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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모 씨가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서울시립대 교수 임용을 막아 달라며 옥중 자필 편지를 보냈다. 그는 시립대가 문 전 권한대행을 교수에 임명하면 1인 시위를 하겠다고도 했다. 25일 시립대 등에 따르면 현재 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씨는 최근 “문 전 권한대행을 (교수에) 임용할 경우 구치소에서 나온 후 학교 인근으로 찾아가 1인 시위를 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시립대에 보내왔다. 윤 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에 반대하며 1월 19일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경내 공용 물건을 손상한 혐의 등을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3월 14일 첫 재판에서 “서부지법 사태에 가담한 것은 반성한다”면서도 재판 내내 “부정선거 합동수사단을 꾸려 조사하고 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의 특임전도사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랑제일교회 측은 1월 23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특임전도사는 다른 교회 사람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청교도신학원’이라는 성경 공부 과정을 수료한 분들께 부여되는 명칭이다”라며 교회 차원에서 서부지법 난입에 관해 지시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사랑제일교회 관계자는 “그분은 사랑제일교회 소속이 아니라 광주 교회 소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씨 또한 최근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사랑제일교회 및 전 목사로부터 특임전도사로 임명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직접 밝혔다. 시립대 관계자는 “윤 씨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맞다”면서도 “아직 문 전 권한대행의 초빙교수 임용 절차가 시작이 안 된 상황이라 (편지에) 답변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조차 결정이 안 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시립대는 윤 씨의 편지가 ‘민원’인 만큼 기준에 따라 절차대로 처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모 씨가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서울시립대 교수 임용을 막아 달라며 옥중 자필 편지를 보냈다. 그는 시립대가 문 전 권한대행을 교수에 임명하면 1인 시위를 하겠다고도 했다.25일 시립대 등에 따르면 현재 구치소에 수감 중인 윤 씨는 최근 “문 전 권한대행을 (교수에) 임용할 경우 구치소에서 나온 후 학교 인근으로 찾아가 1인 시위를 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시립대에 보내왔다.윤 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에 반대하며 1월 19일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경내 공용 물건을 손상한 혐의 등을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3월 14일 첫 재판에서 “서부지법 사태에 가담한 것은 반성한다”면서도 재판 내내 “부정선거 합동수사단을 꾸려 조사하고 재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사랑제일교회의 특임전도사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랑제일교회 측은 1월 23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특임전도사는 다른 교회 사람들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청교도신학원’이라는 성경 공부 과정을 수료한 분들께 부여되는 명칭이다”라며 교회 차원에서 서부지법 난입에 관해 지시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사랑제일교회 관계자는 “그분은 사랑제일교회 소속이 아니라 광주 교회 소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씨 또한 최근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사랑제일교회 및 전 목사로부터 특임전도사로 임명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직접 밝혔다.시립대 관계자는 “윤 씨로부터 편지를 받은 것은 맞다”면서도 “아직 문 전 권한대행의 초빙교수 임용 절차가 시작이 안 된 상황이라 (편지에) 답변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조차 결정이 안 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시립대는 윤 씨의 편지가 ‘민원’인 만큼 기준에 따라 절차대로 처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한국 A기업의 기밀 정보 61GB를 해킹했으니 즉각 연락하라.” 15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보안 전문 기업 안랩 전문가들과 살펴본 다크웹에 올라와 있는 글이었다. 게시된 날짜는 올해 2월. 해커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국내 A제조업체의 임직원 및 고객 정보, 재무 데이터, 보고서 등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금전을 요구했다. A4용지(200자 기준) 약 213만2100장 분량이다. 이날 다크웹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의 정보를 탈취했다는 해커들의 글, 실제 공개된 정보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여권 사본-기업 내부 정보까지취재팀이 안랩 전문가들과 살펴본 10개의 다크웹 사이트에는 수백 건의 한국인 개인정보 거래 글이 있었다. 최근 5개월 기간을 설정해 ‘Korea(한국)’라는 키워드를 검색하자 관련 거래 글 120여 개가 나왔다. 각 게시물에는 적게는 수천 개, 많게는 수십만 개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다.다크웹에서는 금융 정보가 중점적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한 사이트에서는 한국인의 신용카드 정보가 1건당 15달러(약 2만 원)에 거래됐다. 카드 종류, 소지자 국적, 카드 회원 등급, 비밀번호가 모두 들어 있었다. 국내 유명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 2000여 명의 정보도 유출돼 있었다. 판매자 이름, 포털 계정,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집 주소, 성별까지 나왔다. 안랩 관계자는 “이 정보들은 금융 계정 도용, 보험사기 등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킹한 정보를 대가로 ‘몸값’을 요구하는 협박 글도 여러 건 확인했다. 피해 기업 대부분은 정보 보안 투자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중소·중견기업이었다. 한 거래 글은 ‘국내 모 콘텐츠 제작사의 미방송 드라마 대본을 해킹했다’고 공개했다. 피해 제작사는 2월경 해커로부터 협박을 받았으나 대가 지급에 응하지 않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에는 모 중소기업 내부망이 해킹당한 뒤, 해당 기업 회장의 여권 사본까지 공개됐다. 다크웹에 올라온 정보들은 텔레그램, 톡스 등 보안 메신저를 통해 거래된다. 20일 취재팀은 텔레그램을 통해 한 해커에게 ‘한국인의 개인정보를 구하고 싶다’며 접촉했다. 그는 “B포털 아이디, 비밀번호, 이름, 전화번호, 생년월일, 성별이 집합된 데이터를 건당 1000원에 판매한다”며 “최소 주문량이 1000건이니, 100만 원을 비트코인으로 입금해 주면 데이터를 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취재팀이 접촉한 다른 판매자는 “각국 여권 스캔본을 7TB가량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인 여권 스캔본은 개당 1100달러(약 153만 원)에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한국인 여권을 촬영한 샘플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여권은 해외에서 신분을 증명하는 유일한 신분증명서로, 제3자가 정보를 습득할 시 위변조 및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 이명수 안랩 A-FIRST팀 팀장은 “다크웹, 보안 메신저, 암호화폐가 정보 유출 범죄를 쉽게 하는 3개의 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정보, 최대 10배 웃돈 거래특히 한국인의 개인정보는 다크웹에서 거래가 활발했다. 다른 국가의 개인정보에 비해 3∼10배에 이르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와 온라인 결제 등 금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인터넷 뱅킹, 본인인증 서비스 등이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이에 해커 등 공격자 입장에서 활용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안랩 관계자는 “다크웹에서 미국인의 개인정보는 건당 10∼2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지만, 한국인의 경우 30∼100달러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다.