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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배로 1시간 거리(약 40km). 인도네시아 북부 리아우 제도에 있는 빈탄섬은 인도네시아 1만8000여개의 섬 중에서 ‘숨겨진 보석’으로 불린다. 한때 신혼여행객들을 위한 허니문 휴양지로 인기를 끌었던 빈탄섬은 천혜의 맹그로브숲과 사파리, 소금사막 등 원시적 자연과 함께 21개의 고급 호텔과 워터파크, 골프장을 두루 갖춘 ‘빈탄 리조트(Bintan Resort)’와 다채로운 매력을 갖춘 섬 여행지로 떠올랐다. ● 시원한 해변 맹그로브숲 투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타나메라(Tanah Merah) 페리 터미널. 빈탄행 쾌속선에 올라타니 싱가포르 항구의 전경이 보인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말라카 해협에 자리잡고 있는 항구답게 수많은 화물선들이 바다 위에 정박해 있다. 배는 1시간 만에 인도네시아 빈탄섬에 도착했다. 1996년부터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간의 협력으로 반얀트리와 클럽메드, 니르바나, 빈탄 라군 등 리조트가 개발됐던 천혜의 휴양지다. 한국에서 가려면 6시간의 비행시간이 걸리지만, 싱가포르인들에겐 주말에 훌쩍 떠날 수 있는 파라다이스같은 섬이다. 빈탄섬의 해변과 강가에는 인도네시아 전통 수상가옥인 ‘켈롱(Kellong)’이 떠 있다. 어부 가족들이 살고 있기도 하고, 해산물 레스토랑이나 바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0월 빈탄 라고이 해변에 들어선 ‘호텔 인디고 빈탄 라고이 비치(Hotel Indigo Bintan Lagoi Beach)’는 수상가옥 켈롱을 모티브로 지어졌다.아침에 일어나 썰물로 물이 빠진 라고이 해변을 달렸다. 수정처럼 빛나는 모래해변에 푸른 하늘이 비쳐 데칼코마니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해변의 모든 리조트가 그야말로 물 위에 떠 있는 켈롱과 같은 느낌이다. 빈탄은 리조트 안에만 머물기 아쉽다. 인도네시아 뿐 아니라 인근의 말레시아, 식민지배를 했던 네덜란드, 이웃의 싱가포르까지 다양한 문화가 섞인 섬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샌듄 블루 레이크(Blue Lake)’는 남미 볼리비아에 있는 소금사막을 연상케한다고 해서 ‘빈탄의 우유니’로 불리는 곳이다.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영화 ‘듄’에 나오는 것처럼 모래바람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사막은 아니지만, 외계의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낯선 풍경이 인상적이다. 소금사막은 때로는 경주의 고분군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울퉁불퉁이어지기도 하고, 불꽃처럼 뾰족뾰족 세워져 있기도 한다. 바람이 부는 모래 언덕 위에 하늘하늘 펼쳐지는 흰색 스카프만 하고 서 있으면 누구나 모델이 된다. 압권은 모래 언덕 사이사이에 형성된 푸른빛 호수다. 호수의 물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오묘한 터키쉬 블루 색감을 낸다. 터키석을 갈아넣은 듯 하늘빛과 옥빛의 중간쯤 돼 보이는 물 색깔에 넋을 잃게 된다. 호수 건너편 모래언덕 위의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왕자가 살았던 소행성 B612를 닮은 모습이다. ●시원한 맹그로브 숲 탐험 인도네시아는 해안가에 맹그로브 숲이 잘 발달돼 있다. 빈탄 리조트 내에도 보트를 타고 맹그로브 숲 속 깊숙한 곳까지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승선한 보트는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강 위로 달려간다. 양쪽으로는 키가 30m가 훌쩍 넘는 맹그로브 숲이 우거져 있다. 보트는 큰 강변을 달리다가 좁은 숲 속 수로로 들어간다. 5~6m에 불과한 수로 위로 맹그로브 나뭇가지들이 낮게 드리워져 통과할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앞서 가던 보트에서 가이드가 배를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나무 위를 가리킨다. 가지 위에 왕도마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맹그로브 왕도마뱀은 크기가 1.5m까지 자라며, 헤엄도 치고, 나무에 기어오를 수도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니 또다른 나무엔 검은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선명한 맹그로브 스네이크(뱀)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해가 진 후 어둑어둑할 때 진행하는 야간투어를 이용하면 매혹적인 빛을 발산하는 반딧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짠 바닷물에서도 잘 자라는 맹그로브는 나무뿌리가 거꾸로 치솟아 물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나온 뿌리라 ‘호흡근(根)’이라고 불린다. 뿌리 틈 사이는 물고기와 새우, 가재, 게, 조개 등 각종 해양생물들에게 중요한 은신처와 서식지가 된다. 강변 숲 속에는 예전에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었던 가마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참나무로 숯을 굽는다면, 열대 해변에서는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서 숯을 만들어 숲이 파괴돼왔다고 한다. 맹그로브는 탄수흡수 능력이 탁월해 ‘탄소 스펀지’로 불린다. 또한 산호초처럼 파도에서 토양의 침식을 막는 역할을 한다.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이 피해가 컸던 이유가 리조트 개발로 맹그로브 숲을 다 파괴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투어를 마친 후 맹그로브 숲 가이드와 인사를 하던 중 그녀의 노란색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갔다. 맹그로브 나무의 초록색 나뭇잎 아래 뿌리가 높게 솟아 올라 있었다. 물결이 찰랑찰랑하는 뿌리 사이에는 붉은색 게 두마리가 놀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빈탄 리조트 맹그로브숲 인근에는 ‘사파리 라고이(Safari Lagoi)’가 있다. 밀림지대에서 구조된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다가 국립공원으로 돌려보내는 보호시설이다. 붉은색 털이 아름다운 덩치 큰 오랑우탄, 루왁 커피를 만들어내는 사향고향이 등 진귀한 동물을 만날 수 있다. 아기 원숭이를 품에 안고 우유를 주는 등 동물과 친근하게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다. ● 타이타닉호를 닮은 호텔1912년 4월10일 타이타닉호는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첫 항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4월14일 오후 11시40분 빙산과 충돌했고, 2시간 40분 만에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14년 운행을 시작한 배가 있었다. 미국의 선박이었던 둘로스(Doulos)호였다. 타이타닉호와 동일한 증기엔진을 사용했고, 크기는 작지만 매우 유사한 내부구조를 가진 배였다. 둘로스호는 1914년부터 2009년 12월 퇴역할 때까지 가장 오랜 시간 운항한 원양 여객선으로 기네스북 공식인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배는 2010년 인도의 한 조선소에서 조각조각 잘려 고철로 팔릴 위기에 처했다. 당시 중국계 싱가포르인 기업가인 에릭 쏘가 이 배를 사들였다. 그는 배를 개조해 호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세심한 복원과 개조를 거쳐 2019년 고급 선박호텔인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Doulos Phos The Ship Hotel)로 재탄생시켰다. 이 배는 현재 빈탄섬의 페리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앵커(닻) 모양의 섬 위에 올려져 있다. 대서양에 수장된 타이타닉호는 실물로 볼 수가 없지만, 유사한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는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에 묵으면 마치 타이타닉에 투숙하는 듯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총 104개의 객실은 현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럭셔리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증기기관으로 운행되던 엔진실도 들어가보는 투어도 진행된다. 호텔 갑판에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주인공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뱃머리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압둘 와합 빈탄리조트그룹(BRC)의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빈탄섬 여행은 도시인 싱가포르와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섬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두가지 여행 경험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빈탄섬 리조트의 명물은 길이 1.6km에 이르는 트레저 베이(Treasure Bay)다. 동남아시아 최대의 인공으로 만든 (海水) 석호다.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라군이 조성돼 있는 트레저 베이에서는 수영 뿐 아니라 웨이크보드와 카약 등 다양한 수상 스포츠까지 즐길 수 있다. 트레저베이 주변에 있는 나트라 빈탄(Natra Bintan) 리조트에는 100여개의 독채 글램핑 숙소가 있어 크리스탈 라군을 바라보며 캠핑하는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다. 빈탄(인도네시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싱가포르에서 배로 1시간 거리(약 40km). 인도네시아 북부 리아우 제도에 있는 빈탄섬은 인도네시아 1만8000여개의 섬 중에서 ‘숨겨진 보석’으로 불린다. 한때 신혼여행객들을 위한 허니문 휴양지로 인기를 끌었던 빈탄섬은 천혜의 맹그로브숲과 사파리, 소금사막 등 원시적 자연과 함께 21개의 고급 호텔과 워터파크, 골프장을 두루 갖춘 ‘빈탄 리조트(Bintan Resort)’와 다채로운 매력을 갖춘 섬 여행지로 떠올랐다. ● 시원한 해변 맹그로브숲 투어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타나메라(Tanah Merah) 페리 터미널. 빈탄행 쾌속선에 올라타니 싱가포르 항구의 전경이 보인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말라카 해협에 자리 잡고 있는 항구답게 수많은 화물선이 바다 위에 정박해 있다. 배는 1시간 만에 인도네시아 빈탄섬에 도착했다. 1996년부터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간의 협력으로 반얀트리와 클럽메드, 니르바나, 빈탄 라군 등 리조트가 개발됐던 천혜의 휴양지다. 한국에서 가려면 비행에만 6시간이 걸리지만, 싱가포르인들에겐 주말에 훌쩍 떠날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섬이다. 빈탄섬의 해변과 강가에는 인도네시아 전통 수상가옥인 ‘켈롱(Kellong)’이 떠 있다. 어부 가족들이 살고 있기도 하고, 해산물 레스토랑이나 바로 이용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10월 빈탄 라고이 해변에 들어선 ‘호텔 인디고 빈탄 라고이 비치(Hotel Indigo Bintan Lagoi Beach)’는 수상가옥 켈롱을 모티브로 지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썰물로 물이 빠진 라고이 해변을 달렸다. 수정처럼 빛나는 모래 해변에 푸른 하늘이 비쳐 데칼코마니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해변의 모든 리조트가 그야말로 물 위에 떠 있는 켈롱과 같은 느낌이다. 빈탄섬 리조트의 명물은 길이 1.6km에 이르는 트레저 베이(Treasure Bay)다. 동남아시아 최대의 인공으로 만든 (海水) 석호다.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라군이 조성돼 있는 트레저 베이에서는 수영뿐 아니라 웨이크보드와 카약 등 다양한 수상 스포츠까지 즐길 수 있다. 트레저베이 주변에 있는 나트라 빈탄(Natra Bintan) 리조트에는 100여 개의 독채 글램핑 숙소가 있어 크리스탈 라군을 바라보며 캠핑하는 이색 체험을 할 수 있다. 빈탄은 리조트 안에만 머물기 아쉽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인근의 말레이시아, 식민 지배를 했던 네덜란드, 이웃의 싱가포르까지 다양한 문화가 섞인 섬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샌듄 블루 레이크(Blue Lake)’는 남미 볼리비아에 있는 소금사막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빈탄의 우유니’로 불리는 곳이다.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영화 ‘듄’에 나오는 것처럼 모래바람이 끊임없이 불어대는 사막은 아니지만, 외계의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낯선 풍경이 인상적이다. 소금사막은 때로는 경주의 고분군처럼 부드러운 곡선으로 울퉁불퉁 이어지기도 하고, 불꽃처럼 뾰족뾰족 세워져 있기도 한다. 바람이 부는 모래 언덕 위에 하늘하늘 펼쳐지는 흰색 스카프만 하고 서 있으면 누구나 모델이 된다. 압권은 모래 언덕 사이사이에 형성된 푸른빛 호수다. 호수의 물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오묘한 터키쉬 블루 색감을 낸다. 터키석을 갈아 넣은 듯 하늘빛과 옥빛의 중간쯤 돼 보이는 물 색깔에 넋을 잃게 된다. 호수 건너편 모래언덕 위의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왕자가 살았던 소행성 B612를 닮은 모습이다. ● 시원한 맹그로브 숲 탐험인도네시아는 해안가에 맹그로브 숲이 잘 발달해 있다. 빈탄 리조트 내에도 보트를 타고 맹그로브 숲 속 깊숙한 곳까지 돌아보는 투어가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승선한 보트는 시원하게 바람을 가르며 강 위로 달려간다. 양쪽으로는 키가 30m가 훌쩍 넘는 맹그로브 숲이 우거져 있다. 보트는 큰 강변을 달리다가 좁은 숲속 수로로 들어간다. 5∼6m에 불과한 수로 위로 맹그로브 나뭇가지들이 낮게 드리워져 통과할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앞서 가던 보트에서 가이드가 배를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나무 위를 가리킨다. 가지 위에 왕도마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맹그로브 왕도마뱀은 크기가 1.5m까지 자라며, 헤엄도 치고, 나무에 기어오를 수도 있다고 한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니 또 다른 나무엔 검은색과 노란색 줄무늬가 선명한 맹그로브 스네이크(뱀)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해가 진 후 어둑어둑할 때 진행하는 야간투어를 이용하면 매혹적인 빛을 발산하는 반딧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짠 바닷물에서도 잘 자라는 맹그로브는 나무뿌리가 거꾸로 치솟아 물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나온 뿌리라 ‘호흡근(根)’이라고 불린다. 뿌리 틈 사이는 물고기와 새우, 가재, 게, 조개 등 각종 해양생물에게 중요한 은신처와 서식지가 된다. 강변 숲속에는 예전에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었던 가마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참나무로 숯을 굽는다면, 열대 해변에서는 맹그로브 나무를 베어서 숯을 만들어 숲이 파괴돼 왔다고 한다. 맹그로브는 탄수 흡수 능력이 탁월해 ‘탄소 스펀지’로 불린다. 또한 산호초처럼 파도에서 토양의 침식을 막는 역할을 한다.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이 피해가 컸던 이유가 리조트 개발로 맹그로브 숲을 다 파괴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투어를 마친 후 맹그로브 숲 가이드와 인사를 하던 중 그녀의 노란색 티셔츠에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갔다. 맹그로브 나무의 초록색 나뭇잎 아래 뿌리가 높게 솟아올라 있었다. 물결이 찰랑찰랑하는 뿌리 사이에는 붉은색 게 두 마리가 놀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빈탄 리조트 맹그로브숲 인근에는 ‘사파리 라고이(Safari Lagoi)’가 있다. 밀림 지대에서 구조된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다가 국립공원으로 돌려보내는 보호시설이다. 붉은색 털이 아름다운 덩치 큰 오랑우탄, 루왁 커피를 만들어내는 사향고양이 등 진귀한 동물을 만날 수 있다. 아기 원숭이를 품에 안고 우유를 주는 등 동물과 친근하게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다. ● 타이타닉호를 닮은 호텔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호는 영국의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는 첫 항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 빙산과 충돌했고, 2시간 40분 만에 완전히 침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14년 운행을 시작한 배가 있었다. 미국의 선박이었던 둘로스호였다. 타이타닉호와 동일한 증기엔진을 사용했고, 크기는 작지만 매우 유사한 내부구조를 가진 배였다. 둘로스호는 1914년부터 2009년 12월 퇴역할 때까지 가장 오랜 시간 운항한 원양 여객선으로 기네스북 공식 인증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배는 2010년 인도의 한 조선소에서 조각조각 잘려 고철로 팔릴 위기에 처했다. 당시 중국계 싱가포르인 기업가인 에릭 쏘가 이 배를 사들였다. 그는 배를 개조해 호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세심한 복원과 개조를 거쳐 2019년 고급 선박 호텔인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Doulos Phos The Ship Hotel)’로 재탄생시켰다. 이 배는 현재 빈탄섬의 페리 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앵커(닻) 모양의 섬 위에 올려져 있다. 대서양에 수장된 타이타닉호는 실물로 볼 수가 없지만, 유사한 내부 구조로 되어 있는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에 묵으면 마치 타이타닉에 투숙하는 듯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총 104개의 객실은 현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럭셔리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증기기관으로 운행되던 엔진실도 들어가 보는 투어도 진행된다. 호텔 갑판에는 영화 ‘타이타닉’에서 두 주인공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뱃머리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압둘 와합 빈탄리조트그룹(BRC)의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빈탄섬 여행은 도시인 싱가포르와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섬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두 가지 여행 경험이 매력”이라고 말했다.글·사진 빈탄(인도네시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도네시아 북부 리아우(Riau)제도에 있는 빈탄섬은 인도네시아 1만8000여개의 섬 중에서 ‘숨겨진 보석’으로 불린다. 싱가포르에서 배로 1시간 거리(약 40km)에 있는 빈탄섬은 북부 해변에 21개의 호텔과 리조트, 풀빌라, 골프장 등 럭셔리 시설이 몰려 있는 ‘빈탄 국제통합관광 리조트(Bintan integrated Beach Resort)’가 있다. 13개의 리조트와 4개의 골프장, 워터파크, 사파리까지 다양한 시설이 어우러진 관광지다. 