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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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4-04-21~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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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에서 공존을 배우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이제야 비로소 서울에서도 정원박람회가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16일 서울 뚝섬한강공원에서 개막한 서울국제정원박람회(10월 8일까지)에서 남녀노소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그 희망을 보았다. 서울정원박람회는 2015년부터 서울 마포구 월드컵공원과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등에서 열려왔지만 왠지 ‘그들만의 리그’인 느낌이 있었다. 한강공원에서 열리는 건 올해가 처음. 접근성과 수준이 역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서울시는 기존 정원박람회를 이번에 국제 행사로 키우면서 역대 최대 규모 터(약 20만 ㎡)에 76개 정원을 조성했다. 주제는 ‘서울, 그린 바이브(Seoul, Green Vibe)’. 지하철 7호선 자양역 2번 출구로 나오면 시원한 한강을 배경으로 ‘무료’ 정원 여행이 시작된다. 박람회장 가든센터에서 ‘식물 지름신(神)’이 내릴 확률이 높으니 튼튼한 팔과 장바구니를 준비하기를 권한다. 박람회가 끝나도 정원들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니 인근 주민들 삶이 부러워진다.●도시 정원의 회복력물결처럼 구불구불한 동선으로 이뤄진 정원이었다. 보자마자 핀란드 자작나무 냄비받침이 떠올라 혼자 웃었다. 작가의 정원에 감히 냄비받침이라니. 하긴 정원을 느끼고 누리는 데에 정답이 어디 있나. 각자 경험대로 상황대로 즐기면 된다. ‘회복의 시간’이라는 이름의 그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보라색 알리움과 하늘색 정향풀 등이 바람결 따라 흔들렸다. 이곳은 뚝섬한강공원인가, 아니면 미지의 호숫가인가. 호흡이 편안해지고 자꾸만 식물과 눈 맞추고 싶다.국내외 작가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작가 정원은 ‘정원이 가진 회복력’과 ‘정원과의 동행’이라는 키워드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창엽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교수는 아내인 이진 정원가와 함께 조성한 ‘회복의 시간’ 정원을 이렇게 설명한다.“뚝섬한강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정서적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자연과 온전히 연결하고 싶었다. 주변 인공물들에서 시각적으로 해방되기 위해 지면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입체적 지형을 만들었다. 또 마치 벌이 꽃들을 다니며 수분(受粉)을 돕듯, 의도적으로 좁게 만든 보행로를 통해 이용자들이 식물과 맞닿도록 했다. 우리 인간이 꽃씨를 묻혀 식물의 자연발화를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건축가로서 순수 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밀당(밀고 당기기)’ 하는 기묘한 그 사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이 교수는 10여 년간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스타 건축가들과 작업했다. 그런데 영국 RHS 위즐리 가든을 방문한 뒤 ‘인간이 만들어낸 명작은 자연의 위대함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가족이 살던 런던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였다. 도시 어디에 살든 10분 이내에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녹지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런던의 정원이 키웠고, 직장 스트레스는 자전거 출퇴근길의 도시 정원 풍경이 날려줬다. 그는 말한다. “서울에도 누구나 비용을 내지 않고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공정원이 늘어나면 한국이 직면한 저출산, 혐오 범죄, 자살률 같은 사회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방글라데시 작가 MD 아슈라풀 아자드가 조성한 정원 이름은 ‘심심해지다, 명상하다, 고마워하다’였다. 작가는 디지털 기기에 사로잡혀 사는 현대인에게 ‘심심한 시간’이 가장 필요하다고 봤다. 원형의 띠를 둘러 시선을 정원 외부와 차단하고 내부에는 다년생 식물인 수크렁 한 종류만 심었다. 잡다한 생각을 막고 고요하게 식물의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자는 것이다.정원은 관조와 사색의 장소다. 김영민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와 김영찬 조경기술사사무소 바이런 소장이 만든 초청 정원 이름은 ‘앉는 정원’이다. 꽃과 풀은 지친 땅을 쉬게 하고 사람은 앉아서 꽃, 풀, 물, 바람을 보며 쉬어 가라고 한다. 김 소장은 “이 정원에서는 사적으로 아늑하게 앉을 수도 있고, 평상에서 콩고물이라도 나눠 먹으며 둘러앉을 수도 있고, 한강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정원에서 앉는다는 행위는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일 것이다. 시민들과 조경 전공 학생들이 꾸민 작은 정원들에도 내면을 탐구하거나 가족애를 보듬는 경향이 나타났다. ‘삼삼한 매력정원’은 손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추억을 남기기 위해 함께 풀과 나무를 심으며 만든 삼대(三代)의 정원이다. ‘언제나 나, 너 하늘을 봐요’라는 제목의 학생동행정원은 정원 안에 놓은 원형 거울 속으로 연녹색 나뭇잎들이 살랑댔다. ‘기억과 함께 동행’이라는 이름의 작가 정원은 줄무늬 조형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바닥에 신비한 빛줄기를 그려냈다. 나무줄기로 만든 식물 이름표, 계단 틈새에 심은 다육식물들…. 각각의 정원에 세심한 아름다움이 있었다.●비인간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정원중국 작가 허양과 천훙량이 만든 ‘섹션 가든’은 사람, 동물, 식물이 공유하는 정원이다. 이 정원에서 만난 허양 작가는 중국미술학원(China Academy Of Art)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고향인 항저우의 산에서 놀면서 곤충을 연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정원의 나무 둥치를 가리키며 “이건 애벌레의 식량이다. 한국의 딱정벌레들과 다른 작은 벌레들을 이 속에 넣었더니 한 달 후 성체가 되어 날아갔다. 이 정원은 곤충들을 위한 서식지가 되었다”고 했다. 곤충이 어떤 토양에서 잘 자라는지 흙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뚝섬한강공원에 가족 소풍을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전할 것 같았다. 도시 속 딱정벌레 유충이 먹는 발효 톱밥과 부식질(腐植質) 흑토 등을 아크릴 상자를 통해 보여주고 작은 터널을 뚫어 통과해보게 하는 식이다. 경사진 지형을 한국의 산과 평원, 습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그에 맞는 우리 식물을 심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이번 박람회에서 반가운 점은 나비, 벌, 곤충 같은 생명체들과의 공생을 추구하는 정원을 여럿 선보인 것이다. 토양에 탄소를 공급하는 점균류 구조를 형상화한 정원, 나비 모양 구조물을 통해 기후위기의 나비효과를 상기시킨 정원,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류를 위한 쉼터를 표현한 ‘곤충 호텔’도 눈에 띄었다. 국립생태원이 뚝섬한강공원 수영장을 습지식물 전시에 활용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정원이 단순히 알록달록 꽃을 심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아닌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장소라는 걸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정원 수준이 한 단계 도약했음을 실감했다.도시의 정원에서 다양한 새 소리를 듣고 생물 다양성을 발견하는 것은 축복이다. 서울시는 “한강을 가장 넓은 면적의 탄소 저장고로 조성하고 지구를 살리는 정원의 힘을 느끼게 하겠다”고 한다. 어쩌면 박람회가 끝난 후부터가 중요할지 모른다. 시민과 기업의 참여로 일상 속에 정원이 스며들어야 한다.●‘바이오필릭 서울’을 향한 꿈이번 박람회에는 기업 동행 정원이 17곳 조성됐다. 미국 월트디즈니사가 선보인 ‘인사이드 아웃’ 정원은 기업 정원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다음 달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국내 개봉을 앞두고 영화 캐릭터들 색상에 맞춰 정원을 꾸몄다. 푸른색 ‘슬픔’ 캐릭터 구역에 엔드리스 수국과 델피늄을, 주황색 ‘불안’ 캐릭터 구역엔 주황철쭉과 나리를 심었다.기업 정원은 브랜드 전략이자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조성한 ‘도심 속의 보석’ 정원은 유리 블록으로 된 조형물 안에 이끼가 낀 커다란 돌을 놓고 주변에 연꽃을 심었다. 그저 멋으로 만든 정원이 아니다. 이 회사가 추진하는 서울 광운대 역세권 개발사업 ‘히든 네이처(숨겨진 자연)’ 콘셉트를 표현한 것이다. 삼성물산 조경브랜드 ‘에버스케이프’는 붉은색 전망대 구조물로 시선을 압도한다. 헨켈코리아는 재활용 플래스틱 화분에 어린 나무를 심어 미래의 숲을 표현했다. KB증권 ‘깨비정원’은 기업 브랜드 아이덴티티(BI)에 맞춰 식물과 구조물을 노란색으로 맞췄다.세계 각국이 바이오필릭 시티(Biophilic City·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를 내세운다. 인간이 도시 속 자연과 함께하면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을 더 잘 돌보고 배려한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있다. 시민정원사와 학생들의 정성과 참여, 차량으로 전국을 다니며 식물 관리를 안내해주는 이동형 반려식물 클리닉같이 우리 사회에 퍼지는 정원 문화가 값진 이유다.17일 박람회 현장에서 진행된 정원 토크쇼도 정원의 의미를 일깨웠다. 직장 동료(국립세종수목원 박원순 전시원실장과 노회은 정원사업센터장), 공동대표(조경스튜디오 ‘초신성’의 신영재·최지은 소장), 부부 조경가(‘바이런’ 김영찬 소장과 ‘천변만화’ 이양희 대표)가 ‘따로 또 같이 정원매력탐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중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정원은 더 다양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기반’이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조금만 배려하면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것, 5월의 정원에서는 파랑새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뚝섬한강공원 정원들의 식물은 사계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라날 것이다. 직접 정원을 만든 건 아닐지라도 정원을 자주 드나들며 그 속의 생명체들과 교감한다면 ‘내 정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것이 바이오필릭 시티에서 공공정원이 갖는 회복력과 동행의 힘이다. 이번에 조성된 정원들이 시민, 기업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정원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서울도 세계의 바이오필릭 시티들과 어깨를 겨루는 날이 온다.글·사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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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너의 이름 부르러 국립수목원으로 간다[김선미의 시크릿 가든]

    햇빛에 반짝이는 나무 잎사귀들이 초록의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낸다. 눈이 시원해지니 허파까지 상쾌해진다. 얼마 전까지 노란색 황매화와 분홍색 진달래가 기세를 뽐냈다면 오월의 꽃은 흰색이 대세다. 은근한 자태가 보고 있어도 그리운 가침박달, 청순한 병아리꽃나무, 흰양귀비…. 큰줄흰나비는 순백의 민백미꽃이나 미나리냉이 위에 내려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이번 주말 가족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을 추천하고 싶다. 오월의 신록이 아름다운 곳, 우리나라의 대표적 희귀 야생난초인 광릉요강꽃이 지금 만개한 곳, 지나온 날들을 나무들이 말해주는 곳, 그래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 바로 국립수목원이다.● 희귀한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봉선사천(川)을 가로지르는 수목원교(橋)를 건넌다. 초록색 하트 잎을 품은 계수나무가 반긴다. 수목원 여행의 시작이다. 가만 보니 대형 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든 관람객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이 꽃을 피운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1990년대 박신양 최진실 주연 영화 ‘편지’를 봤던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수목원 연구사인 남자 주인공이 여자 친구를 새벽에 전화로 깨워 수목원으로 데려간 장면을. 남자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오늘 아침 귀한 꽃이 피어났다고, 그 꽃을 자신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여자가 꽃 이름을 묻자 남자는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개불알꽃요.” 당시 영화 주요 촬영지가 국립수목원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관람객들은 이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찾아온다. 개불알꽃은 가운데가 길게 늘어지는 꽃잎 모양을 보고 민간에서 익살스럽게 불렀던 이름이다. 하지만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위원회는 입에 올리기 민망했던 이 꽃의 이름 대신 ‘복주머니란’을 선택해 2007년 펴낸 국가표준식물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고로 개불알꽃은 이제 복주머니란으로 불러야 한다. 복주머니란속(屬) 식물은 세계적으로 멸종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에는 복주머니란, 털복주머니란, 광릉요강꽃 등 이렇게 3개 종(種)이 자생한다. 특히 광릉요강꽃은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희귀식물로 국내에서도 경기, 강원, 전북 등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31년 광릉숲 죽엽산 자락에서 처음 발견됐다. 입술 모양 꽃잎이 요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광릉요강꽃으로 불린다. 서양 이름은 ‘Korean lady’s slipper’(한국 숙녀의 슬리퍼). 무분별하게 채취돼 자생지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이 희귀식물을 국립수목원이 2021년 세계 최초로 기내(시험관이나 배양기 안) 종자 발아에 성공했다. 대량 증식의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많은 이들이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개불알꽃)이 같은 꽃인 줄로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복주머니란은 분홍빛을 띠고 통통한 형태인 데 비해 광릉요강꽃은 중앙의 붉은 부분을 미색 꽃잎이 갸름하게 감싼다. 특히 광릉요강꽃은 잎이 360도 퍼지는 여성의 풀(full) 스커트 형태라 ‘치마난초’로도 불린다. 치마를 확 펼쳐 춤 추는 무용수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 느낌이 물씬 난다.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보존원 부근 나무 장벽 구역에서는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을, 약용식물원 가는 방면 복주머니란속 전시원에서는 교잡종인 ‘얼치기복주머니란’을 볼 수 있다. 빛이 들 때마다 카메라 셔터들이 찰칵찰칵. 이번 주말을 넘기지 않고 방문하면 좋겠다. 지금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수목원에서 생각하는 과거와 미래 국립수목원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가 운영하는 수목원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1984년 조성공사를 시작해 1987년 문을 열었다. 