매년 국내 해킹 범죄 피해 건수는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디도스 공격, 악성코드 유포 등 범죄 건수는 2022년 3494건, 2023년 4223건, 지난해 4526건으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중 상당수는 개인 및 기업 정보 탈취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보안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기형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해킹 피해 후 대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전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며 “기업은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과 그로 인한 리스크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안 기술이 비교적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체가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특성상 한 곳이 뚫리면 공공 위기로 직결되는 만큼 정부가 기술적·경제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성 안랩 A-FIRST팀 수석연구원은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등의 정보 유통 경로를 정부나 기업이 모니터링해 정보 유출 및 불법 거래 징후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정기적인 직원 보안 교육 등의 훈련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쇼핑몰 판매자 주민번호 등 2000건해킹에 유출된 정보 인터넷 암시장에“中企 내부망 접속, 556만원에 판매”15일 경기 성남시의 정보 보안 전문업체 ‘안랩’ 본사. 안랩 보안 전문가들은 모니터를 가리키며 동아일보 취재팀에 “이게 바로 다크웹(특정 브라우저로만 접속할 수 있는 음성적 웹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는 해킹으로 유출된 한국인 개인정보가 무궁무진하게 거래되고 있다”며 올라온 정보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인의 개인정보는 ‘웃돈’까지 붙어 비싼 값에 거래되고 있었다. 국내 유명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들의 주민등록번호, 집주소 등 개인정보도 2000여 건이나 있었다. 개인 신용카드 정보는 건당 15달러(약 2만 원)로 가격이 매겨졌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활용도가 높은 한국인의 경우 개인정보를 알아내면 쓸 수 있는 곳이 많아 가격이 3∼10배에 이르는 ‘프리미엄’까지 붙었다”고 했다. SK텔레콤(SKT) 해킹으로 2695만 건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이 정보들이 어디에 어떻게 거래 및 악용될지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취재팀이 안랩과 살펴본 결과 다크웹에선 이런 정보들이 활발하게 거래 중이었다. 다크웹에는 국내 기업의 기밀 정보도 있었다. 한 해커는 “한국의 한 중소기업 내부망에 접속할 수 있는 VPN 정보”라며 4000달러(약 556만 원)에 판다고 광고 중이었다. 사실이라면 기업 내부의 재무자료, 연구개발(R&D), 인사 등의 자료를 모두 볼 수 있는 셈이다. 기업 내부망을 해킹해 정보를 빼낸 뒤 “정보 유출을 막으려면 돈을 내라”는 협박 글도 보였다. 이런 협박에 응하지 않아 결국 다크웹에 공개된 기업 기밀 정보들도 보였다. 국내 정보 보안 전문업체 ‘스텔스모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월 기준 다크웹에 유출된 전 세계 개인정보는 약 900억 건이다. 한국인 관련 정보는 4억6000만 건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기, 인공지능(AI) 서비스 등의 사용이 계속 늘어나는 만큼 이 같은 불법 개인정보 유출 범죄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석 안랩 제품기획본부 부장은 “다크웹에 올라온 유출 정보는 해킹 피해의 시작점에 불과하다”며 “해커들은 이 정보들을 통해 개인과 기업의 더 내밀한 영역으로 파고들어 결국에는 기업 전체, 개인의 삶 전체를 망가뜨린다”고 지적했다.[단독]韓 신용카드 정보 건당 2만원에 거래… 기업 해킹후 돈 요구도[한국인 개인정보 넘쳐나는 다크웹] ‘다크웹 사이트’ 들여다보니이름-주민번호 등 민감정보 유출에… 여권 스캔본은 개당 153만원 팔려금융 계정 도용-여권 위변조 우려“사전방어가 중요… 中企 등 지원을”“한국 A기업의 기밀 정보 61GB를 해킹했으니 즉각 연락하라.” 15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보안 전문 기업 안랩 전문가들과 살펴본 다크웹에 올라와 있는 글이었다. 게시된 날짜는 올해 2월. 해커로 추정되는 글쓴이는 ‘국내 A제조업체의 임직원 및 고객 정보, 재무 데이터, 보고서 등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금전을 요구했다. A4용지(200자 기준) 약 213만2100장 분량이다. 이날 다크웹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의 정보를 탈취했다는 해커들의 글, 실제 공개된 정보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여권 사본-기업 내부 정보까지취재팀이 안랩 전문가들과 살펴본 10개의 다크웹 사이트에는 수백 건의 한국인 개인정보 거래 글이 있었다. 최근 5개월 기간을 설정해 ‘Korea(한국)’라는 키워드를 검색하자 관련 거래 글 120여 개가 나왔다. 각 게시물에는 적게는 수천 개, 많게는 수십만 개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었다.다크웹에서는 금융 정보가 중점적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한 사이트에서는 한국인의 신용카드 정보가 1건당 15달러(약 2만 원)에 거래됐다. 카드 종류, 소지자 국적, 카드 회원 등급, 비밀번호가 모두 들어 있었다. 국내 유명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 2000여 명의 정보도 유출돼 있었다. 판매자 이름, 포털 계정,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집 주소, 성별까지 나왔다. 안랩 관계자는 “이 정보들은 금융 계정 도용, 보험사기 등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킹한 정보를 대가로 ‘몸값’을 요구하는 협박 글도 여러 건 확인했다. 피해 기업 대부분은 정보 보안 투자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중소·중견기업이었다. 한 거래 글은 ‘국내 모 콘텐츠 제작사의 미방송 드라마 대본을 해킹했다’고 공개했다. 피해 제작사는 2월경 해커로부터 협박을 받았으나 대가 지급에 응하지 않아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에는 모 중소기업 내부망이 해킹당한 뒤, 해당 기업 회장의 여권 사본까지 공개됐다. 다크웹에 올라온 정보들은 텔레그램, 톡스 등 보안 메신저를 통해 거래된다. 20일 취재팀은 텔레그램을 통해 한 해커에게 ‘한국인의 개인정보를 구하고 싶다’며 접촉했다. 그는 “B포털 아이디, 비밀번호, 이름, 전화번호, 생년월일, 성별이 집합된 데이터를 건당 1000원에 판매한다”며 “최소 주문량이 1000건이니, 100만 원을 비트코인으로 입금해 주면 데이터를 보내주겠다”고 제안했다. 취재팀이 접촉한 다른 판매자는 “각국 여권 스캔본을 7TB가량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인 여권 스캔본은 개당 1100달러(약 153만 원)에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한국인 여권을 촬영한 샘플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여권은 해외에서 신분을 증명하는 유일한 신분증명서로, 제3자가 정보를 습득할 시 위변조 및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 이명수 안랩 A-FIRST팀 팀장은 “다크웹, 보안 메신저, 암호화폐가 정보 유출 범죄를 쉽게 하는 3개의 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정보, 최대 10배 웃돈 거래특히 한국인의 개인정보는 다크웹에서 거래가 활발했다. 다른 국가의 개인정보에 비해 3∼10배에 이르는 ‘프리미엄’이 붙었다. 한국은 디지털 인프라와 온라인 결제 등 금융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인터넷 뱅킹, 본인인증 서비스 등이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이에 해커 등 공격자 입장에서 활용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안랩 관계자는 “다크웹에서 미국인의 개인정보는 건당 10∼2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지만, 한국인의 경우 30∼100달러에 거래된다”고 설명했다.매년 국내 해킹 범죄 피해 건수는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디도스 공격, 악성코드 유포 등 범죄 건수는 2022년 3494건, 2023년 4223건, 지난해 4526건으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중 상당수는 개인 및 기업 정보 탈취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보안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기형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해킹 피해 후 대응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전 방어에 집중해야 한다”며 “기업은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과 그로 인한 리스크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보안 기술이 비교적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체가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특성상 한 곳이 뚫리면 공공 위기로 직결되는 만큼 정부가 기술적·경제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진성 안랩 A-FIRST팀 수석연구원은 “다크웹이나 텔레그램 등의 정보 유통 경로를 정부나 기업이 모니터링해 정보 유출 및 불법 거래 징후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정기적인 직원 보안 교육 등의 훈련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SPC 공장에서 근로자가 숨진 게 도대체 몇 번짼가요. 사람 목숨 소중한 줄 모르는 기업 제품은 소비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29)는 SPC그룹 계열 브랜드인 파리바게뜨 빵,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등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20일 말했다. 전날 경기 시흥시 SPC 삼립 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 양모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는 뉴스를 접한 뒤 마음먹은 불매운동이다. 