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민동용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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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동용 기자입니다.

mindy@donga.com

취재분야

2026-05-25~202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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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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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3%
IT3%
문화 일반3%
  • 가수 초청 대신 복숭아 구웠다…극동대 ‘오감 만족’ 이색 축제 실험

    지방대학이 그 지역 특산물을 모티브로 축제를 여는 일은 흔하지 않다. 어떤 가수나 래퍼를 초청하느냐가 대학 축제 성공 여부를 가르는 최근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 있는 극동대학교(총장 류기일)가 음성 명산품 복숭아를 주제로 축제를 펼치겠다는 것은 어쩌면 실험이다. 9월 12~14일 치러지는 ‘감곡 K컬처 페스티벌-갓 구운 복숭아’다.젊은 여성층에서 화사한 핑크빛 대신 그을린 복숭아 색조를 띠도록 하는 구운 복숭아 메이크업이 유행이고, 복숭아를 구우면 당도가 높아져 더 달게 먹을 수 있다고들 하지만, 복숭아를 굽는다는 것은 낯설다. 그러나 축제를 한창 준비 중인 극동대를 찾은 이달 19일, ‘굽다’의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굽는다는 행위는 사물의 급격한 변화를 수반한다. 더욱이 불과 친화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굽는 일은 원래 존재와는 아주 다른 것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극동대 학생과 교수 들은 복숭아에 재능과 아이디어를 더해 창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열매 무성한 K컬처 나무에 또 하나의 가지를 접붙이고 있다.가장 인상 깊게 감각을 자극한 것은 향이었다. 뷰티학과 외국인 유학생들이 복숭아 향을 응용해 손수 제작한 향수 냄새를 맡아 봤다. 우즈베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유학생 5명이 제각기 만든 향수에서는 보드라운 복숭아 내음에 그들 나라의 독특한 냄새가 조화롭게 섞여 있는 듯하다. 현장 투표 1등은 우즈베키스탄 학생에게 돌아갔다.호텔외식조리학과와 임상병리학과는 미각을 꼬셨다. 한 과는 고체로, 다른 과는 액체로. 복숭아로 만든 청(淸)이나 잼은 상상의 범주 안에 있다. 그래도 복숭아잼을 넣은 소금빵과 파이 맛은 상상을 넘어선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복숭아고추장이 나온다. 호텔외식조리학과가 내놓은 비빔국수에서 ‘그’ 맛을 봤다. 고추장보다 더 곱고 달콤한 맛이 침샘을 뒤흔든다.임상병리학과는 복숭아로 와인과 막걸리를 빚었다. 잠깐. 임상병리학과? 머릿속에 생긴 커다란 물음표는 곧 잦아들었다. 와인과 막걸리는 어떤 원료를 쓰든 발효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발효는 미생물의 작용이다. 임상병리학에서도 미생물을 다룬다. 와인 시제품은 2종류인데 한쪽에 호응이 더 크다. 와인보다 막걸리에 더 끌린다. 신토불이인가 싶기도 하다.향과 맛에 취해 보고 나니 눈과 귀가 심심할 때가 됐다. 만화애니메이션학과에서는 복숭아를 캐릭터화해서 음성 지역 설화와 상상력을 곁들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갓 구운’을 갓 쓴 남성, 갓(신·神을 뜻하는 영어 god 발음) 같은 능력, 갓 생겨난 영웅을 모두 포괄하는 ‘갓군’ 캐릭터로 변신시켰다. 그의 동반자는 복숭아의 영어 피치(peach)를 응용한 ‘피치양’이다. 두 캐릭터는 9월 축제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20대 초반 학생들의 싱싱함이 여러 작품에서 두드러진다.남은 것은 촉감이다. 축제 관련 상품(굿즈)은 눈을 즐겁게 하는 목적이 제일 크지만, 그것들을 손으로 만져 보고, 들고 다니는 느낌도 무시할 수 없다. 복숭아 캐릭터를 활용한 키링(열쇠고리), 텀블러, 머그잔, 스티커 등은 축제 기간 많은 이의 이목을 사로잡을 것이다. 이 밖에도 미디어영상학과 태권도학과 K-Pop학과 연극연기학과 한식표준조리학과 항공운항서비스학과 등이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9월은 복숭아가 가장 맛있을 때다. 그때 ‘극동대 복숭아’를 한껏 베어 물어 보자. 오감 가득 과즙이 넘쳐흐를지도 모른다. 음성=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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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적 다변화로 한국 수출 1조 달러 시대 이룬다”

    미국발 고관세 장벽에도 지난해 세계 6번째로 7000억 달러 벽을 넘은 한국 수출 성장세는 올해 이란 전쟁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도 멈추지 않는다. 관세청 잠정 집계 결과 올 1∼5월 수출은 394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한국 수출 증가율(38.0%)은 미국(15.4%) 중국(14.5%) 일본(7.0%) 등을 제치고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1위였다. KOTRA는 이 같은 양적 성장에 맞춰 품목, 시장, 수출기업, 방법의 다변화라는 질적 구조 개선을 통해 올해 수출 1조 달러 실현에 힘쓰고 있다.● 비반도체 수출 ‘한몫’… 품목 다변화수출 급증은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 덕을 많이 봤다. 하지만 지난해 수출의 63%를 차지한 비(非)반도체 수출 증가세도 한몫했다. 특히 소비재, 바이오-헬스, 원전 및 전력기기, 방산, 조선, AI-로봇 기반 스마트산업 수출은 올 1∼5월에도 전년 동기보다 14% 늘었을 정도다. 뷰티, 패션, 식품, 의약품, 생활용품 등 5대 소비재는 화장품과 식품 쌍끌이로 미국 중국 일본을 넘어 유럽 중동 중남미까지 수출이 늘었다. K컬처 붐과 맞물려 한국 수출 품목 브랜드 호감도 상승에도 기여했다. 화장품은 지난해 202개국에 수출하며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수출액 114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 아랍에미리트(UAE) 유통망 바이어는 “전쟁으로 막힌 해운을 내 돈 들여 항공 운송으로 돌리더라도 K뷰티 수출을 확대하겠다”고 밝힐 정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에 따른 석유, 가스 공급망 차질로 화석연료 의존 탈피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원전 및 재생에너지 관련 전력기기 등과 송배전 수요도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K의료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의약품, 의료기기, 서비스 같은 의료 분야 수요 역시 늘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건강과 뷰티 산업이 결합해 수출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유럽과 중동의 전쟁은 K방산 신뢰도를 수직 상승시켰다. 대형 무기체계 외에도 드론, 지하화 장비, 중·단거리 요격 시스템, 사이버 보안 장비 등의 수요 증가로 방산 수출도 더 늘 것으로 보인다. 미국 빅테크 수요에 더해 UAE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과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아세안 국가에서 AI 및 로봇 협력 파트너로 한국을 주목해 스마트 산업 수출의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부터 EU-아세안-중동-중남미로 수출시장도 미국과 중국 중심에서 비중과 절대 수출액이 증가한 유럽연합(EU) 아세안 인도 일본 중동 중남미로 다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4년 연속 하락했고 미국은 1%대 증가에 그쳤다. 반면 EU 등으로의 수출은 3.1%포인트 증가했다. 향후 더 큰 수출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전쟁 이후 UAE 사우디 카타르 등에서 피해 복구는 물론이고 기존 디지털 및 AI 전환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중동의 탈석유 경제 전환 가속화도 수출 기회 요인이다. 유럽에서는 방산, 원전 및 전력기기, 식품과 화장품, 의약품 수출이 급증한다. 의약품 수출 2∼4위가 스위스(13억 달러) 헝가리(9억 달러) 네덜란드(8억 달러)다. 방산은 폴란드에 이어 핀란드 에스토니아와 대형 계약을 맺었다. 체코 원전 수주에서 보듯 원전과 전력기기에 대한 납기 및 계약 가격 준수 신뢰도가 높다. 중남미는 미국발 고관세로 글로벌 기업 생산 기지화하면서 중간재 수출이 유망하다. K컬처 호감도가 높은 아세안과 인도도 수출시장이 확대될 수 있다. 수출기업도 다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현 정부 출범 이후 중소·중견 수출기업이 사상 처음으로 10만 곳을 넘었다. 중소기업 수출도 회복세를 보이며 지난해 1분기 273억 달러에서 올 1분기에는 298억 달러로 9.1% 늘었다. KOTRA는 ‘수출 희망 1000’ 사업으로 5년간 1000개 지역 영세 업체를 지원하고, ‘수출 스타 500’ 사업으로 5년간 연 1000만 달러 수출기업 500개 업체를 지원한다. 수출 관련 데이터 20종을 AI 기술로 결합한 ‘AI 수출 비서’도 운용한다. 전국 20개 ‘AI 무역 지원 센터’에서는 해외 마케팅 홍보 콘텐츠 제작, 유망 시장 및 바이어 추천, 온라인 및 오프라인 마케팅 등을 연계해 지원한다. 강경성 KOTRA 사장은 “수출 호조는 기업과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양적 성장과 함께 품목, 시장, 수출기업, 방법 다변화 등 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점에서 의미 깊다”며 “해외 시장의 기회 요인을 잘 포착해 수출 지속 성장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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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설을 품은… 그러나 그보다 더 그윽하고 친근한 바위들[여행스케치]

