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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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5-04-02~2025-05-02
문화 일반63%
여행17%
경제일반10%
생활/가정10%
  • 황매산이라는 詩… 정영선 조경가와 떠난 봄 소풍[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눈 내리던 겨울날 정욱주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와 경기 양평에 있는 정영선 조경가(84)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정 교수가 “봄에 같이 황매산 가실래요”라고 묻자 정 조경가가 “그럼 좋지”라고 했다. 정 교수가 7년 전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주요 공간을 설계한 황매산을 정 조경가는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어 했단다. 그렇게 한국 조경계의 거목(巨木)인 정 조경가, 정 교수와 함께 경남 합천 황매산을 다녀오게 됐다.● 분홍빛 봄의 황매산 지난해는 가히 ‘정영선의 해’였다. 반세기에 걸친 그의 조경 작업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개봉해 대중에게 정영선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렸다. 정 조경가 곁에서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배웠다는 정 교수도 이 영화에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상 처음 조경가를 다룬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열었다. 올해 5∼7월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아트센터에서 정 조경가 개인전도 열린다. 지난해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서울’에 왔다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본 이탈리아 예술 관계자들이 순회전을 요청하면서 성사된 전시다.정 조경가의 베네치아 행(行)에 앞서 12일 셋이 황매산(해발 1113m)에 갔다. 정 교수는 “황매산은 철쭉이 유명하지만, 진달래도 좋아요”라고 했다. 서울에서 황매산까지는 왕복 600여 ㎞. 당일치기 소풍으로는 꽤 먼 거리였다. 운전대를 잡은 정 교수에게 정 조경가는 연신 “이 먼 길을…”, “참말로 대단하다”라고 했다. 정 교수가 2017∼2018년 서울과 합천을 자주 오가며 황매산 군립공원 마스터플랜을 세운 걸 두고 하는 얘기다. 정 교수는 “선생님은 예전에 (합천) 해인사를 이렇게 다니며 (조경) 일을 하셨으면서 뭘요. 저도 오랜만이네요”라며 웃었다. 황매산 군립공원은 잘 닦인 포장도로로 해발 850m까지 차량이 오를 수 있었다. 1980년대 소를 키우던 목장이었기 때문이다. 첩첩산중을 거쳐 오르니 별천지였다. 손바닥으로 누른 듯한 고산지 평원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산의 능선은 넓고 깊었다. 황매산이 왜 ‘영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공원 입구 주차장 오른쪽이 너른 철쭉 군락지다. 4월 중순은 진달래와 철쭉 사이(間)의 시간이었다. 열두 폭 병풍 같은 산세를 분홍색 진달래 이불이 포근하게 덮고 있었다. 정 조경가는 말했다. “아유, 예쁘다.” 조만간 철쭉이 50ha에 걸쳐 산을 감싸면 진분홍의 절정에 이를 것이다. 합천을 대표하는 황매산 철쭉제는 올해 29회를 맞아 5월 1∼11일 열린다.● 생태경관과 문화경관의 만남 황매산은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가 고유한 풍경을 빚는다. 1984년 정부의 축산 장려 정책에 따라 조성된 목장 부지는 27년 전 폐쇄됐지만, 소들이 먹지 않아 살아남은 철쭉과 억새가 군락을 이뤘다. 고산지 평원 생태 경관과 목축의 역사가 만든 문화경관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드넓은 초지(草地) 경관은 이국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봄과 가을에 치중된 관광 행태를 어떻게 사계절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2017년 합천군이 황매산 군립공원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한 이유다. 정 교수는 황매산을 단순한 꽃구경 장소로 보지 않았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서 조경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황매산 입구 주차부지와 철쭉평원을 잇는 공간(1만4300㎡)에 조성한 게 ‘황매정원’이다. 단아하게 정비된 산책로에 들어서자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으로 입장하는 기분이었다. 흐르는 물을 따라 산수국을 심어 봄과 가을 사이에 비어 있던 여름 경관을 청량하게 만들고, 오나멘탈 그라스(관상용)를 심어 너른 억새밭과 연결한 게 돋보였다. 그중 제일은 작은 동물과 새 들의 보금자리인 습지 숲을 안전하게 남겨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 교수는 말했다. “처음 황매산에 왔을 때 굉장히 근사한 경관이 펼쳐져 놀랐어요. 정작 합천 분들은 그저 빈 땅이라 여기며 뭘 좀 더 추가하기를 원했죠. 저희는 오히려 이질적 시설들을 걷어 내면서 황매산 자체의 훌륭한 경관을 잘 드러내자고 제안했어요. 합천군 측이 수긍했고 지금까지 잘 유지, 관리해 주는 걸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정 조경가는 공원을 둘러보다가 막 피어난 고사리와 야생화가 보이면 쭈그리고 앉아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살폈다. 자연은 생명력이 강하지만 인간에 의해 쉽게 훼손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그는 정 교수에게 “욕보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대가(大家)가 후배에게 건네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공원 입구 격인 관광휴게소 이름은 ‘철쭉과 억새 사이’였다. 그곳 식당에서 한우국밥을 한 그릇씩 먹고 분홍색 산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봄을 누리는 최고의 호사였다.● 이 땅에 시를 쓴다는 것 황매산은 단지 철쭉이 아름다운 산이 아니었다. ‘땅에 시를 쓴다’는 말의 뜻을 일깨우는 장소였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안시성’,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등을 촬영한 황매산은 2022년 BTS(방탄소년단) RM의 ‘들꽃놀이’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등장했다. 예술적 심미안이 뛰어난 RM 측이 합천군에 먼저 제안해 이뤄진 촬영이었다. 황매산의 값진 매력은 또 있다. 은하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캠핑하거나 반짝이는 별빛을 청혼 반지 삼아 연인에게 프러포즈할 수 있다. 민간 위탁 형태로 운영되는 황매산 야영장과 오토캠핑장은 지역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사례다. 2018년 해발 750∼1100m 고지대에 문을 연 황매산수목원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큰해오라비난초를 만날 수 있다. 다음에는 꼭 1박 2일 일정으로 찾아가 인근 오도산자연휴양림에서 숙박하며 해인사도 가야겠다고 다짐한다.정 조경가는 황매산 오가는 길에 차창 밖 풍경을 유심히 보았다. 평온한 들판이 펼쳐지면 “아구, 예쁘다”라고 했고, 포크레인이 산을 파헤쳐 놓은 걸 보고는 “(우리 땅을) 가만 놔두면 기품 있을 걸 왜 못살게 구는 것이냐”며 안타까워했다. 합천군을 관통하는 황강 유역 미개발 구역은 야생의 자연처럼 신비로웠다. 정 조경가가 말했다. “이 좋은 광경을 또 언제 볼꼬.” 그리고는 한 편의 시처럼 말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게 늦게 내리는 눈인 줄 알았어요.” 땅에 시를 쓰는 것은, 풍경을 향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어떻게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귀하게 여길 것인가. 정 조경가의 웃음과 탄식에 답이 있을 것이다.◇정영선 조경가국내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 및 기념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청계천 복원사업, 선유도 공원 등 다양한 국가 공공사업에 참여해 왔다. 2023년 한국인 최초로 조경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했다.글·사진 합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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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매산이라는 시(詩)…정영선 조경가와 떠난 봄 소풍[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눈 내리던 겨울날 정욱주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와 경기 양평에 있는 정영선 조경가(84)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정 교수가 “봄에 같이 황매산 가실래요”라고 묻자 정 조경가가 “그럼 좋지”라고 했다. 정 교수가 7년 전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주요 공간을 설계한 황매산을 정 조경가는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어 했단다. 그렇게 한국 조경계의 거목(巨木)인 정 조경가, 정 교수와 함께 경남 합천 황매산을 다녀오게 됐다.●분홍빛 봄의 황매산지난해는 가히 ‘정영선의 해’였다. 반세기에 걸친 그의 조경 작업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개봉해 대중에게 정영선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렸다. 정 조경가 곁에서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배웠다는 정 교수도 이 영화에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상 처음 조경가를 다룬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를 열었다. 올해 5~7월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아트센터에서 정 조경가 개인전도 열린다. 지난해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서울’에 왔다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본 이탈리아 예술 관계자들이 순회전을 요청하면서 성사된 전시다.정 조경가의 베네치아 행(行)에 앞서 12일 셋이 황매산(해발 1113m)에 갔다. 정 교수는 “황매산은 철쭉이 유명하지만, 진달래도 좋아요”라고 했다. 서울에서 황매산까지는 왕복 600여 ㎞. 당일치기 소풍으로는 꽤 먼 거리였다. 운전대를 잡은 정 교수에게 정 조경가는 연신 “이 먼 길을…”, “참말로 대단하다”라고 했다. 정 교수가 2017~2018년 서울과 합천을 자주 오가며 황매산 군립공원 마스터플랜을 세운 걸 두고 하는 얘기다. 정 교수는 “선생님은 예전에 (합천) 해인사를 이렇게 다니며 (조경) 일을 하셨으면서 뭘요. 저도 오랜만이네요”라며 웃었다.황매산 군립공원은 잘 닦인 포장도로로 해발 850m까지 차량이 오를 수 있었다. 1980년대 소를 키우던 목장이었기 때문이다. 첩첩산중을 거쳐 오르니 별천지였다. 손바닥으로 누른 듯한 고산지 평원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산의 능선은 넓고 깊었다. 황매산이 왜 ‘영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공원 입구 주차장 오른쪽이 너른 철쭉 군락지다. 4월 중순은 진달래와 철쭉 사이(間)의 시간이었다. 열두 폭 병풍 같은 산세를 분홍색 진달래 이불이 포근하게 덮고 있었다. 정 조경가는 말했다. “아유, 예쁘다.” 조만간 철쭉이 50ha에 걸쳐 산을 감싸면 진분홍의 절정에 이를 것이다. 합천을 대표하는 황매산 철쭉제는 올해 29회를 맞아 5월 1~11일 열린다.●생태경관과 문화경관의 만남황매산은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가 고유한 풍경을 빚는다. 1984년 정부의 축산 장려 정책에 따라 조성된 목장 부지는 27년 전 폐쇄됐지만, 소들이 먹지 않아 살아남은 철쭉과 억새가 군락을 이뤘다. 고산지 평원 생태 경관과 목축의 역사가 만든 문화경관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드넓은 초지(草地) 경관은 이국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봄과 가을에 치중된 관광 행태를 어떻게 사계절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2017년 합천군이 황매산 군립공원 기본계획 용역을 발주한 이유다. 정 교수는 황매산을 단순한 꽃구경 장소로 보지 않았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서 조경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고 한다.그래서 황매산 입구 주차부지와 철쭉평원을 잇는 공간(1만4300㎡)에 조성한 게 ‘황매정원’이다. 단아하게 정비된 산책로에 들어서자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으로 입장하는 기분이었다. 흐르는 물을 따라 산수국을 심어 봄과 가을 사이에 비어 있던 여름 경관을 청량하게 만들고, 오나멘탈 그라스(관상용)를 심어 너른 억새밭과 연결한 게 돋보였다. 그중 제일은 작은 동물과 새 들의 보금자리인 습지 숲을 안전하게 남겨둔 것이라고 생각한다.정 교수는 말했다. “처음 황매산에 왔을 때 굉장히 근사한 경관이 펼쳐져 놀랐어요. 정작 합천 분들은 그저 빈 땅이라 여기며 뭘 좀 더 추가하기를 원했죠. 저희는 오히려 이질적 시설들을 걷어 내면서 황매산 자체의 훌륭한 경관을 잘 드러내자고 제안했어요. 