김 씨는 “불매운동이 과거보다 크게 번져 사고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SPC 계열사 목록 나누며 불매운동 권유 이번 사고 이후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SPC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직장인 황모 씨(28)는 “2022년에 내 또래였던 20대 여성 SPC 근로자가 숨진 뒤 SPC 빵집 대신 동네 빵집을 이용하고 있다. SPC는 변한 게 없어서 화가 난다”고 했다. 황 씨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친구들에게 SPC 계열사 목록을 공유하고 불매운동 동참을 권유하고 있다. 김주영 씨(24)도 “생일에 배스킨라빈스 등 SPC 상품권을 받았는데 버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서는 SPC 계열사 목록이 정리된 게시물이 19, 20일 연일 올라오고 있다. X(옛 트위터)에는 “반복되는 사고는 분명 인재”, “근로자가 기계에 끼여 죽었는데 크보(KBO) 빵을 먹어야 하나”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크보빵은 SPC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협업해 구단별 빵을 만든 것이다. SPC 계열 가맹점주들은 매출 감소를 우려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파리바게뜨 점주는 “과거 불매운동 때문에 매출이 10∼20% 떨어지는 등 타격을 입었다”며 “이번에도 피해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에서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점주 장모 씨(55)는 “가게를 운영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사고가 났다니 당황스럽다”면서 “매출 감소가 크면 폐업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시민단체, SPC 회장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고발 SPC그룹은 이 같은 불매운동에 대해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SPC 공장 사고의 배경으로 안전불감증을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작업 난이도, 위험도에 따라 2인 1조 원칙 등 안전 지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기계에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 장치를 해놓아도 현장에서 가동이 번거로워 해당 장치를 떼놓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명예교수는 “윤활유를 뿌리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아 정비 중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있다”며 “정비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감독하는 안전 관리자가 현장에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사건 사고가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이어진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과거 쿠팡, 남양유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등도 화재, 갑질, 가습기 살균제 논란으로 불매운동이 일었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숨진 양 씨의 시신 부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1차 부검 결과 ‘머리, 몸통 등 다발성 골절로 인한 사망’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공장 관계자 일부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이날 허영인 SPC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고발장에서 “사고 당시 공장이 이른바 ‘풀가동’할 때 컨베이어 벨트가 삐걱대 몸을 깊숙이 넣어 윤활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고려하면 이번 사고는 예견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이다. 근로자 사망 사고 이후 해당 공장은 가동이 중단됐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이민아 기자 omg@donga.com시흥=이경진 기자 lkj@donga.com}
“SPC 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난 게 도대체 몇 번짼가요. 사람 목숨 소중한 줄 모르는 기업 제품은 소비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 씨(29)는 SPC그룹 브랜드인 파리바게뜨 빵,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던킨도너츠 등을 사지 않기로 결심했다. 19일 경기 시흥시 SPC 계열사 공장에서 50대 여성 근로자 양모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사고 소식을 들은 뒤 결심한 불매운동이다. 김 씨는 “불매운동이 과거보다 크게 번져 사고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 직후 분노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SPC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직장인 황모 씨(28)는 “내 또래였던 20대 여성 근로자가 숨진 2022년부터 SPC 빵집 대신 동네 빵집을 가는 등 불매운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SPC는) 변한 게 없어서 화가 난다”고 말했다. 황 씨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친구들에게 SPC 계열사 목록을 다시 공유하고 불매운동 동참을 권유하고 있다. 시민 김주영 씨(24)도 “지난 생일에 배스킨라빈스 등 SPC 상품권을 받았는데 버릴 생각”이라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상에서는 SPC 계열사 브랜드 목록이 정리된 사진과 함께 “피 묻은 빵 먹지 않겠다”는 등의 게시물이 19, 20일 연일 올라오고 있다. X(엑스·옛 트위터)에는 “SPC의 반복되는 사고는 분명 인재”, “근로자가 기계에 끼어 죽었는데 KBO 빵을 먹어야 하나”는 등 내용의 글들이 올라왔다. 불매운동 확산 조짐에 SPC 계열 가맹점주들은 매출 감소, 폐업 우려 등을 호소하고 있다. 19일 오후 7시경 만난 서울 동대문구의 파리바게뜨 점주 A 씨는 “몇 년 전에도 불매운동 때문에 매출이 10~20% 떨어지는 등 타격을 입었다”며 “이번에도 피해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에서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점주 장모 씨(55)는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는 “가게 운영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사고가 났다니 당황스럽다”며 “매출 감소가 크면 폐업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기업에서 터진 사건·사고로 인해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PC의 경우 2022년 10월 15일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근로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여 숨졌을 당시에도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2021년 6월에는 경기 이천시 쿠팡 물류창고 화재 당시 열악한 근로 환경에 분노한 소비자들이 X 등에서 ‘쿠팡 탈퇴’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리는 등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리점 갑질 논란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발생한 남양유업과 옥시레킷벤키저(옥시)도 각각 2013년, 2016년 불매운동이 일어난 바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옥시 불매운동 이후 전북 익산 공장 노동자 20여 명이 경영난을 이유로 해고되는 일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경찰이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경기 양평군청, 용역업체 2곳 등 총 4곳에 대해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등 주요 관련 인물들에 대한 대면 조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그 가족에 대해서도 수사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尹 파면 이후 수사 급물살… 줄소환 가능성 경기남부경찰청은 16일 국토부와 양평군청, 용역업체 경동엔지니어링, 동해종합기술공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약 6시간에 걸친 압수수색에서 경찰은 국토부 등에 서울∼양평고속도로 타당성 조사와 노선 변경 관련 내부 문서 제출을 요구했고, 필요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한 것은 처음이다. 경기남부청은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간 고발인과 참고인 조사, 공사에 대한 자료 분석 등 기초적인 수사를 진행해 왔다. 이날 확보한 압수물을 토대로 고속도로 종점이 양평군 양서면에서 김 여사 일가의 땅이 몰려 있는 강상면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원 전 장관과 국토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결과에 따라 관련자 줄소환이 예상된다. 경찰이 조만간 피고발인인 원 전 장관의 자택 등에 대한 강제 수사에 나서거나 대면 조사를 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원 전 장관은 이 사건과 관련해 소환된 바 없으며, 그의 자택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원 전 장관과 국토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수사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이달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포함한 ‘김건희 특검법’도 통과된 상태다. 