    전국 24개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은 몇 년씩 순회 근무한다. 은연중 격·오지(隔·奧地) 순위가 짜이기 마련이다. 그중 2위가 경북 청송군 주왕산국립공원이다. 10년 전까지 청송은 ‘육지의 섬’으로 불릴 정도였다. 2016년 서산영덕고속도로 상주-영덕 구간이 개통되면서 좀 나아졌다곤 하지만 체감상 큰 차이는 없나 보다.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접근이 어려운 장소에도 장점은 있다. 은거하기에 딱 좋다. 숨을 곳을 찾아드는 사람은 스스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시간이 오래 흐르면 그것은 전설이 된다. 어느 산인들 전설이 없겠는가만, 주왕산(周王山)에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기묘하면서도 친근한 큰 바위들이 그 전설을 1000년 넘게 지키고 있다.● ‘어서 와. 주왕산은 처음이지?’주왕산에 관한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훑거나 생성형 인공지능(AI)에 물어보면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람 이름을 딴 산이라는 것이다. 주왕은 누구일까. 두 인물이 맞선다. 중국 당(唐)나라 주도라는 인물과 통일신라시대 김헌창(혹은 그의 부친 김주원)이다. 둘 다 왕을 꿈꾸며 반란을 일으킨 자다. 그 바탕이 되는 두세 권의 옛 문헌과 인물과 해석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사(正史)는 아니다. 그래야 전설이 된다. 당나라 사람이 굳이 궁벽한 이곳까지 피신했다는 것이나, ‘삼국사기’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죽었다고 기록된 김헌창이 여기서 항전했다는 것이나 가당찮기는 마찬가지다.그런데 말이다. 주왕산국립공원 들머리 격인 청송군 상의리에 들어서자마자 몇 km 앞에 보이는 장대한 암벽군(群)이 그 전설을 머릿속에 영화처럼 풀어내기 시작한다. 세로 길이 100m 안팎 7개 바위가 연봉을 이룬 기암(旗巖)이다. 주왕이 혹은 김헌창이, 아군에게 신호를 보내려고 깃발을, 혹은 병사가 많게 보이려고 깃발 수십 개를 꽂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구름 위로 솟아 근두운 탄 손오공을 막은 부처님 손바닥 같기도 하고, 양식당 셰프의 주름진 흰 모자 토크(toque) 같기도 하고, 경복궁 근정전 용상 뒤에 걸린 일월오봉도의 그 오봉 같기도 하다. 반칙 아닌가. 등산로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는데 이미 산을 다 본 것처럼 만드는 바위가 산자락에 앉은 듯 보이는 건. 점점 다가가 대전사(大典寺)에 이르니 기암이 그 위로 무동을 선 것 같다. 해발 480m에 솟은 기암을 계곡 너머 왼쪽에서 내려다보는 바위는 장군봉(해발 686m)이다. 주왕을, 혹은 김헌창 반란군을 토벌하러 온 마(馬) 장군이 기암 위에 반란군이 많이 있는지 올라가서 확인했거나, 혹은 반란군의 전초 망루 역할을 했다는 바위다. 장군봉은 상아를 뽐내는 코끼리가 돋을새김 된 듯도 하다. 전설은 한 줄기만 뻗지 않고 서너 가지를 쳐 나간다.대전사를 오른쪽에 두고 주방천을 따라 오르는 길은 평탄하고 완만하다. 천변에 뒤돌아서 던진 돌멩이가 떨어지지 않고 잘 얹히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가 있다. 무수한 자갈들이 바위 위에 깔려 있다. 그런데 4, 5년 전부터 돌을 던지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차라리 ‘딸바위’라고 부르라는 탐방객도 있다고 한다. 전설이 다른 길을 내려고 한다.첫 번째 폭포인 용추폭포를 끼고 있는 용추계곡으로 향하는 길 좌우는 연화봉, 병풍바위, 시루봉, 급수대, 학소대 등 높고 넓은 암벽이다. 저 위 능선에 있지 않고 이 아래에서 협곡을 이룬다. 무엇 하나 뾰족하지 않고 모나지 않았다. ‘어서 와. 주왕산은 처음이지’ 하면서 등을 토닥여 줄 듯 다소곳이 서 있다.용추계곡은 절벽 사이 좁은 틈을 지나 고개를 들면 또 다른 비경이 자태를 드러낸다. 절벽 하나 뒤에 다른 하나가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다.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요르단 고대 암벽 도시 페트라 초입의 협곡 ‘알시크(al siq)’가 이런 느낌일까 싶다.두 번째 절구폭포와 세 번째 용연폭포는 묘하게 움푹 파인 못을 담고 있다. 절구 같고 용이 솟아오른 연못 같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약 70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용결응회암이 장구한 시간 퇴적되고 풍화된 결과다. 용결응회암은 화산재와 부석(浮石) 등이 분화 당시 날아가지 않고 용암의 800도 가까운 고열과 자체 압력으로 녹으며 굳은 것이다. 내부는 단단한데 표면은 과장하면 굳은 밀가루처럼 부스러지기 쉽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절벽 앨캐피탄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암벽이 즐비한데도 암벽 타기를 할 수 없는 이유다.● 전설 잦아든 계곡에선 오롯이 나를이제는 기억에서 잊힌 떡시루 모양인, 다시 보면 인자한 노인의 얼굴 같은 시루봉과 주왕 혹은 김헌창 반란군이 밧줄에 물동이를 매어 주방천 물을 길어 올렸다는 급수대와 12폭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한 병풍바위를 뒤로 하고 절골계곡으로 향한다. 대전사에서 동남쪽으로 약 15분 차를 타고 간다.절골계곡에 깃든 전설은 없다. 그저 1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가 계곡물에 떼 지어 헤엄치고, 주왕산 깃대종 둥근잎꿩의비름이 그늘진 바위 지의류 틈새에서 피어나며, 누룩뱀이 전날 내린 비에 젖은 몸을 말리려 양지로 기어 나오고, 뱀들 다니는 길 들꽃 사이로 어른 엄지손톱만 한 새빨간 뱀딸기가 새초롬히 열릴 뿐이다.계곡 양쪽이 거대한 응회암 절벽의 연속인 협곡이다. 역시 깎아질렀으되 위압적이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초입부터 한동안은 설악산 흔들바위만 한 바위 수십 덩이가 시내를 메우고 있다. 암벽 신들이 ‘맘보공기’ 놀이를 하고 버려둔 공깃돌 같다.주왕산 등산로든 절골계곡이든 걷다 보면 온통 그늘이다. 햇볕을 직접 쬐는 구간이 적다. 규정상 계곡물에 들어가는 것은 안 되지만 한여름 동네 주민들이 발 담그는 것까지 막기는 어렵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공단은 7~8월에 ‘계곡 트레킹’ 행사를 벌일 생각이다. 물길 따라 걸으며 바위에 걸터앉아 오롯이 나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절골계곡 근처에 주산지가 있다. 1720년에 논에 물을 대려고 만든 저수지다. 주위를 에워싼 주왕산과 주아산 능선이 바람 없는 날이면 잔잔한 수면에 거울처럼 비친다. 흙에 있다 물에 잠긴 버드나무가 300년째 서 있다. 푸른 잎이 무성하다. 식물은 죽음이 다가올수록 생명력을 지탱하려 안간힘 쓴다고 한다. 수면과 닿을 듯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사람들 발소리 진동에 잉어들이 몰려왔다. 어른 팔만 하다. 이곳 수달도 손바닥 크기 잉어 새끼밖에 잡아먹지 못한다.새벽 캠핑 트레일러(카라반) 창밖 새소리에 잠이 깼다. 공단이 상의리 주왕산국립공원 입구에서 예약제로 운영하는 상의야영장에는 카라반(4인용) 10대를 비롯해 자동차 캠핑장과 숙박용 오두막 등이 있다. 문을 열고 주방천 쪽으로 걸어 내려와 기암을 다시 바라본다. 전설에는 고려 말 공민왕의 스승이던 나옹(懶翁)선사가 등장한다. 그전까지 주방산, 석병산, 대둔산 등으로 불리던 이 산을 주왕산이라고 부르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 1463년 ‘주왕내기(周王內記)’ 저자 눌옹(訥翁)과 혼동했을지 모른다. 나옹선사는 말없이, 티 없이 살라는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를 썼다. 그 한 대목을 되뇐다. ‘애초 사랑도 증오도 노여움도 아쉬움도 없다.’ 주왕산이 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글·사진 청송=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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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상대, “AI는 도구, 창의성은 학생 몫”… AI 기반 콘텐츠 제작 교육 본격 확대

    한국영상대가 인공지능(AI) 기반 콘텐츠 제작 교육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미래형 창작 인재 양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상·방송·웹소설·실감형 콘텐츠 제작 전반에 AI를 접목한 실무 중심 교육 체계를 구축하며 콘텐츠 특성화 대학으로의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평가다.최근 콘텐츠 산업은 생성형 AI 기술로 제작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시나리오 작성과 영상 편집, 그래픽 작업, 가상 제작 환경 구축까지 AI 기술 활용 영역이 넓어졌다. 산업 현장에서는 기술 이해도와 창의적 기획 역량을 갖춘 융합형 인재 수요가 커지고 있다. 한국영상대는 이러한 산업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한국영상대는 세종시 최초의 XR(확장현실) 스튜디오를 구축하고 AI 기반 실시간 모션 캡처 시스템과 언리얼 엔진(실시간 3차원·3D 창작 도구) 기반 제작 환경을 운영하며 버추얼 프로덕션 및 실감형 콘텐츠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학생들은 실제 산업 현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가상 배경 기반 촬영과 실시간 그래픽 제작 등을 경험하며 최신 콘텐츠 제작 기술을 익히고 있다.대학은 AI 교육의 핵심을 ‘기술 활용’이 아닌 ‘창의적 제작 역량 강화’에 두고 있다. AI가 반복적 작업과 제작 효율을 높여주는 만큼 학생들은 보다 창의적인 기획과 연출, 스토리텔링 역량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교육 방향을 설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산학협력 프로젝트와 현장 실습, 자체 콘텐츠 제작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이러한 교육 혁신 노력은 대외 성과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영상대는 AI 기반 교육 혁신과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 성과를 인정받아 ‘2025년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 성과 확산 포럼’에서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또한 16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는 영화영상학과 졸업생 박윤호 PD가 핵심 기획, 제작 인력으로 참여했다. 한국영상대는 AI와 콘텐츠 제작을 융합한 실무형 교육 모델 구축으로 인재 양성을 지속 강화할 계획이다.유주현 총장은 “AI 시대에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창의성과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며 “가장 먼저 현장을 이해하고 변화를 적용하는 대학이 될 수 있도록 AI 기반 교육 혁신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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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여대, 외국인 유학생 지원 강화로 글로벌 인재 양성 박차

    한양여자대학교(총장 나세리)는 외국인 유학생 교육부터 취업·정주까지 전 주기를 연계한 실무 중심 국제화 교육 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취업 역량 분야에서 축적해 온 강점을 바탕으로 단순한 유학생 유치를 넘어 국내 산업 수요에 부합하는 외국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과 지원 체계를 고도화하며 글로벌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한양여대는 교육부가 주관한 2025년 ‘교육국제화역량 인증제’ 평가에서 학위 과정(D-2)과 어학 연수 과정(D-4) 모두 인증 대학(2026∼2030년)으로 선정되며 외국인 유학생 관리 및 지원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대학은 국제화 추진 체계와 유학생 선발·학사·생활 지원 전반에 대한 종합 평가를 바탕으로 인증을 획득했다.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과 학업 적응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안정적인 유학생 교육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유학생 선발 단계에서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성적과 학업 수행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해 학업 의지와 대학 적응 가능성을 면밀히 평가하고 있다. 또한 TOPIK 성적 우수자에게 급수별 등록금 감면 혜택과 추가 장학금을 지원해 한국어 능력 향상과 안정적인 학업 수행을 뒷받침하고 있다.입학 이후에는 유학생들의 원활한 학업 적응과 대학 생활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동일 전공 재학생과 연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수업 이해도와 학교생활 적응을 돕고 있다. 또 주기적인 지도교수 상담과 학생상담센터 연계를 바탕으로 심리·생활 상담 지원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유학생들의 한국 사회 이해를 높이고 있으며, 서울 중심에 위치한 입지적 강점을 바탕으로 풍부한 문화·산업 인프라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이와 함께 국내 취업 시장 진출을 위한 실무형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한양여대는 외국인 유학생 대상 취업 역량 강화 캠프를 운영하며 진로 탐색과 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대비 교육 등을 통해 취업 역량 향상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AI 기반 프로그램 교육을 확대하며 실무 역량 강화 기반도 넓혀가고 있다.한양여대는 유학생들의 안정적인 대학 생활을 위한 정주 여건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전용 기숙사를 운영해 주거 환경과 생활 편의성을 높이는 한편, 체계적인 안전 관리 시스템도 구축했다. 특히 2027년에는 약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학생 전용 생활관 개관을 앞두고 있어 유학생들의 주거 지원 인프라가 한층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한양여대는 산업 연계형 국제화 교육 모델 구축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 지역 전문대학 중 유일하게 서울시 광역형 비자 사업에 참여해 AI·로봇·바이오·핀테크 등 전략 산업 분야 외국인 인재를 대상으로 교육·취업·정주를 연계한 지원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AI융합 전공 유학생을 대상으로 실습 중심 교육을 강화해 전공 역량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특히 2027학년도부터는 외국인 유학생 전담학과인 ‘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과(2년제)’를 신설해 유학생 맞춤형 교육 모델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해당 학과는 유학생들의 학업 및 전공 이해 부담을 줄이고 수준에 맞는 취업 실무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전담 운영체계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교육 과정은 한국어·한국문화 교육을 기반으로 서비스 산업 및 경영 실무를 융합해 운영되며, 마케팅, 소비자 트렌드 분석, 인적자원관리 등 서비스경영 분야와 AI·빅데이터·AX/DX 기반 디지털 역량 교육을 강화한다. 또한 워크북 제공, 멘토링, 실시간 번역기 활용 등 학습 지원을 통해 교육 효과를 높인다.아울러 직무 연계형 한국어 교육과 국내 서비스 산업 취업 연계를 강화해 교육·취업·정주를 아우르는 실무 중심 교육 체계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산업 현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실무형 인재 양성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나세리 총장은 “한양여대는 외국인 유학생 교육과 실무 역량 강화, 진로 지원 및 국내 정착까지 연결하는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산업 수요와 연계한 실무 중심 국제화 교육 모델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유학생들이 안정적으로 학업과 취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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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콘텐츠 성공은 인프라-생태계 구축 결과”

