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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나를 마주하는 시간’은 사치다. 업무에 쫓기고 관계에 얽매인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대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군위 사유원(思惟園)에서 건축과 자연을 거닐며 명상에 잠기고,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그림 속 미인과 홀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 보자. ● 대구는 ‘미인도’의 도시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2024년 가을 대구에도 문을 열었다.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훈민정음해례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혜원전신첩’ 같은 국보급 문화재를 다수 소장하고 있지만 그동안 대중과 쉽게 만날 수 없었다. 대구 대덕산 자락에 오픈한 대구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우리 미술품을 지킨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컬렉션을 상설로 선보일 수 있는 규모의 전시 시설이다.산자락 경사지에 계단식 건물로 층층이 자리 잡고 있는 대구간송미술관 입구에서는 11개의 소나무 기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육중한 콘크리트 지붕을 붉은 소나무 기둥들이 떠받쳐 허공에 널찍하고 시원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소나무 기둥 아래에는 자연석 주춧돌이 그렝이 공법(불규칙한 자연석 굴곡을 그대로 기둥 밑면에 다듬어 톱니처럼 맞물리게 하는 전통 건축 공법)으로 튼튼하게 떠받치고 있다. 미술관 앞쪽에는 ‘물의 정원’도 있는데, 지하 1층 전시실에서 창문 너머로 소나무와 물이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골 물 옆에 심은 소나무’란 뜻의 간송(澗松)을 건축적으로 해석한 정원이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푸르고, 계곡물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역사의 혹독함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간송의 신념을 한눈에 보여 주는 정원이다.대구간송미술관은 지난해 26만5000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았다. 그중 절반가량인 49%가 대구 밖 지역 방문객이었다. 지방 미술관이 이토록 인기를 끈 가장 큰 공신은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다. 관람객들은 한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미인도를 만나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전시장 어두운 방 한가운데 오로지 미인도 한 점만 배치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보 반가사유상 2점만 관람할 수 있는 ‘사유의 방’이 있는 것처럼. 관람객들은 작품 속 미인과 어둠 속에서 1대1로 독대하는 색다른 경험에 빠져들었다. 가체(加髢)를 얹고 다소곳이 서서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는 여인의 자태. 넓은 이마, 가는 눈썹, 앵두 같은 붉은 입술, 가녀린 어깨. 연녹색 치마는 백자 항아리를 닮았고, 단아한 저고리는 정숙함이 풍겨져 나온다. 그러면서도 치마폭 아래로 버선발 한 쪽이 살짝 내비치는 순간의 관능적 여백! 이 모든 것을 하나의 화면에 담아낸 솜씨는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숨을 멎게 한다. 그러나 신윤복의 미인도를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것은 바로 눈빛이다. 모나리자를 계속 보게 만드는 것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라면, 미인도의 눈빛은 내면의 아름다움과 꿈, 처연한 슬픔을 헤아려 보게 한다. 혜원은 화제(畫題)를 통해 “사람의 만 가지 사연을 그림으로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전시장에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인공지능(AI) 기술로 미인도를 재해석한 디지털 아트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미인도가 렘브란트의 명암법으로, 모네의 인상주의 붓터치로, 르누아르의 따뜻한 색채로 변신해 살아 숨쉰다. 미인도 인물이 빙글 한바퀴 돌아 뒷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는 7월이다. 미인도 원본만을 위한 상설 전시관이 마침내 문을 연다. 미인도는 서울 성북동 전시장에서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귀한 손님’이 아니라, 대구에 뿌리를 내린 ‘상주(常住) 미인’이 된다. 때로는 그림 한 장이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통계에 따르면 매년 200만 명이 오로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파리를 방문한다. 관람객 1인이 체류하는 동안 평균 1500유로(약 258만 원)를 쓰니 매년 4조5000억 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다.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4월 추사 김정희 전시, 7월 미인도 상설관 개관에 이어 9월에는 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과 협력해 역대 최대 규모 겸재 정선 특별전이 열릴 예정이다. 대구는 ‘미인 도시’를 넘어 ‘한국 전통 미술의 수도’를 꿈꾸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 인근에는 삼성라이온즈파크가 있다. 프로야구를 관람하러 온 팬들은 간송미술관에 입장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낮에는 미술관, 밤에는 야구를 관람하는 스포츠와 예술의 ‘시간차 마케팅’이다. 또한 간송미술관과 군위 사유원은 더현대, 호텔인터불고와 손을 잡고 ‘아트 앤 힐링 스테이 인 대구’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그림과 정원을 통해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경험’에 빠져드는 여행이다. 막창과 더위, 보수의 심장으로만 알려진 대구에서 ‘아트와 힐링’을 느껴보는 색다른 경험이다.● ‘빌려온 풍경’ 팔공산 산그리메 대구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 군위군 부계면 팔공산 자락에 있는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수목원이다. 포르투갈 출신 건축가 알바로 시자, 한국 건축가 승효상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정원 곳곳에 들어서 있다. 일반에 공개된 것은 약 5년 전. 본격적으로 관람객을 받은 것은 약 3년 전부터 시작됐다. 사유원에서는 31일까지 매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백매화, 홍매화, 흑룡금매화, 운용매화 같은 다양한 매화가 어우러져 봄 풍경을 만든다. 그러나 사유원을 직접 걸어 보니 주인공은 매화도, 건축도 아니었다. 바로 멀리 마주보이는 팔공산의 겹겹이 이어진 능선이 웅장하게 펼쳐지는 산그리메였다. 대구는 도시 자체가 자연이 만든 대규모의 지형 예술이다. 북쪽에는 팔공산(해발 1193m)의 거대한 산줄기가 동서로 뻗어 있고, 남쪽에는 비슬산(1084m) 높은 능선이 도시를 감싼다. 서쪽에는 가야산(1430m)이 위용을 드러내고, 동쪽으로 도덕산 응해산 응봉산 문암산 등이 고리 모양으로 대구 도심을 호위한다. 신천과 금호강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며 분지(盆地)를 이룬다. 철강기업인이던 사유원 설립자가 수령 300년의 모과나무를 심기 위해 구입한 땅은 바로 팔공산이 마주보이는 구릉이었다. 한국 정원의 전통적 조경 기법인 ‘빌린 풍경(차경·借景)’ 원리에 맞춤인 땅이었다. 차경은 울타리 밖 자연 풍경을 마치 내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빌려오는 기술. 인공으로 만든 정원 안에서 자연을 재현하려 애쓰는 서양식, 일본식 정원과는 다른 한국만의 기법이다. 실제로 사유원을 걸으며 바라보는 맞은편 팔공산 풍경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높게만 보였던 산이 어느덧 눈높이를 마주하면서 포근한 품을 넉넉하게 보여 준다. 곡선의 산책로, 정자, 물과 돌의 배치는 모두 팔공산으로 시선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특히 ‘정향각(呈香覺)’ 정자 앞에 놓인 바위 끝부분이 팔공산이 펼쳐 내고 있는 스카이라인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은 묘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알바로 시자와 승효상의 건축물들은 풍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 모두 몸을 낮췄다. 건축은 정원의 주인이 아니다. 소요헌, 명정, 현암, 내심낙원 같은 건축물은 모두 팔공산 스카이라인에 헌사를 보내고 있다. 창문 크기, 문 높이, 산책로 각도, 나뭇가지 틈새…. 차경이란 결국 ‘선택된 지점에서 선택된 거리’로 보여지는 것. 정교하게 설계된 프레임을 통해서 바라보이는 팔공산 풍경은 사유와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사유원의 연못 뷰 레스토랑 ‘사담’에서 식사를 하고 천천히 정원을 산책하다 보니 오후 해가 짧았다. 해가 지기 전에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逍遙軒)’은 꼭 보고 싶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두 갈래 길’을 마주한다. 한쪽은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다른 한쪽 길은 어둡다. 어디로 갈 것인가. 빛을 찾아갔더니 허공에 십자가 같은 철제 조각이 매달려 있고, 다른 한쪽 방에는 알이 놓여 있다. 어둠과 빛,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생각하게 한다. 원래 소요헌은 알바로 시자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전시하기 위해 설계한 공간이었는데, 그 꿈이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사유원으로 오게 됐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 중 독일과 이탈리아 파시스트 공군이 바스크 지역 게르니카를 폭격했을 때의 참혹함을 그린 작품이다. 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시대. 소요헌은 삶과 죽음을 명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소요헌 입구 작은 북카페 요요빈빈에 들어서면 알바로 시자의 누드 크로키가 벽면에 가득하다. 건축가의 인체 드로잉은 그 자체로도 눈을 즐겁게 한다.글·사진 대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 관광객은 지난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NSW)의 13개 국제시장 중 지출액과 숙박 일수 부분에서 모두 세계 4위로 올라섰습니다. 한국 관광객은 특히 체험을 중요시하는 특징이 있지요.” 호주 시드니가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NSW) 관광청이 2026년 세계 4위 규모의 한국 시장을 겨냥한 관광전략을 발표했다. 17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호주식 비건 레스토랑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제니퍼 텅 동북아 총괄이사와 김희정 한국 사무소 지사장은 한국인의 ‘체험 중심 휴가’ 트렌드에 맞춘 전략을 제시했다. NSW주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9월 기준 28만 3800명.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한국인 관광객의 총지출액은 8억 2690만 호주 달러(약 8711억 원)를 기록했으며, 총숙박 일수는 490만 박으로 전년 대비 29.2%나 급증했다. 이로써 한국은 NSW주의 13개 국제 시장 중 지출액과 숙박 일수 부문에서 모두 세계 4위에 올라섰다. 제니퍼 텅 총괄이사는 “한국은 중국, 일본보다도 호주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방문객의 82%가 순수 휴가 목적으로 방문한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은 단순 관람을 넘어 하버 브리지 클라이밍, 오페라 하우스 내부 투어 등 적극적인 체험형 관광을 즐기는 특징을 보인다. 방문객 수 대비 지출 규모가 타 국가 대비 월등히 높아 NSW주에서도 ‘알짜 시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2026년 NSW주는 한국인들의 휴가 패턴에 맞춘 다채로운 축제를 준비했다. 상반기에는 3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시드니 하버를 배경으로 한 야외 공연 ‘한다 오페라’가 포문을 열고, 5월 22일부터는 도시 전역을 빛으로 수놓는 세계 최대 규모의 ‘비비드 시드니’ 축제가 이어진다. 하반기에는 세계 7대 마라톤으로 격상된 ‘시드니 마라톤’(8월 30일)과 세계적 규모의 ‘새해 전야 불꽃놀이’(12월 말)가 열릴 예정이다. 김희정 지사장은 “시드니는 크고 작은 이벤트와 축제가 가득한 도시”라며 “전 세대가 참여할 수 있는 다채로운 이벤트를 통해 프리미엄 여행 수요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프라 혁신도 관광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이다. 올해 말 개항 예정인 ‘서시드니 공항’은 ‘통행금지 시간’이 없는 24시간 운영 체제로 한국을 포함한 장거리 노선 승객들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현재 한국-시드니 노선의 항공 공급석은 이미 팬데믹 이전 수준을 상회하며 역대 최다 수준의 접근성을 확보한 상태다. 지난 1월에는 ‘시드니 피시 마켓’이 기존보다 2배 이상 확장해서 재개장했다. 새벽 라이브 경매 관람과 전문 셰프에게 배우는 ‘시드니 쿠킹 스쿨’ 등 한국인이 선호하는 체험형 미식 콘텐츠를 강화해 연간 600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거듭났다. 숙박 부문에서도 세계 12위에 선정된 ‘카펠라 시드니’를 비롯해 W 시드니, 더 이브 등 럭셔리 호텔들이 새단장을 마쳤다. NSW주 관광청은 시드니를 허브로 삼아 헌터 밸리의 와이너리 투어, 포트 스테판의 샌드 보딩 등 근교의 다채로운 액티비티를 연결해 체류 기간을 늘린다는 계획을 밝혔다. 제니퍼 텅 총괄이사는 국제 분쟁 상황을 언급하며 호주의 장점을 강조했다. 미국·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 속에서 호주는 안전한 여행지로서의 가치가 더욱 부각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NSW주 와인 산업 역시 한국 시장 공략의 중요한 축이다. NSW주는 14개의 공식 와인 산지를 보유한 지역으로, 호주 최초의 포도 재배지인 시드니 코브에서부터 헌터밸리, 오렌지, 툼바룸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한다. 특히 가성비 좋은 옐로우 테일부터 프리미엄 와인까지 폭넓은 포트폴리오는 한국 관광객의 다층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 호텔은 2018년 6월12일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장소다. 성조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세워진 배경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하는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카펠라호텔 리셉션에서 객실로 가는 중간 통로에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악수를 나눴던 장소가 있다. 땅바닥에는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이 새겨진 황금색 둥근 원판이 붙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을 공격해 독재자를 체포하고, 폭사시키는 전쟁같은 작전을 펼치는 요즘. 카펠라 호텔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악수를 나눴던 현장에 서니 묘한 감정이 든다. 관광객들은 이 곳에서 악수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이후 트럼프와 김정은은 호텔의 회담장 ‘카시아(Cassia)’로 이동해 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당시 서명식을 했던 나무 테이블은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에 소장돼 있고, 카시아는 현재 호텔 중식당으로 쓰이고 있다. 카펠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대나무로 장식돼 있고, 샘물에서 물이 흘러내려 물소리가 난다. 시각과 청각으로 미각을 돋구는 장치다. 카펠라에서는 ‘중식 파인다이닝’ 코스가 유명하다. 애초에 북미정상회담은 싱가포르 최대 규모의 호텔인 샹그릴라 호텔이 1순위로 거론됐다고 한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카펠라 호텔로 내려졌다. 이는 보안상의 이유가 절대적이었다. 센토사섬은 싱가포르 본토와 단 하나의 다리로만 연결되어 있어 경호와 통제가 가능한 천혜의 요새다.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은 원래 19세기 영국 포병부대 장교들을 위한 숙소였다. 싱가포르를 점령한 영국 해군은 러시아 함대, 프랑스의 위협에 대비해 센토사섬에 포대와 요새를 구축했다. 영국 빅토리아식 건축물은 당시 식민지 건축의 특징을 모두 담고 있다. 하얀 석회석 벽면, 긴 베란다, 열대 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깊은 처마와 통풍이 잘되는 높은 천장들이다. 