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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5월 1일부터 10월 27일까지 서울숲을 중심으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 총 71만 ㎡ 터에서 열린다. ‘Seoul, Green Culture 천만의 정원’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박람회는 역대 최대 규모이자 최장 기간 행사다. 관객 수도 역대 최다인 1500만 명을 목표로 한다. 이번 박람회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 확장이다. 서울숲을 메인 공간으로 삼는 동시에 트렌드 집결지로 떠오른 성수동 일대로 범위를 넓혔다. 한 장소에 국한된 기존 박람회와는 차별되는 시도다. 서울숲에는 K컬처 콘텐츠를 접목한 예술 정원을 조성하고,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성수역∼건대입구역을 잇는 선형 정원을 통해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고가철도 아래와 어두운 가로 경관을 개선해 도시 문화와 정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는 방침이다.서울시는 이번 박람회에 정원 150곳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정원은 50곳을 목표로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까지 SM엔터테인먼트, 무신사, 클리오, 영풍문고를 비롯한 K컬처를 대표하는 기업이 참여를 확정했다. 박람회 기간 서울숲에서는 서울숲 재즈페스티벌과 K뷰티 체험 행사뿐 아니라 성수동 기반 로컬 문화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열릴 예정이다. 서울 한복판 대표적 시민 공원인 서울숲에서 대규모 정원박람회가 열리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원이 대거 들어서면 일상적인 공원 이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박람회를 서울숲 노후 시설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되, 행사 이후에도 정원이 지속적으로 관리, 운영될 수 있는 돌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올해 정원박람회는 도시 문화와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며 “서울 문화자원이 글로벌 도시경쟁력으로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새해를 맞아 ‘아모레퍼시픽의 조경’이라는 책을 펴냈다. 아모레퍼시픽 서울 용산 신사옥 개관을 기념해 2018년 ‘아모레퍼시픽의 건축’을 펴낸 지 6년 만이다. 서울 본사 사옥뿐 아니라 종로구 북촌 매장, 경기 용인 연구단지와 오산 원료식물원, 제주 차밭과 복합문화공간 등 아모레퍼시픽이 구축해 온 공간의 조경 문화를 집대성했다.아모레퍼시픽은 이 책의 집필을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에게 의뢰했다. 배 교수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이 회사 조경을 맡아온 국내 대표 조경가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 등을 인터뷰하고 비평적 시선을 투영해 공간들을 소개했다.● “위로와 희망의 공간을 만드는 게 조경”서 회장은 “좋은 공간이 도시와 사람을 바꾼다”는 신념을 여러 조경 프로젝트를 통해 실천해 왔다. 첫 시도는 1992년 지은 용인 기술연구원 캠퍼스를 재편하는 일이었다. 2010년대 초반, 3년여 걸린 이 작업을 통해 그는 “공간의 완성은 조경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후 창덕궁 후원과 전남 완도군 보길도 세연정 등을 다니며 조경에 대한 관점을 형성했다.그는 말했다. “나는 의도적인 형태가 중심이 되는 공간보다는 나무가 많고 사람들이 앉아서 휴식하며 기쁨을 찾고 아이와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고, 상처 입은 마음이 위로를 받고, 그러다 또 희망이 생기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게 조경이라고 생각한다.”그는 “아무리 다녀 봐도 마음에 드는 정원이 없었는데 2000년대 초반 정영선 선생 작품에서만큼은 조경다운 조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가 비전과 콘셉트 같은 큰 틀을 제시하면 정 조경가가 땅의 원형을 회복하면서 공간을 만들어 왔다.서 회장은 말했다. “누군가 우리나라 정원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네 가지 조건으로 답하고 싶다. 한국에서 잘 자라는 식물, 한국인 심성에 맞는 공간과 형태, 손이 너무 많이 가지 않는 재료와 요소, 보는 사람이 편안한 경관이다.”● 더불어 사는 조경의 사회적 기능책에는 아모레퍼시픽 조경에 대한 다양한 일화가 소개돼 있다. 서 회장 부친인 서성환 선대회장(1924~2003)은 돌밭을 개간해 제주를 대표하는 서광다원을 조성했다. 그가 생의 마지막 무렵, 파인애플 경작 역사를 전하는 미국 하와이 돌(Dole)사 파인애플 박물관을 방문해 구상한 녹차 박물관이 2001년 서광다원 안에 연 ‘오설록 티뮤지엄’이다. 정 조경가는 이곳에 제주 곶자왈 풍경을 구현했다.조경의 사회적 기능도 엿볼 수 있다. 용산 본사 사옥은 공개공지(公開空地)와 가로 공원이 만나는 곳에 백합나무 100여 그루를 심어 보행자와 지역민이 편안히 쉴 수 있는 녹지를 제공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모레뷰티파크가 있는 오산에서 오산천 생태환경 개선 작업을 펼쳐 왔다. 책에는 이 회사 각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도 상세하게 소개했다.한국조경학회 회장인 배정한 교수는 “‘아모레퍼시픽의 조경’은 기업이 조경이라는 문화적 실천을 해온 기록”이라며 “조경이 지향해야 할 미학적 태도와 사회적 책임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겨울에는 경북 동해안 ‘바다 정원’에 와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무렵 만난 경상북도 분들이 바다 정원 얘기를 꺼냈다. 지난해 4월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일원의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에서부터 포항 호미곶까지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1박 2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바다에서 생각하는 지질의 시간 금강산도 식후경. 경주역에서 차를 타고 경주 건천읍 ‘모량칼국수’에 가서 칼국수를 먹었다. 푹 우려낸 구수한 육수가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직접 삶은 우리 콩으로 새벽에 만든다는 촌두부도 담백했다. 한 시간쯤 달리자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국사와 보문단지, 황리단길로 유명한 천년고도 경주에는 바다도 있다. 전망대 바로 앞에 꽃잎처럼 펼쳐진 부채꼴 주상절리가 있었다.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섭씨 1000도 이상의 용암이 식으며 형성된 주상절리는 식는 속도와 방향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다. 천연기념물 제536호인 양남 주상절리군은 부채꼴뿐 아니라 위로 솟은 형과 기울어진 형, 누운 형 등 신비로운 형태가 여럿 있다. 2700만 년 전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지질의 시간 앞에서 숙연해졌다. 전망대 앞 파도소리길(총연장 1.7km)에는 겨울바람에도 보라색 해국이 맑고 꿋꿋하게 피었다. 푸른 바다에서는 짭쪼름한 냄새가 났다. 이 일대에서는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 서식지가 되는 육지 쪽 수중 바위를 ‘짬’이라고 부른다. 짬을 바라보며 멍을 때려 보았다. 뺨 위로 스치는 겨울 바다의 기운이 부드러웠다. 북쪽으로 15분을 달렸더니 이견대(利見臺)가 나왔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바다에 묻히길 원했던 신라 문무왕의 염원을 담은 문무왕릉(대왕암)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다. 이견대 바로 뒤에는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지어져 올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신라의 해양문화유산을 전시, 교육할 이곳이 바다 여행의 새로운 역사를 열면 좋겠다.● 등대와 항구를 따라서 10분을 더 달리니 감포였다. 감포는 경북의 일상을 품는 항구다. 지난해 경주에 왔을 때 감포 ‘남해식당’에서 가자미구이와 조림을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엔 1961년부터 4대에 걸쳐 50년 넘게 국내산 생멸치로 멸치액젓을 생산하는 ‘김명수 젓갈’에 들렀다. ‘갈치 뻑뻑이 액젓’으로 유명한 김명수 젓갈의 김헌목 대표는 지역사회 기부에 앞장서 지난해 경북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감포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다.근처 해송 군락지에는 송대말등대가 있었다.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송대말·松臺末)이라는 뜻도 예쁜데,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형상화한 한옥 형태는 더 예뻤다. 2022년 새롭게 정비된 이 등대는 경주 바다와 감포항, 등대 이야기를 미디어아트 기반의 체험 전시로 선보이고 있었다. 바다 쪽으로 몸을 낮춘 듯 단아하게 선 등대를 보면서 생각했다. 등대는 바다뿐 아니라 육지인의 마음도 비추는 것 같다고. 다시 30분쯤 북상하니 포항 구룡포였다. 구룡포 해수욕장 갈매기들이 화사한 겨울 햇살을 받아 평화로워 보였다. 저기 아장아장 걷는 어린 갈매기는 엄마로부터 은빛 날개짓을 배우는 걸까. 갈매기는 이별 노래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은 의리가 넘치는 새라고 한다. 동료가 다치면 달아나지 않고 곁을 지켜 죽음을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을 보여준다. 백사장 모래가 하도 곱기에 구부려 앉아 손가락으로 커다란 하트를 그려 보았다. 이내 파도가 와서 지울지라도 구룡포에 마음을 남겨 두고 싶었다. 저녁에는 과메기 문화관과 용왕당, 일본인 가옥 거리를 둘러보고 커다란 홍게를 먹었다. 다음 날 동트기 전 숙소를 나서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오징어 말리는 모습을 보았다. 해풍에 말린 오징어는 반건조 특유의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이 겨울철 별미로 꼽힌다. ● 호미곶이 준 새해 희망한반도 동쪽 땅끝 호미곶에서 해돋이를 기다렸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조용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연한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 호미곶의 상징인 ‘상생의 손’ 조형물 위에 갈매기가 내려앉았다. 그곳이 삶의 터전인 듯 서두르는 기색 없는 몸짓이었다. 붉은 해가 수평선 위로 아기 얼굴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고 누군가는 상생의 손이 해를 구슬처럼 잡은 것처럼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었다. 동행자가 말했다. “두 팔 벌려 새해의 기운을 받아 봅시다.” 