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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전남 목포를 이어주었던 대형 여객선 S호의 김모 선장은 세월호 참사 이듬해인 2015년 한 언론과 인터뷰했다. 주제는 선장으로서 그가 얼마나 안전에 신경 쓰고 있는지였다. 세월호를 수차례 언급한 그는 “문제가 있는 곳이 바로 선장이 있어야 할 곳”이라면서 “(S호가 취항한 이후)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다”고 했다. S호는 세월호와 다르다고 강조한 것이다.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더구나 S호는 최대 승선 인원이 921명으로 세월호의 2배 수준이었다. 김 선장은 선사를 찾아가 승객과 선원의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고도 했다. 대형 여객선의 선장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책임감이었다. 실제 S호는 잔고장은 있었지만 인명피해 사고는 없었다.“문제 있는 곳에 있어야”라던 선장의 부재 김 선장이 당시 인터뷰까지 나선 까닭은 세월호 선장인 이준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준석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승객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희생자가 탈출을 주저하게 만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도 그때 나왔다. 그뿐만 아니다. 세월호가 바다에 침몰하던 순간 이준석은 세월호를 빠져나갔다. 수화물 과적(過積), 안전 불감증, 승무원들의 구조 외면이 겹친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 304명의 죽음이었다. 시간은 기억을 희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기억을 놓지 않아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세월호를 거론하며 인터뷰까지 했던 김 선장의 뇌리엔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적어도 19일 밤엔 없었던 듯하다. 그는 그때 전남 신안군 족도에 267명의 승객을 싣고 좌초된 퀸제누비아2호의 선장이었다. 사고가 난 협수로에서는 안전을 위해 자동 조종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퀸제누비아2호는 수동 운항을 하지 않았고, 결국 좌초됐다. 경찰은 김 선장이 사고 당시 조타실이 아닌 선장실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보고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는 “위장 장애로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라고 했지만 선원들은 그가 1000여 차례 항해 동안 조타실에 나오지 않았다고 진술한 상태다. 김 선장만 그랬던 게 아니다. 일등 항해사는 “배를 자동으로 설정해 두고 뉴스를 보고 있었다”고 했다. 홀로 키를 잡고 있었던 조타수는 배가 족도를 향해 가던 순간에 방향을 돌리지 않았다. 수사로 사실관계가 확인돼야겠지만 사고가 난 뒤 안내방송이 뒤늦게 나왔다는 복수의 증언까지 나온다. 적지 않은 승무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안전 불감증은 세월호를 겪고도 별반 바뀌지 않았다.세월호 교훈 망각, 김 선장뿐일까 퀸제누비아2호 승무원이 잊었던 세월호의 교훈은 역설적으로 19일 밤 많은 이들에게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다. 퀸제누비아2호에 탔던 승객뿐만 아니라 뉴스 속보를 접한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2014년 4월 16일 오전의 기억을 되새김질했다. 다행히도 참사는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 일부가 세월호를 잊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혹 ‘나는 참사의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해 그 교훈을 잊지 않았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이들에겐 김 선장의 인터뷰 한 대목을 얘기해줬으면 한다. 그도 이듬해 인터뷰에서 참사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선장이 탔던 배가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 함께 바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월호와 거리는) 멀지만, 승객 등을 구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무전 내용에 귀를 기울였는데 먼저 도착한 주변 선박들로부터 ‘(구할) 사람이 없다’는 내용을 들었다”며 참담해했다. 11년의 시간은 세월호 승객을 구하려 했던 이들까지 망각에 젖어들게 했다. 황성호 사회부 사건팀장 hsh0330@donga.com}

지난해 초 일본의 지상파 민방인 TBS에선 한일 간의 러브 스토리를 다룬 드라마 ‘Eye Love You’가 방송됐다. 일본에 건너가 아르바이트하는 한국인 남성과 일본 직장인 여성의 얘기다. 지상파 방송이 황금 시간대인 오후 10시에 방송했고, 현지에선 꽤나 인기를 끌었다. 2일 음주운전 승용차에 치여 사망한 58세의 일본인 여성도 이 드라마의 팬이었다고 한다. 그는 딸과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첫날 밤 서울 동대문역 사거리에서 참변을 당했다. 10부작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낙산공원을 가던 길이었다. X(옛 트위터)에서 자신을 이 사건 유족이라 밝힌 인물은 “어머니는 Eye love you라는 드라마 촬영지인 낙산공원에 가고 싶다고 예전부터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런 드라마가 그렇듯 드라마의 마지막 배경이 된 낙산공원은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마치는 행복의 장소다. 그런 장소를 찾던 한 50대 일본인 여성의 여정이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마침표가 있는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계속된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어머니를 잃은 딸은 무릎과 이마를 다쳐 한국의 병원에 입원했고, 일본에 있는 유족들은 급히 한국으로 왔다. 타국에서 황망한 사건 앞에 놓인 유족들에겐 온전히 고인을 추모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시신을 일본으로 운구하기 위한 비용만 1500만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이 공개되자 가해자 측에서 이 비용을 내겠다고 나섰다. 그는 소주 3병을 마신 채로 한밤중 테슬라를 몰고 질주하다 이런 사고를 냈다. 우리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운구 비용을 가해자가 아닌 정부가 먼저 지급할 수 있었다면 사망한 일본인 여성의 가족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안겨준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작아지지 않았을까. 그건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격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일본에선 이번 사건을 가해자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시선이 고개 들고 있기도 해서다. 아사히TV 등 현지 언론에서는 이미 “한국은 음주운전 치사 처벌이 약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경찰은 유족이 운구 비용으로 고민에 빠졌다는 점을 공개해 도움을 주려 했다. 한국에 온 유족들에게 숙소도 지원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돈인 운구비를 내줄 방법은 없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도 한국에서 범죄 피해를 입었을 때 국가가 나서 피해를 보상해 주는 ‘범죄피해자구조제도’로 보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교통사고와 같은 과실 범죄엔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정부가 장례비를 지급했던 선례가 있었다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정부는 외국인 유가족들에게 장례 비용 최대 1500만 원과 생활지원금 2000만 원을 지원했다. 이번에는 과연 방법이 더 없었을까.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1637만 명으로 1년 전보다 약 48% 늘어났다. 올해는 더 많은 손님이 찾는다고 한다. 58세 일본인 여성의 사례가 되풀이되면 안 될 것이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올 7월 인공지능(AI) 기술로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30대 남성 김모 씨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가 났다. 김 씨는 텔레그램에서 확보한 성인 여성의 얼굴 사진을 AI 로 합성해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했다. 성폭력처벌법상 허위영상물 반포 혐의였다. 흔히 ‘딥페이크 처벌법’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가 무죄를 받은 것은 딥페이크 처벌법의 허점 때문이다. 김 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합성 대상자가) 누군지 모른다”면서 “실존 인물이 아니라 AI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딥페이크 처벌법으로 처벌하려면 음란물 속 대상이 그 음란물 제작에 반대 의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사람이 아니라 AI가 만든 인물이면 이러한 의견 자체를 가질 수 없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재판부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률 격언을 따랐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사진이나 영상 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제 사진과 인위적으로 합성한 사진의 구별이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라며 기술 발전에 따른 법적 판단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판결에서 곱씹어봐야 할 지점이 여기다. 