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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들 밥줄이 끊기게 생겼다.” 20일(현지 시간) 구글이 출시한 이미지 생성·편집 도구 ‘나노 바나나 프로’의 무서운 성능을 실감한 이들의 댓글이다. 실제로 사용해 본 나노 바나나 프로의 기능은 놀라웠다. 텅 빈 식당의 사진을 주고 사람을 채워 보라고 하니, 순식간에 북적이는 ‘맛집’으로 탈바꿈시켰고, 제미나이 3을 기반으로 인포그래픽도 척척 만들어냈다. 이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이미지들을 만드는 데 더 이상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아졌다는 것 말이다. 창작의 영역도 이런데 나머지 노동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더 거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이미 인공지능(AI)발 구조조정 쓰나미에 아우성이다. 업종도, 기업 규모도 가리지 않는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이 1만3000개가 넘는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전자상거래 공룡 아마존도 1만4000명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글로벌 물류 업체 UPS 역시 올해에만 4만4000명을 내보냈다. 구직·고용 컨설팅 업체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CG&C)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이미 95만 개에 육박한다. 코로나19 이후 ‘구인 대란’에 시달리던 미국 노동시장이 불과 2∼3년 만에 정반대의 국면으로 돌아선 것이다. 경기 영향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 한가운데는 AI가 자리한다. AI는 사무, 지원, 고객 응대 등 반복 업무를 중심으로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이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이 하던 일’을 더 적은 비용과 더 빠른 속도로 자동화할 수 있게 된 것. 미국 기업 경영진들은 “AI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며 너도나도 인력 다이어트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 흐름이 결코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 같은 파도는 별다른 경력이 없는 청년들부터 덮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AI 확산과 청년 고용 위축: 연공 편향 기술 변화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서 청년 고용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AI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기초적·반복적 업무가 주니어 직무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예고된 결과다. ‘경험을 쌓으면서 배우던’ 신입 직원들인데, 이제는 그 ‘경험의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셈이다. 지금도 AI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단순히 업무를 돕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업무 방식 전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의 노동시장 변화 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파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명확하다. AI 대전환의 파도가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전에 청년층의 직업 역량과 산업 구조 전반을 ‘재설계’하고 대학 교육과 직업훈련 체계를 AI 시대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정부는 산업별 일자리 전환을 지원하는 안전망을 촘촘히 만들고, 재교육·재배치에 실질적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AI가 불러온 도도한 변화의 물결을 우리만 피해갈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을 어떻게 흡수하고, 어떤 기회로 전환하느냐는 결국 사회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AI 시대에 우리의 청년들은 어떤 일자리에서, 어떤 역량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그리고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카카오톡에 진동 또는 소리 없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조용히 보내기’ 기능이 추가됐다. 18일 카카오톡은 이러한 기능을 추가한 최신 버전을 업데이트했다고 밝혔다. ‘조용히 보내기’는 수신자의 알림 설정 여부와 상관 없이 푸시 알림과 소리·진동 없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기능으로, 늦은 시간대에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채팅방 입력창에 메시지를 입력하고 전송 버튼을 길게 누른 뒤 ‘조용히 보내기’를 선택하면 된다. 한편 이날 업데이트로 자주 사용하는 채팅방만 모아볼 수 있는 ‘즐겨찾기’ 폴더도 추가됐다. 보이스톡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하도록 설정하는 기능도 신설됐다. 또 페이스톡에 원하는 사진을 골라 ‘나만의 배경’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GPU 보유 기준으로) 전 세계 3등이 됐습니다.” 10월 31일 미국 엔비디아로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확보하게 됐다는 소식을 전하던 경북 경주 APEC 미디어센터의 브리핑장. 하정우 대통령실 AI 미래기획수석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GPU 26만 장을 추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시드 인프라’가 될 수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AI 깐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GPU 26만 장 공급이란 통 큰 선물에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글로벌 GPU 공급난이 심각한 가운데 26만 장의 최첨단 GPU가 풀리는 것은 한국 정부와 산업계에 분명 호재다.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는 GPU를 확보함으로써 반도체, 자동차 분야 등에서 AI 전환이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브리핑장의 낙관과 달리, 산업 현장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장밋빛 기대에 취해 있기에는 정작 GPU를 돌릴 인재 확보 등 만만치 않은 숙제가 산적해 있어서다. GPU 구했지만 이를 돌릴 ‘두뇌’는 부재 미국을 중심으로 인공지능(AI) 시장에서는 ‘S(최상위)’급 AI 인재 영입을 위한 ‘쩐의 전쟁’이 한창이다. 거액이 들더라도 S급 인재를 영입해야 AI 서비스 개발 경쟁에서 한발 더 앞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한 빅테크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인재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메타는 마크 저커버그 CEO까지 나서 오픈AI 출신 연구원 자오성자를 ‘메타 초지능 연구소’의 수석 과학자로 스카우트했다. 메타는 애플에서 AI 모델 개발을 총괄했던 뤄밍 팡에게 2억 달러 이상의 보상 패키지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우리 산업계는 AI 인재 영입은 꿈도 못 꿀 형편이다. 하긴 한국에 남아있는 인재들마저 다들 떠날 생각들인데 해외 인재 스카우트는 ‘턱없는 꿈’일지 모르겠다. 한국은행이 국내 석박사급 이공계 인력 2700여 명을 설문 조사해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43%가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 중이었다. 2030세대의 해외 이직 의향은 70%에 달했다.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20개 내외 대학을 제외하고는 아예 이공계 대학원생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진단도 나왔다. 열악한 처우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단기 실적 위주의 평가 등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과학자에 대한 처우가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게 첫 번째, 국가에서 과학기술인에 대한 사기를 더 올려주지 못하는 게 두 번째”라고 인재 유출의 원인을 짚었다.AI 경쟁은 결국 사람 싸움 정부는 부랴부랴 석학 지원제도와 청년 연구자 안정 지원책 등을 담은 종합 대책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공계 인재들의 처우 개선과 더불어 과학기술 인재가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연봉도 중요하지만, 고액 연봉만으로는 인재를 붙잡을 수 없다. 