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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은 그냥 종이가 아닙니다. 자격증이 있으면 새로운 기회가 생겨요. 우연한 기회에 배워둔 것들이 삶에 도움이 될 때 큰 기쁨이 되지요.” 10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60대 여성이 굴삭기 운전석에 앉아 밭의 흙을 뒤집어 대추나무 옮겨 심을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야산에 있는 밭은 굴착기가 몇 번 지나가자 고랑이 파이고 컨테이너 놓을 땅도 평평하게 다져졌다. 기은서 씨(63·본명 기창란). 농업회사법인 팜텍 대표다. 과거 아모레퍼시픽(구 태평양화학)에서 10년 가까이 일한 기 씨는 퇴직 후 남양주에 정착해 농사를 짓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농기계은행에서 농기계를 빌리려면 자격증이 필요했어요. 마침 여성 경제인 모임에서 만난 경기 의정부의 한 중장비기술학원 원장님께서 ‘무료로 가르쳐 주는 정부 프로그램이 있으니 이 기회에 자격증을 따 보라’고 해서 도전했습니다.” 기 씨는 국비로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 과정을 신청해 양주시 쌍둥중장비학원에서 1주일간 매일 10시간씩 굴착기와 지게차 운전 교육을 받은 끝에 건설기계조종사 1급 면허를 따냈다. “농사 짓기 위해 포크레인 한 번 빌리는 데 하루 100만 원 가까이 듭니다. 중장비운전면허를 딴 뒤엔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루 11만 원에 장비를 빌릴 수 있었어요. 시간과 비용은 줄이면서 생산 효율성은 높아지더군요.” 굴삭기뿐 아니다. 땅콩과 호두 같은 견과류(너트) 가공제품이나 공장에서 생산한 화장품을 번쩍 들어 운반하는 지게차도 몰고 있다. 공장이나 창고의 필수 중장비다. “여자라서 포크레인이나 지게차를 못 다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나이나 성별을 핑계로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요. 나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정리할 수 있고 인건비도 줄일 수 있어 참 좋아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여성도 물론 할 수 있어요.”● 화장품 전문가에서 농업인으로기 씨는 1986년 아모레퍼시픽이 수출을 시작했을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제1호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약 2년간 미국 20여 개 주로 출장을 다니면서 화장품 마케팅과 홍보, 영업에 백화점 입점 업무까지 담당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대학을 한 번 더 다닌다고 할 정도로 공부를 많이 시켰어요. 덕분에 크림 상태만 봐도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가 됐지요.” 10년간 근무한 아모레퍼시픽을 퇴사한 후에도 화장품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다. 결혼 후에는 소매점을 열고 본격적으로 화장품을 판매했다. 요즘엔 올리브영 같은 종합 화장품 매장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다양한 중소 화장품 브랜드 매장들이 거리에서 각축전을 벌였다. 그는 2012년 화장품 수출업체 아이앤알을 설립했다. 당시 코리아나 화장품 ‘오르시아’ 브랜드 총괄 책임자를 맡았다. 중국 시장에서 ‘오르시아 28데이 앰플’이 빅히트를 치면서 총판 계약을 맺게 됐다. “중국 파트너가 중국 전역 보세 무역관 허가권자였어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매장 2000개를 목표로 광저우, 심천, 심양 무역관 등에 입점했습니다. 한류 바람을 타고 매출이 수직 상승했지요.” 하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한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 조치) 탓에 5개 매장을 만든 데 만족하고 철수해야 했다. 기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시선을 돌렸다. 베트남 박람회에서 만난 파트너와 함께 화장품 현지 제조를 타진했지만,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며 중단해야 했다. 그때 농업으로 눈을 돌렸다. 남양주에 2014년 화장품 공장 부지로 사 놓은 약 8000㎡(2500여 평) 땅이 있었다. 화장품보다 식품이 더 유망하다고 판단했다. 매실과 대추, 서리태, 자두, 감자, 고구마, 고추, 토마토, 참외 등을 심었다. 동네 주민들과 협동조합도 만들어 농산물 유통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정말 많은 작물을 심고 거두며 팜텍도 설립했다. 페이스북에 쓰는 농사일기에는 고된 작업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그만의 고민이 담겨 있다. “하늘이 도왔을까. 배추, 무우 심는 날. 비닐 덮기 전 때마침 비를 내려 주고, 심고 나니 또 비를 내려 일손을 거든다. 허리 한 번 펴고 알타리무우 심고 쪽파, 돌산갓, 상추까지 씨를 뿌리고 나니 다시 비가 내린다. 팔 다리는 후덜덜, 몸은 천근만근, 속옷까지 흙물 빛. 나눠 먹을 흐뭇한 생각에 빗소리 음악 삼아 차 한잔에 피로를 내려 본다.”(2023년 9월 16일 농사일기) 이후 그는 콩, 호두 같은 견과류(너트)에 집중했다. 하루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최고의 비상식량이라 생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상식량에 관심을 두던 그는 2021년 너트를 제품화해 ‘다산해 쇼핑몰’에서 판매했다. ‘다산해’는 다산(茶山) 정약용 생가가 있는 남양주 지역색을 살린 브랜드다. 직접 생산한 너트를 가공해 바로 유통한다. 블루베리를 넣은 요거트 너트는 소화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혈액 순환을 돕는 호두는 메이플시럽을 넣어 바삭하게 한 번 더 가공해 프리미엄 제품으로 만들어 냈다. 기 씨는 화장품 제조업도 최근 다시 시작했다. 중저가 브랜드 방문판매용 화장품 업체 D사와 주문자상표생산방식(OEM) 계약을 맺고 직접 생산해서 납품하는 1차 벤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오랜 화장품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활용한 사업인 셈이다.● 음악이 있는 농장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정년을 맞아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요. 이제 시작인데요.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해야 가슴이 두근거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베트남에서 진행하던 화장품 사업이 큰 위기를 겪을 때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다음을 준비한 것처럼 말이다. 기 씨는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하던 일들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여러 가지 취미활동 등을 하고, 많이 함께하지 못하던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위한 투자에 열중하면서 변화를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자격증도 많이 취득했다. 굴삭기, 지게차 운전면허증만이 아니다. 무역관리사 자격증, 동력수상레저기구조종 1급 면허증, 윈드서핑 지도자 자격증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치료기술자 자격증도 따낸 것. “작년부터 법이 바뀌어서 나뭇가지 하나 자르는 데에도 자격증이 필요하게 됐어요. 예전엔 아무나 할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지난해 3개월간 서울대 식물병원에서 매주 토요일, 하루 8시간 동안 나무치료기술자 교육을 받았다. 나무 옮겨 심기, 전정 작업, 농업용 드론 날리기, 나무 생리학, 질병학 등 식물 치료에 대한 이론과 현장 실습을 병행했다. “나무치료기술자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은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자격증 하나가 얼마나 큰 기회가 되는지 아시나요? 관급공사를 할 때 나무치료기술자가 있고 없고의 점수 차이가 정말 크거든요. 거기에 중장비 운전면허까지 있으니까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어요. 농사를 짓든 사업을 하든 다양한 자격증은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고 생각해요.” 기 씨는 10년 전부터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서 활동 중이다. 이 네트워크는 그의 비즈니스 확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화장품 제조를 계획했을 때 남대문, 동대문, 화곡동에서 시장조사를 했고 박람회나 수출 관련 세미나에도 수없이 참석해 정보를 얻었다. 베트남 진출도 남양주시 상공회의소를 통해 제안을 받고 결정하게 됐다. 그는 “해외시장에 진출하려고 할 때는 지방자치단체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 후 피로를 노래로 푼다. 그의 남양주 농장 한켠에는 음악연습실도 만들어져 있다. 여성경제인협회 회원들과 8년간 매주 토요일에 모여 기타치며 합창하는 모임을 해왔다. 회원들끼리 결성한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다가 음반까지 내게 됐다. ‘그대를 만날줄은’ ‘내 마음이 흔들려’(설운도 작사, 작곡)이란 앨범이다. 매주 2회 씩 유튜브에 노래일기를 기록하고 있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 한양대 MIDI 작곡과에 편입해 4학년에 재학 중이기도 하다. “전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뭐든 배워야 하고 뭐든 해야 하죠. 이런 성격이 쉬지 않고 사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젊었을 때는 대학가요제에 나가 가수를 해 볼까도 생각했고, 예식장에서 피아노 연주 아르바이트도 했지요. 남양주 농장에서 일도 하고, 농사도 짓고, 공부도 하고, 노래도 하고, 연주도 하면서 지냅니다. 혼자 노는 법을 배워야 은퇴 후 삶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지요.”글·사진 남양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다시 전쟁의 시대, 평화의 길을 모색하다’를 주제로 한 제26회 가톨릭포럼이 24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서울대교구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번 가톨릭 포럼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세계 곳곳이 분열과 갈등의 각축장이 된 원인을 살펴본다. 또한 미국의 리더십 붕괴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평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강우일 주교(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가 ‘국가의 범죄, 전쟁’을 주제로, 안병진 교수(경희대 미래문명원)가 ‘어두운 시대, 미국 리더십의 붕괴와 약한 빛의 힘’을 주제로 발표한다. 이어 인남식 교수(국립외교원 전략지역연구부장)는 ‘현재 중동분쟁에 담긴 종교적 서사의 의미’를 주제로, 임을출 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민족을 지운 핵강국,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발표한다. 사회는 이승현 KBS 아나운서가 맡는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격려사를 통해 “전쟁의 비극에 익숙해진 우리의 무감각이 두렵다”며 “평화를 기다리는 방관자가 아니라 평화를 일구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전 세계 젊은이들이 ‘평화의 모자이크’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지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번 포럼에는 미디어 종사자를 포함해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 9일 서울 더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동아프리카의 섬나라인 세이셸공화국의 관광워크숍이 열렸습니다. 인도양 위에 흩어진 115개 섬으로 이뤄진 세이셸의 관광산업을 한국에서 홍보하기 위한 행사였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세이셸관광청 극동아시아 지역담당 마켓 매니저인 아미아 요바노빅-데지르와 사이다 무사드가 방한해 세이셸 관광산업의 현황에 대해 소개했는데요. 그들은 발표 도중 세이셸에서 직접 가져온 진귀한 열매인 ‘코코드 메르(Coco-de-Mer)’를 보여주었습니다. 코코드 메르를 처음 보았을 때 눈을 뗄 수 없었는데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가장 기묘한 생김새의 열매입니다. 때로는 자연이 더 노골적인 건가요? 시각적으로는 이 이상 솔직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코코드 메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존재합니다. 암과일은 풍만한 모습에 가운데가 갈라진 모양이 여성의 신체를 똑 닮았는데, 수꽃(Male Flowers)도 장관입니다. 길고 육질적인 남성적 형태의 꽃차례로 피어나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열매와 꽃을 ‘아담과 이브의 열매’라고 부르죠. 식물인 꽃과 열매가 어떻게 노골적으로 생명의 본질을 표현하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세이셸 관광청 관계자들은 “현지에서는 이 열매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고 말했습니다. 코코드 메르는 단순히 외모로만 유명한 게 아닙니다. 이것은 기네스북 공식 인증을 받은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씨앗’입니다. 무게는 25~40㎏에 달하고, 때론 약 43㎏까지 자란다고 하네요. 더욱 신기로운 것은 이 식물의 희귀성입니다. 코코드 메르는 세이셸의 프랄린섬과 큐리어스섬에서만 자연적으로 자랍니다. 지질학적, 기후학적, 환경적으로 이 섬들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증명하는 증거죠. 요바노빅-데지르 매니저는 “세이셸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해양 액티비티, 트레킹, 골프, 스포츠 피싱 등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여행지”라며 “특히 한 번의 여행으로 여러 섬을 둘러보는 ‘아일랜드 호핑(Island Hopping)’이 가능하다는 점은 세이셸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라고 설명했습니다.특히 세이셸은 아프리카와 인도양 지역을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여행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에티오피아항공(아디스아바바 경유), 에미레이트항공(두바이 경유), 에티하드항공(아부다비 경유), 카타르항공(도하 경유), 스리랑카항공 및 에어세이셸(콜롬보 경유) 등을 이용해 세이셸을 방문할 수 있습니다.이날 행사에서는 세이셸의 대표 럼 브랜드인 ‘타카마카 럼(Takamaka Rum)’도 소개됐는데요. 사탕수수로 만드는 40도짜리 럼주는 마셔보니 향긋한 향기와 함께 뒷맛이 달짝지근한 느낌이 드네요. 코코드 메르는 어떻게 알려졌나18세기 유럽. 선원들은 인도양에서 기묘한 물체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무게 30㎏이 넘는 거대한 열매. 생김새는 기묘했습니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떤 나무가 이런 기괴한 열매를 맺을까?그때 사람들이 지어낸 이름이 바로 ‘코코드 메르(Coco-de-Mer)’입니다. ‘바다의 코코넛’이라는 뜻이죠. 사람들은 아무도 이 열매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 학자들은 황당한 가설들을 제시했습니다. 일부는 이 거대한 열매가 “바다 밑의 신비한 나무에서 자란다”고 믿었습니다. 신화적 영역의 것이라는 의미였죠. 그들은 이를 ‘금단의 열매(Forbidden Fruit)’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의 건륭제 황제(재위 1736~1795)도 이 신비한 열매에 매료됐습니다. 청나라 시대, 아름다운 전각과 정원을 애호하던 건륭제는 코코드 메르를 수집해 귀중한 보물로 여겼다고 하네요. 