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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일부 극단 유투버들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복해야 한다는 등의 선동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일부는 폭동, 폭력 행위를 부추기는 경우도 있어 실제 헌재 난입이나 폭력 시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헌재는 4일 오전 11시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이에 대해 일부 정치 유튜브 영상에는 “내란을 준비하고 있다” 등의 극단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극우 성향의 한 유튜버는 “0.1%라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거나 기각이 났을 때 XXX 새끼들이 거기서 태극기 등에 메고 태극기랑 성조기 들고 폭력사태 유발할 것 1000%”라고 주장했다. 마치 탄핵 촉구 집회 참석자들이 윤 대통령 지지자로 가장해 폭력 시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일종의 음모론이다.경찰이 헌재 주변 경계를 강화하자 이를 조롱하는 유튜버들도 있었다.탄핵을 반대하는 한 유튜버는 헌재 인근을 돌아다니며 라이브방송을 하던 도중 경찰이 “위험하다”며 제지하자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합니다”라고 했다.지난달 21일에도 헌재 앞에서 탄핵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한 극우 유튜버가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체포됐다. 같은 날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을 겨냥해 살인예고 글을 올렸던 유튜버 유모 씨(42)가 협박 혐의로 입건됐다.3월 들어서는 주요 대학에 유튜버들이 몰려와 탄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청주 도심에서 70대 여성이 몰던 차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해 4중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가해 운전자는 사고 뒤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에 따르면 30일 오후 12시 45분쯤 충북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 청주교육대학교 앞 삼거리에서 A 씨(72)가 몰던 소나타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맞은 편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던 모닝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충돌 순간의 충격으로 튕겨나간 모닝은 옆 차로에 서있던 벤츠를 들이받았다. 쏘나타는 모닝을 들이받은 뒤 이번에는 같은 방향으로 주행 중이던 택시를 또 들이받고 나서야 멈췄다.이 사고로 모닝에 타고 있던 80대 운전자 및 동승자 3명이 모두 숨졌다. 가해 운전자 A씨도 부상을 입었고, 그외 다른 차량에 타고 있던 6명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사고 당시 술을 마신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경찰에 급발진이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A 씨의 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했다. 이번 사고로 고령 운전자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시청역 참사 등 급발진 주장 및 역주행 사고의 운전자가 고령층이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면허 갱신 절차 강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경남 산청 산불의 큰 불길이 30일 가까스로 진화됐다. 소방당국은 잔불 정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은 산불이 꺼졌다가 부분적으로 다시 붙어 한때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이번 산불 사망자는 주말 사이 2명이 더 늘어 총 30명이 됐다.산림청은 21일 오후 3시 26분 시작된 산청 산불의 주불이 30일 오후 1시경 진화됐다고 밝혔다. 산청 산불은 발화 213시간 34분 동안 산림 1858ha(헥타르)를 태웠다.이는 산림청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86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오래 탄 산불이다.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은 2022년 3월 4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까지 번진 초대형 산불로 213시간 43분 동안 산림 2만여 ha를 태우고 10일 만에 꺼졌다.경북 북동부 산불은 28일 주불이 꺼진 뒤에도 계속해서 재발화 현상이 반복돼 진화에 애를 먹고 있다. 산림당국에 따르면 29일 안동시 남후면 고상리와 고하리 일대, 의성군 신평면 고안리와 중율리, 영양, 청송 등에서 불길이 다시 살아났다.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30일 오전 5시를 기준으로 이번 산불 인명피해가 사망 30명, 중상 9명, 경상 36명 등 75명이라고 밝혔다. 전날 경북에서 사망자 2명이 추가됐다.산림당국에 따르면 28일 오후 의성군 단촌면 한 주택에서 8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발견됐다. 경찰은 사망자가 단촌면 일대에 불길이 거셌던 25일경 미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같은 날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에서도 60대 남성이 병원에서 숨졌다. 그는 의성에서 영양군까지 번진 산불로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다. 이 사망자는 앞서 25일 삼의계곡에서 화마에 숨진 삼의리 이장의 처남인 것으로 알려졌다.현재까지 지역별 산불 인명 피해 규모는 경북이 사망 26명·부상 33명, 경남이 사망 4명·부상 10명, 울산은 부상 2명이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경북 안동 산불이 시내 방향으로 향하면서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안동시는 27일 오전 10시 29분 재난 문자로 “남후면 무릉리에서 시내 방면으로 산불이 확산 중” 시민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안내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지난해 12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법정에 선 남성 디오브라 레든(32)은 단기 26년에서 장기 6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해 1월 3일 폭행 미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가 판사석에 갑자기 달려들어 메리 케이 홀서스 판사(63)를 폭행했다. 이 사건으로 홀서스 판사는 다쳤고 그 옆에 있던 법정 경위도 머리 부상을 입었다. 라스베이거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레든은 사건 이후 교도소 관계자에게 자신이 판사를 죽이려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든이 애초 기소됐던 죄목인 폭행 미수는 단기 19개월에서 장기 48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법정에서 판사를 때린 죄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10배 넘는 중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가 사법 시스템을 얼마나 두껍게 보호하고자 하는지, 이에 대한 위협은 얼마나 큰 범죄로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법관’이라는 신분을 취득한 인간이 활자로 정리한 ‘법’에 따라 형벌을 내리고 집행하는 것이 지금 사법 제도의 본질이다. 법도, 법관도, 형벌도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와 약속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무리가 모인 어떤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이 이 약속을 불신하기로 작정한다면 한순간 사법 제도는 붕괴되고 법전은 휴지 조각이 되며 판사들은 성난 군중 가운데 벌거벗겨질 수 있다. 이성적인 국민이 암묵적으로 맺은 ‘최소한의 사회적 계약’이 이런 상황을 막아왔고 그 기반에서 번영과 발전과 사회의 존속은 가능했다. 