자유로운 연구,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장기적 R&D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실제로 한은의 설문 조사에서 석박사 인재들의 해외 이직 희망 사유는 단순히 임금 수준 격차만은 아니었다. ‘금전적 요인’(66.7%·중복 응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연구생태계 및 네트워크’(61.1%), ‘경력 기회 보장’(48.8%) 등 비금전적 요인도 상당했다. AI 경쟁은 결국 ‘사람의 싸움’이다. GPU 26만 장은 교두보일 뿐이다. 결국 이를 구동해 남다른 서비스를 만들고 새 경쟁력을 확보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 젠슨 황의 GPU 선물을 한국 제조업 혁신의 모멘텀으로 삼기 위해서는 그 칩을 움직일 두뇌부터 지켜야 한다. 인재 확보 없이는 어렵게 들여온 GPU는 아주 비싼 ‘고철’에 그칠지 모른다. 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10월은 한국 과학계가 가장 괴로운 달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이 시기마다 “한국이 언제쯤 ‘과학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왜 우리는 안 되나” 하는 해묵은 질문이 반복된다. 이웃 일본의 수상자를 언급하며 자조 섞인 비교가 돌아다니고, 과학 뉴스가 잠시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이 ‘10월 한 달의 반짝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노벨상을 얻지 못하는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준다. 노벨상은 한 과학자 개인의 영광이자, 한 사회가 얼마나 묵묵히 오랜 세월 기초과학을 존중했는지 보여주는 결과다. 성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히 연구의 토양을 다져온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해마다 10월만 되면 과학을 말하고, 나머지 11개월 동안은 연구 현장을 잊는다. 그나마 과학을 말할 때조차도 늘 단기성과에 조급해하며, 연구는 ‘성과관리 프로젝트’처럼 취급한다. 최근 국감에서 다시 도마에 오른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은 그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2024년도 국가 R&D 예산은 전년 대비 16.6% 줄어든 25조9000억 원으로 편성됐다. 1991년 이후 33년 만의 첫 대규모 감액이었다. 윤 전 대통령이 “비효율과 카르텔을 걷어내야 한다”고 지시하자, ‘제로베이스’식 개편이 추진된 결과였다. 대통령실 주도로 급하게 진행된 예산 삭감은 절차적으로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과학계에 큰 상처를 남겼다. 수많은 연구 과제가 감액 또는 중단됐고, 인건비가 삭감된 연구실은 연구원을 떠나보냈다. 올해 만난 한 과학인은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R&D 예산은 삭감되지 않았다”라며 “많은 청년 연구자들이 ‘예산 효율화’에 떠밀려 갈 곳을 잃었다”며 한탄했다. 가뜩이나 글로벌 과학인재 스카우트 전쟁이 한창인데 한국에선 거꾸로 R&D 예산마저 삭감되니, 인재 이탈은 가속화됐다. 실제로 올 5월 본보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진행한 공동 설문조사에서 국내 이공계 석학 200명 중 61.5%가 최근 5년 사이 해외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고, 그중 42%가 실제로 수락했거나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더 나은 연구 환경과 장기 지원, 그리고 ‘실패를 기다려주는 제도’가 있다는 이유였다. 최근에도 국내 유명 석학들의 중국행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정부는 내년도 R&D 예산을 19% 늘어난 35조3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국내 과학자들의 해외 이탈을 막기 위해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고 이공계 인재 정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끊겼던 연구를 다시 본궤도에 올리고, 인재를 되찾는 데는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나아가 과학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과학자들은 장기 연구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한국을 ‘머물기 힘든 나라’로 여기고 있다. 연구비를 줄이고, 인재를 지키지 못한 채 “언제쯤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까”를 묻는 건 공허할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노벨상을 원한다면, 10월이 아닌 나머지 11개월 동안 과학을 이야기해야 한다. 긴 호흡으로 실패를 견디는 시스템, 연구자를 신뢰하는 사회를 조성하고 과학을 정치의 도구가 아닌 ‘국가의 언어’로 삼아야 한다. ‘반짝 관심’이 아닌 축적의 시간, 그게 한국 과학을 세계 중심으로 끌어올릴 길이다.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우리가 만들 수는 없었을까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이 뜨겁다. 넷플릭스 누적 시청 수 1위를 차지하더니, ‘골든’ 등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빌보드 차트까지 휩쓸고 있다. K콘텐츠의 경쟁력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많은 이들이 환호하고 있지만 마냥 웃으며 바라보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K팝을 테마로 했지만 정작 이 영화를 제작한 것은 소니픽처스이고, 투자와 배급을 맡고 지식재산권(IP)을 가져간 것은 넷플릭스여서다. 지난달 부산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최로 개최된 ‘글로벌 스트리밍 페스티벌’ 현장에서도 아쉬움의 발언이 쏟아졌다. 류제명 과기부 2차관이 우리가 만들 순 없었냐고 운을 띄우자 김정한 CJ ENM 부사장, 최주희 티빙 대표 등도 같은 아쉬움을 토로한 것. 저승사자, 무당 등 한국적 소재가 전 세계를 사로잡은 성과는 반갑지만, ‘우리 손으로 만들었더라면, 우리 플랫폼에서 터뜨렸더라면’ 하는 뼈아픈 목소리다. 그러나 사실 국내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은 ‘케데헌’ 같은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다. 외신에 따르면 케데헌은 제작비만 약 1억 달러(약 1390억 원)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OTT는 생존 자체를 걱정한다. 1세대 OTT 왓챠는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고, 티빙은 연간 영업손실이 1000억 원대를 오간다. 티빙과 웨이브는 합병을 추진하며 ‘국가대표 OTT’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논의는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그사이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더 커졌다. 넷플릭스는 흥행 리스크를 짊어지며 제작비를 책임지는 대신 IP를 독점한다. 콘텐츠가 흥행하면 굿즈, 팝업스토어 수익은 모두 넷플릭스로 돌아간다. 국내 제작사들이 이를 알면서도 넷플릭스를 향하는 건 늘어난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가진 곳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유일한 창구도 넷플릭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좋은 제작 아이디어와 실력 있는 창작자들이 넷플릭스로만 몰리고, 그 결과 또 좋은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만 나오며, 다시금 넷플릭스의 자금력과 지배력이 강화되는 ‘순환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 구조가 더 고착화되면, 한국은 K콘텐츠라는 황금알을 낳고도 넷플릭스에만 좋은 일 시키는 ‘하청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내 OTT의 분발과 새로운 대안이 절실하다. 당장 합병 논의부터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물론 티빙과 웨이브를 합친다고 모든 문제가 당장 해결되진 않겠지만 합병으로 중복 비용을 절감하면 콘텐츠 투자 폭을 키울 수 있다. 또 불어난 몸집에 따른 ‘규모의 경제’를 지렛대로 협상력을 키워 넷플릭스에 버텨낼, 또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유망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에 제작비를 공동으로 투입하되 IP를 공유하는 ‘IP 주권 펀드’ 조성도 고려해볼 만하다. 대한상의도 최근 글로벌 50대 IP 가운데 한국 IP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조사 결과와 함께 “제2의 케데헌 신화를 우리 손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하며 IP 주권 펀드 조성과 제작사-플랫폼 간 공동 투자 및 권리 공유 체제를 제안했다. ‘제2의 케데헌’을 한국 제작사와 토종 OTT가 직접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K콘텐츠의 화려한 성공은 언제까지나 남의 잔치로만 끝날 수 있다.