두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니 정말로 해의 우렁찬 기운이 온몸을 적시는 기분이었다.호미곶에 해녀들이 나타났다. 고무 작업복을 입고 테왁(물질할 때 부력을 얻는 도구)을 든 해녀들이 일을 나서는 길이었다. 경북 어촌계장 147명 중 유일한 해녀 출신인 성정희 경북해녀협회장이 함께 나와 물었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에 같이 가 보시겠어요?” 60, 70대 해녀들이 오리발을 끼고 바다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26년 전 제주 해녀를 취재했던 때를 떠올렸다. 해녀가 향후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던 때였다. 지금은 아니다. 2016년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해녀들의 자긍심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말똥성게처럼 값비싼 해산물을 채취해 손주들의 해외 어학연수비를 대주는걸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경제적 주체로서 당당하게 살아간다. 해녀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근심, 걱정을 내려놓는 ‘바다 정원’이다. 어촌 마을에는 소라 껍데기로 꾸민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호미곶면 구만리에는 작은 문학관이 있었다. 수필문학가 고 한흑구(1909∼1979)의 문학과 삶을 기리는 ‘흑구 문학관’이다. 그가 1955년 동아일보에 처음 발표한 수필 ‘보리’는 1960∼1970년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사랑받았다. 나무, 산, 새 등을 맑게 쓴 그의 글에 이끌려 서울로 돌아와 범우문고 수필집 ‘보리’를 사서 가방에 넣고 다닌다. 이 책에는 수필 ‘동해산문(東海散文)’도 있다. ‘나는 늘 바다를 바라본다. 무한한 창공과 맞대어 있는 저 수평선 너머로 언제나 나의 사색은 물결처럼 쉬임없이 흘러 넘쳐간다. 광막한 바다여! 너의 크고, 넓고, 또한 황량한 것이 나는 좋다.’ 경주역으로 가는 길에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1코스를 둘러봤다. 해병대 상륙 훈련장으로 사용되는 백사장을 걷다가 시인 이육사 조형물을 만났다. 시인은 휴양차 포항에 머물던 1936년 청림동 청포도 농장을 바라보며 ‘청포도’ 시를 구상했다고 한다. 인근 ‘촌놈물회’의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이 여행을 청량하게 마무리해 줬다. 지질의 거대한 시간 위에 삶과 문학이 겹겹이 포개졌다. 감포에서 구룡포를 지나 호미곶에 이르는 바다는 크고 넓고 따뜻했다. 살다가 힘들면 상생의 손 끝에 걸리던 뜨거운 해의 기운과 미역 바위의 평화를 떠올리겠다.글·사진 경주·포항=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겨울에는 경북 동해안 ‘바다 정원’에 와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무렵 만난 경상북도 분들이 바다 정원 얘기를 꺼냈다. 지난해 4월 경주 포항 영덕 울진 일원의 ‘경북 동해안 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에서부터 포항 호미곶까지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1박 2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바다에서 생각하는 지질의 시간금강산도 식후경. 경주역에서 차를 타고 경주 건천읍 ‘모량칼국수’에 가서 칼국수를 먹었다. 푹 우려낸 구수한 육수가 속을 따뜻하게 데웠다. 직접 삶은 우리 콩으로 새벽에 만든다는 촌두부도 담백했다.한 시간쯤 달리자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국사와 보문단지, 황리단길로 유명한 천년고도 경주에는 바다도 있다. 전망대 바로 앞에 꽃잎처럼 펼쳐진 부채꼴 주상절리가 있었다.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섭씨 1000도 이상의 용암이 식으며 형성된 주상절리는 식는 속도와 방향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달라진다. 천연기념물 제536호인 양남 주상절리군은 부채꼴뿐 아니라 위로 솟은 형과 기울어진 형, 누운 형 등 신비로운 형태가 여럿 있다. 2700만 년 전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지질의 시간 앞에서 숙연해졌다.전망대 앞 파도소리길(총연장 1.7km)에는 겨울바람에도 보라색 해국이 맑고 꿋꿋하게 피었다. 푸른 바다에서는 짭쪼름한 냄새가 났다. 이 일대에서는 미역과 다시마 등 해조류 서식지가 되는 육지 쪽 수중 바위를 ‘짬’이라고 부른다. 짬을 바라보며 멍을 때려 보았다. 뺨 위로 스치는 겨울 바다의 기운이 부드러웠다.북쪽으로 15분을 달렸더니 이견대(利見臺)가 나왔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바다에 묻히길 원했던 신라 문무왕의 염원을 담은 문무왕릉(대왕암)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정자다. 이견대 바로 뒤에는 문무대왕 해양역사관이 지어져 올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신라의 해양문화유산을 전시, 교육할 이곳이 바다 여행의 새로운 역사를 열면 좋겠다.● 등대와 항구를 따라서10분을 더 달리니 감포였다. 감포는 경북의 일상을 품는 항구다. 지난해 경주에 왔을 때 감포 ‘남해식당’에서 가자미구이와 조림을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났다. 이번엔 1961년부터 4대에 걸쳐 50년 넘게 국내산 생멸치로 멸치액젓을 생산하는 ‘김명수 젓갈’에 들렀다. ‘갈치 뻑뻑이 앳젓’으로 유명한 김명수 젓갈의 김헌목 대표는 지역사회 기부에 앞장서 지난해 경북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감포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냄새다.근처 해송 군락지에는 송대말등대가 있었다. 소나무가 펼쳐진 끝자락(송대말·松臺末)이라는 뜻도 예쁜데,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형상화한 한옥 형태는 더 예뻤다. 2022년 새롭게 정비된 이 등대는 경주 바다와 감포항, 등대 이야기를 미디어아트 기반의 체험 전시로 선보이고 있었다. 바다 쪽으로 몸을 낮춘 듯 단아하게 선 등대를 보면서 생각했다. 등대는 바다뿐 아니라 육지인의 마음도 비추는 것 같다고.다시 30분쯤 북상하니 포항 구룡포였다. 구룡포 해수욕장 갈매기들이 화사한 겨울 햇살을 받아 평화로워 보였다. 저기 아장아장 걷는 어린 갈매기는 엄마로부터 은빛 날개짓을 배우는 걸까. 갈매기는 이별 노래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은 의리가 넘치는 새라고 한다. 동료가 다치면 달아나지 않고 곁을 지켜 죽음을 뛰어넘는 우정과 사랑을 보여준다. 백사장 모래가 하도 곱기에 구부려 앉아 손가락으로 커다란 하트를 그려 보았다. 이내 파도가 와서 지울지라도 구룡포에 마음을 남겨 두고 싶었다.저녁에는 과메기 문화관과 용왕당, 일본인 가옥 거리를 둘러보고 커다란 홍게를 먹었다. 다음 날 동트기 전 숙소를 나서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오징어 말리는 모습을 보았다. 해풍에 말린 오징어는 반건조 특유의 촉촉하고 쫄깃한 식감이 겨울철 별미로 꼽힌다.● 호미곶이 준 새해 희망한반도 동쪽 땅끝 호미곶에서 해돋이를 기다렸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조용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하늘이 연한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때 호미곶의 상징인 ‘상생의 손’ 조형물 위에 갈매기가 내려앉았다. 그곳이 삶의 터전인 듯 서두르는 기색 없는 몸짓이었다.붉은 해가 수평선 위로 아기 얼굴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고 누군가는 상생의 손이 해를 구슬처럼 잡은 것처럼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었다. 동행자가 말했다. “두 팔 벌려 새해의 기운을 받아 봅시다.” 두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니 정말로 해의 우렁찬 기운이 온몸을 적시는 기분이었다.호미곶에 해녀들이 나타났다. 고무 작업복을 입고 테왁(물질할 때 부력을 얻는 도구)을 든 해녀들이 일을 나서는 길이었다. 경북 어촌계장 147명 중 유일한 해녀 출신인 성정희 경북해녀협회장이 함께 나와 물었다. “해녀들이 물질하는 곳에 같이 가 보시겠어요?” 60, 70대 해녀들이 오리발을 끼고 바다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26년 전 제주 해녀를 취재했던 때를 떠올렸다. 해녀가 향후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던 때였다. 지금은 아니다. 2016년 제주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해녀들의 자긍심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말똥성게처럼 값비싼 해산물을 채취해 손주들의 해외 어학연수비를 대주는 걸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경제적 주체로서 당당하게 살아간다. 해녀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근심, 걱정을 내려놓는 ‘바다 정원’이다. 어촌 마을에는 소라 껍데기로 꾸민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호미곶면 구만리에는 작은 문학관이 있었다. 수필문학가 고 한흑구(1909~1979)의 문학과 삶을 기리는 ‘흑구 문학관’이다. 그가 1955년 동아일보에 처음 발표한 수필 ‘보리’는 1960~1970년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사랑받았다. 나무, 산, 새 등을 맑게 쓴 그의 글에 이끌려 서울로 돌아와 범우문고 수필집 ‘보리’를 사서 가방에 넣고 다닌다. 이 책에는 수필 ‘동해산문(東海散文)’도 있다. ‘나는 늘 바다를 바라본다. 무한한 창공과 맞대어 있는 저 수평선 너머로 언제나 나의 사색은 물결처럼 쉬임없이 흘러 넘쳐간다. 광막한 바다여! 너의 크고, 넓고, 또한 황량한 것이 나는 좋다.’경주역으로 가는 길에는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1코스를 둘러봤다. 해병대 상륙 훈련장으로 사용되는 백사장을 걷다가 시인 이육사 조형물을 만났다. 시인은 휴양차 포항에 머물던 1936년 청림동 청포도 농장을 바라보며 ‘청포도’ 시를 구상했다고 한다. 인근 ‘촌놈물회’의 시원한 물회 한 그릇이 여행을 청량하게 마무리해 줬다.지질의 거대한 시간 위에 삶과 문학이 겹겹이 포개졌다. 감포에서 구룡포를 지나 호미곶에 이르는 바다는 크고 넓고 따뜻했다. 살다가 힘들면 상생의 손 끝에 걸리던 뜨거운 해의 기운과 미역 바위의 평화를 떠올리겠다.경주·포항=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첫인상은 ‘초록초록’이었다. 싱가포르 북부 만다이 야생보호구역의 심장부에 두 달 전 문을 연 만다이 레인포레스트 리조트 바이 반얀트리(이하 만다이 리조트) 얘기다. 입구 양옆을 수호신처럼 높다랗게 지키는 레인트리와 인디언비치트리를 통과해 로비에 들어서면 초록색 넝굴 식물이 곳곳에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다. 열대 과일을 띄운 웰컴 드링크를 마시니 온몸이 초록으로 물드는 느낌이다.반얀트리 브랜드로 유명한 반얀그룹이 1994년 창업 이래 세계에서 100번째, 싱가포르에는 처음 지은 호텔이 바로 만다이 리조트다. 싱가포르 출신인 창업주 부부는 자국에 어떤 호텔을 지을지 부지 선정부터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싱가포르의 야생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만다이에 그들의 비전을 담았다.