    세계적으로 ‘K컬처’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CNN이 K컬처 성공 배경으로 장기간 축적된 산업 인프라와 투자의 결합을 꼽았다. 이를 통해 단순 유행을 넘어 산업적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특히 음악과 영화 등의 분야에서 CJ그룹이 30년 동안 이어온 문화사업을 주요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CNN은 9일부터 다큐멘터리 ‘K-에브리싱(Everything)’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K-에브리싱은 K컬처가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음악, 영화, 음식, 뷰티 등 4부작으로 나눠 분석했다. 진행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김이 맡았다. CNN이 가장 주목한 점은 K컬처의 성공이 일시적인 신드롬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 분야에서는 ‘슈퍼스타K’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아티스트 발굴부터 케이콘(KCON), 마마어워즈(MAMA AWARDS)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한 팬덤 확장까지 지속 가능한 산업 시스템과 인프라가 구축됐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CJ그룹의 케이콘의 경우 단순한 K팝 공연을 넘어 한국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체험하는 거대한 생태계로 성장했다. 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의회는 ‘케이콘의 날’을 제정하기도 했다. 영화 분야에서는 이른바 ‘문화 건축가’로 불리는 기업가들의 장기적 투자와 뚝심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부터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지원과 투자가 결과로 증명됐다는 분석이다. CNN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선구자로 CJ그룹과 이미경 부회장의 역할에도 주목했다. 이 부회장은 진행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 할아버지(이병철 선대회장)께서는 늘 ‘문화의 힘이 산업 및 경제력과 결합될 때 비로소 국가가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말씀하셨다”며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다큐 진행을 맡은 대니얼 대 킴은 이 부회장에 대해 “한국 문화를 세계로 수출하는 산업 자체를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CNN은 한국의 격동적인 현대사와 복잡한 사회적 맥락이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냈다고도 했다. 배우 이병헌, 연상호 감독, 김은숙 작가 등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압축 성장과 정치적 변화 속에서 다듬어진 특유의 진정성과 보편적인 인간애를 터치하는 서사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이종 산업 간의 강력한 연쇄 시너지 효과도 꼽았다. K콘텐츠의 파급력이 미디어 안에만 갇히지 않고 푸드, 뷰티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K드라마와 K팝의 글로벌 인기가 한국 식문화(K푸드)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미디어 속 배우들의 스타일이 K뷰티의 폭발적인 매출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전이 현상을 성공의 중요한 특징으로 다뤘다. CJ그룹 관계자는 “1995년 드림웍스 투자를 진행하면서 이재현 회장은 ‘전 세계인이 매년 한국 영화를 보고, 매월 한국 음식을 먹고, 매주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매일 한국 음악을 들으며 일상 속에서 한국 문화를 마음껏 즐기는 것이 목표’라고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며 “CJ그룹은 이를 실현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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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옥’과 활화산이 일본 근대사를 지켜보고 있었다[여행스케치]

    침대가 좌우로 살짝 미끄러지듯 요동했다. 늦게 든 선잠이 달아났다. 창틀이 2~3도 기울기로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너울까지는 아니지만 미명의 바다가 뒤척인다. 배수량 2만7000t 크루즈선(船) 이스턴비너스호(號) 9층 객실. 암막 커튼을 걷어 창밖을 보니 어둠이 깊다. 나가사키(長崎) 연안까지 서너 시간 남았다. 같은 항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400여 년 전 마카오에서 선교사들을 태우고 출발한 정크(戎克)선. 수십 t짜리 돛단배는 이 바다를 어떻게 견뎠을까. 가톨릭이 금지된 땅, 신앙의 불씨를 살리려고 목숨을 건 그들 마음은 얼마나 흔들렸을까. 커튼을 치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나가사키, 근세의 시작크루즈선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근해에서 세관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배가 서서히 나가사키항(港) 마쓰가에 국제 부두로 향한다. 왼쪽 방파제 너머 해안 큰 바위에 하얀 여인이 서 있다. ‘곶의 마리아상(像)’이다. 성모 마리아가 안전을 기원한다.나가사키는 일본 근세(近世)가 시작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근세는 16세기 초 종교개혁으로도 촉발됐다. 교황청에 반기를 든 개신교의 등장은 가톨릭 선교의 눈을 해외로 돌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중심의 예수회가 대표적이다. 예수회는 ‘세계의 끝’이라던 일본에까지 진출했다. 한때 신자가 60만 명에 이르던 일본 가톨릭 중심은 나가사키였다. 17세기 접어들며 도쿠가와 막부의 박해와 금지령(1614년)으로 신자들은 믿음을 숨기거나 버려야 했다.그 박해가 ‘운젠(雲仙)지옥’에서도 벌어졌다. 1991년 대폭발한 활화산인 운젠산 자락. 하얀 수증기와 코를 자극하는 냄새, 부글부글 끓는 물이 여기저기서 솟는다. 달걀 썩은 내라고 하는데 요즘 사람이 알기는 어렵다. 쉽게 생각하면 유황 온천 지대다. 식물은 살 수 없고 흙과 돌은 가스와 강산성 물에 변해 옅은 회색 또는 흰색을 띤다. 옛사람들이 지옥이라고 생각할 만하다.배교(背敎)를 거부하는 선교사나 신도들이 여기서 고문을 받았다. 섭씨 100도 넘는 물을 구멍 몇 개 뚫은 커다란 국자에 받아 머리와 등으로 흘린다. 고열의 고통이 길게 계속된다. 죽어 가는 신도들을 속수무책 바라보며 선교사들은 절망했을 터다. ‘어째서 하느님이 침묵하고 계시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엔도 슈사쿠 ‘침묵’, 공문혜 옮김, 홍성사, 2003)지옥은 근방에 30여 곳 더 있다. 고문받다 죽은 청년 신자 이름을 딴 ‘세이시치(淸七)지옥’, 뜨거운 물거품 소리가 짹짹거리는 것 같다며 ‘스즈메(雀·참새)지옥’, 그 소리가 더욱 커져 사람들의 절규 같다며 ‘대규환(大叫喚)지옥’…. 유황 가스를 이기는 꽃, 철쭉이 산등성이에 피었다. 지옥 사이사이를 걸으니 되레 마음이 차분해진다. 온기가 몸을 감싼다. 하느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운젠지옥에서 차로 20여 분 가면 오바마(小浜)온천 마을이다. 푸르디푸른 다치바나만(灣)을 품은 이곳에 일본 최장 족욕탕 ‘홋토훗토 105’가 있다. 길이가 105m여서 105인 줄은 알겠는데 홋토훗토는 무슨 말일까. 알고 보니 ‘핫풋(hot foot·뜨거운 발)’의 일본식 발음이다. 온천 증기로 달걀을 쪄서 판다. 열탕 같은 물에 발을 담그고 껍질을 까서 먹는다. 약간 과장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추방당한 뒤 ‘횡재’한 것은 개신교 국가 네덜란드였다. 도쿠가와 막부는 쇄국령을 내렸지만 해외무역을 막지는 않았다. 다만 나가사키에 만든 인공 섬 데지마(出島)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상관(商館)을 옮기고 거기서만 교역을 허락했다. 쓰시마(대마도) 류쿠(오키나와)와 더불어 일본이 세상을 내다보는 창(窓)이었다.현재 데지마는 당시 상관 건물들과 거리를 재현해 놓았다. 눈길을 끈 건 역대 네덜란드 상관장(長) 명단이 적힌 액자였다. 1610년부터 1850년까지 2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수익을 좇았지만, 일본으로서는 서구 과학기술의 전령이었다. 18~19세기 청진기, 보청기, 천문 관측기, 시계 같은 기계와 해부학, 생물학 서적 등이 전시돼 있다. 적긴 하지만 일본 지식인과 정치인은 선진 지식을 야금야금 씹어 소화했다. 그 결실인 난학(蘭學)은 근대로 부르는 초대장이었다.오후 6시 이스턴비너스호는 가고시마(鹿兒島)로 출항했다. 부두 건너에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가 있다. 20세기 들어 일본이 전쟁을 거듭 일으킬 때 전함을 많이 만든 곳이다. 도크에 신의 방패라 불리는 이지스함 세 척이 건조 중이었다.● 가고시마, 근대의 효시가고시마는 1871년 메이지 정부가 전국 번(藩)을 없애고 현(縣)을 설치할 때까지 사쓰마(薩摩)번이었다. 사쓰마는 죠수(長州·야마구치현)번과 함께 막부 체제를 무너뜨린 메이지유신을 일으켰다. 일본에서는 두 지역 하급 무사 출신 3인을 ‘유신 삼걸(三傑)’이라며 칭송한다. 그러나 사쓰마가 일찍부터 서구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힘쓴 것을 배경으로 꼽는 학자도 있다(손일 ‘메이지유신의 선봉 사쓰마와 시마즈 히사미쓰’, 푸른길, 2023).사쓰마 12대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齊彬)와 이복동생 시마즈 히사미쓰(久光)는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이 ‘흑선(黑船)’을 몰고 도쿄만에 등장한 사건 이후 해안 방어와 근대화에 힘 썼다. 그 산증인 같은 곳이 종합기계공작소 격인 슈세이칸(集成館)이다.나리아키라는 철제 대포용 철을 얻기 위해 용광로인 반사로(反射爐)를 지어 철제 대포 주조에 성공했다. 이후 반사로 주변에 무기, 기계, 조선 기술 자립을 위해 증기기관과 농기구 제작소, 제지와 유리 공장 등을 한데 모아 세운 것이 슈세이칸이다. 1865년 히사미쓰는 여기에 더해 증기기관과 서양식 공작기계를 갖춘 일본 최초의 기계공장을 가동했다(손일).슈세이칸이 시마즈 가문 별장 센간엔(仙巖園) 옆에 있는 점은 흥미롭다. 선진 기술에 대한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비친다. 17세기 중반에 지은 센간엔은 바로 앞 가고시마만의 활화산 섬 사쿠라지마(櫻島) 전망이 빼어난 것으로 유명하다.센간엔 경내에 고양이신사(猫神社)가 있다. 사쓰마 가문은 임진왜란 때 1만 병력을 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당시 번주는 바다에서 시간을 알려고 고양이 7마리를 데리고 갔다. 고양이 눈동자가 2시간마다 원에서 달걀, 감 씨, 바늘 모양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때 생존한 2마리를 모신 신사다. 한국인으로서 감회가 교차한다. 고양이 돌 조각상들은 귀엽다.1년에 700여 번 분화하는 활화산 사쿠라지마는 페리를 타고 간다. 전날 3.8km 높이까지 분화했다는데 여전히 하얗다가 희색 빛 도는 연기를 뿜어낸다. 사쿠라지마에는 6000여 명이 거주한다. 초등학생들은 노란 헬멧을 쓰고 등교한다. 시시때때로 내려앉는 화산재를 담아 따로 버리도록 노란 비닐봉지가 집마다 준비돼 있다.나리아키라가 반사로를 지을 때 1400도 이상의 고열을 견디는 벽돌이 필요했다. 벽돌은 사쿠라지마 용결응회암을 원료로 도공 심수관 가문의 자기 굽는 방식을 이용해 제조했다. 심수관 가문은 임진왜란 때 사쓰마 군에 끌려가 가고시마에 정착해 살았다. 역설적이다. 사쿠라지마는 일본 근대화의 싹을 처음부터 지켜본 셈이다.● 낭만 가득한 환송 연주오후 6시. 부산항으로 출항해야 한다. 음악 소리가 들린다. 8층 갑판으로 내려가 난간 아래 가고시마 크루즈 터미널 부두를 내려다봤다. 깃발을 들고 배웅하는 주민들 앞에서 고교생 재즈밴드가 환송 연주를 한다. 은빛 재킷을 입은 60대 지휘자가 “50년 전 노래입니다만,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 주제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야마토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미 해군에 격침당한 초대형 전함이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은 반전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영화 ‘스윙걸즈’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을 뒤로 하고 부두와 멀어진다.배가 가고시마만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무렵 우현 저 멀리 삼각형 산이 보인다. 가이몬다케(開聞岳)다. 산 너머로 진 태양의 진홍색 역광을 받아 피라미드처럼 신비롭다. 나중에 찾아 보니 ‘바다의 후지산’이라고 불린단다. 가이몬다케 위 높이 뜬 샛별이 작별 인사를 한다. 반짝. 글·사진 나가사키·가고시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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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에는 규슈 탐방, 밤에는 선상 스파… 오감 만족 ‘바다 위 호텔’