조선 세조 능(陵)인 광릉의 부속림이어서 500년 넘게 잘 관리된 땅에 전국 임업시험장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심었다. 수목원 명칭은 처음 광릉수목원에서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바뀌었다. 개원 당시 수목원 입구에 세웠던 ‘광릉수목원’ 표석은 수목원 산림박물관 앞으로 옮겨졌다. 전시 공간이 102ha 규모인 국립수목원에는 7개 테마 숲길이 총연장 20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숲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숲생태관찰로(길이 460m)를 걸은 뒤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육림호를 바라보는 코스가 가장 사랑받는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새 소리를 들으며 ‘물멍’(물을 멍하니 바라보기)을 하면 감각은 열리고 마음은 내려놓게 된다. 어른 팔 만한 물고기들도 보인다. 40여 년 전 경기 청평 내수면연구소에서 기르던 물고기 5000여 마리를 옮겨왔는데 그중 잉어와 비단잉어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물, 나무, 산, 숲이 어우러지는 육림호는 국립수목원 대표 명소다. 특히 봄에는 물가에 핀 연분홍 철쭉이 청순한 경관을 이룬다. 그런데 산철쭉과 철쭉도 사람들이 자주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예다. 흔히 철쭉으로 불리는 진분홍 꽃 이름은 산철쭉이고, 물철쭉으로 잘못 불리는 연분홍 꽃 이름은 철쭉(연달래)이다. 사랑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 이젠 철쭉을 철쭉으로 불러야 한다. 국립수목원은 역대 대통령 기념 식수들이 자리 잡고 있어 ‘국가대표’ 수목원의 차별점을 보여준다. 대대로 심은 전나무 숲길도 유명하다. 국토 녹화와 임업 발전에 공을 세운 인물들을 헌정한 ‘숲의 명예전당’도 들러 보면 좋겠다. 세계적 육종학자 고 현신규 박사, 임업에 열정을 지녔던 고 최종현 SK 창업회장을 비롯해 8명이 헌정돼 있다. 개원 25주년을 맞은 국립수목원은 어린이날을 맞아 ‘알숲놀숲’이라는 산림 새싹 키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알파 친구들아, 숲에서 놀자, 놀면서 숲을 즐기자’라는 뜻으로 식물학자와 정원사 같이 수목원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군을 아이들이 체험하도록 준비했다. 미래 세대가 디지털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숲과 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국립수목원 속 나만의 시크릿가든 국립수목원은 25개 전문 전시원에 식물 4854종(19만9212본)이 심어져 있다. 광릉요강꽃 같은 희귀식물 23종, 장수하늘소를 비롯한 천연기념물 20종이 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에서). 드넓은 국립수목원에서는 누구든 ‘나만의 식물’ ‘나만의 시크릿가든’을 삼을 수 있다. 누군가는 봄을 일찍 알리는 풍년화에, 누군가는 바람에 쓰러지고도 새잎을 돋아내는 휴게 광장의 121세 오리나무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누군가는 키 작은 나무언덕에 올라 헝클어진 마음을 정돈할 것이다. 기자는 우리 자생식물의 검박한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 그래서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보존원이 나만의 시크릿가든이다. 보존원 울릉도본원에는 만병초가 피어 있다. ‘만 가지 병을 치유하는 풀’이라고 했던가. 정자(퍼걸러)에 올라 울릉도 희귀특산식물 두메부추와 섬시호 등을 바라본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했던 풀 . 오월 국립수목원은 삶의 의지를 일깨운다. :금강산도 식후경:국립수목원 직원들이 꼽은 인근 맛집① 광릉불고기: 불고기만큼 밑반찬도 호평② 동이손만두: 건강한 맛 만두전골. 무한 리필 물김치도 인기③ 모심: 봉선사 근처 손두부 요리 전문점.④ 하마네추어탕: 고모리 추어탕 맛집.⑤ 어반제주: 고모리 저수지 인근 제주 감성 피자 & 파스타 집. 글·사진 포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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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릉요강꽃 본 적 있나요…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햇빛에 반짝이는 나무 잎사귀들이 초록의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낸다. 눈이 시원해지니 허파까지 상쾌해진다. 얼마 전까지 노란색 황매화와 분홍색 진달래가 기세를 뽐냈다면 오월의 꽃은 흰색이 대세다. 은근한 자태가 보고 있어도 그리운 가침박달, 청순한 병아리꽃나무, 흰양귀비…. 큰줄흰나비는 순백의 민백미꽃이나 미나리냉이 위에 내려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이번 주말 가족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경기 포천의 국립수목원을 추천하고 싶다. 오월의 신록이 아름다운 곳, 우리나라의 대표적 희귀 야생난초인 광릉요강꽃이 지금 만개한 곳, 지나온 날들을 나무들이 말해주는 곳, 그래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 바로 국립수목원이다.●희귀한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봉선사천(川)을 가로지르는 수목원교(橋)를 건넌다. 초록색 하트 잎을 품은 계수나무가 반긴다. 수목원 여행의 시작이다. 가만 보니 대형 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든 관람객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이 꽃을 피운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1990년대 박신양·최진실 주연의 영화 ‘편지’를 봤던 독자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수목원 연구사인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를 새벽에 전화로 깨워 수목원으로 데려간 장면을. 남자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오늘 아침 귀한 꽃이 피어났다고, 그 꽃을 자신이 가장 먼저 발견했다고…. 가장 좋은 것을 어서 보여주고 싶은 게 사랑일 것이다. 여자가 꽃 이름을 묻자 남자는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개불알꽃이요.” 당시 영화의 주요 촬영지가 국립수목원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관람객들은 이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찾아온다.개불알꽃은 가운데가 길게 늘어지는 꽃잎 모양을 보고 민간에서 익살스럽게 불렀던 이름이다. 하지만 국가수목유전자원목록위원회는 입에 올리기 민망했던 이 꽃의 이름 대신 ‘복주머니란’을 선택해 2007년 펴낸 국가표준식물목록에 그 이름을 올렸다. 고로 개불알꽃은 이제 복주머니란으로 불러야 한다.복주머니란 속(屬) 식물은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에는 복주머니란, 털복주머니란, 광릉요강꽃 이렇게 세 종류의 종(種)이 자생한다. 특히 광릉요강꽃은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희귀식물로, 국내에서도 경기, 강원, 전북 등에 매우 제한적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1931년 광릉숲 죽엽산 자락에서 처음 발견되고 입술 모양 꽃잎이 요강처럼 생겼다고 해서 광릉요강꽃으로 불린다. 서양 이름은 ‘Korean lady’s slipper’(한국 숙녀의 슬리퍼). 무분별하게 채취돼 자생지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이 희귀식물을 국립수목원이 2021년 세계 최초로 기내 종자 발아에 성공했다. 대량 증식의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많은 이들이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개불알꽃)이 같은 꽃인 줄로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복주머니란은 분홍빛을 띠고 통통한 형태인데 비해 광릉요강꽃은 중앙의 붉은 부분을 미색의 꽃잎이 갸름하게 감싼다. 특히 광릉요강꽃은 잎이 360도 퍼지는 여성의 풀(full) 스커트 형태라 ‘치마난초’로도 불린다. 치마를 확 펼쳐 춤 추는 무용수 같은데,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 느낌이 물씬 난다. 국립수목원 희귀특산식물보존원 부근 나무 펜스 구역에서는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 약용식물원 가는 방면의 복주머니란속 전시원에서는 교잡종인 ‘얼치기복주머니란’을 볼 수 있다. 빛이 들 때마다 카메라 셔터들이 ‘찰칵찰칵’. 이번 주말을 넘기지 않고 방문하면 좋겠다. 지금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수목원에서 생각하는 과거와 미래국립수목원은 88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가 운영하는 수목원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1984년부터 조성공사를 시작해 1987년 문을 열었다. 조선 세조의 능(陵)인 광릉의 부속림으로 500년 넘게 훼손되지 않고 잘 관리된 천혜의 부지에 전국 임업시험장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심었다. 수목원 명칭은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바뀌었고, 개원 당시 수목원 입구에 세웠던 ‘광릉수목원’ 표석은 수목원 내 산림박물관 앞으로 옮겨졌다. 전 세계적으로 온대북부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대활엽수 성숙림에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등이 사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국립수목원로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이 맑아지면서 온 몸이 연두빛으로 물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102ha 규모의 전시공간을 갖춘 국립수목원에는 7개 테마의 숲길이 약 20km에 걸쳐 조성돼 있다. 숲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숲생태관찰로(460m)를 걸은 후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육림호를 바라보는 코스가 가장 사랑받는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새 소리를 들으며 ‘물멍’(물을 보며 멍때리기)하면 감각은 열리고 마음은 내려놓게 된다. 어른 팔만한 물고기들도 보인다. 40여 년 전 경기 청평 내수면연구소에서 기르던 물고기 5000여 마리를 옮겨와 그중 잉어와 비단잉어가 살아남았다고 한다. 물, 나무, 산, 숲이 어우러지는 육림호는 국립수목원의 대표 명소다. 특히 봄에는 물가에 핀 연분홍 철쭉이 청순한 경관을 이룬다. 그런데 산철쭉과 철쭉도 사람들이 자주 이름을 틀리게 부르는 예다. 흔히 철쭉으로 불리는 진분홍 꽃의 이름은 산철쭉, 물철쭉으로 잘못 불리는 연분홍 꽃의 이름은 철쭉(연달래)이다. 사랑은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 아닐까. 이젠 철쭉을 철쭉으로 불러야 한다.국립수목원은 역대 대통령의 기념 식수들이 자리 잡고 있어 ‘국가대표’ 수목원의 차별점을 보여준다. 소나무와 주목 등 상록 침엽수가 주를 이루지만 노각나무와 무궁화도 있다. 대대로 심은 전나무 숲길도 유명하다. 국토녹화와 임업 발전에 공을 세운 인물들을 헌정한 ‘숲의 명예전당’도 들러보면 좋겠다. 세계적 육종학자인 고 현신규 박사, 천리포수목원을 일군 고 민병갈 원장, 임업에 열정을 지녔던 고 최종현 SK 창업회장,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조기에 달성한 고 손수익 전 산림청장 등 8명이 헌정돼 있다.올해 25주년을 맞은 국립수목원은 이번 어린이날을 맞아 ‘알숲놀숲’이라는 산림 새싹 키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알파 친구들아, 숲에서 놀자, 놀면서 숲을 즐기자’라는 뜻으로 식물학자와 정원사 등 수목원을 둘러싼 다양한 직업군을 아이들이 체험하도록 준비했다. 미래세대가 디지털 기기를 잠시 내려놓고 숲과 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국립수목원 속 ‘나만의 시크릿가든’국립수목원은 25개 전문 전시원에 4854종(19만9212본)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광릉요강꽃 등 희귀식물 23종, 장수하늘소 등 천연기념물 20종이 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시 ‘꽃’에서). 드넓은 국립수목원에서는 누구든 ‘나만의 식물’, ‘나만의 시크릿가든’을 삼을 수 있다. 누군가는 봄을 일찍 알리는 풍년화에, 누군가는 바람에 쓰러지고도 새잎을 돋아내는 휴게광장의 121살 오리나무에 마음이 끌릴 것이다. 누군가는 수목원 안의 키 작은 나무언덕에 올라 헝클어진 마음을 정돈할 것이다.개인적으로는 우리 자생식물의 검박한 아름다움에 빠져 있다. 그래서 국립수목원 내 희귀특산식물보존원이 ‘나만의 시크릿가든’이다. 보존원 내 울릉도 분원에는 만병초가 피어있다. ‘만 가지 병을 치유하는 풀’이라고 했던가. 정자(퍼골라)에 올라 울릉도 희귀특산식물인 두메부추와 섬시호 등을 바라본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했던 풀…. . 오월의 국립수목원은 삶의 소중함과 의지를 일깨운다.★금강산도 식후경: 국립수목원 직원들의 추천 맛집⓵광릉불고기: 불고기만큼 밑반찬에 대해서도 호평.⓶동이손만두: 건강한 맛의 만두전골. 무한정 리필 물김치도 인기.⓷모심: 봉선사 근처의 손두부 요리 전문점.⓸하마네추어탕: 고모리 추어탕 맛집. ⓹어반제주: 고모리 저수지 인근 제주 감성의 피자·파스타집.포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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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스테이 플러스, 제주 이호테우에 다음 달 첫 선

    신라스테이가 회사 설립 10주년을 맞아 레저형 호텔 ‘신라스테이 플러스’를 다음 달 16일 제주 북서쪽 이호테우 해변 인근에 처음 선보인다. 신라스테이 플러스는 신라스테이가 레저시장 변화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신규 레저형 호텔 브랜드다.신라스테이 플러스는 기존 신라스테이보다 △넓고 다양한 타입의 객실 △레저를 위한 부대시설 △아웃도어 풀과 풀사이드 바 등 휴양과 레저를 위한 상품성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이호테우 해변 인근은 무지개 해안도로, 목마 등대 등 요즘 MZ세대 여행객의 포토존으로도 유명한 관광지다. 차량을 이용하면 제주 공항에서는 17분, 제주항에서는 27분 거리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도 편리하다.211개 객실을 갖춘 신라스테이 플러스 이호테우는 제주 현무암 해변에 위치해 뛰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도록 건물 디자인은 파도를 형상화했다. 제주에 가족 등 3∼4명 단위의 여행객이 많이 방문하는 것을 감안해 다인용 객실과 와이드 오션 뷰를 늘렸다. 2층 침대가 설치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벙커 룸 등 객실의 테마와 기능도 다양화했다.제주 바다를 조망하며 수영할 수 있는 야외 수영장도 강점이다. 지상 2층 총 170석 규모로 마련된 카페 ‘웨이브리스’는 최근 제주 빵지 순례 등 젊은층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반영했다. 커플동, 가족동, 루프탑 등으로 이뤄지며, 우도 땅콩을 이용한 아인슈패너 등 MZ 감성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다. 박상오 신라스테이 대표는 “신라스테이 설립 10주년을 맞아 지금까지 쌓아온 운영능력을 바탕으로 레저형 호텔인 ‘신라스테이 플러스’를 선보이게 됐다”며 “제주 여행객과 도민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즐거운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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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베이지, 권중모 공예가와 또 다시 협업해 예술적인 옷 선보여