싱가포르 정부와 국부펀드 테마섹이 지원하는 만다이에는 버드 파라다이스, 싱가포르 동물원, 나이트 사파리, 리버 원더스, 레인포레스트 와일드 아시아까지 5개의 자연 테마파크가 있다. 리조트에서 걸어서 10분 이내로 모두 도달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주토피아’다. 지난해 개장한 자연 산책로 ‘만다이 보드워크’도 이어진다. 조명을 낮춘 밤의 리조트에서는 연못가 개구리들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리조트는 24채의 단독 트리하우스와 338개 객실을 갖춘 5층 규모의 일반 숙박동으로 구성돼 있다. 1박에 약 1000달러인 트리하우스와 1박에 약 300달러인 숙박동을 함께 지은 건 대중과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씨앗 껍질을 모티브로 지어진 트리하우스는 전용 테라스가 있어 열대우림, 정원, 저수지의 다양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객실 내부에는 토착 동물들의 석판화가 걸려 있어 싱가포르 생물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숙박동은 ‘바이오필릭’(biophilic·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철학에 따라 열대우림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싱가포르 ‘와우 건축사무소(WOW Architects)’는 벽 없이 기둥만으로 건물을 땅에서 띄워 야생동물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했고 빗물을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적용했다. 벽면에는 야생의 나무 흔적을 드러냈고 로비에는 재활용 목재로 제작된 가구들을 두었다. 각 객실에는 에너지 사용량을 표시하는 디스플레이가 설치됐다. 정수기와 휴대용 물통도 비치돼 있어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할 일이 없다.리조트 옥상에는 정원이 있어 각종 채소가 재배된다. 저수지를 바라보는 레스토랑 ‘포리지’는 여기에서 수확한 식재료로 파인다이닝 요리를 내놓는다. ‘자연이 이끄는(Guided by nature)’이라는 이름의 코스는 메뉴마다 와인이 페어링됐다. 가다랑어와 피스타치오 카나페에는 프랑스 프로방스 로제 와인, 된장에 재운 은대구 요리에는 뉴질랜드 말보로 피노누아, 배와 블랙베리 디저트에는 포르투갈 그라함스 화이트 포트 블렌드 넘버5가 나왔다.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동안 각각의 음식 맛이 꽃잎처럼 섬세하게 피어났다.리조트 안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로컬 감성이 어우러진 ‘반얀트리 스파’가 있다. 세 개의 트리트먼트룸 외관은 천산갑의 보호용 케라틴 비늘에서 영감을 받았다. 비늘이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듯 이용객에게도 안락함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스파에서 열린 30분짜리 ‘입욕제 만들기’ 체험에 참석해봤다. 천연 아로마오일과 소금, 커피 가루 등을 섞어 나만의 취향대로 입욕제를 만드는 시간에서 정신적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만다이 리조트에서 ‘럭셔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았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특별한 가치이며 진귀한 경험이라는 사실을 반얀그룹의 행보가 증명하고 있다. 이제부터가 진짜 도전일 것이다. 럭셔리는 자연과 어떻게 공생할 것인가.싱가포르=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그랜드 하얏트 서울 <윈터 온 아이스>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매년 겨울 서울의 대표적인 계절 명소다. 탁 트인 남산의 풍경과 반짝이는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며 펼쳐지는 아이스링크는 가족과 연인, 친구 모두가 잊지 못할 겨울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올해는 헤이딜러와의 협업을 통해 스케이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존까지 마련해 더욱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객실 숙박과 아이스링크 이용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윈터 온 아이스(Winter on Ice)’ 패키지는 조식과 텀블러, 프랑스 스파 브랜드 ‘피토메르’와 협업한 페이셜 마스크 등이 포함된다.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올 댓 웰니스>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사우나·골프·테니스 중 원하는 레저를 선택해 나만의 웰니스 하루를 완성할 수 있는 ‘올 댓 웰니스(All That Wellness)’ 패키지를 선보였다. 객실은 비스타 워커힐 서울의 딜럭스부터 주니어 스위트까지 선택 가능해 여유로운 투숙 환경을 제공한다. 사우나 옵션 선택 시 웰니스 사우나 이용이 포함되며 골프 옵션은 VIP 타석 60분 이용과 숏게임 콤플렉스 이용권 2매, 오렌지 베이글 할인 혜택이 제공된다. 테니스 옵션은 테네즈 파크 2시간 이용이 포함되며, 체크인 당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이용 가능하다. 반얀트리 서울 <윈터 글로우>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윈터 글로우(Winter Glow)’ 객실 패키지를 제안한다. 남산을 배경으로 한 오아시스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팅을 즐기며 굳어 있던 몸을 부드럽게 깨우고, 객실에서는 따뜻한 릴랙세이션풀에서 휴식을 취하며 뷰티 브랜드 ‘히디프’의 스킨케어 아이템으로 피부에 온기와 생기를 더할 수 있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키즈 포 올 시즌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가족 단위 고객을 위한 ‘키즈 포 올 시즌스(Kids For All Seasons)’ 패키지를 선보인다. 객실 1박과 객실 내 키즈 글램핑 텐트 셋업, 15만 원 상당의 호텔 크레딧, ‘키즈 포 올 시즌스’ 라운지 이용권, 최대 2명의 어린이를 위한 전문 강사 진행 키즈 클래스 이용권 등의 혜택을 포함한다. 키즈 클래스는 놀이 영어 수업 또는 영어 쿠킹 수업 중 선택할 수 있으며, 주말 및 공휴일 한정으로 운영된다.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 <모먼츠 투 스트림>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은 국내 OTT 채널 ‘티빙’과 함께 겨울 시즌을 위한 객실 패키지 ‘모먼츠 투 스트림(Moments to Stream)’을 선보인다. 티빙 스탠다드 1개월 이용권과 함께 시몬스 최상위 매트리스 컬렉션을 적용한 ‘임브레이스 유어 드림 베드’에서의 객실 휴식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객실에서 콘텐츠 감상과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롯데백화점이 다양한 아트 콘텐츠로 병오년(丙午年) 새해의 포문을 열었다.2026년 첫 비주얼 테마인 ‘2026 MOVE!’를 공개하고 롯데백화점을 신년의 힘찬 기운으로 물들인 것. 병오년을 상징하는 말이 지닌 역동적인 활력을 담아 새해 말처럼 힘차게 달려 나갈 롯데백화점의 진취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인 마우로 부비코가 참여한 ‘2026 MOVE!’ 는 말이 앞으로 나아가는 생동감을 기하학적인 형태와 강렬한 색감으로 연출했다. 롯데백화점은 새해부터 전 점포의 외벽, 출입문, 디스플레이 등에 이 비주얼을 적용해 방문 고객들에게 새해의 활기찬 시작을 전하고 있다.잠실점과 본점에서는 새해를 맞아 한국을 대표하는 ‘K-미술’ 전시를 열고, 다채로운 볼거리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할 계획이다.잠실점 에비뉴엘 6층 아트홀에서는 29일부터 3월 7일까지 ‘한국근대미술: 붓으로 빚어낸 서정’ 전시를 진행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대가로 꼽히는 이대원 화백을 비롯해 윤중식, 권옥연, 변시지 등 한국 대표 구상회화 작가들의 1970∼1990년대 작품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본점 에비뉴엘 1∼4층에서는 17일부터 3월 15일까지 새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민화, 복을 담다’ 전시를 선보인다. 현대 민화로 주목받고 있는 안성민, 문선영 작가가 참여해 전통 민화의 상징물을 동시대의 감각으로 표현한 ‘K-민화’를 공개한다. 관람 후 ‘롯데갤러리’ 소셜미디어 계정을 구독하는 고객에게는 두 작가의 대표작이 그려진 엽서를 무료 증정한다.박지영 롯데백화점 디자인부문장은 “2026년에는 활기찬 에너지와 도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연간 키워드를 ‘무브(MOVE)’로 선정했다”며 “병오년 적토마의 에너지를 담은 비주얼과 전시에 고객들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1928년 케임브리지대 강연을 바탕으로 페미니즘의 고전인 ‘자기만의 방’을 완성했다. 케임브리지는 재강연을 부탁했지만 그녀는 거절하는 편지를 썼다. 국왕이 수여한 명예훈장도 거절하며 스스로 주류 사회의 바깥에 머무는 걸 선택했다. 단아한 느낌의 사진과 단호한 친필 편지에서 거장의 내면의 비밀을 마주하는 느낌이다.부산에 간다면 꼭 들러봐야 할 전시가 있다. 이를 보기 위해 부산에 가도 좋겠다. 부산박물관이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과 함께 18일까지 여는 ‘거장의 비밀: 셰익스피어부터 500년의 문학과 예술’이다.전시는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78명의 초상화와 친필 원고, 희귀본 137점을 선보인다. 전 세계에 단 230여 권만 남아 있는 셰익스피어의 첫 희곡 전집 ‘퍼스트 폴리오’도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1623년 발간된 ‘퍼스트 폴리오’는 ‘맥베스’와 ‘십이야’ 등 셰익스피어의 대표작들을 수록하고 있다.누구나 알고 있는 거장부터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훗날 진가를 인정받은 작가들까지 두루 아우르며 그들의 문학적 영광 뒤에 숨은 인간적 이야기를 전한다. J.K. 롤링의 메모가 담긴 ‘해리포터’ 초판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초판본, 브론테 자매의 가명 시집 등 걸작들이 대거 전시됐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가는 수없이 쓰고 고친다. 거장들의 초상화와 자필 원고들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울컥하고 때로는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제인 오스틴이 필사한 악보들은 사랑스럽다.주한영국대사관 주도로 주한영국문화원·영국관광청이 협력한 이번 전시는 영국 정부의 글로벌 캠페인 ‘GREAT’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대사관 측은 이번 전시가 한국과 영국 간 문화 교류를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했다.전시는 다섯 개의 주제를 따라 진행된다. 1부 ‘작가를 찾아서’는 T.S. 