판결문을 뜯어보면 피고인도, 재판부도 피해자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는 못했다. 실존하는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도 남아 있는 셈이다. 수사기관이 그 가능성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때문에 불안한 미래가 떠오른다. 딥페이크 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을 피고인들이 진실은 도외시한 채 “피해자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 말이다. 실력과 의지가 있는 수사관에게 사건이 배당되지 않는다면 이런 사건들엔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딥페이크 처벌법을 만들어 놓고도 쓰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최근 한 ‘허위 전화’ 사건에서 미국의 대응은 그래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 전략가 스티븐 크레이머는 AI로 만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목소리로 지난해 1월 유권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투표 관련 허위 정보를 전파했다. 미 대선 후보 경선이 벌어지는 시점이었다. 수사당국의 추적 끝에 잡힌 크레이머와 변호인단은 전화 속 목소리가 자신을 바이든 전 대통령이라고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니 사칭이 아니라는 논리로 주장했다. 배심원단은 이를 받아들였다. 성범죄는 아니지만, AI를 활용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고도 무죄를 받았다는 점에서 김 씨 사건과 공통 분모가 있다. 하지만 크레이머는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이미 600만 달러(약 83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 상태였다. 그가 유권자들에게 건 전화에 허위 발신자 정보가 포함됐는데, 이는 통신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형사처벌은 피해 갔지만 행정 규제를 통해 책임을 물은 사례다. 법보다 범죄가 AI에 더 가까운 세상에서 정공법만 대책은 아닐 것이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유튜브 보고 배웠다.”21일 인천 연수구에서 아들을 사제총기로 살해한 조모 씨(62)의 경찰 진술이다. 총기를 만드는 일을 해본 적도 없던 그가 유튜브만 보고 총을 만든 것이다. 대단한 기술은 필요 없었다. 유튜브만 있으면 됐다.총뿐만 아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더 큰 희생으로 마무리됐을 수도 있었다. 그의 집엔 이튿날 정오로 알람이 맞춰진 시한폭탄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집은 단독주택이 아니다. 총 38가구가 사는 아파트다. 실제 살상력은 아직은 불분명하지만 최소 화재가 아파트를 덮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이번 사건으로 한국인들이 총기 난사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미국을 보며 혀를 차는 시절이 끝났다고 하면 과장일 것이다. 아직 그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총기 청정국’ 같은 수식어가 한국과 나란히 쓰일 일이 조만간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든다. 이 사건의 비극적 면모와 파급력 때문이다. 모방 범죄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국가가 일일이 들여다보기 힘든 개인의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총을 만드는 세상에 이를 막을 방법은 매우 제한적이다.물론 정부도 움직였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사제총기 규제 강화 대책을 내놨다. 불법 무기 자진 신고 기간을 늘리고, 유튜브 등 온라인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최근 5년간 8893건의 총기 제작 관련 게시물을 삭제·차단 요청했다는 점도 공개하며 불안감을 잠재우려 했다.하지만 이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유튜브와 같이 사제총기 제작법이 공유되는 플랫폼을 규제하는 방법이 없다. 현재 한국 법은 사제총기 제작법 정보를 올린 사람은 처벌한다. 처벌 수위도 강하다. 사제총기로 살해당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사건으로 관련 처벌 수위를 높인 일본이 최대 1년 징역인데, 한국은 최대 3년 징역이다. 제작법을 유튜브에 올린 사람이나 유튜브 법인이나 그 정보로 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은 같다. 왜 유튜브 법인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돼야 하나. 2016년 경찰관이 사제총기에 맞아 사망한 오패산 사건에서도 범인은 인터넷을 보고 총기 제작법을 공부했다고 했었다. 근본적 대책이 없으니 사건이 반복되는 것이다.해외는 다르다. 독일은 불법 콘텐츠를 24시간 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플랫폼에 최대 5000만 유로(약 700억 원) 벌금을 부과한다. 영국은 플랫폼 매출의 10%까지 벌금을 매길 수 있다. 호주도 5억 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들 국가는 플랫폼을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관리자’로 본다.한때 한국엔 ‘마약 청정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마약 유통을 제때 제대로 막지 못해 그 지위를 잃었다. 이젠 10대도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총기도 마찬가지다. 불법 무기 제작 정보를 퍼뜨리는 플랫폼을 막지 못한다면 집집마다 총과 폭탄이 숨어 있는 사회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총기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미국처럼 자위권을 명목으로 총기를 사용하는 사람 역시 늘어날 수 있다. 누구도 그런 사회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1951년 5월 6일. 봄날의 따뜻함은 찾아볼 수 없고 전쟁의 참혹함만이 짙게 드리운 그날, 검은 피부의 남성 1185명이 부산항에 내렸다. 에티오피아 황제의 근위대였던 ‘강뉴 부대’였다. 에티오피아에서 한국까지 바다에서 보낸 날만 꼬박 24일.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모국을 떠나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당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다소 뜻밖의 일이었다. 한국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방부 등이 6·25전쟁을 분석한 책에는 현실적인 관점에서 ‘집단안보에 대한 에티오피아의 역사적 경험’을 파병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에티오피아는 잃어버린 영토인 에리트레아 회복과 군 현대화를 위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했다. 6·25전쟁은 그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게 파병된 에티오피아군 6000여 명의 참전은 1954년 7월 10일까지 이어졌다. 강원 화천군과 양구군, 경기 연천군 일대가 이들의 주요 전장이었다. 혹독한 겨울 추위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총을 들고 끝까지 싸웠다. 전투는 253차례 벌어졌고, 일부 기록은 에티오피아군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전투에서 이겼다는 평가도 있다. 뛰어난 전공을 세운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은 1954년 철수할 때까지 121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코리아(Korea)’라는 이름조차 낯설던 그들은 이역만리에서 목숨을 바쳤다. 결과적으로 에티오피아 정부는 일정 부분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파병 직후 에리트레아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숫자로 기록된 역사 뒤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눈물이 있다.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경북 포항 양포교회 등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한 마미테 훈데 센베타 씨(73·여)는 아버지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한국으로 떠났고, 화천에서 벌어진 전투는 그의 마지막 전장이었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의 부재는 가족의 상처로 남았다. 센베타 씨는 1974년 황제의 몰락과 함께 공산 정권이 들어선 뒤 ‘반역자의 딸’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야 했다. 함께 한국을 찾은 참전용사 틸라훈 테세마 가메 씨(100)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오자 부대는 해체됐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면서 “정권이 바뀐 뒤의 삶은 참혹해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증언은 전쟁 영웅의 귀환이 반드시 영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가 되었다. 에티오피아에도 적지 않은 원조를 해왔다. 