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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한 초등학교에선 졸업앨범 구입 신청과 관련한 가정통신문을 학생들에게 나눠 주며 개인정보 동의서와 함께 ‘딥페이크(허위 영상물) 예방 서약서 제출’까지 받아 눈길을 끌었다. 학생과 보호자에게 각각 서명을 받은 딥페이크 예방 서약서에는 ‘앨범 사진을 함부로 공유하거나 활용하지 않을 것임을 서약하며 사안 발생 시 경찰청 및 여성가족부 등 전문 기관에 의한 처벌, 특별교육 이수, 생활기록부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이해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어쩌다 초등학교 졸업앨범 구입 과정에서 딥페이크 예방 서약서가 등장하게 된 걸까. 최근 사회적으로 졸업앨범 속 사진을 활용한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가 늘자 학교 측이 나름 범죄 예방차 내놓은 대비책이었던 것이다.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만연한 현실을 보여준 하나의 예라고 본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10대들에게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고 배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딥페이크 제작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면 합성사진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초 내외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9월 경찰청이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딥페이크 범죄 현황’에 따르면 딥페이크 영상물을 만들어 배포해 입건된 10대 청소년은 2021년 51명, 2022년 52명, 2023년 91명, 지난해 1∼7월 131명으로 3년 새 2배 이상이 됐다.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역시 10대, 20대 젊은 층의 비율이 높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발간한 ‘2024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총 1만305명 중 10대와 20대 피해자는 8105명으로 78.7%를 차지했다. 특히 1020세대의 합성·편집 피해는 전체 피해 건수의 92.6%에 달했다. SNS를 활발히 이용하는 연령대에 피해가 집중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이처럼 확산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정부의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사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최근 3년간 딥페이크 범죄 발생 대비 검거율은 2021년 47.4%, 2022년 46.9%, 2023년 51.7%로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처벌 수위도 약하다. 여성정책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1심 판결 47%가 집행유예였다. 또 피의자가 14세 미만일 경우 촉법소년에 해당돼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법률상 허점도 존재한다. 교육부는 이달 22일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 성폭력 SOS 가이드’를 배포했다. ‘내가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면’ ‘친구나 주변인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내가 한 행동으로 문제가 생겼다면?’ 등으로 사례를 나눠 대응책 등을 제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가이드라인 배포보다 솜방망이 수준인 관련 범죄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더 좋은 해결책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강렬한 처벌을 뒷받침할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미국 스탠포드대학이 석박사 과정 100명의 대학생에게 3년간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를 지급하는 ‘나이트-헤네시 장학생(Knight-Hennessy Scholars·KHS)’ 설명회를 다음달 6,7일 한국에서 개최한다. 설명회는 다음달 6일 오후 4시부터 서울 동대문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울캠퍼스와 7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국제홀에서 각각 진행된다. 이번 설명회는 스탠포드대 한국총동문회(회장 김재열)와 성균관대 후원으로 마련됐다.이번 설명회에는 KHS 선발심사위원(Assistant Director)인 크리스티안 탄자(Christian Tanja)가 참석해 장학금 선발에 대해 설명한다. KHS는 스탠포드대학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에 관계없이 매년 100명을 장학생으로 선발해오고 있다. 장학생으로 선정되면 3년까지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 연간 1회 스탠포드대학을 오가는 왕복 여행 경비를 지급한다. 올해 지원서 접수기간은 6월 1일부터이다. KHS는 “성적만 우수한 학생보다는 리더십과 협동정신이 있으며 전 세계가 당면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려는 의지가 강한 학생을 선발한다”고 밝혔다. 이어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다양한 전공과 국적, 성장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 교류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를 통해 리더십을 키우고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며 “세계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학생 출신 동문들과 교류하며 네트워크도 탄탄하게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창업자인 필 나이트가 기부한 기금을 바탕으로 조성된 KHS는 스탠포드대학 전 총장이자 현재 알파벳 의장인 존 헤네시의 이름을 함께 따서 2016년 설립됐다.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2018년부터 장학생을 선발한 KHS는 2023년까지 6년간 총 424명의 장학생을 배출했다. 전체 장학생 가운데 56%는 미국 이외의 국적이다. 장학생 중에는 한국 학생도 있다. KHS 모금액은 7억5000만 달러(한화 약 1조 원)로, 전 세계 대학 장학금 중 최대 규모다. 정규영 스탠포드대학 한국총동문회 사무총장은 “보다 더 많은 한국 학생들이 선발돼 세계속에 중요한 리더십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동문회 김재열 회장과 회장단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고 말했다.설명회 참가를 위해서는 ‘설명회 공고 QR코드’를 스캔해 필요 정보를 확인하고 지원하면 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고려대학교가 27일 국내 최초로 미디어대학을 설립하고 출범식을 개최한다. 새로 출범하는 미디어대학은 기존의 미디어학부에 더해 외국인 학생을 위한 ‘글로벌엔터테인먼트학부’를 신설했다. 글로벌엔터테인먼트학부는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특화 학부다. 고려대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선도할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며 “고려대 미디어대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협력해 국제적인 교육 및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K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의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고려대에 따르면 기존 미디어학부와 신설된 글로벌엔터테인먼트 학부는 독립된 선발 단위로 운영되지만 공동 교과과정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고려대 관계자는 “교과목 교차수강 및 협업을 통해 융합적 문제해결 역량과 특화된 전공역량을 동시해 강화해 교육효과를 극대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미디어학부에 대한 외국인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며 “2022년과 2023년에는 내국인 정원 72명과 동일한 규모의 외국인 학생이 입학했다”고 덧붙였다.