바다 건너의 먼 섬에서 온 이 신비한 씨앗은, 동과 서를 막론하고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죠. 1768년, 프랑스 해군 장교 샤발리에 마리용 뒤프레스네가 이끄는 원정대가 세이셸에 상륙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세이셸의 프랄린섬이라는 숲에서 자라는 야자수에서 이 열매가 열린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코코드 메르를 ‘아담과 이브의 열매’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한 외모의 닮음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기에 깊은 종교적, 철학적 상징성이 숨어있습니다.암 과일(Female Fruit)은 하나의 완성된 형태입니다. 그것은 25~30㎏의 무게를 가진, 쌍으로 갈라진 거대한 구형 열매로, 여성의 육체를 연상시킵니다. 18세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 모성 그 자체를 상징했던 것입니다.수 꽃(Male Flowers)은 길고 육질적인 형태로 피어나는데, 이는 분명히 남성성을 상징합니다. 길이만 46센티미터에 달하는 이 육수화서(肉穗花序)는 수십 개의 작은 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엄청난 양의 꽃가루를 생산합니다.이 둘이 만나 생명의 순환을 이루는 그 모습이, 마치 성서 속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이루는 완전한 관계의 비유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식물이 이원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인간에게는 신성한 신비였습니다.세이셸의 프랄린섬은 15억년 전 곤드와나 대륙(Gondwana) 시대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해온 거대한 화강암 섬입니다. 18세기 프랑스가 세이셸을 차지하기 이전까지, 이 섬은 해적과 탐험가들의 보물섬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발레 드 메(Vallée de Mai)’. ‘5월의 계곡’이라는 이름의 이 원시림은 거의 변하지 않은 형태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죠. 1983년,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단순히 코코드 메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살아있는 박물관이었습니다. 세이셸의 자연사 전체가 이 19.5헥타르의 숲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코코드 메르는 한때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신비로움과 희귀성 때문에, 사람들은 이 열매를 채취하고 판매했습니다. 19세기에는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남획이 심해졌습니다.현대에 들어서, 세이셸 정부는 이를 국보급 유산으로 엄격하게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발레 드 메를 방문하려면 관리자의 동반이 필수이며, 열매를 마음대로 채취할 수 없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열매를 쓰다듬고 만집니다. “이 열매를 만지면 행운이 뒤따른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들은 이 열매를 만지며 어떤 소원을 빌까요.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6만 년 전 인류가 처음 몽둥이를 집어 들었을 때 그것은 도구였을까요? 무기였을까요? AI(인공지능)는 인간 존엄과 공동선을 지키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대주교)가 9일 가톨릭대 성의교정 옴니버스파크에서 개최한 ‘제20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 본상을 받은 파올로 베난티 신부(로마 그레고리안대 교수·사진)는 이렇게 말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윤리신학자가 된 베난티 신부는 2020년 2월 교황청 생명학술원이 발표한 ‘AI 윤리에 관한 로마 호소(Rome Call for AI Ethics)’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AI의 의사결정 과정에 인간 판단이 개입해야 한다는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 개념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베난티 신부는 AI가 자살 방법을 안내하거나 낙태 같은 생명윤리 사안에 지나치게 중립적인 답변을 내놓는 현상에 대해 “AI의 답변은 일종의 ‘다수 의견 복사판’이라 볼 수 있다”며 “한국 (가톨릭) 순교자들 역시 당시 다수 의견과 달랐기에 목숨을 잃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들이 진리를 증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듯이 ‘다수’와 ‘진리’는 동의어가 아니다”라고 했다.“이미지를 생성하는 AI는 인간의 상상력과 내면 세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데, 특히 청소년은 보호받아야 합니다. 저는 교육과 훈련을 통한 ‘두뇌 헬멧’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담배도 초기엔 누구나 피울 수 있었지만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목격한 이후 법과 규제를 만들었습니다. 도로에도 안전장치가 있듯이 AI에 대해서도 가드레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베난티 신부는 AI가 불러오는 불평등 문제도 지적했다. “AI는 결코 비물질적 존재가 아닙니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 물, 통신망 같은 막대한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원이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점입니다. AI는 질병 치료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AI 문제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컴퓨터는 고장나면 껐다가 켤 수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며 “AI 시대에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탐구하는 철학과 신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생명의 신비상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수호하고 가톨릭 생명윤리를 사회에 확산하기 위해 2006년 제정됐다. 수상자에게는 본상 1억 원, 장려상 3000만 원이 각각 수여됐다. 올해 수상자는 베난티 신부 외에도 생명과학 분야 본상에 KAIST 생명과학부 정원석 교수, 인문사회과학 분야 장려상에 가톨릭대 간호대 김수정 교수, 활동 분야 장려상에 인도 타밀나두주 달리트 공동체 HRDF가 선정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측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준비하며 미래 세대와 함께 생명의 가치를 나누고, 인간 존엄을 지키는 문화가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관광청과 파리 지역 관광청은 이달 4일 서울에서 한국 여행업계를 대상으로 ‘파리 지역 관광 워크숍’을 열었다. 에펠탑, 바토무슈 같은 파리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비롯해 10개 기관과 업체가 한국 여행업계와 만났다. 파리는 2024년 올림픽 이후 교통망과 숙박시설을 대폭 확충해 관광산업이 더 커지고 있다. 지하철 14호선 연장으로 오를리공항과 도심 사이 접근성이 좋아졌고 샤를드골공항과 도심을 20분 만에 잇는 ‘CDG 익스프레스’를 비롯해 그랑 파리 익스프레스 프로젝트의 단계적 개통을 앞두고 있다. 올해 말에는 업무와 숙박, 상업 기능을 결합한 180m 높이의 새로운 랜드마크 ‘트라이앵글 타워’(사진)가 베일을 벗는다. 오페라 가르니에 인근 극장 공간을 리뉴얼한 몰입형 향수 박물관 ‘테아트르 뒤 파르푕’도 새로 문을 열었다. 디즈니랜드 파리는 최근 ‘겨울왕국’ 테마존을 개장했다. 파리 근교 마시 지역에는 퐁피두 현대미술관 컬렉션 15만 점을 품은 ‘퐁피두 프랑실리앵’이 개관을 준비 중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노트북 옆에는 바다가 있고 엘리베이터 대신 둘레길이 있으며 퇴근 후 네온사인 대신 붉은 낙조가 있다. 워케이션은 영어로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결합한 합성어다. 워케이션에서 일과 쉼은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 인구 소멸을 겪고 있는 지방도시들에 워케이션은 ‘체류형 관광’의 새로운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충남 보령시 ‘숨어 있기 좋은 섬’ 삽시도에서 워케이션을 체험해 보았다.● 물빛 아름다운 삽시도보령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한 페리호는 50분 만에 삽시도 술뚱선착장에 도착했다. 인근에 있는 원산도가 보령해저터널로 연결되고, 해상 교량으로 안면도와 이어지는 등 섬이 육지로 변하고 있지만 삽시도는 태고적 그대로 외딴 섬으로 남아 있다. 갯벌에는 드문드문 바지락을 캐는 주민들만 있을 뿐 한적하기 그지없다. “지금 삽시도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요. 옥빛을 계속 닮아가고 있거든요.” 삽시도에서 숙박을 하게 된 펜션의 주인 김태연 씨는 물빛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삽시도는 서해인데도 거무튀튀한 펄 같은 물색이 아니다. 고려청자의 비췻빛, 옥구슬 빛처럼 우아한 물색이다. 삽시도 워케이션의 중심지는 선착장 바로 앞 어촌체험휴양마을 카페. 노트북 한 대만 있으면 커피를 마시면서 일할 수 있는 곳이다. 오후에는 워케이션 센터에서 자전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해변도로를 따라 한가롭게 달리고 있는데 검은 강아지 한 마리가 쫓아온다. 덩치는 큰 녀석이 뒤뚱뒤뚱하면서 잘도 달린다. 삽시도회식당 앞마당을 지키는 ‘득실이’다. 걷다 뛰다 반복하며 쫓아오던 득실이는 서쪽 끝 수루미해수욕장쯤 와서 지쳤는지 옆길로 빠진다.수루미해수욕장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자 삽시도 둘레길이 나왔다. 송림이 우거진 호젓한 약 5km의 산책길이다.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기고, 갯벌에서 나는 미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서해 섬의 매력이다. 강원도 깊은 산속 같은 길을 걷다 보니 삽시도 최고 절경인 면삽지에 도착했다. 250여 개 계단을 내려가면 조그만 섬과 이어지는 깨끗한 모래 해변을 걸을 수 있다. 해안절벽에는 해식동굴이 있는데, 그 내부로 들어가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샘물이 있다. 바닷가 동굴에서 짜지 않고 시원한 약수가 솟아나다니 신비롭다.면삽지는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변할 때 삽시도에 붙었다가 떨어진다. 바닷물이 들이차면 더 이상 삽시도에 속한 땅이 아니다. 그래서 ‘면할 면(免)’자를 쓴다. 하루 두 번 삽시도의 의무와 책임을 ‘면제받는’ 땅인 셈이다. 사람에게도 가끔씩 면제의 시간이 필요하다. 밥벌이하는 직장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의무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본체와 떨어져 외딴 섬이 될 수 있는 시간. 삽시도 면삽지에서 진정한 휴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자전거 타기와 치유의 숲길 산책 말고도 할 게 많다. 갯벌로 나가 전국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바지락을 캐고, 낙지와 박하지(돌게)를 잡고, 방파제 낚시를 즐긴다. 배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면 ‘체험! 삶의 현장’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물 체험이다. 선장님이 미리 설치해 놓은 길이 300m짜리 그물을 기계로 끌어올리자 간재미와 광어, 낙지, 꽃게가 줄줄이 올라왔다. 이날 저녁상에는 시원한 바지락국물과 함께 간재미와 광어회가 놓여 있었다. 역시 내가 직접 잡은, 수렵채취의 결과물이 가장 신선하고 맛있다.워케이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한국관광공사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여행친화형 근무제(워케이션)’ 사업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부산, 강릉 같은 유명 관광지도 인기를 끌었지만 부여 공주 태안 보령을 비롯해 다양한 관광자원을 가진 충남도 워케이션 명소로 떠올랐다. 젊은 층은 보령과 태안 같은 해안지역을 선호하고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공주와 부여를 많이 찾았다. 지난해 ‘워케이션 충남’ 사업 참가자는 2024년 1540명에서 2649명으로 늘어 70% 이상 증가했다.보령시는 대천해수욕장 인근에 약 40억 원을 들여 워케이션 센터를 조성하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공간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할 수 있는 거점형 시설이다. 그런데 보령에서 가장 흥미로운 워케이션 공간이 삽시도에 있다. 삽시도 거주 인구는 약 240명. 펜션도 40개가 조금 넘는다. 규모가 작고 조용하지만, 워케이션이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경쟁력이 된다. 숨어 있기 좋은 섬이기 때문이다.임미자 삽시도 어촌체험휴양마을 사무장은 “처음에는 많은 분이 섬이라서 불편하지 않을까하는 선입견을 가졌지만 업무와 체험 시설, 호텔식 침구류와 침대, 차량 운행 같은 서비스를 정비하면서 대기업 직장인부터 공무원, 프리랜서 등 다양한 신청자들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삽시도 워케이션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가격 경쟁력이다. 2박 3일 동안 숙박과 아침식사, 갯벌 체험, 자전거 대여, 섬내 교통 편의까지 제공받는데 단돈 3만 원이면 된다. 보통 바닷가 펜션이 하루 투숙 비용이 수십만 원대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싼 가격이다.워케이션에 참가하려면 4대 보험 가입자와 특수 형태 근로종사자(프리랜서) 등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7, 8월 성수기와 주말은 워케이션 신청을 받지 않는다. 비수기와 평일에 체류형 관광객을 늘리기 위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 지원 사업이기 때문이다. 1인당 연 2회 신청할 수 있고 6박 7일까지 체류할 수 있다고 한다. ● 바닷가 조개껍데기와 바다유리삽시도 바다는 노을 물드는 저녁이면 갈매기가 낮게 날고, 물빛이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그러나 파도가 물러간 자리에는 떠내려온 유목(流木)과 조개껍데기, 밧줄, 튜브 조각, 스티로폼, 바다유리(깨진 음료수병 같은 유리 조각이 풍화돼 돌 같이 된 것) 같은 해양쓰레기도 함께 남는다.삽시도 워케이션 센터에서는 해양쓰레기를 주워 오면 갯벌 체험비 20%를 할인해준다. 그리고 조개껍데기와 바다유리를 이용해 키링이나 액자 만들기 같은 공예 체험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것은 바다유리다. 수십 년 전 해안가에 무심코 버린 소주병, 사이다병, 맥주병 등이 깨져 생긴 유리 조각이 파도에 휩쓸리며 닳고 닳아 둥글둥글해져 재탄생한 크리스털 같은 조각이다.삽시도에서 버디하우스 펜션을 운영하는 김태연 씨는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 작가는 지난 5년 동안 삽시도의 노을과 방파제에 앉은 갈매기,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의 결을 사진에 담아 왔다. 김 씨는 26~29일 보령문화회관에서 ‘삽시도, 수많은 날들 중 하루’라는 제목의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고대도? GOD愛島!보령 앞바다에는 삽시도 외에도 원산도 고대도 장고도 효자도 같은 섬들이 관광지로 개발되고 있다. 삽시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고대도는 ‘God愛島’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선교사가 최초로 들어온 섬이기 때문이다. 1832년 7월 25일, 독일 출신 선교사 칼 귀츨라프(1803~1851)가 영국 동인도회사 상선 로드 애머스트호(號)를 타고 고대도 안항(安港)에 정박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인천 제물포항에 상륙한 것보다 53년이나 빨랐다.고대도선교센터 정수목 목사는 “귀츨라프는 한국에 기독교를 전했고, 한글의 가치를 세계에 소개했으며, 처음으로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귀츨라프 선교사가 1개월 동안 섬에 머물면서 남긴 업적은 놀라울 정도다. 그는 고대도 주민들에게 한문으로 쓰여진 성경책을 나눠주었고, 감기환자들에게 약을 주며 서양 근대 의술을 소개했다. 