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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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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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3-20~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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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얗게 부서지는 가루눈(粉雪)과 무빙(霧氷), 홋카이도의 겨울 풍경[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미치도록 눈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얀 눈 위로 벌러덩 누워서 팔다리를 휘젓고 싶을 때가 있다. 펑펑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걷고 싶을 때가 있다. 일본 홋카이도의 중심부 깊은 산속 마을 도마무에서 압도적인 설경을 만났다. 새하얀 가루눈(분설·粉雪)이 하늘하늘 흩날리는 숲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 홋카이도에 내리는 눈홋카이도에 내리는 눈은 ‘파우더 스노(powder snow)’다. 추운 날씨에 가루처럼 내리는 눈이다. 함박눈에 비해 미세한 얼음의 결정으로 돼 있으며,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한 지역에 내리는 눈이다. 습기가 없어 눈이 잘 뭉쳐지지 않고, 가루처럼 부서진다. 옷에 쌓여도, 머리카락에 쌓여도, 장갑에 묻어도 쉽사리 물이 되지 않는다. 스키장에 수북이 쌓인 ‘파우더 스노’는 드리프트를 할 때마다 모래처럼 부서지며 바람에 흩날린다. 호시노(星野) 리조트 토마무는 홋카이도 삿포로시에서 동쪽으로 차로 2시간 거리인 토마무 산 정상 근처에 있다. 홋카이도 호시노 리조트 도마무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여름에는 구름이 바다처럼 흘러가는 운해를 볼 수 있어 ‘운카이(운해·雲海) 테라스’, 겨울에는 상고대 설경이 아름다워 ‘무효(무빙·霧氷) 테라스’라고 불린다. 곤돌라를 13분 정도 타고 가면 해발 1088m에 위치한 운카이 테라스에 도착한다. 여름에 이른 아침 오전 4시 반∼8시에 테라스에서 구름바다를 만날 확률은 약 40%라고 한다. 곤돌라에서 내리니 하얀 눈꽃, 얼음꽃, 서리꽃이 핀 세상이다. 산 정상에 설치된 긴 테이블인 클라우드 바(Cloud Bar), 절벽에 세워진 현수교인 ‘클라우드 워크 (Cloud Walk)’에서는 공중산책을 하면서 눈 쌓인 세상을 바라보는 스릴을 느낄 수 있다. 계단을 타고 좀 더 산을 오르면 조개 모양의 작은 수영장인 ‘클라우드 풀(Cloud Pool)’이 있는데 크리스마스 장식이 돼 있어 가장 인기가 많다. 눈 속 산책을 마치면 무효 테라스에 있는 ‘구름(雲)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이곳에서 파는 ‘무효 커피’는 커피 위에 보석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실타래 장식이 올라가 있다. 얼음꽃(무빙)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아메자이쿠’(일본의 전통 설탕 디저트 공예)를 곁들인 커피다. 또한 얼음과 눈, 서리로 덮인 나무를 이미지화한 초콜릿, 구름 모양의 아이스크림, 하늘색 탄산음료 등 무효 테라스에 어울리는 색다른 음료가 눈길을 끈다. 무효 테라스는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의 스키 슬로프 중 가장 긴 코스(4.2km)가 시작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실버벨 코스에서 더 타워 부근의 초심자 코스까지 이어진다. 토마무에는 총 29개의 슬로프가 있는데 총길이가 21.5km, 슬로프 총면적 123.9ha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20여 년 만에 스키를 신어본 기자도 초급 코스에 올랐다. 홋카이도의 스키장은 파우더 스노가 슬로프에 푹신하게 깔려 있어 넘어져도 크게 안 다친다는 설명에 도전해 보았다. 평지에서 연습을 마친 후 리프트를 탔다. 초급 코스라고 하는데도 900m나 되는 슬로프를 한 번만 넘어지고 내려오는 데 성공! 발을 최대한 A자로 모으고 속도를 줄이면서 타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나 온몸에 힘을 주고 탔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장비를 벗고 1층 카페에서 슬로프를 바라보며 마시는 주스가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호시노 리조트 내의 니니누푸리 레스토랑에서도 인상적인 설경을 만날 수 있다. 아침 뷔페를 먹으러 간 식당 창밖으로 눈이 쌓인 키 큰 전나무 숲이 빙 둘러 있다. 바다 뷰, 호수 전망이 부럽지 않은 설경 숲 뷰 식당이다. 토마무에는 골프장을 없애고 지은 목장도 있다. 목장에서 키운 소의 우유를 아침식사로 제공하고, 치즈와 초콜릿을 만들기도 한다. 목장의 고즈넉한 눈 풍경은 겨울철 액티비티 장소로도 그만이다. 스노모빌이나 버기카를 타고 눈밭을 달리다 보면 하얀 세상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잠시 탈것에서 내려 두껍게 쌓인 파우더 스노 위로 풍덩하고 몸을 던진다. 멜로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낭만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 물의 교회와 아이스빌리지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는 빛과 바람, 물과 같은 자연을 그대로 살린 종교 건축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만든 종교 건축으로는 오사카에 있는 ‘빛의 교회’와 함께 도마무에 있는 ‘물의 교회(Chapel on the Water)’가 있다. 또한 홋카이도 붓다의 언덕에 콘크리트로 만든 ‘두대불전(頭大佛殿)’을 짓기도 했다. 1988년 지어진 ‘물의 교회’는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 안에 있는데 매일 오후 8시 반에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눈이 수북이 쌓여 있지만, 주변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물의 교회는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쪽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들어가도록 돼 있다. 물이 소용돌이치면서 흘러가는 것처럼 사방이 십자가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는 연못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물의 교회’에 접근하도록 한 설계다. 계단을 통해 내려오니 물의 교회 내부로 입장하게 된다. 정면에는 대형 유리창이 있고, 창틀이 십자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창밖에는 계곡물을 끌어다가 만든 인공연못이 있고, 그 위에 또 철제 십자가가 서 있다. 추운 겨울이라 연못의 물은 얼어붙었고, 눈이 쌓여 있었다. 창틀의 십자가와 창밖 연못 위에 세워진 십자가가 2중으로 보이다가, 어느 한 지점에 서면 정확히 겹쳐서 하나가 된다. 저 멀리 하늘과 자연, 우주에 있는 신(神)과 내 안에 존재하는 십자가가 하나임을 명상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십자가 뒤편으로는 까만 밤하늘과 함께 키 큰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 위로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실내 조명을 끄니, 창밖으로 펼쳐지는 십자가와 숲의 풍경이 또렷이 살아난다. 순간적으로 ‘헉!’ 하는 감탄사가 나지막이 흘러나온다. 소름이 끼치는 적막 속에서 너무나 신성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건축과 빛만으로 이런 효과를 낼 수 있다니…. 일본인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서 건강하라고 소원을 빌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고, 장례식은 절에서 한다고 한다. ‘물의 교회’도 결혼식 장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물의 교회’를 보고 난 후 계곡에 놓인 작은 다리를 넘어가면 아이스 빌리지에 갈 수 있다. 아이스 빌리지에는 얼음으로 지어진 돔들이 있는데, 얼음으로 만든 ‘아이스 샤펠(Ice Chapel)’도 세워진다. 1, 2월에는 얼음 교회에서도 웨딩이 이뤄진다. 아이스 빌리지에서는 얼음 그릇에 꽁꽁 얼린 ‘아이스 라멘’(1500엔)을 파는 라멘 식당이 있고, 엽서(200엔)를 써서 얼음 우체통에 넣으면 해외로도 배송해 주는 우체국도 있다. 숯불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 체험도 할 수 있어 겨울밤을 즐기는 가족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도마무(홋카이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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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글진흥원 공공문장 바로 쓰기 대상에 전성수 서초구청장 등 선정

    우리글진흥원(원장 손수호)은 19일 ‘2023년 공공문장 바로 쓰기 자치단체장’ 대상 수상자로 전성수 서초구청장(안내문 부문)을 비롯해 박종우 거제시장(관광 부문), 정명근 화성시장(교육 부문), 유성훈 금천구청장(문화 부문) 주광덕 남양주시장(소통 부문)을 선정했다. 이 상은 바르고 쉬운 공공문장을 일선 행정에 구현한 자치단체장을 응원하기 위해 공익법인 우리글진흥원이 2013년 제정해 매년 시상해 왔다. 이들은 시민이 읽는 각종 안내문 등을 알기 쉽고 정확한 글로 선보이고 공직자 국어 능력 향상에 애쓰는 등 공공문장 바로 쓰기에 모범을 보인 공적을 인정받았다.우리글진흥원은 이와 함께 올해 공공문장 바로 쓰기 시민운동 대상 수상자로 임채연 씨(22․명지대 국어국문학과 3년)을 선정했다. 임 씨는 공공기관에서 잘못 쓴 공공문장을 지난 1년간 52회에 걸쳐 바로잡았다. ‘이순신 장군’을 ‘이순신 장국’으로 적은 남해군 관광안내지도를 비롯해 혹한기를 혹서기로 표현한 전주마실길 안내도, 극락보전을 극락보존으로 잘못 적은 경기도 관광가이드북, 동절기를 동정기로 쓴 안동시 관광안내도 등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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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엄산 제임스터렐관[바람개비]

    강원 원주 뮤지엄산(SAN)에 있는 제임스터렐관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본관 건물 뒤편에 있다. 첫 번째 방 ‘스카이 스페이스(Skyspace)’에는 천장에 타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을 통과한 빛이 타원형으로 된 흰색 방의 벽에 비추니 햇빛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원을 만들어낸다. 하늘로 오르는 계단, 어둠 속에 비치는 빛, 깊이를 알 수 없는 창공과 같은 빛의 세계다. 하루 종일 앉아서 명상을 하고 싶은 비어 있는 공간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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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고단에서 만난 순백의 세상 [전승훈의 아트로드]