그러나 1942년 싱가포르가 일본에 점령됐을 때 일본군 포로수용소가 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싱가포르 정부는 센토사를 관광과 레저의 섬으로개발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리조트월드와 고급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카펠라호텔은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현대화에 착수했다. 그는 카펠라호텔의 19세기의 빅토리아식 건물들을 복원하고 우아한 곡선으로 된 적갈색 건물을 추가했다. 역사적인 유산을 잘 복원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싱가포르식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카펠라호은 5000여 그루 이상의 나무가 심어진 정원 속에 계단식 수영장이 숨어 있다. 아침마다 정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청아하다. 밤에는 도시의 불빛에 방해받지 않고 달빛과 별빛을 감상할 수 있는 고요함이 매력적이다. 900여개의 예술작품으로 갤러리처럼 꾸며진 복도는 럭셔리 호텔의 품격을 느끼게 한다. 객실에서는 바다뷰가 펼쳐진다. 싱가포르 항구는 말라카해협을 통해 원유와 화물이 지나가는 세계 물동량이 허브역할을 하는 곳. 푸른 바다 위로 닻을 내리고 묘박하고 있는 화물선과 유조선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이국적이다. 정글숲과 에머랄드빛 수영장 앞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아마(Fiamma)가 있다. 조식 뷔페에는 코코넛 국물과 향신료의 아로마가 어우러진 싱가포르 전통요리 ‘락사(Laksa)’가 곁들여진다. 열대의 아침을 맞이하기에는 이것보다 더 좋은 선택이 없다. 호텔 수영장 앞에는 화려한 깃털을 가진 공작이 유유히 걸어다닌다. 계단식 수영장을 내려가면 팔라완 해변에 도착한다. 센토사섬에는 팔라완 외에도 탄종비치, 실로소비치 등 3곳의 해수욕장이 있다. 나무그늘이 있는 해변 길을 따라 조깅을 할 수 있는 코스가 있다. 평화와 고요의 섬 센토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산책 코스다. 센토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찹쌀떡 가게 앞에는 아침부터 외국인들이 긴 줄을 선다. 끈적끈적한 떡의 식감을 외국인들이 싫어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옆에 있는 감자탕 가게에도 줄이 길게 서 있다. 맙소사 외국인이 웬 감자탕? 돼지 뼈에 붙은 살을 맛있게 발라 먹는 그들은 누구인가. 평일 낮에도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거리를 메운 그들은 누구인가. 바로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외래관광객 2000만 명 시대. 서울 도심의 상권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있다. 외국인이 오는 동네냐, 아니냐. 한쪽은 핫플레이스가 되고, 다른 쪽은 공실 지옥이다. 내수 소비 회복이 언제 될지도 모르는 요즘. 외국인이 서울의 상권지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894만 명. 전년 대비 15.7%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올해 외래관광객 2300만 명, 2029년까지 3000만 명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21일 BTS 광화문 공연을 앞두고 서울은 ‘BTS노믹스’로 들썩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외국인의 관광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수동, 홍대, 을지로, 익선동, 한남동, 해방촌, 신당동, 동묘…. 외국인들은 ‘로컬처럼’ 서울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강북의 재발견’이다. ‘오징어게임’, ‘K팝 데몬헌터스’ 등 전 세계를 강타한 K컬처의 힘이 크다. 한국에 가서 한국인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에 휩싸인 것이다.강북의 재발견 우리 주변에 이렇게 힙하고, 재밌는 곳이 있다니! 국내 MZ세대도 외국인을 따라 서울 강북의 골목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명동에서 나온 외국인들은 ‘을·충·당 벨트’(을지로-충무로-신당동)로 흘러넘쳐 간다. 에어비앤비의 성지 홍대 상권은 연남동, 망원동으로 확장된다. 외국인이 방향을 틀면 상권의 흥망이 바뀐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 경리단길이 쇠퇴하고, 리움미술관 등 고급 문화시설이 많은 한남동이 K패션의 성지로 떠올랐다. 강남 신사동에서는 공실률이 45.2%로 치솟은 가로수길을 떠난 외국인들이 인근 도산공원 앞으로 몰려갔다. 한국관광공사가 정의한 K관광 트렌드는 한국인의 일상을 즐기는 ‘데일리케이션(Dailycation)’이다. 백화점 면세점 쇼핑보다는 시장, 올리브영, 약국, 다이소를 다니며 먹방을 즐기고, 체험형 소비에 집중한다. 성수동의 외국인 소비는 지난해 상반기 226.3% 폭증했다. 외국인과 국내 MZ세대가 몰려드는 상권을 글로벌 브랜드들이 놓칠 리 없다. 월 임대료 1억∼2억 원을 내면서도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다. 반면 강남역과 테헤란로, 여의도와 같은 전통 비즈니스 상권은 울상이다. 강남대로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11%로 치솟았고, 여의도는 밤만 되면 유령도시로 변한다. 재택근무가 늘고, 온라인 소비로 전환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평일과 주말, 밤과 낮 구분 없이 ‘상시 유동인구’를 제공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없는 거리엔, 더 이상 내국인도 찾아오지 않는다.외국인 친화적인 도심 상권 개발 종로3가역 익선동 갈매기살 골목은 새벽 3시까지 줄을 선다. ‘야장’에서 떠들썩하게 밤을 즐기고 있는 외국인들의 풍경은 뮌헨 옥토버페스트 현장을 방불케 한다. 원래 불법 단속 대상이었던 가게의 도로와 인도 점유를 종로구청이 특정 구역에서 허용하고, 주민과 경찰이 자발적으로 질서 유지에 나서 가능한 장면이다. QR코드를 이용한 다국어 메뉴 설명 등 외국인 친화적인 도심 상권 개발 전략도 주효했다. 서울의 상권 지도는 더 이상 지하철 노선도나 오피스 밀집도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제 전 세계 2030세대의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그려지고 있다. 2000만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이 서울의 어느 골목에 새로운 상권을 탄생시킬 것인가. 그 지도를 가장 먼저 읽는 사람이 다음 10년의 서울을 이해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전승훈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부국장급 raphy@donga.com}

싱가포르항공이 서울 취항 50년을 맞아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 개선과 제휴 카드 출시 등으로 프리미엄 항공 서비스 전 영역을 재편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세계 37개국 135개 도시를 운항하는 싱가포르항공은 1975년 취항한 한국 노선에서 인천∼싱가포르를 주 28회, 부산∼싱가포르를 주 7회 운항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 항공평가기관 스카이트랙스로부터 ‘아시아 최고 항공사’ 등 10개 부문 1위를 받았다. 싱가포르항공 비즈니스 클래스는 완전 수평이 되는 ‘풀 플랫’ 좌석을 1열, 2열, 1열로 배치해 어느 좌석에서든 통로와 바로 연결된다. 창가 자리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 프라이버시 확보에 유리하다. 업계 최초로 전 클래스 무제한 기내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며, 좌석에는 전원 공급 장치와 USB 포트를 갖춘 비즈니스 패널과 17인치 풀 HD 터치스크린 모니터가 제공된다. 1998년부터 국제 요리 자문단(ICP)을 운영해 각국 미식 문화를 기내 메뉴로 선보이고 있다. 기내와 동일한 기압 환경을 재현한 가압 시뮬레이션 캐빈에서 셰프들이 맛을 보고 풍미를 조율한다. 프리미엄 클래스 승객에게는 출발 24시간 전까지 랍스터 테르미도르나 그릴에 구운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 같은 기내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주문 서비스 ‘북 더 쿡(Book The Cook)’이 제공된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오즈 클라크, 지니 조 리, 마이클 힐 스미스가 매 시즌 세계 와인을 대상으로 기내 기압 환경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 점수를 매기고 논의한 결과로 최종 와인 리스트를 완성한다. ‘에어 소믈리에’ 자격이 있는 승무원들은 기내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한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4번 출국장 29번 탑승구 근처 ‘실버크리스 라운지’는 휴식과 샤워, 업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락사와 치킨커리를 곁들인 로티 프라타, 카야 토스트 등 싱가포르 전통 음식을 내놓는다. 싱가포르항공과 신한카드는 국내 최초 외항사 제휴카드 ‘싱가포르항공 크리스플라이어 더 베스트 신한카드’도 출시했다. 싱가포르항공 관계자는 “우수한 서비스, 프로덕트 리더십, 네트워크 연결성이라는 핵심 목표를 위해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솔직히 말하자. 스페인을 떠올리면 보통 두 가지 중 하나다. 붉은 플라멩코 드레스, 아니면 산티아고 순례길의 흙먼지. 그런데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런 표면적인 이미지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며 그 밑에 숨어 있던 훨씬 더 넓고 깊은 스페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스페인을 만나면 인생이 노래가 된다’(라이트하우스인)는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국과 스페인 사이를 가교처럼 이어온 이은진 박사가, 그 긴 시간의 결을 한 땀 한 땀 수놓은 문화 에세이다.30년 전, 게르니카 앞에 선 한 여자모든 인연에는 첫 장면이 있다. 이은진 박사에게 스페인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시작됐다. 혼자 떠난 유럽 여행 중, 그녀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 섰다. 교과서 속 흑백 인쇄물로만 알던 그 그림이, 실물로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압도적인 크기, 무채색의 거친 질감, 파괴와 절규가 뒤엉킨 추상의 언어. 그 충격이 그녀의 인생을 스페인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피카소는 평생 5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20세기 입체파의 문을 열었다. 그가 남긴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그는 늘 자신의 고향 말라가를 이렇게 불렀다. “나는 안달루시아의 작은 물잔에서 태어났다”고. 피카소가 뿌리를 기억하는 방식이 그랬다. 이은진 박사 역시 그 뿌리를 찾아, 말라가에서 콘수에그라까지, 스페인 곳곳의 문화적 원점을 발로 걸으며 이 책을 썼다.돈키호테의 풍차, 그리고 인간의 용기에 대하여라만차 지방 콘수에그라의 언덕 위에는 하얀 풍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그 유명한 풍차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성 언덕이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 괴물로 착각하고 돌진했다. 무모했고, 우스꽝스러웠고, 그래서 위대했다. 이은진 박사는 그 풍차 앞에서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만의 거인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가? 그 질문이 이 책 곳곳에서 독자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이 책에서 가장 시적인 챕터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알람브라 궁전 이야기다.그라나다의 알람브라는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 250년에 걸쳐 쌓아 올린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벽돌, 세라믹, 석회, 목재로 빚어낸 정교한 격자 무늬와, 코란의 구절을 수놓은 칼리그라피가 궁전 안팎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무데하르 양식의 근원이 된 이 이슬람 건축은, 1492년 이사벨 여왕에게 함락되는 날 그 찬란함이 더욱 비극적으로 빛났다.마지막 왕 보압딜은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으며 궁전을 돌아보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고개의 이름이 지금도 ‘무어인의 한숨 고개(Puerto del Suspiro del Moro)’다. 한숨 하나가 지명이 된 것이다. 이은진 박사는 알람브라 궁전 아다르베스 정원 벽에 새겨진 시인 이카사의 구절을 그 앞에 배치한다.“여인이여, 그에게 자선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라나다에서 눈이 먼 것보다 인생에서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떠나면서 눈물을 흘렸을까. 그 질문이 책장을 넘기는 손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파라도르 — 역사가 잠드는 호텔에서의 하룻밤이 책의 흥미로운 챕터 중 하나는 ‘파라도르(Parador)’ 이야기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파라도르는 수도원, 성, 귀족의 저택 같은 역사적 문화유산을 현대적 호텔로 재탄생시킨 국영 숙박 시설이다. 그 중에서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파라도르는 파라도르 체인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1499년 가톨릭 군주의 명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원래는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었다.이 책을 읽으며 나는 개인적인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2022년 산티아고 순례길에 취재갔다가 마지막에 귀국 전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시 숙소는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앞에 있는 이 유서깊은 파라도르였다. 별 5개짜리 파라도르 호텔에서 1주일을 격리해야 했던 그 아이러니한 시간. 순례지를 떠나지 못했던 그 경험이, 오히려 그 장소를 가장 깊이 느끼게 해준 시간이기도 했다. 역사적인 공간이 위기의 순간에 품이 되어준다는 것, 이 책에서도 바로 그런 여행의 깨달음이 전달이 된다. 한국과 스페인, 닮은 두 반도의 이야기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스페인과 한국은 구조적으로 닮았다. 두 나라 모두 반도다. 둘 다 좌우 이념의 격렬한 충돌과 내전을 겪었고, 오랜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화를 이뤄냈으며, 지금은 나란히 OECD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 있다. 2025년 기준 명목 GDP는 스페인이 세계 12위, 한국이 13위로 그야말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두 나라다.두 나라의 교류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19년에는 63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스페인을 찾았고, 지난해 5월 단 한 달에만 6만 7천 명이 방문해 월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은진 박사는 그 63만 명의 길목 한가운데서 26년간 스페인 관광청 한국대표를 지냈다. 2019년, 그 공로로 스페인 왕비 레티시아 오르티스의 친서를 받았고, 2023년에는 한국관광대상 서울시의회 의장상을 수상했다.총 40여 개의 스토리로 구성된 이 책은, 스페인의 햇살과 바람, 골목의 소리와 광장의 음악, 카페의 향기와 사람들의 미소를 글로 옮겨 담았다. 주한 EU 대사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는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를 깊이 느끼게 해주며 독자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고 했고, 주한 세르반테스 문화원장 라파엘 부에노는 “저자의 진정성 있는 시선과 담백한 표현이 스페인을 생생히 전달한다”고 썼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싱가포르 여행이라고 하면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인피니티풀과 머라이언이 떠오른다. 최첨단 마천루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야경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싱가포르는 좁거나 획일적이지 않다. 센토사섬에서는 공작이 우아하게 걸어다니는 고요한 해변과 열대우림이 있고, 도심 뒷골목을 걸으면 다양한 인종과 민족, 종교이 섞여 사는 모습을 만난다. ‘사람 냄새 가득한 로컬 맛집’을 찾아가는 색다른 싱가포르 여행을 떠나 보자. ● 북미정상회담 열린 센토사섬 센토사섬은 싱가포르 본섬에서 남쪽으로 약 800m 떨어져 있다. 