수사당국에 고발된 지 22개월 만에 경찰이 첫 강제수사에 나서면서 늦장 수사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즉 권력이 떨어지니 수사에 나섰다는 비난은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특혜 없다”더니 공무원 7명 늦장 징계서울∼양평고속도로는 경기 하남시 감일동에서 양평군 양서면까지 27km를 잇는 왕복 4차로 도로다. 이 사업은 2017년 1월 국토부 제1차 고속도로 건설 계획에 포함됐다. 같은 해 4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면서 사업이 확정됐다. 하지만 2022년 3월 윤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5월 원 전 장관이 취임한 전후로 고속도로 종점이 기존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됐다. 당시 양평군이 사업성 등을 고려한다며 새로운 대안 노선 3개를 국토부에 제시했고, 국토부가 이를 받아들여 종점이 강상면으로 변경된 것이다. 특혜 의혹은 2023년 5월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위한 노선안이 일반에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새로 변경된 강상면 종점에서 불과 5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3만9394㎡의 땅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당시 원 전 장관은 “특혜 의혹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비판이 커지자 원 전 장관은 같은 해 7월 “도로 개설 사업 추진 자체를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시민단체 등은 원 전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고발장은 검찰을 거쳐 2024년 7월 경기남부경찰청에 이첩됐다. 이 사업은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재차 고속도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원 전 장관의 후임인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어떤 특혜나 외압 의혹이 밝혀진 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올해 3월 뒤늦게 ‘타당성 조사 용역 관리가 부실했다’는 내용의 자체 감사 보고서를 내고 공무원 7명을 징계했다.수원=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1년여 동안 112에 3만 번 이상 욕설, 혼잣말 등 장난전화를 건 6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치매나 정신질환 때문에 과도한 장난전화를 걸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5일 서울 노원경찰서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60대 여성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여성은 경찰 112에 상습적으로 전화를 걸어 욕설, 협박, 혼잣말 등 사건 신고와 무관한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최근 1년 사이 건 전화는 약 3만2000회로, 하루 평균 90여 건꼴이다. 그간 경찰은 이 여성에게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즉결심판을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 왔다. 그러나 의미 없는 내용의 112 신고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자 결국 그를 주거지에서 체포했다. 체포된 날에도 해당 여성은 여러 차례 112에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치매 또는 정신질환에 의한 행동으로 추정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112 허위 신고자에게는 지난해 7월 3일부터 시행된 ‘112 신고의 운영 및 처리에 관한 법률(112신고처리법)’에 따라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또는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1년여 동안 112에 3만 번 이상 욕설, 혼잣말 등 장난 전화를 건 6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치매나 정신 질환 때문에 과도한 장난 전화를 걸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15일 서울 노원경찰서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60대 여성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여성은 경찰 112에 상습적으로 전화를 걸어 욕설, 협박, 혼잣말 등 사건 신고와 무관한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최근 1년 사이 건 전화는 약 3만2000회로, 하루 평균 90여 건 꼴이다. 그간 경찰은 이 여성에게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즉결심판을 내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나 의미 없는 내용의 112 신고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자 결국 그를 주거지에서 체포했다. 체포된 날에도 해당 여성은 여러 차례 112에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치매 또는 정신질환에 의한 행동으로 추정하고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112 허위 신고자에게는 지난해 7월 3일부터 시행된 ‘112 신고의 운영 및 처리에 관한 법률( 112신고처리법)’에 따라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또는 형법상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이게 부력이에요. 여기까지 괜찮아요?” 스승의 날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 서울 금천구 한울중 1학년 1반 교실. 흰 실험용 가운 차림의 과학 교사 김한음 씨(28)가 수조에 띄웠던 빈 플라스틱 약통을 들어 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사는 태어날 때부터 양손 손가락이 각각 4개, 총 8개인 지체장애 3급 중증이다. 6년 차 교사인 김 교사는 이 학교 1, 3학년의 과학 과목을 맡고 있다. 김 교사가 교단에 서기로 결심한 것은 과거 한 선생님 덕분이다. 고등학교 시절 만난 선생님은 김 교사를 다른 보통의 학생들과 똑같이 대하며 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 김 교사는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한 뒤 교직을 이수했다. 칠판 글씨 등 손을 자주 쓰는 업무 특성상 학생들은 김 교사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선생님으로 일하는 모든 나날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일부 무례한 학생도 있었다. 한번은 학생이 일부러 김 교사에게 손가락을 많이 써야 하는 게임을 하자고 악의적으로 제안한 적도 있었다. 김 교사는 그 학생에게 주의를 줬다고 한다. 김 교사는 “그래도 대다수의 학생들은 나를 자신과 조금 다른 사람 정도로 여겨준다”며 고마워했다. 김 교사는 “예전엔 나의 장애가 나쁘고 싫었지만 그게 이제 내 정체성”이라며 “아이들에게도 ‘콤플렉스는 억지로 이겨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정체성이 될 수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김 교사가 가르치는 한 남학생은 “선생님은 늘 여러 도구로 직접 원리를 보여줘서 좋다”며 “처음엔 선생님 손가락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신경 안 쓰인다”고 했다. 다른 여학생은 “장애를 아무렇지 않게 말해주는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나도 학기 초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김 교사뿐만이 아니다. 뇌병변과 언어장애를 지닌 교사 이샛별 씨(35)도 인천 남동구 구월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에게 국어, 수학을 가르친다. 장애로 손이 다소 흔들리고 말하는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수업하는 데엔 지장이 없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내 장애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에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에서 장애 교사가 아이들 앞에 당당히 서서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장애인 교원은 지난달 기준 전체 교원 34만1740명 중 4468명(1.51%)이다. 의무고용률(3.8%)의 절반이 안 된다. 강민희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용률을 지속적으로 채우지 못하는 학교나 기관엔 불이익을 주는 등 추가 대책이 있어야 장애인 교원 비율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당뇨는 초기부터 치료해야 비용이 적게 들고 합병증도 줄일 수 있습니다.”‘2025 서울헬스쇼’ 둘째 날인 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는 ‘당뇨병 명의에게 당뇨병 관리의 길을 묻다’를 주제로 한국당뇨협회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올해 서울헬스쇼에서는 다양한 학회들이 대거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평소 쉽게 만나기 어려운 명의(名醫)들이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의학 건강 정보를 제공했다. 