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택

이은택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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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정책사회부, 산업부, 오피니언팀, 정치부를 거쳐 현재 국제부에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살고 죽는 일과 닿아 있는 해외 소식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되도록 쉬운 문장으로 진실되게 쓰겠습니다.

nabi@donga.com

취재분야

2024-05-04~2024-06-03
칼럼41%
사회일반33%
기업7%
교육7%
보건3%
국회3%
지방뉴스3%
기타3%
  • [광화문에서/이은택]가망 없는 환자에게도 의사들이 달려가는 이유

    미국 의학 드라마 ‘하우스(House M.D.)’에서 괴팍한 그레고리 하우스 박사와 그의 진단의학팀은 별의별 희귀질환 환자들을 마주한다. 이들은 질환, 체질, 사연을 일부러 숨기는데 하우스팀은 자택 수색까지 하며 단서를 찾는다. 그렇게 진단을 내려도 처음에는 빗나간다. 다시 토론, 검사를 반복해 병명을 찾아낸다. 그래도 가끔은 환자가 사망한다. ‘사람 하나 살리기 이리 어렵구나’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3월 “행위별 수가제를 유지하면 의료비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 국민 건강 회복이라는 의료서비스 목적에 중점을 둔 가치기반 지불제로 혁신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가치기반 지불제도의 골자는 환자의 회복 정도, 생존 여부 등에 따라 의료비를 지급하는 것이다. 진료 등 ‘행위’가 아니라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주는 것. 박리다매식 진료와 낮은 급여 수가 탓에 필수의료가 붕괴에 이르자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의료비 지출은 큰데 의료 수준은 열악한 국가들이 주로 도입했다. 최우선 목적은 효율성 확보, 의료비 지출 감축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우려가 나온다. 한 필수의료과 전공의는 “이는 자칫하면 죽을 것 같은 환자는 치료하지 말라, 이국종 같은 의사들에게는 돈을 안 쓰겠다는 말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가치기반의 시점에서 이들은 의료비 낭비이기 때문이다. 전면적인 가치기반 지불제하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인 하우스 박사팀이 진료비를 받지 못해 해체될지 모른다. 미국에서는 일부 우려가 현실화했다. 폐렴 등 급성 질환은 사회경제적, 기존 건강 요인 때문에 같은 시술, 치료를 받더라도 흑인이 백인보다 예후가 더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때문에 흑인 환자 비율이 높은 공공병원이 백인 환자 비율이 높은 병원보다 적은 의료비를 지급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불제도가 인종 간 의료 격차를 악화시키고 있다. 의료에서는 1+1이 2가 아닐 수 있다. 최선의 약과 수술이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개인의 특성과 변수들, 의료 지식의 한계 탓에 최선의 치료에도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의료진이 기울인 노력에 ‘0원’ 가격표를 매겨야 할까. 치료 결과가 좋으면 진료비를 많이 주고 그렇지 않을 땐 페널티를 준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병원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더 노력할까. 현실은 다를 가능성이 크다. 병원은 애초 회복 가능성이 큰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분류하고 되도록 전자에게만 의료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그래야 안정적인 수익이 난다. 이윤 추구가 본질인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다. 다행히 지금의 병원에서는 가망 없는 환자여도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의사들이 달려온다. 약물을 투여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숨을 거두면 사망 선고를 내린다. 이 모든 행위의 결과는 죽음, 0원이다. 하지만 인간과 의사만이 이런 비효율과 비생산에 기꺼이 비용과 노력을 지불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지 않으면 노인, 빈곤층, 희귀질환자 등 의료 소외 계층은 앞으로 병원 입구를 넘지 못할 수 있다. 숨이 붙어 있어도 가망이 없다면 서둘러 영안실로 보내버리는 ‘효율적인 미래’가 올지 모른다. 정부의 신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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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내일도 의료대란은 없다… ‘정부’와 ‘의사들’에 따르면

    2월 20일 본격화된 전공의 병원 이탈이 세 달째인데 정부 발표에 따르면 병원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입원 환자는 평시와 유사한 수준”(3월 20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며 “의료 현장에 혼란은 없었다”(4월 26일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는 것이다. “진료 중단 등은 없을 것”(5월 3일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이라고도 했다.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만난 복지부 고위 관계자도 웃으며 “이 정도는 다 저희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역시 정부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그런데 환자들에게 물어보면 상황이 좀 다른 것 같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3월 초 뇌하수체 종양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던 환자는 수술이 무기한 연기됐다. 울산대병원에서 4월 17일 신장암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던 환자는 전날 입원을 준비하던 중 수술 취소 통보를 받았다. 4월 29일 서울대병원에서 비뇨기암 수술이 예정됐던 환자도 수술 사흘 전 취소를 통보받았다. “언제 수술받을 수 있냐”는 물음에 병원은 불확실하다고 답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3월 말에 받기로 했던 환자의 수술은 5월 초, 5월 말로 두 차례 연기됐다. 한림대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 전 검사까지 마친 환자는 돌연 수술이 미뤄졌고 투석을 받으며 기약 없이 버티고 있다. 정부는 병원이 잘 돌아간다고 했는데 현장에선 수술이 미뤄지고 취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 사례들은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사이 누군가 숨졌다. 3월 30일 충북 보은군에선 도랑에 빠진 33개월 여아가 병원 10곳에서 수용을 거부당하고 사망했다. 다음 날 경남 김해시에선 60대 대동맥박리 환자가 수술 병원을 못 찾아 숨졌다. 4월 10일 부산에선 14세, 10세 두 딸을 둔 엄마가 간 부전과 신장 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남편은 온라인에 “의료 파업으로 아내를 잃었다”는 글을 올렸다. 둘째 딸 생일날이었다. 그때마다 의사들은 “전공의 파업과 관계가 없다”, “애초에 살릴 수 없는 환자였다”고 했다. 의사가 없고 병상이 없어 환자가 죽지만 절대 의료 공백 탓은 아니란 것이다. 정부가 만든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 지원센터에 2400건 넘는 신고가 접수됐는데 의료 공백 연관성이 인정된 사건은 하나도 없다는 걸 보면 그 말이 맞는가 싶기도 하다. 의대 증원을 놓고 험악하게 충돌하는 정부와 의사들이 이 지점에선 묘하게 하는 말이 같다. ‘의료대란은 없다’, ‘의료대란으로 죽은 사람도 없다’. 그런데 아무 문제 없다는데 왜 자꾸 사람이 죽고 수술은 취소되나. 병원을 나간 전공의 1만3000명이 대부분 안 돌아왔는데 의료 체계는 잘 돌아가고 죽는 환자도 없다니 정말 의사가 부족하긴 한 건가. 그렇다면 1만3000명은 지금까지 유휴 인력이었단 뜻인가. 언제일지 모를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보호자들, 병상을 찾아 헤매는 환자들은 오늘도 서로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쪽도 취소됐나요.” “병상이 있는 곳 아시나요.” “언제쯤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어쨌든 대한민국 의료는 여전히 문제없다. 정부에 따르면 말이다. 전공의 이탈 탓에 숨진 환자도 없다. 의사들에 따르면 말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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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39세 맞벌이 36%가 無자녀… 9년새 15%P 늘어