엘리엇 등 거장들의 삶과 문학을 초상화와 함께 조명한다. 2부 ‘위대한 여정’은 작가들이 성공하기까지 시련과 영광을 보여준다. 3부 ‘억압과 검열, 그리고 저항’은 제임스 조이스 등 시대적 편견을 넘어선 이들의 저항을 소개한다. 4부 ‘명성’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와 J.K. 롤링의 해리포터 초판본 등이 공개된다. 5부 ‘글의 힘’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변화를 이끌어온 문학의 힘을 보여준다.개인적으로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초상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화가 피터 에드워즈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화가는 이시구로의 글쓰기 특성처럼 물감을 겹겹이 쌓아 풍부한 질감을 화폭에 담았다.부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버지니아 울프(1882~1941)는 1928년 케임브리지대 강연을 바탕으로 페미니즘의 고전인 ‘자기만의 방’을 완성했다. 케임브리지는 재강연을 부탁했지만 그녀는 거절하는 편지를 썼다. 국왕이 수여한 명예훈장도 거절하며 스스로 주류 사회의 바깥에 머무는 걸 선택했다. 단아한 느낌의 사진과 단호한 친필 편지에서 거장의 내면의 비밀을 마주하는 느낌이다.부산에 간다면 꼭 들러봐야 할 전시가 있다. 이를 보기 위해 부산에 가도 좋겠다. 부산박물관이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과 함께 18일까지 여는 ‘거장의 비밀: 셰익스피어부터 500년의 문학과 예술’이다.전시는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78명의 초상화와 친필 원고, 희귀본 137점을 선보인다. 전 세계에 단 230여 권만 남아 있는 셰익스피어의 첫 희곡 전집 ‘퍼스트 폴리오’도 국내 최초로 공개됐다. 1623년 발간된 ‘퍼스트 폴리오’는 ‘맥베스’와 ‘십이야’ 등 셰익스피어의 대표작들을 수록하고 있다.누구나 알고 있는 거장부터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했으나 훗날 진가를 인정받은 작가들까지 두루 아우르며 그들의 문학적 영광 뒤에 숨은 인간적 이야기를 전한다. J.K. 롤링의 메모가 담긴 ‘해리포터’ 초판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초판본, 브론테 자매의 가명 시집 등 걸작들이 대거 전시됐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작가는 수없이 쓰고 고친다. 거장들의 초상화와 자필 원고들을 보고 있으면 때로는 울컥하고 때로는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제인 오스틴이 필사한 악보들은 사랑스럽다. 주한영국대사관 주도로 주한영국문화원·영국관광청이 협력한 이번 전시는 영국 정부의 글로벌 캠페인 ‘GREAT’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대사관 측은 이번 전시가 한국과 영국 간 문화 교류를 더욱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했다.전시는 다섯 개의 주제를 따라 진행된다. 1부 ‘작가를 찾아서’는 T.S. 엘리엇 등 거장들의 삶과 문학을 초상화와 함께 조명한다. 2부 ‘위대한 여정’은 작가들이 성공하기까지 시련과 영광을 보여준다. 3부 ‘억압과 검열, 그리고 저항’은 제임스 조이스 등 시대적 편견을 넘어선 이들의 저항을 소개한다. 4부 ‘명성’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퍼스트 폴리오’와 J.K. 롤링의 해리포터 초판본 등이 공개된다. 5부 ‘글의 힘’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처럼 변화를 이끌어온 문학의 힘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초상화가 기억에 남는다.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이 화가 피터 에드워즈에게 의뢰한 작품이다. 화가는 이시구로의 글쓰기 특성처럼 물감을 겹겹이 쌓아 풍부한 질감을 화폭에 담았다.부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오전 7시 반, 싱가포르 북부 만다이 보드워크. 입장권이 필요 없는 이 자연 산책로에 들어서자 열대의 새소리가 가득 퍼졌다. 치르르, 끼리릭. 고요한 저수지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3.3km 길이의 나무 데크는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와 서식처를 방해하지 않도록 숲의 허리춤에 떠 있었다. 이 초록길의 주인은 야생동물이었다.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시민들을 만나도 피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들 삶의 터전을 스쳐 가는 무해한 방문객일 뿐이었다. 길에는 안내문이 있었다. ‘야생 원숭이는 싱가포르 주민입니다.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합시다.’ 운이 좋으면 멸종 위기인 노란머리직박구리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 싱가포르의 ‘자연 속 도시’1960년대부터 ‘정원 도시’를 표방한 싱가포르가 2021년 새롭게 내세운 국가 비전은 ‘자연 속 도시(City in Nature)’다. 단순히 공원과 정원을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생태계로 편입시키겠다는 선언이다. 사람들이 일하고 여행하는 삶의 방식 속에 자연을 엮어 넣겠다는 것이다. 만다이는 이 전략의 핵심 공간이다. 1973년 싱가포르동물원이 들어선 이래 2010년대 야생동물·자연유산 정비구역으로 재정비됐다. 서부 주롱 지역에 있던 세계 최대 규모 새 공원도 만다이로 옮겨와 2023년 ‘버드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올해엔 반얀그룹의 100번째 호텔 만다이 레인포레스트 리조트 바이 반얀트리(이하 만다이 리조트)도 들어섰다.만다이는 싱가포르 정부와 국부펀드 테마섹이 지원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싱가포르동물원, 나이트 사파리, 버드 파라다이스, 야생동물병원과 만다이 리조트까지 하나의 계획 아래 통합된 국가 전략형 생태관광 단지다. 지난달 말 만다이 리조트 그랜드 오프닝 축제에 싱가포르 대통령이 참석하고 축제 수익 전액을 ‘대통령 챌린지’라는 이름의 사회 공헌 캠페인에 기부한 것은 만다이 개발이 단순한 관광 사업이 아니라 도시 복지이자 공적 책무라는 점을 상징한다. 자연에 접근할 권리를 도시가 보장하고 자연을 시민 삶의 공공재로 다루겠다는 싱가포르식 선택이다.● 문턱을 낮춘 ‘포용적 럭셔리’만다이 리조트도 자연 속 도시 전략의 하나다. 리조트 건물 1층은 벽 없이 기둥만으로 땅에서 띄워 야생동물 이동을 방해하지 않고, 새들을 부르기 위해 싱가포르 토착 수종을 심어 숲을 복원했다. 입구 양옆에 들어선 레인트리와 인디언비치트리도 그 자리에 있던 오래된 나무를 베지 않고 보존한 것이다. 포탄나무 열매 모양 놀이터 정글짐, 씨앗 껍질을 형상화한 트리하우스, 빗줄기처럼 건물을 덮는 초록 덩굴식물 같은 디자인 요소도 인상적이었지만, 객실마다 정수기를 두어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을 없앤 게 더 눈길을 끌었다. 이 리조트는 지난달 그랜드 오프닝을 하면서 각국 기자들을 초청해 ‘창립자와의 대화 세션’과 ‘도시와 자연’ 패널 대담을 열었다. 싱가포르 출신의 반얀그룹 공동 창립자들은 왜 이제야 싱가포르에 처음으로 호텔을 열었을까. 1994년 반얀그룹을 공동 창립한 호권핑 회장과 아내 클레어 창 수석 부사장은 말했다. “마리나베이나 오차드로드처럼 그저 좋은 위치가 아니라, ‘진정한 상징적 장소’를 오래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만다이는 여행객들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야생을 접하며 환경과 공동체를 더 나은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여행 수익이 멸종위기종 복원과 사회공원으로 환원되는 재생적 관광(regenerative tourism)이지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숲 훼손을 우려하는 환경단체 목소리에 정부와 기업은 재생과 공존이라는 정교한 설계로 답해야 했다. 호 회장은 ‘포용’을 강조했다. “본래 반얀트리 스타일이라면 1박에 약 1000달러인 트리하우스만 지었겠지만, 1박에 약 300달러인 숙박동 객실도 함께 지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기준으로는 저렴하지 않지만, 싱가포르에서는 특별히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에르메스처럼 희소성을 내세우는 브랜드도 있지만 조금 비싸도 많은 이가 찾는 애플 같은 포용적 브랜드도 있죠.” 하룻밤 300달러는 여전히 재력을 갖춘 이들을 위한 포용이지만, 럭셔리의 배타성을 걷어내고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 건 사실이다. 숙박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찾아와 주변 자연과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조경은 이런 포용을 가능하게 했다. 조경가를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시켜 서식처를 복원하고, 기후 위기 회복력을 높이는 공공 기술로 조경을 활용했다.● 다른 종(種)이 함께하는 세상 싱가포르동물원에 들어서면 두 번 놀란다. 첫째, 철창이 있는 한국 동물원과 달리 도랑못을 비롯한 지형을 이용해 동물을 감금하지 않는다. 둘째, 사람이 있든 말든 개의치 않는 동물의 태도다.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인데도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긴 시내 금융가 한복판을 야생 닭이 활보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싱가포르의 일상이다. 청 웬 하우 만다이 와일드라이프 그룹 부대표(최고생명과학책임자)는 “사람들이 동물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함부로 먹이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싱가포르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동물의 야생성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행동을 철저히 계산한 결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동물원 야생동물 헬스케어 연구센터에서는 도시에서 부상당한 채 구조된 동물을 치료해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날개 깃털 일부가 불에 탄 독수리는 자연사한 다른 새들 깃털을 이식받아 새로운 날개로 10km 넘게 비행했다. 3D 프린터로 만든 보철기 등은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걸 돕는다. 유리창 너머 의료진 모습에서 위기에 처한 동물을 최전선에서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도시는 자연 속에 존재할 수 있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처럼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가. 일부 환경단체는 만다이 개발에서 서식지 교란, 조류 충돌 가능성, 야생동물 이동 경로 단절을 문제 삼아 왔다. 만다이는 이런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답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 깜깜한 밤 만다이 리조트 연못에서 들었던 개구리들의 우렁찬 합창 소리, 버드 파라다이스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수많은 새집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다이는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우리가 파괴한 생태계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묵직하게 질문한다. 