올해 1월 19일 새벽에 벌어진 서울 서부지방법원 난입은 한국의 사법 제도가 얼마든 실제로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고였다. 한밤중 성난 군중이 법원에 쳐들어가 판사를 끌어내라 소리치며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영화에서도 잘 나오지 않는다. 비슷한 해외 사례를 찾으려 외신을 뒤졌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보도된 건 판사 개인에 대한 폭행, 협박 정도였다. 그 정도로 이번 사건은 전례가 없으며 심각하다. 그런데 기소돼 법정에 선 당사자들은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듯 보인다. 17일 열린 공판에서 피고인들은 ‘먼저 사람들이 법원에 들어가 있어서 나도 평온하게 들어갔다. 그러니 강제로 문을 개방하지 않았다’, ‘경찰을 때리긴 했지만 그럴 의도는 없었다. 몸으로 밀었지 때린 게 아니다’ 등의 말로 무죄를 주장했다. 그중 정점은 “대통령에 관한 미안한 마음과 영장 발부에 대한 항의의 마음을 표시하려 담을 넘은 것”이라는 발언이었다. 부서진 건 법원인데 도대체 왜 윤석열 대통령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2025년 1월 19일 서울에서 부서진 건 단순한 법원 건물이 아니다. 사회의 평온을 지켜온 사법 시스템은 늘 견고할 것이란 믿음과 안도감이다. 그것들은 깨졌고 이제 법원은 펜스와 방호 장비로 철갑을 두르기 시작했다. 부서진 신뢰가 회복되기까지는 다시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사태를 초래한 이들에게 합당한 결과가 돌아가야 한다. 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을 처음 주목한 건 인권위원장 후보자 때였다. 그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뒤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미성년자 성매매 및 성관계 여성 ‘몰카’를 저지른 기업 2세를 변호했다는 걸 알고 나서다.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변호인은 자신이 누굴 변호할지 선택할 수 있다. 대통령까지 파면할 수 있는 헌재 재판관을 지낸 인물이 부유한 파렴치범 변호를 자처한 건 곱게 보이지 않았다.거기에 서울 강남구 아파트를 장남에게 ‘매매’로 넘겼다는 사실도 있었다. 증여세 회피, 장남의 매수자금 형성 등을 둘러싼 의혹을 안 위원장은 “장남의 추억이 있는 집”이라는 말로 덮었다. 그의 행적은 인권, 정의보다는 부(富)와 재물에 진심이었다.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직함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개인적 우려는 12·3 비상계엄을 거치며 현실이 됐다. 이달 10일 인권위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방어권 보장 권고를 의결했다. 안건 명칭은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었지만, 골자는 헌재가 탄핵심판을 조속히 각하하고, 윤 대통령을 석방하란 것이다. ‘대통령의 위기’를 ‘국가의 위기’로 간주한 것. 절대왕정 시대나 통했던 “짐이 곧 국가다”와 비슷한 발상이었다.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참석한 위원 10명 중 안 위원장과 이충상, 김용원 등 6명이 찬성표로 통과시켰다. 18일에는 구속 기소된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여인영 전 방첩사령관 등 계엄군 수뇌부를 신속히 보석하라고 권고했다. 입법권을 잃을 뻔했던 국회, 1980년 광주로 되돌아갈 뻔했던 국민은 인권위의 관심사 밖이었다. 인권위가 보호하는 ‘인(人)’에는 계엄군 수뇌부와 윤 대통령밖에 보이지 않았다. 혹자는 국가윤(尹)권위원회가 됐다고 자조한다.내년에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승인소위원회의 각국 인권기관 등급 심사가 있다. 118개 회원기구로 구성된 이 연합의 심사는 5년마다 하는데 2021년 우리 인권위는 A 등급을 받았다.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인권기구의 독립성, 구성원의 다양성, 업무의 독립성 등이 평가 기준이다. 2001년 출범 이래 인권위가 지금까지 A 등급을 못 받은 적은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등급 결정이 연기된 적은 있었지만 결국은 A 등급을 받았다.하지만 내년에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세계 외신이 대한민국 국회를 밀고 들어가는 계엄군과 이를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대통령을 목격했는데, 그 대통령이 임명한 인권위원장은 대통령 구하기에 혈안이다. 대통령을 파면해야 한다는 여론이 50%를 넘고 인권위 직원들도 이건 아니라며 들고일어났지만 안 위원장과 측근들은 아랑곳 않는다.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학생들을 지키려 총장직까지 내던졌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1920∼2011)은 생전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정의와 진리와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어록을 남겼다. 최근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 누군가 이를 인용했다. 그런데 안창호표 인권위는 반대로 가고 있다. 역사는 나 몰라라, 오늘만 산다.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이 12·3 불법 비상계엄과 언론사 단전 및 단수에 관한 경찰과의 협조 지시와 관련해 10일 성명을 냈다. 노조는 “(계엄에서) 소방청장이 서울소방본부장에게 내린 언론사 단전 및 단수에 관한 경찰과의 협조 지시는 중앙의 불법적인 지시”라며 “이는 우리 소방공무원들의 안전과 권익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방직 전환과 정부 차원의 소방특별회계 설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노조는 “중앙의 불법적인 지시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며 “이러한 지시는 소방 서비스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저해하며, 현장 소방공무원들의 직무 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지방직 전환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는 “지방 소방 기관의 자율성을 강화하여 중앙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소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노조는 “정부 차원에서 소방특별회계를 설치할 것”도 요구했다. 노조에 따르면, 일본은 소방공무원이 지방직이지만 지방에서 필요로 하는 재난안전 관련 예산과 장비를 국가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이에 노조는 “이러한 모델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소방특별회계를 설립하면 긴급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을 위한 장비와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저도 솔직하게 보수적인 면도 좀 있습니다만 아주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과 교회, 시민·복지단체를 통해 우리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 온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88)는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달 19일 발생한 서울서부지법 난입 폭력 사태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가 겁을 먹어서 ‘그 말 들어야겠네’라고 하겠나. 대통령 못지않은 미숙한 판단의 전형적인 예”라고 강조했다. 4일 손 교수가 초대 이사장을 지낸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최근 한국 기독교의 모습과 사회 분열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대통령 본인에게도 해가 되고, 나라에도 해가 되는 판단이었어요. 한마디 더 하고 싶은 건 대통령의 이번 잘못은 과거의 독재자와는 좀 질이 달라요. 박정희 대통령 같은 독재자들의 잘못은 자기가 권력을 더 오래 잡기 위해 저지른 비도덕적 오류들이었어요. 그런데 윤 대통령을 도덕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하긴 어려워요. 자기 권력이나 이익을 위해 계엄을 한 게 아니거든요. 카테고리가 달라요. 