    우리나라 25∼39세 맞벌이 부부 10쌍 중 4쌍은 자녀가 없는 ‘딩크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에서 무자녀 부부 비중이 높았는데 연구기관은 높은 집값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낸 ‘지난 10년간 무자녀 부부의 특성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가구주(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이)가 25∼39세인 젊은층 기혼 가구 중 27.1%는 자녀가 없었다. 2013년(22.2%)과 비교하면 무자녀 비중은 9년 사이에 4.9%포인트 늘었다. 부부가 맞벌이인 경우에는 무자녀 비율이 더 높았다. 젊은 맞벌이 부부 중 무자녀 비중은 2013년 21.0%에서 2022년 36.3%로 15.3%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외벌이의 경우 무자녀 비중이 같은 기간 12.3%에서 13.5%로 소폭 올랐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자녀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어난 것인데 연구원은 “직장 업무와 출산 및 양육을 병행하기 어려워 경제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원은 집값이 출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놨다. ‘내 집’을 보유한 비율은 유자녀 부부의 경우 52%로 과반이었지만 무자녀 부부는 34.6%에 불과해 17.4%포인트 차이가 났다. 연구원은 “주거 불안정성이 무자녀 부부의 출산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서울은 전체 부부 중 무자녀 부부 비중이 45.2%로 강원(21.5%), 경기(20.5%)의 2배 이상이었다. 연구원은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무자녀 부부 비중은 모두 20%대”라며 “무자녀 부부 비중이 서울의 높은 주택 가격 등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또 무자녀 부부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주거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자녀 부부 중 아이를 한 명만 낳는 경우도 늘고 있다. 유자녀 부부 중 부부와 자녀 한 명으로 이뤄진 3인 가구 비중은 2013년 42.4%에서 2022년 56.3%로 늘었다. 반면 자녀 둘 이상으로 이뤄진 4인 이상 가구 비중은 같은 기간 57.6%에서 43.7%로 줄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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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맞벌이 부부 10쌍 중 4쌍은 무자녀…서울, 경기보다 2배 높아

    우리나라 25~39세 맞벌이 부부 10쌍 중 4쌍은 자녀가 없는 ‘딩크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에서 무자녀 부부 비중이 높았는데 연구기관은 높은 집값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12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낸 ‘지난 10년간 무자녀 부부의 특성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가구주(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이)가 25~39세인 젊은층 기혼 가구 중 27.1%는 자녀가 없었다. 2013년(22.2%)과 비교하면 무자녀 비중은 9년사이에 4.9%포인트 늘었다. 부부가 맞벌이인 경우에는 무자녀 비율이 더 높았다. 젊은 맞벌이 부부 중 무자녀 비중은 2013년 21.0%에서 2022년 36.3%로 15.3% 증가했다. 반면 외벌이의 경우 무자녀 비중이 같은 기간 12.3%에서 13.5%로 소폭 올랐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자녀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어난 것인데 연구원은 “직장 업무와 출산 및 양육을 병행하기 어려워 경제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연구원은 집값이 출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놨다. ‘내 집’을 보유한 비율은 유자녀 부부의 경우 52%로 과반이었지만 무자녀 부부는 34.6%에 불과해 17.4%포인트 차이가 났다. 연구원은 “주거 불안정성이 무자녀 부부의 출산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특히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서울은 전체 부부 중 무자녀 부부 비중이 45.2%로 강원(21.5%), 경기(20.5%)의 2배 이상이었다. 연구원은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무자녀 부부 비중은 모두 20%대”라며 “무자녀 부부 비중이 서울의 높은 주택가격 등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또 무자녀 부부의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주거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유자녀 부부 중 아이를 한 명만 낳는 경우도 늘고 있다. 유자녀 부부 중 부부와 자녀 한 명으로 이뤄진 3인 가구 비중은 2013년 42.4%에서 2022년 56.3%로 늘었다. 반면 자녀 둘 이상으로 이뤄진 4인 이상 가구 비중은 같은 기간 57.6%에서 43.7%로 줄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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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아이들이 사라진다… 동네마다 다른 속도로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 온 지 한 달이 더 지났는데 일곱 살 큰딸은 이전 동네에 살던 친구가 준 구멍 난 청바지와 분홍 니트만 찾는다. 옷장에 널린 옷을 마다하고 굳이 그걸 입겠다고 떼 쓴다. 그러곤 놀다가 아무렇지 않은듯 묻는다. “유주는 잘 지낼까?” 일곱 살이 헤어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사 전 살던 동네는 집 뒤에 산이, 앞에는 작은 천이 흘렀다. 봄이면 천을 따라 벚꽃이 피었고, 산책 나온 어르신들은 어린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빙그레 웃으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두 딸이 다니는 집 앞 어린이집에 원생이 계속 줄었다. 친구가 떠나며 돌렸다는 양말, 학용품 같은 작별 선물을 들고 오는 날이 늘었다. 그러다 두 반이 하나로 합쳐졌다. 아이가 줄어든 여파로 해고된 교사는 계약직 신분으로 바뀌어 계속 아이들을 돌봤다. 놀이터에서 매일 보던 친구들이 줄었다. 떠나는 아이들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을 1, 2년 앞둔 연령대였다. 굳이 사정을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부모들은 비슷한 고민 끝에 비슷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더 좋은 동네로 가야 한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는 국가적 문제지만 지역마다 사정은 다르다. 본보는 지난해 10년 치 서울 및 경기 지역 학생 인구 이동을 분석했다. 2013∼2017년과 2018∼2022년을 비교했을 때 초등생 순유입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 강남구, 경기 김포시, 서울 양천구, 경기 화성시, 서울 서초구에서 화성, 강남, 김포, 경기 시흥시와 하남시 순으로 바뀌었다. 서울에서도 2013∼2022년 사이 강북, 관악, 광진, 노원, 도봉 등 13개 구는 새로 문 연 초중고교가 없었다. 반면 강동구는 초교 5곳과 중학교 2곳, 송파구는 초교 4곳과 중학교 3곳이 생겼다. 주로 아파트 새 단지나 기업이 들어선 곳과 교육 여건이 좋은 곳에 아이들이 쏠렸다. 그렇지 않은 곳에선 학교가 문을 닫았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다. 교통사고 걱정 없이 안전하게 걸어다닐 통학로, 원하면 보낼 수 있는 동네 학원 한두 개, 휴일에 갈 동네 도서관과 공원, 퇴근 뒤 아이에게 돌아가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 교통편.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동네 상당수는 수억 원의 빚을 져야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다. 앞으로 아이들은 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교육부는 올해 248만1248명인 초등생이 2029년에는 172만9805명으로 3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동네에 아이들이 줄면 부모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다가오는 불안감에 아이를 데리고 피신하듯 다른 동네로 옮긴다. 그래서 소멸하는 곳, 몰려드는 곳 모두 가속도가 붙는다. 이를 지켜보는 젊은 세대는 ‘굳이 아이를 낳아 저 난장판에 빠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낙후 지역을 되살리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이 바뀌기 어렵다. 필자도 불안감을 안고 떠밀리듯 옮긴 부모들 중 하나다. 이왕이면 조금 나은 환경에서 키우려 대출을 내 이사했다. 그런데 일방적 결정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생애 첫 친구를, 첫 동네를, 첫 추억을 잃고 허전해하는 딸들을 볼 때마다 요즘 되묻는다. 이게 맞나.