하지만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30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며 이번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의 방한을 도운 하옥선 선교사는 “여전히 참전용사와 후손들은 다 낡은 2평짜리 집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뉴 부대원과 그 후손들에겐 6·25전쟁의 상흔이 여전한 것이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최근 방송인 이경규 씨(65)의 ‘약물 운전’이 논란이 됐다. 이 씨는 병원에서 처방 받은 공황장애 약을 먹고 운전을 했다. 경찰은 처방 받은 약이더라도 그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때 운전대를 잡으면 도로교통법 위반이라고 했다. 사건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정밀감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도 약물 운전으로 처벌 받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다. 이런 불안감은 약물 운전이 우리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어서다. 공황장애뿐만 아니라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에 쓰이는 약을 복용하고 운전해도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러한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100만 명을 넘은 것이 벌써 2022년이다. 2018년 75만 명 선에서 4년 새 약 33% 폭증했다. 2017년 13만 명 정도였던 공황장애 환자도 불과 4년 만인 2021년 20만 명을 넘어섰다. 하다 못해 건강검진에서 수면내시경을 한 뒤 운전하더라도 약물 운전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약물 운전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처벌에 대한 원성도 적지 않다. “아파서 처방 받은 약을 먹고 운전한 것인데 과도한 처벌 아니냐”는 것이다. 택시 기사나 대형 트럭 운전사같이 운전이 생업인 사람들은 공황장애나 우울증에 걸리면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다. 일견 이해가 가는 주장이다. 다만 약물 운전의 위험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달 1일 법원은 수면제를 복용한 채 운전하다가 1명을 숨지게 하고 7명을 다치게 한 운전자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수면내시경 후 충분히 자신의 몸이 회복됐다 여기고 혼자 차를 운전해 집에 왔는데, 나중에 보니 어떻게 운전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환자들도 있다고 한다. 음주 운전, 마약 운전만큼이나 약물 운전도 위험한 것이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시민의 일상과 처벌 사이에서 현명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까닭이다. 약물 운전에 관련된 현행 법에는 공백이 많다. 한국은 금지 약물을 먹은 뒤 언제부터 운전이 가능한지 규정이 없다. 해외는 다르다. 영국과 독일은 해당 약물 복용 후 ‘24시간 뒤’ 운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호주는 ‘12시간 동안’ 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올해 4월부터 약물 운전에 대한 법정 최고형이 징역 3년에서 징역 5년으로 높아졌지만 운전 가능 시간 등을 규정하는 조항은 여전히 없다. 범법자만 양산하는, 정교하지 못한 법이다. 음주 운전의 경우 1962년 도로교통법 시행령이 적용되며 처음 단속 기준이 생겼다. 그해 국내 자동차 수는 불과 1만1449대. 인구 10만 명당 4대 꼴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지기 8년 전에 이미 음주 운전 단속 세부 조항이 마련된 셈이다. 지금 약물 운전의 사정은 어떤가. 국내 우울증 환자는 인구 10만 명당 1944명(2022년 기준)이다.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그러고도 운전을 하는 사람도 빠르게 늘고 있다. 입법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2009년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바람직한 영부인상’을 묻는 설문 조사를 했다. 당시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사회봉사 활동에 헌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47.3%)였다. 두 번째도 ‘내조에만 전념하는 현모양처형’(29.0%)으로 비슷했다. 세 번째는 달랐다. ‘자기영역을 갖는 전문가 영부인’(23.2%)이었다. 자기영역을 갖는 전문가란 단순 봉사 정도가 아니라 영부인이 자신의 분야에서는 사회적 역할을 활발히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영부인을 원하는 국민이 설문 당시인 16년 전보다 더 많을지는 의문이다. 온 국민이 아는 ‘여사 리스크’ 때문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건진법사 전성배 씨가 통일교 고위간부로부터 받은 샤넬백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천수삼의 최종 종착지가 김 여사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수사하고 있다. 전 씨 측은 선물을 건네지 않았다고 하고, 김 여사 측 역시 받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진실은 수사로 가려질 것이다. 다만 공적인 직책이 없는 무속인 전 씨가 ‘로비 창구’로 유력가들에게 지목되고, 그에게 일부 선물이 간 것은 사실이다. 그 원인은 김 여사가 전 씨에게 곁을 내줬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전 씨가 윤 전 대통령 대선을 지원한 것이 김 여사의 권유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와 전 씨가 지난해 10차례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대통령실이 영부인 주변인 관리에 실패한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또 다른 ‘김 여사’ 문제도 재점화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특수활동비(특활비)로 대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인 2022년 4월 청와대 대변인은 라디오에 나와 “카드든 현금이든 지급 방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다 사비라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세금이 아니라 김정숙 여사의 주머니에서 옷값이 나왔다는 의미다. 최근 서울고법은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영장을 경찰에 발부했다. 앞선 청와대 주장과는 반대로 특활비가 옷값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의혹) 그 자체가 놀라운 발상”이라며 부인했는데, 수사 결과가 드러나면 누가 더 놀라운 발상을 했는지 곧 알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특활비를 동원한 것도 부족해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다면 그 죄는 무겁다. 두 명의 ‘김 여사’에게 제기된 의혹은 다르지만 집권 동안 공식 석상에서 대통령보다 더 주목받을 때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보다 선출되지 않은 영부인이 더 돋보일 때 국가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우리 국민은 요즘 피부로 느끼고 있는 셈이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2009년 조사에서 또 다른 설문 항목은 ‘대선 후보의 부인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지’였다. 당시 “그렇다”는 비율은 54.7%였다. 다가올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같은 조사를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떨까. “그렇다”의 비율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산림병해충을 예찰(豫察)·방제(防除)하며 산불을 예방·진화하고 산사태를 예방·복구하는 등 산림을 건강하고 체계적으로 보호함으로써….” 우리나라 산지의 나무를 보호하는 법인 ‘산림보호법’의 1항인 ‘목적’ 부분이다. 산림을 훼손하는 주된 원인 하나로 산불이 꼽혔다. 그러나 적시된 원인 중에는 두 번째다. 산불의 위험과 그 대비책 수립 필요성이 산림병해충보다도 간과돼서일까. 이번 산불은 서울 면적의 80%를 불태우고, 3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았다. 사망자는 산림청이 1987년 관련 통계를 만들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다. 최근 각종 방지책 제언이 쏟아지는 것도 산불 예방을 위해 한국 사회가 그만큼 고칠 점이 많다는 방증이다. 그 가운데는 실수로 산불을 낸 사람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현행 산림보호법은 실화(失火)로 산불을 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이번 산불 원인 대부분이 성묘 등의 과정에서 벌어진 실화다 보니 경각심을 가지게 하자는 차원이다. 하지만 이번 산불에서 2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25일을 복기해 보자. 그날은 이번 산불의 교훈으로 발생 원인보다는 확산 방지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은 24일까지는 경북에서 희생자를 낳지 않았다. 상황은 25일 급변했다. 비가 오지 않은 상황에서 초속 27m의 강풍까지 겹쳐 청송과 영양, 영덕까지 삽시간에 산불이 번지며 참사가 빚어졌다. 산불 발생 지역에서 영덕 바닷가까지는 직선 거리로 51km인데, 폭주하는 산불을 멈출 수 있는 브레이크는 없었다. 산림청이 집계한 국내 산불 원인 10년 통계(2015∼2024년)는 일견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산불 원인 1위가 ‘입산자 실화’이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평균 171.3건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이 쓰레기 소각(67.5건)과 농산부산물 소각(60.3건) 순이다. 