원래 해적의 본거지여서 말레시아어로 ‘블라깡 마티(등 뒤에서 죽음을 맞는 섬)’이란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렸다. 영국 식민지 시절엔 영국군이 주둔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일본군 포로수용소가 됐다.싱가포르 정부는 1970년대부터 유니버설스튜디오를 비롯한 고급 테마파크와 리조트를 지었고 ‘평화와 고요의 섬’이란 뜻인 센토사로 불렀다. 2018년 6월 12일에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센토사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성조기와 인공기를 나란히 세워 놓고 악수를 나눴다. 카펠라 호텔 회랑 바닥에는 지금도 북미정상회담을 기념하는 황금색 원판이 붙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을 폭격 중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맞잡은 손이 새겨진 황금색 원판 위에 서 있으니 앞으로 세계 정세와 한반도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광둥식 파인다이닝 중식당 카시아(Cassia)에서 두 사람이 공동성명에 서명한 길이 4.3m 티크 원목 테이블은 현재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카펠라 호텔은 원래 19세기 영국 포병 장교들과 가족들이 살았던 2층짜리 숙소였다. 영국의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하얀색 빅토리아식 건축물에 곡선으로 된 붉은색 건축물을 새로 이어 붙였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아마(Fiamma)의 아침 뷔페에서는 싱가포르식 국수 락사(Laksa)를 맛볼 수 있고, 카시아에서는 파인다이닝 코스 요리가 특선이다.센토사섬은 싱가포르에서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섬이다. 여행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예상치 못한 ‘공작과의 만남’이다. 공작은 리조트를 당당하게 활보하고 해변 풀숲에서 우아하게 산책한다. 세계 어떤 곳에서도 이렇게 많은 공작을 만나기란 어렵다(사진). 공작이 높은 나무나 건물 지붕 위까지 날아다니는 모습도 처음 봤다. ‘화려한 깃털을 펼친 공작이 어떻게 날 수 있지?’ 생각하는 순간, 공작이 닭처럼 옆구리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공작은 화려한 부채꽃 깃털 대신 허리 쪽 짧은 날개를 강하게 휘둘러 몸을 빠르게 띄워 올렸다.● 종교와 문화의 용광로 센토사섬에서 나와 지하철(MRT)을 타고 싱가포르 도심 뒷골목 여행에 나섰다. 별도의 교통카드 없이도 한국에서 가져온 신용카드를 개찰구에 대니 곧바로 탑승이 가능했다. 정말 편리했다. 내린 곳은 리틀인디아역. 목걸이에 신분증을 걸고 있는 가이드를 만났다. 중국인 아버지와 말레이시아계 무슬림 어머니를 둔 그녀는 “이 구역에서 내 이름은 엔젤(Angel)로 통한다”고 말했다.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에 모두 친숙한 그녀 이름이 기독교의 엔젤이라니….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건 형형색색의 꽃가게였다. 자스민, 마리골드, 그리고 연꽃까지…. 얼마나 꽃이 싱싱한지 화환마다 벌들이 날아와 꿀을 빨아먹고 있었다. “이 꽃들은 신들에게 바치기 위한 꽃이예요.”엔젤은 비닐봉지 한가득 꽃을 샀다. 그리고 향한 곳은 신들의 얼굴로 장식한 웅장한 탑(고푸람)이 있는 스라비야 킬리암만 사원. 리틀인디아 심장부에 자리한 힌두 사원이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향냄새와 꽃향기, 그리고 기도 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갑자기 남인도 타밀나두 뒷골목으로 이동해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차이나타운 지하철역에 내리면 비첸향 육포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향기가 후각을 자극한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빅토리아 양식의 숍하우스(Shophouse) 창문에는 파스텔톤 알록달록한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앞은 가게이고 뒷편은 주거지인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2층 스타벅스에서 보라색 창문을 열고 보니 골목길 상점마다 춘절을 축하하는 홍등이 가득 걸려 있었다. 차이나타운 한가운데는 당나라 양식으로 지은 불아사(佛牙寺) 기와지붕이 우뚝 솟아 있다. 석가모니 치아를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부처님 어금니 사원(Buddha Tooth Relic Temple)’이다. 사원은 해질녘 야경이 시작되면 황금빛으로 물든다. 부기스(Bugis) 지역으로 불리는 아랍 스트리트에 가면 황금색 돔과 화려한 아라베스크 스타일의 술탄 모스크가 있다. 모스크 맞은편 골목 하지 레인(Haji Lane)은 인생샷 천국이다. 바로크식 건물들은 감성적인 카페와 부티크, 향수점, 공예품 가게들로 꽉 차 있다. 텔록 아이어 골목에는 한식당도 많다. 한국인 셰프 루이즈 한(한석현)이 이끄는 레스토랑 내음(NAE:UM)은 한식 파인다이닝으로 현지 미식가들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싱가포르 역사는 1819년 영국 스탠포드 래플즈 경(卿)이 항구로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말라카 해협에 있는 이 섬은 동서양 교역로가 되었다. 부산광역시 넓이보다 작은 불과 730㎢의 작은 섬에 중국, 말레이, 인도, 아랍, 유럽 등에서 온 611만 명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인상적인 점은 그 다양성이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로컬 맛집 호커센터 오전 6시, 싱가포르 주택가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대신 거리 호커(Hawker)센터 키친에서 팬을 부딪치는 소리와 고기를 구우며 피어오르는 연기가 도시를 깨운다. 호커는 행상인이란 뜻이다. 싱가포르 이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길거리 어디든 임시로 만든 노점에서 밥을 짓고, 국수를 삶고, 카레를 끓였다. 1965년 싱가포르 독립 후 리콴유 총리는 노점상을 없애는 대신 한 곳에 모으는 것을 선택했다. 개방형 건축물 안에 수십 개의 노점을 배치하고 중앙 로비에 공용 식탁 공간을 만들었다. 위생 관리, 도시계획, 주민 복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도시공학적 솔루션이었다. 한화 4000∼6000원으로 한끼를 해결할 수 있어 하루 세끼 모두 외식하는 사람도 많다. 싱가포르 전역에 120개 이상의 호커센터가 있다. 한 센터엔 80개 이상의 노점이 빼곡하다.지역에 따라 사는 인종과 문화가 다르고 음식도 다르다. 리틀 인디아 테카센터(Tekka Center)에서는 ‘향신료의 교향곡’이 펼쳐진다. 커민, 코리앤더, 카다몬, 클로브 등의 향이 한데 섞여 공중을 떠돈다.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대부분 인도 요리다. 비리야니(쌀밥), 로티 프라타, 라자(렌즈콩 카레), 탄두리 치킨, 도사(쌀가루 팬케이크), 파파담(렌즈콩 튀김 스낵)…. 엔젤은 “오늘 비리야니가 당기면 비리야니, 내일 아침엔 난(Naan), 저녁엔 시원한 맥주 한 캔과 함께 프라타 한 장을 먹는다”고 말했다. 테이블 간격은 좁다. 낯선 사람과 합석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인 옆에 인도인이 앉고 그 옆에 말레이인이 앉아 각각 다른 음식을 먹는다. 할랄과 비(非)할랄 음식을 담은 쟁반은 색깔로 엄격히 구분한다. 인종과 종교를 초월해 한 테이블에서 먹는 호커센터 문화는 202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호커센터 노점상 중에는 미슐랭가이드 별을 받은 맛집도 수두룩하다. 2016년 차이나타운 호커 찬(Hawker Chan)이 처음이었다. 30년 이상 호커센터에서 일해 온 호커찬의 간장치킨 요리는 소박하고 직관적이다. 닭을 삶아 식힌 다음 자신의 비법 간장 소스에 담근다. 그의 메뉴는 여전히 한끼에 4∼5싱가포르달러(약 4000∼5000원). 미슐랭 스타를 받았어도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 그것이 호커센터 정신이다.차이나타운 호커센터의 ‘The 1950s Coffee(五十年代·오십년대)’도 미슐랭 맛집이다. 할아버지 바리스타 혼자 동남아 전통 코피(Kopi)를 내리고, 돈을 받고, 서빙을 한다. 가격은 1.3싱가포르달러(약 1500원). 진한데 벨벳처럼 부드럽고 향기도 좋다. 할아버지 바리스타가 인도네시아 로부스타 원두를 버터와 설탕으로 함께 볶아 캐러멜 코팅을 입힌 다음, 필터로 우려낸 진액을 공중에서 에어레이션(공기와 접촉시키기)하고 연유를 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글·사진 싱가포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나무의사는 나무를 진찰하고 치료하고 병을 예방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병원으로 찾아올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왕진을 떠납니다.”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나무의사 오세견 씨(54·숲결나무병원 원장)와 함께 서울숲에 있는 메타세콰이어와 은행나무를 둘러보았다. 그는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 심장 박동 소리와 폐 호흡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무 망치를 두들겨 보며 나무 속이 꽉 차 있는지, 썩거나 비어 있는지를 들었다.그의 ‘왕진가방’에는 수목활력측정기와 토양분석 장비, 나무 망치, 루페와 윤척 등이 들어 있었다. 나무 줄기에 수목활력측정기 끝에 달린 뾰족한 두 개의 탐침봉을 꽂고 전기신호를 흘려보내니 나무 활력도가 수치로 나타난다. 또 뿌리가 뻗어 있는 땅에 토양분석기를 꽂아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외과수술용 가방에는 체인톱(전기톱)과 트릴, 끌 같은 장비도 들어 있다.2018년 나무의사 자격시험 도입 이후 8년간 배출된 나무의사는 1737명. 2024년 도시숲법 제정, 2025년 산림보호법 개정으로 아파트 단지 등 생활권 수목 관리에 나무의사의 진단과 모니터링이 의무화된 후 나무의사 시장은 크게 확대됐다.지난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수목 진료와 산림·식물 보호 분야 국가기술자격 취득자의 55.9%가 50대 이상이다. 관련 자격 취득자 중 은퇴 연령층인 60대 이상의 취업률도 69.6%에 이른다. 나무의사 등 산림 관련 직종이 고령화 사회에서 ‘인생 이모작’의 대안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 사진작가에서 나무의사로오 원장은 잘나가는 사진작가였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홍익대 부근에서 상업광고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삼성, LG 휴대전화나 TV 같은 대기업 유명 브랜드를 촬영했다. 2005년 프랑스 유학을 가서 11년 동안 현지 교민신문의 프랑스 지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여행과 풍경, 예술사진을 찍는 작가로 활동했다. 2016년 귀국 후에도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폐업했다.“빚만 남더군요. 50대가 됐으니 좀 더 긴 호흡으로 평생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충북 청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언젠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파리 근교 농장을 견학할 때마다 설렜다. 그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귀농귀촌학교에 다니던 중 2박 3일 현장 체험을 갔다가 임업에 대해 알게 됐다.“논이나 밭농사는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숲속 농사인 임업은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산속에 호두나무, 피칸 등을 심어 열매를 따고 산나물과 더덕, 카모마일을 키우며 표고버섯을 수확하는 것이죠. 최소 3~4년 기다리면서 하는 임업은 제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귀농귀촌 교육을 마치고 산림조합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산림경영자과정 교육을 이수한 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영림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나무 심기, 숲 가꾸기, 간벌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벌목 작업을 하다 잠시 앉아 쉴 때였다. 산 향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 진짜 산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 나무의사가 되다그는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임업인 임야구입자금 대출을 받아 산지를 구입해 임업을 하려고 했다. 총 3억 원 이내에서 토지 감정가의 60%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연이율 1%로 15년 거치 20년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발품을 팔아 적당한 임야를 찾았지만, 감정가가 낮게 나와서 추가로 6000만원의 자금이 필요했고 준비가 부족했다. 산속에서 농사 짓는 꿈은 잠시 미뤘다.대신 나무의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임업 관련 학위나 경력도 없는 오 씨 같은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산림, 조경, 식물보호 분야 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을 따는 것이다. 산림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나무의사가 도기 위해 전국 15개 양성 기관에서 150시간 이상 의무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는 서울대, 신구대 같은 수도권 양성 기관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당시 경쟁률은 3대1, 4대1로 치열했다. 지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말마다 부산 동아대로 내려가 수업을 받았다.“나무의사 시험이 어렵다고 하지만 아주 똘똘한 중학생이라면 6개월만 공부해도 딸 수 있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50대에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수목병리학과 해충학은 다 암기과목입니다. 화학식이 많은 토양학이 어렵다고 하는데 제겐 외우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죠.”나무의사 시험 응시자 중에는 직장인도 많다. 하지만 주말에 수업 듣고 밤새 공부해 시험을 보기에 합격률은 높지 않다. 1차, 2차 시험 합격률이 15~20%에 불과하다. 오 씨는 “다행히 실직한 저는 온종일 공부할 수 있어 직장인보다 유리했다”고 했다. 그는 2022년 합격했다.합격 후 국가유산수리(식물보호) 전문병원인 서울 강동구의 한 나무병원에 의사로 취직했다. 초봉은 3900만원이었다.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강원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삼척 궁촌리 음나무 등 전국을 돌며 천연기념물 노거수(老巨樹)를 모니터링하고 치료했다.“반계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1300살이 넘어요. 노거수여서 바람에 약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쓰러지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 긴급 출동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수술을 해주죠. 필요하면 영양제도 놔줍니다.”그는 천연기념물 나무를 진단할 때 사진가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한다.“사진가는 구도, 대칭, 비대칭 같은 구조적인 면을 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수관이 한쪽으로 편중돼 있으면 그쪽으로 쓰러질 확률이 높아요. 나뭇가지가 프랙탈 이론처럼 자연스럽게 뻗어 나가는 패턴을 벗어나면 위험 신호입니다.” ● 나무의사 초봉 3000만 원대현재 산림청 공공사업이나 정부 발주 프로젝트의 나무의사 하루 노임 단가는 32만6359원, 수목치료기술자는 23만8447원으로 고시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보면 나무병원 신입 의사 초봉은 연 3000만~3500만 원 선, 3~5년 차는 연 4500만~5500만 원 선이다. 개업의나 대형 프로젝트를 전담하면 연 8000만 원 이상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나무의사 자격 취득자가 선호하는 취업 분야는 공무원(지방자치단체 녹지직 등)이 27.2%로 가장 높다. 이어 수목원 등 공공기관 25.6%. 합산하면 52.8%가 공공부문을 선호한다. 나무의사 자격이 안정적 공직 진출 관문으로도 기능한다는 의미다.오 씨는 지난해 8월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나무병원을 열었다. 나무병원을 만들려면 나무의사 2명 이상이거나, 나무의사 1명과 수목치료기술자 1명 이상을 갖춰야 한다. 병원 개업은 늦깎이 인연으로 만난 반려자 최가연 씨(51) 도움이 컸다. 최 씨도 영국 런던에서 플로리스트를 공부한 뒤 플랜테리어(식물 이용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해 왔으나 코로나19 이후 사업을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때였다. 나무병원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오 씨 제안에 최 씨는 선뜻 수목치료기술자 공부를 시작했다. 수목치료기술자는 ‘간호사’ 역할이다. 