합천군 측이 수긍했고 지금까지 잘 유지, 관리해 주는 걸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정 조경가는 공원을 둘러보다가 막 피어난 고사리와 야생화가 보이면 쭈그리고 앉아 아기를 돌보듯 세심하게 살폈다. 자연은 생명력이 강하지만 인간에 의해 쉽게 훼손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그는 정 교수에게 “욕보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대가(大家)가 후배에게 건네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공원 입구 격인 관광휴게소 이름은 ‘철쭉과 억새 사이’였다. 그곳 식당에서 한우국밥을 한 그릇씩 먹고 분홍색 산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봄을 누리는 최고의 호사였다.●이 땅에 시를 쓴다는 것황매산은 단지 철쭉이 아름다운 산이 아니었다. ‘땅에 시를 쓴다’는 말의 뜻을 일깨우는 장소였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안시성’,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등을 촬영한 황매산은 2022년 BTS(방탄소년단) RM의 ‘들꽃놀이’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등장했다. 예술적 심미안이 뛰어난 RM 측이 합천군에 먼저 제안해 이뤄진 촬영이었다.황매산의 값진 매력은 또 있다. 은하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캠핑하거나 반짝이는 별빛을 청혼 반지 삼아 연인에게 프러포즈할 수 있다. 민간 위탁 형태로 운영되는 황매산 야영장과 오토캠핑장은 지역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사례다. 2018년 해발 750~1100m 고지대에 문을 연 황매산수목원에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희귀식물인 큰해오라비난초를 만날 수 있다. 다음에는 꼭 1박 2일 일정으로 찾아가 인근 오도산자연휴양림에서 숙박하며 해인사도 가야겠다고 다짐한다.정 조경가는 황매산 오가는 길에 차창 밖 풍경을 유심히 보았다. 평온한 들판이 펼쳐지면 “아구, 예쁘다”라고 했고, 포크레인이 산을 파헤쳐 놓은 걸 보고는 “(우리 땅을) 가만 놔두면 기품 있을 걸 왜 못살게 구는 것이냐”며 안타까워했다. 합천군을 관통하는 황강 유역 미개발 구역은 야생의 자연처럼 신비로웠다. 정 조경가가 말했다. “이 좋은 광경을 또 언제 볼꼬.” 그리고는 한 편의 시처럼 말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게 늦게 내리는 눈인 줄 알았어요.”땅에 시를 쓰는 것은, 풍경을 향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어떻게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귀하게 여길 것인가. 정 조경가의 웃음과 탄식에 답이 있을 것이다.◇정영선 조경가국내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 아시안게임 선수촌 아파트 및 기념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청계천 복원사업, 선유도 공원 등 다양한 국가 공공사업에 참여해 왔다. 2023년 한국인 최초로 조경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했다.합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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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고치현, 하늘길 열려 교류 활발해지기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막부 시대 종료와 메이지유신에 영향을 준 개혁가)의 고향 고치(高知)현은 산, 강, 바다 등 자연이 아름답고 일본의 옛 정취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프로 대회 장소로도 사용되는 골프장들은 태평양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전국적으로 유명합니다. 가다랑어와 일본 술도 맛있습니다. 무엇보다 밝고 친근한 주민들의 성품이 큰 매력입니다.” 지난달 일본 고치현에서 만난 하마다 세이지(濵田省司·사진) 고치현 지사는 고치현의 매력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은 올해 고치현은 사상 처음 한국 여행업계 관계자와 언론사 기자 등 20명을 초대해 3박 4일간 ‘고치현 시찰 투어’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고치현의 대표 명소인 △고치성(城) △사카모토 료마 기념관 △마키노 식물원 △기타가와(北川)촌 모네의 정원 △구로시오(黑潮) 컨트리클럽 △다우치 지즈코(田内千鶴子·한국 이름 윤학자) 비석 등을 둘러봤다. 한일친선우호협회 주관 환영 만찬회도 진행돼 양국 간 협력이 모색됐다. 고치현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목포의 어머니’로 불리는 고 윤학자(1912∼1968) 여사는 고치현에서 태어나 어릴 때 전남 목포로 건너와 한국인 전도사 남편이 세운 공생원에서 평생 6·25전쟁 고아 3000명을 길러 냈다. 한국 정부는 그에게 1963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국민장을 수여했고 고치현은 1997년 윤 여사 생가 근처에 기념비를 세웠다. 임진왜란 때 한국의 두부 장인들이 고치현으로 넘어가 두부 만드는 기술을 전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마다 지사는 “따뜻한 과거를 바탕으로 앞으로 문화 교류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치현은 매년 445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선 항공편 확보가 시급하다. 아직 국내선 터미널만 운영 중으로 한국에서는 직항 노선이 없어 에히메(愛媛)현 마쓰야마(松山) 공항으로 입국해 철도나 렌터카를 통해 고치현으로 이동해야 한다. 고치 료마 공항은 2027년 5월 완전 개방을 목표로 국제선 터미널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마다 지사는 “한국과 고치현이 하늘길로 연결되면 경제 협력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고치=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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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집 별장에서 만인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아유 스페이스

    경기 남양주시 북한강로의 복합문화공간 겸 카페 레스토랑 ‘아유 스페이스’는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재벌집 별장이었다. “금남리 롯데 별장 가자”고 하면 웬만한 택시 기사는 다 알던 장소였다. 그곳이 2022년 12월 만인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30년 넘게 유럽에서 독립 예술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장미영 대표는 극소수만 향유하는 문화보다 대중과 함께 공유하는 경험의 가치를 높게 봤다. 일본 퓨전 한옥 같던 옛 재벌집 별장 건물들을 조병수 건축가에게 의뢰해 새단장하고 기존에 있던 나무들은 재배치해 정원을 정비했다.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이내에 도달하는 이곳에서는 북한강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 3500평 부지에 카페, 레스토랑, 한옥 갤러리, 야외 테라스가 자리 잡아 단번에 ‘핫플’로 등극했다. 건축과 정원이 어우러져 예술의 일상화를 지향하는 공간이다.장 대표가 구석구석을 함께 다니며 설명했다. “처음엔 과실수가 많은 밭이었어요. 벼락 맞은 500년 된 향나무와 200년 된 은행나무도 있었고요. 조병수 건축가가 ‘원래 있었던 듯 보일 듯 말 듯한 단층 건물을 짓고 싶다’기에 그렇게 하시라고 했어요. 먼 장래를 보면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 될 것 같았거든요.”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단층 카페 건물 내부에는 중정(中庭)을 두었다. 그런데 중정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바닥에 작은 돌을 깔고 커다란 바위 세 개만 둔 뒤 몇몇 야생화만 심었다. 깽깽이풀, 동강할미꽃, 돌단풍…. 장 대표는 말한다. “대우주와 소우주가 만나는 듯한 이 정원에서 별과 달을 올려다보면 지친 마음이 달래져요.” 실내에는 흰 기둥을 세워 북유럽의 자작나무를 형상화했다. 과거 별장 안채를 ‘재생 건축’한 레스토랑에서는 통창을 통해 북한강을 보면서 정통 이탈리아 밀라노식 리조토를 맛볼 수 있다. 손님이 떠날 때는 럭셔리 보석 브랜드들이 하는 것처럼 생화를 붙인 감사 카드를 건넨다.북한강을 따라 메타세쿼이아와 벚나무가 있고, 언덕에는 자연스럽게 피어난 것처럼 심은 복수초와 할미꽃이 있다.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럽게’, 요즘 말로 ‘꾸안꾸’가 아유스페이스의 조경 콘셉트다. 물과 돌을 보며 머리를 비울 수 있는 ‘물멍, 돌멍’ 산책을 위해서란다. 아유스페이스는 유럽의 호숫가 분위기에서 스몰웨딩과 돌잔치 등 가족 행사나 기업 행사를 위한 대관도 한다. 6월 중 야외 정원에서 하와이 한인 이민 역사를 다룬 이진영 감독의 독립영화 ‘하와이 연가’(2024년)를 상영하는 ‘아웃도어 시네마’ 행사가 계획돼 있다. 조병수 건축가의 ‘아유스페이스 건축 이야기’ 토크도 열릴 예정이다.이달 말까지 아유스페이스 한옥 갤러리에서는 ‘옥은희 도예전’이 열린다. 섬세한 청화 기법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남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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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안 가득 제주 봄 왔수다!… 그랜드조선 제주로 떠나는 미식여행

    4월, 입안 가득 제주의 맛으로 가득 채우기 좋은 계절이 왔다. 조선호텔앤리조트의 럭셔리 리조트형 호텔 그랜드 조선 제주는 한층 더 품격 있는 미식 경험을 위해 제주를 모티브로 한 브런치와 세미 파인 다이닝 코스, 봄 식재료를 활용한 다채로운 뷔페 메뉴 등 풍성한 메뉴들을 선보인다. 4월부터 새단장 후 고객들을 맞고 있는 힐 스위트관 로비층의 ‘그랑 제이 고메 라운지(Gran J Gourmet Lounge)’는 낮과 밤 모두 여유로운 휴식과 프리미엄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식사 공간이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이용 가능한 브런치 메뉴로는 돔베고기, 전복장, 뿔소라찜, 갈치 구이 등 제주에서 가장 신선하게 맛볼 수 있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한식 브런치 메뉴 ‘제주 밥상’과 어린이를 위한 ‘흑돼지밥상’이 준비된다. 양식 단품 메뉴로는 ‘딱새우루꼴라 크림 피자’, ‘톳 성게 스파게티니’, ‘크랩 케이크’ 등 이색적인 메뉴들이 있다.오후 3시부터 두 시간 동안은 편안한 휴식과 함께 커피&티 타임으로 운영된다. ‘한라산 말차 케이크’, ‘감귤 정원 디저트’ 등의 디저트를 선보인다. 오후 6시부터는 셰프의 정성을 담은 세미 파인 다이닝 스타일의 디너 5코스 및 단품 메뉴들로 미식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다. 디너 코스에는 ‘한라봉 버터와 크로핀’, ‘딱새우 세비체’, ‘한치 구이’, 메인 요리는 ‘한우 안심 스테이크’ 또는 ‘참돔 스테이크’, 그리고 디저트로는 ‘백향과 무스’가 준비된다. 샴페인, 스페셜 칵테일, 화이트 또는 레드와인 등 4종의 주류 페어링도 함께 이용 가능하다. 30일까지 투숙객 대상으로 20% 할인된 가격으로 그랑 제이 고메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며 특히 힐 스위트 투숙객일 경우 전용 PDR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어 한층 더 프라이빗한 식사가 가능하다.그랑 제이 고메 라운지 오픈을 기념해 객실 패키지 ‘올 인클루시브 고메 이스케이프’와 ‘로맨틱 고메 이스케이프’ 2종을 연말까지 선보인다.뷔페 레스토랑 ‘아리아’는 독창적인 메뉴들을 준비해 고객들을 맞고 있다. 그날의 가장 신선한 해산물을 담아낸 ‘제주바당 카이센동’을 비롯해 붕장어 초밥, 스테이크 플레이트, ‘돔베고기’와 ‘금귤정과’, ‘감귤 물김치’, 제주산 전복을 가득 담아 끓인 ‘매생이 전복 누룽지탕’, 주류와 곁들이기 좋은 ‘제주 씨푸드 플래터’와 디저트로 제공되는 ‘한라봉 빙수’ 등 온 가족이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메뉴들이 준비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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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이슨 아티엔자와 손잡은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조이 위드 아트’(Joy with Art)