다만 이 통계를 볼 때 피해 면적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입산자 실화로 인한 평균 피해 면적은 4.01ha로 쓰레기 소각 때문에 발생한 것(3.58ha)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실수로 누군가 불을 내든 쓰레기를 태우려 낸 불씨든 별다른 차이 없이 확산되는 셈이다. 형량을 높이면 관련 범죄가 줄어드는지는 학계의 오래된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사형제가 부활하더라도 살인 등 강력 범죄가 실제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상당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의 실화자 처벌 수위가 미국 등 해외보다 그다지 낮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에선 장난으로 폭죽을 던져 산불을 낸 소년에게 400억 원대의 배상금을 내라는 판결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평범한 개인이 마련하기는 힘든 돈이다. 상징적 의미에 그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사고 원인을 개인에게만 묻다가 근본적 대책을 소홀히 해 비슷한 사고를 반복하는 일이 허다하다. 세월호와 삼풍백화점 참사 등이 그랬다. 이번 사태의 해결책으로 실화자의 형량을 높인들 1km 갈 산불이 100m에 그치진 않을 것이다. 산림당국과 국회의 성숙한 해결책을 기대한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 기자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탄핵 반대’ 시위 현장을 취재했다. 지금보다는 탄핵 찬반 여론이 상대적으로 덜 격화됐지만 그래도 현장의 공기는 숨 막혔다. 이른 아침부터 모인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나마 ‘탄핵이 기각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으로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질서는 오전 11시 21분 탄핵 선고로 깨졌다.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소화기 분말을 뿌리고, 돌을 던지며 분노했다. 경찰 차벽에 머리를 찧으며 자해했고 가스총까지 꺼내 들었다. 급기야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빼앗아 몰다 경찰 소음측정차량을 들이박았다. 그 탓에 차량 위에 있던 스피커가 떨어지며 밑에 있던 70대 한 명이 깔려 숨졌다. 그날 이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 총 4명이었다. 정치가 목숨을 앗아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여론은 그때보다 더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라 말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예삿일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서울서부지법 사태처럼 사법부를 향해서도 분풀이를 했다. 지지자 한 명이 윤 대통령 체포 당일 극단 선택을 하는 일도 있었다. 탄핵 찬성 측도 다르지 않다. 경찰 무전기를 빼앗아 던져 애꿎은 경찰이 피를 봤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박 전 대통령 당시보다 더 큰 불상사가 벌어지리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어렵다. 경찰도 대비책을 세우고는 있다. 13만 명에 이르는 전국 경찰 100%를 동원할 수 있는 ‘갑호 비상’이 선고 당일 발령된다.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헌재 반경 100m를 진공상태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인근 주유소와 대기업, 상점들도 흥분한 시위대에 휩쓸릴 것을 우려해 휴업 수순에 들어가고 있다. 주변 학교도 쉰다. 그럼에도 경찰이 극한으로 치달은 시민들의 감정까지 미리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이 탄핵 선고 전에 진심 어린 승복 메시지를 내야 하는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오든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고 했다. 통합을 위한 역할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냈지만 승복 언급은 사전에 없었다. 물론 여야 지도부 모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이미 내긴 했다. 하지만 그 메시지보다 더 많이 눈에 띄는 건, 선고가 임박해지자 줄줄이 광장으로 나오는 여야 인사들의 모습이다. 단식과 삭발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주장을 되풀이한다. 광장에 선동의 목소리만 들리는데, 시민들이 “승복하겠다”는 여야 지도부의 일회성 메시지를 기억할지 의문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이 직접 내는 입장이다. 변호인이 “결과에 대통령이 당연히 승복할 것”이라 했지만 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승복 발언을 들은 기억은 없다. 윤 대통령은 8일 석방 후 “저의 구속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으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면서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고 했다. 그 안타까움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윤 대통령 자신이 직접 입을 열어야 한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내가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요….” 지난달 20일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김모 씨의 말이다.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빈소의 주인은 그의 딸인 10대 김모 양. 김 씨는 이틀 전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자신의 집(다세대주택)에서 밤새 벌어진 화재로 딸을 잃었다. 아내와 아들은 화마에 중상을 입었다. 김 씨는 “와이프가 다친 걸 보니 애를 구하려고 한 거같이 손과 얼굴에 다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불이 나던 밤 김 씨가 집에 없었던 건 가난 때문이었다. 이들 가정은 차상위계층이었고, 딸은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을 앓는 아이는 부모 중 한 명이 하루종일 옆에서 돌봐줘야 한다. 김 씨의 아내가 일을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네 식구의 생계를 짊어진 김 씨는 야간 근무를 하는 직장에 다녔다. 주간 근무보다 돈을 더 많이 줘서다. 그날 김 씨는 야간 근무를 하기 위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국가가 이 가족을 외면했던 것은 아니다. 중증장애인이었던 김 양 앞으로 매달 17만 원의 돈이 나왔다. 또 구청에서 쌀과 같은 생필품을 지원해줬다고 한다. 하루 13시간의 밤샘 노동을 하는 김 씨가 기억하는 국가가 그들에게 보여준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기초생활수급자면 매달 최대 195만 원의 생계급여가 나오지만 차상위계층인 이들에겐 생계급여는 나오지 않았다. 월 최대 50만 원인 주거급여 역시 해당되지 않았다. 이들이 녹번동에 자가주택이 있다는 이유였다. 녹번동 일대에서 김 씨 소유 자가주택과 비슷한 평수의 빌라 매매 가격은 2억 원 안팎이다. 딸의 목숨을 앗아간 그 집은 딸의 장애 때문에 정착을 해야 돼 빚을 내 무리해서 산 것이었다. 자폐 스펙트럼 같은 발달장애 가정의 빈곤 문제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내놓은 ‘2023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이 있는 가정의 월평균 소득은 275만1000원이었다. 같은 해 통계청 기준으로 한국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 502만4000원의 약 54%에 불과하다. 맞벌이가 평균인 요즘 부모 한쪽이 일을 못 하는 현실이 통계에 적나라하게 반영됐다. 이런 빈곤의 늪은 발달장애인 가정 40.1%를 기초수급대상자로 만들었다. 물론 김 씨 가족 같은 이들에게 무작정 큰 금액을 지원을 하자는 건 아니다. 김 씨 가족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복지제도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매달 50만 원을, 농민이라는 이름으로는 60만 원을 주는 나라에서 이들 가족에게 줬던 돈이 매달 17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과연 지금의 복지 제도가 정의롭다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행히 본보 보도(2025년 2월 22일자 A8면 참조)를 접한 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실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을 위한 소득과 재산을 따질 때 중증장애인이 있는 저소득 가정은 자가주택이 있더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이다. 