빈탄섬은 1990년대부터 반얀트리와 클럽메드, 니르바나, 빈탄 라군 등 해변가에 수많은 리조트가 세워지면서 휴양지로 본격 개발됐다. 그 중에서 동남아시아 최고의 인공해수 석호인 트레저 베이 주변에 있는 나트라 빈탄(Natra Bintan, A Tribute Portfolio Resort)은 빈탄섬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리조트다. 트레저베이는 총 면적이 6.2헥타르, 길이 1.6km, 최대 수심 6m의 인공 물놀이 시설이다. 물은 바닷물을 끌어와 짠 해수다. 크리스탈 라군이 조성된 트레저 베이에서 웨이크보드와 카약 등 다양한 수상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나트라빈탄은 트레저베이의 크리스탈 라군을 조망하는 약 100개의 독채 글램핑 텐트 숙소에서 잘 수 있다. 텐트에는 자체 정원과 야외 테라스를 갖추고 있으며 야외 월풀 욕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투숙객은 호텔에서 진행하는 맹그로브 투어, 수상 스포츠, 다이빙, 카누, 하이킹 등 다양한 액티비티도 즐길 수 있다. 지난해 10월 빈탄 라고이 해변에 새롭게 지어진 ‘호텔 인디고 빈탄 라고이 비치(Hotel Indigo Bintan Lagoi Beach)’는 인도네시아 전통 수상가옥인 ‘켈롱(Kellong)’을 모티브로 지어졌다. 호텔 입구와 로비에 서면 건물 주변에 연못이 있어 목조구조로 지어진 호텔이 그야말로 물 위에 떠 있는 켈롱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인디고 호텔의 120개의 객실과 스위트룸은 모두 바다를 전망하고 있다. 객실내에는 인도네시아 전통 낚시 그물에서 영감을 받은 소파등 리아우 섬의 전통과 문화에서 차용해온 소품들이 많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야외 발코니에 놓인 월풀 욕조. 시원하게 뚫린 남중국해의 풍경을 바라보며 야외 욕조에 몸을 담그는 기분은 남다르다. 해변 레스토랑과 바인 슈거비츠(SugarBeats)에서는 잔잔한 음악도 연주된다. 수영장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며, 해산물, 열대 칵테일, 풍미 있는 사테 요리를 즐길 수도 있다. 스틱스 사테 바(Stix Satay Bar)는 동남아시아 미식을 즐길 수 있으며 꼬치(사태)와 직화구이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그리고 말레이시아 요리를 한곳에서 골고루 맛볼 수 있다.빈탄섬의 페리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앵커(닻) 모양의 섬 위에는 선박호텔인 ‘둘로스 포스 더 쉽 호텔(Doulos Phos The Ship Hotel)이 있다. 타이타닉호와 비슷한 시기에 운항을 시작한 선박을 개조한 이 호텔에 투숙하는 듯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총 104개의 객실은 20세기초 원본 선박의 내부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럭셔리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인피니티풀장과 피아노 라운지에서는 가벼운 칵테일과 식사를 즐길 수 있으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요리 위주의 파인 다이닝도 제공된다. 빈탄(인도네시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천과 두바이를 비롯한 전 세계를 연결해 온 에미레이트 항공이 한국 취항 20주년을 맞았다. 2005년 3월 7일 한국에 첫 취항한 에미레이트 항공은 현재까지 인천과 두바이 간 1만4630편 이상의 항공편을 운항하며 500만 명 이상의 승객을 수송했다. 두바이를 경유하는 인천 출발 승객들에게 6대륙 110여 개 도시를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제공해왔다. 인천은 에미레이트 항공의 동아시아 지역 내 핵심 관문으로, 두바이를 통해 다양한 국가로의 연결성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발 승객들이 두바이를 경유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는 바르셀로나, 카이로, 로마, 프라하, 이스탄불, 리스본, 취리히, 베네치아, 상파울루, 담맘, 나이로비, 말레 등이었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2009년 12월 14일 인천 노선에 A380 기종을 도입했다. 이는 에미레이트 항공의 노선 중 북동 아시아 지역 최초로 A380 을 운항한 사례로 기록됐다. 이후 팬데믹으로 인해 일시 중단되었던 A380 운항은 2022년 6월 1일 재개됐다. 지난해 2월 19일부터는 주 3회 항공편을 추가해 주간 운항 횟수를 10회로 늘렸으며, 현재 인천-두바이 노선에는 편도 기준 주당 총 4603석이 공급되고 있다. 또한 2025년 4월 14일부터는 인천-두바이 노선에 새롭게 개조된 보잉 777-300ER 기종을 투입했다. 이 항공기는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포함해 총 4개 클래스 좌석으로 구성됐으며, 비즈니스 클래스는 1-2-1 배열로 모든 좌석에서 직접 통로 접근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프라이버시와 안락함을 한층 강화했다. 인천은 이 개조된 보잉 777을 동아시아 내 두 번째 도입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현재 한국인 조종사 12명과 객실 승무원 531명이 에미레이트 항공에서 근무하고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화물 운송에서도 큰 역할을 해왔다. 에미레이트 스카이카고는 지난 2년간 한국에서 1만2690톤 이상의 화물을 수송해 국제무역과 산업분야 발전에 기여해왔다. 에미레이트 항공 장준모 한국 지사장은 “한국발 여행객들을 전 세계 6대륙의 주요 도시와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자부심 중 하나”라며 “에미레이트 항공은 여객 수송에 그치지 않고, 지역 무역 지원, 비즈니스 촉진, 고용 창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삶은 계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열차여행을 하다가 홍익회 카트를 끌고 가던 아저씨가 “삶은 계란~”하고 외치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삶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둥글둥글한 달걀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계란은 부활의 상징으로 무한한 가능성과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다. 또한 단단해보이지만 함부로 굴리다가는 깨져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생을 닮았다. 이렇게 2004년 4월 KTX고속철도가 다니기 전 열차안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기타를 치고 노래하고, 홍익회 카트에서 맥주에 오징어 땅콩 안주를 사서 먹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느린 기차 안의 풍경. 무궁화호를 타고 장항선을 달리는 ‘충남 레트로 낭만열차’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났다. ●충남으로 떠나는 ‘레트로 낭만열차’ 서울역 오전 7시. 103년 역사를 지닌 장항선으로 떠나는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했다. 열차가 서울을 벗어날 즈음 통기타를 맨 가수가 등장했다. 조용필의 ‘여행의 떠나요’, 김수철의 ‘젊은 그대’ 노래를 부르자 열차 안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교련복을 입은 스태프들이 홍익회 카트를 밀고 다니며 삶은 달걀과 바나나맛 우유, 공주알밤 등 충남의 특산품을 간식으로 나눠주고 뽑기게임을 통해 선물을 나눠준다.알프스 소녀 하이디 복장을 한 가수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요를레히디~”하며 요들송을 부른다. 열차칸 풍경은 삽시간에 스위스 산골마을을 지나가는 알프스 산악열차로 바뀐다.눈깜짝할 사이 열차는 목적지인 예산역에 도착했다.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출발이 절반을 차지한다. ‘충남으로 떠나는 레트로 낭만열차’ 승객들은 보령, 아산, 서산, 서천, 예산, 태안, 홍성 등 충남의 7개 대표적인 지역명소 중에 선택해 여행을 시작했다. 예산 여행의 출발점은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수덕사(修德寺). 우리나라 7대총림(叢林) 중 덕숭총림(德崇叢林)이자 조계종 제7 교구본사인 수덕사는 충남 일대에 말사 약 50여 개를 두고 있는 중요한 사찰이다. 또한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은 국내 목조건물 중 건축시기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배흘림기둥에 주심포와 맞배지붕이 얹혀져 있는 모습은 힘찬기상과 균형잡힌 정제된 아름다움이 빛나는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경허와 만공 혜암 스님 등 근현대 불교사에 중요한 선지식들이 도도한 선풍을 이어온 사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수덕사는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대중가요로 더 알려져 있다. 또한 일엽스님과 화가 나혜석, 고암 이응노 화백 등 근대의 유명한 신여성과 예술인의 인연이 얽히고 설킨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수덕사 대웅전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수덕여관이다. 일주문 옆에 있는 수덕여관은 조선의 첫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이 머물렀다. 수덕여관 주변에는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 사건의 옥고를 치른 후 이곳에 머물면서 손으로 직접 새긴 문자 추상 암각화가 남아 있다. 수덕여관 옆에 있는 ‘선(禪)미술관’에서는 이응노 화백이 수덕여관에서 그렸던 수덕사 풍경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저수지인 예당호(禮唐湖)는 최근 떠오른 예산군의 대표관광지. 2019년 개통된 402m 길이의 예당호 출렁다리와 분수 덕분이다. 하늘로 곧게 솟은 64m 주탑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펼쳐진 케이블이 거대한 황새가 길고 흰 날개를 펼친 듯한 풍경이다.예당호 주변에는 황새알 모양의 조형물도 있다. 이것은 황새가 예산을 상징하는 새이기 때문. 삽교천, 무한천을 끼고 넓은 농경지와 범람원 습지가 발달돼 있는 예산은 최적의 황새 서식지로 평가받고 있다. 인근에 있는 예산황새공원에는 황새문화관, 생태습지, 사육장까지 갖추고 있어 황새를 보호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산에 왔으니 사과 맛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예산에서 사과농사가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부터. 지금도 수령 100년이 된 예산 황토사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고덕면 은성농원에서는 ‘추사(秋史)’라는 이름의 사과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 있다. 예산 출신의 조선 후기의 역사학자이자 서예가인 김정희(1786~1856)의 호를 딴 이름의 술이다.캐나다에서 양조기술을 배운 정제민 대표는 100년 사과인 예산 황토사과로 시드르(사과주)를 만들고, 증류해 프렌치 오크통에 숙성시켜 브랜디(칼바도스)를 만든다. 양조장 투어를 하면 식객 허영만의 사인이 있는 오크통을 볼 수 있다. 애플파이를 직접 만들어 사과주와 함께 시음하고, 9~11월에는 사과 따기 수확체험과 음악회, 사과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유럽식 양조장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연간 3만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다. ● 해미읍성의 교황빵과 수선화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 앞에는 ‘교황빵’을 파는 가게가 있다. 최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해미읍성 성지를 방문했을 때 드셨던 간식으로 선정됐던 빵이다. ‘키스링(Kiss Ring)‘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동그란 이 빵은 서산육쪽마늘로 만드는 마늘빵이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한국을 찾아 서산 해미읍성과 당진시 솔뫼성지 등을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했던 이유는 천주교 박해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1866∼1872년 천주교 박해 때 무려 1000명이 넘는 충청도 지역의 신자가 해미읍성으로 끌려와 갖은 고문 끝에 순교했다. 교황빵을 먹고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해미읍성으로 향했다. 해미읍성의 정문은 진남문(鎭南門)이다. 이순신 장군도 10개월간 근무를 했던 해미읍성은 남쪽의 왜구의 도발을 꺾고 진압하겠다는 의지가 현판에 담겨 있다. 진남문을 통과하자 오른쪽으로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오른 300살 넘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로 불렸던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 천주교 신자들이 머리채가 매달린 채 고문당하고 죽어갔다고 한다. 회화 나무 앞에는 죄수들이 갇혀 있던 옥사와 형틀도 복원돼 있다.해미읍성의 옥사는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비오)가 순교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도 1971년 신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란 죄명으로 해미읍성으로 유배를 왔다. 갖은 고문에도 굴하지 않던 신도들은 해미읍성 서문 밖의 자리개돌에서 잔인한 태질을 당하며 죽어갔다. 그래서 박해시대의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시신이 오가던 해미읍성의 서문을 ’천국으로 가는 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교황청은 무명 순교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21년 해미순교성지를 국제성지로 선포했다.다음 행선지는 서산의 봄풍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운산면의 유기방가옥. 유기방은 충남민속문화유산인 고택에서 거주하며 관리를 하고 계신 어르신의 이름이다. 유기방 어르신은 가옥 뒤 울창하게 자란 대나무 대신 수선화를 심기 시작해 지금은 2만 평이 넘는 가옥주변의 꽃밭을 관리하고 있다. 수선화는 원래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데, 이 곳에서는 집 뒷편 동산 울창한 솔밭 그늘에서 수선화가 피어난다.소나무 숲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에 초록색 잎과 노란색 꽃이 바다처럼 펼쳐지는 풍경은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운 모습이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 유배시절에 돌담 밑에 피어난 수선화를 좋아했다. 추사는 제주 사람들이 수선화의 가치를 몰라보는 것에 유배당한 자신의 쓸쓸한 처지를 느끼며 시를 쓰기도 했다. 올해 ’충남 방문의 해‘를 맞아 진행되는 ’충남으로 떠나는 레트로 낭만열차‘는 올해 11월까지 모두 8차례 운행한다. 상반기에는 5월 17일, 30일, 6월 14일 등 모두 4차례 운행된다. 충남문화관광재단 이기진 관광사업본부장은 “1960~80년대 기차여행의 감성을 장항선에서 그대로 재현한 충남 레트로낭만열차는 중장년뿐만 아니라 MZ세대들로부터도 큰 인기”라고 말했다. ●맛집=예산 수덕사 가는 길에 있는 덕산면 가야수라간은 격조있는 궁중음식과 제철 나물로 만든 농가음식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100년된 소나무 숲 아래에 있는 밭에서 키운 더덕, 곰취, 표고버섯 등 다양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궁중음식문화재단(이사장 한복려)에서 전수받은 ‘두부선’ ‘월과채’ 등의 궁중음식과 배로 만든 깍두기, 표고 새우찜 등의 농가음식은 충남의 로컬푸드 맛집 평가기관인 ‘미더유’로부터 별 5개를 받기도 했다. 예산, 서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삶은 계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열차여행을 하다가 ‘홍익회’ 카트를 끌고 가던 아저씨가 외치는 “삶은 계란∼”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삶이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둥글둥글한 달걀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계란은 부활의 상징이자 무한한 가능성과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다. 또한 단단해 보이지만 함부로 굴리다가는 깨져 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생을 닮았다. 2004년 4월 KTX 고속철도가 다니기 전 열차 안 풍경은 사뭇 달랐다. 기타 치고 노래하며, 카트에서 맥주에 오징어, 땅콩 안주를 사서 먹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느린 기차 안 풍경. 무궁화호를 타고 장항선을 달리는 ‘충남으로 떠나는 레트로 낭만열차’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났다.● 충남으로 떠나는 ‘낭만열차’ 서울역 오전 7시. 103년 역사를 지닌 장항선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했다. 열차가 서울을 벗어날 즈음 통기타를 맨 가수가 등장했다.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부르자 열차 안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교련복을 입은 스태프들이 홍익회 카트를 밀고 다니며 삶은 달걀과 바나나맛 우유, 공주알밤 같은 충남 특산품을 간식으로 나눠 주고 뽑기게임을 통해 선물도 제공한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 복장을 한 가수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요를레히디∼” 요들송을 부른다. 열차칸 풍경은 삽시간에 스위스 산골마을을 지나가는 알프스 산악열차로 바뀐다. 눈 깜짝 할 사이 열차는 목적지인 예산역에 도착했다.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출발이 절반을 차지한다. ‘충남으로 떠나는 레트로 낭만열차’ 승객들은 보령, 아산, 서산, 서천, 예산, 태안, 홍성 등 대표적인 충남 지역 7개 명소 중에 선택해 여행을 시작했다. 예산 여행의 출발점은 1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수덕사(修德寺). 우리나라 7대 총림(叢林) 중 덕숭총림(德崇叢林)이자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는 충남 일대에 50여 말사를 둔, 중요한 사찰이다.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은 국내 목조건물 중 건축 시기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기도 하다. 배흘림기둥에 주심포와 맞배지붕이 얹힌 모습은 힘찬기상과 균형 잡히고 정제된 아름다움이 빛나는 고려시대 목조 건축의 전형을 보여 준다. 경허와 만공, 혜암 스님 같은 근현대 불교사에 중요한 선지식(善知識)들이 도도한 선풍을 이어온 사찰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게 수덕사는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대중가요로 더 알려져 있다. 또한 일엽스님과 화가 나혜석, 고암 이응노 화백 등 유명한 신여성과 예술인의 인연이 얽히고 설킨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수덕사 대웅전만큼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수덕여관이다.수덕사 일주문 옆에 있는 수덕여관에는 한국의 첫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이 머물렀다. 