    권중모 공예가는 한국의 자연적인 미감을 담은 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다. 빛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한지를 접어 빛의 오묘한 패턴을 만들어낸다.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르베이지가 지난해 가을 겨울 시즌에 이어 올해 봄 여름 시즌에도 권중모 공예가와 협업한 상품을 선보였다. 한지에 주름을 잡듯 셔츠와 블라우스, 원피스, 스커트, 가방과 스카프 등에 이중 주름 기법을 두루 적용했다. 이번 협업은 시대를 넘어선 상징으로서 하나의 장르를 도출한다는 디자인적 의미가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권 공예가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한복 주름에서 영감을 받은 이중 주름 잡기다. 한지를 접으며 겹쳐지는 부분과 겹치지 않는 부분에 빛의 음영 공간을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작업이다. 지난해 르베이지에서 선보인 이중 주름 포켓 화이트 셔츠와 스카프는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르베이지는 고객에게 단순하게 옷을 파는 게 아니라 예술적 경험을 제공해 브랜드의 본질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코리안 클래식’을 추구한다. 2019년에는 국내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작가와 협업해 나주 소반을 재해석한 한정판 가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르베이지는 ZIP739,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롯데백화점 잠실점, 더현대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등 주요 매장에 권중모 작가의 대표 작품을 함께 전시해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 빛이 투과되는 색다른 구조미의 옷들은 권 작가의 작품들과 어우러져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오브제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번 협업상품은 전국 르베이지 매장과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패션라이프스타일 전문몰 SSF샵에서 판매된다.양혜정 르베이지 팀장은 “르베이지의 철학과 브랜드 가치를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작가와 협업하고 전시를 마련해 상징적인 브랜드로 하나의 장르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한편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프랑스 어드밴스드 컨템포러리 브랜드 르메르(LEMAIRE)는 서울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5월26일까지 전시를 마련했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2023년과 2024년의 봄 여름 시즌 컬렉션을 사진 영상과 함께 담아낸 ‘a sense of place, a sense of time, a sense of tune’이다. 프랑스 파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최초로 선보인 후 두 번째로 서울에서 선보이는 전시로, 옷과 함께 옷을 매개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개념을 확장했다. 르메르가 기획 및 제작에 참여했다. 르메르는 2022년 서울 가로수길에서 포토 아티스트 조셉 엘머 요아쿰 전시를 연 적이 있지만 전 세계에서 두 번째이자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전시를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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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혜의 자연에서 푹 쉬며 건강관리… 5월의 고품격 효(孝)캉스

    언젠가 지치고 힘들었을 때 친한 후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제주에 가서 푹 쉬고 싶은데 어디 가면 좋을까.” 그때 추천받은 장소가 제주 서귀포시의 위(WE)호텔 제주였다. 한라산 해발 350m에 자리 잡은 이곳은 호텔 입구에 들어서는 벚꽃 터널길부터 숲으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21만㎡에 달하는 울창한 숲속에 호텔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우거진 제주의 자생식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번잡한 도시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여러 종류의 새 소리가 들려온다. 딱따구리, 노랑할미새, 딱새, 동박새, 직박구리, 산솔새, 곤줄박이, 안락할미새…. 20여 종의 새가 오케스트라를 이뤄 연주하는 것 같다. 호텔에서는 ‘크리스탈 싱잉볼’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양쪽 귀를 오가는 싱잉볼 소리와 파장에 몸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짧은 단잠에 들었다.올해 설립 10주년을 맞은 위(WE)호텔 제주에 다시 가 보니, 부모님 모시고 여행하는 ‘효(孝)캉스’에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호텔의 대표는 제주한라병원의 김성수 원장이다. 병원 의료진이 참여하는 의료 서비스에 더해 스파와 미용 등 이른바 ‘메디웰(의료+웰니스) 스테이’를 누릴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추천 ‘웰니스 관광지’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산림욕 테라피와 숲 요가, 숲 산책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위(WE)호텔 제주의 메디웰 원스톱 프로그램은 고객 맞춤형이다. 평소 식습관과 운동 등을 묻는 문진표를 작성한 후 자율신경 균형 및 스트레스 검사를 통해 건강상태를 파악한다. 의료진은 말했다. “우리 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는 몸 밖으로 빼내야 해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깊은 호흡을 하는 겁니다.” 몇 달씩 장기투숙하면서 운동 처방과 식단 조절 등 건강관리를 받는 고객들도 있다고 한다. 이 호텔의 자랑은 물이다. 식수는 물론 객실과 수영장에도 제주 천연암반수가 나와 샤워만 해도 피부가 매끈해진다. 우리 몸에 좋은 마그네슘 등이 다량 함유돼 몸속 노폐물 제거와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아쿠아 메디테이션 풀’에서 운영되는 ‘해암 하이드로’는 그중 백미다. 은은한 조명이 내리쬐는 돔 형식의 수중 공간에서 받는 수중 지압 마사지다. 부유기에 몸을 맡기고 힘을 뺀 채 운동관리사가 이끄는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받으면 물의 흐름에 따라 몸이 유영한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느낌이다. 수중 운동 프로그램인 ‘아쿠아 엑서사이즈’는 일단 재밌다. 물속에서 걷고 뛰다 보면 호흡이 빨라지고 다리 근육이 뻐근해진다. 중장년층의 근력 강화와 관절의 유연성 향상에 효과적이라고 한다.제주의 대표적 향토 음식인 옥돔구이, 돼지내장과 배추 무 등을 넣어 뜨끈하게 끓여낸 갈비몸국, 제주 특산 오메기떡 등으로 구성된 제주 반상 차림으로 호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호텔 앞 정원을 산책하면 더없이 호젓하다. 호텔 내 메디컬 스파 센터에서 피부관리를 받고 잠자리에 들면 아침 새소리에 깰 때까지 꿀잠을 이룰 것이다.위(WE)호텔 제주의 진가는 아침에 빛난다. 제주의 아침 햇살이 숲속 나뭇잎들을 반짝반짝 비춘다. 제주에서 더욱 아름답게 만날 수 있는 100여 종의 초목이 산책로에서 인사를 건넨다. 1∼2월의 복수초와 천리향, 3월의 하얀 벚꽃 터널, 4∼5월의 철쭉과 참꽃나무, 6∼7월의 수국과 치자꽃, 8월의 백일홍과 연꽃, 9∼10월의 금목서와 은목서, 11월의 단풍, 12월의 제주 구상나무와 동백…. 축복받은 제주의 사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침에 숲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 풀밭에 매트를 깔고 누워 하늘을 봤다. 벚꽃이 하늘 캔버스에 가득했다. 명상을 마치면 벚꽃 차를 마시면서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함께 참여한 투숙객 가족이 있어 물어보니, 다음 달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효(孝)캉스’를 온 것이었다. 그 부모님의 표정이 벚꽃처럼 환했다.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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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긋불긋 ‘목련 대궐’ 차린 수목원[김선미의 시크릿 가든]

    4월의 천리포수목원은 목련의 우주였다. 세상에서 목련 종류가 가장 많은 수목원에서 눈이 시리도록 목련을 봤다. 와인 잔처럼 생긴 목련을 비롯해 꽃잎이 마흔 장이나 되는 별목련까지…. 그곳에서의 한나절이 참 황홀했다.● 천리포수목원 목련 축제 926종의 향연 ‘사르르 목련 축제’가 열리고 있는 충남 태안군 천리포수목원 목련정원. 강렬한 붉은색 목련이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다. 화산을 뜻하는 볼케이노(volcano)와 로마 신화 속 불의 신(神) 불카누스(Vulcanus)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불칸’ 목련이다. 그 화려한 모습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왕이다. 잠시라도 한눈을 판다면 불칸이 한 손에 칵테일 잔을 들고 정원을 춤추듯 거닐 것만 같다. 땅에는 노란 수선화, 하늘에는 분홍 ‘갤럭시’. 목련과 수선화의 조합이 이토록 로맨틱한지 몰랐다. 흰색 목련이 퇴장할 무렵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노란 목련 ‘옐로 랜턴’까지 가세한 진정한 봄의 정원이다. 궁극의 아름다움은 우주로 통하는가. 큰 키와 분홍빛 꽃이 우람한 위용을 자랑하는 목련 중에는 ‘스타워스’라는 이름의 목련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 민간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식물 종을 보유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국제수목학회, 2000년)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천리포수목원이 세계적 수목원으로 불리는 건 목련, 호랑가시나무, 동백 등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결과다. 대표적으로 목련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926종이 천리포수목원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을 세운 이는 푸른 눈의 한국인이었다. 고 민병갈 원장(1921∼2002·미국 이름 칼 페리스 밀러)이다. 24세에 미군 장교로 인천에 첫발을 디딘 민 원장은 1950년대 한국은행에서 일했고, 투자 활동으로 돈을 모아 1970년부터 척박한 땅에 천리포수목원을 일궜다. 1979년에는 한국으로 귀화했다. 국내 최초로 인덱스 세미넘(세계 식물연구기관 등과 종자를 무상 교환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보유 수종을 늘려 수목원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에 있는 민병갈 원장 동상 옆에는 별 모양 ‘라즈베리 펀’ 목련이 연분홍 꽃을 풍성하게 피우고 있었다. 1987년 민 원장이 큰별목련 ‘레너드 메셀’에서 타가수분된 종자를 파종해 선발(신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수년간 발현 형질이 좋은 개체를 찾는 것)한 재배종이다.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남달리 좋아했기에 ‘어머니 나무’로 불린다. 민 원장은 집 앞에 심은 라즈베리 펀에게 매일 아침 “굿모닝, 맘(mom)”이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동상 오른쪽 앞 태산목 ‘리틀 젬’ 아래에는 흰 국화가 놓여 있었다. 2002년 4월 8일 타계한 민 원장의 22주기 추모식이 최근 열렸다. 50세에 척박한 천리포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81세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민 원장은 ‘나무가 주인인 수목원’을 강조했다. 그래서 “나 죽으면 묘 쓰지 마세요. 그럴 땅에 나무 한 그루 더 심으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마 그러지 못해 묘를 만들었다가 2012년 10주기 때에야 리틀 젬 아래에 그를 수목장했다. 민 원장이 아꼈던 라즈베리 펀도 그 무렵 밀러가든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 민 원장이 특히 아꼈다는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 목련도 있다. 이름처럼 꽃이 딸기우유 빛이다. 하늘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동양적인데 향기가 무척 달콤하다. 높이 5∼8m 정도로 자라는 나무에서 포도주 잔 모양의 꽃이 20cm 크기로 핀다.● 순간적이고도 영원한 아름다움 목련 꽃 형태는 컵, 접시, 튤립, 와인 잔 등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새티스팩션’ 목련 꽃은 컵 모양, ‘조 맥대니얼’은 와인 잔 모양이다. 특히 꽃잎이 모여 별 모양을 이루는 별목련은 천리포수목원에서 다양한 종류를 감상할 수 있다. 별목련 ‘크리산세무미플로라’는 겹벚꽃처럼 풍성한 꽃잎을 살랑거리는 모습이 상냥하고 발랄한 요정 같다. 토종인 고부시 목련을 원종으로 삼아 선발한 ‘투 스톤’ 목련은 정다운 함박꽃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은근한 매력이 있다. 큰별목련 ‘매그스 피루엣’은 풍성한 별 모양이 샤넬을 상징하는 흰 동백 같다. 빨간 동백, 앵초, 꽃댕강나무, 서향, 분꽃나무, 붓순나무 등이 제각기 색과 향을 뽐내는 봄의 정원에서 목련의 아름다움은 독보적이었다. 구도(求道)적이고 강인한 기운의 목련을 보면서 왠지 처연한 감정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목련은 1억4000만 년 전 백악기 화석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래된 식물이다. 그 오래된 ‘목련의 청춘’이 너무나 짧은 게 안타까워서였을까. 아니면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은 작아짐을 느끼는 걸까. 천리포수목원 목련을 감상한 후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다. 목련은 청순한 봉오리로부터 꽃을 피운 후 곧 퇴장한다. 프랑스 미학자 장뤼크 낭시(84)의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이라는 강연집을 꺼내 읽었다. 그는 ‘아름다움이 일시적인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름다운 질문입니다. 비 온 후 무지개를 상상해 보세요. 곧바로 사라져 버리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은 순간적이면서 동시에 영원합니다. 화가는 그림으로 그 아름다움을 화폭에 잡아두고 싶어 하지만 화폭은 훼손될 수 있어 영원하지 않아요. 영원함은 오랜 시간 지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에서 벗어난 것을 일컫습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비온디 목련’라는 이름의 목련도 있다. 봄비 내린 뒤 피면서 수목원에 봄을 가장 먼저 알리기 때문에 ‘비 온 뒤 목련’으로도 불린다. 오랜 기다림 후에 만난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은 아름다웠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다행이다. 목련이야말로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름다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축제가 끝나도 초가을까지 감상할 수 있어 사르르 목련 축제는 21일까지 열린다. 지금 가도 목련을 볼 수 있는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천리포수목원은 목련 종류가 워낙 많아 다양한 목련이 초봄부터 초가을까지 꽃을 피운다. 천리포수목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매주 감상할 만한 목련과 개화 상황을 소개하니 참조하면 좋겠다. 태안 안면도 수산시장 봄맞이 ‘안면도 수산물 축제’도 5월 15일까지 열린다. 최근 천리포수목원을 다녀온 친구가 스타워스 목련 사진을 영화 스타워스 OST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린 걸 봤다. 그 시각과 청각의 독특한 조합이 근사했다. 이것이 요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여행 방식이다. SNS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취향을 나누거나 공간을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혜안을 얻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1998년 국내 수목원 최초로 후원회원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후원회원은 2983명. 매월 일정액을 수목원에 후원하는 회원에게는 각종 혜택이 있다. 천리포수목원 내 숙소에서 숙박할 수 있는 ‘가든 스테이’를 유료로 이용할 수 있고, 후원회원 대상 해설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이달 10∼14일 진행한 ‘2024 후원회원 주간’에는 774명이 참여해 역대 가장 많이 참여했다. 일반 방문객뿐 아니라 후원회원과 자원봉사자들은 낯선 땅 한국에 나무를 심고 떠난 민 원장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안고 수목원을 찾는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수목원을 후원하고 함께 돌보는 문화가 활짝 꽃피울 때가 되었다.글·사진 태안=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일부 사진 천리포수목원 제공}