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이날 출범식에서 “미디어대학은 단순한 학제 개편을 넘어 60년 미디어 교육 혁신의 역사를 기반으로 세계적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신설된 글로벌엔터테인먼트학부는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콘텐츠 산업과 기술 변화에 발맞춰 국제적 인재 양성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세계 속의 고려대라는 비전 아래 미디어대학이 학문과 산업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을 사직해도 의사 면허를 갖고 일할 수 있다. 반면 우리는 대안 없이 버티다가 제적되면 의대생 지위를 잃는다. 누가 책임져줄 것도 아니지 않나. 1년이나 투쟁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전국 40개 대부분의 의대가 동맹 휴학 중인 의대생들의 복귀 시한을 31일까지로 잡고 있는 가운데 제적 위기에 처한 한 의대생이 커뮤니티에 남긴 글의 일부다. 실제로 1년 넘게 동맹휴학을 이어오던 전국 의대생들의 ‘단일대오’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21일까지 복귀 신청을 받은 고려대와 연세대 의대는 재적생 절반가량이 복학원을 제출했다. 연세대 의대의 경우 지난해 입학하자마자 동맹휴학에 들어간 24학번 복귀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강경했던 의대생 움직임에 ‘복귀’라는 변화가 생긴 건 ‘이달 말까지 미복귀 시 제적’ 카드를 꺼낸 정부와 각 대학의 강경한 입장 영향이 컸다. 전국 40개 의대 중 35개 대학이 정부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1년 넘게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학생 휴학계를 21일까지 반려 처리했다. 대부분 의대가 31일까지 1학기 등록 및 복학 신청을 마감한다. 고려대와 연세대, 차의과대는 미등록 의대생에게 24일 제적 예정 통보서를 발송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의대가 복귀 시한을 이번 주 내로 잡았다. 아직도 많은 의대생들이 ‘제적’이 걸린 복귀 이슈를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복귀를 꺼리는 이유로는 ‘배신자 낙인’이 찍히는 걸 우려하는 측면이 크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계 내부에서도 ‘후배 미래를 망치는 무책임한 투쟁을 멈추고, 의대생들이 복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 강경파로 꼽히는 이동욱 대한의사협회 경기도의사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24일 의사 수백 명이 모인 온라인 단체 채팅방에서 “(유급과 제적 등) 위기에 처한 의대생을 도와줄 계획이 없다면 앞길이 창창한 의대생들은 (수업 거부를) 그만하고 돌아가라고 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다”라며 “의대생들에게 더 이상 기대지 말자”고 호소했다. 맞는 말이다. 사직 후 재취업이 가능한 전공의들과 달리 의대생들은 의사 면허가 없다. 대학에서 제적되면 재입학도 쉽지 않다. 선배 의사들은 어린 후배들의 미래를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제적 위기에 몰린 의대생들에게 투쟁만을 강요해선 안 된다. 의대생들 역시 현실을 자각하고 선배 의사들에게 대정부 투쟁을 맡겨야 한다. “선배가 후배를 보호하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다음 세대에게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지금 가장 피해를 본 이는 의대생이다. 비록 미완의 단계라 할지라도 학업의 전당으로 복귀하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21일 고려대 의대 교수들이 낸 비상대책위원회 성명의 일부다. 현 사태를 제대로 평가한 것은 물론이고, 의대생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스승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라 생각한다. 학생이 학교로 복귀하는 건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대생의 목소리도 학교 밖이 아닌 학교 안에서 학생의 본분을 다할 때 더 힘이 실린다. 선배 의사들도 후배 의대생들이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 줘야 한다. 대규모 유급 제적 사태를 막는 것이 미래 의료를 살리는 길이다.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긴급 상황입니다. OO대학 오늘 1학년 OO명 수업 들었답니다.” 이달 6일 의사·의대생 익명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의정 갈등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 역시 장기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5학번 신입생들의 1학기 수업 참여 현황을 파악한 글이 의대생 커뮤니티에 발 빠르게 올라온 것. 지난달 한양대 의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선 재학생들이 25학번을 대상으로 휴학을 강요한 정황이 나와 교육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한양대뿐만 아니라 복수의 의대 신입생 OT에서 신입생들에게 휴학을 종용하고 수업 거부의 명분을 강조한 자료집이 배포됐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4일 개강 이후에도 전국 40개 의대는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교육부의 ‘의과대학 수강 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국 의과대학 40곳 중 10곳은 1학기 수강 신청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존 의대생뿐만 아니라 ‘의대 증원 혜택’을 받고 입학한 25학번 신입생들마저 수업을 거부한 것이다. 신입생들이 수업 거부에 동참한 데에는 선배들의 강요와 압박의 영향이 컸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총장은 “개강 첫날 예과 1학년 공통교양 과목 수업을 들었던 일부 신입생들이 그날 밤 의대 학장을 통해 수업 불참의 뜻을 알려 왔다”고 했다. 신입생들이 수업에 참여한 걸 알게 된 선배들의 압박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부 24학번 의대생들은 “우리도 입학 후 얼마 안 돼 수업 거부에 동참했다. 25학번도 동참하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와 건양대를 제외한 모든 의대는 1학년 신입생들의 1학기 휴학을 학칙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에 일부 의대에선 재학생들이 25학번들에게 “등록만 하고 수강 신청을 하지 않으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꼼수 지침’을 내려 논란이 됐다. 의대 증원 혜택을 받고 입학한 25학번은 사실상 수업 거부를 할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의 강요에 무릎을 꿇은 모양새다. 이는 예과와 본과 6년, 길게는 전공의 수련까지 통상 10년을 같이 보내는 폐쇄적 집단 구조의 영향이 크다. 선배와 의대생 집단에 찍혀 ‘열외’가 되면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너무 큰 탓이다. 때문에 정부가 7일 “3월 말 의대생 복귀 조건하에 내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돌리겠다”고 밝혔지만 의대생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의 발표 직후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은 교육부 장관이 의대생들을 협박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더해 이 위원장은 ‘필수의료 패키지 철회’ ‘붕괴된 의료전달 체계의 확립’ ‘24·25학번 교육 파행에 대한 해결’ 등을 해결 과제로 재강조하며 전국의 의대생들에게 일종의 ‘행동 가이드라인’을 던졌다. 