나름대로 판단을 해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계엄을 한 건데 일종의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게 차이예요.” ―계엄과 탄핵을 지나며 한국 사회가 극도로 분열됐습니다. “계엄 선포가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그런 사건 아닙니까.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니까 계엄 선포에 대해서도 찬반이 있을 수 있고 집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자체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두 달이나 지나지 않았습니까. 법원 담장을 넘어가고(서울서부지법 난입 사건), 또 그런다고 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없고요. 지난번 두 번(노무현 박근혜)에 걸쳐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심판이 이뤄졌을 때 여당이고 야당이고 그걸 그대로 수용하고, 평화롭게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헌재의 권위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이제 탄핵 여부는 헌재에 맡기고 각자 생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집회와 난리를 계속하는 건 에너지 낭비일 뿐 아니라 경제에도 해를 끼쳐요. 보수의 시위는 오히려 대통령에게 불리한 효과를 가져오고, 진보도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2025년 한국은 어떻습니까. “지금 분열은 절대 국가 존망을 위협하는 위기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은 헌법과 경찰력이 제대로 작동하고, 법원이 제대로 재판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은 그 결과를 존중하고요. 다만 이번 사태로 국가와 국민이 손해를 많이 보는 거죠. 불필요한 낭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1970, 80년대 독재와 민주화 투쟁 당시, 독재와 반(反)독재의 상황, 그건 상당히 심각했지요.”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신학, 철학을 공부한 손 교수는 서울 영동교회에서 장로로 오랫동안 설교 사역을 했다. 1987년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1993년에는 밀알복지재단을 설립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요한일서 4장 20절의 구절을 외워 읊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이어 손 교수는 말했다.“성경은 사랑이 빠지면 다 헛것이라는데 요즘은 미움만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게 무슨 기독교입니까. 네 편, 내 편을 나눠 싸우고 욕하는 이들은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없어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랑인데, 기독교의 본질은 빼놓고 껍데기를 가지고 야단을 부르는 것 아닌가요? 저는 성경이 강조하는 사랑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유튜브 등이 극단적 주장의 확산을 부추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튜브를 일절 안 봐요. 최근 어떤 저명한 목사가 ‘우리 언론이 다 지금 엉터리가 돼 버렸는데 감사하게도 유튜브가 있어서 진실을 이렇게 찾아볼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대요. 어이가 없었습니다. 유튜브야말로 분열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영상을 보다 보면 비슷한 내용의 영상이 자동으로 자꾸 떠요. 확증 편향이 심해지는 거죠. 그래서 일반적인 언론, 즉 방송과 신문에 근거해서 사안을 판단하라는 게 내 주장이에요. 그래도 언론사는 우리 사회의 견제와 감시를 받잖아요. 유튜브는 아무런 감시도 안 받고 자기 맘대로 떠들어요. 대부분의 유튜버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해요. 그들의 발언 뒤에 사실은 조회수 늘리기, 돈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고, 거기에 넘어가면 안 돼요.” ―지금 한국의 교회 공동체와 종교 지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화해에 앞장서는 게 지금 교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주장을 하면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공격받습니다. 최근 한 목사가 ‘우리가 판단하지 말고 기도하자’는 말을 했다가 진보 쪽에서 욕을 먹고 있어요.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말해야지 무슨 판단을 보류하느냐’는 공격이 들어온 거예요. 하지만 이번 문제는 도덕과 비도덕, 윤리와 비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오류 문제인데 거기에 교회와 목사가 나서서 편을 든다면, 그게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과거 독재 정권 당시에는 목사님, 신부님들이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는데…. “그때와는 시국이 달라요. 그때는 정의와 불의, 윤리와 비윤리의 문제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기독교가 나서서 한쪽 편을 들면 사람들이 혼동하기 쉬워요. 사람들은 흔히 도덕적, 윤리적으로 잘못한 것도 ‘나쁘다’고 하고, 판단을 잘못 내린 것도 ‘나쁘다’고 해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르거든요. 현재의 상황은 ‘잘못된 판단’을 내린 대통령을 둘러싸고 두 진영으로 나뉘어서 서로 상대방에게 ‘비도덕적이다 비윤리적이다’ 정죄(定罪)하는 상태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점점 보수화, 극우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건 사실이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가 보수로 기울고 있어요. 유럽도 그렇고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악몽이 아직 남아있고, 북한이라는 비인간적 비도덕적 세력이 위협으로 존재하고 있단 말이에요. 6·25전쟁 때 순교자가 많았고 이게 아직 은연중에 작용해요. 여기에 더해, 진보 정부에서 추진한 사립학교법 개정, 차별금지법 제정 같은 문제에서 정부와 교회가 대립해서 교회의 보수화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어요. 미국은 낙태 이슈 때문에 교회와 진보 정부가 대립했어요. 저는 교회의 보수화 또는 진보화는 그 자체로 탓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다만 극단으로는 가지 말아야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집회에서 “윤 대통령을 구치소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 등의 극단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헛웃음을 지으며)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건전한 상식조차도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전 목사의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가 좌우로 너무 갈라져서 사람들이 믿고 싶은 걸 믿는 겁니다. 자신이 속한 진영의 논리에 무조건 따라가려고 하는데 이를 확증 편향이라고 해요. 굉장히 위험하고 미숙한 겁니다. 흑백 논리, 카우보이 영화에 가깝죠. 옛날 카우보이 영화 보면 좋은 편과 나쁜 편, 딱 두 종류의 인간만 나옵니다. 실제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요. 늘 중간이 있어요. 성경에도 선악이 있지만 악에도 단계가 있고 선에도 ‘거룩의 단계’가 있어요. 그 차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기독교계에서 바라보는 전 목사는 어떻습니까. “저는 목사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상당히 정치적인 야심도 있는 것 같아요. 기독교나 복음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아요. 적어도 우리에게 비치는 모습은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에서도 전 목사의 존재를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어요. 일부 교단은 전 목사를 이단으로 결정했습니다. 