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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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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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7~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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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스플릿은 어디인가? 황제의 은퇴레시피[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계획을 어떻게 세울까 고민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준비는 물론,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많이 묻게 됩니다. 이럴 때는 1700년 전 ‘은퇴 선배’ 이야기를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의 로마황제들은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되거나, 강제폐위 당하거나 하는 식으로 타의에 의해 권력을 놓았습니다.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험한 꼴을 당했죠. 그런데 로마제국의 제43대 황제였던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44~311)는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고향 인근 따뜻한 햇살이 아름다운 해변도시에 궁전을 짓고 채소를 키우며 은퇴생활을 하다가 갔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고, 은퇴생활을 즐긴 로마 황제는 그 전과 후에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인 황제 시대라 불리던 3세기 말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로마 제국을 구해낸 통치자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정치적 암살, 군부 쿠데타, 외부의 야만족 침입으로 인해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려 있었죠. 그는 로마제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눠 다스리는 사분통치제(Tetrarchia)를 만들었고, 행정 개혁과 세금제도 정비로 로마를 재건했습니다. 그런데 305년 5월. 황제는 예상 밖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은퇴했죠. 로마 제국 건국 이후 몇 세기 동안 암살당하거나, 폐위당하거나, 추방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은 첫 번째 황제였습니다. 황제는 재위 21년 동안 니코메디아(현재 터키의 아타톨리아 지역)에서 주로 아시아 소아시아 지역, 이집트를 통치했는데요. 그는 은퇴지로 발칸반도의 해안도시 스플리트(Split)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태어난 고향이 스플리트에서 가까운 크로아티아 솔린(당시의 살로나)이었기 때문이었죠. 노예 또는 하급 관리인 출신으로 추정되는 디오클레스는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대장으로 일하다가 황제로 추대됐고, 21년간 제국을 통치한 후 은퇴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의 여정이 시작된 그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은퇴 전 약 10년에 걸쳐 스플리트에 궁전을 지었습니다. 호화로운 휴양지와 견고한 요새를 융합한 복합 건축물이었죠. 궁전의 규모는 약 3만8000㎡. 축구장 약 5개 정도의 면적입니다. 궁전의 중심에는 페리스타일(Peristyle)이라는 거대한 열주가 있는 안뜰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매일 아침 관리들과 만나고, 예식을 진행하는 권력의 중심 공간이죠. 이 곳에 가보니 광장 기둥 아래에는 검은색 화강암 스핑크스가 놓여져 있었는데요. 약 3500년 전인 이집트 투트모스 3세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스핑크스입니다. 궁전에는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12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다는데요. 현재는 3개의 스핑크스가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얼굴이 훼손돼 있지만 페리스타일 광장의 스핑크스는 가장 온전한 상태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스핑크스 맞은 편 카페의 이름은 ‘룩소르(LVXOR)’. 비엔나식 크림 커피가 유명한 카페입니다. 손님들을 위해 페리스타일의 돌 계단 위에 쿠션을 펼쳐놓았는데요. 손님들은 돌기둥에 등을 기대고, 발은 고대 로마의 광장에 내려놓고, 스핑크스를 마주보며 커피를 마십니다. 로마 황제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카페입니다. 페리스타일을 지나면 돔모양의 지붕을 가진 연결 통로가 나옵니다. 황제가 손님을 만나는 알현실로 쓰이던 베스티뷸(Vestibule) 공간이죠. 높이 17미터, 지름 12미터의 원형홀 정상에는 둥그런 구멍인 ‘오큘러스(oculus)’가 뚫려 있는데요. 로마의 판테온에서도 볼 수 있는 돔 지붕의 원형 구멍입니다. 그 사이로 푸른하늘이 보이네요. 구멍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벽에 시시각각 다른 모양으로 타원형의 햇빛 그림자를 만들어냅니다. 오큘러스는 최고의 음향효과도 만들어냅니다.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라면 동굴처럼 잔향이 너무 길어 소리가 먹먹하겠지만, 천정에 구멍이 뚫려 있어 적절한 잔향을 만들어냅니다. 인간의 소리를 하늘과 우주로 연결시켜 주는 공간이네요. 이 방에서는 ‘클라파(Klapa)’라고 부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전통 민속음악이 상설공연됩니다. 남성 4명이 반원형으로 서서 아무런 반주없이, 목소리만으로 실크처럼 섬세한 화음을 만들어내 감탄을 자아냅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두브로브니크가 ‘킹스랜딩’의 무대였다면, 스플리트는 데너리스 타르가리엔이 군대와 용을 끌고 왔던 ‘미린’이라는 또다른 세계관의 촬영지였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밑에는 높이 10미터, 길이 50미터가 넘는 지하공간이 있는데요. 전체 궁전의 약 8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입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가 키우던 용 세 마리가 갇혀 있던 ‘용의 던전(Dungeon)’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했지요. 현지 해설 가이드는 “중세 이후 1000년간 주민들이 지하공간에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들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시대에 석조로 지어진 지하공간이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는데요. 19세기에 대대적인 지하공간 발굴작업 끝에 로마시대 황제의 지하 궁전 유물을 복원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로마시대의 신전과 기도실, 우물과 하수도관, 황제의 식탁으로 추정되는 대리석 테이블, 와인과 올리브유를 짜내던 프레스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광장 옆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무덤이었던 팔각형 돔 건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으로 쓰이고 있죠. 3세기 살로나의 주교였던 성 도미니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 박해 중에 참수된 순교자였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황제의 무덤이, 황제가 참수한 기독교 순교자의 유해를 안치하는 거룩한 성소(聖所)로 변모된 것입니다.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옆에는 높이 57m에 이르는 종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페리스타일 광장에서 점점 시야가 확대되면서 아드리아 해안까지 스플리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소리가 들리길래 쳐다봤더니,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붉은색 지붕이 보이는 종탑 꼭대기 기둥 아래에 하얀색 갈매기가 앉아 있네요. 궁전을 나와 바다쪽으로 나가보면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가 나옵니다. 해변에는 길이 500미터, 폭 40미터 정도의 직선거리인 ‘리바(Riva) 프롬나드’가 이어지는데요. 낮에는 관광객들로 들썩이지만, 해질녘이면 크로아티아 현지인들이 몰려나와 이웃과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는 거리입니다. 매일 저녁 일상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이런 저녁 산책을 ‘코르조(Korzo)’라고 부른다네요. 리바 프롬나드는 산책길을 넘어 ‘스플릿의 거실(Living room)’ 역할을 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스플릿에서 6년간의 은퇴생활 동안 채소를 기르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특히 양배추를 좋아했다고 하네요. 1700년 전 황제의 ‘은퇴레시피’는 현대인에게도 깊은 영감을 줍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스플리트는 어디일까? 나만의 궁전은? 나는 은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가 평생 해보지 않았던,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스플리트(크로아이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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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드리아해의 붉은 지붕 파도, 킹스랜딩을 걷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 동쪽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내해(內海)다. 파도가 거의 없어 호수처럼 보인다.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이 번성하고,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상 무역로가 되었던 문명의 교차로. HBO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킹스랜딩의 촬영지, 로마 황제가 슬기로운 은퇴생활 장소로 택했던 달마시아(Dalmatia) 해안도시로 떠나보았다. ● 킹스랜딩이 눈 앞에 크로아티아 남부 달마시아 지역에는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같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에도 번성했던 유서깊은 해안도시들이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하는 점박이 개 품종인 ‘달마시안’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두브로브니크의 2km 남짓한 성벽을 한바퀴 걷고,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778m)에 올라가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붉은 지붕’이 파도를 보기 위해서다. 특히 크리스탈 블루와 에머랄드 빛으로 빛나는 아드리아해와 어우러지는 붉은 지붕의 대비는 독보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두브로브니크는 붉은 지붕을 철저히 보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올드타운 뒷골목을 걷다보면 미국 HBO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킹스랜딩’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현지 가이드가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이 성벽의 서쪽 문인 필레 게이트 아래 항구. 드라마 속에서 ‘블랙워터 만(Black Water Bay)’으로 나오는 필레만이다. 오른쪽과 왼쪽 양쪽에는 높은 성벽과 계단이 있고, 라니스터, 스타크 가문의 사람들을 실은 배가 드나들고 해전이 펼쳐지던 장면이 눈 앞에 선하다.필레만의 서쪽에는 37m 높이의 거대한 절벽 위에 로브리예낙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왕좌의 게임’에서는 ‘붉은 성’으로 나왔던 성채다. 필레만의 동쪽에는 포트 보카르라는 또 다른 요새가 있다. 절벽과 성벽, 그리고 붉은 지붕이 어우러진 필레만의 경치는 절경이다. 성의 다른쪽 올드포트 항구에서 배를 타면 로크룸 섬에 도착한다. 왕좌의 게임 속 ‘철 왕좌’가 실제로 전시돼 있어 관광객들의 인증샷 명소다. 올드타운 골목을 걷다가 파리 오페라극장처럼 우아한 계단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계단. 성이그나시우스 교회 앞 ‘예수회 계단’은 왕좌의게임에서 가장 충격적 명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세르세이 라니스터(레나 헤디)가 머리를 깎이고, 벌거벗긴채 군중의 조롱 속에 걸어갔던 ‘수치의 행진’이다. 극중 최고 권력자의 딸이자 왕국의 왕비였던 세르세이 라니스터. 그녀가 권력을 잃고 셉트 성당에서 붉은 성까지 ‘참회의 행진’을 한다. 킹스랜딩 시민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Shame!”을 외치며 손가락질을 하고, 음식물을 던진다.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레나 헤디는 ‘몸 대역’을 썼다. 1000명의 오디션 경쟁을 뚫고 대역에 선정됐던 레베카 반 클리브가 나체로 사흘간 같은 장면을 촬영했다. 특수 효과 전문가들은 레나 헤디의 얼굴을 레베카의 신체에 디지털로 입혀 놓았다. 세르세이의 ‘수치의 행진’ 장면은 실제로 1486년 6월 에드워드 4세의 정부(情婦)였던 제인 쇼라는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간음죄와 마녀 혐의로 체포된 그녀는 반투명한 흰 튜닉만 입고 세인트폴 대성당부터 런던의 거리를 행진해야 했다. 올드타운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이 연금술을 연구하며 제조했던 불로불사 영약에 대한 기록이 전시돼 있다. 수도원 내에는 1317년에 설립된 약국도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약국(1221년)이 더 오래됐지만, 이 약국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다. 수도사들의 200년 된 레시피로 허브와 오일을 활용해 만든 장미 크림이 유명하다.● 나의 스플리트는 어디인가두브로브니크에서 좀더 북쪽에 있는 스플리트(Split)는 1700년 전 로마 황제가 은퇴지로 선택한 해안 휴양도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인 황제 시대라 불리던 3세기 말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로마 제국을 구해낸 통치자였다. 당시 로마는 정치적 암살, 군부 쿠데타, 외부의 야만족 침입으로 인해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그는 로마제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눠 다스리는 사분통치제(Tetrarchia)를 만들었고, 행정 개혁과 세금제도 정비로 로마를 재건했다. 그런데 305년 5월. 황제는 예상 밖의 선택을 했다. 그는 은퇴했다. 로마 제국 건국 이후 몇 세기 동안 암살당하거나, 폐위당하거나, 추방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은 첫 번째 황제였다. 그는 은퇴 전 고향 근처인 스플리트에 10년에 걸쳐 궁전을 지었다. 궁전의 규모는 약 3만8000㎡. 축구장 약 5개 정도의 면적이다. 궁전의 중심에는 페리스타일(Peristyle)이라는 거대한 열주가 있는 안뜰이 있다. 기둥 아래에는 검은색 화강암 스핑크스가 놓여져 있다. 약 3500년 전인 이집트 투트모스 3세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스핑크스다. 궁전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12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는데 현재는 3개의 스핑크스가 남아 있다. 대부분 얼굴이 훼손돼 있지만 페리스타일 광장의 스핑크스는 가장 온전한 상태의 얼굴을 보여준다. 스핑크스 맞은 편 카페의 이름은 ‘룩소르(LVXOR)’. 비엔나식 크림 커피가 유명하다. 카페는 손님들을 위해 페리스타일의 돌 계단 위에 쿠션을 펼쳐놓는다. 돌기둥에 등을 기대고, 발은 고대 로마의 광장에 내려놓고, 스핑크스를 마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로마 황제가 된 기분이다. 페리스타일을 지나면 돔모양의 지붕을 가진 연결 통로가 나온다. 황제가 손님을 만나는 알현실로 쓰이던 공간이다. 높이 17미터, 지름 12미터의 원형홀 정상에는 둥그런 구멍인 ‘오큘러스(oculus)’가 뚫려 있다. 햇빛이 들어오는 이 구멍은 최고의 음향효과도 만들어낸다. ‘클라파(Klapa)’라고 부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전통 민속음악이 상설공연되는데, 남성 4명이 반주없이 소리만으로 실크처럼 섬세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두브로브니크가 ‘킹스랜딩’의 무대였다면, 스플리트는 데너리스 타르가리엔이 군대와 용을 끌고 왔던 ‘미린’이라는 또다른 세계관의 촬영지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밑에는 높이 10미터, 길이 50미터가 넘는 지하공간이 있다. 전체 궁전의 약 8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가 키우던 용 세 마리가 갇혀 있던 ‘용의 던전(Dungeon)’으로 나왔던 공간이다. 현지 해설 가이드는 “중세 이후 1000년간 지하공간에 쌓인 배설물들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시대에 석조로 지어진 지하공간이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궁전을 나와 바다쪽으로 나가보면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가 나온다. 해변에는 길이 500미터, 폭 40미터 정도의 직선거리인 ‘리바(Riva) 프롬나드’가 이어진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해질녘이면 몰려나와 이웃과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신다. 