많이 늦었지만 정치권의 더 큰 관심을 기대한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12·3 비상계엄으로 구속 기소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언론 쪽 100∼200(명)’ ‘여의도 30∼50명 수거’ ‘500여 명 수집’ 등의 단어가 기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강원 화천과 양구 등 구금 장소로 추정할 수 있는 지역명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찰이 노 전 사령관의 경기 안산시 주거지를 압수수색할 당시 확보한 수첩에 이러한 단어들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첩은 약 70쪽 분량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수첩에는 알파벳으로 ‘A’라는 단어에 ‘이재명’ ‘문재인’ ‘조국’ ‘윤미향’ ‘권순일’ ‘좌파 판사 전원’ ‘김명수’ 등의 메모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노 전 사령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 등을 우선 체포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명단은 A에서 D까지 그룹별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명단과 별개로 ‘좌파 방송사 주요 간부들’ ‘김남국’ ‘촛불집회 주모자들’이라는 단어도 기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이 체포된 인사들을 구금할 장소로 구상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도 수첩에 기재돼 있었다고 한다. ‘그룹별로 묶지 말고 섞어서 수집소에 보낸다’는 문장이 수첩에 적혀 있고, 이른바 ‘수집소’로 ‘오음리, 현리, 인제, 강원도 화천, 양구, 울릉도, 마라도, 전방 민통선 쪽’ 등 주로 북한 접경지대를 언급한 대목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사령관을 지난달 10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공소 사실에 수첩 내용을 담지 않았다. 검찰은 수첩에 기재된 내용이 노 전 사령관의 평소 생각을 담은 것인지, 실제 비상계엄을 준비하기 위한 것인지 신빙성을 따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첩에 등장하는 낱말들이 파편적으로 쓰여 있어 해석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사령관 측은 수첩 내용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을 재판에서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노 전 사령관 측은 6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혐의를 부인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12·3 불법 비상계엄 사건의 여파로 별달리 조명받지 못한 사건이 하나 있다. 지난달 초 송치된 ‘중국인 국가정보원 촬영 사건’이다. 중국인 A 씨는 지난해 11월 9일 서울 서초구 국정원 건물을 드론으로 촬영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국정원 바로 옆에 사적 제194호 헌인릉이 있는데, A 씨는 헌인릉을 촬영하다 국정원 건물까지 ‘우연히’ 찍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저 관광객이라는 것이다. A 씨의 주장처럼 경찰이 확보한 그의 휴대전화에는 해외 여행 사진만 들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튿날 A 씨를 풀어줬다. 하지만 그의 행적에는 수상한 점이 적지 않다. 경복궁 등 주요 문화재를 찾는 통상적인 관광객과 달리 해외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적인 헌인릉을 찾았다는 점이 우선 그랬다. 중국판 위키피디아인 ‘바이두 백과’에는 ‘獻仁陵(헌인릉)’이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A 씨는 한국 입국 직후 렌터카를 빌려 타고 바로 헌인릉으로 향했다. 경찰 내부에선 A 씨에게 적용할 혐의를 두고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미심쩍은 행적이 많아 수사 강도를 높여야 하는데, 적용할 마땅한 법이 없다는 이유였다. 결과적으로 A 씨가 검찰에 송치될 때 적용된 혐의는 군사기지법 및 문화유산법 위반이었다. 문화유산법까지 적용한 건 촬영을 할 때 문화유산 훼손의 가능성이 있으니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한 법 규정까지 샅샅이 찾아낸 결과다. 두 법의 최고 처벌 수위는 징역 2∼3년 형에 그친다. A 씨는 출국금지된 상태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반면 중국은 2023년 11월 한국인 사업가 B 씨를 반(反)간첩법 위반 혐의로 붙잡아 여전히 구속 중이다. B 씨는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회사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서 일하던 당시 기술을 유출했다고 의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열린 재판에서 중국 검찰은 B 씨에 대해 징역 최저 11년에서 최대 15년의 구형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중국 수사 당국은 열 달간 가족 면회도 가로막으며 수사했다. 2023년 7월 시행된 중국의 반간첩법을 뜯어보면 앞으로 B 씨와 같은 사례들이 많을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최고형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인 반간첩법은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사항을 포괄적으로 처벌한다. 이 때문에 주중 한국대사관은 “중국 국가안보 및 이익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는 행위도 유의해 달라”는 공지를 교민들에게 했을 정도다. 한국과 중국의 사례를 든 것은, 한국도 중국처럼 인권을 무시한 수사를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핵심 기술과 안보가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법적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간첩법 적용 대상을 ‘적국(북한)’에서 외국으로 넓히는 논의는 야권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 한국 기밀을 빼돌리려는 나라가 북한뿐은 아닐 텐데, 그 외의 국가에 대해 적절한 법적 대응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야권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 참가한 전문가조차 “중국은 우리 국민을 간첩죄로 처벌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불균형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도둑질을 해도 되는 허술한 국가’라는 인식이 퍼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20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이후 벌어진 서부지법 폭력 난입 사태는 비현실적이었다. 깨진 유리창과 부서진 법원 내부의 모습은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장면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사회적 혼란이 극심했지만 이 정도 사건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2025년 한국 사회의 밑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10년도 채 안 된 시간에 한국 사회의 수준이 더 낮아졌다는 자조가 나오는 까닭이다. 수사기관은 물론 사법부 역시 향후 폭동을 일으킨 이들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이 한국 사회에 불러온 충격파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소요를 막기 위해서라도 엄벌은 불가피하다. 실제 법원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들에게 대다수 영장을 발부하며 강경한 처벌 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방향은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공기를 접하는 일선 경찰들의 마음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집회 시위에서 경찰관을 다치게 한 이들에게 엄벌을 내려야 한다는 정치권의 합의를 본 기억은 드물다는 것이다. 집회에서 피 흘리고, 다치는 경찰관들은 외면당해 왔다는 정서가 일선 경찰관들에게 적지 않다. 서부지법 사태가 벌어지기 불과 16일 전의 사건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집회 참가자가 경찰 무전기를 빼앗아 경찰관의 머리를 향해 던지는 일이 있었다. 무전기를 맞은 경찰관은 머리가 3cm가량 찢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민노총은 오히려 강경하게 나갔다. 민노총은 경찰 익명 게시판에 해당 경찰관이 ‘혼수상태’라는 글이 올라왔다며 글 작성자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동료가 다친 경찰관들에게 사과 대신 고소를 한 것이다. 이런 일은 경찰관들의 일상이다. 집회 시위를 막다 다친 경찰관은 지난해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 집회에서 발생한 부상자가 105명이나 됐다. 부상자 가운데는 골절, 인대파열 등 큰 부상을 입은 경찰관도 있었다. 연간 집회 및 시위 도중 부상을 입는 경찰관이 100명을 넘어선 것은 2017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당시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1차 총궐기 시위 참가자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정치권에선 당시 ‘경찰 규탄론’까지 비등했다. 경찰의 관련자 전원 구속 방침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한 야당 의원이 집회에 참가했다가 다친 것이 경찰 때문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폭력적인 경찰의 모습으로 대한민국이 얼마나 퇴행하는지 증명돼 가는 것 같다”고까지 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다친 105명의 경찰관 얘기는 사라졌다. 서부지법의 유리창과 판사실, 그리고 국회의원의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같은 무게로 경찰관들이 흘린 피도 다뤄져야 한다. ‘제2의 서부지법 사태’가 없으려면 말이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한국 검찰, ‘윤석열 대통령과 연관된’ 무속인(Shaman) 체포.” 지난해 12월 18일(현지 시간)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64) 체포 소식을 전한 기사의 제목이다. 헤드라인부터 전 씨가 무속인이라고 썼다. 