때문에 대학가에선 이번에도 의대생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와의 협상에서 단 하나의 양보 없이 모든 걸 내 뜻대로 쟁취하겠다는 자세는 출구 없는 투쟁만 키울 뿐이다. 국민들 눈엔 신입생들의 학습권까지 불법으로 침해하며 ‘수업 거부 동참’을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의대생들의 모습에서 ‘대의명분’보단 ‘이기주의’가 더 크게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한 수업 거부만이 답이 아니다.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서울대 의대가 이달 20일 본과 3·4학년 수업을 개강하며 올해 학사 일정을 시작한 가운데 첫날 수업에 복귀한 의대생 70여 명의 이름이 담긴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의료계 커뮤니티에 유포돼 논란이 됐다. 지난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전국의 의대생들이 대부분 학교를 떠난 상태에서 학교로 복귀한 이들을 비난하고 나선 것.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수업에 참석한 일부 학생은 위협을 느끼고 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서울대 의대에 앞서 인제대 의대 복학생에 대한 블랙리스트도 유포돼 결국 다수의 의대생이 복학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교육부는 22일 “학교 수업에 복귀하거나 복귀 의사를 밝힌 의대생들의 신상을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사소한 실수가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직업적 특성상 의사 집단의 군기는 비교적 센 편이다. 예과와 본과 6년, 길게는 전공의 기간까지 10년 이상 관계가 이어지는 폐쇄적인 구조도 이러한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 때문에 복귀 의대생 블랙리스트 명단 유포는 피해 학생들이 교수에게 ‘위협을 느꼈다’며 도움을 요청할 만큼 강한 인신공격으로 느껴졌을 법한 사안이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서 비롯된 의정 갈등 사태는 벌써 1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의대생 블랙리스트 논란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이후 전국의 의대생 1만8000여 명이 학교를 떠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2000명 증원’이란 숫자 자체가 회의록도 남기지 않은 채 졸속으로 결정된 점, 해당 증원 규모가 교육과 수련 인프라의 감당 범위를 벗어났음에도 무리하게 추진한 정부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지난해 교육부는 ‘휴학을 불허한다’며 의대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사태가 커지자 뒤늦게 11월까지만 돌아오면 압축 수업을 통해 진급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어 빡빡한 의대 교육 과정을 기존 6년제에서 5년제로 단축하겠다는 등 잇단 ‘땜질 처방’을 내놓아 의대생들의 분노를 부채질했다. 더 나아가 2025학년도 복학을 조건으로 의대생 휴학을 허용하는 ‘의대 학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던 대학 관계자 다수는 “정부가 의대생에게 편법 휴학을 강요하고, 휴학 승인의 책임을 대학에 미뤄 의대생이 호응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의대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이를 위한 명분인 의정 갈등 사태의 해결을 위해선 떳떳한 명분과 논리로 엇박자 정책을 잇달아 내놓는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해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복학생 블랙리스트 논란을 비롯한 의대생 간 ‘내부 총질’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소모적인 행위일 뿐이다.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배수진을 치며 정부와 맞선 목적이 ‘내부 총질’이 아닌 ‘의대 증원’을 둘러싼 문제 해결임을 잊어선 안 된다.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요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건물에 비가 새는 곳은 없을 겁니다. 반면 대학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에요.”(한 지방 사립대 총장) 최근 서강대와 국민대가 2025학년도 등록금을 5%가량 인상키로 한 가운데 올해 등록금 인상을 결정했거나 추진할 의사를 밝힌 대학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연세대, 경희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도 등록금 인상 대열에 합류할 태세다. 2009년부터 17년째 이어진 정부의 등록금 동결 기조에 반대 의사를 표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각 대학 총장들은 “재정난으로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립대도 등록금 인상을 추진했다. 국립대 총장들 협의체인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가 8일 교육부 오석환 차관과 간담회를 갖고 등록금 인상을 강하게 요청한 것. 결과적으론 등록금 동결을 강조한 교육부의 요구에 맞춰 입장을 선회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강산이 대략 2번 바뀌는 동안 소비자물가지수는 132.8% 인상됐다. 하지만 실질등록금은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학령인구마저 줄어들다 보니 대학들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취재 현장에서 마주한 대학의 현실은 처참했다. 한 지방 사립대 공대 실험실에는 고장 나고 깨진 실험기구가 수두룩했고, 음대 연습실은 방음조차 되지 않았다. 피아노는 낡고 오래돼 조율조차 안 될 정도였다. 학생들은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보다 여건이 열악하다”는 자조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서울의 한 대학은 지난해 장마 때 양동이 40개로 건물 곳곳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내기도 했다. 등록금 동결의 17년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학의 아우성이 일면 이해가 된다. 정부는 가계 부담 등의 이유로 2009년부터 국가장학금Ⅱ 유형 지원 등과 연계해 등록금 동결을 압박했다. 고등교육법에선 등록금 인상률을 직전 3개 연도 평균 물가상승률의 1.5배(올해 5.4%)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그림의 떡’ 수준이다. 대학들은 재정 지원 권한을 쥐고 있는 정부의 방침을 대부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7년째 이어진 동결은 결국 재정난 문제를 부채질했고, 대학들은 ‘생존’ 차원에서 등록금 인상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자원은 ‘인재’다. 고급 인력을 키우는 건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몫인데, 이런 부실한 재정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까.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정부의 ‘등록금 동결’ 압박 기조는 같았다. 민감한 민생 이슈를 자극해 표심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느린 속도라도 안정적으로 등록금 인상을 허용해 대학의 재정 숨통을 터줬더라면 어땠을까. 제2의 한강(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제2의 허준이(2022년 필즈상 수상) 교수 등을 낳는 토대를 다질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정부는 현실적으로 긴 안목에서 등록금 인상 등에 대한 각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교육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길을 열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계엄령 선포 및 해제 이후 사흘간 약 120통의 항의 전화가 학교로 왔다. ‘학교 이름을 계엄고로 바꿔라’ ‘학교를 폭파해라’ 등의 내용이었다. 