매일 저녁 일상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이런 저녁 산책을 ‘코르조(Korzo)’라고 부른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플릿에서 6년간의 은퇴생활 동안 채소를 기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1700년 전 황제의 ‘은퇴레시피’는 현대인에게도 깊은 영감을 준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스플리트는 어디일까? 나는 은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 크로아티아 전통요리 ‘페카’ 지중해 연안의 크로아티아는 신선한 올리브와 치즈, 와인을 곁들인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 있는 ‘로컬 페카(Lacal Peka)’에서는 크로아티아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 철제 뚜껑이 있는 용기인 ‘페카’ 안에 송아지 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 로즈마리, 올리브유, 와인, 파프리카, 토마토 등을 넣고 숯불로 4∼5시간 익히면 안에서 각종 재료가 향이 어우러진 요리가 완성된다. 한국의 뚝배기 찜과 비슷한 맛이라고할까. 특히 마랑군 레스토랑에서 맛본 문어 페카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감칠맛이 났다. 식전에 나오는 ‘프로슈토’는 돼지 넓적다리를 아드리아해의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천천히 숙성시켜 깊이 있는 맛이 난다.글·사진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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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려진 영도다리 깡깡깡 망치소리 사이 은은한 커피향[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부산 영도(影島)의 매력은 해운대의 깔끔한 바다가 아니라 일하는 항구의 생명력이다. 조선소와 낡은 보세창고, 거대한 컨테이너선박들과 크레인의 실루엣…. 쇠락한 항구의 섬 영도가 최근 감성 카페와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영도가 떠오름에 따라 부산 관광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시장 같은 대형 관광지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부산 원도심 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다.● ‘커피 산업 중심지’ 영도 조선소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 1위는 부산 영도구 봉래동이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은 7만251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128% 급증했다. 조선소의 거친 철골과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 오래된 벽돌, 녹슨 파이프들이 있는 곳. 산업 미학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영도 조선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영도 여행 출발은 영도대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영도대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도개교(跳開橋). 일제시대에 건설된 영도대교는 배가 지나갈 때마다 길이 31.3m, 무게 590t의 거대한 철교가 75도 각도로 들어 올려지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보여줬다. 요즘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15분간 다리가 올라가는 쇼가 펼쳐진다.영도대교 바로 앞 건물 2층에 있는 스타벅스 영도대교점에는 토요일마다 ‘성지순례객’들로 만석을 이룬다. 오후 2시 영도대교 사이렌이 울리면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 사진기를 켠다. 어린이들의 경탄, 젊은 연인들의 설렘, 그리고 노인들의 향수(鄕愁)가 뒤섞이는 시간이다.영도에 사람이 몰려든 것은 6·25전쟁 때였다. 피란민들 최후의 안식처가 부산이었다. 당시 부산 인구는 16만 명에 불과했는데, 200만 가까운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영도대교 주변은 피란민 천막으로 뒤덮였다. 영도대교는 14대 대통령선거 당시 ‘초원복집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는 녹취 테이프 속 말은 정치인들이 부산의 지역감정을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영도대교 바로 앞에 있는 라발스호텔 28층 스카이카페에 올라가면 넓은 통창(通窓)을 통해 조선소와 영도대교, 부산항 풍경을 360도로 볼 수 있다. 스카이카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니 영도 조선소 도크에 배가 올라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직도 영도 조선소는 운영되고 있구나! 영도대교에서 10여 분 걸어 ‘대한민국 수리 조선 1번지’로 불리는 대평동 ‘깡깡이 마을’에 도착했다. 늘 깡! 깡! 깡!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걷다가 문이 살짝 열린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 봤다. ‘칠성1호’라고 쓰여진 배가 눈 앞에 서 있다. 낯설지만 뭔가 신기하고 생생한 산업현장에 와 있는 듯하다. 영도는 운항 중인 중급 규모 선박들을 보수하는 조선업이 발달해 왔다. 1970~80년대 붐을 이룬 원양어선은 5월 전후에 영도로 들어와 겨울 항해를 대비해 정비를 받았다. 선체에 붙은 조개껍데기와 해초, 녹을 제거하고 용접하고 엔진을 점검했다. ‘깡깡이 아지매’들 활약은 대단했다. 배의 녹이나 조개껍데기를 떨어내던 여성 노동자들이다. 대부분 6·25전쟁 피란민과 그 자녀들, 농어촌을 떠나 온 실향민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망치질을 했다.조선업 침체에 따라 영도는 인구소멸 위기를 겪었다. 1978년 약 21만 명이던 인구는 2024년 10만여 명으로 줄었다. 청년은 떠났고 골목골목에는 셔터 내린 가게가 즐비했다. 2016년부터 마을 빈 공간을 예술작품으로 채우는 ‘깡깡이예술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키네틱아트와 벽화, 박물관, 마을카페 등이 생겨났다.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평마을 대동대교맨션아파트 벽에 그려진 ‘우리 모두의 어머니’. 독일 예술가 헨드릭 바이키르가 2017년 크레인에 올라 그린 가로 13m, 높이 35m 초대형 벽화다. 고된 삶을 강인하게 살아 낸 깡깡이 아지매 초상화다. 밤이 되면 들어오는 조명을 받아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주름살 가득한 어머니 얼굴이 빛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대평마을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영도에는 큰 변화가 생겨났다. 폐조선소가 문화 공간이 되고, 낡은 공업소가 예술 무대로 재해석됐다. 관광객들은 이 ‘낡음’을 향유하기 시작했다. 봉래동 물양장 일대 보세창고는 220곳 카페로 채워졌다.강원 강릉에 이어 부산이 커피 로스팅 중심지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국내 수입되는 커피 생두 90% 이상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서다. 에티오피아 산지, 콜롬비아 고산지대, 인도네시아 화산 지형에서 수확한 생두가 컨테이너에 실려 부산항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선한 생두를 로스팅할 수 있는 영도에 커피 전문 카페가 밀집하게 됐다.실제로 봉래동 ​모모스 카페에 들어서면 거대한 로스팅머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지 생두를 로스팅해 매일 다른 브랜드의 스페셜티커피를 큐레이션한다. 가장 인기있는 자리는 ‘조선소 뷰’ 자리다. 젊은 남녀들은 부산항 크레인과 중장비가 움직이는 풍경과 조선소 거친 기계음을 마주하며 커피를 마신다.봉래산 중턱에 자리 잡은 미피카페도 부산 남항과 북항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 맛집이다. 1987년부터 신기산업의 방울 공장이던 이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다보이는 부산항 노을과 야경은 사진작가들도 찾아오게 만든다.영도 동삼동 조선소 부지에 들어선 카페 피아크(P.ARK)는 거대한 크루즈선이나 항공모함을 연상케 한다. 카페 내부에는 바다 조망을 극대화하는 대규모 유리창과 계단형 좌석이 설치돼 있다. 부산항과 오륙도를 마주 보도록 설계된 시네마틱한 공간이다. 이곳 ‘영도 사골 뚝배기빵’은 유명하다.영도 바닷가 절벽 위 흰여울문화마을도 피란민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는 비탈길로 좁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추억이 떠오르는 동네다. 절벽 위 흰 담장 마을 풍경에 외국인 관광객도 몰려든다.영화 ‘변호인’ 국밥집 장면의 무대가 됐던 카페도 있다. 커피와 팥빙수를 시켜 놓고 건너편 송도해수욕장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본다. 애잔한 향수와 그리움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바라본 태종대와 송도 영도에서 커피를 마셨다면 유람선과 요트를 타고 영도의 진귀한 바위들을 구경할 차례다. 먼저 영도 끝자락 태종대다. 신라시대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통일을 마친 후 수려한 해안절경에 매료돼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태종대는 걸어서 볼 수 있다. 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로 이어지는 2~3시간 산책 코스다. ‘다누비 열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지질 명소로 불리는 태종대 절벽을 제대로 보려면 유람선을 타는 것이 좋다. 약 40분간 태종대와 오륙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태종대에는 망부석이 서 있다. 왜구에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로 변한 여인 전설이다. 유람선은 주전자섬, 오륙도를 감상하고 갈매기와 함께 항구로 되돌아온다. 태종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오솔길 사스레피나무에 꽃이 피었다. 구수한 향기가 난다.부산 송도해수욕장에 출발하는 요트는 해운대와 광안대교 불꽃놀이 야경을 감상하는 요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지질학 여행이다. 송도 거북섬에서 출발한 요트는 용궁구름다리 쪽으로 향한다. 해안 절벽에는 짙은 보라색과 흰색 암반이 층층이 쌓여 있다. 팥과 찹쌀로 만든 시루떡 같기도 하고, 초코와 크림케익을 번갈아 쌓아 놓은 느낌도 든다. 해안 절벽을 보면서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시게 되다니! 검붉은 암반층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다. 화이트초콜릿 같이 보이는 층은 석회질 응집체라고 한다.해안 절벽에 세로로 길쭉하게 뚫린 해식 동굴 2곳이 보인다. 영락없는 콧구멍 모양이다. 다른 곳에는 용굴도 있다. 송도 거북섬에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용의 비늘로 덮인 인룡(人龍) 여인과 어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을 담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송도는 용의 기운이 가득한 바닷가다.부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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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려진 영도다리 깡깡깡 망치소리 사이 은은한 커피 향[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부산 영도(影島)의 매력은 해운대의 깔끔한 바다가 아니라 일하는 항구의 생명력이다. 조선소와 낡은 보세창고, 거대한 컨테이너선박들과 크레인의 실루엣…. 쇠락한 항구의 섬 영도가 최근 감성 카페와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영도가 떠오름에 따라 부산 관광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시장 같은 대형 관광지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부산 원도심 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다.● ‘커피 산업 중심지’ 영도 조선소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 1위는 부산 영도구 봉래동이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은 7만251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128% 급증했다. 조선소의 거친 철골과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 오래된 벽돌, 녹슨 파이프들이 있는 곳. 산업 미학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영도 조선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영도 여행 출발은 영도대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영도대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도개교(跳開橋). 일제시대에 건설된 영도대교는 배가 지나갈 때마다 길이 31.3m, 무게 590t의 거대한 철교가 75도 각도로 들어 올려지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보여줬다. 요즘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15분간 다리가 올라가는 쇼가 펼쳐진다.영도대교 바로 앞 건물 2층에 있는 스타벅스 영도대교점에는 토요일마다 ‘성지순례객’들로 만석을 이룬다. 오후 2시 영도대교 사이렌이 울리면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 사진기를 켠다. 어린이들의 경탄, 젊은 연인들의 설렘, 그리고 노인들의 향수(鄕愁)가 뒤섞이는 시간이다. 영도에 사람이 몰려든 것은 6·25전쟁 때였다. 피란민들 최후의 안식처가 부산이었다. 당시 부산 인구는 16만 명에 불과했는데, 200만 가까운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영도대교 주변은 피란민 천막으로 뒤덮였다. 영도대교는 14대 대통령선거 당시 ‘초원복집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는 녹취 테이프 속 말은 정치인들이 부산의 지역감정을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영도대교 바로 앞에 있는 라발스호텔 28층 스카이카페에 올라가면 넓은 통창을 통해 조선소와 영도대교, 부산항 풍경을 360도로 볼 수 있다. 스카이카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니 영도 조선소 도크에 배가 올라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직도 영도 조선소는 운영되고 있구나! 영도대교에서 10여 분 걸어 ‘대한민국 수리 조선 1번지’로 불리는 대평동 ‘깡깡이 마을’에 도착했다. 늘 깡! 깡! 깡!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걷다가 문이 살짝 열린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 봤다. ‘칠성1호’라고 쓰여진 배가 눈 앞에 서 있다. 낯설지만 뭔가 신기하고 생생한 산업현장에 와 있는 듯하다. 영도는 운항 중인 중급 규모 선박들을 보수하는 조선업이 발달해 왔다. 1970∼80년대 붐을 이룬 원양어선은 5월 전후에 영도로 들어와 겨울 항해를 대비해 정비를 받았다. 선체에 붙은 조개껍데기와 해초, 녹을 제거하고 용접하고 엔진을 점검했다. ‘깡깡이 아지매’들 활약은 대단했다. 배의 녹이나 조개껍데기를 떨어내던 여성 노동자들이다. 대부분 6·25전쟁 피란민과 그 자녀들, 농어촌을 떠나 온 실향민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망치질을 했다. 조선업 침체에 따라 영도는 인구소멸 위기를 겪었다. 1978년 약 21만 명이던 인구는 2024년 10만여 명으로 줄었다. 청년은 떠났고 골목골목에는 셔터 내린 가게가 즐비했다. 2016년부터 마을 빈 공간을 예술작품으로 채우는 ‘깡깡이예술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키네틱아트와 벽화, 박물관, 마을카페 등이 생겨났다.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평마을 대동대교맨션아파트 벽에 그려진 ‘우리 모두의 어머니’. 독일 예술가 헨드릭 바이키르가 2017년 크레인에 올라 그린 가로 13m, 높이 35m 초대형 벽화다. 고된 삶을 강인하게 살아 낸 깡깡이 아지매 초상화다. 밤이 되면 들어오는 조명을 받아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주름살 가득한 어머니 얼굴이 빛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대평마을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영도에는 큰 변화가 생겨났다. 폐조선소가 문화 공간이 되고, 낡은 공업소가 예술 무대로 재해석됐다. 관광객들은 이 ‘낡음’을 향유하기 시작했다. 봉래동 물양장 일대 보세창고는 220곳 카페로 채워졌다. 강원 강릉에 이어 부산이 커피 로스팅 중심지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국내 수입되는 커피 생두 90% 이상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서다. 에티오피아 산지, 콜롬비아 고산지대, 인도네시아 화산 지형에서 수확한 생두가 컨테이너에 실려 부산항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선한 생두를 로스팅할 수 있는 영도에 커피 전문 카페가 밀집하게 됐다.실제로 봉래동 모모스 카페에 들어서면 거대한 로스팅머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지 생두를 로스팅해 매일 다른 브랜드의 스페셜티커피를 큐레이션한다. 가장 인기있는 자리는 ‘조선소 뷰’ 자리다. 젊은 남녀들은 부산항 크레인과 중장비가 움직이는 풍경과 조선소 거친 기계음을 마주하며 커피를 마신다. 봉래산 중턱에 자리 잡은 미피카페도 부산 남항과 북항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 맛집이다. 1987년부터 신기산업의 방울 공장이던 이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다보이는 부산항 노을과 야경은 사진작가들도 찾아오게 만든다. 영도 동삼동 조선소 부지에 들어선 카페 피아크(P.ARK)는 거대한 크루즈선이나 항공모함을 연상케 한다. 카페 내부에는 바다 조망을 극대화하는 대규모 유리창과 계단형 좌석이 설치돼 있다. 부산항과 오륙도를 마주 보도록 설계된 시네마틱한 공간이다. 이곳 ‘영도 사골 뚝배기빵’은 유명하다.영도 바닷가 절벽 위 흰여울문화마을도 피란민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는 비탈길로 좁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추억이 떠오르는 동네다. 절벽 위 흰 담장 마을 풍경에 외국인 관광객도 몰려든다. 영화 ‘변호인’ 국밥집 장면의 무대가 됐던 카페도 있다. 