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건국대(총장 원종필)가 급변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학생 중심의 미래 설계를 지원하기 위한 연속적인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건국대는 전공 탐색과 진로 설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참여형 박람회 ‘KU 어드벤처 전공탐험대’를 개최했다. 교육 성과와 진로 데이터를 통합 시각화한 ‘교육성과 관리 대시보드’ 를 개발하는 등 실질적인 정보 제공과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전공 및 진로 설계를 동시에 지원하는 체계가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건국대 교육데이터분석센터(센터장 박수미)는 교육 데이터에 기반한 대학 혁신을 위해 교육 성과 데이터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개발한 대시보드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공개했다. 이번 대시보드는 기존에 공문이나 책자형 보고서를 통해 제공되던 교육 성과 데이터를 온라인에서 누구나 쉽고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각화한 통합 플랫폼이다. 기존 방식에 비해 접근성과 활용도가 크게 높아졌다.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정책 수립이나 프로그램 기획 등 학생들에게 실제 필요한 내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시보드는 △재학생·졸업생·산업체 대상의 ‘교육만족도 및 수요도 조사’ 결과 △교수자와 학습자의 인식 차이를 비교한 ‘대학 교수학습 및 혁신에 관한 조사’ △졸업생의 취·창업 현황을 NCS 기준 및 기업 유형별로 분류한 ‘졸업생 취창업 현황’ △각 단과대별 재학생의 핵심역량 변화 추이를 담은 ‘핵심역량진단(KUCCA)’ 결과 △자유전공학부 신입생의 관심 전공 현황 및 전공 탐색 과정 등 건국대의 교육 전반에 걸친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담고 있다. 대화형 차트와 필터 기능을 탑재하는 등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구현해 누구나 직관적으로 데이터를 탐색하고 손쉽게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교육데이터분석센터 관계자는 “교육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한 유용한 도구”라며 “앞으로 학생이 중심이 되는 정책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건국대 교육 성과 대시보드는 교육데이터분석센터 홈페이지(https://ceri.konkuk.ac.kr)를 통해 열람할 수 있다. 학내 구성원 누구나 정책 설계 및 프로그램 기획에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편, 건국대는 이달 초 캠퍼스 내 새천년관 실내외 공간에서 학생들이 직접 전공과 진로를 체험할 수 있는 축제형 박람회 ‘제1회 KU 어드벤처 전공탐험대’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는 설명회나 상담회 형식에서 벗어나 봄 캠퍼스의 야외 부스에서 전공 상담을 받고, 다양한 진로 체험 프로그램과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방향성을 설계하도록 기획됐다. 박람회는 △인문, 사회, 자연, 공학 등 다양한 계열 40여 개 전공별 상담 부스(전공상담존) △취·창업, 전문자격증, ROTC 등 진로 관련 상담 부스(미래설계존) △전공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체험 부스(체험존) △인생네컷, 퍼스널컬러, 푸드트럭 등 참여형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부스(이벤트존)으로 구성됐다. 자유전공학부 학생뿐 아니라 모든 재학생에게도 열린 행사로 기획됐다. 건국대는 2025학년도부터 △다전공·부전공 졸업에 필요한 최저 이수 학점 하향 조정 △자유전공학부 신규 도입 등으로 융합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번 박람회는 학생들에게 전공 탐색과 진로 설계를 위한 실질적인 정보 제공과 경험의 장을 마련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융합혁신교육센터 관계자는 “학생들이 관심 전공에 대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고 진로탐색을 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기업 실무 리더들이 선택한 알토대 MBA 토크쇼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총장 문휘창)는 최근 서울 노보텔앰배서더 강남에서 알토대 MBA 과정 가을(9월)학기 입학 설명회인 ‘MBA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토크쇼에는 5년 이상 실무 경력이 있는 30∼50대 직장인 80여 명이 참석해 알토대 MBA 과정 졸업생 및 재학생 10인과 다양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가장 많은 관심을 모은 질문은 ‘국내에 다양한 MBA 과정이 존재하는데 왜 알토대 MBA를 선택해야 하는가’였다. 이 과정만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답변에 나선 알토대 MBA 동문인 이석원 비오메리으 코리아 이사는 “저도 2022년 10월 지금과 같은 입학설명회에 참석해 설명을 들었다. 최종적으로 알토대 MBA를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이 이사는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하루만 수업이 있어 직장 생활과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또 외국계 기업 재직자에게는 영어시험 면제 같은 간소한 입학 절차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며 “교재비 등 추가 비용이 없다는 것도 다른 국내 MBA와 비교해 경쟁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약 2주간의 핀란드 현지 HRP 프로그램은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던 경험 중 하나였다”며 “해외에서 강의를 듣고 동기들과 교류하면서 배움 이상의 성장을 경험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MBA 과정 입학 직후 이직하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동기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과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공동체적 분위기도 중요한 강점”이라고 밝혔다.서수영 AWS(아마존웹서비스코리아) 시니어 매니저는 실용적 관점에서 알토대 MBA를 선택했다고 밝혔다.“여러 학교를 비교하거나 설명회에 가지는 않았지만, 학위 취득의 필요성과 실무 환경에 가장 적합한 과정이 알토대 MBA여서 큰 고민 없이 결정할 수 있었어요.”서 시니어 매니저는 “20년 이상 실무 경력자로서 전문성을 뒷받침해 주는 석사학위 타이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알토대는 1년 6개월 내에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집중형 과정이어서 효율성이 매우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정한 강의 수준이 유지되면서도 비용 측면에서도 합리적인 구조였다”고 했다.서 시니어 매니저는 특히 지원자의 연령대 등을 고려한 학습 환경도 인상 깊었다고 강조했다. “40대 중반에 입학했는데 연령대가 지나치게 낮거나 높으면 체력적으로나 학습 방식에서 부담이 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알토대 MBA는 구성원 연령대나 경력 수준이 적절하게 밸런스를 이루고 있었죠.” 이어 그는 “서로의 경험을 기반으로 토론과 논의가 이뤄지는 MBA 수업 특성상 커리어 수준이 비슷한 동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다”고 설명했다.참석자들은 일부 영어로 이뤄지는 알토대 MBA 수업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언어에 대한 부담감이나 적응 과정이 어땠는지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양승진 LG사이언스파크 팀장은 “학기 중에는 나이가 많을수록 영어 강의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져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졸업하고 나니 오히려 전 과정이 영어로 진행됐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주길재 GS리테일 팀장은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어떻게 참여할지 팁을 공유했다.“저는 강의를 들을 때 번역기를 켜서 화면에 자동 번역되는 자막을 참고해 내용을 이해했습니다.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열띤 질의응답을 마무리하며 김지은 얼라이언스번스틴자산운용 VP는 알토대 MBA 과정이 커리어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전했다.“안정적인 은행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며 커리어의 한계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MBA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산업 분야 동기들, 멘토 같은 동료 여성 학우들에게서 새로운 도전의 가능성과 동기를 얻게 됐습니다.”김 VP는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거나 현재 위치에서 성장이 멈췄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본 과정은 충분히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나 역시 이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변화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참석자들은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명확한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크쇼 후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석자 80% 이상이 적극적인 입학 의사를 밝혔다. 이번 토크쇼는 정보 전달을 넘어 예비 지원자들의 진지한 고민과 질문이 오간 의미 있는 장이었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았다.● 주말 수업으로 만나는 세계 1% MBA 과정알토대 MBA는 국내에서 유럽 명문 핀란드 알토대 정규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복수 학위’ 과정이다. 한국에서 과정을 시작한 1995년 이래 국내에 4876명의 동문이 있을 만큼 동문 네트워크 규모가 상당하다.알토대는 2010년 핀란드 정부 주도로 수도 헬싱키를 대표하는 헬싱키 경제대와 공대, 그리고 예술디자인대를 통합해 출범한 혁신 대학이다. 경영 전문 저널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와 데이터 및 뉴스 서비스 기업 로이터가 꼽은 ‘전 세계 혁신 대학’에 들었으며, 지난해 세계 대학 랭킹 시스템(WURI) 선정 세계 혁신 대학 7위에 올랐다. 또한 타임즈 고등 교육(Times Higher Education) 2025 랭킹 국제적 전망 분야에서 51위에 올라 100위권 또는 그 이후 순위였던 국내 주요 대학들과 대비됐다.알토대 MBA는 9월 개강하는 가을학기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국내외 정규 대학 학사학위 취득자나 5년 이상 직장 경력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입학을 고민 중인 사람은 입학처를 통해 유선, 온라인, 또는 회사 근처 방문 상담을 무료로 신청할 수 있다. 원서접수 및 입학문의는 홈페이지와 전화로 하면 된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교육, 의료, 문화 등의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며 지방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립대들이 교육 소외와 같은 지역의 어려움을 풀어가며 지역 사회와의 동반성장을 꾀하고 있다. 춘천교대농산어촌 초등생 대상 역사캠프 운영춘천교대는 지난해 7월 29일부터 8월 2일까지 총 5일 동안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역사캠프를 진행했다. 역사캠프는 강원도 춘천 서면의 금산초에서 진행됐다. 금산초는 총 학생수가 64명, 교원수가 14명에 불과한 농산어촌 학교다. 춘천교대는 강원도내 농산어촌 지역 초등학생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보고방학기간 중 놀이와 수업이 융합된 창의적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역사캠프를 기획했다. 역사캠프는 교육부가 추진 중인 ‘국립대학 육성사업’ 중 하나다. 캠프에는 춘천교대 재학생 38명, 금산초 학생 24명이 참여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로 ‘나는 누구일까요’,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독도는 우리땅’, ‘임금님 수라상’, ‘나는야 한석봉’ 등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총 16회의 수업이 진행됐다. 정규 교과 수업에서 경험할 수 없는 붓글씨 쓰기, 쌀강정 만들기, 연극 발표, 소고 만들기, 엽전 시장놀이, 도전 골든벨 등으로 수업이 꾸려져 호응을 얻었다. 역사캠프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캠프 이후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학생들을 지도한 춘천교대 재학생은 5점 만점 중 4.58점을, 금산초 학생들은 5점 만점 중 4.48점을 줬다. 춘천교대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 지원으로 시작된 역사캠프에 대해 재학생, 초등생, 학부모들의 호응이 좋다. 주제를 넓혀 캠프 운영을 연 2회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며 “이번 캠프를 시작으로 지역 내 농산어촌 아이들의 교육강화를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국립 금오공대‘KIT 스마트 공학교실’ 열어국립 금오공대도 교육 환경 강화를 위해 나섰다. 