수덕여관 주변에는 이응노 화백이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머물면서 손으로 직접 새긴 문자 추상 암각화가 남아 있다. 수덕여관 옆 ‘선(禪)미술관’에서는 이 화백이 수덕여관에서 그렸던 수덕사 풍경화가 전시되고 있다. 국내 최대 저수지 예당호(禮唐湖)는 최근 떠오른 예산군의 대표 관광지. 2019년 개통된 길이 402m 출렁다리와 분수 덕분이다. 출렁다리의 하늘로 곧게 솟은 64m 주탑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펼쳐진 케이블은 거대한 황새가 길고 흰 날개를 펼친 듯한 풍경이다. 예당호 주변에는 황새 알 모양 조형물도 있다. 황새가 예산을 상징하는 새이기 때문. 삽교천과 무한천을 끼고 넓은 농경지와 범람원 습지가 발달돼 있는 예산은 최적의 황새 서식지로 평가받고 있다. 인근에 있는 예산황새공원에는 황새문화관, 생태 습지, 사육장까지 갖춰 황새를 보호하고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예산에 왔으니 사과 맛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예산에서 사과 농사가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부터. 지금도 수령 100년 된 예산 황토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고덕면 은성농원에서는 ‘추사(秋史)’라는 이름의 사과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이 있다. 조선 후기 예산 출신 역사학자이자 서예가 김정희(1786∼1856)의 호를 딴 술이다. 캐나다에서 양조기술을 배운 정제민 대표는 황토사과로 시드르(사과주)를 만들고 증류해 프렌치 오크통에 숙성시켜 브랜디(칼바도스)를 만든다. 양조장 투어를 하면 ‘식객’ 화백 허영만 사인이 있는 오크통을 볼 수 있다. 애플파이를 직접 만들어 사과주와 함께 먹고, 9∼11월에는 사과 따기 체험과 음악회, 사과축제가 열린다. 유럽식 양조장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연간 3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오는 명소다. ● 해미읍성 교황빵과 수선화 충남 서산 해미읍성 앞에는 ‘교황빵’을 파는 가게가 있다. 최근 선종(善終)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해미읍성 성지를 방문했을 때 드신 간식으로 선정된 빵이다. ‘키스링(Kiss Ring)’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동그란 빵은 서산육쪽마늘로 만드는 마늘빵이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한국을 찾아 해미읍성과 당진시 솔뫼성지 등을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했던 이유는 이곳이 천주교 박해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1866∼1872년 천주교 박해 때 무려 1000명 넘는 충청 지역 신자가 해미읍성으로 끌려와 갖은 고문을 받은 끝에 순교했다. 교황빵을 먹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해미읍성으로 향했다. 해미읍성의 정문은 진남문(鎭南門)이다. 이순신 장군도 10개월간 복무했던 해미읍성은 남쪽 왜구의 도발을 꺾고 진압하겠다는 의지가 현판에 담겨 있다. 진남문을 통과하자 오른쪽으로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오른 300세 넘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로 불렸던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 천주교 신자들이 머리채가 매달린 채 고문당하며 죽어 갔다고 한다. 회화나무 앞에는 죄수들이 갇혀 있던 옥사(獄舍)와 신문을 받고 고문을 당하던 형틀도 복원돼 있다.해미읍성 옥사는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세례명 비오)가 순교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도 1791년 신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란 죄명으로 해미읍성으로 유배를 왔다. 갖은 고문에도 굴하지 않던 신도들은 해미읍성 서문 밖 자리개돌에서 잔인한 태질을 당하며 죽었다. 그래서 박해 시대 신자들은 순교자들 시신이 오가던 해미읍성 서문을 ‘천국으로 가는 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교황청은 무명 순교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2021년 해미 순교 성지를 국제 성지로 선포했다.다음 행선지는 서산 봄 풍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운산면 유기방 가옥. 유기방은 충남민속문화유산 고택에서 거주하며 이 집과 주변을 관리하는 어르신 이름이다. 유기방 씨는 가옥 뒤 울창하게 자라고 있던 대나무 대신 수선화를 심기 시작해 지금은 가옥 주변 66만㎡(약 2만 평) 넘는 꽃밭을 관리하고 있다. 수선화는 원래 물가에서 주로 자라는데, 이 곳에서는 집 뒷편 동산 울창한 솔밭 그늘에서 수선화가 피어난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에 초록색 잎과 노란색 꽃이 바다처럼 펼쳐진 풍경은 이국적이면서도 평화로웠다. 추사 김정희도 제주 유배 시절 돌담 밑에 피어난 수선화를 좋아했다. 추사는 제주 사람들이 수선화의 가치를 몰라보는 것에 유배당한 자신의 쓸쓸한 처지를 빗댄 시를 쓰기도 했다. 올해 ‘충남 방문의 해’를 맞아 ‘충남으로 떠나는 레트로 낭만열차’는 11월까지 모두 8차례 운행한다. 상반기에는 이달 17일과 30일, 6월 14일 등 4차례 운행된다. 충남문화관광재단 이기진 관광사업본부장은 “1960∼80년대 기차 여행 감성을 장항선에서 그대로 재현해 중장년뿐만 아니라 MZ세대에도 큰 인기”라고 말했다.맛집수덕사 가는 길에 있는 덕산면 ‘가야수라간’은 격조 있는 궁중음식과 제철 나물로 만든 농가 음식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100년 된 소나무 숲 밑 밭에서 키운 더덕, 곰취, 표고버섯 같은 다양한 식재료를 활용한다. 궁중음식문화재단(이사장 한복려)에서 이어받은 ‘두부선’ ‘월과채’를 비롯한 궁중음식과 배로 만든 깍두기, 표고 새우찜 같은 농가 음식은 충남 로컬푸드 맛집 평가기관 ‘미더유’로부터 최고점인 별 5개를 받았다.글·사진 예산·서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울릉도 북면에 있는 추산은 울릉도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바위다. 화산이 폭발해 생겨난 바위들이 성인봉과 알봉, 깃대봉으로 이어지며 달려오다가 해안에서 불끈 솟아 오른 것이 추산이다. 추산은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겨서 ‘송곳봉’이라고도 불린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고릴라가 바나나를 먹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봉우리 사이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사이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찍는 것이 울릉도 여행사진 작가들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송곳봉 앞바다에는 바위섬이 있다. ‘공암’으로 불리는 코끼리 바위다. 해안 절벽 위에 우뚝 솟은 고릴라 같은 추산과 해변에 있는 코끼리가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절경을 이룬다. 그래서 추산리 일대는 울릉도에서도 웅장하고 수려한 대자연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경험할 수 있는 힐링 장소로 꼽힌다. 추산마을에는 코오롱 그룹이 만든 럭셔리 숙소인 ‘코스모스 울릉도’ 리조트가 있다. 2017년 ‘빌라 코스모스(VILLA COSMOS)’와 ‘빌라 떼레(VILLA TERRE)’를 개장했다. 200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대표 건축가로 선정된 김찬중 경희대 교수(더시스템랩)의 작품이다. 이곳에 5월1일 새로운 리조트 건물인 ‘빌라 쏘메(VILLA SOMMET)’가 공식 오픈한다. 빌라 쏘메는 울릉도의 대자연이 전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기운을 주제로 고객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가장 큰 특징은 울릉도의 전통 가옥의 특성 중 하나인 ‘너와(나무 널빤지를 지붕에 올린 집)’를 모티프로 차용했다는 점이다. 또한 건축물이 마치 웅장한 송곳산에서부터 리조트가 위치한 기슭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의 일부가 되도록 설계했다. 빌라 쏘메에 투숙하면 울릉도만의 특색과 자연을 더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기획됐다. 리조트 체크인부터 체크아웃까지의 모든 과정에 음양오행의 순환상생 체험을 하게된다. 우선 로비부터 울릉도를 형상화한 수석과 분재가 놓여 있다. 동해바다의 떠오르는 태양과 달빛, 섬을 둘러싸는 안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리셉션에서 도착하면 웰컴 드링크가 나온다. 울릉도의 봄철에 맛볼 수 있는 고로쇠 물이다. 빌라 쏘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동해바다의 코끼리 바위가 바라보이는 절벽 위에 있는 인피니티풀이다. 풀파티를 하기에도 좋고, 인스타그램 인증샷용으로 최고의 명소가 될 전망이다. 인피니티풀을 채우고 있는 물은 울릉도의 용출수다. 나리분지를 비롯해 울릉도 전역에 내리는 엄청난 눈이 지표면으로 스며들었다가 31년의 자연정화를 거쳐 솟아나는 물이다. 울릉도에서는 하루 2만톤이 넘는 용출수가 솟아나와 주민들의 식수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빌라 쏘메에서는 울릉도에서만 나고 자란 식재료와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허브로 차린 조식과 파인다이닝이 나온다. 빌라 쏘메의 객실은 향(香) 설(雪) 운(雲) 순(筍) 등 4가지 타입의 10개 객실이 있다. 빌라 쏘메의 객실에 들어가면 관내복을 입는다. 빌라 쏘매의 고객 관내복과 가방, 면역공방복, 직원용 멀티스태프 유니폼은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의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래코드(RE;CODE)’와 협업해 제작됐다. 내부에는 천연 암석과 명상을 활용한 스톤테라피 공간도 있다. 옷을 갈아입은 뒤에 따뜻한 돌로 된 바닥에 누워 물과 바람, 불, 우주, 숲 등의 영상을 보면서 몸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로비에서는 울릉도 용출수가 놓여 있어 휴식시간에 땀을 식히고, 몸의 기운을 회복할 수 있다. 울릉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30년 ‘남원 춘향제’가 100주년을 맞습니다. 지난해 117만 명이 축제를 관람했는데, 올해는 더욱 노력해서 글로벌 축제로 거듭나겠습니다.” 지난 10일 서울 용산 피스앤파크 컨벤션에서 열린 ‘제95회 춘향제 프레스데이’에서 최경식 남원시장은 “1931년 시작해 올해로 95회를 맞는 남원 춘향제는 대한민국에서 역사가 가장 긴 지역 축제”라고 소개했다. 올해는 ‘춘향의 소리, 세상을 열다’를 슬로건으로 30일 막을 올린다. 전북 남원 광한루원, 요천변 일원에서 열리는 춘향제는 5월6일까지 7일간 계속된다. 이날 남원시는 ‘제95회 남원 춘향제 D-20 미디어 데이&앰배서더 네트워킹’을 열고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이날 행사 진행은 ‘1992년 미스춘향 진’ 출신인 국악인 오정해가 맡았다. 10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국내 최장수 축제인 춘향제를 소개하는 히스토리 영상이 소개됐고, ‘조갑녀 전통춤보존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 정명희 선생의 승무와 오정해씨의 국악 공연이 이어졌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역대 춘향들이 나선 한복 패션쇼가 열렸다. 한복명장 김혜순 디자이너가 마련한 다양한 한복을 미스 춘향들이 입고 런웨이를 걸었다.공연이 끝나고 제95회 춘향제의 달라진 점과 주요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최경식 남원시장이 직접 무대에 올랐다. 가장 달라진 점은 춘향선발대회를 축제 전야제 행사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개막식(5월 1일) 하루 전날인 4월 30일 춘향이를 선발하고 이어지는 축제 프로그램이 참여토록 한다. 기존에는 해외에서 사전 선발한 참가자만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국내 거주 외국인도 참가가 가능하다. 참가 연령은 기존 26세 이하에서 29세 이하로 확대했다. 축제 프로그램은 전부 153개를 준비했다. 남원은 판소리 동편제의 발상지이자 춘향가, 흥부가의 배경지이자 송흥록, 박초월, 강도근 등 수많은 판소리 명창을 배출한 소리의 고장이다.축제 기간 내내 춘향제의 정체성이 가득 담긴 국악과 한국 전통 음악, 각국의 다양한 공연 및 퓨전 국악과 국악클럽 공연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펼쳐진다. 대한민국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악 대전인 춘향국악대전, 댄스대회, 락 페스티벌, 거리 퍼레이드, 한복 패션쇼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공연을 준비했다. 23개 읍면동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대규모 거리 퍼레이드 ‘대동길놀이’는 ‘춘향전’에 나오는 명장면을 각색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남원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백종원 대표와 ‘더본존 및 바비큐존’을 확대 운영한다. 지난해에 이어 지역 농특산물을 활용해 남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먹거리를 선보인다. 또한 그동안 광한루원과 요천 일대에서 진행되던 행사장을 올해는 금암공원과 유채꽃밭까지 확대했다. 남원시는 축제에 볼거리를 더하기 위해 요천둔치에 3만3000㎡(약 1만평) 규모로 꽃밭을 조성했다. 숙박을 위한 차박존도 제공할 예정이다.올해 춘향제에서는 일장춘몽 콘서트, 남원 시민 300여 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시민 공연, 춘향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춘향제 아카이브 전시장’ 등 100여 개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울릉도에서는 4∼5월 ‘봄걷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육지에서는 가을에 수확하는 가을걷이지만, 울릉도에서는 참고비 명이 부지깽이 전호 삼나물 섬엉겅퀴 미역취 등 지천에서 돋아나는 봄나물을 채취하느라 온 섬이 떠들썩해진다. 경남 통영에서는 도다리쑥국이 봄의 대표 음식이라면, 울릉도에서는 삼겹살 한 점 넣고 싸 먹는 갓 캔 전호나물이 향긋한 봄 내음을 전한다. ● 부지깽이와 명이가 돋아난 나리분지 지난달 마지막 주말. 울릉도 천북면 추산 부근에 있는 문자조각공원 예림원(藝林園)에는 붉은색 애기동백이 탐스럽게 피었고 홍매화와 수선화, 개나리와 벚꽃까지 만개했다. 해양성 기후인 울릉도 바닷가 주변엔 이렇게 일찍 봄이 온다. 울릉도 태하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간 대풍감과 기암절벽에 수천 마리 바닷새가 살고 있는 관음도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붉은색 꽃이 툭툭 떨어져 있는 동백나무 숲을 걷고 있는데, 풀잎처럼 생긴 의자 모양이 신기하다. 울릉도 봄 입맛을 돋우는 명이나물 이파리를 사람 키만큼 확대해 앉아 쉬도록 만든 의자다. 동백 숲을 나오니 제주 산굼부리를 연상케 하는 황금빛 억새밭 너머로 죽도와 삼선암 절경이 펼쳐진다. 이번에는 야생화 천국인 나리분지를 찾았다. 성인봉 올라가는 신령수길에 섬노루귀, 섬나리, 섬현호색을 비롯해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런데…. 성인봉(해발 984m) 알봉(611m) 등 500m 이상 높은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나리분지는 아직 겨울이었다. 신령수길로 30분 정도 트레킹을 했는데 길 옆에 쌓인 흰 눈을 밟으면 무릎까지 빠졌다. 3월 말인데도 하늘에선 눈비까지 펑펑 내렸다. 봄꽃 구경왔다가 눈바람에 차가워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나리촌 식당을 찾았다. 산채나물정식을 시키니 봄나물이 뷔페처럼 식탁을 가득 채운다. 우선 ‘산에서 나는 쇠고기’로 불리는 삼나물(눈개승마)을 입에 넣으니 쇠고기의 쫄깃한 식감과 두릅, 인삼 등 세 가지 맛이 느껴졌다. 명이와 전호, 부지깽이, 미역취, 참고비까지 넣은 비빔밥과 봄나물전까지 먹고 나니 비로소 울릉도 봄 향기가 내 몸을 감싼다. 30년째 나리촌 식당을 운영 중인 김두순 대표(60)는 울릉도가 고향인 친구와 여행왔다가 남편을 소개받아 울릉도로 시집왔다고 한다. 김 대표는 남편과 함께 나리분지에서 명이와 삼나물, 더덕 농사를 짓고 있다. “울릉도에서는 햇볕이 아니라 바람에 눈이 녹아요. 나리분지에 눈이 엄청 많이 쌓여 있었는데, 어느덧 갈바람(남서풍)이 불면 누가 퍼간 것처럼 눈이 녹아요. 자고 일어나면 없고, 자고 일어나면 없어지죠. 나물도 그렇게 바람이 키웁니다. 따뜻한 바람이 2∼3일만 불면 나물이 팍팍 크는 게 눈에 보여요.” 봄나물을 채취하는 기간에는 밭둑에 대형 솥을 걸어 놓고 나물을 삶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4∼5월 울릉도 들판엔 육지에서 온 일꾼들로 가득 찬다. 울릉군 인력센터에서 사람들을 모아 일손이 부족한 농가로 보내 준다. “봄나물 채취는 시간 다툼이예요. 나리분지에서는 4월 20일 쯤부터 보름 정도에 다 채취해야 합니다. 부드러운 새순을 먹어야 하는데, 조금만 지체하면 억세져서 못 먹어요. 특히 고비하고 삼나물은 금방 엄청나게 커 버리죠. 나물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도 한두달 사이에 나물 캐는 작업에 육지 사람 약 250명이 몰려들었다. 삼시세끼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일당은 11만 원 수준. 무척 고된 일이지만 육지에서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이른 봄에 할 수 있는 짭짤한 아르바이트다. 명이, 부지깽이 등은 장아찌와 김치로 만들어 비싼 가격에 전국으로 팔려 나간다. 봄날 울릉도는 고로쇠 물을 맛보고, 나물 채취 체험을 즐기려는 관광객까지 몰려들어 북적댄다. “울릉도 이주 초기에 요즘 같은 봄날이면 먹을 게 뭐 있었겠어요?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물고기라도 잡아 먹겠지만, 나리분지 같은 산지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지요. 그럴 때 곳곳에 솟아나는 것이 명이였어요. 울릉도 사람들 ‘명(命·목숨)을 이어가게 한 나물’이란 뜻에서 명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절박하면 지혜가 나오는 법입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100일간 먹고 사람이 됐다는 마늘도 바로 ‘산마늘(명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후 울릉도 명이는 전국적으로 성가를 높였다. 돈이 된다는 소문에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산속에서 명이를 뿌리채 캐 가면서 멸종 위기에 몰렸다. 1990년대부터 울릉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자연산 명이 씨를 받아 나리분지 밭에서도 명이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요즘엔 성인봉 주변에 헬기로 씨를 뿌려 재배하는 자연산 명이 복원 사업도 진행 중이다. 나리분지에 명이밭이 몰려 있다면 현포와 학포, 남양 같은 해안가 비탈밭은 부지깽이(섬쑥부쟁이)와 전호나물이 새파랗게 수놓고 있다. 울릉도 공항 건설 공사가 한창인 사동 비탈길 언덕에서 전호나물을 캐고 있는 이경주 씨(신비섬횟집 운영)를 만났다.“전호는 겨울에 눈속에서도 푸릇푸릇 자라나요. 울릉도 봄 소식을 가장 빨리 알리는 나물이죠. 상추 대신 갓 캔 전호나물에 삼겹살이나 생선회를 올려 싸 먹으면 엄청 맛있어요. 살짝 데치고 갈아서 전호 페스토를 만들어 파스타도 해 먹죠. 남은 전호나물은 삶아서 비닐봉지 수십 개에 넣고 냉동해 1년 내내 먹습니다.” 섬엉겅퀴는 육지 엉겅퀴와 달리 가시가 없다. 그래서 시래기처럼 넣어 끓인 엉겅퀴 쇠고기국은 별미다. 엉겅퀴는 고등어 지짐에 넣기도 하고, ‘오징어 누런창 찌개’에도 들어간다. 스물한 살에 울릉도로 시집와 이제 30년 가까이 됐다는 이 씨에게 울릉도 여자들이 젊어 보이는 비결을 물었다. “울릉도에서는 하루 2만4000t씩 솟아나는 용출수를 수돗물로 써요. 용출수는 겨울에 엄청나게 내리는 눈이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31년간 자연 정화를 거쳐 다시 솟아나는 물입니다. 