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 전재국,고려불화 133점 책으로 출간

  • 입력 1997년 5월 12일 07시 51분


출판인 전재국. 경영학을 전공한 그가 왜 스스로도 낯선, 그리고 지금도 조금은 어긋나 보이는 출판인의 길을 택했을까. 그가 백담사에서 맨 처음 아버지(전두환전대통령)에게 이런 뜻을 밝혔을 때 아버지의 눈빛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자신을 산사로 내몬 정치적 회오리가 아들마저 「은둔의 땅」으로 내쫓고 있다는 회한에서였을까. 아니면 바람결에 무수히 허리가 잘리면서도 결국은 제 자리를 찾고 마는 「업보」의 의미를 생각했던 것일까. 사실 그의 출판계 입문은 「맹랑」한 대목이 없지 않다. 누구보다도 「5공」의 탄압과 설움을 많이 받아온 인사들이 우글대는 출판계다. 그런데도 그는 이 바닥에서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시공사의 성공 이면에는 막강한 자금력이 버티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들은 도대체 그 돈이 어디서 흘러들어왔느냐고 묻는다. 그런 그가 대단한 책을 펴냈다. 그가 아니면, 그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가 아니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책이다. 한국미술연구소가 기획한 「고려시대의 불화」. 4년반에 걸쳐 제작비만 이래저래 4억여원이 들었다. 『90년 출판을 시작하면서부터 욕심을 냈던 책입니다. 고려불화는 고려청자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최상의 찬사를 받는 고미술의 걸작이라고 해요. 그런데도 대다수가 일본에 흩어져 그 진수를 접하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고려시대의 불화」는 국내 소장품 12점과 미국 유럽의 16점, 그리고 일본의 1백여 사찰에 전해오는 1백5점 등 1백33점을 망라했다. 국내에 있는 단 한점만이 소장자의 이견으로 수록되지 못했다고 한다. 『대부분 현지에서 직접 촬영했어요. 현미경과 적외선 사진, X선 사진을 활용해 확대도판을 곁들였습니다. 육안과 감각으로 느낄 수 없는 화려하고 정교한 고려불화의 신비를 전하기 위해서지요』 거의 표정이 없는 무뚝뚝한 인상. 그러나 책에 대해 설명할 때 만큼은 약간 상기된다. 정작 고미술품에 대한 본인의 안목과 식견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스스로를 문학청년의 정열이 없이 「경영 마인드」만으로 출판계에 뛰어든 신세대로 분류하는 그다. 『88년11월23일이었지요. 아버님께서 백담사로 들어가셨을 때 저는 미국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계속할 수 없더군요. 주변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주 찾았습니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힘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지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있어서 일까. 그는 책 출간이 아버지가 입은 불은에 보답하는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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