    12월의 지리산은 적막하지만 반전의 매력을 갖고 있다. 화려함을 벗어던진 숲속. ‘음(陰)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정상에서 만나는 순백의 세상은 놀라움과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을 때, 지리산 노고단과 둘레길을 걸어보자. ◆노고단에서 만난 하얀 세상지난주 지리산 노고단(1507m)에 올라 새하얀 상고대의 세상을 만났다. 12월 초에 노고단 정상부 전체에 하얀 눈꽃 세상이 펼쳐진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상고대는 습도와 기온, 바람이 만들어 내는 예술 작품이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공기 중 수증기가 얼어붙어 서리꽃, 얼음꽃이 피어난다. 여기에 눈가루가 바람에 날려 붙으면 점점 두꺼운 상고대로 발달한다. 차가운 바람의 결이 만들어낸 상고대의 얼음은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새우의 꼬리처럼 물결을 치기도 한다.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등산길은 하얀 눈으로 낭만적인 모습이었는데, 노고단 정상 부근에 오르니 칼바람이 쌩쌩 분다. 노고단 정상에 세워져 있는 원추형 돌탑도 서리꽃이 피어서 하얗게 됐다. 노고단은 지리산 3대 주봉 중의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노고봉이 아니라 ‘노고단(老姑壇)’이라고 불린다. 지리산을 수호하는 성모신인 ‘노고(老姑) 할미’에게 제사를 지내는 터였기 때문이다. 제주 한라산에도 세상을 만든 ‘마고 할미’의 신화가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1925년부터 노고단에 외국인 선교사들의 휴양지 56동이 건설되면서 국립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성삼재 관광도로가 개통되면서 노고단 대피소는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쉼터가 됐다. 결국 노고단은 1991년부터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해 생태를 복원하기 시작했고, 현재 하루 1870명만 예약을 받아서 탐방이 가능하다.지난 2년간 문을 닫고 보수공사를 했던 노고단 대피소가 17일 새롭게 개장한다. 리모델링을 끝낸 노고단 대피소에 가보니 노고단의 상징인 지리산 노고 할미의 목조 조각상이 반갑게 등산객을 맞는다.노고단 대피소의 가장 큰 변화는 침실이다. 원래 100여 명이 침낭을 이용해 잠을 잘 수 있는 침상형 숙소였는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방을 36개(반야봉실 20명, 노고단실 16명) 만들고 1인용 캡슐호텔 형태로 바꿨다. 2층 구조로 된 침실의 각 방에서는 개별 창문으로 환기가 가능하고, 개별 난방을 통해 온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특히 새로 단장한 노고단 대피소는 국립공원공단 대피소 가운데 최초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춰 눈길을 끈다. 장애인도 지리산 노고단에서 운해(구름바다)와 일출을 보는 인생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시설이다. 대피소 1층에 장애인이 보호자와 함께 최대 4명이 잠을 잘 수 있도록 이동형 침대와 장애인용 화장실을 갖췄다. 장애인들은 성삼재까지 차량으로 온 후에 노고단까지 2.6km 구간을 보호자와 함께 휠체어로 등산을 하게 된다. 비교적 길이 잘 닦여 있기 때문에 산악용 장애인 휠체어를 활용하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동지는 새해의 출발12월. 노고단은 상고대가 활짝 피었지만, 초겨울 지리산의 숲속은 적막하다. 지난봄 돋아났던 신록, 한여름에 피었던 야생화, 불타오르던 단풍도 다 떨어지고 옷을 다 벗어던진 숲은 실체를 드러낸다. 나목(裸木)은 적나라한 라인을 뽐내고, 물이 말라붙은 계곡에서는 바위들이 온전한 모양새를 보여준다.​“지금은 음의 기운이 가장 센 시기입니다. 그래서 꽃이나 풀도 찾아서 설명해 드릴 것이 없네요. 12월 22일 동지까지 밤이 가장 길어지고, 깊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에요.” 전남 구례에 있는 지리산 천은사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국립공원 해설사가 초겨울 숲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2월 초는 산에서 음의 기운이 가장 만연한 때라는 것. 생명이 움트는 양의 기운은 찾아볼 수 없고, 자연은 깊이깊이 음의 세계로 침잠해 간다. 12월 22일 동짓날까지 낮은 계속 짧아지고, 밤은 계속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동짓날 연중 밤이 가장 길어 음의 기운이 최고조에 이른날, 천지는 딸깍하고 양의 기운으로 바뀌게 된다. 마이너스(―)로 기울던 세상이, 다시 플러스(+)로 방향이 바뀌면서 낮이 길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민속에서는 동짓날을 새해의 첫날로 보기도 한다. 새해의 시작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로 양기가 가장 센 붉은색 팥죽을 먹는 것이다.지리산 구례 천은사와 경남 하동 쌍계사 둘레길을 걸으면서 ‘음의 기운’을 느껴보는 숲속 여행도 무척 좋았다. 초겨울 숲의 황량함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움을 느낀다.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에 서로 앞다퉈 피어나는 꽃과 잎들이 서로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숲과 달리 고요한 숲속에서 비로소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지리산 천은사는 일주문에 쓰여진 현판 글씨만으로도 멋진 절이다. ‘천은사(泉隱寺)’는 샘물을 숨기고 있는 절이라는 뜻. 원래 이 절의 이름은 감로사였는데 맑은 샘물에 살고 있던 구렁이를 죽인 후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원교가 물이 흐르듯 구불구불한 글씨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현판을 써준 이후로는 재앙이 그쳤다고 한다.천은사가 유명해진 계기는 지난해 방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이다. 제주도 한백산에 있는 사찰 황지사가 도로 통행자들에게 문화재 관람료 3000원을 걷어 통행객들이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낸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였다. 황지사 측은 문화재법에 따른 합법 징수라고 주장했지만, 우영우 변호사(박은빈)는 지방도로가 행정 목적으로 만든 ‘공물’이라고 맞서 최종 승소하는 스토리였다.황지사의 실제 모델이 지리산 천은사이다. 실제로 천은사 주변의 지방도로 861호선은 지리산을 남북으로 관통했는데, 이곳에 매표소가 있었다고 한다. 1987년부터 32년간 이어온 입장료 징수 갈등은 천은사 측과 환경부, 문화재청, 국립공원공단, 한국농어촌공사, 전남도, 구례군 등 관계기관 간 2년의 소통 끝에 2019년 4월 매표소를 철거하면서 풀리게 됐다.입장료가 폐지된 이후 대신 ‘천은사 상생의 길’이 만들어졌다. 청류계곡에서 흘러든 맑은 물을 저장한 천은저수지의 둘레를 따라 소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총 3.3km의 순환형 탐방로다. 겨울철 저수지에는 철새들이 날아오고, 가끔씩 수달이 나타나기도 한다.겨울에 걷기 좋은 지리산 둘레길 중에는 쌍계사 불일폭포를 찾아가는 길이 있다. 쌍계사는 신라 말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가람(伽藍·사찰) 구조가 호리병과 닮았다며 ‘호리병 속 별천지(壺中別有天)’로 묘사한 절이다. 차의 시배지로도 유명한 쌍계사 뒤편 숲속 길을 쉬엄쉬엄 걸은 지 2시간여.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로 떨어지는 높이 약 60m의 불일폭포에 도착한다. 불일폭포는 고려시대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수도하며 머문 곳이다. 고려 제21대 왕 희종이 지눌 스님에게 ‘불일보조(佛日普照)’라는 시호를 내려 불일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불일폭포 근처에는 지눌 스님이 머물렀다는 자그마한 암자도 있다. 불일암의 양지바른 곳에 평소 주지스님이 쉬실 때 앉아 있을 법한 허름한 나무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한번 앉아 보니 그 자리가 명당이었다.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지리산의 산세가 한눈에 펼쳐졌다.지리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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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고단에서 만난 순백의 세상… 음(陰)의 숲으로 초대[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12월의 지리산은 적막하지만 반전의 매력을 갖고 있다. 