커피와 팥빙수를 시켜 놓고 건너편 송도해수욕장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본다. 애잔한 향수와 그리움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바라본 태종대와 송도영도에서 커피를 마셨다면 유람선과 요트를 타고 영도의 진귀한 바위들을 구경할 차례다. 먼저 영도 끝자락 태종대다. 신라시대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통일을 마친 후 수려한 해안절경에 매료돼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태종대는 걸어서 볼 수 있다. 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로 이어지는 2∼3시간 산책 코스다. ‘다누비 열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지질 명소로 불리는 태종대 절벽을 제대로 보려면 유람선을 타는 것이 좋다. 약 40분간 태종대와 오륙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태종대에는 망부석이 서 있다. 왜구에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로 변한 여인 전설이다. 유람선은 주전자섬, 오륙도를 감상하고 갈매기와 함께 항구로 되돌아온다. 태종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오솔길 사스레피나무에 꽃이 피었다. 구수한 향기가 난다. 부산 송도해수욕장에 출발하는 요트는 해운대와 광안대교 불꽃놀이 야경을 감상하는 요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지질학 여행이다. 송도 거북섬에서 출발한 요트는 용궁구름다리 쪽으로 향한다. 해안 절벽에는 짙은 보라색과 흰색 암반이 층층이 쌓여 있다. 팥과 찹쌀로 만든 시루떡 같기도 하고, 초코와 크림케익을 번갈아 쌓아 놓은 느낌도 든다. 해안 절벽을 보면서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시게 되다니! 검붉은 암반층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다. 화이트초콜릿 같이 보이는 층은 석회질 응집체라고 한다. 해안 절벽에 세로로 길쭉하게 뚫린 해식 동굴 2곳이 보인다. 영락없는 콧구멍 모양이다. 다른 곳에는 용굴도 있다. 송도 거북섬에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용의 비늘로 덮인 인룡(人龍) 여인과 어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을 담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송도는 용의 기운이 가득한 바닷가다.글·사진 부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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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남동발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 1등급

    한국남동발전이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2025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1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전국 709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평가에서 한국남동발전은 공직유관단체 중 최고 등급을 차지했다. 한국남동발전은 수년간 ‘국민과 구성원에게 신뢰받는 Fair & Clean KOEN’이라는 청렴 비전을 중심으로 조직 문화를 재설계해 왔다. 최고경영자(CEO)와 상임감사위원을 포함한 경영진이 솔선수범했고, 이것이 전 직원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한국남동발전은 ‘EthicGuard’라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전 직원이 참여하는 부패 예방 구조를 만들었다. 사전 진단부터 사후 점검까지 4단계 프로세스를 통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거기에 국민권익위원회의 컴플라이언스 기준(K-CP)을 발전사 최초로 도입해 표준화된 윤리경영을 추진했다.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CEO 주관 청렴윤리 혁신회의’는 전사 화상 중계로 진행된다. 최고경영진이 직접 주도하는 이러한 소통이 조직 내에서 청렴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게 했다. 실질적으로도 계약제도 투명성 강화, 청렴직위 순환보직 확대 등 구체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한국남동발전은 협력사와의 ‘찾아가는 간담회’, 구내식당에서의 수평적 소통,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 외부 이해관계자의 의견도 수렴했다. 이렇게 모인 의견들은 다시 정책으로 돌아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반부패·청렴 정책 추진 우수 사례’로 선정한 경우도 이 때문이다. 한국남동발전 관계자는 “지난해 종합청렴도 1등급 달성을 계기로 조직 내 청렴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미래세대 중심의 청렴정책을 확대하고 내부통제 기반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더욱 고도화 하여 윤리경영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킨다는 방침” 이라며,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신뢰받는 청렴 선도 공기업이 되고자 앞으로도 윤리경영을 적극 실천하겠다”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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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생의 생생함을 느껴보세요” 에버랜드 사파리월드와 튤립 봄축제

    “백호와 눈을 마주쳐 보세요. 눈이 마주치면 소원이 이뤄집니다.”웅장한 폭포 소리가 귀를 울리고, 숲 사이로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파리 버스 안이 환호성으로 물렸다. 특히 온 몸이 하얀색 털로 뒤덮인 백호가 눈 앞에 나타나니 비현실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사파리 버스가 지나가는 타이밍에 곰 두마리가 거칠게 손을 휘두르며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새끼 강아지들이 엉겨붙어 살짝 깨물면서 으르렁 거리고, 뒹굴들이 청소년 곰들도 힘겨루기를 하면서 커가고 있었다. 해설자는 “가끔씩 얼굴에 상처가 난 곰들도 많은데 서로 몸싸움을 하면서 커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창밖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는 더 이상 ‘관찰’이 아니었다. 그것은 야생동물과 함께 숨 쉬는 ‘체험’이었다. 마치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야생동물들이 타이밍을 맞춰 싸우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생생했다. 1976년 자연농원 개장 이래 9000만 명이 다녀간 국민적 헤리티지 시설, 에버랜드의 ‘사파리월드’가 약 1년간의 야심찬 준비를 거쳐 ‘사파리월드: 더 와일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50돌을 맞은 에버랜드가 던진 이번 도전은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동물복지’와 고객 경험을 극대화한 진정한 ‘올 뉴 사파리’였다.1일 다시 오픈한 사파리월드의 리뉴얼의 핵심은 명확했다. 인간이 동물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삶에 조용히 녹아드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었다.기존 트램을 대신한 친환경 EV(전기차) 버스는 소음과 진동을 거의 없앴다. 인기척을 귀신같이 감지하는 호랑이와 사자들이 이제는 EV버스 앞에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평온하게 한낮 여유를 즐겼다. 사자의 외관을 본뜬 버스, 호랑이의 무늬를 담은 버스, 불곰의 이미지로 꾸민 버스 총 10대가 온 가족을 야생의 세계로 이끈다.정동희 에버랜드 동물원장은 차량을 탑승하는 순간부터 퇴장까지 모든 순간을 설계했다고 밝혔다. “호랑이, 사자, 곰, 하이에나 등 동물들이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자에는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을, 호랑이에는 인도와 백두산 부근 환경 같은 숲과 폭포를, 불곰에는 시베리아 숲의 거친 분위기를 담았습니다.”탁 트인 초원 콘셉트의 ‘라이언 사바나’에선 사자 무리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자작나무와 폭포가 어우러진 ‘포식자의 숲’에선 한국호랑이와 벵갈호랑이가 은밀하게 이동하는 포식자의 본능을 드러냈다. 거친 분위기의 ‘북방의 숲’에선 불곰의 활동성이 이전보다 훨씬 활발했다. 호랑이를 위해 설치된 폭포, 사자의 높은 곳 올라가는 습성을 고려한 락웍(rockwork),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 등이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활동성을 강화했다.캡틴들의 역할도 달라졌다. 서열 싸움에서 이긴 ‘사자의 왕’이 지금 누구인지, 물을 좋아하는 곰과 호랑이의 습성, 그리고 유일한 백호에 얽힌 “눈을 마주치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들이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50돌을 맞은 에버랜드는 단순한 시설 개선에만 머물지 않았다. 봄이라는 계절을 온전히 담아내려 했다.튤립축제는 올봄의 가장 눈에 띄는 콘텐츠다. 튤립, 수선화, 무스카리 등 100여 종 약 120만 송이의 봄꽃들이 절정을 이룬다. ‘마이 스프링 팔레트(My Spring Palette)’라는 콘셉트 아래 튤립 식재 면적을 확장하고 정원 연출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는 평이다. 무려 62m에 달하는 대형 LED 스크린과 아름다운 봄꽃 화단이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풍경 같다. 밤이 되면 영국 출신 세계적 설치 미술가 브루스 먼로와 협업한 가든 라이팅이 환상적인 나이트 가든으로 변신시킨다.에버랜드는 태양의 서커스 출신이 다수 포진한 캐나다 엘로와즈와 협업했다. 서커스 공연 ‘윙즈 오브 메모리(Wings of Memory)’는 신비로운 고니와 정령에 이끌려 마법세계를 여행하는 주인공 ‘이엘’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곡예, 아크로바틱, 댄스, 영상, 음악, 특수효과가 어우러지는 40분간의 하이레벨 공연은 콘토션, 에어리얼 폴, 러시안 스윙 등 7종의 고난도 서커스로 채워졌다. 그랜드스테이지에서 매일 2회씩 펼쳐진다.1993년 설립된 엘로와즈는 캐나다 퀘백에서 30년 이상 활동하며 전 세계 50개국 700여 도시에서 70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쳐온 전문 기업이다. 태양의 서커스, 세븐 핑거스와 함께 캐나다 3대 서커스 제작사로 불린다. “공연의 높은 퀄리티를 꾸준히 유지하겠습니다”라는 에버랜드 관계자의 말이 무겁게 들렸다.4월 에버랜드는 봄 나들이를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봄을 말아봄’을 진행 중이다. 봄 나들이의 상징인 김밥이 주인공이다.에버랜드 매직타임 레스토랑에선 제주와 강원을 대표하는 맛집들과 협업했다. 제주도 3대 김밥으로 꼽히는 ‘다정이네 김밥’과 속초 명물 명태회를 활용한 ‘최대섭 대박 김밥’에선 실제 각 레스토랑의 셰프가 직접 에버랜드에서 김밥을 말아 준다. 에버랜드 한식 전문 조리사 정국진 셰프는 제주도 ‘김만복 김밥’을 직접 방문해 받은 비법 레시피로 고소한 전복 내장과 계란 지단의 조합을 선보인다.더 특별한 경험은 ‘김밥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이다. 알파인 레스토랑에서 주말마다 하루 3회씩 고객들이 직신만의 김밥을 완성해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팀당 최대 4인까지 참여 가능해 온 가족이 함께 만드는 추억을 담을 수 있다.알파인 빌리지 앞에 ‘스프링 플리마켓’이 새로이 문을 열었다. 튤립, 비올라, 수선화 등 향긋한 봄꽃 화분으로 꾸며진 야외 정원의 장터 분위기가 감성을 자극한다. 패션 잡화, 가드닝 용품, 생화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감성 소품들이 전시된다. 재즈풍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화분 포토존과 키링 만들기 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 봄 장터의 따뜻함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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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층 대신 2, 3층 상가… 신도시 드라이브 상권 주목하라”[은퇴 레시피]

    따박따박 월세 나오는 상가. 은퇴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쯤 갖고 싶은 로망이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도 나온다. 주인공이 퇴직금에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받아 분양상가에 투자한다. 결국 상가는 ‘공실 지옥’을 맞게 되고, 평생 모은 전 재산인 아파트까지 날려 먹게 된다.“준비가 되지 않은 투자는 끝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분양상가 사무실에서 상담받는 것을 ‘상가 공부’라고 착각하는 분이 많은데요. 그건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폭풍우 치는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빠져 죽을 수밖에 없죠.”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50)는 상가와 토지 투자 전문가로 부동산 업계에서 유명하다. 김 대표는 미니스톱, 홈플러스, GS리테일 같은 유통 대기업에서 편의점 점포 개발 업무 담당을 오래한 직장인이었다. 상권과 입지 분석, 예상 매출 산출 등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 ‘우수사원상’을 휩쓸었고, 개인적인 부동산 투자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신도시 외곽 드라이브 상권 주목”―김 부장처럼 분양상가 매입이 위험한 이유는.“신도시나 택지지구 분양상가 10개 중 9개는 위험합니다. 적정 가격보다 비싸게 분양하기 때문이죠. 보통 신도시 지구 계획안을 수립할 때 녹지 비율을 높여야 하고,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아요. 결국 수익을 맞추기 위해 상가 공급 비율을 늘리는 겁니다. 점점 배후 수요(세대수)에 비해 분양가가 비싼 상가가 신도시에 너무 많이 공급되고 있어요. 공실이 생기는 이유죠.”김 대표는 “미사, 위례, 마곡 등 인기 주거지역 상가도 덩달아 분양가가 높아졌다”며 “그러나 현실에서 인기 있는 주거지와 좋은 상가 지역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라고 지적했다.―현재 경기도, 금리도 안 좋은데 어떤 상가에 투자해야 하나.“신도시 근린상가 1층은 위험합니다. 대신 중간층에 학원이나 병원이 선호하는 상가 자리가 좋습니다. 배후에 약 1만 세대가 있고 20개 미만의 프라자상가(지상 7~10층 규모 근린상가)가 있는 곳에서 학원이나 병원이 선호하는 주동선 자리이면 임대료가 평당 약 8만 원 합니다. 그 정도 예상하고 투자하는 건 괜찮습니다. 또한 초등학교가 있는 10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내 상가 2층에서 교습소를 할 만한 투자도 좋지요.”―왜 1층보다 2, 3층 상가를 권하나.“1층에 들어오는 업종은 커피숍, 편의점, 화장품 등 소매점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업종은 쿠팡 같은 온라인쇼핑이 엄청난 경쟁자가 됐어요. 공실 위험이 큽니다. 비싼 1층 대신 2, 3층의 넓은 평수 상가를 사서 학원이나 병원에 임대한다면 좀 더 안정적인 월세를 받을 수 있지요. 학원이나 병원은 아직까지 온라인으로 대체되기 어려워요.”―전통적인 도심 워킹상권(보행자 동선 주변의 상점 활성화 지역)은 어떤가요.“도심 유흥상권 매출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음식점들이 넓은 면적을 확보하지 못하고, 주차도 프라자상가 지하에 해야 해서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서 신도시 매출 상당 부분이 차량 트래픽이 몰리는 도심 외곽 녹지지역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두드러져요.”김 대표는 “신도시와 고속도로 IC가 연결되는 광역교통개선대책 도로 변 녹지지역에 상업시설을 지어서 임대하면 굉장히 수익이 좋다”고 강조했다.“예를 들어 평택 소사벌지구는 배후에 1만2000세대 정도가 있는데, 인근 만세로 주변 녹지지역에 창고형 약국, 올리브영, 다이소, 버거킹, 스타벅스, 식자재 마트, 음식점 등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전용면적 198㎡(60평) 기준으로 고깃집 월 매출이 1억 원을 넘고, 도로 안쪽 설렁탕집도 월 매출 6000만 원 정도이니까 월세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나오지요.”김 대표는 이런 상권 변화가 “최저임금 상승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미국에 가 보면 일본에 비해 소매점 매장 규모가 엄청나게 큽니다. 땅덩어리가 커서 햄버거집도 크게 짓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최저임금이 높기 때문이예요. 소규모 소매점에서는 높은 최저임금을 주고 직원을 써서는 버틸 수 없어요. 그래서 매장을 크게 만들어 규모의 경제로 이윤을 뽑아내는 겁니다.”―우리나라도 최근 10년 새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예전에는 도심 작은 의류매장도 장사가 잘 됐지만 요즘엔 어렵습니다. 대신 외곽 녹지지역에 주차장을 갖춘 대형 의류매장(탑텐, 스파오 등)이 잘 됩니다. 다이소도 도심 좁은 땅에 높이 지으면 상품 진열에 드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요. 그래서 넓은 땅에 단층으로 ‘메가 다이소’를 짓습니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건축비도 올랐기 때문에 단층 건물을 짓고, 주차장을 갖춘 상가에 투자하는 것이 트렌드입니다.”● 직장인의 부동산 투자 비법“살이 찌는 체질인 사람은 탄수화물 같은 살 찌기 좋은 음식에 입맛이 당기죠. 부자가 되는 것은 단기적 기술이 아니라 장기적 습관으로 가능합니다. 습관을 변화시켜 ‘돈 찌는 체질’이 돼야 하죠.”김 대표는 최근 ‘돈 찌는 체질’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부산 ‘교통부 철거민’을 수용한 달동네 출신인 그가 서울 사당동 반지하 셋방살이를 거쳐 어떻게 부동산 투자에 성공했는지를 담았다.“직장생활을 할 때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세이노의 가르침’이었어요. 저자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을 출력해서 책으로 만들어 읽었습니다. 그 책에 ‘직장과 30분 거리에 살아라’라는 말이 있었는데요. 저도 회사에서 5분 거리인 사당동 반지하방에 살면서 출퇴근 시간을 아껴 꾸준히 부동산 투자 공부를 했습니다.”