스쿨버스 운행을 방해하는 시민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모교인 충암고 이윤찬 교장이 이달 9일 국회 교육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한 말이다. 충암고 출신 선후배로 구성된 이른바 ‘충암파’는 더불어민주당 등으로부터 이번 계엄령 사태의 핵심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상태다. 윤 대통령은 충암고 8회 졸업생이고, 대통령에게 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다. 비상계엄 논의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고교 4년 후배다. 계엄사령부 출범 시 수사 업무를 맡게 되는 국군방첩사령부 여인형 전 사령관과 대북 특수정보를 다루는 국군 777사령부 박종선 사령관이 충암고 출신이란 점 역시 해당 의혹에 힘을 싣고 있다. 문제는 그 불똥이 충암고 학생 및 교직원들에게까지 튀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충암고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조롱당하고, 위협당했다. 충암고 통학버스 기사에게 시비를 거는 시민도 있었다. 충암고 교장의 말처럼 학교 교무실에는 시민들의 빗발치는 항의 전화로 교사들의 일상적인 업무 처리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이 커지자 결국 학교 측은 계엄령 선포 사흘 후인 6일 학생 안전을 위해 재학생의 사복 착용을 내년 2월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9일에는 경찰에 등하교 시간 학교 주변 순찰을 강화해 달라는 공문도 발송했다. 충암고 학생회는 10일 “충암고와 재학생을 향해 비난하는 일은 멈춰 달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피해를 입은 건 충암고뿐만이 아니다. 같은 충암학원 소속으로 한 부지에 모여 있는 충암유치원, 충암초, 충암중 학생과 원생도 피해를 입고 있다. 계엄령 선포 후 충암초 스쿨버스를 향해서도 손가락질하거나 야유를 보내는 시민들이 나타났고 결국 경찰이 자제를 당부하는 상황이 됐다. 경찰 순찰차는 계엄령 선포 이후 며칠 동안 스쿨버스가 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것까지 확인을 했다고 한다. ‘충암’이란 이름의 교육기관을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 과연 정상적일까. 대한민국에서 45년 만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걸 두고선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계엄 철폐’와 ‘대통령 탄핵’을 외쳤고 종교계에서도 “국민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역사의 후퇴”(대한불교조계종) 등의 입장문이 나왔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역사의 후퇴뿐만이 아니다. K컬처가 세계를 휘어잡고 한국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시대에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비상계엄령 선포는 한국인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줬다. 비상계엄령 사태에 분노한 민심은 이해하지만 충암고를 향한 시민들의 삐뚤어진 분풀이 역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묻지 마 마녀사냥’의 일종에 불과하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대통령을 고교 선배로 뒀을 뿐, 충암고 학생들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오, 마이 갓…. 말도 안 돼. 이걸 푼다고?”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으로 올해 K리그 FC서울로 이적한 축구선수 제시 린가드가 지난해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24번 문항 지문을 읽은 뒤 한 말이다. 린가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헛웃음을 지으며 “너무 어렵다”고 했다. FC서울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2025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지난달 14일 이 장면이 포함된 쇼츠(짧은 영상)가 올라왔다. “영국인도 어려워하는 수능 영어”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영어가 모국어인 린가드조차 어렵다고 한 문제는 지난해 수능에서 고난도로 손꼽혔던 문항이다. 과잉관광(overtourism)에 관한 내용을 다뤘는데 입시업체 메가스터디는 “동일한 어휘가 여러 번 중첩돼 선지에서 정답을 찾아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은 수능을 불과 5개월 앞두고 “킬러(초고난도) 문항을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그해 11월 치러진 수능은 대통령의 발언이 무색할 정도로 국어 수학 영어 영역의 체감 난도가 모두 전년도보다 높았고, 결국 ‘역대급 불수능’이란 평가를 받았다. 교육계에선 정부의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이 오히려 수험생 체감 난도를 높였고, 입시 직전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해 수능의 전 영역 만점자는 1명에 그쳤다. 교육 당국이 비판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걸까. 1년 뒤 치러진 올해 수능은 180도 달랐다. 올해 입시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로 입시에 재도전하는 최상위권 N수생이 늘며 ‘변별력 확보’가 필요했지만, 정작 수능은 평이하게 출제됐다. 전 영역 만점자는 11명이나 나왔다. 특히 국어 만점자는 1055명으로 지난해(64명) 대비 16.5배나 됐다. 수학 만점자도 1522명에 달했다. ‘널뛰기식 수능 난이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입시업계에선 ‘불수능 다음 해 물수능, 물수능 다음 해 불수능’이란 말이 공식처럼 나돌 정도다. 시계를 20여 년 전으로 돌려 보자. 2002학년도 수능은 1997학년도와 함께 ‘불수능’의 원조 격이라 불린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어려운 수능으로 충격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며 공식 사과할 정도로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직전 해 치러진 2001학년도 수능은 전 영역 만점자를 66명이나 배출한 ‘역대급 물수능’이었다. 입시업계에서 “변별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2002학년도의 불수능 역시 비판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탓으로 보인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994년부터 매년 수능 정책 방향을 정하고 문제를 출제한다. 하지만 30년째 수능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되풀이된다. 어려운 ‘불수능’만큼이나 평이한 ‘물수능’도 수험생의 혼란을 키운다.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측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평가원은 입시제도와 시험 난이도를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관리해야 한다. 물수능과 불수능, 불수능과 물수능을 오가는 극과 극이 되풀이되는 것이 바로 가장 나쁜 입시 관리다.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숭실대는 올해 개교 127년 및 서울 캠퍼스 70주년을 맞아 연중 공연과 전시, 학술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1897년 평양 숭실학당으로 문을 연 숭실대는 1938년 3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한 뒤 1954년 서울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올해 5월 11일에는 1954년 서울에 세워질 당시 개설된 5개 학과의 합동 기념행사가 열렸다. 