윤 대통령 부부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전 씨는 2022년 초 윤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다는 의혹으로 ‘무속 논란’이 일자 공개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최근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12·3 비상계엄 이후 불거진 각종 사건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무속신앙과 연관돼 있다 보니 외신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인디펜던트지는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무속신앙(Shamanism)은 정치와의 연관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무속인이 연루된 한국의 정치 논란이 하루이틀이 아니라는 취지다. 어느새 한국을 ‘무속의 나라’라고 보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전 씨뿐만이 아니다. ‘계엄 비선’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존재도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수석 입학 후 군에서 승진 가도를 달리던 그는 성추문으로 군복을 벗었다. 이후 ‘아기보살’이라는 팻말이 달린 경기 안산시의 한 점집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그는 전북 군산시의 한 점집을 찾아 ‘계엄 보고라인’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자신을 배신할 것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업 무속인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무속신앙에 심취해 있었다는 건 맞아 보인다. 그가 경기 안산시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계엄을 모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버거보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일상생활에서 서민의 궁금증과 답답함을 풀어주는 보통의 무속인들까지 싸잡아 욕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같은 권력자들이 비논리적, 비과학적인 무속에 몰입하고 이런 사람들에게 곁을 내준다면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정치인에게 한 표가 중요하다지만 절대 곁을 내주지 않아야 할 부류도 있는 법이다. 국가 주요 정책이나 정부 인사들의 판단에 무속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온다. 이런 사태는 윤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초 전 씨와 관련한 무속 논란이 불거졌을 때 “우리 당 관계자에게 (전 씨를) 소개받아 인사한 적 있다”며 관계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그러면서 “(전 씨가 무속인이 아니라) 스님으로 알고 있고 법사라고 들었다”며 그가 최소 범상치 않은 세계에 몸담은 인물이라는 점은 알았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 역시 윤 대통령이 계엄을 사전에 상의했다고 유일하게 인정한 최측근인 김 전 장관과 막역한 사이였다. 이쯤 되자 국민들은 대선 경선 당시 손바닥에 ‘왕(王)’ 자를 적고 TV 토론에 나왔던 윤 대통령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 10위권의 경제 대국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한 문화 강국이다. 기자가 2021년 카이로 특파원 당시 만난 제3세계 사람들은 한국을 롤모델로 삼아야만 하는 국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이집트인은 첨단 기술을 다룬 영화를 볼 때면 한국이 연상된다고 했다. 그가 지금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냐”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쉽지 않을 듯하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12·3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11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대통령실 압수수색을 통해 일부 자료를 확보했다.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 피의자로 적시됐다. 같은 날 검찰은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압수수색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긴급 체포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은 오전 11시 36분경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서대문구 경찰청,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영등포구 국회경비대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대상에는 대통령경호처도 포함됐다. 계엄 국무회의 회의록과 당시 회의 참석자, 출입기록 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다. 특수단은 대통령실 안내실에 들어와 “내란 혐의와 국회 의사진행 방해 등의 혐의로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지만, 대통령경호처는 사전에 관련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내부 진입을 제지했다. 양측은 압수수색 마감 시한인 일몰 시간(오후 5시 14분)까지도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하지만 경호처는 오후 7시 이후 일부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특수단에 전달했다. 과거 청와대 압수수색 당시에도 같은 방식으로 자료를 넘긴 관례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특수단은 계엄 당일 경찰병력을 국회로 보내 출입을 통제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내란 혐의 등으로 긴급체포했다. 경찰이 현직 수뇌부를 긴급체포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같은 날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경기 이천시 특전사령부, 곽종근 특전사령관 자택을 압수수색해 휴대전화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확보했다. 현재 구속 중인 계엄 핵심 인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추가 조사도 진행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해서 “상황이 되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긴급 체포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윤 대통령을 체포할 의지가 있느냐”고 묻자 “충분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구민기 기자 koo@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11일 대통령실 압수수색에 나선 경찰은 대통령경호처의 반발 탓에 본청 내부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임의제출 형식으로 일부 자료를 넘겨받았다. 압수수색 종료 후 경찰은 “극히 일부만 제출받아 유감”이라고 했지만 추가 압수수색은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해당 자료를 분석해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계엄 핵심 관련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인적 물적 증거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선 만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출석 요구 등 직접 수사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경호처 제지로 압색 무산… 일부 자료만 받아 이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소속 경찰관 18명은 오전 11시 45분경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안내실에 도착해 낮 12시쯤 대통령경호처 관계자에게 영장을 제시했다. 특수단은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국무회의 개최 당시 출입했던 사람들을 확인하기 위해 영장을 발부받았고, 국무회의록 등 관련 자료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밝히며 자료 제출 등을 요구했다.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실, 부속실, 경호처 등 대통령실 본청 4곳 등이 포함돼 있었다. 영장에는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 피의자’로 적시됐고, 합동참모본부 내 계엄사령부가 사용했던 시설 및 장비도 특정됐다. 특수단은 포렌식 장비가 담긴 파란 상자 등도 가지고 들어갔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경호처는 사전에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압수수색을 제지했다. 특수단과 대통령실 측은 오후 5시가 넘을 때까지 협의를 이어갔고, 중간에 특수단 관계자가 “1시간째 아무런 답이 없다. 책임자를 불러달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관리 책임자인 검찰 출신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양측은 영장 집행 마감 시한인 일몰 시간(오후 5시 14분)을 지나서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오후 7시 이후 자료 일부를 특수단에 임의 제출했고, 이후 특수단은 철수했다. 대통령실이 자료 일부를 임의 제출한 것은 과거 청와대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선 총 5번의 청와대 압수수색이 있었는데, 그중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가 제출됐다. 