대학 시절 아르바이트하며 넣었던 청약저축이 29세에 아파트 분양 당첨으로 돌아왔다. 이 아파트는 그의 부동산 투자 종잣돈이 됐다. 회사에서 점포 개발 업무를 하면서 상권 분석과 경매, 권리 분석을 배우게 됐고 상가와 토지 투자를 시작했다.“회사 생활 10년 차 즈음에 제가 부동산 투자를 6건 했는데, 그중 지방에 3건이 있었어요. 그해에 쓸 수 있는 연차휴가 15일을 모두 경매와 ‘임장’, 명도 등을 하기 위해 썼지요. 그러면서도 회사 업무 성적에서는 최고 등급을 받았어요. 200명 가까운 점포 개발 담당 업무자 중 5명에게만 주는 우수사원상을 3년 연속 받았습니다.”―주택이나 아파트가 아닌 상가와 토지 투자를 하게 된 계기는.“2005~2007년, 3년간 집값이 너무 급하게 올랐어요. 경매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2008년에 집값 조정기가 오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2008~2013년 주택 경기가 굉장히 안 좋더군요. 투자를 잘하던 선배들도 주택 경기가 5년 나쁘니까 맥을 못 추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정부 규제도 적고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상가와 토지 투자에 집중하게 됐죠.”그는 “부동산 공부는 책이나 강의를 듣는 것도 좋지만, ‘돈 찌는 체질’인 친구를 옆에 두면 더 좋다”고 말했다. 투자 모임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1주일에 한 번은 답사와 임장을 꾸준히 다닌 것이 “지금까지 큰 실수를 하지 않고 투자를 잘해 온 비결”이라고 덧붙였다.김 대표는 “금수저로 태어나거나 높은 연봉의 전문직이 아닌 한, 현실적으로 부자가 되려면 장사를 잘하거나 투자를 잘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NH투자증권이 발표한 대한민국 상위 1% 부자 기준은 순자산 33억 원이다. 연봉으로 치면 2억 원 이상. 현재 부동산 순자산이 30억 원을 넘고 연소득 10억 원 이상(개인소득+자기 지분 100% 법인소득 합산)인 그는 성공한 투자자다.그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 1만 번 쓰기’ 같은 걸 하라고 것은 ‘모나미의 소원’만 들어줄 뿐”이라고 말했다.“젊은 여성이 가난한 남친을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요?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가난한 사람이 앞으로도 가난할 것 같으니까 싫어하는 겁니다. 반지하살이 하는 남친이 ‘지금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해 서울 재개발 지역 작은 빌라라도 사서, 우리 결혼할 때쯤 관리처분 들어가면 목돈을 마련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어요. 지금 가난해도 비전이 있다면 반하게 되는 겁니다.”―은퇴를 앞둔 직장인의 부동산 투자에 조언한다면.“워렌 버핏의 자산 200조 원 중 99%가 50세 이후에 쌓은 것이라고 합니다. 100세 시대인 만큼 투자 방법 배우는 것을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너무 조급해져 빠르게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은퇴자 주머니를 노리는 사기꾼들에게 걸려들기 쉽죠. 유튜브에는 수백만 원 강의료를 내면 공부 안 해도 강사가 찍어 주는 물건에 투자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허위, 과대 광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고가의 수강료는 물론 수천만~수억 원 대 투자금까지 날릴 위험이 큽니다.”김 대표는 “1년 정도 열심히 공부하고, 1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답사를 다니면 스스로의 힘으로 투자할 수 있는 실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을 하나 사서 3년 뒤에 되판다고 봤을 때, 3년이 3번 구른 9년 뒤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내고 자리를 잡으려면 10년 정도 장기 플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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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층 대신 2, 3층… 신도시 드라이브 상권 노려라”[은퇴 레시피]

    따박따박 월세 나오는 상가. 은퇴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쯤 갖고 싶은 로망이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도 나온다. 주인공이 퇴직금에 아파트 담보 대출까지 받아 분양상가에 투자한다. 결국 상가는 ‘공실 지옥’을 맞게 되고, 평생 모은 전 재산인 아파트까지 날려 먹게 된다.“준비가 되지 않은 투자는 끝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분양상가 사무실에서 상담받는 것을 ‘상가 공부’라고 착각하는 분이 많은데요. 그건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폭풍우 치는 바다에 뛰어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빠져 죽을 수밖에 없죠.”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50)는 상가와 토지 투자 전문가로 부동산 업계에서 유명하다. 김 대표는 미니스톱, 홈플러스, GS리테일 같은 유통 대기업에서 편의점 점포 개발 업무 담당을 오래한 직장인이었다. 상권과 입지 분석, 예상 매출 산출 등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 ‘우수사원상’을 휩쓸었고, 개인적인 부동산 투자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신도시 외곽 드라이브 상권 주목” ―김 부장처럼 분양상가 매입이 위험한 이유는.“신도시나 택지지구 분양상가 10개 중 9개는 위험합니다. 적정 가격보다 비싸게 분양하기 때문이죠. 보통 신도시 지구 계획안을 수립할 때 녹지 비율을 높여야 하고, 분양가 상한제 때문에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아요. 결국 수익을 맞추기 위해 상가 공급 비율을 늘리는 겁니다. 점점 배후 수요(세대수)에 비해 분양가가 비싼 상가가 신도시에 너무 많이 공급되고 있어요. 공실이 생기는 이유죠.” 김 대표는 “미사, 위례, 마곡 등 인기 주거지역 상가도 덩달아 분양가가 높아졌다”며 “그러나 현실에서 인기 있는 주거지와 좋은 상가 지역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현재 경기도, 금리도 안 좋은데 어떤 상가에 투자해야 하나.“신도시 근린상가 1층은 위험합니다. 대신 중간 층에 학원이나 병원이 선호하는 상가 자리가 좋습니다. 배후에 약 1만 세대가 있고 20개 미만의 프라자상가(지상 7∼10층 규모 근린상가)가 있는 곳에서 학원이나 병원이 선호하는 주동선 자리이면 임대료가 평당 약 8만 원 합니다. 그 정도 예상하고 투자하는 건 괜찮습니다. 또한 초등학교가 있는 1000세대 이상 아파트 단지 내 상가 2층에서 교습소를 할 만한 투자도 좋지요.” ―왜 1층보다 2, 3층 상가를 권하나.“1층에 들어오는 업종은 커피숍, 편의점, 화장품 등 소매점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업종은 쿠팡 같은 온라인쇼핑이 엄청난 경쟁자가 됐어요. 공실 위험이 큽니다. 비싼 1층 대신 2, 3층의 넓은 평수 상가를 사서 학원이나 병원에 임대한다면 좀 더 안정적인 월세를 받을 수 있지요. 학원이나 병원은 아직까지 온라인으로 대체되기 어려워요.” ―전통적인 도심 워킹상권(보행자 동선 주변의 상점 활성화 지역)은 어떤가.“도심 유흥상권 매출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음식점들이 넓은 면적을 확보하지 못하고, 주차도 프라자상가 지하에 해야 해서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서 신도시 매출 상당 부분이 차량 트래픽이 몰리는 도심 외곽 녹지지역에서 이뤄지는 경향이 두드러져요.” 김 대표는 “신도시와 고속도로 IC가 연결되는 광역교통개선대책 도로 변 녹지지역에 상업시설을 지어서 임대하면 굉장히 수익이 좋다”고 강조했다.“예를 들어 평택 소사벌지구는 배후에 1만2000세대 정도가 있는데, 인근 만세로 주변 녹지지역에 창고형 약국, 올리브영, 다이소, 버거킹, 스타벅스, 식자재 마트, 음식점 등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전용면적 198㎡(60평) 기준으로 고깃집 월 매출이 1억 원을 넘고, 도로 안쪽 설렁탕집도 월 매출 6000만 원 정도이니까 월세가 굉장히 안정적으로 나오지요.” 김 대표는 이런 상권 변화가 “최저임금 상승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미국에 가 보면 일본에 비해 소매점 매장 규모가 엄청나게 큽니다. 땅덩어리가 커서 햄버거집도 크게 짓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최저임금이 높기 때문이예요. 소규모 소매점에서는 높은 최저임금을 주고 직원을 써서는 버틸 수 없어요. 그래서 매장을 크게 만들어 규모의 경제로 이윤을 뽑아내는 겁니다.” ―최근 10년 새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다.“예전에는 도심 작은 의류매장도 장사가 잘 됐지만 요즘엔 어렵습니다. 대신 외곽 녹지지역에 주차장을 갖춘 대형 의류매장(탑텐, 스파오 등)이 잘 됩니다. 다이소도 도심 좁은 땅에 높이 지으면 상품 진열에 드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요. 그래서 넓은 땅에 단층으로 ‘메가 다이소’를 짓습니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건축비도 올랐기 때문에 단층 건물을 짓고, 주차장을 갖춘 상가에 투자하는 것이 트렌드입니다.”● 직장인의 부동산 투자 비법“살이 찌는 체질인 사람은 탄수화물 같은 살 찌기 좋은 음식에 입맛이 당기죠. 부자가 되는 것은 단기적 기술이 아니라 장기적 습관으로 가능합니다. 습관을 변화시켜 ‘돈 찌는 체질’이 돼야 하죠.” 김 대표는 최근 ‘돈 찌는 체질’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부산 해운대구 철거민 수용을 위한 달동네 출신인 그가 서울 사당동 반지하 셋방살이를 거쳐 어떻게 부동산 투자에 성공했는지를 담았다.“직장생활을 할 때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 ‘세이노의 가르침’이었어요. 저자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을 출력해서 책으로 만들어 읽었습니다. 그 책에 ‘직장과 30분 거리에 살아라’라는 말이 있었는데요. 저도 회사에서 5분 거리인 사당동 반지하방에 살면서 출퇴근 시간을 아껴 꾸준히 부동산 투자 공부를 했습니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하며 넣었던 청약저축이 29세에 아파트 분양 당첨으로 돌아왔다. 이 아파트는 그의 부동산 투자 종잣돈이 됐다. 회사에서 점포 개발 업무를 하면서 상권 분석과 경매, 권리 분석을 배우게 됐고 상가와 토지 투자를 시작했다.“회사 생활 10년 차 즈음에 제가 부동산 투자를 6건 했는데, 그중 지방에 3건이 있었어요. 그해에 쓸 수 있는 연차휴가 15일을 모두 경매와 ‘임장’, 명도 등을 하기 위해 썼지요. 그러면서도 회사 업무 성적에서는 최고 등급을 받았어요. 200명 가까운 점포 개발 담당 업무자 중 5명에게만 주는 우수사원상을 3년 연속 받았습니다.” ―주택이나 아파트가 아닌 상가와 토지 투자를 하게 된 계기는.“2005∼2007년, 3년간 집값이 너무 급하게 올랐어요. 경매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2008년에 집값 조정기가 오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2008∼2013년 주택 경기가 굉장히 안 좋더군요. 투자를 잘하던 선배들도 주택 경기가 5년 나쁘니까 맥을 못 추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정부 규제도 적고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상가와 토지 투자에 집중하게 됐죠.” 그는 “부동산 공부는 책이나 강의를 듣는 것도 좋지만, ‘돈 찌는 체질’인 친구를 옆에 두면 더 좋다”고 말했다. 투자 모임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1주일에 한 번은 답사와 임장을 꾸준히 다닌 것이 “지금까지 큰 실수를 하지 않고 투자를 잘해 온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금수저로 태어나거나 높은 연봉의 전문직이 아닌 한, 현실적으로 부자가 되려면 장사를 잘하거나 투자를 잘하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NH투자증권이 발표한 대한민국 상위 1% 부자 기준은 순자산 33억 원이다. 연봉으로 치면 2억 원 이상. 현재 부동산 순자산이 30억 원을 넘고 연소득 10억 원 이상(개인소득+자기 지분 100% 법인소득 합산)인 그는 성공한 투자자다.“젊은 여성이 가난한 남친을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요? 가난해서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가난한 사람이 앞으로도 가난할 것 같으니까 싫어하는 겁니다. 반지하살이 하는 남친이 ‘지금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해 서울 재개발 지역 작은 빌라라도 사서, 우리 결혼할 때쯤 관리처분 들어가면 목돈을 마련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어요. 지금 가난해도 비전이 있다면 반하게 되는 겁니다.” ―은퇴 앞둔 직장인의 부동산 투자에 조언한다면.“워렌 버핏의 자산 200조 원 중 99%가 50세 이후에 쌓은 것이라고 합니다. 100세 시대인 만큼 투자 방법 배우는 것을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너무 조급해져 빠르게 승부를 보려고 합니다. 은퇴자 주머니를 노리는 사기꾼들에게 걸려들기 쉽죠. 유튜브에는 수백만 원 강의료를 내면 공부 안 해도 강사가 찍어 주는 물건에 투자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허위, 과대 광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고가의 수강료는 물론 수천만∼수억 원 대 투자금까지 날릴 위험이 큽니다.” 김 대표는 “1년 정도 열심히 공부하고, 1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답사를 다니면 스스로의 힘으로 투자할 수 있는 실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을 하나 사서 3년 뒤에 되판다고 봤을 때, 3년이 3번 구른 9년 뒤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내고 자리를 잡으려면 10년 정도 장기 플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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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6년 전통 남원 춘향제, 글로벌 축제로”

    남원시는 31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서울 호텔에서 제96회 춘향제 프레스 데이를 개최했다. ‘다이나믹 춘향제: 96년의 유산’을 주제로 축제의 방향성을 소개했다.제96회 춘향제는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7일간 남원 광한루원 및 요천변 일원에서 개최된다. 올해 슬로건은 ‘춘향의 멋, 세계를 매혹시키다’다.남원시는 이번 축제의 관전 포인트를 기품·결기·사랑·전통 4가지로 세분화했다. 춘향 앰버서더 퍼포먼스와 춘향 카니발 퍼포먼스로 구성된 쇼케이스를 통해 각 컨셉을 선보였다. 제52회 춘향국악대전 대통령상 수상자인 명창 서의철의 공연도 함께 진행됐다.축제 기간 중에는 글로벌 춘향 선발대회, 춘향 한복 패션쇼, 춘향 카니발, 대한민국 춘향 국악대전 등이 예정돼 있다. 춘향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흑요석 작가의 ‘춘향 화첩: 일러스트 작품전’과 한복 명인 김혜순이 참여하는 한복 패션쇼가 눈길을 끈다.춘향 카니발은 춘향전의 스토리를 다양한 장르로 풀어내는 경연대회다. 조선이야기꾼의 만담, 단막창극, 판소리와 랩의 콜라보 같은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다.남원시는 축제를 단순한 공연 관람을 넘어 체류형 관광 경험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제시했다. 풍류 차박 캠핑, 춘향 퍼스널 패키지, 춘향 K-풍류 패키지 등 다양한 관광 상품을 개발했다.춘몽 러브스토리와 러브 온 에어를 통해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랑 기부런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돕는 기부 활동도 함께 진행한다.광한루 등불 행렬은 96년 전 전통을 재현하되 청사초롱으로 감성적 장관을 연출할 예정이다.1931년 음력 5월 5일 춘향제사로 시작된 춘향제는 대한민국에서 역사가 가장 긴 축제다. 공연 예술형이자 시민 참여형 축제이며 지역축제의 효시로 평가받는다.최경식 남원시장은 프레스 데이 브리핑에서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과 정절,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축제”라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는 글로벌 축제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축제 기간 메인공연장, 광한루각 무대, 예루원 무대, 길놀이 무대, 십수정 무대 등 5개 무대에서 공연이 진행된다. 푸드 존과 체험 존도 운영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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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달? NO! 매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만 누릴 수 있었던 ‘문화가 있는 날’이 4월부터 매주 수요일 찾아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가 있는 날’을 기존 월 1회에서 매주 수요일로 확대 시행한다고 1일 밝혔다. 주요 문화시설 무료 입장과 가격 할인 혜택을 주 단위로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문체부는 2014년 제도 도입 이후 영화와 공연 관람객이 꾸준히 늘어난 성과를 기반으로 이전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보다 보편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단순 할인을 넘어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생활밀착형 문화 생태계를 만들고 ‘K컬처 300조 시대’의 문화소비 기반을 다진다는 목표도 담겼다. 농어촌·산간 등 문화 소외 지역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도 연간 450여 회 집중 운영할 계획이다. 각종 혜택과 프로그램 정보는 공식 누리집(rcda.or.kr/cultureday)에서 확인할 수 있다. 1일 하루 동안은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문화 활동 인증 이벤트도 열린다. 참여자 중 200명을 추첨해 커피 쿠폰을 증정하며 총상금 1200만 원 규모의 영상 공모전도 이달 14일까지 진행 중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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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향과 기억을 요리에 담으려 합니다.”