화려함을 벗어던진 숲속. ‘음(陰)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그리고 정상에서 만나는 순백의 세상은 놀라움과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을 때, 지리산 노고단과 둘레길을 걸어보자. ● 노고단에서 만난 하얀 세상지난주 지리산 노고단(해발 1507m)에 올라 새하얀 상고대의 세상을 만났다. 12월 초에 노고단 정상부 전체에 하얀 눈꽃 세상이 펼쳐진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상고대는 습도와 기온, 바람이 만들어 내는 예술 작품이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공기 중 수증기가 얼어붙어 서리꽃, 얼음꽃이 피어난다. 여기에 눈가루가 바람에 날려 붙으면 점점 두꺼운 상고대로 발달한다. 차가운 바람의 결이 만들어낸 상고대의 얼음은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새우의 꼬리처럼 물결을 치기도 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등산길은 하얀 눈으로 낭만적인 모습이었는데, 노고단 정상 부근에 오르니 칼바람이 쌩쌩 분다. 노고단 정상에 세워져 있는 원추형 돌탑도 서리꽃이 피어서 하얗게 됐다. 노고단은 지리산 3대 주봉 중의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노고봉이 아니라 ‘노고단(老姑壇)’이라고 불린다. 지리산을 수호하는 성모신인 ‘노고(老姑) 할미’에게 제사를 지내는 터였기 때문이다. 제주 한라산에도 세상을 만든 ‘마고 할미’의 신화가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은 1925년부터 노고단에 외국인 선교사들의 휴양지 56동이 건설되면서 국립공원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성삼재 관광도로가 개통되면서 노고단 대피소는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쉼터가 됐다. 결국 노고단은 1991년부터 자연휴식년제를 적용해 생태를 복원하기 시작했고, 현재 하루 1870명만 예약을 받아서 탐방이 가능하다. 지난 2년간 문을 닫고 보수공사를 했던 노고단 대피소가 17일 새롭게 개장한다. 리모델링을 끝낸 노고단 대피소에 가보니 노고단의 상징인 지리산 노고 할미의 목조 조각상이 반갑게 등산객을 맞는다. 노고단 대피소의 가장 큰 변화는 침실이다. 원래 100여 명이 침낭을 이용해 잠을 잘 수 있는 침상형 숙소였는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방을 36개(반야봉실 20명, 노고단실 16명) 만들고 1인용 캡슐호텔 형태로 바꿨다. 2층 구조로 된 침실의 각 방에서는 개별 창문으로 환기가 가능하고, 개별 난방을 통해 온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특히 새로 단장한 노고단 대피소는 국립공원공단 대피소 가운데 최초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춰 눈길을 끈다. 장애인도 지리산 노고단에서 운해(구름바다)와 일출을 보는 인생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시설이다. 대피소 1층에 장애인이 보호자와 함께 최대 4명이 잠을 잘 수 있도록 이동형 침대와 장애인용 화장실을 갖췄다. 장애인들은 성삼재까지 차량으로 온 후에 노고단까지 2.6km 구간을 보호자와 함께 휠체어로 등산을 하게 된다. 비교적 길이 잘 닦여 있기 때문에 산악용 장애인 휠체어를 활용하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고 한다.● 동지는 새해의 출발12월. 노고단은 상고대가 활짝 피었지만, 초겨울 지리산의 숲속은 적막하다. 지난봄 돋아났던 신록, 한여름에 피었던 야생화, 불타오르던 단풍도 다 떨어지고 옷을 다 벗어던진 숲은 실체를 드러낸다. 나목(裸木)은 적나라한 라인을 뽐내고, 물이 말라붙은 계곡에서는 바위들이 온전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지금은 음의 기운이 가장 센 시기입니다. 그래서 꽃이나 풀도 찾아서 설명해 드릴 것이 없네요. 12월 22일 동지까지 밤이 가장 길어지고, 깊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에요.” 전남 구례에 있는 지리산 천은사 둘레길을 걷고 있는데, 국립공원 해설사가 초겨울 숲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2월 초는 산에서 음의 기운이 가장 만연한 때라는 것. 생명이 움트는 양의 기운은 찾아볼 수 없고, 자연은 깊이깊이 음의 세계로 침잠해 간다. 12월 22일 동짓날까지 낮은 계속 짧아지고, 밤은 계속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동짓날 연중 밤이 가장 길어 음의 기운이 최고조에 이른날, 천지는 딸깍하고 양의 기운으로 바뀌게 된다. 마이너스(―)로 기울던 세상이, 다시 플러스(+)로 방향이 바뀌면서 낮이 길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민속에서는 동짓날을 새해의 첫날로 보기도 한다. 새해의 시작에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로 양기가 가장 센 붉은색 팥죽을 먹는 것이다. 지리산 구례 천은사와 경남 하동 쌍계사 둘레길을 걸으면서 ‘음의 기운’을 느껴보는 숲속 여행도 무척 좋았다. 초겨울 숲의 황량함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화로움을 느낀다. 만물이 생동하는 시기에 앞다퉈 피어나는 꽃과 잎들이 서로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숲과 달리 고요한 숲속에서 비로소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리산 천은사는 일주문에 쓰인 현판 글씨만으로도 멋진 절이다. ‘천은사(泉隱寺)’는 샘물을 숨기고 있는 절이라는 뜻. 원래 이 절의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는데 개축하면서 샘물에 살고 있던 구렁이를 죽인 후 도량에 화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원교 이광사가 물이 흐르듯 구불구불한 글씨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현판을 써준 이후로는 재앙이 그쳤다고 한다. 이곳이 유명해진 계기는 지난해 방영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이다. 제주도 한백산에 있는 사찰 황지사가 도로 통행자들에게 문화재 관람료 3000원을 걷어 통행객들이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낸 사건을 해결하는 에피소드였다. 황지사 측은 문화재법에 따른 합법 징수라고 주장했지만, 우영우 변호사(박은빈)는 지방도로가 행정 목적으로 만든 ‘공물’이라고 맞서 최종 승소하는 스토리였다. 황지사의 실제 모델이 지리산 천은사이다. 실제로 천은사 주변의 지방도로 861호선은 지리산을 남북으로 관통했는데, 이곳에 매표소가 있었다고 한다. 1987년부터 32년간 이어온 입장료 징수 갈등은 천은사 측과 환경부, 문화재청, 국립공원공단, 한국농어촌공사, 전남도, 구례군 등 관계기관 간 2년의 소통 끝에 2019년 4월 매표소를 철거하면서 풀리게 됐다. 입장료가 폐지된 이후 대신 ‘천은사 상생의 길’이 만들어졌다. 청류계곡에서 흘러든 맑은 물을 저장한 천은저수지의 둘레를 따라 소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총 3.3km의 순환형 탐방로다. 겨울철 저수지에는 철새들이 날아오고, 가끔씩 수달이 나타나기도 한다. 겨울에 걷기 좋은 지리산 둘레길 중에는 쌍계사 불일폭포를 찾아가는 길이 있다. 쌍계사는 신라 말 대학자인 고운 최치원이 가람(伽藍·사찰) 구조가 호리병과 닮았다며 ‘호리병 속 별천지(壺中別有天)’로 묘사한 절이다. 차의 시배지로도 유명한 쌍계사 뒤편 숲속 길을 쉬엄쉬엄 걸은 지 2시간여.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로 떨어지는 높이 약 60m의 불일폭포에 도착한다. 불일폭포는 고려시대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수도하며 머문 곳이다. 고려 제21대 왕 희종이 지눌 스님에게 ‘불일보조(佛日普照)’라는 시호를 내려 불일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불일폭포 근처에는 지눌 스님이 머물렀다는 자그마한 암자도 있다. 불일암의 양지바른 곳에 평소 주지스님이 쉬실 때 앉아 있을 법한 허름한 나무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한번 앉아 보니 그 자리가 명당이었다.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지리산의 산세가 한눈에 펼쳐졌다.지리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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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주한 스위스대사관 빗물받이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 있는 주한 스위스대사관의 중정은 한옥의 마당과 유럽 도시 광장을 융합해 지었다. 그런데 지붕 처마에서 바닥까지 이어진 쇠사슬이 눈길을 끈다. 스위스 출신 예술가 레나 마리아 튀링의 설치미술 ‘워터커넥션’이다. 사슬 끝에는 스위스에서 가져온 세 개의 돌이 있고, 바닥에는 음각으로 구불구불하게 수로가 파여 있다. 비가 올 때 쇠사슬을 타고 지붕의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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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해 같은 푸른 물빛, 동백이는 수줍게 피어[전승훈의 아트로드]