자료 확보에 실패한 압수수색 당시 검찰총장이 바로 윤 대통령이었다. ● 檢, 특전사령부 압색-김용현 추가 조사 이날 검찰과 공수처는 윤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당일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국회에서 증언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을 조사했다. 공수처는 서울 모처에서 홍 전 차장을 방문 조사했고,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홍 전 차장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정성우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도 불러 조사했다. 정 처장은 10일 국회에 나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복사 등을 누가 지시했느냐는 질의에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구두로 지시했다”고 답한 바 있다. 아울러 검찰은 육군 특전사령부와 곽종근 특전사령관의 자택 등도 압수수색을 했다. 국군방첩사령부에서도 이틀째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압수수색 영장은 특수본에 파견된 군검찰이 군사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집행했다. 특전사령부와 방첩사령부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을 저지하기 위해 병력과 체포조를 투입하는 등 핵심 역할을 수행한 부대다. 검찰은 구속 수감 중인 ‘계엄 2인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구속 후 처음으로 이날 불러 조사했다. 전날 법원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검찰청법에 의해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의 범위에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는 경찰관이 저지른 범죄 및 이와 관련성이 있는 범죄에 대해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계엄 사태에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직이 연루된 만큼 검사가 내란죄에 대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동운 공수처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와 “수사를 열심히 하고 있고 (윤 대통령) 체포와 관련해서도 검토하겠다”며 “충분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다만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 이후 눈에 띄는 수사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안규영 기자 kyu0@donga.com}

“이번 계엄 사건을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장르는 블랙코미디가 아닐까요.”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12·3 비상계엄 사건을 가리켜 촌평했다.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납득하기 힘든 근거를 들며 선포한 45년 만의 계엄은 6시간여 만에 끝났다. 야당에 대한 ‘경고’였다는 황당한 이유, 속전속결로 통과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헬기까지 타고 국회에 진입했지만 기다렸다는 듯 철수한 계엄군. 그날의 상황은 단막극처럼 끝나 버렸다. 블랙코미디의 전반전이 2024년 12월 3, 4일의 상황이라면, 후반전은 지금 진행 중인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광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세 기관은 수사 주도권을 놓고 경주하듯 다툼을 벌였다. 계엄의 2인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그는 계엄 이후 공관에서 칩거하다 5일 뒤인 8일 오전 1시 반경 예고 없이 검찰에 출석했다. 그러자 몇 시간 뒤 경찰은 김 전 장관의 공관, 집무실,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김 전 장관의 신병은 검찰이, 김 전 장관의 물품 등 증거는 경찰이 가져간 기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뒤늦게 공수처도 가세했다. 자신들이 수사하겠다며 ‘이첩요구권’을 발동해 사건을 넘겨 달라고 검경에 요구했다. 세 기관이 기싸움을 벌이는 사이 계엄의 핵심 피의자들은 증거를 인멸하고 입을 맞추고 방어 논리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커졌다. 실제 법원은 경찰이 박안수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 등을 상대로 신청한 통신영장을 기각하면서 “수사기관끼리 내용 중복이 있어 수사 주체를 확정하기 위한 협의가 필요하다”며 교통 정리를 요구했다. 이 혼란의 시초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그 전까지는 검찰이 검찰청법에 따라 내란을 비롯한 모든 범죄를 폭넓게 수사할 수 있었다. 문 정부는 검찰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수사 범위 축소를 추진했고 검찰청법상으로 내란죄 수사를 할 수 있는지 모호해졌다. 그 결과 “내란 수사를 누가 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9일 국회에서 “검찰이 수사권을 갖는지 많은 논란이 있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틀 뒤 영장판사는 검찰의 손도 들어줬다. 현행 검찰청법에 따르면 경찰의 범죄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데 이번 내란에 조지호 경찰청장 등이 연루됐으니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 혼선이 나중에 재판에서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검찰, 경찰, 공수처는 협의체 구성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1일 발표된 공조수사본부에는 검찰만 빠졌다. 경찰이 낸 보도자료에는 검찰이 빠진 이유가 적혀 있지 않았다. 국회에서 통과된 상설특검 등을 감안하면 결국 계엄 수사는 최종적으로 특검으로 모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때까지도 각 기관이 ‘마이웨이’만 외친다면 그때 가서 특검은 누더기가 된 증거물과 이미 요리조리 빠져나간 피의자들만 넘겨받게 될지 모른다. 어쩐지 이번 블랙코미디의 상영 시간이 꽤 길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윤석열 대통령과 내란을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이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의 우두머리(수괴)로 판단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이날 구속 수감된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과 내란을 공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윤 대통령을 내란의 우두머리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김 전 장관의 상급자가 윤 대통령이 유일한 만큼 사실상 수괴로 판단하고 수사 중이다. 김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고,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 인멸 염려”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비상계엄 사태의 위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 경찰은 한덕수 국무총리 등 3일 밤 국무회의에 참여한 11명에게 출석을 통보했고, 1명을 조사했다. 조지호 경찰청장도 피의자로 불러 조사했다. 현직 경찰청장이 출석 조사를 받은 것은 경찰 창설 이래 처음이다. 경찰은 한 총리 등이 출석을 거부할 경우 피의자 전환 및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檢, ‘尹, 내란 수괴’ 판단… 이르면 주중 강제수사 나설수도[탄핵 표결 무산 후폭풍]현직 대통령 향해 치닫는 ‘내란 수사’영장에 “김용현은 중요임무종사자”… 상급자인 尹, 사실상 수괴로 지목법원, 유죄 인정땐 최소 무기금고… “尹, 참모진과 변호사 선임 논의”검찰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건 수사가 윤석열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윤 대통령과의 공모가 적시된 만큼, 검찰이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 우두머리(수괴)’로 정조준하고 신속히 긴급체포 등 강제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내란 수괴는 혐의가 입증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무기금고 3개 중 1개로 처벌받는 중대범죄다. 검찰이 긴급체포나 체포영장 발부 등을 통해 윤 대통령의 신병을 먼저 확보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이유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조직의 명운을 건다는 생각으로 가용 가능한 인력과 수단을 총동원해 하루빨리 강제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확산되고 있다.● 檢, 尹 사실상 ‘내란 수괴’로 판단10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윤 대통령과 공모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가 있다”는 취지로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엄 2인자’였던 김 전 장관의 유일한 상급자가 윤 대통령인 것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이날 구속된 김 전 장관을 계속 불러 조사해 사실관계를 더 구체화한 뒤 이르면 이번 주중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나설 방침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는 헌정 사상 한 번도 없었다.형법 87조는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행위’를 내란죄로 규정한다. 