수질이 무척 좋아 피부가 매끈매끈해집니다. 밥상에 밑반찬으로 오르는 수많은 봄나물도 건강의 비결이죠.”● 해안에 불끈 솟은 ‘기운생동’ 봉우리, 추산 울릉도 북면에 있는 추산은 독보적인 울릉도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바위다. 화산 폭발로 생겨난 바위들이 성인봉에서 시작해 나리분지를 거쳐 깃대봉까지 달려오다가 해안에서 불끈 솟아 오른 추산은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겨서 ‘송곳봉’이라고도 불린다. 추산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고릴라가 바나나를 먹고 있는 형상처럼 보인다. 봉우리 사이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울릉도 여행사진을 찍는 재미다. 송곳봉 앞바다에는 코끼리 형상 바위섬이 고릴라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렇듯 추산리 일대는 울릉도에서도 웅장하고 수려한 대자연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경험할 수 있는 힐링 장소로 꼽힌다. 추산마을에 있는 코스모스 리조트는 200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 대표 건축가로 선정된 김찬중 경희대 교수(더시스템랩) 작품이다. 이곳엔 빌라 코스모스, 빌라 떼레에 이어 다음달 1일 빌라 쏘메가 오픈한다. 빌라 쏘메는 건축물이 웅장한 송곳산에서부터 이어지는 산등성이 일부가 되도록 했고, 울릉도 전통 가옥의 특성인 너와지붕을 모티프로 차용했다.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수영장에는 용출수를 활용한 인피니티풀이 설치돼 있고, 암석과 명상을 활용한 스톤테라피, 울릉도 식재료를 활용한 조식과 파인다이닝을 선보인다. 추산마을에 있는 울릉도 최초의 수제맥주 양조장 울릉브루어리(Ulleung Brewery)도 젊은이들 발길을 모은다.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나리 용출수를 이용한 4가지 맛 수제맥주를 시음할 수 있다. 송곳봉 뒤편 마을로 가면 1970년대 포크 가수 이장희 씨의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있다. 아트센터 실내에는 송창식 조영남 김세환 윤형주 김민기 양희은 같은 대한민국 대표 포크 가수들과 함께 활동하던 이 씨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호젓한 연못이 있는 아트센터 마당에서 올려다보는 기운찬 추산 모습도 볼 만하다.글·사진 울릉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우리나라에 경북 의성과 안동, 청송, 영덕, 하동 등 영남권 대형산불로 수많은 피해와 사상자가 발생했고, 집을 잃은 이재민들의 고통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맘 때쯤 전국의 여행객들을 불러모을 수많은 봄꽃 축제도 잇달아 취소되고 있습니다. 산불은 직접적인 피해도 있지만, 이처럼 수년간 지역 관광과 경제에도 2차적인 피해를 주게 되는데요. 올해 1월 대형산불 재난을 맞았던 미국 LA의 경우는 이 재난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월드컵과 올림픽 등 굵직한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LA는 지역경제에 중요한 관광산업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LA 관광청의 돈 스키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지난달 24일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LA관광청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계신데요. “예 저는 LA관광청에서 14년간 마케팅 총책임자(CMO, Chief Marketing Officer)로 근무했습니다. 이전에는 펩시, 베스킨라빈스&던킨도너츠, 유니버설 스튜디오, 텔레플로라(Teleflora)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마케팅 임원직을 맡았고,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COO(최고운영책임자)로 근무한 이력도 있습니다. 그 전에 살던 샌프란시스코에 비해 LA의 날씨가 너무 좋아서 LA관광청에서 14년간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제 해외 출장 50번째이자, 아마도 공식 업무로서는 마지막 해외 출장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1월에 LA에 대형산불이 있었는데요. 산불피해 복구와 관광산업의 현황은 어떤가요. “LA산불 사태 이후 전세계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했더니 LA의 약 30% 정도가 산불로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산불 피해지역은 LA 카운티의 전체 면적 중 2% 밖에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대부분 해안가 산악지대인 파사디나, 팰리세이드 등 관광지가 아닌 주거지역이 피해를 입었죠. LA의 도심이나 관광지역과는 거리가 먼 곳들입니다. 물론 적지 않은 곳에서 고급 주거지들이 피해를 입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2월말까지 모든 화재현장이 정리됐고, 유해물질도 깨끗하게 치워졌습니다. 많은 여행객들이 LA 산불로 인해 공기가 오염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데요. 미국 대기질 기준협회(EPA)가 측정하는 대기질(AQI)는 오늘 현재 47입니다. AQI는 1에서 500까지 스펙트럼이 나오는데요, 미국 환경보호청 기준으로 1~50 이내는 최고 등급입니다. 제가 오늘 아침 숙소인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남산 순환도로를 걸으면서 운동을 했는데요. 직접 재보니 208로 측정이 되더군요(미세먼지가 있는 날이었음). 현재 관광관련 모든 시설이 모두 100% 운영중입니다. LA에는 관광업계에 총 54만3000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계속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저희가 적극적으로 해외를 돌아다니며 관광홍보를 하고 프로모션을 하고 있습니다.“- LA 베버리힐스 주택가나 할리우드, 게티미술관이 화재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도 있었는데요. 괜찮은가요? “화재가 났을 때 수많은 루머가 많았습니다. 산불이 난 피해지역은 주로 해안가 산악지대였습니다. 할리우드나 그리피스 천문대, 베벌리힐스 등 LA 다운타운이나 관광명소에는 산불피해가 없었습니다. 게티 미술관(Getty Museum)에도 산불피해는 없었고, 해안가 지역에 있는 게티 빌라(Getty Villa)만 임시휴관 상태입니다. 임시휴관인 이유는 인근 지역 피해 주민의 이동을 도우려 퍼시픽 하이에이 진입이 불가능한 것 때문입니다. LA는 현재 안심하고 여행 오셔도 좋습니다.”- 주민들이 산불에서 회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요. “화재복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수많은 기부행사가 펼쳐졌어요. 현지 주민들 뿐 아니라 기관들, 할리우드 연예인들까지 적극 참여했지요. 예를 들면 LA관광청이 했던 ‘다인(Dine) LA’ 행사에서는 매년 레스토랑 위크로 2월에 열렸던 행사였는데요. 캠페인에 참여한 400여개의 레스토랑에 가는 손님들의 예약 1건당 5달러씩 기부가 됐어요. 그리고 뱅크오브캘리포니아(Bank of California)가 매칭 펀드를 해서 관광청에서 미국 적십자에 기부를 했습니다. 산불복구 기금마련을 위한 수많은 콘서트도 열렸고, 호텔의 경우 피해자들에게 방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할리우드 유명인들도 직접 나서서 기부활동에 앞장서 화재 복구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도 화재로 집을 잃은 지인 가족을 위해 집의 방을 내주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지역사회와 LA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빠르게 피해복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LA가 올해 새롭게 런칭한 ‘We Love LA’ 캠페인은 무엇인가요. “원래 LA의 근본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산불 회복을 향한 더욱 중요한 메시지를 보내는 캠페인이 됐습니다. 원래는 2월 3일에 공개하려던 계획을 3월 3일로 살짝 미뤘는데요. 전세계인들에게 보내는 LA의 러브레터 같은 컨셉입니다. 1984년 LA 올림픽 주제가였던 랜디 뉴먼의 “I Love LA”에서 착안한 캠페인인데요. 이 노래는 LA다저스의 응원가이기도 해요. LA에 사는 유명한 로컬 주민들이 등장하는데요. 매직 존슨과 아티스트 미스터 카툰 같은 명사들이 직접 참여해 LA의 매력을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한국에서는 5월30일까지 강남대로 포함해 메가박스 영화관 등의 OOH 광고와 네이버와 유투브 등 디지털 광고를 통해 상영될 예정입니다. 메인 메시지는 ‘Everyone is welcome’입니다. 지형적·문화적·인종적 다양성을 모두 포용하는 도시가 바로 LA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죠.”- 2025년 LA를 여행할 때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면? “LA 클리퍼스 농구팀의 새로운 홈구장인 인튜이트 돔, 그리피스 천문대 90주년, 그리고 데스티네이션 크랜쇼(Destination Crenshaw) 프로젝트를 가장 강조하고 싶습니다.인튜이트 돔(Intuit Dome)은 1만8000석 규모에 좌석마다 최첨단 인터랙티브 게임 시스템이 설치돼 있습니다. 관객들이 실시간 통계나 미니게임, 투표 등에 참여할 수 있어요. 농구경기를 보지 않더라도 돔구장만 견학하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는 올해 90주년을 맞습니다. 영화 ‘라라랜드’ 배경으로도 나온 이 천문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천문대 중 하나입니다. 오전 12시 전까지는 주차도 무료이고, 헐리우드 사인까지 하이킹도 즐길 수 있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끄는 곳입니다. 올해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데스티네이션 크랜쇼(Destination Crenshaw)는 1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공공 예술 프로젝트입니다. 흑인 예술가들의 벽화와 조각 등으로 1마일 구간이 채워지게 됩니다.“- 2026년 FIFA 북중미 월드컵, 2028년 LA 올림픽 등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를 앞둔 LA의 주요 관광 프로젝트는?“LA는 이제 ‘스포츠의 10년(Decade of Sports)”이라고 부를 정도로 굵직한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의 중심지가 될 예정입니다. 2026년 FIFA 월드컵은 사상 최대 규모인 48개국이 참여하는 대회입니다. LA에서는 8경기가 소파이(SoFi) 스타디움에서 개최됩니다. 특히 월드컵 기간 동안 LA에서는 대규모 팬페스트가 진행됩니다. 소파이 스타디움에서 열릴 8경기의 입장권이 제한적(총 6만명)이다 보니, 경기 티켓을 구하지 못한 분들도 LA 전역에서 월드컵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야외 응원전을 대폭 확대하려고 해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으로 경기를 중계하고, 응원전, 푸드트럭, 체험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 축제 분위기를 극대화할 예정입니다. 특히 체류 기간 중에 LA의 박물관, 쇼핑, 음식 문화 등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관광 정보나 할인 혜택도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방문객이 경기 뿐 아니라 도시를 살아 있는 축제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2028년 LA 올림픽은 개막식을 소파이 스타디움과 LA 메모리얼 콜리시움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이 매우 독특합니다. 두 스타디움에서 성화 봉송, 셀럽 퍼포먼스, 국가 입장식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열릴 예정입니다. 특히 소파이 스타디움에는 ‘팝업 풀(Pop-up Pool)’이 설치될 예정인데요. 스타디움에 임시로 만들어진 풀에서 올림픽 수영 경기가 펼쳐집니다. LA는 MLB 야구(LA다저스)와 NBA농구(LA레이커스, 클리퍼스), NFL 미식축구(LA램스) 등에서 명문팀이 많습니다. 이번에 LA다저스에 영입된 한국인 선수 ‘김혜성’의 활약도 기대하고 있어요. 김혜성 선수가 ‘넥스트 오타니’가 되길 기원합니다.“- LA관광청이 바라보는 한국 시장은 어떤가요. “LA에는 약 33만 5천 명가량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LA 전체 인구의 10% 정도에 달하는 숫자예요. 일본인은 반면 단 6만 5천명만 LA에 거주하고 있죠. 그만큼 한인 커뮤니티가 크고,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도 전반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LA와 부산은 50년이 넘는 자매도시의 인연도 맺고 있고요. LA와 한국은 ‘소울메이트’처럼 서로에게 긍정적 영감을 주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에 LA를 방문한 한국인은 32만 명이었습니다. 코로나 전인 2019년 대비 99% 정도가 회복됐죠. 올해는 36만 명, 내년에는 41만 명 정도 예상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LA 관광시장에서 한국이 4위였다면, 올해는 영국과 함께 2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2026년에는 한국이 단독 2위(캐나다, 멕시코 제외한 인터내셔널 시장 중)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LA는 미식의 천국인데요. 미쉐린 선정 레스토랑 중 8곳이 한식당일 정도로 한식의 인기도 높습니다. 한국은 K-드라마, K-팝, 영화 같은 콘텐트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고, LA는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글로벌 미디어 산업을 선도해왔잖아요. 서로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소비하는 데 열정이 커서, 최근엔 K-드라마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어요. 또 양국 모두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도 상당합니다. LA 아트쇼에서도 한국 작가분들의 작품이 가장 빨리 매진된다고 들었는데, 저 역시 이번에 서울 방문 중에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트페어 ‘언노운 바이브’에 들러 한국 아티스트의 작품 2점을 구매했습니다. “ - LA관광청에서 마케팅을 총괄해서 맡고 계신데,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신다면.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총괄합니다. 시장 조사를 하고 그걸 베이스로 프로모션을 하고, 상품을 개발하고, 광고를 만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 중하나가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에 있는 글로벌 사무소를 챙기는 역할도 합니다. 각국의 시장의 특성에 따라 어떤 도구를 써야할지 전략이 달라집니다. 한국, 일본, 중국의 성향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POET 전략도 달라야합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유니크한 시장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랑 완전히 다른 전략을 써야해요. 한국은 특히 디지털이랑 소셜미디어의 활용도와 영향력이 엄청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케팅 타겟도 이걸 많이 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합니다. LA로 오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점점 더 젊어지고 디지털 트렌드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모든 커넥션이 이뤄지는 사람들입니다. 예전에는 LA에 오는 사람들이 패키지 투어를 많이 했다면, 요즘에는 각자 스마트폰의 정보를 갖고 자유롭게 찾아다니는 FIT(개별여행)이나 PIT(Partial Independent Traveler) 여행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바일 앱이나 소셜 채널을 통해 LA 현지 정보·할인·이벤트 등을 적극 홍보하고 있습니다.“- 매우 흥미롭네요. 예를 들면 일본이나 중국은 어떤 POET 전략을 쓰나요. “예를 들어 일본은 야구를 너무 좋아합니다. 일본인들에게 오타니 쇼헤이는 신(God)이예요. LA에 일본인들을 위한 ‘오타니 투어리즘’ 생길 정도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엔 상품개발부터 광고도 다 야구 등 스포츠를 매개로 진행됩니다. 메이저리그 프로야구(MLB) 개막전이 지난해엔 한국에서 열렸고, 올해는 일본 도쿄에서 열렸어요. 그래서 야구 경기장에서 LA관광에 대한 홍보도 진행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LA 홍보 캠페인을 딱 2주 동안만 MLB시리즈에서 집중해서 했고, 한국은 4~5월까지 3개월 동안 강남대로 전광판과 영화관을 통해 프로모션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LA에 있어서 한국 시장이 훨씬 크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국과는 현재 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홍보전략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의 대표적인 미식(美食) 도시 로스앤젤레스(LA)에는 미슐랭 가이드 선정 레스토랑이 12곳 있는데 그중 8곳이 한식당입니다. 한식 인기가 최고죠. 내년 LA를 방문할 한국인은 41만 명으로 예상돼 영국을 넘어 해외 방문자 수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돈 스키옥 LA 관광청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24일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026 FIFA 월드컵과 2028 올림픽을 앞두고 시작한 ‘우리가 사랑한 LA(We Love LA)’ 캠페인은 전 세계인에게 보내는 LA의 러브레터”라고 소개했다. 3월 시작된 ‘We Love LA’ 캠페인에는 싱어송라이터 랜디 뉴먼의 ‘I Love LA’라는 노래를 배경으로 미국프로농구(NBA) 소속 LA 레이커스의 ‘전설’ 매직 존슨, 유명 문신 아티스트인 미스터 카툰을 비롯해 LA를 대표하는 셀럽들이 참여했다. 캠페인 영상은 전 세계 동시 공개된다. 한국에서도 5월 30일까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 전광판과 전국 메가박스 영화관 등 130개소에서 상영된다. 그에게 올 1월 발생한 LA 산불 사태를 어떻게 극복했으며 관광시장에 미친 영향은 어떤지 물었다.“전 세계 여행객 조사를 한 결과 사람들은 LA카운티의 약 30%가 불탄 것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제로 화재 피해를 입은 면적은 LA의 2%에 불과했습니다. 산불 피해는 주로 샌타모니카 근방 해안가 퍼시픽팰리세이즈와 패서디나 인근 알터디나 주거 지역에서 심했는데 관광지나 도심에서는 대부분 먼 곳입니다.” 그는 “현재 박물관과 식당, 쇼핑몰 등 관광산업 분야 종사자 약 54만3000명은 모두 정상적으로 일하고 있다”면서 “LA 대기질 지수(AQI)도 47로 매우 양호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AQI는 1∼500까지 측정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 기준 최고 등급은 1∼50이다. 스키옥 CMO는 “많은 시민이 자원봉사에 나섰고, 화재 복구 펀드 조성을 위한 행사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LA 관광청이 진행한 기금 모금 행사인 ‘다인(dine) LA’에 참여한 400여 레스토랑에서는 예약 1건마다 5달러를 기부했다. 