    충남 보령에서 원산도를 잇는 해저터널이 2021년에 개통된 이후로 서해안 섬 여행이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2019년 안면도 영목항과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 개통과 함께 서해안 드라이브 여행 코스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해안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보령~원산도~안면도 여행을 떠나보자.●지중해처럼 푸른 물빛, 충청수영성“동백 씨, 거기 있시유?”몇 년 전 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온 용식(강하늘)의 충청도 사투리는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주요 촬영지는 포항 구룡포 마을이었다. 용식은 분명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데 왜 포항에서 찍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웅포’의 옅은 푸른색 바다는 분명 서해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강하늘과 공효진(동백)이 성벽 위 같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붉은 노을에 물든 바다는 충남 서산이나 대천 그 어디쯤인 듯 보였다. 그런데 보령에 갔다가 바로 그 장소를 찾아냈다. 보령 오천항을 내려다보고 있는 충청수영성이다. 주꾸미 낚시로 유명한 오천항은 백제시대 회이포로 불리며 당나라와의 교역에 교두보 역할을 했다. 조선 세조 12년(1466년)에는 왜적의 침입을 막고, 세곡 수송 안전을 위해 수영(水營)을 세웠다. 충청수영성은 서해안의 수군사령부로 군선 140여 척에 840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해군을 통괄하던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을 총지휘했다. 우리나라에는 5개 수군영이 있었는데 전라좌·우수영, 경상좌·우수영, 충청수영이었다. 5개 수군영 중에서 현재 제일 잘 보존돼 있는 곳이 바로 충청수영성이다. 충청수영성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르면 돌로 쌓은 성에 아치형 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성문 주변에는 11월인데도 놀랍게 동백꽃이 피어 있다. 동백꽃은 내륙 지방에서는 2월이 돼야 피어나지만, 제주를 비롯해 남해안 서해안 등 바닷가에서는 좀 더 일찍 핀다고 한다. 심지어 벌써 시들어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도 있다. 충청수영성의 가장 높은 곳에는 영보정이 있다. 다산 정약용, 백사 이항복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조선 최고의 절경으로 극찬한 정자다. 영보정에서 내려다본 탁 트인 바다 풍경은 유럽의 지중해 부럽지 않다. 천혜의 방파제 같은 섬들로 둘러싸인 오천항은 터키석 같은 스카이블루빛 바다에 배들이 점점이 떠 있는 모습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보령에서는 죽도 상화원(尙和園)도 해송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죽도는 원래는 육지에서 4.5km 떨어진 섬이었는데, 간척사업으로 방조제가 놓여 육지가 된 섬이다.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나무 덱길이 있어서 비가 와도, 햇빛이 쨍쨍 내리쬐도 걸을 수 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해송숲 회랑길을 걸으며 조각 작품을 감상하고, 숲속의 카페에서 차도 마실 수 있다. 상화원 입장료(7000원)를 내면 이 해송숲 카페에서 커피와 차, 떡을 무료로 제공해준다. 상화원은 겨울철에는 문을 닫았다가, 내년 4월 봄에 다시 개장할 예정이다. ●해저터널 넘어 원산도로보령에 왔다면 대천항에서 해저터널을 통과해 원산도를 둘러보고, 내친김에 태안반도 안면도까지 드라이브를 즐겨볼 만하다. 보령해저터널은 대천항에서 원산도까지 6.9km 구간이다. 국내 최장, 세계에서 5번째로 긴 해저터널이다. 그런데 바닷속을 달린다는 기대와 달리 육지와 똑같은 회색빛 터널은 지루함만 안겨주었었다. 그러다 올해 7월부터 보령해저터널 천장에 바닷속 풍경을 담은 미디어 파사드 조명이 설치돼 달리는 내내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있다. 거대한 고래가 천장에서 헤엄을 치고,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서해의 노을이 펼쳐진다. 원산도의 최고봉은 오로봉(117m)이다.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설치된 곳으로, 바다에 일어나는 일을 조정에 알리는 봉화를 올렸던 산이다. 오로봉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지만, 요즘 뜨고 있는 해변 카페에 가보는 것도 원산도 여행의 별미다. ‘바이 더 오(By the O)’는 카페의 삼면이 대형 유리창으로 돼 있어 시원한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카페가 입소문이 나게 된 것은 루프톱에 있는 ‘O’ 모양의 그네다. 안면도 영목항과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1.75km)가 바라보이는 그네를 타고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다. 자세히 보니 나이 든 사람들은 얼굴 정면 사진을 찍는데, MZ세대는 그네를 탄 뒷모습을 찍는 것이 흥미롭다. ●안면도 영목항 전망대와 바다유리태안반도의 안면도는 세로로 긴 섬이다. 원산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영목항을 만난다. 안면도 최남단에 있는 영목항은 ‘안면도의 땅끝마을’로 불렸던 곳이다. 영목항은 보령과 원산도, 태안반도가 이어지는 충남 서해안 드라이브 여행의 중심 연결고리가 되는 항구다. 안면도 영목항에는 올해 6월 전망대가 세워졌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높이 솟아 있는 전망대 모습에 이끌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노을 진 바닷가에 물이 빠진 갯벌이 넓게 드러나 있었다. 하늘에 짙게 깔린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빔을 쏘듯 쏟아져 내렸다. 마치 하늘에서 성령이 강림할 것 같은 장엄한 모습이었다. 영목항 전망대는 내년 1월 말까지 개관 기념으로 무료입장이다. 로비 한구석에 바다유리(Sea Glass)를 활용한 공예품 숍이 눈길을 끈다. 바다유리는 연초록빛부터 에메랄드빛, 짙은 초록색, 하늘빛이 나는 유리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공예품이다. 유리 조각인데도 끝부분이 날카롭지 않으면서 뭉글뭉글하고, 유리 조각들은 불투명하면서도 은은한 빛을 통과하고 있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유리공예여야 하지만, 시 글라스는 뭔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마치 터키석이나 호박, 진주처럼 원석의 고상함이 느껴진다고 하면 과장일까. 충남 태안군 고남면 장삼포에 작업실을 갖고 있는 바다유리 공예가 김은수 씨는 “시 글라스는 바닷물 속에서 30년 이상 파도에 휩쓸리면서 표면이 갈리고, 끝이 뭉글뭉글해진 보석“이라며 “태풍이 불고 난 뒤 바닷물이 크게 한 번 뒤집어졌을 때 해변에 가면 많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바다유리는 바로 30여 년 전 사람들이 마신 소줏병과 사이다병들이었던 것이다. 깨진 병 조각들이 파도와 모래에 쓸려 닳고 닳아서 새로운 보석으로 탄생한 것이다. 아름다운 공예품을 보면서 바다 환경을 되돌이켜 보게 만드는 예술 작품이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니 22층 전망대까지 직행한다. 전망대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우와!” 하는 감탄사를 내뿜게 된다. 360도 방향으로 섬과 바다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해의 낙조와 섬, 원산안면대교의 위용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배들과 논과 밭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뉘엿뉘엿 지는 태양의 각도가 달라질 때마다, 바람에 구름이 흩어질 때마다, 반짝이는 윤슬은 먼바다로 갔다가 가까이 다가왔다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창문에 쓰인 글귀는 여행자의 ‘갬성’을 자극한다. ‘여기에 오길 참 잘했다’ ‘오늘 참 예쁘다. 그대’ ‘사랑하는 우리 가족 행복하자’…. 간절한 소망과 서로를 칭찬하는 문구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안면도 드라이브 여행은 자연휴양림에서 마무리하면 좋다.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쭉쭉 뻗은 안면송 숲의 상쾌한 솔향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준다. 보령=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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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해 뺨치는 푸른 물빛… 동백이는 수줍게 피어[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충남 보령에서 원산도를 잇는 해저터널이 2021년에 개통된 이후로 서해안 섬 여행이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2019년 안면도 영목항과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 개통과 함께 서해안 드라이브 여행 코스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해안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보령∼원산도∼안면도 여행을 떠나보자.● 지중해처럼 푸른 물빛, 충청수영성“동백 씨, 거기 있시유?” 몇 년 전 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나온 용식(강하늘)의 충청도 사투리는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주요 촬영지는 경북 포항 구룡포 마을이었다. 용식은 분명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데 왜 포항에서 찍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배경으로 나오는 ‘웅포’의 옅은 푸른색 바다는 분명 서해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강하늘과 공효진(동백)이 성벽 위 같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붉은 노을에 물든 바다는 충남 서산이나 대천 그 어디쯤인 듯 보였다. 그런데 보령에 갔다가 바로 그 장소를 찾아냈다. 보령 오천항을 내려다보고 있는 충청수영성이다. 주꾸미 낚시로 유명한 오천항은 백제시대 회이포로 불리며 당나라와의 교역에 교두보 역할을 했다. 조선 세조 12년(1466년)에는 왜적의 침입을 막고, 세곡 수송 안전을 지키기 위해 수영(水營)을 세웠다. 충청수영성은 서해안의 수군사령부로 군선 140여 척에 8400여 명의 병력이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해군을 통괄하던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을 총지휘했다. 우리나라에는 5개 수군영이 있었는데 전라좌·우수영, 경상좌·우수영, 충청수영이었다. 5개 수군영 중에서 현재 제일 잘 보존돼 있는 곳이 바로 충청수영성이다. 충청수영성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르면 돌로 쌓은 성에 아치형 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성문 주변에는 11월인데도 놀랍게 동백꽃이 피어 있다. 동백꽃은 내륙 지방에서는 2월이 돼야 피어나지만, 제주를 비롯해 남해안 서해안 등 바닷가에서는 좀 더 일찍 핀다고 한다. 심지어 벌써 시들어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도 있다. 충청수영성의 가장 높은 곳에는 영보정이 있다. 다산 정약용, 백사 이항복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조선 최고의 절경으로 극찬한 정자다. 영보정에서 내려다본 탁 트인 바다 풍경은 유럽의 지중해 부럽지 않다. 천혜의 방파제 같은 섬들로 둘러싸인 오천항은 터키석 같은 스카이블루빛 바다에 배들이 점점이 떠 있는 모습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보령에서는 죽도 상화원(尙和園)도 해송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죽도는 원래는 육지에서 4.5km 떨어진 섬이었는데, 간척사업으로 방조제가 놓여 육지가 된 섬이다.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나무 덱길이 있어서 비가 와도, 햇빛이 쨍쨍 내리쬐도 걸을 수 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해송숲 회랑길을 걸으며 조각 작품을 감상하고, 숲속의 카페에서 차도 마실 수 있다. 상화원 입장료(7000원)를 내면 이 해송숲 카페에서 커피와 차, 떡을 무료로 제공해준다. 상화원은 겨울철에는 문을 닫았다가, 내년 4월 봄에 다시 개장할 예정이다. ● 해저터널 넘어 원산도로보령에 왔다면 대천항에서 해저터널을 통과해 원산도를 둘러보고, 내친김에 태안반도 안면도까지 드라이브를 즐겨볼 만하다. 보령해저터널은 대천항에서 원산도까지 6.9km 구간이다. 국내 최장, 세계에서 5번째로 긴 해저터널이다. 그런데 바닷속을 달린다는 기대와 달리 육지와 똑같은 회색빛 터널은 지루함만 안겨주었었다. 그러다 올해 7월부터 보령해저터널 천장에 바닷속 풍경을 담은 미디어 파사드 조명이 설치돼 달리는 내내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있다. 거대한 고래가 천장에서 헤엄을 치고,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서해의 노을이 펼쳐진다. 원산도의 최고봉은 오로봉(117m)이다.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설치된 곳으로,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정에 알리는 봉화를 올렸던 산이다. 오로봉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지만, 요즘 뜨고 있는 해변 카페에 가보는 것도 원산도 여행의 별미다. ‘바이 더 오(By the O)’는 카페의 삼면이 대형 유리창으로 돼 있어 시원한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카페가 입소문이 나게 된 것은 루프톱에 있는 ‘O’ 모양의 그네다. 안면도 영목항과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1.75km)가 바라보이는 그네를 타고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다. 자세히 보니 나이 든 사람들은 얼굴 정면 사진을 찍는데, MZ세대는 그네를 탄 뒷모습을 찍는 것이 흥미롭다. ● 안면도 영목항 전망대와 바다유리태안반도의 안면도는 세로로 긴 섬이다. 원산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영목항을 만난다. 안면도 최남단에 있는 영목항은 ‘안면도의 땅끝마을’로 불렸던 곳이다. 영목항은 보령과 원산도, 태안반도가 이어지는 충남 서해안 드라이브 여행의 중심 연결고리가 되는 항구다. 안면도 영목항에는 올해 6월 전망대가 세워졌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높이 솟아 있는 전망대 모습에 이끌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노을 진 바닷가에 물이 빠진 갯벌이 넓게 드러나 있었다. 하늘에 짙게 깔린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빔을 쏘듯 쏟아져 내렸다. 마치 하늘에서 성령이 강림할 것 같은 장엄한 모습이었다. 영목항 전망대는 내년 1월 말까지 개관 기념으로 무료입장이다. 로비 한구석에 바다유리(Sea Glass)를 활용한 공예품 숍이 눈길을 끈다. 바다유리는 연초록빛부터 에메랄드빛, 짙은 초록색, 하늘빛이 나는 유리 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공예품이다. 유리 조각인데도 끝부분이 날카롭지 않으면서 뭉글뭉글하고, 불투명하면서도 은은한 빛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유리 공예여야 하지만, 시 글라스는 뭔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마치 터키석이나 호박, 진주처럼 원석의 고상함이 느껴진다고 하면 과장일까. 충남 태안군 고남면 장삼포에 작업실을 갖고 있는 바다유리 공예가 김은수 씨는 “시 글라스는 바닷물 속에서 30년 이상 파도에 휩쓸리면서 표면이 갈리고, 끝이 뭉글뭉글해진 보석”이라며 “태풍이 불고 난 뒤 바닷물이 크게 한 번 뒤집어졌을 때 해변에 가면 많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바다유리는 바로 30여 년 전 사람들이 마신 소줏병과 사이다병들이었던 것이다. 깨진 병 조각들이 파도와 모래에 쓸려 닳고 닳아서 새로운 보석으로 탄생한 것이다. 아름다운 공예품을 보면서 바다 환경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예술 작품이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니 22층 전망대까지 직행한다. 전망대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우와!” 하는 감탄사를 내뿜게 된다. 360도 방향으로 섬과 바다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해의 낙조와 섬, 원산안면대교의 위용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배들과 논과 밭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뉘엿뉘엿 지는 태양의 각도가 달라질 때마다, 바람에 구름이 흩어질 때마다, 반짝이는 윤슬은 먼바다로 갔다가 가까이 다가왔다가 천변만화(千變萬化)한다. 창문에 쓰인 글귀는 여행자의 ‘갬성’을 자극한다. ‘여기에 오길 참 잘했다’ ‘오늘 참 예쁘다. 그대’ ‘사랑하는 우리 가족 행복하자’…. 간절한 소망과 서로를 칭찬하는 문구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안면도 드라이브 여행은 자연휴양림에서 마무리하면 좋다.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쭉쭉 뻗은 안면송 숲의 상쾌한 솔향은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준다.보령=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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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석 교수, 제34회 ‘자랑스러운 중앙인상’ 수상