    콜롬비아 남녀 무용수들이 라틴음악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원탁 앞으로 다가가더니 탑승객들에게 함께 춤을 추자며 양팔을 쭉 뻗었다. 누구는 쭈뼛쭈뼛, 누구는 발딱발딱 의자에서 일어나 박자를 탔다. 프릴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앙증맞게 몸을 흔들었다. 휠체어에 앉은 할아버지 얼굴에 함박웃음이 차올랐다. 긴박한 드럼 소리가 절정에 이르며 피날레를 알리자 박수와 환성이 터졌다. 크루즈선(船) 이스턴비너스호는 현해탄 밤바다를 가르며 부산항으로 향했다.부두에 정박한 유람선에서 자고 먹고 여흥을 즐기며 기항지의 유서 깊은 장소나 관광지를 돌아보는 크루즈 여행. ‘지중해나 알래스카, 카리브해 등에서의 일주일 정도 고급 유람선 관광’이 몇 년 전까지 크루즈 여행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었다. 해외 출항지까지 찾아가는 비용이 많이 들고 기항지 나들이 시간이 하루 10시간 이내로 짧은 데다 야경을 마음껏 즐기지 못한다는 것 등이 선뜻 배에 오르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이런 점들을 고려해 보면 이스턴크루즈㈜ 크루즈 여행은 부모와의 주말 가족여행에 제격일 듯하다. 부산을 모항(母港)으로 하는 이스턴크루즈는 주로 일본 규슈(九州)와 서부 혼슈(本州) 중 2개 도시를 기항지로 2박 3일 또는 3박 4일 일정으로 항해한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사세보 구마모토 미야자키 벳푸 기타큐슈(이상 규슈) 시모노세키 히로시마 사카이미나토(이상 혼슈) 마쓰야마(시코쿠) 등이다. 여행 기간이 짧고 머문 지역 명소 탐방도 하루 3곳 안팎이어서 여독이 많이 쌓이지 않는다. 기항지 관광을 선택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둘러볼 수도 있다.크루즈 여행은 선내 저녁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진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와 제공되는 저녁을 먹은 뒤 내내 쉴 수도 있다. 갑판을 거닐며 배를 한 바퀴 돌아 볼 수도 있고, 사우나 욕탕에 노곤한 몸을 누이고 창 너머 달을 보며 별을 헤아릴 수도 있고, 선상 수영장 옆 월풀 자쿠지에서 밤바다 서늘한 바람을 느껴 볼 수도 있다.그러나 다른 여행보다도 크루즈 여행은 즐겁기 위해 간다. 탑승객 흥을 돋워 주는 여러 프로그램이 저녁 식사 이후 준비된 이유이기도 하다. 콜롬비아 출신 가무단이 라틴댄스와 음악 공연은 물론 미국 라스베이거스 쇼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대도 선사한다. 원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탱고도 가르쳐 준다. 7080 가요를 부르는 왕년의 가수 공연에 잠자기 전 빙고 게임 자리도 마련된다. 내내 기분 좋게 들떠 있는 탑승객에게는 ‘무료 탑승권’ 깜짝선물이 주어진다. 이 모든 시간이 다 한국어로 소통된다. 입출국 수속은 공항에 비해 훨씬 간편하다.2만6000t급 이스턴비너스호에는 5개 등급의 270객실이 있다. 720명까지 고객을 받을 수 있다. 강당, 댄스홀, 라운지, 영화관, 북카페 등 시설도 다양하다. 갑판에서 맞이하는 일몰과 일출, 그리고 아련한 육지와 섬 풍광은 보너스.부산=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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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EP으로 AI 직업 훈련 역량 강화하세요”

    “고용노동부와 한국기술교육대 온라인 평생교육원이 운영하는 STEP(스마트 직업훈련 플랫폼) LMS(학습 관리 시스템) 서비스가 훈련 품질 향상에 큰 힘이 됐습니다. 양질의 콘텐츠와 영상 제작 장비, 학사 관리, 라이브 강의까지 통합 지원되니 교육 운영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더 많은 훈련기관이 STEP으로 품질을 향상하길 기대합니다.” 직업전문학교인 한국정보교육원 고현정 원장의 말이다. 이 기관은 2019년 스마트 혼합훈련 시범사업 때부터 STEP의 LMS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LMS 서비스는 회원 관리, 훈련생 학습 모니터링, 수강 이력을 비롯한 정보는 물론 다양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까지 제공한다. 한국기술교육대 온라인 평생교육원은 직업훈련기관과 기업, 대학, 시도 교육청 등에 LMS와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해 교육 훈련 운영의 내실을 기하고 있다. 현재까지 1260여 개 기관에서 112만 명 이상이 혜택을 봤다. 이차전지 제조 공정 자동화 장비 전문기업 ㈜원익피앤이도 2024년 STEP을 사내 교육 플랫폼으로 도입해 692개 온라인 과정을 개설한 이후 총 1420명이 수료했다. 원익피앤이 관계자는 “STEP을 활용해 직무 관련 전문 기술교육을 정규 훈련 체계에 반영하고 직원 개개인의 역량 향상과 실무 적응력 제고에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교육 품질은 유지하면서 연간 수천만 원에 이르는 교육 예산을 절감하는 비용 효율성과 콘텐츠 자율성, 교육 다양성을 동시에 얻는 효과가 났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중심이던 신입사원 교육도 지난해 자체 개발 콘텐츠를 STEP 플랫폼에 등록, 활용해 사원들이 시간과 장소 제약을 받지 않고 반복 학습할 수 있도록 했다. STEP은 민간에서 개발이 어려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디지털 신기술 및 다양한 공학 분야 온라인 학습 콘텐츠 2600여 개를 개발해 재직자와 구직자는 물론 국민 누구나 무상으로 평생 직업 능력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2400만 명이 STEP 콘텐츠를 학습했다. 글로벌화를 위해 STEP 사이트를 8개 국어로 제작했으며, 지난해부터 하나마이크론 베트남 법인 직원 2000여 명에게 반도체 패키징 기술, 산업안전보건 등 11개 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또 ‘AI 3대 강국 도약’ 국정 과제에 발맞춰 AI 인재 양성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9∼10월 고용노동부와 함께 ‘AI 리터러시(문해력) 기초’ ‘다양한 AI 서비스 활용 기초’ ‘사무직과 마케팅 직군의 AI 리터러시 향상하기’ 등 4개 콘텐츠를 제공했고, 올해는 주요 산업별 AI 융복합 콘텐츠 24개 과정을 추가해 5월부터 국민에게 공개한다. STEP AI 콘텐츠는 모두 138개가 됐다. 특정 산업과 직무 분야 전문성과 AI 기술을 융합해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문제 해결 역량을 향상하기 위한 주요 산업별 AI 융복합 콘텐츠 24개 과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경영, 디자인, 제조 생산성과 품질 등 5개 분야 7개 과정과 기계, 전기전자 같은 주요 6대 산업 AI+X(특정 전문 분야) 17개 콘텐츠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총장은 “4차 산업혁명과 급속한 AI 발전 시대에는 AI 기본 소양 교육을 넓히고 디지털 학습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쉽게 배울 수 있는 e러닝 콘텐츠가 필요하다”며 “누구나 평등하게 AI 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STEP은 지난달 사이트 사용자 인터페이스(UI)/사용자 경험(UX) 등 수요자 중심 학습 플랫폼으로 전면 개편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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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정말 학생 중심으로”… 국립대 교육이 변한다

    입학과 동시에 결정하는 전공 선택의 부담과 대학 생활 적응의 어려움, 이에 따른 심리적 불안정은 적지 않은 대학생이 겪는 문제다. 일방적 강의 중심 수업 방식과 지속되지 않는 상담과 학생 지원 체계로는 이 같은 학생의 고민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대학 교육 방식은 변화하고 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의 학습 경험과 적응, 그리고 진로 설계까지 지원하려고 애쓰고 있다. 학생 개인 역량이나 노력 문제가 아니라 교육 과정과 지원 체계 전반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교육부 국립대학육성사업이다. 국립대학육성사업은 국립대를 지역교육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재정 지원 사업이다. 교육 여건 개선은 물론 학사 구조와 교육 운영 방식의 혁신을 유도하려는 취지다. 전공 선택과 진로 설계 및 대학 생활 적응 지원을 주요 과제로 설정해 교과, 비교과, 상담, 심리 지원을 통합한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립대는 학생이 대학에서 겪는 총체적 경험을 고려한 교육 혁신에 애쓰고 있다. 전공 탐색 기회를 제도적으로 제공하고 교과 및 비교과 프로그램을 체험 중심으로 확대하며 학사 운영과 심리 및 상담을 연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국립대가 비로소 학생 중심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교양 과목은 체험형 교과 위주로국립한국교통대는 교양 교육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체험과 경험 기반 교과목인 FESTA+(플러스)를 운영하고 있다. 강의실 중심의 지식 전달을 벗어나 학생의 직접 경험을 통해 핵심 역량을 키우고 학습 동기를 높이자는 취지다. 총 15시간 내외 1학점 교양선택 과목인 FESTA+는 단기 집중 이수 및 패스- 논(non)패스 평가 방식이다. 의사소통, 인성, 창의 문제 해결, 융합 실무, 글로컬, 리더십 등 6대 핵심 역량 기준 12개 교과목을 개발해 일부 과목을 실제로 운영하고 있다. 교과목마다 운영비용을 지급해 실습에 필요한 물품 구입이나 교통비, 장학금 등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캠핑 교육과 인성’ 과목은 체험 중심 교육이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1박 2일간 캠핑 이론, 텐트 설치, 음식 만들기 등을 직접 해 보도록 한다. 리더십 교육과 치유 프로그램을 결합해 공동체 의식과 자기 관리 역량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천체 관측 이론과 실습을 결합한 ‘밤하늘 별자리 여행’은 망원경 조작, 스마트폰 촬영, 별자리 탐색 등을 해 봄으로써 과학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과목들과 ‘팀 & 커뮤니케이션 콘서트’에는 과목마다 수강생이 약 40명으로 나타났다. 일부 과목은 수강 인원을 늘려 달라는 요청이 있기도 했다. 캠핑 수업 만족도가 5점 만점 기준 4.9점대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전체 과목 평균 만족도가 4.92점으로 매우 높았다. 참여 학생들은 “다른 방식의 수업이라 흥미로웠다”, “배움과 체험을 동시에 해서 만족스러웠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 학생 적응 및 심리 지원 체계 구축국립한밭대는 학생 심리 지원을 특화했다. 기존 상담을 전문 상담사가 맡으면서 학생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해 ‘또래상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학생이 다른 학생을 더 편하게 대화하면서 상담해 주도록 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또래상담자 양성과 활동 중심이다. 51명이 지원해 47명이 또래상담자가 됐다. 이들은 기본 및 심화 교육을 거쳐 상담 준전문가로 활동한다. 교육 과정 만족도는 4.8점 이상이었다. 또래상담자는 학내에서 1대1 상담을 하게 되는데 1347건이나 이뤄졌다. 집단 상담 프로그램 ‘친구야! 함께 밥 먹자!!’를 통해 관계 형성에는 41회(82시간)에 걸쳐 72명이 참여했다. 신입생의 대학 적응을 돕기 위한 ‘선배와의 대화’에는 또래상담자 41명과 무전공 신입생 473명이 참여해 126건의 멘토링이 진행됐다. 캠페인, 공모전, 평가회 등으로 참여자를 늘렸다. 또래상담은 기반·예방·개입·회복·환류 단계를 거친다. 또래상담자를 양성해 안전망을 구축하고 집단 프로그램과 멘토링으로 학교 적응과 관계 형성을 지원한다. 상담 과정에서 심리적인 위기에 처한 학생이 발견되면 전문 상담사의 상담을 받도록 했다. 기존 상담 체계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일상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또래상담 프로그램 만족도는 4.6∼4.8점으로 참여 학생의 정서 안정 및 대학 생활 적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상담에 대한 부담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 또래상담자는 “여전히 ‘내 고민은 사소한 것 같다’고 생각하거나 처음 보는 타인에게 이야기하기 망설여진다는 학우가 많다”며 “함께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니 언제든지 찾아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단순한 상담 서비스를 넘어 구조적 지원 체계로 확장된 또래상담 프로그램은 학생의 심리 문제를 사후에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예방하는 통합 지원 모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심리 데이터에 기반한 맞춤 지원청주교육대는 학생 심리 상태와 적응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자기 주도 성장형 자기 이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단발성 상담에 그치지 않고 대학 생활 주기별로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 프로그램은 1학년과 3학년생 대상이다. 참여 학생은 마인드핏 적응 역량 검사를 받은 뒤 대면 해석 워크숍에 참여한다. 3학년은 1학년 때 검사 결과와 비교해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검사 결과를 토대로 잠재적 위험군을 빨리 파악해 심층 검사와 개별 상담을 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먼저 전수 조사를 통해 학생 심리 상태를 파악한다. 학생별로 결과 해석 교육을 받아 자기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수요 조사를 반영한 후속 프로그램과 심층 상담으로 이어진다. 방학 때는 집중 상담 기간을 둬서 지속적으로 마음을 관리하도록 했다. 위험군에 속한 학생뿐 아니라 일반 학생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프로그램 실시 결과 1학년 261명 중 95%, 3학년 246명 중 92%가 참여했고 워크숍 참여율 역시 높았다. 학생들은 자신의 정서 상태와 성향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대학 생활 적응과 진로 설정에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 학생들 반응도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 현재의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등 대체로 긍정적이다. 상담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 역시 자기 이해 기반의 심리 지원 모델이 학생 성장과 교직 전문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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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내엔 봄내 봄 내음 물씬[여행스케치]