    비스타 워커힐 서울의 루프탑 가든 ‘스카이야드’는 15일 세계적 비주얼 아티스트 제이슨 아티엔자(Jayson Atienza)의 손길을 통해 예술적 감성이 살아 있는 시그니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서울 아차산과 한강, 사계절의 색채를 생동감 넘치는 패턴으로 재해석해 ‘엘리베이트 유어 바이브레이션(Elevate your vibration)’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요가덱에 완성했다. 선베드와 파라솔 등에도 그의 디자인이 적용됐다. 올해 창립 62주년을 맞은 워커힐 호텔앤리조트가 ‘일상 속 예술이 전하는 즐거움과 에너지’를 주제로 한 새로운 브랜드 캠페인 ‘조이 위드 아트(Joy with Art)’를 선보인다. 첫 협업 작가가 제이슨 아티엔자다.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엔자는 “예술은 우리 생활 어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며,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의 캔버스가 될 수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독창적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의 작품은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 역동적인 선의 디테일이 교차하며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이키, NBA, 미니(MINI) 등 다수의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아티스트로 주목받고 있다.아티엔자는 “이번 워커힐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 속으로 직접 뛰어들 수 있는 새로운 시도였다”며 “많은 사람들이 예술적 영감을 일상 속으로 가져가길 바란다”고 협업 소감을 전했다.제이슨 아티엔자와 함께 하는 ‘조이 위드 아트(Joy with Art)’ 캠페인은 고객 참여형 행사 ‘아트 피크닉’을 비롯해 아트 굿즈, 객실 어메니티 제공 등 일상 속에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이어질 예정이다.워커힐은 서울 도심 속 ‘아트캉스’ 호텔로 자리매김하며 파크 콘서트, 문화 살롱, 브랜드 협업 공간 ‘스페이스 워커힐’ 등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선보이며 고객과의 예술적 접점을 지속적으로 넓혀왔다. 워커힐 관계자는 “아트캉스 호텔로서의 전통을 이어온 워커힐이 ‘조이 위드 아트’ 캠페인을 통해 예술 경험의 폭을 한층 넓히고자 한다”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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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도장 찍으며 추억 쌓는 ‘수목원·정원 스탬프 투어-아름다운 동행’

    바야흐로 꽃 구경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특별하게 꽃 추억을 쌓는 방법이 있답니다.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이름의 수목원·정원 스탬프 투어입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202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동행’ 스탬프 투어는 현재 44곳의 수목원과 정원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수목원에 비치된 ‘아름다운 동행’ 여권(스탬프북)에 도장을 찍는 활동입니다.그런데 이 도장이 예사롭지 않아요. 각 수목원을 대표하는 식물들의 그림이 새겨 있거든요. 국립세종수목원은 붓꽃, 경기 여주 황학산수목원은 단양쑥부쟁이, 전남 해남 포레스트수목원은 수국, 강원 평창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깽깽이풀…. 도장만 찍어도 절로 우리 식물 공부가 된답니다. 나만의 식물도감을 만들어나가는 기분이 들어요.이 아날로그 도장 찍기의 매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최초 세 개의 도장을 여권에 찍으면 씨앗과 화분 등으로 구성된 반려식물 키트를 받고요. 다음부터는 3개씩 도장을 찍을 때마다 동(銅)으로 제작된 주화를 받지요. 이 주화에는 미선나무처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자생식물들이 새겨져 있어요.스탬프 투어는 자전거 투어나 박물관·미술관 투어 등 여러 다른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는데요. 수목원·정원 스탬프 투어의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측으로부터 이 투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을 소개받아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우선 충남 논산에 사는 김지나 씨(39) 가족입니다. 부부와 9세, 12세 자녀가 2년 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9개의 도장을 받았다는데요.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국립세종수목원에 갔다가 이 투어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세종시의 금강수목원과 전북 한국도로공사전주수목원을 시작으로 전국의 수목원들을 다녔다네요.김 씨가 말합니다. “난대 식물을 볼 수 있는 전남 완도수목원에 갔다가 구례수목원에 갔는데 두 곳에서 같은 종류의 은은한 향기가 나더라고요. 대체 이게 뭘까 했더니 목서(木犀)의 향이었어요. 이 투어를 통해 무엇보다 감사한 건 아이들이 나무를 알아보는 거예요. 수목원에서 자연을 만나고 나서 가족이 더욱 돈독해졌어요. 서른 개 도장을 받고 나니 더 많은 도장을 받아야겠다는 도전 의식도 생겨나던걸요(웃음).”김 씨는 올해 산불이 특히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를 본 적이 있어요. 새의 군무를 본 남자분이 새들의 터를 지키려고 애쓰는 내용이에요. 그가 말했죠. ‘아름다운 것을 본 죄’라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스탬프 투어를 통해 우리 수목의 아름다운 모습을 봤기 때문에, 산불로 타버린 상황이 특히 마음에 와닿고 슬펐던 것 같아요.”인천에 사는 이화연 씨(63)는 꽃을 좋아해 빌라의 옥상에 여러 종류의 화초를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스탬프 투어는 지난해 인천수목원에 갔다가 알게 됐는데, 집 근처 인천수목원은 입장료가 없어 언제든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진으로 식물의 이름을 물어보면 집단지성이 알려주는 스마트폰 ‘모야모’ 앱에서 ‘똥식이사랑’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식물 이름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답변을 잘 해주기 위해 식물원을 다니며 식물을 공부한다고 합니다.“꽃 좋아하는 저와 역마살 있는 남편에게 딱 맞는 여행이에요. 수목원마다 서로 다른 특징도 찾아보고 새로운 꽃도 발견하고 있어요. 꽃창포 가득한 경남 거창 창포원은 꼭 자전거를 빌려 한 바퀴 돌아보세요. 거창 금원산생태수목원은 골짜기 따라 숲길이 아주 좋은데 관람객이 적어 널리 알리고 싶네요. 인천수목원 온실에 오랜만에 핀 바우히니아는 또 얼마나 예쁜데요. 충남 홍성 그림같은수목원과 강원 강릉 솔향수목원도 추천하고 싶어요.”서울에 사는 차재연 씨(55)는 말합니다. “진달래 필 때 세종시 금강수목원을 맨발로 걸으면 참 행복해져요.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우리 호랑이와 자생식물 보는 것도 참 좋고요. 스탬프 투어의 매력이요? 경험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기분이에요. 기억에 오래 남아요”.경기 성남에 사는 시내버스 기사 임명연 씨(63)는 쉬는 날 아내와 전국 100대 명산도 다니고, 등대 투어도 하다가 수목원·정원 스탬프 투어를 알게 돼 블로그에 수목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 수목원·정원의 진정한 홍보대사, 함께 지키고 돌보는 정원문화의 실천자 아닌가 싶습니다.이 스탬프 투어의 명칭은 왜 ‘아름다운 동행’일까요. “단순한 여행을 넘어 정원과 사람, 자연과 마음을 잇는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노회은 국립세종수목원 교육운영실장). 지금까지 10만 개 스탬프북, 2만 개 주화가 국민에게 전달됐고, 참여 수목원에는 교육 전시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습니다.세상은 넓고 가볼 수목원은 많습니다. 전국 곳곳의 수목원은 단지 식물을 감상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건너는 다리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씨앗이 되는 장소입니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도장 찍기 여행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가수 윤종신의 노래 ‘수목원에서’를 흥얼거려봅니다. ‘수다 떠는 아줌마들처럼 웃는 새들과 누굴 애타게 찾는 것처럼 울어대는 벌레들. 여전해요. 그대와 거닐었던 그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추억의 숲속 길….’ 스탬프 투어와 함께할 만한 교육·체험 프로그램국립세종수목원5, 6, 9, 11월에만 만날 수 있는 ‘물빛따라 꽃길따라’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전기버스를 타고 수목원 해설사와 함께 정원과 사계절 온실을 돌아보며 기후대별 생물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공룡소나무 ‘울레미소나무’와 수천 년을 살아가는 식물 ‘웰위치아’ 등 특별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국립한국자생식물원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체험 프로그램 ‘식물을 담은 도자기’를 진행한다. 초벌 도자기에 나만의 식물 이야기를 담고 유약을 발라 가마에 굽는 내내 식물과 예술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야생 종자 영구저장시설인 ‘시드볼트’와 백두산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숙박과 체험을 연계한 자연 체류형 프로그램 ‘가든스테이’가 인기다. 다양한 생태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가족, 연인, 학생 단체들이 자연 속에서 휴식과 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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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집 별장이 만인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뀐 사연은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경기 남양주시 북한강로의 복합문화공간 겸 카페 레스토랑 ‘아유 스페이스’는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재벌집 별장이었다. “금남리 롯데 별장 가자”고 하면 웬만한 택시 기사는 다 알던 장소였다. 그곳이 2022년 12월 만인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30년 넘게 유럽에서 독립 예술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장미영 대표는 극소수만 향유하는 문화보다 대중과 함께 공유하는 경험의 가치를 높게 봤다. 일본 퓨전 한옥 같던 옛 재벌집 별장 건물들을 조병수 건축가에게 의뢰해 새단장하고 기존에 있던 나무들은 재배치해 정원을 정비했다.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이내에 도달하는 이곳에서는 북한강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 3500평 부지에 카페, 레스토랑, 한옥 갤러리, 야외 테라스가 자리 잡은 ‘핫플’이다. 지난해에는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KICA) 문화공간 건축상도 받았다. 공모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곳을 방문한 어느 건축학과 교수가 “건축과 정원, 그 속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며 추천해 수상했다고 한다. 4일 아유 스페이서 만난 장 대표가 각 공간을 소개했다. “처음엔 과실수가 많은 밭이었어요. 벼락 맞은 500년 된 향나무와 200년 된 은행나무도 있었고요. 조 건축가가 ‘원래 있었던 듯 보일 듯 말 듯한 단층 건물을 짓고 싶다’기에 그렇게 하시라고 했어요. 먼 장래를 보면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 될 것 같았거든요.” 노출 콘크리트로 지은 단층 카페 건물 내부에는 중정(中庭)을 두었다. 바닥에 작은 돌을 깔고 커다란 바위 세 개만 둔 뒤 몇몇 야생화만 심었다. 깽깽이풀, 동강할미꽃, 돌단풍…. 장 대표는 말한다. “한국의 시골에서 자라서 그럴까요. 이 정원에서 별과 달을 올려다보면 지친 마음이 달래져요.” 아유 스페이스 바로 앞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강을 따라 메타세쿼이아와 벚나무가 도열해 있고, 언덕에는 자연스럽게 피어난 것처럼 심은 복수초와 할미꽃이 있다.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럽게’, 요즘 말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가 이곳의 조경 콘셉트다. 물과 돌을 보며 머리를 비울 수 있는 ‘물멍’, ‘돌멍’ 산책을 위해서란다. 원래 있던 대문도 위치를 바꿨다. 과거 별장 안채로 직행하는 방향에 있던 대문을 폐쇄하고 구불구불한 동선을 만들었다. 그에 따라 나무들을 재배치하니 공간과 분위기가 변신했다. 요즘 가구들을 재배치해 살던 집을 변신시켜주는 집 정리 서비스를 떠올리게 할 정도다. 이렇게 옛 별장 안채를 ‘재생 건축’한 레스토랑에서는 통창을 통해 북한강이 시원하게 바라보인다. 젊은 세대들이 찾아와 ‘물멍’ ‘돌멍’하면서 정통 이탈리아 밀라노식 리조토를 먹는다. 한옥 갤러리에서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공예 전시가 열리고 있다.공간은 건축주의 삶을 품는다. 아유 스페이스도 그렇다. 장 대표는 말한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했어요. 어려서부터 영어에 자신이 있어 서울의 스위스계 무역회사에 취직했다가 1992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죠. 런던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할 때 스웨덴 귀족 가문 기업인을 만나 결혼했어요. 13세기 지어진 대농장과 교회가 있는 집을 꾸리는 시어머니로부터 유럽 귀족사회의 소양을 배웠습니다. 남편과 사별 후 문화와 자연에 대한 통찰을 모국에서 나누고 싶어 만든 게 아유 스페이스입니다.” 카페 실내에 흰 기둥을 세운 것은 장 대표가 살았던 북유럽의 자작나무를 형상화한 것이다. 강가를 유럽의 호숫가 분위기로 조성해 스몰 웨딩 등 파티를 할 수 있게 한 것, 손님이 떠날 때 럭셔리 보석 브랜드들처럼 생화를 붙인 감사 카드를 건네는 것도 건축주가 살아온 길을 드러낸다. 6월에는 이곳에서 ‘아웃도어 시네마’ 행사가 열린다. 야외 정원에서 하와이 한인 이민 역사를 다룬 이진영 감독의 독립영화 ‘하와이 연가’(2024년)를 상영할 예정이다. 