우리는 정원박람회나 일회성 축제에 정성을 들이는 만큼 생태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는가. ‘보기 좋은 초록’을 늘리는 데 급급해 인간 개입이 낳을 부작용에는 눈 감고 있지는 않은가. 만다이는 ‘더 많이 만드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자연’을 보여준다.싱가포르=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오전 7시 반, 싱가포르 북부 만다이 보드워크. 입장권이 필요 없는 이 자연 산책로에 들어서자 열대의 새소리가 가득 퍼졌다. 치르르, 끼리릭. 고요한 저수지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3.3km 나무 데크는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와 서식처를 방해하지 않도록 숲의 허리춤에 떠 있었다. 이 초록길의 주인은 야생동물이었다.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시민들을 만나도 피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들 삶의 터전을 스쳐 가는 무해한 방문객일 뿐이었다. 길에는 안내문이 있었다. ‘야생 원숭이는 싱가포르 주민입니다. 서로 존중하며 평화롭게 공존합시다.’ 운이 좋으면 멸종 위기인 노란머리직박구리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의 ‘자연 속 도시’1960년대부터 ‘정원 도시’를 표방한 싱가포르가 2021년 새롭게 내세운 국가 비전은 ‘자연 속 도시(City in Nature)’다. 단순히 공원과 정원을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생태계로 편입시키겠다는 선언이다. 사람들이 일하고 여행하는 삶의 방식 속에 자연을 엮어 넣겠다는 것이다. 만다이는 이 전략의 핵심 공간이다. 1973년 싱가포르동물원이 들어선 이래 2010년대 야생동물·자연유산 정비구역으로 재정비됐다. 서부 주롱 지역에 있던 세계 최대 규모 새 공원도 만다이로 옮겨와 2023년 ‘버드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올해엔 반얀그룹의 100번째 호텔 만다이 레인포레스트 리조트 바이 반얀트리(이하 만다이 리조트)도 들어섰다.만다이는 싱가포르 정부와 국부펀드 테마섹이 지원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싱가포르동물원, 나이트 사파리, 버드 파라다이스, 야생동물병원과 만다이 리조트까지 하나의 계획 아래 통합된 국가 전략형 생태관광 단지다. 지난달 말 만다이 리조트 그랜드 오프닝 축제에 싱가포르 대통령이 참석하고 축제 수익 전액을 ‘대통령 챌린지’라는 이름의 사회 공헌 캠페인에 기부한 것은 만다이 개발이 단순한 관광 사업이 아니라 도시 복지이자 공적 책무라는 점을 상징한다. 자연에 접근할 권리를 도시가 보장하고 자연을 시민 삶의 공공재로 다루겠다는 싱가포르식 선택이다.● 문턱을 낮춘 ‘포용적 럭셔리’만다이 리조트도 자연 속 도시 전략의 하나다. 리조트 건물 1층은 벽 없이 기둥만으로 땅에서 띄워 야생동물 이동을 방해하지 않고, 새들을 부르기 위해 싱가포르 토착 수종을 심어 숲을 복원했다. 입구 양옆에 들어선 레인트리와 인디언비치트리도 그 자리에 있던 오래된 나무를 베지 않고 보존한 것이다. 포탄나무 열매 모양 놀이터 정글짐, 씨앗 껍질을 형상화한 트리하우스, 빗줄기처럼 건물을 덮는 초록 덩굴식물 같은 디자인 요소도 인상적이었지만, 객실마다 정수기를 두어 일회용 플라스틱 생수병을 없앤 게 더 눈길을 끌었다.이 리조트는 지난달 그랜드 오프닝을 하면서 각국 기자들을 초청해 ‘창립자와의 대화 세션’과 ‘도시와 자연’ 패널 대담을 열었다. 싱가포르 출신의 반얀그룹 공동 창립자들은 왜 이제야 싱가포르에 처음으로 호텔을 열었을까. 1994년 반얀그룹을 공동 창립한 호권핑 회장과 아내 클레어 창 수석 부사장은 말했다. “마리나베이나 오차드로드처럼 그저 좋은 위치가 아니라, ‘진정한 상징적 장소’를 오래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만다이는 여행객들이 도심 한가운데에서 야생을 접하며 환경과 공동체를 더 나은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는 장소입니다. 여행 수익이 멸종위기종 복원과 사회공원으로 환원되는 재생적 관광(regenerative tourism)이지요.”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숲 훼손을 우려하는 환경단체 목소리에 정부와 기업은 재생과 공존이라는 정교한 설계로 답해야 했다. 호 회장은 ‘포용’을 강조했다. “본래 반얀트리 스타일이라면 1박에 약 1000달러인 트리하우스만 지었겠지만, 1박에 약 300달러인 숙박동 객실도 함께 지었습니다. 동남아시아 기준으로는 저렴하지 않지만, 싱가포르에서는 특별히 비싼 가격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에르메스처럼 희소성을 내세우는 브랜드도 있지만 조금 비싸도 많은 이가 찾는 애플 같은 포용적 브랜드도 있죠.”하룻밤 300달러는 여전히 재력을 갖춘 이들을 위한 포용이지만, 럭셔리의 배타성을 걷어내고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 건 사실이다. 숙박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찾아와 주변 자연과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조경은 이런 포용을 가능하게 했다. 조경가를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시켜 서식처를 복원하고, 기후 위기 회복력을 높이는 공공 기술로 조경을 활용했다.● 다른 종(種)이 함께하는 세상싱가포르동물원에 들어서면 두 번 놀란다. 첫째, 철창이 있는 한국 동물원과 달리 도랑못을 비롯한 지형을 이용해 동물을 감금하지 않는다. 둘째, 사람이 있든 말든 개의치 않는 동물의 태도다.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인데도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긴 시내 금융가 한복판을 야생 닭이 활보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싱가포르의 일상이다. 청 웬 하우 만다이 와일드라이프 그룹 부대표(최고생명과학책임자)는 “사람들이 동물에게 해를 가하지 않고 함부로 먹이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싱가포르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동물의 야생성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행동을 철저히 계산한 결과이기도 하다.싱가포르동물원 야생동물 헬스케어 연구센터에서는 도시에서 부상당한 채 구조된 동물을 치료해 야생으로 돌려보낸다. 날개 깃털 일부가 불에 탄 독수리는 자연사한 다른 새들 깃털을 이식받아 새로운 날개로 10km 넘게 비행했다. 3D 프린터로 만든 보철기 등은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걸 돕는다. 유리창 너머 의료진 모습에서 위기에 처한 동물을 최전선에서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도시는 자연 속에 존재할 수 있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처럼 다양한 생물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가. 일부 환경단체는 만다이 개발에서 서식지 교란, 조류 충돌 가능성, 야생동물 이동 경로 단절을 문제 삼아 왔다. 만다이는 이런 비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답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라 있다.깜깜한 밤 만다이 리조트 연못에서 들었던 개구리들의 우렁찬 합창 소리, 버드 파라다이스에서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수많은 새집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다이는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우리가 파괴한 생태계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묵직하게 질문한다. 우리는 정원박람회나 일회성 축제에 정성을 들이는 만큼 생태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는가. ‘보기 좋은 초록’을 늘리는 데 급급해 인간 개입이 낳을 부작용에는 눈 감고 있지는 않은가. 만다이는 ‘더 많이 만드는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자연’을 보여준다.싱가포르=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삼성물산 패션부문 브랜드 빈폴키즈가 클래식한 브랜드 정체성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취향과 경량성을 고려한 2026년 신학기 책가방을 선보였다.빈폴키즈는 클래식한 멋을 담은 책가방 구성을 강화하면서 빈폴을 상징하는 ‘B’ 로고를 활용한 ‘모노그램 책가방’ 시리즈를 새롭게 내놓았다. 컬러풀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오로라 색상과 단정하고 깔끔한 디자인 등을 다채롭게 준비했다. 자전거 로고와 고유 패턴인 헤릿 체크로 포인트를 준 디자인도 제안했다.화려함을 좋아하는 취향에 맞춘 책가방도 출시했다. 트위드와 애나멜 소재, 리본과 구슬 장식, 오로라와 하트 퀼팅 패턴 등을 활용해 화사하고 반짝이는 디자인을 선보였다.이번에 출시한 ‘곰돌이 책가방’은 375g으로 매우 가벼운 게 특징이다. 곰돌이 캐릭터와 시그니처 체크를 적용해 귀여우면서도 클래식한 감성을 표현했다. 또 브랜드명과 자전거 로고로 심플하게 디자인한 ‘레터링 백팩’도 390g으로 제작해 가벼운 책가방에 대한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했다.정아롱 삼성물산 패션부문 빈폴키즈 팀장은 “빈폴의 브랜드 정체성과 아이들의 성별 취향, 경량성을 두루 고려해 내년 책가방 라인업을 다채롭게 준비했다”면서, “아이들을 위한 연말·새해 선물로 새학기의 설렘을 담은 책가방을 추천한다”고 말했다.빈폴키즈는 연말을 맞아 홀리데이 무드의 신상품도 공개해 호응을 얻고 있다. 레드, 그린이 섞인 체크 패턴이 적용된 셔츠, 트위드 원피스와 퍼 가방 세트, 반짝이는 샤 원피스 등을 선보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이 운영하는 에버랜드가 온 가족이 함께 겨울 판타지 속 야외 활동을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눈썰매장 ‘스노우 버스터’를 순차 가동했다.하얀 눈빛이 반짝이는 알파인 빌리지에 마련된 스노우 버스터에서는 눈썰매 체험 뿐 아니라 스노우 플레이 그라운드, 스노우 야드 등 더 넓고 다양해진 눈놀이터가 마련돼 신나는 겨울 추억을 선물한다.에버랜드는 눈썰매를 기다려온 고객들이 더 빨리 눈빛 레이스를 즐길 수 있도록 올해 스노우 버스터 오픈 일정을 예년보다 약 일주일 가량 앞당겼다.12일 스릴 넘치는 눈썰매장 레이싱 코스와 스노우 야드가 먼저 개장했고, 19일에는 스노우 플레이 그라운드가 추가 오픈할 예정이다. 200m 길이의 눈썰매장 익스프레스 코스는 기상 상황에 따라 다음달 초 가동을 계획하고 있어 기대감을 더한다.가장 먼저 가동되는 레이싱 코스에서는 높은 경사에서 설원을 빠르게 질주하며 눈썰매 경주를 펼칠 수 있다. 최대 4명까지 거대한 원형튜브로 함께 타고 내려오는 익스프레스 코스에서는 가족, 친구, 연인이 서로 마주 보며 비명과 웃음을 터뜨리는 이색적인 눈썰매 체험을 즐길 수 있다.온 가족이 함께 눈놀이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눈썰매장 앞에 마련된 체험존에서 자유롭게 스노우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모았던 스노우 트랙을 확장해 새롭게 조성한 스노우 플레이 그라운드에는 바디 슬라이드 존이 운영되는 등 체험 콘텐츠가 풍성하다. 