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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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하면 결식 아동에게 도시락이… 직원 건강 챙기고 이웃 보듬고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임직원 위주의 자원봉사나 기부금 위주였다면 최근에는 기업 외부에 대한 공헌과 함께 기업 구성원의 복지를 챙기는 프로그램도 생겨나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직원들의 공감과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조치다. 재단법인 행복날개수련원은 SK 임직원들의 복지를 지원하는 동시에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한 참여형 매칭 기부 캠페인인 ‘운동하고 기부하자’를 운영하고 있다. 임직원들이 매달 온라인에서 운동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일정 횟수 이상 참여하면 결식우려 아동에게 그만큼 도시락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운동 참여 임직원 수가 늘수록 수련원이 기부하는 도시락 지원 재원도 늘어난다. 지금까지 누적 기부 금액은 2600만 원이다. 지난 9개월간 SK 계열사 30곳 임직원 8877명이 참여했다. 직접 돈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만 해도 기부가 이뤄진다는 장점 덕택에 직원들의 참여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hy(옛 한국야쿠르트)는 1975년부터 사내봉사단 ‘사랑의 손길펴기회’를 통해 임직원 급여의 1%를 기부금으로 전달해 왔다. 이를 확대 개편해 2022년부터는 환경 보호를 위해 임직원들이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와 별개로 1000보, 2000보 등 걸음 목표를 설정한 뒤 달성하면 기부금을 조성하는 ‘건강 걷기 챌린지’를 통해서도 기부금 7700만 원을 적립했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2021년 ‘친환경 호텔’ 선언 후 임직원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행가래’를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이 앱은 일상에서 미션을 달성하는 식으로 포인트를 적립하는데 잔반 없애기, 헌혈, 텀블러 사용 등이 그 대상이다. 지금까지 누적 포인트 약 1억2000만 원은 취약계층 지원에 사용된다. 행복날개수련원 문성욱 총괄은 “기업과 임직원이 함께하는 사회공헌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임직원과 취약계층의 행복을 모두 지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복날개수련원은 2007년 문을 연 비영리 재단으로, 전국 SK그룹 임직원들의 행복 및 건강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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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 달라도 배움엔 차별 없도록”… 꿈나무에 햇살 비추는 기업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던 2020년경부터 각 학교들은 화상 플랫폼을 이용한 비대면 수업에 돌입했다. 대면 수업으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기간 예상치 않게 드러난 문제가 학생들의 가정 환경 차이에 따른 교육 격차였다. 여건이 좋은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 기간을 사교육과 외부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한 집중 학습 기간으로 활용했다. 반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교육 공백, 돌봄 공백에 방치됐고, 이는 코로나19 유행이 끝난 후 학생 간 성적 격차로 드러났다. 이처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기업들의 활동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학생 개개인이 처한 경제적 상황이나 사용 가능한 교육 자원의 격차가 학력 격차, 나아가 진로와 사회 생활의 격차로 커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학력 격차, 기업들이 나서 프로그램 지원 회계법인 삼정KPMG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문해력 교육 및 청소년 경영경제 교육을 후원하고 있다. 또 우리금융저축은행도 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금융 교육을 진행해 왔다. 특히 문해력은 코로나19 이후 심각성이 더 크게 대두됐다. 어린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약 2년 동안 생활한 탓에 친구들이나 선생님이 말하는 입 모양을 인지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이는 말하기, 듣기 능력의 저하로 직결됐다. 오비맥주는 각 지방의 낡은 지역아동센터를 리모델링해 지역 차원의 교육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행복도서관’ 사업이다. 2016년부터 해온 이 사업은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지역 아동들의 학습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낙후된 아동센터를 ‘해피 라이브러리’(행복도서관)로 선정하고 리모델링해 준다. 교육 자재와 도서도 무상으로 제공한다. 지금까지 서울, 충북 청주시, 광주, 전남 해남군, 경기 부천시, 경북 울진군, 강원 강릉시 등 11곳에 해피 라이브러리가 개관했다.● 반도체-환경 등 전문성 살려 지원 기업과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아동의 교육 격차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은 시간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개중에는 각 기업이 전문성을 가진 분야를 아동 교육과 연계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2022년 시작된 ‘행복얼라이언스 스쿨’은 사회공헌 네트워크 행복얼라이언스에 참여하는 기업들이 각자의 역량과 전문성을 활용해 아동 학습 및 정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SK스페셜티는 학생들에게 반도체 분야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특수가스교실’ 콘텐츠를 제공했다.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특수가스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이 분야와 관련된 직업 정보를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SK실트론의 ‘미래를 그리는 도화지’ 역시 반도체의 핵심 재료인 웨이퍼가 무엇인지 등을 설명하는 콘텐츠였다. SKC는 최근 관심이 높아진 환경 문제와 연계해 ‘출동! 분리배출 히어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 쓰레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해법을 학생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SK케미칼과 SK가스는 ‘행복한 그린스쿨’을 통해 대기 및 해양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소개하고 있다. 행복얼라이언스 스쿨 프로그램은 지난해 경북 울진지역아동센터, 충북 충주시 주덕지역아동센터, 전북 익산시 희망나눔지역아동센터 등 전국 센터 6곳에서 열려 학생 360명이 참여했다. 송성호 재단법인 행복한학교재단 사무국장은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자체 여건의 한계 탓에 다양한 프로그램 구성이 어렵다”며 “특히 도서산간 지역에서는 강사나 프로그램 지원이 더욱 절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서울 노원구 등에서도 프로그램 요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 중 울진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어려웠는데, 행복얼라이언스 스쿨 프로그램 도입 후 상황이 달라졌다고 한다. SK스페셜티의 반도체 공정 교육, 공정무역 실천 기업 ‘아름다운커피’의 공정무역 및 초콜릿 관련 교육, hy(옛 한국야쿠르트)의 온라인 견학 프로그램, 본아이에프의 반달떡 만들기, SKC의 분리배출 방법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 것이다. 송 사무국장은 “경험과 놀이 중심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의 여건에 따른 교육 격차 해소를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참여 기업도 “기업 알리는 효과” 이런 프로그램은 기업 입장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행복얼라이언스 스쿨에 참여하는 SKC는 회사 구성원과 대학생들이 강사로 참여해 초등학생 교육을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교육 콘텐츠 전문 제작 업체 및 지역아동센터 등과 협력을 늘리고 있다. 또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과도 소통하며 기업의 활동을 알리고 있다. SKC 관계자는 “이런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을 알리는 효과가 있다”며 “더 많은 미래 세대에게 환경 교육을 전파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행복얼라이언스 사무국을 운영하는 행복나래 조민영 본부장은 “올해는 아이들이 더 다양한 교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기업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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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성학원, 3일 130주년 기념행사 개최… 오석준 대법관에 ‘광성인상’