지난해부터 경북 지역 중학생을 대상으로 ‘KIT(Kumoh National Institute of Technology) 스마트 공학교실’을 열고, 지역아동센터 초등학생을 위해서는 ‘과학키트 만들기’를 진행했다. 지역내 학생들에게 AI(인공지능), 로봇 등 미래 핵심기술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지역 산업 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취지다.총 2회에 걸쳐 진행된 ‘KIT 스마트 공학 교실’은 옥계동부중과 경산중에서 진행됐다. 국립 금오공대 재학생이 중학교에 방문해 전공과 진로를 소개하고 학생들과 함께 공학 기술을 체험했다. ‘과학키트 만들기’에는 경북 구미 내 25개 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됐고, 총 441명의 초등생이 참여했다. ‘KIT 스마트 공학교실’에는 868명의 중학생이 참여했고, 만족도는 5점 만점 중 4.7점이었다. ‘KIT 스마트 공학교실’에 참여한 국립 금오공대의 한 재학생은 “중학생들에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대학의 역할과 지역사회 연계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다”며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 전공 학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립 금오공대 관계자는 “대학이 보유한 우수한 인적, 물적 자원을 적극 활용해 지역 사회 발전을 지원하고, 성공 사례와 협력 모델을 타 지자체, 대학들과 공유해 지역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경상국립대범죄예방 환경설계 모색안전한 지역 사회 만들기 나서지역 사회를 안전하게 지키려고 나선 대학도 있다. 경상국립대는 ‘범죄예방 환경설계’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대학-지역 동반성장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해 경상국립대 재학생 66명은 대학의 자원과 연구 인프라를 활용해 지역 안전문제를 짚어보고, 교내 범죄예방디자인 연구정보센터와 협업해 프로젝트를 고도화했다. 진주경찰서와도 연계했다. 범죄 발생 데이터와 ‘범죄예방 환경설계’ 적용 사례를 공유했다. 이를 발판으로 2025년 경상남도 주민참여 예산 제안 사업에서 ‘생활안전형’ 공모 사업에도 참여했다. 공모에는 ‘대학-지역 동반성장 기획 프로젝트’ 아이디어 중 ‘꿈길’팀의 ‘대학가 범죄취약지역 예방을 위한 범죄예방 환경설계 디자인’과 ‘전국감성자랑팀’의 ‘안전한 골목을 위한 범죄예방 프로젝트’가 각각 제안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상국립대 학생은 “평소에는 인식 못했던 지역의 다양한 문제들을 직접 경험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지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경상국립대 관계자는 “지역 사회 소멸 위기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재학생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지역 전문가들과 협력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의미가 컸던 프로젝트였다”며 “지역 문제 해결과 동반성장은 국립대의 핵심적인 역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경인교대지역 개방형 인문예술 프로그램 개최경인교대는 지역주민들에게 양질의 인문 예술 콘텐츠를 제공하고 문화예술 교육의 허브 역할을 한다는 차원으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2024 오늘, 여기’를 진행했다. ‘2024 오늘, 여기’는 음악공연, 인문강연, 미술전시, 인문예술 융합 콘서트, 체험활동으로 구성됐다. 총 21회를 개최했는데, 5629명이 관람했다. 경인교대는 보다 양질의 인문예술 콘텐츠 개발을 위해 교내 전문인력과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정부미술은행, 경기아트센터 등과 협업했다. 공연 및 강연에 대한 만족도는 5점 만점 중 4.5점, 전시 및 체험 만족도는 4.6점이었다. 한 지역 주민은 “수준 높은 강연과 국악 연주를 가까운 곳에서 누릴 수 있어 감사했다”고 말했다. 미술전시를 관람한 경인교대 재학생은 “작품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는 좋은 기회였다”고 전했다. 경인교대 관계자도 “지역주민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생애주기별 문화예술 교육 증진에 기여하고, 지역발전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올해 개통된 세종포천고속도로(총연장 176.3km) 안성∼용인∼구리 구간(72.2km·남안성 분기점에서 남구리 나들목까지)을 달리다 보면 공중에 떠 있는 듯 거대한 링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달을 모티브로 보름달이라는 큰 원에 초승달 곡선을 결합한 형태의 건물이다. 처인휴게소다. 도로 위에 있어 상공형, 상·하행이 합쳐져 양방향 통합형이다. 건물에서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기존 휴게소 서비스에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더했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일종인 수직 이착륙 전동 항공기 모형 체험시설이 있고 스크린으로 여러 스포츠를 맛보는 스포츠 테마파크, 귀여운 캐릭터 토끼, 기린 등으로 꾸민 테라스와 N서울타워처럼 ‘사랑의 자물쇠’ 공간도 있다. 전국 211개 휴게소 중 유일하게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고속도로 휴게소의 ‘변신’이 놀랍다. 간단히 먹고 볼일 보며 잠을 쫓던 곳에서 쇼핑, 취미 생활, 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그 배경에는 민간과의 협업이 있다. 한국도로공사(사장 함진규)는 땅을 비롯한 인프라와 정책으로 지원하고 기업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자본으로 화답한 결과다.지난해 5월 경기 양평군에 들어선 남한강휴게소도 민관 협력의 본보기로 꼽을 수 있다. 가상현실(VR) 시뮬레이터를 적용한 UAM 체험시설과 정규 경기가 가능한 드론(무인항공기) 축구 경기장 같은 미래형 공간이 시선을 끈다. 반려견 동반자용 식당이 있어 문밖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견공은 보기 힘들다. 텐트형 글램핑 공간도 마련돼 이색적인 휴식을 제공한다. 음식이라는 기본에는 더욱 철저해졌다. 중소벤처기업부가 30년 이상 꾸준히 사랑을 받아 온 식당 가운데 선정한 ‘백년가게’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꼽은 맛집을 155개 휴게소에 유치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208개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소떡소떡(소시지와 가래떡 꼬치) 같은 10가지 간식류 가격을 3500원 이하로 한 ‘알뜰간식’을 판매하고 있다. 휴게소 손님이 많이 찾는 식사류, 라면, 가락국수(우동), 생수를 ‘실속 상품’으로 정해 각각 일정 가격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2014년 도입한 고속도로 주유소 브랜드 ex-OIL은 소비자 유류비 절감에 한몫하고 있다. 올 2월 기준 204개 휴게소 ex-OIL에서는 전국 주유소 평균 가격보다 L당 휘발유는 54원, 경유는 51원 싸게 팔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이같이 저렴한 ex-OIL 기름값을 통해 지난해까지 소비자에게 환원한 금액이 약 1조 원이라고 추산했다. 휴게소 화장실은 더욱 쾌적하고 고객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ex-OIL 도입 10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화장실 전면 혁신에 돌입했다. 내 차에 기름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실시간 확인하는 모니터와 센서형 세면기가 도입되고 있다. 함진규 사장은 “고속도로 휴게소는 서비스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며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쉼터가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휴게소를 계속 선보이겠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1“넌 이 제품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2013년 어느 날, 채진희 LG전자 상품기획 담당 대리(현 리빙솔루션SE팀 팀장)에게 그의 사수가 물었다. 그 전해에 이직해 오고 나서 이 제품 기획을 맡은 채 대리가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말했다. “네. 무조건 뜰 거라고 생각해요. 시간문제에요.” 사수는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다. 좋겠다”라며 자리를 떴다.#2 분명히 그렇게 들었다. 처음 개발에 참여했을 때 함께 일한 선후배들이 다시 온다고. 실장님이 당시 개발진을 일일이 다 만났다고. 프로젝트 리더로 새 조직에 가서 보니 입사 1, 2년 차 연구원 10명이 전부였다. 선배들은 이미 파트장이 돼 움직일 수 없었고 자신 같은 파견자들은 대부분 연구 조직에서 생산 조직으로 옮긴 뒤였다. 2012년 말, 임형규 LG전자 개발 담당 선임연구원(현 리빙솔루션사업부 책임연구원)은 생각했다. ‘맨땅에 헤딩해야겠네.’ ● 에센스 프로젝트 ‘새 옷처럼 착!’2011년 초 세상에 첫선을 보인 스타일러는 그해 1만 대 가까이 팔렸다. ‘입은 옷을 빨지 않아도 구김 없이 깨끗하게 또 입을 수 있겠네’라는 소비자의 기대에 힘입어 이제까지 없던 가전(家電)으로는 좋은 출발이었다. 문제는 이듬해였다. 판매 추세가 꺾여 갔다. 예상만큼 시장이 커지지 않았다. 매장에 자리를 마련해 줬지만 원하던 아웃풋이 나오지 않자 ‘안 되는 제품 아닌가’하는 영업 쪽 의구심이 커 갔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소비자에게 스타일러는 생소한 제품이었다. ‘새 옷처럼’이라는 광고 문구에 사로잡혀 세탁이나 드라이클리닝에 다림질까지 완벽한 옷을 기대한 소비자에게 기기가 제공하는 수준은 마뜩지 못했다.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킨 셈이었다. 매일 빨기 어려운 교복, 청바지 같은 옷 냄새나 구김을 줄여 다시 입기 쾌적하게 만든다는 ‘리프레시(refresh)’ 콘셉트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너무 크고 비쌌다. 가로 60cm, 세로(높이) 196cm, 깊이 60cm. 스탠드형 김치냉장고만한 것이 가격은 200만 원에 육박했다. 스타일러가 주로 거실에 놓였다는 것도 사이즈 문제를 부각했다. 드레스룸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가구와 가전이 이미 차지한 방이나 주방에는 둘 곳이 없었다. 소파 옆에 놓인 크고 육중한 물체는 안락해야 할 공간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어디에 놓아도 너무 커 보이지 않아야 했다. 더 슬림(날씬)해져야 했다. 크기는 줄이고 가격은 낮추며 성능은 업그레이드. 그렇게 ‘에센스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0년 넘게 연구해 세탁기 스팀, 냉장고 온도 관리, 에어콘 기류 제어 같은 LG전자 핵심 기술을 모두 적용해 만든 신(新)가전 플랫폼을 운영한 지 2년이 채 안 돼 바꾸는 일이었다. ● 산 사람, 안 산 사람, 살 사람스타일러 크기를 최적화하는 작업은 비유하자면 메르세데스 벤츠 S클라스 차량 다음에 C클래스를 만드는 일과 비슷했다. 문외한이 볼 때는 선돌 형태 직육면체의 가로세로와 깊이를 줄이는 것이 그리 큰일일까 싶은데 의외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다 해야 하는 일이었다. 자동차 엔진과도 같은 기계실의 스팀 제너레이터, 히트펌프를 비롯해 거의 모든 모듈을 재설계해야 했다.시작은 고객 조사였다. 산 사람, 안 산 사람, 살 사람들에게 현재 팔고 있는 제품과 에센스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폼팩터(form factor·제품의 물리적 외형과 규격)를 제시하고 의견을 들었다. “기존 제품이 너무 큰가요?” “가로를 이 정도로 하면 괜찮을까요?” “높이는 몇 cm 줄이면 적당할까요?” “깊이는 그대로 놔두면 어떨까요?”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옷은 몇 벌이 좋을까요?”사이즈가 결정돼 금형 설계에 들어가기까지 한곳에서 소비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대규모 고객 조사만 적어도 두세 번. 그 중간중간 몇 명에서 10여 명씩 의견을 계속 물었다. 채 팀장이 기억하는 조사 대상만 300명을 넘겼다. 소비자만이 아니었다. 관련 전공 교수들, 인테리어 업체 운영자들, 아파트 시공업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워크숍도 하면서 전문적 견해를 들었다. 회사 밖 사람들뿐만 아니다. 경기 평택시 LG전자 러닝(learning)센터에서 교육받는 영업사원들한테까지 물었다. “이 제품을 파실 수 있을 것 같나요?”디자인팀과 함께 제품의 가로세로와 깊이의 비례감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초기 작업이었다. 가로만 10cm 줄어든 것, 세로만 10cm 줄어든 것, 가로세로는 그대로이고 깊이만 줄어든 것, 특정 깊이에서 처리할 수 있는 옷은 몇 벌인지 등을 조합해 다시 고객 의견을 물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적의 사이즈를 정했다고 생각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이 사이즈가 정말 맞는 것인가?’ 하는 사내 의견이 나오면 화이트 목업(mock-up)을 만들어 다시 조사했다. 목업은 작동되지 않는 상태의 제품 디자인 모형이다. 화이트 목업은 부피감을 보기 위해 스티로폼을 깎아 만든 것이다.가로세로와 깊이를 각각 5cm, 10cm씩 변형시키면서 최적 비례를 향한 접점을 찾는 미세 조정을 했다. 얇아지고 높아질수록 진동에 흔들리기 쉽고, 높이만 낮추면 뚱뚱해져 디자인을 망친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가장 깔끔하고 날렵하게 보여야 한다.고객 조사와 화이트 목업 작업을 통해 7, 8개 사이즈를 검토한 끝에 하나의 사이즈가 도출됐다. 가로 45cm, 세로(높이) 185cm, 깊이 60cm.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옷 세 벌. 그리고 스타일러 문 안쪽에 부착할 바지 칼 주름 잡는 ‘팬츠 프레스’까지.● 사이즈 30% 감소, 재료비 30% 감축‘큰일은 났다.’임 팀장은 개발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상품기획팀과 디자인팀에서 정리한 사이즈와 디자인을 토대로 만든 목업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예뻤다. ‘분명히 시장성은 있다. 