또한 서양식 감자 파종법을 가르쳐주고, 국내 최초로 감자를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주기도문의 한글 번역이다. 귀츨라프는 그 짧은 기간 한글을 배웠는데, 그의 친필 한글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선바위가 보이는 안항에는 귀츨라프 기념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로드 에머스트호가 복원돼 서 있고, 귀츨라프가 수학했던 독일 베를린 보헤미아 베들레헴 교회를 본뜬 조각 작품도 서 있다. 고대도에서는 매해 7월 25일 전후로 국제영화제와 감자 심기 대회 등을 하는 ‘칼 귀츨라프의 날’ 축제가 열린다.글·사진 보령=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충남 보령 삽시도의 바다는 풍경만 남기지 않는다. 노을이 물드는 저녁이면 갈매기가 낮게 날고, 물빛은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그러나 파도가 물러간 자리에는 유목(流木)과 조개껍데기, 밧줄, 튜브 조각, 스티로폼, 바다유리 같은 해양쓰레기도 함께 남는다.삽시도에서 활동하는 김태연 작가는 바다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바다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바다가 떠안고 있는 상처를 따로 떼어놓지 않고, 하나의 작품 안에 함께 담아내는 방식이다.그는 삽시도의 노을과 방파제에 앉아 있는 갈매기,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의 결을 사진에 담고, 해안가에 밀려온 해양쓰레기를 주워 그 사진을 감싸는 액자로 다시 세운다. 그가 26~29일 충남 보령문화회관에서 개최하는 사진전 ‘삽시도, 수많은 날들 중 하루’는 그래서 단순한 풍경사진전이 아니다. 사진 속에는 삽시도의 바다가 담기고, 사진 바깥의 프레임에는 그 바다가 밀어 올린 흔적이 얹힌다.김 작가는 “처음에는 해변에 밀려온 것들을 그냥 치워야 할 대상으로만 봤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걸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바다가 버린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다시 바다 사진의 액자로 쓰면, 풍경을 보는 방식도 달라질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실제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사진과 액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노을이 내려앉은 바다 사진에는 물결에 닳은 유목이 어울리고, 푸른 바다빛이 살아 있는 작품에는 바다유리와 조개껍데기가 자연스럽게 배치된다. 튜브나 스티로폼 조각, 낡은 밧줄과 그물도 손질을 거쳐 새로운 프레임이 된다. 공장에서 찍어낸 틀 대신, 삽시도가 직접 떠밀어 올린 재료가 사진의 경계를 만든 셈이다.그 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것은 바다유리(See Glass)다. 수십년 전 해안가에 무심코 버린 소주병, 사이다병, 맥주병 등이 깨져 생긴 유리 조각이 파도에 휩쓸리며 만들어지는 보석이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파도에 마모돼 둥글둥글하게 크리스털 같은 보석으로 재탄생한다. 김 작가는 삽시도에 찾아온 관광객들과 함께 바다에서 해양유리를 줍고, 액자와 키링으로 만드는 일을 해왔다. 기자도 언젠가 경주 감포 앞바다의 자갈과 바위 틈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해양유리 조각을 주워와 집 안의 꽃병에 장식한 적이 있었다. 김 작가는 “삽시도의 바다를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사진은 삽시도의 얼굴이고, 액자는 삽시도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너무 직접적으로 환경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이 먼저 ‘예쁘다’고 느끼고, 나중에 그것이 바다에서 주운 쓰레기로 만든 액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예쁜 액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해양쓰레기였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바다를 보는 마음이 달라지게 되지요.”사진전의 제목에도 이런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삽시도, 수많은 날들 중 하루’는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풍경을 강조하기보다, 매일 반복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섬의 시간을 붙잡겠다는 뜻에 가깝다. 삽시도의 바다는 같은 자리에서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물이 들어올 때와 빠질 때가 다르며,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김 작가는 “삽시도는 시간이 잘 보이는 섬”이라며 “그 변화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이 같은 작업은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 작가는 삽시도에서 버디하우스 펜션을 운영하며 워케이션 관광객들과도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섬을 찾은 이들은 바다를 보고 쉬러 왔다가, 해안가를 함께 걸으며 해양쓰레기를 줍고, 그것으로 키링이나 소품, 액자를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김 작가는 5년 전부터 이 섬에 머물며 언니의 식당 일을 돕고, 자신이 운영하는 버디하우스 펜션을 꾸려왔다. 언니가 오랫동안 삽시도에서 식당을 운영해온 만큼, 김 작가 역시 섬의 생활과 관광, 바다의 생태를 가까이에서 체감하게 됐다. 그는 “언니가 여기 시집온 지가 한 40년 넘었다”며 “식당하고 펜션을 하니까 너무 힘드니까 제가 들어와 돕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운영하는 버디하우스 펜션 역시 단순한 숙소라기보다 삽시도의 감각을 담아낸 공간에 가깝다. 조개껍데기와 유목,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폐품을 활용해 꾸민 파란색 펜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연장된 전시처럼 보인다. 전시장에 걸린 액자가 바다의 흔적을 품고 있다면, 버디하우스는 바다의 흔적을 생활 속 공간으로 옮겨놓은 장소다. 삽시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해양쓰레기를 손으로 만지고, 그것이 예술과 생활의 재료로 바뀌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한다.김 작가는 “사진을 보고, 액자를 보고, 다시 사진을 보는 사이에 바다가 조금 다르게 읽혔으면 좋겠다”며 “그냥 예쁜 풍경이 아니라, 지켜야 할 풍경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 3월 홍콩 센트럴 하버프론트에서 열린 현대미술 아트페어 ‘2026 홍콩 아트센트럴(Art Central Hon Kong)’에서 색다른 전시로 눈길을 끈 작품이 있다. 벽에 붙은 얼음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녹아내렸고, 얼음 속에 한지 종이 위에 프린트 돼 있던 자연의 이미지들은 물에 녹아내리고, 찢어지고 스며들었다. 이 것은 정지된 회화도, 완성된 조각도 아니었다.살아있는 동안에만 작품이었고, 사라지는 과정까지도 작품이었다.그 장면은 묘하게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불편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녹아내리는 모습은 곧 지구의 풍경이 사라지는 속도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성서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기후위기, 빙하의 소멸, 수면 상승, 인간이 초래한 환경 파괴를 이야기한다. 그가 붙인 이름은 ‘프로즌이즘(Frozenism)’. 얼음과 시간, 기억과 감정,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한 자신만의 예술 언어다.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성서 작가에게 왜 하필 얼음을 예술 언어로 선택하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그를 사로잡은 것은 포스터였다. 불조심 포스터, 자연 보호 포스터,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가 담긴 그림, 우리 산을 푸르게 만드는 나무 심기를 장려하는 그림들…. 당시 학생들에게 포스터는 숙제였을지 몰라도, 그에게는 사회를 향해 말을 거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열 살 때부터 미술을 했어요. 그때 처음 빠져든 게 사회 포스터였어요. 불조심, 자연을 지켜주세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같은 메시지를 담는 그림을 그리다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죠. 어느 날에는 밤새 그린 포스터 위로 아침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보며 희열을 느꼈어요. 뭔가를 창조했다는 뿌듯함이었죠.“당시의 기억은 성서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의 원형이 이미 들어 있었다. 그에게 미술은 예쁜 것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세상과 마주하는 행위였던 셈이다.그는 홍익대에서 광고와 디지털 미디어를 공부하고, 시카고 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사진, 영상, 설치, 조각을 넘나드는 다매체적 예술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얼음이라는 재료를 붙잡게 된 건 조금 더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출발은 냉동실의 얼음 큐브였다. 얼음 안에 ‘글자’와 ‘이미지’를 넣고 얼린 뒤, 그것이 녹으며 사라지는 과정을 작업으로 옮겼다.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오르고, 인간이 만든 도시가 그 위기를 외면할 수 없게 된 지금, 얼음은 가장 직접적인 언어가 된다. 그는 “지구의 눈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구가 녹고 있다는 사실을 차갑고도 서정적으로 보여주는 매체, 그것이 그의 얼음이다.그래서 성서 작가의 작품은 얼음조각이라기보다 ‘시간의 조각’에 가깝다. 그는 완성된 오브제를 만드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은 녹아야 하고, 변해야 하며, 예측 불가능해야 한다. 얼음조각 크기가 작은 작품은 3시간 안에 녹기도 하고, 큰 얼음은 하루가 지나야 형태를 잃는다. 그의 전시는 한 번 걸어두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냉동고를 이용해 매일 다시 얼리고, 다시 설치해야 하는 ‘라이브 아트’다. 그는 이 점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작품이란 이미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은 결과물을 감상하는 대신, 자연이 붕괴하는 시간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각인된다. 어떤 이는 슬픔을, 어떤 이는 위기감을, 어떤 이는 사라짐의 아름다움을 본다.바로 이 지점에서 성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프로즌이즘(Frozenism)’이라고 부른다. 처음 작품 제목은 단순히 ‘Frozen(프로즌)’이었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나온 뒤 그 단어는 대중문화의 이미지에 강하게 덮여버렸다. 그래서 그는 ‘-ism’을 붙여 하나의 개념, 하나의 사조, 하나의 독자적 방법론으로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프로즌이즘은 단순히 얼린다는 뜻이 아니다. 얼음 속에 이미지를 가두고, 그 이미지가 시간이 흐르며 변형되고, 관객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내는 과정 전체를 가리킨다. 성서 작가는 최근 논문에서 이를 ‘시간과 기억, 감정을 설계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정지된 이미지가 아니라 변화하는 이미지, 완결된 조형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조형. 그는 얼음을 통해 사진의 개념마저 다시 쓰고 있다.그의 작업이 환경 문제와 맞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구온난화, 빙하 소멸, 수면 상승은 통계와 그래프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몸으로 체감되지는 않는다. 성서 작가는 그 간극을 예술로 메운다. 얼음이 녹는 속도를 눈앞에서 보는 경험은 기사 한 줄보다, 보고서 한 장보다 훨씬 직접적이다.“뉴욕은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1조7000억원을 들여 맨하튼 지역에 높이 5m의 방파제를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이 베네치아처럼 변할 수도 있어 잠길 때를 고려해 건물마다 1.5층을 비우는 규정을 만들고 있기도 합니다. 부산도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항구나 해변 방파제 보강공사를 하고 있어요. 해수면 상승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는 10년도 안남았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지요.”그가 만드는 이미지는 풍경 자체를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풍경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도시와 자연을 한 작품 안에 겹쳐 올리는 이유도, 파괴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뉴욕, 아이다호, 도시와 빙하, 물과 건축은 그의 얼음 안에서 한 지층으로 포개진다.그의 작업은 시적이지만 감상적이지 않다. 차갑지만 무심하지도 않다. 얼음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늘 경고와 함께 온다. 그래서 프로즌이즘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는 태도, 눈앞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예술이 여전히 사회적 메시지를 품을 수 있다는 믿음이다.그렇다면 그의 ‘프로즌이즘’ 작품은 구입은 가능한 것일까. “ 실제로 얼음은 보관이 어렵고, 판매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레진 조각, 사진, 영상 같은 다른 매체로 확장을 시도하고 있어요. 그러나 관객들이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 순간은 역시 ‘얼음이 사라져가는 장면’입니다. 완성된 오브제보다 소멸의 순간이 더 큰 울림을 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요. 예술은 시장의 언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팔리는 작품, 오래 보존되는 작품, 수집 가능한 작품만이 예술의 전부일 수는 없죠.”성서 작가의 얼음 작품은 늘 녹아 사라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사라짐이야말로 더 오래 남는다. 전시가 끝난 후 질문은 시작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녹아내리는 시대를 살고 있는가.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지만, 코로나19는 첫 번째 진짜 글로벌 비상사태였어요. 저는 처음으로 지구 전체가 연결돼 있다고 느꼈어요.”칠레에서 온 작가 헤르만 타글레 씨는 뉴욕타임스 1면이 새겨진 신문지 위에 그림을 그린다. 신문지 위 그림 속에는 유려한 곡선의 푸른색 의자가 있고, 빈티지 책상도 놓여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는가 하면, 침대와 소파 뒤에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그가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갤러리 상현제에서 6월13일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시의 제목은 ‘Nowhere But Here’.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 곳이란 뜻이다. 칠레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독학으로 화가가 됐고, 2005~2010년까지 뉴욕을 기본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던 작가다. 칠레로 돌아간 그에게 가장 큰 예술적 영감을 준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이었다.