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27)

  • 입력 1997년 1월 28일 20시 25분


짧은 봄에 온 남자〈9〉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 속으로 아저씨를 사랑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거기에 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정말 그렇게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아저씨의 말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아저씨가 힘들다는 부분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난 오년간 한 소녀가 아저씨가 쓴 글을 읽으며 또 아저씨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가슴을 키워왔다. 서영은 내가 아저씨에 대해 잘 모르듯 아저씨도 그 의미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회사로 왔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서 네가 그랬어』 세번째 찾아갔을 때 아저씨가 말했다. 한강 물까지 한결 푸르러 보이는 봄날 저녁이었다. 『그냥 집으로 들어가라니까 거리를 막 돌아다니고 싶다고』 『알아요』 『그래서 네 마음이 어떤 거라는 걸 알았던 거야』 『그렇지만 아저씨가 절 피하는 건 싫어요』 『그냥 피하는 게 아니야』 『그럼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 말에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절 어른으로 대해줘요. 난 지금도 이렇게 아저씨 팔도 잡을 수 있어요』 강변 쪽 길을 걷다가 그녀는 가만히 다가가 아저씨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아저씨께 드릴 게 있고요』 『내게?』 『예. 걷지 말고 가만히 서 있어봐요』 서영은 아저씨의 팔을 잡은 채 아저씨 앞으로 서서 발돋움해 아저씨의 볼에 살며시 자기의 볼을 댔다가 뗐다. 어디선가 한줄기 강바람이 거리로 불어왔다. 숲길이 아닌데도 숲길처럼 숲냄새가 묻어났다. 『아저씨의 마음에 감사하고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이럴 땐 어떻게 말해야 하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요. 더 멋지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떨려서 멋지게 못했어요』 『아냐. 멋졌어. 가슴이 다 멎을 만큼』 『그리고 오늘은 절 집에 데려다 주세요』 <글:이 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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