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국가대표 인공지능(AI)’ 서바이벌 경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4일 이재명 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착수할 5개 정예팀이 선발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데이터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을 지원하고, 대국민 콘테스트 방식의 경쟁 평가를 거쳐 최종 2개 팀만을 남겨 최신 글로벌 AI 모델에 버금가는 성능의 ‘소버린 AI’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챗GPT 같은 글로벌 모델에 의존하면서 생길 수 있는 기술 종속과 정보 유출 위험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국방·보건 등 민감한 사안 등을 글로벌 AI에 맡길 수 없다는 논리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AI 모델의 성능에 100%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국가대표 AI를 가지고 있는 것과 안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일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 등도 비슷한 이유에서 소버린 AI를 추진해왔다. AI 산업의 변방으로 밀려나기 전에 정부 주도로 AI 3대 강국을 향해 드라이브를 거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불안감이 채 가시지 않는 건, ‘국가대표 AI’라는 결과물 자체보다 사실 그 결과물이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억 명의 이용자가 매일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숙제하고 보고서를 쓰며, 개인 비서로 활용하며, 누군가는 심리상담을 하며 대화 기록을 쌓고 생태계를 경험하고 있다. 한번 익숙해진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쉽게 바꾸지 않듯, AI 시장에도 습관의 힘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 성능 지표보다 더 무서운 장벽이다. 게다가 엄청난 자금력의 빅테크들은 소비자들을 자신들의 AI 모델에 ‘록인(lock-in·소비자 묶어두기)’시켜 놓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최근 구글이 국내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원래 유료인 제미나이 기반 ‘구글 AI 프로’ 멤버십을 1년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다. 어렵게 한국판 챗GPT를 만들더라도 이용자와 기업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국내 전용 AI, 공공기관용 AI로 전락할 수 있다. 이미 닻을 올린 AI 선발전이지만 진행 양상도 다소 아쉽다. AI 산업은 협업과 네트워크 효과가 핵심인데,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한 팀씩 탈락시키는 방식이 과연 최선일까. ‘대국민 콘테스트’가 보여주기 경쟁으로 흐르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5개 정예팀 사이에는 첫 탈락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감지된다. 더 우려되는 건 논의가 소버린 AI에 매몰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소버린 AI 만들기’ 자체는 아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AI 생태계를 육성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AI 트렌드를 따라잡고, 무엇보다 한국만의 경쟁 우위를 찾아내는 일이다. 소버린 AI가 하나의 이정표는 될 수 있지만, 종착지는 아니다. 더 넓은 길을 내고 여러 갈래의 트랙을 준비해야 한다. AI 인재는 물론 버티컬 AI(특정 산업에 특화된 AI)를 만들어 낼 스타트업 등을 더 풍성하게 키워내고 대학·기업·연구소를 연결하는 개방형 플랫폼도 조성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국가대표 AI’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선택받고 ‘살아남는 AI’다. 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표결을 미루고 함께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경영계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21일 문을 여는 8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처리에 나서려는 모습이다. 경영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해당 법안이 노사 갈등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가운데 노동법이론실무학회 회장 등을 지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 교수(사진)를 만나 리스크 요인이 뭔지, 어떤 사회적 여파가 예상되는지를 들어 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란봉투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질적 지배력’이라고 하는 모호한 규정으로 사용자의 범위가 넓어져 교섭이 확대된다. 게다가 교섭 영역 역시 임금이나 근로시간을 넘어 구조조정, 사업재편으로까지 가능해진다. 여기에 노조의 교섭이 불러올 피해에 대해서는 면책조항이 생겼다. 이 3가지가 맞물려 노사 갈등의 전장이 넓어질 것이고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커진다. 사용자 범위가 확대되면 모든 원청은 하청 근로자가 요구하면 교섭에 나서야 하는 것인지, 어떤 조건의 원청이 교섭 의무를 지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라고 너무나 거칠고 추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이라고 하면 실질적 지배력이 정부에 있으니 모든 공공기관의 교섭장에 기획재정부 장관, 더 올라가 대통령이 등장해야 하는 것인가.” ―해외에도 유사한 법이 존재한다는데…. “유럽의 ‘공급망 실사법’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해당 법안은 대기업들에 거래하는 공급망 내 협력업체들이 노동기준을 지키고 있는지를 직접 체크하고 필요하면 실사하라는 법이다. 노란봉투법처럼 가서 교섭을 하라는 법은 아니다. 물론 원청-하청 간 갈등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대해서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정부가 현실성 있는 정책목표를 세우고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정규직의 80% 수준까지는 인상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노사 간 로드맵을 짜서 오랫동안 논의를 진행해 왔다. 반면 ‘노란봉투법’은 노사한테 ‘교섭을 하든지, 싸우든지 알아서 하라’고 맡겨 버리는 무책임한 해법이다.” ―예상되는 리스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라는 게 너무나 모호해서 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위원회가 다를 수 있고 1심 법원과 2심 법원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그런 불확실성 때문에 분쟁이 확대 재생산되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기업인들에게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줄 것이다. 해외 기업들이 바로 빠져나갈지는 모르겠으나, 고민하던 투자계획을 미루거나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렇게 투자를 미루다가 엔화도 싼데 한국에 투자하지 않고 일본으로 가든지, 이런 ‘트리거’ 역할을 충분히 노란봉투법이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고심해서 나왔던 과거 판례들을 참고해 우리 시장에서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용자 기준 등을 좀 더 구체화하고 명확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노란봉투법’이 이 시장에 선한 영향력을 가져오게 만드는 게 이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적 시장주의에 더 맞지 않겠는가.”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사라지고 나서야 그 진가를 깨닫는 것들이 있다.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그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추진 당시의 진통은 극심했다. 한일 강제합병을 낳은 ‘을사조약’이나 마찬가지라는 반발 속에 거리 집회가 이어졌고, 국회 표결 날에는 최루가스가 터져 본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주요 산업이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도 연일 쏟아졌다. 하지만 격렬했던 사회적 반대와 우려와는 달리, 1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FTA는 ‘대미(對美) 수출의 버팀목’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한국의 대미 수출은 2012년 586억 달러에서 2024년 1278억 달러로 불어났고, 무역수지 흑자는 557억 달러로 껑충 뛰었다. 미국은 한국의 ‘최대 흑자국’으로 부상했고,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도 FTA를 발판삼아 미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온라인상에서는 “그때 반대하던 FTA가 결국 한국 경제의 히어로였다”는 ‘FTA 재평가론’까지 오르내린다. 