꿈과 희망을 찾아 해외로 이주해 가족과 공동체, 고국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은 건 영화 내용인 동시에 장 대표의 삶일 것이다. 그는 “앞으로 공간과 건축, 오페라 등 보다 풍부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이 복합문화공간의 야외 정원에서 제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남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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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 도장 찍으며 추억 쌓는 ‘수목원·정원 스탬프 투어’를 아시나요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바야흐로 꽃 구경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특별하게 꽃 추억을 쌓는 방법이 있답니다.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이름의 수목원·정원 스탬프 투어입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202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아름다운 동행’ 스탬프 투어는 현재 44곳의 수목원과 정원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수목원에 비치된 ‘아름다운 동행’ 여권(스탬프북)에 도장을 찍는 활동입니다.그런데 이 도장이 예사롭지 않아요. 각 수목원을 대표하는 식물들의 그림이 새겨 있거든요. 국립세종수목원은 붓꽃, 경기 여주 황학산수목원은 단양쑥부쟁이, 전남 해남 포레스트수목원은 수국, 강원 평창 국립한국자생식물원은 깽깽이풀…. 도장만 찍어도 절로 우리 식물 공부가 된답니다. 나만의 식물도감을 만들어나가는 기분이 들어요.이 아날로그 도장 찍기의 매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최초 세 개의 도장을 여권에 찍으면 씨앗과 화분 등으로 구성된 반려식물 키트를 받고요. 다음부터는 3개씩 도장을 찍을 때마다 동(銅)으로 제작된 주화를 받지요. 이 주화에는 미선나무처럼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자생식물들이 새겨져 있어요.스탬프 투어는 자전거 투어나 박물관·미술관 투어 등 여러 다른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는데요. 수목원·정원 스탬프 투어만의 특별함은 무엇일까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측으로부터 이 투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을 소개받아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우선 충남 논산에 사는 김지나 씨(39) 가족입니다. 부부와 9세, 12세 자녀가 2년 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9개의 도장을 받았다는데요.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국립세종수목원에 갔다가 이 투어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세종시의 금강수목원과 전북 한국도로공사전주수목원을 시작으로 전국의 수목원들을 다녔다네요.김 씨가 말합니다. “난대 식물을 볼 수 있는 전남 완도수목원에 갔다가 구례수목원에 갔는데 두 곳에서 같은 종류의 은은한 향기가 나더라고요. 대체 이게 뭘까 했더니 목서(木犀)의 향이었어요. 이 투어를 통해 무엇보다 감사한 건 아이들이 나무를 알아보는 거예요. 수목원에서 자연을 만나고 나서 가족이 더욱 돈독해졌어요. 서른 개 도장을 받고 나니 더 많은 도장을 받아야겠다는 도전 의식도 생겨나던걸요(웃음).”김 씨는 올해 산불이 특히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를 본 적이 있어요. 새의 군무를 본 남자분이 새들의 터를 지키려고 애쓰는 내용이에요. 그가 말했죠. ‘아름다운 것을 본 죄’라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스탬프 투어를 통해 우리 수목의 아름다운 모습을 봤기 때문에, 산불로 타버린 상황이 특히 마음에 와닿고 슬펐던 것 같아요.”인천에 사는 이화순 씨(63)는 꽃을 좋아해 빌라의 옥상에 여러 종류의 화초를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스탬프 투어는 지난해 인천수목원에 갔다가 알게 됐는데, 집 근처 인천수목원은 입장료가 없어 언제든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진으로 식물의 이름을 물어보면 집단지성이 알려주는 스마트폰 ‘모야모’ 앱에서 ‘똥식이사랑’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식물 이름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답변을 잘 해주기 위해 식물원을 다니며 식물을 공부한다고 합니다.“꽃 좋아하는 저와 역마살 있는 남편에게 딱 맞는 여행이에요. 수목원마다 서로 다른 특징도 찾아보고 새로운 꽃도 발견하고 있어요. 꽃창포 가득한 경남 거창 창포원은 꼭 자전거를 빌려 한 바퀴 돌아보세요. 거창 금원산생태수목원은 골짜기 따라 숲길이 아주 좋은데 관람객이 적어 널리 알리고 싶네요. 인천수목원 온실에 오랜만에 핀 바우히니아는 또 얼마나 예쁜데요. 충남 홍성 그림같은수목원과 강원 강릉 솔향수목원도 추천하고 싶어요.”서울에 사는 차재연 씨(55)는 말합니다. “진달래 필 때 세종시 금강수목원을 맨발로 걸으면 참 행복해져요.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우리 호랑이와 자생식물 보는 것도 참 좋고요. 스탬프 투어의 매력이요? 경험이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기분이에요. 기억에 오래 남아요”.경기 성남에 사는 시내버스 기사 임명연 씨(63)는 쉬는 날 아내와 전국 100대 명산도 다니고, 등대 투어도 하다가 수목원·정원 스탬프 투어를 알게 돼 블로그에 수목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 수목원·정원의 진정한 홍보대사, 함께 지키고 돌보는 정원문화의 실천자 아닌가 싶습니다.이 스탬프 투어의 명칭은 왜 ‘아름다운 동행’일까요. “단순한 여행을 넘어 정원과 사람, 자연과 마음을 잇는 지속 가능한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지용훈 국립세종수목원 교육운영실 팀장). 지금까지 10만 개 스탬프북, 2만 개 주화가 국민에게 전달됐고, 참여 수목원에는 교육 전시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습니다.세상은 넓고 가볼 수목원은 많습니다. 전국 곳곳의 수목원은 단지 식물을 감상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건너는 다리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씨앗이 되는 장소입니다. 당장 이번 주말부터 도장 찍기 여행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가수 윤종신의 노래 ‘수목원에서’를 흥얼거려봅니다. ‘수다 떠는 아줌마들처럼 웃는 새들과 누굴 애타게 찾는 것처럼 울어대는 벌레들. 여전해요. 그대와 거닐었던 그날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추억의 숲속 길….’<스탬프 투어와 함께할 만한 교육·체험 프로그램>●국립세종수목원5, 6, 9, 11월에만 만날 수 있는 ‘물빛따라 꽃길따라’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전기버스를 타고 수목원 해설사와 함께 정원과 사계절 온실을 돌아보며 기후대별 생물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공룡소나무 ‘울레미소나무’와 수천 년을 살아가는 식물 ‘웰위치아’ 등 특별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국립한국자생식물원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는 체험 프로그램 ‘식물을 담은 도자기’를 진행한다. 초벌 도자기에 나만의 식물 이야기를 담고 유약을 발라 가마에 굽는 내내 식물과 예술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야생 종자 영구저장시설인 ‘시드볼트’와 백두산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숙박과 체험을 연계한 자연 체류형 프로그램 ‘가든스테이’가 인기다. 다양한 생태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가족, 연인, 학생 단체들이 자연 속에서 휴식과 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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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의 정원을 흐르는 ‘니요도 블루’[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저들은 인생의 어떤 질문을 품었기에 고독하게 길을 걷는 것일까. 일본 시코쿠(四国) 남단 고치(高知)현에서 삿갓을 쓰고 걷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궁금했다. 일본 근대화의 문을 연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의 고향이기도 한 고치. 그곳에는 햇살이 유리알처럼 반사되는 에메랄드빛 니요도강(仁淀川)이 흐른다. 일본에서 가장 맑고 푸르다는 이 강물 빛은 ‘니요도블루’로 불린다. 강물에 마음을 씻어 햇볕에 널고 싶다. 고치현은 일본 열도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 일본인에게도, 일본을 자주 찾는 한국인에게도 아직 낯선 땅이다. 국내 직항 노선이 없어 인천공항에서 오전 7시 비행기를 타고 고치현 북쪽 에히메(愛媛)현 마쓰야마(松山)공항까지 1시간 반, 다시 2시간 반 차로 달려서야 현청 소재지 고치시에 닿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소도시를 가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람들 미소가 따뜻하다. 고치현 공식 관광 슬로건은 ‘내추럴(Natural), 고치’. 되돌아보니 온몸으로 느낀 환대와 치유의 슬로우 로컬 여행이었다.● 식물을 만나는 순례유키와리이치게(雪割一華). 눈(雪)을 가르며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의 이 희고 여린 야생화는 한국의 바람꽃과 같은 속(屬)이었다. 3000여 종의 식물이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생명의 섬세한 언어를 들려주는 고치현립 마키노식물원은 고치현 출신 식물분류학자 마키노 토미타로(牧野富太郎·1862∼1957)를 기리기 위해 1958년 문을 열었다. 1500종이 넘는 식물에 학명을 붙인 그는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로 통한다.그는 “사랑하는 식물을 만나러 가니 멋지게 입는 거예요”라며 식물을 채집하거나 연구할 때 늘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맸다고 한다. 식물원 ‘마키노 도미타로 기념관’에는 그가 평생 수집한 방대한 식물 표본과 장서, 직접 그린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기념품 상점에서 마키노의 식물 스케치가 프린트된 가방을 샀더니 평생 식물과 함께한 그의 행복을 소장한 기분이 들었다. 희귀 식물이 가득한 유리온실 입구에는 초록빛 식물이 내부를 감싼 9m 높이 탑이 있었다. 동그란 천창을 통해 하늘의 빛이 내려와 마음에 스며들었다.식물원 옆 고다이산(五台山) 정상에는 지쿠린지(竹林寺)라는 절이 있다.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 창시자 구카이(空海·774∼835)의 자취를 따라 시코쿠 4개 현, 88개 사찰을 걸어서 찾는 1400km 순례길을 시코쿠헨로(四国遍路),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오헨로상(お遍路さん)이라고 한다. 고치현에는 제24∼39번 사찰이 있는데 지쿠린지는 제31번 사찰이다.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으려는 이들이 찾아와 걷고, 명상하고, 정원을 바라본다.● 산골 마을을 살린 ‘모네의 정원’고치현에는 ‘니요도블루’만 있는 게 아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가 즐겨 그렸지만, 프랑스 기후에서는 볼 수 없던 ‘푸른 수련’이 따뜻한 고치현에서는 피어난다. 동부 산골 마을 기타가와무라(北川村)에는 ‘모네의 정원 마르모탕’이 있다. 프랑스 모네 재단이 다른 나라에 유일하게 ‘모네의 정원’ 명칭을 사용하도록 허가한 곳이다. 편의점에서 우메보시(매실 절임)주먹밥을 사서 정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분홍빛으로 물든 밥알이 마치 손바닥 안 꽃밭처럼 고왔다. ‘모네의 정원’에 가 보니 프랑스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을 정성껏 축소 재현해 놓았다. ‘물의 정원’에는 연못과 일본식 아치형 다리가 있고, 등나무와 장미가 아치를 감아 오르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정원사가 말했다. “모네는 생전에 빛의 인상으로 ‘푸른 수련’을 그렸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자랄 수 없던 푸른 수련이 이곳에서는 6월 하순부터 11월 초순까지 피어요.” 빛과 시간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모네의 푸른 수련이야말로 명상적 생명력이었다.물감 팔레트처럼 형형색색 튤립이 가득 채운 ‘꽃의 정원’을 지나니 ‘보르디게라’(Bordighera)라는 이름의 지중해식 정원이 나왔다. 모네가 이탈리아 해안 도시 보르디게라를 방문해 그렸던 이국적인 식물과 해안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테라스에 앉아 풍광을 즐기는 사람들 모습이 평화로웠다. 일본 문화를 동경했고 자신이 남긴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정원을 꼽았던 모네도 환생해 저 자리에 앉고 싶지 않을까. 이 정원이야말로 사라져 가던 기타가와무라를 기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던 이곳은 정원을 통해 농촌 소멸을 막아냈다. 1990년대 후반 프랑스 모네의 정원을 찾아가 정원 설계 및 조성 협력을 받아 2000년 문을 연 이곳 모네의 정원은 지금까지 200만 명이 다녀갔다.