“한국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칠레에서는 4~5개월 동안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어요. 작업실에도 못 갔고, 그림을 그릴 재료도 살 수 없었지요. 완전히 방 안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강도 높은 봉쇄였습니다.“작업실에 갈 수 없었던 그에게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1900년부터 2000년까지 100년간 뉴욕타임스(NYT) 1면 모음집이었다. 신문의 1면을 모은 두꺼운 책이 그의 새로운 캔버스가 됐다.신문 1면을 모은 책을 처음 펼친 날. 그는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한 장 한 장 넘기다가 깨달았어요. 100년 동안의 모든 뉴스가 다 나쁜 뉴스였습니다. 전쟁, 경기 침체, 살인과 화재 사건, 백인 군중에게 린치당한 흑인….”그런데 그가 그런 뉴스를 읽는 순간에도, 우리는 ‘코로나’라는 뉴스에 폭격당하고 있었다. 그는 그 순간 묘한 위로를 느꼈다고 했다. 코로나19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 지구가 동시에 ‘같은 재앙’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왜 하필 ‘뉴욕타임스’ 1면이었나.“만약 제가 칠레 신문 위에 그렸다면 사람들은 ‘아, 이건 칠레 뉴스구나’ 했을 거예요. 한국 신문이었다면 ‘한국 뉴스구나’ 했을 거고요.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전세계인 모두가 알잖아요. 그래서 그 신문이어야 했어요.”그는 뉴욕타임스 1면 모음집 책을 한 장 한 장 떼어냈다. 그리고 신문지 위에 자기 아파트내부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우리는 보통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에 집에 돌아와 맥주 한 잔 하고 잠들죠. 사실 우리 집에서 살지 않았어요.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이나 밖에서 보내잖아요. 그런데 록다운으로 갇혀 지내면서 처음으로 제 소파, 의자, 계단, 책상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록다운 이후의 일들을 구상했죠. 내가 이 방 안에서 보호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느꼈어요.”그래서 그가 그린 그림 속 가구들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바로 자신을 살아남게 해준 생존의 도구였다. 록다운 4~5개월 동안 매일 한 점씩 그렸다.“감옥에 갇힌 사람은 벽에 하루에 한 개씩 작대기를 그으며 일곱 개가 쌓이면 ‘좋아! 일주일’ 하면서 날짜를 세잖아요. 제게는 이 작업이 그런 거였어요. 날짜를 세는 도구. 어떤 날은 두 점을 그리고, 다음 날은 칠하고, 그 다음 날은 또 그리고 칠하고…. 멈출 수가 없었지요.”그의 그림 속에는 집 안의 가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푸른 잎을 가진 나무도 빠지지 않는다.“세상이 모두 멈췄을 때, 식물들은 자라고 있었어요. 차도 멈추고, 사람도 멈추고, 모든 게 정지했는데, 식물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록다운 기간 동안 새들이 도시로 돌아오고, 곰이 마을로 내려왔다는 뉴스도 있었잖아요. 자연이 돌아오기 시작한 거지요. 생명에 대한 희망을 느꼈습니다.”사건사고 소식이 가득한 뉴욕타임스 1면에 집 안의 풍경을 그린 그의 ‘The Times’ 시리즈는 뉴욕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이 시리즈에 ‘A Place To Be(있어야 할 자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록다운에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이었다. 그림 속 의자는 비어 있다. 누군가가 와서 앉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뉴스와 내 마음 속에서 자라는 사색이 만나는 자리다.“봉쇄 속에서 심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두 가지를 자문했어요. 내가 읽는 모든 것을 믿어야 하는가? 친구들이나 미디어가 하는 모든 말을 믿어야 하는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게 그림 속에 담긴 메시지입니다.”코로나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뉴욕타임스에 그림을 그린다. 신문 속 뉴스와 그림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한다.“이번에는 역사가 된 뉴스가 오늘도 어떻게 반복되는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 침공해서 마두로를 체포했죠. 그런데 뉴욕타임스를 보면 ‘쿠바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이 압박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또한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는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으로 반복되죠. 신문지 위에 검은색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작업은 상파울루 비엔날레 큐레이터가 정말 좋아한 작업이지요.”―AI가 발달하고, 인터넷과 유튜브로 뉴스를 보는 사람도 많은데, 왜 굳이 종이 신문인가.“저는 오브제(object) 를 사랑해요. 킨들과 종이책 중에 고르라면 저는 종이책을 선택할 껍니다. 신문을 펼치면 1면, 2면, 3면…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펼쳐지잖아요.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담겨 있어요. AI가 모든 걸 휩쓰는 지금일수록 ‘종이신문’은 더 소중합니다. 우리는 아직 AI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아바타가 아닙니다. 인간에겐 영혼도 있고 뇌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몸이 있죠. 종이신문은 몸을 인식시키는 매체입니다.훗날 손주들이 ‘신문이 뭐예요?’라고 묻는 날이 오겠죠. 그러면 ‘이게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에 우리가 가졌던 정보의 모습’이라고 대답해줄 겁니다. 흥미로운 건, 사라지던 잡지들이 다시 종이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디지털과 오브제 사이의 균형 게임이 진행 중인 셈이죠.”그에게 한국의 신문 위에 그림을 그려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1920년에 창간한 동아일보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신문”이라고 소개했더니, 헤르만 작가는 “갤러리를 통해 복사본이라도 좋으니 옛날 기사가 나온 동아일보를 칠레로 꼭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뉴스가 담긴 종이신문에 그림을 그려 과거와 현재시간의 대화를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작가가 동아일보 위에 펼쳐낼 예술세계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달이 왜 반달이 되는지 아시는지요. 하늘이 꼭 껴안아 줬기 때문입니다. 달이 왜 보름달이 되는지 아시는지요. 달이 하늘을 품었기 때문이지요.”이달 10일 밤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대법륜전 앞마당. 깊은 밤 월정사 경내에서 한주(閒主) 현기 스님이 산과 우주, 달과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주악비천상 여신의 환생이날 행사는 강릉 출신 박용재 시인이 오대산과 월정사, 상원사를 오가며 쓴 시를 주제로 한 ‘예술법석’ 시(詩) 콘서트 ‘달을 쓿다’. 1300년 전 만들어진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銅鍾)에 새겨진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에 그려진 두 천상의 여인이 현실에 나타나 생황과 공후 연주를 들려주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가락이 산사의 밤공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 대법륜전 외벽에 황금빛 비천상 무늬가 새겨지자 객석에서 탄성이 쏟아졌다.동양화가 이여운 작가가 수묵의 필선으로 월정사 적광전(寂光殿)과 수광전(壽光殿), 상원사 동종 비천상을 직접 그려 사찰 외벽에 투사하는 영상작품이었다. 오대산 깊은 산속에서 시와 문학, 음악, 미술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예술법석’은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고려 말 나옹선사, 조선 시대 매월당 김시습, 율곡 이이, 교산 허균…. 오대산에 머무르며 시를 지었던 고승과 선비들의 시도 낭송됐다. 원로 배우 박정자(84)를 비롯해 서이숙, 김상중, 유준상 같은 중견 배우들이 낭송하는 시는 연극의 대사처럼, 가수의 노래처럼 들렸다.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는 남(南)인도 민화(民畵) 낭골리를 소개하고, 튀르키예에서 온 시인 아타세벤 파덴도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 막말과 비언어가 난무하는 시대. 오랜만에 느껴 보는 품격있고 정제된 언어의 향연이었다.“오대산 산세는 모난 곳 없이 완만한 모습이 달을 닮았습니다. 오대의 다섯 봉우리를 달, 물, 님, 나무, 꽃으로 상징화해서 예술법석을 마련했어요. 달의 정령을 불러 산벚꽃나무와 돌배나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상원사 동종 속 주악비천상의 공후 여인과 생황 여인에게 예술적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박용재 시인)재즈 피아니스트 민경인, 베이시스트 최진배, 아코디어니스트 정태호, 재즈 보컬리스트 남예지, 크로스오버 테너 박완, 생황 연주자 김효영, 공후 연주자 조보연, 바이올리니스트 이혜림은 박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와 연주로 들려주었다.그런데 오대산 월정사에서 ‘달을 쓿다’니 무슨 말이었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쓿다’는 ‘곡식을 찧어 겨(겉껍질)를 벗기고 깨끗하게 만들다’라고 뜻풀이가 돼 있다. 한자어로는 ‘도정(搗精)’이다. 쌀을 도정하는 곳이 바로 ‘정미소(精米所)’. 그러고 보니 월정사(月精寺)란 이름이 바로 ‘달을 닦아서 깨끗하게 만드는 절’이란 뜻이었구나. 하얀 달을 바라보며 마음도 깨끗하게 닦는 절이 오대산 월정사인 셈이다.● 전나무숲길 지나 선재길신록의 계절 5월. 오대산은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 온통 초록의 향연이다. 총연장 약 10km 되는 선재길과 전나무숲길은 오대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다.상원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우통수(宇筒水)라는 샘물이 있다. 현대에 정밀 측정 결과 한강의 발원지가 강원 태백시에 있는 검룡소로 밝혀지기 전까지, 우통수는 조선시대 내내 한강의 발원지로 신성시됐다. 세조도 우통수 아래 계곡에서 목욕을 하다 문수보살을 만나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우통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오대천이 되어 선재길을 흘러간다. 선재길은 나무다리, 밧줄다리, 섶다리, 돌다리 등 계곡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를 건너다니며 걷는 계곡길이다. 너럭바위를 흘러가는 계곡물은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모래사장에는 소원을 빌며 쌓아 놓은 돌탑이 가득하다. 키 큰 전나무숲과 참나무숲 속에 연분홍 진달래와 철쭉이 반기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숲 속 풍경은 다른 세상같다.선재길은 불교 경전 화엄경(華嚴經)에 등장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며 도(道)를 구한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9.4km)은 바로 1000년간 구도승이 걸었던 길이자, 현대인에겐 치유의 산책길이다. 실제로 선재길에는 선시(禪詩)로 유명한 고려말 나옹선사가 수행하던 길도 있다.“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초록의 숲과 크리스탈블루 하늘. 시원한 물소리와 새소리. 5월의 선재길은 나옹선사가 왜 청산과 창공, 물과 바람에 대해 시를 썼는지를 알게 해준다. 특히 선재길에서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 파도소리, 계곡물 소리, 빗방울 소리 같은 물소리는 사람 뇌파 중 알파(α)파와 동조한다고 한다. 주파수 8~14Hz의 알파파는 명상 상태에 있을 때 나타나는 뇌파. 선재길을 걷다보면 명상 상태에 빠져들며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다.자작나무를 닮은 키 큰 ‘거제수 나무’도 만난다. 거제수는 나무껍질이 종이처럼 얇아서, 종이가 귀했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나무껍질에 글을 썼다고 한다. 선재길을 걷던 구도자들도 이곳에서 깨달음의 글귀를 남겼으리라.선재길은 평탄하지만 모두 걷는 데는 약 3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전나무숲길(약 1km)만 걸어도 좋다. 전나무 1700여 그루가 빽빽하게 심어진 숲속 길을 걷다보면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온 몸 구석구석까지 청소해주는 느낌이 든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맨발로 걸어야 한다. 전나무숲길은 바닥이 황토로 잘 다져져 부드러운 쿠션처럼 느껴진다. 황톳길 위에 있는 좁쌀만한 돌멩이들이 발바닥 곳곳에 상쾌한 자극을 준다. 발바닥 자극으로 혈액 순환이 활발해지며 온몸이 깨어난다. 발바닥에서 전해 오는 땅의 기운이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차고 순환하는 숲길이다.전나무숲길에서 만나는 가장 귀한 친구는 바로 다람쥐다. 보통 다람쥐들은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포로로’ 도망가는데, 이 길의 다람쥐들은 다르다. 땅콩이나 잣, 호두 같은 견과류 몇 알을 호주머니에 넣고 걷다 보면 다람쥐가 다가온다. 가만히 손바닥 위에 땅콩을 올려놓고 기다린다. 다람쥐가 손바닥까지 올라와 땅콩을 가져간다. 그리고 나무밑으로 도망가 조그만 입으로 야무지게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귀엽다. 월정사 해융 스님은 “전나무숲길에서는 다람쥐도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오대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달이 왜 반달이 되는지 아시는지요. 하늘이 꼭 껴안아 줬기 때문입니다. 달이 왜 보름달이 되는지 아시는지요. 달이 하늘을 품었기 때문이지요.” 이달 10일 밤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대법륜전 앞마당. 깊은 밤 월정사 경내에서 한주(閒主) 현기 스님이 산과 우주, 달과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주악비천상 여신의 환생 이날 행사는 강릉 출신 박용재 시인이 오대산과 월정사, 상원사를 오가며 쓴 시를 주제로 한 ‘예술법석’ 시(詩) 콘서트 ‘달을 쓿다’. 1300년 전 만들어진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銅鍾)에 새겨진 주악비천상(奏樂飛天像)에 그려진 두 천상의 여인이 현실에 나타나 생황과 공후 연주를 들려주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가락이 산사의 밤공기를 타고 올라가는 순간, 대법륜전 외벽에 황금빛 비천상 무늬가 새겨지자 객석에서 탄성이 쏟아졌다.동양화가 이여운 작가가 수묵의 필선으로 월정사 적광전(寂光殿)과 수광전(壽光殿), 상원사 동종 비천상을 직접 그려 사찰 외벽에 투사하는 영상작품이었다. 오대산 깊은 산속에서 시와 문학, 음악, 미술과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예술법석’은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고려 말 나옹선사, 조선 시대 매월당 김시습, 율곡 이이, 교산 허균…. 오대산에 머무르며 시를 지었던 고승과 선비들의 시도 낭송됐다. 원로 배우 박정자(84)를 비롯해 서이숙, 김상중, 유준상 같은 중견 배우들이 낭송하는 시는 연극의 대사처럼, 가수의 노래처럼 들렸다. 문화인류학자 이희수 교수는 남(南)인도 민화(民畵) 낭골리를 소개하고, 튀르키예에서 온 시인 아타세벤 파덴도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 막말과 비언어가 난무하는 시대. 오랜만에 느껴 보는 품격있고 정제된 언어의 향연이었다. “오대산 산세는 모난 곳 없이 완만한 모습이 달을 닮았습니다. 오대의 다섯 봉우리를 달, 물, 님, 나무, 꽃으로 상징화해서 예술법석을 마련했어요. 