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강남특별구’ 아파트값 폭등 현장

  • 입력 2002년 8월 4일 18시 45분


【한동안 주춤하던 강남 아파트값이 다시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진원지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 거래는 뜸한데 호가만 상승한다. 여름방학 이사철이 시작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오를 대로 오른 아파트값이 다시 급등한 이유로는 충분치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달새 1억 껑충… 재건축이 상승 도화선▼

올 6월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의 평균 평당 가격은 1619만9000원.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8월 2일에는 1724만1000원으로 104만2000원이 올랐다. 이를 31평형으로 환산하면 5억216만9000원에서 5억3447만1000원으로 3200여만원이 오른 셈이다. 일반 근로자의 1년치 월급과 맞먹는 액수이다.

▽한 달 새 1억원 올라〓재건축 대상 아파트 가운데서도 최근 사업 추진 과정에서 ‘재료’가 있는 단지가 특히 많이 올랐다.

지난 달 시공사를 선정한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한 달만에 무려 1억원이 올랐다. 6월말 3억8000만∼4억1500만원이었던 31평형이 4억5000만∼5억원이다. 34평형은 4억7000만원에서 최고 6억원으로 호가가 뛰었다.

인근 청실아파트 31평형도 같은 기간 4억8000만원에서 5억7000만원대로 폭등했다.

이미 사업승인을 받고 주민 이주가 막바지에 이른 강남구 도곡동 주공 1차아파트 13평형은 6억원이 넘는다. 지난달에만 5000만원가량 뛰었으며 평당 가격은 4600만원에 달한다.

▽왜 오르나〓새 아파트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이다. 기존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지으면 적은 돈으로 지금보다 큰 평형에 입주할 수 있다.

강남구 A아파트 34평형의 경우 41평형으로 재건축되면 1억원 정도의 추가 부담금만 내면 입주할 수 있어 1억원 정도가 남는다고 시공사측은 설명한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오르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인위적인 ‘조작’ 때문이라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귀띔이다. A아파트만 하더라도 서울시가 승인할 수 없는 턱없이 높은 용적률(부지면적 대비 건물총면적)로 입주자와 투자자를 현혹하고 있다는 것.

대치동 S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한 아파트 값이 오르면 주변 단지 주민들도 덩달아 매도 호가를 올려 놓는다”며 “암묵적 담합에 의한 가격 전염이 통용되는 게 강남 아파트 시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의 중개업소들은 시세보다 조금만 낮게 거래를 주선해도 아파트 부녀회가 나서 항의 방문을 하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한다.

건설업체와 재건축조합의 과대 포장도 가격을 올리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업체들은 터무니없는 용적률을 제시해 금방 재건축이 될 것처럼 선전한다. 재건축조합 집행부도 사업 진행 상황을 부풀려 설명하기 일쑤다.

조합원들도 집값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굳이 과대 포장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기에 단타매매를 노리는 투기 수요가 가세하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를 사뒀다가 호재성 재료가 나오면 바로 되파는 방식이다.

하지만 강남 아파트값이 오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강남을 대신할 만한 주거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훌륭한 교육시설, 각종 편의시설, 교통 여건을 감안하면 강남으로 몰리는 수요만 탓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연초부터 거듭된 주택시장 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 아파트 값은 최근 한 달 사이에 수천만원에서 1억원씩 급등해 정부와 민주당이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비상이 걸렸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가격 폭등의 그림자〓다른 지역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강남 지역은 아파트 비중이 크고 집값이 전국에서 가장 비싸 한국 주택시장의 기준이 된다.

80년대 이후 여러 차례 발생한 집값 폭등이 모두 강남지역에서 시작됐다. 강남이 오르면 신도시와 강북지역이 따라 오르고, 그 여파가 지방 도시까지 확산된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인 닥터아파트 곽창석(郭昌石) 이사는 “강남에서 거래 없이 호가만 올라도 다른 지역 집값이 들썩거리는 사례가 많다”며 “불필요한 호가 상승 때문에 무주택자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대책, 효과 있을까〓건교부와 서울시가 4일 내놓은 대책의 핵심은 재건축 기대심리를 없애자는 것이다. 재건축 조합이나 시공사들이 실제 재건축보다는 시공사 선정, 안전진단 등 사업 추진 과정의 호재를 이용해 집값을 올리는 데 더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기 때문.