    • 202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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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리포수목원 목련의 순간적이며 영원한 아름다움[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지난 주말 천리포수목원에서의 한나절은 황홀했습니다. 세상에서 목련의 종류가 가장 많은 수목원에서 눈이 시리도록 목련을 봤으니까요. 컵케이크처럼 생긴 목련을 비롯해 꽃잎이 마흔 장이나 되는 별목련까지…. 4월의 탄생석인 다이아몬드보다 목련이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이달 21일까지 열리는 천리포수목원의 ‘사르르 목련 축제’에 간 것은 이 수목원을 설립한 고 민병갈 원장(1921~2002·미국 이름은 칼 페리스 밀러)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해 9월 썼던 ‘고 민병갈 천리포수목원장님에게 보내는 계절 편지[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기사()의 맨 마지막은 이랬습니다. ‘내년 봄 목련이 가득 필 무렵에도 가겠습니다. 각별히 아끼셨다는 ‘라즈베리 펀’ 목련, 딸기에 크림을 얹은 색 같다며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이라고 이름 붙이신 목련도 보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천리포는 계절마다 가봐야 한다고 말하나 봅니다. 천리포수목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원장님.’●민병갈 원장이 사랑한 목련예. 이번에 가서 라즈베리 펀 목련도,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 목련도 눈과 마음에 가득 담아왔습니다. 라즈베리 펀은 천리포수목원 밀러가든의 민병갈 원장 동상 옆에 별 모양의 연분홍 꽃을 풍성하게 피우고 있었습니다. 1987년 민 원장이 큰별목련 ‘레오나르드 메셀’에서 타가 수분된 종자를 파종해 선발(선택)한 재배종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이 목련을 남달리 좋아했다죠. 그는 천리포수목원 후박나무집에 살면서 집 앞에 라즈베리 펀을 심고 매일 아침 “굿모닝, 맘(Mom)”이라고 인사했다고 합니다. 동상 오른쪽 앞 태산목 ‘리틀 젬’ 아래에는 흰 국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2002년 4월 8일 타계한 민 원장의 22주기 추모식이 최근 열렸기 때문입니다. 50세에 척박한 천리포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81세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민 원장은 ‘나무가 주인인 수목원’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나 죽으면 묘 쓰지 마세요. 그럴 땅에 나무 한 그루 더 심으세요”라고 했다는데요. 남겨진 사람들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민 원장의 묘를 만들었다가 2012년 10주기 때에서야 리틀 젬 아래에 수목장을 했습니다. 민 원장이 아꼈던 라즈베리 펀도 그 무렵 밀러가든으로 옮겨 심어진 것이에요. 히야신스 향과 연분홍빛 라즈베리 펀이 어우러지는 공감각의 정원에서 어머니의 사랑과 아들의 효심을 느껴봅니다.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은 밀러가든 벚나무집 옆에서 만났습니다. 이름처럼 꽃이 딸기우유 빛입니다. 하늘거리는 모습이 어딘가 동양적인데다 향기가 무척 달콤합니다. 높이 5~8m 정도로 자라는 나무에서 포도주잔 모양의 꽃이 20cm 크기로 핍니다. ●‘불칸’, ‘갤럭시’…926종 목련의 향연천리포수목원이 ‘세계적’ 수목원으로 불리는 건 목련, 호랑가시나무, 동백 등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결과입니다. 천리포수목원이 현재 보유한 목련은 무려 926종. 이번 목련 축제에서는 그 목련들이 즐비한 목련정원과 산정목련원을 해설과 함께 둘러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시간 정도 동산을 오르며 보는 산정목련원은 올해 처음 개방됐습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끄는 목련은 ‘불칸’입니다. 화산을 뜻하는 ‘볼케이노’(volcano)와 불의 신 ‘불카누스’(Vulcanus) 등에서 유래한 이름답게 크고 강렬한 붉은색 꽃을 자랑합니다. 꽃 속 깊은 곳까지 온통 붉은색이라 정말로 화산 같아요. 궁극의 아름다움은 우주와 통하는 걸까요. 목련정원의 ‘갤럭시’와 민 원장이 살았던 후박나무집 앞 ‘스타워스’는 큰 키와 밝은 분홍빛의 꽃잎이 우람한 위용을 자랑합니다. ‘선듀(Sundew)’는 탐스러운 꽃이 무거워 나뭇가지가 내려앉은 듯한 곡선의 수형이 그림 같습니다. 목련이 이슬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해요. 다른 색상 목련보다 조금 늦게 꽃이 피는 노란색 ‘엘리자베스’와 ‘옐로 랜턴’도 이제 봉오리들을 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살랑살랑한 별목련들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겹벚꽃을 닮은 별목련 ‘크리산세무미플로라’는 상냥하고 발랄한 요정이었어요. 별목련은 높이 4~6m로 자라며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귀여운 여인 같은 목련입니다. ‘투 스톤’도 잊을 수 없어요. 우리 토종인 고부시 목련을 원종으로 해 선발한 목련인데요. 꽃잎이 15장 정도 달리면서도 우리네 함박꽃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은근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순간적이면서도 영원한 아름다움빨간 동백, 앵초, 꽃댕강나무, 서향, 분꽃나무, 붓순나무 등이 제각기 색과 향을 뽐내는 봄의 정원에서 목련의 아름다움은 독보적이었습니다. 특히 목련과 수선화는 아주 잘 어울리는 식재 조합이었어요. 해외 여느 정원보다 천리포수목원이 아름다웠습니다.저는 목련을 보면서 이탈리아의 ‘국민 화가’ 조르조 모란디(1890~1964)의 정물을 떠올렸습니다. ‘아니, 엄격하고 정교한 구성미를 가진 모란디의 길쭉한 화병들과 목련이 무슨 상관이냐’고요? 모란디가 정물을 그린 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덧없는 운명보다 영원불변의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이에요. 그도 꽃 그림을 그리긴 했습니다만, 곧 시드는 생화 대신 말린 꽃을 그렸죠. 작가가 영원을 추구한 방식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목련에서 모란디의 정물처럼 구도(求道)적이고 강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처연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련은 1억4000만 년 전인 백악기 화석에서도 발견될 만큼 오래된 식물이에요. 그 오래된 ‘목련의 청춘’은 왜 이리 짧아야 하나요. 생동하는 젊음을 어떻게든 붙들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일까요.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을 감상한 후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목련은 청순한 봉오리로부터 꽃을 피운 후 곧 퇴장하지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애달파서 프랑스 미학자 장 뤽 낭시(84)의 강연집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을 꺼내 읽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움이 일시적인 것은 아닌가’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아름다운 질문입니다. 비 온 후 하늘의 무지개를 상상해 보세요. 곧바로 사라져 버리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은 순간적이면서 동시에 영원합니다. 화가는 그림으로 그 아름다움을 화폭에 잡아두고 싶어 하지만 화폭은 훼손될 수 있어 영원하지 않아요. 영원함은 오랜 시간 지속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에서 벗어난 것을 일컫습니다.”천리포수목원에는 ‘비온디 목련’도 있습니다. 봄비 내린 뒤 피면서 수목원에 봄을 가장 먼저 알리기 때문에 ‘비온뒤 목련’으로도 불립니다. 오랜 기다림 후에 만난 천리포수목원의 목련은 아름다웠습니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안도합니다. 그래요.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거예요. 목련이야말로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아름다움인가 봅니다. 태안=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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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의 정원에서는 누군들 사랑하지 않으리요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남원을 다시 보게 됐다. 춘향전의 무대로만 아는 건 남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남원역까지 약 2시간 20분. 알고 보니 우리나라 정원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당일치기 여행으로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사랑이 뭘까 궁금하다면 남원에서는 나만의 답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빛깔의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이상향을 향한 그리운 사랑봄의 광한루원은 생명이다. 수양버들의 연두색 새잎들이 바람결 따라 살랑살랑. 나무에 봄기운이 오른다는 말뜻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춘향전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는 광한루원의 경치를 이렇게 전한다. ‘앞 시냇가 버들은 초록색 휘장을 둘렀고, 뒤 시냇가 버들은 연두색 휘장을 둘러, 한 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흐늘흐늘 춤을 춘다.’광한루원 앞 연못인 ‘연지’에는 천연기념물인 원앙 수십 마리가 커다란 잉어들과 함께 헤엄치고 있었다. 10년 전쯤 남원시가 잉어와 원앙을 해치던 수달의 접근을 막자 귀한 원앙 무리가 오작교 근처에 터를 잡았다. 원앙의 색상이 워낙 선명해 비현실 세계에 온 느낌이다. 하긴 광한루원은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곳이지 않나.1419년 조선의 재상 황희가 ‘광통루’라고 지은 누각 이름을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바꾼다.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떠 ‘광한루’라고 한 것이다. 이로써 광한루는 지상의 누각에서 천상의 궁전으로 격상된다. 광한루는 달나라 궁전, 연지는 은하수다. 돌다리에 네 개의 무지개 모양 구멍이 있는 오작교를 건너 광한루로 향한다. 저 끝에 그리운 견우가 서서 웃고 있을까. 은은한 달빛 아래 만나고 헤어지면 또 1년을 기다려야겠지.광한루가 있는 정원 일대를 통칭하는 광한루원은 조선을 대표하는 관아정원(官衙庭苑)으로 대한민국 명승(名勝)이다. 광한루에 오른다. 광한루의 진가는 내부에 들어섰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봄바람 드는 광한루에 서면 조선의 뛰어난 문인(文人) 정철이 발의한 세 개의 섬, 즉 삼신산이 시야에 펼쳐진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내부가 펑 뚫린 본루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연지와 오작교 그리고 대나무, 배롱나무,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신선의 세계다. 광한루에 걸린 현액(懸額)이 ‘계관(桂觀)’이다. 계수나무가 있는 달나라 궁전을 암시하는 것이다.광한루원에서는 다음 달 10~16일 제94회 춘향제가 열린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남원 유지와 주민, 권번 기생들이 돈을 모아 춘향사당을 준공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시작된 춘향제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성장했다.광한루원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옛날이야기에 머물지 않아 빛난다. 지난해 말 문화재청이 공개한 광한루원 홍보 영상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유산, 명승 광한루원’은 충격적일 정도로 참신했다. 국가대표 비보이 ‘윙’이 오작교와 광한루에서 춤을 추고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우나영 작가(활동명 흑요석)의 그림, 안숙선 명창과 남원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음악이 어우러졌다. 지금까지 12만 명이 봤다.이것이야말로 K정원 콘텐츠가 나아갈 방향 아닐까. 이상석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도 말한다. “다음 달 17일 국가유산청이 출범하면 명승 전통조경은 자연유산으로 분류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았던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와 조경을 알리는 데 정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자연유산인 전통정원이 국가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도록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랫사람을 헤아리는 명가(名家)의 사랑남원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민가 정원 ‘몽심재(夢心齋) 고택’도 있다.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국가민속문화재다. 집에 들어서니 대문채 앞에 150년 된 백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다. 홍매와 산수유도 봄을 알린다.몽심재 명칭은 고려 말 박문수가 정몽주에게 충절을 다지며 보낸 시에서 유래했다. “마을을 등지고 늘어서 있는 버드나무는 도연명이 꿈꾸고 있는 듯하고,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 숙제의 마음을 토하는 것 같구나(隔洞柳眠元亮夢 登山薇吐伯夷心)”라고 지은 시의 첫 줄 끝 자인 ‘몽(夢)’과 둘째 줄 끝 자인 ‘심(心)’을 따온 것이다. 죽산 박씨가 1700년대 초 호곡리로 집단 이주한 후 박문수의 14대손인 박동식이 이 집을 짓고 ‘몽심’을 당호로 삼았다. 이 집에는 줄기 밑둥과 뿌리가 호랑이 발을 닮아 ‘호족시’로 불리는 감나무도 있다.몽심재를 관리하는 장덕원 교무에 따르면, 집의 터를 잡은 박동식의 부친 박원유는 풍수지리에 뛰어났다. 멀리 견두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른다. 경사진 지형을 살려 여러 채 건물이 앞뒤로 높이를 달리해 지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안채의 2층 방이 참 로맨틱해 보였다. 저 방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얼마나 예쁠까.이 집은 인간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조선 양반의 전유 공간이었던 정자를 문간채 동쪽에 짓고 하인들의 쉼터로 내주었다. 즐거움이 가득하다는 뜻의 요요정(樂樂亭)이다. 정자 앞 연못인 천운담(天雲潭)은 연두색 개구리밥이 포근히 덮었다.놀라운 건 아랫사람들이 편히 쉬도록 사랑채에서는 보이지 않게 이 공간을 설계한 점이다. 안채 여성들의 휴식을 위해 부엌 쪽 지붕도 길게 뺐다. 연달아 대과 합격자를 배출한 만석꾼 박씨 집안은 기근이 들면 소작료를 받지 않았다. 지금 시대에도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장덕원 교무는 숨은 가드너 고수였다. 몽심재에는 무려 48종의 꽃이 보존되고 있다. 이제 곧 금영화, 꽃잔디, 아마꽃이 핀다. 5월에는 사랑채 앞에 가득 피는 달맞이꽃이 장관이란다. 그 꽃구경 하러 또 가야겠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면의 사랑남원시 이백면에는 ‘아담원’이라는 수목원이 있다. 배경 지식 없이 찾아갔다가 입구에서부터 깜짝 놀랐다. 나무들이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유리 통창을 통해 너른 정원을 바라보는 카페에는 책과 꽃이 가득했다. 더 올라가면 미술관이다. 프랑스 ‘니키 드 생팔’과 미국 ‘로버트 모어랜드’의 작품을 이곳에서 만날 줄이야. 아담원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산’이라는 뜻이다.알고 보니 ‘고려조경’이 나무를 가꾸던 조경농원이 2018년 정원으로 재탄생한 곳이었다. 고려조경은 LF네트웍스의 전신으로, 아담원은 구본걸 LF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지분을 소유한 LF 특수관계사였다. 현재는 LF의 자회사인 엘앤씨가 운영하는데, 워낙 숲이 울창해 ‘아담숲’으로도 불린다. 고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이 조성했던 경기 광주시 ‘화담숲’이 절로 떠오른다.● 지역 명소를 만든 화가의 고향 사랑2018년 문을 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숲으로 둘러싸인 전원형 미술관이다. 남원 출신 김병종 화백이 자신의 작품 400여 점을 고향에 기증해 남원시가 운영하고 있다. 젊은층 중심으로 연간 관람객이 8만 명에 이른다.경관부터 위로의 힘이 있다. 흰색 미술관 건물 앞에 찰랑대는 계단형 수경(水鏡)이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 지리산 자락을 바라보면서 새소리를 듣고, 봄기운 가득한 연초록 산수를 노란 송홧가루로 뒤덮은 김 화백의 그림을 보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는 평생 생명을 주제로 작업해 ‘생명 작가’로 불린다.지금 열리고 있는 ‘일상이 우리가 가진 인생의 전부’ 전시는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주제로 김 화백과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져 인상적이었다. 지역의 어린이들이 찾아와 자연과 문화예술을 함께 누리는 모습도 희망적이었다. 생명과 일상의 소중함을 남원에서 되새겨볼 수 있었다. 남원은 사랑이었다. 동아일보가 간추린 이 계절 여행 이야기, <여행의 기분>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남원=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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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 쇼콜라티에 피에르 마르콜리니… “우리의 비법은 특별한 카카오 열매”