달의 정령을 불러 산벚꽃나무와 돌배나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상원사 동종 속 주악비천상의 공후 여인과 생황 여인에게 예술적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박용재 시인)재즈 피아니스트 민경인, 베이시스트 최진배, 아코디어니스트 정태호, 재즈 보컬리스트 남예지, 크로스오버 테너 박완, 생황 연주자 김효영, 공후 연주자 조보연, 바이올리니스트 이혜림은 박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와 연주로 들려주었다. 그런데 오대산 월정사에서 ‘달을 쓿다’니 무슨 말이었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쓿다’는 ‘곡식을 찧어 겨(겉껍질)를 벗기고 깨끗하게 만들다’라고 뜻풀이가 돼 있다. 한자어로는 ‘도정(搗精)’이다. 쌀을 도정하는 곳이 바로 ‘정미소(精米所)’. 그러고 보니 월정사(月精寺)란 이름이 바로 ‘달을 닦아서 깨끗하게 만드는 절’이란 뜻이었구나. 하얀 달을 바라보며 마음도 깨끗하게 닦는 절이 오대산 월정사인 셈이다. ● 전나무숲길 지나 선재길 신록의 계절 5월. 오대산은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 온통 초록의 향연이다. 총연장 약 10km 되는 선재길과 전나무숲길은 오대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다. 상원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우통수(宇筒水)라는 샘물이 있다. 현대에 정밀 측정 결과 한강의 발원지가 강원 태백시에 있는 검룡소로 밝혀지기 전까지, 우통수는 조선시대 내내 한강의 발원지로 신성시됐다. 세조도 우통수 아래 계곡에서 목욕을 하다 문수보살을 만나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우통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오대천이 되어 선재길을 흘러간다. 선재길은 나무다리, 밧줄다리, 섶다리, 돌다리 등 계곡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다리를 건너다니며 걷는 계곡길이다. 너럭바위를 흘러가는 계곡물은 작은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모래사장에는 소원을 빌며 쌓아 놓은 돌탑이 가득하다. 키 큰 전나무숲과 참나무숲 속에 연분홍 진달래와 철쭉이 반기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숲 속 풍경은 다른 세상같다. 선재길은 불교 경전 화엄경(華嚴經)에 등장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 이야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며 도(道)를 구한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9.4km)은 바로 1000년간 구도승이 걸었던 길이자, 현대인에겐 치유의 산책길이다. 실제로 선재길에는 선시(禪詩)로 유명한 고려말 나옹선사가 수행하던 길도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성냄도 벗어 놓고 탐욕도 벗어 놓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초록의 숲과 크리스탈블루 하늘. 시원한 물소리와 새소리. 5월의 선재길은 나옹선사가 왜 청산과 창공, 물과 바람에 대해 시를 썼는지를 알게 해준다. 특히 선재길에서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 파도소리, 계곡물 소리, 빗방울 소리 같은 물소리는 사람 뇌파 중 알파(α)파와 동조한다고 한다. 주파수 8∼14Hz의 알파파는 명상 상태에 있을 때 나타나는 뇌파. 선재길을 걷다보면 명상 상태에 빠져들며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다. 자작나무를 닮은 키 큰 ‘거제수 나무’도 만난다. 거제수는 나무껍질이 종이처럼 얇아서, 종이가 귀했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나무껍질에 글을 썼다고 한다. 선재길을 걷던 구도자들도 이곳에서 깨달음의 글귀를 남겼으리라. 선재길은 평탄하지만 모두 걷는 데는 약 3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전나무숲길(약 1km)만 걸어도 좋다. 전나무 1700여 그루가 빽빽하게 심어진 숲속 길을 걷다보면 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온 몸 구석구석까지 청소해주는 느낌이 든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맨발로 걸어야 한다. 전나무숲길은 바닥이 황토로 잘 다져져 부드러운 쿠션처럼 느껴진다. 황톳길 위에 있는 좁쌀만한 돌멩이들이 발바닥 곳곳에 상쾌한 자극을 준다. 발바닥 자극으로 혈액 순환이 활발해지며 온몸이 깨어난다. 발바닥에서 전해 오는 땅의 기운이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차고 순환하는 숲길이다. 전나무숲길에서 만나는 가장 귀한 친구는 바로 다람쥐다. 보통 다람쥐들은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포로로’ 도망가는데, 이 길의 다람쥐들은 다르다. 땅콩이나 잣, 호두 같은 견과류 몇 알을 호주머니에 넣고 걷다 보면 다람쥐가 다가온다. 가만히 손바닥 위에 땅콩을 올려놓고 기다린다. 다람쥐가 손바닥까지 올라와 땅콩을 가져간다. 그리고 나무밑으로 도망가 조그만 입으로 야무지게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귀엽다. 월정사 해융 스님은 “전나무숲길에서는 다람쥐도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오대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갯벌에서 조개도 잡고 아름다운 낙조도 즐기는 서해는 아기자기하고 인간미 있으며 성숙한 바다입니다. 수심이 깊어 청춘의 상징인 동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죠. 글로벌 해양 축제 ‘화성뱃놀이축제’에 가족과 함께 오셔서 바다를 만끽해 보세요.”(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 수도권 대표 해양문화 축제인 제16회 화성뱃놀이축제가 22∼25일 경기 화성시 전곡항 일원에서 펼쳐진다. ‘놀이가 천배만배, 즐거움도 천배만배’라는 슬로건 아래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전곡항 마리나에는 200척의 요트와 보트가 정박할 수 있는 요트 계류장이 있다. 2005년 244억 원을 들여 조성한 수도권 첫 마리나 시설이다. 화성컵 한중 오션레이스(1300km)를 비롯한 국제 요트 대회도 열려 전곡항은 ‘동아시아 요트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립해양유산연구소와 협업해 역사적으로 고증한 조선통신사선(船)이 전곡항에 입항하는 퍼레이드다. 23일 전남 목포에서 출항할 조선통신사선이 항구로 들어올 때 과거와 현재가 시간을 초월해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고, 선상 박물관도 함께 운영돼 관람객들이 직접 배에 올라 다양한 해양 체험도 할 수 있게 된다. 항해사와 사신단을 모티브로 한 ‘바람의 사신단’ 퍼레이드는 사신단 400여 명이 무대를 벗어나 축제장 곳곳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선장용 마도로스 모자를 머리에 쓴 시민들도 퍼레이드에 자연스럽게 참가할 수 있다.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사진)는 “서양 문화에서 빨간 구두를 신으면 춤을 추게 되는 것처럼 흰색 마도로스 모자를 쓰는 순간 관객은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참가자가 된다”며 “아이 어른, 남자 여자 구분 없이 푸른 물결처럼 하나가 되는 퍼레이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축제 기간 전곡항과 궁평항, 백미항, 대부도 등에는 세일링 요트부터 파워 보트, 해적선까지 12종 70여 척의 배가 모여든다. 약 3만 명의 관람객이 승선 체험을 할 수 있는 규모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플라이보드(Flyboard·수압 분사를 이용해 사람이 타고 수면 위 3m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장비) 공연을 감상하는 ‘풍류단의 항해’가 있다. 또한 ‘천해유람단’은 요트와 보트를 타다가 국내 최장 해상 케이블카 ‘서해랑 케이블카’(총연장 2.1km)를 이용해 전곡항과 제부도 일대를 바다와 하늘에서 감상한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아찔한 속도로 전곡항 앞바다를 달려가는 ‘전곡항의 질주’도 마련된다. 해가 진 후에도 축제는 계속된다. 전곡항 마리나 일대에서는 22일 EDM(일렉트로닉댄스뮤직) 콘서트를 시작으로 OST(오리지널사운드트랙) 콘서트, 밴드 페스티벌 등이 피크닉형 공연으로 진행되며, 매일 밤 전곡항 밤바다를 배경으로 해상 불꽃쇼가 펼쳐진다. 또한 갯벌 생태 체험, 독살(얕은 바다에 쌓은 반원형 돌담) 물고기 잡이 등을 통해 전통 어로 방식과 어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해양 쓰레기를 줍는 머린 플로깅 프로그램과 바다 그리기 대회 같은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바다 그리기 대회에 참가한 관람객들에게는 이왈종 화백을 비롯해 화성 출신 유명 예술인의 이름을 단 상을 수여한다. 안 대표는 “내년부터 홍콩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전통 선박들도 초대할 예정”이라며 “장보고 시대 해양 강국을 열었듯이 화성뱃놀이축제가 동아시아 해양문화 교류의 허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갯벌에서 조개도 잡고, 낙조도 아름다운 서해바다는 아기자기하고, 인간미가 있는 성숙한 바다입니다. 깊은 수심으로 청춘의 상징인 동해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죠. 글로벌 해양축제인 ‘화성뱃놀이축제’에 가족들과 함께 오셔서 바다를 만끽해보세요.”(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수도권 대표 해양문화 축제인 제16회 화성뱃놀이축제가 22~25일 화성 전곡항 일원에서 펼쳐진다. ‘놀이가 천배만배, 즐거움도 천배만배’라는 슬로건 아래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행사가 열릴 예정이다.화성 전곡항 마리나에는 총 200척의 요트와 보트가 정박할 수 있는 요트 계류장이 있다. 2005년 244억원을 들여 조성한 수도권 첫 마리나 시설이었다. 전곡항에서는 ‘화성컵 한중오션레이스(1300km)’를 비롯해 국제 요트대회도 열려 ‘동아시아 요트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올해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립해양유산연구소와 협업으로 역사적으로 고증한 조선통신사선이 전곡항에 입항하는 퍼레이드다. 23일 목포에서 출항한 조선통신사선의 입항 할 때 과거와 현재가 시간을 초월해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고, 선상 박물관도 함께 운영돼 관람객들이 직접 배에 올라 다양한 해양 체험도 하게 된다.항해사와 사신단을 모티브로 한 ‘바람의 사신단’ 퍼레이드는 400여 명의 사신단이 전곡항 메인거리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선장용 마도로스 모자를 머리에 쓴 시민들도 퍼레이드에 자연스럽게 참가할 수 있다.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는 “서양문화에서 빨간 구두를 신으면 춤을 추게 되는 것처럼, 흰색 마도로스 모자를 쓰는 순간 관객은 더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참가자가 된다”며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구분없이 푸른 물결처럼 하나가 되는 퍼레이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축제기간 중 전곡항과 제부도 등에는 세일링 요트부터 파워보트, 해적선까지 12종 75척의 배가 모여든다. 약 3만 명의 관람객들이 승선 체험을 할 수 있는 규모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플라이보드(Flyboard·수압분사를 이용해 수면 위에서 3미터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장비) 공연을 감상하는 ‘풍류단의 항해’가 있다.또한 ‘천해유람단’은 요트와 보트를 타다가 국내 최장 해상 케이블카인 ‘서해랑 케이블카(2.1km)’를 이용해 전곡항과 제부도 일대를 바다와 하늘에서 입체적으로 감상한다. 또한 전곡항 앞바다를 달리며 요트상식을 배우고 꼬마선장이 되어보는 ‘전곡항의 질주’프로그램도 마련된다.축제는 해가 진 후에도 축제는 계속된다. 전곡항 마리나 일대에서는 22일 EDM 콘서트를 시작으로 OST 콘서트, 밴드 페스티벌 등이 피크닉형 공연으로 진행되며, 매일 밤 전곡항 밤바다를 배경으로 해상 불꽃쇼가 펼쳐진다.또한 독살 체험, 갯벌 생태 체험, 독살 물고기 잡이 등을 통해 전통 어로 방식과 어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해양 쓰레기를 줍는 마린 플로깅 프로그램과 어린이 버블댄스파티, 천배만배 그리기, 가가호호 등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안 대표는 “내년부터 홍콩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전통선박들도 초대할 예정”이라며 “장보고 시대 해양강국을 열었듯이 화성뱃놀이축제를 동아시아 해양문화교류의 허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갯벌에서 조개도 잡고, 낙조도 아름다운 서해바다는 아기자기하고, 인간미가 있는 성숙한 바다입니다. 깊은 수심으로 청춘의 상징인 동해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죠. 글로벌 해양축제인 ‘화성뱃놀이축제’에 가족들과 함께 오셔서 바다를 만끽해보세요.”(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수도권 대표 해양문화 축제인 제16회 화성뱃놀이축제가 22~25일 화성 전곡항 일원에서 펼쳐진다. ‘놀이가 천배만배, 즐거움도 천배만배’라는 슬로건 아래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행사가 열릴 예정이다.화성 전곡항 마리나에는 총 200척의 요트와 보트가 정박할 수 있는 요트 계류장이 있다. 2005년 244억원을 들여 조성한 수도권 첫 마리나 시설이었다. 전곡항에서는 ‘화성컵 한중오션레이스(1300km)’를 비롯해 국제 요트대회도 열려 ‘동아시아 요트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올해 축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립해양유산연구소와 협업으로 역사적으로 고증한 조선통신사선이 전곡항에 입항하는 퍼레이드다. 23일 목포에서 출항한 조선통신사선의 입항 할 때 과거와 현재가 시간을 초월해 만나는 장면을 연출하고, 선상 박물관도 함께 운영돼 관람객들이 직접 배에 올라 다양한 해양 체험도 하게 된다.항해사와 사신단을 모티브로 한 ‘바람의 사신단’ 퍼레이드는 400여 명의 사신단이 전곡항 메인거리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선장용 마도로스 모자를 머리에 쓴 시민들도 퍼레이드에 자연스럽게 참가할 수 있다.안필연 화성시문화관광재단 대표는 “서양문화에서 빨간 구두를 신으면 춤을 추게 되는 것처럼, 흰색 마도로스 모자를 쓰는 순간 관객은 더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참가자가 된다”며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구분없이 푸른 물결처럼 하나가 되는 퍼레이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축제기간 중 전곡항과 제부도 등에는 세일링 요트부터 파워보트, 해적선까지 12종 75척의 배가 모여든다. 약 3만 명의 관람객들이 승선 체험을 할 수 있는 규모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플라이보드(Flyboard·수압분사를 이용해 수면 위에서 3미터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장비) 공연을 감상하는 ‘풍류단의 항해’가 있다.또한 ‘천해유람단’은 요트와 보트를 타다가 국내 최장 해상 케이블카인 ‘서해랑 케이블카(2.1km)’를 이용해 전곡항과 제부도 일대를 바다와 하늘에서 입체적으로 감상한다. 또한 전곡항 앞바다를 달리며 요트상식을 배우고 꼬마선장이 되어보는 ‘전곡항의 질주’프로그램도 마련된다.축제는 해가 진 후에도 축제는 계속된다. 전곡항 마리나 일대에서는 22일 EDM 콘서트를 시작으로 OST 콘서트, 밴드 페스티벌 등이 피크닉형 공연으로 진행되며, 매일 밤 전곡항 밤바다를 배경으로 해상 불꽃쇼가 펼쳐진다.또한 독살 체험, 갯벌 생태 체험, 독살 물고기 잡이 등을 통해 전통 어로 방식과 어촌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해양 쓰레기를 줍는 마린 플로깅 프로그램과 어린이 버블댄스파티, 천배만배 그리기, 가가호호 등 가족단위 방문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안 대표는 “내년부터 홍콩과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전통선박들도 초대할 예정”이라며 “장보고 시대 해양강국을 열었듯이 화성뱃놀이축제를 동아시아 해양문화교류의 허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로 10년째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경무 씨(72). 