더욱 넓어진 공간에서 레인을 따라 나무 썰매를 타볼 수 있고 크리스마스 트리와 눈사람 조형물, 가랜드 등도 함께 연출돼 겨울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눈 세상에서 신나게 뛰어논 방문객들을 위한 ‘핫푸드 스트리트’와 ‘베이글 위시 라운지’도 알파인 빌리지 입구에 마련된다. 핫푸드 스트리트에서는 군고구마와 붕어빵같은 따끈따끈한 겨울 간식부터 유부꼬치어묵우동, 매콤가래떡볶이 등 든든한 식사 메뉴들을 맛볼 수 있다. 베이글 위시 라운지에서는 편안하게 쉬며 귀여운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스노우 버스터는 에버랜드 이용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모든 코스에 자동 출발대, 튜브 이송대(리프트), 눈 턱으로 만든 전용 레인, 충격방지용 에어바운스 등이 마련돼 있어 편리하고 안전한 눈썰매 체험이 가능하다.한편 오즈의 마법사 테마 겨울축제가 한창인 에버랜드에서는 다양한 겨울 시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알파인 빌리지에 마련된 ‘마녀의 서프라이즈 박스’에서는 선물상자 안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360도 회전 카메라를 이용해 이색적인 영상을 찍을 수 있다. ‘스노우 오즈 포토월’에서는 레니와 친구들 캐릭터를 배경으로 특별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포시즌스 가든은 크리스마스 컨셉의 에메랄드 시티로 변신해 도로시, 양철나무꾼, 허수아비 등 오즈의 마법사 캐릭터별 스토리를 살린 테마존을 선보이며 연말까지 매일 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싱어롱 불꽃쇼’도 펼쳐진다. 퍼레이드, 댄스, 포토타임 등 크리스마스 콘텐츠를 통해 산타, 루돌프를 만나며 성탄절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겨울 시즌 에버랜드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럭셔리 웰니스 리조트 ‘무와 니세코’(MUWA NISEKO)가 국제적 어워드에서 연이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미쉐린 가이드의 일본 호텔 셀렉션에서 미쉐린 원키(Michelin One Key)를 2년 연속 획득한 데 이어, 글로벌 럭셔리 매거진 롭 리포트 홍콩(Robb Report Hong Kong)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2026’의 ‘알파인 어드벤처’ 부문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 수상으로 무와 니세코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스키 리조트로서의 위상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무와 니세코는 세계적인 스키 여행지로 알려진 니세코 그랜드 히라후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홋카이도 산악 마을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 디자인은 시선을 잡아 끌면서도 주변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룬다. 특히 스키 시즌에는 객실 테라스 및 리조트 전용 입구를 통해 세계적 수준의 ‘파우더 스노우’에 곧바로 발을 디딜 수 있는 독보적 경험을 자랑한다.무와 니세코가 2년 연속 선정된 ‘미쉐린 키(Michelin Key)’는 미쉐린 가이드가 새롭게 도입한 호텔 평가 기준이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미쉐린 스타처럼, 뛰어난 호텔과 매력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숙박 시설을 평가해 1개에서 3개의 열쇠를 부여한다. 이 중 미쉐린 원키는 ‘특별한 체류를 제공하는 숙박시설’에게 부여된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첫 미쉐린 키 호텔을 발표했으며, 무와 니세코는 2023년 12월 개관 이후 불과 6개월 만에 원 키 호텔로 선정되었다. 올해에는 일본 전역 128개 숙박시설이 미쉐린 키를 수상했으며 무와 니세코는 2년 연속 원 키를 획득했다.글로벌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롭 리포트 홍콩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2026: 트레블, 익스피리언스 & 호스피탈리티 에디션’은 ‘알파인 어드벤처’ 부문에 ‘니세코의 시크한 겨울 리트리트(Chic Winter Retreat in Niseko)’를 선정했다. 같은 부문에는 아만 로사 알피나(Aman Rosa Alpina), 식스센스 크랑 몬타나(Six Senses Crans-Montana)등 세계적 스키 리조트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무와 니세코는 천혜의 자연을 배경으로 웰니스 여정을 제공한다. 특히 ‘홋카이도의 후지산’이라 불리우는 요테이산의 숨막히는 경치를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야외 인피니티 온천 경험은 무와 니세코를 대표하는 웰니스 체험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개인 맞춤형 트리트먼트를 제공하는 무와 스파를 비롯해 7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를 획득했던 스타 셰프 ‘타쿠보’가 이끄는 올 데이 이탈리안 다이닝 ‘히토 바이 타쿠보’, 113년 전통과 10년 연속 미쉐린 원스타에 빛나는 스키야키 레스토랑 ‘스키야키 히야마’ 등을 통해 고요한 휴식부터 활기찬 연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는 웰니스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무와 니세코 관계자는 “잇따른 국제적 어워드 수상은 무와 니세코가 글로벌 수준의 호스피탈리티를 제공하는 리조트임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무와 브랜드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LG생활건강이 최근 ‘올리브영’에서 주최하는 어워즈에서 △비욘드 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 △VDL 커버 스테인 퍼펙팅 파운데이션 △VDL 커버 스테인 하이커버 쿠션 등 3개 제품이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올리브영 어워즈는 1년간 고객들의 구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부문별 우수 제품을 선정하는 프로모션이다. 실제 소비자의 선택 결과를 반영한 만큼 업계 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지표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클린뷰티 브랜드 비욘드의 ‘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는 핸드케어 부문 1위를 차지했고,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VDL의 ‘커버 스테인 퍼펙팅 파운데이션’과 ‘커버 스테인 하이커버 쿠션’은 각각 베이스 부문 ‘MD’s Pick(엠디스 픽)’과 트렌드 부문 ‘Rising Star(라이징 스타)’로 선정됐다.비욘드의 ‘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는 2023년 올리브영 어워즈 핸드케어 부문 3위에서 올해 1위로 올라서며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2005년 4월 출시 이후 약 655만 개가 팔리는(1분당 약 9개 판매) 명실상부한 스테디셀러다.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는 포근한 살냄새로 잘 알려진 은은하고 섬세한 파우더리 머스크향과 우수한 잔향 지속력으로 전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더불어 촉촉하면서도 끈적임 없는 산뜻한 사용감으로 일상에서 폭넓게 사용되며 핸드케어 카테고리의 리더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지난달에는 뷰티플랫폼 ‘글로우픽’과 ‘앳코스메’가 공동 진행한 ‘2025 글로우픽 어워드 겸 앳코스메 코리아 어워드’에서 핸드크림 부문 2위에 올라 높은 소비자 만족도를 입증했다.VDL은 ‘베이스 명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커버 스테인 퍼펙팅 파운데이션’과 ‘커버 스테인 하이커버 쿠션’으로 올리브영 어워즈 2관왕을 달성했다. 두 제품 모두 얇고 가벼운 사용감과 우수한 지속력으로 ‘사용이 편리하면서도 완벽한 베이스’라는 평가를 받으며 MZ세대 사이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특히 VDL의 대표 제품인 커버 스테인 퍼펙팅 파운데이션은 기초 화장품보다 구매 주기가 긴 색조 화장품임에도 불구하고 2023년 리뉴얼 이후 10∼2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3년도 채 안돼 110만 병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VDL의 올리브영 입점 매장 수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485개점에서 1140개점으로 2배 이상 늘었으며, 올해 1∼10월 VDL의 올리브영 매출액 또한 전년 동기 대비 약 135% 늘었다.LG생활건강은 이번 수상을 기념해 한정 수량으로 올리브영 단독 기획세트를 선보였다. 비욘드는 ‘클래식 핸드크림 딥 모이스처 기획’을 통해 기존 100ml 본품에 30ml 용량을 추가 증정하고, VDL은 소프트한 감성의 패션 브랜드 ‘소프트서울’과 협업한 한정판 굿즈를 마련했다. 기획세트는 풍성한 구성으로 연말연시 선물로도 제격이다.LG생활건강 관계자는 “앞으로도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삼성카드가 새벽배송 전문 쇼핑몰 ‘오아시스마켓’과 함께 ‘오아시스 삼성카드’를 선보였다.오아시스마켓은 친환경·유기농 프리미엄 상품을 365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온·오프라인 전문 쇼핑몰로, 이 카드로 오아시스마켓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3만 원 이상 결제시 5000원 할인을 전월 실적에 따라 월 최대 4회 제공한다. 할인 혜택을 정액으로 제공함으로써 고객이 할인 혜택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커피전문점·델리 이용금액의 50%를 월 5000원까지 할인해주고, 의료 업종 이용시 10% 할인 혜택을 월 최대 1만 원까지, 올리브영·다이소 이용시에는 10% 할인 혜택을 월 최대 1만 원까지 제공한다. 해외 가맹점 이용시에는 전월 이용 실적과 할인 한도 없이 1.5%를 할인해준다.삼성카드와 오아시스는 카드 출시를 기념해 다양한 프로모션을 연말까지 진행한다. 오아시스마켓에서 오아시스 삼성카드로 4만 원 이상 결제시 3만 원을 캐시백 해준다. 31일까지 오아시스마켓에서 누적 30만 원 이상 이용시에는 추가로 3만 원을 캐시백 해준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오아시스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오아시스마켓 혜택은 물론 고객들이 선호하는 일상 영역에서도 다양한 할인 혜택을 담았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카드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사)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유족회(회장 윤인구)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14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글래드 호텔 블룸홀에서 ‘시대의 얼굴들-제헌국회의원을 추억하다’(미래엔) 출판기념회를 연다. 1948년 5월 31일 개원한 제헌국회는 2년의 임기 동안 전국 200개 선거구에서 뽑힌 재보선 포함 209명의 제헌국회의원이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하고 국가 운영 체제인 헌법을 제정했다. 