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교수등 「현대사회와 과학문명」펴내

  • 입력 1997년 4월 29일 09시 03분


지난 90년 걸프전을 「포스트 모더니즘 전쟁」이라고 부른 사람이 있었다. 중동의 사막에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 그리고 신기루. 신기루는 환상이며 인류 최초의 시계였던 모래는 시간의 의미를 저버렸다. 모래바람처럼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 고정된 리얼리티를 상실한채 부유하는 모래…. 무엇을 위해 왜 싸우는지조차 불분명한 전쟁. 전쟁의 개념조차도 흐릿한 전쟁. 그래서 걸프전은 「포스트 모던」 했다는 얘기다. 세기말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과학자와 지식인들. 이들은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현대문명과 과학기술 앞에서 모래바람을 맞는 걸프전의 병사처럼 어지럽다. 무력하다. 전체적인 구도에 대한 전망을 잃은채 그저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길 뿐. 세기말에 이르러 바야흐로 모더니즘의 엄격한 지식규범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대 한상진교수(사회학과)는 『「재래식 과학」의 독점적 지위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며 『축소 환원돼 분석적으로 검증된 사실의 규칙성만을 믿을만한 지식이라고 할 수 없는 세상이 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문에 개개의 과학분과가 분해해 놓은 지식의 파편들을 종합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과 함께 「곧 바로」 총체적 시각으로 사태의 복잡성에 접근하려는 폭넓고 유연한 지식탐구의 지평이 열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교수가 운영위원장으로 있는 「사회정의연구실천모임」이 주축이 돼 95년부터 국내 최초로 학제간(學際間) 합동강의를 실시하게 된 연유다. 올해 두번째 강좌가 열리고 있다. 매주 금요일 강의실을 가득 메우는 2백여명의 학생들과 매주 3명이 돌아가며 한팀을 이룬 교수진의 열기가 뜨겁다. 한교수는 『우리 학문 풍토에서 인문 사회분야 교수와 자연 공학분야 교수가 합동강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합동강좌 내용이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현대사회와 과학문명」(나남출판). 매주 책임교수로 강좌에 참여한 한교수를 포함, 각각 전공이 다른 28명의 교수가 동원됐다. 현대사회와 과학문명의 흐름을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성찰하고 재해석하는 데 강의의 초점이 맞춰졌다. 한교수는 『이론과 실천의 통합은 지식인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라며 『시국선언의 형태가 아니라 학문 안에서, 학문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작은 시도』라고 출간배경을 설명했다. 한교수는 이어 『합동강좌는 학제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학문의 실천적 관심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아직 전공분야별 연계가 화학적 결합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나 「물리적 접목」 자체가 값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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