    싱가포르 도심에 있는 텔록 아이어 (Telok Ayer)는 마리나베이 항구의 뒷골목이다. ‘텔록(Telok)’은 말레이어로 ‘만이나 항구’를 의미하고, ‘아이어(Ayer)’는 물을 뜻한다. 텔록아이어는 ‘바다의 만’ 또는 ‘바다의 항구’란 의미가 된다. 이곳은 원래 싱가포르의 해안도로였다. 간척지로 싱가포르 국토가 넓어지면서 지금은 바다 대신 오래된 숍하우스(Shophouse) 건물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현재는 중심업무지구이자, 각국의 힙한 레스토랑, 카페, 바들이 들어차 미식경쟁이 펼쳐지는 핫스팟으로 변모했다. 이 곳의 골목에 한국인 셰프 루이스 한(한석현)이 이끄는 한식 레스토랑 ‘내음(NAE:UM)’이 있다. 지난 2021년 문을 연 ‘내음’은 현재는 24석 규모의 작은 레스토랑이지만, 싱가포르에서 ‘한국식 파인다이닝’ 카테고리로 4년 연속 미슐랭 1스타를 지켜낸 유일한 곳이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해외 우수 한식당으로도 선정됐다. “‘내음’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향기를 뜻합니다. 갓 구운 빵 냄새에 어린 시절 동네 빵집이 떠오르고, 흙냄새에 할머니 댁 마당이 생각나는 것처럼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기, 그 아련한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한석현 셰프에게 ‘내음’이란 무슨 뜻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그는 2019년 말 싱가포르에 한식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차리기로 결심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파도를 뚫고 2021년 문을 열었다. 내음 레스토랑이 있는 텔록 아이어 거리는 싱가포르 다문화의 축소판이다. 한 블록 안에 불교사원, 이슬람 모스크, 힌두 사원 등 각종 종교와 문화가 공존한다. 중국계, 인도계, 말레이계, 유럽계 등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수백 년째 어깨를 맞대고 살아온 동네다. “내음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중국계가 70%, 서양인이 한 20% 정도예요. 한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싱가포르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팬층은 싱가포르의 중국계 미식가들과 서구 여행자들이다. 한식이 ‘글로벌 미식 언어’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그가 주방에서 지휘하는 음식은 한식의 뼈대 위에 프렌치 테크닉을 얹고, 동남아의 향신료를 살짝 두르고, 서양의 플레이팅 감각으로 마무리하는 형태다. 싱가포르라는 다문화 도시 안에서 펼치는 ‘내음(NAE:UM)’ 만의 문법이다. 요리가 나올 때마다 일러스트 메뉴 카드 한 장이 함께 나온다. 수채화로 그린 투명한 그림과 설명글이 담긴 리플렛이 입맛을 돋군다. “식사하시는 동안 저희 직원들이 음식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해드립니다. 한국에서 맛본 음식과는 많이 다르실 수 있어요. 하지만 되게 한국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해주시죠.” 실제로 내음의 메뉴 곳곳에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식재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동치미는 로컬 과일 ‘잠부(rose apple)’로 담가 산뜻함을 높였고, 무침 요리에는 이 지역에서 흔히 쓰는 채소 ‘윙빈(winged bean)’이 들어간다. 그의 요리코스에 등장하는 단어는 동치미 외에도 감태와 토란, 젯방어, 메밀면, 만두, 전복, 주물럭, 대추 등 익숙한 한국어가 많이 쓰여 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작은 꽃들로 장식돼 있고, 인도와 중동, 유럽 등 다양한 국가의 스타일이 섞여 있다. 물론 기본은 고향의 내음이다. “제 고향은 가까이에 산이 있었어요. 언제나 숲 속의 향기가 감싸는 곳이었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면을 먹는 것을 좋아했지요.” 한 셰프의 요리경력은 20년. 그 세월의 절반은 여행으로 채워졌다. 레바논에서 유엔(UN) 소속으로 복무했고, 아부다비를 거쳐 싱가포르에 정착했다. 인터컨티넨탈 호텔(서울/아부다비), JW메리어트 동대문, 모수 서울, 메타(Meta) 싱가포르를 거치며 그는 세계의 맛과 기술을 흡수했다. 하지만 그의 뿌리는 언제나 ‘서울’을 향해 있었다. ”제주도의 공기는 또 달라요. 좀더 미네랄이 많지요. 제주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좋아했어요. 제 요리는 여행하면서 느낀 것을 토대로 풀어내는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생각하는 요리란 레시피가 아니라 ‘살아온 날들의 총체적 기록’이라는 얘기다. 그에게 한국 음식은 결국 ‘냄새와 기억’의 음식이다. 된장의 깊은 발효향, 참기름 한 방울의 고소함, 김치 국물의 시큼달큼한 여운. 그 기억들이 서양식 코스의 틀 안에서 전혀 다른 언어로 재조합될 대 낯섦과 익숙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는 깻잎·미나리·더덕 같은 핵심 향채류와 장(간장·된장·고추장)은 모두 한국에서 직송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육류 수급 환경에도 변화를 기대했다. 루이스 한 셰프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제주산 소·돼지의 싱가포르 수출이 시작된 점을 언급하며 ”한우는 이미 싱가포르에서 너무 유명하다“며 ”앞으로 내음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내 식당에서 더 다양한 한식 메뉴 구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음’의 또다른 자랑은 한국인 소믈리에다. 음식에 따라 와인을 페어링해준다. 샴페인으로 시작해 화이트, 레드 순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엔 한국 전통주로 마무리된다. 그는 “한국의 향과 기억을 담으면서도 낯설지 않도록, 두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내는 게 내음이 생각하는 한식”이라고 말했다.싱가포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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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대구에는 미인도가 있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현대인에게 ‘나를 마주하는 시간’은 사치다. 업무에 쫓기고 관계에 얽매인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군위 사유원(思惟園)에서 건축과 자연을 거닐며 명상에 잠기고,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그림 속 미인과 홀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자. ● 대구는 ‘미인도’의 도시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2024년 가을 대구에도 문을 열었다.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훈민정음해례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혜원전신첩’ 같은 국보급 문화재를 다수 소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대중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대구 대덕산 자락에 오픈한 대구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우리 미술품을 지킨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컬렉션을 상설로 선보일 수 있는 규모의 전시 시설이다.산자락 경사지에 계단식 건물로 층층이 자리 잡고 있는 대구간송미술관 입구에서는 11개의 소나무 기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육중한 콘크리트 지붕을 붉은 소나무 기둥들이 떠받쳐 허공에 널찍하고 시원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소나무 기둥 아래에는 자연석 주춧돌이 그렝이 공법(불규칙한 자연석 굴곡을 그대로 기둥 밑면에 다듬어 톱니처럼 맞물리게 하는 전통 건축 공법)으로 튼튼하게 떠받치고 있다. 미술관 앞쪽에는 ‘물의 정원’도 있는데, 지하 1층 전시실에서 창문 너머로 소나무와 물이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골 물 옆에 심은 소나무’란 뜻의 간송(澗松)을 건축적으로 해석한 정원이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푸르고, 계곡물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역사의 혹독함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간송의 신념을 한눈에 보여 주는 정원이다.대구간송미술관은 지난해 26만5000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았다. 그중 절반가량인 49%가 대구 밖 지역 방문객이었다. 지방 미술관이 이토록 인기를 끈 가장 큰 공신은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다. 관람객들은 한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미인도를 만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전시장 어두운 방 한가운데 오로지 미인도 한 점만 배치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보 반가사유상 2점만 관람할 수 있는 ‘사유의 방’이 있는 것처럼. 관람객들은 작품 속 미인과 어둠 속에서 1대1로 독대하는 색다른 경험에 빠져들었다. 가체(加髢)를 얹고 다소곳이 서서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여인의 자태. 넓은 이마, 가는 눈썹, 앵두 같은 붉은 입술, 가녀린 어깨. 연녹색 치마는 백자 항아리를 닮았고, 단아한 저고리는 정숙함이 풍겨져 나온다. 그러면서도 치마폭 아래로 버선발 한 쪽이 살짝 내비치는 순간의 관능적 여백!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낸 솜씨는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숨을 멎게 한다. 그러나 신윤복의 미인도를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눈빛이다. 모나리자를 계속 보게 만드는 것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라면, 미인도의 눈빛은 내면의 아름다움과 꿈, 처연한 슬픔을 헤아려 보게 한다. 혜원은 화제(畫題)를 통해 “사람의 만 가지 사연을 그림으로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전시장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인공지능(AI) 기술로 미인도를 재해석한 디지털 아트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미인도가 렘브란트의 명암법으로, 모네의 인상주의 붓터치로, 르누아르의 따뜻한 색채로 변신해 살아 숨쉰다. 미인도 인물이 빙글 한바퀴 돌아 뒷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는 7월이다. 미인도 원본만을 위한 상설 전시관이 마침내 문을 연다. 미인도는 서울 성북동 전시장에서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귀한 손님’이 아니라, 대구에 뿌리를 내린 ‘상주(常住) 미인’이 된다. 때로는 그림 한 장이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통계에 따르면 매년 200만 명이 오로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다. 관람객 1인이 체류하는 동안 평균 1500유로(약 258만 원)를 쓰니 매년 4조5000억 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4월 추사 김정희 전시, 7월 미인도 상설관 개관에 이어 9월에는 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과 협력해 역대 최대 규모 겸재 정선 특별전이 열릴 예정이다. 대구는 ‘미인 도시’를 넘어 ‘한국 전통 미술의 수도’를 꿈꾸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 인근에는 삼성라이온즈파크가 있다. 프로야구를 관람하러 온 팬들은 간송미술관에 입장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낮에는 미술관, 밤에는 야구를 관람하는 스포츠와 예술의 ‘시간차 마케팅’이다. 또한 간송미술관과 군위 사유원은 더현대, 호텔인터불고와 손을 잡고 ‘아트 앤 힐링 스테이 인 대구’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그림과 정원을 통해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경험’에 빠져드는 여행이다. 막창과 더위, 보수의 심장으로만 알려진 대구에서 ‘아트와 힐링’을 느껴보는 색다른 경험이다.● ‘빌려온 풍경’ 팔공산 산그리메 대구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 군위군 부계면 팔공산 자락에 있는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수목원이다. 포르투갈 출신 건축가 알바로 시자, 한국 건축가 승효상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정원 곳곳에 들어서 있다. 일반에 공개된 것은 약 5년 전. 본격적으로 관람객을 받은 것은 약 3년 전부터 시작됐다. 사유원에서는 31일까지 매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백매화, 홍매화, 흑룡금매화, 운용매화 같은 다양한 매화가 어우러져 봄 풍경을 만든다. 그러나 사유원을 직접 걸어 보니 주인공은 매화도, 건축도 아니었다. 바로 멀리 마주보이는 팔공산의 겹겹이 이어진 능선이 웅장하게 펼쳐지는 산그리메였다. 대구는 도시 자체가 자연이 만든 대규모의 지형 예술이다. 북쪽에는 팔공산(해발 1193m)의 거대한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고, 남쪽에는 비슬산(1084m) 높은 능선이 도시를 감싼다. 서쪽에는 가야산(1430m)이 위용을 드러내고, 동쪽으로 도덕산 응해산 응봉산 문암산 등이 고리 모양으로 대구 도심을 호위한다. 신천과 금호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며 분지(盆地)를 이룬다. 철강기업인이던 사유원 설립자가 수령 300년의 모과나무를 심기 위해 구입한 땅은 바로 팔공산이 마주보이는 구릉이었다. 한국 정원의 전통적 조경 기법인 ‘빌린 풍경(차경·借景)’ 원리에 맞춤인 땅이었다. 차경은 울타리 밖 자연 풍경을 마치 내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빌려오는 기술. 인공으로 만든 정원 안에서 자연을 재현하려 애쓰는 서양식, 일본식 정원과는 다른 한국만의 기법이다. 실제로 사유원을 걸으며 바라보는 맞은편 팔공산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높게만 보였던 산이 어느덧 눈높이를 마주하면서 포근한 품을 넉넉하게 보여 준다. 곡선의 산책로, 정자, 물과 돌의 배치는 모두 팔공산으로 시선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특히 ‘정향각(呈香覺)’ 정자 앞에 놓인 바위 끝부분이 팔공산이 펼쳐 내고 있는 스카이라인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은 묘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알바로 시자와 승효상의 건축물들은 풍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 모두 몸을 낮췄다. 건축은 정원의 주인이 아니다. 소요헌, 명정, 현암, 내심낙원 같은 건축물은 모두 팔공산 스카이라인에 헌사를 보내고 있다. 창문 크기, 문 높이, 산책로 각도, 나뭇가지 틈새…. 차경이란 결국 ‘선택된 지점에서 선택된 거리’로 보여지는 것. 정교하게 설계된 프레임을 통해서 바라보이는 팔공산 풍경은 사유와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사유원의 연못 뷰 레스토랑 ‘사담’에서 식사를 하고 천천히 정원을 산책하다 보니 오후 해가 짧았다. 해가 지기 전에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逍遙軒)’은 꼭 보고 싶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두 갈래 길’을 마주한다. 한쪽은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다른 한쪽 길은 어둡다. 어디로 갈 것인가. 빛을 찾아갔더니 허공에 십자가 같은 철제 조각이 매달려 있고, 다른 한쪽 방에는 알이 놓여 있다. 어둠과 빛,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생각하게 한다. 원래 소요헌은 알바로 시자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전시하기 위해 설계한 공간이었는데, 그 꿈이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사유원으로 오게 됐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중 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스트 공군이 바스크 지역 게르니카를 폭격했을 때의 참혹함을 그린 작품이다.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시대. 소요헌은 삶과 죽음을 명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소요헌 입구 작은 북카페 요요빈빈에 들어서면 알바로 시자의 누드 크로키가 벽면에 가득하다. 건축가의 인체 드로잉은 그 자체로도 눈을 즐겁게 한다.글·사진 대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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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NSW) “한국인 관광객 ‘체험 중심 휴가’ 원해”