    학교법인 광성학원(이사장 최준수)은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광성중, 광성고 대강당에서 개교 1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한국 교육의 빛이 된 광성 130년, 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하다’를 표어로 내건 이번 행사는 올해로 개교 130주년을 맞이하여 광성학원과 광성중고교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학교 발전에 힘이 된 인물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한국 교육과 사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기념예배와 기념식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김승제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장, 김두범 기독교대한감리회 교육국 총무,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 박강수 마포구청장 등이 참석한다.기념식에서 학교 재건축과 장학기금 조성 등 학교 발전에 큰 공헌을 한 고 김동선 명예이사장에게 대한 특별공로상을 비롯해, 오석준(광성고 64회) 대법관에게 광성인상을 수여한다. 또 법인과 학교 발전에 기여한 동문과 법인 이사 20여 명에게 공로상과 감사패를 전달한다. 최준수 광성학원 이사장은 “우리 학원의 130년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학교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물론, 존 무어 선교사의 선교 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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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첨단 #융복합 #글로벌… 세계 속 K-인재 우리가 키운다

    인공지능(AI)과 양자역학 등 미래 신기술이 대두되면서 최근 한국 대학들도 관련 연구와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다양한 커리큘럼과 학생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K 인재’를 배출하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 글로벌 감각을 익히기 위한 유학생 교류 활동도 확대하고 있다. 건국대는 세계를 무대로 나아가는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 차원에서 국내 학생과 외국인 유학생 간의 다양한 협업, 공동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건국대는 ‘KUmberlla 사랑의 김장봉사’를 실시하고, 김치를 만들어 지역 기관에 전달했다. 이날 봉사에는 건국대 교직원과 재학생, 외국인 학생 등 90여 명이 참석했다. 고려대는 개교 120주년인 2025년 5월 자연계 중앙광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창업 클러스터를 만들고 새로운 지형의 입체적인 그린 캠퍼스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책로는 학생들과 인근 주민들의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할 예정이다. 고려사이버대는 지능정보사회 발전에 발맞춰 자율주행, 로봇 시스템 등의 신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올해 컴퓨터공학부를 신설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광운대는 올해 AI로봇전공(정원 74명)과 반도체시스템공학부(정원 58명)가 신규로 신설됐다. 로봇학부 AI로봇전공은 AI와 로보틱스를 접목한 결과물을 창출해 내는 교육과정으로 AI융합시스템 기술인재와 기존 로봇혁신인재 양성을 결합해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분야에 전문화된 AI로봇 엔지니어를 양성한다. 단국대는 지난해 교외 연구비 수주액이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산학협력 실적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인 기술이전료는 27억8000만 원(대학정보공시, 2022년 기준)을 기록하며 전국 대학 12위에 올랐다. 최근 3년간 기술이전 수입은 67억 원이며 특히 1억 원 이상의 중대형 기술이전 사업을 10건 이상 추진해 질적 성장을 이뤘다. 삼육대 인공지능융합학부는 인문사회학적 소양과 경영학적 통찰력을 갖춘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세부 전공은 인공지능공학, 경영정보시스템, 지능형반도체 등 세 과정이다. ‘인공지능공학’은 인공지능 기반의 빅데이터 및 정보기술(IT) 전문 인재를, ‘경영정보시스템’은 경영·IT 코디네이터 및 전공 지식과 기술을 갖춘 제너럴리스트를, ‘지능형반도체’는 차세대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갈 반도체 공정·설계·분석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 서경대는 이공대학계열 내에서 기존의 물류시스템공학과, 소프트웨어학과, 전자컴퓨터공학과, 금융정보공학과, 도시공학과 등 전통의 특성화 학과에 나노화학생명공학과를 새로 개설했다. 나노화학생명공학과는 융·복합의 창의적 미래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유능한 나노화학·생명공학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인공지능학과는 AI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최근 개편됐다. 졸업 후 AI 분야 대학원 진학이나 AI 관련 국가기관 및 민간기업, 스타트업 등으로 진출할 수 있다. 세종대 인공지능데이터사이언스학과는 AI와 데이터사이언스를 함께 학습한다. 두 학문이 결합돼 판단과 인식에 중점을 둔 AI 모델링에 더해 데이터 관리 및 체계적 분석까지 함께 배우게 된다. AI와 데이터사이언스에 대한 이론과 실습 측면에서 교육을 제공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AI, 빅데이터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게 목표다. 중앙대는 미래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매년 연구비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융복합 연구의 기틀을 조성하고 연구지원의 폭을 확대하면서 BK21 등의 연구 과제 수주 범위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박상규 중앙대 총장은 “중앙대는 앞으로도 연구 지원책 강화와 인프라 개선 등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혁신을 선도하며 융복합 연구중심대학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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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좋은 의사의 자질이 ‘수능 1등급’일까

    “돌이켜보면 7년간 이 동네에서 우리 애들 키운 건 3할이 어린이집, 3할이 우리 부부, 또 3할은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네.” 얼마 전 이사를 준비하다 아내에게 한 말이다. 아이 이마가 펄펄 끓을 때, 기침이 자지러질 때마다 단골 소아과에 달려가곤 했다. 원장은 다리에 깁스를 한 날도 출근해 진료를 했다. 이사 후 보름이 지난 20일 내년도 의대 대학별 정원이 발표됐다. 일각에선 “수능 2등급도 의대에 입학할 판”이라며 호들갑이다. 2등급이면 수능 상위 5∼11%다. 서울 주요 상위권 이공계에 갈 성적이다. 의대 교수와 의대생들은 “수업이나 잘 따라올지 모르겠다”며 혀를 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전국 의대 커트라인이 서울대 이공계보다 높은 게 의대 공부가 이공계보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수요와 공급 탓이 더 크다. 취업난과 경기 둔화로 ‘평생 고소득’ 면허에 수험생이 몰린 탓이다. 그러면 좋은 의사와 수능 1등급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의대 공부의 특징은 암기량이다. 뼈, 혈관은 물론이고 회충 학명까지 달달 외운다. 환자 앞에서 지식이 기계처럼 튀어나와야 한다. 반면 이공계는 암기할 정보는 의대보다 적지만 미지의 답을 머리로 찾아 나아가야 한다. 양자와 우주, 수(數)의 세계에서 수많은 가설을 세웠다 허무는 고도의 창의력과 사고력이 필요하다. 어느 공부가 더 어렵냐고 묻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 알파고를 이긴 바둑기사 이세돌,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생을 동일선상에 놓을 순 없다. 분야가 다르니 필요한 지적 능력도 다를 뿐이다. 그런데 현실은 사고력이 뛰어나든, 암기를 잘하든 모두 의대가 빨아들인다. 의대에 가려면 수능 미적분이나 기하 점수가 높아야 하는데 정작 의대 공부에는 이 과목들이 별 쓸모가 없다. 대학은 굳이 이런 모순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수능 만점자가 우리 의대에 왔다’ ‘우리 의대 커트라인이 높다’는 타이틀을 포기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제주대가 내놓은 ‘무(無) 수능 선발’ 구상은 주목할 만하다. 수능 등급이 아니라 정말 의사의 인성과 자질을 갖춘, 지역 의료를 지탱할 학생을 뽑겠다는 결단이다. 서울의 유명 대학들도 못 한 결정이다. 2020년 의료 파업 당시 논란이 된 의사단체 홍보물이 하나 있었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할 진단을 받을 때 ‘전교 1등 출신 의사’와 ‘성적 낮은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를 선택하겠냐는 내용이었다. 지금 되묻는다. 사직서를 던지고 병원을 뛰쳐나간 의사와 동료의 비난을 참으며 병동을 지키는 의사 중 국민들은 누구에게 몸을 맡기겠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합리적 판단,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의사란 직업의 특별함을 아는 소명의식. 이런 자질을 갖췄다면 수능 2등급이건 3등급이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딸들이 아플 때 돌봐줬던 그 의사가 어느 의대를 나왔는지, 수능 몇 등급이었는지는 모른다. 사실 관심도 없다. 그 대신 수많은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닫는 와중에 변함없이 홍제동 상가 5층 진료실을 지키며 아이들을 돌봐줬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는다. 환자에겐 그런 의사가 최고의 의사다.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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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대 의대 입학 정원 4배로…지방국립대 ‘빅7’ 200명씩 뽑는다