이제는 늘 함께 현장에 나가 나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파트너가 됐다.“나무병원은 입찰을 통해 생활권 수목과 보호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민간 건물(아파트) 조경 수목을 관리해요. 60대 이후에도 취업률이 높은 것은 전문 지식과 함께 평생 쌓은 인맥 관리 노하우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전국 971개 나무병원 연간수익은 1554억 원 규모. 개별 병원 연평균 매출은 약 1억4700만 원이다. 각 나무병원에는 평균 2명 이상의 나무의사나 수목치료기술자가 있다. 나무의사 자격 취득자 1737명 중 많은 이가 현장에서 일한다는 증거다.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에 가장 많은 34~35%가 있다. 잇단 신도시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경과 가로수 유지 보수 수요가 전국 1위 지역이어서다. 서울은 10~11%로 2위다.“가로수는 도시의 유일한 탄소 흡수원입니다. 잘못된 관리 방식으로 전국에서 매일 44그루의 가로수가 죽어 갑니다. 줄기 가운데를 싹둑 자르는 이른바 ‘닭발 전정’도 횡행합니다. 그러면 병균과 미생물이 침입해 나무 안쪽부터 썩어 들어가죠. 네모난 보도블록에 맞춰 뿌리를 잘라버리니 바람에 쓰러지는 일도 많습니다.”그는 ‘프로젝트 숨:표’라는 사물인터넷(IoT) 통합 수목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나무 옆에 설치한 ‘숨:표’ 센서가 24시간 토양 수분, 온도, 기울기 등을 모니터링한다.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병해충 감염을 일찍 감지하고, 쓰러질 확률을 예측한다. 또한 3차원(3D) 디지털 트윈 기술로 나무가 흡수하는 탄소량을 측정해 국제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오 씨는 나무의사를 하면서 사진 작업도 계속하겠다고 했다. 1년 동안 천연기념물 나무 한 그루를 계속 촬영해서 한 컷으로 남기는 작업이다.“봄에 새싹이 나오고, 여름에 풍성해졌다가, 가을에 낙엽이 지고, 겨울에 앙상해지는 나무의 1년간 모습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시간이란 무엇인지, 나무와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작업이지요.”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나무의사는 나무를 진찰하고 치료하고 병을 예방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병원으로 찾아올 수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왕진을 떠납니다.”》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나무의사 오세견 씨(54·숲결나무병원 원장)와 함께 서울숲에 있는 메타세콰이어와 은행나무를 둘러보았다. 그는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 심장 박동 소리와 폐 호흡 소리를 듣는 것처럼, 나무 망치를 두들겨 보며 나무 속이 꽉 차 있는지, 썩거나 비어 있는지를 들었다.그의 ‘왕진가방’에는 수목활력측정기와 토양분석 장비, 나무 망치, 루페와 윤척 등이 들어 있었다. 나무 줄기에 수목활력측정기 끝에 달린 뾰족한 두 개의 탐침봉을 꽂고 전기신호를 흘려보내니 나무 활력도가 수치로 나타난다. 또 뿌리가 뻗어 있는 땅에 토양분석기를 꽂아 성분을 분석하기도 했다. 외과수술용 가방에는 체인톱(전기톱)과 트릴, 끌 같은 장비도 들어 있다.2018년 나무의사 자격시험 도입 이후 8년간 배출된 나무의사는 1737명. 2024년 도시숲법 제정, 2025년 산림보호법 개정으로 아파트 단지 등 생활권 수목 관리에 나무의사의 진단과 모니터링이 의무화된 후 나무의사 시장은 크게 확대됐다.지난해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수목 진료와 산림·식물 보호 분야 국가기술자격 취득자의 55.9%가 50대 이상이다. 관련 자격 취득자 중 은퇴 연령층인 60대 이상의 취업률도 69.6%에 이른다. 나무의사 등 산림 관련 직종이 고령화 사회에서 ‘인생 이모작’의 대안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준다. ● 사진작가에서 나무의사로오 원장은 잘나가는 사진작가였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홍익대 부근에서 상업광고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삼성, LG 휴대전화나 TV 같은 대기업 유명 브랜드를 촬영했다. 2005년 프랑스 유학을 가서 11년 동안 현지 교민신문의 프랑스 지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여행과 풍경, 예술사진을 찍는 작가로 활동했다. 2016년 귀국 후에도 상업사진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폐업했다.“빚만 남더군요. 50대가 됐으니 좀 더 긴 호흡으로 평생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어요.”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충북 청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언젠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도 파리 근교 농장을 견학할 때마다 설렜다. 그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귀농귀촌학교에 다니던 중 2박 3일 현장 체험을 갔다가 임업에 대해 알게 됐다.“논이나 밭농사는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숲속 농사인 임업은 손이 많이 가지 않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산속에 호두나무, 피칸 등을 심어 열매를 따고 산나물과 더덕, 카모마일을 키우며 표고버섯을 수확하는 것이죠. 최소 3~4년 기다리면서 하는 임업은 제 성격에도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귀농귀촌 교육을 마치고 산림조합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산림경영자과정 교육을 이수한 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영림단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나무 심기, 숲 가꾸기, 간벌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벌목 작업을 하다 잠시 앉아 쉴 때였다. 산 향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 진짜 산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나무의사가 되다그는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임업인 임야구입자금 대출을 받아 산지를 구입해 임업을 하려고 했다. 총 3억 원 이내에서 토지 감정가의 60%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연이율 1%로 15년 거치 20년 상환하는 방식이었다. 발품을 팔아 적당한 임야를 찾았지만, 감정가가 낮게 나와서 추가로 6000만원의 자금이 필요했고 준비가 부족했다. 산속에서 농사 짓는 꿈은 잠시 미뤘다.대신 나무의사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다. 임업 관련 학위나 경력도 없는 오 씨 같은 사람에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산림, 조경, 식물보호 분야 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을 따는 것이다. 산림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후에는 나무의사가 도기 위해 전국 15개 양성 기관에서 150시간 이상 의무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는 서울대, 신구대 같은 수도권 양성 기관에 지원했지만 탈락했다. 당시 경쟁률은 3대1, 4대1로 치열했다. 지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주말마다 부산 동아대로 내려가 수업을 받았다.“나무의사 시험이 어렵다고 하지만 아주 똘똘한 중학생이라면 6개월만 공부해도 딸 수 있다고 우리끼리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50대에 공부한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수목병리학과 해충학은 다 암기과목입니다. 화학식이 많은 토양학이 어렵다고 하는데 제겐 외우는 것보다 차라리 나았죠.”나무의사 시험 응시자 중에는 직장인도 많다. 하지만 주말에 수업 듣고 밤새 공부해 시험을 보기에 합격률은 높지 않다. 1차, 2차 시험 합격률이 15~20%에 불과하다. 오 씨는 “다행히 실직한 저는 온종일 공부할 수 있어 직장인보다 유리했다”고 했다. 그는 2022년 합격했다.합격 후 국가유산수리(식물보호) 전문병원인 서울 강동구의 한 나무병원에 의사로 취직했다. 초봉은 3900만원이었다. 경남 하동 축지리 문암송, 강원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삼척 궁촌리 음나무 등 전국을 돌며 천연기념물 노거수(老巨樹)를 모니터링하고 치료했다.“반계리 은행나무는 나이가 1300살이 넘어요. 노거수여서 바람에 약해 가지가 부러지거나 쓰러지기도 하거든요. 이럴 때 긴급 출동해 사다리 타고 올라가 수술을 해주죠. 필요하면 영양제도 놔줍니다.”그는 천연기념물 나무를 진단할 때 사진가의 감각을 최대한 활용한다.“사진가는 구도, 대칭, 비대칭 같은 구조적인 면을 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예요. 수관이 한쪽으로 편중돼 있으면 그쪽으로 쓰러질 확률이 높아요. 나뭇가지가 프랙탈 이론처럼 자연스럽게 뻗어 나가는 패턴을 벗어나면 위험 신호입니다.”● 나무의사 초봉 3000만 원대현재 산림청 공공사업이나 정부 발주 프로젝트의 나무의사 하루 노임 단가는 32만6359원, 수목치료기술자는 23만8447원으로 고시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보면 나무병원 신입 의사 초봉은 연 3000만~3500만 원 선, 3~5년 차는 연 4500만~5500만 원 선이다. 개업의나 대형 프로젝트를 전담하면 연 8000만 원 이상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나무의사 자격 취득자가 선호하는 취업 분야는 공무원(지방자치단체 녹지직 등)이 27.2%로 가장 높다. 이어 수목원 등 공공기관 25.6%. 합산하면 52.8%가 공공부문을 선호한다. 나무의사 자격이 안정적 공직 진출 관문으로도 기능한다는 의미다.오 씨는 지난해 8월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에 나무병원을 열었다. 나무병원을 만들려면 나무의사 2명 이상이거나, 나무의사 1명과 수목치료기술자 1명 이상을 갖춰야 한다. 병원 개업은 늦깎이 인연으로 만난 반려자 최가연 씨(51) 도움이 컸다. 최 씨도 영국 런던에서 플로리스트를 공부한 뒤 플랜테리어(식물 이용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해 왔으나 코로나19 이후 사업을 접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때였다. 나무병원을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오 씨 제안에 최 씨는 선뜻 수목치료기술자 공부를 시작했다. 수목치료기술자는 ‘간호사’ 역할이다. 이제는 늘 함께 현장에 나가 나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파트너가 됐다.“나무병원은 입찰을 통해 생활권 수목과 보호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민간 건물(아파트) 조경 수목을 관리해요. 60대 이후에도 취업률이 높은 것은 전문 지식과 함께 평생 쌓은 인맥 관리 노하우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전국 971개 나무병원 연간수익은 1554억 원 규모. 개별 병원 연평균 매출은 약 1억4700만 원이다. 각 나무병원에는 평균 2명 이상의 나무의사나 수목치료기술자가 있다. 나무의사 자격 취득자 1737명 중 많은 이가 현장에서 일한다는 증거다.지역별로 보면 경기도에 가장 많은 34~35%가 있다. 잇단 신도시 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경과 가로수 유지 보수 수요가 전국 1위 지역이어서다. 서울은 10~11%로 2위다.“가로수는 도시의 유일한 탄소 흡수원입니다. 잘못된 관리 방식으로 전국에서 매일 44그루의 가로수가 죽어 갑니다. 줄기 가운데를 싹둑 자르는 이른바 ‘닭발 전정’도 횡행합니다. 그러면 병균과 미생물이 침입해 나무 안쪽부터 썩어 들어가죠. 네모난 보도블록에 맞춰 뿌리를 잘라버리니 바람에 쓰러지는 일도 많습니다.”그는 ‘프로젝트 숨:표’라는 사물인터넷(IoT) 통합 수목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나무 옆에 설치한 ‘숨:표’ 센서가 24시간 토양 수분, 온도, 기울기 등을 모니터링한다.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병해충 감염을 일찍 감지하고, 쓰러질 확률을 예측한다. 또한 3차원(3D) 디지털 트윈 기술로 나무가 흡수하는 탄소량을 측정해 국제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오 씨는 나무의사를 하면서 사진 작업도 계속하겠다고 했다. 1년 동안 천연기념물 나무 한 그루를 계속 촬영해서 한 컷으로 남기는 작업이다.“봄에 새싹이 나오고, 여름에 풍성해졌다가, 가을에 낙엽이 지고, 겨울에 앙상해지는 나무의 1년간 모습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시간이란 무엇인지, 나무와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작업이지요.”글·사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아코르(Accor)의 한국 내 모든 호텔이 ‘그린 키(Green Key)’ 인증을 획득했다. 그린 키(Green Key)는 국제환경교육재단(Foundation for Environmental Education)이 엄격하게 관리하는 글로벌 친환경 인증 제도다. 1994년 덴마크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140여 개국, 3,500개 이상의 숙박시설과 관광지에 적용되는 지속가능성 인증 프로그램이다. 글로벌 호텔 산업에서는 에너지 효율, 수자원 관리, 폐기물 감축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호텔의 환경 실력표’에 해당한다.아코르 그룹은 한국에서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 & 서비스 레지던스,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 풀만 앰배서더 서울 이스트폴,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명동 등 총 28개 호텔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럭셔리부터 이코노미까지 모든 브랜드 세그먼트를 아우르는 호텔 체인이 한 지역에서 ‘100% 그린 키 인증’을 이루어낸 경우는 국제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다.그린 키 인증을 획득하려면 호텔은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에너지 및 수자원 관리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는 단순히 조명을 LED로 바꾸거나 절수 샤워헤드를 설치하는 수준을 넘어 건물 전체의 에너지 사용을 모니터링하고,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낭비를 최소화하는 구조적 개선을 해야 한다. 폐기물 감축과 재활용 프로그램도 필수다. 호텔은 객실, 연회장, 주방 등 전 영역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가능한 자원의 분류 및 처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코르의 호텔들은 리필형 어메니티를 도입하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단계적으로 제거해왔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책임 있는 구매 정책’이다. 호텔이 조달하는 식재료, 용품,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는 과정이다. 호텔별로는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 &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 시스템과 책임 있는 소싱 정책을 운영 전반에 도입했으며,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식음료 부문에서 지역 공급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풀만 앰배서더 서울 이스트폴은 고효율 설비 시스템과 폐기물 감축 정책을 운영 프레임워크에 반영하고 있으며,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인천 에어포트는 자원 효율적 운영과 고객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그린 키 원칙에 부합하도록 노력해왔다.직원 대상 지속가능성 교육도 빠지지 않는다. 호텔의 환경 정책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현장의 모든 직원이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투숙객이 능동적으로 환경 보호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체계도 요구된다. 린넨 재사용 캠페인, 객실 내 메시지 등을 통해 투숙객과 호텔이 함께 책임을 나눈다는 의미다.아코르 앰배서더 코리아 운영총괄 사장 빈센트 르레이는 “이번 성과는 지속가능성이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라 호텔 운영 방식 전반에 깊이 통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룰렛 휠 같은 경영 전략이 아닌, 호텔 정체성 자체가 환경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도록 재설계돼야 한다는 의미다. 아코르는 전 세계 110개국에서 5,700개 이상의 호텔을 운영하는 글로벌 그룹이다. 