    “한국 관광객은 지난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NSW)의 13개 국제시장 중 지출액과 숙박 일수 부분에서 모두 세계 4위로 올라섰습니다. 한국 관광객은 특히 체험을 중요시하는 특징이 있지요.” 호주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NSW) 관광청이 2026년 세계 4위 규모의 한국 시장을 겨냥한 관광전략을 발표했다. 17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호주식 비건 레스토랑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제니퍼 텅 동북아 총괄이사와 김희정 한국 사무소 지사장은 한국인의 ‘체험 중심 휴가’ 트렌드에 맞춘 전략을 제시했다. NSW주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9월 기준 28만 3800명.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한국인 관광객의 총지출액은 8억 2690만 호주 달러(약 8711억 원)를 기록했으며, 총숙박 일수는 490만 박으로 전년 대비 29.2%나 급증했다. 이로써 한국은 NSW주의 13개 국제 시장 중 지출액과 숙박 일수 부문에서 모두 세계 4위에 올라섰다. 제니퍼 텅 총괄이사는 “한국은 중국, 일본보다도 호주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방문객의 82%가 순수 휴가 목적으로 방문한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은 단순 관람을 넘어 하버 브리지 클라이밍, 오페라 하우스 내부 투어 등 적극적인 체험형 관광을 즐기는 특징을 보인다. 방문객 수 대비 지출 규모가 타 국가 대비 월등히 높아 NSW주에서도 ‘알짜 시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2026년 NSW주는 한국인들의 휴가 패턴에 맞춘 다채로운 축제를 준비했다. 상반기에는 3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시드니 하버를 배경으로 한 야외 공연 ‘한다 오페라’가 포문을 열고, 5월 22일부터는 도시 전역을 빛으로 수놓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비드 시드니’ 축제가 이어진다. 하반기에는 세계 7대 마라톤으로 격상된 ‘시드니 마라톤’(8월 30일)과 세계적 규모의 ‘새해 전야 불꽃놀이’(12월 말)가 열릴 예정이다. 김희정 지사장은 “시드니는 크고 작은 이벤트와 축제가 가득한 도시”라며 “전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이벤트를 통해 프리미엄 여행 수요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프라 혁신도 관광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이다. 올해 말 개항 예정인 ‘서시드니 공항’은 ‘통행금지 시간’이 없는 24시간 운영 체제로 한국을 포함한 장거리 노선 승객들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현재 한국-시드니 노선의 항공 공급석은 이미 팬데믹 이전 수준을 상회하며 역대 최다 수준의 접근성을 확보한 상태다. 지난 1월에는 ‘시드니 피시 마켓’이 기존보다 2배 이상 확장해서 재개장했다. 새벽 라이브 경매 관람과 전문 셰프에게 배우는 ‘시드니 쿠킹 스쿨’ 등 한국인이 선호하는 체험형 미식 콘텐츠를 강화해 연간 600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거듭났다. 숙박 부문에서도 세계 12위에 선정된 ‘카펠라 시드니’를 비롯해 W 시드니, 더 이브 등 럭셔리 호텔들이 새단장을 마쳤다. NSW주 관광청은 시드니를 허브로 삼아 헌터 밸리의 와이너리 투어, 포트 스테판의 샌드 보딩 등 근교의 다채로운 액티비티를 연결해 체류 기간을 늘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제니퍼 텅 총괄이사는 국제 분쟁 상황을 언급하며 호주의 장점을 강조했다. 미국·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 속에서 호주는 안전한 여행지로서의 가치가 더욱 부각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NSW주 와인 산업 역시 한국 시장 공략의 중요한 축이다. NSW주는 14개의 공식 와인 산지를 보유한 지역으로, 호주 최초의 포도 재배지인 시드니 코브에서부터 헌터밸리, 오렌지, 툼바룸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한다. 특히 가성비 좋은 옐로우 테일부터 프리미엄 와인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는 한국 관광객의 다층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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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적 ‘빅딜’의 무대,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 호텔은 2018년 6월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다.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세워진 배경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는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카펠라호텔 리셉션에서 객실로 가는 중간 통로에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악수를 나눴던 장소가 있다. 땅바닥에는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이 새겨진 황금색 둥근 원판이 붙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을 공격해 독재자를 체포하고, 폭사시키는 전쟁같은 작전을 펼치는 요즘. 카펠라 호텔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악수를 나눴던 현장에 서니 묘한 감정이 든다. 관광객들은 이 곳에서 악수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이후 트럼프와 김정은은 호텔의 회담장 ‘카시아(Cassia)’로 이동해 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당시 서명식을 했던 나무 테이블은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돼 있고, 카시아는 현재 호텔 중식당으로 쓰이고 있다. 카펠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대나무로 장식돼 있고, 샘물에서 물이 흘러내려 물소리가 난다. 시각과 청각으로 미각을 돋구는 장치다. 카펠라에서는 ‘중식 파인다이닝’ 코스가 유명하다. 애초에 북미정상회담은 싱가포르 최대 규모의 호텔인 샹그릴라 호텔이 1순위로 거론됐다고 한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카펠라 호텔로 내려졌다. 이는 보안상의 이유가 절대적이었다. 센토사섬은 싱가포르 본토와 단 하나의 다리로만 연결되어 있어 경호와 통제가 가능한 천혜의 요새다.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은 원래 19세기 영국 포병부대 장교들을 위한 숙소였다. 싱가포르를 점령한 영국 해군은 러시아 함대, 프랑스의 위협에 대비해 센토사섬에 포대와 요새를 구축했다. 영국 빅토리아식 건축물은 당시 식민지 건축의 특징을 모두 담고 있다. 하얀 석회석 벽면, 긴 베란다, 열대 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깊은 처마와 통풍이 잘되는 높은 천장들이다. 그러나 1942년 싱가포르가 일본에 점령됐을 때 일본군 포로수용소가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싱가포르 정부는 센토사를 관광과 레저의 섬으로개발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리조트월드와 고급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카펠라호텔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현대화에 착수했다. 그는 카펠라호텔의 19세기의 빅토리아식 건물들을 복원하고 우아한 곡선으로 된 적갈색 건물을 추가했다. 역사적인 유산을 잘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싱가포르식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카펠라호은 5000여 그루 이상의 나무가 심어진 정원 속에 계단식 수영장이 숨어 있다. 아침마다 정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청아하다. 밤에는 도시의 불빛에 방해받지 않고 달빛과 별빛을 감상할 수 있는 고요함이 매력적이다. 900여개의 예술작품으로 갤러리처럼 꾸며진 복도는 럭셔리 호텔의 품격을 느끼게 한다. 객실에서는 바다뷰가 펼쳐진다. 싱가포르 항구는 말라카해협을 통해 원유와 화물이 지나가는 세계 물동량이 허브역할을 하는 곳. 푸른 바다 위로 닻을 내리고 묘박하고 있는 화물선과 유조선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이국적이다. 정글숲과 에머랄드빛 수영장 앞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아마(Fiamma)가 있다. 조식 뷔페에는 코코넛 국물과 향신료의 아로마가 어우러진 싱가포르 전통요리 ‘락사(Laksa)’가 곁들여진다. 열대의 아침을 맞이하기에는 이것보다 더 좋은 선택이 없다. 호텔 수영장 앞에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작이 유유히 걸어다닌다. 계단식 수영장을 내려가면 팔라완 해변에 도착한다. 센토사섬에는 팔라완 외에도 탄종비치, 실로소비치 등 3곳의 해수욕장이 있다. 나무그늘이 있는 해변 길을 따라 조깅을 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 평화와 고요의 섬 센토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산책 코스다. 센토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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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전승훈]외국인 관광객이 바꾸는 서울의 상권지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찹쌀떡 가게 앞에는 아침부터 외국인들이 긴 줄을 선다. 끈적끈적한 떡의 식감을 외국인들이 싫어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옆에 있는 감자탕 가게에도 줄이 길게 서 있다. 맙소사 외국인이 웬 감자탕? 돼지 뼈에 붙은 살을 맛있게 발라 먹는 그들은 누구인가. 평일 낮에도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거리를 메운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외래관광객 2000만 명 시대. 서울 도심의 상권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있다. 외국인이 오는 동네냐, 아니냐. 한쪽은 핫플레이스가 되고, 다른 쪽은 공실 지옥이다. 내수 소비 회복이 언제 될지도 모르는 요즘. 외국인이 서울의 상권지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894만 명. 전년 대비 15.7%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올해 외래관광객 2300만 명, 2029년까지 3000만 명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21일 BTS 광화문 공연을 앞두고 서울은 ‘BTS노믹스’로 들썩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외국인의 관광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수동, 홍대, 을지로, 익선동, 한남동, 해방촌, 신당동, 동묘…. 외국인들은 ‘로컬처럼’ 서울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강북의 재발견’이다. ‘오징어게임’, ‘K팝 데몬헌터스’ 등 전 세계를 강타한 K컬처의 힘이 크다. 한국에 가서 한국인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휩싸인 것이다.강북의 재발견 우리 주변에 이렇게 힙하고, 재밌는 곳이 있다니! 국내 MZ세대도 외국인을 따라 서울 강북의 골목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명동에서 나온 외국인들은 ‘을·충·당 벨트’(을지로-충무로-신당동)로 흘러넘쳐 간다. 에어비앤비의 성지 홍대 상권은 연남동, 망원동으로 확장된다. 외국인이 방향을 틀면 상권의 흥망이 바뀐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 경리단길이 쇠퇴하고, 리움미술관 등 고급 문화시설이 많은 한남동이 K패션의 성지로 떠올랐다. 강남 신사동에서는 공실률이 45.2%로 치솟은 가로수길을 떠난 외국인들이 인근 도산공원 앞으로 몰려갔다. 한국관광공사가 정의한 K관광 트렌드는 한국인의 일상을 즐기는 ‘데일리케이션(Dailycation)’이다. 백화점 면세점 쇼핑보다는 시장, 올리브영, 약국, 다이소를 다니며 먹방을 즐기고, 체험형 소비에 집중한다. 성수동의 외국인 소비는 지난해 상반기 226.3% 폭증했다. 외국인과 국내 MZ세대가 몰려드는 상권을 글로벌 브랜드들이 놓칠 리 없다. 월 임대료 1억∼2억 원을 내면서도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다. 반면 강남역과 테헤란로, 여의도와 같은 전통 비즈니스 상권은 울상이다. 강남대로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11%로 치솟았고, 여의도는 밤만 되면 유령도시로 변한다. 재택근무가 늘고, 온라인 소비로 전환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평일과 주말, 밤과 낮 구분 없이 ‘상시 유동인구’를 제공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없는 거리엔, 더 이상 내국인도 찾아오지 않는다.외국인 친화적인 도심 상권 개발 종로3가역 익선동 갈매기살 골목은 새벽 3시까지 줄을 선다. ‘야장’에서 떠들썩하게 밤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들의 풍경은 뮌헨 옥토버페스트 현장을 방불케 한다. 원래 불법 단속 대상이었던 가게의 도로와 인도 점유를 종로구청이 특정 구역에서 허용하고, 주민과 경찰이 자발적으로 질서 유지에 나서 가능한 장면이다. QR코드를 이용한 다국어 메뉴 설명 등 외국인 친화적인 도심 상권 개발 전략도 주효했다. 서울의 상권 지도는 더 이상 지하철 노선도나 오피스 밀집도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제 전 세계 2030세대의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그려지고 있다. 2000만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서울의 어느 골목에 새로운 상권을 탄생시킬 것인가. 그 지도를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이 다음 10년의 서울을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전승훈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국장급 raphy@donga.com}

    •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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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항 50주년 싱가포르항공 프리미엄 서비스 확대

    싱가포르항공이 서울 취항 50년을 맞아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 개선과 제휴 카드 출시 등으로 프리미엄 항공 서비스 전 영역을 재편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세계 37개국 135개 도시를 운항하는 싱가포르항공은 1975년 취항한 한국 노선에서 인천∼싱가포르를 주 28회, 부산∼싱가포르를 주 7회 운항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 항공평가기관 스카이트랙스로부터 ‘아시아 최고 항공사’ 등 10개 부문 1위를 받았다. 싱가포르항공 비즈니스 클래스는 완전 수평이 되는 ‘풀 플랫’ 좌석을 1열, 2열, 1열로 배치해 어느 좌석에서든 통로와 바로 연결된다. 창가 자리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 프라이버시 확보에 유리하다. 업계 최초로 전 클래스 무제한 기내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며, 좌석에는 전원 공급 장치와 USB 포트를 갖춘 비즈니스 패널과 17인치 풀 HD 터치스크린 모니터가 제공된다. 1998년부터 국제 요리 자문단(ICP)을 운영해 각국 미식 문화를 기내 메뉴로 선보이고 있다. 기내와 동일한 기압 환경을 재현한 가압 시뮬레이션 캐빈에서 셰프들이 맛을 보고 풍미를 조율한다. 프리미엄 클래스 승객에게는 출발 24시간 전까지 랍스터 테르미도르나 그릴에 구운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 같은 기내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주문 서비스 ‘북 더 쿡(Book The Cook)’이 제공된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오즈 클라크, 지니 조 리, 마이클 힐 스미스가 매 시즌 세계 와인을 대상으로 기내 기압 환경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 점수를 매기고 논의한 결과로 최종 와인 리스트를 완성한다. ‘에어 소믈리에’ 자격이 있는 승무원들은 기내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한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4번 출국장 29번 탑승구 근처 ‘실버크리스 라운지’는 휴식과 샤워, 업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락사와 치킨커리를 곁들인 로티 프라타, 카야 토스트 등 싱가포르 전통 음식을 내놓는다. 싱가포르항공과 신한카드는 국내 최초 외항사 제휴카드 ‘싱가포르항공 크리스플라이어 더 베스트 신한카드’도 출시했다. 싱가포르항공 관계자는 “우수한 서비스, 프로덕트 리더십, 네트워크 연결성이라는 핵심 목표를 위해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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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을 만나면 인생이 노래가 된다