    정부가 전국 의대 40곳의 2025학년도 대학별 입학 정원을 20일 발표했다. 총정원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늘어난 가운데 비수도권 의대(27곳)는 정원이 현재보다 1639명, 경기·인천 지역 의대(5곳)는 361명 늘었다. 서울 지역 의대는 1명도 늘지 않았다. 의사단체의 강력한 반발에도 정부가 서둘러 대학별 정원을 발표하면서 의대 증원의 쐐기를 박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것은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증원분) 2000명 중 비수도권 대학에 82%에 해당하는 1639명을 배정했고, 지역인재전형을 적극 활용해 지역 정주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서울과 경인 지역 간 과도한 편차 극복을 위해 서울에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국 지방 거점 국립대 중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등 7곳은 정원이 일괄적으로 200명으로 늘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정원을 보유한 ‘매머드급 의대’가 됐다. 특히 충북대의 경우 현재 49명인 정원이 200명으로 308%나 늘었다. 또 정원 50명 미만이던 ‘미니 의대’들은 80∼100명으로 늘었다. 비수도권 중규모 의대들은 정원이 100∼150명 사이가 됐다. 교육부는 배정 기준으로 “비수도권 집중 배정, 소규모 의대 역량 강화, 지방 및 비필수 의료 지원 등 3대 기준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이 몰려 있는 서울 소재 의대 8곳에는 증원분이 전혀 배정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몇 명이라도 배정할 방침이었는데 지역균형 원칙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배경을 전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 3.61명, 인천 1.89명, 경기 1.80명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2000명 증원은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다. 정치적 손익에 따른 적당한 타협은 결국 국민의 피해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의사단체는 일제히 반발했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오늘(20일)부터 14만 의사들은 의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것”이라며 “필요하면 정치권과도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3개 단체는 이날 화상회의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의대 증원]“지방의료 붕괴 막겠다” 82% 배정… 지방거점 국립대, 3~4배로 늘려성균관대-아주대, 40→120명… ‘미니의대’ 80명 이상으로 증원당장 내년부터 시설 확충해야… 교수 확보 등 여건 개선 쉽지않아“해부시신 1구로 40명씩 실습 우려” 20일 발표된 의대 정원 배분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요 지역 거점 국립대 정원을 200명으로 대폭 늘린 것과 당초 “조금이라도 배분하겠다”는 방침을 바꿔 서울 지역에 인원을 전혀 배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 안팎에선 ‘의대 증원’이 지방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의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대국민 담화문에서 “의료개혁의 가장 절박한 분야는 지역 의료 강화”라고 강조했다.● ‘빅7’ 국립대 의대 출현 이날 의대 정원 배분 결과에 따르면 경북대, 경상국립대, 부산대, 전북대, 전남대, 충북대, 충남대 등 지역 거점 국립대 의대 7곳은 정원이 58∼151명씩 늘어 200명의 ‘매머드 의대’로 거듭나게 됐다. 특히 충북대 의대는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 이상으로 늘었고, 경상국립대 의대도 76명에서 200명으로 163% 늘었다. 200명 미만을 신청한 강원대와 제주대만 ‘신청 범위 내에서 배정한다’는 방침에 따라 각각 132명, 100명이 배정됐다. 지금까지 단일 의대 기준으로 정원이 가장 많은 대학은 전북대(142명), 2위는 서울대(135명)였다. 하지만 이번 조정으로 서울대는 지방 국립대 ‘빅7’은 물론이고 조선대 원광대 순천향대(각각 150명)보다도 적은 11위가 됐다. 지금까지는 빅5 병원(서울아산, 서울대,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을 산하에 둔 울산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가톨릭대 의대가 톱5 의대로 꼽혔는데 판도가 바뀔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경기·인천 지역은 정원이 40∼49명이었던 ‘미니 의대’ 5곳의 정원이 80∼130명으로 총 361명 늘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성균관대와 아주대의 경우 의대 정원이 각각 40명에서 120명으로 3배가 됐고, 인천에 있는 가천대의 경우 40명에서 130명으로 더 크게 늘었다. 이들 대학은 모두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전혀 증원되지 않은 고려대(106명), 연세대(110명) 등보다 규모가 커졌다. 정부는 예고한 대로 정원 50명 미만이었던 미니 의대 17곳의 정원을 최소 80명 이상으로 늘렸다. 미니 의대는 1980년대 정부의 ‘미니 의대 다수 설립’ 정책에 따라 설립됐지만 정원이 적은 탓에 규모의 교육을 수행하기 어렵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도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대 정원이 49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난 동아대 관계자는 “학교 병원이 1000병상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증원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영남대 계명대 등 비수도권 중규모 의대의 경우 100∼150명 수준이 됐다.● 단기간 대폭 증원 ‘겉핥기 실습’ 우려 정부가 비수도권에 증원분을 집중 배정한 것은 장기적으로 지방에 정착해 지방 의료 붕괴를 막을 의사를 키워내기 위한 것이다. 비수도권 의대를 졸업하고, 해당 지역에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수련 과정을 마칠 경우 절반 이상이 해당 지역에 정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배정에 참고했다고 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대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높이고 지역병원 수련을 확대하는 등 전 주기에 걸친 지역 의사 확보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정원이 많게는 4배로 늘어나는 만큼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의대는 이르면 예과 2학년부터 인체 해부를 배우기 위해 6∼8명으로 조를 짜고 커대버(해부용 시신) 실습을 한다. 그런데 실습용 시신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재학생만 늘면 커대버 한 구당 학생 30∼40명이 실습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의대의 경우 실험과 실습 위주로 운영되는 만큼 커대버 외에도 단기간에 실습 시설 확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국립대 의대 관계자는 “겉핥기 실습으로 양질의 의사를 길러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내년도 입학생이 예과 2년을 거쳐 본과에 들어가는 2027년까지는 교육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또 늘어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2027년까지 거점 국립대 교수 1000명을 확충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의료계에선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의 한 국립대 의대 교수는 “정부는 기금 교수를 전임 교수로 채용하겠다고 하는데 명찰만 바꾸는 조삼모사”라며 “석사 이상의 학위와 교육 및 연구 경험이 있는 신규 교수 후보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미니 의대의 경우 평균 임상의학 교수 수는 학교당 162.7명으로 일반 의대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 지역의 한 의대 교수는 “미니 의대는 정원이 2, 3배로 늘어난 만큼 단기간에 교수를 대거 충원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평가를 통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정부는 “의학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교육부와 복지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이 협력하며 교원 확보, 시설·기자재 확충을 적극 지원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이은택 nabi@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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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피안성’이 삼킨 의료… 의사들은 몰랐을까

    명문대를 나온 고(高)스펙 졸업자는 대기업 공채로 직장을 시작하지만, 반대편에는 박봉의 비정규직으로 출발하는 이들이 있다. 상부와 하부 노동자 사이의 갭이 큰,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다. 전문직의 경우 지식과 기술, 감수하는 위험의 크기가 연봉에 비례해 올라간다. 그런데 위아래가 뒤집힌 신기한 분야가 있다. 의대를 나와 의사고시에 갓 합격하면 일반의 자격증을 딴다. 보통 6년인 전공의 수련 과정을 안 밟아도 미용 시술을 익혀 개원하면 월 소득 1000만 원을 거뜬히 버는 이른바 ‘무천도사’, ‘월천도사’가 된다. 응급도 없고, 소송 위험도 크지 않다. 그 정점이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개원의’다. 심지어 안과에서 비급여 무릎연골주사로 돈을 번다. 반면 대학병원에 남으면 1만 원 남짓한 시급을 받고 주당 80∼100시간씩 일하는 전공의가 된다. 시스템의 밑바닥에서 갈려 나가다가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병원에 남으면 과로와 소송, 고소득 개원의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전임의(펠로)가 된다.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붕괴된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넘치는 개원가를 눌러줄 정책도 필요하다. 수술실을 지키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개원을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아주대병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중증외상 권위자 이국종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장)는 마음만 먹으면 병원을 열어 떼돈을 벌 수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국종들’이 소명 의식으로 버티고 있다. 의료 개혁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모든 국민이 지금처럼 적은 부담으로 필수의료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심장 수술비가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 나라는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가 아니다. 힘들게 고난도 필수의료 치료를 하는 의사는 많은 보상을, 그렇지 않은 의사는 적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생의 종착지가 동네 피부과 개원인 현실을 바꿀 수 있다. 국민이 지출할 수 있는 의료비에는 한계가 있다. 건강보험 덕분에 필수의료를 적은 부담으로 누릴 수 있다 보니, 여윳돈으로 미용 등 비필수 비급여 의료에 돈을 낼 여력이 생긴다. 진료비를 시장 논리에 맡기면 필수의료 의사들은 떼돈을 벌고 미용 개원가는 쪼그라들 것이다. 사람이 살고 봐야 피부도 가꾸고 턱도 깎기 때문이다. 개원가는 건보 시스템의 반사이익으로 고소득을 누린 측면이 있다. 결국 결론은 비필수 개원가의 수익을 필수 분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과 법, 조세 제도에 기반한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의사들 입에서 “피부과 개원은 편한데 돈은 안 돼”, “중증외상은 힘들어도 많이 벌어”라는 말이 나와야 문제가 풀린다. 이를 제일 잘 알았던 의사들이 먼저 문제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면 지금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지난달 입학식 축사에서 “이웃과 사회의 안녕을 도외시하며 이뤄진 개인의 성취는 사회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행복하기 어렵다. 내 삶의 계획이 시대적 요청과 조화를 이루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을 향한 죽비(竹篦) 소리처럼 들렸다.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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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 대학 통폐합 불 댕긴 ‘글로컬대’… 전문대도 뛰어들어[인사이드&인사이트]