가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기독교적인 표현으로 보자면 ‘참람(僭濫·분수를 넘어 도가 지나침)’하달까요. 그런 표현을 예사로 쓴단 말이에요.” 2021년 9월 대한예수장로회 고신(예장고신) 교단은 전 목사에 대해 “이단성이 있으므로 교류와 참여를 금지한다”고 결의했다. 전 목사의 “나를 보고 성령의 본체라 그래”,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등의 발언이 문제가 됐다. ―일부 정치인이 연단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전 목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도 하는데…. “아주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이념적으로 동의해서일 수도 있고, 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기독교인만 있습니까? 정치인 본인에게도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소탐대실이죠. 정치인은 종교적 편향을 굉장히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런 행동은 현명하지도 바람직하지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88)△1937년 경북 포항 출생△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신학 석사△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 철학 박사△1983∼2003년 서울대 사범대 사회교육과 교수△1993∼2003년 밀알복지재단 설립 및 초대 이사장△2004∼2008년 동덕여대 총장△현 서울대 명예교수·고신대 석좌교수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지난해는 대한민국 경찰에게 악몽이었다. 경찰서에 보관 중이던 압수물 현금을 경찰관이 횡령하고, 지방선 순찰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여성이 36시간 갇혀 있다 숨졌다. 업무 과중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중 경찰 자살도 잇달았다. 밖에서는 “무능하고 부패했다”는 비판이, 안에서는 “더는 못 해먹겠다”는 자조가 만연했다. 설상가상 12·3 불법 비상계엄 사건이 터졌고 경찰 넘버 원투가 동시에 구속됐다. 경찰의 위기였다. 변곡점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이었다. 관저에서 버티던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을 2025년 1월 15일 경찰이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신병 확보였다. 경찰은 미리 대통령경호처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안에서부터 붕괴시켰고, 체포 당일 경호처 누구도 경찰을 막아서지 못했다. 국민 여론, 시민사회가 경찰을 응원했다. 심지어 경찰과 대척점에 서 있는 노동계도 그랬다. 2023년 고공 농성 중 경찰에 강제 진압된 김준영 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처장(현 금속노련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살다 살다 경찰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볼 줄이야”라고 썼다. 경찰은 법 집행 능력을 온 국민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계엄 수사가 흘러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부족함도 드러났다. ‘내란죄 수사권 논란’이다. 사실 이는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모든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에는 내란죄가 없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역시 대통령을 수사할 수는 있지만 내란죄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대통령이 내란죄를 저질렀다. 누가 수사할 수 있는가’를 객관식으로 내면 ①경찰 ②검찰 ③공수처 중 정답은 이견 없이 1번이다. 검찰과 공수처가 ‘관련성 있는 범죄’라며 대통령 내란죄를 수사하겠다고 주장했고,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가 맡았지만 사실 논리는 빈약하다. 마약범이 마약 운반 도중 교통사고를 냈는데 경찰서 교통조사계가 “관련성 있는 범죄”라며 마약 수사를 하겠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경찰 스스로도 대통령 수사를 공수처에 넘긴 사정이 있다. 가장 큰 우려는 수사 역량 부족이다. 검찰총장 출신 ‘법꾸라지’ 대통령을 상대로 허술한 수사 결과를 공판검사에게 넘겼다가는 재판에서 자칫 ‘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 경찰의 급선무는 검찰, 공수처에 비견될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앞에 앉혀 놓고 신문할 수 있는 엘리트가 경찰에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열악한 처우와 보수 탓에 경력 변호사 지원율은 갈수록 떨어진다. 2022년 1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를 출범시킬 때 참고한 것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모델이다. FBI에는 정보 전술 분석가, 정보기술(IT) 전문가, 법의학자, 회계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과학자, 변호사 등 3000명이 넘는 고급 인력이 포진해 있다. 정부와 국회가 ‘한국판 FBI’를 만들겠다며 경찰에 국가수사본부 간판을 달게 했으면 그만큼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사건이 있을 때만 국회의원들이 떼로 몰려와 “경찰만 믿는다”며 달콤한 말을 늘어놓고 가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고급 두뇌, 소프트웨어를 기를 예산과 입법 지원이 필요하다.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한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소방노조)는 13일 “제주항공 참사 관련 유가족 및 소방관 트라우마 대책 마련 촉구 성명”에서 이번 참사 관련자들의 트라우마 예방, 치료를 위한 대책을 요구했다. 소방노조는 “유가족과 피해자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며 “구조와 수습에 투입된 소방관들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동시에 안고 있다”고 밝혔다.소방노조는 “우선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유가족을 위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심리적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참혹했던 참사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을 위한 대책도 촉구했다.소방노조는 “소방관들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구조 활동을 수행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 충격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며 “대규모 재난 현장에서 직접적인 트라우마를 경험했다”고 지적했다.이어 “소방관들을 위한 전문 심리치료 및 상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장기적인 치료 및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2024년 12월 31일 김홍락 국토교통부 공항정책관은 무안 제주항공 참사 브리핑 중 ‘콘크리트 둔덕’ 논란에 “그게 공항구역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으니까 재료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콘크리트 지지대를 받쳤다”고 했다. 사고 여객기가 충돌한 둔덕이 왜 그 자리에 설치됐는지, ‘부서지기 쉬운 재질’이라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왜 콘크리트인지 논란이 커진 와중이었다. 둔덕 바로 앞까지가 종단안전구역이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현장 기자들의 지적에 김 정책관은 “국제 규정을 봐야 된다는 게, 영어로 하면 인클루딩(including·포함된)이냐 업투(up to·∼까지)냐 여기서 갈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179명이 숨진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자리에 슬며시 ‘인클루딩’과 ‘업투’ 해석 문제를 꺼내 든 공무원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불안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다음 날 해양경찰청은 해난구조대(SSU), 특수전전단(UDT) 등을 동원해 대대적으로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지만, 나중에 공개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거센 조류 때문이었다. 