    너는 춘천에 다녀왔다고 했다. 입학식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술을 마신 듯 발그레했다. 혼자서 닭갈비를 먹었다고 했다. 명문대 좋은 과에 수석으로 붙은 네가 생활에 쫓길 일은 없어 보였다. 대학로 술집 골방에서 동문 선배들은 술을 권했다. 너는 마다하지 않았다.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 노래가 빠질 순 없었다. 너는 ‘행복의 나라로’를 불렀다. 술기운이 돌고 고개들이 주억거렸다. 누군가 ‘소양강 처녀’를 읊조렸다. 모두 따라 했다. 목 놓아 부를 일은 아니었는데 소리는 커져만 갔다…. 문득 한 세대 전 네 모습이 생각났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 보다. 너를 싣고 갔을 통일호 열차는 이제 없다. 경춘선 itx-청춘에 올라탔다.● 맑고 평온하게 아마 너도 그때 갔을 터다. 소양호에서 청평사(淸平寺) 가는 배에 올랐다. 소양호는 위도 38도선 위에 걸쳐 있다. 지금이야 별다른 의미는 없다. 호수 양쪽 기슭 산자락을 적시며 배는 나아간다. 고물 뒤로 하얀 물보라가 퍼져 나간다. 서두르는 기색 없이 15분 남짓. 선착장에 다다른다.청평사 오르는 길은 신록이 완연하다. 진달래와 철쭉 황매화 산수유 등속이 연두 숲에서 점점이 색을 발한다. 계곡물 흘러내리며 삽상한 바람을 일으킨다. 바람의 시작은 아마도 구성(九聲)폭포다. 주위에 멋들어진 소나무 아홉 그루가 있다고 해서 구송폭포라고도 했단다. 8m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뒤로 하고 다시 걷는다.네모난, 정확히는 기다란 사다리꼴 연못이 나온다. 그림자 영(影)자를 써서 영지(影池)인데 비출 영(映)자를 쓰기도 했다. ‘청평사 뒤 오봉산 부용봉 바위가 비친다’ ‘절에서는 보이지 않는 연못에 청평사가 투영된다’ ‘산 능선을 걷는 사람 그림자가 보인다’ 등 유래가 여럿이다. 고려 중기 12세기 초, 아내와 사별하고 죽을 때까지 30여 년간 이곳에 은거한 이자현(1061~1125)이 조성했을 것이다. 큰 가뭄이나 홍수 때도 연못 물이 줄거나 늘지 않았다고 한다. 쳐다보는 이의 마음도 그렇게 평온하기를 바라는 걸까.고려 초기 창건했다는 청평사는 큰 절은 아니다. 사찰 입구 일주문도 없고 가람도 비좁다. 법당 극락전은 불에 탄 것을 몇십 년 전에 중건했다. 안내판 설명은 6·25전쟁 때 소실됐다고 했지만, 그전에 정신착란을 일으킨 여성이 불을 질러 전소했다는 기사(조선일보 1950년 2월 15일 자)가 있다.다만 두 번째 문인 천왕문 격의 회전문(迴轉門)이 있다. 고쳐 지은 지 500년쯤 된 보물이다. 공주를 사랑한 뱀이 있었다. 사랑이 지나쳐 공주 몸을 빙빙 감고 놓아 주지 않았다. 부처에게 공덕을 드리겠다는 말에 풀어 줬다. 불사(佛事)는 마쳤지만 공주는 나오지 않았고 뱀은 이 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도리어 천둥번개 치며 쏟아지는 폭우에 떠내려갔다. 사랑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번뇌에선 풀려난 셈이다. 실제 빙빙 돌지는 않는 회전문은 윤회전생(輪迴轉生)의 문이다(전석순, ‘춘천’, 21세기북스, 2020).회전문으로 들어서고 회전문으로 나왔다.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선착장으로 향한다. 연지에 빗방울들이 떨어진다. 차분하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다 사라진다. 병풍처럼 서 있는 산들 사이로 멀리 유람선 한 척 다가온다. 물안개가 산등성이 곳곳에서 자욱하게 피어오른다.이자현의 사촌이 반란을 일으킨 왕의 외척 이자겸이다. 권력을 집착해 제명에 못 죽은 친척과 달리 이자현은 청평거사라 불리며 천수를 다했다. 머리는 비에 젖었지만 마음은 맑고 평온했다.● 푸르고 잔잔하게35년 전 네가 처음 찾았을 때도 그랬듯 춘천은 호반의 도시다. 하지만 그 이름에 호수는 없다. 봄 춘(春), 내 천(川). 봄의 내, ‘봄내’다. 봄이 먼저 와서 흐른다. 댐이 서면서 호수가 생겼다. 섬이 그 안에 생겼다. 중도가 그렇다.북한강과 소양강이 만나는 자리에 쌓인 퇴적물이 만들어 낸 섬이 중도다. 둘로 나누어져 상중도와 하중도가 됐는데 흔히 하중도를 가리킨다(‘춘천’). 네가 만약 그때 가 봤다면 배 타고 의암호를 가로질렀을 것이다. 지금은 거대한 원 모양 주탑이 케이블로 상판을 견인하는 춘천대교로 간다.외지 관광객을 끌어모으려는 다른 지방 도시처럼 중도 주변에도 스카이워크와 출렁다리가 생겼다. 너는 보지 못했을 풍경이다. 중도에서 뭍을, 뭍에서 그 섬을 보면 뭔가 아련하고, 호수 위에서 섬과 뭍과 물을 보면 마음이 잠잠해진다. 너울이 이는 바다에 산처럼 솟은 섬과 달리 잔잔하고 푸른 수면 위에 다져 놓은 단 같은 땅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춘천대교 동북쪽 소양강 어귀 소양스카이워크 부근에 소양강처녀상(像)이 있다. 5m 높이 기단에 7m 높이로 서 있다. 위압적인데 살짝 관능적이다. ‘열여덟 딸기같이 어린 내 순정’이라는 노랫말이 무색해진다. 호반이 주는 봄의 흥취와 살짝 엇박자가 난다고나 할까.춘천대교 남쪽 공지천 어귀에는 출렁다리 ‘춘천 사이로 248’이 있다. 다리에 올라서서 양 천변을 바라본다. 벚꽃길이다. 제철의 마지막 벚꽃이 흐드러졌다. 다리 가운데에서 중도가 마주 보인다. 멀리 앞뒤로 늘어선 낮고 높은 산들을 배경으로 빨갛고 파랗고 노란 건물과 구조물 들이 보인다. 거대한 색동 블록을 쌓아 놓은 듯하다.언뜻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그곳이 레고랜드다. 중도에 들어서 레고랜드로 향하는 것은 탐험에 나서는 것 같다. 황량한 땅에 철제 울타리가 빙 둘러쳐 있다. 미지의 보물섬일 수도, 킹콩의 ‘해골 섬’일 수도 있다. 호텔과 놀이동산이 있는 그곳은 블록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환상의 섬이다. 밀레니얼 세대 부모가 알파 세대 자녀들과 함께 블록으로 만든 미니어처 서울 도심, 경복궁, 야구장 사이를 거닌다.그 울타리 밖은 역사의 땅이다. 선사시대와 철기시대 유적과 유물들이 땅 위아래 산재한다. 개발과 일자리, 그리고 보존이라는 언어와 행동이 부딪힌다. 레고랜드에서 10여 분 걸으면 철기시대 돌무지무덤(적석총)이 있다. 청동기시대 고인돌도 놓여 있다. 고인돌 저 너머로 울긋불긋 레고랜드가 보인다. 중용의 길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춘천은 봄꽃춘천대교에서도, 스카이워크에서도, 출렁다리에서도, 레고랜드에서도 그 산이 보인다. 춘천의 주산 봉의산(鳳儀山·해발 300.3m)이다. 너는 아마 이 산에 오를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여행지로 이름이 난 곳도 아니었다. 왠지 발걸음이 옮겨졌다.강원도청 뒷길을 따라 30분 정도. ‘봉의산’ 표지석이 꽂힌 정상에서 주위를 둘러본다. 웃자란 나무들과 뻗어 나온 잎들에 시야가 확 트이지는 않는다. 그 틈바구니로 본다. 춘천은 분지였구나. 그것도 산들이 두 겹으로 에워싼. 춘천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금병산 대룡산 마적산 오봉산 가덕산 북배산 등이 안에서 둥그렇게 스크럼을 짜고, 그 바깥으로 더 높은 수리봉 가리산 용화산 구절산 부용산 촛대봉 등이 비를 가려 주듯 어깨동무하고 서 있다.춘천 출신 작가 전석순에 따르면 어느 외국인 선교사는 봉의산을 꽃술, 둘러싼 산들을 꽃잎으로 보고 춘천을 한 송이 꽃에 비유했다(‘춘천’). 춘천은 지금 봄 내음 물씬한 봄꽃인 셈이다.봉의산을 내려와 약사 고갯마루에 있는 죽림동 성당에 들렀다. 가지런히 다듬어진 잔디밭 사이로 난 길은 로마네스크 양식 본당으로 향한다. 인간의 고통을 사랑으로 보듬는 예수성심상이 잔디밭에 하나, 성당 입구에 더 큰 것이 하나 서 있다. ‘너는 그곳에서 잘 있는 거니?’서울 청량리로 돌아오는 전철을 탄다. 흘러가는 한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을 터다. 그리운 사람, 그리운 모습.글·사진 춘천=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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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록과 바다 사이 질주하는 은륜

    전라남도 고흥군(군수 공영민)은 25, 26일 거금도에서 ‘고흥 블루마린 자전거 여행’을 연다.거금도 일대 해안과 거금대교를 잇는 총연장 약 40km 코스를 자전거로 달린다. 약동하는 신록과 청명한 바다 사이를 질주하며 관광 명소와 맛깔스러운 음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출발점은 거금도 김일기념체육관이다. 이어 익금해수욕장, 금의시비공원, 거금 생태숲, 거금도 북부해안도로를 거친 다음 거금대교 중간 반환점을 돌아 다시 김일기념체육관으로 골인하게 된다.거치게 되는 각 명소에는 문화와 역사를 배우며 스탬프를 받는 지점이 모두 5곳 마련돼 있다. 또한 특산물인 유자로 만든 유자에이드, 유자라면을 비롯해 다양한 고흥 미식을 맛볼 수 있다. 완주자는 고흥 특산물로 구성된 기념품을 받는다.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여행은 참가 정원 400명을 벌써 다 채웠다. 고흥군 관계자는 “블루마린 자전거 여행은 고흥 주민과 방문객이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고 따뜻한 정을 나누는 자리”라며 “지속 가능한 친환경 관광지로 고흥을 발전시키는 데 한몫할 것”이라고 말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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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나온 책]AI 전환? 기술 아닌 사람, 조직, 리더십에 달렸다