이 제품하고 같이 성장해도 괜찮겠다. 키워야 한다.’옷이 치수가 준다고 가격이 변하지는 않는다. 운동화 문수가 작아진다고 싸지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고객의 가격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이즈를 30% 줄였으니 재료비도 30%를 줄여야 했다. 1세대 제품이 프리미엄급이었다면 이번 것은 대중적이어야 한다며 상품기획 쪽에서 내놓은 가격도 이와 비슷했다. 그러면서 성능은 더 올려야 했다. 암담하기도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환경은 좋았다.2세대 콘셉트는 대략 잡혔지만 설계와 제작 과정에서 세세한 문제들을 풀어내야 했다. 제품을 만들고 나면 다음 개발자들이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디자인 가이드를 문서로 남긴다. 스타일러 문짝 하나만 바뀐다면 가이드의 기존 개스킷 설계를 쓰면 된다. 하지만 크기가 줄어 모든 상대물 사이즈가 다 바뀌고 시스템 자체 간격도 틀어져 버린 상황에서 가이드는 참조용 정도였다.경험이 일천한 연구원 10명과 함께하는 개발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개발자는 설계만 하지 않는다. 설계한 제품이 생산되기까지 각자 맡은 일이 있었다. 누구는 품질을 담당하고, 누구는 양산성(量産性), 누구는 서비스, 누구는 협력사 관리 등등. 대부분 해 보지 않은 일들이어서 하나하나 알려 주며 움직였다. 이들의 열정, 치열함, 실행력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테다.설계와 제작 과정에서 임 팀장과 연구원들의 소통은 보통 일과 이후까지 계속 이어졌다. 각자 맡은 일에 대한 리뷰와 피드백, 앞으로의 방향성 등을 짚고 이를 토대로 설계를 수정, 보완하느라 야근은 으레 이튿날 새벽 3시쯤 끝났다. 그해 자신의 첫아이가 태어났지만, 그날 임 팀장은 아기 얼굴을 보지 못했다.● 테스트, 데이터, 테스트“안녕하세요. 저는 LG전자에서 일하는데요. 죄송하지만 옷걸이 사이즈 좀 잴게요.” 채 대리는 서울에 있는 의류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옷걸이 사진을 찍고 가로세로 길이를 쟀다. 스타일러에 들어가는 교복 옷걸이를 만들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시중에서 파는 옷걸이 전체 사이즈를 파악했다.스타일러는 벤치마킹할 제품이 따로 없었다. 만드는 것 자체가 기준이 됐다. 그 기준을 새롭게 만드는 일은 기존 제품에서 한 단계 진화해야 하는 일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많은 테스트와 데이터가 필요했다.바지를 강한 압력과 열로 눌러 주름을 바짝 세우는 팬츠 프레스를 개발하는 임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대체적인 바지 폭이 얼마인지 알아야 설계를 할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바지 사이즈를 확인했다. 바지가 그렇게나 트렌디한 제품이었는지…. 계절에 따라, 유행에 따라 바지 폭이 휙휙 바뀌는 것을 알았다. 겨울 양복바지가 두 겹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스타일러 문 안쪽에 달릴 팬츠 프레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바지 폭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문의 가로세로 길이는 이미 정해져 있어, 어느 바지든 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만약 범위를 정한다면 그것은 고객의 몇 퍼센트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인가. 채 대리는 이를 위해 대한민국 100분위 평균 키와 몸무게 같은 신체 사이즈 데이터까지 확인했다.‘끝판왕(최고 수준)’은 품질 테스트였다. 설계를 토대로 최초 금형품이 나오면 이를 제조해서 성능은 어떤지,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을 품질 부서에서 시험한다. 테스트 제작이어도 실제 생산 라인에서 조립했다. 다만 테스트용 새 모델 제작은 현재 양산 모델보다 생산 시간이 두세 배 더 든다. 제조 쪽에서 볼 때 달갑지 않은 일일 수 있다.2014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1세대 스타일러에 비해 바꾼 것이 워낙 많다 보니 제조 쪽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을 놓친 것이 꽤 됐다. 품질 테스트용으로 200대 가까이 생산해서 포장까지 마쳤는데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이 생긴 것이다. 그 경우 제조 쪽에서 재작업해서 품질 테스트 부서로 넘겨야 하는데, 생산 라인 근무 시간은 이미 넘겼다. 개발팀은 “해 달라. 우리도 하겠다”고 했지만 제조 쪽은 “이렇게 많은 양을 할 수 있겠느냐”며 퇴근해 버렸다.임 팀장과 연구원 10명은 그날 밤을 새워 200대 포장을 뜯고 조립이 잘못된 부분, 틈새가 벌어진 부분 등을 한 대, 한 대 다 수정해서 다시 포장했다. 겨울밤 추위가 공장으로 스며들면 개스킷이 생산 라인 투입 전에 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덥혀 주는 ‘예열룸’에 들어가 곱은 손을 풀고 몸을 녹였다. 이튿날 제조 쪽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독종 같은 놈들이 있네”하며 혀를 차면서도, 그다음부터 수정할 일이 생기면 손수 남아서 작업을 마무리해 줬다. ● “디자인팀, 너…”개발팀 목표 1순위는 디자인된 것을 제대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하다 하다 안 되면 디자인팀과 다시 얘기해서 부분 수정해야 했다. 개발팀에서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도, 디자인팀은 원래 구상에 없던 줄이 하나 더 생기거나 보는 각도에 따라 보이지 않던 선이 보이는 일 등에 민감했다. 상품기획이나 개발 단계에서 가장 많이 싸운 대상은 디자인이었다.개발 중인 제품의 품질 문제를 개선하려다 보면 디자인을 일부 건드릴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디자인 쪽은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원안을 고수하면 개발 비용이 올라가고 일정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조금 양보해 주면 될 것 같은데, 아쉽기도 했다. 목청 높이고 얼굴 붉히며 싸우기도 했다. 그럼 이튿날 디자인팀에서 첫차로 개발팀이 있는 경남 창원으로 내려왔다. 같이 현물을 보고 고민해서 답을 찾은 뒤 화해하고 올라갔다.고객 조사를 할 때 정해진 시간은 대략 1시간~1시간 반 정도였다. 하염없이 고객을 앉혀 놓을 수는 없었다. 채 대리가 조사 업체와 조사 시간과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끝내 놓은 뒤였다. 스타일러 문 디자인 샘플은 5개로 하고 관련 설문도 다 작성했다. 그런데 정작 조사 당일 디자인팀에서는 “디자인을 조금 더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샘플을 10개나 가져왔다.싸웠다가 화해했다를 반복했지만 앙금이 남거나 찝찝한 기분이 지속하지는 않았다. 각자 부서의 처지가 있고 제품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같으며 더 나은 제품을 만들자는 꿈은 같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다에센스 프로젝트는 2015년 슬림형 스타일러 출시로 성공적인 막을 내렸다. 해외에서도 잘 나갔다. 그때 묘한 일이 생겼다. 날씬하게 잘 빠진 디자인의 성취였지만 용량이 다소 아쉽다는 소리가 들렸다. “큰 것을 다시 낼 타이밍이야.” 1세대 대용량 제품을 다시 만들어 보자는 얘기였다. 경험과 기술이 축적돼 있겠다, 개발팀은 자신이 있었다.상품기획 쪽은 반신반의했다. 소비자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 가능할까. 채 대리는 대용량 스타일러 개발을 위한 고객 조사를 다시 하면서 자신이 부러지는 경험을 했다. ‘큰 스타일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소비자에게 물었다. 몇 년 전에는 “너무 커요” 했던 사람들이 “이 정도는 돼야죠”라고 바뀐 것이다. 그래도 ‘이게 될까’ 했던 대용량 스타일러의 ‘복귀’를 도운 것은 롱패딩이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몹시 추운 날씨에 롱패딩이 ‘인기몰이’를 했다. 슬림형 스타일러는 높이를 낮추다 보니 공간이 줄어들어서 기장이 긴 옷을 넣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대용량 스타일러 등장으로 다시 공간이 커지니 롱패딩 여러 벌도 한 번에 너끈했다. 물론 매출은 증가했다. 슬림형 스타일러가 출시됐을 때는 어땠을까. 마케팅 포인트는 옷맵시를 살려 주는 기기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의류를 관리해 주는, 평소 필요한 가전이라는 것이었다. 때마침 미세먼지가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마스크가 일상화하기 시작했고, 밖에서 귀가하면 옷에서 모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대로 두면 왠지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듯했다.미세먼지 많은 날 외출할 때 입은 옷을 다시 빨 수도 없고 드라이클리닝하기도 마땅치 않아 고민하던 소비자들은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스타일러의 필요성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마케팅 용어가 공기청정기와 더불어 ‘위생 가전’이었다. 스타일러는 어쩌면 ‘될놈될(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뜻의 속어)’이었던 것이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국내 로펌에 시니어산업 발전을 지원할 전문 조직이 처음으로 생겼다. 법무법인 대륙아주(대표변호사 이규철)는 9일 시니어산업 지원 전문(ASL: Advance Senior Life)팀을 발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10여 개 대학 캠퍼스에 실버타운을 짓는 방안도 추진한다.ASL팀은 이규철 대표변호사를 비롯해 하나금융지주 및 하나증권 부사장을 지낸 김희대 변호사와 전재기(건설부동산팀장), 문주혜, 이태선 변호사, 그리고 배우성 고문으로 구성돼 있다. 최종만 전 호반건설 사장과 이형기 전 현대산업개발 전무, 이윤학 시니어금융연구원장 등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한다.ASL팀은 학생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에 은퇴자 공동체 구축, 재개발을 비롯해 노후 부지를 활용한 시니어타운 구축, 시니어타운 산업 투자 및 금융 상품 등에 대한 법률 자문을 진행할 예정이다.앞서 대륙아주는 지난해 3월 동명대, 조선대와 협력 관계를 맺고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UBRC) 사업을 자문해 왔다. UBRC는 스탠포드대를 비롯한 미국 100여 대학 캠퍼스에서 30년간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은퇴자 주거 및 교육 시설이다. 전통적인 시니어 주거단지 기능에 다양한 교육시스템을 접목했다. 대륙아주는 수도권 10여 개 대학에도 UBRC를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이 대표변호사는 “시니어 관련 사업은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융합적으로 자문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우수한 전문 인재를 모셔 수준 높은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배 고문도 “액티브 시니어 세대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은퇴를 종점이 아니라 새 인생의 장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UBRC에 많은 기대와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주춤했던 국내 소형항공운송(좌석 수 80석 이하) 시장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섬에어(대표 최용덕)가 지난달 국토교통부 소형항공운송사업면허를 취득했다. 국내 소형항공운송 시장은 사실상 유일하게 영업하던 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2년 가까이 동면 상태였다. 섬에어의 면허 취득은 국토부가 지난해 6월 소형항공기 운영 가능 기준(국내선) 좌석 수를 기존 50석에서 80석으로 늘린 후 처음이다. 항공기로 지역과 지역을 잇는 지역 항공 모빌리티(RAM)를 목표로 하는 섬에어가 면허를 얻으면서 향후 지역과 지역, 지역과 거점도시, 그리고 육지와 도서(島嶼) 사이를 더 편리하게 오갈 수 있게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KTX 노선이 없는 영호남 간 동서(東西)를 연결하고 호남과 강원을 수직에 가깝게 연결해 내륙 ‘X’자 노선 취항이 가능하고, 인천공항과 지역 공항 사이의 왕래가 더 많아질 수 있다. 특히 2027년 공항 완공 예정인 울릉도를 비롯해 공항 건설 계획이 있는 흑산도 백령도 등과 내륙 노선을 연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섬에어는 곧 운항증명(AOC)을 신청해 취득하는 대로 김포∼포항·경주∼제주, 김포∼사천∼제주 노선을 시작으로 운항에 들어갈 계획이다.이를 위해 11월 72명이 탈 수 있는 ATR72-600 항공기(사진)를 도입한다. ATR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으로 1981년 설립한 항공기 제작사로 에어버스 자회사다. 90인승 미만 터보프롭(프로펠러) 항공기가 주력 제품이다. 이어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8대를 더 도입하는 계약을 ATR과 맺었다. 섬에어 측은 ART72-600이 울릉도 흑산도 백령도에 들어설 공항에 설치되는 1200m 길이 활주로에서 충분히 안전하게 이착륙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조류가 매우 빠르게 돌아가는 프로펠러 사이를 통과해 엔진으로 들어가 고장 내기 어려운 구조여서 안전하다고 밝혔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차가워진 다다미 기운이 요를 통해 전해지며 눈을 떴다. 창호지 미닫이 창문을 열자 통창 밖 에치고(越後)평야가 다가온다. 뾰족뾰족 벼 그루터기로 빼곡한 논이 멀리까지 뻗어 있다. 그 너머로 겹치며 이어지는 산등성이들은 희끗희끗하다. 어디선가 백조들이 나타나 삼삼오오 허공에 긴 줄을 긋는다. 10일 초봄, 일본 니가타(新潟). 술은 다 익고 눈은 덜 녹았다.● 술이 익는다9일 니가타현 니가타시 도키(朱鷺)멧세 컨벤션센터에 들어서자 술내가 콧속을 채운다. 