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이 공공정원은 지역 주민들이 정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카페 모네하우스’에서는 현지 제철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선보인다. 정원을 찾는 방문객이 지역 농산물과 꽃을 사고 인근 숙소에 묵으니 마을이 살아났다.● 조용히 빛나는 느린 일상 이른 아침 고치 시내에 있는 전통 온천 료칸 산수이엔(三翠園) 앞 가가미강(鏡川) 주변을 천천히 산책했다. 료칸의 정원도 정갈했지만 버드나무 연두색 새잎과 동네 작은 공원 약수터, 자전거 타고 하루를 시작하러 가는 시민들의 아침 일상이 조용히 빛났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고치성(城)도, 시민들이 낮이든 밤이든 모여 가츠오타다키(가다랑어 짚불구이)를 하이볼과 함께 먹는 히로메(廣目)시장도 멀지 않다. 30여 년 전 도쿄(東京)에 처음 문을 연 유명 할인 잡화점 ‘돈키호테’는 일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중 마지막으로 고치현에 올 2월에야 문을 열었다. 고치현의 느림을 보여주는 한 단면일 수 있겠다.작은 어촌 가쓰라하마(桂浜) 해변에는 사카모토 료마 동상이 13m 높이로 서 있다. 료마의 시선을 따라 시원하게 펼쳐지는 태평양 풍광을 바라보면 왜 그가 낭만적 혁신을 꿈꿨는지 짐작이 된다. 대개는 카약을 타러 오는 니요도강 아웃도어센터에서는 홀로 바이크에 텐트를 싣고 와서 강가에 펼친 중년 남성을 보았다. 우리는 눈인사를 했다. 그가 틀어둔 컨트리 음악이 푸른 물결을 따라 천천히 흘렀다. 어느새 내 마음의 연못에도 푸른 수련 하나가 소리 없이 피어나고 있었다.글·사진 고치=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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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요도블루’빛 강물이 마음의 정원을 흐르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저들은 인생의 어떤 질문을 품었기에 고독하게 길을 걷는 것일까. 일본 시코쿠(四国) 남단 고치(高知)현에서 삿갓을 쓰고 걷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궁금했다. 일본 근대화의 문을 연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의 고향이기도 한 고치. 그곳에는 햇살이 유리알처럼 반사되는 에메랄드빛 니요도강(仁淀川)이 흐른다. 일본에서 가장 맑고 푸르다는 이 강물 빛은 ‘니요도블루’로 불린다. 강물에 마음을 씻어 햇볕에 널고 싶다.고치현은 일본 열도 중심에서 떨어져 있어 일본인에게도, 일본을 자주 찾는 한국인에게도 아직 낯선 땅이다. 국내 직항 노선이 없어 인천공항에서 오전 7시 비행기를 타고 고치현 북쪽 에히메(愛媛)현 마쓰야마(松山)공항까지 1시간 반, 다시 2시간 반 차로 달려서야 현청 소재지 고치시에 닿을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소도시를 가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무엇보다 사람들 미소가 따뜻하다. 고치현 공식 관광 슬로건은 ‘내추럴(Natural), 고치’. 되돌아보니 온몸으로 느낀 환대와 치유의 슬로우 로컬 여행이었다.● 식물을 만나는 순례유키와리이치게(雪割一華). 눈(雪)을 가르며 피어나는 꽃이라는 뜻의 이 희고 여린 야생화는 한국의 바람꽃과 같은 속(屬)이었다. 3000여 종의 식물이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생명의 섬세한 언어를 들려주는 고치현립 마키노식물원은 고치현 출신 식물분류학자 마키노 토미타로(牧野富太郎·1862~1957)를 기리기 위해 1958년 문을 열었다. 1500종이 넘는 식물에 학명을 붙인 그는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로 통한다.그는 “사랑하는 식물을 만나러 가니 멋지게 입는 거예요”라며 식물을 채집하거나 연구할 때 늘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맸다고 한다. 식물원 ‘마키노 도미타로 기념관’에는 그가 평생 수집한 방대한 식물 표본과 장서, 직접 그린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기념품 상점에서 마키노의 식물 스케치가 프린트된 가방을 샀더니 평생 식물과 함께한 그의 행복을 소장한 기분이 들었다. 희귀 식물이 가득한 유리온실 입구에는 초록빛 식물이 내부를 감싼 9m 높이 탑이 있었다. 동그란 천창을 통해 하늘의 빛이 내려와 마음에 스며들었다.식물원 옆 고다이산(五台山) 정상에는 지쿠린지(竹林寺)라는 절이 있다. 일본 불교 진언종(眞言宗) 창시자 구카이(空海· 774~835)의 자취를 따라 시코쿠 4개 현, 88개 사찰을 걸어서 찾는 1400㎞ 순례길을 시코쿠헨로(四国遍路), 이 길을 걷는 사람은 오헨로상(お遍路さん)이라고 한다. 고치현에는 제24~39번 사찰이 있는데 지쿠린지는 제31번 사찰이다. 삶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으려는 이들이 찾아와 걷고, 명상하고, 정원을 바라본다.● 산골 마을을 살린 ‘모네의 정원’고치현에는 ‘니요도블루’만 있는 게 아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가 즐겨 그렸지만, 프랑스 기후에서는 볼 수 없던 ‘푸른 수련’이 따뜻한 고치현에서는 피어난다. 동부 산골 마을 기타가와무라(北川村)에는 ‘모네의 정원 마르모탕’이 있다. 프랑스 모네 재단이 다른 나라에 유일하게 ‘모네의 정원’ 명칭을 사용하도록 허가한 곳이다. 편의점에서 우메보시(매실 절임)주먹밥을 사서 정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분홍빛으로 물든 밥알이 마치 손바닥 안 꽃밭처럼 고왔다.‘모네의 정원’에 가 보니 프랑스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을 정성껏 축소 재현해 놓았다. ‘물의 정원’에는 연못과 일본식 아치형 다리가 있고, 등나무와 장미가 아치를 감아 오르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정원사가 말했다. “모네는 생전에 빛의 인상으로 ‘푸른 수련’을 그렸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자랄 수 없던 푸른 수련이 이곳에서는 6월 하순부터 11월 초순까지 피어요.” 빛과 시간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모네의 푸른 수련이야말로 명상적 생명력이었다.물감 팔레트처럼 형형색색 튤립이 가득 채운 ‘꽃의 정원’을 지나니 ‘보르디게라’(Bordighera)라는 이름의 지중해식 정원이 나왔다. 모네가 이탈리아 해안 도시 보르디게라를 방문해 그렸던 이국적인 식물과 해안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테라스에 앉아 풍광을 즐기는 사람들 모습이 평화로웠다. 일본 문화를 동경했고 자신이 남긴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정원을 꼽았던 모네도 환생해 저 자리에 앉고 싶지 않을까.이 정원이야말로 사라져 가던 기타가와무라를 기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던 이곳은 정원을 통해 농촌 소멸을 막아냈다. 1990년대 후반 프랑스 모네의 정원을 찾아가 정원 설계 및 조성 협력을 받아 2000년 문을 연 이곳 모네의 정원은 지금까지 200만 명이 다녀갔다.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이 공공정원은 지역 주민들이 정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카페 모네하우스’에서는 현지 제철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선보인다. 정원을 찾는 방문객이 지역 농산물과 꽃을 사고 인근 숙소에 묵으니 마을이 살아났다.● 조용히 빛나는 느린 일상이른 아침 고치 시내에 있는 전통 온천 료칸 산수이엔(三翠園) 앞 가가미강(鏡川) 주변을 천천히 산책했다. 료칸의 정원도 정갈했지만 버드나무 연두색 새잎과 동네 작은 공원 약수터, 자전거 타고 하루를 시작하러 가는 시민들의 아침 일상이 조용히 빛났다.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고치성(城)도, 시민들이 낮이든 밤이든 모여 가츠오타다키(가다랑어 짚불구이)를 하이볼과 함께 먹는 히로메(廣目)시장도 멀지 않다. 30여 년 전 도쿄(東京)에 처음 문을 연 유명 할인 잡화점 ‘돈키호테’는 일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중 마지막으로 고치현에 올 2월에야 문을 열었다. 고치현의 느림을 보여주는 한 단면일 수 있겠다.작은 어촌 가쓰라하마(桂浜) 해변에는 사카모토 료마 동상이 13m 높이로 서 있다. 료마의 시선을 따라 시원하게 펼쳐지는 태평양 풍광을 바라보면 왜 그가 낭만적 혁신을 꿈꿨는지 짐작이 된다. 대개는 카약을 타러 오는 니요도강 아웃도어센터에서는 홀로 바이크에 텐트를 싣고 와서 강가에 펼친 중년 남성을 보았다. 우리는 눈인사를 했다. 그가 틀어둔 컨트리 음악이 푸른 물결을 따라 천천히 흘렀다. 어느새 내 마음의 연못에도 푸른 수련 하나가 소리 없이 피어나고 있었다.고치=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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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산림녹화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킨 숨은 주역은?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한국의 산림녹화기록물이 1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됐다. 6·25전쟁 이후 국토를 복구하기 위해 민관이 함께 추진한 산림녹화 사업의 과정을 담은 공문서와 사진 등 9619건이다. 1992년부터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인류의 주요 기록이 선정 대상이다. 한국이 반세기 만에 민둥산을 푸르게 바꾼 여정을 국제사회가 공식 인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이번 등재의 배경에는 숨은 주역이 있다. 사단법인 한국산림정책연구회 소속 산림녹화유네스코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인 이경준 위원장과 퇴직 산림공무원들이 2016년 6월 발족해 지금껏 등재를 추진해 왔다().최근 서울 동대문구 국립산림과학원 내 추진위 사무실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추진위 회원 40명이 전국 산림조합과 지방자치단체 산림 부서를 7년 동안 다니며 수집한 1만여 건 중 9619건이 등재된 것”이라며 “산림녹화기록물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국토의 재건과 국민의 협력을 담은 감동의 서사”라고 강조했다.이 위원장에 따르면 한국의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산림녹화기록물 등재 추진을 검토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영구보존되는 조림(造林) 대장 등을 제외하고는 기록물이 자동 폐기됐거나 전국에 흩어져 있어 자료 수집이 쉽지 않았다.이런 이유로 민간 추진위가 나서게 됐다. 이 위원장이 추진위를 이끌고 전진표 한국임우연합회장과 이철수 전 서부지방산림청장 등 퇴직 산림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일했던 지역들을 다니면서 기록물을 모았다. 순전히 무보수 재능기부였다. 활동 비용은 산림청 연구용역비, 유한킴벌리와 한국양묘협회 등의 후원금을 받아 마련했다.추진위는 발족 이듬해인 2017년 정부 기록물 위주로 유네스코 등재를 신청했다가 탈락해 이번이 ‘재수’ 도전이었다. 한 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산림조합중앙회의 말단 조직으로 마을마다 있는 산림계를 찾아다녔다. 산림계는 산림녹화 초기에 연료림(땔감에 쓰일 목재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림)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 그렇게 추가로 모은 1300여 개 산림녹화 기록물이 민간 기록물로 인정돼 온 국민이 합심한 숲가꾸기를 강조할 수 있었다. 유네스코는 한국의 대규모 사방사업과 화전 정리, 독특한 산림계의 기록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을 지녔다고 평가했다.추진위는 대표적인 10대 산림녹화기록물을 다음과 같이 꼽는다. △1961년 제정 공포된 산림법 △제1, 2차 치산녹화계획 △전국산림실태조사 △산림계 민초조림(民草造林) △화전민 대책 △대관령 특수조림 △영일지구 사방사업(砂防事業·황폐지 복구 예방사업) 완료 보고서 △경북 봉화군 산림조합 연료림 조성 △한독 산림녹화사업 △강원도청 공무원 복지조림조합 조림계획이다.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산림녹화기록물은 올해 하반기 국립세종수목원에 문을 열 국토녹화기념관 수장고에 보관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한국은 산업화와 산림녹화를 동시에 이뤄낸 자랑스러운 ‘K포레스트’를 개발도상국에 전하고, 지구온난화로 세계 산림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구 살리기의 모범 케이스가 될 수 있다”며 “하루빨리 기록물 원본을 한데 모으고 디지털화해 세계인이 열람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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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기록유산 된 한국 산림녹화기록물… 디지털화 시급”