한국에서는 럭셔리 브랜드 중에는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과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 &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국내 최고급 호텔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페어몬트는 캐나다 태생의 럭셔리 브랜드이며, 소피텔은 프랑스 특유의 세련된 감각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라이프스타일 부문에서는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이 두드러진다. 몬드리안은 예술 철학을 호텔 경험으로 구현하는 브랜드이며, 호텔나루 서울 엠갤러리 역시 갤러리 개념을 접목한 라이프스타일 호텔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북 울진 후포항의 아침. 일출 시각인 7시 반에 맞춰놓은 알람 시계에 잠이 깼다. 서둘러 옷을 입고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목표지였던 등기산 전망대는 좀 멀었다. 이대로 해가 떠버릴 가능성이 큰 상황. 숙소 바로 앞 후포항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항구의 일출을 감상해 볼까. 여기는 울진대게의 본산인 후포항이 아니겠는가. 붉은 태양과 어우러지는 붉은대게(홍게)와 울진대게의 향연. 한겨울 동해에서만 볼 수 있는 항구의 분주한 아침 풍경이다.● 울진대게 축제가 열리는 후포항 동이 트는 항구에는 커다란 어선 두 척이 정박해 있었다. 장화를 신은 일꾼들이 배 창고에 실려 온 대게를 꺼내 테이블 위에서 정리하고,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담는다. 그리고 항구에 도착한 트럭에 빠르게 옮겨 싣고 있다.“이 대게가 어디서 잡혀 오는 건가요?” 항구에서 만난 이상하 하이F&B 대표는 “후포항에서 배로 2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왕돌초에서 잡아온다”고 말해준다. 왕돌초라니! 지난여름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다녀왔던 바닷속이라 친근한 이웃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후포항에서 23km 떨어진 왕돌초는 태백산맥과 나란히 바닷속에서 솟아오른 해산(海山)이다. 물이 맑아 수중 시야가 30m가 넘는 곳. 해외 바다가 부럽지 않은 국내 3대 다이빙 포인트 중의 하나다. 여의도 2배 규모의 왕돌초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해초 숲이 무성해 총 126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풍요로운 생태계다. 울진 어민들에겐 ‘바닷가 금광’과 다름없는 보고(寶庫)다. 울진대게는 1795년(정조 19년) 사도세자를 추도하는 제향의 식탁에 진상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대게가 영덕의 강구항에서 집화돼 팔려나가 한동안 ‘영덕대게’로 전국에 알려졌다. 울진의 입장에선 억울했다. 울진 어부가 울진 왕돌초에서 잡은 대게가 영덕대게로 불리다니. 그래서 1999년 울진군은 ‘울진대게 축제’를 시작했다. 이후 25년간 매년 2월 말∼3월 초에 후포항에서 꾸준히 열렸다. 2017년부터는 홍게의 어획량이 증가하고 소비층이 다양해지면서 축제 이름은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로 확대됐다. 올해도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나흘간 울진군 후포면 왕돌초 광장에서 축제가 열린다. 선상 대게잡이, 대게 빵, 대게 비빔밥, 대게 국수, 게살 김밥 등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항구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2, 3월에 잡힌 울진대게는 살이 꽉 차 있어 가장 맛있는 시기다.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살을 가져 ‘박달대게’라 불리는 귀한 존재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후포항 위판장에서 매일 아침에 진행되는 울진대게와 홍게 경매 이벤트. 광장에 널려있는 홍게는 마치 고추를 말리는 것처럼 새빨갛다. 어민들이 자신들이 잡은 대게와 홍게를 직접 소개하고, 관람객들은 중간마진 없이 구매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탈피 직전의 대게인 ‘홑게’도 만나볼 수 있다. 1만 마리 중 한 마리만 잡혀 선상에서 선주들만 맛본다는 진귀한 음식이다. 곧 벗겨질 겉껍질은 딱딱하지만, 새로 생성 중인 속껍질은 부드러워 껍질째 회로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홑게는 다리 껍질을 벗기면 안에서 탱탱한 속살과 속껍질이 꽃처럼 피어난다. 다리 살은 초장에 찍어 회로 먹고, 몸통은 살짝 구워 껍질째 씹어먹으면 고소한 맛이 난다. 후포항의 아침 해장국은 곰치국으로 정했다. 흐물흐물한 생선 살이 씹지도 않아도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느낌은 숙취로 지친 몸에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곰치국을 먹는 동안 식당 주인이 곰치를 조리하다가 직접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곰치의 배를 갈라 보니 통째로 먹은 울진대게가 사진에 찍혀 있었다. 왕돌초에서 대게를 먹다가 잡힌 곰치가 틀림없었다. 또 다른 곰치의 뱃속에서는 독도새우가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한미 정상회담의 만찬 메뉴로 나왔던 귀한 독도새우를 곰치란 녀석은 매일 먹고 있었다니…. 정말 부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해양레저스포츠의 천국인 울진에서 꼭 즐겨봐야 하는 것은 바로 요트 탑승이다. 울진군 요트협회는 매년 요트학교를 열고 있다. 후포항에서 요트를 타고 방파제를 벗어나니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등기산 스카이워크와 갓바위를 올려다보니 더욱 웅장한 자태를 실감하게 된다. 특히 해가 질 무렵 요트를 타면 분홍빛 바다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울진대게 축제 기간에도 진행되는 푸른 동해 위를 떠다니는 하얀 요트들은 후포항에 색다르고 포근한 봄기운을 전해줄 예정이다. ● 겨울에 따뜻한 성류굴“더울 수 있으니 외투는 차에 벗어놓고 가볍게 들어가세요.”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덥다니…. 울진 성류굴에 먼저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건네는 조언이었다. 단양 고수동굴, 삼척 환선굴 등 석회동굴은 여름철에는 천연 에어컨 바람을 맞는 듯 시원한 피서지로 손꼽힌다. 그런데 겨울에 찾아가니 따스한 온기가 가득하다. “밖은 영하 10도인데 여긴 15도네”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순간, 계절의 벽이 무너진다. 연중 15∼17도를 유지하는 울진 성류굴은 ‘지하금강(地下金剛)’이라 불린다. 2억 5천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이 석회암 동굴은 마치 수석(壽石)처럼 섬세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거제도 바다에는 해금강(海金剛)이 있고, 오대산에는 소금강(小金剛) 계곡이 있듯이 기암괴석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금강산에 비견된다. 성류굴에서 차로 10분 달려 도착한 남대천 하구에는 은어다리가 있다. 남대천은 국내 최대의 은어 서식처. 산란철에 이곳을 찾으면 바다에서 강으로 회귀하는 반짝이는 은어 떼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은어는 연어처럼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사는 물고기다. 연어는 강에서 부화해 바다로 내려가 5∼6년을 살다가 다시 강으로 돌아오지만, 은어는 불과 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강물에서 바다를 오가며 부화하고, 성장하고, 산란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의 은어 떼가 일제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천회귀’는 장엄하고 치열하다. 남대천의 은어다리는 두 마리의 거대한 은어 조형물이 마주 보고 있다. 두 마리의 은어는 암수를 상징하기도 하고, 바다로 나가고 들어오는 은어를 뜻하기도 한다. 해 질 녘 은어다리의 조명이 들어오고 야경이 펼쳐지면 색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울진 평해읍에 있는 월송정과 구산해수욕장은 호젓한 겨울 여행지로 좋다. 동해의 쪽빛 바다와 은빛 모래 해변, 1만5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그림 같다. 월송정(越松亭)은 ‘신선이 날아 넘어 다니는 솔숲’에 있는 정자란 뜻. 조선시대 성종과 숙종도 월송정을 좋아했다고 한다. 월송정에서 바라보이는 해변인 구산해수욕장에는 추운 겨울인데도 몰디브를 연상케 하는 파라솔이 놓여 있다. 호젓한 구산해수욕장은 한쪽에 반려견과 함께 놀 수 있는 ‘펫 비치(Pet Beach)’도 있어 눈길을 끈다. 가볼 만한 곳울진의 유서 깊은 백암온천은 수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원탕고려호텔에는 가족끼리 프라이빗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최근 오픈한 VIP풀빌라 가족탕은 단층 펜션 건물로 어린 자녀, 임산부, 노년층 가족도 편안하게 1박2일 머무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내부에 침실과 주방, 거실, 온천탕이 연결돼 있어 3대가 함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글·사진 울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요즘 여행의 트렌드는 문화와 스포츠, 관광이 모두 융합되는 것입니다. 특히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서 하나의 도시 마케팅으로 통합되는 것이죠. 서울관광재단과 손흥민 선수가 속한 LA FC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소식에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스포츠 스폰서십을 넘어 글로벌 도시 마케팅의 전략 중 하나로 해석되는데요. 런던의 프리미어리그, 바르셀로나의 캠프누, 로마의 역사 유산들… 이 모든 것들이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관광객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입니다. 이제 서울도 글로벌 스포츠 네트워크에서 더욱 공략적으로 관광을 홍보할 때입니다. LA FC는 애플TV를 통해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중계되는 MLS(메이저리그사커)의 대표 구단입니다. 애플TV를 통해 중계되는 LAFC 경기 중 서울의 관광홍보 슬로건인 ‘Seoul My Soul’ 브랜드가노출되며, 연간 약 40만 명이 방문하는 LAFC 홈구장 ‘BMO 스타디움’ 내 주요 옥외 광고 매체를 통해서도 서울관광 콘텐츠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광고판 효과를 넘어 스토리텔링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데요. LA와 서울. 두 도시를 이어주는 것은 손흥민 선수라는 존재입니다. 한국 축구계를 대표하는 스타의 글로벌 팬덤이, 자연스럽게 서울이라는 도시에 주목하게 되겠죠. 북미는 물론 동남아, 그리고 아시아 전역의 축구 팬들에게 “아, 손흥민의 도시, 서울”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입니다.또한 4월 중순 MOU를 체결하고, 4월 20일 LA FC 홈경기 때 ‘팬 페스트’에서 첫 공식 행사를 열 예정인데요. 경기장을 찾은 수만 명의 팬들이 서울의 이미지를 체험하게 한다는 전략입니다. 관광은 정보가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 더 큰데요. 정보의 내용보다는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접한 정보인가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게 되지요. 5월 중순에는 손흥민 선수를 비롯한 LA FC 주요 선수들이 참여하는 ‘서울관광 홍보영상’이 SNS채널을 통해 공개된다고 하는데요. 유튜브와 SNS를 통해 확산될 이 영상들은 문화적 네트워크 효과도 만들어낼 것입니다. 각 선수의 개인 팔로워, 그들의 가족, 친구들까지 아우르는 자연스러운 공유와 확산이 이뤄질 것이죠. 그리고 LAFC 선수단과 서울의 이미지를 결합한 한정판 포스터 이벤트도 열릴 예정입니다. 서울의 주요 관광안내소와 ‘서울마이소울’ 굿즈샵에서 포스터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서울관광 유튜브 채널(Visit Seoul)을 팔로우하게 만드는 것. 이는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채널 연계 관광전략입니다. 애플TV를 통해 전 세계 200개국에 중계되는 경기 중에 ‘Seoul My Soul’ 브랜드가 노출된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뉴욕, 런던, 도쿄, 상파울루 어디에 있든 축구 경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서울이라는 도시를 접하게 된다는 의미가 되죠. 2008년에도 서울시는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협업을 통해 서울을 유럽 스포츠 팬들의 지도에 올렸습니다. 이번 LA FC 파트너십은 그 경험을 북미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확장하게 될 것이죠. 길기연 서울관광재단 대표는 “글로벌 관광도시로서의 서울을 부각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매력에 반해 직접 방문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감정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실제 방문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손흥민이 뛰는 경기를 보며 “아, 그 도시 가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고급화된 관광마케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포츠는 국경을 넘습니다. 언어도 필요 없습니다. 열정과 감동이 가슴에 남을 뿐이죠. 케데헌을 본 외국인들의 가슴에는 “서울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고, 실제로 관광객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스포츠 경기와 스타를 통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마케팅하는 것. 좋은 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북 울진 후포항의 아침. 일출시간인 7시반에 맞춰놓은 알람시계에 잠이 깼다. 서둘러 옷을 입고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목표지였던 등기산 전망대는 좀 멀었다. 이대로 해가 떠버릴 가능성이 큰 상황. 숙소 바로 앞 후포항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은 항구의 일출을 감상해볼까. 여기는 울진대게의 본산인 후포항이 아니겠는가. 붉은 태양과 어우러지는 붉은대게(홍게)와 울진대게의 향연. 한겨울 동해에서만 볼 수 있는 항구의 분주한 아침 풍경이다. ●울진대게 축제가 열리는 후포항동이 트는 항구에는 커다란 어선 두척이 정박해 있었다. 장화를 신은 일꾼들이 배 창고에 실려 온 대게를 꺼내 테이블 위에서 정리하고,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담는다. 그리고 항구에 도착한 트럭에 빠르게 옮겨싣고 있다. “이 대게가 어디서 잡혀오는 건가요?”항구에서 만난 이상하 하이F&B 대표는 “후포항에서 배로 2시간 정도 가면 나오는 왕돌초에서 잡아온다”고 말해준다. 왕돌초라니! 지난 여름 스킨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다녀왔던 바닷 속이라 친근한 이웃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후포항에서 23km 떨어진 왕돌초는 태백산맥과 나란히 바닷 속에서 솟아오른 해산(海山)이다. 물이 맑아 수중시야가 30m가 넘는 곳. 해외바다가 부럽지 않은 국내 3대 다이빙포인트 중의 하나다. 여의도 2배 규모의 왕돌초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고, 해초숲이 무성해 총 126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풍요로운 생태계다. 울진 어민들에겐 ‘바닷가 금광’과 다름없는 보고(寶庫)다. 울진대게는 1795년(정조 19년) 사도세자를 추도하는 제향의 식탁에 진상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대게가 영덕의 강구항에서 집하돼 팔려나가 한동안 ‘영덕대게’로 전국에 알려졌다. 울진의 입장에선 억울했다. 울진 어부가 울진 왕돌초에서 잡은 대게가 영덕대게로 불리다니. 그래서 1999년 울진군은 ‘울진대게 축제’를 시작했다. 이후 25년간 매년 2월말~3월초에 후포항에서 꾸준히 열렸다. 2017년부터는 붉은대게(홍게)의 어획량이 증가하고 소비층이 다양해지면서 축제 이름은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로 확대됐다. 올해도 2월27일부터 3월2일까지 나흘간 울진군 후포면 왕돌초 광장에서 축제가 열린다. 선상 대게잡이, 대게빵, 대게비빔밥, 대게국수, 게살김밥 등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항구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2,3월에 잡힌 울진대게는 살이 꽉차 있어 가장 맛있는 시기다.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살을 가져 ‘박달대게’라 불리는 귀한 존재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후포항 위판장에서 매일 아침에 진행되는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경매 이벤트. 광장에 널려있는 홍게는 마치 고추를 말리는 것처럼 새빨갛다. 어민들이 자신들이 잡은 대게와 홍게를 직접 소개하고, 관람객들은 중간마진 없이 구입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탈피 직전의 대게인 ‘홑게’도 만나볼 수 있다. 1만 마리 중 한마리만 잡혀 선상에서 선주들만 맛본다는 진귀한 음식이다. 