김광원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한국당뇨협회장)는 이 자리에서 “당뇨는 유전력이 있는 사람이 걸리는 것이 아니다”며 “건강하지 않은 생활을 하면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병”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생활 습관이 서구화되면서 국내에서도 당뇨 환자가 늘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먹고사는 게 풍족해지고 골고루 먹지 않고 맛있는 것만 먹는 데다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서 ‘덜 움직이게’ 됐고 당뇨가 늘었다”고 했다. 스트레스 증가도 당뇨 증가의 원인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당뇨 합병증이 발병한 뒤 당뇨 관리를 시작하는 것보다 당뇨를 처음 진단했을 때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연속혈당 측정을 하면 내가 어떤 음식을 먹는 게 혈당이 덜 올라가는지를 알 수 있다”며 “운동한 뒤 혈당이 떨어지는데, 이를 눈으로 봐야 운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는 전문 의료기기를 활용한 폐 기능 검사, 전문의 상담을 통한 호흡기 건강 진단 서비스를 제공했다. 유광하 건국대병원장(호흡기알레르기내과)은 “폐 기능 검사를 하면 천식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등 호흡기와 연관된 대부분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며 “특히 흡연자와 40세 이상 중년층, 만성적 기침 가래가 생기는 경우 폐 기능 검사를 꼭 받아보길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부스에서 폐 기능 검사를 받은 김재식 씨(71)는 “병원에 가지 않고 폐 기능을 검사할 수 있어 좋았다”며 “전문의 선생님이 폐 건강이 양호하다고 진단해 안심된다”고 했다. 대한비만학회는 학회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면 커피 기프티콘을 제공하는 행사를 열었다. 조현행 씨(68)는 “매일 천국의 계단, 스쾃, 러닝 등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살이 빠지지 않아서 고민이다”라며 “앞으로 비만학회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며 다양한 정보를 얻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한심부전학회는 투명 상자 안에 접힌 종이를 뽑으면 운세와 함께 심장 건강에 대한 ‘꿀팁’을 얻을 수 있는 ‘심 봤다 캠페인’을 진행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6·3 조기 대선이 다가오는 가운데 주요 후보들의 딥페이크(인공지능 합성 이미지)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 그중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마치 욕설, 폭언, 읍소를 하는 것처럼 조작된 영상들도 있었다. 자칫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겨냥 합성 영상 퍼져13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유튜브, 틱톡, X(엑스·옛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을 살펴본 결과, 대선 후보의 음성이나 표정, 발언을 악의적으로 조작한 영상을 여러 개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유튜브 영상에는 이재명 후보가 “나도 국회에서 나에 대해 반대하거나 하면 바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의원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이미지를 합성한 가짜 영상을 만들어 올린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마치 코를 붙잡힌 것처럼 보이는 조작 영상도 있었다.김문수 후보의 모습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들도 있었다. 한 영상에서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오늘부로 한덕수가 후보야. 너 꺼져”라고 말하자, 김 후보가 “뭔 개가 짖냐. 개가 여기 있네”라며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담겼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니라 악의적으로 합성된 가짜 영상이다. 또 다른 조작 영상에서는 김 후보가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과 ‘당비 땡전 한 푼 안 낸 한덕수와 단일화해야 하는 게 억울하다고 떼쓰는 모습’이라는 자막과 내레이션이 달렸다. 이준석 후보를 겨냥한 한 딥페이크 영상에는 이 후보가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에게 이른바 ‘황금폰’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며 읍소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역시 가짜였다.● 유포 속도 빨라 단속 못 쫓아가 이 같은 가짜 합성 영상들은 유권자의 올바른 투표권 행사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개정된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 90일 전부터 선거운동 관련 딥페이크 영상은 일절 금지된다.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후보자의 명예가 훼손됐다면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처벌된다. 음란물에 합성한 경우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 등은 전담 모니터링 팀을 구성해 단속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딥페이크 영상 확산이 너무 빨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을 단순 유포만 한 사람도 있고, 직접 제작해서 게시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양상이 다양해서 경우에 따라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네이버 등 국내 플랫폼은 이틀이면 삭제 조치가 이뤄지지만 엑스나 유튜브 등 해외 플랫폼은 2주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 “정부 기관 공동 대응 필요” 전문가들은 경찰, 선관위, 방송통신위원회 등 단속 주체가 여러 기관으로 나뉜 탓에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는 게시물에 대해서만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 그 외의 다른 경우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삭제 조치를 해야 한다. 경찰은 수사만 할 뿐 별도의 삭제 조치는 안 한다. 정수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는 “딥페이크 영상물의 경우 초반에 삭제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2차, 3차 유포가 발생한다”며 “유관 기관이 합심해서 공동대응센터 등을 마련해 원활히 소통하고 빠르게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8일 오후 경북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상현정(象賢亭)은 부서진 기왓장 잔해와 불에 탄 재로 가득했다. 이 정자는 1500년대 조선 중기 학문을 연구하던 구담서당(龜潭書堂)이 허물어진 뒤 후손들이 일제강점기인 1934년 다시 세웠다. 그런데 3월 남부를 할퀸 대형 산불로 불에 타 무너졌다. 이날 취재팀이 살펴본 정자는 산불이 나기 전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현정을 관리하는 이근식 안동 이씨 종친회장는 “복구 비용만 수억 원이 드는데 막막할 따름”이라며 “후손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 수백 년 된 문화유산, 산불 복구 지원 제외남부 산불로 다수의 문화재가 불에 타 소실된 가운데 상현정 같은 ‘비지정 문화유산’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의 복구 지원에서 밀려나 있다. 비지정 문화유산이란 문화유산법 또는 특별시·광역시·도 조례에 의해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 중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의미한다. 12일 안동시 등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소실된 안동 비지정 문화유산은 총 6곳이다. 상현정을 비롯해 조선 후기에 지어진 고택인 괴와구려, 정조 17년에 재건축한 안동 김씨재사, 순천 김씨 고택 동리재사 등 4곳은 전소됐다. 조선 후기 영양 남씨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허영정, 고택 송하재사 등 2곳은 부분 피해를 입었다. 비록 지정 문화유산은 아니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니는 등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음에도 복구 비용을 지원받지 못해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산불 피해를 입은 문화재 중 국가지정유산과 시·도지정유산 등에 대해서만 복구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비지정 문화유산의 경우 차선책으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향토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방안이 있으나, 지원되는 보수 비용은 최대 5000만 원에 그친다. 