한국, 특히 서울의 아름다움을 유창한 영어로 해설하는 최 씨는 미국계 화학회사 듀폰의 임원 출신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청계천과 인사동, 북촌과 서촌, 낙산과 남산 성곽길까지….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걸으며 서울의 봄을 만끽하는 그의 얼굴엔 웃음과 활력이 넘쳐 흘렀다.“2014년 은퇴하고 처음 몇 달은 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행도, 골프도 하루이틀이지 계속할 순 없더라고요. 뭔가 소속감을 갖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체득한 영어 능력을 활용할 곳을 찾아봤습니다.” 최 씨는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에 도전했다. 외국어 능력은 토익, 토플 같은 공인 외국어자격증을 제출해야 한다. 이어서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필기시험은 국사, 관광자원, 관광법규 등의 과목을 치르고, 면접은 관광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외국어로 테스트한다.“관광통역안내사는 외국어뿐 아니라 역사 지식, 관광관련 법규와 관광자원에 대한 이해, 손님을 응대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까지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외국인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프리젠테이션(PT)을 많이 해 봤기 때문에 해설이나 커뮤니케이션 분야는 자신 있었습니다. 3차 인터뷰(면접) 시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내용의 깊이보다는 범위가 워낙 넓어서 어렵습니다. 고조선부터 우리나라 5000년 역사를 알아야 하고 서울부터 제주, 경주까지 모든 문화재와 미술품을 비롯한 관광자원을 폭넓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는 서울시청 근처 학원에 다니며 1년간 준비한 끝에 국가 공인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은퇴 후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시험에 합격한 후 실제 관광통역안내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1년 만에 그만뒀어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 새벽같이 인천공항에 가서 외국인 관광객을 픽업하면서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일이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또,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 이왕이면 여성을 관광가이드로 선호하지 않습니까. 누가 뭐라 한 사람은 없지만, 본의 아니게 자식 같은 젊은이들하고 경쟁하는 것 같아서 접기로 마음 먹었지요.” 그는 당초 은퇴하면 ‘내 시간의 3분의 1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 계획대로 봉사활동에 전념하기로 했다. 마침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 모집 공고가 났다. 관광통역안내사는 노력에 따라 하루에 수십만 원도 벌 수 있는 일자리였지만, 문화관광해설사는 교통비와 식사비 정도를 지원받는 봉사활동에 가까운 일이었다.“관광통역안내사 시험 준비와 1년간 실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도 있고 해서, 도보 관광 코스를 10여 차례 따라다니면서 문화관광해설사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미리 들어봤습니다.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문화관광해설사로 선발됐죠.”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해설을 한다. 한 달이면 8∼10번. 성실하게 근무해 온 그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지난 9년 동안 자신이 일한 통계를 살펴보니 60∼70%는 외국인 관광객(영어), 30∼40%는 한국인 신청자(한국어)를 위해 해설을 했다.“영어 해설을 듣는 분들 국적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호주는 물론이고 요즘엔 독일 스페인 튀르키에 같은 유럽 국가도 많아지고 있어요. 심지어 브라질 멕시코 같은 중남미와 나이지리아 같은 아프리카에서 오신 분도 많아지고 있어요. BTS와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 같은 K컬쳐 파워를 실감합니다.” ―기억에 남는 관광객은.“3년 전쯤 경복궁에서 해설하는데 브라질과 멕시코에서 각각 젊은 여성 분이 오셨어요. 그 먼 데서 어떻게 한국에 왔느냐고 물었더니 K팝 팬이라고 하더군요. 아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더니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노래를 해요. 알고 보니 BTS 데뷔 1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아온 손님들이었어요. 저는 동료들에게 항상 이야기해요. 어디가서 젊은이들 만나면 ‘라떼는 말이야’라며 잔소리하지 말고, ‘고맙다’고 말해 주라고요. 전 세계를 휩쓰는 K컬쳐를 이끌어 낸 분들이 바로 젊은 세대들이니까요.” ―문화관광해설을 할 때 지키는 원칙은.“기본 시나리오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의 정확성입니다. 그리고 저만의 원칙으로 세운 것은 ‘고객 위주로 즐겁게’입니다. 해설사가 열 가지를 안다고 해서 열 가지를 다 설명하고 강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객이 그걸 다 기억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잖아요. 어떤 분들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고, 어떤 분들은 그저 사진 찍으며 즐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중간에 질문을 하거나 퀴즈도 내고, 참가자 모두와 눈을 맞춰 가면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관광객 분들이 제 해설을 들었을 때 ‘잘 기억은 안나지만 종합적으로 보니 뭔가 즐겁고 재밌었다’는 느낌만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도보 관광은 여러 궁궐과 인사동, 북촌, 서촌, 청계천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구 하이브 사옥, 여의도, 한강, 노들섬 등 K팝 ‘성지’ 투어까지 여러 코스가 있다. 관광객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날짜와 코스를 선택하고, 해설사는 자신이 해설할 수 있는 날짜와 코스를 입력해 놓으면 자동적으로 짝이 지어지는 시스템이다. 지방 기초단체나 광역단체에서는 해설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하루 종일 근무하기도 한다. 각 지자체마다 업무 체계가 달라 문화관광해설사 급여나 수당도 다 다르다. 최 씨는 “은퇴 후에도 소속감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직업이 육체와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예약이 들어오면 내일은 어떤 손님을 맞게 될까 설레는 마음이 듭니다.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소속감은 커다란 마음의 안정을 주지요. 도보 관광 코스를 해설하다 보니 하루에 2∼3시간씩 꾸준히 걷게 돼요. 적당한 운동이 저절로 됩니다. 제일 듣고 싶은 말은 ‘일하는 게 즐거워 보여요’에요. 매일 밝은 표정의 관광객들을 만나서 해설하니 제 마음도 진짜로 즐거워지더군요. 문화관광해설사 일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최 씨는 궁궐에 갈 때마다 심겨 있는 나무와 피어 있는 꽃 들이 궁금해서 인터넷 등으로 찾아보다가 숲해설가 공부까지 하게 돼 됐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경기 오산에 있는 ‘물향기 수목원’에서 숲 해설 봉사를 하고 있다. 수당은 문화관광해설사보다도 훨씬 적지만 ‘힐링’을 위해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변화된 표정에 보람을 느껴서 5년째 숲 해설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내친 김에 산림치유지도사 2급 자격증도 따냈다. 치유의 숲이나 산림치유원에서 숲속 힐링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산림치유지도사 2급 자격증을 따려면 우선 대학에서 산림이나 보건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지도사 양성 기관에 들어갈 자격을 줍니다. 저는 화학공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방송통신대 농학과 3학년에 편입했어요. 2년간 공부한 끝에 올해 1월 대전에 가서 자격증 시험을 보고 합격했습니다. 응시자 10명 중 2명 정도만 붙을 만큼 합격률이 낮은 시험입니다. 뒤늦게 공부하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관광통역안내사, 문화관광해설사, 숲해설가, 산림치유지도사는 자격증만 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공부해야 하는 일”이라며 “이 활동을 하면서 뇌 건강, 특히 치매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글·사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계획을 어떻게 세울까 고민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준비는 물론,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많이 묻게 됩니다. 이럴 때는 1700년 전 ‘은퇴 선배’ 이야기를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의 로마황제들은 죽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추방되거나, 강제폐위 당하거나 하는 식으로 타의에 의해 권력을 놓았습니다.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험한 꼴을 당했죠. 그런데 로마제국의 제43대 황제였던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44~311)는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고향 인근 따뜻한 햇살이 아름다운 해변도시에 궁전을 짓고 채소를 키우며 은퇴생활을 하다가 갔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고, 은퇴생활을 즐긴 로마 황제는 그 전과 후에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인 황제 시대라 불리던 3세기 말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로마 제국을 구해낸 통치자였습니다. 당시 로마는 정치적 암살, 군부 쿠데타, 외부의 야만족 침입으로 인해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려 있었죠. 그는 로마제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눠 다스리는 사분통치제(Tetrarchia)를 만들었고, 행정 개혁과 세금제도 정비로 로마를 재건했습니다. 그런데 305년 5월. 황제는 예상 밖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은퇴했죠. 로마 제국 건국 이후 몇 세기 동안 암살당하거나, 폐위당하거나, 추방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은 첫 번째 황제였습니다. 황제는 재위 21년 동안 니코메디아(현재 터키의 아타톨리아 지역)에서 주로 아시아 소아시아 지역, 이집트를 통치했는데요. 그는 은퇴지로 발칸반도의 해안도시 스플리트(Split)를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태어난 고향이 스플리트에서 가까운 크로아티아 솔린(당시의 살로나)이었기 때문이었죠. 노예 또는 하급 관리인 출신으로 추정되는 디오클레스는 누메리아누스 황제의 경호대장으로 일하다가 황제로 추대됐고, 21년간 제국을 통치한 후 은퇴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삶의 여정이 시작된 그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은퇴 전 약 10년에 걸쳐 스플리트에 궁전을 지었습니다. 호화로운 휴양지와 견고한 요새를 융합한 복합 건축물이었죠. 궁전의 규모는 약 3만8000㎡. 축구장 약 5개 정도의 면적입니다. 궁전의 중심에는 페리스타일(Peristyle)이라는 거대한 열주가 있는 안뜰이 있었습니다. 황제가 매일 아침 관리들과 만나고, 예식을 진행하는 권력의 중심 공간이죠. 이 곳에 가보니 광장 기둥 아래에는 검은색 화강암 스핑크스가 놓여져 있었는데요. 약 3500년 전인 이집트 투트모스 3세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스핑크스입니다. 궁전에는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12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다는데요. 현재는 3개의 스핑크스가 남아 있습니다. 대부분 얼굴이 훼손돼 있지만 페리스타일 광장의 스핑크스는 가장 온전한 상태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스핑크스 맞은 편 카페의 이름은 ‘룩소르(LVXOR)’. 비엔나식 크림 커피가 유명한 카페입니다. 손님들을 위해 페리스타일의 돌 계단 위에 쿠션을 펼쳐놓았는데요. 손님들은 돌기둥에 등을 기대고, 발은 고대 로마의 광장에 내려놓고, 스핑크스를 마주보며 커피를 마십니다. 로마 황제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카페입니다. 페리스타일을 지나면 돔모양의 지붕을 가진 연결 통로가 나옵니다. 황제가 손님을 만나는 알현실로 쓰이던 베스티뷸(Vestibule) 공간이죠. 높이 17미터, 지름 12미터의 원형홀 정상에는 둥그런 구멍인 ‘오큘러스(oculus)’가 뚫려 있는데요. 로마의 판테온에서도 볼 수 있는 돔 지붕의 원형 구멍입니다. 그 사이로 푸른하늘이 보이네요. 구멍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벽에 시시각각 다른 모양으로 타원형의 햇빛 그림자를 만들어냅니다. 오큘러스는 최고의 음향효과도 만들어냅니다. 완전히 밀폐된 공간이라면 동굴처럼 잔향이 너무 길어 소리가 먹먹하겠지만, 천정에 구멍이 뚫려 있어 적절한 잔향을 만들어냅니다. 인간의 소리를 하늘과 우주로 연결시켜 주는 공간이네요. 이 방에서는 ‘클라파(Klapa)’라고 부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전통 민속음악이 상설공연됩니다. 남성 4명이 반원형으로 서서 아무런 반주없이, 목소리만으로 실크처럼 섬세한 화음을 만들어내 감탄을 자아냅니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두브로브니크가 ‘킹스랜딩’의 무대였다면, 스플리트는 데너리스 타르가리엔이 군대와 용을 끌고 왔던 ‘미린’이라는 또다른 세계관의 촬영지였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밑에는 높이 10미터, 길이 50미터가 넘는 지하공간이 있는데요. 전체 궁전의 약 8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입니다.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가 키우던 용 세 마리가 갇혀 있던 ‘용의 던전(Dungeon)’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했지요. 현지 해설 가이드는 “중세 이후 1000년간 주민들이 지하공간에 버린 쓰레기와 배설물들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시대에 석조로 지어진 지하공간이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는데요. 19세기에 대대적인 지하공간 발굴작업 끝에 로마시대 황제의 지하 궁전 유물을 복원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로마시대의 신전과 기도실, 우물과 하수도관, 황제의 식탁으로 추정되는 대리석 테이블, 와인과 올리브유를 짜내던 프레스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광장 옆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무덤이었던 팔각형 돔 건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으로 쓰이고 있죠. 3세기 살로나의 주교였던 성 도미니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 박해 중에 참수된 순교자였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황제의 무덤이, 황제가 참수한 기독교 순교자의 유해를 안치하는 거룩한 성소(聖所)로 변모된 것입니다.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 옆에는 높이 57m에 이르는 종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면 페리스타일 광장에서 점점 시야가 확대되면서 아드리아 해안까지 스플리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어디선가 깍깍대는 소리가 들리길래 쳐다봤더니,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붉은색 지붕이 보이는 종탑 꼭대기 기둥 아래에 하얀색 갈매기가 앉아 있네요. 