곧 벗겨질 겉껍질은 딱딱하지만, 새로 생성 중인 속껍질은 부드러워 껍질째 회로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홑게는 다리 껍질을 벗기면 안에서 탱탱한 속살과 속껍질이 꽃처럼 피어난다. 다리살은 초장에 찍어 회로 먹고, 몸통은 살짝 구워 껍질째 씹어먹으면 고소한 맛이 난다. 후포항의 아침 해장국은 곰치국으로 정했다. 흐물흐물한 생선살이 씹지도 않아도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가는 느낌은 숙취로 지친 몸에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곰치국을 먹는 동안 식당 주인이 곰치를 조리하다가 직접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곰치의 배를 갈라보니 통째로 먹은 울진대게가 사진에 찍혀 있었다. 왕돌초에서 대게를 먹다가 잡힌 곰치가 틀림없었다. 또 다른 곰치의 뱃속에서는 독도새우가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한미정상회담의 만찬 메뉴로 나왔던 귀한 독도새우를 곰치란 녀석은 매일 먹고 있었다니…. 정말 부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해양레저스포츠의 천국인 울진에서 꼭 즐겨봐야 하는 것은 바로 요트탑승이다. 울진군요트협회는 매년 요트학교를 열고 있다. 후포항에서 요트를 타고 방파제를 벗어나니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등기산 스카이워크와 갓바위를 올려다보니 더욱 웅장한 자태를 실감하게 된다. 특히 해가 질 무렵 요트를 타면 분홍빛 바다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울진대게 축제기간에도 진행되는 푸른 동해 위를 떠다니는 하얀 요트들은 후포항에 색다르고 포근한 봄기운을 전해줄 예정이다. ● 겨울에 따뜻한 성류굴“더울 수 있으니 외투는 차에 벗어놓고 가볍게 들어가세요.”영하 1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덥다니…. 울진 성류굴에 먼저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건네는 조언이었다. 단양 고수동굴, 삼척 환선굴 등 석회동굴은 여름철에는 천연 에어컨 바람을 맞는 듯 시원한 피서지로 손꼽히낟. 그런데 겨울에 찾아가니 따스한 온기가 가득하다. “밖은 영하 10도인데 여긴 15도네”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순간, 계절의 벽이 무너진다. 연중 15~17도를 유지하는 울진 성류굴은 ‘지하금강(地下金剛)’이라 불린다. 2억 5천만 년의 세월이 빚어낸 이 석회암 동굴은 마치 수석(壽石)처럼 섬세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거제도 바다에는 해금강(海金剛)이 있고, 오대산에는 소금강(小金剛) 계곡이 있듯이 기암괴석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금강산에 비견된다. 성류굴에서 차로 10분 달려 도착한 남대천 하구에는 은어다리가 있다. 남대천은 국내 최대의 은어서식처. 산란철에 이 곳을 찾으면 바다에서 강으로 회귀하는 반짝이는 은어 떼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은어는 연어처럼 바다와 강을 오가며 사는 물고기다. 연어는 강에서 부화해 바다로 내려가 5~6년을 살다가 다시 강으로 돌아오지만, 은어는 불과 1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강물에서 바다를 오가며 부화하고, 성장하고, 산란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의 은어떼가 일제히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천회귀’는 장엄하고 치열하다. 남대천의 은어다리는 두 마리의 거대한 은어 조형물이 마주보고 있다. 두 마리의 은어는 암수를 상징하기도 하고, 바다로 나가고 들어오는 은어를 뜻하기도 한다. 해질녘 은어다리의 조명이 들어오고 야경이 펼쳐지면 색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울진 평해읍에 있는 월송정과 구산해수욕장은 호젓한 겨울 여행지로 좋다. 동해의 쪽빛 바다와 은빛 모래해변, 1만5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이 그림같다. 월송정(越松亭)은 ‘신선이 날아 넘어다니는 솔숲’에 있는 정자란 뜻. 조선시대 성종과 숙종도 월송정을 좋아했다고 한다. 월송정에서 바라보이는 해변인 구산해수욕장에는 추운 겨울인데도 몰디브를 연상케하는 파라솔이 놓여 있다. 호젓한 구산해수욕장은 한쪽에 반려견과 함께 놀수 있는 ‘펫 비치(Pet Beach)’도 있어 눈길을 끈다. ●가볼만한 곳=울진의 유서깊은 백암온천은 수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원탕고려호텔에는 가족끼리 프라이빗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최근 오픈한 VIP풀빌라 가족탕은 단층 펜션건물로 어린 자녀, 임산부, 노년층 가족도 편안하게 1박2일 머무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내부에 침실과 주방, 거실, 온천탕이 연결돼 있어 3대가 함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교동도와 석모도. 강화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들어가는 섬 속의 섬이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왕족들의 유배지였던 교동도는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런가하면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가꿔온 골목시장의 정겨운 풍경이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남아 있다. 추운 겨울. 교동도 대룡시장에서 쌍화차를 한잔 마시고, 석모도 해수온천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힐링여행을 떠나보자. ● 왕족들의 유배지, 교동도“연산군이 강화에서 교동으로 갈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힐 뻔했다.”(조신 ‘소문쇄록’) 교동도는 북한과 불과 2.6km 떨어진 민통선 지역, 교동도로 들어가는 길이 3.4km의 교동대교 입구에는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추운날씨에도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다. 북한과 불과 2.6km 떨어진 접경지역라 출입 절차가 필요한 지역이다. 다리 위에서 서해의 물결 너머로 북녘 땅이 바라다보였다. 연산군은 교동도 유배길에 배를 타고 건넜지만, 지금은 연륙교를 건너니 불과 몇분만에 도착한다. 교동도 화개산 중턱에 조성된 화개정원에는 연산군 유배지가 복원돼 있다. 교동도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왕족 유배지로 최적의 장소였다. 다산 정약용 형제나 추사 김정희 등 사대부들은 전남 강진, 흑산도, 제주도, 함경도 등 한양에서 천리길 넘게 떨어진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왕족은 너무 멀리 방치해놓으면 세력을 규합할까 불안했다. 그래서 가까우면서도 감시하기 쉽고, 신속하게 사약도 전달할 수 있는 교동도에 가두었다. 왕족들에게 교동도는 결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유배지였다. “안치되는 곳의 울타리는 좁고 높아서 해를 볼 수 없으며, 작은 문 하나가 있어 음식을 간신히 넣을 수 있었다.” (이긍익 ‘연려실기술’)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뒤 교동도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 형벌에 처해졌다. 실제로 가보니 뾰족한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초가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보니 작은 방과 부엌 한칸이 나온다. 방 안에는 수염을 기른 남성 앞에 단촐한 반찬이 놓인 밥상과 이불이 놓여 있다. 전국에서 선발해온 미녀들로 ‘흥청(興淸)’을 만들어 성균관을 놀이터로 삼고, 원각사를 연회장과 유흥장으로 만들었던 연산군. ‘흥청망청’이라는 말의 어원이 됐던 폭군의 마지막 삶은 비참했다. 유배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역질에 걸려 사망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였다.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도 경계 대상 1호인 동생 안평대군을 교동도에 가뒀다. 그리고 8일만에 사약을 내려 죽여버렸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의 후원자,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던 안평대군은 36세의 나이로 교동도에서 생을 마감해야했다. 광해군의 동생 능창군도 16세의 어린나이에 교동도에 유배돼 사사됐고, 형 임해군도 교동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광해군도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후 교동도로 유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광해군은 병자호란 이후 제주도로 옮겨져 생을 마감했다. 고려시대에도 21대왕 흥선군, 22대왕 강종 등이 교동도로 유배됐다. 교동읍성에는 유배된 왕족들의 무덤과 적거지 등이 남아 있다. 교동도의 왕족들은 극도의 감시를 받다가 대부분 단기간에 사약을 받거나, 병에 걸려 죽었다. 반면 일반 정치범은 먼 곳으로 유배를 갔지만 장기적인 유배생활에서 책을 쓰거나, 시를 지으면서 오래 살아 남았다. ● 교동도 대룡시장 교동짬뽕, 교동시장, 교동한과, 교동법주…. ‘교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과 장소는 유난히 많다. 전국 지도를 펼쳐보면 더 놀랍다. 서울, 인천, 전주, 군산, 대구, 경주, 강릉, 청주 등 웬만한 도시에는 교동(校洞)이 있다. 비밀은 ‘교’라는 글자에 있다. 정확히는 ‘향교(鄕校)’의 교(校)자다. 향교(鄕校)란 공자를 모시고 선비를 길러내던 곳.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된 국립 교육기관이다. 지방에 하나씩 있는 대표적인 명문학교다. 조선시대 법전 ‘경국대전’에 따르면, 모든 부(府), 목(牧), 군(郡), 현(縣)에 향교를 설치하도록 돼 있었다. 전성기 때는 전국에 약 330여 개의 향교가 있었다. 서울에는 국립대학인 성균관이 있었다면, 지방에는 향교가 있었다. 항교는 단순히 교육기관만이 아니었다. 공자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고, 지역 양반들이 모여 시를 짓고 토론하는 사교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향교가 들어선 동네는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유생(儒生)들이 모여들었고, 책과 문화가 넘쳐났다.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다. 각 지역마다 교동이란 브랜드는 오랜 전통과 품격, 맛집의 대명사로 통했다. 강화 교동도는 섬 전체가 ‘교동’인 셈이다. 교동읍성에서 가까운 중심가에는 ‘교동향교(喬桐鄕校)’가 자리잡고 있다. 단, 교동도의 ‘교(喬)’자는 ‘높을 교(喬)’자를 쓴다. 교동도 대룡시장에도 해물이 풍부한 얼큰한 짬뽕인 ‘교동짬뽕’이 유명하고, 교동제비집의 찹쌀로 만든 약과인 ‘교동약과’도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사가는 명물이다.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대룡시장은 1960년대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입구에 있는 ‘청춘부라보’ 집에서는 트로트 음악에 맞춰 ‘강아지떡’과 ‘이북만두’를 판다. 대룡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6.25 당시 황해도 연백, 해주, 개풍 등에서 온 실향민들이거나 후손들이다. 황해도에서 제일 큰 ‘연백오일장’을 재현해 5일에 한번씩 대룡시장에 장이 설 때마다 강화도, 김포에서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찾아왔다. 교동도 대룡시장은 1960~70년대 풍경을 재현한 영화 세트장처럼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살아 있다. 옛 철물점을 리모델링한 다방에서 노란색 계란이 올려진 쌍화차를 마시니 추위 속에서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석모도 해수온천의 비밀 북극 한파가 몰아치는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이럴 때는 강화도 석모도에 있는 해수온천을 찾아가면 된다.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연륙교인 석모대교를 건너면 갯벌을 메워 만든 간척지 땅이 나온다.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겨울들판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황무지처럼 쓸쓸하고 황량하다. 곳곳에 남아 있는 습지에는 저어새같은 천연기념물 조류가 노닐고 있고, 얼음을 뚫고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한겨울 고독을 즐기기에 딱 좋은 자연주의적 들판이다. 그런데 이 갯벌을 메운 땅에서 뜨거운 해수온천이 솟아나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강화도의 바닷물이 해저 땅 속으로 스며들어서 마그마에 의해 뜨겁게 덥혀진 후 다시 솟아오르는 해수온천이다. 유니아일랜드 더스파빌은 단층짜리 하얀색 건물이다. 간척지 땅의 들판과 잘 어우러지는 낮은 건축물이다. 수영장처럼 생긴 야외온천은 밤이 되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객실 안에는 개별스파도 따로 있다. 온천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하늘을 쳐다보면 네모난 풀빌라의 뻥뚫린 천정 위로 밤하늘 별이 보인다. 때로는 유성이 흘러가고, 인천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가 수평선 너머로 지나갈 때도 있다. 객실 불을 끄고 프라이빗 온천에 있으면 별이 더욱 잘 보인다. 짭짤한 맛의 해수온천의 원수 온도는 약 70도. 바닷물이 땅 속에서 지열에 의해 가열돼 분출되는 온천이라 1리터당 3만7400mg 이상의 칼슘, 칼륨, 마그네슘, 황산이온 등 천연 미네랄 성분이 함유돼 있다. 석모도 해수온천은 지구 내부의 열과 바다가 만나 빚어내는 지질학적 신비로움이다. 바닷물이 해안 지역의 암석 틈새, 단층대, 균열을 따라 지하 깊은 곳으로 스며들고, 지구 내부의 지열에 의해 가열된다. 깊은 심해의 열수구처럼 마그마가 직접 물을 400°C까지 가열하는 것과 달리, 육지의 해수온천은 지각 내 ‘마그마 굄(magma chamber)’이나 뜨거운 화성암층의 간접적인 열로 물이 데워진다고 한다. 뜨거워진 해수는 밀도가 낮아져 부력으로 상승하며 주변 암석의 미네랄을 녹여 흡수한다. 상승 중 주변 차가운 암석과 지하수와 열교환을 하면서 지표 도달 시에는 70도 내외가 된다. 석모도에서는 해수온천수를 난방에도 활용하고, 사우나도 만들고, 농가 비닐하우스 난방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이 되면 갯벌을 메운 간척지 너머로 멀리 서해바다가 보인다. 황량한 벌판에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리고 따뜻한 온천까지…. 아래는 유튜브 영상 주소▶▶h강화=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교동도와 석모도. 강화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들어가는 섬 속의 섬이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왕족들의 유배지였던 교동도는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런가하면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가꿔온 골목시장의 정겨운 풍경이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남아 있다. 추운 겨울. 교동도 대룡시장에서 쌍화차를 한잔 마시고, 석모도 해수온천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며 힐링여행을 떠나보자. ● 왕족들의 유배지, 교동도 “연산군이 강화에서 교동으로 갈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힐 뻔했다.”(조신 ‘소문쇄록’) 교동도는 북한과 불과 2.6km 떨어진 민통선 지역, 교동도로 들어가는 길이 3.4km의 교동대교 입구에는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추운날씨에도 군인들이 지키고 서 있다. 북한과 불과 2.6km 떨어진 접경지역라 출입 절차가 필요한 지역이다. 다리 위에서 서해의 물결 너머로 북녘 땅이 바라다보였다. 연산군은 교동도 유배길에 배를 타고 건넜지만, 지금은 연륙교를 건너니 불과 몇분만에 도착한다. 교동도 화개산 중턱에 조성된 화개정원에는 연산군 유배지가 복원돼 있다. 교동도는 고려부터 조선까지 왕족 유배지로 최적의 장소였다. 다산 정약용 형제나 추사 김정희 등 사대부들은 전남 강진, 흑산도, 제주도, 함경도 등 한양에서 천리길 넘게 떨어진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러나 왕족은 너무 멀리 방치해놓으면 세력을 규합할까 불안했다. 그래서 가까우면서도 감시하기 쉽고, 신속하게 사약도 전달할 수 있는 교동도에 가두었다. 왕족들에게 교동도는 결코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유배지였다. “안치되는 곳의 울타리는 좁고 높아서 해를 볼 수 없으며, 작은 문 하나가 있어 음식을 간신히 넣을 수 있었다.” (이긍익 ‘연려실기술’)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뒤 교동도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 형벌에 처해졌다. 실제로 가보니 뾰족한 가시가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초가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보니 작은 방과 부엌 한칸이 나온다. 방 안에는 수염을 기른 남성 앞에 단촐한 반찬이 놓인 밥상과 이불이 놓여 있다. 