    중앙중고등학교교우회(회장 채정석)는 6일 중앙학교 교사와 교감으로 재직했던(1947~1954) 김형석(103) 연세대 명예교수와 기업인으로 산업과 과학 기술발전에 기여해 온 이승훈(72) 리인터내셔널 IP&LAW그룹 회장을 제34회 ‘자랑스러운 중앙인’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어 임훈(80) 전 중앙교우야구후원회 회장을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올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타계한 고(故) 주석중(59)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를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7일 오후 6시 서울 장충동 앰버서더서울풀만호텔에서 열리는 중앙교우회 송년회에서 열린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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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정동 옛 미국공사관

    서울 중구 정동 미국대사관저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이병헌)가 근무하던 옛 공사관 별관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진과 ‘애기씨’ 고애신이 손으로 입을 가려 암살자의 모습을 검증하는 장면도 이곳이 배경이었다. 한옥 건물이라 천장이 낮아 키 180cm가 넘었던 알렌 공사는 모자를 쓰고 서 있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미 국무부에 천장을 높여 달라는 편지를 썼는데 ‘실내에서는 모자를 쓰지 말라’는 답변만 받았다고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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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청으로 탄생한 신화 속 코끼리[전승훈의 아트로드]

    스리랑카 남부 카나에 있는 핀나웰라 코끼리 고아원(Pinnawela Elephant Orphanage)은 1975년 야생동물 보호국에 의해 세워진 코끼리 보육원이다. 마하 오야강 주변에 25에이커에 이르는 코코넛 수목림 일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곳은, 대부분 병들어 죽거나 버림받은 어린 코끼리와 밀렵꾼에 의해 상해를 입은 코끼리 약 90여 마리가 살고 있는 보금자리다. 2019년 4월21. 불교미술과 단청(丹靑) 예술 전문 작가인 박근덕 작가는 생일을 기념해 친구와 함께 스리랑카로 배낭 여행을 떠났다. 그는 핀나웰라 코끼리 고아원에서 코끼리들이 하루에 두번씩 냇가로 수영을 하러가는 장면을 보게 됐다고 한다. 철창이나 울타리도 없는 숲 속에서 100마리 가까운 코끼리가 자유롭게 냇가로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신화의 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는 정글 속에서 코끼리를 가까이 바라보고 만지며 너무나 신비스럽고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그날.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는 ‘부활절 테러’가 일어나 약 3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륜차를 개조한 교통수단인 툭툭 운전사가 박 작가에게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사람들이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진들이었다. ‘뭐 별일 있겠어?’하는 마음으로 그가 시내에 도착하니, 마치 영화 촬영을 끝낸 세트장처럼 도시는 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고, 세찬 비까지 내렸다. 멍하니 길을 걷다보니 지나가는 툭툭 운전사가 ‘빨라 숙소로 가라. 절대 길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당시에 콜롬보에는 교회와 성당, 호텔 등 6군데 정도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외국인들을 타켓으로 한 테러였다. 계엄령이 내려진 바로 그 동서라인 한복판에 박 작가가 있었던 것. 너무나 놀랄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숲 속에서 정말 신비로운 코끼리를 보고 왔는데, 바로 다음 순간에서는 핏빛 테러를 경험하게 되다니… 아무 것도 모르는 코끼리들의 여유로움과는 반대인 도시의 테러현장에 서 있던 저는 사뭇 어정쩡한 철없는 코끼리가 돼 버렸습니다. 그때 그 시간. 내가 느꼈던 스리랑카의 슬픈하루. 밝음이 어두움으로 바뀌는 그 순간의 경계, 하염없이 순수해 보였던 코끼리의 몸짓 속으로 나를 숨기고 싶었습니다.” 그는 당시 현지인의 도움으로 스리랑카의 립톤차를 재배하는 고원지대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단청으로 스리랑카 코끼리를 그리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혔다. 지난 22일부터 12월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무우수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근덕 단청 초대전 ‘알로로 달로록 철없는 코끼리’ 전시회에서는 단청으로 그린 화려한 코끼리 두 마리의 정면 모습이 단연 눈길을 끈다. 그림의 제목은 ‘Goldgardon 20190421’. 박근덕 작가의 법명이자 호인 금원(金園)의 동산에서 상상의 동물과 함께 놀고 있는 마음으로 그린 단청화다. 숫자는 바로 테러가 일어났는데 코끼를 만났던 2019년 4월21일을 뜻한다. 코끼리는 두 마리의 머리에는 하나는 연꽃, 또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토종민들레로 장식돼 있다. 코끼리의 귀는 궁궐이나 사찰의 기둥을 장식하는 단청 문양이 그려져 있다. 화문석 돗자리, 대바구니, 뜨개질할 때처럼 오방색 천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엮여 있는 모양이다. 한마리는 귀가 동글동글한 모양이고, 다른 코끼리는 뾰족뾰족 각진 모양으로 엮여져 있다. 코끼리를 장식하고 있는 단청문양은 녹실, 황실로 부르는 실로 엮여져 있다. 단청에서 문양과 문양을 연결해주고, 장식하는 실이다. 그런데 코끼리 코를 지나가는 금색실의 끝은 끝이 풀려 자유롭게 흘러가고 있다. 코끼리의 눈은 우주의 행성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로 표현돼 있다. “저는 원시적인 순수의 숲에서 놀고 있는 코끼리의 눈에서 정말 우주를 봤어요. 오래된 단청 안에서 느끼는 우주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죠. 원래 단청의 앞과 뒷쪽에는 녹실과 황실로 엮여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실은 알 수 없는 길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실 끝을 자유롭게 풀려 있게 그렸습니다.” 동국대 미술학부에서 불교미술을 전공한 박근덕 작가는 졸업 후 전국의 문화재 복원현장에서 문화재수리 기능자(화공), 단청기술자로 활동해왔다. 전통단청은 엄격한 문양과 색깔로 복원해내야 하지만, 개인적인 작품을 할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다양한 동식물 문양을 집어 넣어 자신만의 우주를 담은 창작품을 그려낸다. 그는 비단, 모시, 삼베, 한지에 자연의 풀로 염색을 하고 그 위에 여러 문양을 엮어 나간다. 기존 전통단청에 주로 쓰이는 문양인 연꽃과 목단(모란) 외에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 물, 구름 등을 문양화해 봉황, 물고기, 나비, 고래 같은 동물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해나간다. 박 작가의 창작 단청은 대부분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2가지 세트로 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상상의 동물인 봉황이다. 봉은 수컷이고, 황은 암컷이다. 봉과 황은 항상 같이 다녀서 금슬 좋은 부부를 상징한다. 그래서 예식장 장식으로 많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에도 평화와 태평성대가 오길 바라면서 봉황을 태극 문양으로 그려봤습니다. 봉과 황이 만나면 태극문양으로 합쳐져 하나의 원이 되는 형태입니다. 서양의 피닉스(Phoenix)는 불꽃으로 많이 표현되잖아요. 그러나 저는 봉황의 날개를 파도와 물결 모양으로 표현해봤습니다.” 박 작가에게 단청이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단청은 쉽게 설명하면 건물이 입고 있는 의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임금의 옷과 신하가 입는 옷이 다른 것처럼 건물의 용도와 특징, 성격에 따라 다르죠. 우리나라에는 목조 구조물이 많은데,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나무가 물러질 수가 있고, 겨울에 추위에도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안료를 발라서 더위와 추위, 습기, 벌레로부터 보호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목조 건물에 구멍이 나거나, 옹이가 생기는 등 안 예쁜 곳에 그림을 그리거나 칠해서 덮기도 합니다. 옷으로 체형을 보정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듯 처음엔 목조 건축물을 보호하기 위해 안료를 칠하던 것이 단청이었는데, 기왕이면 아름답게 보이도록 장엄하는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박 작가가 그린 코끼리의 귀와 제주 토종무 그림에는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청인 ‘주의(柱衣)’ 문양이 들어가 있다. “예전에는 기둥 위를 실제 여러가지 색의 천으로 감싸기도 했습니다. 기둥머리를 색색의 천을 엮어서 장식한 모양이 ‘주의’(기둥에 입힌 옷)입니다. 천들이 돗자리를 짜듯이 엮여 있습니다. 이렇듯 전통단청은 문양과 패턴, 실들이 서로 엮여 있는 형태입니다. 저는 그렇게 엮여 있는 전통단청의 문양을 하나하나 풀어서, 새로운 모양에 맞게 다시 짜는 형태로 작품을 만들어갑니다.” 그는 특히 물고기 문양을 좋아한다고 했다. 물고기는 밤에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 ‘정진하는’ 의미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래서 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가면 어머니가 물고기 조각을 품에 넣어주기도 했고, 불교에서는 스님들이 수행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목어(木魚)’를 조각해 매달아놓기도 한다. 박 작가는 자신이 특히 제일 좋아하는 물고기는 볼 양쪽에 연지곤지가 찍혀 있는 버들붕어라고 했다. 박 작가가 그린 버들붕어 모양의 단청은 등대시호와 고마리 꽃으로 장식돼 있다. 등대시호는 울릉도 고지대에서 자라는 멸종위기종의 자생식물. 작은 별이 가득한 모양의 꽃이 너무 예뻐서 단청 문양의 패턴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물고기 한마리는 쪽 염색을 한 비단 위에 별처럼 빛나는 등대시호로 장식됐는데, 다른쪽 물고기는 고마리 풀로 장식돼 있다. “등대시호가 희귀종, 멸종위기종이라면, 고마리는 지천에 널브러진 풀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시골에서는 돼지풀로 불려서 꼴을 베서 소나 돼지, 토끼에게 주던 흔한 풀입니다. 하천 주변에 엄청나게 많이 자라는 잡초입니다. ​그런데도 자세히 보면 연꽃이 한꺼번에 피어있는 모양으로 너무 예뻐요. 보통 단청에는 연꽃, 모란 등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꽃이 많이 문양으로 쓰이는데, 나만의 단청문양을 패턴화하는 창작작업에는 다양한 꽃과 동물로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전시장에는 선사시대 유물인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고래와 단청이 조화를 이룬 작품도 있다. ‘구절초를 삼긴 귀신고래’ ‘혹등고래와 국화’다. 돌가루를 빻아서 만든 석채를 접착제를 사용해서 고래 그림을 그리고, 그 내부에 전통 단청으로 구절초와 국화 문양을 넣은 작품이다. - 우리나라의 전통 미술은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 등 오방색이 기본이다. 한국의 전통 단청의 색은 어떻게 칠해지나요. ​ “불교미술은 실크로드를 타고, 인도에서 티벳과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습니다. 티벳, 몽골, 중국, 일본에도 단청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와서 가장 화려하게 특색있게 발전했고, 한국적인 색상과 문양으로 단청이 발전했습니다. 한국의 단청이 화려하게 보이는 이유는 뚜렷한 보색대비와 명도의 차이를 통한 색단계 덕분입니다. 단청은 붉을 단, 푸를 청자를 쓰는데요. 이 말처럼 따뜻한 색, 차가운 색, 따뜻한 색, 차가운 색 순서대로 보색대비를 하면서 칠합니다. 장삼황녹석육 등의 순서로 가는데요. 장은 장단(오렌지색)입니다. 삼은 삼청이라고 푸른색입니다. 황은 노랑색, 녹은 초록색, 석(석간주)는 붉은색 나는 기둥색입니다. 육은 살색이고요. 이처럼 난색, 한색, 난색, 한색 등이 교차하죠. 그 안에서는 명도 차이로 그라데이션을 줘서 밝고 어두움을 주기 때문에 더욱 화려하게 보입니다. 반면 중국은 푸른색 계통의 색깔을 주로 쓰고, 일본은 기둥부터 서까래까지 붉은색으로만 칠하는 단청이 발전했습니다.“ - 우리나라 전통 단청은 궁궐하고, 사찰에만 했나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유생들이 왕한테 상소를 올립니다. ‘지금 사가에서는 공공연하게 단청을 칠하는 사치를 하고 있습니다. 단청을 못하게 해주십시요’라는 내용입니다. 단청 재료들은 전부 중국에서 수입해온 귀한 원석인데, 너무나 비싼 재료였습니다. 그래서 사치스럽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생들은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면서도, 사대부 집 중에서도 단청을 한 곳이 많습니다. 향교, 서원에도 단청을 했고요.” - 궁궐과 사찰의 단청은 어떻게 다른가요. “조선은 유교국가로 궁궐이나 관아 외부의 단청은 화려하지 않게 했습니다. ‘모로단청’이라고 부재 끝부분에만 문양을 넣고 가운데는 긋기로 마무리한 단청입니다. 부재 끝부분에 들어가는 화려한 문양을 ‘머리초’라고 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궁궐단청의 특징이 ‘외유내강’이예요. 경복궁을 생각해보세요. 기둥이나 보의 가운데는 문양이 없고 양쪽 끝에만 있는 기본 단청이데, 임금이 계신 실내로 들어가면 천정부터 단청이 엄청나게 화려하거든요. 값비싼 푸른색 청금석도 다 씁니다. 반면 사찰은 지붕 서까래, 기둥, 보 등 외부부터 최대한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특징입니다. 양쪽 끝부분만 화려하게 꾸미는 모로단청과 달리, 부재의 모든 부분에 화려한 문양을 넣는 ‘금단청(錦丹靑)’을 합니다. 그러나 궁궐에는 금단청을 한 경우는 없습니다.“ - 문화재 수리 단청 기술자가 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나요. “단청에는 회화, 서예, 공예, 채색, 드로잉까디 다 포함돼 있습니다. 문화재 수리 단청기술자는 탱화도 보수해야 합니다. 탱화는 티벳에서 수행승들이 들고 다니기 편하게 두루마리 그림을 그려서 갖고 다니는 ‘탕카’에서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후불 탱화가 두루마리가 아닌 벽화로 그려져 있는 곳이 많아요. 사찰 단청에는 탱화도 있지만, 산수화도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산스크리트어 글씨나 현판의 글과 그림도 많습니다. 그래서 단청 기술자는 글씨와 탱화, 화조도, 산수화, 수묵화 등도 다 공부해야 합니다. 단청은 종합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단청으로 불교 미술을 공부하면 모든 종목을 다 잘할 수 있게 되요. 민화도 잘 하게 됩니다. 절에는 호랑이가 그려진 산신도도 있기 때문입니다.“ - 창작단청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을 졸업한 후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빡세게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게 단청은 언제부터인가 일이 돼 있었습니다. 처음 비계 위에 올라가 옛 사람들의 붓터치를 느꼈을 때의 그 두근거림은 관성화됐습니다. 그냥 일이라는 열쇠로 잠겨진 서랍 안에 들어가 있었죠. 그런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현장을 벗어나 천천히 걸으며 자연 속에서 사색을 즐기는 것을 위안으로 삼곤 했어요. 그럴 때면 나는 나름 행복한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일하는 곳들은 언제나 고개만 돌리면 아름다운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곳이 대부분이고, 자연 속에서 천천히 걷다보면 풀 한포기, 돌 하나에도 눈길이 머물게 되지요. 익숙한 풍경 속 점하나였을 작은 꽃잎에도 우주가 있었고, 먼지 쌓인 서까래에서 박락돼 가는 꽃에도 우주가 있었습니다. 나를 자연스레 미소 짓게 하는 초록의 풍경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물고기와 나를 위로해 주던 들꽃들을 단청 문양화해보고자 하는 생각을 모티브로 작업을 했습니다. 녹, 황실이 여러 자연물과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오행의 색이 빛과 어둠을 만나 화려하게 채색되는 사이, 나는 또다른 우주와 만나게 되는거죠.“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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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관광, 한국에서 배웁니다”