개교기념일인 지난달 10일에는 개교 기념 예배를 비롯해 해외 기독교유물 특별전 개막식, 기념만찬 등의 행사가 열렸다. 해외 기독교유물 특별전은 다음 달 30일까지 진행된다. 지난달 28일에는 기념학술대회인 ‘평양에서 서울로’를 개최했다. 숭실대는 ‘개교 127주년 및 서울숭실세움 70주년’ 마지막 순서로 이달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형남음악회 코리아 판타지(Korea Fantasy)’를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제2∼4대 이사장을 지낸 고 김형남 박사(1905∼1978)의 이름을 딴 음악회는 김홍식 지휘자와 코리안크리스천필하모닉 협연으로 진행된다. 2022년 독일 성악가 최고 영예인 ‘궁정가수’ 칭호를 받은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소프라노 박소영, 테너 윤정수 등이 출연한다. 숭실대 관계자는 “클래식 마니아는 물론이고 초심자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대구의 한 유치원 교사가 여섯 살 아이들을 폭행 및 학대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이 공개됐다. 화면 속 건장한 성인 남성 교사가 아이들을 거세게 밀치고 주먹으로 명치를 때리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피해 아동들은 집에 가서도 부모에게 선생님의 폭행을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해 교사가 “선생님에겐 너희가 집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볼 수 있는 카메라가 있다”며 피해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로서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뉴스가 있다. 바로 ‘아동학대’ 사건사고다. 그중 교육기관에서 교사로부터 이뤄지는 아동학대 사건은 학부모에게 교권에 대한 불신을 심어준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통계 기준으로 2022년 유초중고교 교직원의 아동학대 사례는 1702건에 달했다. 그런데 교육현장의 아동학대와 교권침해 문제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다. ‘내 아이가 교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건 아닐까’ 의심하는 학부모 중 일부는 불안에 시달리다 ‘선’을 넘으며 악성 민원 등을 일삼는다. 이는 지난해 서울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불거진 각종 교권침해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전북 전주시의 한 초등학교에선 5학년 학부모 2명이 2022년부터 자녀의 담임교사 등을 상대로 형사고소 7회, 행정소송 3회, 민사소송 2회, 정보공개 16건 등을 청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이들 자녀의 담임교사는 무려 6번 교체됐다고 한다. 한 교육 관계자는 이를 두고 ‘공교육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했다. 학부모 중 한 명은 서거석 전북도교육감으로부터 고발까지 된 상태다. 올해에만 학교에 각각 61회, 113회씩 전화했다는 두 학부모는 “악성 민원이 아니다. 학부모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정당한 요구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도 더는 참지 않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 개최 건수는 5050건으로 전년보다 무려 66% 증가했다. 교보위는 교권침해 보호를 위한 심의기구다. 일부 몰지각한 교원과 학부모의 행태는 오늘도 서로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만난 한 고교 교사는 “아동학대 문제에 치중하면 교권이 약화되고, 교권에 치중하면 아동인권이 침해될 소지가 생긴다는 점이 고민”이라고 했다. 현장 교사들은 ‘정서적 아동학대’와 ‘정당한 생활 지도’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성을 해소하는 것이 해법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법조인 중에서도 아동복지법 17조에 명시된 ‘정서적 아동학대 행위’의 기준을 누구나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아동학대 및 교권침해 뉴스가 쏟아질 때마다 관련 법을 강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누군가를 강하게 처벌하는 것보다 교권과 아동 보호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해법의 핵심이어야 한다. 그래야 학부모와 교사 간 신뢰가 되살아나고 교실에서 보다 나은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아이들이 왜 디지털 교과서의 실험 대상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디지털 과몰입 세대인데 교과서마저 태블릿PC로 본다니….” 내년으로 예정된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학부모 사이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학부모 상당수는 가뜩이나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심각한 상황에서 교과서마저 디지털 기기로 바뀌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AI 교과서가 학생들의 집중력과 문해력을 저하시키고 학습 효과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아직 세계적으로 교과서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한 나라가 없다는 점도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국회에는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유보해 달라는 국민동의청원까지 등장해 한 달 만에 5만6505명의 동의를 받고 교육위원회에 넘겨졌다. 교육 현장에서도 반발이 상당하다. 전국 시도교육감 17명 중 9명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신중 의견’을 밝혔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최근 교육부에 재정 부담과 개인정보 침해 등의 이유를 들며 “AI 디지털 교과서의 개선 및 보완 사항을 점검한 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등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보냈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역점 사업이다. 내년 3월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수학·영어·정보·국어 과목에 AI 디지털 교과서가 우선 적용된다. 학교에선 내년에 AI 디지털 교과서를 접하는 세대를 ‘이해찬 1세대’에 빗대 ‘이주호 1세대’라고도 부른다. 당초 교육부는 2026년부터 국어·과학·사회·역사 등 다른 주요 교과에도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여론의 거센 압박에 최근 2026년 도입 과목에 대해선 ‘속도 조절을 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생각해 보면 교육부는 거센 반대 여론이 한편으론 고맙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당장 교육 현장에는 초고속 인터넷망 등 기본 설비도 갖춰지지 않았다. 내년 3월에 도입되는 AI 교과서 영어·수학·정보 출판사는 검인정을 통해 다음 달 말에야 결정되고, 테스트 기간은 단 3개월에 불과하다. 이는 졸속 도입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교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2017년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다가 지난해 폐지했다.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학습 방식 때문에 학습 능력과 문해력이 저하됐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4학년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국제읽기문해력연구(PIRLS)’에 따르면 스웨덴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2016년 555점에서 2021년 544점으로 11점 떨어졌다. 한국의 교육 현실은 어떨까.