전국에서 선발해온 미녀들로 ‘흥청(興淸)’을 만들어 성균관을 놀이터로 삼고, 원각사를 연회장과 유흥장으로 만들었던 연산군. ‘흥청망청’이라는 말의 어원이 됐던 폭군의 마지막 삶은 비참했다. 유배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역질에 걸려 사망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였다.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도 경계 대상 1호인 동생 안평대군을 교동도에 가뒀다. 그리고 8일만에 사약을 내려 죽여버렸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의 후원자, 학문과 예술에 뛰어났던 안평대군은 36세의 나이로 교동도에서 생을 마감해야했다. 광해군의 동생 능창군도 16세의 어린나이에 교동도에 유배돼 사사됐고, 형 임해군도 교동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런 광해군도 1623년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후 교동도로 유배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광해군은 병자호란 이후 제주도로 옮겨져 생을 마감했다. 고려시대에도 21대왕 흥선군, 22대왕 강종 등이 교동도로 유배됐다. 교동읍성에는 유배된 왕족들의 무덤과 적거지 등이 남아 있다. 교동도의 왕족들은 극도의 감시를 받다가 대부분 단기간에 사약을 받거나, 병에 걸려 죽었다. 반면 일반 정치범은 먼 곳으로 유배를 갔지만 장기적인 유배생활에서 책을 쓰거나, 시를 지으면서 오래 살아 남았다. ● 교동도 대룡시장 교동짬뽕, 교동시장, 교동한과, 교동법주…. ‘교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과 장소는 유난히 많다. 전국 지도를 펼쳐보면 더 놀랍다. 서울, 인천, 전주, 군산, 대구, 경주, 강릉, 청주 등 웬만한 도시에는 교동(校洞)이 있다. 비밀은 ‘교’라는 글자에 있다. 정확히는 ‘향교(鄕校)’의 교(校)자다. 향교(鄕校)란 공자를 모시고 선비를 길러내던 곳. 조선시대 지방에 설치된 국립 교육기관이다. 지방에 하나씩 있는 대표적인 명문학교다. 조선시대 법전 ‘경국대전’에 따르면, 모든 부(府), 목(牧), 군(郡), 현(縣)에 향교를 설치하도록 돼 있었다. 전성기 때는 전국에 약 330여 개의 향교가 있었다. 서울에는 국립대학인 성균관이 있었다면, 지방에는 향교가 있었다. 항교는 단순히 교육기관만이 아니었다. 공자와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고, 지역 양반들이 모여 시를 짓고 토론하는 사교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향교가 들어선 동네는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유생(儒生)들이 모여들었고, 책과 문화가 넘쳐났다.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다. 각 지역마다 교동이란 브랜드는 오랜 전통과 품격, 맛집의 대명사로 통했다. 강화 교동도는 섬 전체가 ‘교동’인 셈이다. 교동읍성에서 가까운 중심가에는 ‘교동향교(喬桐鄕校)’가 자리잡고 있다. 단, 교동도의 ‘교(喬)’자는 ‘높을 교(喬)’자를 쓴다. 교동도 대룡시장에도 해물이 풍부한 얼큰한 짬뽕인 ‘교동짬뽕’이 유명하고, 교동제비집의 찹쌀로 만든 약과인 ‘교동약과’도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사가는 명물이다.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지는 대룡시장은 1960년대에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입구에 있는 ‘청춘부라보’ 집에서는 트로트 음악에 맞춰 ‘강아지떡’과 ‘이북만두’를 판다. 대룡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6.25 당시 황해도 연백, 해주, 개풍 등에서 온 실향민들이거나 후손들이다. 황해도에서 제일 큰 ‘연백오일장’을 재현해 5일에 한번씩 대룡시장에 장이 설 때마다 강화도, 김포에서도 사람들이 배를 타고 찾아왔다. 교동도 대룡시장은 1960∼70년대 풍경을 재현한 영화 세트장처럼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살아 있다. 옛 철물점을 리모델링한 다방에서 노란색 계란이 올려진 쌍화차를 마시니 추위 속에서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 석모도 해수온천의 비밀북극 한파가 몰아치는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이럴 때는 강화도 석모도에 있는 해수온천을 찾아가면 된다.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연륙교인 석모대교를 건너면 갯벌을 메워 만든 간척지 땅이 나온다.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겨울들판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황무지처럼 쓸쓸하고 황량하다. 곳곳에 남아 있는 습지에는 저어새같은 천연기념물 조류가 노닐고 있고, 얼음을 뚫고 낚시를 하는 강태공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한겨울 고독을 즐기기에 딱 좋은 자연주의적 들판이다. 그런데 이 갯벌을 메운 땅에서 뜨거운 해수온천이 솟아나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강화도의 바닷물이 해저 땅 속으로 스며들어서 마그마에 의해 뜨겁게 덥혀진 후 다시 솟아오르는 해수온천이다. 유니아일랜드 더스파빌은 단층짜리 하얀색 건물이다. 간척지 땅의 들판과 잘 어우러지는 낮은 건축물이다. 수영장처럼 생긴 야외온천은 밤이 되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객실 안에는 개별스파도 따로 있다. 온천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하늘을 쳐다보면 네모난 풀빌라의 뻥뚫린 천정 위로 밤하늘 별이 보인다. 때로는 유성이 흘러가고, 인천공항에서 이륙하는 비행기가 수평선 너머로 지나갈 때도 있다. 객실 불을 끄고 프라이빗 온천에 있으면 별이 더욱 잘 보인다. 짭짤한 맛의 해수온천의 원수 온도는 약 70도. 바닷물이 땅 속에서 지열에 의해 가열돼 분출되는 온천이라 1리터당 3만7400mg 이상의 칼슘, 칼륨, 마그네슘, 황산이온 등 천연 미네랄 성분이 함유돼 있다. 석모도 해수온천은 지구 내부의 열과 바다가 만나 빚어내는 지질학적 신비로움이다. 바닷물이 해안 지역의 암석 틈새, 단층대, 균열을 따라 지하 깊은 곳으로 스며들고, 지구 내부의 지열에 의해 가열된다. 깊은 심해의 열수구처럼 마그마가 직접 물을 400°C까지 가열하는 것과 달리, 육지의 해수온천은 지각 내 ‘마그마 굄(magma chamber)’이나 뜨거운 화성암층의 간접적인 열로 물이 데워진다고 한다. 뜨거워진 해수는 밀도가 낮아져 부력으로 상승하며 주변 암석의 미네랄을 녹여 흡수한다. 상승 중 주변 차가운 암석과 지하수와 열교환을 하면서 지표 도달 시에는 70도 내외가 된다. 석모도에서는 해수온천수를 난방에도 활용하고, 사우나도 만들고, 농가 비닐하우스 난방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아침과 저녁이 되면 갯벌을 메운 간척지 너머로 멀리 서해바다가 보인다. 황량한 벌판에 태양이 뜨고 지는 모습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리고 따뜻한 온천까지….아래는 유튜브 영상 주소▶▶글·사진 강화=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중부발전이 2040년까지 무탄소 에너지 발전량 비중 60%, 온실가스 감축률 70%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2026년은 이러한 장기 전략의 실행력을 검증하는 분기점으로, 석탄 화력 발전 중심의 기존 체계를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 개발과 글로벌 입지 확보를 본격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대용량 터빈 기술로 서해안 풍력 벨트 추진풍력발전은 중부발전의 무탄소 에너지 전략의 중심축이다. 390MW 규모의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단지’는 현재 본격적인 공사 단계에 진입했으며, 터빈 대형화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같은 면적에서 더 높은 전력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대용량 터빈 기술은 발전 비용 절감으로 직결된다. 전남 신안 앞바다의 복잡한 지형을 반영한 지지 구조물 설계, 전력 손실 최소화를 위한 최적화된 배치, 그리고 기존 제주 한림 해상풍력(100MW) 운영 경험에서 도출된 특수 코팅 기술까지 적용되고 있다. 충남 보령과 인천 지역의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개발도 동시에 진행 중으로, 이는 서해안 전역에 걸친 풍력 벨트 구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美 텍사스 이어 중동까지 태양광 진출 태양광 분야에서 중부발전은 국내 유휴 부지 활용에서 해외 거대 시장 선점까지 다층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오만 이브리3 태양광·BESS(배터리 에너지 저장장치) 발전 사업은 지난달 15일 금융종결을 달성하며 건설 단계에 진입했다. 총사업비 3억1100만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500MW 태양광과 100MWh 배터리 저장장치를 연계한 오만 최초의 BESS 통합형 태양광 사업으로, 사막 기후 최적화 기술을 통해 12월 상업운전을 목표로 한다. 미국 텍사스 루시 태양광(350MW)은 양면형 패널 기술로 지면 반사광까지 활용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계획이며, 2027년 7월 운영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수상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을 통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추가 발전 용량을 확보하는 다각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 위기 대응과 안정적 전력 수급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중부발전의 접근은 설비 대형화와 글로벌 거점 확보를 통해 기술적 한계와 입지 부족이라는 국내 제약을 극복하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자금 조달과 국제 금융기관의 참여는 사업의 재정적 안정성을 담보한다. 다만 해상풍력의 환경영향평가, 글로벌 사업의 정치·사회적 리스크, 그리고 기술 개발 과정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수 등은 향후 면밀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중부발전의 2040년 탄소중립 목표는 한국의 재정·에너지 정책 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기능하고 있다. 서해안 풍력과 중동 태양광이라는 이중 전략은 국내 자원 한계를 보완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향후 기술 표준화, 주민 수용성 확보, 그리고 장기적 수익성 확보 여부가 이 대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중부발전이 2040년까지 무탄소 에너지 발전량 비중 60%, 온실가스 감축률 70%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2026년은 이러한 장기 전략의 실행력을 검증하는 분기점으로, 석탄 화력 발전 중심의 기존 체계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글로벌 입지 확보를 본격 추진할 전망이다.◆ 해상풍력 사업의 기술 고도화풍력발전은 중부발전의 무탄소 에너지 전략의 중심축이다. 390MW 규모의 ‘신안우이 해상풍력발전단지’는 현재 본격적인 공사 단계에 진입했으며, 터빈 대형화를 통한 효율성 극대화에 주력하고 있다. 같은 면적에서 더 높은 전력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대용량 터빈 기술은 발전 비용 절감으로 직결된다. 신안 앞바다의 복잡한 지형을 반영한 지지 구조물 설계, 전력 손실 최소화를 위한 최적화된 배치, 그리고 기존 제주 한림 해상풍력(100MW) 운영 경험에서 도출된 특수 코팅 기술까지 적용되고 있다. 보령과 인천 지역의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 개발도 동시에 진행 중으로, 이는 서해안 전역에 걸친 풍력 벨트 구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 진출태양광 분야에서 중부발전은 국내 유휴 부지 활용에서 해외 거대 시장 선점까지 다층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오만 이브리 3 태양광·BESS 발전사업은 지난 1월 15일 금융종결을 달성하며 건설 단계에 진입했다. 총사업비 3억 1,100만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500MW 태양광과 100MWh 배터리 저장장치를 연계한 오만 최초의 BESS 통합형 태양광 사업으로, 사막 기후 최적화 기술을 통해 2026년 12월 상업운전을 목표로 한다. 미국 텍사스 루시 태양광(350MW)은 양면형 패널 기술로 지면 반사광까지 활용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계획이며, 2027년 7월 운영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수상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을 통해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추가 발전 용량을 확보하는 다각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에너지 전환은 기후 위기 대응과 안정적 전력 수급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중부발전의 접근은 설비 대형화와 글로벌 거점 확보를 통해 기술적 한계와 입지 부족이라는 국내 제약을 극복하려는 것으로 평가된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한 자금 조달과 국제 금융기관의 참여는 사업의 재정적 안정성을 담보한다. 다만 해상풍력의 환경 영향 평가, 글로벌 사업의 정치·사회적 리스크, 그리고 기술 개발 과정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수 등은 향후 면밀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중부발전의 2040년 탄소중립 목표는 한국의 재정·에너지 정책 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기능하고 있다. 서해안 풍력과 중동 태양광이라는 이중 전략은 국내 자원 한계를 보완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향후 기술 표준화, 주민 수용성 확보, 그리고 장기적 수익성 확보 여부가 이 대전환의 성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소프라노 이혜지의 독창회 ‘노래의 여정(A Journey of Song)’이 28일 오후 7시반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린다. 이혜지의 ‘노래의 여정’ 시리즈는 ‘성악과 기악이 어떻게 함께 공명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성악과 기악이 단순한 ‘반주’ 선율 관계를 넘어 대등하고 유기적인 파트너로서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선보인다. 1부는 소프라노 이혜지가 기타리스트 김진세와 함께 외국 가곡·퓨전 현대곡을 선보인다. 소프라노의 풍부한 표현력과 따뜻하고 섬세하면서 때로는 강렬한 기타 선율이 만나는 음악을 전달한다. 헨리 퍼셀의 ‘Music for a While(음악이 있는 동안)’은 ‘오이디푸스’라는 희곡에 삽입된 곡으로, 카운터테너의 주요 레퍼토리를 소프라노 버전으로 들려준다. 이어 가브리엘 포레의 ‘Les Berceaux(요람들)’ ‘Clair de Lune(달빛)’과 쥘 마스네의 ‘Nuit d’Espagne(에스파냐의 밤)’이 펼쳐진다. 끝으로 페르난도 오브라도스의 ‘스페인 고전가곡’에 들어있는 ‘El Vito(엘 비토)’로 1부의 흥을 폭발시킨다. 김진세도 기타 독주 연주를 선보인다. 2부는 성악과 피아노의 협연이다. 뮤지컬 넘버를 연상시키는 역동적이고 화려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에두아르 리페가 작곡한 ‘How Do I Love Thee?(어떻게 당신을 사랑하느냐고요?)’는 19세기 시인 부부의 사랑 고백을 이혜지의 감성으로 달달하게 표현한다. 이어 오스카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세 개의 왈츠’에 들어있는 이네트의 러브송 ‘Je t’aime(사랑해)’를 통해 캐러멜 마키아토 맛의 사랑 표현을 감상하게 된다. 문재원의 피아노 솔로는 윌리엄 볼컴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3개의 유령 래그(3 Ghost Rag)’ 중 첫 번째 곡 ‘Graceful Ghost Rag(우아한 유령의 래그)’로 연주되고, 이어 이혜지의 목소리와 함께 볼컴의 ‘George(조지)’와 ‘Amor(사랑)’을 선물한다.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소프라노 이혜지는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와 더 스테이지(The Stage)로부터 ‘마치 불꽃놀이와 같은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소프라노’라는 평을 받았다. 2017년 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인 런던 로열오페라 하우스의 예트 파커 아티스트 프로그램(Jette Parker Artist Programme)에 발탁되기도 했다. 2017-18 시즌 로열오페라 하우스에서 세계적인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커의 대표작 ‘마술피리’의 파파게나 역으로 데뷔했다. 웨일스 국립오페라단에서는 오페라 ‘리골레토’ 질다 역으로 데뷔했다. 2023년 잉글랜드 국립오페라(ENO)에서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오페라 ‘아크나텐’의 티예 여왕 역을 맡기도 했다. 국내 무대에는 2024년 4월 국립오페라단에서 국내 초연인 영국 현대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의 티타니아 역으로 데뷔했으며, 최근 부산 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카르멘’ 콘서트오페라를 공연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 있는 그랑서울 빌딩 3층 롤파크(LoL Park).