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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동산 시장, 정부가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황이죠. 다주택자들이 항복하고 급매를 내놓으면, 무주택자들이 저렴하게 집을 장만하고 부동산 가격 급등을 잠재울 거라고 보는 건데요.그럼 ‘1가구 1주택 실거주’가 기본이 된 세상에선 집값 걱정과 투기 열풍이 사라질까요? 자가 보유율 세계 1위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이 있어도 집 걱정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집은 단순한 거주 수단이 아닌 ‘욕망의 재화’이기 때문이죠. 싱가포르의 ‘똘똘한 한 채’ 열풍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싱가포르 공공주택의 힘90.8%. 싱가포르의 주택소유 비율은 단연 세계 1위입니다. 1960년대부터 펼친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주택 정책 덕분이죠. 국민의 80%는 주택개발청(HDB)이 건설한 공공주택에 거주합니다.전 세계 도시 계획가의 찬사를 받는 싱가포르식 공공주택 모델. 이게 가능했던 건 일단 국토의 약 90%가 정부 소유이기 때문이고요. 또 모든 근로자가 월급을 20%씩 강제저축해 조성한 막대한 ‘중앙적립기금’이 뒷받침됐습니다. 무려 700조원이 넘게 적립된 이 기금이 싱가포르 공공주택 건설의 거대한 자금줄 역할을 하죠. 왜 사람들이 기꺼이 공공주택에 사냐고요? HDB 주택은 법적으론 ‘99년 장기 임대’이긴 한데요. 사실상 소유한 것과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입주민은 5년 의무 거주기간(일부 인기 지역은 10년)만 채우면 이걸 팔 수 있죠. 만약 99년 임대로 분양 받았는데 5년이 지났다면, 나머지 94년치 권리를 재판매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는 거죠.물론 공공주택은 ‘콘도미니엄’이라 불리는 민간주택처럼 엄청 고급스럽진 않아요. 민간 콘도미니엄은 단지 내 수영장, 헬스장 같은 편의시설을 갖추고 보안요원이 상주해서 훨씬 호화롭죠. 하지만 비슷한 입지·크기라면 공공주택은 가격이 반값 이하입니다. 관리비도 훨씬 저렴(월 몇만원 수준)하고요. 가성비 면에선 비교가 되지 않죠.나중에 팔아서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다니, 솔깃하신가요? 물론 아무나 공공주택을 분양받을 순 없죠. 일단 외국인이나 다주택자는 불가능하고요. 기혼 가구인 경우엔 월 소득 1만4000싱가포르달러(1600만원) 이하여야 신규 분양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만약 미혼이면 소득과 나이 요건이 더 까다롭고요(월 소득 7000싱가포르달러(800만원) 이하이면서 35세 이상). 또 미혼자는 작은 평형(거실+방1개 구조)만 분양받을 수 있다는 제한도 있어요.‘1인 가구는 35살까지 기다리라니 너무하다’라는 청년층 불만도 터져나오는데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해야 하는 정부로선 제도 변경에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랑 BTO 신청할래?이런 제도 때문에 싱가포르엔 독특한 청혼 문화가 생겼습니다. 청혼할 때 ‘나랑 결혼해줄래?’ 대신 이렇게 묻는 거죠. “나랑 BTO 신청할래(Shall we BTO)?”BTO(Build-to-Order), 즉 공공주택 신규 분양 신청을 함께 하자는 아주 로맨틱한(?) 제안입니다. 보통 분양 당첨부터 입주까진 4-5년 걸리는데요. 결혼 전 분양 신청을 한 뒤, 나중에 입주하기 전까지만 혼인신고를 마치면 되거든요. BTO 물량 대부분은 생애 첫 신청자에 몰아주기 때문에 신혼부부에 유리한 편입니다. 만약 5년 안에 결혼할 생각이 있다면 둘이 얼른 함께 BTO부터 신청해야죠.한국에선 보통 결혼 날짜를 정하고 그에 맞춰 집을 구하죠. 싱가포르는 그 반대예요. BTO에 당첨되고 입주날짜가 정해지면 그에 맞춰 결혼식 날짜를 잡곤 하죠.만약 공공주택에 당첨됐는데 입주 전에 헤어지면 어떻게 되냐고요? 당연히 입주권은 날아가고, 이미 낸 예약금과 인지세까지 포기해야 합니다. 손해가 막심하죠. ‘BTO 위약금이 무서워서 결혼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인데요.