    솔직히 말하자. 스페인을 떠올리면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다. 붉은 플라멩코 드레스, 아니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흙먼지. 그런데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런 표면적인 이미지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며 그 밑에 숨어 있던 훨씬 더 넓고 깊은 스페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스페인을 만나면 인생이 노래가 된다’(라이트하우스인)는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국과 스페인 사이를 가교처럼 이어온 이은진 박사가, 그 긴 시간의 결을 한 땀 한 땀 수놓은 문화 에세이다.30년 전, 게르니카 앞에 선 한 여자모든 인연에는 첫 장면이 있다. 이은진 박사에게 스페인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시작됐다. 혼자 떠난 유럽 여행 중, 그녀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 섰다. 교과서 속 흑백 인쇄물로만 알던 그 그림이, 실물로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압도적인 크기, 무채색의 거친 질감, 파괴와 절규가 뒤엉킨 추상의 언어. 그 충격이 그녀의 인생을 스페인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피카소는 평생 5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20세기 입체파의 문을 열었다. 그가 남긴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그는 늘 자신의 고향 말라가를 이렇게 불렀다. “나는 안달루시아의 작은 물잔에서 태어났다”고. 피카소가 뿌리를 기억하는 방식이 그랬다. 이은진 박사 역시 그 뿌리를 찾아, 말라가에서 콘수에그라까지, 스페인 곳곳의 문화적 원점을 발로 걸으며 이 책을 썼다.돈키호테의 풍차, 그리고 인간의 용기에 대하여라만차 지방 콘수에그라의 언덕 위에는 하얀 풍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그 유명한 풍차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성 언덕이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 괴물로 착각하고 돌진했다. 무모했고, 우스꽝스러웠고, 그래서 위대했다. 이은진 박사는 그 풍차 앞에서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만의 거인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이 책 곳곳에서 독자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이 책에서 가장 시적인 챕터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알람브라 궁전 이야기다.그라나다의 알람브라는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 250년에 걸쳐 쌓아 올린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벽돌, 세라믹, 석회, 목재로 빚어낸 정교한 격자 무늬와, 코란의 구절을 수놓은 칼리그라피가 궁전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무데하르 양식의 근원이 된 이 이슬람 건축은, 1492년 이사벨 여왕에게 함락되는 날 그 찬란함이 더욱 비극적으로 빛났다.마지막 왕 보압딜은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으며 궁전을 돌아보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고개의 이름이 지금도 ‘무어인의 한숨 고개(Puerto del Suspiro del Moro)’다. 한숨 하나가 지명이 된 것이다. 이은진 박사는 알람브라 궁전 아다르베스 정원 벽에 새겨진 시인 이카사의 구절을 그 앞에 배치한다.“여인이여, 그에게 자선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라나다에서 눈이 먼 것보다 인생에서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떠나면서 눈물을 흘렸을까. 그 질문이 책장을 넘기는 손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파라도르 — 역사가 잠드는 호텔에서의 하룻밤이 책의 흥미로운 챕터 중 하나는 ‘파라도르(Parador)’ 이야기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파라도르는 수도원, 성, 귀족의 저택 같은 역사적 문화유산을 현대적 호텔로 재탄생시킨 국영 숙박 시설이다. 그 중에서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파라도르는 파라도르 체인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1499년 가톨릭 군주의 명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원래는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었다.이 책을 읽으며 나는 개인적인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2022년 산티아고 순례길에 취재갔다가 마지막에 귀국 전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시 숙소는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 있는 이 유서깊은 파라도르였다. 별 5개짜리 파라도르 호텔에서 1주일을 격리해야 했던 그 아이러니한 시간. 순례지를 떠나지 못했던 그 경험이, 오히려 그 장소를 가장 깊이 느끼게 해준 시간이기도 했다. 역사적인 공간이 위기의 순간에 품이 되어준다는 것, 이 책에서도 바로 그런 여행의 깨달음이 전달이 된다.  한국과 스페인, 닮은 두 반도의 이야기​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스페인과 한국은 구조적으로 닮았다. 두 나라 모두 반도다. 둘 다 좌우 이념의 격렬한 충돌과 내전을 겪었고, 오랜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화를 이뤄냈으며, 지금은 나란히 OECD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 있다. 2025년 기준 명목 GDP는 스페인이 세계 12위, 한국이 13위로 그야말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두 나라다.두 나라의 교류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9년에는 63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스페인을 찾았고, 지난해 5월 단 한 달에만 6만 7천 명이 방문해 월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은진 박사는 그 63만 명의 길목 한가운데서 26년간 스페인 관광청 한국대표를 지냈다.  2019년, 그 공로로 스페인 왕비 레티시아 오르티스의 친서를 받았고, 2023년에는 한국관광대상 서울시의회 의장상을 수상했다.총 40여 개의 스토리로 구성된 이 책은, 스페인의 햇살과 바람, 골목의 소리와 광장의 음악, 카페의 향기와 사람들의 미소를 글로 옮겨 담았다. 주한 EU 대사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는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를 깊이 느끼게 해주며 독자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고 했고, 주한 세르반테스 문화원장 라파엘 부에노는 “저자의 진정성 있는 시선과 담백한 표현이 스페인을 생생히 전달한다”고 썼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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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작이 날아다니는 평화와 고요의 섬[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싱가포르 여행이라고 하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인피니티풀과 머라이언이 떠오른다. 최첨단 마천루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야경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싱가포르는 좁거나 획일적이지 않다. 센토사섬에서는 공작이 우아하게 걸어다니는 고요한 해변과 열대우림이 있고, 도심 뒷골목을 걸으면 다양한 인종과 민족, 종교이 섞여 사는 모습을 만난다. ‘사람 냄새 가득한 로컬 맛집’을 찾아가는 색다른 싱가포르 여행을 떠나 보자. ● 북미정상회담 열린 센토사섬 센토사섬은 싱가포르 본섬에서 남쪽으로 약 800m 떨어져 있다. 원래 해적의 본거지여서 말레시아어로 ‘블라깡 마티(등 뒤에서 죽음을 맞는 섬)’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렸다. 영국 식민지 시절엔 영국군이 주둔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일본군 포로수용소가 됐다.싱가포르 정부는 1970년대부터 유니버설스튜디오를 비롯한 고급 테마파크와 리조트를 지었고 ‘평화와 고요의 섬’이란 뜻인 센토사로 불렀다. 2018년 6월 12일에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센토사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성조기와 인공기를 나란히 세워 놓고 악수를 나눴다. 카펠라 호텔 회랑 바닥에는 지금도 북미정상회담을 기념하는 황금색 원판이 붙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을 폭격 중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맞잡은 손이 새겨진 황금색 원판 위에 서 있으니 앞으로 세계 정세와 한반도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광둥식 파인다이닝 중식당 카시아(Cassia)에서 두 사람이 공동성명에 서명한 길이 4.3m 티크 원목 테이블은 현재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카펠라 호텔은 원래 19세기 영국 포병 장교들과 가족들이 살았던 2층짜리 숙소였다.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하얀색 빅토리아식 건축물에 곡선으로 된 붉은색 건축물을 새로 이어 붙였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아마(Fiamma)의 아침 뷔페에서는 싱가포르식 국수 락사(Laksa)를 맛볼 수 있고, 카시아에서는 파인다이닝 코스 요리가 특선이다.센토사섬은 싱가포르에서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섬이다. 여행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공작과의 만남’이다. 공작은 리조트를 당당하게 활보하고 해변 풀숲에서 우아하게 산책한다. 세계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많은 공작을 만나기란 어렵다(사진). 공작이 높은 나무나 건물 지붕 위까지 날아다니는 모습도 처음 봤다. ‘화려한 깃털을 펼친 공작이 어떻게 날 수 있지?’ 생각하는 순간, 공작이 닭처럼 옆구리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공작은 화려한 부채꽃 깃털 대신 허리 쪽 짧은 날개를 강하게 휘둘러 몸을 빠르게 띄워 올렸다.● 종교와 문화의 용광로 센토사섬에서 나와 지하철(MRT)을 타고 싱가포르 도심 뒷골목 여행에 나섰다. 별도의 교통카드 없이도 한국에서 가져온 신용카드를 개찰구에 대니 곧바로 탑승이 가능했다. 정말 편리했다. 내린 곳은 리틀인디아역. 목걸이에 신분증을 걸고 있는 가이드를 만났다. 중국인 아버지와 말레이시아계 무슬림 어머니를 둔 그녀는 “이 구역에서 내 이름은 엔젤(Angel)로 통한다”고 말했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에 모두 친숙한 그녀 이름이 기독교의 엔젤이라니….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건 형형색색의 꽃가게였다. 자스민, 마리골드, 그리고 연꽃까지…. 얼마나 꽃이 싱싱한지 화환마다 벌들이 날아와 꿀을 빨아먹고 있었다. “이 꽃들은 신들에게 바치기 위한 꽃이예요.”엔젤은 비닐봉지 한가득 꽃을 샀다. 그리고 향한 곳은 신들의 얼굴로 장식한 웅장한 탑(고푸람)이 있는 스라비야 킬리암만 사원. 리틀인디아 심장부에 자리한 힌두 사원이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향냄새와 꽃향기, 그리고 기도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갑자기 남인도 타밀나두 뒷골목으로 이동해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차이나타운 지하철역에 내리면 비첸향 육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빅토리아 양식의 숍하우스(Shophouse) 창문에는 파스텔톤 알록달록한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앞은 가게이고 뒷편은 주거지인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2층 스타벅스에서 보라색 창문을 열고 보니 골목길 상점마다 춘절을 축하하는 홍등이 가득 걸려 있었다. 차이나타운 한가운데는 당나라 양식으로 지은 불아사(佛牙寺) 기와지붕이 우뚝 솟아 있다. 석가모니 치아를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부처님 어금니 사원(Buddha Tooth Relic Temple)’이다. 사원은 해질녘 야경이 시작되면 황금빛으로 물든다. 부기스(Bugis) 지역으로 불리는 아랍 스트리트에 가면 황금색 돔과 화려한 아라베스크 스타일의 술탄 모스크가 있다. 모스크 맞은편 골목 하지 레인(Haji Lane)은 인생샷 천국이다. 바로크식 건물들은 감성적인 카페와 부티크, 향수점, 공예품 가게들로 꽉 차 있다. 텔록 아이어 골목에는 한식당도 많다. 한국인 셰프 루이즈 한(한석현)이 이끄는 레스토랑 내음(NAE:UM)은 한식 파인다이닝으로 현지 미식가들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싱가포르 역사는 1819년 영국 스탠포드 래플즈 경(卿)이 항구로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말라카 해협에 있는 이 섬은 동서양 교역로가 되었다. 부산광역시 넓이보다 작은 불과 730㎢의 작은 섬에 중국, 말레이, 인도, 아랍, 유럽 등에서 온 611만 명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인상적인 점은 그 다양성이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로컬 맛집 호커센터 오전 6시, 싱가포르 주택가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대신 거리 호커(Hawker)센터 키친에서 팬을 부딪치는 소리와 고기를 구우며 피어오르는 연기가 도시를 깨운다. 호커는 행상인이란 뜻이다. 싱가포르 이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길거리 어디든 임시로 만든 노점에서 밥을 짓고, 국수를 삶고, 카레를 끓였다. 1965년 싱가포르 독립 후 리콴유 총리는 노점상을 없애는 대신 한 곳에 모으는 것을 선택했다. 개방형 건축물 안에 수십 개의 노점을 배치하고 중앙 로비에 공용 식탁 공간을 만들었다. 위생 관리, 도시계획, 주민 복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도시공학적 솔루션이었다. 한화 4000∼6000원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어 하루 세끼 모두 외식하는 사람도 많다. 싱가포르 전역에 120개 이상의 호커센터가 있다. 한 센터엔 80개 이상의 노점이 빼곡하다.지역에 따라 사는 인종과 문화가 다르고 음식도 다르다. 리틀 인디아 테카센터(Tekka Center)에서는 ‘향신료의 교향곡’이 펼쳐진다. 커민, 코리앤더, 카다몬, 클로브 등의 향이 한데 섞여 공중을 떠돈다.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대부분 인도 요리다. 비리야니(쌀밥), 로티 프라타, 라자(렌즈콩 카레), 탄두리 치킨, 도사(쌀가루 팬케이크), 파파담(렌즈콩 튀김 스낵)…. 엔젤은 “오늘 비리야니가 당기면 비리야니, 내일 아침엔 난(Naan), 저녁엔 시원한 맥주 한 캔과 함께 프라타 한 장을 먹는다”고 말했다. 테이블 간격은 좁다. 낯선 사람과 합석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인 옆에 인도인이 앉고 그 옆에 말레이인이 앉아 각각 다른 음식을 먹는다. 할랄과 비(非)할랄 음식을 담은 쟁반은 색깔로 엄격히 구분한다.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 한 테이블에서 먹는 호커센터 문화는 202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호커센터 노점상 중에는 미슐랭가이드 별을 받은 맛집도 수두룩하다. 2016년 차이나타운 호커 찬(Hawker Chan)이 처음이었다. 30년 이상 호커센터에서 일해 온 호커찬의 간장치킨 요리는 소박하고 직관적이다. 닭을 삶아 식힌 다음 자신의 비법 간장 소스에 담근다. 그의 메뉴는 여전히 한끼에 4∼5싱가포르달러(약 4000∼5000원). 미슐랭 스타를 받았어도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 그것이 호커센터 정신이다.차이나타운 호커센터의 ‘The 1950s Coffee(五十年代·오십년대)’도 미슐랭 맛집이다. 할아버지 바리스타 혼자 동남아 전통 코피(Kopi)를 내리고, 돈을 받고, 서빙을 한다. 가격은 1.3싱가포르달러(약 1500원). 진한데 벨벳처럼 부드럽고 향기도 좋다.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인도네시아 로부스타 원두를 버터와 설탕으로 함께 볶아 캐러멜 코팅을 입힌 다음, 필터로 우려낸 진액을 공중에서 에어레이션(공기와 접촉시키기)하고 연유를 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글·사진 싱가포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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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돌보는 ‘자연인’이 월300만원…나무의사 자격증 관심 커지는 이유는[은퇴 레시피]

    “나무의사는 나무를 진찰하고 치료하고 병을 예방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병원으로 찾아올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왕진을 떠납니다.”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나무의사 오세견 씨(54·숲결나무병원 원장)와 함께 서울숲에 있는 메타세콰이어와 은행나무를 둘러보았다. 그는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 심장 박동 소리와 폐 호흡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무 망치를 두들겨 보며 나무 속이 꽉 차 있는지, 썩거나 비어 있는지를 들었다.그의 ‘왕진가방’에는 수목활력측정기와 토양분석 장비, 나무 망치, 루페와 윤척 등이 들어 있었다. 나무 줄기에 수목활력측정기 끝에 달린 뾰족한 두 개의 탐침봉을 꽂고 전기신호를 흘려보내니 나무 활력도가 수치로 나타난다. 또 뿌리가 뻗어 있는 땅에 토양분석기를 꽂아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외과수술용 가방에는 체인톱(전기톱)과 트릴, 끌 같은 장비도 들어 있다.2018년 나무의사 자격시험 도입 이후 8년간 배출된 나무의사는 1737명. 2024년 도시숲법 제정, 2025년 산림보호법 개정으로 아파트 단지 등 생활권 수목 관리에 나무의사의 진단과 모니터링이 의무화된 후 나무의사 시장은 크게 확대됐다.지난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수목 진료와 산림·식물 보호 분야 국가기술자격 취득자의 55.9%가 50대 이상이다. 관련 자격 취득자 중 은퇴 연령층인 60대 이상의 취업률도 69.6%에 이른다. 나무의사 등 산림 관련 직종이 고령화 사회에서 ‘인생 이모작’의 대안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 사진작가에서 나무의사로오 원장은 잘나가는 사진작가였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홍익대 부근에서 상업광고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삼성, LG 휴대전화나 TV 같은 대기업 유명 브랜드를 촬영했다. 2005년 프랑스 유학을 가서 11년 동안 현지 교민신문의 프랑스 지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여행과 풍경, 예술사진을 찍는 작가로 활동했다. 2016년 귀국 후에도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폐업했다.“빚만 남더군요. 50대가 됐으니 좀 더 긴 호흡으로 평생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충북 청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언젠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파리 근교 농장을 견학할 때마다 설렜다. 그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귀농귀촌학교에 다니던 중 2박 3일 현장 체험을 갔다가 임업에 대해 알게 됐다.“논이나 밭농사는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숲속 농사인 임업은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산속에 호두나무, 피칸 등을 심어 열매를 따고 산나물과 더덕, 카모마일을 키우며 표고버섯을 수확하는 것이죠. 최소 3~4년 기다리면서 하는 임업은 제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귀농귀촌 교육을 마치고 산림조합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산림경영자과정 교육을 이수한 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영림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나무 심기, 숲 가꾸기, 간벌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벌목 작업을 하다 잠시 앉아 쉴 때였다. 산 향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 진짜 산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 나무의사가 되다그는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임업인 임야구입자금 대출을 받아 산지를 구입해 임업을 하려고 했다. 