그랬던 한미 FTA가 이번 관세 협상으로 13년 만에 사실상 힘을 잃게 됐다. 특히 자동차 분야의 타격이 크다. 과거 FTA 덕분에 한국산 자동차는 일본 유럽이 2.5% 품목 관세를 내는 동안 무관세 혜택을 톡톡히 누리며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이제 동등하게 15% 관세를 적용받게 됨에 따라 과거와 같은 ‘가성비’ 전략을 구사하기는 힘들어졌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FTA 틀을 벗어나게 된 터라 준비도 부족했다. 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의 현지 생산 비중은 43.0%에 그친다. 반면 일찌감치 1980, 90년대부터 미국 생산라인을 확대해온 일본 도요타는 52.3%, 혼다는 80.3%, 닛산도 63.6%를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 낸다. 무관세 때문에 우리의 현지화 전략이 늦어진 결과다. 같은 관세 15%라면, 현지 생산 비중이 낮은 우리에게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결국 해법은 하나다. 잃어버린 관세 혜택을 대체할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 현지 생산 확대, 공급망 업그레이드, 연구개발(R&D) 투자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다. 최근 현대차가 미국 빅3 완성차 기업인 ‘라이벌’ 제너럴모터스(GM)와 신차 공동 개발을 위해 맞손을 잡았듯이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파괴적인 혁신 시도도 계속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과거에도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경험이 있다. 1999년 현대차는 경쟁자들이 ‘2년, 2만4000마일 보증제’를 운영할 때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제’를 도입해 미국 시장에 화제를 일으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자동차 수요가 급감했을 때는 구매 후 1년 안에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내놓으며 점유율을 확대하기도 했다. FTA 혜택은 끝났고, 이제 진정한 진검승부의 시작이다. 보호막 없이 시장 한가운데 서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 10년 뒤, 지금의 선택이 한국 자동차 산업을 결정지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올해 5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세계 인공지능(AI) 연구자의 50%가 중국계”라고 외쳤을 때까지만 해도 중국 시장을 의식한 발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의 투자 기업 멘로벤처스의 디디 다스 파트너가 공개한 ‘메타 초지능 연구소(Meta Superintelligence Labs·MSL)’ 소속 인재 명단을 보니 단순한 립 서비스가 아니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꾸린 연구소 인재 44명 중 21명이 중국 국적의 연구자였다. 이들은 중국에서 나고 자라 칭화대, 베이징대, 저장대, 중국과학기술대 등의 대학에서 학부를 마친 뒤 미국 명문대에서 학업 및 연구를 이어나가며 커리어를 쌓은 인재들. 이 중 대표적 인물이 저커버그 CEO가 SNS에 공개한 사진 속 수석 과학자 자오성자다. 자오성자는 칭화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오픈AI에서 GPT-4와 ChatGPT 개발을 주도했다. 이 외에도 창후이원은 칭화대 컴퓨터과학 영재반 출신으로 프린스턴대에서 이미지 처리 전공 박사를 마치고 구글과 오픈AI를 거쳐 GPT-4o의 고급 이미지 생성 기술을 공동 개발한 인물이며, 저장대 수학과를 졸업한 비수차오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석·박사를 마친 후 구글에서 유튜브 쇼츠 공동 창립에 참여했던 이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의 연구자들이 대거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인재들이 이미 글로벌 AI 생태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게다가 지금도 중국 본토에서는 AI 토종 인재들이 육성되고 있다. 오랜 시간 AI 시대를 준비하며 정부 주도로 AI 인재 양성에 열과 성을 쏟은 결과 미국 싱크탱크 매크로폴로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상위 20%) AI 연구자의 무려 47%를 배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인재 가뭄’ 상태다. 의대 열풍으로 제대로 인재를 키우지도 못하고 애써 키워놓은 인재들마저 처우나 연구환경 등의 문제 때문에 해외로 등을 돌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AI 관련 기업 2354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국내 AI 산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AI 부족 인원은 8579명에 달했다. AI 개발도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메타, 오픈AI가 수백억 원의 연봉을 내걸면서까지 S급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도 ‘AI 국가대표’를 선정해 데이터 및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자원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AI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GPU를 사들이고 예산을 투입해도 소용이 없다. KAIST가 내년 신입생 모집을 목표로 AI대학 설립을 서두른다는 것은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지만, 늦기 전에 정부 주도로 AI 두뇌 육성을 위한 장기 로드맵을 짜야 한다. 이광형 KAIST 총장의 말대로 지금이 AI 시대 대응의 ‘골든 타임’일 수 있다. 이 골든 타임을 놓치면 우리는 앞으로 오래도록 중국 인재들의 활약을 부러움 속에 지켜만 봐야 할지 모른다.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요새 공무원들과의 만남은 ‘조직 개편’으로 시작해 ‘조직 개편’으로 끝난다. 어떻게 쪼개지고 합쳐지는 것인지, 대상으로 거론되는 부처들의 경우 온 조직의 촉수가 조직 개편으로 향해 있다. “뭐 들리는 이야기 없나요?” “과연 저희 세종으로 내려가는 건가요?” 등등 불안감 섞인 질문도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 조직개편 작업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과정에서 이미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나누고,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은 새로 만들어질 재정경제부로 흡수시키는 한편으로 금융감독 업무는 금융감독원과 통합한 금융감독위원회에 맡기는 등의 방안이 제시된 바 있다. 기후에너지부 신설 역시 이재명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조직개편과 관련한 질의가 쏟아지자 13일 “혼선을 초래할 내용이 많아 매우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새 정부의 국정 철학에 맞는 조직 개편은 있을 수 있고, 정권 교체 이후 정부 조직을 손질하는 것은 종종 있어 왔다. 다만 불안한 건 ‘강한 부처를 나누자’, ‘권한을 어디로 줄 것인가’ 등 조직 개편을 둘러싼 각종 논의가 한창이지만 과연 그 개편이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수립·실행하는 데 기여할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조직 수술’에 대한 정치적, 기술적 논의는 쏟아지는데, 그 조직이 장기적 비전을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잘 보이지 않는달까.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인공지능(AI) 등 미래 첨단기술을 쟁취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쟁’이 한창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이 10년 전 첨단 제조업으로의 도약을 공언하며 장기 산업전략인 ‘중국제조(中國製造) 2025’를 내놓았을 때까지만 해도 비현실적이다, ‘과연 될까’라는 회의론도 일었다. 하지만 10년 전의 그 전략이 현재 AI·전기차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창조적 혁신을 끌어내는 선도자로 만든 기반이 됐다. 중국은 이제 국제표준까지 선도하겠다며 차기 10년의 목표를 담은 ‘중국표준 2035’를 내놓았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미국의 관세 폭격이 한창인 가운데 기초체력마저 바닥에 떨어졌다. 과거 주력 산업들의 경쟁력이 흔들리는 가운데 신성장동력 찾기는 요원하고, 인구는 주는데 장기 성장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됐지만 이 싸움에서 무엇을 먹고 살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 정부 조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만 정부 조직 개편과 더불어 그 조직이 어떤 비전을 그려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 국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내놓고 모든 것을 끌고 나가던 시대는 지났지만 적어도 개별 기업이 할 수 없는 ‘방향 제시’는 정부가 해야 한다. 예산, 기획, 산업 정책을 통해 어떻게 한계 업종을 정리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이 저성장 위기를 탈출할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미래 비전이 절실한 때이니 말이다. 아무리 판이 바뀌더라도 정확한 ‘지도’ 없이는 또 길을 헤맬 수 있고, 지금 우리에겐 더 이상 헤맬 시간이 없다.장윤정 산업1부 차장 yunjung@donga.com}