김석균 당시 해경청장은 실종자 가족들에게 잠수사 500여 명을 투입했다고 했지만,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보고받은 투입 인력은 ‘8명’이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음 날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사고 직전 우려할 정도의 인파에 112 신고가 빗발쳤단 사실이 공개됐다. 감사원은 이 사건 감사를 내부적으로 의결해 놓고도 대외 브리핑에선 “구체적 계획이 없다”고 거짓말했다. 정권에 미칠 부담을 염려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미국 언론인 이시도어 파인스타인 스톤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쟁 과정에서 ‘통킹만 사건’을 날조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미국 대부분 언론은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 썼지만 스톤은 4쪽짜리 주간지 ‘스톤 위클리’에 정부 발표가 거짓이라고 보도했다. 1971년 공개된 미국 국방부 기밀문서에서 스톤의 보도는 사실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기자 출신인 마이라 맥퍼슨은 스톤의 평전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All Governments Lie)’(문학동네)에서 “스톤은 정부의 설명에서 혼란과 사실관계의 불일치, 얼버무림 같은 이상한 부분들에 주목했다”고 평가했다. 제주항공 참사의 진실 규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콘크리트 둔덕의 탄생 배경과 관련자를 둘러싼 의문도 쌓이고 있다. 과거 우리 정부는 스스로가 비극의 원인이나 결과 어딘가 닿아 있을 때마다 알아듣기 어려운 레토릭과 모호한 해명, 거짓 발표로 책임의 흔적을 문질러 버리려 했다. 국민과 유족은 국토부가 가진 권한과 전문성으로 이번 사고의 진실까지 ‘업투’해서(도달해서) 책임 있는 국토부 전현직 관련자에게도 칼날을 겨눌 수 있길 기대했다. 하지만 요즘 국토부의 발표를 볼 때마다 의문점이 늘어만 간다. 어쩌면 그들이 사고 조사 주체가 아니라 책임과 처벌 대상에 ‘인클루딩’ 되어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①“경고용이었다”=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한 다음 날(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등을 만나 “계엄은 야당의 폭거에 대한 ‘경고용’ 조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10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의결 정족수가 아직 다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윤 대통령의 비화폰 지시 발언을 폭로했다. 계엄군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는 건 누가 봐도 경고성이 아니다. 거짓말이 드러나는 데 고작 6일 걸렸다.②“지시 안 했다”=대통령실은 7일 기자들에게 “대통령은 그 누구에게도 국회의원을 체포, 구금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날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국회에서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정리하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 체포 대상 정치인 목록을 공개했다. 다행인지 대통령실은 “잘 들어봐라. 싹 정리하라는 말이 꼭 체포 구금하라는 말은 아니다”란 식의 이상한 해명은 내놓지 않았다. 하루도 못 간 거짓말이다.③“TV 보고 알았다”=조지호 경찰청장은 5일 국회에서 “계엄 선포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곽종근 전 사령관은 6일 유튜브에서 “(뉴스) 자막으로 알았다”고 했다. 전부 거짓말. 드러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조 청장은 미리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 불려가 윤 대통령에게 직접 계엄 작전지휘 문서를 받고 작전계획 ‘브리핑’까지 들었다. 곽 전 사령관은 계엄 이틀 전 김용현 당시 국방장관에게서 계엄 임무 지점 6곳을 하달받았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둘 다 일주일도 못 가 드러났다. 보통 범죄에 연루된 이들이 거짓말을 한다면 범행을 숨기고 싶어서다. 혹은 떨어질 처벌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자는 심산일 수도 있다. 일부는 거짓말을 통해서라도 명예를 지키고 싶을 수도 있다. ‘나는 연루되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이번 계엄은 전 국민과 외신이 범행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경찰,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경주마 질주하듯 수사 중이다. 인적 물적 증거는 차고 넘친다. 진실과 처벌이라는 결과가 더디게 올 수는 있겠지만, 그 도착은 확실하다. 입을 맞춘 거짓말의 축은 1, 2명씩 대열을 이탈하며 허물어지는 중이다. 그날 밤 대통령의 얼굴색이 어땠는지까지 드러나지 않았나. 아직도 ‘내가 입을 다물면 진실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가장 큰 죄를 지은 이보다, 가장 마지막까지 숨긴 이에게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법이다. 진실을 밝히는 데 소모될 노력, 시간을 조금이라도 덜어 허물어진 나라를 재건하는 데 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2024년 한국에서 대통령 임기가 절반밖에 안 돼 이런 초유의 국난이 벌어질 거라 상상한 국민은 없었다. 그를 뽑았든 뽑지 않았든 같은 심정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말했었다. “저는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제야 드러난 거짓말인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된 건지. 본인만 알 따름이다. 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보유한 주식을 백지신탁하지 않으려 구청장 직에서 물러난 문헌일 전 서울 구로구청장이 경찰에 고발당했다. 21일 시민단체 ‘문헌일 백지신탁 거부 사퇴 책임추궁 구로시민행동’(이하 구로시민행동)은 문 전 구청장을 직무유기, 사기,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앞서 문 전 구청장은 170억 원 상당의 보유 주식에 대해 백지신탁을 거부하며 구청장 직에서 물러났다.구로시민행동은 고발장에서 “문 전 구청장은 4년간 구청장직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으나 주식백지신탁 결정을 회피하기 위해 사퇴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유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직자에게 부여되는 주식백지신탁 의무를 다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음에도 이 사실을 선거구민에게 알리지 않아 기망했다”고 비판했다.구로시민행동은 “결국 선거에서 당선돼 선거 비용보전금 약 2억 원을 받았는데 이는 사기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문 전 구청장은 1990년 정보통신 설비기업 문엔지니어링을 설립해 현재 이 회사 주식 170억 원 어치를 보유 중이다. 구청장 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식을 백지신탁해야 하는데 문 전 구청장은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문 전 구청장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지난달 16일 사퇴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소설가 한강(54)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우리 사회 전반에 파장을 몰고 왔다. ‘종이책의 종말’이 임박한 듯했던 서점가에는 다시 손님이 장사진을 이뤘고 인쇄소는 밀려드는 주문량에 24시간 인쇄기를 풀가동했다. 