    ‘2020 월드 페이스트리 스타즈’에서 우승한 초컬릿 디저트 전문가인 피에르 마르콜리니(사진)가 이달 중순 한국을 방문했다. 벨기에 왕실에서 공식 지정한 세계적인 쇼콜라티에인 그는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벨기에,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15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첫 매장을 열었다.생 로랑 등 럭셔리 업체와 협업해 온 그는 20여 년 간 초컬릿을 예술적으로 만들어 온 장인이다. 그랑 크루, 프랄린, 하트 컬렉션 등의 초컬릿 제품들이 특히 인기다.그는 이 매장에서 국내 고객들과 팬 미팅을 가지며 이들을 대상으로 카카오 농장과 자신의 초컬릿 철학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메종 피에르 마르콜리니의 50번째 매장을 한국에 오픈하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피에르 마르콜리니는 특별한 카카오 열매를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의 농장 10여 곳과 협업해 소싱한 카카오 열매를 직접 가공해 초콜릿을 만든다는 설명이다. 연 3, 4회 카카오 열매 생산 농장을 방문해 생산에서부터 매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관리한다고 한다. 그는 “여행하며 직접 공수한 카카오 열매로 우리만의 초콜릿을 만든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한국인들에게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디저트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가볍게 먹기 좋은 쿠모와 에끌레어 등을 꼽았다. 매장에 와서 한두 가지만을 골라야 한다면 머랭 위에 초콜릿 크렘 레제르를 올린 메르베이유와 직접 만드는 아이스크림을 추천했다.그는 “한국인들을 위한 메뉴를 특별히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의 방식으로 빙수 메뉴를 준비하고 있으니 오셔서 경험해보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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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컨셉, 콘텐츠 앞세우니 브랜드 알리고 매출도 쑥쑥

    패션 플랫폼 W컨셉이 콘텐츠를 앞세워 고객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디자이너 브랜드가 성장해 온 스토리부터 브랜드의 숨겨진 이야기, 패션 트렌드, 스타일링 팁 등 다양한 콘텐츠로 고객에게 다가선다. 고객 경험을 매출로 연결시켜 브랜드와 윈윈(Win-Win)한다는 전략이다.신진 브랜드 발굴 콘텐츠 ‘브랜드위키’W컨셉은 오리지널 코너에서 자체 제작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달까지 선보인 신규 콘텐츠만 5개다. 올해 초에는 ‘브랜드위키’라는 정기 큐레이션 콘텐츠를 오픈했다. 브랜드위키는 W컨셉이 큐레이션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짧은 글과 사진 위주로 소개하는 정보성 콘텐츠다. 브랜드 이름의 의미부터 설립 배경, 디자이너 철학, 대표 상품 등 브랜드의 최신 정보를 담아 매월 2∼3회 선보이고 있다.현재까지 소개한 브랜드로는 로우(L‘EAU), 더 웨이브(THE WAVE), 씨타(CITTA), 누아누(nuuanu), 로제프란츠(Rose Frantz), 쏘이르(soir) 등 6개다. 이들의 공통점은 론칭 3년 미만의 신생 브랜드로, 올해 W컨셉에서 처음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처럼 W컨셉이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발굴에 주목하는 이유는 ‘동반성장’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 속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진 원석을 발굴해 소개함으로써 고객에게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플랫폼 차별화를 꾀한다는 취지다.실제로 이 6개 브랜드 매출은 최근 한 달(2월 17일∼3월 17일) 매출이 직전 한 달(1월 18일∼2월 16일) 대비 60% 늘었다. W컨셉에서 브랜드를 소개하는 콘텐츠가 고객에게는 낯설지만 새로운 브랜드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이자 매출 상승을 돕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정기 큐레이션 콘텐츠 첫 선W컨셉은 쇼핑 룩북 ‘15 LOOKS’ 콘텐츠도 선보였다. 매월 트렌드 키워드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15가지 스타일링을 제안하고 있다. 1월에는 청룡의 해 테마로 블루 스타일링을 선보이는 썸띵 블루(SOMETHING BLUE), 2월에는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데이트룩 콘셉트의 룩을 소개하는 썸띵 러블리(SOMETHING LOVELY) 콘텐츠를 선보였다. 3월에는 새학기, 오피스 룩을 소개하는 프레시 스타트(FRESH START)를 소개했다. 한 콘텐츠당 50여개 브랜드에서 대표 상품을 큐레이션해 제안한다. 이를 통해 고객은 브랜드에 얽매이지 않고 트렌드에 맞춰 스타일링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고, 브랜드는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이외에도 입점 브랜드 오프라인 매장 스태프의 추천 스타일링을 제안하는 ‘프로스태프’, 인플루언서 연계 콘텐츠 ‘퀵스타일링 클래스’, 온라인 매거진 ‘W이슈’ 등을 선보이고 있다.W컨셉 관계자는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한 잉크, 모한 등은 W컨셉과 초창기부터 함께 성장해 온 대표적인 브랜드”라며 “더블유컨셉은 패션 시장을 이끌 차세대 브랜드를 발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는 인큐베이팅 플랫폼 역할을 강화해 브랜드와 윈윈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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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 디저트에 벚꽃 내려앉았네∼”

    《벚꽃 시즌이 찾아왔다. 호텔 업계가 핑크빛 설렘을 담은 다채로운 ‘꽃캉스 프로모션’을 선보인다. 벚꽃 모티브의 디저트와 음료 등이 오감을 즐겁게 한다. 》그랜드 하얏트 제주미쉐린 스타셰프의 벚꽃 테마 디저트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 내 그랜드 하얏트 제주는 4월 7일까지 미셰린 3스타 레스토랑 출신의 조나단 총괄 파티시에가 벚꽃 테마 디저트를 선보인다. 제주의 탁 트인 뷰를 자랑하는 라운지 38에서 벚꽃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길 수 있다. 벚꽃 테마의 마카롱과 롤케이크 등 7종류의 디저트와 트러플을 곁들인 브리 치즈 등 고급 식재료를 활용한 메뉴를 차와 함께 내놓는다. 델리와 갤러리 라운지에서도 벚꽃을 주제로 한 케이크와 페이스트리를 선보인다.롤링힐스호텔벚꽃 감성 ‘핑크 롤링 이벤트’실시!해비치 호텔 앤드 리조트가 운영하는 경기 화성의 롤링힐스 호텔이 이달 30일과 4월 6일에 벚나무 산책로가 조성된 호텔 정원에서 핑크 롤링 이벤트를 진행한다. 롤링힐스 호텔은 벚꽃 터널 산책로 및 50여 종의 꽃과 나무로 가꿔진 야외 정원이 조성돼 있어 봄꽃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하다. 더 키친 레스토랑 앞 잔디광장에서 펼쳐지는 핑크 롤링 이벤트는 분홍빛 꽃들로 장식된 핑크 포토 부스, 다양한 디저트와 음료가 준비된 테이스티 부스 등으로 구성된다.위(WE)호텔제주벚꽃 차와 칵테일 프로모션위(WE) 호텔 제주는 로비 라운지 아잘리아에서 피부 미용에 좋은 벚꽃 차와 벚꽃 칵테일 등 벚꽃 프로모션을 4월 15일까지 선보인다. 벚꽃 프로모션 메뉴는 벚꽃 차 세트(벚꽃 차 한 잔과 약과 두 개), 화이트 블라섬 칵테일, 아잘리아 칵테일 등 세 가지로 각 1만 원에 즐길 수 있다. 벚꽃 차를 즐긴 후 벚꽃이 만발한 호텔 주변 숲 곳곳을 산책하면 벚꽃 힐링이 된다.시그니엘 서울봄 내음 가득한 벚꽃, 로맨틱한 휴식서울 벚꽃 명소로 손꼽히는 석촌호수의 동호 쪽에 위치한 시그니엘 서울은 벚꽃 시즌 한정으로 4월 20일까지 조이풀 스프링 패키지를 선보인다. 객실 1박과 벚꽃 칵테일 바우처 2매로 구성됐다. 특히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객실이 우선 배정돼 객실 내에서도 만개한 봄꽃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칵테일 바우처로 시그니엘 서울 79층에 위치한 ‘더 라운지’에서 블라섬 마티니와 블라섬 하이볼 등을 마실 수 있다.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봄의 달콤함 담은 패키지 출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는 이달 31일까지 러브 블라섬 패키지를 선보인다. 클래식 룸 또는 주니어 스위트 1박, 그랜드 델리 수제 초컬릿 8구 세트, 로비 라운지&바의 딸기 음료 두 잔으로 구성된다. 인터컨티넨탈 코엑스는 4월 30일까지 객실 안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스위트 블라섬 패키지를 준비했다. 클럽 클래식 룸 1박과 조식, 애프터눈 티 등으로 구성됐다.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몽상클레르, 벚꽃 시즌 한정 디저트 출시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베이커리 브랜드 몽상클레르에서 체리블로섬 쇼트케이크를 선보인다. 분홍빛 벚꽃을 형상화한 한정판 디저트로, 통팥 앙금과 바닐라 크림 브륄레가 들어가 쫀득한 식감에 라즈배리 잼의 상큼달콤한 맛을 더한다. 아기자기한 벚꽃 초컬릿 장식을 더해 눈과 입을 모두 즐겁게 해 주어 선물용으로 제격이라는 설명이다. 일본 도쿄에 본점을 둔 몽상클레르는 국내에서는 반얀트리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호텔 나루 서울-엠갤러리봄 시즌 애프터눈 티 세트 선보여호텔 나루 서울-엠갤러리는 5월 31일까지 라운지 앤 데크에서 체리 블라섬 애프터눈 티를 선보인다. 바닐라 판타코타, 팡도르, 벚꽃 마카롱 등 화사한 봄의 색을 입은 8종의 디저트가 나온다. 입맛을 돋워줄 메뉴로는 치킨 타코와 로제 떡볶이 등이 준비된다. 체리 블라섬 애프터눈 티는 총 3부로 운영된다. 1부는 낮 12시∼오후 2시, 2부는 오후 2시 반∼4시 반, 3부는 오후 5∼7시다. 3부에는 스페셜 선셋 칵테일 두 잔이 추가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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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美)의 역사’를 식물과 전시로 읽는다

    연분홍색 서향(瑞香)이 피어나 미니 온실을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웠다. 봄의 전령사인 노란색 풍년화도 피었다. 조만간 목련과 작약도 만발할 것이다. 이곳은 경기 오산시 가장산업단지 아모레 뷰티파크 안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이다. 공장, 식물원, 아카이브…아모레 뷰티파크식물원을 둘러보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아모레퍼시픽의 믿음을 체감하게 된다. 올해는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회장(1924∼2003)의 탄생 100주년이다. 팩토리(공장), 원료식물원, 아카이브로 구성된 아모레 뷰티파크는 예약자 대상으로 투어를 진행하는데 연말까지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100년 | 1924-2024’라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설화수’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화장품을 만드는 아모레퍼시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모레 뷰티파크는 팩토리 앞 야외에 설치된 높이 5m 폭 9m의 파란색 대형 조각상이 가장 먼저 강렬한 인상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자비에 베이앙의 ‘스케이터’(2014년)라는 작품이다.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질주하는 쇼트트랙 선수의 역동감이 생생하게 전해온다. 서성환 선대회장은 프랑스를 사랑한 기업인이었다. 그가 1960년 첫 프랑스 방문길에 들렀던 남프랑스 그라스의 라벤다 밭에서 받은 감동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세계적 향수 산지인 그라스에서 식물이 경제, 나아가 문화와 만나는 것을 목격했다. 식물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식물을 활용한 화장품을 생산하고 수목원과 녹차 밭 조성을 향한 꿈을 키웠다. 아모레퍼시픽 팩토리 투어는 팩토리, 원료식물원, 아카이브 순서로 진행된다. 1층 팩토리 스테이션에는 화장품 제조·포장 공정에서 포착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 월이 있다. 2층 팩토리 아카이브에서는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 설립 초기부터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3층 팩토리 워크에서는 다양한 제조·생산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식물로 역사를 말하다,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18개의 주제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회사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1640여 종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식물원 입구 마당에는 15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서 선대회장이 특별히 아끼던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다음은 이 회사를 대표하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있는 시원(始園). 아모레퍼시픽은 서 선대회장의 어머니인 고 윤독정 여사가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던 개성의 ‘창성 상점’을 모태로 한 기업이다. 차 나무도 이 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 선대회장이 제주의 척박한 땅을 사들여 녹차 밭으로 일궈낸 것은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기업인의 집념이었다.기능성 식물 정원을 거치면 장미원이 나온다. 아모레퍼시픽의 최초 브랜드 화장품인 ‘메로디 크림’(1948년)의 상표 중앙에 바로 장미가 있었다. 라벤다원은 서 선대회장이 감명받았던 그라스의 라벤다 밭을 구현한 정원이다. 샤넬의 ‘넘버 5’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자도르(J’ador)’ 등 세계의 유명 향수들이 그라스에서 탄생했다. 그라스는 장미와 제라늄 등 원료 식물들이 재배되고 그 식물을 가공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향료 산업을 꽃피울 수 있었다. 서 선대회장은 그라스 방문을 계기로 식물에 관심을 키워 우리 식물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시켰다. 세계 최초의 인삼 화장품인 ‘ABC 인삼 크림’(1966년)을 만들고, 1997년에는 한방화장품 ‘설화수’를 내놓았다.