총 3억 원 이내에서 토지 감정가의 60%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연이율 1%로 15년 거치 20년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발품을 팔아 적당한 임야를 찾았지만, 감정가가 낮게 나와서 추가로 6000만원의 자금이 필요했고 준비가 부족했다. 산속에서 농사 짓는 꿈은 잠시 미뤘다.대신 나무의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임업 관련 학위나 경력도 없는 오 씨 같은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산림, 조경, 식물보호 분야 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을 따는 것이다. 산림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나무의사가 도기 위해 전국 15개 양성 기관에서 150시간 이상 의무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는 서울대, 신구대 같은 수도권 양성 기관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당시 경쟁률은 3대1, 4대1로 치열했다. 지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말마다 부산 동아대로 내려가 수업을 받았다.“나무의사 시험이 어렵다고 하지만 아주 똘똘한 중학생이라면 6개월만 공부해도 딸 수 있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50대에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수목병리학과 해충학은 다 암기과목입니다. 화학식이 많은 토양학이 어렵다고 하는데 제겐 외우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죠.”나무의사 시험 응시자 중에는 직장인도 많다. 하지만 주말에 수업 듣고 밤새 공부해 시험을 보기에 합격률은 높지 않다. 1차, 2차 시험 합격률이 15~20%에 불과하다. 오 씨는 “다행히 실직한 저는 온종일 공부할 수 있어 직장인보다 유리했다”고 했다. 그는 2022년 합격했다.합격 후 국가유산수리(식물보호) 전문병원인 서울 강동구의 한 나무병원에 의사로 취직했다. 초봉은 3900만원이었다.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강원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삼척 궁촌리 음나무 등 전국을 돌며 천연기념물 노거수(老巨樹)를 모니터링하고 치료했다.“반계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1300살이 넘어요. 노거수여서 바람에 약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쓰러지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 긴급 출동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수술을 해주죠. 필요하면 영양제도 놔줍니다.”그는 천연기념물 나무를 진단할 때 사진가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한다.“사진가는 구도, 대칭, 비대칭 같은 구조적인 면을 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수관이 한쪽으로 편중돼 있으면 그쪽으로 쓰러질 확률이 높아요. 나뭇가지가 프랙탈 이론처럼 자연스럽게 뻗어 나가는 패턴을 벗어나면 위험 신호입니다.” ● 나무의사 초봉 3000만 원대현재 산림청 공공사업이나 정부 발주 프로젝트의 나무의사 하루 노임 단가는 32만6359원, 수목치료기술자는 23만8447원으로 고시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보면 나무병원 신입 의사 초봉은 연 3000만~3500만 원 선, 3~5년 차는 연 4500만~5500만 원 선이다. 개업의나 대형 프로젝트를 전담하면 연 8000만 원 이상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나무의사 자격 취득자가 선호하는 취업 분야는 공무원(지방자치단체 녹지직 등)이 27.2%로 가장 높다. 이어 수목원 등 공공기관 25.6%. 합산하면 52.8%가 공공부문을 선호한다. 나무의사 자격이 안정적 공직 진출 관문으로도 기능한다는 의미다.오 씨는 지난해 8월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나무병원을 열었다. 나무병원을 만들려면 나무의사 2명 이상이거나, 나무의사 1명과 수목치료기술자 1명 이상을 갖춰야 한다. 병원 개업은 늦깎이 인연으로 만난 반려자 최가연 씨(51) 도움이 컸다. 최 씨도 영국 런던에서 플로리스트를 공부한 뒤 플랜테리어(식물 이용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해 왔으나 코로나19 이후 사업을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때였다. 나무병원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오 씨 제안에 최 씨는 선뜻 수목치료기술자 공부를 시작했다. 수목치료기술자는 ‘간호사’ 역할이다. 이제는 늘 함께 현장에 나가 나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파트너가 됐다.“나무병원은 입찰을 통해 생활권 수목과 보호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민간 건물(아파트) 조경 수목을 관리해요. 60대 이후에도 취업률이 높은 것은 전문 지식과 함께 평생 쌓은 인맥 관리 노하우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전국 971개 나무병원 연간수익은 1554억 원 규모. 개별 병원 연평균 매출은 약 1억4700만 원이다. 각 나무병원에는 평균 2명 이상의 나무의사나 수목치료기술자가 있다. 나무의사 자격 취득자 1737명 중 많은 이가 현장에서 일한다는 증거다.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에 가장 많은 34~35%가 있다. 잇단 신도시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경과 가로수 유지 보수 수요가 전국 1위 지역이어서다. 서울은 10~11%로 2위다.“가로수는 도시의 유일한 탄소 흡수원입니다. 잘못된 관리 방식으로 전국에서 매일 44그루의 가로수가 죽어 갑니다. 줄기 가운데를 싹둑 자르는 이른바 ‘닭발 전정’도 횡행합니다. 그러면 병균과 미생물이 침입해 나무 안쪽부터 썩어 들어가죠. 네모난 보도블록에 맞춰 뿌리를 잘라버리니 바람에 쓰러지는 일도 많습니다.”그는 ‘프로젝트 숨:표’라는 사물인터넷(IoT) 통합 수목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나무 옆에 설치한 ‘숨:표’ 센서가 24시간 토양 수분, 온도, 기울기 등을 모니터링한다.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병해충 감염을 일찍 감지하고, 쓰러질 확률을 예측한다. 또한 3차원(3D) 디지털 트윈 기술로 나무가 흡수하는 탄소량을 측정해 국제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오 씨는 나무의사를 하면서 사진 작업도 계속하겠다고 했다. 1년 동안 천연기념물 나무 한 그루를 계속 촬영해서 한 컷으로 남기는 작업이다.“봄에 새싹이 나오고, 여름에 풍성해졌다가, 가을에 낙엽이 지고, 겨울에 앙상해지는 나무의 1년간 모습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시간이란 무엇인지, 나무와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작업이지요.”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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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의사 ‘60대 이후 취업률 70%’… 공공분야 진출 쉬워[은퇴 레시피]

    《“나무의사는 나무를 진찰하고 치료하고 병을 예방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병원으로 찾아올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왕진을 떠납니다.”》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나무의사 오세견 씨(54·숲결나무병원 원장)와 함께 서울숲에 있는 메타세콰이어와 은행나무를 둘러보았다. 그는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 심장 박동 소리와 폐 호흡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무 망치를 두들겨 보며 나무 속이 꽉 차 있는지, 썩거나 비어 있는지를 들었다.그의 ‘왕진가방’에는 수목활력측정기와 토양분석 장비, 나무 망치, 루페와 윤척 등이 들어 있었다. 나무 줄기에 수목활력측정기 끝에 달린 뾰족한 두 개의 탐침봉을 꽂고 전기신호를 흘려보내니 나무 활력도가 수치로 나타난다. 또 뿌리가 뻗어 있는 땅에 토양분석기를 꽂아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외과수술용 가방에는 체인톱(전기톱)과 트릴, 끌 같은 장비도 들어 있다.2018년 나무의사 자격시험 도입 이후 8년간 배출된 나무의사는 1737명. 2024년 도시숲법 제정, 2025년 산림보호법 개정으로 아파트 단지 등 생활권 수목 관리에 나무의사의 진단과 모니터링이 의무화된 후 나무의사 시장은 크게 확대됐다.지난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수목 진료와 산림·식물 보호 분야 국가기술자격 취득자의 55.9%가 50대 이상이다. 관련 자격 취득자 중 은퇴 연령층인 60대 이상의 취업률도 69.6%에 이른다. 나무의사 등 산림 관련 직종이 고령화 사회에서 ‘인생 이모작’의 대안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 사진작가에서 나무의사로오 원장은 잘나가는 사진작가였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홍익대 부근에서 상업광고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삼성, LG 휴대전화나 TV 같은 대기업 유명 브랜드를 촬영했다. 2005년 프랑스 유학을 가서 11년 동안 현지 교민신문의 프랑스 지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여행과 풍경, 예술사진을 찍는 작가로 활동했다. 2016년 귀국 후에도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폐업했다.“빚만 남더군요. 50대가 됐으니 좀 더 긴 호흡으로 평생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충북 청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언젠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파리 근교 농장을 견학할 때마다 설렜다. 그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귀농귀촌학교에 다니던 중 2박 3일 현장 체험을 갔다가 임업에 대해 알게 됐다.“논이나 밭농사는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숲속 농사인 임업은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산속에 호두나무, 피칸 등을 심어 열매를 따고 산나물과 더덕, 카모마일을 키우며 표고버섯을 수확하는 것이죠. 최소 3~4년 기다리면서 하는 임업은 제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귀농귀촌 교육을 마치고 산림조합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산림경영자과정 교육을 이수한 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영림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나무 심기, 숲 가꾸기, 간벌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벌목 작업을 하다 잠시 앉아 쉴 때였다. 산 향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 진짜 산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나무의사가 되다그는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임업인 임야구입자금 대출을 받아 산지를 구입해 임업을 하려고 했다. 총 3억 원 이내에서 토지 감정가의 60%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연이율 1%로 15년 거치 20년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발품을 팔아 적당한 임야를 찾았지만, 감정가가 낮게 나와서 추가로 6000만원의 자금이 필요했고 준비가 부족했다. 산속에서 농사 짓는 꿈은 잠시 미뤘다.대신 나무의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임업 관련 학위나 경력도 없는 오 씨 같은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산림, 조경, 식물보호 분야 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을 따는 것이다. 산림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나무의사가 도기 위해 전국 15개 양성 기관에서 150시간 이상 의무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는 서울대, 신구대 같은 수도권 양성 기관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당시 경쟁률은 3대1, 4대1로 치열했다. 지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말마다 부산 동아대로 내려가 수업을 받았다.“나무의사 시험이 어렵다고 하지만 아주 똘똘한 중학생이라면 6개월만 공부해도 딸 수 있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50대에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수목병리학과 해충학은 다 암기과목입니다. 화학식이 많은 토양학이 어렵다고 하는데 제겐 외우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죠.”나무의사 시험 응시자 중에는 직장인도 많다. 하지만 주말에 수업 듣고 밤새 공부해 시험을 보기에 합격률은 높지 않다. 1차, 2차 시험 합격률이 15~20%에 불과하다. 오 씨는 “다행히 실직한 저는 온종일 공부할 수 있어 직장인보다 유리했다”고 했다. 그는 2022년 합격했다.합격 후 국가유산수리(식물보호) 전문병원인 서울 강동구의 한 나무병원에 의사로 취직했다. 초봉은 3900만원이었다.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강원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삼척 궁촌리 음나무 등 전국을 돌며 천연기념물 노거수(老巨樹)를 모니터링하고 치료했다.“반계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1300살이 넘어요. 노거수여서 바람에 약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쓰러지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 긴급 출동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수술을 해주죠. 필요하면 영양제도 놔줍니다.”그는 천연기념물 나무를 진단할 때 사진가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한다.“사진가는 구도, 대칭, 비대칭 같은 구조적인 면을 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수관이 한쪽으로 편중돼 있으면 그쪽으로 쓰러질 확률이 높아요. 나뭇가지가 프랙탈 이론처럼 자연스럽게 뻗어 나가는 패턴을 벗어나면 위험 신호입니다.”● 나무의사 초봉 3000만 원대현재 산림청 공공사업이나 정부 발주 프로젝트의 나무의사 하루 노임 단가는 32만6359원, 수목치료기술자는 23만8447원으로 고시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보면 나무병원 신입 의사 초봉은 연 3000만~3500만 원 선, 3~5년 차는 연 4500만~5500만 원 선이다. 개업의나 대형 프로젝트를 전담하면 연 8000만 원 이상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나무의사 자격 취득자가 선호하는 취업 분야는 공무원(지방자치단체 녹지직 등)이 27.2%로 가장 높다. 이어 수목원 등 공공기관 25.6%. 합산하면 52.8%가 공공부문을 선호한다. 나무의사 자격이 안정적 공직 진출 관문으로도 기능한다는 의미다.오 씨는 지난해 8월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나무병원을 열었다. 나무병원을 만들려면 나무의사 2명 이상이거나, 나무의사 1명과 수목치료기술자 1명 이상을 갖춰야 한다. 병원 개업은 늦깎이 인연으로 만난 반려자 최가연 씨(51) 도움이 컸다. 최 씨도 영국 런던에서 플로리스트를 공부한 뒤 플랜테리어(식물 이용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해 왔으나 코로나19 이후 사업을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때였다. 나무병원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오 씨 제안에 최 씨는 선뜻 수목치료기술자 공부를 시작했다. 수목치료기술자는 ‘간호사’ 역할이다. 이제는 늘 함께 현장에 나가 나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파트너가 됐다.“나무병원은 입찰을 통해 생활권 수목과 보호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민간 건물(아파트) 조경 수목을 관리해요. 60대 이후에도 취업률이 높은 것은 전문 지식과 함께 평생 쌓은 인맥 관리 노하우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전국 971개 나무병원 연간수익은 1554억 원 규모. 개별 병원 연평균 매출은 약 1억4700만 원이다. 각 나무병원에는 평균 2명 이상의 나무의사나 수목치료기술자가 있다. 나무의사 자격 취득자 1737명 중 많은 이가 현장에서 일한다는 증거다.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에 가장 많은 34~35%가 있다. 잇단 신도시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경과 가로수 유지 보수 수요가 전국 1위 지역이어서다. 서울은 10~11%로 2위다.“가로수는 도시의 유일한 탄소 흡수원입니다. 잘못된 관리 방식으로 전국에서 매일 44그루의 가로수가 죽어 갑니다. 줄기 가운데를 싹둑 자르는 이른바 ‘닭발 전정’도 횡행합니다. 그러면 병균과 미생물이 침입해 나무 안쪽부터 썩어 들어가죠. 네모난 보도블록에 맞춰 뿌리를 잘라버리니 바람에 쓰러지는 일도 많습니다.”그는 ‘프로젝트 숨:표’라는 사물인터넷(IoT) 통합 수목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나무 옆에 설치한 ‘숨:표’ 센서가 24시간 토양 수분, 온도, 기울기 등을 모니터링한다.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병해충 감염을 일찍 감지하고, 쓰러질 확률을 예측한다. 또한 3차원(3D) 디지털 트윈 기술로 나무가 흡수하는 탄소량을 측정해 국제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오 씨는 나무의사를 하면서 사진 작업도 계속하겠다고 했다. 1년 동안 천연기념물 나무 한 그루를 계속 촬영해서 한 컷으로 남기는 작업이다.“봄에 새싹이 나오고, 여름에 풍성해졌다가, 가을에 낙엽이 지고, 겨울에 앙상해지는 나무의 1년간 모습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시간이란 무엇인지, 나무와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작업이지요.”글·사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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