    한국의 산림녹화기록물이 1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공식 등재됐다. 6·25전쟁 이후 국토를 복구하기 위해 민관이 함께 추진한 산림녹화 사업의 과정을 담은 공문서와 사진 등 9619건이다. 1992년부터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인류의 주요 기록이 선정 대상이다. 한국이 반세기 만에 민둥산을 푸르게 바꾼 여정을 국제사회가 공식 인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등재의 배경에는 숨은 주역이 있다. 사단법인 한국산림정책연구회 소속 산림녹화유네스코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다.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인 이경준 위원장(사진)과 퇴직 산림공무원들이 2016년 6월 발족해 지금껏 등재를 추진해 왔다. 최근 서울 동대문구 국립산림과학원 내 추진위 사무실에서 만난 이 위원장은 “추진위 회원 40명이 전국 산림조합과 지방자치단체 산림 부서를 7년 동안 다니며 수집한 1만여 건 중 9619건이 등재된 것”이라며 “산림녹화기록물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국토의 재건과 국민의 협력을 담은 감동의 서사”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한국의 새마을운동 기록물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산림녹화기록물 등재 추진을 검토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영구보존되는 조림(造林) 대장 등을 제외하고는 기록물이 자동 폐기됐거나 전국에 흩어져 있어 자료 수집이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민간 추진위가 나서게 됐다. 이 위원장이 추진위를 이끌고 전진표 한국임우연합회장과 이철수 전 서부지방산림청장 등 퇴직 산림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일했던 지역들을 다니면서 기록물을 모았다. 순전히 무보수 재능기부였다. 활동 비용은 산림청 연구용역비, 유한킴벌리와 한국양묘협회 등의 후원금을 받아 마련했다. 추진위는 대표적인 10대 산림녹화기록물을 다음과 같이 꼽는다. △1961년 제정 공포된 산림법 △제1, 2차 치산녹화계획 △전국산림실태조사 △산림계 민초조림(民草造林) △화전민 대책 △대관령 특수조림 △영일지구 사방사업(砂防事業·황폐지 복구 예방사업) 완료 보고서 △경북 봉화군 산림조합 연료림 조성 △한독 산림녹화사업 △강원도청 공무원 복지조림조합 조림계획이다. 유네스코는 한국의 대규모 사방사업과 화전 정리, 독특한 산림계 등의 기록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을 지녔다고 평가했다.추진위는 발족 이듬해인 2017년 정부 기록물 위주로 유네스코 등재를 신청했다가 탈락해 이번이 ‘재수’ 도전이었다. 이 위원장은 “실패를 교훈 삼아 민간 기록물을 샅샅이 찾아내 온 국민이 합심한 점을 강조한 게 주효했다”며 “한국은 산업화와 산림녹화를 동시에 이뤄낸 자랑스러운 ‘K포레스트’를 개발도상국에 전하고, 지구온난화로 세계 산림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구 살리기의 모범 케이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산림녹화기록물은 올해 하반기 국립세종수목원에 문을 열 국토녹화기념관 수장고에 보관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하루빨리 기록물 원본을 한데 모으고 디지털화해 세계인이 열람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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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라는 정원에서 우리 일상이 다시 피어날 시간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어제(4일) 서울에 벚꽃이 피었습니다. 기상청은 서울 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의 왕벚나무 한 가지에서 세 송이 이상 꽃이 활짝 피면 ‘공식 개화’를 선언합니다. 2025년 4월 4일, 벚꽃은 시작했고 세상엔 어떤 ‘끝’이 선고됐습니다. 오늘은 식목일. 한 그루 나무를 심듯 일상도 다시 심고 가꿔야 할 시간입니다. 사실 봄은 이미 와 있었습니다. 다만 올해는 봄을 봄이라 부르는 게 주저됐습니다. 3월의 폭설과 산불, 혼란한 정세 속에서 우리 일상은 흔들렸습니다. 노란 복수초와 할미꽃, 개나리와 진달래가 아름다우면서도 애처로웠던 건 마음의 시선이었을까요. 봄꽃과 새잎의 설렘을 누리는 것조차 한없이 조심스러웠던 그런 초봄을 보냈습니다. 어제 유독 많은 이들이 “이제야 봄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회사 선배는 불과 하루 만에 벚꽃이 활짝 핀 서울 안양천 뚝방길을 걷다가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돌아온 것은 꽃입니까, 나입니까, 세상입니까’라는 글귀와 함께…. 그 세상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일 겁니다. 갈등의 끝자락에서 이제는 서로 다른 마음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최근 경기 화성 소다미술관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Hello, World!_당신의 목소리를 보여주세요’ 전시를 알게 됐습니다. 누구든 생각을 남길 수 있는 이 온라인 플랫폼에 남겨진 문장들에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읽습니다.‘계절의 봄만큼 세상의 봄을 기다립니다.’‘봄은 결국 오고야 만다.’‘껍데기를 벗고 함께 나가자. 마침내 봄이 왔거든.’‘지구라는 정원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해요.’얼마나 간절하게 봄을 기다려온 마음들인가요. 곰곰이 되씹게 되는 말들이 이어집니다. ‘삶의 유한함과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순간을 더 애틋하게 여기며 살아내자.’‘당신의 자리에 서 봅니다. 나를 사랑하듯이 당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저는 ‘일상을 단단하게 지키는 것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라고 남겼습니다. 요즘 진달래가 유독 곱게 보입니다. 한 줌 따서 입속에 넣으니 새콤한 봄맛이 납니다. 찹쌀가루 반죽 위에 올려, 기름 두른 팬에 꽃전을 부쳐봅니다. 이처럼 무탈하고 평온한 봄맞이가 얼마나 소중한 일상이던가요. 그래서 오늘은 일상의 회복을 돕는 봄의 ‘시크릿가든’ 네 곳을 소개합니다.◇길동생태공원서울이라는 도시에 이렇게도 고요한 생태숲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연두색 새잎과 새소리가 싱그런 봄을 알립니다. 누군가와 나란히 걸어도 좋지만 혼자 호젓하게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흐트러졌던 마음이 조용히 정돈됩니다. ◇화담숲자작나무 2000여 그루 사이로 피어난 수선화 10만 송이가 땅에 시(詩)를 씁니다. 답답하고 억울했던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집니다. 화담숲의 새 복합문화공간 화담채는 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현대식 차경(借景)이 참 좋습니다. 서로 다른 식물들이 숲을 이루듯, 인간도 다름을 인정하고 어울릴 수 있기를. 화담채 분재 전시에서는 시간의 인내를 배웁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걸어서 수목원 일주’는 숲해설가와 함께 호랑이숲, 능수벚꽃길, 거울연못, 미나리아재비 군락지 등을 세 시간 동안 돌아보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향연도 볼 수 있을 거예요.◇국립수목원올해는 유독 봄이 늦었습니다. 야생화들이 이제야 땅 위로 올라옵니다. 얼레지, 현호색, 할미꽃, 바람꽃, 깽깽이풀…. 작지만 강한 생명들은 몸을 낮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시선을 땅 가까이에 둘수록 봄은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모진 날씨를 견뎌내고 피어난 봄꽃이 유독 애틋하고 고맙습니다.벚꽃은 피었고 어떤 끝은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다시 살아갈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 일상에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꽃을 보며 설렐 수 있고, 오랜 친구에게 “잘 지내지?” 안부 문자를 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회복을 시작한 것일 겁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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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타는 숲, 피어나는 생명…그래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었지만 봄은 잿빛입니다. 화마(火魔)가 집어삼킨 우리 숲을 생각하면 버드나무 가지처럼 마음에 눈물이 흐릅니다. 도깨비불 앞에서 우리 인간은 얼마나 속수무책인지요. 겨울을 견딘 나무들이 꽃눈과 새잎을 터뜨리는 생명의 계절에 불길이 숲을 할퀴며 옮겨붙고 있습니다. 메마른 건 날씨와 토양만이 아닐 겁니다. 이 땅의 산과 숲, 그 속에 숨 쉬는 문화와 생명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도 그처럼 말라 있던 건 아닐까요. 무엇을 지키지 못했는지, 무엇을 외면했는지,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이 땅의 숲에 묵념을 올립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압축 성장하며 진통을 겪듯, 한국의 숲도 급속한 치산녹화를 지나 기후변화를 맞았습니다. 단 몇 도의 기온 상승이 재앙을 키운다는 사실에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위험지수는 기온이 1.5도 상승할 때 8.6%, 2.0도 상승할 때 13.5%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됩니다. 1980년대 연평균 238건이던 산불은 2020년대 들어 580건. 숲은 이제 재난의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일단은 총력을 다해 산불을 끄는 게 급선무입니다. 다음엔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숲을 지켜낼 것인가. 숲은 단지 나무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우리 삶의 가치와 함께 숨 쉬는 생명들이 존재합니다. 산림이 국토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에서 산불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회재난입니다. 그에 맞는 재난관리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정비해야 합니다. 예컨대 목재 모듈러 하우스를 평소에는 휴양림 숙소로 사용하다가 재난이 발생하면 이재민을 위한 쉼터로 옮겨 전환할 수 있습니다. 숲은 상처를 보듬고 회복을 이끄는 새로운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전국 숲 네트워크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입니다. 이번 산불을 계기로 ‘소나무 탓’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소나무 송진이 불을 옮기고 활엽수가 불길 확산을 막는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심 온도가 1500도가 넘는 산불에는 침엽수도 활엽수도 다 타버립니다. 기후변화로 건조해진 토양, 무분별한 입산과 관리 미흡 등 문제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인문, 사회, 경제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건설적 논의를 통해 건강한 숲을 다시 일궈야 합니다.산림과학원은 바람의 방향 등 기후 인자를 통한 산불 확산을 예측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 단위로 산림청에 예측 결과를 보내 다른 부처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이를 통해 진화 작전을 펼치고, 피해가 예상되는 민가와 국가유산을 대피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90%인 예측도를 높이는 게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불을 내는 건 대체로 사람입니다. 올해부터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행동을 분석해 위험 지역을 예측한다고 하니 기대와 경계를 함께 품어봅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빨리빨리’가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무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시간 감각은 조급하지만, 나무는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묵묵히 살아갑니다. 우리는 나무를 가꾼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나무가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산불 이후 숲을 어떤 방식으로 복원할 것인가. 그 해답은 나무의 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빠르지 않고 나지막하지만 놓쳐서는 안 될 숲의 언어입니다. 천년고찰이 불타고 불길이 삶터를 지나도 숲은 봄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고요한 잿더미 속에서 새 생명이 움트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 안에 얼마나 큰 슬픔을 삭이고 있을까요. 피해 이웃을 위로하며 그래도 단단하게 살아갈 이유, 숲이 그 답을 조용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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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웨이, 청정 면적 다양화한 ‘노블 공기청정기 2’