    #1. 2024년 인공지능(AI)/기계학습(ML) 실무자 65명 인터뷰 결과를 토대로 한 미국 싱크탱크 랜드(RAND)연구소 보고서는 80% 넘는 AI 프로젝트가 실패한다고 추정했다. 단 실패 원인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2.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저널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92%는 데이터와 AI 중심 조직으로 전환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은 문화와 변화 관리라고 답했다.최근 글로벌 기업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AI 전환(AX)이다. 성공적인 AX로 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위의 두 사례에서 보듯,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책 ‘소크라테스와 AX’(북랩)가 강조하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AI는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람, 조직, 리더십 문제라는 것이다.이 책은 소크라테스가 AX에 관한 100가지 질문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던지면서 그 해답을 찾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질문은 노골적이다. “경쟁사가 전부 AI를 쓰면 당신 회사의 무기는 뭡니까? 사장님 미소?” “열정은 반드시 식습니다. 단언합니다. 2500년간 인간을 관찰한 결론입니다.” “AI 거버넌스에 쓰는 돈은 어떻게 정당화합니까? ‘보험’이라고 하면 됩니까?”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 “당신은 AI를 샀습니까? 아니면 조직을 바꾸었습니까?” 그리고 거울을 꺼내며 말한다. “거울이 보여주는 건 얼굴이 아닙니다. 리더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보여줍니다.” AX 의사결정에 연결된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이 해답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건네는 거울이 됐으면 한다고 저자 배기원 갈렙앤컴퍼니 이노베이션센터장은 말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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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산에서 이름 너머 더 깊은 풍광에 빠지다[여행스케치]

    미당(未堂) 서정주는 고향인 전북 고창의 소요산에 올라 북쪽 곰소만(灣) 건너 부안 변산(邊山)반도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바다에 체념하여 그 모가지를 들여대고 있는 무슨 큰 생물 같은…’(동아일보 1962년 3월 14일 자). 어쩌면 그 생물은 동시대 시인 노천명의 ‘모가지가 길어 슬픈’ 사슴이 아니었을까. ‘물속 제 그림자 들여다보고/※…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먼 산을 쳐다보는…’(시 ‘사슴’ 중). 바다를 향하는 반도는 섬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무게중심은 어쨌든 뭍에 두고 있지 않겠는가. 하물며 이름마저 ‘가장자리 산’인 변산이야 더 그렇지 않을는지. 그래서 유념해야 할 터다. 변산반도 곳곳 명승은 이름과 실상이 어긋나 보이면서도 묘하게 조화롭다는 것을. ● 바다와 산이 바위로 호응하다변산은 의상봉(해발 508m)이 최고봉이다. 한데 관음봉(424m)을 정상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여기저기 봉우리들 다시 말해 이 산 저 산을 한데 묶어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부안군 땅 절반가량인 변산반도는 외변산과 내변산으로 나뉜다. 하지만 외변산은 산이 아니라 강이다. 그런데 그 강은 강이 아니라 해변이다. 이름하여 채석(彩石)강과 적벽(赤壁)강이다.서해 쪽으로 튀어나온 변산반도 맨 왼쪽 해안에 있는 두 ‘강’ 이름의 유래는 중국이다. 채석강은 당나라 시인 이백이 세상을 떠난 전설 같은 일화에 등장한 강이고, 적벽강 또한 송나라 소동파의 유명한 시 ‘적벽부’ 배경이 되는 강이다. 한 소설가는 ‘중화 사대주의가 여기까지 미치다니…’하며 혀를 찼고, 한 언론인은 ‘연안이 굽어서 마치 강어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중요한 것은 강에 현혹되지 않고 실체에 접근하는 일이다.채석과 적벽 모두 바다에 깎인(해식·海蝕) 가파른 절벽(단애·斷崖)이다.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색깔과 바위, 그리고 바위에서 깎여 나온 돌이다.채석은 여러 가지 고운 빛깔 돌이라는 뜻이다. 그 돌들은 수천만 년 동안 깎이며 무수한 층을 이뤄 서 있거나 해변에 깔려 있다. 예전에는 책거리 그림처럼 책이 빼곡히 쌓였다고 해서 ‘책바위’라 했고, LP를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레코드판을 쌓아 놓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10~20m 높이 ‘바위 병풍’이라고도 했다.‘해에 바래고 물에 씻긴’ 절벽은 주로 흑갈색부터 황갈색까지 빛을 낸다. 절벽에서 파도와 해류에 깎인 파편이 바닷물에 시달리면 다양한 빛깔 조약돌이 된다. 이곳에서 주은 검거나 흰 돌은 그대로 바둑돌이 됐다.채석강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1.5km쯤 가면 적벽강이 있다. 적벽은 황토처럼 불그스름하고 누르스름하고 황금빛을 내기도 하고 꽃자주색을 뿜어내기도 한다. 채석의 단애가 층층이 쌓였다면 적벽은 껍질이 벗겨져 모습이 드러난 석류알 같은 절리(節理)들이 헤아릴 수 없다.두 강의 깎아지른 절벽에는 파도가 파낸 깊고 넓은 동굴이 곳곳에 보인다. 누구는 예전에 이런 동혈(洞穴)에서 선비들이 소박한 술상을 차려 놓고 시를 읊었다고도 하고, 누구는 용왕에게 치성을 올렸다고도 하는데,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자연 조화를 내변산에서 다시 볼지는 몰랐다.내변산은 산이다. 산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과 절경을 모아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중 하나가 개암사다. 창건한 지 1400년 가까이 됐다지만 현재 법당들은 다 임진왜란 이후 지은 것이다. 이 절 대웅보전에서 수직으로 눈을 들면 저 멀리 산 위에 나란히 선 커다란 바위 2개가 보인다. 울금바위(우금암)다. 높이가 각각 30m, 40m가량인데 세 개의 굴을 품고 있다.개암사에서 40분 정도 올라가면 처음 보는 것이 원효굴이다. 신라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굴이다. 단순히 동굴이 아니라 거대한 절벽에 두 개의 굴이 양쪽으로 파여 있다. 유심히 바라보니 절벽 어디까지는 층층이 촘촘히 쌓여 있고, 어디부터는 각진 석류알처럼 삐쭉빼쭉 튀어나온 듯 깎여 있다. 채석과 적벽의 절묘한 조화다. 산과 바다의 오묘한 호응이다. 새삼 억겁의 세월, 지구의 운동에 탄복한다.● 이름 그대로, 직소폭포외변산과 달리 내변산은 이름 그대로인 풍광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직소(直沼)폭포다. 변산반도 중심부에서 관음봉을 향해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지금이야 길도 내고 데크도 깔고 계단도 둬서 그곳까지 가기가 어렵지는 않지만, 과거에는 녹록지 않았을 법하다.신록이 시나브로 영역을 넓혀 가는 즈음이라 산이 물을 내놓는지 오솔길 군데군데가 질퍽하다. 계곡을 발아래 두고 걷다 보니 물소리가 점점 우렁우렁해진다. 폭포를 원경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든 전망대에 서니 저 멀리 하얀 폭포 줄기가 거대한 암벽을 둘로 가르며 떨어진다. 그 물은 거세게 흘러와 전망대 바로 아래에서 다시 조그만 폭포를 만들어 낸다. 더 걷는다.폭포로 가려면 계곡을 내려가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선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비취색 용소(龍沼)로 30여 m 낭떠러지 위에서 물이 거침없이 수직 낙하한다. 그래서 직소인 게다. 수천만 가닥 가느다란 흰 실을 한데 묶어 낸 듯한 물줄기다.조선시대 한 선비는 이를 보고 흑룡이 치솟는 것 같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알겠다. 흑룡은 과거 기우제를 드리는 대상의 하나로 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실제 가뭄이 들었을 때 이 용소에서 비를 바라는 제사를 드렸다.신기한 점은 폭포가 떨어지면서 굉음을 내는데 주위는 되레 적막해지는 듯하다는 것이다. 용소 주변 바위에 앉아 무심하게 보고 있자니 노이즈 캔슬링 기능 탁월한 이어폰을 낀 것 같다. 지워준 것은 소리가 아니라 번잡한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가슴이 후련해진다.91년 전 이곳을 찾은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는 직소폭포가 ‘송도 3절’인 개성 박연폭포에 비길 만하겠다고 했다(동아일보 1935년 9월 6일 자). 박연폭포를 보지 못해 뭐라 말하지 못하겠지만, 직소폭포가 건네는 봄의 흥취에 자못 취한 것은 사실이다.내친김에 관음봉 주위를 에둘러 내소사(來蘇寺)로 내려갈까 싶다. 직소폭포에서 재백이고개 초입 재백이다리까지 1km 남짓 호젓한 길을 걷는다. 평지에 가까운 경사인 데다 왼쪽으로 직소폭포를 향해 흐르는 시내가 동행한다. 상쾌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녹음이 우거지고 온갖 꽃이 더 핀다면 금상첨화일 테다.20여 년 전 결혼을 앞두고 아내는 내소사행을 고집했다. 일주문부터 이어진 전나무 길을 걸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였다. 반대로 채석강에 가면 커플이 깨질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아무 근거는 없었다. 20여 년 만에 다시 온 내소사는 전나무 길도, 오색단청 세월에 씻겨 속살 드러낸 나뭇결 따스한 대웅보전 꽃살문도 그대로였다. 그때는 눈길 주지 않은 내소사 이름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을 봤다. ‘이곳에 오면(來) 소생할(蘇) 수 있다’는 뜻이란다. ‘당나라 소정방이 찾은 절’이라는 일설보다는 훨씬 낫다.● 서민 위한 생태탐방원채석강과 적벽강 사이 물굽이 해변 언덕에 변산반도생태탐방원이 있다. 왠지 학술적인 냄새를 풍기는 이름이지만 국립공원공단에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다. 서해를 품은 조망은 ‘왜 이곳에 5성급 호텔이 들어서지 않은 것일까’ 생각하게 할 정도다. 가격도 저렴하다 할 정도로 상식적이다. 공단에서는 변산반도에 생태탐방원을 비롯해 ‘직소천자동차야영장’ ‘고사포야영장’ ‘워케이션센터’ 같은 시설을 두고 여행객을 부르고 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용료는 매우 합리적이다.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것들을 이용하려면 예약해야 하는데 성수기는 물론이고 비성수기에도 예약 사이트에서 ‘광클릭’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한다. 기왕에 혈세를 들이는 것이라면 진짜 서민들에게 기회를 먼저 주는 예약 방식은 어떨까 싶다.글·사진 부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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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ようこそ”… 짙푸른 정원 미학의 세계로