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도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아시아 각국에서 찾아온 MZ세대 팬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페이커(본명 이상혁)가 뛰고 있는 ‘2026 LoL 챔피언스 코리아 컵(LCK컵)’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는 ‘K게임’ 성지를 찾아 떠나 보았다.● 롤파크에 몰려드는 이방인들“프랑스에서도 매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에 시작하는 한국 LCK컵 경기 생중계를 봤어요. 프랑스인들에게도 LCK 경기가 열리는 롤파크는 유명해서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합니다.”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온 대학생 콜랑 씨(23)는 롤파크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오픈하자마자 ‘광클’로 매진되는 티켓을 구하지 못했지만, 로비에서 생중계를 보면서 세계적인 ‘게임의 성지’에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 했다. 그는 “페이커 선수가 출전하는 롤파크 아레나를 방문하는 것이 내 ‘버킷 리스트’였다”고 말했다. 롤파크에 외국 MZ세대가 몰려드는 이유는 LCK의 독보적 위상 때문이다. 세계에서 LoL(리그오브레전드) 리그는 한국, 북미, 남미, 유럽, 중국, 태평양 등 6개 지역에서 열린다. 매년 각 리그 상위 팀들이 모여 최강 팀을 가리는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15회 중 10회를 LCK 소속 한국 팀이 우승하는 업적을 이어 오고 있다. 400석 규모 롤파크에 들어서니 글래디에이터(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로마 콜로세움을 연상케하는 원형 경기장(아레나)이 보였다. 아레나 중앙,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헤드셋을 쓰고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싸우는 각 팀 5명 전사와 코치가 분주하게 소통하고 있다. 게임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중앙 대형 스크린에는 용을 비롯한 전투 캐릭터들이 불을 뿜고, 칼을 휘두르며 맞붙는다. 전세가 시시각각 변하는 가운데 객석에서 KT롤스타와 DN수퍼스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과 환호성, 탄식과 박수가 쏟아진다. ‘세상에. 컴퓨터 게임을 보면서도 이렇게 뜨겁게 응원할 수 있구나.’ 이종격투기나 복싱, 프로 축구와 야구 경기장에서 함성을 질러 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축구 팬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장에 가 보고, 야구 팬들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장에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전 세계 1030세대 게이머들은 롤파크에 와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롤파크 아레나 로비에는 빌지워터(Bilgewater) 카페가 있다. 빌지워터는 LoL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모든 사람이 열린 상태로 만나 교류하는 장소이자 세계관’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팬들은 경기를 기다리며 종이에 응원 문구를 쓴다. 금발의 서양 청년뿐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온 소녀 팬도 많다. 게임이 끝나면 선수들이 나와 팬들과 사인회를 갖는다. BTS 공연을 보러 온 ‘아미’들이나 e스포츠 스타를 만나러 온 팬들 모습은 다르지 않다. 롤파크 로비에는 라이엇 게임즈가 운영하는 PC방과 공식 굿즈 스토어가 있다. 또 LCK 출전 10개 팀 유니폼도 전시돼 있다. 페이커가 뛰고 있는 T1은 SK텔레콤이 후원한다. 다른 팀들도 농심, KT, 한화생명, KIA, 한진그룹, 부산은행 같은 유수의 기업이 후원한다. 굴지의 기업들이 후원하는 이유는 모든 경기가 스트리밍 채널 ‘네이버 치지직’과 ‘숲(Soop)’을 통해 세계에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매일 4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데, 이 중 60%는 해외 시청자다.로비에서 만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파헤드 씨는 “사우디 리야드에서도 2년 전부터 e스포츠월드컵(EWC) 대회가 열리고 있다”며 “초대 대회 우승자 페이커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감격할 뿐”이라고 말했다.● K게임과 K푸드의 만남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찾아가는 또다른 게임 관광지 중 하나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하이커 그라운드(HiKR Ground)’다. 2023년도 월드챔피언십이 한국에서 열렸을 때 대대적인 게임 관련 전시가 열렸던 곳이다.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K게임 진수를 느끼려면 PC방을 가야 한다. LCK컵 참가 팀들은 서울 홍대, 강남, 동대문 등에 MZ세대 및 외국인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래그십 PC방을 열고 있다. 일반 PC방과 달리 각 팀 선수단 사진으로 꾸며져 있고 레스토랑 및 굿즈샵 등을 갖춘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다.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 있는 ‘T1베이스 캠프’는 페이커 팬들의 성지 순례 장소다. 입구에는 T1 선수들의 대형 액자가 걸려 있고, 굿즈샵에는 안경을 쓴 페이커 선수 캐릭터가 서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굿즈샵에는 라이엇게임 피규어뿐 아니라 T1 선수들 사진이 들어 있는 기념품이 가득하다. K팝 팬들이 아이돌 가수 굿즈를 사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페이커의 시그니처 의자로 꾸며진 PC방에서는 ‘페이커 세트’ ‘T1 핫도그’ ‘칸나 불고기 덮밥’ 등 선수들 이름이 붙은 시그니처 메뉴가 가득하다. 요즘 PC방은 K푸드를 즐기는 레스토랑으로도 인기다. 1990년대 초반 태동한 PC방 먹거리는 원래 컵라면, 스낵류, 캔음료 등 간단한 메뉴에 그쳤다. 그러나 요즘은 떡볶이와 삼겹살, 파스타와 스테이크, 튀김, 핫도그, 피자에 카페 수준 음료와 디저트까지 갖춰 ‘K미식 공간’으로 승부를 하고 있다.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신논현역 앞에 있는 ‘레드포스 아레나’가 대표적이다. 농심이 후원하는 레드포스팀 이름을 딴 만큼 음식에 진심이다. 미국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e of America) 출신 셰프 2명이 수제 피자와 다채로운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농심의 각종 라면을 활용한 요리도 선보인다. ‘짜계치’(짜파게티에 계란후라이와 치즈를 올려먹는 라면)와 ‘불계치’(불닭볶음면에 계란+치즈), ‘삼겹짜파게티’(짜파게티 위에 삼겹살 얹은 것) ‘새우깡’을 모티브로 한 새우튀김우동 등 창의적인 요리가 펼쳐진다.레드포스 광주 상무지구점과 첨단점에서는 미슐랭 1스타 김완수 셰프가 스테이크와 랍스터, 생과일 주스 등 프리미엄 메뉴도 제공한다. 추운 날씨에 혼자 밥 먹을 일이 있다면 식당에서 멀뚱멀뚱 있지 말고 PC방에 와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 밥 먹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거대한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한 서울 동대문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는 ‘젠지 GGX’가 있다. 젠지e스포츠가 지난해 6월 동대문쇼핑몰 던던에 오픈한 복합 게임문화 공간이다. 젠지를 상징하는 블랙과 골드로 꾸며진 라운지 공간에서는 LCK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젠지의 호랑이 마스코트 ‘젠랑이’ 앞에서 팬들이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오뚜기가 운영하는 식음료 코너에서 ‘젠진라면’ ‘쵸비빔면’ ‘튀김만듀로’ 등 이색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독일에서 온 관광객 루카스 씨(21)는 “젠지 ‘쵸비(Chovy)’ 선수의 무호흡 파밍 실력을 좋아하는 게임 마니아”라며 “서울 여행은 아트와 테크놀러지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게임과 미식이 결합된 차세대 복합문화공간 ‘한국형 PC방’은 해외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인근 그랑서울 빌딩 3층 롤파크(LoL Park).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에도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 아시아 각국에서 찾아온 MZ세대 팬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세계적인 e스포츠 스타 페이커(본명 이상혁)가 뛰고 있는 ‘2026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컵’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오는 ‘K게임’ 성지를 찾아 떠나 보았다.● 롤파크에 몰려드는 이방인들“프랑스에서도 매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에 시작하는 한국 LCK컵 경기 생중계를 봤어요. 프랑스인들에게도 LCK 경기가 열리는 롤파크는 유명해서 꼭 한 번 가 보고 싶어 합니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온 대학생 콜랑 씨(23)는 롤파크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오픈하자마자 ‘광클’로 매진되는 티켓을 구하지 못했지만, 로비에서 생중계를 보면서 세계적인 ‘게임의 성지’에 왔다는 사실에 감격해 했다. 그는 “페이커 선수가 출전하는 롤파크 아레나를 방문하는 것이 내 ‘버킷 리스트’였다”고 말했다.롤파크에 외국 MZ세대가 몰려드는 이유는 LCK의 독보적 위상 때문이다. 세계에서 LoL(리그오브레전드) 리그는 한국, 북미, 남미, 유럽, 중국, 태평양 등 6개 지역에서 열린다. 매년 각 리그 상위 팀들이 모여 최강 팀을 가리는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15회 중 10회를 LCK 소속 한국 팀이 우승하는 업적을 이어 오고 있다. 400석 규모 롤파크에 들어서니 글래디에이터(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로마 콜로세움을 연상케하는 원형 경기장(아레나)이 보였다. 아레나 중앙,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헤드셋을 쓰고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싸우는 각 팀 5명 전사와 코치가 분주하게 소통하고 있다. 게임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 중앙 대형 스크린에는 용을 비롯한 전투 캐릭터들이 불을 뿜고, 칼을 휘두르며 맞붙는다. 전세가 시시각각 변하는 가운데 객석에서 KT롤스타와 DN수퍼스를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과 환호성, 탄식과 박수가 쏟아진다. ‘세상에. 컴퓨터 게임을 보면서도 이렇게 뜨겁게 응원할 수 있구나.’ 이종격투기나 복싱, 프로 축구와 야구 경기장에서 함성을 질러 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축구 팬들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장에 가 보고, 야구 팬들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구장에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전 세계 1030세대 게이머들은 롤파크에 와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롤파크 아레나 로비에는 빌지워터(Bilgewater) 카페가 있다. 빌지워터는 LoL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모든 사람이 열린 상태로 만나 교류하는 장소이자 세계관’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팬들은 경기를 기다리며 종이에 응원 문구를 쓴다. 금발의 서양 청년뿐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등에서 온 소녀 팬도 많다. 게임이 끝나면 선수들이 나와 팬들과 사인회를 갖는다. BTS 공연을 보러 온 ‘아미’들이나 e스포츠 스타를 만나러 온 팬들 모습은 다르지 않다. 롤파크 로비에는 라이엇 게임즈가 운영하는 PC방과 공식 굿즈 스토어가 있다. 또 LCK 출전 10개 팀 유니폼도 전시돼 있다. 페이커가 뛰고 있는 T1은 SK텔레콤이 후원한다. 다른 팀들도 농심, KT, 한화생명, KIA, 한진그룹, 부산은행 같은 유수의 기업이 후원한다. 굴지의 기업들이 후원하는 이유는 모든 경기가 스트리밍 채널 ‘네이버 치지직’과 ‘숲(Soop)’을 통해 세계에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매일 400만 명 이상이 시청하는데, 이 중 60%는 해외 시청자다. 로비에서 만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파헤드 씨는 “사우디 리야드에서도 2년 전부터 e스포츠월드컵(EWC) 대회가 열리고 있다”며 “초대 대회 우승자 페이커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감격할 뿐”이라고 말했다.● K게임과 K푸드의 만남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찾아가는 또다른 게임 관광지 중 하나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하이커 그라운드(HiKR Ground)’다. 2023년도 월드챔피언십이 한국에서 열렸을 때 대대적인 게임 관련 전시가 열렸던 곳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K게임 진수를 느끼려면 PC방을 가야 한다. LCK컵 참가 팀들은 서울 홍대, 강남, 동대문 등에 MZ세대 및 외국인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래그십 PC방을 열고 있다. 일반 PC방과 달리 각 팀 선수단 사진으로 꾸며져 있고 레스토랑 및 굿즈샵 등을 갖춘 엄청난 규모의 공간이다.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앞에 있는 ‘T1베이스 캠프’는 페이커 팬들의 성지 순례 장소다. 입구에는 T1 선수들의 대형 액자가 걸려 있고, 굿즈샵에는 안경을 쓴 페이커 선수 캐릭터가 서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굿즈샵에는 라이엇게임 피규어뿐 아니라 T1 선수들 사진이 들어 있는 기념품이 가득하다. K팝 팬들이 아이돌 가수 굿즈를 사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페이커의 시그니처 의자로 꾸며진 PC방에서는 ‘페이커 세트’ ‘T1 핫도그’ ‘칸나 불고기 덮밥’ 등 선수들 이름이 붙은 시그니처 메뉴가 가득하다. 요즘 PC방은 K푸드를 즐기는 레스토랑으로도 인기다. 1990년대 초반 태동한 PC방 먹거리는 원래 컵라면, 스낵류, 캔음료 등 간단한 메뉴에 그쳤다. 그러나 요즘은 떡볶이와 삼겹살, 파스타와 스테이크, 튀김, 핫도그, 피자에 카페 수준 음료와 디저트까지 갖춰 ‘K미식 공간’으로 승부를 하고 있다.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신논현역 앞에 있는 ‘레드포스 아레나’가 대표적이다. 농심이 후원하는 레드포스팀 이름을 딴 만큼 음식에 진심이다. 미국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e of America) 출신 셰프 2명이 수제 피자와 다채로운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농심의 각종 라면을 활용한 요리도 선보인다. ‘짜계치’(짜파게티에 계란후라이와 치즈를 올려먹는 라면)와 ‘불계치’(불닭볶음면에 계란+치즈), ‘삼겹짜파게티’(짜파게티 위에 삼겹살 얹은 것) ‘새우깡’을 모티브로 한 새우튀김우동 등 창의적인 요리가 펼쳐진다. 레드포스 광주 상무지구점과 첨단점에서는 미슐랭 1스타 김완수 셰프가 스테이크와 랍스터, 생과일 주스 등 프리미엄 메뉴도 제공한다. 추운 날씨에 혼자 밥 먹을 일이 있다면 식당에서 멀뚱멀뚱 있지 말고 PC방에 와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 밥 먹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 듯 싶다. 거대한 우주선이 내려앉은 듯한 서울 동대문구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는 ‘젠지 GGX’가 있다. 젠지e스포츠가 지난해 6월 동대문 쇼핑몰 던던에 오픈한 복합 게임문화 공간이다. 젠지를 상징하는 블랙과 골드로 꾸며진 라운지 공간에서는 LCK 경기를 생중계로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있다. 젠지의 호랑이 마스코트 ‘젠랑이’ 앞에서 팬들이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오뚜기가 운영하는 식음료 코너에서 ‘젠진라면’ ‘쵸비빔면’ ‘튀김만듀로’ 등 이색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독일에서 온 관광객 루카스 씨(21)는 “젠지 ‘쵸비(Chovy)’ 선수의 무호흡 파밍 실력을 좋아하는 게임 마니아”라며 “서울 여행은 아트와 테크놀러지를 함께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게임과 미식이 결합된 차세대 복합문화공간 ‘한국형 PC방’은 해외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글·사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