캘리포니아은행(BOC)이 매칭펀딩을 하는 행사도 열띤 호응 속에 진행됐다. LA는 몇 년 남지 않은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빅 이벤트 준비에 분주하다. 그는 “LA는 2026년 월드컵 기간 축구 팬들이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대규모 팬페스트를 준비하고 있다”며 “올림픽 개회식도 소파이(SoFi)스타디움과 LA콜리세움 등 2개 경기장을 연결하는 대규모 이벤트로 기획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올해 LA를 찾는 사람들이 꼭 들러야 할 명소는 어디일까.“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방문한 천문대인 그리피스 천문대에서는 올해 개장 9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펼쳐집니다. 또 NBA 소속 LA 클리퍼스의 새로운 안방구장인 인튜이트돔에는 관람석마다 인터랙티브 게임 시스템이 설치돼 있습니다. 꼭 한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에서 비행기로 4시간이면 도착하는 사이판은 신혼여행 휴양지를 넘어 요즘엔 마라톤, 철인3종 경기, 골프, 스쿠버다이빙 등 다양한 스포츠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판에서 최다 객실을 보유한 숙박시설로는 켄싱턴호텔 사이판(313실), 코럴 오션 리조트 사이판(90실), PIC 사이판(308실)을 꼽을 수 있다. 국내 기업인 이랜드파크의 해외 호텔&리조트 법인인 마이크로네시아리조트(MRI)가 운영하고 있다. KENSINGTON HOTEL SAIPAN‘켄싱턴호텔 사이판’은 사이판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올인클루시브 호텔. 전 객실이 오션뷰를 자랑하며 프라이빗 비치와 수영장, 키즈 캠프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 3월부터는 TEFL(Teaching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영어교육전문자격증을 갖춘 선생님과 함께 놀면서 배우는 영어 프로그램 ‘켄싱턴 잉글리시 클럽’도 오픈해 운영하고 있다. Coral Ocean Resort Saipan‘코럴오션 리조트’는 탁 트인 해안가 골프 코스로 유명하다. 미국 PGA 프로 월드 클래스 챔피언 래리 넬슨(Larry Nelson)이 설계했으며, 사이판 유일의 LPGA 투어 공식 규격 18홀 코스를 갖추고 있다. 해안가 코스에서는 푸른 바다 너머 티니안 섬의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골프장의 랜드마크로 알려진 7번 홀과 14번 홀은 바다를 두고 공을 넘겨야 하는 곳이다. 때때로 수면 위로 유유히 헤엄치는 거북이를 볼 수 있다. 골퍼들은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샷을 날리는 경험을 할 수 있어 짜릿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PIC Saipan‘PIC 사이판’은 사이판 최대 규모의 워터파크를 갖춘 ‘아이들의 천국’이다. 매일 ‘클럽메이트’와 함께하는 40여 가지의 액티비티 프로그램이 운영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 특히 현지 학교와 연계한 한달살기 프로그램 ‘아카데믹 펀 스쿨링‘과 사이판 현지 소방서, 관공서를 직접 방문하는 ‘필드 트립’도 운영하고 있다. MRI의 투숙객들은 시그니처 콘텐츠인 ‘사이판 플렉스’를 활용하면 3개 호텔 및 리조트의 레스토랑과 부대시설, 각종 콘텐츠를 통합 이용할 수 있다. 켄싱턴호텔 사이판의 레스토랑 로리아에서 시그니처 메뉴를 즐기고, PIC 사이판 워터파크에서 자이언트 슬라이드를 즐길 수 있다. 이어 저녁에는 코럴 오션 리조트 사이판의 비치클럽에서 시그니처 세트 메뉴와 함께 ‘풀(수영장)파티’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사이판의 대표 축제인 마라톤 대회를 연계한 다양한 상품도 선보이고 있다. MRI가 운영하는 ‘켄싱턴호텔 사이판’은 사이판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러닝을 즐길 수 있는 ‘런&펀(RUN&FUN)’ 패키지를 4월 30일까지 선보인다. 켄싱턴호텔 사이판의 런&펀 패키지는 △객실 1박 △뉴발란스 시크릿 러너 박스 1개 △올인클루시브 식사 혜택(1일 3식) △MRI 3사 호텔의 부대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사이판 플렉스’ △공항 픽업/샌딩 서비스 등의 혜택으로 구성됐다. 뉴발란스 시크릿 러너 박스는 러닝 필수품으로 꼽히는 리유저블백(Reusable Bag), 러닝 삭스, 헤어밴드, 러닝 볼캡으로 구성됐다. 서광원 이랜드글로벌호텔&리조트 본부장은 “사이판은 사계절 내내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여행지”라며 “앞으로도 사이판 3곳의 호텔·리조트를 연계해 고객 맞춤형 여행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요즘 핫한 여행 트렌드 중 하나는 ‘런트립(Run+Trip)’이다. 국내외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관광도 하는 여행이다. 국내에서도 마라톤 대회는 교통통제가 된 도심 빌딩숲을 달리거나, 지방에 있는 천년고도의 꽃길, 단풍길, 천변 등을 달리며 색다른 여행을 한다. 해외 마라톤 대회에서도 자신에 맞는 코스를 선택해 달리고, 남은 시간엔 여행도 즐기는 ‘펀런(Fun Run)’ 족도 많다. ● 사이판 국제마라톤 대회 참가기남태평양 북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사이판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이다. 올해 17회를 맞은 ‘사이판마라톤’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마이크로 비치(Micro Beach)에서 출발한다. 푸른 야자수와 코발트 블루 빛 바다가 보이는 해변도로를 따라 달리며 탁 트인 오션뷰와 열대 섬의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로 유명하다. 지난 8일 열린 올해 대회의 참가자는 19개국에서 온 총 612명. 한국에서도 200명이 넘는 러너들이 참가했다. 참가자 중에는 마라토너로 유명한 가수 션과 철인3종 완주를 했던 배우 유이도 10km 코스에서 달려 화제를 모았다. 원래는 취재만 하려고 왔는데, 대회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껴보기 위해 기자도 5km 마라톤코스에 참가신청을 했다. 그런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뛰어본다는 것. 얼마만인가. 2001년 3월. 30대 초반에 내 인생의 첫 마라톤을 뛰었다. 동아마라톤 하프코스(21km)였다. 당시 동아마라톤은 1970년 이후 30년 만에 서울 한복판으로 코스를 변경해 서울국제마라톤으로 재탄생했다. 이후에도 총 3번의 하프코스를 완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50대 중반. 그동안 체중은 20kg이나 불었다. 평소 등산이나 걷기는 꾸준히 했지만, 누가 봐도 뛰기에는 무리인 몸이다. 그래도 24년 전 하프코스를 달렸던 기억을 되새긴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속도’.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뛰게 되면 장거리를 뛸 수 있지 않을까. 사이판에 도착 후 이틀 동안 해뜨기 전에 일어나 달리기 연습을 했다. 첫날 연습 장소는 사이판 북부 별빛관광 명소인 ‘만세 절벽(Banzai Cliff)’ 해안도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공격에 밀린 일본군이 최후의 집단 자결 장소로 택한 곳이다. 절벽 아랫 쪽에는 거대한 암반이 있고,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약 40분 정도 달렸을까. 3.5km를 뛰었다. 다음날 아침 6시에도 숙소인 켄싱턴호텔 앞 해변에 나와서 연습했다. 마라톤 대회의 한국인 참가자들을 위해 박민규 러닝 전문 코치가 컨디션 조절을 위해 마련한 클래스에서 몸을 풀었다. 목부터 어깨, 팔꿈치, 허리, 햄스트링, 발목까지 골고루 풀어주고 모래밭에서 무릎을 높이 올려서 뛰고, 발을 양쪽ㅇ로 벌리면서 뛰고, 전력질주도 하면서 인터벌 훈련을 했다. 드디어 3월8일. 사이판 마라톤의 날이 밝았다. 사이판의 날씨는 30도에 육박하기 때문에, 마라톤은 새벽에 뛴다. 풀코스는 새벽 4시, 하프코스는 새벽 5시, 10km와 5km 코스는 오전 6시에 출발한다. 밤하늘의 별빛 아래에서 달리다가 해변에서 태평양의 장대한 일출을 마주하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코스다. “쓰리, 투, 원! 스타트!“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출발했다. 지역주민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주는 물을 마시며 한 2km쯤 달렸을까. 15분 먼저 출발했던 10km 코스 참가자인 가수 션이 맞은편에서 달려온다. 션은 벌써 반환점을 찍고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선수급 몸매를 가진 션은 바람처럼 ‘쌩’하고 스쳐지나간다. 대회 후 션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올해 1,2월만해도 1000km를 뛰었고, 지난해에는 8000km를 뛰었다“고 한다. 그의 첫째 딸 하음양과 셋째아들 하율 군도 이날 레이스를 함께 했다. 나도 반환점을 돌았는데 갑자기 대회 관계자들이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멋진 포즈를 위해 엄지손가락을 올려 따봉을 날려주었다. 그런데 카메라맨이 “헤이! 유이~”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순간 뒤돌아보니 유이가 내 바로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휴대폰을 열고 급하게 카메라를 켰다. 유이의 뛰는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싶었지만, 그녀는 긴다리로 껑충껑충 앞서간다. 그녀를 따라잡겠다고 무리했다가는, 걷거나 쉬지 않고 5km를 뛰겠다는 목표는 물건너갈 것이 뻔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앞질러 뛰어가더라도 오버페이스는 금물이다. 나만의 스피드를 지키며 고독하게 내 갈길을 가야 한다. 4km 정도 구간이 지나자 슬슬 몸의 에너지가 올라온다. 남은 1km 정도의 구간에서 좀더 힘을 내 속도를 높여본다. 가라판의 사거리에서 만나는 현지 교통경찰들마다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굿 잡(Good Job)!”하고 응원을 해준다. 이제 마이크로비치 결승점이 눈 앞에 있다. 마치 우승자인 것처럼 테이프를 끊으며 나도 들어왔다. 기록증을 보니 49분16초. 1시간을 목표로 했는데 11분 정도를 앞당긴 기록이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24년 만의 장거리 달리기에 성공한 것에 스스로 자축했다. 무엇보다 내 몸무게를 두 다리의 근육과 무릎이 부상없이 잘 버텨줬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런데 뛰기 전에는 “심장과 무릎 관절을 조심하라” “제발 무리하지 말라”고 극구 말리며 걱정해주던 사람들이 말이 달라진다. “5km도 마라톤이냐” “걸어도 그 시간이면 들어오겠다”는 조롱과 비아냥도 적지 않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당신은 5km라도 뛰어본 적이 있느냐고.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랜 러닝 경력자들은 축하와 응원을 보내주는데,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깎아내리기 바쁘니 요상할(?) 따름이다. 이날 배우 유이 씨는 10km를 55분21초에 통과했다. 10km 여성부문에서 연령대 1위라는 좋은 기록이었다. 그는 “푸른 자연 속에서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하며 달리는 순간이 정말 특별했다. 내 몸이 자연과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부부 마라토너인 김자경-이윤정 씨는 아내가 먼저 마라톤에 푹 빠져 남편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10km 마라톤을 잘 뛰었으니 이제 사이판 곳곳을 함께 탐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풀코스를 뛴 30대 남성은 “사이판마라톤 대회에서 좋은 공인기록을 얻어 4월에 열리는 보스턴국제마라톤에 신청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마라톤 후 사이판 여행 ’런트립‘ 마라톤 여행이 좋은 이유는 건강을 위해 달리고 난 후 더욱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사이판은 어디든 차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섬이라 반나절이면 관광명소를 구경할 수 있다. 대신 산과 바다, 들판에서 몸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액티비티가 많다. ’사이판의 진주‘로 불리는 마나가하섬으로 배에서 보는 사이판 바다의 물빛은 코발트 블루와 터키쉬 블루, 크리스탈 블루, 에머랄드 그린이 층층이 펼쳐지는 환상적인 빛깔이다. 아놀드 팔라시오스 북마리아나제도 주지사는 “사이판의 바다는 아홉 단계의 블루가 펼쳐진다”고 말했는데, 사실인 듯하다. 섬의 해변에는 가시거리가 30m나 될 정도로 물이 맑아 스노클링으로 산호와 물고기 떼를 볼 수 있다. 알록달록한 낙하산을 타고 패러세일링을 하면 섬과 바다 위를 날며 바람과 햇살을 만끽할 수 있다. 북동부 해안에 있는 그로토(The Grotto)는 해저동굴 다이빙 명소. 해안 절벽에 3개의 석회암 동굴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스노클링을 하면 15m 이상의 바닥과 물고기까지 훤히 보인다. 체험다이빙은 전문강사와 함께 입수하기 때문에 다이빙 자격증이 없어도 된다. 푸르스름한 신비스런 햇빛이 쏟아지는 동굴 입구를 배경으로 강사가 찍어주는 수중사진은 인생샷이 된다. 사이판이 골프장은 골퍼들의 로망인 링크스 코스가 많다. 코럴 오션 리조트(Coral Ocean Resort)는 미국 PGA 챔피언 래리 넬슨이 해변를 따라 설계한 골프장. 바다 너머로는 티니안 섬이 눈 앞에 펼쳐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벙커와 동굴 또한 남아 있어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그니처 홀인 7번, 14번 홀에서는 파도치는 바다를 넘겨 절벽 위 그린에 온을 시키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특히 14번 홀에서는 티박스에서 내려다보면 바다거북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이판 섬 남단부의 산 안토니오 비치에 있는 ‘퍼시픽 아일랜드 클럽(PIC) 리조트’에서는 사이판 최대 규모의 워터파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해 영어로 진행하는 키즈아카데미와 현지 학교와 연계한 한달살기 프로그램 ‘아카데믹 펀 스쿨링‘도 운영해 가족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반자이 클리프는 사이판의 별빛 관광의 명소다. 해변 주변에 가로등이나 간판의 불빛이 전혀 없어 별보기에 최적의 장소. 켄싱턴 호텔은 투숙객들을 위해 밤하늘 별보기 프로그램인 ‘스타라이트 모먼트(Starlight Moment)’를 운영한다. 갤럭시 휴대폰 천체사진 찍기 모드를 이용해 별사진을 찍어보았다. 노출을 4분 정도 주었더니 그야말로 수백개의 별이 크리스마스 조명처럼 반짝이게 나왔다. 밤하늘에 이렇게 별이 많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아놀드 팔라시오스 북마리아나제도 주지사 인터뷰“아홉 단계의 푸른 색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사이판, 로타, 티니안의 바다를 즐겨 보십시오.” 아놀드 팔라시오스 북마리아나제도(CNMI) 주지사는 지난 5일 켄싱턴호텔 사이판에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은 북마리아나 제도 관광산업에서 가장 최대의 시장”이라며 “관광시장 확대를 위해 한국과의 협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3년 10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북마리아나를 찾은 한국인 방문객은 17만 7000여 명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북마리아나 전체 방문객의 75%가 넘는 수치다. 올 9월 경이면 한국인 관광객 수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수준을 회복해 역대 최고 기록 경신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이랜드파크는 사이판에서 가장 큰 호텔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마리아나관광청 주도로 마리아나 제도의 독특한 자연경관과 문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관광 캠페인(This is the Marianas)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사이판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 사이클대회 등 각종 스포츠 대회를 개최해 사이판을 찾는 관광객들이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팔라시오스 주지사는 최근 북마리아나를 찾는 한국인 방문객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친절한 원주민과 안정된 치안 환경, 여유로운 환경이 주는 매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사이판에는 오래 거주한 한국인도 많은 만큼 한국과 더많은 교류와 협력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판=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요즘 핫(hot)한 여행 트렌드 중 하나는 ‘런트립(Run+Trip·달리기 여행)’이다. 국내외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관광도 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마라톤 대회는 교통이 통제된 도심 빌딩 숲을 달리거나, 지방 천년고도(古都)의 꽃길, 단풍 길, 천변을 달리며 색다른 여행을 한다. 해외 마라톤 대회는 자신에 맞는 코스를 달린 다음 남은 시간엔 여행도 즐기는 ‘펀런(Fun Run)족’이 많이 찾는다.》● 사이판 국제마라톤 대회 참가기 남태평양 북마리아나 제도에 있는 사이판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이다. 올해 17회를 맞은 ‘사이판 마라톤’은 시내 중심에 있는 마이크로비치(Micro Beach)에서 출발한다. 푸른 야자수와 코발트블루빛 바다가 보이는 해변도로를 달리며 탁 트인 바다 풍경과 열대 섬의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로 유명하다. 이달 8일 열린 올해 대회에는 19개국에서 온 612명이 참가했다. 한국에서도 200명 넘는 러너들이 참가했다. 마라토너이자 자선가로 유명한 가수 션,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한 배우 유이도 10km 코스를 달렸다. 기자도 원래는 취재만 하려고 왔는데, 대회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껴보기 위해 5km 코스에 참가 신청을 했다. 그런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뛰어 본다는 것. 얼마 만인가. 2001년 3월, 30대 초반에 내 인생 첫 마라톤을 뛰었다. 동아마라톤(현 서울국제마라톤) 하프코스(21km)였다. 당시 동아마라톤은 1970년 이후 30년 만에 서울 한복판을 달리는 코스로 변경해 서울국제마라톤으로 재탄생했다. 이후에도 모두 세 번 하프코스를 완주한 기억이 있다. 그런데 세월은 흘러 이제 50대 중반. 체중은 20kg이나 불었다. 평소 등산이나 걷기는 꾸준히 했지만, 누가 봐도 장거리를 뛰기에는 무리인 몸이다. 그래도 24년 전 하프코스를 달린 기억을 되새긴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속도’.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뛰게 되면 뛸 수 있지 않을까.사이판에 도착한 후 이틀 동안 해뜨기 전 일어나 달리기 연습을 했다. 첫날 연습 장소는 사이판 북부 별빛 관광 명소 ‘만세 절벽(Banzai Cliff)’ 해안도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미군 공격에 밀린 일본군과 일반인 1000여 명이 최후의 집단 자결 장소로 택한 곳이다. 다음날 오전 6시에도 숙소인 켄싱턴호텔 앞 해변에서 연습했다. 한국인 참가자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박민규 러닝 전문 코치가 마련한 클래스에서 몸을 풀었다. 드디어 3월 8일, 사이판 마라톤의 날이 밝았다.