초대 대통령과 9명의 초대 내각을 배출하는 등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1995년 창립된 (사)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 유족회는 올해 30주년을 맞아 제헌국회의원 44명의 사진과 편지, 증언을 모아 가족의 시선에서 본 선대의 모습을 책으로 엮었다. 대한민국 정부 초대 내무부 장관 등을 지낸 윤치영 제헌국회의원의 손자인 윤인구 회장은 “창립 30주년 기념 서적은 제헌국회의원들의 인간적 면모를 담은 시대의 증언”이라며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기억의 기록으로 대한민국의 뿌리를 잊지 않게 하는 역사적 숨결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회 숙원 사업이었던 제헌절 공휴일 재지정은 여야 다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으며 통과 시 내년 7월 17일 제헌절은 18년 만에 공휴일로 재지정 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수북하게 쌓인 낙엽은 ‘바스락’ 소리를 내는 단풍칩 양탄자였다. 계수나무 낙엽에서는 여전히 달콤한 향이 났다. 봄부터 가을까지 소명을 다하고 땅에 내려온 낙엽은 저마다 찬란했을 삶의 초상(肖像). 그들은 비로소 자유로울까, 회한이 남았을까. 광릉숲에 자리한 국립수목원에서 낙엽을 밟으면 걸음이 느려지고 말수는 준다. 560년 된 숲에 조성된, 특별한 정원 두 곳이 만추(晩秋)에 깊은 사유를 일으킨다.● 감금의 흔적을 품은 정원시멘트벽에 걸린 반달가슴곰 사진 위로 가을 햇살이 철창 형태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달 초 국립수목원에 새롭게 선보인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3000㎡)이다. 1991년부터 2017년까지 곰 사육장이었던 이곳은 동물원 폐쇄 후 폐허처럼 방치돼왔다. 녹슨 철창, 벽면에 찍힌 곰 발바닥 자국…. 정원은 그 감금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품었다.1998년 11월 이 사육장에 살던 백두산 반달가슴곰이 죽었다. 정확한 사인(死因)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멘트 독(毒)이 올라 곰이 발바닥을 딛고서지 못하고 ‘낮은 포복’하듯 기어 다녔다”는 방문객의 목격담이 당시 신문기사에 실려 있다. 몸을 숙여 곰이 살던 비좁고 어두운 방을 둘러보니 죽은 곰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해졌다. 밖으로 나와 농익은 가을빛이 스민 광릉숲을 보고나서야 숨이 트였다. 잠시 나는 곰이 되었던 걸까.벽체 일부를 걷어내 숲의 경관을 끌어들인 옛 사육장엔 자생식물이 들어섰다. 빛이 스며들 때 그림자가 아름다운 식물을 심은 섬세함이 돋보였다. 여전히 빛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는 이끼나 버섯으로 감금의 시간을 은유했다. 사육사가 곰의 출산을 지켜보던 벽체의 작은 구멍에 눈을 갖다 대니, 루페(확대경) 렌즈를 통해 안쪽 식물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깊은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자 식물의 생명력을 새삼 알아차리게 됐다. 정원은 기억 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사육사가 머물던 공간에는 식물 수집가 고(故) 어니스트 헨리 윌슨(1876~1930)이 100여 년 전 한반도에서 찍은 숲의 사진을 전시했다. 우리가 여력이 없던 시절 이방인이 남긴 숲의 기록은 친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올여름 수해 때 쓰러진 전나무로 만든 벤치에 앉아 건물 위를 올려다보자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 식물, 동물, 미생물이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아가는 숲의 의미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보였다.국립수목원은 왜 폐허를 정원으로 만들었을까. 이 사업은 산림청이 공공정원 확대를 위해 추진 중인 ‘생활권역 실외정원 조성사업’의 일환이다. 버려진 땅에 생태적 회복의 의미를 부여해 다양한 생명체가 숲의 주권자임을 드러내겠다는 취지다.공사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 처음엔 의문이 들었다. 그대로 둬도 훌륭한 숲에 굳이 정원이라는 인위성을 더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지금은 참회인지 감동인지 모를 방문객들의 눈물을 본다. 최근 국립수목원에서 열린 ‘2025 국제정원치유 심포지엄’ 발표자로 방한한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울리카 K. 스티그도터 교수도 이 정원을 함께 둘러보며 말했다. “좁은 공간에 동물을 가두었던 과거를 드러내고 자연을 회복시키는 방식을 다른 나라에서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 누구나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치유라고 부르든 치료라고 부르든 우리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하는 감동적인 정원이다.”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곰을 가뒀던 인간이 그 흔적 위에 정원을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비로소 곰의 시선에서 숲을 대하고 있을까. 정원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침대형 의자가 놓여 있었다. 여기에 누워 나무를 올려다보자 30m 떨어진 계곡의 물소리가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평양냉면을 닮은 한국의 숲 정원”광릉숲의 역사는 조선 제7대 세조의 능림(陵林)이 조성된 14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릉으로 엄격하게 보존 관리돼 온대 중부 낙엽활엽수림의 극상림(생태계가 안정된 숲의 마지막 단계)을 보여주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늘 궁금해한다. ‘이 오래된 숲의 속살은 어떤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광릉숲의 대부분 구역은 생태 보전을 위해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광릉숲 2426ha 중 국립수목원 전시원은 102ha 규모다.국립수목원이 지난해 가을 조성한 ‘비밀의 정원’(7000㎡)은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다. ‘보여줄 수 없는 숲을 보여주자’. 인간이 의도적으로 질서를 만들어낸 수목원 내 전나무 인공림을 통과하면 어느 순간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천연림으로 전이되는 공간이 나온다. 그곳이 ‘비밀의 정원’의 시작점이다.쓰러진 나무로 만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숲속에 폭 1.8m의 길이 이어졌다. 양쪽에는 오래된 나무와 그 아래에서 막 자라기 시작한 어린나무가 함께 서 있었다. 나이가 들어 힘이 빠져야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를 품는다는 서어나무는 나무껍질이 근육질처럼 우람했다. 물푸레나무는 잎을 떨군 뒤라 까막딱따구리가 커다랗게 파놓은 둥지가 선명했다. 오래돼 쓰러진 졸참나무는 나무가 살아온 시간을 상상하게 했다.길 따라 걷다 보면 광릉숲에서 가장 오래된 350살 밤나무를 만난다. 천천히 이 나무를 만나도록 길은 일부러 둥글게 돌아간다. 가슴둘레가 4m가 넘는 밤나무를 안아보니 나무가 견뎌낸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무를 감상하도록 조금 떨어져 놓인 의자에 앉으니 나무 뒤로 해가 비추었다. 이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왜 ‘비밀의 숲’이 아니라 ‘비밀의 정원’일까. 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단지 미개방지역을 연 게 아니라, 숲의 서사를 발견해 드러냈다”고 말한다. 졸참나무, 서어나무, 엄나무가 엉켜 있는 자리에는 ‘치열한 공존’이란 푯말이 붙어 있었다. 몸을 비틀거나 가지 틈으로 뻗으며 함께 자라던 나무들은 죽어서도 서로를 받쳐준다. 다래가 층층나무에 해를 입히지 않고 감아 올라가는 모습엔 ‘슬쩍 기대어 살아가는’이란 문구가 있었다. 인간의 개입을 덜어내자,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들이 현자(賢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정원을 둘러본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말했다. “비밀의 정원은 평양냉면 같다. 양념에 의존하지 않고 재료에 집중하는 평양냉면처럼 숲의 본질을 드러낸 ‘한국형 숲 정원’의 모범이다.”정원이 과잉소비되는 시대, ‘곰이 떠난 자리, 숲의 정원’은 숲의 주권자가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일깨운다. 온전한 숲이 유지됐기에 가능했던 ‘비밀의 정원’에서는 오래된 나무들이 삶의 태도를 가르쳐준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철학이 있어야 정원이다. 글·사진 포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국내 아동복 신화를 일군 ‘더캐리’ 이은정 대표(45)가 자기계발 에세이 ‘캐리 온: 10년 후, 꿈꾸던 내가 되었다(에피케)’를 최근 펴냈다. 25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연 매출 1500억 원을 올리는 글로벌 패션그룹을 일군 기록이다. 2010년 블로그 ‘솔맘 스토리’가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면서 2014년 유아동복 ‘베베드피노’의 법인을 설립한 뒤, 주니어 브랜드 ‘아이스비스킷’, 키즈 편집숍 ‘캐리마켓’ 등을 만들어온 여성 창업가로서의 궤적을 담았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 이 대표의 이야기가 ‘골든걸’ 독자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줄 것 같아 최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사업의 시작은.“첫째 아이 돌잔치 때 입힐 옷을 찾는데 국내 브랜드 중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뭔가 다른 옷’을 찾다가 색감이 알록달록한 북유럽 브랜드에 꽂혔다. 해외 사이트에서 ‘직구’를 해서 블로그에서 엄마들에게 돌복을 대여해주다가, 결국엔 아동복을 직접 만들게 됐다. 아이를 들쳐 매고 서울 남대문 시장을 돌며 원단을 구해 옷을 만들었다. 순전히 입소문으로 블로그, 카페, 온라인, 오프라인숍으로 베베드피노 사업이 확장됐다.”-어려운 일은 없었나.“매 순간 늘 많았다. 베베드피노를 입고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아이스비스킷을 입을 줄 알았는데 10∼20%도 연결되지 않아 2∼3년 고전했다. 책가방을 아이스비스킷의 대표 아이템으로 삼고 노력했더니 언젠가부터는 눈에 보이는 아이들마다 우리 가방을 들고 다녔다.”-패션 감각은 타고났나.“부모님이 패션 일을 해서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남달랐던 것 같다. 