    《‘학령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 위기’가 겹치며 고사 위기에 놓인 지방대를 살리고 고등교육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글로컬대학’ 사업 1차 선정 대학이 발표된 지 4개월이 지났다. 선정 대학에는 한 곳당 1년에 200억 원씩 5년간 총 1000억 원이 지원된다. 전체 규모 3조 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 대학 사업’이라고 불리는데 지난해 11월 10곳을 선정한 데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10곳씩을 선정해 총 30곳이 지원 대상이 될 예정이다. 》지난해 선정된 10곳 중 4곳은 통합을 전제로 공동 신청한 대학들이다. 강원대-강릉원주대, 부산대-부산교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충북대-한국교통대 등이다. ‘지방대 간 통합을 장려해 학생 감소에 대비하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정부 기조에 따른 것이다. 선정 당시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학 상당수에선 학생과 교수 등 구성원의 반발이 쏟아졌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통합 내건 대학들, 학생 간 장벽 없애기 노력 수십 년간 서로 다른 역사와 전통, 학풍을 가진 대학이 하나가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부산대와 부산교대의 경우 사업에 지원할 당시부터 재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1946년 9월 개교한 부산대는 ‘영남 최고의 대학’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1946년 설립된 부산사범학교가 모태인 부산교대 역시 ‘초등교사 양성 기관’이라는 프라이드가 높았다. 그럼에도 두 대학은 글로컬대 사업에 함께 지원하면서 학교를 통합해 신입생 감소와 지역 여건 악화, 재정난을 타개하겠다는 구상을 제출해 지원이 결정됐다. 부산대와 부산교대는 학생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양 대학의 학생 대표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간담회를 시작했다. 물리적 통합 전 학생부터 서로 소통하고 벽을 허물어보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12월 4일 부산대에 모인 부산대 및 부산교대 학생 대표자 83명과 교직원 18명은 교육, 문화, 복지, 자치 등의 분야에서 유대를 쌓을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학생 대표자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서로 상대방 학교의 수업을 수강한 뒤 소감을 나누고, 양 대학 학생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기존 부산대에서 해온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 부산교대 학생도 팀을 꾸려 참여하고, 각자 대학 신입생을 상대방 대학에 데려가 캠퍼스 투어를 시키자는 제안도 있었다. 일부 아이디어는 추진이 결정됐고 일부는 검토 중이지만, 학생 대표들이 거듭 만나면서 초반보다는 반발이 한층 줄었다는 평가다. 글로컬대 사업을 계기로 학교가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곳도 있다. 포스텍(포항공대)은 올 1월 30일 이사회에서 ‘포스텍 2.0’이란 명칭으로 ‘제2의 건학’ 추진안을 의결했다. 글로컬대 선정으로 지원받는 교육부 예산 1000억 원에 법인 추가 투자금 등을 더해 총 1조2000억 원을 2033년까지 포스텍 2.0에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그중 3160억 원은 교원 및 연구 혁신에, 1180억 원은 학생 및 교육 혁신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추진안에는 재학생이 소속 학과와 무관하게 다양한 전공을 이수해 학과 간 경계를 없앨 수 있는 ‘오픈 커리큘럼’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 주도의 대학 지원 사업이 대학 자체의 대규모 투자로 이어진 것이다.● 올해는 전문대도 뛰어들어 지난해 글로컬대 선정에 실패한 대학들은 올해 ‘재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 지난해의 경우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전문대들도 뛰어들며 경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부산 지역의 경남정보대, 대동대, 동의과학대, 부산과학기술대, 부산경상대, 부산보건대, 부산여대, 부산예술대 등 8곳은 올해 글로컬대 사업에 전문대 연합대학 형태로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4년제 대학 없이 전문대만으로 글로컬대 컨소시엄이 꾸려진 것은 처음이다. 이들 부산 8개 전문대 연합을 모두 더하면 총 신입생 정원 7700여 명, 재학생 2만4000여 명에 달한다. 이런 연합이 가능했던 건 지난해 ‘단독대학’과 ‘통합대학’ 유형만 응모할 수 있게 한 교육부가 올해부터는 ‘연합대학’ 유형도 지원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국립대와 비교하면 사립대는 각자 재단이 있기 때문에 학교끼리 통합이 쉽지 않다. 대학을 통합하려면 재단이나 사학 법인도 통합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글로컬대 사업에선 통합을 내건 국립대들이 대거 선정됐는데, 이후 사립대를 중심으로 “통합까진 어렵지만 그래도 복수의 사립대가 함께 글로컬대 사업에 지원할 수 있도록 신유형을 신설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다만 교육부는 통합대학과 연합대학 유형에는 지원금에서 차이를 두기로 했다. 글로컬대는 기본적으로 선정된 대학 한 곳당 5년간 총 1000억 원을 지원하는데, 두 곳 이상이 함께 응모한 통합대학 유형에는 평균 1500억 원을 준다. 반면 연합대학은 참여 대학 수에 관계없이 총 1000억 원을 지원해 공동으로 신청한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나누도록 했다. 예를 들어 부산 8개 전문대 컨소시엄이 사업을 따낸다면 이들이 1000억 원을 내부적으로 배분해 사업을 수행하는 식이다. 전문대 컨소시엄은 학생들의 취업과 직업 교육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4년제 대학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학 8곳이 통합 직업 교육 플랫폼을 구축하고 지역 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광역지자체인 부산시의 지원까지 더해지면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지역 사회에서 나온다.● 지자체도 사활… ‘속도 조절’ 필요 지적도 교육부의 대학 사업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지방자치단체들도 ‘글로컬대 수주전’에는 사활을 걸고 있다. 지원금 규모가 크다 보니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올 1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충남도청에서 만나 “대전과 세종, 충남은 인구가 4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한 곳 정도는 선정됐어야 했다”며 지난해 선정 결과에 불만을 드러냈다. “우리는 다들 화가 많이 나 있다”고까지 했다. 김 지사는 이후 도내 대학 총장들을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뼈를 깎는 대학 혁신을 추진하고 올해 글로컬대 공모에 재도전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글로컬대 사업이 내실 있게 추진되기 위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부설 고등교육연구소는 지난달 발간한 ‘2023 고등교육 현안 정책 자문·분석 자료집’에서 “최근 통합 추진 대학이 글로컬대 선정에 유리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업 기간 내 통합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기준이 성급하고 불완전한 통합을 촉진할 수 있어 우려된다”며 “대학 통합이 개별 대학과 고등교육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정부가 명확히 이해하고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적 접근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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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하얀 가운의 본질이 하얀 밥그릇 아니라면