‘탕감의 계절’이 돌아왔다. 금융위원회가 부실자산을 인수해 처리할 ‘배드뱅크’ 설립 검토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에 발맞춰 대출 탕감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단순 채무 조정을 넘어 실질적인 채무 탕감이 필요하다”며 “다른 나라는 국가 부채를 감수하면서 코로나19 피해를 책임졌던 반면 한국은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응해 결국 국민 빚만 늘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는 발 빠르게 금융권의 장기 연체 채권 규모 등을 파악하며 코로나 대출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 시 재원 마련 방안,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얼마나 요청해야 할지 등을 따져 보느라 분주하다. 사실 정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민생지원책’이 바로 빚 탕감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3월에도 금융위원회는 약 33만 명을 대상으로 장기 채무를 최대 50% 탕감해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60만여 명의 장기 소액 연체자들의 채무를 전액 면제해주거나 일부 감면해줬다. 코로나19에 이은 경기침체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빚에 짓눌려 있어 어느 정도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금융 당국과 금융권은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자금난에 처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에 대해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제공해 왔는데 그 ‘청구서’가 이제 곧 돌아온다. 당장 3개월 뒤 만기가 돌아오는 코로나 대출 규모는 50조 원에 달한다. 대규모 탕감은 확실히 ‘깔딱고개’에 처한 자영업자의 숨통을 틔워 줄 것이다. ‘딱한 자영업자들을 위해서 통 큰 탕감을 해준다’는 것은 언뜻 보면 서민경제를 위하는 길 같기도 하다. 문제는 그 해법이 불러올 후폭풍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이미 ‘배드뱅크’ 관련 주요 기사에는 “빚 갚는 사람이 바보”, “역시 빚 안 갚고 버틴 사람이 승자”라는 식의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 온 채무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란, 뼈아픈 지적이다. 재원 마련을 둘러싼 논란도 무성하다. 윤석열 정권에서 상생 금융을 위해 2조 원을 내놓았던 은행들은, 이번에도 또 은행권에서 재원을 조달할 것이란 관측에 초긴장 상태다. 취약 계층의 자립과 재기를 돕는 정책은 필요하고, 자영업자들이 위기 상황에 내몰린 것은 맞다. 하지만 탕감은 조심, 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며 지원 규모나 기준 설정에도 신중해야 한다. 어려우니까 빚을 과감하게 없애준다는 식의 파격적인 선심성 정책으로 흘러가다가는 ‘빚은 갚는 것’이라는 원칙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 가장 기본적인 원칙마저 흔들리면 우리 경제에 긴 후유증이 두고두고 남을 수 있다.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시작이요, 그 도덕적 해이 때문에 금융회사들의 서민들에 대한 대출 자체가 쪼그라들 수 있는 것이다. 본보가 취재했던 자영업자 A 씨(50·여)는 1억 원이 넘는 빚을 30% 이상 감면받았음에도 다 갚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사람인지라 중간중간 ‘안 갚고 포기할까’란 유혹이 적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수없이 위기를 넘기고, 스스로 다잡으며 힘겹게 빚을 갚은 그들에게 대규모 탕감이 얼마나 큰 허탈함을 불러일으킬까. 단골 민생대책 ‘탕감’이 쉬운 듯 보여도 절대 쉽지 않은 이유다.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2011년 8월 국제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달러를 찍어내는 기축통화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 충격은 바다 건너 한국 금융시장까지 강타했다. 당시 취재차 찾은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트레이딩 센터에는 무거운 정적과 한숨만이 가득했다. 모든 주식 종목이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고 있었고, 트레이더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다행히 이달 16일(현지 시간)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한 계단 떨어뜨렸을 때는 14년 전과 같은 급작스러운 충격과 공포는 없었다. 이미 2번의 신용등급 강등을 겪은 데다 예고됐던 이벤트라는 점에서 후폭풍 없이 무난히 지나가는 듯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신용등급 강등과 관련해 18일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카타르는 신경 쓰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도 마찬가지”라며 “그들은 (미국에) 돈을 밀어넣고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때까진 좋았다. 단 며칠의 시차가 있었을 뿐, 국채 시장은 무디스발 ‘부채 공포’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신용등급 강등 이후 미국 국채 수요가 흔들리는 것 같더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안에 대한 불안까지 겹치자 국채 시장은 인내심을 잃고 ‘발작’을 일으켰다. 21일 미 재무부가 입찰한 2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를 넘었다. 10년물 국채 금리도 4.6%대로 급등(국채 가격은 급락)했다. 천문학적 부채에 짓눌린 미 경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자 채권 투자자들은 미 국채를 내던졌다. 일본, 영국, 독일 등에서도 재정적자가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며 국채 금리가 동시다발적으로 급등했다. 유동성이 넘쳐나는 채권시장에서, 그것도 최고의 안전자산이라 여겨지던 미국 국채와 일본 국채가 동시에 휘청거리는 건 이례적이다. ‘채권자경단(bond vigilantes)’으로 불리는 시장이 각국의 재정 건전성에 ‘옐로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투자자 레이 달리오는 “우리는 국채시장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며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듯 이 상황을 바라볼 때, 누적된 부채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우리 정부도 부채 공포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04조8000억 원 적자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11개 비기축통화국 가운데 4위였다. 당장은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다른 나라보다 양호하더라도 이 추세로 빚이 늘면 국채 금리가 충격을 받는 등 어려운 시기가 올 수 있다. 게다가 시장금리는 대부분 국채 금리와 연동돼 있고, 국채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 결국 금리 급등으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비용이 증가하고 소비와 투자까지 위축되는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국채 쇼크는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마저도 눈덩이 재정적자 탓에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빚’의 무게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누적된 빚 앞에는 장사가 없다.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8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는 한국 경제 사령탑의 공백을 여실히 드러낸 현장이다. 이날 행사는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퇴로 김범석 기재부 1차관이 대행으로 주재한 첫 회의였다. 1분기 성장률이 ―0.2%로 추락한 가운데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위한 속도전이 필요한 중요한 회의였지만 분위기는 그에 걸맞은 위기감과 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날 회의에 12개 부처 가운데 장관급이 참석한 곳은 단 2곳에 불과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출장 일정 등으로 불가피하게 장관이 참석하기 어려웠던 부처를 빼고 특별한 이유 없이 장관이 ‘결석’한 곳도 적지 않았다. 