    “한국은 문화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주정부는 한국의 사례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주정부 문화관광체육부 다니엘 마르티네스 로드리게스 차관(사진)이 이달 16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앰버서더 서울 호텔에서 열린 ‘UNWTO(유엔세계관광기구) 지속가능한 관광콘퍼런스 2023’에 참석했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UNWTO와 함께 개최한 이날 회의는 ‘원 플래닛: 책임 있게 소비하고 지속가능하게 여행하기’라는 주제로 세계의 여러 관광국가, 도시의 사례를 논의했다. 이날 연사로 참석한 로드리게스 차관은 마드리드 지역 관광의 미래를 위한 비전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마드리드주의 관광 산업은 지역 GDP의 7%를 차지해 왔는데, 이제 8%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서는 대도시와 인기 지역에 집중된 관광보다는 지역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마드리드 주정부는 시의회, IFEMA와 함께 ‘마드리드 관광청’를 설치하고 마드리드를 글로벌 관광도시로 발돋움시키기 위해 2023년부터 4년간 캠페인, 소셜미디어 광고 등 민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최근 여행 업계와 미디어 업계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캠페인 ‘온리 인 마드리드(Only In Madrid)’의 론칭 이벤트를 개최했다. “마드리드는 글로벌 여행지 중의 하나이지만, 세계인들에게 뒤늦게 알려진 도시입니다. 마드리드는 대(大)스페인 제국의 수도였고, 제국의 모든 유산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매력적인 스페인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지역인 데다 현대적인 건축으로 스페인 전체를 선도하고 있는 활기 찬 도시이기도 합니다. 뮤지컬, 오페라, 연극 공연을 볼 수 있는 극장과 미식을 즐길 수 있는 맛집이 골목 곳곳에 숨어 있어 그냥 걷기만 해도 자유로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한 현대적인 도시이지만 자연이 숨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마드리드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한국과의 문화관광 교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마드리드 주정부는 아시아 시장을 우선시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스페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기 때문이죠. 한국의 관광 산업과 여행객들을 분석하고, 연극 등의 예술 교류도 진행하고자 합니다. 한국 예술가들을 스페인에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적극 마련할 계획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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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관광, 한국에서 배웁니다”

    “한국은 문화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정부는 한국의 사례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 마드리드 주정부 문화관광체육부 다니엘 마르티네즈 로드리게즈 차관이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앰버서더 서울 호텔에서 열린 ‘UNWTO(세계관광기구) 지속가능한 관광컨퍼런스 2023’에 참석했다.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UNWTO와 함께 개최한 이날 회의는 ‘원 플래닛 : 책임있게 소비하고 지속가능하게 여행하기’라는 주제로 세계의 여러 관광국가, 도시의 사례를 논의했다. 이날 연사로 참석한 로드리게즈 차관은 마드리드 지역 관광의 미래를 위한 비전이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마드리드 주의 관광산업은 지역 GDP의 7%를 차지해왔는데, 이제 8%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서는 대도시와 인기지역에 집중된 관광보다는 지역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마드리드 주정부는 시의회, IFEMA와 함께 ‘마드리드 관광청’를 설치하고 스페인 마드리드를 글로벌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2023년부터 4년간 캠페인, 소셜미디어 광고 등 민관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최근 여행업계와 미디어업계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캠페인 ‘Only In Madrid’의 런칭 이벤트를 개최했다. “마드리드는 글로벌 여행지 중의 하나이지만, 세계인들에게 뒤늦게 알려진 도시입니다. 마드리드는 대(大) 스페인 제국의 수도였고, 제국의 모든 유산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매력적인 스페인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최고의 지역인데다, 현대적인 건축으로도 스페인 전체를 선도하고 있는 활기찬 도시이기도 합니다. 뮤지컬, 오페라, 연극 공연을 볼 수 있는 극장과 미식을 즐길 수 있는 맛집이 골목 곳곳에 숨어 있어 그냥 걷기만해도 자유로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또한 현대적인 도시이지만 자연이 숨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해 한국과의 문화관광 교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마드리드 주 정부는 아시아 시장을 우선시하고 있는데, 특히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스페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기 때문이죠. 한국의 관광산업과 여행객들을 분석하고, 연극 등의 예술 교류도 진행하고자 합니다. 한국 예술가들을 스페인에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적극 마련할 계획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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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영국대사관저 브로턴 바

    서울 덕수궁 옆에 있는 영국대사관저는 1892년에 지어진 건물로 개화기 대사관 가운데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사용되는 유일한 외교공관이다. 빅토리아풍 빨간 벽돌 건물인 대사관저로 들어서면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경북 안동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과 기념품들이 전시돼 있다. 신축한 건물 지하에는 주한 외교관들의 사교 공간인 영국식 펍 ‘브로턴 바’가 있다. 1797년 한반도에 도착한 첫 번째 영국인 선장 윌리엄 브로턴 대위를 기념하는 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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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강이 어드메뇨, 치악이 여기로다’[전승훈의 아트로드]