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하기 때문에 마라톤은 새벽에 뛴다. 풀코스는 오전 4시, 하프코스는 오전 5시, 10km와 5km 코스는 오전 6시에 출발한다. 밤하늘 별빛 아래서 달리다가 해변에서 남태평양의 장대한 일출을 마주하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코스다.“쓰리, 투, 원! 스타트!”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출발했다. 지역 주민인 자원봉사자들이 나눠 주는 물을 마시며 한 2km쯤 달렸을까. 15분 먼저 출발한 10km 코스 참가자 가수 션이 맞은편에서 달려온다. 벌써 반환점을 돌고 결승점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다. 엘리트 선수급 몸매를 가진 션은 바람처럼 ’쌩’ 하고 스쳐 지나간다. 대회 후 션하고 이야기를 나눠 보니 “올해 1, 2월만 해도 모두 1000km를 뛰었다. 지난해에는 총 8000km를 뛰었다”고 한다. 그의 첫딸 하음양과 셋째 아들 하율 군도 이날 레이스를 함께했다. 반환점을 막 돌았는데 갑자기 대회 관계자들이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멋진 포즈를 위해 엄지손가락을 올려 따봉을 날려 주었다. 그런데 카메라맨이 “헤이! 유이∼”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순간 뒤돌아보니 유이가 바로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나도 휴대전화를 열어 급하게 카메라를 켰다. 유이의 뛰는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긴다리로 껑충껑충 앞서간다. 그를 따라잡겠다고 무리했다가는, 걷거나 쉬지 않고 5km를 뛰겠다는 목표는 물건너갈 것이 뻔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앞질러 가더라도 오버페이스는 금물이다. 나만의 스피드를 지키며 고독하게 내 갈길을 가야 한다. 4km 구간이 지나자 슬슬 몸의 에너지가 올라온다. 남은 1km 구간에서 좀 더 힘을 내 속도를 높여 본다. 가라판 사거리에서 만나는 교통경찰들마다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굿 잡(Good Job)!”하고 응원해 준다. 마이크로비치 결승점이 눈앞에 있다. 마치 우승자인 것처럼 테이프를 끊으며 결승점에 들어왔다. 기록증을 보니 49분16초. 1시간을 목표로 했는데 11분 정도 앞당겼다. 50대 중반에, 24년 만의 장거리 달리기에 성공한 것을 자축했다. 무엇보다 내 몸무게를 두 다리 근육과 무릎이 다치지 않고 잘 버텨 줬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뛰기 전에는 “심장과 무릎 관절을 조심하라” “제발 무리하지 말라”며 걱정해 주던 사람들 말이 골인하고 나자 달라진다. “5km도 마라톤이냐” “걸어도 그 시간이면 들어오겠다”는 조롱과 비아냥도 적지 않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당신은 5km라도 뛰어 본 적이 있느냐고.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랜 러닝 경력자들은 축하와 응원을 보내 주는데,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깎아내리기 바쁘니 요상할(?) 따름이다.이날 배우 유이 씨는 10km를 55분 21초에 통과했다. 10km 여성 부문 연령대 1위라는 좋은 기록이었다. 그는 “푸른 자연 속에서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하며 달리는 순간이 정말 특별했다. 내 몸이 자연과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부부 마라토너인 김자경 이윤정 씨는 아내 이 씨가 먼저 마라톤에 푹 빠져 남편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10km 마라톤을 잘 뛰었으니 이제 사이판 곳곳을 함께 탐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풀코스를 뛴 30대 남성은 “사이판 마라톤 대회에서 좋은 공인기록을 얻어 4월에 열리는 보스턴국제마라톤에 신청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 마라톤 후 사이판 여행 런트립 마라톤 여행이 좋은 이유는 건강을 위해 달리고 난 후 더욱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사이판은 어디든 차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는 작은 섬이라 한나절이면 관광명소를 대부분 구경할 수 있다. 대신 산과 바다, 들판에서 몸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액티비티가 많다.‘사이판의 진주’로 불리는 마나가하섬으로 향하는 배에서 보는 사이판 바다 물빛은 코발트블루와 터키쉬블루, 에머랄드그린이 층층이 펼쳐지며 환상적이다. 섬 해변에서는 가시거리가 30m나 될 정도로 맑은 물에서 스노클링 하며 산호와 물고기 떼를 볼 수 있다. 알록달록한 낙하산을 타고 패러세일링을 하면 섬과 바다 위에서 바람과 햇살을 만끽할 수 있다. 북동부 해안에 있는 그로토는 해저동굴 다이빙 명소. 해안 절벽에 석회암 동굴 3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스노클링을 하면 물고기는 물론 깊이 15m 넘는 바닥까지 훤히 보인다. 체험 다이빙은 전문강사와 함께 입수하기 때문에 다이빙 자격증이 없어도 할 수 있다. 푸르스름하고 신비스런 햇빛이 쏟아지는 동굴 입구를 배경으로 강사가 찍어주는 수중사진은 인생샷이 된다. 사이판 골프장은 골퍼들의 로망인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링크스 코스가 많다. 코럴 오션 리조트는 미국 남자 프로골프 PGA 챔피언 래리 넬슨이 해변를 따라 설계한 골프장이다. 바다 너머 티니안 섬이 눈앞에 펼쳐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벙커와 동굴 또한 남아 있어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그니처 홀인 7번 홀과 14번 홀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넘겨 절벽 위 그린에 올려 놓는 짜릿함을 맛볼 수 있다. 사이판 섬 남단부 산안토니오 비치에 있는 ‘퍼시픽 아일랜드 클럽(PIC) 리조트’에서는 사이판 최대 규모 워터파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해 영어로 진행하는 키즈아카데미, 현지 학교와 연계한 한 달 살기 프로그램 ‘아카데믹 펀 스쿨링‘도 운영해 가족 단위 여행자가 많이 찾는다.글·사진 사이판=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해 한일 노선 취항 60주년을 맞은 일본항공(JAL)이 일본 소도시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간편하고 저렴한 요금제인 ‘재팬 익스플로러 패스(JEP·Japan Explorer Pass)’를 선보였다. JEP는 국제선으로 일본에 온 승객들이 국내선을 이용해 지방 도시 한두 곳을 추가로 여행해 현지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특별 요금제다. JEP 요금제를 이용하면 JAL 국내선 네트워크를 통해 30개 이상의 일본 지방 도시를 JR 등 열차 운임보다 저렴하고 간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타사 항공권으로 인천 또는 김포, 부산에서 출발해 일본에 도착한 승객도 JEP 상품을 이용해 지방 도시를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 국내선 항공권 예약 및 구매는 반드시 JAL 홈페이지를 통해 완료해야 한다. 일본을 떠나는 왕복 항공권을 소지하고 있고, 일본에 거주하지 않는 개인에 한해 JEP 운임제를 구매할 수 있다. 한편 일본항공은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새롭게 단장했다. 김포∼하네다 노선을 오가는 ‘JAL 스카이 스위트Ⅲ’는 완전히 펼쳐지는 베드에 17인치 대형 개인 모니터를 갖추고 있다. 또한 스시와 사케를 포함해 매월 다양한 메뉴가 나오는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을 서비스한다. 김포∼하네다 노선을 하루 3번, 주 21회 운항하고 있는 일본항공은 1951년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국제 항공사. 한일 국교 정상화보다 1년 앞선 1964년 4월 15일 서울(김포)∼도쿄(하네다) 노선을 대한항공과 공동 운항으로 주 3회 운항하기 시작했다. 현재도 대한항공과 18개 노선을 공동 운항하고 있으며, 마일리지 제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일본항공은 원월드얼라이언스 회원으로 66개 국가와 지역의 405개 공항을 연결하고 있다. 스카이트랙스사로부터 5스타 항공사, APEX로부터 월드 클래스 항공사로 선정됐으며 특히 정시성 부문에서 우수한 국제항공사로 꼽힌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해 한-일노선 취항 60주년을 맞은 일본항공(JAL)이 일본 소도시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간편하고 저렴한 요금제인 ‘재팬 익스플로러 패스(Japan Explorer Pass)’를 선보였다. JAL 재팬 익스플로러 패스(JEP)는 국제선으로 일본에 온 승객들이 국내선을 이용해 지방도시 한두 곳을 추가로 여행해 현지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특별 요금제다. JEP 요금제를 이용하면 JAL 국내선 네트워크를 통해 30개 이상의 일본 지방 도시를 JR 등 열차운임보다 저렴하고 간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타사 항공권으로 인천 또는 김포, 부산에서 출발해 일본에 도착한 승객도, JEP 상품을 이용해 지방 도시를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 국내선 항공권 예약 및 구매는 반드시 JAL 홈페이지를 통해 완료해야 한다. 일본을 떠나는 왕복 항공권을 소지하고 있고, 일본에 거주하지 않는 개인에 한해 재팬 익스플로러 패스 운임제를 구매할 수 있다. 한편 일본항공은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새롭게 단장했다. 김포-하네다 노선을 오가는 ‘JAL 스카이 스위트 Ⅲ’는 완전히 펼쳐지는 베드에 17인치 대형 개인모니터를 갖추고 있다. 또한 스시와 사케를 포함해 매월 다양한 메뉴가 나오는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을 서비스한다. 김포-하네다 노선을 하루 3번, 주 21회 운항하고 있는 일본항공은 1951년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국제 항공사. 한일 국교 정상화보다 1년 앞선 1964년 4월15일, 서울(김포)-도쿄(하네다) 노선을 대한항공과 공동운항으로 주3회 운항하기 시작했다. 현재도 대한항공과 18개 노선을 공동운항하고 있으며, 마일리지 제휴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일본항공은 원월드얼라이언스 회원으로서 66개 국가와 지역의 405개 공항을 연결하고 있다. 스카이트랙스사로부터 5스타 항공사, APEX로부터 월드 클래스 항공사로 선정됐으며 특히 정시성 부분에서 우수한 국제항공사로 꼽힌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23년 8월. 전북 부안의 노을명소인 변산해수욕장. 제1회 ‘부안 무빙팝업시네마’ 영화제가 열리는 해변 한쪽에 도예가 이능호 작가의 설치작품 ‘집’ 30점이 전시됐다. 바닷가에 늘어선 커다란 몽돌 모양의 도예작품은 노을지는 파도 해변의 풍경 속에 녹아들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미술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도예작품에 기대고 있는 사람, 연인끼리 함께 앉아서 영화를 보는 사람, 작품 위에 누워서 쉬는 사람 등 저마다 편안하게 작품을 즐겼다. 특히 햇볕에 달궈진 검은색 몽돌처럼 생긴 도예작품은 앉거나 누우면 찜질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능호 작가의 ‘집’ 시리즈는 경기 용인의 호암미술관 숲 속에도 설치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작품에 작가이름과 작품명을 쓴 안내문을 설치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해변과 숲 속에 놓인 이 돌덩이 같은 것이 작품인 줄 모르고 즐기는 게 너무 편안해보였습니다. 신기한 게 관람객들이 작품이 생긴 모양대로 쉬더군요. 기대고, 눕고, 앉으면서…. 저마다 색다른 맛을 느끼며 즐기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이능호 작가) 도예가 이능호 작가와 박성욱 작가가 각각 전통옹기와 분청사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예작품을 선보이는 2인전을 열고 있다. 14일까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복합예술공간 ‘수애뇨339’에서 열리는 ‘굽과 합’ 전시회. 두 사람은 전통옹기를 제작하는 방식인 ‘타렴질’과 분청사기를 만드는 ‘덤벙기법’을 깊이 연마한 끝에 전혀 새로운 현대적인 도자기를 만들어냈다. 때로는 설치 조각작품처럼, 때로는 단색화 계열의 현대회화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깊은 명상과 수행 끝에 도달한 합일의 경지가 두 사람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전시회다. 이능호의 ‘집’과 그 이후 전시장에 들어서면 검은 쇳덩어리나 바위처럼 보이는 이능호 작가의 ‘집’ 작품이 군데군데 덩어리로 놓여 있다. 검은 쇳덩이 바위는 창 밖의 북한산을 배경으로 놓여 있기도 하고, 벽돌 담장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야외정원에도 놓여 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바위 위로 흰 눈이 쌓이기도 하고, 빗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기도 한다. 마치 장독대 항아리 위에 소복히 쌓인 눈처럼 곱고 하얀 눈이다. 두들겨 보지 않으면 도자기 작품인 줄도 모를 정도다. 이능호 작가의 ‘집’은 전통옹기 제작 기법인 타렴질로 흙가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두들겨 빚은 작품이다. 보통 옹기는 위가 열려 있어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을 담을 수 있는 항아리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작가의 ‘집’은 위가 막혀 있다. 그릇이 아니라 커다란 씨앗이나 알의 형상이다. 두들겨 보면 속은 텅비어 있어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진다. 씨앗이든, 알이든 생명을 품고 있다면 우주를 가득채울 수 있는 희망이 담긴 것이라는 상상이 펼쳐진다.벽에는 이능호 작가의 신각인 ‘집-그 이후’가 걸려 있다. 씨앗이 발아하거나 알이 깨지면서 새로운 생명체로 움트는 단계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도자기 덩어리 일부를 파내는 ‘투각’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는 심장의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가벼움도 느껴진다. -검은색 바위같은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전통 옹기를 제조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모양이 비정형이기 때문에 물레로 돌리기 보다는, 타렴을 통해 만들어냅니다. 옹기를 만들 때는 소나무로 깎아서 만든 도개와 수레라는 도구를 이용해 두드려서 모양을 잡는데요. 외벽은 기다란 방망이인 ‘수레’로 두드리고, 내벽은 둥근 나무인 ‘도개’로 다듬습니다. 그렇게 양손으로 치면서 형태를 잡아 기벽을 올립니다. 옹기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정말 재밌어요. 소리도 좋고, 온몸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창창’하는 소리와 함께 두드리는 울림이 매력적이죠.” -타렴이란 무엇인가요. “흙을 가락(흙타래)으로 만들어 코일처럼 쌓아올려 기벽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경기도 지방은 이렇게 타렴해서 한 개씩 코일링 해서 올리는데, 아랫 지방은 판을 밀어서 붙여서 치고 하는 방식으로 만들죠. 흙타래로 켜켜이 단을 돌려서 만들면서 마지막에 구멍을 좁게 해서 완전히 막습니다. 굳는 과정에서 계속 두드려서 형태를 잡기 때문에 밀도가 굉장히 강합니다. 그리고 1260도 고온에서 굽기 때문에 강도가 엄청나가 강해집니다.” 이 작가는 충북 청주에 있는 운보공방에서 타렴질과 수레, 도개로 두드려 만드는 전통옹기 제작기술을 전수받았고, 2014년부터는 현재처럼 뚜껑이 완전히 닫혀 있는 조형물같은 옹기 작업을 시작했다. 전통 옹기를 재해석해 현대적인 스토리와 감성을 담은 미술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바위를 닮은 ‘집’은 의자처럼 앉을 수도 있고, 그냥 실내와 야외에 오브제로 놓고 감상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은 바닷가에 놓여 있으면 섬처럼 보인다. 집 안이나 정원에 있어도 전혀 이물감 없이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이 작가는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낸 형태감에서 편안함과 명상의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옹기로 만든 ‘집’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요. “겉은 검은 돌모양이지만, 속에는 우주를 품고 있는 씨앗같은 형태를 상상해서 만든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둥그스름한 형태의 작품 끝이 모서리처럼 날이 서 있습니다. 씨앗은 움트기 직전, 발아할 부분에 이렇게 모서리가 생깁니다. 이 곳이 툭하고 터지면서 새싹이 돋아나죠. 씨앗에서 싹이 나오거나, 나무에서 새순이 나올 때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그런 좋은 기운이 들어 있다는 의미를 갖고 도자기 작업을 합니다. 어렵고 힘든 현실에서 씨앗의 좋은 기운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도자기 작품인데, 사람들이 올라가서 앉거나 기대도 깨지지는 않나요?“저는 ‘블랙 마운틴’이라는 흙을 씁니다. 서양에서 조형작업할 때 쓰는 점토인데요. 다 구워지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강도가 높습니다. 커다란 망치를 가지고 때리지 않는다면, 사람 손으로는 깨지 못할 겁니다(웃음). 닫혀 있는 형태감도 그렇고, 고온에서 구웠기 때문에 변형도 생기지 않습니다.”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투각 작품인 ‘집-그 이후’도 선보였다. 나뭇잎의 잎맥처럼 보이기도 하고, 버섯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혈관처럼 펄떡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집-그 이후’는 무엇을 표현한 것인가요. “ 그동안 만들어온 작품이 씨앗 자체라면, ‘집-그 이후’는 씨앗이 막 움터서 확장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민들레도 보면 꽃씨가 터져서 날개를 펴고 확장해 나가잖아요. 그대로 벽에 걸어놓아도 좋고, 테이블 위에 놓고 과일을 담거나, 꽃을 꽂아놓아 놓는 사람도 있더군요.” 굽과 합’은 카다 크리에이티브 랩(KADA Creative Lab)의 전혜정 대표가 기획한 2인전이다. 한국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현대화 작업을 선보이는 두 작가의 작품들을 통해 저마다의 삶을 지탱하며 떠받드는 ‘굽’ 그리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삶이 깃든 ‘합’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박성욱 작가의 분청사기 ‘편’전시장 맞은 편에는 박성욱 작가의 분청사기 작품이 있다. 그런데 더욱 파격적이다. 분청사기의 깨진 작은 조각인 ‘편(片)’을 이어붙여서 회화처럼 만들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분청사기는 고려말 조선초에 유행했던 자기다. 백자의 재료인 고령토가 확인되기 전, 청자 제작기법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조선초 최첨단 하이브리드 도자기 제작기법이었다. 청자의 태토 위에 백토를 입혀 말그대로 ‘분’을 바른 것처럼 하얗게 화장을 했다. 그 분칠 위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분방하고, 활달하고, 파격적인 무늬를 새겨넣었다. 특히 백토 물에 덤벙 담가 꺼낸 듯한 ‘덤벙분청사기’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백토분장의 백미였다. 사금파리로 불리는 ‘편(片)’은 도자기의 깨어진 작은 조각이다. 도자기를 구울 때 도공은 가마 속에서 제대로 형상을 갖추지 못한 그릇을 과감하게 깨어버린다. 