궁전을 나와 바다쪽으로 나가보면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가 나옵니다. 해변에는 길이 500미터, 폭 40미터 정도의 직선거리인 ‘리바(Riva) 프롬나드’가 이어지는데요. 낮에는 관광객들로 들썩이지만, 해질녘이면 크로아티아 현지인들이 몰려나와 이웃과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는 거리입니다. 매일 저녁 일상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이런 저녁 산책을 ‘코르조(Korzo)’라고 부른다네요. 리바 프롬나드는 산책길을 넘어 ‘스플릿의 거실(Living room)’ 역할을 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스플릿에서 6년간의 은퇴생활 동안 채소를 기르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특히 양배추를 좋아했다고 하네요. 1700년 전 황제의 ‘은퇴레시피’는 현대인에게도 깊은 영감을 줍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스플리트는 어디일까? 나만의 궁전은? 나는 은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가 평생 해보지 않았던,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스플리트(크로아이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 동쪽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좁고 긴 내해(內海)다. 파도가 거의 없어 호수처럼 보인다.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이 번성하고,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의 해상 무역로가 되었던 문명의 교차로. HBO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킹스랜딩의 촬영지, 로마 황제가 슬기로운 은퇴생활 장소로 택했던 달마시아(Dalmatia) 해안도시로 떠나보았다. ● 킹스랜딩이 눈 앞에 크로아티아 남부 달마시아 지역에는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같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에도 번성했던 유서깊은 해안도시들이 많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하는 점박이 개 품종인 ‘달마시안’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두브로브니크의 2km 남짓한 성벽을 한바퀴 걷고,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778m)에 올라가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붉은 지붕’이 파도를 보기 위해서다. 특히 크리스탈 블루와 에머랄드 빛으로 빛나는 아드리아해와 어우러지는 붉은 지붕의 대비는 독보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두브로브니크는 붉은 지붕을 철저히 보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의 올드타운 뒷골목을 걷다보면 미국 HBO드라마 ‘왕좌의 게임’ 속 ‘킹스랜딩’이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현지 가이드가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이 성벽의 서쪽 문인 필레 게이트 아래 항구. 드라마 속에서 ‘블랙워터 만(Black Water Bay)’으로 나오는 필레만이다. 오른쪽과 왼쪽 양쪽에는 높은 성벽과 계단이 있고, 라니스터, 스타크 가문의 사람들을 실은 배가 드나들고 해전이 펼쳐지던 장면이 눈 앞에 선하다.필레만의 서쪽에는 37m 높이의 거대한 절벽 위에 로브리예낙 요새가 우뚝 솟아 있다. ‘왕좌의 게임’에서는 ‘붉은 성’으로 나왔던 성채다. 필레만의 동쪽에는 포트 보카르라는 또 다른 요새가 있다. 절벽과 성벽, 그리고 붉은 지붕이 어우러진 필레만의 경치는 절경이다. 성의 다른쪽 올드포트 항구에서 배를 타면 로크룸 섬에 도착한다. 왕좌의 게임 속 ‘철 왕좌’가 실제로 전시돼 있어 관광객들의 인증샷 명소다. 올드타운 골목을 걷다가 파리 오페라극장처럼 우아한 계단이 나타났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계단. 성이그나시우스 교회 앞 ‘예수회 계단’은 왕좌의게임에서 가장 충격적 명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세르세이 라니스터(레나 헤디)가 머리를 깎이고, 벌거벗긴채 군중의 조롱 속에 걸어갔던 ‘수치의 행진’이다. 극중 최고 권력자의 딸이자 왕국의 왕비였던 세르세이 라니스터. 그녀가 권력을 잃고 셉트 성당에서 붉은 성까지 ‘참회의 행진’을 한다. 킹스랜딩 시민들은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Shame!”을 외치며 손가락질을 하고, 음식물을 던진다.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레나 헤디는 ‘몸 대역’을 썼다. 1000명의 오디션 경쟁을 뚫고 대역에 선정됐던 레베카 반 클리브가 나체로 사흘간 같은 장면을 촬영했다. 특수 효과 전문가들은 레나 헤디의 얼굴을 레베카의 신체에 디지털로 입혀 놓았다. 세르세이의 ‘수치의 행진’ 장면은 실제로 1486년 6월 에드워드 4세의 정부(情婦)였던 제인 쇼라는 인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간음죄와 마녀 혐의로 체포된 그녀는 반투명한 흰 튜닉만 입고 세인트폴 대성당부터 런던의 거리를 행진해야 했다. 올드타운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이 연금술을 연구하며 제조했던 불로불사 영약에 대한 기록이 전시돼 있다. 수도원 내에는 1317년에 설립된 약국도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약국(1221년)이 더 오래됐지만, 이 약국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다. 수도사들의 200년 된 레시피로 허브와 오일을 활용해 만든 장미 크림이 유명하다.● 나의 스플리트는 어디인가두브로브니크에서 좀더 북쪽에 있는 스플리트(Split)는 1700년 전 로마 황제가 은퇴지로 선택한 해안 휴양도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인 황제 시대라 불리던 3세기 말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로마 제국을 구해낸 통치자였다. 당시 로마는 정치적 암살, 군부 쿠데타, 외부의 야만족 침입으로 인해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그는 로마제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눠 다스리는 사분통치제(Tetrarchia)를 만들었고, 행정 개혁과 세금제도 정비로 로마를 재건했다. 그런데 305년 5월. 황제는 예상 밖의 선택을 했다. 그는 은퇴했다. 로마 제국 건국 이후 몇 세기 동안 암살당하거나, 폐위당하거나, 추방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려놓은 첫 번째 황제였다. 그는 은퇴 전 고향 근처인 스플리트에 10년에 걸쳐 궁전을 지었다. 궁전의 규모는 약 3만8000㎡. 축구장 약 5개 정도의 면적이다. 궁전의 중심에는 페리스타일(Peristyle)이라는 거대한 열주가 있는 안뜰이 있다. 기둥 아래에는 검은색 화강암 스핑크스가 놓여져 있다. 약 3500년 전인 이집트 투트모스 3세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스핑크스다. 궁전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12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는데 현재는 3개의 스핑크스가 남아 있다. 대부분 얼굴이 훼손돼 있지만 페리스타일 광장의 스핑크스는 가장 온전한 상태의 얼굴을 보여준다. 스핑크스 맞은 편 카페의 이름은 ‘룩소르(LVXOR)’. 비엔나식 크림 커피가 유명하다. 카페는 손님들을 위해 페리스타일의 돌 계단 위에 쿠션을 펼쳐놓는다. 돌기둥에 등을 기대고, 발은 고대 로마의 광장에 내려놓고, 스핑크스를 마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로마 황제가 된 기분이다. 페리스타일을 지나면 돔모양의 지붕을 가진 연결 통로가 나온다. 황제가 손님을 만나는 알현실로 쓰이던 공간이다. 높이 17미터, 지름 12미터의 원형홀 정상에는 둥그런 구멍인 ‘오큘러스(oculus)’가 뚫려 있다. 햇빛이 들어오는 이 구멍은 최고의 음향효과도 만들어낸다. ‘클라파(Klapa)’라고 부르는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지역의 전통 민속음악이 상설공연되는데, 남성 4명이 반주없이 소리만으로 실크처럼 섬세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두브로브니크가 ‘킹스랜딩’의 무대였다면, 스플리트는 데너리스 타르가리엔이 군대와 용을 끌고 왔던 ‘미린’이라는 또다른 세계관의 촬영지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밑에는 높이 10미터, 길이 50미터가 넘는 지하공간이 있다. 전체 궁전의 약 8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공간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대너리스가 키우던 용 세 마리가 갇혀 있던 ‘용의 던전(Dungeon)’으로 나왔던 공간이다. 현지 해설 가이드는 “중세 이후 1000년간 지하공간에 쌓인 배설물들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로마시대에 석조로 지어진 지하공간이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궁전을 나와 바다쪽으로 나가보면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가 나온다. 해변에는 길이 500미터, 폭 40미터 정도의 직선거리인 ‘리바(Riva) 프롬나드’가 이어진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해질녘이면 몰려나와 이웃과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신다. 매일 저녁 일상의 의식처럼 반복되는 이런 저녁 산책을 ‘코르조(Korzo)’라고 부른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플릿에서 6년간의 은퇴생활 동안 채소를 기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1700년 전 황제의 ‘은퇴레시피’는 현대인에게도 깊은 영감을 준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의 스플리트는 어디일까? 나는 은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 크로아티아 전통요리 ‘페카’ 지중해 연안의 크로아티아는 신선한 올리브와 치즈, 와인을 곁들인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두브로브니크 올드타운에 있는 ‘로컬 페카(Lacal Peka)’에서는 크로아티아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다. 철제 뚜껑이 있는 용기인 ‘페카’ 안에 송아지 고기와 감자, 당근, 양파, 로즈마리, 올리브유, 와인, 파프리카, 토마토 등을 넣고 숯불로 4∼5시간 익히면 안에서 각종 재료가 향이 어우러진 요리가 완성된다. 한국의 뚝배기 찜과 비슷한 맛이라고할까. 특히 마랑군 레스토랑에서 맛본 문어 페카는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감칠맛이 났다. 식전에 나오는 ‘프로슈토’는 돼지 넓적다리를 아드리아해의 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천천히 숙성시켜 깊이 있는 맛이 난다.글·사진 크로아티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부산 영도(影島)의 매력은 해운대의 깔끔한 바다가 아니라 일하는 항구의 생명력이다. 조선소와 낡은 보세창고, 거대한 컨테이너선박들과 크레인의 실루엣…. 쇠락한 항구의 섬 영도가 최근 감성 카페와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영도가 떠오름에 따라 부산 관광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시장 같은 대형 관광지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부산 원도심 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다.● ‘커피 산업 중심지’ 영도 조선소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 1위는 부산 영도구 봉래동이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은 7만251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128% 급증했다. 조선소의 거친 철골과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 오래된 벽돌, 녹슨 파이프들이 있는 곳. 산업 미학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영도 조선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영도 여행 출발은 영도대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영도대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도개교(跳開橋). 일제시대에 건설된 영도대교는 배가 지나갈 때마다 길이 31.3m, 무게 590t의 거대한 철교가 75도 각도로 들어 올려지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보여줬다. 요즘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15분간 다리가 올라가는 쇼가 펼쳐진다.영도대교 바로 앞 건물 2층에 있는 스타벅스 영도대교점에는 토요일마다 ‘성지순례객’들로 만석을 이룬다. 오후 2시 영도대교 사이렌이 울리면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 사진기를 켠다. 어린이들의 경탄, 젊은 연인들의 설렘, 그리고 노인들의 향수(鄕愁)가 뒤섞이는 시간이다.영도에 사람이 몰려든 것은 6·25전쟁 때였다. 피란민들 최후의 안식처가 부산이었다. 당시 부산 인구는 16만 명에 불과했는데, 200만 가까운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영도대교 주변은 피란민 천막으로 뒤덮였다. 영도대교는 14대 대통령선거 당시 ‘초원복집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는 녹취 테이프 속 말은 정치인들이 부산의 지역감정을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영도대교 바로 앞에 있는 라발스호텔 28층 스카이카페에 올라가면 넓은 통창(通窓)을 통해 조선소와 영도대교, 부산항 풍경을 360도로 볼 수 있다. 스카이카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니 영도 조선소 도크에 배가 올라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직도 영도 조선소는 운영되고 있구나! 영도대교에서 10여 분 걸어 ‘대한민국 수리 조선 1번지’로 불리는 대평동 ‘깡깡이 마을’에 도착했다. 늘 깡! 깡! 깡!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걷다가 문이 살짝 열린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 봤다. ‘칠성1호’라고 쓰여진 배가 눈 앞에 서 있다. 낯설지만 뭔가 신기하고 생생한 산업현장에 와 있는 듯하다. 영도는 운항 중인 중급 규모 선박들을 보수하는 조선업이 발달해 왔다. 1970~80년대 붐을 이룬 원양어선은 5월 전후에 영도로 들어와 겨울 항해를 대비해 정비를 받았다. 선체에 붙은 조개껍데기와 해초, 녹을 제거하고 용접하고 엔진을 점검했다. ‘깡깡이 아지매’들 활약은 대단했다. 배의 녹이나 조개껍데기를 떨어내던 여성 노동자들이다. 대부분 6·25전쟁 피란민과 그 자녀들, 농어촌을 떠나 온 실향민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망치질을 했다.조선업 침체에 따라 영도는 인구소멸 위기를 겪었다. 1978년 약 21만 명이던 인구는 2024년 10만여 명으로 줄었다. 청년은 떠났고 골목골목에는 셔터 내린 가게가 즐비했다. 2016년부터 마을 빈 공간을 예술작품으로 채우는 ‘깡깡이예술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키네틱아트와 벽화, 박물관, 마을카페 등이 생겨났다.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평마을 대동대교맨션아파트 벽에 그려진 ‘우리 모두의 어머니’. 독일 예술가 헨드릭 바이키르가 2017년 크레인에 올라 그린 가로 13m, 높이 35m 초대형 벽화다. 고된 삶을 강인하게 살아 낸 깡깡이 아지매 초상화다. 밤이 되면 들어오는 조명을 받아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주름살 가득한 어머니 얼굴이 빛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대평마을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영도에는 큰 변화가 생겨났다. 폐조선소가 문화 공간이 되고, 낡은 공업소가 예술 무대로 재해석됐다. 관광객들은 이 ‘낡음’을 향유하기 시작했다. 