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곳곳이 비밀의 정원이다. 침엽수원에 들어서 오솔길에서 만나는 편백나무와 구상나무는 제주의 곶자왈에 온 느낌을 준다. 암석원도 지형과 식재가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뒤편의 경사지와 흡사하다. 삼지구엽초, 눈개쑥부쟁이, 깽깽이풀…. 작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우리 풀들이 땅을 포근하게 덮고 있다. 정원 조경은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와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 대표가 맡았다. “1970년대 초 독일에 가든 쇼를 보러 갔는데, 온통 우리나라 꽃 천지였다. 정작 국내에서는 꽃 취급도 안 하는 꽃들이 어엿하게 ‘코리아’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우리 꽃이 중요한지 모르고 외국 꽃만 찾던 게 민망했다. 식물을 향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아모레퍼시픽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좋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정 대표)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과거 수원 사업장에서 이식해 온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들로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는 공간이다.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 식물 중에서 뽕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키 큰 교목을 비롯해 산수유와 매화나무 같은 과수들, 구기자와 닥나무 등 키 작은 관목들을 섞어 심었다.” (박 대표)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의 비밀의 정원은 맨 마지막에 있다. 정원 갤러리다. 유리 통창을 통해 멀게는 자작나무 숲, 가까이로는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에 연밥이 떠다니는 풍경이 꼭 오리가 헤엄치는 모습 같다. 여름에는 이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 찬다.아모레퍼시픽의 정원들에는 늘 물이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건축을 맡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5층의 야외 정원에도,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인 티스톤 옆에도 네모난 연못에 물이 찰랑거린다. 아모레퍼시픽, 그전의 태평양화학공업사라는 사명(社名)에도 가장 큰 바다(태평양)라는 물이 들어있다. 부드럽고 푸른 물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창업자의 꿈은 그렇게 정원에 구현돼 있다.아카이브 전시의 힘1980년부터 기업 사료 수집을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오산 아모레 뷰티파크 내에 아카이브 독립 건물을 신축했다. 아모레퍼시픽이 그동안 생산한 화장품을 비롯해 기계 설비, 광고물, 직원 유니폼 등 8만여 건의 기업 자료가 소장돼 있다. 기업 활동의 결과물인 아카이브의 다양한 소장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형 수장고도 운영하고 있다.이번 기획 전시에서는 1955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신문광고를 시작해 ‘산소같은 여자’ 등 여러 화제작을 남긴 광고 포스터들, 1964년 새로운 화장품 유통경로로 선보인 방문판매 제도 관련 사진들, 서 선대회장의 집무실을 재현한 공간, 전·현직 아모레퍼시픽 임직원의 증언을 담은 기업 영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와 식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을 접목해 소비자와 문화적으로 소통하는 기업의 노력을 담아냈다. 가히 아카이브 전시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오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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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美)의 역사’를 식물과 전시로 읽는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연분홍색 서향(瑞香)이 피어나 미니 온실을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웠다. 봄의 전령사인 노란색 풍년화와 수선화도 피었다. 조만간 목련과 작약도 만발할 것이다. 이곳은 경기 오산시 가장산업단지 아모레 뷰티파크 안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이다.●“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식물원을 둘러보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아모레퍼시픽의 믿음을 체감하게 된다. 올해는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서성환 선대회장(1924~2003)의 탄생 100주년이다. 팩토리(공장), 원료식물원, 아카이브로 구성된 아모레 뷰티파크는 예약자 대상으로 투어를 진행하는데 연말까지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100년 | 1924-2024’라는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설화수’ ‘마몽드’ ‘이니스프리’ 등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화장품을 만드는 아모레퍼시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아모레 뷰티파크는 팩토리 앞 야외에 설치된 높이 5m 폭 9m의 파란색 대형 조각상이 가장 먼저 강렬한 인상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자비에 베이앙의 ‘스케이터’(2014년)라는 작품이다.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질주하는 쇼트트랙 선수의 역동감이 생생하게 전해온다. 서성환 선대회장은 프랑스를 사랑한 기업인이었다. 그가 1960년 첫 프랑스 방문길에 들렀던 남프랑스 그라스의 라벤다 밭에서 받은 감동이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세계적 향수 산지인 그라스에서 식물이 경제, 나아가 문화와 만나는 것을 목격했다. 식물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식물을 활용한 화장품을 생산하고 수목원과 녹차 밭 조성을 향한 꿈을 키웠다. 아모레퍼시픽 팩토리 투어는 팩토리, 원료식물원, 아카이브 순서로 진행된다. 1층 팩토리 스테이션에는 화장품 제조·포장 공정에서 포착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 월이 있다. 2층 팩토리 아카이브에서는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 설립 초기부터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3층 팩토리 워크에서는 다양한 제조·생산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다.●식물로 역사를 말하다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18개의 주제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 회사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1640여 종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식물원 입구 마당에는 15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서 선대회장이 특별히 아끼던 나무를 옮겨 심은 것이다. 다음은 이 회사를 대표하는 동백나무와 차나무가 있는 시원(始園). 아모레퍼시픽은 서 선대회장의 어머니인 고 윤독정 여사가 동백기름을 만들어 팔던 개성의 ‘창성 상점’을 모태로 한 기업이다. 차 나무도 이 기업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 선대회장이 제주의 척박한 땅을 사들여 녹차 밭으로 일궈낸 것은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기업인의 집념이었다.기능성 식물 정원을 거치면 장미원이 나온다. 아모레퍼시픽의 최초 브랜드 화장품인 ‘메로디 크림’(1948년)의 상표 중앙에 바로 장미가 있었다. 라벤다원은 서 선대회장이 감명받았던 그라스의 라벤다 밭을 구현한 정원이다. 샤넬의 ‘넘버 5’와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자도르(J’ador)’ 등 세계의 유명 향수들이 그라스에서 탄생했다. 그라스는 장미와 제라늄 등 원료 식물들이 재배되고 그 식물을 가공하는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향료 산업을 꽃피울 수 있었다. 서 선대회장은 그라스 방문을 계기로 식물에 관심을 키워 우리 식물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시켰다. 세계 최초의 인삼 화장품인 ‘ABC 인삼 크림’(1966년)을 만들고, 1997년에는 한방화장품 ‘설화수’를 내놓았다.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곳곳이 비밀의 정원이다. 침엽수원에 들어서 오솔길에서 만나는 편백나무와 구상나무는 제주의 곶자왈에 온 느낌을 준다. 암석원도 지형과 식재가 제주 오설록 티하우스 뒤편의 경사지와 흡사하다. 삼지구엽초, 눈개쑥부쟁이, 깽깽이풀…. 작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진 우리 풀들이 땅을 포근하게 덮고 있다. 정원 조경은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와 박승진 디자인스튜디오 로사이 대표가 맡았다. “1970년대 초 독일에 가든 쇼를 보러 갔는데, 온통 우리나라 꽃 천지였다. 정작 국내에서는 꽃 취급도 안 하는 꽃들이 어엿하게 ‘코리아’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우리 꽃이 중요한지 모르고 외국 꽃만 찾던 게 민망했다. 식물을 향한 진정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아모레퍼시픽이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좋은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정영선 대표) “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은 과거 수원 사업장에서 이식해 온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들로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는 공간이다. 화장품에 사용되는 원료 식물 중에서 뽕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등 키 큰 교목을 비롯해 산수유와 매화나무 같은 과수들, 구기자와 닥나무 등 키 작은 관목들을 섞어 심었다.” (박승진 대표)아모레퍼시픽 원료식물원의 비밀의 정원은 맨 마지막에 있다. 정원 갤러리다. 유리 통창을 통해 멀게는 자작나무 숲, 가까이로는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에 연밥이 떠다니는 풍경이 꼭 오리가 헤엄치는 모습 같다. 여름에는 이 연못이 연꽃으로 가득 찬다. 아모레퍼시픽의 정원들에는 늘 물이 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건축을 맡은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 5층의 야외 정원에도,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인 티스톤 옆에도 네모난 연못에 물이 찰랑거린다. 아모레퍼시픽, 그전의 태평양화학공업사라는 사명(社名)에도 가장 큰 바다(태평양)라는 물이 들어있다. 부드럽고 푸른 물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창업자의 꿈은 그렇게 정원에 구현돼 있다.●아카이브 전시의 정석1980년부터 기업 사료 수집을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오산 아모레 뷰티파크 내에 아카이브 독립 건물을 신축했다. 아모레퍼시픽이 그동안 생산한 화장품을 비롯해 기계 설비, 광고물, 직원 유니폼 등 8만여 건의 기업 자료가 소장돼 있다. 기업 활동의 결과물인 아카이브의 다양한 소장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형 수장고도 운영하고 있다.이번 기획 전시에서는 1955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신문광고를 시작해 ‘산소같은 여자’ 등 여러 화제작을 남긴 광고 포스터들, 1964년 새로운 화장품 유통경로로 선보인 방문판매 제도 관련 사진들, 서 선대회장의 집무실을 재현한 공간, 전·현직 아모레퍼시픽 임직원의 증언을 담은 기업 영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와 식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첨단 기술을 접목해 소비자와 문화적으로 소통하는 기업의 노력을 담아냈다. 가히 아카이브 전시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동아일보가 간추린 이 계절 여행 이야기, <여행의 기분>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오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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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 봄을 품은 창덕궁으로 가보라

    겨우내 굳게 닫혀 있던 창덕궁의 창과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가 5∼16일 궁궐에 자연 채광을 들이고 통풍을 시키는 ‘창덕궁 빛·바람 들이기 행사’를 열었다. 봄바람이 솔솔 드나드는 창호(窓戶)를 통해 그림 같은 전각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봄을 맞은 창덕궁은 평소 보기 힘들던 모습을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정전(仁政殿) 내부가 대표적이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된 인정전은 창덕궁 중심 건물로 즉위식을 비롯해 조선 조정(朝廷)의 공식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문화재청은 31일까지 매주 수∼일요일 인정전 내부를 관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정전 내부에 들어서면 위아래가 확 트인 통층 형태를 실감할 수 있다. 천장 중앙에는 나무로 된 봉황 모양 조각이 왕의 권위를 보여준다. 평소 밖에서는 도저히 관람할 수 없는 천장 장식도 볼 수 있다. 인정전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어좌(御座·임금 자리) 위 봉황 부조다. 봉황 한 쌍이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모습이다. 해와 달, 다섯 개 산봉우리, 폭포, 소나무, 파도를 그린 어좌 뒤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도 찬찬히 관람할 수 있다. 이명선 창덕궁관리소장은 “인정전은 아파트로 치면 11층 높이에 해당하는, 250년 된 목조 건물”이라며 “샹들리에와 커튼 같은 외래 문물도 받아들여 조선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를 볼 수 있는 귀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창덕궁 후원 부용지(芙蓉池)도 봄맞이가 한창이다. 16년 만에 연못 속 나뭇잎과 뻘을 걷어내고 석축을 손보는 작업을 하고 있어 물 빠진 부용지를 볼 기회다. 22일부터 28일까지는 ‘봄을 품은 낙선재’ 관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낙선재(樂善齋)는 조선 24대 임금 헌종 13년(1847년)에 왕의 사적 공간으로 지어졌다. 낙선재 건물을 기준으로 우측에는 석복헌과 수강재, 뒤편에는 각종 화초와 화계(花階·계단식 화단)가 있는데 이를 통칭해 낙선재라고 부른다. 덕혜옹주를 비롯해 조선 왕실 후손들이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봄을 품은 낙선재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평소 개방이 잘 안 되는 석복헌과 수강재 일원 봄꽃 핀 뒤뜰을 둘러보며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화려하게 치장한 다른 건물들과 달리 낙선재는 단청을 생략해 단정하고 격조 있는 기품으로 봄꽃들을 빛낸다. 낙선재는 화계 모란과 주변 매화가 특히 유명하다. 낙선재 후원 담장 서편 만월문에서 보이는 상량정과 취운정 동편 작은 문에서 보이는 창경궁 정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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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을 느끼고 싶다면 창덕궁으로… 월말까지 인정전 내부공개[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겨우내 굳게 닫혀 있던 창덕궁 건물의 창과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덕궁관리소가 이달 5~16일 궁궐에 자연채광을 들이고 통풍을 시키는 ‘창덕궁 빛·바람들이기 행사’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봄바람이 솔솔 드나드는 열린 창호(窓戶)를 통해 전각 내부가 들여다보였습니다. 