통상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보수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산불 피해를 입은 비지정 문화유산이 수년째 방치된 경우도 있다. 1889년 고종 23년 16명의 유생이 만든 강원 강릉시 ‘상영정(觴詠亭)’은 2023년 강릉 산불로 전소된 뒤 지금도 복구되지 못한 채 터만 남아 있다. ● “향후 가치 밝혀지는 경우도… 정부가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지정 문화유산 승격 등 향후 가치를 고려해 비지정 문화재 역시 정부가 복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종택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비지정 문화유산은 추후 연구를 통해 가치가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며 “지정 유산이 아니더라도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식 인제대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는 “비지정 문화유산도 문화유산 전문 인력을 고용하는 등 산불 등으로부터 발생할 피해를 사전에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경북경찰청은 경북 산불을 낸 혐의(산림보호법 위반)로 50대 남성과 60대 남성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50대 남성은 야산에서 조부모 묘 성묘 도중 어린 나무를 태우려고 불을 붙였다가 산불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60대 남성은 과수원에서 영농 부산물을 태우다가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안동=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안동=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안동=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안동=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한 달 넘게 밤마다 집이 활활 타는 악몽을 꾸니까 정신병 걸릴라 칸다. 베개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줄줄 난데이.”7일 오후 3시경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2리에서 만난 김미자 씨(82)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듯 주먹으로 자신의 명치를 연신 때렸다. 경북 산불이 마을을 덮친 3월 25일 밤 김 씨는 약 봉투와 겉옷 하나만 챙겨 대피했다. 며칠 뒤 돌아와 보니 그의 기와집은 불에 타 무너졌다. 손녀에게 주려고 아껴둔 가락지, 가족 사진도 재만 남았다. 그의 집은 철거됐고 잔해도 수거됐다. 김 씨는 집이 있던 터를 보며 “그 뻘건 불꽃이 잊히질 않아.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겠냐”며 눈시울을 붉혔다.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역대 최악의 산불 사태가 이달 11일이면 발생 50일째다. 불은 진화됐고 주요 뉴스에서도 멀어졌지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여전히 극심한 정신적 고통(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이전과 달라진 삶을 살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5∼8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트라우마 평가 지침에 따른 설문을 활용해 이재민 2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 20명 중 12명(60%)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 정신건강의학과 등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통합심리지원단을 통한 심리 상담을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의 이재민은 이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선 물리적인 피해 복구뿐만 아니라 이재민들의 정신, 마음 회복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경북산불’ 이재민 “밤마다 집 활활 타는 꿈… 정신병 걸릴라 칸다”산불 50일… 트라우마 심층 인터뷰“도무지 잠 오지않아 수면제 의지”… “‘눈이다’를 ‘불이다’ 듣고 짐싸기도”20명중 12명 즉시 심리치료 필요… 어르신들 상담 꺼려 지원대책 시급3월 경북 북부를 대형 산불이 휩쓴 지 50일이 다가오지만 이재민들의 정신적 고통(트라우마)은 계속되고 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주민 이영해 씨(66)는 4월부터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새카맣게 타버린 집과 3000여 평의 밭, 살림살이들이 떠올라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7일 오후 찾아간 이 씨의 집은 그곳이 집이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부부의 이름이 적힌 문패만이 남아 그곳이 한때 집이었단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 씨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일어날 만큼 예민해졌다”고 말했다.● 이재민 20명 중 12명, 치료 필요한 수준동아일보는 5∼8일 경북 영덕, 영양, 안동 등 산불 피해 지역을 돌며 이재민 20명을 만나 트라우마 측정 설문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설문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트라우마 평가 지침’에 담긴 트라우마 측정 설문 20개를 사용했다. 1개 문항당 5점(전혀 아님 0점∼매우 많이 4점) 척도로, 37점 이상(최대 80점)이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고위험군에 속한다. 조사 결과 취재팀이 만난 이재민 20명 중 12명은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당장 트라우마 상담 등 심리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7일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에서 만난 서순복 씨(84)는 “검은색만 봐도 다 타버린 집이 떠올라 눈물부터 난다”며 “한평생 살아온 집이 없어진 걸 볼 수가 없어 여태 딱 2번 갔다”고 했다. 그의 트라우마 점수는 53점으로 매우 높았다. 속곡리 주민 김정민 씨(68)는 산불 이후 낯선 차량과 사람을 경계하게 됐다. 김 씨는 “누가 또 산에 불을 지르는 건 아닐지 조마조마한 상태”라고 했다. 역시 고위험군인 대곡리 주민 김모 씨(87)는 “눈 감으면 5남매 주려고 농사지은 깨, 아끼던 놋그릇 등이 다 타버린 게 떠올라 두 달째 잠을 못 잔다”며 울었다.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주민 50대 여성 A 씨는 이번 산불로 이웃 주민 2명을 잃었다. 그는 친구가 “눈이다”라고 한 말을 “불이다”로 잘못 듣고 공포에 질려 황급히 가방을 싸 대피하려 한 적도 있었다. 일부 이재민은 정신적 고통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 영덕읍 화천리 주민 신명기 씨(85)는 20일 경북 포항의 한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예정이다. 산불 피해를 본 이후 이유 없이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파서다. 신 씨는 “혼이 빠진 것 같고 몸도 아파 미쳐 버리겠다”고 말했다.● 대부분 고령층, 상담-심리치료 잘 몰라… 대책 필요두 달 가까이 지나도 이재민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 범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심리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문에 응한 이재민 대부분은 정부의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본 이재민들은 주로 고령으로, 심리상담 자체가 낯설뿐더러 제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현재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는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중심으로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이재민 구호·봉사 활동 참여자 등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1일 기준 1만1548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또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전문인력들이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심리상담을 안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집이나 논밭 등 물리적인 피해를 복구하는 것만큼이나 이재민의 심리, 정신적 피해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부분이 고령인 이재민들은 관련 제도나 지원 정책이 있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윤상연 경상국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은 심리치료 등에 익숙하지 않아 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며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상담 제도를 안내하고 지속해서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재난 2, 3개월로 접어드는 시점에는 죄책감과 상실감에 더 쉽게 빠지기 때문에 범정부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재정적, 시스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영덕=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안동=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영양=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한 대형 백화점의 모바일 상품권을 파는 중소기업 사이트를 해킹해 30억 원어치 상품권 7600여 장을 탈취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SK텔레콤 해킹 사태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통계에 따르면 정보 보호 및 보안에 크게 투자하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이 해킹의 주요 목표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재 기업의 정보 보호 투자 금액과 관련 인력 등을 공개할 의무는 연 매출 3000억 원 이상의 대기업에만 있다. 