니가타 사케(청주·니혼슈·日本酒) 양조장들의 술 박람회 ‘니가타 사케노진(酒の陣) 2025’ 현장이다.혼슈 서부 해안선 330km를 끼고 있는 니가타현에는 89개 양조장이 있다. 일본 전역에 1500곳 넘게 있는데, 니가타에 가장 많다. 쌀을 발효시켜 빚는 술인 만큼 쌀도 제일 많이 난다. 니가타를 관통하는 일본 최장 시나노(信農)강 하류가 평야 지대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품종 고시히카리가 여기서 난다. 눈도 연간 가장 많이 내리는 터라 폭설에 발이 묶이는 시간이 많아서일까, 연간 어른 한 명이 사케를 8.6L 사 마신다. 일본 성인 평균은 4L다.사케노진에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구보타(久保田)’의 아사히주조, ‘핫카이산(八海山)’의 핫카이산주조, ‘코시노간바이(越乃寒梅)’의 이시모토주조를 비롯해 80개 양조장이 참가했다. “굳이 현 밖에까지 팔 생각 없다”며 나오지 않은 양조장도 있단다.현장에서 주는 시음용 자기(磁器) 잔을 들고 서너 시간 돌아본다. 술을 끊었기에 향만 맡았는데도 머리가 살짝 띵하다. 불콰해진 얼굴들, 비틀대는 사람들, 부축하는 친구들. 곳곳에서 들리는 잔 깨지는 소리. 인간미가 넘실댄다. 컨벤션센터를 끼고 시나노강이 흐른다. 사도(佐渡)섬 가는 여객선 터미널이 지척이다. 취한 듯 20대 남녀 예닐곱 명이 강가에서 깔깔대다 목청껏 노래한다. 친근감이 더해진다.사케는 씻고 불리고 찐 쌀로 쌀누룩과 모로미(술밑)를 만들고 여기에 물과 지에밥을 넣어 발효시킨 다음 짜고 걸러 만든다. 누룩균과 효모균 이외 잡균이 살기 어려운 겨울에 제조한다. 12월~2월에 바짝 술을 내린다. 3월이면 새 술을 들고 사케노진에 나온다.많은 양조장에 일반인 견학 프로그램이 있지만 쌀누룩 제조실과 발효실은 공개하길 꺼린다. 잡균이 들어와 전분을 당(糖)으로 바꾸는 누룩균과 당을 알코올로 발효시키는 효모균에 악영향을 끼칠까 봐서다. 니가타시의 126년 된 다카노(高野)주조가 특별히 발효 탱크 속 모로미를 장대(카이보)로 젓는 ‘카이이레’를 허락했다. 단, 체험 직전 식사에는 낫토, 요구르트, 김치 같은 발효음식은 먹지 못한다. 유산균 등이 술맛을 망칠 수 있다. 하루 세 번, 15분씩 저어 발효될 때 생기는 거품을 없앤다. 전국에서 몇 년에 한 명, 카이이레를 하다 탱크에 빠진다.시바타(新発田)시 고몬(王紋)주조는 쌀누룩 제조실을 살짝 보여 줬다. 술맛과 제조법을 정하고 공정을 총괄하는 주조책임자 토우지(杜氏)가 안내한다. 여성이 양조장 문턱을 넘은 지는 몇십 년밖에 안 된다. 235년째 한자리에 있는 이곳에서 일본 최초 여성 토우지가 나왔다. 쌀누룩 제조실은 누룩균 배양에 적당하도록 섭씨 35도 정도로 맞춰 사우나 같다. 무더위와 쌀누룩이 만들어질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에 쓰러지는 작업자도 있다.약 3주간 발효 후 그해 첫술을 내릴 무렵 양조장 현관 처마 끝에 스기다마(杉玉)를 매단다. 푸른 삼나무 잎들을 공처럼 모은 것이다. “새 술이 곧 나온다”는 뜻이다. 나가오카(長岡)시 세타야(攝田屋)의, 1548년 개업한 요시노가와(吉乃川)주조에도 달려 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다. 병에 술 넣는 작업을 하던 공간을 사케 뮤지엄으로 만들었는데 그곳 스기다마는 황갈색으로 변했다. 사케가 다 익었다.● 봄, 눈(雪)8일 니가타국제공항에서 남쪽 우오누마(魚沼)시로 가는 길. 양쪽은 대부분 넓디넓은 논이다. 지평선이 있어야 할 자리에 해발 1400~2000m급 산들이 늘어서 있다. 아와가타케산, 스몬다케산, 에치고고마카다케산…. 설산(雪山)이다. 네팔 안개 위로 드러난 안나푸르나 연봉(連峯)을 땅에 주저앉힌 듯하다. 눈(雪) 덕에 눈(目)이 호강한다.평야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인 주택은 거의 다 이층집이다. 눈이 현관보다 높이 쌓이는 일이 잦기에 2층은 임시 출입구다. 니가타가 배경인 가와바타 야스나리 소설 ‘설국’에서는 아이들이 2층 창밖으로 나가 눈 속에서 헤엄치듯 길을 낸다. 큰길가나 들판에 하양, 빨강 아니면 노랑, 검정을 번갈아 칠한 높이 2~3m 막대가 꽂혀 있다. 눈이 얼마나 내렸나 눈대중할 수 있다.에도(江戶)시대 에도(도쿄)에서 에치고(니가타)를 잇는 길에 있던 역참(驛站)마을을 재현한 미나미우오누마(南魚沼)시 보쿠시도리(牧之通り)에서 강기(雁木)를 본다. 가지런히 서 있는 가게들 처마에서 더 길게 내민 차양을 말한다. 그 끝을 기둥들이 떠받친다. 차양과 기둥이 캐노피처럼 길게 이어져 눈이 퍼부을 때 통로가 된다. 거리 한쪽, 가지를 자른 나무에 실제보다 커다란 초록 사마귀 모형이 붙어 있다. 해마다 진짜 사마귀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 보고 그해 적설량을 추정한단다.핫카이산주조 양조장 겸 전시장인 우오누마노사토(魚沼の里)에는 사케 숙성용 탱크가 들어선 유키무로(雪室)가 있다. 건물 내부 한쪽은 1만8000L들이 탱크 20개, 다른 한쪽은 대략 가로세로와 높이 각 10m 이상 눈이 쌓여 있다. 눈은 1000t까지 쌓을 수 있다. 눈이 녹으며 나는 냉기로 섭씨 4도 안팎을 유지해 부드럽게 술을 익힌다. 옛날엔 눈이 녹지 않게 온통 볏단으로 덮고 그 안에서 술을 숙성시켰다.니가타는 ‘눈이 많이 내려서 산의 눈석임물(쌓인 눈이 속으로 녹아서 흐르는 물)이 풍부해 논농사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고 한다(‘사케 소믈리에가 들려주는 일본 술 이야기’, 추조 카즈오 지음, 시사일본어사, 2023). 물이 좋으니 쌀도 좋다. 그럼에도 술에 더 적당하도록 잡맛을 내는 단백질 함량을 낮춰 품종 개량한 주조호적미(酒造好適米)를 만들었다. 니가타산 고하쿠만고쿠(五百萬石)가 유명하다.폭설에 갇힌 스위스인들이 집에서 놀라운 시계 제조 기술을 익혔듯, 니가타인들은 금속가공에 매진하기도 했다. 츠바메(燕)-산조(三條)시가 그렇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캠핑 브랜드 ‘스노우피크’ 본사가 산조에 있다. 츠바메산업사료관에서는 빼어난 솜씨의 금동그릇(銅器), 줄, 담뱃대, 야타테(矢立·휴대용 붓통), 양식기(洋食器) 등을 만날 수 있다. 사업사료관 체험 공방에서는 주석판으로 직접 사케 잔을 만들어 볼 수 있다. 현역을 떠난 60대 중후반 남성 기술자들이 도와 주는데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의 열정을 보인다.● 신록이 온다 눈 많고 물 맑고 쌀 좋고 술 좋으니 부(富)가 뒤따른다. 니가타시 아가노(阿賀野)강 서쪽 평야 대지주 이토(伊藤) 가문, 약용주(藥用酒) ‘사프란슈(酒)’로 떼돈을 번 요시자와 닌타로(古澤仁太郞), 도쿄 제국호텔을 지은 재벌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 같은 부호가 나왔다.이토 가문의 대지 2만9000㎡(약 8800평) 대저택은 북방문화박물관이 됐다. 방 66칸 본채와 151칸 별채, 곳간, 정원, 차실 등이 옛 영화(榮華)를 드러낸다. 본채 거실 오히로마(大廣間)의 도리(서까래를 받치려고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는 길이 30m짜리 삼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잘라 만들었다. 전철 열차 한 량 길이(25m)보다 길다.150년 전 지은 요시자와 옛 저택과 사프란슈 본점 건물 앞에서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 공습이 멈췄다. 메이지 시대 요메이슈(養名酒)와 함께 약용주 시장을 양분하며 만병통치약으로까지 불린 사프란슈는 지금도 이곳에서 팔고 있다. 전시장 한쪽에 70년 된 일본 수제 피아노 슈베스터(Schwester)가 놓여 있다. 댄디하게 차려입은 가이드가 쇼팽 ‘에튀드’ 한 대목을 치자 여전히 맑은 소리를 낸다.오쿠라가 113년 전에 도쿄 무코지마(向島)에 지은 별장 죠순카쿠(蔵春閣)는 몇 년 전 그의 고향인 시바타시로 옮겨져 관람객을 청하고 있다. 기업가 오쿠라는 일제시대 한국에서도 사업을 벌였다. 죠순카쿠 1층 접객실 식탁과 의자는 미국 드렉셀가구에서 맞춘 것이다. 현재 있는 것은 재현품이다. 당시 일본 성인 남성 평균 키는 155cm. 오쿠라가 의자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식탁에서 중국 신해혁명의 주역 쑨원(孫文), 군벌 강자였으나 나중에 일본 관동군에 폭사당한 장쭤린(張作霖) 등이 오쿠라와 환담했다고 한다. 오쿠라는 당시 대포를 비롯한 무기를 제조하는 군수공장도 갖고 있었다.니가타 50개 스키장에서는 5월 초까지 슬로프를 개방하지만 4월이면 다른 곳 눈은 거의 녹는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외지인은 봄 설경에 넋을 잃지만, 현지인에게 눈은 골칫거리다. 우오누마노사토에서 니가타 사람이 말했다. “눈이 정원 풍경을 망쳤네.” 눈부시게 푸르른 날엔 시바타성(城) 벚꽃을, 야히코(弥彦) 신사의 곧게 뻗은 삼나무 숲을, 그래서 니가타를 더 그리워할 터다.츠키오카(越岡) 온천마을 시라타마노유(白玉の湯) 가호(華鳳)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묵는다.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서로 중첩된 국경의 산들은 이제 거의 분간할 수 없게 됐고 대신 저마다의 두께를 잿빛으로 그리며 별 가득한 하늘 한 자락에 무게를 드리우고 있었다.’(‘설국’, 유숙자 옮김, 민음사, 2021)글·사진 니가타(일본)=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게임의 원리를 교육에 적용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이 쉽고 효과적이라 놀랐습니다. 앞으로 과학과목에 게임을 접목해 아이들의 흥미도를 높이고 놀이처럼 가르치고 싶습니다.” 부산교대의 한 학생이 지난해 부산교대 보드게임 라운지에서 진행한 게이미피케이션 특강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게이미피케이션 특강은 국어, 수학, 과학 등 교육과정에 게임요소와 작동원리를 적용한 수업사례를 연구하고 직접 실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재학생들의 미래형 융복합 역량 강화를 위해 계획됐다.이를 위해 부산교대는 2023년 교육용 보드게임을 총 792개 구입하고 교내 보드게임 라운지를 구축했다. 지난해는 환경교육용 보드게임을 64개 추가 확보했다.게이미피케이션 특강은 교육부의 ‘국립대학 육성사업’ 중 하나다. 해당 사업은 대학이 주체적으로 교육과 연구 혁신에 집중해 교육 과정을 발전시키고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며 학생의 전공 선택 지원을 확대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부산교대부산교대는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내 창업 지원 시설이 미미하다고 판단, 국립대학 육성사업을 통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융합형 인재를 키우고 진로 지원 확대를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지난해 총 13회에 걸쳐 과목별 게이미피케이션 특강을 진행했다. 어린이날 지역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는 게이미피케이션 부스를 운영해 좋은 호응을 이끌어냈다.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 특강을 들은 재학생 222명의 만족도 조사 결과 100점 만점에 99.3점을 받았고, 어린이날 게이미피케이션 부스에 참여했던 120명의 어린이들도 만족도 조사에 97.4점을 줬다. 부산교대는 초등학생용 교구 개발 공모전도 개최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시제품 제작까지 지원한다. 재학생들을 전문교사는 물론 창업에도 도전하는 미래형 인재로 육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유아, 컴퓨터 등의 과목 특강에 참여한 전 아무개 학생은 “실습 시간이 더 충분하게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과 함께 “나만의 활용법을 더 터득할 수 있도록 앞으로 진행되는 특강에 계속 지원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한 부산교대의 한 관계자는 “예비 교사들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게임적 요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표다. 교직 이외에 다양한 미래의 직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교원대한국교원대도 미래형 융복합 인재 육성을 위해 디지털, 글로벌, 소통 등의 역량을 강화하는 ‘마이크로디그리 인증제’를 개발하고 운영하고 있다.한국교원대는 최근 AI, 환경 등 사회가 급변함에 따라 전통적 학문 분류 체계에 근거한 교사 양성 교육과정의 경직성을 보완하고 자기주도적 학습 설계를 위해 ‘마이크로디그리 인증제’를 구축했다. ‘마이크로디그리 인증제’는 AI/디지털, 글로벌/다문화, 심리상담, 생태환경 등 총 5개의 교육과정으로 개발됐다. 자율적으로 신청할 수 있으며 학점으로도 인정된다. AI/디지털 과정은 에듀테크, 소프트웨어, AI를, 글로벌/다문화는 영미권, 유럽권, 동아시아권으로 나눠 배운다. 심리상담 과정은 심리상담, 커리어컨설턴트, 학교폭력예방전문가 과정을 익히고 생태환경은 기후변화 시대의 에너지, 환경 교육 등을 배우게 된다.한국 교원대는 ‘마이크로디그리 인증제’를 신청한 학생들의 이수 전후를 비교하고 성과를 분석해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하고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국교원대 한 관계자는 “교과 교직 기본 소양은 물론 미래 교사에게 요구되는 융복합 역량 강화를 위해 기획하게 됐다”면서 “전공 교과목 이외에 교양, 비교과 프로그램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교대광주교대도 학생들을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도전하는 융복합 인재로 키우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광주교육대는 최근 사회 변화 및 교육 현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변화를 교육하고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 있도록 ‘진로 다변화 특강’, ‘진로 다변화 멘토링’을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했다. ‘진로 다변화 특강’은 법조인, 교육 인플루언서, 공무원 등이 강사로 초빙돼 총 6회에 걸쳐 개최됐다. ‘진로 다변화 멘토링’은 총 2회에 걸쳐 전문상담교사, 장학사와 함께 진행됐다. ‘진로 다변화 특강’에 참여한 학생은 “예비교사로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다양한 진로에 대한 조언이 인상깊었고, 또 다른 꿈에 대해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광주교대의 한 관계자는 “프로그램 기획 초기 단계부터 재학생의 의견 수렴 및 수요조사 결과를 반영해 참여도와 만족도가 높았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진로 특강 및 재학생 대상 진로 탐색 소모임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구교대대구교대는 인문 소양을 갖춘 융복합 인재 육성을 위해 ‘작가와의 만남’을 개최했다. 