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사 5848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저하됐다”는 답변이 91.8%에 달했다. 교사가 ‘사건의 시발점(始發點)’을 말하니 “교사가 왜 욕을 하냐”는 반응이 돌아오고, ‘족보가 뭐냐’는 질문에는 “족발 보쌈 세트”란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를 보면 한국 역시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과정에서 문해력 저하 우려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교과서는 공교육의 근간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졸속 논란을 감안해 충분한 검토와 보완을 거쳐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야 한다. 급하게 추진해 실패한 교육 정책은 학생들의 미래를 두고두고 발목 잡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수능 최저 기준 없이 논술시험 100%로 당락이 결정되는 대입 전형이었다. 연세대의 시험관리 감독 능력이 일선 중고교만도 못한 것 같다.” 12일 치러진 연세대 수시모집 자연계열 논술시험에서 감독관의 착오로 시험 시작 1시간 전 특정 고사장에서 시험지가 사전 배부되는 일이 발생한 이후 한 입시 커뮤니티에 올라온 수험생 글이다. 감독관은 뒤늦게 실수를 알아차리고 15분 뒤 부랴부랴 문제지를 회수했지만 해당 고사실 수험생 31명은 시험지 회수 뒤에도 자습시간을 갖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시험 시작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 문제 관련 정보가 올라와 논란이 됐다. 이날 시험 도중 문제 오류가 발견돼 연세대는 시험 시간을 20분 연장하기까지 했다. ‘명문 사학’이란 명성에 걸맞지 않은 연세대의 대입 공정성 관리 능력을 드러낸 대목이었다. 이후 연세대는 “감독관 한 명의 실수로 초래된 사건이지만 시험 공정성을 훼손시킬 행위는 파악되지 않았다”며 “재시험은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입시업계에선 감독관 실수로 응시생 9667명 중 31명에게만 시험지가 사전 배포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공정성’엔 의문이 생겼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감독관 착오로 인한 시험지 사전 배포인데, 학교 측은 논란의 책임을 문제 정보를 유출한 일부 수험생에게 돌리는 모양새다. 연세대는 시험 정보 등을 유출한 것으로 보이는 6명의 수험생을 경찰에 업무 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관리 부실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연세대가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인상이다. 여론이 들끓자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책임자는 철저히 문책하고,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정 조치할 것”을 주문했다. 수시 전형은 대학의 자율시험이라며 대학의 조치를 지켜본 뒤 대응하겠다던 교육부도 그제야 ‘뒷짐’을 풀고 관련자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수시 전형 과정에서 ‘잡음’이 나오는 대학은 또 있다. 13일 치러진 한성대 ICT디자인학부 기초디자인 수시 실기 시험에선 감독관 착오로 제시어 사진 자료가 시험 시작 40분 후 배부됐고, 12일 치러진 단국대 음대 수시 시험에선 문제 1개가 시험 시작 50분 후에야 배부돼 논란이 됐다. 한성대는 “피해를 본 수험생 답안을 평가할 때 관련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어떻게 형평성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적절히 반영해 평가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한국 사회에선 이르면 유아 때부터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대입’이란 결승선을 향해 경쟁적으로 달린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을 감내한다. 그리고 대학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공정한 입학전형 운영에 대한 의무를 부여받는다. 대입 전형의 공정한 운영은 한국 사회가 대학에 기대하는 기본적 책무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교육 학원가 ‘레벨 테스트’에서도 잘 일어나지 않는 아마추어적 관리 행태가 복수의 대학 입시 과정에서 나타났다. 각 대학이 잘못을 덮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진상을 파악해 수험생들이 수긍할 만한 조치를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박종순 윤성F&C 회장(77·사진)이 재단법인 중동장학회에 장학금 10억 원을 기부했다. 장학금 전달식은 17일 중동고에서 열린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당신이 원하는 교육에 투표하세요.’ 16일 열리는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동네에는 이 같은 문구가 담긴 선거일 및 사전투표 안내 플래카드가 붙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도 푸른 나무 한 그루 그림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한 표를 심는 날’이란 메시지가 떴다. 서울 지역 유치원생부터 고교생까지 학생 84만 명을 관할하고 연 12조 원의 예산 집행 권한을 지닌 ‘교육 소통령’ 서울시교육감 자리가 갖는 무게감을 잘 표현한 문구들이다. 그런데 정작 유권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위해 누굴 선택해야 하는지, 자녀 및 미래 세대에 도움이 되는 후보는 누구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한다. 교육 철학과 능력을 검증하며 서울 교육을 책임질 수장을 가려내야 하는 선거가 3일 공식 선거운동 시작 전부터 ‘공약 검증’ 대신 ‘정치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 때마다 이런 형태가 반복되면서 교육계 내부에서도 “교육감 선거가 정치색에 물들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선거는 보수 진영이 12년 만에 단일화 기구를 통해 단일 후보로 선출한 조전혁 전 한나라당 의원과 진보 진영 단일화 기구가 선출한 정근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양강 구도로 치러지게 됐다. 하지만 서울 교육을 책임지겠단 두 후보 모두 정책 검증보단 “지난 10년간 서울 교육은 조희연으로 대표되는 좌파 세력에 의해 황폐해졌다”(조전혁 후보)거나 “윤석열 정부의 역사 왜곡과 친일 뉴라이트 사관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굳건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정근식 후보)이란 정쟁 메시지를 내놓으며 ‘네거티브’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에서 두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내세운 ‘공약 1호’는 뭘까. 조 후보는 “학력을 높이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며 1호 공약으로 ‘방과후학교 자유수강권 최대 100만 원 지원’을 내놨다. 정 후보는 지역교육청 단위로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서울 교육 플러스 위원회’ 신설을 내세웠다. 하지만 유권자 중 이들의 1호 공약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각 진영에서 표심을 잡기 위해 외친 ‘좌파 교육감 청산’, ‘우파 정권 퇴행적 교육정책 저지’ 등 해묵은 진영 논리만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교육감 선거는 200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사실상 ‘깜깜이 선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권자 관심이 적었다. 특히 교육감 보궐선거의 경우 역대 투표율이 10∼20%대에 그쳤다. 투표장을 가더라도 후보가 누구인지, 후보별 공약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니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기대는 선거 운동을 반복해온 것이다. 