    신록이 짙어지는 초여름, 녹음의 정원이 부른다. 5월 31일 떠나는 한진관광 ‘교토 정원 탐방 4일’ 여행은 일본 정원 역사를 꿰뚫는 여정이다. 정원 전문가 본보 김선미 기자가 동행해 호응이 컸던 지난해 ‘북해도 정원 탐방’을 잇는다. 역시 함께하는 김 기자가 깊이 있는 해설을 제공한다. 고도(古都) 교토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방식의 정원을 품고 있다. 중심에 큰 연못을 두고 주위에 산책로를 만들어 걸으면서 감상하는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은 대표적이다. 반면 아예 물을 들이지 않고 바위와 모래만으로 산과 물을 표현하는, ‘마른 산수’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미시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다. 다다미방에 앉아 기둥과 보가 만든 프레임을 통해 정원을 그림처럼 감상하는 액자정원이 있고, 오래된 사찰 큰스님 거처 공간 주변을 둘러싼 호조(方丈)정원에, 서방 극락정토를 구현한 정토정원도 있다. 이 정원들이 함축하는 시간은 약 1200년이다. 8세기 초부터 헤이안(平安) 가마쿠라(鎌倉) 무로마치(室町) 에도(江戸) 메이지(明治)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른다. 정원에는 그만의 풍경이 존재한다. 수령 800년을 넘는 녹나무 군집과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사이 6월 햇빛에 더 푸르른 단풍 아오모미지가 터널을 이룬다. 그 아래 수련이 피고, 1만 그루 수국이 만개한다. 바닥에는 융단 같은 이끼가 터를 넓히고 기암괴석이 자태를 뽐낸다. 사각형 모양 이끼와 네모난 돌들이 번갈아 배열돼 일본 전통의 이치마쓰(市宋) 격자무늬를 이룬다. 그만의 서사도 자리한다.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내를 건너야 하는 어미 호랑이. 새끼 한 마리는 포악해 어미가 없으면 다른 형제를 잡아먹을 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우화를 흰모래 위 바위들로 표현한다. 일본 최대 호수 비와(琵琶)호 물을 끌어들여 연못뿐만 아니라 개울과 조그만 폭포를 조성했다. 그 물길은 로마식 아치형 수로교를 흐른다. 일본에서는 조경사를 작정가(作庭家)라고 한다. 정원을 설계하고 디자인해 이야기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무로마치 시대 소아 미(相阿弥), 에도 시대 고보리 엔슈(小堀遠州), ‘근대 일본 정원의 선구자’ 7대 오가와 지헤이(小川治兵衛), 근대 조경의 거장 시게모리 미레이(重森三玲) 등을 ‘만날’ 수 있다. 정원 여행 나흘간 탐승할 소라쿠엔(相樂園) 루리코인(瑠璃光院) 난젠지(南禪寺) 료안지(龍安寺) 무린안(無鄰菴) 쇼렌인(青蓮院) 도후쿠지(東福寺) 등에서다. 이따금 정원 밖 발길 멎는 곳에서 우지차(宇治茶)를 음미하고 호쿠사이(北斎)의 우키요에(浮世絵)를 보며 기모노도 입어 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진관광 홈페이지 혹은 예약센터 참조.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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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공과 취업 대격변 시대…‘전공탐색 박람회’로 헤쳐 나간다

    건국대학교(총장 원종필)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서울 광진구 교내 학생회관과 청심대 일대에서 ‘2026학년도 전공 탐색 박람회’를 연다. 인공지능(AI) 시대 맞춤형 전공 탐색과 진로 설계를 지원하기 위해서다.특히 의무적으로 제2 전공을 이수해야 하는 지난해 신입생과 올해 입학생들이 다(多)전공, 융합 전공, 연계전공 같은 학사 제도를 이해해 복수 학위와 부전공, 소단위 전공 등 학업 경로를 스스로 설계하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상담, 체험, 간담회 등을 유기적으로 구성했고,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해 축제형 프로그램도 준비했다.총 39개 학과와 11개 부서가 전공 상담, 미래 설계, 체험, 이벤트 존(zone)으로 나눠 모두 55개 부스를 운영한다.전공 상담 존에서는 각 학과 교수와 재학생이 전공별 교육 과정과 진로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와 도움을 제공한다. 미래 설계 존에서는 교양 과정 상담을 비롯해 취업과 창업, 대학원 진학, 전문자격증 제도, 다전공 및 학사제도 안내 같은 전공 선택 이후 경로를 상담해 준다.체험 존에서는 실감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메타 캠퍼스’와 가상현실(VR) 체험, 디지털 배지, 3D 프린팅 및 공간 컴퓨팅을 비롯한 첨단 에듀테크 프로그램을 알아볼 수 있다. 또 무역 전문가 양성을 위한 건국대 ‘GTEP 사업단’의 참여 기업 제품도 써 볼 수 있다. 다양한 실습형 콘텐츠를 통해 각 전공이 어떤 것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이벤트 존에서는 퍼스널 컬러 판별 체험을 비롯한 참여형 프로그램과 푸드트럭, ‘인생네컷’ 사진 같은 축제용 이벤트가 열린다. 박람회 기간 학생회관 프라임홀에서는 전공 간담회가 열린다. 학생 수요를 조사해 선정된 주제를 놓고 해당 전공 교수가 발제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간담회 주제는 AI 시대 컴퓨터공학의 변화, 피지컬 AI 기술과 전기전자공학의 전망, AI와 공공서비스, 미래 자동차 산업, 바이오 신약 개발, 기술 경영과 AI, 지속 가능 에너지 등 최신 이슈를 반영했다.교육 과정 혁신과 학사제도 개선을 통해 학생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고 있는 건국대는 AI 기반 학습 환경 구축을 비롯한 미래 교육 체계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이현숙 대학교육혁신원장(교육학과)은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다양한 전공을 충분히 탐색하고 적성과 흥미에 맞는 방향을 찾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스스로 질문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며 주도적으로 진로를 설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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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 전문가 김선미 기자와 함께하는 ‘교토 명소 정원’ 여행

    신록이 짙어지는 초여름, 녹음의 정원이 부른다. 5월 31일 떠나는 한진관광 ‘교토 정원 탐방 4일’ 여행은 일본 정원 역사를 꿰뚫는 여정이다. 정원 전문가 본보 김선미 기자가 동행해 호응이 컸던 지난해 ‘북해도 정원 탐방’을 잇는다. 역시 함께하는 김 기자가 깊이 있는 해설을 제공한다.고도(古都) 교토는 다양한 시대 다양한 방식의 정원을 품고 있다. 중심에 큰 연못을 두고 주위에 산책로를 만들어 걸으면서 감상하는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은 대표적이다. 반면 아예 물을 들이지 않고 바위와 모래만으로 산과 물을 표현하는, ‘마른 산수’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미시적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다. 다다미방에 앉아 기둥과 보가 만든 프레임을 통해 정원을 그림처럼 감상하는 액자정원이 있고, 오래된 사찰 큰스님 거처 공간 주변을 둘러싼 호조정원(方丈庭園)에 서방 극락정토를 구현한 정토정원도 있다.이 정원들이 함축하는 시간은 약 1200년이다. 8세기 초부터 헤이안(平安) 가마쿠라(鎌倉) 무로마치(室町) 에도(江戸) 메이지(明治) 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른다.정원에는 그만의 풍경이 존재한다. 수령 800년을 넘는 녹나무 군집과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사이 6월 햇빛에 더 푸르른 단풍 아오모미지가 터널을 이룬다. 그 아래 수련이 피고, 1만 그루 수국이 만개한다. 바닥에는 융단 같은 이끼가 터를 넓히고 기암괴석이 자태를 뽐낸다. 사각형 모양 이끼와 네모난 돌들이 번갈아 배열돼 이치마쓰(市宋) 격자무늬를 이룬다.그만의 서사도 자리한다.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내를 건너야 하는 어미 호랑이. 새끼 한 마리는 포악해 어미가 없으면 다른 형제를 잡아먹을 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우화를 흰모래 위 바위들로 표현한다. 일본 최대 호수 비와호(琵琶湖) 물을 끌어들여 연못뿐만 아니라 개울과 조그만 폭포를 조성했다. 그 물길은 로마식 아치형 수로교를 흐른다.일본에서는 조경사를 작정가(作庭家)라고 한다. 정원을 설계하고 디자인해 이야기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무로마치 시대 소아미(相阿弥), 에도 시대 고보리 엔슈(小堀遠州), ‘근대 일본 정원의 선구자’ 7대 오가와 지헤이(小川治兵衛), 근대 조경의 거장 시게모리 미레이(重森三玲) 등을 ‘만날’ 수 있다. 정원 여행 나흘간 탐승할 소라쿠엔(相樂園) 루리코인(瑠璃光院) 난젠지(南禪寺) 료안지(龍安寺) 무린안(無鄰菴) 쇼렌인(青蓮院) 도후쿠지(東福寺) 등에서다. 이따금 정원 밖 발길 멎는 곳에서 우지차(宇治茶)를 음미하고 호쿠사이(北斎)의 우키요에(浮世絵)를 보며 기모노도 입어 볼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한진관광 홈페이지 혹은 예약센터 참조.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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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으로 나간 국립대… 현안 해결 거점으로 재편

    최근 국립대학의 교육과 역할이 강의실을 벗어나 지역 사회로 확장되고 있다. 기후 위기, 지역 산업 구조 변화, 생활 안전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지역 단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는 거점으로서 대학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교육과 연구에만 집중했던 대학이 이제는 지역 사회와 연결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공공기관으로 기능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 방식의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국립대학은 지역 주민, 지자체, 산업체와 협력해 환경 보호, 산업 혁신, 지역 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 해결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과 사회적 가치를 결합하는 모델 구축이다. 학생들은 단순 학습을 넘어 지역 현안 해결과정에 참여하고, 대학은 그 결과를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국립대학육성사업은 이 흐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사업이다. 국립대학을 국가와 지역의 전략 과제를 수행하는 거점으로 육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교육·연구 자원이 지역 사회와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하도록 지원한다. 대학의 역할을 ‘교육기관’에서 ‘지역 문제 해결의 중심축’으로 전환시키는 정책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수 환경 지역에 기여할 창업 인재 육성 강원대는 접경 지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있다. 다수의 군 장병이 거주하고 있는데 전역 이후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 기반이 부족한 한계가 있었다. 대학은 이를 지역 인구 유출과 직결된 문제로 봤다. 그래서 군·지자체·대학이 함께 참여하는 창업 교육 모델을 구축했다. 대표 프로그램인 ‘강원 열린 군대 스타트업 프로그램’은 군 장병을 대상으로 기술 창업 교육과 사업화 컨설팅을 제공한다. 기업가 정신 함양과 창업 트렌드 이해를 위한 기초 교육부터 인공지능(AI), 앱 개발, 드론 등 4차 산업 기반 기술 교육과 일반 창업 과정을 단계적으로 운영한다. 특히 지역 특성을 반영해 국방 분야와 연계한 창업 교육을 강화했다. 국방 사업 관리와 무기체계 사업 관리 과정 등의 교육을 통해 관련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 국방 특허 기술을 활용한 창업 교육도 병행한다. 국방기술 기반 창업 포럼을 운영해 기술 사업화와 취·창업을 연계하는 구조도 구축했다. 강원 열린 군대 스타트업 프로그램에는 지난해 116명이 참여했다. 창업 동아리 구성과 경진대회 등 프로그램을 통해 다수의 예비 창업 팀을 발굴했다. 국방 스타트업 경진대회 수상, 청년 창업자 육성 사업, 초기 창업 패키지 등의 정부 지원 사업 유치, 실제 법인 설립 성과가 나왔다. ● 지역 문제 해결 실험실, 캠퍼스 밖으로 경상국립대는 대학 내부의 창업 교육 체계를 고도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GNU STARTUP PIONEER’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기초 교육부터 창업 동아리 활동, 실전 창업, 투자 유치까지 이어지는 단계별 지원 구조를 마련했다. 아이디어 단계에서 출발해 실제 시장 진입까지 연결되는 ‘창업 파이프라인’을 구축한 것이 특징이다. 참여 학생들은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한 참가자는 “온라인 창업 기초 교육과 멘토링이 특히 도움이 됐다”며 “창업 아이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창업 교육 비교과 이수자는 목표였던 1165명을 넘어 1249명에 이르렀다. 창업 동아리와 유망 창업팀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대학 기반 창업 생태계가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시작부터 지역 사회 문제 해결을 의제로 다루는 창업 프로그램도 있다. 경상국립대는 SDGs(지속가능발전목표)·ESG 기반 공모전을 통해 학생들이 지역 현안을 직접 해결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은 ‘해커톤’과 ‘리빙랩’ 방식을 결합해 진행된다. 참가 학생들은 해커톤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이후 경남 지역 현장에서 약 5주간 리빙랩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팀별 실행 지원금과 전문가 멘토링이 제공돼 아이디어의 실행력과 완성도를 높인다. 학생들은 환경, 안전, 사회적 취약 계층 지원 등 다양한 지역 문제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복합적인 지역 현안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도출하고 있다. 한 참여 학생은 “전문가 피드백과 현장 경험을 통해 아이디어를 실제 문제 해결 방안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상국립대 관계자는 “창업 교육을 통해 기른 문제 해결 역량을 지역 사회 현안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학생 역량 강화와 지역 사회 기여가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체대, 참여형 교육으로 환경 문제 해결 한국체대는 환경 문제를 교과목 중심의 이론 교육을 넘어 지역 기반 현장 참여형 교육으로 확장했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립대학의 공공적 책무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수도권 지역의 해양과 산림 환경 대상의 실천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문제 해결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경인교육대, 서울과학기술대, 한경국립대, 한국방송통신대 등 수도권 5개 대학 학생 42명이 참여해 진행됐다. 이론 교육과 현장 실습을 결합해 지역 환경 문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특징이다. 프로그램은 기후 위기와 해양 환경, ‘Leave NoTrace(LNT)’ 원칙에 대한 전문가 특강을 시작으로, 스쿠버 다이빙 장비 활용과 안전 교육이 진행됐다. 이후 해양 쓰레기 수거, 해안 정화 활동, 산림 보호 활동 등을 대상으로 한 실습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팀별 로 환경 보호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발표했다. 학생들은 지역 환경 문제를 직접 체감하고, 해결 실천 방안을 고민하는 경험을 쌓았다. 한 참여 학생은 “환경 보호는 특정 활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과 연결된 문제라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고 밝혔다. 참여 학생들은 환경 문제를 특정 분야의 과제가 아닌 지역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인식하게 됐다는 반응이다. 일부는 ESG 경영이나 환경 관련 직무를 진로로 고려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텀블러 사용을 실천하는 등 개인의 생활 방식 변화로 확장된 사례도 나왔다. 한국체대 관계자는 “생태계 체험 교육을 통해 지역 환경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실천 의지를 높이고, 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지속적인 환경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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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협회 ‘베스트 작가 대상’ 김종원 작가