해외에서도 한강의 번역본뿐 아니라 한글판 원서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인쇄소는 ‘풀가동’, 중고책도 ‘웃돈’ 10일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닷새가 지난 15일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한강의 책들은 전자책을 포함해 총 100만 부를 돌파했다. 15일 오후 4시 기준으로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에서 판매된 한강의 종이책은 총 97만2000권이다. 전자책을 포함하면 총 105만 부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뿐만 아니라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희랍어 시간’ 등 다소 생소했던 한강의 작품들도 함께 조명을 받고 불티나게 팔렸다. 총 200만 부를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간 책 판매량을 공개하는 데 인색했던 서점가는 이례적으로 날짜별, 시간별 판매량을 생중계하듯 공개했다. 출판계에서는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5일간 한강이 벌어들인 인세만 15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보통 저자는 책 판매액의 10%가량을 인세로 받는다. 출판사와 인쇄소도 바빠졌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13일 오후 찾아간 경기 파주시 천광인쇄사는 말 그대로 ‘비상 상황’이었다. 주말도 반납하고 출근한 직원 20여 명이 쉴 새 없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찍어내고 있었다. 인쇄사 관계자는 “인쇄기 두 대가 24시간 풀가동 중이다. 1분도 쉴 수가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을 낸 문학동네 역시 증쇄를 결정했고 문학과지성사는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 6종을 수상 소식이 발표된 이후 주말 내내 인쇄했다. 새 책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중고책에도 ‘웃돈’이 붙어 팔려나갔다.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 등 주요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한강 저서의 초판본, 1쇄, 작가 사인 한정판 등이 20만∼50만 원대 가격에 거래됐다.● 한강 모교, 고향 등에서는 잔치 한강의 고향과 모교 등은 세계적인 문인을 배출했다는 소식에 흥겨워했다. 한강은 초등학교 1∼3학년을 광주 북구 중흥동 효동초에서 다녔는데 이달 16일 이 학교에서는 ‘한강이 궁금해’란 주제로 야외 수업이 열렸다. 이 학교 6학년 학생들은 ‘소년이 온다’에 담긴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야기 등을 들었고 한강에게 보내는 ‘희망편지’를 썼다. 한강의 부친 한승원 작가(86)가 사는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에서는 13일 주민 1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마을 잔치가 열렸다. 한승원 작가 역시 주민들의 초대를 받았지만 딸의 뜻을 존중해 감사 인사만 전하고 잔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한강의 모교 연세대는 시인 윤동주에 이어 노벨 문학상 작가 한강을 배출했다는 소식에 뿌듯해했다. 연세대는 “윤동주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연세 문학의 감수성인 동시에 140년 가까이 이어온 연세 교육의 지표”라고 축하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만난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은 “한강 작가의 후배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 “국문과라는 진로에 확신이 서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프랑스, 중국 등에서도 뜨거운 반응 해외서도 한강의 수상 소식은 뜨거운 반응을 몰고 왔다. 일본 도쿄에 있는 기노쿠니야 서점 신주쿠 본점에는 ‘축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이라는 홍보 문구가 적힌 서가에 한강의 책에 내걸렸다. 일본어로 번역된 책들은 들여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고 영문판과 한글판 등만 조금 남아 있었다. 서점 관계자는 “한국 문학은 원래도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 다른 노벨 문학상 발표와 비교했을 때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한강의 책이 빠르게 팔려나간 덕분에 현지 출판사도 ‘작별하지 않는다’ 긴급 추가 인쇄에 들어갔다. 중국 최대 온라인 서점인 당당왕에서도 인기 검색에서 ‘한강’ ‘채식주의자’가 각각 1, 2위에 올랐다. 이 서점은 한강 작품의 재고가 없는 탓에 일단 예약 판매로 주문을 받았다. 영국 런던에서도 한강의 책은 실시간으로 팔려나갔다. 한 대형 서점 관계자는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한강의 책을 사 갔다”고 전했다. 일부 고객은 비록 한국어를 모르지만 한국어판이라도 구하려고 수소문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이 노래를 발표한 2019년 당시 남매 그룹 악동뮤지션(악뮤)의 오빠 이찬혁은 23세, 동생 이수현은 20세였다. 사랑, 이별, 죽음을 몇 바퀴는 경험했을 중장년도 아닌, 갓 20대 문턱에 선 남매의 손끝에서 나온 문장이라는 사실이 서늘했다. 이 노래로 노벨 문학상 작가 한강을 울린 악뮤는 학교를 다닌 기간이 짧았다. 남매는 초등학생 때 선교사 부모님을 따라 몽골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정규 학교를 안 다니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밥에 간장을 비벼 먹고 스키니진 한 벌 맘대로 사기 어려운” 가계 상황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환경 덕분에 악뮤의 천재성은 만개했다. 악보도 쓸 줄 몰랐지만 오빠가 콧노래를 부르면 동생은 멜로디로 만들었고, 밥공기 위에서 줄줄 흐르는 계란프라이를 노래로 만들었다(‘후라이의 꿈’). 0교시부터 보충수업까지 이어지는 수업 시간표 대신에 자율이 주어졌고, 학교가 정한 교과서 대신에 원하는 소설책을 잡을 수 있었다. 남매의 부모는 홈스쿨링 초반에 학교처럼 수업 시간표를 만들어 놓고 집에서 몇 번 해봤다가 나중에 찢어버렸다고 한다. 대신 아이들이 고드름을 보면서 글을 쓰거나,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면 일부러 “정말 잘한다”고 과장하듯 칭찬했고 그게 신이 나서 더 하더라고 회상했다. 한강 역시 부친 한승원 작가의 회고에 따르면 어렸을 때 혼자 방에 누워 공상과 몽상을 즐겼다고 한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않고 어디 갔는지 찾아보면 혼자 자기 방에 누워 ‘멍 때리고’ 있는 때가 많았다. 뭐 하냐 물으면 “공상을 해요”라고 했단다. 조급한 요즘 부모들 같았으면 아이가 사교성이 부족하다며 놀이학원이나 태권도장이라도 끌고 갔을 법한데, 부친은 “일어나 공부해라”, “나가서 좀 놀아라” 채근한 적이 없었다. 대신 자기의 본업인 글쓰기를 했고 딸은 이를 지켜보며 자랐다. 한강과 악뮤. 이 둘을 ‘천재’ 따위 수식어로 묶는 건 좀 얄팍하다. 그보다는 자유로운 환경과 마음껏 고민하고 공상하고 도전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이 만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는 환호를 보내는 동시에 초조한 모습이다. 벌써 제2의 한강을 배출해야 한다, 제2의 악뮤로 만들어야 한다며 분주하다. 학원가에는 ‘한강처럼 글쓰기’, ‘한강 독서 스터디’ 광고가 내걸렸고, 학부모들은 글쓰기 교실을 수소문 중이다. 서점 매대에는 ‘한강처럼 아이 키우기’ 등 책이 조만간 깔릴지 모른다. 모든 위대한 사람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공부법과 교육법으로 치환하고, 결국엔 사교육으로 환원시키는 이 나라의 고질병이 또 도질 모양새다. 노벨상은 세계 1등에게 주는 상이 아니다. 굳이 따지면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공감하고, 실패하면서도 다시 시도한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제2의 한강, 제2의 악뮤는 나올 필요 없고 나올 수도 없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데 굳이 ‘제2의 누구’를 배출해야 할까. 아이에게 주어진 기질을 믿고 키워 주다 보면 언젠간 그들 인생에 꽃을 피울 때가 오지 않을까. 굳이 그게 노벨상이 아니더라도.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영화 ‘은교’에서 박해일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요즘 벌어지는 현실은 노인들에게 가혹하다. 