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화/드라큘라]「어둠」지배 反기독교 상징

  • 입력 1996년 12월 25일 20시 18분


아일랜드에 영국작가 브람 스토커가 1897년에 쓴 「드라큘라」는 흡혈귀에 대한 최초의 본격소설로서 이후 쏟아져나온 수많은 아류 흡혈귀 소설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피를 빠는 흡혈귀가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흡혈귀에 대한 공포는 시공을 초월해 모든 인간들의 원초적 두려움을 자극해 왔다. 「구약성서」에는 『피는 곧 생명이니 마시지 말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흡혈귀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타인의 생명을 착취하는 이단인 셈인다. 흡혈귀가 특히 기독교 문화권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 그를 퇴치하는데 십자가가 동원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드라큘라」는 조너선 하커의 일기로 시작된다. 영국의 부동산 회사에 근무하는 하커는 런던에 집을 사겠다는 외국인 드라큘라 백작의 편지를 받고 법률적 절차를 도와주기 위해 트렌실베니아로 떠난다. 문명과 기독교와 빛의 중심에서 떠나 야만과 이단과 어둠의 지역으로 간 그는 거기에서 흡혈귀 드라큘라를 만난다.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존재 드라큘라는 과학의 이성적 논리적 법칙을 무시하며 생과 사의 중간에 위치함으로써 죽음과 부활을 믿는 기독교의 교리를 모독한다. 그는 하커를 고성에 감금한 채 영국으로 가서 하커의 약혼녀 미나와 그녀의 친구 루시의 피를 빨아 그들을 피해자로 만든다. 영국은 이제 곧 흡혈귀들에 의해 지배될 운명에 놓이게 된다. 과학자이자 기독교도인 반 헬싱 박사는 드라큘라의 그러한 이단적 행위를 참지못하고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드라큘라를 추적해 그를 영원히 처치한다. 영국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드라큘라는 1922년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1957년에 나온 「괴인 드라큘라」(크리스토퍼 리, 피터 커싱 주연)다. 그러한 영화들에서 드라큘라는 언제나 사악한 악마로만 묘사되었다. 그러나 1992년에 나온 프랜시스 코폴라의 「드라큘라」는 처음으로 드라큘라를 긍정적이고 동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 영화에서 드라큘라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인간적인 남자로 등장하고 있다. 그가 미나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녀가 자신의 죽은 아내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코폴라의 영화는 드라큘라의 성적 매력을 십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성인남자 20명의 힘을 가졌으며 온화하고 다정해서 연인이 멀리 떠나가 가슴이 공허한 여인들을 쉽게 유혹한다. 코폴라의 영화에서 약혼 중인 미나와 루시는 「아리비안 나이트」의 성행위 삽화를 보며 남몰래 성적 욕망과 호기심을 불태운다. 빅토리아시대의 엄격한 성적금기 아래서, 더구나 약혼이라는 사슬에 얽매인 그들은 드라큘라에게서 성적 대리만족을 찾는다. 그것은 하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드라큘라의 성에서 하커와 세명의 미인 흡혈귀는 감미로운 섹스의 향연을 벌인다. 코폴라의 영화에서 흡혈과 섹스는 서로 긴밀하게 병치된다. 주인공들과 드라큘라의 만남이 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사회적 속박인 「약혼」기간 중에 일어나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드라큘라는 억눌린 성적 욕망에 대한 작품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기독교와 이단, 과학과 미신, 중심과 주변, 문명과 야만, 빛과 어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대립 같은 중후한 문학적 사회적 주제들이 들어있다. 이 모든 것들은 드라큘라가 단순한 공포소설이 아니고 사실은 격조높은 문학작품이라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김 성 곤(서울대교수·영문학)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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