그래도 합리적 가격으로 공공주택을 분양 받을 수 있으니, 싱가포르 신혼부부들이 부럽다고요? 제도로 보면 확실히 그런데요. 실제 사례를 들여다 보면 좀 복잡합니다. 왜? 다들 원하는 입지가 비슷하다보니, 쏠림현상이 극심하기 때문이죠.싱가포르는 국토가 서울보다 20% 정도 큰 나라인데요. 서울에서도 강남, 강북이 다른 것처럼, 싱가포르도 입지에 따라 선호도 차이가 큽니다. 특히 자동차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보니, 지하철역 근처냐 아니냐가 중요한데요.도심 중심부와 가깝고 학군이 좋으면서 편의시설이 풍부하고 지하철(MRT)역과 가까운 아파트. 이런 인기 단지는 경쟁률이 수십대 1까지 치솟기도 합니다. 반면 도심과 떨어진 외곽지역은 경쟁률이 일대 일에도 못 미치는 미달 사태가 벌어지곤 하죠.퀸즈타운, 부킷 메라 같은 ‘서울 강남급’ 입지만 고집하다가 줄곧 BTO에 떨어지는 사례는 매우 흔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공급을 늘렸다는데 왜 내 집은 없냐!’라는 항의도 이어지는데요.아니, 신혼 때는 좀 외곽에서 살다가 돈 모아서 나중에 더 좋은 집으로 가면 되지,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입지 타령이냐고요? 바로 여기서 싱가포르 공공주택 제도의 아이러니가 드러납니다. 저렴한 공공주택이 단순한 내 집 마련 수단이 아닌 자산증식의 통로가 되어버린 거죠. ‘똘똘한 HDB 공공주택 한 채’를 생애 최초로 분양 받는 건 싱가포르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건 국가가 지원해 주는 일생일대의 로또이자 저위험 고수익의 투자 기회이니까요.정부가 지원하는 합법적 로또도심과 가깝고 조망 좋은 싱가포르의 핫한 주거지 부킷 메라. 30평대 신축 고급 콘도미니엄 가격이 320만~450만 싱가포르달러(약 37억~52억원)를 호가하죠. 서울로 치면 반포 내지 압구정 같은 입지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도 공공주택은 들어섭니다. 지난해 10월 부킷 메라에 공급된 30평대 공공주택 분양가는 58만 싱가포르달러. 우리 돈으로 6.7억원인 거죠. 만약 싱가포르 시민권자인 신혼부부라면 최대 12만 싱가포르달러(1.4억원)의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실질 구매가는 그만큼 낮아집니다. 우리로 치면 반포 신축의 국민평형 아파트를 5억원 대에 분양받을 수 있는 거죠.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건데요.이렇게 분양받은 공공주택, 의무거주 기간(10년)이 끝나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요? 현지 부동산 분석 업체들은 최소 150만 싱가포르달러(17억원), 조망 좋은 고층은 200만 싱가포르달러(23억원)는 충분히 갈 거라고 내다봅니다. 업자들의 설레발 아니냐고요? 이미 지난해 이 지역 준신축 공공주택의 재판매 가격이 130만 싱가포르달러(15억원)를 찍었거든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그 정도 상승은 충분히 가능하겠죠.왜 그렇게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핵심지 분양’에 목매는지 아시겠죠? 이들에게 첫 BTO 공공주택은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자산 뻥튀기를 위한 일종의 투자 상품이죠. 의무 거주 기간(5년 또는 10년)이 끝나자마자 집을 팔아 시세차익을 챙긴 뒤, 이를 발판으로 고급 민간 콘도미니엄으로 ‘업그레이드’해 갈아타는 것. 싱가포르에선 이게 중산층 도약을 위한 성공공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핵심지 공공주택 당첨인 거고요.‘소박한 46만 달러(5억2000만원) BTO로 시작해 민간주택으로 이사한 뒤 345만 달러(40억원)에 매각한 여정.’ 소셜미디어엔 이런 류의 콘텐츠가 넘쳐납니다. 주로 부동산 중개 업자들이 투자를 부추기려 만든 영상인데요.이런 영상이 강조하는 건 두가지이죠. ①‘똘똘한 HDB 한 채’ 청약 당첨은 정부가 지원해주는 일생일대의 투자 기회다. 당장 신청하라! ② HDB에 만족하고 계속 살면 절대 안 된다. 의무기간만 채우고 얼른 민간주택으로 갈아타라! 이와 관련한 수많은 성공사례를 열거하며 젊은층의 자본주의적 열망을 강하게 자극합니다.‘똘똘한 한 채’에 대한 열망공공주택이 로또처럼 변질되면서 나타난 ‘BTO 광풍’. 