특히 60대 이상은 ‘고령층’이란 카테고리로 한데 묶이는데 이들이 사건 사고에서 언급될 때마다 비난 댓글이 넘친다. 7월 벌어진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의 가해 운전자 차모 씨가 1956년생, 신문 나이로 68세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먹먹했다. 기자의 아버지와 동갑이었다. 차 씨는 자신이 가속 페달이 아닌 감속 페달을 밟았다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그의 신발 자국은 가속 페달에 남아 있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여러 번’ 밟은 것으로 확인됐다. 평생 운전을 업으로 해왔고 ‘운전 베테랑’이라고 불렸던 차 씨는 황혼의 나이에 운전 미숙으로 9명을 숨지게 한 가해자가 됐다. 그가 왜 가속 페달을 밟았는지는 아직도 이유를 모르지만, 이미 여론은 그의 ‘고령’을 원인으로 결론지었다. 이후 ‘고령’은 핫한 키워드가 됐다. 8월에는 60대 여성이 테슬라 전기차를 몰다 페달 조작 실수로 카페를 들이받았다. 이달 13일에는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70대 운전자가 돌진 사고를 냈고, 부산에선 행인 1명이 숨졌다. 이달 20일에도 서울 강북구 미아동, 경기 고양시, 경기 용인시에서 70대 운전자들이 몰던 차량이 돌진해 사상자가 나왔다. 사망자 2명을 포함해 사상자 8명이 나왔다. 그때마다 ‘나이’를 지목하며 ‘역시나’ 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다시 68세 시청역 차 씨, 그는 고령일까. 솔직히 어렵다. 동갑내기 인사들을 찾아봤다. 미국 배우 톰 행크스와 멜 깁슨, 탤런트 유동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현역 정치인 최춘식 김성기,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 모두 1956년생이다. 차 씨 사건 이후 65세 이상은 면허를 제한해야 한다, 회수해야 한다 등 의견도 있었는데 위 동갑내기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행크스는 요즘 신생 업체가 생산한 박스형 소형 전기차를 몬다고 한다. ‘고령’은 다른 한편에선 피해자의 이름이다. 앞에 언급한 고양시 사고의 사망자는 차로에서 폐지 손수레를 끌던 60대 노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폐지 손수레를 끄는 노인은 1만4800명이 넘는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손수레 노인과 동행했을 때 여러 번 눈앞에서 위험을 목격했다. 운전이 미숙한 고령의 가해자가 생계를 위해 수레를 끌던 고령의 피해자를 치어 숨지게 하는 기막힌 상황의 밑바닥에는 고령화사회의 그림자가 짙다. 이 같은 사건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총 3만9641건으로 2005년 이후 가장 많았다.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는 치사율(2.1%)도 전체 교통사고 평균(1.4%)보다 높다. 공유 자전거, 공유 킥보드, 차량공유 서비스에 익숙해진 젊은 층은 점점 운전면허와 ‘내 차’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사이 고령 인구는 꾸준히 늘 테고 노인이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로 직면하는 사건 사고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노인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 부착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우리도 늦기 전에 정부와 국회의 대책 논의가 필요하다.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시민단체 선플재단을 이끄는 민병철 이사장(중앙대 석좌교수)이 필리핀 하원 내 비례정당 ‘필리핀 해외노동자’(OFW) 정당이 수여하는 ‘글로벌 화합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마리사 막시노 하원의원이 대표로 있는 OFW 정당과 부하이 OFW 재단은 5일(현지 시간)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메리어트 호텔에서 제3회 임팩트 어워즈를 열었다.OFW 정당은 올해 한-필리핀 수교 75주년을 맞아 선플운동과 외국인 존중(K리스펙트) 캠페인 등을 꾸준히 진행해온 민 이사장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준 인물이라고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민 이사장은 2007년 대학생들과 함께 한국 최초로 시작한 선플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7000여 학교 및 단체와 84만 명 이상의 누리꾼,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여 중이다.OFW 정당은 특히 선플재단이 지난해 12월 필리핀에서 필리핀상공회의소(PCCI) 산하 한-필리핀 경제협의회(필코렉·PHILKOREC)와 공동으로 선플비즈니스클럽을 발족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민 이사장은 수상 소감에서 “모든 인간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며 “증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긍정적인 언어의 힘을 활용해 고통받는 이들을 치유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한국에서 외국인에게 존중을 표시한다면 해외 여행을 하거나 타국에서 사는 한국인들도 그 나라에서 존중받을 거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그의 아내는 늘 잠이 모자라서 꾸벅거리던 남편의 고달픔과 그리고 현장 2층의 암흑 속에서 숨이 끊어지기까지 남편이 혼자서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뜨거움을 되뇌면서 쓰러져 울었다.’ ―김훈 ‘소방관의 죽음’ 중(라면을 끓이며·2015년) 6년 전 소설가 김훈의 이 문장으로 짧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1995년 5월 24일 전남 여수 교동 중앙시장에서 16명을 구한 뒤 화마(火魔)에 숨진 여수소방서 소속 고 서형진(당시 29세) 소방사의 사연이다. 장래 희망에 늘 ‘소방수’라고 적었다는 김훈의 소설에는 그래서인지 소방관이 자주 등장한다. 질주하는 소방차와 불길 속으로 달려가는 소방관들의 모습에서 김훈은 국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15년여 전 초년병 기자 시절 소방관을 만날 기회들이 있었다. 한 소방관은 산불을 진압하다 그을린 나뭇가지가 뒷목에 떨어져 화상을 입었다. 그는 공상 처리를 받지 못해 자비를 털어 병원에 다녔다. 다른 소방관은 밀린 수당을 달라는 소송에 동참했다가 구급대로 좌천됐다. 오십을 앞둔 소방관은 스물다섯 기자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22일 부천 호텔 화재 현장에서의 소방 대응을 둘러싸고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낡고 뒤집힌 에어매트, 119 신고 접수 과정에서의 대응 지체, ‘에어매트를 거꾸로 깔았다’는 거짓 소문까지. 에어매트는 공기 주입 호스가 아래쪽에 있어 거꾸로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못 찍힌 사진 한 장으로 소방관들이 조롱을 받았다. 부천 현장 소방관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착 당시 이미 호텔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검은 연기로 꽉 차 있었다. 골목은 폭이 좁고 주차된 차들 탓에 굴절사다리차를 고정할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에어매트를 폈다. 사용 연한이 11년 지났지만 혹시 모를 추락자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나을 걸로 판단했을 것이다. 소방관이 수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뛰어내리고 매트가 뒤집히고 또 뛰어내리는 상황은 예측 불가능했다. 수사가 시작됐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가려질 것이다. 소방의 대응이 도마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논쟁의 결과가 신상필벌과 망신 주기는 아니길 바란다. 다음 재난 현장에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여전히 소방관은 열악한 지경에서 근무한다. 초과근무 수당을 받으려면 15년 전처럼 지자체와 싸워야 한다. 소방관 치료비, 간병비는 2009년에 정해진 금액 그대로다. 국립경찰병원은 1949년(1991년 서울 송파로 이전), 국군수도병원은 1951년(1999년 경기 분당으로 이전)에 생겼는데 국립소방병원은 아직 없다. 역대 정부에서 번번이 무산됐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 때 건립이 확정돼 현재 공정 약 30%다. 