전문가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정보 보호 투자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며 “중소·중견기업들이 보안에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고 지적했다. ● 30억 원 상당 모바일 상품권 탈취 7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해킹으로 30억 원 상당의 모바일 상품권을 탈취한 해킹 조직원 19명을 붙잡아 정보통신망침입 등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모바일 쿠폰 판매 업체의 시스템에 해킹 등으로 취득한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한 뒤 모바일 상품권을 주문했다. 이어 자신들이 지정한 휴대전화로 30억 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 이후 해외 총책은 모바일 상품권의 고유식별번호(PIN)를 국내 교환책들에게 공유했고, 이들이 전국 대형마트를 돌며 종이 상품권으로 교환했다. 이를 현금화한 뒤 해외로 빼돌리려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중국 국적의 해외 총책인 A 씨(36) 등 2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이달 1일 알바몬도 해킹 피해 사실을 공지했다. 알바몬은 1일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에서 4월 30일 알바몬 시스템에서 비정상적 접근 징후를 바로 감지해 대응했으며 해킹 시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2만2473건의 임시 저장된 이력서 정보가 유출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는 알바몬을 운영하는 잡코리아로부터 유출 신고를 받아 2일 조사를 시작했다. ● 피해 기업 94%는 중소·중견기업KISA에 따르면 해킹, 디도스 공격 등 기업 사이버 공격 피해 신고 건수는 2021년 640건, 2022년 1142건, 2023년 1277건, 지난해 1887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기업 사이버 침해 사고 중 중소·중견기업이 전체 피해의 94%를 차지했다. 사이버 공격 피해는 특히 보안 관리가 취약한 기업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 현행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기업이 아니면 정보 보호 투자 현황이나 보안 업무를 맡는 인력 등을 공개할 의무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관련 정보보호산업법 시행령이 2022년 개정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 금융 회사, 전자금융업자,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의 상장사, 비상장사, 소기업 등은 의무 공시 대상에서 빠졌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백화점 상품권 해킹 피해를 입은 업체 역시 자본금 10억여 원, 직원 65명의 중소기업이었다. 따라서 정보 보호 현황 공시 의무도 없다. 알바몬을 운영하는 잡코리아 역시 비상장사 중견기업에 해당해 공시 의무 대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중소·중견기업의 보안 투자를 지원하는 동시에 공시 의무를 확대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규모가 작더라도 개인 정보를 수집 및 가공하는 기업이라면 정보 보호 관련 예산을 반드시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춘식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중소·중견기업들이 보안 투자를 늘리고 해킹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정부가 세제 혜택 등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모 백화점 모바일상품권을 판매하는 영세 업체를 해킹해 상품권 7600여 장(30억 원 어치)을 탈취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SK텔레콤(SKT) 해킹 사태의 여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보 보호 비용을 많이 투자하기 어려운 중견, 중소기업에서 해킹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해킹 등 사이버 공격을 당한 사례는 2021년 640건에서 지난해 1887건으로 3배 수준으로 증가했다.기업이 정보 보호에 투자하는 금액, 인력 등을 공개하는 정보 보호 공시 의무는 현재 매출액 3000억 원 이상의 대기업, 정보통신서비스 일일평균 이용자 100만 명 이상의 기업 등에만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이라면 정보보호 투자 금액을 공시할 필요가 있다”며 “중견, 중소 기업이 정보 보호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30억 상당 모바일 상품권 탈취7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해킹으로 30억 원 상당의 모바일 상품권을 탈취한 해킹조직원 19명을 붙잡아 정보통신망침입 등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모바일 쿠폰 판매업체 시스템에 미리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한 뒤 모바일 상품권을 주문하고, 이를 자신들이 지정한 휴대전화로 수신하는 방식으로 30억 원 상당의 상품권을 빼돌렸다. 이후 해외 총책이 텔레그램을 통해 모바일 상품권 고유식별번호(PIN)를 국내 교환책들에게 공유했고, 이들이 전국 22개 대형마트를 돌며 종이 상품권으로 교환한 후 현금화 해 해외로 빼돌렸다. 모바일 상품권 PIN 번호만 알면 전국 대형마트에서 쉽게 종이 상품권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특성을 악용한 것이다. 경찰은 중국 국적의 해외 총책인 남성 A 씨(36) 등 2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해 추적 중이다.앞서 이달 1일 알바몬도 해킹 피해 사실을 공지한 바 있다. 알바몬은 1일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에서 “지난 4월 30일 알바몬 시스템에서 비정상적 접근 징후를 바로 감지해 대응했다”며 “그 과정에서 ‘이력서 작성 페이지의 미리보기’에서 해킹 시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2만 2473건의 임시 저장된 이력서 정보가 유출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인정보위)는 알바몬을 운영하는 잡코리아로부터 유출 신고를 접수 받아 2일 조사를 시작했다. ● 대기업 아니면 정보보호 공시 대상 제외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서버 해킹, 디도스 공격 등을 포함하는 기업 사이버 침해사고 신고 건수는 2021년 640건, 2022년 1142건, 2023년 1277건, 지난해 1887건으로 급증했다. KISA는 “업종별 침해 사고 중 상대적으로 보안 관리가 취약한 협회 및 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업이 2024년 121건으로 전년 대비 약 66%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소, 중견기업이 전체 침해 사고 비중의 9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처럼 사이버 침해사고는 특히 보안 관리가 취약한 기업에서 꾸준히 증가 추세다. 그러나 현행 법은 일정 규모 이상 대기업이 아니면 정보보호 현황 공시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정보보호 현황 공시는 정보보호 투자 현황, 인력 현황, 정보보호 활동 현황 등을 공개하는 것이다. 기존에 기업 자율로 각 기업의 정보보호인력 공개를 하도록 했던 정보보호산업법 시행령은 2022년 개정됐지만 공공기관, 금융 회사, 전자금융업자,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의 상장사, 비상장사, 소기업 등은 여전히 의무 공시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대형 백화점 상품권 해킹 사태가 있었던 업체 역시 자본금이 10억 원가량, 직원이 65명 정도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으로 정보보호 현황 공시 의무가 없다. 알바몬을 운영하는 유한회사 잡코리아 역시 많은 개인정보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비상장사 중견기업에 해당해 공시 의무대상이 아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규모가 작더라도 개인 정보를 수집 및 가공하는 기업이라면 정보보호 관련 예산 공시 의무를 가질 수 있도록 공시 의무 대상 기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황모 씨는 다른 중국인 유학생을 통해 “한국에서 개설한 통장만 빌려주면 수십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솔깃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자신과 같은 중국인 유학생들 몇몇이 ‘용돈 벌이’ 차원에서 응했다는 말도 들었다. 황 씨는 통장을 빌려줬다. 그런데 황 씨에게 통장 대여를 제안한 중국인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그는 황 씨의 통장만 챙겨 잠적했고 약속한 돈도 주지 않았다. 얼떨결에 황 씨는 피싱 범죄 가담자가 됐다. 이처럼 ‘통장만 빌려주면 한 달에 수십만 원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유혹에 응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에 가담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늘고 있다. 특히 국내 유학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서 이런 사례가 많다. 전문가들은 “범죄 가담 여부를 몰랐어도 처벌 대상이 되는 만큼 국내 실정을 잘 모르는 유학생들에 대한 범죄 예방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서 용돈 벌려다 범죄 가담경찰 등에 따르면 과거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책은 불법 체류자나 한국인이었지만 최근에는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인 경우가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피해자에게 뜯어낸 돈을 전달하거나 ‘돈세탁’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처음에는 범죄인 줄 모르고 피싱에 가담한다는 점이다. “통장 명의만 대여해 달라”, “돈을 옮겨만 주면 수십만 원의 대가를 주겠다”는 등의 제안이나 아르바이트 공고에 응했다가 범죄에 빠지는 사례가 많다.