교육감 선거는 헌법에 나온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당 공천을 받지 않는다는 취지를 망각한 행태였다. 교육 정책 공약과 비전에 대한 검증 없이 서울시교육감을 선택하기엔 그 자리가 갖는 권한이 막대하다. 그런 만큼 두 후보가 지금이라도 서로 네거티브를 자제하겠다는 신사협정을 맺고 누가 더 학생과 교육을 생각하는 진정한 교육감인지를 겨루는 선거로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교권이 무너진 걸 넘어 제 인권 자체가 사라졌다는 느낌입니다.” 최근 텔레그램으로 성범죄 피해를 당한 대구의 영어 교사는 고통을 호소하며 “교단을 떠나는 것까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가해자가 다름 아닌 자신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교사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텔레그램 ‘지인방’에 교사의 사진을 올리며 “내 지인인데 능욕해줄 사람은 개인 메시지를 보내라” 등 성희롱 발언까지 이어갔다. 가해 학생이 범죄에 활용한 사진은 이 교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올려진 것이었다. 지인들과 SNS를 통한 교류가 일상이 된 요즘 제자와 SNS 친구를 맺은 것이 범죄의 빌미가 됐다. 이 교사가 또 한번 무너진 건 수사기관과 학교 측의 대응 때문이었다. 경찰이 디지털포렌식을 위해 가해 학생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려 했지만, 이미 학생은 휴대전화를 버린 뒤였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강하게 의심되지만 증거를 잡을 수 없었다. 학교 측에선 “딥페이크 성범죄 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가해 학생의 강제 전학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올 1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전국 시도교육청에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조사를 벌인 결과 이 교사처럼 관련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교사는 총 10명으로, 이 중 9명은 중학교 교사였다. 교권 추락의 상징이 된 ‘서이초 교사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에선 ‘범죄’ 수준의 교권 추락이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학교 내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를 다룬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댓글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교권 추락’과 ‘촉법소년’이다. 학생들이 스승인 교사를 성적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추락한 교권과 가해 학생 대부분이 14세 미만 촉법소년에 해당돼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와 학생 간의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를 막을 뾰족한 방안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과 SNS에 익숙한 10대들에게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고 배포하는 건 한마디로 ‘식은 죽 먹기’다. 각종 딥페이크 제작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눈속임이 완벽한 합성 사진 및 영상물을 제작하는 데 드는 시간이 10초면 충분하다. 그렇다 보니 1일 경찰청이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딥페이크 범죄 현황’에 따르면 딥페이크 영상물을 만들어 배포해 입건된 10대 청소년은 2021년 51명, 2022년 52명, 2023년 91명, 올해 1∼7월 131명으로 3년 새 2배 이상이 됐다. 또 최근 4년간 딥페이크 범죄로 입건된 피의자들 중 70.5%에 해당하는 325명이 10대였다. 반면 교원단체들은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를 입은 교사들이 취할 수 있는 대응은 교권보호위원회를 여는 것 외에 별다른 방안이 없다고 지적한다. 교사들의 딥페이크 피해 뉴스를 살펴보며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후 세 번째 기자회견이 떠올랐다. 윤 대통령이 이날 현 정부의 성과 중 하나로 ‘교권 보호 5법 개정’을 꼽으며 “교사가 교육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평했기 때문이다. 관련법의 개정만으로 추락된 교권이 회복될 수 있을까. 아직도 학교 현장에는 ‘혹시 제자들이 내 사진을 도용해 딥페이크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을까’ 의심하며 불안해하는 교사들이 너무 많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과학계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에 매진해 온 손재한 한성손재한장학회 명예이사장(사진)이 별세했다. 향년 102세. 한성손재한장학회에 따르면 손 이사장은 1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한국인 최초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사재 664억 원을 무상 출연해 2013년 장학 재단을 설립했다. 2013년 장학생 1기 179명을 선발한데 이어 지난해까지 매년 180여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했다.한성손재한장학회는 장학금 외에도 장래가 유망한 젊은 과학자들을 매년 발굴해 포상하는 ‘한성과학상’도 운영중이다. 매년 3개 분야에서 선정하며 올해까지 총 21명의 과학자를 포상했다. 고인은 과학기술 분야 인재를 길러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2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장지는 양평 부용리 선산에 마련됐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아이가 대학에 가야 부모는 에듀 푸어(edu poor)에서 졸업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 입학을 앞뒀던 몇 년 전, 기본 원비에 방과후 활동비, 간식 및 식비, 차량비 등을 합해 월평균 220만 원이 드는 영어유치원과 월 40만 원 정도 비용의 일반 유치원을 놓고 장단점을 따지며 저울질하는 내게 한 선배가 건넨 말이다. 영어유치원은 시작일 뿐 초등, 중등, 고등을 거치며 한 달에 매달 수백만 원씩을 사교육비로 쓰게 될 거라는 예언(?)과 함께 사교육비 전쟁은 비로소 ‘대학 입시’로 종결된다고 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발표한 지난해 사립 교육기관별 1인당 연평균 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4년제 사립대 학생 1인당 연평균 등록금은 732만6000원으로, 영어유치원(2093만6000원), 사립초(918만 원), 국제중(1280만 원), 자사고(905만 원)보다도 쌌다. 왜일까. 특히 만 3∼5세 유아 대상 영어유치원은 사립대와 비교하면 연평균 교육비가 3배 정도 비싼데, 영어유치원의 교육 수준이 대학 교육에 비해 약 3배 정도 높은 경쟁력을 갖추기라도 한 걸까. 대학 등록금은 정부의 규제에 묶여 16년째 동결 상태다. 이는 2009년 교육부 장관이 경기 침체를 이유로 대학들에 등록금 인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한 요청에서 비롯됐다. 교육부는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 국가장학금Ⅱ 지원을 하지 않거나 재정지원 사업에서 배제하는 식으로 등록금 동결을 사실상 강요해왔다. 그렇다 보니 등록금 고지서에 찍히는 명목 등록금은 02학번 출신 기자가 20년 전 학교에 냈던 한 학기 등록금 300만 원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올 4월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표한 ‘대학정보공시 분석’에 따르면 일반대 인문사회계열 평균 1인당 연간 등록금은 600만3800원이었다. 20년간 물가가 오르는 동안 등록금만 제자리걸음 상태인 것은 정부가 유독 대학 등록금에 ‘민생’이란 정치적 명분을 걸어 연결 지은 결과다. 