    코웨이가 공간의 크기에 따라 청정 면적을 다양화한 노블 공기청정기2 라인업으로 프리미엄 공기청정기 시장 공략을 강화한다.최근 주거 시설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카페 등 상업시설에서도 공기청정기 수요가 늘어나면서 청정 성능은 물론이고 색상과 디자인, 제품의 크기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하는 소비자의 요구도 커졌다.코웨이 노블 공기청정기2는 인테리어적 요소가 가미된 조형적 디자인과 자연의 소재를 모티브로 구성한 5가지 색상으로 2021년 처음 선보인 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코웨이 대표 제품이다.코웨이는 최근 노블 공기청정기의 프리미엄 디자인은 유지하면서 혁신적 청정 기술로 제품 크기는 줄이고 성능을 강화한 대형 청정면적의 100m², 133m² 제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기존 53㎡, 67㎡에 이어 넓은 공간도 관리 가능한 신제품 출시로 공용·상업시설까지 프리미엄 공기청정기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넓은 청정면적의 노블 공기청정기2(100m², 133m²)는 코웨이만의 필터 기술력과 청정 솔루션으로 제품 크기는 최대 35% 줄이는 동시에 넓은 청정 성능을 구현했다. 공용 시설의 공간 활용성을 고려해 대용량 공기청정기임에도 불구하고 작아진 사이즈로 다양한 공간에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노블 공기청정기2는 코웨이만의 혁신적 청정 솔루션 ‘상하 4D 입체 청정 시스템’을 탑재해 어느 공간에서도 빈틈없는 청정력을 자랑한다. 제품 내부에 상하로 적용된 2개의 필터 시스템을 통해 4개 면에서 오염된 공기를 중앙에서 집중 흡입하고 깨끗해진 공기를 상하로 내보내 공간을 빠르게 청정 관리한다는 설명이다.회사 측에 따르면 4단계 필터로 구성된 4D 입체 청정 시스템을 적용해 0.01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의 극초미세먼지를 99.999% 제거하고 공간 내 부유 세균 및 곰팡이, 바이러스까지 99.9% 감소시켜준다. 더 강력해진 탈취강화필터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냄새뿐 아니라 반려동물 냄새까지 99% 이상 제거하는 동시에 깨끗한 공기가 나오는 상하부의 청정팬에 UV-C LED 살균 기능을 탑재해 위생적인 사용 환경을 제공한다.코웨이 노블 공기청정기2는 제품을 제어하고 스마트한 일상을 관리하는 코웨이 아이오케어(IoCare)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아이오케어 플러스(IoCare+)를 적용했다. 해당 앱을 통해 사용자의 필요 기능을 자동으로 추천하고 실내외 공기질 상태, 필터 교체 시기 등을 언제 어디서나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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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백화점, 다음달 6일까지 ‘롯데 와인 위크’

    롯데백화점이 다음달 6일까지 연중 최대 와인 행사인 ‘롯데 와인 위크(LOTTE Wine Week)’를 연다. 프리미엄부터 가성비까지 총 5000여 종 와인을 최대 8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행사 물량을 지난해보다 30% 늘려 역대 최대 규모로 준비했으며, 2030세대를 위한 체험형 콘텐츠도 다채롭게 선보인다.우선 롯데백화점의 전문 소믈리에들이 엄선한 ‘프리미엄’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인다. 대표 와인으로는 ‘르루아 꼬르통 그랑크뤼’, ‘프리에르 로크’, ‘솔라이아’, ‘마세토’, ‘오퍼스원’ 등이 있으며 최대 8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 ‘르루아 꼬르통 그랑크뤼’ 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서 전설적인 양조자로 불리는 ‘랄로 비즈 르루아’가 최고 전성기인 2000년대 중반에 생산한 빈티지 와인으로 세계에서 가장 희소한 프리미엄 와인 중 하나다. 이 외에도 180년 역사를 자랑하는 호주의 ‘펜폴즈 그렌지’와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명가로 꼽히는 ‘가야 바르바레스코 삼총사’ 등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와인들을 한정 수량으로 선보인다.저렴한 가격에 높은 품질을 자랑하는 ‘가성비’ 와인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1만원부터 3만원까지 가격대별 균일가 와인 물량을 전년보다 30% 확대하고, 최근 가성비를 중시하는 2030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뉴질랜드산 화이트 와인 물량도 20% 늘렸다. 세계 최대 와인 플랫폼인 비비노(VIVINO)에서 4.0점 이상 득점한 우수 와인들도 엄선해 준비했다. 대표 상품으로는 ‘신퀀타 꼴레지오네, ‘에라주리즈 돈 막시미아노’, ‘빈디 딕슨 피노누아 2020’, ‘리덴토레 레포스코’ 등이 있다.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최근 경제 침체와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와인 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롯데백화점의 전체 와인 매출 중 1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와인과 3만원 이하의 ‘가성비’ 와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보다 각 5%P와 10%P 증가해 50%와 30%를 기록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중 와인 수요가 급증했던 2030세대는 3만 원대 이하 와인 매출 구성비가 65%에 달했을 정도로 가성비 와인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경험을 중시하는 2030세대를 위한 체험형 행사도 다채롭게 선보인다. 점포별로 와인을 포함해 다양한 주류 시음과 경품 이벤트 등을 마련했다. 4월 4일부터 6일까지 김포공항점에서는 국내 3개 유명 소믈리에 대회에서 처음으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조현철 소믈리에와 협업해 총 300여종의 와인을 직접 마셔볼 수 있는 테이스팅 행사를 진행한다. 본점에서는 인기 푸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상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우리술 랩소디’ 팝업 스토어를 27일까지, 광복점에서는 유명 수제 맥주 플랫폼 ‘무빙 브루어리(3/28∼4/10)’와 함께하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최준선 와인앤리커(Wine&Liquor)팀 치프바이어(소믈리에)는 “와인 시장이 양극화 됨에 따라 이번 행사는 ‘프리미엄’과 ‘가성비’ 와인에 초점을 맞춰 상품 구성부터 물량까지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며, “앞으로도 변화하는 주류 시장에 주시하며, 고객들의 니즈에 맞는 프로모션과 콘텐츠를 발빠르게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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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은 고요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입니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아원고택과 아가페정원. 여러모로 성격이 다른 두 곳을 다녀왔는데,이상하게도 같은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어떻게 살 것인가.’#1. 똑딱똑딱. 전북 완주 아원(我園)고택 로비 겸 갤러리에 들어서자 물줄기가 명상 음악과 어우러지며 수조 위로 떨어졌다. 목탁 소리 같은 그 소리는 마음에 동그란 물수제비를 그렸다. 부드러운 빛이 수면에 내려앉기에 위를 올려다보니 지붕이 뚫려 있었다. 움직이는 지붕이라 이따금 눈과 비도 실내로 들어온다고 한다. 구도(求道)의 공간이 이런 걸까.● 아원고택, “한옥은 움직이는 정원” “오후 4∼5시 체크인 시간을 준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손님들 안전과 어둠이 내리기 전 아원 풍광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아원고택 측이 미리 보내준 문자 메시지 내용이 이해되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종남산(終南山)은 그 자체로도 가슴을 뻥 뚫리게 했지만, 해가 산 위로부터 서서히 하강하면서 정원의 네모난 수경(水鏡) 위를 비추는 풍광은 마음속에도 빛을 가득 채웠다.송광사 절터를 구하던 도의선사가 이 산에서 깨끗한 영천수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남쪽으로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고 해서 산의 이름이 종남산이라고 했던가.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듣고 싶어 나만의 공간을 절실하게 찾던 어느 20대 청년도 종남산 산세에 반해 황무지 6600㎡(2000평)을 사들였다. 오랫동안 정원을 만들고 전국에서 한옥 네 채를 옮겨와 15년간 조립해 지은 곳이 아원고택이다. 땅을 산 그 청년, 전해갑 아원 대표는 이제 일흔 살이다. 아원고택은 2019년 그룹 BTS가 머물며 제작한 ‘2019 썸머 패키지’에 소개되며 글로벌 ‘BTS 힐링 성지’가 됐다. 오랜 세월이 그려낸 기와 꽃, 그날그날 수반에 띄워 두는 들꽃, 호수 같은 수조에 데칼코마니처럼 찍히는 나무 그림자, 대나무 산책길의 새 소리…. 이곳의 디테일은 고요하고 느리게 걸을수록 하나둘 눈, 귀, 마음에 들어선다. 아원은 ‘우리들의 정원’이란 뜻이다. 전 대표는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전북 정읍시, 전남 함평군 등에서 오래된 한옥 네 채를 옮겨왔다. 집들 나이를 합치면 650세다. 정읍의 100년 된 한옥을 옮겨 온 천지인(만휴당) 다도실에서 전 대표와 마주 앉았다. 한옥의 네모난 창문이 액자처럼 종남산을 담고 있었다. 꽃 피고 단풍 드는 계절의 색(色)도 좋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지금 시기의 실존적 풍경도 좋았다. 겨우내 잎을 떨쳐 냈던 나무들은 선명한 형태를 드러내는 동시에 새 생명이 움트는 설렘을 품고 있었다. 전 대표는 젊을 때 음악에 미쳐 DJ 일도 했다. 편안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 공간 기획 일을 시작했는데, 음악으로 일깨운 감각 덕분인지 손대는 상업공간마다 성공했다. 하지만 남의 공간을 빌려 반짝이게 하면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내몰렸다. 지친 그의 관심을 끈 게 조경이었다. 어느 순간 건축보다 한 그루 나무가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 “아원은 정원이 먼저였고, 한옥은 나중에 얹은 거예요. 한옥은 가구처럼 해체해 옮길 수 있는, 움직이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조경) 정원’이에요.” 그러고 보니 돌담 옆 녹차 밭, 좁아지고 넓어지는 동선 등 조경 요소들이 세심하게 배치돼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가 그랬죠.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뛰어난 예술가는 훔친다’고요. 전 한옥의 차경(借景·빌려오는 풍경)을 통해 자연을 훔쳤어요. 바깥 풍경을 불러들이려면 안에는 적을수록 좋아요. 그래야 나도 모르게 멈춰 탁 ‘멍 때릴’ 수 있거든요. 그게 몰입이고 명상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자연이에요. 가능하면 자연에 손대지 말고, 내 걸로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해요. 자연은 그걸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이에요. 훼손되고 상처받은 마을들에 이런 공간들이 들어서 지역 소멸을 막았으면 해요.”#2.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이 향나무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1970년대 고 서정수(알렉시오) 신부가 오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보살피기 위해 세운 전북 익산 ‘아가페정양원’ 정원이다. 이곳은 2021년 전북 제4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돼 정비한 뒤 ‘아가페정원’이라는 이름으로 50여 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다. 지금까지 70만 명 이상 다녀갔다.● 아가페정원, 무조건적 사랑이 이룬 숲 정원 3층 갈색 벽돌 건물에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정양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2년 전까지 아가페정양원장이었다가 정년퇴직하고 이제는 이 노인복지시설의 정원인 아가페정원만 집중해 맡는 최명옥 원장이 말했다. “서정수 신부님이 1970년 이곳을 세우면서 아가페정양원(靜養院)이라는 말을 붙였어요. 고요하게(靜) 쉬면서 무조건적 사랑(아가페)을 나누자고요. 아가페정양원 원훈(院訓)도 ‘가족으로 살자’에요. 처음엔 몰랐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살려면 가족처럼 살아야 하더라고요. 서 신부님이 1985년 선종(善終·성직자의 경건한 임종)한 후로는 박영옥 이사장님(92)이 지금껏 정양원을 가꿨어요.” 현재 50명의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 사는 아가페정양원은 11만5700㎡(3만5000평) 부지가 온통 숲이다. 오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보살피기 위해 나무를 키워 팔아 왔다. 내장산에는 단풍나무, 부잣집들에는 향나무를 팔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1만 그루 넘는 나무가 남아 있고, 그중 향나무는 3000여 그루다. 50여 년 동안 ‘비밀의 숲’이던 이곳이 2021년 아가페정원으로 문을 열게 된 건 정헌율 익산시장의 공이 컸다. 정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때 아가페정양원을 찾아가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치유 받도록 오래된 숲을 정원으로 조성해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아가페정양원 박 이사장은 장고(長考) 끝에 무료 개방을 결정했다. 팬데믹으로 갈 곳 없어진 시민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나누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가페정원은 세련되게 설계된 정원이 아니라서 오히려 정답다. 