자신의 기준에서 명품이 되지 못하고, 약간이라도 일그러진 그릇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완성 작품에서 안주하고, 과감히 깨어버리지 못한다면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성욱 작가는 바로 ‘덤벙 기법’으로 분청한 도자의 깨어진 작은 조각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낸다. 흙을 수집해 반죽하고, 도판을 만들어 작은 조각으로 자르고, 조각 조각을 화장토로 분장한 후에 장작가마로 오랜 기간 소성하는 작업이다. 이능호 작가의 옹기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박성욱 작가의 분청사기도 ‘도자기=그릇’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전시장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줄무늬가 인상적인 키 큰 자작나무 숲이다. 길쭉한 분청사기 조각을 덤벙 기법으로 화장을 한 뒤 자연스럽게 생기는 줄무늬를 연결해 세워놓은 작품이다. 줄무늬가 있는 조각은 자작나무가 되고, 줄무늬가 없는 조각은 자연스럽게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이 된다. -자작나무의 줄무늬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제가 이제 의도해서 만들어진 무늬는 아닙니다. 도자기 편을 덤벙작업을 하고 종이 위에 올려놓으면, 종이도 같이 마르면서 약 20%가량 쭈그러들어요. 그러면 쭈그러진 종이 때문에 뒷면에 화장토의 흔적이 남습니다. 완전히 마른 다음에 초벌구이를 하게 되면, 줄무늬가 있는 면이 있고, 없는 면이 생기게 되죠. 시유할 때 줄무늬가 있는 면을 살릴 것인지, 없는 면을 살릴 것인지 정하는 겁니다. 장작 가마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색이 다르게 나옵니다. 앞에 있는 것은 조금 더 화이트하게 나오고, 뒤, 옆 등 위치에 따라 환원에서 중성으로 가는 색깔도 있고, 다양하게 나옵니다.”-어쩌다 도자기 깨진 조각(편)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게 됐나요. “약 30년 전인 대학시절에 우리나라 옛 도요지를 답사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가마터에서 제가 호미를 들고 사금파리(사기그릇의 깨진 조각)를 캐고 있었어요. 가마가 있던 땅 속에는 도자기 구울 때 받치는 도침, 덩어리가 된 그릇들도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분청사기도 있고, 백자도 보이는 거예요. 분청사기는 15,16세기 때 것이고, 백자는 17세기부터 근대까지 만들어졌지요. 백자와 분청사기는 시대가 달랐을텐데, 동시에 발견하니 너무 신기했어요. 그 때 시간의 흐름을 느꼈어요. 현시대 제 발밑에서 15세기, 16세기, 17세기부터의 시간이 중첩돼 있다니 짜릿한 떨림을 느꼈습니다. 도자기 파편을 교수님 연구실에 가지고 가서 가지런히 놓고 보는데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이라는 제목으로 제 졸업작품 전시회를 가졌죠. 당시에는 조금 더 크고 다양한 편(조각)으로 작업했습니다. 이후 작게도, 길게도, 다양하게 편을 작업해봤고 현재 있는 양평 작업실로 오고 나서 형태를 조금 더 단순화시켰습니다.”-분청사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 졸업논문의 주제는 ‘분청사기 주전자’였는데요. 분청사기 그릇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자유분방한 매력에 빠져들었어요. 백자에도 자연스러움이 있고, 분청도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분청은 자유분방함의 깊이가 달라요. 분청은 세종대왕이 쓰시던 화려한 어기부터 서민적인 작품까지 자유로운 스타일이 있어요. 문양을 넣는 기법도 귀얄, 귀얄, 철화, 상감, 박지, 조화, 인화 등 다양하죠. 그런데 분청사기 중에 어찌보면 가장 밋밋한 스타일이 바로 제가 하고 있는 ‘덤벙 분청’입니다. 청자 흙으로 구운 다음에 하얀색 화장토에 덤벙 담갔다가 빼는 것이죠. 그런데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함 맛의 가장 정점에 ‘덤벙 분청’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단순하고, 밋밋하고, 심플한 스타일인데 그 안에서의 섬세하고, 부드럽고, 자유분방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더라고요.”분청사기 조각을 연결하니 하얀색 자작나무 숲이 됐던 작품은, 푸른색 우주공간에 황금빛 달무리 모양으로도 변신한다. ‘편-MOON 22301’은 도자기 편을 모아 달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다양한 색깔의 편을 모아 반짝임을 구현한 이 작품은 도자 과정의 무작위성을 기반으로 삼는다. 도자 원료인 흙 성분에 따라 색상이 달라지면서 다양한 빛깔의 편들로 탄생하는 것들을 모은 작품이다. 푸른색 계열의 다양한 편은 언뜻보면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환기 블루’ 빛을 연상케하는 회화작품처럼 보인다. 그런데 박 작가는 수없이 다른 푸른색 도자 조각을 이어붙여 우주를 만들어냈다. 물감으로 하나하나 칠해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일진데, 분청사기 조각을 구워서 하나하나 붙여나가가도면 6개월이 훌쩍 지난다고. 거대한 도서관에 책한권씩 꽂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팔만대장경을 이루는 것을 꿈꾸는 구도자의 수행(修行)과 같은 작업이다. -달을 그리려고 한 것인가요. “달을 그리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편이 하나씩 연결되면 이렇게 보여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편을 놓을 때는 그냥 놓는 것 같지만, 옆에 있는 색깔의 편에 맞춰 하나하나 선택해서 찾아서 넣는 과정에 의미가 있습니다. 예술은 노동을 넘어 수행하는 마음으로 해야한다고 할까요.”-다양한 푸른색 편은 어떻게 만들어내나요. “분청자기에서 푸른색을 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어요. 유약에 코발트를 섞기도 하고, 화장토에 코발트를 넣어 파란색 화장토를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저는 흙 자체에 코발트를 집어 넣습니다. 유약을 칠한 것도 아니고, 화장한 것도 아니죠. 흙에 코발트를 넣는 양에 따라 옅은 푸른색(코발트 비율 0.1~1%), 보통 푸른색(코발트 3~5%), 검푸른색(코발트 5~20%) 등 다양한 푸른색이 나옵니다. 가마에서 굽는 동안 열이 닿는 위치에 따라 더욱 다양한 푸른색이 나오죠. 거기에 덤벙작업을 하기도 하고, 재벌구이를 한 다음 금을 입히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수입한 도자기용 수금인데요. 그래서 제 작품은 삼벌구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의 작품 아랫쪽 구석에는 분청사기로 만든 탑들이 세워져 있다. 수백개의 분청사기 탑은 형태가 자유분방하다. 우리나라 전통 3층 석탑만 있는 것은 아니고, 서양의 종탑이나 기념비, 터키의 초승달 문양이 새겨진 탑 등 다양한 탑들이 놓여 있다. 마치 등산길에 소원을 빌며 사람들이 빼곡하게 세워놓은 돌탑처럼 보이는 풍경이다. - 분청사기 탑을 만들게 된 이유는?“편 작업을 쭉 해오다가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힘들어지는 슬럼프 시기가 왔었어요. 세월호라든가, 9.11테러, 코로나19 같은 뉴스를 볼 때도 그랬죠. 정말 아무 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적막한 작업실에 앉아서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서 시작한 거예요. 탑을 만들 생각도 없었어요. 책상에 앉아서 앞에 있는 편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본 겁니다. 그러다 보니까 탑이 되더라고요. 사람이 뭔가 마음이 공허할 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럴 때가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산길의 돌탑처럼 대단한 뭔가를 바라는 것은 것이 아니고, 그저 정성을 다하는 마음에서 쌓는 탑입니다.”박 작가는 그동안 평면적인 편작업을 벗어나 입체적인 작품도 시도하고 있다. 다음엔 연탄을 덤벙으로 분청하고, 도자기처럼 구워낸 작품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환경위기를 생각하는 작품이다. “대학시절 교수님이 ‘도자기 안에 우주가 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하도 어떻게 그릇 안에 우주가 있지? 하도 인상적인 말이라 일기장에 적어놨습니다. 선생님이 그 말을 했던 날의 분위기도 기억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30년 넘도록 작업을 하다보니까, 정말 도자기 안에 우주가 있더라고요.”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본 홋카이도 서남부 항구도시 하코다테(函館)는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靑森)를 마주 보고 있다. 쓰가루 해협은 동해와 태평양을 잇는 좁은 통로의 바다. 일본 첫 개항장이던 하코다테에서 이국적인 야경을 감상하고,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는 아오모리 원시림 계곡에서 봄을 부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일본 첫 개항장 하코다테 야경오전 6시,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알람을 맞춰 놓지는 않았지만 하코다테 명물인 아침시장(朝市)에 가 보겠다는 생각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창밖을 보니 눈보라가 심하게 치고 있다. 저 눈발을 뚫고 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결론은 고(GO)! 언제 또 저런 홋카이도 눈발을 온몸으로 맞아 볼까나.하코다테 기차역 주변 아침시장 식당에서는 연어알과 생선회를 비롯한 해산물을 얹은 덮밥(카이센동)을 팔고, 시장에선 홋카이도 북방게와 연어, 굴을 팔고 있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있는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하코다테 특산물은 뭐니 뭐니 해도 오징어다. 주문진 항구 노천시장처럼 골목골목 이어지는 수산시장에서는 오징어를 얇게 채 썬 오징어 소면(이카 소멘)이 명물이다.하코다테는 1853년 흑선(黑船)을 몰고 도쿄만(灣)에 나타난 미국 페리 제독이 이듬해 막부 정부와 맺은 ‘미일 화친조약’을 통해 처음으로 외국에 문을 연 항구다. 당시 미국은 왕성하던 포경업(捕鯨業) 전진기지로 하코다테항을 요구했다. 이후 다른 나라에도 문호를 개방하면서 외국 선원들이 밀려들었다. 영국 러시아 영사관이 설치되고, 영국 성공회와 러시아 정교회 회당이 세워졌다. 인천 개항장 거리와 개화기 각국 공관이 몰려 있던 서울 정동길 ‘눈 내리는 교회당’ 분위기와도 비슷하다.하코다테항에는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카네모리 아카렌가 창고군(倉庫群)’이 도열해 있다. 하코다테가 교역항으로 전성기이던 시절 세워진 창고다. 검푸른 바닷물과 붉은 벽돌, 흰 눈과 화려한 네온이 어우러진 창고는 지역 특산품을 파는 쇼핑몰로 변신했다. 항구에서 하코다테산(해발 334m) 방향으로 하치만자카(八幡坂) 언덕을 오르다 보면 서양풍 건물이 가득하다. 옛 하코다테 공회당과 옛 영국 영사관과 성공회 회당, 러시아 정교회 소속 하리스토스 정교회 회당, 프랑스 가톨릭 성당인 모토마치 성당 등이 이국적이다. 이번에는 케이블카인 로프웨이를 타고 하코다테산을 올라 ‘일본 3대 야경’으로 불리는 하코다테 야경을 보러 갈 차례다. 케이블카를 타면 바다가 보이는 쪽 창문에 바짝 붙어야 한다. 점점 올라갈 때마다 보석처럼 화려한 야경이 펼쳐친다. 항구 불빛뿐 아니라 바다 위를 휘황찬란하게 수놓는 오징어잡이배 어화(漁火)까지 한몫한다.일본과 외세가 최초로 부딪친 경계 지점인 하코다테는 막부 정권 구세력과 메이지 정부 신세력이 맞붙은 치열한 내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무대는 별 모양 오각형 요새 고료카쿠(五稜郭). 사무라이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하코다테 전쟁 유적지다.1864년에 준공된 서양식 보루(성곽)인 고료카쿠는 면적이 도쿄돔 약 5배에 이르는 규모다. 성곽 맞은편 고료카쿠타워에 오르면 해자가 깊게 파여 있는 별 모양 요새가 한눈에 들어온다.고료카쿠는 에도(도쿠가와) 막부가 당시 관청으로 사용하던 하코다테 부교쇼(奉行所) 방비를 목적으로 만든 성이다. 하코다테가 개항하고 3년 후인 1857년 착공했다. 별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방어군의 사각(死角)을 줄일 수 있는 유럽 성곽도시 축성법을 연구해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최대 서양식 보루 고료가쿠는 1868년 말부터 도쿠가와 막부 탈주병과 메이지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하코다테 전쟁의 무대가 된다. 구세력 반(反)정부군은 메이지 신정부에 맞서 ‘에조(蝦夷) 공화국’ 건국을 선언하면서까지 맞섰지만 결국 7개월 만에 진압된다.흥미로운 것은 도쿠가와 막부에 고용됐던 프랑스군 군사 교관 줄 브뤼네 대위와 그의 부하 4명이 반정부군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에 등장하는 전(前) 미군 대위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분)은 브뤼네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들은 최후까지 막부를 위해 분전한 마지막 사무라이로 소설과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하코다테는 김포공항에서 오전 7시50분 출발하는 일본항공(JAL)을 타고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국내선으로 환승하면 오후 2시경 도착한다. 쓰가루해협을 마주 보고 있는 아오모리로 가기 위해서는 신칸센 하야부사를 타고 세이칸(靑函) 해저터널(총연장 53.85km)을 건너야 한다. 기차역에서 파는 에키벤(駅弁) 도시락을 먹다 보니 1시간여 만에 해저터널을 지나 아오모리에 도착했다. ● 아오모리 원시림 빙폭(氷瀑) 투어아오모리현 남부에 있는 도와다하치만타이(十和田八幡平)국립공원에 들어서면 아오모리의 뜻이 왜 ‘푸른 숲’인지 실감하게 된다. 해발 400m 도와다산 정상 칼데라호수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길이 약 14km인 오이라세(奧入瀨) 계류(溪流·계곡물)를 타고 흘러간다. 오이라세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여울이 많아진다’는 뜻다. 그 말대로 오이라세 계류는 상류로 올라갈수록 급류가 되어 많은 폭포를 만들어낸다.도와다하치만국립공원 청정 원시림에 자리 잡은 호시노 리조트에서 계류의 물소리에 잠을 깼다. 이 호텔은 벽면 곳곳이 이끼와 빙폭(氷瀑·얼음폭포)으로 장식돼 있다. 복도 벽면 내부에는 물을 주는 장치가 있어 습기에 민감한 이끼가 잘 자란다. 또한 흰 눈이 쌓인 계류를 바라보는 노천온천 주변에는 얼음폭포가 장관을 이룬다.오이라세 계류는 가을 단풍으로 손꼽히는 명소지만 겨울에는 얼음폭포를 탐험하는 트레킹도 인기다. 리조트에는 소형버스를 타고 계류 빙폭을 구경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버스는 계류에 있는 14개 폭포마다 잠시 정차해 해설사가 설명을 해주고, 가끔씩 승객들이 폭포 아래까지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준다.가도 가도 끝없던 계류가 갑자기 끝나고 시야가 툭 터진다. 아오모리현과 아키타현에 걸쳐 있는 바다 같은 호수 ‘도와다(十和田)호’다. 호수가 댐 역할을 하고 있어서 오이라세 계류는 1년 내내 흐르는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계류가 범람하지 않는 덕분에 바위에 무성하게 자라는 이끼를 보러 오는 여행객들 발걸음이 이어진다.오이라세 계류에서는 태풍이나 폭설에 나무가 쓰러져 계곡을 덮쳐도, 쓰러진 나무를 치우지 않는다고 한다. 쓰러진 나무는 자연스럽게 작은 짐승들이 넘어 다니는 다리가 되고, 그 나무에서는 또다시 이끼가 자라난다. 겨울철 야간에 폭포를 탐험하는 ‘빙폭 라이트 업 투어’도 국립공원이라 전기시설을 설치할 수가 없어 대형 LED등(燈)을 실은 이동식 조명차가 따라다닌다.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얼음폭포를 감상하는 아이디어인 셈이다.아오모리 설경은 일본 100대 명산으로 꼽힌 핫코다(八甲田)산(해발 1580m)에서도 볼 수 있다. 길이 2.4km 핫코다 로프웨이에 몸을 실으면 10분 만에 정상에 오른다. 이곳 최고 명물은 스노우 몬스터로 불리는 수빙(樹氷)이다. 도도마츠(분비나무)에 얼음과 눈이 붙어 마치 춤추다 얼어붙은 것 같은 익살스런 괴물이 수백 개 서 있다. 높이 4~5m나 되는 자연이 만들어 낸 예술작품인 아오모리 수빙의 절정은 3월 중순까지다. 스키를 타고 수빙 사이로 지나가는 스키장 자연설(雪)은 4월 말까지 즐길 수 있다.8월 초 열리는 아오모리 축제인 ‘네부타 마츠리’는 매년 약 300만 명이 찾는 대표적인 지역 축제. 그 해 가장 잘 만든 것으로 뽑힌 전통 등불수레는 아오모리역 근처 ‘네부타의 집 와랏세(WARASSE)’에 상설 전시된다. 미사와에 있는 ‘호시노 리조트 아오모리야’에서는 네부타 마츠리를 테마로 한 노천 온천이 있고 관련 공연도 펼쳐진다. 아오모리현 도와다시에 있는 도와다현대미술관은 연간 100만 명 넘는 방문객이 찾는다.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호박 조형물 놀이터를 비롯해 비틀스 존 레넌의 아내 오노 요코의 ‘평화의 종’, 아오모리 출신 세계적 팝아트 작가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의 ‘요로시쿠 소녀’ 등이 전시돼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건축물-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전면에 비스듬한 거울을 설치해,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외벽에 매달린 것 같은 재미있는 모습이 연출된다. 한국인 조각가 최정화의 ‘꽃말(Flower Horse)’과 서도호의 ‘인과(Cause and Effect)’도 만날 수 있다.하코다테, 아오모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일본 홋카이도 서남부 항구도시 하코다테(函館)는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靑森)를 마주 보고 있다. 쓰가루 해협은 동해와 태평양을 잇는 좁은 통로의 바다. 일본 첫 개항장이던 하코다테에서 이국적인 야경을 감상하고,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는 아오모리 원시림 계곡에서 봄을 부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일본 첫 개항장 하코다테 야경 오전 6시,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알람을 맞춰 놓지는 않았지만 하코다테 명물인 아침시장(朝市)에 가 보겠다는 생각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창밖을 보니 눈보라가 심하게 치고 있다. 저 눈발을 뚫고 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결론은 고(GO)! 언제 또 저런 홋카이도 눈발을 온몸으로 맞아 볼까나. 하코다테 기차역 주변 아침시장 식당에서는 연어알과 생선회를 비롯한 해산물을 얹은 덮밥(카이센동)을 팔고, 시장에선 홋카이도 북방게와 연어, 굴을 팔고 있었다. 울릉도와 독도가 있는 동해를 마주하고 있는 하코다테의 특산물은 뭐니 뭐니 해도 오징어다. 주문진 항구 노천시장처럼 골목골목 이어지는 수산시장에서는 오징어를 얇게 채 썬 오징어 소면(이카 소멘)이 명물이다. 하코다테는 1853년 흑선(黑船)을 몰고 도쿄만(灣)에 나타난 미국 페리 제독이 이듬해 막부 정부와 맺은 ‘미일 화친조약’을 통해 처음으로 외국에 문을 연 항구다. 당시 미국은 왕성하던 포경업(捕鯨業) 전진기지로 하코다테항을 요구했다. 이후 다른 나라에도 문호를 개방하면서 외국 선원들이 밀려들었다. 영국 러시아 영사관이 설치되고, 영국 성공회와 러시아 정교회 회당이 세워졌다. 인천 개항장 거리와 개화기 각국 공관이 몰려 있던 서울 정동길 ‘눈 내리는 교회당’ 분위기와도 비슷하다.하코다테항에는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카네모리 아카렌가 창고군(倉庫群)’이 도열해 있다. 하코다테가 교역항으로 전성기이던 시절 세워진 창고다. 검푸른 바닷물과 붉은 벽돌, 흰 눈과 화려한 네온이 어우러진 창고는 지역 특산품을 파는 쇼핑몰로 변신했다. 항구에서 하코다테산(해발 334m) 방향으로 하치만자카(八幡坂) 언덕을 오르다 보면 서양풍 건물이 가득하다. 옛 하코다테 공회당과 옛 영국 영사관과 성공회 회당, 러시아 정교회 소속 하리스토스 정교회 회당, 프랑스 가톨릭 성당인 모토마치 성당 등이 이국적이다. 