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5분다이제스트]송재학 지음/「그가 내 얼굴을…」

  • 입력 1997년 4월 15일 15시 59분


<송재학 지음/민음사/3500원> 「마흔 나이의 네 출가 소식으로/내 등 뒤 문이 삐걱거림을 안다/때마침 해국 화분에서/생게망게하게 하늘매발톱이 슬며시 솟아오른다/…/네 갠지스강 엽서가/아픈 몸 곳곳의 빈틈을 찾아온다/…/네 환속의 풍문이 다시/내 시신경과 눈물, 등과 절벽 사이/천개도 넘을 빈틈을 찾기 시작한다」. 출가는 무엇이고 환속은 또 무엇인가, 그것도 나이 마흔에. 시인 송재학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시 「빈틈」의 일부다. 짐짓 평온해 보이지만 뒤로 돌아가보면 폭풍우같은 청춘의 격정이 숨어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요 속의 격렬함. 이같은 대립물의 처절한 긴장이 바로 이 시의 매력이다. 긴장이야말로 시의 생명인 까닭에. 아울러 이 시는 시인이 「얼음시집」 「푸른빛과 싸우다」 등 자신의 지난 시편들에 드러났던 광기 상처 절망 불안을 극복, 안정된 시세계로 접어들었음도 잘 보여준다. 이번 시집은 우선 완숙미와 깊이가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안타까움 비애 허무 등이 곳곳에 숨어 있어 슬프고, 그 내면의 정서가 일상의 풍경과 잘 어울려 아름답기도 하고 흐르는 물처럼 편안하기도 하다. 「나 할 말조차 빼앗기면 모슬포에 누우리라/뭍으로 가지 않고 물길 따라 모슬포 고요가 되리/…/햇빛마저 희고 캄캄하여 해안은/늙은 말의 등뼈보다 더 휘어졌네/…/가끔 포구에 밀려드는 눈설레 앞세워 격렬비도의/상처까지 생각하리라」(「모슬포 가는 까닭」 일부). 하지만 빈틈이 노출돼버린 시인은 편하지만은 않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이 빈틈 사이에서 새로운 시적 편력(遍歷)을 시작하리라. 〈이광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