봉래동 물양장 일대 보세창고는 220곳 카페로 채워졌다.강원 강릉에 이어 부산이 커피 로스팅 중심지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국내 수입되는 커피 생두 90% 이상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서다. 에티오피아 산지, 콜롬비아 고산지대, 인도네시아 화산 지형에서 수확한 생두가 컨테이너에 실려 부산항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선한 생두를 로스팅할 수 있는 영도에 커피 전문 카페가 밀집하게 됐다.실제로 봉래동 모모스 카페에 들어서면 거대한 로스팅머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지 생두를 로스팅해 매일 다른 브랜드의 스페셜티커피를 큐레이션한다. 가장 인기있는 자리는 ‘조선소 뷰’ 자리다. 젊은 남녀들은 부산항 크레인과 중장비가 움직이는 풍경과 조선소 거친 기계음을 마주하며 커피를 마신다.봉래산 중턱에 자리 잡은 미피카페도 부산 남항과 북항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 맛집이다. 1987년부터 신기산업의 방울 공장이던 이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다보이는 부산항 노을과 야경은 사진작가들도 찾아오게 만든다.영도 동삼동 조선소 부지에 들어선 카페 피아크(P.ARK)는 거대한 크루즈선이나 항공모함을 연상케 한다. 카페 내부에는 바다 조망을 극대화하는 대규모 유리창과 계단형 좌석이 설치돼 있다. 부산항과 오륙도를 마주 보도록 설계된 시네마틱한 공간이다. 이곳 ‘영도 사골 뚝배기빵’은 유명하다.영도 바닷가 절벽 위 흰여울문화마을도 피란민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는 비탈길로 좁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추억이 떠오르는 동네다. 절벽 위 흰 담장 마을 풍경에 외국인 관광객도 몰려든다.영화 ‘변호인’ 국밥집 장면의 무대가 됐던 카페도 있다. 커피와 팥빙수를 시켜 놓고 건너편 송도해수욕장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본다. 애잔한 향수와 그리움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바라본 태종대와 송도 영도에서 커피를 마셨다면 유람선과 요트를 타고 영도의 진귀한 바위들을 구경할 차례다. 먼저 영도 끝자락 태종대다. 신라시대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통일을 마친 후 수려한 해안절경에 매료돼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태종대는 걸어서 볼 수 있다. 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로 이어지는 2~3시간 산책 코스다. ‘다누비 열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지질 명소로 불리는 태종대 절벽을 제대로 보려면 유람선을 타는 것이 좋다. 약 40분간 태종대와 오륙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태종대에는 망부석이 서 있다. 왜구에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로 변한 여인 전설이다. 유람선은 주전자섬, 오륙도를 감상하고 갈매기와 함께 항구로 되돌아온다. 태종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오솔길 사스레피나무에 꽃이 피었다. 구수한 향기가 난다.부산 송도해수욕장에 출발하는 요트는 해운대와 광안대교 불꽃놀이 야경을 감상하는 요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지질학 여행이다. 송도 거북섬에서 출발한 요트는 용궁구름다리 쪽으로 향한다. 해안 절벽에는 짙은 보라색과 흰색 암반이 층층이 쌓여 있다. 팥과 찹쌀로 만든 시루떡 같기도 하고, 초코와 크림케익을 번갈아 쌓아 놓은 느낌도 든다. 해안 절벽을 보면서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시게 되다니! 검붉은 암반층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다. 화이트초콜릿 같이 보이는 층은 석회질 응집체라고 한다.해안 절벽에 세로로 길쭉하게 뚫린 해식 동굴 2곳이 보인다. 영락없는 콧구멍 모양이다. 다른 곳에는 용굴도 있다. 송도 거북섬에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용의 비늘로 덮인 인룡(人龍) 여인과 어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을 담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송도는 용의 기운이 가득한 바닷가다.부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부산 영도(影島)의 매력은 해운대의 깔끔한 바다가 아니라 일하는 항구의 생명력이다. 조선소와 낡은 보세창고, 거대한 컨테이너선박들과 크레인의 실루엣…. 쇠락한 항구의 섬 영도가 최근 감성 카페와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영도가 떠오름에 따라 부산 관광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시장 같은 대형 관광지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부산 원도심 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다.● ‘커피 산업 중심지’ 영도 조선소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전국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 1위는 부산 영도구 봉래동이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은 7만251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128% 급증했다. 조선소의 거친 철골과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 오래된 벽돌, 녹슨 파이프들이 있는 곳. 산업 미학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영도 조선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영도 여행 출발은 영도대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영도대교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도개교(跳開橋). 일제시대에 건설된 영도대교는 배가 지나갈 때마다 길이 31.3m, 무게 590t의 거대한 철교가 75도 각도로 들어 올려지는 진귀한 구경거리를 보여줬다. 요즘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15분간 다리가 올라가는 쇼가 펼쳐진다.영도대교 바로 앞 건물 2층에 있는 스타벅스 영도대교점에는 토요일마다 ‘성지순례객’들로 만석을 이룬다. 오후 2시 영도대교 사이렌이 울리면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 사진기를 켠다. 어린이들의 경탄, 젊은 연인들의 설렘, 그리고 노인들의 향수(鄕愁)가 뒤섞이는 시간이다. 영도에 사람이 몰려든 것은 6·25전쟁 때였다. 피란민들 최후의 안식처가 부산이었다. 당시 부산 인구는 16만 명에 불과했는데, 200만 가까운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영도대교 주변은 피란민 천막으로 뒤덮였다. 영도대교는 14대 대통령선거 당시 ‘초원복집 사건’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자”는 녹취 테이프 속 말은 정치인들이 부산의 지역감정을 자극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영도대교 바로 앞에 있는 라발스호텔 28층 스카이카페에 올라가면 넓은 통창을 통해 조선소와 영도대교, 부산항 풍경을 360도로 볼 수 있다. 스카이카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니 영도 조선소 도크에 배가 올라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아직도 영도 조선소는 운영되고 있구나! 영도대교에서 10여 분 걸어 ‘대한민국 수리 조선 1번지’로 불리는 대평동 ‘깡깡이 마을’에 도착했다. 늘 깡! 깡! 깡!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벽화가 그려진 골목길을 걷다가 문이 살짝 열린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 봤다. ‘칠성1호’라고 쓰여진 배가 눈 앞에 서 있다. 낯설지만 뭔가 신기하고 생생한 산업현장에 와 있는 듯하다. 영도는 운항 중인 중급 규모 선박들을 보수하는 조선업이 발달해 왔다. 1970∼80년대 붐을 이룬 원양어선은 5월 전후에 영도로 들어와 겨울 항해를 대비해 정비를 받았다. 선체에 붙은 조개껍데기와 해초, 녹을 제거하고 용접하고 엔진을 점검했다. ‘깡깡이 아지매’들 활약은 대단했다. 배의 녹이나 조개껍데기를 떨어내던 여성 노동자들이다. 대부분 6·25전쟁 피란민과 그 자녀들, 농어촌을 떠나 온 실향민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망치질을 했다. 조선업 침체에 따라 영도는 인구소멸 위기를 겪었다. 1978년 약 21만 명이던 인구는 2024년 10만여 명으로 줄었다. 청년은 떠났고 골목골목에는 셔터 내린 가게가 즐비했다. 2016년부터 마을 빈 공간을 예술작품으로 채우는 ‘깡깡이예술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키네틱아트와 벽화, 박물관, 마을카페 등이 생겨났다.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대평마을 대동대교맨션아파트 벽에 그려진 ‘우리 모두의 어머니’. 독일 예술가 헨드릭 바이키르가 2017년 크레인에 올라 그린 가로 13m, 높이 35m 초대형 벽화다. 고된 삶을 강인하게 살아 낸 깡깡이 아지매 초상화다. 밤이 되면 들어오는 조명을 받아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주름살 가득한 어머니 얼굴이 빛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대평마을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영도에는 큰 변화가 생겨났다. 폐조선소가 문화 공간이 되고, 낡은 공업소가 예술 무대로 재해석됐다. 관광객들은 이 ‘낡음’을 향유하기 시작했다. 봉래동 물양장 일대 보세창고는 220곳 카페로 채워졌다. 강원 강릉에 이어 부산이 커피 로스팅 중심지로 떠오른 이유는 뭘까. 국내 수입되는 커피 생두 90% 이상이 부산항을 통해 들어와서다. 에티오피아 산지, 콜롬비아 고산지대, 인도네시아 화산 지형에서 수확한 생두가 컨테이너에 실려 부산항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신선한 생두를 로스팅할 수 있는 영도에 커피 전문 카페가 밀집하게 됐다.실제로 봉래동 모모스 카페에 들어서면 거대한 로스팅머신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지 생두를 로스팅해 매일 다른 브랜드의 스페셜티커피를 큐레이션한다. 가장 인기있는 자리는 ‘조선소 뷰’ 자리다. 젊은 남녀들은 부산항 크레인과 중장비가 움직이는 풍경과 조선소 거친 기계음을 마주하며 커피를 마신다. 봉래산 중턱에 자리 잡은 미피카페도 부산 남항과 북항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 맛집이다. 1987년부터 신기산업의 방울 공장이던 이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다보이는 부산항 노을과 야경은 사진작가들도 찾아오게 만든다. 영도 동삼동 조선소 부지에 들어선 카페 피아크(P.ARK)는 거대한 크루즈선이나 항공모함을 연상케 한다. 카페 내부에는 바다 조망을 극대화하는 대규모 유리창과 계단형 좌석이 설치돼 있다. 부산항과 오륙도를 마주 보도록 설계된 시네마틱한 공간이다. 이곳 ‘영도 사골 뚝배기빵’은 유명하다.영도 바닷가 절벽 위 흰여울문화마을도 피란민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다. 푸른 바닷물이 일렁이는 비탈길로 좁은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 마을에서 노을을 바라보던 추억이 떠오르는 동네다. 절벽 위 흰 담장 마을 풍경에 외국인 관광객도 몰려든다. 영화 ‘변호인’ 국밥집 장면의 무대가 됐던 카페도 있다. 커피와 팥빙수를 시켜 놓고 건너편 송도해수욕장 너머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본다. 애잔한 향수와 그리움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바라본 태종대와 송도영도에서 커피를 마셨다면 유람선과 요트를 타고 영도의 진귀한 바위들을 구경할 차례다. 먼저 영도 끝자락 태종대다. 신라시대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통일을 마친 후 수려한 해안절경에 매료돼 활을 쏘며 즐겼던 곳이라고 한다.태종대는 걸어서 볼 수 있다. 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로 이어지는 2∼3시간 산책 코스다. ‘다누비 열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지질 명소로 불리는 태종대 절벽을 제대로 보려면 유람선을 타는 것이 좋다. 약 40분간 태종대와 오륙도를 한 바퀴 도는 코스다. 태종대에는 망부석이 서 있다. 왜구에 잡혀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로 변한 여인 전설이다. 유람선은 주전자섬, 오륙도를 감상하고 갈매기와 함께 항구로 되돌아온다. 태종대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오솔길 사스레피나무에 꽃이 피었다. 구수한 향기가 난다. 부산 송도해수욕장에 출발하는 요트는 해운대와 광안대교 불꽃놀이 야경을 감상하는 요트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지질학 여행이다. 송도 거북섬에서 출발한 요트는 용궁구름다리 쪽으로 향한다. 해안 절벽에는 짙은 보라색과 흰색 암반이 층층이 쌓여 있다. 팥과 찹쌀로 만든 시루떡 같기도 하고, 초코와 크림케익을 번갈아 쌓아 놓은 느낌도 든다. 해안 절벽을 보면서 “맛있겠다”며 입맛을 다시게 되다니! 검붉은 암반층에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다. 화이트초콜릿 같이 보이는 층은 석회질 응집체라고 한다. 해안 절벽에 세로로 길쭉하게 뚫린 해식 동굴 2곳이 보인다. 영락없는 콧구멍 모양이다. 다른 곳에는 용굴도 있다. 송도 거북섬에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용의 비늘로 덮인 인룡(人龍) 여인과 어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을 담은 동상이 세워져 있다. 송도는 용의 기운이 가득한 바닷가다.글·사진 부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남동발전이 국민권익위원회 주관 ‘2025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1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전국 709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평가에서 한국남동발전은 공직유관단체 중 최고 등급을 차지했다. 한국남동발전은 수년간 ‘국민과 구성원에게 신뢰받는 Fair & Clean KOEN’이라는 청렴 비전을 중심으로 조직 문화를 재설계해 왔다. 최고경영자(CEO)와 상임감사위원을 포함한 경영진이 솔선수범했고, 이것이 전 직원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한국남동발전은 ‘EthicGuard’라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전 직원이 참여하는 부패 예방 구조를 만들었다. 사전 진단부터 사후 점검까지 4단계 프로세스를 통해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거기에 국민권익위원회의 컴플라이언스 기준(K-CP)을 발전사 최초로 도입해 표준화된 윤리경영을 추진했다.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CEO 주관 청렴윤리 혁신회의’는 전사 화상 중계로 진행된다. 최고경영진이 직접 주도하는 이러한 소통이 조직 내에서 청렴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게 했다. 실질적으로도 계약제도 투명성 강화, 청렴직위 순환보직 확대 등 구체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다. 한국남동발전은 협력사와의 ‘찾아가는 간담회’, 구내식당에서의 수평적 소통,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 등을 통해 외부 이해관계자의 의견도 수렴했다. 이렇게 모인 의견들은 다시 정책으로 돌아왔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반부패·청렴 정책 추진 우수 사례’로 선정한 경우도 이 때문이다. 한국남동발전 관계자는 “지난해 종합청렴도 1등급 달성을 계기로 조직 내 청렴문화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미래세대 중심의 청렴정책을 확대하고 내부통제 기반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더욱 고도화 하여 윤리경영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킨다는 방침” 이라며,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신뢰받는 청렴 선도 공기업이 되고자 앞으로도 윤리경영을 적극 실천하겠다”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