    조선 시대에는 육로보다 수로 교통이 더 중요했다. 특히 한반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사람과 물류를 실어나르는 교통로이자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조세 운송로였다. 섬강과 남한강이 교차하는 강원 원주는 물류의 중심지로서 강원도를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 유적이 많이 있다. 원주를 휘감아 도는 물길이 만들어낸 절경을 따라 여행을 떠나 보자.● 섬강과 남한강 물길이 만나는 곳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흥원창은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 넓은 강물을 이루는 지점으로 떨어지는 일몰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가을에는 둔치에 새하얀 억새꽃 물결이 넘실거리는 장관이 연출된다.고려 말, 조선 초 왜구들의 해안 출몰로 해운을 통한 세곡 운반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경상도 지역의 조세를 험준한 죽령을 넘어 충북 충주까지 육로로 운송했고, 충주부터는 수운을 이용해 서울로 운송했다. 이를 위해서는 창고가 필요했다. 충주의 달천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경원창을 세워 경상도 60여 개 읍의 세곡을 거둬들였다. 섬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원주시 부론면에는 흥원창을 지었다. 흥원창은 고려와 조선 시대 12조창 중 하나로 원주, 평창, 영월, 정선, 횡성, 강릉, 삼척, 울진, 평해 등 강원도의 세곡을 수납해 한양의 경창으로 운송했다. 남한강을 통해 왕래되는 물건은 세곡뿐 아니었다.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식품인 소금도 중요한 물품이었다. 강원도 산간 내륙지방에서 구하기 힘든 소금을 운송해 주고, 서울에서 궁궐의 신축 등 건축물을 지을 때 필요로 하는 목재를 산간지대에서 벌목해 운송해 주었다.이 때문에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원주 일대에는 고려 시대부터 대규모 사찰이 번성했다. 원주의 3대 폐사지로 꼽히는 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부론면 명봉산 자락에 있는 법천사지(法泉寺址)는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등 세 개의 도가 접하고 있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마르지 않는 진리의 샘’이라는 뜻의 법천사는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고려 문종 때 최고 법계인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지광국사가 머물면서 크게 융성했다. 지난해 말 이곳에는 법천사지 유적관이 개관됐는데 지광국사 부도탑을 보존하기 위해 지어진 시설이다. 지광국사탑은 1912년 일제에 의해 오사카로 무단 반출됐다가 경복궁으로 돌아왔지만,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파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콘크리트를 이용해 복원되고 해체되는 작업이 반복됐던 지광국사탑의 부재들이 올해 원주 법천사지로 111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아직 탑이 온전히 세워져 복원되지 않았지만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석탑의 부재들을 가까이서 꼼꼼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섬강을 타고 온 강원 관찰사섬강은 강원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해 원주를 지나 충북 충주에서 흘러오는 남한강에 합류하는 강이다. 섬강은 달강, 달래강이라고도 불렸는데, 섬강(蟾江)의 섬은 두꺼비를 뜻하며,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섬강은 흥원창을 경유해서 서울로 가는 영서지방 뗏목의 출발점이기도 했다.간현관광지는 원주에서 서쪽으로 약 17km 떨어진 곳으로, 섬강과 삼산천 강물이 만나는 지점 절경에 자리 잡고 있다. 에메랄드 빛 강물 주변으로 넓은 백사장과 기암괴석, 울창한 고목이 조화를 이루는 원주의 대표적인 유원지다. 강의 양안으로 40~50m 높이의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여름철 밤에는 이 바위 절벽에 조명을 쏘아 미디어아트 영상을 보여주는 ‘나오라쇼(Night of light Show)’가 펼쳐지기도 한다. 1985년 5월 관광지로 지정된 간현관광지는 요즘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탈바꿈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와 울렁다리, 잔도가 건설되고 캠핑장 등을 갖췄다. 출렁다리를 출발해 소금잔도~전망대~울렁다리를 거쳐 내려오는 코스(약 2시간)인데 소금산을 휘감아 도는 삼산천의 절경을 스릴 넘치게 감상할 수 있다.지상 100m 높이에 길이 200m의 산악보행교인 출렁다리는 짜릿함 그 자체다. 2018년 개장 이후 지금까지 300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지난해 개통된 울렁다리는 404m의 보행현수교다. 다리 중간에 조성된 유리 바닥 밑으로 섬강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송강 정철(1536~1593)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도 바로 이 섬강의 뱃길을 이용했다. 1580년(선조 13년) 44세의 나이에 경복궁에서 임명장을 받고 떠난 정철은 가마와 배를 타고 원주로 오게 된다. 그가 쓴 ‘관동별곡’에는 섬강의 절경이 그려진다. “평구역(양주) 말을 가라(갈아타고) 흑슈(여주)로 도라드니 섬강(蟾江)이 어듸메오 티악(雉岳)이 여긔로다. 쇼양강 나린(흘러내린) 물이 어드러로(어디로) 든단 말고(흘러간단 말인가).”강원 관찰사는 경기 남양주에서 여주까지 육로로 오고, 이후 남한강과 섬강의 물길을 따라 원주천 배말 나루터에 도착해 가마를 타고 강원 감영에 도착했다고 한다.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강원 감영은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에 해당하는 강원도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감영의 중심 건물인 ‘선화당(宣化堂)’이 남아 있는 곳은 전국에서 강원 감영이 유일하다. 요즘에야 강원도청이 춘천에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관령팔백리(管領八百里)의 산과 바다를 관할하는 중심지는 원주였던 셈이다. 강원 감영의 정문의 누각에는 ‘포정루(布政樓)’라고 쓰여 있다. 옷감을 펼치듯이 부드럽게 정사를 돌보라는 왕의 당부가 새겨진 편액이다. 중간문에는 ‘징청문(澄淸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부정부패 없이 맑고 깨끗하게 지방 관리로서의 임무를 다하라는 뜻이다.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의 글씨는 원주 출신인 최규하 전 대통령이 썼는데, 한글 쓰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것이 이채롭다.감영 뒤편에는 강원 관찰사가 풍류를 즐기던 연못과 정자가 있다. 관할 지역에 금강산이 있지만 가볼 수 없는 관찰사가 금강산처럼 꾸며놓고 즐기던 후원이다.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이 있는 연못을 조성해 태을선(太乙船‧신선들이 타는 배)을 타고 풍류를 즐기던 그림을 참조해 복원해 놓았다. 연못 옆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조선시대 강원 관찰사들이 정사를 보거나 휴식하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나무다. 감영의 한구석에는 작은 감옥도 복원돼 있다. 약 200년 전에 강원도 지역의 순교자 3명이 갇혀 있었던 감옥으로,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세 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들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광화문에서 열린 미사에서 123위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복됐다.● 가볼 만한 곳강원도에는 원주 용소막 성당, 횡성의 풍수원 성당 등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성당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 시대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한양에서 제천, 원주, 횡성 등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원주 신림면에 1898년 처음 지어진 용소막 성당은 명동성당의 축소판처럼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예쁜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TV와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나오는 이 성당의 주변에는 느티나무 5형제가 호위하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성당 앞에는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평생을 바친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1915~1976)의 생가 터와 자료관이 있다.원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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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강이 어드메뇨 치악이 여기로다’[전승훈의 아트로드]

    조선 시대에는 육로보다 수로 교통이 더 중요했다. 특히 한반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한강은 사람과 물류를 실어나르는 교통로이자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조세 운송로였다. 섬강과 남한강이 교차하는 강원 원주는 물류의 중심지로서 강원도를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 유적이 많이 있다. 원주를 휘감아 도는 물길이 만들어낸 절경을 따라 여행을 떠나 보자.● 섬강과 남한강 물길이 만나는 곳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흥원창은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 넓은 강물을 이루는 지점으로 떨어지는 일몰이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가을에는 둔치에 새하얀 억새꽃 물결이 넘실거리는 장관이 연출된다. 고려 말, 조선 초 왜구들의 해안 출몰로 해운을 통한 세곡 운반은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경상도 지역의 조세를 험준한 죽령을 넘어 충북 충주까지 육로로 운송했고, 충주부터는 수운을 이용해 서울로 운송했다. 이를 위해서는 창고가 필요했다. 충주의 달천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경원창을 세워 경상도 60여 개 읍의 세곡을 거둬들였다. 섬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원주시 부론면에는 흥원창을 지었다. 흥원창은 고려와 조선 시대 12조창 중 하나로 원주, 평창, 영월, 정선, 횡성, 강릉, 삼척, 울진, 평해 등 강원도의 세곡을 수납해 한양의 경창으로 운송했다. 남한강을 통해 왕래되는 물건은 세곡뿐이 아니었다.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식품인 소금도 중요한 물품이었다. 강원도 산간 내륙지방에서 구하기 힘든 소금을 운송해 주고, 서울에서 궁궐의 신축 등 건축물을 지을 때 필요로 하는 목재를 산간지대에서 벌목해 운송해 주었다. 이 때문에 섬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원주 일대에는 고려 시대부터 대규모 사찰이 번성했다. 원주의 3대 폐사지로 꼽히는 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특히 부론면 명봉산 자락에 있는 법천사지(法泉寺址)는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등 세 개의 도가 접하고 있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마르지 않는 진리의 샘’이라는 뜻의 법천사는 신라 성덕왕 24년(725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고려 문종 때 최고 법계인 ‘국사(國師)’ 칭호를 받은 지광국사가 머물면서 크게 융성했다. 지난해 말 이곳에는 법천사지 유적관이 개관됐는데 지광국사 부도탑을 보존하기 위해 지어진 시설이다. 지광국사탑은 1912년 일제에 의해 오사카로 무단 반출됐다가 경복궁으로 돌아왔지만,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파손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콘크리트를 이용해 복원되고 해체되는 작업이 반복됐던 지광국사탑의 부재들이 올해 원주 법천사지로 111년 만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아직 탑이 온전히 세워져 복원되지 않았지만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석탑의 부재들을 가까이서 꼼꼼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섬강을 타고 온 강원 관찰사섬강은 강원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해 원주를 지나 충북 충주에서 흘러오는 남한강에 합류하는 강이다. 섬강은 달강, 달래강이라고도 불렸는데, 섬강(蟾江)의 섬은 두꺼비를 뜻하며,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섬강은 흥원창을 경유해서 서울로 가는 영서지방 뗏목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간현관광지는 원주에서 서쪽으로 약 17km 떨어진 곳으로, 섬강과 삼산천 강물이 만나는 지점 절경에 자리 잡고 있다. 에메랄드 빛 강물 주변으로 넓은 백사장과 기암괴석, 울창한 고목이 조화를 이루는 원주의 대표적인 유원지다. 강의 양안으로 40∼50m 높이의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여름철 밤에는 이 바위 절벽에 조명을 쏘아 미디어아트 영상을 보여주는 ‘나오라쇼(Night of light Show)’가 펼쳐지기도 한다. 1985년 5월 관광지로 지정된 간현관광지는 요즘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탈바꿈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와 울렁다리, 잔도가 건설되고 캠핑장 등을 갖췄다. 출렁다리를 출발해 소금잔도∼전망대∼울렁다리를 거쳐 내려오는 코스(약 2시간)인데 소금산을 휘감아 도는 삼산천의 절경을 스릴 넘치게 감상할 수 있다. 지상 100m 높이에 길이 200m의 산악보행교인 출렁다리는 짜릿함 그 자체다. 2018년 개장 이후 지금까지 300만 명이 방문했다고 한다. 지난해 개통된 울렁다리는 404m의 보행현수교다. 다리 중간에 조성된 유리 바닥 밑으로 섬강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송강 정철(1536∼1593)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도 바로 이 섬강의 뱃길을 이용했다. 1580년(선조 13년) 44세의 나이에 경복궁에서 임명장을 받고 떠난 정철은 가마와 배를 타고 원주로 오게 된다. 그가 쓴 ‘관동별곡’에는 섬강의 절경이 그려진다. “평구역(양주) 말을 가라(갈아타고) 흑슈(여주)로 도라드니 섬강(蟾江)이 어듸메오 티악(雉岳)이 여긔로다. 쇼양강 나린(흘러내린) 물이 어드러로(어디로) 든단 말고(흘러간단 말인가).” 강원 관찰사는 경기 남양주에서 여주까지 육로로 오고, 이후 남한강과 섬강의 물길을 따라 원주천 배말 나루터에 도착해 가마를 타고 강원 감영에 도착했다고 한다. 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강원 감영은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에 해당하는 강원도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관청이다. 감영의 중심 건물인 ‘선화당(宣化堂)’이 남아 있는 곳은 전국에서 강원 감영이 유일하다. 요즘에야 강원도청이 춘천에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관령팔백리(管領八百里)의 산과 바다를 관할하는 중심지는 원주였던 셈이다. 강원 감영의 정문의 누각에는 ‘포정루(布政樓)’라고 쓰여 있다. 옷감을 펼치듯이 부드럽게 정사를 돌보라는 왕의 당부가 새겨진 편액이다. 중간문에는 ‘징청문(澄淸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부정부패 없이 맑고 깨끗하게 지방 관리로서의 임무를 다하라는 뜻이다.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의 글씨는 원주 출신인 최규하 전 대통령이 썼는데, 한글 쓰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 것이 이채롭다. 감영 뒤편에는 강원 관찰사가 풍류를 즐기던 연못과 정자가 있다. 관할 지역에 금강산이 있지만 가볼 수 없는 관찰사가 금강산처럼 꾸며놓고 즐기던 후원이다.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이 있는 연못을 조성해 태을선(太乙船·신선들이 타는 배)을 타고 풍류를 즐기던 그림을 참조해 복원해 놓았다. 연못 옆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운다. 조선시대 강원 관찰사들이 정사를 보거나 휴식하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나무다. 감영의 한구석에는 작은 감옥도 복원돼 있다. 약 200년 전에 강원도 지역의 순교자 3명이 갇혀 있었던 감옥으로,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세 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이들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광화문에서 열린 미사에서 123위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복됐다.●가볼 만한 곳=강원도에는 원주 용소막 성당, 횡성의 풍수원 성당 등 1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성당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 시대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한양에서 제천, 원주, 횡성 등으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원주시 신림면에 1898년 처음 지어진 용소막 성당(사진)은 명동성당의 축소판처럼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예쁜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TV와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나오는 이 성당의 주변에는 느티나무 5형제가 호위하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성당 앞에는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평생을 바친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1915∼1976)의 생가 터와 자료관이 있다.원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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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히로시마 슛케이엔