익산산림조합, 푸른익산가꾸기운동본부 등과 손잡고 숲에 길을 내고 여기저기로부터 꽃을 나눔 받아 꾸몄다. 정원을 걷다가 ‘어서 와요, 소중한 당신’ ‘최고보단 최선을’ 같은 문구들을 마주치니 상처받은 누군가를 살리는 위로가 되겠구나 싶었다. 정원 측이 최근 2년 간 향나무 아래 심었다는 각종 계절 꽃이 곧 너울댈 것이다. 봄에는 수선화와 끈끈이대나물, 여름에는 맥문동과 샤스타데이지, 가을에는 상사화…. 일부 식물 조합은 낯설었지만 구수한 느낌이 있었다. 겨울에 일손이 부족해 미처 뽑아내지 못했다는 시든 토종 맨드라미, 마른 채 가지에 달린 튤립 모양 백합나무 꽃은 각각 땅과 하늘에 쓴 시(詩)였다. 최 원장이 말했다. “정원을 다녀간 분이 고맙다고 연락하셨어요. 요즘 봉선화를 보기 어려운데 우리 정원에서 실컷 보니 어릴 적이 생각나 행복했다고요.” 정원에서 키우는 고양이마저 살갑게 구는 게 인상적이었다.1970년대 울타리 삼으려고 심은 사람 키 높이 메타세쿼이아 500여 그루는 이제 높이 50m로 자라 울창한 산책로를 이룬다. 그곳을 가족과 친구들이 걸으며 추억을 쌓는다. 아가페정원 방문객의 절반 이상은 익산 시민이 아니다. 전국에서 몰려들어 주차장 확충이 시급해진 정원 측은 나무를 팔아 재원을 마련하고 싶단다. 새들이 찾아와 먹으라고 열매를 따지 않고, 잡초로 여겨지는 야생화도 소중하게 대하는 이 정원의 실천적 사랑이 꽃향기처럼 퍼진다. 아원고택과 아가페정원은 오랜 세월의 사랑이 깃든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치유’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는 요즘 이 두 곳이야말로 우리 마음을 바라보고 챙기게 하는 치유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 챙김 과정은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가슴속에서 어떤 열정이 깨어나 꿈틀댔다.주변 추천 여행지◇미륵사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중심축이다. 미륵사는 백제 30대 무왕 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동아시아 최대 규모 석탑이다. 일제 강점기 때 콘크리트로 덧씌워졌다가 긴 복원 과정을 거쳐 2019년 지금의 모습을 찾았다. 출토 석조물들이 야외에 전시된 모습이 마치 ‘돌의 정원’ 같다.◇왕궁리 유적 백제 궁궐터로 왕궁리 오층석탑 등이 있다. 유적을 걷다 보면 뜻밖에 백제의 정원을 만난다. 당시 정원 중심시설과 역 ‘U’ 자형 대형 수로를 볼 수 있다. 백제왕궁박물관 옥상 하늘정원은 유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비밀의 정원’이다.글·사진 완주·익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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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칠곡 ‘시호재’, 세계적 디자인상 잇달아 수상

    경북 칠곡군의 복합문화공간 ‘시호재’가 최근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상을 잇달아 받으면서 주목받고 있다.시호재는 지난달 27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5’로 선정됐다고 14일 밝혔다. 1954년부터 매년 혁신적 디자인을 선정하는 iF 디자인 어워드 측은 시호재에 대해 “마치 두 팔을 벌려 환영하듯 양쪽에 배치된 두 건물 사이의 길은 자연의 넉넉한 품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편안하게 환대한다”고 평했다. 이에 앞서 시호재는 지난달 7일 ‘2025 독일 디자인 어워드’도 수상했다. 시호재는 재일교포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고(故) 이타미 준의 장녀인 유이화 건축가(ITM 유이화 건축사사무소 소장)가 설계하고 조경은 김봉찬 ‘더가든’ 대표가 맡았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도 받았다().건축주 박용해 탑런토탈솔루션 회장은 “시호재가 권위있는 상들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기쁘다”며 “더 많은 이들이 찾아와 문화적으로 교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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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살 거냐고 아원고택과 아가페정원이 물었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1. 똑딱똑딱. 전북 완주 아원(我園)고택 로비 겸 갤러리에 들어서자 물줄기가 명상 음악과 어우러지며 수조 위로 떨어졌다. 목탁 소리 같은 그 소리는 마음에 동그란 물수제비를 그렸다. 부드러운 빛이 수면에 내려앉기에 위를 올려다보니 지붕이 뚫려 있었다. 움직이는 지붕이라 이따금 눈과 비도 실내로 들어온다고 한다. 구도(求道)의 공간이 이런 걸까.#2.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이 향나무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1970년대 고 서정수(알렉시오) 신부가 오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보살피기 위해 세운 전북 익산 ‘아가페정양원’ 정원이다. 이곳은 2021년 전북 제4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돼 정비한 뒤 ‘아가페정원’이라는 이름으로 50여 년 만에 일반에 개방됐다. 지금까지 70만 명 이상 다녀갔다.아원고택과 아가페정원. 여러모로 성격이 다른 두 곳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원고택, “한옥은 움직이는 정원”“오후 4~5시 체크인 시간을 준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손님들 안전과 어둠이 내리기 전 아원 풍광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아원고택 측이 미리 보내준 문자 메시지 내용이 이해되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종남산(終南山)은 그 자체로도 가슴을 뻥 뚫리게 했지만, 해가 산 위로부터 서서히 하강하면서 정원의 네모난 수경(水鏡) 위를 비추는 풍광은 마음속에도 빛을 가득 채웠다.송광사 절터를 구하던 도의선사가 이 산에서 깨끗한 영천수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남쪽으로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고 해서 산의 이름이 종남산이라고 했던가. 지금으로부터 44년 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듣고 싶어 나만의 공간을 절실하게 찾던 어느 20대 청년도 종남산 산세에 반해 황무지 6600㎡(2000평)을 사들였다. 오랫동안 정원을 만들고 전국에서 한옥 네 채를 옮겨와 15년간 조립해 지은 곳이 아원고택이다. 땅을 산 그 청년, 전해갑 아원 대표는 이제 일흔 살이다.아원고택은 2019년 그룹 BTS가 머물며 제작한 ‘2019 썸머 패키지’에 소개되며 글로벌 ‘BTS 힐링 성지’가 됐다. 오랜 세월이 그려낸 기와 꽃, 그날그날 수반에 띄워 두는 들꽃, 호수 같은 수조에 데칼코마니처럼 찍히는 나무 그림자, 대나무 산책길의 새 소리…. 이곳의 디테일은 고요하고 느리게 걸을수록 하나둘 눈, 귀, 마음에 들어선다. 아원은 ‘우리들의 정원’이란 뜻이다.전 대표는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전북 정읍시, 전남 함평군 등에서 오래된 한옥 네 채를 옮겨왔다. 집들 나이를 합치면 650세다. 정읍의 100년 된 한옥을 옮겨 온 천지인(만휴당) 다도실에서 전 대표와 마주 앉았다. 한옥의 네모난 창문이 액자처럼 종남산을 담고 있었다. 꽃 피고 단풍 드는 계절의 색(色)도 좋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지금 시기의 실존적 풍경도 좋았다. 겨우내 잎을 떨쳐 냈던 나무들은 선명한 형태를 드러내는 동시에 새 생명이 움트는 설렘을 품고 있었다.전 대표는 젊을 때 음악에 미쳐 DJ 일도 했다. 편안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 공간 기획 일을 시작했는데, 음악으로 일깨운 감각 덕분인지 손대는 상업공간마다 성공했다. 하지만 남의 공간을 빌려 반짝이게 하면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내몰렸다. 지친 그의 관심을 끈 게 조경이었다. 어느 순간 건축보다 한 그루 나무가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그가 말했다. “아원은 정원이 먼저였고, 한옥은 나중에 얹은 거예요. 한옥은 가구처럼 해체해 옮길 수 있는, 움직이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조경) 정원’이에요.” 그러고 보니 돌담 옆 녹차 밭, 좁아지고 넓어지는 동선 등 조경 요소들이 세심하게 배치돼 있었다.“파블로 피카소가 그랬죠.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뛰어난 예술가는 훔친다’고요. 전 한옥의 차경(借景·빌려오는 풍경)을 통해 자연을 훔쳤어요. 바깥 풍경을 불러들이려면 안에는 적을수록 좋아요. 그래야 나도 모르게 멈춰 탁 ‘멍 때릴’ 수 있거든요. 그게 몰입이고 명상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자연이에요. 가능하면 자연에 손대지 말고, 내 걸로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해요. 자연은 그걸 바라보는 사람이 주인이에요. 훼손되고 상처받은 마을들에 이런 공간들이 들어서 지역 소멸을 막았으면 해요.”● 아가페정원, 무조건적 사랑이 이룬 숲 정원3층 갈색 벽돌 건물에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정양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2년 전까지 아가페정양원장이었다가 정년퇴직하고 이제는 이 노인복지시설의 정원인 아가페정원만 집중해 맡는 최명옥 원장이 말했다.“서정수 신부님이 1970년 이곳을 세우면서 아가페정양원(靜養院)이라는 말을 붙였어요. 고요하게(靜) 쉬면서 무조건적 사랑(아가페)을 나누자고요. 아가페정양원 원훈(院訓)도 ‘가족으로 살자’에요. 처음엔 몰랐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살려면 가족처럼 살아야 하더라고요. 서 신부님이 1985년 선종(善終·성직자의 경건한 임종)한 후로는 박영옥 이사장님(92)이 지금껏 정양원을 가꿨어요.”현재 50명의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이 사는 아가페정양원은 11만5700㎡(3만5000평) 부지가 온통 숲이다. 오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보살피기 위해 나무를 키워 팔아 왔다. 내장산에는 단풍나무, 부잣집들에는 향나무를 팔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1만 그루 넘는 나무가 남아 있고, 그중 향나무는 3000여 그루다.50여 년 동안 ‘비밀의 숲’이던 이곳이 2021년 아가페정원으로 문을 열게 된 건 정헌율 익산시장의 공이 컸다. 정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때 아가페정양원을 찾아가 “시민들이 자연 속에서 치유 받도록 오래된 숲을 정원으로 조성해 개방하자”고 제안했다. 아가페정양원 이사장은 장고(長考) 끝에 무료 개방을 결정했다. 팬데믹으로 갈 곳 없어진 시민들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나누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아가페정원은 세련되게 설계된 정원이 아니라서 오히려 정답다. 익산산림조합, 푸른익산가꾸기운동본부 등과 손잡고 숲에 길을 내고 여기저기로부터 꽃을 나눔 받아 꾸몄다. 정원을 걷다가 ‘어서 와요, 소중한 당신’ ‘최고보단 최선을’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아’ 같은 문구들을 마주치니 상처받은 누군가를 살리는 위로가 되겠구나 싶었다.정원 측이 최근 2년 간 향나무 아래 심었다는 각종 계절 꽃이 곧 너울댈 것이다. 봄에는 수선화와 끈끈이대나물, 여름에는 맥문동과 샤스타데이지, 가을에는 상사화…. 일부 식물 조합은 낯설었지만 구수한 느낌이 있었다. 겨울에 일손이 부족해 미처 뽑아내지 못했다는 시든 토종 맨드라미, 마른 채 가지에 달린 튤립 모양 백합나무 꽃은 각각 땅과 하늘에 쓴 시(詩)였다. 최 원장이 말했다. “정원을 다녀간 분이 고맙다고 연락하셨어요. 요즘 봉선화를 보기 어려운데 우리 정원에서 실컷 보니 어릴 적이 생각나 행복했다고요.” 정원에서 키우는 고양이마저 살갑게 구는 게 인상적이었다.1970년대 울타리 삼으려고 심은 사람 키 높이 메타세쿼이아 500여 그루는 이제 높이 50m로 자라 울창한 산책로를 이룬다. 그곳을 가족과 친구들이 걸으며 추억을 쌓는다. 아가페정원 방문객의 절반 이상은 익산 시민이 아니다. 전국에서 몰려들어 주차장 확충이 시급해진 정원 측은 나무를 팔아 재원을 마련하고 싶단다. 새들이 찾아와 먹으라고 열매를 따지 않고, 잡초로 여겨지는 야생화도 소중하게 대하는 이 정원의 실천적 사랑이 꽃향기처럼 퍼진다.아원고택과 아가페정원은 오랜 세월의 사랑이 깃든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치유’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는 요즘 이 두 곳이야말로 우리 마음을 바라보고 챙기게 하는 치유 정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 챙김 과정은 고요하지만은 않았다. 가슴속에서 어떤 열정이 깨어나 꿈틀댔다.<주변 추천 여행지>◇미륵사지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중심축이다. 미륵사는 백제 30대 무왕 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동아시아 최대 규모 석탑이다. 일제 강점기 때 콘크리트로 덧씌워졌다가 긴 복원 과정을 거쳐 2019년 지금의 모습을 찾았다. 출토 석조물들이 야외에 전시된 모습이 마치 ‘돌의 정원’ 같다.◇왕궁리 유적백제 궁궐터로 왕궁리 오층석탑 등이 있다. 유적을 걷다 보면 뜻밖에 백제의 정원을 만난다. 당시 정원 중심시설과 역 ‘U’ 자형 대형 수로를 볼 수 있다. 백제왕궁박물관 옥상 하늘정원은 유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비밀의 정원’이다.완주·익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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