인력 부족도 여전하다. 2022년 말 기준으로 현장 소방 인력 부족률은 전국 평균 10%, 전남 울산 등은 20%를 넘는다. 부천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소방의 열악한 현실이 개선되길 바란다. 소방관이 낡은 에어매트를 새것으로 교체할 순 없다. 소방관이 스스로 인력을 충원할 순 없다. 이는 소방의 능력과 권한 밖이다. 예산을 배정하고 통과시키는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다. 소방관들에게 너무 많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지 않길 바란다. 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지난주 강원 고성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멸치만큼 작은 물고기들을 제법 잡았다. “알록달록 노랗네. 라면에 넣어 끓여줄까?” 두 딸은 환호했다. 생긴 게 예뻐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검색했더니 복어 새끼였다. 요단강 건널 뻔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중에 찾아보니 새끼 복어는 독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복어가 원래 동해에서 잡혔나. 찾아보니 본디 따뜻한 물을 좋아해 제주 근해에서 잡혔는데 언제부턴가 동해에서도 잡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난류가 북상하며 복어가 올라왔고, 그 자리에 있던 오징어는 밀려났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5, 6마리에 1만 원가량 하던 오징어회는 이제 몇 마리 얹어 한 판 정도 먹으려면 “지역 군수, 의원은 돼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홍어는 난류에 쫓겨 북상했다. 찬물을 좋아하는 홍어는 원래 흑산도에서 많이 잡혔으나 지금은 약 140km 북쪽인 군산 앞바다에서 가장 많이 잡힌다. 군산 홍어가 전국 홍어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어디서든 많이 잡히기만 하면 소비자는 딱히 불만이 없다. 기자는 극도로 지친 날이면 밤늦게 귀가해 냉장고에 보관해 놓은 삭힌 홍어 몇 점을 접시에 던다. 불 꺼진 주방에서 숨죽여 막걸리랑 먹으면 다시 출근 의지가 생긴다. 군산산(産)이든 흑산도산이든 칠레산이든 상관 없다. 그런데 지역 어민은 생계가 달린 문제다. 어획량을 둘러싼 다툼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온난화가 인간 사이 다툼으로 옮겨붙은 사례다. 어릴 때 물리게 먹었던 명태의 경우 이제 국산은 자취를 감췄다. 생물로 끓여 먹고 얼려 먹고 튀겨 먹고 말려 먹고 말린 뒤 때리고 찢어 먹던 국민 생선은 요즘 어딜 가나 ‘러시아산’이다. 1980년대만 해도 매년 20만∼30만 t이 잡혔고 고성 등 항구마다 명태잡이 배가 가득했지만 지금은 수온 변화를 견디다 못해 북상했다. 40여 년 사이 동해 주요 어종이 명태와 도루묵에서 오징어와 청어로, 다시 복어와 방어로 바뀌고 있다. 우리 바다와 식탁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 지구적 현상의 축소판이다. 2018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 논문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인 1880년대와 비교했을 때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오르면 온난기(Warm Period)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140여 년간의 온도 상승 폭이 약 1도였으니, 이제 앞으로 1도 남았다. 에어컨 리모컨으로 1, 2도쯤은 왔다 갔다 하니 별 감이 안 오겠지만 지구 기온이 평균 2도 이상 오르면 모든 생물 종(種)의 절반가량은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인간이 먹는 것들의 생존 문제이자 인간의 생존 문제다. 여전히 우리 정부도, 국민도 기후변화와 온난화 문제는 절실하지 않은 분위기다. 북극에서 빙하가 녹고 아프리카에서 강이 마르는 먼 문제로 여긴다. 어린이집이 무더기로 문 닫고 서울 초등학교가 폐교되는 걸 본 뒤에야 “출산율 저하가 문제”라고 호들갑 떠는 것처럼 온난화와 기후변화 역시 임박해서야 그럴 듯하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시점이지 않을까. 지금 무슨 대책을 내놔도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서울은 최근 118년 중 가장 긴 열대야를 기록했다. 에어컨 없이는 밤에 아이들을 재울 수 없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1일 서울 중구 시청역 뒤편 사거리에서 9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총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역주행 참사 현장에는 본보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이 있었다. 당일 오후 9시 37분에 본보 사건팀 카카오톡 단체톡방에는 사건팀장의 톡이 올라왔다. ‘시청역 교차로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 쓰러진 사람이 대략 10명 정도. 심폐소생 중이나 일어나는 사람이 없다.’ 사건팀 기자가 찍어 올린 사진 여러 장에는 핏자국, 부서진 가드레일, 생사를 짐작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몇 분 전 공교롭게도 본보 사건팀 기자들은 그 현장에 있었다. 일을 마치고 간단한 술자리를 위해 시청역 뒤편 한 식당에 모이기로 했었다. 서로 휴대전화를 들고 “지금 어디야?” 물으며 신호를 기다리던 순간 눈앞에서 ‘그 일’이 벌어졌다. 저녁 모임 장소는 갑자기 참사 현장으로 변했다. 기자들은 곧바로 취재해 보고를 올렸다. 몇몇은 현장에 남았고 몇몇은 회사로 복귀했다. 시신을 목격하고 온 한 젊은 기자는 “괜찮냐?”는 물음에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얼굴이 창백했다. 대형 참사 현장을 겪은 기자들은 종종 정신적 충격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곤 한다. 10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나는 세월호 침몰 취재를 위해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내려가 두 달을 보냈다. 당시 시신이 너무 많아 팽목항 구석 자갈밭에 임시 시신안치소가 세워졌다. 바다에서 올라온 시신을 구조대원들이 시신 가방에 넣어 들고 올 때면 저벅저벅 소리가 자갈밭에 울렸고, 그 소리는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같이 취재했던 동기들은 한동안 참사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이 죽고 다치는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것이 직업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통과 여파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현장 기자들이 그렇게 일하고 있다. 2022년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설문 참여 기자 544명 중 428명(78.7%)이 ‘기자로 근무하는 동안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은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그중에는 트라우마가 한 달 이상 갔다는 비율이 43.9%였다. 보통 트라우마가 한 달을 넘어가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분류된다. 역주행 참사가 발생한 날에도 사고를 낸 운전자의 나이가 70대냐, 60대냐, 1956년생 68세냐를 놓고 편집국에선 정보가 엇갈렸다. 기자들이 경찰에 거듭 확인한 뒤에야 ‘68세 남성’이라고 쓸 수 있었다. 현장에서 갓 돌아온 기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의 여파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거듭 취재해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를 수정, 또 수정하는 일을 계속 했다. 기사 송고, 강판 등 모든 작업을 마치고 밤 12시가 넘어서야 광화문역에서 막차를 타고 귀가할 수 있었다. 젊은 기자들은 시신이 옮겨진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이날 누군가는 돌연 생을 마감했고, 누군가는 노트북과 카메라를 들고 뛰었다. 누군가는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 참혹한 광경에 잠들지 못했으며, 그 기억과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갈 것이다. 이은택 사회부 차장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