    한국의 정원 문화를 대표하는 말이 ‘차경(借景)’이라 한다면, 일본의 정원은 ‘축경(縮景)’이다. 한국은 자연의 경치를 집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일본은 자연과 신선의 세계, 정토의 세계를 ‘축소시킨 풍경’으로 정원을 조성한다.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슛케이엔(縮景園)도 중국 항저우의 서후(西湖)를 닮은 호수를 만들고, 주변 둘레길에 여러 명승지의 경치를 닮게 만든 정원이다. 연못에 놓여 있는 빨간색 아치형 다리는 모네의 수련 그림 속 다리와 비슷한 느낌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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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불영사 돌거북

    경북 울진군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1201호)의 계단 옆 좌우에는 돌거북의 머리와 앞발이 나와 있다. 거북이 대웅보전의 기단 돌을 온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불영사의 자리가 화기를 많이 품고 있는 화산(火山)이어서 수신(水神)인 거북으로 불기운을 눌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안내문엔 재밌는 미션이 적혀 있다. 거북의 몸통은 대웅전 안 대들보에 있으니 방문하게 되면 한 번 찾아보시길.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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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갗 물씻김의 세련미 가득한 자연박물관[전승훈의 아트로드]

    《전남 신안군 자은도는 황금빛 모래와 해송숲이 아름다운 섬이다. 섬에는 바람이 불고, 거친 파도가 몰려온다. 바람은 모래언덕을 만들어내고, 파도는 기암괴석을 만들어낸다. 자은도는 신안군의 1004개 섬의 경이로운 자연을 담은 수석(壽石)과 조개, 자생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연박물관의 섬이기도 하다.》 ● 섬과 바다를 품은 돌과 정원KTX 목포역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 걸리는 자은도의 양산해변에는 분홍색 핑크뮬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언덕이 있다. 넓게 펼쳐진 해송숲 옆으로 사막의 풍경을 방불케 한다. 모래언덕 위에는 두 개의 나무로 만든 의자가 놓여 있어 해변의 푸른 물결을 멍하게 바라볼 수 있다. 양산해변의 50만 ㎡에 이르는 모래사장은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크기와 모습이 달라지는 모래언덕을 만들어낸다. 사구의 표면에는 파도처럼 잔물결이 일어나는가 하면, 달 표면처럼 무언가로 긁은 듯한 독특하고 신비로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바람이 만들어낸 생생한 아트다. 모래언덕 앞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피아노의 섬’ 자은도에서는 문화의 달 10월에 104대의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피아노 축제가 펼쳐지기도 했다. 양산해변에 조성된 ‘1004뮤지엄파크’(입장료 1만 원)에는 수석미술관과 세계조개박물관, 자생식물원, 새우란전시관, 자연휴양림 등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수석미술관과 수석정원이다. 수석은 기이한 모양의 자연석이다. 섬에는 파도의 물결에 오묘한 색깔과 문양이 새겨진 돌멩이들이 많이 난다. 흑산도는 문양석, 홍도는 월석, 장도는 괴석, 태도는 꽃돌, 장산도는 항아리석, 하의도는 초코석, 안좌도는 옥석, 영산도는 태양석, 비금도는 꼭지석, 선도는 혹돌이 많이 난다고 한다. 수석미술관에는 원수칠 관장과 기증자들이 수십한 약 1004개의 수석이 전시돼 있다. 어떤 돌은 섬을 닮았고, 산맥을 이루는가 하면,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 모양의 돌도 있다. 신안의 명물인 뻘낙지와 홍어의 모습이 새겨진 돌도 있다. 수석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돌 하나에 담긴 축경(縮景)의 오묘함을 즐길 수 있는 예술품이다. 옛사람들은 실제 여행을 다니며 풍경을 보기 어려우면 집 안에 산수화 그림을 걸어놓거나 나무를 작은 화분에 심은 분재, 자연을 닮은 수석을 놓고 즐겼다. 집 안에서도 자연의 기운생동을 느끼는 ‘와유산수(臥遊山水)’의 풍습이다. 자은도 수석미술관에는 실제로 유명한 화가의 산수화 그림과 닮은 수석을 전시해 눈길을 끈다. 김홍도의 ‘구룡연 폭포’와 겸재 정선의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민화 ‘운룡도’를 걸어놓고 그 밑에 그림과 빼닮은 수석을 놓아 비교해보는 즐거움을 준다. “수석은 움직이지 않으며 감각이 없는 무생물이지만 상상의 나래 속에 수석은 다양한 몸짓과 연상으로 우리에게 큰 감흥을 안겨주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원수칠 수석미술관장) 수석미술관에는 좋은 수석을 고르는 방법도 적혀 있다. 그중에 ‘돌갗(돌의 피부)의 물씻김이 세련돼야 한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사람의 살갗(피부)처럼 수석도 돌갗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수석은 물로 씻으면 선명하고 진한 색채를 드러내 ‘水石’이라는 한자를 쓰기도 한다. 물에 씻긴 ‘쌩얼’이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 바로 좋은 수석이라는 설명이다. 수석미술관은 외부 수석정원으로 이어진다. 고인돌 같은 석문을 지나면 7000㎡ 부지에 3000t에 이르는 기암괴석과 200여 종의 야생화, 100여 종의 분재로 이뤄진 경이로운 비원(祕苑)이 펼쳐진다. 기암괴석과 나무가 어우러진 사이로 시내가 흐르고, 연못과 폭포가 형성돼 있다. 커다란 바위는 주변이 뾰족뾰족한 봉우리로 둘러싸인 가운데 움푹 파인 곳에 물이 고여 있는데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하는 정원석이다. ● 갯벌을 맑게 하는 보석 조개섬에는 갯벌이 있고, 건강한 갯벌에는 조개가 살고 있다. ‘1004뮤지엄파크’의 또 다른 볼거리는 세계조개박물관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유리 안에 형형색색의 조개와 고둥이 벽을 채우고 있는데 자연이 만들어낸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이곳에는 세계 각국의 조개와 고둥 1만1000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임양수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관장이 기증한 것이다. 40여 년간 원양어선 선장 생활을 했던 그는 태평양과 호주, 남극 바다의 조개, 고둥류까지 수만 점을 모았다고 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크기가 89cm에 이르는 ‘대왕조개’가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그림에 나오는 바로 그 조개다. 남태평양의 얕은 산호초에서 자라는 대왕조개는 다 크면 무게가 200kg을 넘고, 크기도 150cm 정도로 커진다. 평균 수명이 100년이 넘고, 최대 500세가 넘는 대왕조개도 있다고 한다. 거대한 조개이다 보니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대왕조개는 양쪽의 껍데기가 완전히 닫히지 않아 사람을 물 수는 없다고 한다. 신안의 갯벌은 우리나라 전체 갯벌 면적 중 1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지역이다. 그중 증도갯벌은 세계 람사르협약 등록습지이고, 비금-도초도 갯벌은 해양수산부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갯벌의 유기물을 먹으며 생존하는 조개와 고둥은 갯벌을 정화하는 가장 중요한 생물이다. 껍데기가 두 장인 조개류는 각종 장신구와 나전칠기로, 껍데기가 하나로 돼 있는 고둥은 악기로 활용돼 온 역사도 전시된다. 특히 앵무고둥이 껍데기 속 공간에 공기를 채워 부력을 조절해 바닷속을 떠다니는 원리가 잠수함과 선박 설계에 응용되기도 했다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조개박물관 전시장 끝부분에는 각종 조개로 만든 꽃이 전시돼 있다. 홍합, 꼬막, 바지락, 대합, 가리비로 만든 꽃잎이 어떤 그림이나 조각보다 더 감동을 준다. ● 무한의 다리자은도 둔장해변에는 ‘무한의 다리’가 있다. 2019년 8월 8일 ‘섬의 날’을 기념해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조각가 박은선의 협업으로 지어진 다리다. ‘8’이라는 숫자를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를 의미하는 ‘∞’가 된다는 뜻으로 ‘폰테 델 인피니토(Ponte Dell Infinito)’라는 이름이 붙었다. 폭 2m의 나무로 만든 다리는 중간에 작은 섬인 구리도를 거쳐 종점인 할미도까지 이어진다. 다리의 총 길이는 정확히 1004m. 원형의 다리 난간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무한의 다리’를 걷다 보면 섬과 섬을 돌며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다리를 걷다 보면 갯벌의 풍경이 드넓게 펼쳐진다. 이곳엔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갇혀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전통 어로 방식인 ‘독살’도 남아 있다. 종점인 할미도에 가면 섬의 이름이 유래가 된 할미바위가 외롭게 서 있다. 자은도는 해수욕장 9개와 50여 개에 이르는 해변이 있어 ‘휴양의 섬’으로 불린다. ‘1004섬 뮤지엄파크’ 인근에 있는 백길해변엔 5성급 호텔인 라마다호텔이 들어서 있다. 가을에는 백산리 분계해변 인근으로 노을이 진다. 분계해변의 울창한 해송숲 산책로를 걷다 보면 물구나무선 미끈한 각선미의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이름하여 ‘여인송(松)’이다. 고기잡이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소나무 위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거꾸로 땅에 떨어져 죽은 뒤 나무가 자라났다는 슬픈 전설이다. 분계해변은 여인송 외에도 200년 전 방품림으로 조성된 울창한 해송군락이 멋진 곳이다. 해수욕과 산림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해변 산책길이다.자은도(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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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반계리 은행나무

    전국에서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老巨樹) 중에서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지난주 노란색 단풍이 절정을 맞은 강원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176호·사진) 앞에는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수령 800∼1000년으로 추정되는 반계리 은행나무는 높이 32m, 최대 둘레 16m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한 그루의 나무인데도 마치 10여 그루의 나무가 한꺼번에 자라서 이룬 숲처럼 보일 정도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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