당연히 싱가포르 정부로선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죠. 그래서 2024년 10월 정부는 전례 없는 강한 규제를 내놨습니다. 일부 인기 지역의 의무거주 기간을 2배로 늘렸고요(5년→10년). 이 지역에선 나중에 집을 팔았을 때 매매가의 6~12%를 ‘보조금 환수’ 명목으로 국가에 반납하게 했죠. 하지만 이런 규제도 똘똘한 한 채를 향한 열망은 꺾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수익률이 낮지만 당첨확률 100%인 곳, 10여 년 뒤 대박이지만 당첨확률이 10%도 안 되는 곳. 기회가 한 번이라면 둘 중 뭘 택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평생 한 번 뿐인 생애 첫 보조금 혜택인데, 가장 수익률 높은 곳에 베팅하게 되지 않을까요. 싱가포르 공공주택 모델은 1961년 ‘버킷 호 스위(Bukit Ho Swee) 대화재’ 참사를 계기로 탄생했어요. 화재로 잿더미가 된 무허가 판자촌에서 리콴유 당시 총리가 “정부가 여러분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콘크리트 집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고요. 이를 현실화한 게 HDB 공공주택이었는데요. 하지만 60여 년이 지나 싱가포르는 1인당 GDP 9만 달러(1억3000만원)의 부자 나라로 성장했고요. 이 나라 젊은이들은 이제 단순히 ‘판잣집이 아닌 깨끗하고 안전한 집’에 사는 것만으론 더이상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주거안정이란 필수적 욕구가 채워지자 ‘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작동하는 건데요. 그 본능을 과연 누가, 무슨 정책이 막을 수 있을까요. ‘1가구 1주택 실거주’라는 성공 신화를 쓴 싱가포르가 맞닥뜨린 풍요의 역설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요즘 금융시장이 어지러울 정도로 요동치고 있죠. 그중에서도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던 자산은 바로 은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눈부신 급등세를 보였던 은 가격이 불과 하룻밤 사이에 30% 넘게 빠졌기 때문이죠.미친 듯이 급등하던 은 가격이 갑자기 고꾸라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1980년과 2011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는데요. 은은 왜 ‘악마의 금속’일까요. 금과는 뭐가 다른 걸까요. 역사가 알려주는 은 시장의 교훈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빚으로 쌓았던 은값 거품지난 1월, 모두가 은에 열광했습니다. 석 달 만에 150% 넘는 가격 상승, 역사상 첫 온스당 100달러 돌파. 은에 투자하는 상품인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iShares Silver Trust) ETF’의 하루 거래량은 1월 26일 394억 달러까지 치솟았죠. 엔비디아(약 230억 달러)나 테슬라(220억 달러) 주식보다도 더 인기를 끈 겁니다.은 투자 열풍은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월 한 달간 ‘코덱스(KODEX) 은선물 ETF’에 무려 8151억원의 개인 순매수가 유입됐다죠. 다들 반짝이는 은을 갖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그리고 미국 시간으로 1월 30일, 갑자기 시장이 뒤집혔습니다. 온스당 121달러를 돌파했던 은 가격이 하루 만에 31% 곤두박질친 거죠. 2월 2일엔 장중 온스당 75달러까지 추락했어요. 고점보다 38%나 빠졌죠.물론 이때 코스피도, 금값도 급락을 맞았습니다. ‘워시 쇼크’, 즉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란 평가를 받는 케빈 워시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영향이란 해석이 나왔는데요. 하지만 은값이 다른 자산보다 몇배로 크게 요동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빚(레버리지)을 써서 은값 상승에 베팅한 투기적 수요가 워낙 많이 쌓여있었고, 그게 한꺼번에 무너졌기 때문이죠.