기재부의 한 관료는 “기재부 차관이 회의를 주재하는 어색한 상황을 피하려 장관이 참석하지 않은 부처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이 위계를 따질 때인가. ‘장관 없는 경제관계장관회의’는 부처 간 경제 현안을 조율하는 각종 정부 회의체가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위기 신호다. 후진적인 정치가 만들어 낸 초유의 ‘대대대행’ 체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폭탄에 맞대응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경제 외교마저 무력화했다. 최 전 부총리가 사퇴하면서 이탈리아 밀라노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예정됐던 한일 재무장관 회담은 취소됐다. 홀로 회의 참석을 위해 밀라노를 방문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바깥에서 볼 때는 선진국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나 해명해야 해서 곤혹스러운 한 주였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우리는 정치적으로 이래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바깥에서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대외 신인도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고 했다. 리더십이 공백 상태여도 정부 시스템은 정상 작동해야 한다. 1분기에 이어 관세 전쟁의 영향이 본격화할 2분기에도 역성장이 우려된다. 여기에다 아시아 외환시장도 제2의 ‘플라자합의’ 가능성으로 출렁이고 있다. 경제 살리기의 마중물인 추경을 신속하게 집행하고 외환시장과 국가신용도 관리에도 바쁠 판에 공무원들은 탄핵이나 선거 핑계를 대며 납작 엎드려 있다. 다음 정부에서 어느 부처가 사라지고 어떤 부처는 살아남는다거나 다음 장관은 누구이고 다음 차관은 누구라며 제 살길 찾기에 급급하다. 이러니 식품업체들이 정부 공백기를 틈타 눈치 보지 않고 가격 인상 러시에 동참하는 것 아닌가. 최근 일본 도쿄의 ‘도쿄 포트시티 다케시바’ 빌딩을 방문했다. 소프트뱅크 본사 등이 입주한 이 건물은 도쿄도가 주도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이다. 빌딩에는 1000여 개의 센서와 인공지능(AI) 카메라가 설치돼 실시간으로 층별 인원, 혼잡도 등을 감지한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로 요일별, 날씨별 이동 데이터를 분석해 입주한 식당, 커피숍 등에 제공하고 컨설팅도 해준다. 소프트뱅크는 미국의 오픈AI와 손잡고 오사카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도 건설할 계획이다. 한국이 리더십 공백 사태로 멈춰 있는 사이에도 세계 각국은 관세 전쟁을 넘어 AI 등 첨단기술 혁신 속도전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조타수가 없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자립준비청년 김예슬 씨(26)는 전공을 영상으로 바꾸면서 큰 고민에 빠졌다. 영상을 진로로 잡고 직업을 구하려면 지금 사는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야 한다는 주변 조언 때문이었다. 자립준비청년이었기에 정착에 드는 비용도 부담스러웠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서울에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불안하기만 했다. 방황하던 김 씨에게 두나무 ‘넥스트 잡’ 덕분에 새로운 길을 만났다. 지역 내 영상 회사에 일자리를 얻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된 것. 서울로 가지 않고 익숙한 환경에서 꿈을 펼칠 수 있게 된 김 씨는 두나무 넥스트 잡에 깊이 감사함을 표시했다. 어린이 교육기업에서 근무, 최근 정규직으로 전환된 자립준비청년 윤유정 씨(22)는 두나무 넥스트 잡의 도움을 받았다. 윤 씨는 보호 종료를 앞두고 미래에 대해 조언해 줄 사람이 없어 홀로 우울증에 고통받던 때 두나무 넥스트 잡을 만났다. 그 후 자신의 적성을 찾게 됐고 진로도 정할 수 있었다. 윤 씨는 “두나무 넥스트 잡을 통해 좋은 어른들을 만나 어두운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며 “사회에 잘 정착해서 제가 받은 희망과 사랑을 다른 아이들과 나누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두나무 넥스트 잡(이하넥스트 잡)’은 두나무가 (사)함께만드는세상(사회연대은행)과 함께 청년 지원의 하나로 진행하고 있는 ESG 프로젝트 ‘넥스트 시리즈’의 하나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온전한 사회 자립을 위해 △맞춤형 인턴십 △창업 지원 △금융 교육 △진로 컨설팅 등의 지원 프로그램들로 구성됐다. 자립 전 보호시설 아동들을 대상으로 자기 계발·진로 탐색 기회도 선제적으로 제공, 자립준비청년의 건강한 홀로서기를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 체계 마련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2차년도 사업에 돌입한 넥스트 잡은 핵심 키워드를 ‘지역 일자리 연계’로 잡고 사업 범위를 기존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서 대전·대구·광주까지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거주 지역을 떠나지 않고 익숙한 환경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사회 적응력을 강화하고 동시에 수도권으로의 인력 유출을 막아 지역 균형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의 자립 역량 강화 및 정서적 지지체계 마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넥스트 잡 2차년도 사업을 통해 두나무는 전국 13개 아동양육시설 166명의 보호 아동에게 자립 전 진로 탐색을 위한 교육을, 50명의 자립준비청년에게는 경제적 안정 및 구직을 위한 채용 연계형 인턴십을 각각 지원했다. 창업을 꿈꾸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는 1억5200만 원의 무이자 대출 지원 및 맞춤형 경영 컨설팅도 제공했다. 자립의 전제가 되는 자산 형성과 올바른 경제관 수립을 위해 체계적인 금융 교육을 진행했고 교육에 참여한 보호 대상 아동·자립준비청년 306명이 약 1억600만 원의 저축액을 달성하도록 지원했다. 직무수행능력을 비롯해 △심리적 자신감 △사회적 역량 △진로 탐색 역량 △사회문제 인식 등 참여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5가지 소셜 임팩트 측정에서도 넥스트 잡은 고무적인 성과를 보였다. 참여 청년들의 81.6%가 과업 수행 능력이 향상됐고 88.5%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이견을 조율하는 역량을 갖추게 됐다. 또 참여 청년의 약 80%가 넥스트 잡을 통해 자기 적성을 이해하고 미래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받았으며 시민 의식과 사회적 책임 수준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 청년들의 전반적인 만족도도 5점 만점 중 4.3점으로 매우 높았다. 두 번째 사이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넥스트 잡은 6월 3차년도 모집을 앞두고 있다. 참여 청년 및 일선에서 함께한 컨설턴트, 기관·기업 실무자들의 의견을 반영, 취업 컨설팅 등 실질적인 지원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넥스트 잡을 필두로 두나무는 2025년에도 청년들에게 힘이 되는 금융과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대한민국 미래세대 육성에 이바지할 예정이다.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2024년 12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시니어 레지던스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의 노인보다 더 건강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영올드’들의 눈높이에 맞는 주거 시설이 현재로서는 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삼일PwC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슬기로운 시니어 주거생활―시니어 레지던스 시장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 속도는 국가적 과제이지만, 시니어를 위한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또 시니어 시장 규모가 2022년 기준 84조6000억 원 규모에서 2030년에는 168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며 그중에서도 시니어 레지던스 시장은 미개척 분야로 성장할 여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고령 가구 중 1인 가구 비중이 37%에 달하는 데다, 65세 고령자의 76%가 자녀와의 동거를 원치 않는 독립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실버타운 거주 의향도 60% 이상으로 나타나는 만큼, 다양한 서비스 공급이 이뤄진다면 시니어 레지던스 거주 의사가 높아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넓은 의미에서 요양시설을 포함한 시니어 주거 공급 규모는 전체 고령자(2024년 기준)의 2.7%를 차지하며, 요양시설을 제외한 주거 부문의 공급량은 약 0.23%에 불과하다. 이를 각각 1%, 3%까지 확대하려면 현재 공급량 대비 4.3배, 12.8배 증가해야 할 것이라는 추산이다. 