    미국 대통령은 취임 때 왼손을 성경에 얹고 선서를 한다.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한 뒤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라고 끝맺는다. 한국 대통령도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로 시작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로 끝나는 선서를 한다. 선서를 하는 다른 직업도 있다. 간호대 학생들은 임상 실습에 나서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촛불과 휘장이 갖춰진 가운데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라고 맹세한다. 소방관에게는 복무 신조처럼 내려오는 ‘소방관의 기도’가 있다. 1958년 미국 소방관 스모키 린이 쓴 시(詩)에서 비롯됐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방화 현장에서 순직한 고 김철호 소방관의 책상에 이 기도문이 남아 있었다. 선서를 하는 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뛰어넘는 희생과 헌신,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야 그 자리와 업무를 감당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국가 공동체 유지에 없어선 안 되는 일. 그래서 이들의 선서는 때론 비장하고 뭉클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직무 선서는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데 보통 의과대학 본과 3학년 학생들이 임상 실습을 앞두고 한다. 교수와 학부모까지 모여 의사 가운을 입혀 주는 ‘화이트 코트 세리머니’를 한 후 청진기를 수여하고 선서문을 읽는다. 청진기를 주는 이유는 환자의 고통과 절망을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제(20일)부터 전국 병원 전공의 중 상당수가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항의하는 의미로 진료를 중단하고 환자 곁을 떠났다. 폐암 앓는 어머니를 둔 아들, 신장 이식 대기자, 제왕절개 날짜를 받아 놓은 임신부 등은 날벼락 같은 수술 연기 통보를 받았다. 환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나는 아직 연락을 못 받았는데, 어디 병원인가요’ 등의 절박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선서를 읊던 의대생과 환자를 외면하고 사직서를 던진 전공의,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7일 의사 집회 중 단상에 오른 내과 1년 차 전공의는 말했다. “중요한 본질은 내 밥그릇을 위한 것이다.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라고 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밥그릇 선서로 수정돼야 마땅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의사들이 잘했다고 박수 치는 사람이 없다. 국민이 왜 싸늘하고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전공의들은 성찰해야 한다. 병원을 뛰쳐나간 전공의 중에서 혹시 하얀 가운의 본질이 ‘하얀 밥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여전히 환자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당신의 가장 강력한 우군, 바로 당신의 의술에 생명을 맡겼던 환자들이 그곳에 있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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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76% “의대증원 긍정적”, 16%는 “부정적”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 확대’ 방침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한국갤럽은 13∼15일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증원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6%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답했다.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답변은 16%에 불과했다. 의대 증원에 긍정적인 점이 많다는 답변은 연령대와 지역,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답변의 2배 이상이었다. 국민의힘 지지자의 81%,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73%가 의대 증원에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등 여야 지지자 사이에도 의견 차이가 거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한 응답자 중에도 7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다. 특히 의사 부족 문제가 심각한 대구·경북 지역과 대전·세종·충청 지역에선 긍정 응답 비율이 80%를 넘었고, 광주·전라 지역도 긍정 응답 비율이 79%에 달했다. 의대 증원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로는 ‘의사 수 부족과 공급 확대 필요’를 꼽은 응답자가 40%로 가장 많았다. 국민 편의 증대와 의료 서비스 개선(17%), 지방 의료 부족과 대도시 편중(15%), 특정 과목의 전문의 부족과 기피 문제 해소(4%)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11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발표한 성인 1000명 대상 설문에서도 82.7%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 바 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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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중고생 2년후 400만명대 추락… 올해 교원 4300명 감축

    현재 513만 명인 초중고교 학생 수가 2년 후 400만 명대로 떨어지고, 5년 후에는 427만 명까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2005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 수만 400만 명이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학령인구 절벽’ 현상이 이미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12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2024∼2029년 학생 수 추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중고생은 모두 513만1218명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2026년에는 483만3026명으로 줄며 500만 명 선이 깨지고, 2029년에는 현재보다 20% 가까이 줄어든 427만5022명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학교별로는 초등생, 중학생, 고교생 순으로 감소 폭이 클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 결과다. 2005년까지만 해도 400만 명이 넘었던 초등생은 올해 248만1248명으로 줄었다. 또 2029년에는 172만9805명으로 30%가량 더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중학생은 133만6387명에서 123만6400명으로 7%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고교생은 131만3583명에서 130만8817명으로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초등생 중에서도 저학년이 줄어드는 폭이 고학년보다 컸다. 초3은 37%, 초2는 33%, 초4는 32%, 초1은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가르칠 학생이 줄면서 교사 수도 줄고 있다. 정부는 최근 공립 초중고교 교원 정원을 4296명 감축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 정원 관련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공립초 교원 정원은 14만8683명에서 14만6559명으로 2124명(1.4%) 줄어든다. 공립 중고교 교원도 14만881명에서 13만8709명으로 1.5% 줄어든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교원 정원을 지속적으로 감축하고 있다. 2022년에는 교원 정원을 1089명 줄였고, 지난해도 3401명을 추가로 감축했다. 학생과 교사가 동시에 줄면서 향후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문을 닫는 학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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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3만명 초중고생, 5년 뒤엔 427만명 된다… 초3은 33% 줄어

    현재 513만 명인 초중고교 학생 수가 2년 후 400만 명대로 떨어지고, 5년 후에는 427만 명까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2005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 수만 400만 명이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학령인구 절벽’ 현상이 이미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12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2024~2029년 학생 수 추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중고생은 모두 513만1218명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2026년에는 483만3026명으로 줄며 500만 명 선이 깨지고, 2029년에는 현재보다 20% 가까이 줄어든 427만5022명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학교별로는 초등생, 중학생, 고교생 순으로 감소폭이 클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 결과다. 2005년까지만 해도 400만 명이 넘었던 초등생은 올해 248만1248명으로 줄었다. 또 2029년에는 172만9805명으로 30%가량 더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중학생은 133만6387명에서 123만6400명으로 7%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고교생은 131만3583명에서 130만8817명으로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초등생 중에서도 저학년이 줄어드는 폭이 고학년보다 컸다. 초3 감소폭은 37%, 초2는 33%, 초4는 32%, 초1은 3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가르칠 학생이 줄면서 교사 수도 줄고 있다. 정부는 최근 공립 초중고교 교원 정원을 4296명 감축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 정원 관련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공립초 교원 정원은 14만8683명에서 14만6559명으로 2124명(1.4%) 줄어든다. 공립 중고교 교원도 14만881명에서 13만8709명으로 1.5% 줄어든다.정부는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교원 정원을 지속적으로 감축하고 있다. 2022년에는 교원 정원을 1089명 줄였고, 지난해도 3401명을 추가로 감축했다. 학생과 교사가 동시에 줄면서 향후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문을 닫는 학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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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입 점수 위주 벗어나, 면접 1시간씩 보는 하버드처럼 가야”