친구들이 쇼핑 갈 때면 ‘네가 골라주는 걸 제일 잘 입는다’며 항상 데려갔다.”-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엄마가 진짜 멋진 분이셨다. 부모님 사업이 어려워져 대구로 내려가 출판사와 화장품회사 방문판매를 하셨는데 실적이 늘 톱이었다. 자주 손님을 집에 초대해 10인분, 20인분 뚝딱 밥을 차려내고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했다. 엄마의 생활력과 배포를 어려서부터 배웠다.”-책을 읽어보니 더캐리에 공동대표로 합류한 남편의 ‘외조’도 놀라웠다.“남편은 삼성디자인학교(SADI)를 수석으로 졸업한 성실의 아이콘이다. 난 지방대 출신에 해외유학파도 아니어서 스펙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학창시절부터 알고 지낸 남편은 늘 ‘너만큼 패션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칭찬해줬다. 엄마가 암투병할 때엔 신혼 옥탑방 살림인데도 모시고 살자고 했고, 회사를 일부러 옮겨 마련한 퇴직금으로 엄마 간병비를 댔다. 이듬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남편이 참 고맙다.”-일을 쉬다가 창업했다고 책에 썼다.“엄마를 간병하면서 일을 쉬고 아이를 낳았다. 돌이켜보면 육아의 시간이 참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가 스스로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많이 생각한 시간이었다. 지금의 ‘베베드피노’가 탄생한 때다.”-처음 다닌 회사는 어떤 회사였나.“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패션 수입회사에 패션 머천다이저로 들어갔다. 작은 회사여서 기획에서부터 마케팅, 판매까지 다 했다. 그런데 그때 진짜 일을 많이 배웠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대기업만 가려 하지 말고, 나중에 내 일을 할 수 있는 걸 배운다는 마음으로 직장을 고르라고. 난 내가 기획한 제품에 대해 고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해 현장 판매지원도 자진해 나갔다.”-현재 ‘더캐리’ 사업은.“지난해 매출이 1500억 원이었다. 국내 206개 매장, 중국에 2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 진출도 모색 중이다. 지난해엔 ‘푸마 키즈’ 사업도 시작했다. 건강기능식품 등 패밀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요즘 일과는.“퇴근 후 저녁 약속은 거의 잡지 않는다. 대신 운동하고 무조건 밤 9시 반에는 잠자리에 드는 루틴이다. 여행을 가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물멍’이나 ‘하늘멍’한다. 그럴수록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건강한 일상이 건강한 생각을 낳는다.”-‘골든걸’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요즘엔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브랜드가 진짜 많다. ‘더캐리’도 육아가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서 책을 썼다. 시작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자신을 믿는 마음과 열정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곳이야말로 일찍이 앙드레 말로가 말했던 ‘상상의 박물관’이 아닐까. 일본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오츠카국제미술관에서 여러 생각이 휘몰아쳤다. 일본에서 가장 유속(流速)이 빨라 신비로운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나루토 해협 부근에 자리한 이 거대한 미술관은 ‘세라믹 복제의 낙원’이다. 이탈리아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와 벽화에서부터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여 점의 세계 명화가 실제 크기의 도판(陶板) 명화로 재현돼 있다. 말로가 사진 복제의 시대를 예견하며 세계 명화를 한 데 모으는 것을 상상한 것을 이 미술관은 100% 복제품으로 구현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미술관지난달 21일 오전 7시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1시간 40분 후 일본 도쿠시마 공항에 내렸다. 렌터카로 곧장 오츠카국제미술관으로 향했다. 지하 3층부터 2층까지 전시가 4km 관람로로 이어지는 2만 9412㎡ 규모의 장대한 미술관이다. 가히 ‘걸어서 감상하는 세계 미술사’다.도판은 흙을 이용해 구운 도기 판을 뜻한다. 1000도 이상의 고온에 구워 원작을 재현한 것이 ‘도판 명화’다. 이 미술관은 ‘포카리스웨트’ 음료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츠카 제약그룹의 창립 75주년 기념사업으로 1998년 문을 열었다. 오츠카 그룹은 나루토 해협의 흰 모래를 활용해 타일을 만드는 ‘오츠카 오미 도업 주식회사’를 1973년 세웠다가 바로 그해 제1차 오일쇼크를 맞았다. 석유 가격이 급등해 각종 건설이 전면 중지되자 머리를 맞대 내놓은 대안이 ‘도판으로 미술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원화 본연의 크기로 복제해 대형 미술 도판을 만든 건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미술관을 방문하기 전에는 솔직히 큰 기대가 없었다. ‘오리지널이 아니잖아.’ 그런데 반나절을 보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미술관은 오츠카 오미 도업㈜의 도판 기술로 원작의 느낌을 구현해 교과서에 나오는 전 세계의 명화, 정확히는 명화 복제품을 ‘원스톱’ 감상할 수 있게 했다.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노년의 관람객까지 실물 크기의 복제품을 자유롭게 보고 만진다.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를 다니며 원본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곳은 ‘예술 접근성의 민주화’를 실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원작 소장 기관들은 저작권과 색감, 촬영방식 등에 대한 엄격한 계약을 맺고 시장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문화적 접근을 허용한다. 그 결과 오츠카 그룹의 고향인 일본의 시골에 있는 이 미술관에 지난해 57만 9000명이 다녀갔다.>> 복제의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발터 벤야민은 저서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원작이 가진 ‘아우라’의 상실을 예견했다. 예술이 대량복제되면 진품의 유일무이한 역사성과 장소성이 사라진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바로 그 경계의 지점에 서 있다. 원작의 향기와 장소성은 없지만, 아우라의 부재가 오히려 새로운 사유를 일으킨다. 복제된 이미지 속을 걷다 보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말로가 품었던 생각을 이 미술관은 도판 기술로 현실화한 셈이다.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개념도 관람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는 복제가 현실을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현실을 대체하는 상태, 즉 ‘시뮬라크르’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벤야민의 원작의 부재, 즉 아우라의 소멸을 기술로 메우는 시뮬라크르적 공간이 아닐까.오츠카국제미술관의 철학은 분명하다. 전쟁, 화재, 환경오염 등에 예술품의 원작은 훼손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까. 2000년 이상 지나도 색과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는 도판 명화는 이런 불안에 정면으로 맞선다. 원작의 모습을 보존한 복제품이 미래의 기억 장치가 되겠다는 것이다.이 미술관을 만든 오츠카그룹은 기본적으로 기술기업이다. 그들의 복제 과정은 예술적 재현이라기보다는 도판 기술의 정밀함을 과시하는 산업적 프로젝트에 가깝다. 여기에서 또 질문이 던져진다. 기술적 완벽함이 예술적 진정성을 대체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 던져진 것인지도 모른다.>> 야외 정원에 설치된 모네의 ‘수련’오츠카국제미술관은 다양한 실험을 한다. 일례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원작은 프랑스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의 타원형 방에 전시돼 있지만 오츠카국제미술관은 이 작품의 도판을 야외 정원에 설치했다. 이 정원에서는 모네가 생전에 그토록 그리고 싶어 했던 푸른 수련을 10월 하순에도 볼 수 있었다. 분명히 원작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감각의 확장을 제공하고 있었다.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 7점을 한곳에 모은 전시구역은 이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역 중 하나다. 1945년에 소실된 한 점을 비롯해 현재 각국에 나뉘어 소장된 작품들의 도판 명화를 한데 모아 놓았다.‘걸어서 세계 미술사 여행’은 계속되며 이따금씩 개인적 경험과 맞닻는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미술관에서 봤던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봤던 교회를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오베르의 교회’…. 추억이 깃든 그곳들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비록 복제품이지만 세계의 명화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하는 경험은 새로웠다. 이곳에서 ‘미메시스(모방)’ 개념은 세상을 경험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승화되는 것 같았다.관람을 마치고 뮤지엄숍에 들러 미술관 입장료보다 비싼 도판 명화 기념품을 세 개나 샀다. 소실된 고흐의 ‘해바라기’, 고흐의 ‘오베르의 교회’(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이날 유독 마음에 들었던 휴 골드윈 리비에르의 ‘에덴의 정원’이다. ‘에덴의 정원’의 경우 오츠카국제미술관은 런던 길드홀 아트 갤러리의 소장품을 브리지먼 아트 라이브러리의 자료를 이용해 도판으로 재현했다고 명확히 표기함으로써 복제의 윤리를 제도화했다. 복제가 단순한 재생산이 아니라, 기억의 기술로 변모한 것이다.언젠가 영국에 가서 ‘에덴의 정원’의 원작을 보고, 그림 속 장소로 추정되는 공원을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내 인생의 화양연화 시절에 가보았던 프랑스 오베르 교회를 꼭 다시 가보고 싶다. 복제의 공간을 걷는 일은 원본의 빈자리를 채우는 예술의 또 다른 길을 목도하는 일이었다. ‘복제의 신전’이라는 오츠카국제미술관이 내게 준 선물이다. 오츠카국제미술관 관람 정보위치: 일본 시코쿠섬 도쿠시마현 나루토시 나루토초 나루토공원 내개관 시간: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월요일 휴관)입장료: 일반 3300엔/대학생 2200엔/초중고생 550엔나루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