지난해 9월, 11월 총 2회에 걸쳐 교내 도서관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만남’은 재학생은 물론 지역주민들도 초대돼 좋은 호응을 얻었다.대구 거주 50대 여성도 “재학생들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도 함께 도움이 되는 강연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멀리서라도 와서 듣고 싶은 유익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대구교대 관계자는 “사회게 빠르게 변하고 미래가 불안할수록 인문학적 지혜가 필요하다”며 “이번 프로그램으로 재학생들의 도서관 이용이 더욱 활성화됐다. 앞으로 지역 주민들에게도 지역 국립대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고 밝혔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인하공업전문대학(총장 김성찬)이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몰입형 학습 콘텐츠 ‘인하몬GO’ 앱을 정식으로 선보였다. ‘인하몬 GO’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시대에 발맞춰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인하공전 캠퍼스를 배경으로 가상 몬스터를 포획하고 영상 시청과 퀴즈 풀이를 통해 다양한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행과제로는 학교 안내, 외국어 교육, 인천 관광 명소 안내 등 다양한 주제가 포함돼 있다. 학습자는 단계별 과제를 완료할 때마다 레벨업과 함께 이수 배지를 획득해서 학습성과를 자연스럽게 누적할 수 있다. 몬스터 포획에 필요한 ‘인하볼’은 교육과정 외에도, 캠퍼스 내 21개 인하스팟(보건실 등 주요 시설)에 방문해 충전 및 추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캠퍼스 전역을 탐험하며 학습과 재미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앞으로 전공 수업과 연계한 전문 지식 퀴즈, 산업체 연계 과제 등 심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추가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교내 행사나 축제 때 이벤트를 진행하고, 지역 사회와도 협력해 인근 상권과의 미션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인하공전은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캠퍼스 내 모든 학습 환경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캠퍼스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현장감 있는 체험형 학습과 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교육과 기술이 융합된 차세대 학습 플랫폼 구축으로 미래 디지털 고등 직업 교육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다. 인하공전 직업교육혁신원 김용진 원장은 “ ‘인하몬 GO’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서 “앞으로 AI·DX[AID]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참여·체험형 학습 콘텐츠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건설환경공학과 심윤지 학생은 “ ‘인하몬 GO’를 알게 된 후 친구들과 수업외 시간에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면서 “게임을 하면서 지식도 얻고 학교도 더 알아가는 과정이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인하몬 GO’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반 스마트 캠퍼스 환경 조성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진행 중인 첨단 산업 인재 양성 및 취업 특화 프로그램 강화 등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인하공전은 지난해 교육부 주관 ‘첨단산업 인재 양성 부트캠프’ 사업에서 반도체 분야 운영 기관으로 선정됐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총 75억 원을 지원 받는다. 대학과 기업이 협력해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디스플레이, 항공우주 등 첨단산업 분야의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단기 집중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 교육부 주관 ‘첨단소재·나노융합 혁신융합대학(COSS) 사업’에도 선정됐다.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사업’과 ‘졸업생 특화 프로그램’ 등에도 선정됐다. 2025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지원을 받는다. 대학 내 분산된 취업 지원 서비스를 통합해 재학생, 휴학생, 졸업생뿐만 아니라 지역 청년들에게도 원스톱 진로, 취업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또 취업이 안 된 졸업생을 대상으로도 1대1 맞춤 상담, 면접 컨설팅, 멘토링 등을 제공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유명 연예인들이 손수 음식을 만들어 초대 손님이나 제작 스태프에게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유튜브 채널이 인기다. 정성껏 만든 요리를 먹으며 초대 손님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 속, 눈길을 끄는 것이 종종 보인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생긴 연두색 뚜껑의 병, 샘표 요리에센스 ‘연두’다. 이영자, 박나래 같은 ‘먹잘알(먹는 걸 잘 아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 연예인이 요리할 때 연두를 사용하는 모습이 나온 뒤, 연두를 구매했다는 인증 후기가 온라인 스토어마다 이어지고 있다.지난달 유튜브 채널 ‘이영자TV’에 올라온 ‘사랑이 싹트는 이영자 4촌 하우스’ 영상에서 이영자는 유채, 냉이, 시금치, 참나물 등으로 봄나물 비빔밥을 만들고 봄동으로 겉절이를 담갔다. “봄기운이 가득 담긴 종합비타민”이라며 봄나물을 예찬한 그는 나물을 무칠 때 다른 양념 없이 연두만 사용했다. 나물을 종류별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을 뺀 뒤 연두를 넣고 버무린 다음 참기름과 깨를 뿌리고 마무리했다. 이영자는 냉이 무침을 맛본 뒤 “건강한 맛이면서 간이 딱 떨어진다. 냉이 향이 확 퍼지면서 마지막에 그 천연의 감칠맛이 따라온다”고 말했다.앞서 유튜브 채널 ‘나래식’에서는 박나래가 연두로 미나리 샐러드를 만들었다. 제철 맞아 연하고 향긋한 미나리와 사과, 포도, 딸기 등 집에 있는 달콤한 과일을 먹기 좋게 썰어 그릇에 담은 다음 연두 드레싱을 뿌리고 견과류를 올려 완성했다. 연두 드레싱은 연두, 들기름, 매실청, 레몬즙 각 1스푼에 올리고당 2스푼을 넣고 섞으면 된다. 박나래는 “소금, 간장 안 넣어도 짭짤한 감칠맛이 나서 간이 잘 맞는다”며 “연두는 미나리 샐러드에 참 잘 어울리고, 국물 요리나 볶음, 나물무침 등 어디에나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냉이 된장찌개를 만들 때도 연두를 넣어 감칠맛을 살렸다. 달걀 푼 물에 연두만 넣고는 달걀찜을 만들었다. 삼겹살을 구울 때도 연두를 뿌리며 “이렇게 하면 야키니쿠(일본식 불고기) 스타일이 된다”고 말했다.유명인의 ‘요리 비결’로 주목받는 연두는 콩을 발효해 얻은 깊은 감칠맛에 파, 마늘, 양파, 무를 비롯한 8가지 채소를 우린 물을 더해 재료 본연의 맛을 자연스럽게 살려준다. 순 식물성인데도 고기를 넣은 것처럼 감칠맛이 뛰어나 비건을 비롯해 채소를 더 맛있게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인기다. 국물 요리나 볶음요리, 나물무침 어디에나 쓸 수 있어 활용도도 높다.연두의 매력은 K-푸드가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기 전부터 해외 유명 박람회에서 주목받았다. 영국 ‘베지 어워드’에서 2개 부문(베지테리언 식품 및 비건 식품) 우수상을 받았으며, 세계적 권위의 식음료 시상식 ‘그레이트 테이스트 어워즈’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샘표 관계자는 “연두 하나만 있으면 은근히 맛을 내기 어려운 제철 채소 요리도 쉽고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며 “자연의 감칠맛이 풍부한 연두로 봄 내음 가득한 밥상을 즐겨 보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디지털 전환과 지속 가능성 강화라는 시대 흐름 속에서 품질경영은 종합적(전사적) 품질경영을 넘어 디지털 품질경영을 뜻하는 ‘품질 4.0’ 시대로 바뀌고 있다. 국내 산업의 품질경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품질경영 디지털 전환이 성공하려면 품질 전문 인력의 데이터 역량 강화와 공유 플랫폼 구축, 그리고 고객 관리 지능화가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14일 서울 강남구 한국표준협회(회장 문동민) DT센터에서 열린 ‘국내산업 품질경영 실태조사 산·학·연 좌담회’에서는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졌다. 참석자들은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국내 산업이 우위를 차지하려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한 첨단 디지털 기술을 모든 품질관리 과정에 적용하는 ‘품질 4.0 체계’ 구축이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좌담회에는 문동민 회장을 비롯해 신상범 국방기술품질원장, 진종욱 한국자동차연구원장, 김학상 삼성전자 부사장, 홍승태 SK텔레콤 실장, 신완선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김연성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임성욱 대진대 데이터경영산업공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국내 산업 품질경영 실태를 조사한 배경과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 ▽문동민 회장=산업표준화법에 따른 품질경영 추진본부인 한국표준협회는 시대에 맞는 품질경영 개념을 정립하고 품질 경쟁력 측정을 위해 디지털 품질경영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을 기반으로 국내 산업 현황은 물론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품질경영 활성화를 위한 정책 의제와 개선 과제를 도출하기 위해 2년마다 품질경영 실태를 조사한다. 제조(기계·전기·전자, 화학·융합, 바이오·헬스·식품, 건설·환경) 서비스업(도소매업, 운송·정보통신업, 금융·보험업, 공공·행정) 700여 개사와 품질경영 전문가 50인을 대상으로 한 지난해 조사 결과 분야별 산업 격차 해소 방안을 마련하고 디지털 품질 리더를 육성하며 디지털 품질경영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기업의 품질경영 현황은 어떠한가. ▽김학상 부사장=삼성전자는 고객을 중심에 두고 AI 기술 기반 품질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혁신하고 있다. 품질 빅데이터를 실시간 통합 분석해 품질 리스크를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AI 기술을 적용한 융복합 제품, 신소재 개발과 제조공법 변화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가 무엇인지 단계별로 검증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대표이사가 주관하는 품질혁신위원회를 매월 운영해 품질경영 체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홍승태 실장=SK텔레콤은 AI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 품질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AI 기술에 최적화한 5G 기지국으로 통신 품질을 높이고, 스팸과 스미싱 위협에서 고객을 보호하는 것이다. 고객과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AI 기술로 종합 분석해 고객을 더욱 다면적으로 이해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는 고객 최적화 서비스의 시작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AI를 전방위적으로 적용해 고객 경험(CX)을 꾸준히 개선해 나갈 것이다. ―연구기관은 품질경영에 어떻게 대응하며, 이를 지원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신상범 원장=국방기술품질원은 40년간 축적한 군수품 품질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 생성형 AI 학습에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한 품질 보증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데이터 통합 관리 및 품질 정보 분석 고도화를 통한 군수 반도체 및 첨단 무기 체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품질 인증과 표준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제도를 개선하고 군(軍)과의 협력을 강화해 방위산업 전반의 품질 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다. ▽진종욱 원장=자율주행차, 전기차 같은 ‘미래 차’ 활용이 늘어나면서 제조 품질뿐만 아니라 설계 품질의 신뢰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차세대 자동차 품질 검증을 위한 데이터 기반 기술 개발과 실증을 추진 중이다. 중소 협력사의 품질 향상을 위해 신기술 검증 표준을 개발하고 더 깊이 있는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산업 전반의 품질 혁신을 꾀하고 전문 인력 양성과 기술 지원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학계가 보는 품질경영의 중요성과 디지털 전환 확산 방안은 무엇인가. ▽신완선 교수=실태 조사를 통해 국내 산업의 디지털 품질경영 수준과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확인했다. 학계는 산업별 디지털 품질 수준을 진단하고 맞춤형 개선안을 정부와 기업에 제안해야 한다. 투명성을 토대로 AI와 각종 센서를 활용해 품질 향상을 추구하는 통합 품질 혁신 방법론인 오픈 퀄리티 개념을 각 산업에 공통 언어로 전파해야 할 시점이다. ▽김연성 교수=AI 대전환기를 맞아 품질경영을 위해서는 데이터 기반 의사 결정을 강화하고 고객 중심 품질관리를 구현해야 한다. 