    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입시와 관련해 “미국 하버드대 같은 경우 면접을 1시간 이상씩 하면서 학생의 종합적 역량이나 잠재력을 본다. 우리도 전체적인 방향은 하버드대처럼 가는 게 아닌가 싶다”며 향후 면접 전형을 강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시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일 것이냐는 질문에는 “입학본부의 학업 성취도 연구 결과를 반영해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2028학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이과 과목 구분을 없애고 심화 수학을 배제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입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수능 위주인 정시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일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유 총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총장실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서울대 운영 방향과 함께 무전공 선발 확대 등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2월 1일 취임한 유 총장은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교육부의 수능 개편과 관련해 서울대도 정시에서 내신 비중을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서울대 입학본부에서 입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어떤 전형으로 들어와 대학에서 어떤 성취를 이뤘고, 졸업 후 어떤 진로를 택했는지 등을 스터디하고 있다. 그 결과가 데이터로 나오면 이에 근거해 개선할 것이다. 입학본부에선 충실한 학업 성취와 교과 과정 평가를 반영하는 전형을 종합적으로 연구 중이다.” ―서울대 입학생을 보면 여전히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출신이 많다. “우리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교과 성적만 보는 건 아니고 학생의 전반적 활동과 생활기록부 등을 다 본다. 또 성적만 가지고 뽑지 않기 위해 면접을 통해 학생의 태도, 품성적 자질 등을 본다. 미국 하버드대는 학생을 뽑을 때 면접 시간만 1시간이 넘는다. 학생의 종합적 역량이나 잠재력을 다 살펴보는 것이다. 현재 우리 입시는 수능 성적, 내신 등급 같은 점수화된 정량적인 지표로 이뤄지고 있는데, 결국 우리도 전체적인 방향은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일반고의 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일반고의 학력을 더 높이겠다면 학교와 학교 간의 경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을 교육 당국에 드리고 싶다. 미국 공립학교들은 모든 학업 성취도를 공개한다. 학교 간 성취도 비교가 가능하고 학부모도 이를 알기 때문에 사립고가 아닌 공립고 사이에서도 잘하는 학교로 학생과 학부모가 쏠린다. 이 같은 공개 및 경쟁 시스템을 통해 교사들의 노력을 독려할 수 있고 학생들의 학업 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교육부의 무전공 선발 확대 방침이 논란이 됐다. “사회적으로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되고 있다. 다만 대학들이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학교에 개입하지 말고 대신 지원을 해야 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영국 교육을 개혁할 때 정부가 교과에 개입하지 않고 교사 급여를 두 배로 올렸다. 훌륭한 교사, 훌륭한 인력이 있어야 훌륭한 교육도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훌륭한 교사들이 학교로 올 수 있게 인센티브 시스템을 마련한 게 교육 개혁이었다.” ―무전공 선발이 확대되면 비인기 학과는 폐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에서 도입한 ‘팀 티칭’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이란 과목에 수의대 교수와 인문대 교수가 함께 들어가 토론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2명 이상의 교수가 한 강의실에 동시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학생들 앞에서 토론도 한다. 과목에 따라 교수 3∼5명이 한 강의실에 들어갈 때도 있다. 다른 대학들도 충분히 이런 방식의 수업이 가능하다. 서울대는 2025학년도부터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학부대학’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1학년이나 1, 2학년 재학생을 본래 소속된 과·계열과 별도로 학부대학으로 묶어 다양한 학문, 전공을 공부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한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먼저 모든 분야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을 갖춘 ‘제너럴리스트’(폭넓은 교양을 갖춘 인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에 막상 들어와 보니 전공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복수전공과 부전공 같은 다전공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다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이 30%가 넘는다.” ―의대 열풍 때문에 서울대 이공계에서도 학생이 이탈하고 있다. “의대 열풍은 대학의 자체 노력이나 입시 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인센티브 구조의 문제다. 학생 개인이 열망, 적성, 선호에 따라 의대에 가겠다는데 대학이 가두리 양식장처럼 막을 순 없다. 이공계 인재들이 의사처럼 평생의 커리어가 보장되지 않으면 ‘평생 면허’를 따기 위해 의대로 쏠리는 현상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 이공계 분야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만큼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이공계에 대한 교육 연구 지원 대책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도 이공계 수요가 높을 때 병역특례 같은 인센티브를 확대했는데 그런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초등학생을 겨냥한 학원의 ‘의대 준비반’도 있다. “부모가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과 직접 개입하는 건 다르다. 인간은 틀에 맞춰 일하는 기계가 아닌데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기계처럼 보는 것 같다. 규격화와 통제 시스템에서 일찍부터 ‘의대’라는 틀에 맞춰 찍어내려는 것이다. 이 같은 개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부모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의 진로 및 진학의 기본 틀을 짠다. 학생의 잠재력과 능력을 가장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저희 부모님은 교육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정치학과 진학을 선택한 것도 개인적 선택이었다. ‘성적이 좋으니 법대에 가라’ 같은 얘기도 일절 안 하셨다(웃음).” ―최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과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CES)에 참석했다. 외국에서 어떤 걸 느꼈나.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은 대학이 정부, 사회, 기업과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차원이 다른 투자가 이뤄지고 있었다. 정부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대학에 투자하고, 사회는 대규모 기부로 재정을 키워주고, 기업은 산학 협력 연구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다. 반면 한국은 대학과 정부, 기업이 서로 단절돼 대립하는 구도다. 국민들도 자녀가 초중고교에 다닐 때까지는 관심이 높지만 대학 합격 후에는 대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국가의 중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다. 대학도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혁신 노력을 해야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고등연구 생태계가 서서히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취임 1년간 어떤 분야에 주력했나. “그동안 서울대가 내부 구성원이나 사회가 봤을 때 충분히 개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회의 기대에 부응했는가, 미래를 준비하려는 노력을 했는가 하는 차원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2025년은 관악캠퍼스를 중심으로 대학 종합화가 이뤄진 지 50주년 되는 해다. 또 2026년은 개교 80주년이다. 또 지금은 세계적으로 공급망 위기, 복합 안보 위기, 미중 패권 경쟁 등 국가적 도전 과제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서울대는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집단지성을 발휘하며 국가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 또 고등교육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서울대의 역할이다. 이런 과제를 해내지 못하면 서울대에 대한 신뢰는 없어질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이런 관점에서 제도 혁신과 재정 확충 등을 위한 여러 노력을 해 왔다. 또 관료주의적인 기존의 서울대를 네트워크형 대학, 플랫폼 대학으로 바꿔 나가려고 노력했다.” ―어떤 분야의 연구개발(R&D)에 주력하려 하나. “먼저 서울대는 양자기술의 허브가 되려고 한다. 서울대 양자연구단은 8, 9월경 시카고대 및 도쿄대와 공동 심포지엄 개최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11월 3개 대학 연구진 총 30명이 온라인 회의로 각 대학의 양자 연구 상황을 공유했고, 4∼5월경 구체적인 공동 연구 주제를 선정할 계획이다. 7월에는 시카고대 양자과학기술 여름캠프에 양자 분야를 연구하는 이공계 학부생들을 보낸다. 지난달 18일 다보스포럼에서 세 대학이 양자 협력 의향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양자기술뿐만 아니라 탄소 중립, 기후 테크놀로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도 서울대가 연구개발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이다.”유홍림 서울대 총장(63)서울대 정치학과 졸업미국 럿거스대 정치학 박사서울대 정치학과 교수한국정치사상학회장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서울대 28대 총장(2023년 2월~)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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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교과서 이후 아이들이 잃게 될 것들[광화문에서/이은택]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종종 부부 싸움의 발단이 된다. 7세와 5세인 두 딸은 두어 살 즈음부터 ‘엉뚱발랄 콩순이’로 시작해 ‘시크릿 쥬쥬 별의 여신’, ‘캐치티니핑’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밟았고 최근에는 ‘미라큘러스’, ‘슈퍼히어로걸스’ 등 외국 애니메이션을 섭렵 중이다. 조작법을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몰래 부모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가져가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해 만화를 튼다. 윽박과 체념을 오가다가 “보게 놔두자”, “그만 틀어주자” 하며 결국 아내와 싸우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교육부가 디지털 인공지능(AI) 교과서 도입을 준비하는 걸 보면 기분이 착잡하다. 교육계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에듀테크(교육+기술) 열사’로 통한다. 이 부총리의 역점 사업으로 내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일부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가 사용된다. 학생들은 종이 교과서 대신 태블릿PC를 들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옹호하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면서 첨단 기술을 일찍 접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수업에 필요한 태블릿PC를 정부가 모든 학생에게 나눠주기 때문에 가정 형편의 격차가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기기 접근성의 차이)로 이어지는 걸 완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잃는 건 없을까. 연필과 종이책의 감촉,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습관, 교과서와 문제집 한 권을 마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책거리, 필기구와 노트를 고르는 취향, 엄마 아빠와 서점에서 참고서 등을 고를 때의 망설임과 설렘. 이런 것들은 디지털 교과서가 줄 수 없는 경험이고 자극이다. 게다가 학교 수업은 지식 전달을 넘어 일생에 중요한 기억이자 추억이다. 선생님의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옆 친구에게 모르는 걸 물어보고, 친구의 가방 속과 노트 필기를 관찰하며 사람은 다르다는 걸 배우고 서로 소통하게 된다. 그런데 머잖아 아이들은 똑같은 태블릿PC만 뚫어져라 보며 수업을 하게 된다. 초등학생이 시험도 필기도 숙제도 태블릿PC로 하게 될 것이다. 반면 교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지난해부터 종이책과 필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연구소는 “디지털 기기가 학습 능력을 손상시킨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도 수업 중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과 수학 점수가 반비례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어차피 성인이 되면 원치 않아도 사방에서 ‘까톡!’거리는 디지털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한 살이라도 일찍 디지털로 내몰아야 할지, 종이와 연필의 아날로그 경험을 지켜줘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에듀테크 열사 이 부총리에게 소설가 김훈의 글을 하나 전하고 싶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김훈 ‘연필로 쓰기’)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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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IST 녹색성장대학원-인비저닝 파트너스 ‘기후테크 생태계 구축’ 업무협약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원장 엄지용)과 벤처투자기업 인비저닝 파트너스(대표 제현주 김용현)는 22일 기후테크 생태계 구축과 탄소중립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앞으로 양 기관은 △기후테크의 도약 생태계 구축과 글로벌 확장 △탄소중립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교육 고도화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창업 보육 및 육성 △기후위기 대응 관련 지식 공유 및 확산 등에 협력할 계획이다.엄 대학원장은 “기후테크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세계로 확장하는데 인비저닝 파트너스와의 협력이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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