재건축이 불가능한 사업지에 당장 사업이 되는 것처럼 바람을 잡아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재건축조합이나 업체를 강력히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에 관여하는 조합들이 수시로 생겼다가 사라지고 일일이 단속하기에는 행정력이 모자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포’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주민 동의나 용적률 등 각종 규제 때문에 재건축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홍보하겠다는 대책도 별로 실현성이 없다. 용적률과 소형평형 의무건설 비율 등 재건축 관련 기준들은 경기 상황이나 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수시로 바뀐 전례가 많아 주민들이 잘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남지역에서는 “신임 시장이나 구청장이 개발론자이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규제가 풀릴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대증요법 남발… 대책 약효 떨어져▼

◆정부 안정책 왜 안먹히나=정부와 서울시는 상반기에만 6건의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대책을 쏟아내다보니 “더 이상 내놓을 정책이 없다”고 털어 놓을 정도다.

주요 내용은 아파트 재건축 시기를 분산하고 세무조사로 투기 수요를 막으며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타깃은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다.

하지만 강남 집값은 그칠 줄 모르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대증요법을 남발한 결과이다. 전문가들은 강남 주택 수요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강남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시설’이다. 이는 강남에 세 들어 사는 3명 중 1명이 다른 지역에 ‘내 집’을 갖고 있다는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자기 집을 놔두고 강남에 세 들어 사는 이유는 자녀 교육 때문이다. 한 번 강남에 들어오면 빠져나가지 않으려는 특성도 강하다. 이런 현상은 강남 진입 수요를 차단하거나 재건축을 억제하는 정책만으로는 집값을 잡는 데 한계가 있음을 증명한다.

김현아(金炫我) 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강남 주택시장은 만성적인 초과수요가 발생하는 곳”이라며 “수요를 차단하고 공급을 억제하면 기존 아파트의 희소가치는 더욱 높아져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올해 초 정부가 각종 재건축 규제안을 내놓자 강남의 고층아파트 값이 뛴 것은 공급이 줄면 일반 아파트값이 오를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주택 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김 연구원은 “강남지역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유일한 대안은 재건축”이라며 “하지만 재건축을 활성화하면 투자 기회가 늘어나 집값이 더 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조합 설립과 시공사 선정 등 재건축 관련 사업 단계를 거칠 때마다 가격이 뛰는 데서 잘 나타난다.

결국 장기적인 대안으로 강남을 대신할 신규 주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연구원은 “신도시 개발을 중산층 주택 보유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고소득층의 교외 이전을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재검토할 때”라고 제안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제2의 강남’ 개발 수요층 분산을▼

◆전문가에 들어본 ‘강남 처방’=재건축을 고리로 폭등하는 서울 강남지역 집값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강남에 버금가는 생활과 교육여건을 갖춘 대체 주거지를 개발해 강남에 집중된 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강남으로 이주하려는 수요층이 많은 상황에서 세무조사와 같은 단기적인 수요 억제책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

김성식(金聖植)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강남과 가까운 판교 등 수도권 남부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해 강남지역의 만성적인 주택 초과수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90년대 중반 이후 준농림지 난개발로 교통난이나 환경훼손 문제가 발생한 것을 거울삼아 신도시는 도로 상하수도 녹지시설 등 기반시설을 충분히 갖춘 다음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 주거지로 신도시보다는 기존 시가지 지역을 재개발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기존 수도권 5개 신도시가 자족도시로 발전하지 못하고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해 교통난 등 각종 문제를 초래했다는 것이 이유.

김선덕(金善德)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난개발로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신도시 개발은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한다”며 “강북지역 개발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권영덕(權寧德) 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신도시를 개발하면 도심에 살고 있는 중산층이 빠져나가 도심 공동화 현상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강북 등 기존 도심지역을 적정한 밀도로 개발해 수도권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체 주거지 개발보다는 주택가격을 시장에 맡겨 자연스럽게 인구 이동을 유도하자는 의견도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강남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집값 상승 움직임이 거의 없고 공급 물량도 많기 때문.

고철(高鐵) 국토연구원 토지주택연구실장은 “강남지역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는 재건축 사업이 끝나면 교통체증이나 대기오염 문제가 훨씬 심각해져 집값이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강남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져 집값도 자연스럽게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계획 뜯어보니
현황
·가구수:4424(31평형 2674, 34평형 1750)
·대지면적:7만9492평
·건축개요:지상 14층 28개동
·용적률:197% ·건폐율:17.3%
·준공일:1979년 8월 30일
조합의 재건축 계획
·가구수:4424(33평형 875, 41평형 3169, 45평형 280, 52평형 100)
·용적률:266%
·착공:2005년 8월 ·입주:2008년 6월
서울시 분석
·용적률:220%(최대 250%까지 가능하나 기반 시설용지 감안하면 실제 용적률 하락)
·수익확보:현 시세로 사면 곤란(34평형을 6억원에 매입해 41평형으로 이주시 추가 부담금 3억9000만원 필요)
자료: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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