기업은 최고경영자 리더십 발휘, 품질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 품질 인력 전문성 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과 디지털 인프라 확충에 정책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학계는 지속적인 품질 트렌드 분석을 토대로 품질 혁신 콘텐츠 제공과 현장에 적용 가능한 우수 사례 개발 및 확산에 힘써야 한다. ―한국표준협회의 품질경영 활성화와 진흥 방안은…. ▽문동민 회장=급변하는 기술 환경과 사회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기업이 성장해야 할 분야를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다. 디지털 경험(DX)과 AI 트렌드에 기반한 품질경영 수준을 진단하고 디지털 인재 양성 및 AI+ 또는 ISO 42001 같은 AI 경영시스템 인증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고객경험지수(DCXI) 모델 개발, 국가 품질 정부 포상, 표준화 연계 등도 지원한다. 품질경영 고도화를 위한 정부와 산업계 사이의 마중물 역할을 더 확대함으로써 국내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그래 이거야! 풀리지 않는 과제,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 끝이 보이지 않는 역경을 맞닥뜨렸을 때 갑자기 솟아나는 상쾌한 아이디어. 답답한 마음을 달래줄 한 모금 청량음료 같은 ‘유레카 모멘트’를 소개합니다.‘지금 대구 가고 있어요. 대구 상황 파악하고 준비할 포인트를 질문 드릴게요.’2020년 2월 20일 오후 6시 38분. 대한감염학회 소속 의사 7명이 참여한 카카오톡 채팅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질병관리본부(질본·현 질병관리청) 요청을 받은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51)였다. 전날 대구 ‘신천지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지역사회로 퍼질 것이라는 공포가 눈덩이처럼 커졌다.이해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견되고 꾸려진 이 채팅방은 감염내과, 예방의학, 응급의학 전공 40대 초중반 전문의들이 주축이었다. 1호 환자였던 중국 여성을 치료한 김진용 인천광역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50)도 초대됐다. 이들은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을 우려하며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며칠째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이 교수 메시지에 채팅방은 더 뜨거워졌다. ‘1주 안에 (확진자) 1000명은 일도 아니다’ ‘이미 (확산) 씨앗은 전국에 충분히 뿌려졌다고 생각한다’ ‘외국 (자가격리) 지침, CDC(미국 질병통제관리센터) 것하고 WHO(세계보건기구) 것을 빨리 만들어 배포하자’ ‘작은 일이지만 중요한 것부터 해결합시다.’ CDC와 WHO 지침은 최민주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현재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가 번역해 정리하기로 했다.문제는 감염자가 수백, 수천 명 생길 것이 확실시되는데, 그때 어떻게 코로나19를 진단하느냐였다. 병원 선별 진료소에서 한 명을 검사하면 환기를 위해 30분 이상 비우고 내부를 소독해야 한다. 감염 초기 바이러스가 대량으로 나오는데 검사 직후 재채기할 수밖에 없어 에어로졸이 떠다니게 돼 뒷사람이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루 검사할 수 있는 인원은 20명 정도다. 수백, 수천 명이 몰려든다면 검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검사하지 않고 코로나19를 진단할 방법은 없다.● 2018년 생물 테러 연구 ‘약품 배분소’를 떠올리다김 과장은 2월 초, 1호 코로나19 환자를 완치시켜 중국으로 돌려보낸 뒤 인천의료원 차원에서 다음 확진자 서지(급증·surge)를 대비하고 있었다. PCR 검사 기구를 더 많이 구입하고, 병원 건물 밖에 검사용 음압 텐트를 쳤다. 대규모 확진자 발생은 당연할 것으로 봤지만 그들을 어떤 식으로 진단할지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때 대구에서 난리가 난 것이다.2월 20일 밤 11시 무렵, 대구에서 돌아오는 KTX 안에서 이 교수가 김 과장에게 전화했다. “대구에 (대규모 확산에 대비해)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어요.” 순간 머릿속에 ‘그럼 진단을 아예 야외에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교수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우리 ‘생물 테러’ 연구할 때 했던 것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어, 그렇게라도 안을 만들어 주세요. 해 주시면 (대구)시장 설득하는 자료로 써 볼게요.” 밤 11시 47분이었다.2018년 김 과장은 이 교수, 엄중식 가천대 의대 감염내과학 교수와 함께 질본의 생물 테러 대비 연구 용역을 맡았다. 이 연구에서는 탄저균 같은 생화학무기가 대도시에 퍼졌을 때, 방역 요원이 감염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항생제 같은 치료제를 어떻게 나눠 주느냐, 즉 POD(Point of Dispense·약품 배분소)를 어디에 설치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지역마다 교통이 원활한 지점에 약품 배분소를 두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인천 같으면 문학경기장이나 산하 10개 군·구의 학교 운동장에 차린 약품 배분소에 사람들이 차를 타고 들어와서 받게 하자는 구상이었다.이를 응용해 학교 운동장 같은 공간에 선별 검사소를 둬서 차를 타고 들어와 차 안에서 검사와 진단을 받는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방식을 고안해 냈다. 문진뿐만 아니라 목구멍 스왑(swap·검체 채취), 객담(가래) 자가 채취, 필요하면 처방과 투약까지 하도록 했다.김 과장은 2월 21일 자정 무렵부터 컴퓨터에 파워포인트를 띄워 놓고 사각형 박스를 슬라이드 여기저기 배치해 보면서 접수, 문진 및 검사, 약 받아 가는 곳 등이 지정된 개념도를 만들었다. 오전 3시 53분, 두 장의 설명과 한 장의 그림으로 된 ‘대규모 코로나19 선별 검사 센터 운영(안)’을 채팅방에 띄웠다.그 새벽 잠들지 못했던 이희영 경기도 감염병관리지원단장(분당서울대병원 임상예방의학센터 교수)이 ‘드라이브스루 안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반겼다. 다른 전문의도 ‘대단하다’고 찬사를 보냈다. 김 과장은 ‘눈을 붙인다. 수고 많으셨다’고 메시지를 올렸다. 오전 4시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인정한 드라이브스루 검사이 단장은 김 과장의 드라이브스루 선별 검사 센터 안을 비롯해 자가격리 지침 등을 정리한 ‘COVID-19 유행 최소화(완화·Mitigation) 전략 제안’을 이날 오전 7시경 대한감염학회 소속 전문의 100명 정도가 참여한 다른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렸다. 김 과장의 드라이브스루 안이 사실상 공식적으로 전국에 뿌려진 것이었다. 많은 의료기관에서 앞다퉈 이 안을 내려받았다.그날 오후, 감염자 급증으로 검사에 부하(負荷)가 심하게 걸린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부원장이 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드라이브스루 선별 검사소를 설치하려고 하니 그 내용을 내 옆에 계신 원장님께 다시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김 과장은 원장이 누군지도 모른 채 전화를 받아서 드라이브스루 검진 방식을 자세하게 얘기했다. 2월 23일 칠곡경북대병원에 드라이브스루 임시 선별 검사소가 전국에서 최초로 설치됐다.26일에는 경기 고양시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덕양구 공영주차장에서 드라이브스루 검사를 시작했고 대구 영남대병원도 가담했다. 이후 몇 달 만에 전국에 70곳 넘는 드라이브스로 검사소가 만들어졌다. 야외이기 때문에 환기는 저절로 됐고 소독도 할 필요 없어 의료 인력이 절감되는 효과까지 났다.드라이브스루 검사 방식은 해외로도 퍼졌다. 2020년 3월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드라이브스루 검사 도입 의사를 밝혔다. 앞서 그 일주일 전에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지만 사태가 심각해지자 태도를 바꿔 이 방식의 실효성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은 나중에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때도 일부 드라이브스루 방식을 사용했다.김 교수는 3월 25일 권기태 칠곡경북대병원 감염내과 실장, 고재훈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임상교수, 신희준 부천 순천향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성민기 세종대 건축공학부 교수와 함께 코로나19 드라이브스루 검사 방식과 효과를 소개하는 영문 소논문을 대한의학회지(JKMS)에 게재했다. 세계 최초였다. 이 논문을 통해 드라이브스루 검사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벤치마킹했다. 김 과장의 드라이브스루 검사 방법은 2022년 국제표준화기구 ISO 인증을 받았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전체 호흡기 감염병 팬데믹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유용하다고 공인을 받은 것이다.드라이브스루 검사는 곧이어 워크스루(walk-through) 검사로 확장됐다. 워크스루는 의료진이 공중전화부스 같은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서 팔만 뻗어 밖에 있는 사람을 검사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김 과장이 처음에 채팅방에 띄운 개념도에도 차는 바깥쪽에서 줄을 지어 검사를 받고, 사람들은 안쪽으로 돌면서 검사를 받도록 그려져 있었다.● “상상력은 경계를 허무는 데서 시작한다”‘지금까지 말했듯 그건 일직선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여기저기에 씨앗을 뿌려 뒀다가 땅속에서 서서히 뿌리를 내린 뒤 꽃을 피운 것이기에 한마디로 간단히 설명할 수는 없다.’(‘스프링’, 온다 리쿠 지음, 이지수 번역, 클레이하우스, 2025)드라이브스루는 2020년에 갑자기 ‘짠’ 하고 튀어나온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이거 하나만 성공시켜야지’ 하고 여기지도 않았다. 당시 전문의들이 절박하게 구상하던 다양한 검사법 가운데 하나였을 뿐, 드라이브스루만 따로 부각할 생각은 없었다.“상상력이라는 것이 완전히 무(無)에서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그것보다는 다양한 전문 분야를 미리 학습해 둔 것들 가운데 조합해서 꺼내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상상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김 과장은 같은 직종끼리만 모여 있을 때보다는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한데 모였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고 강조한다. 드라이브스루 아이디어도 김 과장 자신의 일상이나 연구 영역에서의 경험과 다른 분야에 대한 ‘열린 마음’의 소산이라는 것이다.자신이 감염병을 보는 의사니까 전공 교과서 내용만 알고 있으면 끝날 것 같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따라서 다른 다양한 학문이나 전문가들과 접할 기회가 많다면 자신에게 다가온 도전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는 얘기다.김 과장에게는 그 같은 기회가 적지 않았다. 2012년 9월 인천의료원에 부임하고 나서 2016년경까지 4, 5년간 질본 공중보건 위기대응 사업단에 참여한 것도 중요한 기회였다. 그가 인천의료원 음압 병동 매뉴얼 작업을 위해 참여한 사업단은 최보율 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가 꾸린 팀이었다. 그런데 공중보건 위기 대응은 대부분 감염병 대응인데 감염내과 의사는 김 과장 혼자였다.예방의학 전문의 서너 명에 다른 사람들은 의사가 아니었다. 감염병 음압 공조 시설의 국내 권위자인 성민기 교수, 음압 및 격리 시설 전문으로 동선(動線)에 정통한 권순정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 코로나19 당시 수리모델링으로 사망자 수를 정확하게 예측한 정은옥 건국대 수학과 교수 등 공학자와 자연과학자 들이이었다. ‘아,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감염병을 공부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김 과장은 활동하던 팀이 해체된 뒤에도 계속 이 전문가들과 접촉하면서 의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감염병을 바라보는 관점이 몸에 배게 됐다. 새로운 감염병 대응 시스템이 필요할 때마다 자문하는 대상들이었다.“자기 분야와 다른 분야 사이의 벽, 경계를 허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전문 영역에 갇혀 있지 말고 미리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인천의료원에서 진료를 본다는 행운감염내과 의사로 인천의료원에 재직하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기회였다. 대한민국에 감염내과 의사는 약 300명.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대학병원 같은 대형 병원에서 중환자나 면역 저하 위급환자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신종 감염병 같은, 그들 의사 경력에서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병에 투자할 시간이 없다.반면 김 과장은 평소에는 폐렴이나 결핵 같은 일반적인 감염병을 보지만 인천국제공항이나 인천세관 검역소 등 관문이 되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신종 감염병을 짬짬이 보게 됐다. 코로나19 첫 환자는 물론이고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첫 의심 환자도, 2022년 엠폭스(원숭이두창·痘瘡) 첫 환자도 그가 진료했다. 