이희정 삼일PwC 연구위원은 “결국 민간 참여자에 대한 세제 혜택, 보조금 지급 등 더욱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시니어를 위한 주거와 요양 서비스가 연계되도록 요양 서비스에 대한 진입 규제 완화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경제계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인 ‘동아경제리더스아카데미(DELA·Donga Economy Leader’s Academy)’가 14일 제13기 개강식을 열었다. DELA는 동아일보가 국내 금융·산업계 리더들의 역량과 네트워크를 증진하기 위해 2013년부터 진행하는 과정이다.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개강식에는 주요 금융사 및 기업 임원 30여 명이 참석했다. 12기 조길홍 교보생명 전무는 개강식에 참석해 “배움과 성장을 위한 자리가 될 것”이라며 13기 참여자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날부터 6월 말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비즈니스대 교수, 백규선 아르테마니아 대표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특강이 이어진다. 14일 13기의 첫 번째 강연을 맡은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은 ‘뛰어난 리더, 진정한 영웅이란?’을 주제로 역사적 스토리를 중심으로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지난달 1년 전보다 14만 원이나 오른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아파트 커뮤니티에는 관리비가 10만 원 이상 뛰었다는 걱정이 넘쳐났다. 지역난방비와 가스요금 인상 여파로 난방 비용이 뛴 데다 인건비, 자재비가 올라 청소비, 장기수선충당금 등이 상승하면서 서민들의 ‘물가 상황판’ 격인 아파트 관리비의 앞자리까지 바뀌었다. 관리비뿐 아니다. 커피, 빵·케이크, 라면, 만두, 햄버거, 아이스크림, 맥주 등 서민들이 매일 먹고 마시는 식품과 외식비 인상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가격을 올린 식품·외식업체만 40여 곳. 달러 강세 등에 따른 원재료 가격 인상 등을 명분으로 가격표를 바꿔 달고 있다. 지난해 10월 1.3%까지 떨어졌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올해 3월 2.1%로 석 달 연속 2%대 상승률을 보였다. 가공식품 물가는 3.6% 올랐다. 앞으로 물가 상승을 자극할 요인도 수두룩하다. 지난달 경남·경북을 강타한 산불은 과수원, 논밭을 집어삼켰고 해당 지역 농산물 피해가 컸다. 특히 사과 농가의 경우 전체 재배 면적의 9%가량이 산불 피해를 신고했다. 사과, 양배추, 양파, 마늘과 국내 소고기 가격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다. 미국발 상호관세도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는 요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최악’이라는 평가대로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 중 가장 높은 25% 관세를 내야 한다. 수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관세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환율이 상승한다면 수입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당장 물가 상승률이 2%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안심해선 안 된다. 생활물가 상승률은 2.4%로 전체 소비자 물가를 훨씬 웃돌고 있다. 고물가는 여유가 없는 서민들의 삶부터 팍팍하게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111일간의 탄핵 정국의 여파인지 정부 안팎에서 물가를 둘러싼 엄중한 긴장감이나 위기의식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시장에서는 과거 같았으면 정부 눈치를 봐서 몸을 사리고 또 사렸을 식음료, 외식업체들이 리더십 공백기를 틈타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불만까지 나온다. 경제 정책은 타이밍이다. 시기를 놓치면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최근 3개월 새 폐업한 자영업자가 27만 명에 이른다. 서민들의 급전 창구로 통하는 카드사 현금서비스는 이용액이 3년 만의 최대치로 불었다. 연체율은 3%대로 치솟았다. 물가 상승과 서민경제의 위기 상황을 알리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로 탄핵 관련 불확실성이 일단락됐지만 조기 대선이라는 또 하나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모든 부처가 힘을 합쳐 물가 등 서민경제 안정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전환기 정부 경제팀의 최우선 임무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세전쟁으로 세계 경제까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리더십 공백을 핑계로 서민경제를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좋은 실적을 거두고도 눈치를 보는 곳이 있다. 바로 은행들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냈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이 곱지 않자 바짝 몸을 낮추는 모양새다. 호실적이 금융 혁신이 아니라 ‘쉬운 이자 장사’ 결과라는 비판을 의식한 모습인데, 사석에서는 억울하다는 하소연도 흘러나온다. 이자 장사가 그들의 본업이고, 그에 충실했을 뿐이란 얘기다.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에 나서는 등 상생을 위해서도 그 어느 영역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항변도 이어진다. 은행도 엄연한 기업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출이 그들의 대표 상품인데, ‘이자 장사’를 했다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해 내수 침체로 모든 업종이 신음하는 가운데 은행들이 혁신적이고 뛰어난 영업을 펼쳐서 최대 실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면, 지난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는 약 42조 원에 달하는 이자 이익에 힘입어 역대 최대인 16조 원을 웃도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수익의 키는 여전히 대출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나며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 수요가 이어진 효과가 컸다. 통상 금리 인하기에는 수익이 쪼그라들지만,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주문’을 명분 삼아 대출금리를 낮추지 않는 식으로 수익을 지켰다는 평가다. 실제로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조정해 대출금리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대출의 질이라도 탁월했을까. 마중물이 절실한 유망 중소기업들에 돈이 흘러가도록 우리 산업의 실핏줄 역할을 해내는 게 은행에 기대하는 역할일 텐데, 4대 은행의 기업대출 비중은 과거보다는 크게 늘어났지만 아직 전체 대출의 60%에 못 미친다. 그나마도 선진적인 여신심사를 기반으로 한 대출이라기보다는 담보·보증성 대출로, 한정된 대출 자원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해외에서의 활약도 미미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며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신한베트남은행 정도다. 게다가 ‘은행이 내 돈을 안전하게 잘 지켜준다’라는 믿음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들을 상대로 ‘매운맛’의 강력한 검사를 예고할 때까지만 해도 ‘이미 선진화된 은행들에서 큰 허물이 나오겠나, 금감원장의 군기 잡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대출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었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여타 은행 영업점에서도 은행 직원이 브로커와 공모해 대출을 내주는 등 부당 대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상황이 이러하니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은행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높은 은행 문턱을 경험해 본 소비자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비판을 의식한 듯 최근 금융지주들도 내부통제를 위해 사외이사를 대폭 물갈이하고, 다양한 신사업에 뛰어들며 이자 외 수익에 도전하고 있다. 라이선스 산업의 특수성, ‘관치(官治)’의 그림자에 억눌렸던 혁신의 유전자를 일깨울 때다. 수십 년째 반복되는 ‘이자 장사’ 비판이 은행들도 지겨울 것이다. 은행의 호실적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길 기다려본다.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