이토록 살아있는 풍경 액자가 있을까요. 바람이 통하는 궁궐은 ‘아, 이곳에 사람이 살았었지’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봄을 맞은 창덕궁은 평소 보기 힘들었던 모습을 요즘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인정전 내부입니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된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왕위 즉위식 등 조선의 공식 행사가 열렸던 곳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달 31일까지 매주 수∼일요일 인정전 내부를 관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인정전 내부에 들어서면 위아래가 확 트인 24m 높이의 통층 형태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천장 중앙에는 봉황 목(木) 조각이 있어 왕의 화려한 권위를 보여줍니다. 평소 밖에서는 도저히 관람할 수 없는 천장 장식도 볼 수 있습니다. 인정전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어좌(御座·임금의 자리) 위의 봉황 부조입니다. 봉황 한 쌍이 구름 속을 날고 있는 모습이지요. 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 폭포, 소나무, 파도를 그린 어좌 뒤 일월오봉도도 찬찬히 관람할 수 있습니다.이명선 창덕궁관리소장은 말합니다. “인정전은 현대 아파트로 치면 11층 높이에 해당하는 250년 된 목조 건물입니다. 샹들리에와 커튼 등 외래문물도 받아들여 조선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를 볼 수 있는 귀한 공간입니다.”창덕궁 후원 부용지도 봄맞이가 한창입니다. 16년 만에 연못 속 나뭇잎과 뻘을 걷어내며 석축을 손보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물 빠진 부용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누군가는 “공사 중이네”라고 지나칠 수 있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16년 만에 부용지 연못 속을 보는 기회랍니다. 창덕궁관리소 관계자들과 주합루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조선의 왕은 부용정을 내려다보면서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요. 22일부터 28일까지는 ‘봄을 품은 낙선재’ 관람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낙선재는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 13년(1847년)에 왕의 사적인 공간으로 지어졌습니다. 낙선재 건물을 기준으로 우측에는 석복헌과 수강재, 뒤편에는 각종 화초와 화계(花階·계단식 화단)가 있는데 이를 통칭해 낙선재라고 부릅니다. 덕혜옹주 등 조선 왕실 후손들이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합니다. ‘봄을 품은 낙선재’를 통해서는 평소에는 잘 개방이 안 되는 석복헌과 수강재 일원의 봄꽃 핀 뒤뜰을 둘러보며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낙선(樂善)은 ‘선을 즐긴다’는 뜻으로 헌종의 마음이 깃든 곳입니다. 낙선재로 들어서는 대문인 장락문(長樂門)은 신선이 사는 선계를 은유하는 것으로, 중국 설화에 등장하는 서왕모의 거처인 장락궁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현재는 매화가 막 피기 시작했지만 조만간 매화가 흐드러지면 장관이 펼쳐지게 됩니다.석복헌은 헌종이 순화궁 경빈 김씨의 처소로 지어준 곳입니다. 그는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아 낙선재에서 함께 지냅니다. 하지만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이 생에서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헌종이 경빈 김씨를 맞은 후 2년 뒤에 23세의 나이로 승하했기 때문이죠. 슬하에 자식이 없어 홀로 지내던 경빈은 1907년 76세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긴긴 세월 그리움의 강(江)이 얼마나 깊었을까요.낙선재 영역은 집들이 담장으로 나뉘어 독립된 공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나지막한 동산과 맞닿아 서로 드나들 수 있어 하나의 후원을 이룹니다. 뒷동산이 집을 아늑하게 감싸는 지형적 특성에 계단식 석축을 쌓아 후원으로 연결시킵니다. 석축에는 옥잠화, 앵두, 모란, 작약, 진달래, 철쭉, 조팝나무, 섬개야광나무 등이 괴석과 어우러진 화계가 조성돼 있습니다. 이 꽃담이야말로 한국 궁궐의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비밀의 정원이지요. 헌종과 경빈 김씨가 낙선재에 앉아 창을 열면 액자처럼 감상할 수 있던 사랑의 정원이지요.낙선재 영역에는 부속 건물이 각각 자리합니다. 석복원 후원에는 ‘한가하고 조용하다’는 뜻을 지닌 ‘한정당(閒靜當)’, 수강재 후원에는 푸른 구름이라는 뜻의 ‘취운정(翠雲亭)’이 각각 있습니다. 취운정은 숙종 12년(1686년)에 세워져 ‘동궐도’에서도 그 모습을 살필 수 있습니다. 낙선재 뒤뜰 높은 언덕에는 육모 정자인 ‘상량정’이 있습니다. 상량정의 원래 이름은 평원루(平遠樓)로, 평원은 ‘먼 나라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의미입니다. 여러 나라와 친선을 도모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상량정은 장수·부귀·다산을 상징하는 박쥐·복숭아·청룡·쌍학 등의 문양이 장식된 정자입니다. ‘창덕궁 달빛 축전’ 때 정자에서 대금을 연주하는 모습이 많은 사랑을 받습니다. 낙선재 후원은 담장으로 구분되며 둥근 만월문(滿月門)을 통해 승화루 후원과 연결됩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궁궐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단청을 생략해 단정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낙선재의 봄은 특별합니다. 꽃담에 화사한 꽃이 피어나고, 좋은 의미를 품은 바람이 깃들어 소박하면서도 격조가 흐릅니다. 특히 화계의 모란과 작약, 주변의 매화가 유명합니다. 낙선재 후원 담장 서편 만월문에서 보이는 상량정과 취운정 동편 작은 문에서 보이는 창경궁 정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습니다. 왕의 시선과 걸음으로 봄의 궁궐을 걸어보시죠.동아일보가 간추린 이 계절 여행 이야기, <여행의 기분>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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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도의 세월 품은 비밀의 정원, 길손을 반긴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시냇물을 건너니 낙원이었다. 차밭을 품에 안은 월출산 옥판봉 기세가 상쾌했다. 이런 세상이 있었나. 전남 강진군 백운동 원림(園林)은 그야말로 비밀의 정원이었다. 다산 정약용과 친구들이 은거와 유배의 삶에서도 땅을 읽어 자리를 잡고 경관을 즐긴 기상이 깃들어 있었다. 해남에서는 고산 윤선도의 정신을 따르는 정원 문화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곧 개장을 앞둔 ‘산이정원’은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척박한 간척지에 정원 도시를 만드는 꿈을 담고 있다. 생명의 혼(魂)이 깃든 강진과 해남 비밀의 정원에 다녀왔다.●다산도 반한 백운동 원림백운동 원림 주변에는 월출산에서 발원한 시냇물이 흐른다. 초록 이끼를 포근하게 덮은 돌 위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가면 정원 담장 앞에 다다른다. 한국 정원의 야트막한 담장은 볼 때마다 참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릴 건 적당히 가리면서도 내부를 드러내 방문객을 편안하게 해 주는 환대다.담장 아래에는 자그맣게 네모난 구멍이 파여 있다. 정원에 들어서면 구멍의 쓸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구멍으로 바깥 물이 들어와 정원 안 기다란 수로와 네모꼴 연못을 거쳐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것이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은 당시 백운동 주인이던 이덕휘와 교류하면서 백운동 12경(景)을 노래하고 초의선사에게 그림을 그리게 해 20쪽짜리 시화첩 ‘백운첩’을 남겼다. 이 책에서 다산이 꼽은 백운동 제5경이 유상곡수(流觴曲水)다. ‘담장 뚫고 여섯 굽이 흐르는 물이 고개 돌려 담장 밖을 다시 나간다. 어쩌다 온 두세 분 손님이 있어 편히 앉아 술잔을 함께 띄우네.’ 다산, 초의, 남종화 대가인 소치 허련 등이 이 정원에 모여 학문을 논하고 예술을 즐겼다.백운동 원림은 담양 양산보 소쇄원, 완도군 보길도 윤선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조선 중기 이담로가 1660년대에 조성한 후 대대로 장손이 물려받아 살면서 가꾸고 있다. 2012년 제12대 백운동 주인이 된 이승현 씨(65)가 2015년에야 이 정원을 일반에 개방했으니 그전까지는 정말로 비밀의 정원이었다. 2019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이 됐다.이 씨와 함께 백운동 원림을 둘러봤다. 신선이 머무는 곳이란 뜻의 정선대(停仙臺)에 오르니 월출산 봉우리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동쪽 뜰 운당원은 왕대나무밭에 눈이 쌓이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본채인 자이당 마루에 앉으니 홍매화가 피어난 정원이 평온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무심한 듯 놓여 있는 몇 개의 커다란 돌은 잠시 근심을 내려놓으라고 마당에 찍은 점(點)일까. 정원을 만든 이담로의 묘소 뒤로는 오래된 동백나무가 있다. 조만간 붉은 동백이 만개해 묘 위에 소복하게 내려앉는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고산의 정신이 담긴 정원 문화 해남은 천혜의 풍광과 더불어 차(茶)와 걷기 같은 정원 문화가 두루 발달한 곳이다. 3월 초 황토와 청보리가 어우러진 해남 들녘은 생명의 기운이 가득했다. 달마산 기암절벽 위 신비로운 암자인 도솔암을 향해 걸어보았다. 미황사에서부터 능선 따라 올라가도 되지만 도솔암 주차장에서 30분 정도 걸어도 다다를 수 있다. 바위 병풍이 화창한 날씨를 만나 바다 전망과 어우러지니 이곳이 왜 해남 제1경인지 알겠다. 도솔암이야말로 진정한 암석원(rock garden)이었다. 도솔암 오가는 길에 ‘봄 처녀’라는 꽃말을 가진 토종 꽃 산자고와 봄까치꽃을 만나 반가웠다.해남읍 연동리에 있는 고산 윤선도 고택 사랑채인 녹우당은 효종이 고산에게 내려준 경기 수원의 집을 현종 9년(1668년)에 해남으로 옮겨온 것이다. 해남 윤씨 19대 한경란 종부에 따르면 고산의 고조부 어초은 윤효정이 지었던 원래 집터에 사랑채를 옮기다 보니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게 됐다. 어초은 사당 옆에는 동백꽃이 피었고, 뒷산에는 500년 넘은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졌다.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 지혜에 이르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고산은 정원에 구현했다. 담장 옆 매화 향기가 너무도 은은해 한참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해남에서 발견한 새로운 비밀의 정원은 두륜산 자락 ‘설아다원’이다. 차 마시며 힐링하는 젊은 감성의 한옥 스테이 뒤편으로 3만3000㎡(약 1만 평) 규모 유기농 차밭 정원이 펼쳐진다. 녹나무, 삼나무, 소나무가 둘러싼 그림 같은 풍경이다. 방문객이 찻잎을 직접 따서 덖으며 차를 만들어 볼 수 있다. 프랑스 쇼몽 가든 페스티벌에 온 듯 정원에 위트와 철학을 담은 ‘포레스트 수목원’, 호수와 정원 산책로가 호젓한 해남 민간 정원 1호 ‘문가든’도 들러보자.●미래 세대를 위한 ‘산이정원’이제 새로운 명소를 여행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에 5월 초 문을 여는 산이정원이다. ‘산이 정원이 된다’는 뜻을 담은 정원형 식물원이다. 30여 년간 경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을 일군 이병철 산이정원 대표(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 부사장)가 새로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2025년까지 조성할 52만3000㎡(약 16만 평) 중 16만5000㎡(약 5만 평)가 이번에 문을 연다. 산이정원은 보성그룹, 전남도, 전남개발공사 등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 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의 ‘솔라시도(태양을 뜻하는 solar와 바다를 뜻하는 sea의 합성어)’ 프로젝트 중 하나다. 솔라시도는 민간이 이끄는 국내 최대 규모 신(新)환경 스마트시티 사업이다. 산이정원은 이 도시의 상징이 될 예정이다.미리 가본 산이정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바닷물이 호수가 된 물이정원이었다. 시냇물을 지나 백운동 원림에 들어서듯 호수를 건너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물이정원에는 어른들의 잃어버린 꿈과 아이들이 찾는 꿈을 동시에 담은 이영섭 작가의 ‘어린왕자’ 작품도 설치돼 있다.산이정원은 정원이 어떻게 생태와 미래를 담아야 하는지 보여준다. 일년초로 화려한 꽃밭을 꾸미는 게 아니라 여러해살이 야생화와 수목으로 사계절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높은 곳에서 조망하면 나무들이 해남향교에서 문양을 딴 연꽃과 붉은 홍가시나무 형태를 이룬다. 사이프러스를 죽 심어 이탈리아 토스카나 정원을 연상시키는 드넓은 ‘하늘마루 정원’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산이정원은 정원도시포럼과 손잡고 기후위기를 비롯한 미래 이슈에 대응하는 정원 도시를 모색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탄소 저감나무 2050그루를 기부받아 심은 ‘약속의 정원’, 청띠제비나비 서식처인 후박나무 군락지를 보존해 명상을 이끄는 ‘나비의 숲’, 인생 최고의 서약을 위한 ‘웨딩 가든’…. 언덕 위 커다란 동백나무는 마을의 어르신이 100여 년 전 선조가 후손을 위해 심어주신 뜻을 담아 정원 측에 전달했다. 우리 정원의 원류와 미래를 함께 본 여행이었다. 땅을 잘 읽어내 한국의 아름다움을 물려주는 백운동 원림과 녹우당의 정신을 산이정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바닷물 염분을 차단해 간척지의 기적을 이뤄내는 산이정원에서 동박새 소리를 듣고 오색기린초와 바위솔을 보았다. 그 작은 생명체들이 참 귀하고 감사했다. ●강진과 해남 별미⓵다산밥상=강진 대표 관광지인 사의재 주모가 차려주는 아욱된장국과 바지락전 맛집.⓶원조 해남고구마빵 피낭시에=해남 대표 특산물 해남고구마 모양과 색깔을 그대로 살린 빵이 인기인 곳.⓷해남 성내식당=된장 육수 한우 샤부샤부 전문점. 반찬으로 나오는 김국이 별미.⓸땅끝정인숙칼국수=진한 국물에 도톰한 면이 어우러진 팥칼국수와 동지죽이 유명한 해남 맛집.강진·해남=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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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바위솔 같은 자생식물 살려 지역 소멸 막겠다”