이번에는 케이블카인 로프웨이를 타고 하코다테산을 올라 ‘일본 3대 야경’으로 불리는 하코다테 야경을 보러 갈 차례다. 케이블카를 타면 바다가 보이는 쪽 창문에 바짝 붙어야 한다. 점점 올라갈 때마다 보석처럼 화려한 야경이 펼쳐친다. 항구 불빛뿐 아니라 바다 위를 휘황찬란하게 수놓는 오징어잡이배 어화(漁火)까지 한몫한다. 일본과 외세가 최초로 부딪친 경계 지점인 하코다테는 막부 정권 구세력과 메이지 정부 신세력이 맞붙은 치열한 내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무대는 별 모양 오각형 요새 고료카쿠(五稜郭). 사무라이 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하코다테 전쟁 유적지다. 1864년에 준공된 서양식 보루(성곽)인 고료카쿠는 면적이 도쿄돔 약 5배에 이르는 규모다. 성곽 맞은편 고료카쿠타워에 오르면 해자가 깊게 파여 있는 별 모양 요새가 한눈에 들어온다.고료카쿠는 에도(도쿠가와) 막부가 당시 관청으로 사용하던 하코다테 부교쇼(奉行所) 방비를 목적으로 만든 성이다. 하코다테가 개항하고 3년 후인 1857년 착공했다. 별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방어군의 사각(死角)을 줄일 수 있는 유럽 성곽도시 축성법을 연구해서 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최대 서양식 보루 고료카쿠는 1868년 말부터 도쿠가와 막부 탈주병과 메이지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하코다테 전쟁의 무대가 된다. 구세력 반(反)정부군은 메이지 신정부에 맞서 ‘에조(蝦夷) 공화국’ 건국을 선언하면서까지 맞섰지만 결국 7개월 만에 진압된다. 흥미로운 것은 도쿠가와 막부에 고용됐던 프랑스군 군사 교관 줄 브뤼네 대위와 그의 부하 4명이 반정부군에 합류했다는 점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에 등장하는 전(前) 미군 대위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분)은 브뤼네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들은 최후까지 막부를 위해 분전한 마지막 사무라이로 소설과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하코다테는 김포공항에서 오전 7시50분 출발하는 일본항공(JAL)을 타고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국내선으로 환승하면 오후 2시경 도착한다. 쓰가루해협을 마주 보고 있는 아오모리로 가기 위해서는 신칸센 하야부사를 타고 세이칸(靑函) 해저터널(총연장 53.85km)을 건너야 한다. 기차역에서 파는 에키벤(駅弁) 도시락을 먹다 보니 1시간여 만에 해저터널을 지나 아오모리에 도착했다. ● 아오모리 원시림 빙폭(氷瀑) 투어 아오모리현 남부에 있는 도와다하치만타이(十和田八幡平)국립공원에 들어서면 아오모리의 뜻이 왜 ‘푸른 숲’인지 실감하게 된다. 해발 400m 도와다산 정상 칼데라호수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길이 약 14km인 오이라세(奧入瀨) 계류(溪流·계곡물)를 타고 흘러간다. 오이라세는 ‘안으로 들어갈수록 여울이 많아진다’는 뜻다. 그 말대로 오이라세 계류는 상류로 올라갈수록 급류가 되어 많은 폭포를 만들어낸다. 도와다하치만타이국립공원 청정 원시림에 자리 잡은 호시노 리조트에서 계류의 물소리에 잠을 깼다. 이 호텔은 벽면 곳곳이 이끼와 빙폭(氷瀑·얼음폭포)으로 장식돼 있다. 복도 벽면 내부에는 물을 주는 장치가 있어 습기에 민감한 이끼가 잘 자란다. 또한 흰 눈이 쌓인 계류를 바라보는 노천온천 주변에는 얼음폭포가 장관을 이룬다.오이라세 계류는 가을 단풍으로 손꼽히는 명소지만 겨울에는 얼음폭포를 탐험하는 트레킹도 인기다. 리조트에는 소형버스를 타고 계류 빙폭을 구경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버스는 계류에 있는 14개 폭포마다 잠시 정차해 해설사가 설명을 해주고, 가끔씩 승객들이 폭포 아래까지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준다. 가도 가도 끝없던 계류가 갑자기 끝나고 시야가 툭 터진다. 아오모리현과 아키타현에 걸쳐 있는 바다 같은 호수 ‘도와다(十和田)호’다. 호수가 댐 역할을 하고 있어서 오이라세 계류는 1년 내내 흐르는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계류가 범람하지 않는 덕분에 바위에 무성하게 자라는 이끼를 보러 오는 여행객들 발걸음이 이어진다. 오이라세 계류에서는 태풍이나 폭설에 나무가 쓰러져 계곡을 덮쳐도, 쓰러진 나무를 치우지 않는다고 한다. 쓰러진 나무는 자연스럽게 작은 짐승들이 넘어 다니는 다리가 되고, 그 나무에서는 또다시 이끼가 자라난다. 겨울철 야간에 폭포를 탐험하는 ‘빙폭 라이트 업 투어’도 국립공원이라 전기시설을 설치할 수가 없어 대형 LED등(燈)을 실은 이동식 조명차가 따라다닌다.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얼음폭포를 감상하는 아이디어인 셈이다.아오모리 설경은 일본 100대 명산으로 꼽힌 핫코다(八甲田)산(해발 1580m)에서도 볼 수 있다. 길이 2.4km 핫코다 로프웨이에 몸을 실으면 10분 만에 정상에 오른다. 이곳 최고 명물은 스노우 몬스터로 불리는 수빙(樹氷)이다. 도도마츠(분비나무)에 얼음과 눈이 붙어 마치 춤추다 얼어붙은 것 같은 익살스런 괴물이 수백 개 서 있다. 높이 4∼5m나 되는 자연이 만들어 낸 예술작품인 아오모리 수빙의 절정은 3월 중순까지다. 스키를 타고 수빙 사이로 지나가는 스키장 자연설(雪)은 4월 말까지 즐길 수 있다. 8월 초 열리는 아오모리 축제인 ‘네부타 마츠리’는 매년 약 300만 명이 찾는 대표적인 지역 축제. 그 해 가장 잘 만든 것으로 뽑힌 전통 등불수레는 아오모리역 근처 ‘네부타의 집 와랏세(WARASSE)’에 상설 전시된다. 미사와에 있는 ‘호시노 리조트 아오모리야’에서는 네부타 마츠리를 테마로 한 노천 온천이 있고 관련 공연도 펼쳐진다.아오모리현 도와다시에 있는 도와다현대미술관은 연간 100만 명 넘는 방문객이 찾는다.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草間彌生)의 호박 조형물 놀이터를 비롯해 비틀스 존 레넌의 아내 오노 요코의 ‘평화의 종’, 아오모리 출신 세계적 팝아트 작가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의 ‘요로시쿠 소녀’ 등이 전시돼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건축물-부에노스아이레스’는 전면에 비스듬한 거울을 설치해,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건물 외벽에 매달린 것 같은 재미있는 모습이 연출된다. 한국인 조각가 최정화의 ‘꽃말(Flower Horse)’과 서도호의 ‘인과(Cause and Effect)’도 만날 수 있다.글·사진 하코다테·아오모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태국 남부 푸켓섬에서 미얀마 국경까지 이어지는 안다만해의 시밀란(Similan) 국립공원은 9개 섬으로 이뤄진 군도다. 시밀란은 말레이시아어로 숫자 ‘9’라는 뜻. 198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시밀란 군도는 해양 생태계 보존을 위해 1년에 단 6개월(11월~4월) 건기철에만 관광객에게 개방한다. 그래서 200종 이상의 산호초가 자라며, 고래상어, 만타 가오리, 나폴레옹 피쉬 등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푸켓은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섬이지만, 이번엔 시밀란 국립공원을 4박5일간 배를 타고 바닷 속 비경을 탐험하는 특별한 투어를 떠났다. 오로지 배 안에서만 먹과 자고 생활하며 다이빙하는 ‘리브어보드(liveaboard)’ 여행이다. ● 리슐리외락의 마피아 갱단“시밀란 국립공원은 대형어종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다이빙 백화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리슐리외락(Richellieu Rock)은 ‘명품관’이라고 할 수 있죠.” 태국 푸켓 카오락 해변의 타플라무 항구에서 출발한 리브어보드(Liveaboard) 다이빙 사흘째 날 아침. 리틀 프린세스(Little Princess)호는 드디어 미얀마 국경 근처까지 왔다. 이번 다이빙의 하이라이트인 리슐리외락 포인트에 도착한 것이다. 태국 현지 다이빙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차다 강사는 입수 전 브리핑에서 “왜 명품관이라고 불리는지 들어가보면 안다. 어젯밤에도 난리였고, 지금도 난리고, 앞으로도 난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바닷 속이 난리라는 뜻은 무엇일까. 궁금증과 함께 기대감이 부풀었다. 리슐리외 락은 썰물때마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나는 암초다. 1900년대 초 이 암초를 발견한 태국 왕립 해군사령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설이 있고, 붉은 산호초가 프랑스 루이 13세 때 실력자였던 리슐리에 추기경의 수단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리슐리외 락은 썰물때마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나는 암초다. 물 속에 크고 작은 바위 절벽들이 말발굽처럼 유(U)자 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둥그런 형태의 바위 계곡은 프로야구장 규모의 크기로 산호초와 물고기들의 천국이다.수십억만 마리의 치어떼부터 트럼펫 피쉬, 옐로 스내퍼 등 작은 물고기 뿐 아니라 참치, 바라쿠다, 자이언트 트레발리(GT), 고래상어, 만타가오리 등 대형 어류들이 갱단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곳이다. 동틀녘인 오전 7시. 배에서 뛰어내린 후 부력조절용 조끼(BCD)에 공기를 빼고 천천히 입수했다. 수심 20m까지 바닥에 내려간 후 산호초 지대를 지나고 계곡안으로 들어섰다. 물 속에 고기가 많을 때 ‘물반 고기반’이라고 하는데, 이 곳은 ‘물 3, 고기 7’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사람 얼굴만큼 큰 물고기들이 몰려다니는 데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오히려 “야! 비켜”하며 내 몸을 툭툭 건드리며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대형 물고기들이 펑펑 터뜨리고 다니는 흰색 액체로 바닷물은 뿌옇다. 번식을 위해 수컷이 정액을 내뿜는 장면이다. 물 속에 떠다니는 허연 것들은 곧 수정이 돼 치어떼가 된다. 치어떼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글래스 피쉬(Glass Fish)다. 뼈까지 보일 정도로 투명한 물고기라 랜턴을 비출 때마다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보라색 산호 위로 글래스 피쉬가 하얀 안개 구름이 낀 것처럼 너울거린다.입을 벌리고 빠르게 달려드는 천적을 피해 갑자기 파도처럼 갈라지고,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린다. 수천마리의 글래스 피쉬는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의 주자처럼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파도와 같은 너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치어떼들의 바이올린 연주가 끝나자 갑자기 플루트가 등장한다. ‘트럼펫 피쉬’로 불리는 은빛으로 길쭉한 물고기다. 금관악기인 트럼펫보다는 목관악기인 플루트와 더 비슷하게 생긴 모습이다.옆에는 노란색 몸통에 옅은 하늘색 무늬가 있는 옐로우 스내퍼와 병어를 닮은 뱃피쉬(batfish)가 온몸을 펄럭이며 산들산들 왈츠를 춘다. 수중 교향곡은 3악장에서 갑자기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대물들의 행진이다. 은빛 철갑을 두른 자이언트 트레발리(GT), 통통한 뱃살의 참치, 기다란 코를 가진 롱노우즈 엠퍼러가 섞인 무리들이 행군을 시작한다. 저멀리 트레발리 떼가 스쿨링(Schooling)을 하고 있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모습이 토네이도 기둥같다. 살금살금 다가가 자이언트 트레발리 떼 안으로 들어간다. 나를 가운데 두고 빙글빙글 도는 거대한 물고기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아찔하다. 스쿨링은 크기와 연령대가 비슷한 물고기들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듯이 일정한 방향으로, 간격을 맞춰서 잘 조직된 형태로 움직이는 것. 사람들이 학교나 군대에서 생활하는 것과 비슷한 형태다. 이렇게 스쿨링을 하는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습격당할 위험을 줄이고, 헤엄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고, 먹이를 좀더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콰과과쾅~! 음악은 헤비메탈 록으로 바뀐다. 10여m 아랫쪽 바닥의 산호초가 갑자기 뿌연 모래 먼지로 휩싸였다. 산호초 위에는 시커먼놈-빛나는놈-허연놈-얼룩덜룩한 놈들까지 수백마리가 마구 섞여서 난장판이다. ‘리슐리외락 마피아 갱단’은 은행이나 상점을 털어가듯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산호초 사이에 숨어 있는 오징어나 물고기 알같은 것을 먹는다. 산호초를 턴 갱단과 정어리처럼 작은 물고기들의 쫓고 쫓기는 싸움으로 물 속은 다이내믹 그 자체다. 차다 강사가 “물 속에 들어갈 때마다 난리다”라고 한 말 뜻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이번에는 머리 위로 바라쿠다가 떼를 지어 이동한다. 기다랗고 날씬한 몸통에는 세로로 얼룩덜룩한 줄무늬가 새겨져 있다. 어디론가 집단폭격을 위해 날아가고 있는 은빛 미사일부대같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에서 인더스트리아에서 온 배의 이름이 ‘바라쿠다 호’였다. 위풍당당한 포식자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 배 안에서만 4박5일 리브어보드 다이빙 부킹닷컴(booking.com)이 조사한 ‘2025 주목할만한 세계 7대 여행트렌드’에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의 모험여행이 있다. 요즘 50~60대는 동굴 다이빙, 남극 캠핑, 화산 보딩 등 젊은이들 못지 않게 체력과 담력을 요하는 스릴넘치는 모험 여행을 즐긴다. 기자도 50대에 접어들었던 2020년. 대학 친구들과 함께 하는 다이빙 동호회에 가입했다. 실내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은 후 동해 강릉, 양양, 고성, 남해 거제, 통영, 제주, 울릉도까지 국내 다이빙을 줄기차게 다녔다. 드디어 이달 초. 생애 첫 해외 ‘리브어보드(Liveaboard) 다이빙’에 도전했다. 4박5일간 배 안에서만 생활하면서 섬과 포인트를 이동하며 오로지 다이빙만 하는 여행이다. 주로 연안근처에서만 이뤄지는 스쿠버다이빙과 달리 수백km 떨어진 평소 쉽게 가지 못하는 바닷 속 비경 포인트까지 찾아다니는 여행이다.동틀때부터 해질녘까지 하루 4차례 다이빙을 하기 때문에 체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다이빙 입문자 단계인 ‘오픈 워터(Open Water)‘를 넘어 ‘어드밴스드 다이버(Advanced Diver)’ 등급이 돼야 리브어보드 승선이 가능하다. 최소 20회 이상의 다이빙 로그 경험과 교육훈련을 수료해야만 가능한 라이선스다. 리틀 프린세스호는 길이 40m, 폭 8m로 약 30여 명의 인원이 이용할 수 있는 객실과 식당, 휴게실, 샤워실 등을 갖춘 큰 배다. 태국에서 유명한 CEO인 선주가 다이빙을 좋아해 다이버들을 위한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시밀란 국립공원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뽑은 세계 10대 다이빙 명소다. 첫 다이빙을 한 ‘아니타의 산호초(Anita’s Reef)’ 포인트에는 2004년도 푸켓 쓰나미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물이 있었다. 모래 바닥에 세워진 ‘황도 12궁도(Zodiac)’ 조형물에는 산호들이 많이 자라나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었다.‘코끼리 머리 바위(Elephant Head Rock)’ 포인트의 수중에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들이 동굴과 협곡을 이루고 있다. 다이내믹한 리슐리외락과 달리 타차이 섬, 코본 섬에는 정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모래사장에는 스팅레이가 꼬리를 흔들며 헤엄을 친다. 너비가 35cm를 넘지 않는 비교적 작은 가오리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영락없이 가오리 연을 닮았다. 등에 푸른 점이 있어 특별히 ‘블루 스팟 리본테일 레이(Blue Spotted Ribontail Ray)’로 불린다. 절벽과 산호 사이 곳곳에는 자그맣고 예쁜 아이들이 숨어 살고 있다. 긴 몸뚱아리의 반쯤만 내놓고 이빨을 드러내놓고 숨을 쉬고 있는 곰치도 그 중 하나다. 제주에서 ‘쏠배감팽’이라고 불리는 라이언 피쉬도 절벽 곳곳에 숨어 있다.그런가 하면 산호초와 바위 절벽 속에서 총천연색의 연체동물인 민달팽이 ‘누디’, 나뭇가지를 닮은 물고기 ‘고스트 파이프 피쉬’, 작고 귀여운 해마, 랍스터와 만티스 새우를 찾는 것은 바닷 속에서 보물찾기를 하는 것과 같다. 리브어보드 여행이지만 딱 한번 육지에 상륙하기도 한다. 시밀란 군도 중 가장 큰 8번 섬 ‘코 시밀란(Koh Similan)’. 해변에는 요트의 돛처럼 생긴 세일락(Sail Rock)이 우뚝 서 있다. 해변에 상륙해 150m 정도 숲길을 걸어올라가면 세일락 뷰포인트에 도착한다.이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초승달 모양의 해변은 오랜세월 파도에 깎여 가루가 된 산호모래로 덮여 있다. 설탕처럼 희고 고운데다 거의 투명하기까지 한 모래가 빛을 반사한 덕분에 해변은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한 푸른색으로 빛난다. 이른바 ‘아이스 블루(Ice Blue)’ 빛 바닷물이 어찌나 투명한지 배들이 공중에 그냥 동동 떠 있는 것 같다. 이번 투어 도중 고래상어와 만타레이를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시밀란에 다녀온 후 며칠 뒤 현지 가이드였던 토미가 SNS로 영상을 보내주었다. 코본 섬에서 만난 만타가오리(Manta Ray)였다. 거대한 만타가 날개를 우아하게 펄럭이며 헤엄치는 모습은 꿈 속에서 만난 듯 환상적이었다. 만타는 성체의 경우 날개를 쫙 편 너비가 6~7m에 이르고, 몸무게가 1톤~1.5톤에 이르는 초대형 어류.영화 ‘니모를 찾아서’에서 작은 물고기 수십마리를 등에 태우고 학교에 데려다주던 녀석이다. 어찌됐든 토미가 보내준 영상으로 시밀란 바닷 속에 살고 있는 만타를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어 고마웠다. 지금도 만타는 신밧드가 타고 다니는 양탄자처럼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안다만해를 헤엄치고 있겠지…. ● 파통비치에서 다시 만난 시밀란의 추억 푸켓의 관광명소인 파통 비치(Patong Beach)는 글로벌 관광지다. 끝없이 펼쳐진 해변 뒤쪽으로 야시장과 바, 해산물식당, 마사지숍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러시아, 동유럽, 중동,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글로벌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그런데 파통비치 곳곳에서 시밀란 바닷 속에서 봤던 수중 생물을 만날 수 있어 신기했다. 파통비치의 가장 큰 쇼핑몰인 정실론(Jungceylon)의 중앙광장 흰색 천막 밑에는 물고기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형상의 조형물이 있다. 바로 리셸리우락에서 봤던 자이언트 트레발리(GT) 떼의 스쿨링 장면이었다.파통비치 해산물 야시장에서는 살아 있는 만티스 새우(Mantis Shrimp)를 만났다. 시밀란 바닷 속 바위 밑에서 발견했을 때 알록달록한 색깔이 무척 예뻤던 가재를 닮은 새우다. 가격은 랍스터 만큼이나 비쌌지만 물 속에서 볼 때부터 꼭 한번 먹고 싶었다.그래서 2마리만 시켰더니 마늘 양념을 듬뿍 넣은 그릴 새우로 요리돼 나왔다. 랍스터는 딱딱해서 껍질까지 먹기 어려운데, 만티스는 새우라 그런지 기름에 튀기니까 껍질까지 바삭바삭 씹히는 맛이 좋았다. 파통비치의 바에서는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뮤직맨 스팅레이(Stingray)’ 4현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전설적 록그룹 ‘퀸’의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연주하던 모델인 ‘스팅레이’는 시밀란의 바닷속 모래바닥에서 반쯤 파묻혀 있던 바로 그 가오리를 닮았다.태국의 마트에서는 리슐리외락의 글래스 피쉬를 닮은 ‘해바라기 씨앗’을 팔고, ‘똠양꿍 신라면’도 판다. 한국의 신라면이 태국의 셰프와 협업해서 만든 것으로, 태국 마트에서만 살 수 있는 별미의 라면이다. 시밀란 국립공원(태국)=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