“늘 인생의 ‘비 오는 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항상 경차, 중고차를 탔지만 종신보험은 40년 넘게 유지했습니다.”(미국 뉴욕 거주 70대 로버트 키예단 씨)초고령사회 진입에 발맞춰 본보는 호주,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일본 등 글로벌 7개국의 48명의 ‘영올드(Young Old·젊은 노인)’와 정부, 연금기관 담당자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젊은 시절 꼬박꼬박 연금을 부으면 은퇴 이후 일정 수준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탄탄한 다층 연금 제도, 풍부한 노하우를 가졌다면 얼마든지 현역으로 시장을 누빌 수 있는 노동 시장 등 한국이 벤치마킹해야 할 다양한 시스템을 엿본 동시에 영올드들의 진심 어린 조언도 들었다.선진국의 영올드들은 한국 은퇴자를 향해 자녀도 중요하지만 노후에도 미리미리 투자할 것을, 부동산에 묶이지 말고 자산 리모델링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팁’을 전했다. 심리적으로 움츠러들지 말고 일자리든, 새로운 취미생활이든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라는 메시지도 던졌다.● 선진국 영올드 “부동산 규모 줄이면 여유 생겨”젊을 때부터 허용되는 최대한의 금액을 연금에 납입했다는 키예단 씨는 한국의 은퇴자들이 자녀에 대한 투자에 치중하다가 여유 없는 노년을 맞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미국의 한국인 이민 가정들도 자녀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극도로 헌신하는 편”이라며 “그만큼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내지만 조금 더 자녀와 내 노후에 대한 투자 사이에서 균형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거주하는 요한 프라이스 씨(70)도 “현역 때 연금을 많이 부어놔서, 아내가 아픈데도 생활에 문제가 없다”며 연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한국 은퇴자의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점도 꼬집었다. 간호사로 일하다가 은퇴 후 호주의 시니어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린 씨(78)는 “(호주에서는) 오히려 은퇴 후 전반적으로 재정 상황이 나아진다. 대부분이 은퇴자 마을에서 살기 위해 기존 부동산의 규모를 줄이기 때문”이라며 “덕분에 은퇴 이후에 지출을 줄이지 않았고 여행을 다니면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미국 뉴욕 맨해튼의 직장인 김모 씨는 “미국에서는 3:3:3:1 법칙이 있는데 부동산, 주식, 채권, 현금의 비중이 저 정도로 유지되는 게 이상적이라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처럼 전 재산이 부동산에 ‘몰빵’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건강만 허락하면 계속 일하고파”은퇴자의 적극적인 자세 또한 중요하다고 선진국의 영올드들은 입을 모았다. 호주 이민자인 장모 씨(64)는 “메모리얼 파크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하며 연봉은 10만 달러(약 9200만 원)를 받는다. 70세 넘어서까지 일하려고 한다”며 “일자리가 없는 허전한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신체 능력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취미 등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55세 이상을 위한 주택단지인 영국 헨리온템스 ‘로리엣 가든스(Laureate Gardens)’에 거주하는 캐런 그리브 씨(70)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시간을 죽이지는 않는다”며 “우리 지역 노인들은 운동이나 취미, 동호회 활동에 열심”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구마이 아쓰코(熊井敦子·60) 씨는 “드라마, 케이팝 콘서트를 한국어로 직접 듣고 싶은 마음에, 또 치매 예방을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게 이제는 삶의 큰 부분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한국 정부를 향한 당부도 적지 않았다. 메리 들라헌티 호주 연금기금협회 최고경영자(CEO)는 효율적인 퇴직연금 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호주의 퇴직연금 ‘슈퍼(슈퍼애뉴에이션)’ 가입자는 특별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경쟁 구조를 통해) 특정 펀드가 성과를 부풀리거나 장기간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면 개선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퇴출된다”고 말했다.한국도 고령층이 눈여겨볼 만한 세제 혜택 상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신(新)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 관련 일본 금융청 관계자는 “신NISA 계좌로 인해 시니어 세대의 자산 증식과 일본 기업 주가 상승 등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과감한 세제 혜택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신NISA는 평생 비과세 투자 계좌로 ‘국민 노후자산을 두 배로 불리자’는 일본 정부의 목표 아래 지난해 도입됐다.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은 “2030세대도 연금에서 주식 비율을 높이는 등 도전적인 투자를 해볼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노동 기간이 짧은데, 50대 이상의 경우 적극적인 자세로 노동 시장에 오래 있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특파원,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

“인구가 고령화되면 근로 연령대의 기여금, 연금 수급 개시 연령, 연금 수령액이라는 ‘연금개혁의 삼각형’ 중 하나를 조정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급 개시 연령을 반드시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어데어 터너 에너지전환위원회(ETC) 위원장이자 전 영국 연금위원장(사진)은 지난달 24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영국의 연금개혁 과정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터너 위원장은 “초고령사회의 도래는 퇴직자의 비율이 노동자보다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어떤 식으로든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영국 정부는 2002년 12월 연금위원회를 설치했다. 총리실의 추천으로 당시 메릴린치 부회장이었던 터너 위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재무부와 노동연금부가 각각 지니 드레이크 영국 노동조합회의 의장, 존 힐스 런던 정경대 교수를 추천했다. 이들은 2006년까지 활동하며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연금개혁안을 만들어 냈다.연금위원회는 상황 분석에만 1년을 쏟아부었다. 인구통계, 기대수명, 출산율 변화뿐만 아니라 연금 수급액에 대한 예측, 사적 연금의 제공 비용 등을 분석한 자료가 500페이지에 달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노동조합, 고용주, 고령자 단체, 정당 등 사회 구성원들과 논의에 돌입했다. 사회적 소통에도 공을 들였다. 런던, 에든버러, 벨파스트, 맨체스터 등 4개 지역에서 250명씩 총 1000명의 시민과 공청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터너 위원장은 “과거 영국 산업연맹 수장으로 있었을 때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연금위원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며 “당시 정부가 다양한 배경과 성향의 인사를 임명한 이유”라고 회상했다. 4년여에 걸쳐 완성된 영국 연금위원회의 개혁안은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다. 2007년 영국 정부는 공적연금의 수급연령을 높이고 기초연금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닌 평균 임금소득 증가율에 연동하기로 했다. 국가퇴직연금신탁(NEST) 자동가입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법 개정도 2008년 이뤄졌다. 2012년부터 NEST를 통해 저소득층이나 중소기업 근로자도 높은 수익률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오랜 기간 동안 대규모로 공적 협의를 이어간 덕분에 영국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한 연금개혁을 이룰 수 있었다. 영국은 지금까지도 공적연금 수급 연령이 적정한지 주기적으로 검토하고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개혁을 이어 가고 있다.터너 위원장은 “최근 들어서는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이 대립적인 정치와 단기적인 사고를 조장하고 있다”면서 연금개혁과 같은 사회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의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특별취재팀▽팀장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호주=송혜미, 네덜란드·독일=강우석,일본=신무경, 영국=김수연 기자뉴욕=임우선 특파원, 파리=조은아 특파원서울=전주영 이동훈 조응형 신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