    “진주바위솔, 정선국화, 울릉제비꽃은 원산지 명칭을 이름에 담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생식물입니다. 지역의 명칭을 딴 한반도 특산식물이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에 57종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심각하게 훼손돼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자생식물 증식 기술을 갖춘 국립수목원이 이 식물들을 잘 보존해 지역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소멸을 막는 데 기여하겠습니다.” 취임 50일을 맞은 임영석 국립수목원장(47)을 만났다. 국립수목원은 연간 40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의 녹색 쉼터이자 다양한 산림생물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우리 자생식물에서 미래를 찾는 그는 ‘미스김라일락’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야생화인 북한산 백운대의 털개회나무가 1948년 미국으로 넘어가 미스김라일락으로 개량돼 세계적 관상수가 되었습니다. 자생지가 한국인데 지금은 우리가 역으로 수입해 로열티를 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그는 “지역 자생식물이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지역 소멸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국립수목원이 각 지역의 자생식물을 증식하고, 지자체들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생산하면 자생식물로 지역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지역 브랜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울릉제비꽃을 보기 위해 울릉도 여행을 떠나면 그것이 곧 ‘가든 투어리즘’이다. 지역 자생식물은 정원의 식물 소재나 반려식물로 활용할 수 있고 추출물이 항노화 기능 등을 갖기도 해 산업화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식물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는 ‘식물 거버넌스’를 구축하겠습니다. 벌써 몇몇 지자체장이 관심을 보입니다. 순천만국가정원처럼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과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해외 근무 경험이 풍부한 임 원장은 식물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각별하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신비로운 장소가 비무장지대(DMZ)입니다. 세계적 생태연구 보고(寶庫)죠. 국립수목원은 2016년 강원 양구군에 국립DMZ자생식물원을 열고 북방계와 북한의 식물까지 두루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남과 북이 같은 식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부르지만 지금 연구해두면 통일이 됐을 때 식물을 통해 우리 민족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2000년대 중반 산림 치유 개념을 국내 행정에 도입하고 지난해 산림청에 정원 조직을 신설하는 실무를 맡았던 그는 정원 치유에 주목하고 있다. “정원은 청소년 등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위로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겠습니다.” 올해 5월 우주항공청 발족을 앞두고 기존의 우주 농업과는 차별되는 식물 연구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우주의 극한 환경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주 식물, 우주선 안에 반려식물이 공존하는 정원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느티나무로 만든 손목시계를 차고 다닌다. “나무는 자꾸 봐야 정이 들기 때문”이란다. 올해 식목일 무렵에는 ‘어린 왕자 프로젝트’도 펼칠 예정이다. 국립수목원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내 나무’로 삼는 캠페인이다. 우선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과 관계를 맺듯 내 나무를 정해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돌보는 것입니다. 잘생긴 나무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연약한 나무에 마음이 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72억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삶 속에서 ‘내 나무’를 가졌으면 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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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바위솔 등 우리 자생식물 살려 지역소멸 막겠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진주바위솔, 정선국화, 울릉제비꽃은 원산지 명칭을 이름에 담은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생식물입니다. 지역의 명칭을 딴 한반도 특산식물이 전국 45개 지방자치단체에 57종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심각하게 훼손돼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 최고의 자생식물 증식기술을 갖춘 국립수목원이 이 식물들을 잘 보존시켜 지역의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소멸을 막는 데 기여하겠습니다.”취임 50일을 맞은 임영석 국립수목원장(47)을 만났다. 국립수목원은 연간 40만 명이 방문하는 국민의 녹색 쉼터이자 다양한 산림생물종을 연구하는 기관이다. 그는 ‘미스김라일락’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야생화인 북한산 백운대의 털개회나무가 1948년 미국으로 넘어가 미스김라일락으로 개량돼 세계적 관상수가 되었습니다. 자생지가 한국인데 지금은 우리가 역으로 수입해 로열티를 내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지역 식물 통해 지역 브랜드 만들자”유전자원을 사용하며 생기는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국제협약인 나고야의정서(2014년)가 발효되면서 생물자원의 주권 확립에 대한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생물자원 무기화에 따른 생물 주권 활용 발굴과 실용화 기술개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임 원장은 국립수목원의 자생식물 증식기술에서 이런 상황을 헤쳐갈 해법을 찾는다. “지역 자생식물이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지역소멸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립수목원이 각 지역의 자생식물을 증식하고, 지자체들은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생산하면 자생식물로 지역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지역 브랜딩’이 됩니다. 울릉제비꽃을 보기 위해 울릉도 여행을 떠나면 그것이 곧 ‘가든 투어리즘’입니다. 지역 자생식물은 정원의 식물 소재나 반려식물로 활용할 수 있고 추출물이 항노화 기능 등을 갖기도 해 산업화도 가능합니다. 식물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는 ‘식물 거버넌스’를 구축하겠습니다. 벌써 몇몇 지자체장이 관심을 보입니다. 순천만국가정원처럼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국내에 ‘국립’이라는 명칭을 쓰는 수목원은 여럿 있지만 국가 공무원이 운영하는 수목원은 국립수목원이 유일하다. 1987년 광릉수목원으로 개원해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광릉숲은 조선의 제7대 왕 세조의 능(陵)인 광릉이 조성된 후 부속림으로 지정돼 엄격하게 관리돼 광릉요강꽃과 장수하늘소 등 희귀특산생물이 사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국립수목원은 이런 광릉숲뿐 아니라 경기 양평의 유용식물증식센터, 강원 양구 펀치볼 일대의 국립DMZ자생식물원, 강원 인제 점봉산과 경북 울릉도의 시험림 관리도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우수한 곳들이다. 20여 년간 산림청의 엘리트 공무원 코스를 밟아온 그가 국립수목원을 이끌게 되자 조직에 신선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취임해서 국립수목원 직원들에게 질문했습니다. 우리 국립수목원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무엇이냐고요. 그 명확한 답을 찾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초연구는 수목원 관리 운영과 함께 국립수목원의 중요한 한 축이되, 그 연구가 국민 생활과 동떨어지면 안 됩니다. 우리 조직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 나가겠습니다.”●식물통일 준비와 정원문화 확산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관과 유엔식량농업기구 등 해외 근무 경험이 풍부한 임 원장은 식물통일에 대한 열망이 각별하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신비로운 장소가 비무장지대(DMZ)입니다. DMZ는 70여 년간 인간의 간섭이 최소화한 세계적 생태연구의 보고(寶庫)입니다. 국립수목원은 2016년 강원 양구군에 우리나라 최북단 식물원인 국립DMZ자생식물원을 열고 북방계와 북한의 식물까지 두루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남과 북이 같은 식물을 두고 다른 이름을 부르지만 지금 연구해두면 통일이 됐을 때 식물을 통해 우리 민족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식물 보전과 복원을 통해 가장 아름다운 ‘식물통일’을 준비하겠습니다.”2000년대 중반 산림치유 개념을 국내 행정에 도입하고 지난해 산림청에 정원 조직을 신설하는 실무를 맡았던 그는 요즘 정원치유에 주목하고 있다. “정원은 청소년 등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위로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다양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알리겠습니다.”지난달에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전국 지자체 정원업무 관계자 200여 명을 불러모아 ‘2024 대한민국 정원네트워크 워크숍’ 행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함께 노력해 모두가 정원이 풍부한 도시에서 삶의 질을 높여나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임 원장에 따르면 이달 초 국립수목원 숲생태관찰로가 25년만에 새단장돼 선보였다. 숲의 천이과정을 볼 수 있는 460m 데크길로 조성된 공간으로, 동선의 경사를 낮춰 보행이 불편한 이용자도 편안하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구근식물이 싹을 내밀고, 큰산개구리가 우는 국립수목원에는 새들을 관찰하러 오는 관람객들도 눈에 많이 띈다.●미래를 향한 식물 연구와 교감국립수목원의 미래를 향한 식물 연구는 우주에도 눈을 돌렸다. “미 할리우드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이 우주선 안에서 감자를 키웠듯, 그동안 우주 환경에서 먹을 수 있는 작물 재배 연구가 있었는데요. 저희는 우주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주 식물 연구, 우주 선체에 반려식물이 공존하는 정원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다행히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교감이 시작돼 새로운 접근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임 원장은 경기 용인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사택에서 태어나 원예, 조경, 산림자원학을 두루 공부했다. 국내 1세대 조경가로 삼성래미안 아파트 조경을 담당했던 임삼춘 전 삼성물산 고문이 부친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의 손목시계가 궁금했다. “인도네시아에서 흑단으로 만든 시계가 있는 걸 보고 우리 나무로 시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5종류의 수종을 테스트해봤습니다. 이건 느티나무로 만든 시계에요. 나무는 자꾸 보고 만져봐야 정이 듭니다.”그는 올해 식목일 무렵 ‘어린 왕자 프로젝트’를 펼칠 예정이다. 국립수목원에서 마음에 드는 나무를 골라 ‘내 나무’로 삼는 캠페인이다. 우선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반려식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습니다. 흔히 ‘내 나무’를 갖는다고 하면 나무 심기부터 생각하는데, 이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린 왕자가 장미꽃과 관계를 맺듯 내 나무를 정해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돌보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잘생긴 나무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위태로운 환경에 심어진 연약한 나무에 마음이 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72억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삶 속에서 ‘내 나무’를 가졌으면 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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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에 들어온 가드닝…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가보니[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3월 3일까지 열리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다녀왔습니다. 올해가 벌써 29번째인 이 박람회는 매년 30만 명 이상이 찾는 국내 최대 규모의 리빙 전시회입니다. 올해에도 450여 개 브랜드가 참여했는데요. 특히 가드닝 부스들이 꾸려져 관람객이 몰린 모습을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에 정원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가드닝 라이프 스타일을 콕 찍어 보고 싶다면 코엑스 3층 D홀로 직행하셔도 좋습니다. 가드닝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그린무어’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끕니다. 서울 서초구 신원동에 매장을 둔 이 회사는 김민경 공동대표(31)와 그의 영국인 남편 벤자민 피셔 공동대표(30)가 함께 이끄는 곳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아내는 패션, 남편은 약학을 공부하다가 만나 서울에서 가드닝 회사를 차리게 됐다고 합니다. 남편의 고향이 영국 런던 근교의 동화같이 예쁜 마을 코츠월드이고, 아내의 부모님은 경기 과천과 서울 서초동에서 오랫동안 조경 농장을 하셨다니 운명적 만남이 아니었을까요.이곳의 전시 부스에는 영국에서 직수입한 가드닝 제품들이 확실히 많습니다. 전 세계 가드너들이 선망하는 영국왕립원예협회(RHS)의 사슴 가죽 가드닝 장갑을 비롯해 캠브리지대학 식물원의 일러스트 엽서, 각종 꽃무늬 티 타월 등은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집니다. 다알리아, 수선화, 개나리재스민, 수염패랭이 등의 식물 화분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영국의 자연보호 민간단체 내셔널트러스트가 펴낸 ‘시크릿가든’이라는 책도 샀습니다. 같은 제목의 기사를 연재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반갑던지요. 넋 놓고 예쁜 제품들을 탐하다가는 가산 탕진할 수 있으니 주의 바람입니다!‘정원생활 바이 오랑쥬리’ 부스에서 주례민 대표도 만났습니다. 정원생활 바이 오랑쥬리는 지난해 9월25일 ‘김선미의 시크릿가든’을 통해 소개했던 경기 용인의 가든센터입니다(). 주 대표는 말합니다. “라이프스타일에 식물이 빠질 수 없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나왔습니다. 정원에 쓸 수 있는 수반, 가드너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 국내에서 제작한 호미와 가방 등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정원 설계 시공에 대한 협업 제안도 환영합니다.”‘송버드(Songbird)’라는 업체도 흥미로웠습니다. 플랜테리어(plant+interior·식물 인테리어)에 빠질 수 없는 게 화분인데요. 이 업체는 개성 넘치는 화분마다 이름을 붙여 화분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절로 떠오릅니다. 화분 위쪽에 식물을 담는 ‘큐피드’와 ‘버그 라이프’ 같은 화분은 곁에 두고 보면 자주 얼굴에 미소를 짓게 될 것 같아요.도시의 사무실과 아파트에서 한 뼘 실내 정원을 가꿀 수 있는 플랜테리어 모듈을 판매하는 ‘서울 가드닝 클럽’, 수경 식물을 선보이는 ‘메이크 정글’, 가드닝 앞치마와 장갑 등 각종 가드닝 용품을 선보이는 ‘세븐가드너스’, 토분을 파는 ‘그로브팟’ 매장도 들러보세요. 1층에 있는 제주 ‘스누피가든’ 매장에서는 각종 스누피 관련 상품을 판매합니다. 캠핑존과 상담존 등 스누피 캐릭터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들이 특히 인기네요.가드닝 매장이 아니어도 확실히 요즘의 리빙 트렌드는 식물과 함께 하는, 심신의 고요한 평화를 꿈꾸는 삶을 지향합니다. 서영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임태희 디자이너는 ‘집: Sweet Home’이라는 주제로 기획관을 선보이면서 행복이 가득한 집을 10개의 공간으로 구현했습니다. 요리가 취미인 아빠의 방, 식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섬세한 아들의 방…. 버려진 등을 뜨개질한 천으로 감싸서 만든 리사이클 새장 등을 보면 우리 시대가 원하는 따뜻함과 다정함이 무엇인지 느껴집니다.이 행사를 마련한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는 말합니다. “그린 문화로서, 환경을 위해서라도 정원문화와 정원산업은 앞으로 더욱 퍼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드닝은 우리 삶에 위로를 주니까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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