최근에는 한국에 사는 중국인들이 서로 생활 및 취업 정보 등을 나누는 온라인 사이트 ‘분투재한국’을 통해 보이스피싱 수거책 알바를 하다가 적발되는 중국인 유학생들도 늘고 있다. 분투재한국은 ‘한국에서 분투하다’란 뜻이다. 경찰 관계자는 “하루 평균 30만 원 정도의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 이끌려 가담하는 유학생이 많다”고 설명했다. 점점 범죄 가담 사례가 늘자 이 사이트는 사기, 범죄에 연루된 유학생 사례를 소개하며 심부름, 통장 명의 대여 등 홍보 글을 주의하라는 공지 글을 최근 띄웠다.한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무더기로 피싱에 가담했다가 붙잡힌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강원 한 사립대 유학생 10여 명이 무려 약 20억 원의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돈세탁한 혐의로 검거됐다. 조직이 만든 특정 국내 은행 계좌로 피해자들이 입금하면 유학생들이 이 돈을 자신의 중국 등 외국 은행 계좌로 옮긴 것이다. 이 돈은 다시 총책의 계좌로 송금됐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조직은 ‘같은 중국인’이라는 점을 내세워 유학생들을 끌어들인다”며 “외국인 유학생 중 중국 국적이 가장 많다 보니 피싱 범죄에 연루되는 중국인 사례가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20만8962명으로 사상 처음 20만 명을 넘겼다. 그중 중국인이 34.5%(7만2020명)였다.● “대학 차원서 사례 중심 예방 교육해야” 중국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는 방글라데시 국적 20대 유학생이 피싱 범죄에 가담했다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유학생은 “일당과 교통비를 줄 테니 특정 장소로 가서 현금을 수거한 후 전해 달라”는 지시를 따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가 등에 따르면 한국에 온 유학생들은 한국 실정에 어둡거나 언어 장벽이 있는 탓에 같은 국적의 다른 유학생들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보이스피싱 재판을 많이 담당한 한 판사는 “앳된 10대 후반, 20대 초반 유학생들이 멋모르고 범행을 한 뒤 ‘용돈 벌려고 그랬다. 영문을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우선 대학들이 철저한 범죄 예방 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학업을 시작하기 전에 대학이 범죄 예방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며 “유학생이 장기 결석하면 불법 알바나 범죄에 빠진 것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황모 씨는 다른 중국인 유학생을 통해 “한국에서 개설한 통장만 빌려주면 수십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솔깃했다. 주변에 물어보니 자신과 같은 중국인 유학생들 몇몇이 ‘용돈 벌이’ 차원에서 응했다는 말도 들었다. 황 씨는 통장을 빌려줬다. 그런데 황 씨에게 통장 대여를 제안한 중국인은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다. 그는 황 씨의 통장만 챙겨 잠적했고 약속한 돈도 주지 않았다. 얼떨결에 황 씨는 피싱 범죄 가담자가 됐다.이처럼 ‘통장만 빌려주면 한 달에 수십만 원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유혹에 응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범죄에 가담한 외국인 유학생들이 늘고 있다. 특히 국내 유학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에게서 이런 사례가 많다. 전문가들은 “범죄 가담 여부를 몰랐어도 처벌 대상인 만큼 국내 실정에 서툰 유학생들에 대한 범죄 예방 교육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서 용돈 벌려다 범죄 가담경찰 등에 따르면 과거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책은 불법 체류자나 한국인이었지만 최근에는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인 경우가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피해자에게 뜯어낸 돈을 전달하거나 ‘돈 세탁’에 가담하는 경우가 많다.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처음에는 범죄인 줄 모르고 피싱에 가담한다는 점이다. “통장 명의만 대여해달라”, “돈을 옮겨만 주면 수십만 원의 대가를 주겠다”는 등 제안이나 아르바이트 공고에 응했다가 범죄에 빠지는 사례가 많다.최근에는 한국에 사는 중국인들이 서로 생활 및 취업 정보 등을 나누는 온라인 사이트 ‘분투재한국’을 통해 보이스피싱 수거책 알바를 하다가 적발되는 중국인 유학생들도 늘고 있다. 분투재한국은 ‘한국에서 분투하다’란 뜻이다. 경찰 관계자는 “하루 평균 30만 원 정도의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유혹에 이끌려 가담하는 유학생이 많다”고 설명했다. 점점 범죄 가담 사례가 늘자 이 사이트는 사기, 범죄에 연루된 유학생 사례를 소개하며 심부름, 통장 명의 대여 등 홍보 글을 주의하라는 공지 글을 최근 띄웠다.한 대학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이 무더기로 피싱에 가담했다가 붙잡힌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강원 한 사립대 유학생 10여 명이 무려 약 20억 원의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돈세탁한 혐의로 검거됐다. 조직이 만든 특정 국내 은행 계좌로 피해자들이 입금하면 유학생들이 이 돈을 자신의 중국 등 외국 은행 계좌로 옮긴 것이다. 이 돈은 다시 총책의 계좌로 송금됐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조직은 ‘같은 중국 동포’라는 점을 내세워 유학생들을 끌어들인다”며 “외국인 유학생 중 중국 국적이 가장 많다 보니, 피싱 범죄에 연루되는 중국인 사례가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20만8962명으로 사상 처음 20만 명을 넘겼다. 그 중 중국인이 34.5%(7만2020명)였다.● “대학 차원서 사례 중심 예방 교육해야”중국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는 방글라데시 국적 20대 유학생이 피싱 범죄에 가담했다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유학생은 “일당과 교통비를 줄 테니 특정 장소로 가서 현금을 수거한 후 전해 달라”는 지시를 따른 것으로 조사됐다.대학가 등에 따르면 한국에 온 유학생들은 한국 실정에 어둡거나 언어 장벽 탓에 같은 국적의 다른 유학생들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보이스피싱 재판을 많이 담당한 한 판사는 “앳된 10대 후반~20대 초반 유학생들이 멋모르고 범행을 한 뒤 ‘용돈 벌려고 그랬다. 영문을 모른다’며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전문가들은 우선 대학들이 철저한 범죄 예방 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학업을 시작하기 전에 대학이 범죄 예방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며 “유학생이 장기 결석하면 불법 알바나 범죄에 빠진 것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영 기자 o0@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해주겠다며 피해자를 속여 60억 원에 가까운 비트코인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피해자가 가상자산을 보관하는 지갑의 일종의 암호인 ‘니모닉 코드’를 몰래 빼내 범행을 저질렀다.25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해 1월 23일 피해자의 가상자산 지갑 복구암호문을 몰래 빼낸 후 비트코인을 가로챈 일당 4명을 정보통신망법위반 등 혐의로 붙잡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이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에게 접근해 “가상자산 지갑의 복구암호문을 알려주면 더 안전한 지갑으로 옮겨주겠다”고 속였다. 복구암호문은 ‘니모닉(Mnemonic) 코드’[라고 불리는 것으로, 가상자산 지갑을 만들면 자동 생성되는 12개에서 24개의 영어 단어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 코드만 알고 있으면 비트코인 등 지갑 안의 자산을 다른 기기에서 복원할 수 있다. 일당은 피해자가 불러주는 암호문을 녹음한 뒤 약 1년 뒤 암호문을 이용해 피해자의 지갑에서 자신들의 지갑으로 비트코인 45개(당시 24억 원 상당, 현재 59억 원 상당)을 불법 복구했다. 일당은 태국 암시장에서 해당 비트코인 중 20개를 바트화(THB)로 환전했다.경찰은 블록체인 분석기법을 이용해 약 10개월간 범인들의 가상자산 세탁 과정을 추적해 피의자를 특정했다. 일당 4명 중 2명은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고, 나머지 2명은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이 가로챈 비트코인 45개 중 24개는 피해자에게 반환됐다. 경찰은 “나머지 범죄수익에 대해서도 철저히 추적해 전량 몰수 및 추징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가상자산 지갑은 복구암호문이 유출되면 누구든 다른 기기에서 비트코인을 복원할 수 있다”며 “암호는 종이 혹은 철제판에 기록해 오프라인에 보관하고 절대 누구에게도 알려주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권오섭 엘앤피코스메틱 회장(사진)이 모교인 고려대 개교 120주년을 맞아 30억 원을 기부했다. 24일 고려대는 전날 권 회장이 고려대에 30억 원을 쾌척했으며 누적 기부 금액은 약 251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번 기부금은 세종캠퍼스 학생회관 건립기금, 고려대 의료원 발전기금, 교우들을 위한 발전기금으로 각각 10억 원씩 쓰인다. 권 회장은 고려대 지질학과 78학번으로 2009년 엘앤피코스메틱을 창립하고 2012년 마스크팩 브랜드 메디힐을 선보여 성공을 거뒀다. 권 회장은 2016년 11월에도 120억 원의 건립기금을 쾌척해 ‘메디힐 지구환경관’을 세웠다. 2023년 8월에는 의학발전기금으로 50억 원을 기탁해 안암병원 신관 대강당이 ‘메디힐 홀’로 명명됐다. 권 회장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늘 마음을 써왔다”며 앞으로도 모교의 인재 양성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