그 결과 본보가 최근에 보도(8월 8일자 A1·5면)한 대로 재정난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대학은 가르칠 교수조차 구할 수 없거나 해외 주요 대학과의 교환학생 프로그램 체결마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사람이 자원’인 나라에서 인재를 낳는 대학 교육의 경쟁력이 16년째 하락 중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등록금과 달리 교육계 ‘베블렌 효과’(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것)를 낳는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선 유아의 ‘영어 레벨테스트’ 통과 외에 ‘입금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입금 전쟁은 영어유치원이 미리 공지한 시간에 입학금 계좌를 오픈하면 입금 선착순으로 수강 인원에 맞춰 등록 마감이 이뤄지는 걸 말한다. 심지어 1초 차로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유아 땐 서로 비싼 돈을 내서라도 원어민 영어교육을 받기 위해 분초를 다퉈 경쟁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초중고, 심지어 일부는 재수생 시절까지 월평균 수백만 원대의 교육비를 쓰면서 왜 유독 대학 등록금 인상에 있어선 부정적 프레임을 벗지 못할까. 이제라도 대학 등록금을 현실화하고 국내 대학의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결국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성장 동력은 ‘인재’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
세종대학교 제15대 엄종화 총장(59)이 25일 취임했다. 임기는 2027년 7월 26일까지 3년이다.25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애지헌 교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엄 총장은 “세종대학교의 건학이념인 애지(愛智), 기독교, 훈민 정신을 되새기고자 한다”며 “애지정신은 진리를 사랑하는 정신이다. 오늘날의 진리인 과학을 통해 지식을 넓히고, 혁신을 이루며, 인류 발전에 기여해 세종대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도약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날 취임식에는 최세모 대양학원 이사장 및 이사진, 산하기관 기관장, 세종대 교무위원 등이 참석했다. 엄 총장은 “기독교 정신은 사랑과 섬김, 정직과 진리, 희망과 용기의 가치를 중심으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치고자 한다”며 “학문적 진리를 탐구하고, 정직한 연구와 교육을 실천하는 신뢰받는 기관이 되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대학을 운영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학생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덧붙였다.엄 총장은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서 각국의 경제 성과, 정부 효율성, 비즈니스 효율성, 인프라 등의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국가경쟁력 평가’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1인당 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30-50 클럽’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이는 한국이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안정, 혁신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실리콘 밸리의 기적을 이끈 스탠포드 대학처럼, 애지 정신, 기독교 정신, 훈민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 함께 한국의 G2 위상을 이끄는 선도적인 대학이 되도록 나아가자”고 강조했다.엄종화 총장은 대구 능인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 석사를 받았다. 이어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세종대 교수로 임용돼 대외협력처장, 교무처장 등을 지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지난달 전북 전주시의 한 초등학교에선 무단조퇴를 하려던 3학년 남학생이 말리는 교감에게 “감옥에나 가라”며 욕설을 하고 뺨을 때려 논란이 됐다. 영상에서 이 남학생은 복도에 다른 교사가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교감에게 침을 뱉기도 했다. 이 학생의 학부모 역시 교사를 폭행해 학교로부터 신고당한 상태다. 영상을 본 시민들은 지난해 7월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학교 현장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매주 교사 시위가 벌어졌고 ‘교권 보호 5법’도 국회를 통과했지만 현장에선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이 더 많다. 최근 서울교사노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10명 중 8명(84.1%)은 교사의 교육활동 보호에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숨진 서이초 교사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답변도 78.6%에 달했다. 영상에서 더 충격적이었던 건 폭행을 당하면서도 뒷짐을 진 채 체념한 듯 서 있던 교감의 모습이었다. 난폭한 행동을 하는 학생을 제지하려다 자칫 아동학대로 몰리기 쉬운 학교의 현실이 손조차 대지 않으려 뒷짐을 지게 만든 것이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후 초등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는 민원이 아예 없는 완벽한 교사다’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글은 서이초 교사 사망 1주기를 앞두고 다시 각종 교사 커뮤니티에서 회자되고 있다. 글쓴이는 학부모 민원과 문제 학생이 많은 학년 담임교사를 자주 맡지만 학생·학부모·관리자 모두를 만족시키며 어떤 민원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학부모 상담에선 듣고 싶어 하는 좋은 말만 해주고, 수업시간에 학생이 딴짓을 하면 그냥 내버려둔다는 식이다. 글쓴이는 신규 교사 때 숙제를 많이 냈더니 학원 공부에 지장을 준다는 학부모 민원이 이어졌고, 잘못된 행동을 혼내고 나니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며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교사이자, 좋은 평가를 받는 교사가 됐다고 했다. 전주 초등학교 영상을 보면서 이 글이 다시 떠올랐다. 아무것도 안 하는 교사, 학생의 문제 행동에도 뒷짐을 지는 교감을 과연 누가 만든 것일까. 또 서이초 사망 교사 유족들이 올 2월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 제출한 영상도 생각났다. 영상에는 수업 중 의자를 뒤집고 발로 차는 아이, 울면서 물건을 던지는 아이 등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순직 심사 과정에서 학생 지도의 어려움을 입증한 증거로 인정받았다. 아무것도 안 하는 교사 밑에서 다양한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게 될까. 아동의 행동을 바로잡을 기회가 사라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내 자식 지상주의’에 빠진 학부모,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는 교권 보호 5법, 학교에서 문제가 안 생기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관리자, 아동·학생 인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게 된 관련 단체들…. 여기에 교권 침해를 문제 삼으면 학부모들이 ‘정서적 아동학대’로 맞대응하는 행태도 반복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서이초 사건이 남긴 교훈을 살려 학교 현장에선 교권 보호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교실에서 문제행동을 했던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곳곳에서 더 큰 일을 저지를 때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정책사회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