    사단법인 한국문학협회(이사장 박종래) ‘베스트 작가 대상’에 만은 김종원 작가(77·사진)가 선정됐다. 대상 작품은 작가 부친의 삶과 한국 현대사를 교직한 책 ‘1917년생 화동 김은철 삶과 현대사’(명성서림)다한국문학협회는 21일 서울 중구 명성문화예술회관에서 시상식을 열고 김 작가에게 대상을 수여했다. 김 작가는 20여 년 전 제정된 베스트 작가 대상의 세 번째 수상자다.수상작은 3·1운동 2년 전인 1917년 태어나 1979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광복, 6·25전쟁, 4·19, 5·16, 10월 유신 같은 격변기를 산 필부이자 인격자였던 부친의 삶을 통해 현 한국 현대사를 차분히 돌아본다.김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나라의 근본은 국민이며 그만큼 평범한 국민 삶의 기록을 중요시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역사를 보는 새로운 혜안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중고교 교육자로 있으면서 시, 시조, 수필, 문학평론으로 등단한 김 작가는 은퇴한 뒤 인문학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성동문학’ 창간 및 주간, ‘한국시조문학’ 주간,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 부이사장, 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문학협회 자문위원 및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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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에게 빅뱅 같은 일출을 줄게[여행스케치]

    휴대전화 손전등에 의지해 새벽 산 중턱 오솔길을 오른다. 전날 구름과 안개가 잔뜩 꼈다. 걱정이 화선지에 먹물 배듯 가슴 한쪽으로 스며든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천문과학관 주차장까지는 차로 올라왔다. 해발 약 260m. 정상까지 이만큼을 걸어가야 한다. 급경사가 아닌데도 조바심에 숨이 조금씩 차오른다. 고개를 위로 꺾어 어둠이 물러나지 않는 하늘을 훔쳐본다. 하얗고 노랗고 푸른 별들을 내가 머리에 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구름 이불에 여전히 덮여 있는 걸까. 길이 서서히 가팔라진다. 사위는 슬금슬금 뽀얘진다. 지그재그 데크 길이 목적지가 가까워졌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정상. 해발 518m 억불산(億佛山)이다. 몸을 빙 돌려 사방을 본다. 참 좋다.● 그 일출, 끓며 넘치며동남쪽 멀리 득량만(得糧灣)이 보인다. 장흥 출신 소설가 이승우는 한 작품에서 이런 광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산이 ‘자신의 품을 활짝 열어 옷자락 속에 품고 있던 바다를 꺼내 보인 것처럼 여겨졌다.’구름 장막은 다 걷히지 않았다. 득량만 바다와 섬들 위로 몸을 막 일으킨 해가 그 틈새로 노랗다가 불그스름하다가 벌겋다가 시뻘건 색을 드러낸다. 빛이 용암처럼 끈적거리듯 퍼진다. 역광을 받아 어두운 구름층과 수평선 사이 좁고 평행한 공간에 붉은 우리은하가 생긴 듯하다. 득량도와 그 너머 고흥반도가 태초의 땅처럼 신비롭고 아득하다. 빅뱅 순간이 이랬을까.시선을 육지로 돌리니 장흥 북쪽 태반이 드러난다.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억불산 자락 끝에서 장흥평야가 동서로 뻗어 있다. 그 주위를 동북쪽부터 사자산, 제암산이 감싸안고 서쪽으로 용두산과 수인산까지 내달린다.다시 남으로 고개를 향한다. 능선이 아낙네 치맛자락처럼 부드럽게 사방으로 펼쳐지듯 내려온다고 해서 억부산(億婦山)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역시 그렇다. 그 너머로 언덕 같은 산들이 구불구불 점점 낮아지며 끝내는 바다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다. 궁금해진다. 저것은 산줄기가 바다로 내려간 것이냐, 섬 줄기가 뭍으로 올라온 것이냐.어쩌면 둘 다 아니다. 중요한 것은 땅과 물이 만나 서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 만나서 소통했다는 얘기다. 즉, 회통(會通)이다. 서로 모순돼 보이는 것들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 비록 설익고 억지스럽지만, 억불산에서 깨달은 이 이치를 장흥 곳곳에서 마주치게 될 터였다.● ‘보배로운 숲’에서 소통을 느끼다그 깨달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보림사(寶林寺)다. ‘왜 달을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느냐.’ 깨침은 경전(손가락)이 아니라 불성을 지닌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 있다는 선불교(선종)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이 땅에 퍼졌다. 9산선문이다.그중 가장 먼저 오늘날 조계종을 연 승려가 도의(道義)다. 보림사는 도의선사가 개창(開創)하고 그의 3대 법손(法孫) 보조선사 체징(體澄)이 실질적으로 문을 열었다(이일야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 조계종출판사, 2016).부처를 모신 금당 앞에 좌우로 탑을 하나씩 세운 보림사 가람 배치는 예사롭지 않다. 그전까지는 1탑 1금당 배치가 주였다. 이 방식은 금당을 가로막는 탑이 중심으로 보이다. 반면 보림사처럼 좌우로 분산된 쌍탑식은 금당의 중요성을 부각한다(김봉렬 ‘불교건축’, 솔, 2004).그런데 보림사 금당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다. 비로자나불은 선종과 대립하던 교종 중 ‘화엄경’을 근본으로 삼는 화엄종 부처다. 모순된 두 사상이 만나 하나를 지향하는 회통이다. 인간 본질은 부처라는 선종과 인간을 비롯한 온 세계가 불성의 현현(顯現)이라는 화엄종은 모두 ‘본래 부처’라는 생각에서 통한다(‘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경내 모든 불당은 6·25전쟁 때 타버려 1980년대 이후 지었다. 아쉬움은 귀중한 유물로 보상받는다. 통일신라 이후 탑 가운데 아주 드물게 상륜부가 완벽히 남은 남·북 삼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대표적이다. 모두 국보다.철로 만든 불상은 국내에 몇 없다. 높이 252cm, 약 1.5t의 철이 들어간 불상은 도금하지 않아 표면이 거칠고 투박하다. 더 인간적이다. 대적광전 마룻바닥에 앉아 지그시 바라본다. 고동색 철불이 친근하게 느껴진다.보림사는 비자나무 숲 우거진 가지산 품에 안겨 있다. 동쪽에서 바라보면 그 산줄기들이 연꽃 모양을 닮았다.● 매생이, 김, 굴2년 전 장흥을 처음 찾았을 때도, 이번에도 첫날 점심은 굴구이였다. 드럼통을 30cm 높이로 잘라 철판을 얹고 그 위에 굴을 좍 깐다. 익으면 껍질이 살짝 벌어진다. 목장갑 낀 손으로 잡고 열어젖히면 매끄러운 굴 살이 반짝인다.굴구이 집에서는 매생이국이나 매생이떡국을 판다. 매생이는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김 양식의 천덕꾸러기였다. 김 홀씨가 붙어 자라는 김발에 매생이가 자꾸 붙었다. 그것을 일일이 손으로 떼어내야 하니 귀찮고 고된 일이었다. 김과 매생이는 서로 모순이었다. 그러나 매생이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매생이를 기르게 됐다.남해안 어느 지역이 김 양식을 하지 않겠느냐만, 장흥에서는 좀 다른 김도 난다. 김 양식을 할 때는 바닷속 이물질이 들러붙지 않도록 산(酸)을 뿌린다고 한다. 그런데 산을 뿌리는 대신 썰물 때마다 김발을 뒤집으며 태양으로 이물질을 없앤다. 무산(無酸)김이다.해산물 양식은 종류에 따라 기르는 수심이 다르다. 매생이, 김, 미역, 굴 순으로 깊어진다. 같은 바닷물이라도 깊이에 따라 길러내는 산물이 다르다. 그런 차이가 양식이라는 틀로 한데 묶여 밥상에 오른다.다른 것을 하나로 통하게 한 음식이라면 ‘장흥 삼합’도 빠질 수 없다. 장흥 한우와 키조개 관자 그리고 표고버섯을 구워 고기, 관자, 버섯 한 점씩 쌓아 한입에 넣는다. 관자와 버섯을 육수에 적셔 조리하는 집도 있다. 잘 어울릴까 싶은데 묘하게 조화롭다.● 섬을 핥는 바다 소리지방 소도시에 이른바 힐링 치유 또는 웰니스 증진을 표방하는 시설이 늘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 지원하는 사업이다. 스트레스 검사를 비롯한 건강검진, 명상이나 요가, 한방 족욕, 마사지 테라피 등을 받을 수 있다. 산이나 바다 기운도 받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는다. 장흥에도 힐링테라피센터와 원광대 장흥통합의료병원 마음건강치유센터가 있다.솔직히 난데없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사람이 올까 했는데 군민들이 꽤 온다고 한다. 관광객 같은 외지인에게도 열려 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는 만나서 소통할 공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사실 억불산 전날 일출로 유명한 소등섬을 찾았다. 일몰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물때를 못 맞췄다. 썰물이어서 소등섬은 갯벌에 ‘박혀’ 있었다. 장흥이 낳은 원로 작가 한승원은 고향 바닷가를 작품 배경으로 많이 삼았다. 한 단편에서 그는 ‘파도가 돌담을 핥을 때는 사르륵 소리가 난다’고 했다. 바닷물이 소등섬을 핥고 지날 때는 어떤 소리가 날까. 일출도 일출이지만 다음에는 그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으로 선을 그으면 장흥 남쪽 해안 높이 46m 전망대 ‘126타워’에 닿는다. 광화문, 러시아 하얼빈을 잇는 동경 126도 선상에 있다는 의미에 더해 한(1)민족, 두(2) 나라를 소통 화해 교류 협력 평화 기회라는 6대 가치로 통일하자는 뜻이란다. ‘굳이 여기에?’라고 생각했다가, 이승우 단편 ‘정남진행’ 속 문장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남진. 한반도가 큰 나무라면 수분을 공급받기 위해 뿌리 내리고 있는 물이 그곳 바다인 셈이야.’글·사진 장흥=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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