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문맹 「흔들리는 교육」…신입생 50% 학과명 못써

  • 입력 1997년 3월 29일 20시 15분


「한글 문맹」은 거의 사라졌으나 「한자 문맹」이 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대에서 교양과목인 「철학원론」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수업의 첫 주제 발표를 맡은 학생들이 참고자료로 지정된 崔南善(최남선)의 「한국사」와 鄭寅普(정인보)의 「조선사연구」 등 한문이 많이 섞인 40,50년대 저서들을 해독하지 못해 발표를 포기했기 때문. 학생들은 담당교수에게 『국한문혼용 고서들이 영어원서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강좌를 담당한 철학과 蘇光熙(소광희)교수는 『학생들이 한자를 잘 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독해를 할 수 없는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자 문맹」현상은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려대 한문학과 尹在敏(윤재민)교수는 『신입생의 절반 정도는 자기학과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실정이며 심지어 한문과 신입생들도 부모나 형제 자매의 한자이름을 못쓰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대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중고교교사들은 수업시간의 절반 정도를 한자 낱말풀이에 보낸다고 말한다. 서울 Y중 K교사는 『며칠전 2학년생들에게 「크리스트교로 개종한다」의 개종(改宗)과 「한강이 서해로 유입한다」의 유입(流入)의 뜻을 설명하는데 10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흑사병이 창궐한다」의 猖獗(창궐)「비잔티움으로 천도」의 遷都(천도) 등 성인도 이해하기 힘든 한자로 된 단어가 교과서에 수록된 반면 한문 수업은 1,2학년과정에 1시간씩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자 문맹」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최근 일부 대학과 회사는 한문 교육을 「정책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숭실대는 지난해부터 인문대생들이 한문(3학점)을 반드시 이수토록 했으며 이화여대는 지난 94년부터 취업준비생들에게 매년 40주의 한자특강을 실시하고 있다. 현대와 금호그룹은 입사시험과목에 한문이 포함돼 있으며 입사후에도 한자실력을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다. 이같은 기업의 인사정책은 「곧 다가올 동북아시대에 대비한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철용·변영욱·김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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