내란죄는 △우두머리(수괴) △모의에 참여,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물론이고 △부화수행(附和隨行·줏대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 행동함)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까지 모두 처벌한다. 검찰이 김 전 장관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했다는 것은 그의 상관인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 수괴’로 보고 수사 중이라는 의미인 것이다.내란 수괴 혐의는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이다.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최소 무기금고에 처해지는 것이다. 검찰이 윤 대통령을 겨냥한 강제수사에 곧바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통상 검찰 수사는 하급자부터 시작해 중간관리자와 책임자 순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김 전 장관의 신병을 이미 확보한 만큼 윤 대통령을 정조준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갖춰졌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다.● 법조계, “영장 있어야 尹 조사 가능할 것”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나 대면조사는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 가능할 거란 게 법조계 중론이다. 검찰이 영장 없이 윤 대통령을 긴급체포할 수도 있지만, 현직인 만큼 대통령실 경호 인력과 충돌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을 영장 없이 체포하는 것 역시 수사기관으로선 부담이다.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더라도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한 전례가 없어 이 역시 경호처와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윤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고 사전구속영장을 먼저 청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검찰이 피의자 조사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유를 법원에 충분하게 소명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통상의 수사처럼 검찰이 윤 대통령에게 검찰청사로 출석해 피의자로 조사받을 것을 먼저 요구하는 방식도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측이 경호 문제를 이유로 불응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디올백 수수 의혹 등과 관련해 김건희 여사에게 출석을 요구하자 김 여사 측은 경호 문제를 이유로 제3의 장소를 제안했고, 결국 서울 종로구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에서 조사가 진행돼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이 내란 혐의를 받는 중대범죄 피의자임을 감안하면 검찰이 제3의 장소 조사를 수용할 가능성 역시 낮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강제수사 방식을 서둘러 결정한 뒤 수사를 신속히 진행할 방침으로 알려졌다.윤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시급한 상황에서 현재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찰이 경쟁을 벌이며 얽혀 있는 수사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합동수사본부를 꾸리는 등 원만한 협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차질을 빚거나 수사의 법적 정당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고 했다.현재 윤 대통령은 극소수 참모진을 중심으로 강제수사에 대비해 변호사 선임과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단은 검찰 출신으로 윤 대통령과 가까운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중심으로 고검장 출신 변호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윤석열 대통령과 내란을 공모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이 윤 대통령을 사실상 내란의 우두머리(수괴)로 판단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이날 구속수감된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과 내란을 공모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윤 대통령을 내란의 우두머리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김 전 장관의 상급자가 윤 대통령이 유일한 만큼 사실상 수괴로 판단하고 수사 중이다. 김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고,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를 인멸할 염려”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비상계엄 사태의 위법성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단이다.경찰은 한덕수 국무총리 등 3일 밤 국무회의에 참여한 11명에 대해 출석을 통보했고, 1명을 조사했다. 조지호 경찰청장도 피의자로 불러 조사했다. 현직 경찰청장이 출석 조사를 받은 것은 경찰 창설 이래 처음이다. 경찰은 한 총리 등이 출석을 거부할 경우 피의자 전환 및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부부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실질심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판결을 목전에 둔 이달 12, 13일. 향후 정국을 요동치게 만들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기 직전이었지만 한국인의 관심을 이들보다 더 끈 사람이 있다. 12일 신상공개가 된 ‘북한강 토막 살인사건’의 피의자 양광준 씨다. 검색어 관심도를 보여주는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이달 13일의 경우 양 씨에 대한 검색 총량을 100이라고 했을 때, 명 씨(검색 총량 29)와 이 대표(25)는 그에 현저하게 미치지 못했다. 비슷한 서비스인 ‘구글 트렌드’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강력범죄자 신상공개 한 건의 사회적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파급력이 크다 보니 신상공개 제도의 잣대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경찰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엘리트 장교 출신으로 잔혹하게 내연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양 씨의 신상공개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양 씨와 비슷한 유형의 범죄를 저질렀지만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사례들을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파타야 토막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타야 토막 살인사건의 범인 3명은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양 씨와 이들 모두는 사람을 죽인 뒤 시신을 훼손했을 정도로 잔혹한 수법을 쓴 혐의를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양 씨는 범행을 인정한 반면 파타야 범인 3명은 이를 부인하면서 신상공개 여부가 달라졌다. 현행 신상공개 제도는 혐의를 부인할 경우 혐의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죄추정 원칙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의 기본 뼈대인 만큼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파타야 사건처럼 여러 명이 범행을 저질렀을 경우다. 파타야 사건을 수사한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살인이 해외에서 발생해 이를 입증할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들의 진술이 엇갈렸다”고 했다. 이들은 법정에서도 여전히 살인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자신의 범행은 축소하고 남의 범행은 키워서 진술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양 씨처럼 혼자 범행을 저질렀을 경우와 견줘 공동범행은 수사의 난도가 대폭 올라간다. 신상공개가 된 강력사범 가운데 공동범행인 사건이 드문 이유다. 지난해 초 서울 강남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한 뒤 살해한 사건의 범인들 신상이 공개된 사례 정도밖에 없다. 우리 형법은 여러 명이 함께 범죄를 저지를 경우 더 강하게 처벌한다. 그런데 신상공개는 오히려 집단 범행의 경우 적용이 더 어렵다. 모순이다. 지난달 말 파타야 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은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범인들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법을 바꿔 달라고 청원했다. 5만 명의 동의를 얻어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되는데, 이 글은 226명의 동의로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가족들은 또다시 좌절했을 것이다. 신상공개의 근거가 되는 법률에는 필요성에 대해 “범죄를 예방하여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라고 적시하고 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공동범행이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까닭이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