신종 감염병 관련 지침 작성도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에볼라 사태 때는 CDC 사이트를 뒤져 업데이트된 의료진 보호구 입고 벗는 법을 내려받아 지침을 만들어 인천의료원 의료진에게 연습시키기도 했다.“신종 감염병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진짜 찾아볼 문헌이 국내에 없어요. 내게 알려 줄 사람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CDC, WHO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일이 습관이 됐습니다.”CDC에서 국제여행 관련해 2년마다 내는 ‘CDC 옐로북’도 2014년 판부터 아마존에서 직접 구입해 읽었다. 해외 감염병 유행 정보와 그에 대한 대응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질병관리청은 최근 대한감염학회 여행의학위원회에 의뢰해 2020년 판 CDC 옐로북을 처음으로 번역해서 내놨다. 염준석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가 지휘했고 김 과장도 참여했다.어려서부터 배운 컴퓨터에 얼리어답터 재질이 발휘돼 신종 감염병 환자들을 볼 때마다 IT 기기를 활용한 것도 또 다른 기회였다. 에볼라 의심 환자인 나이지리아인을 음압병실에서 진료할 때는 아이패드를 들고 들어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소통했고, 그 환자가 나이지리아 현지 목사의 전화번호를 적어 줬을 때는 가지고 들어간 태블릿으로 그 번호를 사진 찍어 병실 밖 컴퓨터로 전송하기도 했다.레벨D 전신 보호구를 입고 나이지리아인을 진료하려고 할 때, 귀가 보호구에 가려져 청진기를 꽂을 수 없게 되자 전자청진기를 구입했다. 전자청진기는 수신부에 다이어프램(진동판) 대신 작은 마이크가 많이 들어 있어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해 외부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청진할 수 있었다. 이후 대부분 국가지정 병동에서 김 과장이 세팅해 놓은 값으로 청진기와 무선 스피커를 활용했다.특히 그는 코로나19 첫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을 틈만 나면 촬영했다. 음압병실 안에서 그 환자의 객담을 받아 내는 광경을 비롯해 다양한 장면이 그의 아이패드에 담겼다. 나중에 대응 매뉴얼을 만들 때 매우 중요한 신종 감염병 환자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녹화한 장면들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CDC의 초기 코로나19 대응이 엉터리였다는 것을 꼬집는 다큐멘터리 ‘Totally Under Control’(2020)에도 담겨 있다.● “병원 다인실이 사라졌으면”김 과장은 2020년 7월 TV 예능 인터뷰 프로그램 ‘유퀴즈’에 나와 “코로나19가 우리 미래의 변환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예언자 같은 말을 했다. 그의 생각대로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을까.“역사가 계속 그렇게 진화해 왔으니까요. 콜레라 같은 감염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은 뒤 상하수도 시설이며 건물 수전(水栓) 설치 등이 문화로 정착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코로나19 이후 양식이 바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생각보다는 많이 안 바뀌었지만 그래도 일반인이 병원 들어올 때나 입원 환자 만나러 갈 때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했다고 한다. 학교나 학원에서 열이 나는 학생이나 교사는 출석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미생물 살균이나 필터링 방법, 실내 공기질 관리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다만 병실은 많이 아쉽다. 바로 ‘다인실(多人室) 문화’다. 우리나라 병원의 보편적인 모습인 4인실, 6인실 이야기다. 환자의 사생활 보호 문제는 기본이고 더 중요한 것은 감염이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부른 평택성모병원도 다인실에서 퍼졌다. 지금도 인플루엔자 시즌에는 다인실 환자가 누구하고 접촉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걸린다. 같은 병실 다른 환자들이나 병문안 온 사람들에게서 옮은 것이다. 김 과장은 자신이 의사로 은퇴하기 전까지 다인실이 1인실로 점차 바뀌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다.“요양병원에서 호흡기 감염병 하나씩 뻥뻥 터지면서 사람들이 숨져 가는데 다인실을 1인실, 최소한 2인실로도 바꿀 원동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조금씩 1인실 병상 비율을 늘려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인실이 문제라는 얘기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미래의 제국은 정신의 제국이다.”“The empires of the future are the empires of the mind.”윈스턴 처칠, 1943년 9월 6일 미국 하버드대 연설에서2025년 2월 28일 세계에서 제국은 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쫓아낼 때다.제국을 지탱하는 힘은 크게 재력, 무력, 매력이다. 재력은 세계 경제 체제를 이끌어 가는 힘, 곧 경제력이다. 무력은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힘, 즉 군사력이다. 매력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동경(憧憬)하도록 만드는 힘이다.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제국 문턱까지는 갈 수 있다. 그러나 매력이 없다면 제국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저 강대국에 그칠 뿐이다.매력은 문화, 사상, 제도, 아이디어, 태도, 가치관, 법을 비롯해 대부분 정신의 산물이다. 로마의 팍스로마나는 군사력과 정치력으로 이뤘지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 로마의 앞선 문물 없이는 지탱하기 어려웠다. 19세기, 세계 25%를 장악한 영국도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제도와 사상의 뒷받침 없이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지위란 불가능했을 터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제국으로 만든 것도 압도적인 하드파워(hard power)만이 아니다. 지구에 사는 누구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고 바라도록 만든 매력이 주효했다. 어렸을 적 TV 드라마 ‘전격 Z 작전’의 말하는 자동차 ‘키트’에 반했고, 할리우드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화려함에 푹 빠졌다. 캐딜락은 어떻고 링컨 컨티넨탈은 또 어땠나.무엇보다 무슬림 청년을 향해 “물건 안 팔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대놓고 차별하는 가게 점원을 꾸짖는 미군의 모습에 감동했다. 연출된 상황에서 일반인 반응을 지켜보는 TV 프로그램 ‘What Would You Do(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의 한 에피소드에서다. 9·11 테러 이후인 2000년대 중반 이라크전쟁에 참전했다는 이 미군은 점원이 “당신은 무슬림과 싸우지 않았느냐”며 따지자 “그렇지 않아. 나는 무슬림도 이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웠다”고 말한다.미국 국제정치학계 거두인 조셉 나이 전 하버드대 교수는 30여 년 전, 군사력과 경제력은 줄어들지만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압도적이기 때문에 미국의 쇠퇴를 말하기는 이르다고 주장했다. 소프트파워, 다시 말해 매력이 하드파워의 부족한 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2025년 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의 문전박대는 어쩌면 지독한 현실주의의 발로였을 수도 있다. 현 상태에서 러시아를 영토적으로 더 밀어붙이다가는 핵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결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순간, 강대국의 침략에 자유를 빼앗긴 약소국 수장이 얼굴을 붉히며 백악관 오벌오피스를 빠져나온 바로 그 순간, 그나마 남았던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부러움 한 조각마저 사라졌다고 느꼈다. 동경이 사라지는 순간, 제국의 황혼은 시작된다.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9월 6일 하버드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마이크 앞에 섰다. 처칠은 앞으로는 미국의 시대임을 예감한 듯 “미래의 제국은 정신의 제국”이라고 말했다. 과거 제국처럼 영토를 점령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결과물로 세계를 이끌어 가는 제국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불행히도 처칠은 82년 앞을 내다보지는 못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원광디지털대(총장 김윤철)가 겨울방학 릴레이 특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특강은 ‘건강한 삶’이 주제였다.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사주명리와 을사년 새해준비(신정원 동양학과 교수) ▲차(茶) 한 잔에 담긴 몸과 마음의 행복(신소희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강의가 진행됐다.원광디지털대는 지난달 12일에도 ‘건강한 삶’을 주제로 몸 건강을 지키는 특강을 개최한 바 있다.신정원 교수는 강의에서 만세력 앱을 통해 참여자들이 각자의 사주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해를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한 조언을 제공했다. 명리학을 바탕으로 을사년을 맞이하는 의미, 사주를 활용한 개인 맞춤형 준비 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학습자들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사주를 직접 확인하며 새해의 계획을 세울 수 있어 좋았다고 평가했다.차문화경영학과 신소희 교수는 차문화의 의미와 차가 주는 치유의 힘에 대해 얘기했다. 차를 시음하는 시간도 마련해 체험을 통한 차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차가 주는 평온함을 경험한 학생들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는데 있어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전체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만족도를 높이고 지식을 실생활과 연결하는 기회를 줘 특강이 큰 호응을 얻었다. 강의를 들은 학생은 “내 사주를 확인하고 새해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유익했다. 또 차 한 잔 여유가 주는 힐링도 컸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원광디지털대 미래교육혁신센터 관계자는 “앞으로도 실생활에 밀접한 학습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학생들의 학문적 성장을 위해 양질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원광디지털대는 14일까지 2025학년도 1학기 신·편입생을 모집 중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동아보건대(총장 이현주)는 13일 본관에서 실습지원센터, 취창업지원센터, 산학협력단과 함께 2024학년도 통합 성과보고회를 개최했다. 한 해 주요 성과를 공유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실습지원센터는 학생들의 실무 역량 강화를 위한 기회를 확대하고 다양한 기관과의 협약 체결, 관리 활동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성과를 발표했다. 또 실습기관의 현장 지도자인 윤선미 팀장(영암한국병원), 조경원 센터장(보두마노인복지센터), 김효정 센터장(영암통합상담지원센터)을 초청해 각 기관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취창업지원센터는 2024학년도 중장기 발전 계획 KPI로 설정된 취, 창업지원 프로그램 참여율 목표(180%)를 193%로 초과 달성했다. 캡스톤 디자인 교과목 이수 학생 비율도 99.17%로 실용음악 전공의 실무 중심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향후 센터는 학생들의 학년별 특성과 진로 목표에 맞춘 맞춤형 특강을 강화한다. 또 참여율과 만족도를 높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한다.산학협력단은 학생과 교수진이 연구·창업·취업 등의 기회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왔다고 밝혔다. 간호학과를 비롯한 다양한 학과의 산학협력 활성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통합 성과보고회를 발판 삼아 2025년에는 더욱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협력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대학과 지역사회, 산업체 간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성장의 장을 제공하겠다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이번 성과보고회는 동아보건대가 교육과 취업, 연구 및 창업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대학의 비전과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패션산업 최고경영자 과정이 제25기생을 모집한다. 섬유 및 의류 관련 최고경영자(CEO)에게 최신 디자인 및 마케팅 기법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섬유 및 의류 관련 제품 유통까지 망라하는 패션산업은 현재 고부가가치 창출 산업으로 변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내 패션 산업이 과도기적 혼란 상황에 처한 이유로 전문경영인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과정은 패션 산업 CEO를 위해 경영 혁신, 전략, 리더십 같은 기업 경영 교과와 패션, 마케팅, 리테일, 매니지먼트를 사례 중심으로 배우는 전문 교과로 구성된다. 