹을 갔을 때다. 코끼리에 올라탄채 대나무 횃불로 밤길을 밝히는 야간 행군도 마다하지 않던 그 트레킹 중에 희한한 모자를 쓰고 다리에는 행전을 친 아카족 여인을 만났다. 석실로 짠 수직 매듭을 팔던 그녀의 얼굴 생김새가 꼭 옆집 아줌마를 닮아 어설픈 태국말로 물었다. 『츠,알라이나』(이름이 뭡니까) 『나의 초명 아미요 끄래. 너의 초명 아지』(내 이름은 아미요라고 그래, 너의 이름은 뭐지). 발음이 우리 말과 너무나 비슷해 놀랐다. 「나」 「너」는 말할 것도 없고 관형격조사 「의」, 문장 어미와 어순 등이 그렇게 흡사할 수가 없었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아카족을 만나러 간다. 이번에는 치앙라이주 치앙샌 부근의 산악지방이다. 「북방의 장미」라고 불리는 태국의 고도(古都) 치앙마이에서 「골든 트라이앵글」(태국 라오스 미얀마 3국의 접경지대)쪽에 있는 치앙샌, 거기서 산길을 힘겹게 올라 닿는 산꼭대기의 전기도 안들어 가는 곳에 아카족 마을이 있었다. 그중 하나 「포쿱」마을에서는 초입부터 얼떨떨해졌다. 우리나라 사찰 입구에 있는 일주문과 비슷하게 생긴 높이 3m의 문 때문이었다. 문이라고 해야 두 개의 나무기둥에 가로로 나무를 얹은 엉성한 모습으로 그 위에는 새와 총 비행기 활 짐승 등의 나무조각품이 놓여 있었다. 이름은 「로카」. 외부의 위험과 질병 액운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 주는 성물들로 함부로 만져서는 안된다. 부정을 탄단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돼지를 잡아 바치고 신령들께 빌어야 한다. 문곁에는 벌거벗은 형상의 남녀 장승이 서로 마주보는 자세로 서있다. 목장승은 유난히 성기부분이 강조돼 있었다. 아카족은 원래 문자를 가진 민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문자도 국적도 없다. 문자생활 시절에는 쇠가죽이 종이역할을 했다. 그러나 유랑생활을 하는 아카족에게 기록을 위한 쇠가죽 더미가 부담이 된것은 명약관화한 일. 그래서 어느 한 족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글씨 쓴 쇠가죽을 먹으면 그 문자가 영원히 몸속에 존재하게 된다고. 그후 더이상 아카족 문자는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아카족 사람들은 웬만하면 남녀가 모두 상체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는다. 물론 부끄럼도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전통복장은 있다. 특히 여인들의 은장식 모자는 유난히 화려하다. 신분이 높을수록 화려할 수밖에. 포쿱마을의 집들은 모두 대나무와 갈대를 엮어 만들었다. 그리고 높이 1m의 기둥 위에 짓고 그 아래서 돼지와 개를 키웠다. 마침 여기서 햇볕을 쬐던 남정네 몇사람을 만났다. 몇가지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러다 조상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마치 떠벌리기 경기라도 하듯 조상들의 이름을 읊어댔던 것이다. 무려 65명이나 되는 선조들의 이름이 나왔다. 알고 보니 족보 외우기는 아카족 남자들의 의무중 하나. 문자로 기록을 남기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어쨌든 할아버지 존함밖에 모르는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연호택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