국내외 연수 프로그램도 운영해 글로벌 업계 동향과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수강생은 서울대 도서관과 정기간행물, 연구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워크숍, 문화예술 특강, 원우 기업 방문 같은 행사와 문화적 교류 활동도 다양하다. 수료하면 총장 명의 이수증이 수여되며 서울대 총동창회원이 된다. 수료생은 언제든지 무료로 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 조찬 강연회, 동호회, 문화예술제, 경영인상 시상식 등의 총교우회 활동을 통해 최병오 형지그룹 회장, 박만영 ㈜콜핑 회장, 진영식 ㈜충남섬유 회장, 권성호 ㈜보그인터내셔널 총괄사장, 송재용 ZARA RETAIL KOREA 사장을 비롯해 전·현직 국회의원, 법조인, 언론인 등 수료생 1100여 명과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할 수 있다. 수업은 4월 2일부터 11월 12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5시∼8시 40분, 두 강의가 진행된다. 60명 안팎을 모집한다. 원서 접수는 3월 19일까지다. 신청 및 문의는 서울대 생활과학대 최고경영자 과정 사무국.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서울대 생활과학대학은 2025년 ‘웰에이징·시니어산업 최고위 과정(AWASB)’ 제13기 생을 모집한다. AWASB는 고령화 사회 대응 및 국내 시니어산업 경영인 전문성 향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올해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비중 24.3%로 초고령화 사회에 도달할 전망이다. 시니어가 주요한 소비 계층으로 등장한 것이다. 시니어산업 전문 경영인에게는 새로운 시니어 컨텐츠와 서비스 개발 능력이 절실한 때이기도 하다. AWASB는 웰에이징 및 시니어산업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 및 관계자에게 이론과 실무가 결합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니어산업 및 관련 업체 임원급 이상 경영자,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 시니어산업 정책결정자, 시니어 관련 사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다. 수업은 3월 25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5시부터 8시 35분까지 진행된다. 전 과정을 마치면 서울대 총장 명의 이수증이 주어지며 서울대 총동창회원 자격이 부여된다. 수료생은 ‘열린 강좌’를 통해 언제든지 무료로 재수강할 수 있다. 정규 수업 이외에도 워크숍, 국내외 연수, 총동창 합동 강의를 비롯해 AWASB 총동창회 주관 산악회, 골프회 같은 취미활동을 통해 재학생과 수료생의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 12년간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이종태 ㈜퍼시스 회장, 노운하 파나소닉코리아 전 대표이사, 박동현 더클래식 500 전 사장, 박헌준 ㈜프리드라이프 전 회장, 이재용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위원회 사무국장을 비롯한 580여 명 수료생을 배출했다. 지원 신청은 3월 11일까지다. 생활과학대 최고위과정 사무국이나 홈페이지를 통해 원서를 접수할 수 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서울여대(총장 승현우) 대강당 리노베이션이 마무리되는 과정에 많은 동문과 관계자들의 기부와 헌신이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고(故) 김노미 동문(교육심리학과 76학번)은 100만 달러를 기부하며 모교를 향한 깊은 애정과 후배 사랑을 실천했다. 김 동문의 기부는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 서울여자대학교의 발전과 학생들의 성장에 기여하는 뜻깊은 유산으로 남게 됐다.김노미(Nomi Song) 동문은 1976년 서울여대 교육심리학과에 입학해 1980년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남편과 함께 1991년 의료용품 유통회사인 ‘메디텍 그룹(Meditech Group, Inc.)’을 설립하고 30여 년간 의료분야 사업을 운영하며 회사를 꾸준히 성장시켜 왔다. 그는 사업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모교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고 2005년부터 지속적인 기부를 실천해 왔다. 지난해 11월 승현우 총장은 미국을 직접 방문하여 평소 교육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던 김 동문의 뜻을 전달받았다. 그의 유산이 후배들의 학업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대강당 리노베이션 사업에 의미 있게 활용하기 위해 기부를 받았다.김 동문의 자녀들은 “어머니는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가정과 사업, 그리고 주변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사셨다. 또한 자연과 여행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모자들을 수집하며 스스로를 가꾸는 멋진 삶을 사셨다”고 회고했다. 미국에서 가까이 지내던 동문은 “녹수회 동아리 활동 등 친구들과 함께했던 대학 생활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모교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동문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 동문의 가족들은 여름 즈음 한국을 방문해 어머니가 거닐던 캠퍼스를 돌아볼 예정이다.김노미 동문은 지난 1월 12일 미국에서 별세했다. 장례는 현지 시간으로 2월 12일 가족과 지인들의 추모 속에 진행됐다. 서울여대는 김노미 동문의 숭고한 나눔을 기리기 위해 기부자의 뜻을 담은 감사패를 제작하고 캠퍼스 내 기념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한차례 경매가 지나간 위판장 물기 어린 바닥에 주홍빛 집게다리 하나 뒹군다. 대게잡이 어선에 가득 실려 온 어느 붉은대게(홍게)에서 떨어져 나왔나 보다. 8개 다리 모두 살로 통통하고 꽉 들어찬 내장으로 몸통이 단단한 것들은 이미 상품(上品)으로 팔려 떠났다. 아침 댓바람에 부두로 들어온 배는 두 척뿐. 울진대게를 싣고 오지는 않았다. 7일 경북 울진군 후포항(港). 바람이 거셌다.● 울진대게 ‘독립선언’경매는 빨랐다. 배에서 부린 붉은대게들을 중년 여성 두 명이 크기는 어떤지, 얼마나 실한지, 다리는 제대로 달렸는지, 색은 선명한지 등에 따라 5열 종대로 죽 늘어놓는다. 경매사와 중도매인들이 빙 둘러서더니 몇 초 만에 한두 줄씩 흥정을 끝낸다. 다 마치는 데에 1분 안팎. 다음 5열 종대로 이동한다.울진대게는 과거 영덕대게로 불렸다. 울진 앞바다 대륙붕인 왕돌초(왕돌잠, 왕돌짬) 일대에서 주로 잡지만 내륙에서 거래상들이 오는 게 여의치 않아, 교통이 편리한 영덕군 강구항에서 주로 거래됐기 때문이다. ‘등허리 긁을 때 손 닿지 않는 곳이 울진’이라는 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울진이 ‘명칭 독립’에 나선 것은 1995년 첫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치러지고 나서다. 첫 민간 군수가 대게 논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 울진은 울진대게, 영덕은 영덕대게로 각각 부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자해(紫蟹)는 울진 특산물’ ‘울진은 해포(蟹浦·게의 항구)’ 하는 옛 기록들이 소환됐다. 자해는 말 그대로 붉은빛 도는 게다.그렇다고 울진과 영덕이 앙숙이 돼 버리지는 않은 듯하다.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후포항에서는 ‘2025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열리는데, 대게가 부족하면 영덕대게를 가져다 쓰기도 한단다. 영덕에서 열리는 대게 축제 때도 울진대게 품앗이가 이뤄질 터다.제법 알려지긴 했지만 대게는 ‘큰 게’가 아니다. 다리가 마른 대나무처럼 곧고 마디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홍게가 대게보다 더 붉다. 짠맛이 더 강해 값이 싼 편이란다.경매 전 후포항 동쪽 등기산(해발 64m)에 올랐다. 언덕에 가까운 정상에 1968년 1월부터 뱃사람들 길잡이인 등대가 서 있다. 세계 이름난 몇몇 등대 모형도 주변에 있다. 한 등대에 올라 일출을 기다린다. 서서히 붉은 기운을 뿜어내며 떠오르는 해, 출어에 나선 통통배가 가르는 물살, 그리고 바다로 135m 뻗어 나간 높이 20m, 폭 2m 스카이워크 다리가 조화롭다. 한동안 수평선을 응시한다. 저 먼바다 끝이 미세하게 일렁인다. 풍랑이 일 것 같다.● 고립이 가져온 풍요… 금강송과 송이내륙과의 연결이 어려워 울진대게는 한동안 제 이름을 찾지 못했지만, 고립은 풍요를 부르기도 한다. 울진이 자랑하는 금강소나무가 그렇다. 금강송면 소광리와 북면 두천리를 연결하는 산림이 금강소나무 군락지다. 금강송면은 2015년 서면에서 아예 이름을 바꿨다.이 군락지는 조선 시대부터 왕명으로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이었다. 금강소나무의 옛 이름 황장목(黃腸木)을 붙여 황장봉산이라 했다. 왕궁이나 재궁(梓宮·왕가의 관)을 짓기 위해 벨 때는 “어명이오”라고 먼저 외쳤다고 한다.소광리나 두천리는 20세기 후반에 이를 때까지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거나, 외부를 잇는 도로가 마땅치 않은 산지였다. 1960년대 말까지 나무를 태워 밭을 일궈 사는 화전민촌이 있었다. 거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잎을 지닌 소나무 군락에는 불을 내지 않았다. 애초 높고 가파른 능선에서 많이 자라기에 화전을 일구기도 쉽지 않았다. 베어내기 어려운 곳에 뿌리내린 터라 벌목이 성하던 일제시대나 1960~70년대를 살아낸 것이다(‘화전하던 산에서 송이 따는 산으로’, 장예지,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석사논문, 2018).그렇게 버텨 울창(鬱蒼)해진 소나무가 지역민들에게 선사한 진보(珍寶·진귀한 보배)가 송이버섯이다. 1970년 일본인들이 그 맛을 알고 찾기 전까지 찬거리에 불과하던 것이 효자가 됐다. 송이는 15~60년 된 젊은 소나무에서만 자란다. 여전히 인공 재배는 불가능하다. 온전히 그해 기후와 소나무에 달렸다.‘기후변화로 고사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600년 된 대왕소나무가 있는 이 군락지에 자신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설 ‘금강송 에코리움’이 있다. 금강송 숲길을 걷고 요가와 명상에 빠진다. 금강소나무와 송이 이야기를 듣는다. 소나무 향기 은은한 숙소에는 TV가 없다. 제공되는 식사에도 고기반찬은 뺐다. 숙박 정보는 ‘야놀자’ 앱에서 자세히 찾아볼 수 있단다. 흥미롭다.● 염화미소 불영사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이어지는 하원리에 불영사(佛影寺)가 있다. ‘천축산(天竺山)불영사’라고 적힌 일주문에서부터 가람(伽藍)까지는 약 1km 흙길이다. 도중 ‘丹霞洞天(단하동천)’이라고 음각된 암벽을 볼 수 있다. 도교에서 동천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상서로운 붉은 기운 감도는 낙원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크게 오른쪽으로 휘어져 들면 너른 평지와 연못, 그 뒤로 전각(殿閣)들이 보인다. 다른 절처럼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전각이 배치돼 있지 않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기단 정면 양쪽 바닥에 돌거북이 한 마리씩 목을 내밀고 있다. 기단에 가린 몸통이 대웅보전을 떠받친 모양이다. ‘목을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는 위협을 받아서는 아니겠고, 뾰족하고 날카로운 산세에 깃든 화기(火氣)를 억누르기 위함이다. 약 1400년 전 지어진 뒤 5번이나 불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대웅보전 앞 삼층석탑도 땅을 비보(裨補)한 것이란다.651년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전언이 기록으로 전해지지만, 사실과는 다른 듯하다. 의상이 태백산을 중심으로 창건한 화엄종 세력이 퍼지면서 생긴 사찰 같다는 해석이 일리가 있다(‘문헌 속 울진 불영사 上’, 최선일 여학 심현용 편, 온샘, 2021).그러나 설화와 전설이 얽히지 않은 사찰은 재미없지 않나. ‘불영’도 부처님 그림자라는 말이다. ‘대체 어디에?’ 하고 고개를 쳐들자 산등성이에 곧게 선 큰 바위와 그 앞으로 들쭉날쭉 작은 바위들이 보인다. 부처의 설법에 귀를 쫑긋하고 듣는 제자들 같다. 누구는 “예수의 산상수훈 장면 같다”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그 바위들이 불영사 연못 불영지(池)에 비친다. 연못을 응시하니 염화미소를 언뜻 본 것 같았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울진울진 가는 길이 지난달부터 훨씬 수월해졌다. 강원도 강릉에서 부산까지 잇는 철도 동해선이 개통해서다. 그전까지 수도권에서 울진을 가려면 차를 몰고 가거나, 강릉 속초 등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이제는 강릉까지 KTX로 가서 열차를 갈아타면 2시간 안에 도착한다. 내려갈 때 왼쪽 차창 밖으로 보이는 쪽빛 동해는 덤이다.울진역에서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바닷가 언덕에 망양정(望洋亭)이 있다.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다. 망양정은 원래 남쪽으로 30km쯤 떨어진 울진군 평해읍에 있다가 19세기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터만 남았다가 6·25전쟁 이후 새로 지은 뒤 2000년대 초에 다시 지었다.정자 이름이 말하듯 건물 자체보다 여기서 바라보는 전망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멀리 봐야 한다. 수평선까지가 아니라 그 너머를 보라는 의미로 들린다. 내 미래일 수도 있다.울진은 그동안 동해를 바라보는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는 시선을 돌리고 있다. 고립되다시피 한 울진이 우리에게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 가득한(鬱) 보배(珍)를 품에 안고서.글·사진 울진=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