지난 1월 말 은값이 미친 듯이 뛰자,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은 선물 증거금을 연이어 크게 인상했죠. 여기에 케빈 워시가 연준 의장으로 지명될 거란 소식까지 나왔어요. 악재가 겹치면서 무섭게 뛰던 은값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요. 일단 은값이 떨어지자, 높은 레버리지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은 투기 세력이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직면하게 됐고요. 이를 막지 못한 투자자들이 줄줄이 강제 청산당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은값이 추가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졌고, 결국 역대급 폭락으로 이어진 거죠.투기세력이 그동안 빚으로 쌓아올렸던 은값의 거품이 순식간에 빠지고 말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하루 만에 31%는 정말 심하네요. 이를 보며 은의 오래된 별명을 떠올렸습니다. 은은 역시 ‘악마의 금속(Devil‘s metal)’이에요!은빛이 잿빛 된 ‘실버 목요일’‘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내 현금 자산은 인플레이션에 녹아내릴 거야. 지금은 실물자산에 투자할 타이밍이야.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는 안전한 자산이라면 금 아니면 은이 아닐까?’아마 최근 은을 산 투자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약 5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유명한 투자자가 있었죠. 바로 헌트 형제. 텍사스 출신 석유재벌 해롤드슨 라파예트 헌트의 세 아들(넬슨 벙커 헌트, 윌리엄 허버트 헌트, 라마 헌트)입니다.1970년대 초 달러 약세와 초인플레이션 시대를 예견한 헌트 형제. 당시 온스당 2.5달러이던 은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확보한 은 가격이 뛰면 그걸 담보로 대출 받아 다시 은 선물계약을 싹쓸이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은을 축적해나갔죠. 1979년 말, 이들이 확보한 은 실물과 선물계약은 무려 2억 온스 어치에 육박합니다. 전 세계 은 공급량의 약 3분의 1이 헌트 형제 손에 있었던 거죠.시중엔 은이 동나면서, 은값은 수직으로 치솟습니다. 1979년 초 온스당 6달러였던 가격이 1980년 1월 18일 49.45달러를 찍었죠. 1년 만에 700% 넘게 폭등한 겁니다. 미친 은값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집집마다 대대로 물려받은 은 식기와 아기용 은수저를 내다 팔았고요. 곳곳에서 은 절도 사건이 급증했죠. 감광재료인 은 때문에 필름 가격이 덩달아 급등하면서 병원에선 엑스레이 필름마저 구하기 어려울 지경이 됩니다.보다 못한 미 연준과 뉴욕상품거래소(COMEX)는 대대적인 은 시장 규제에 나섭니다. 헌트 형제의 추가 은 매입이 막혔고요. 드디어 은 가격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는데요.1980년 3월 26일, 뉴욕타임스에 티파니앤코의 ‘비양심적(UNCONSCIONABLE)’이란 제목의 광고가 실렸습니다. 은값 폭등에 분개한 월터 호빙 티파니앤코 회장이 헌트 형제를 “수십억 달러 상당의 은을 사재기해 가격을 폭등시켰다”며 공개 저격한 거죠.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3월 27일, 하루 만에 은값이 33% 급락합니다. 헌트 형제가 COMEX의 1억 달러짜리 마진콜을 막지 못하면서 청산 당했기 때문이죠. 이른바 ‘실버 목요일(Silver Thursday)’입니다.수십억 달러를 잃은 헌트 형제는 시장 조작 혐의로 막대한 벌금까지 부과받았고요. 결국 파산을 신청하는 처지가 됩니다. 실버 목요일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10달러로 추락한 은값은 이후 아주 오래, 약 30년 동안 10달러 안팎에 머물렀습니다.강렬한 급등과 처절한 붕괴. 그 극심한 변동성 때문에 은에는 ‘악마의 금속’이란 별명이 붙었죠. 눈부시게 빛나다가도 한순간 잿빛으로 변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투자자산으로서 은이 갖는 무서운 속성입니다. 은은 금 같은 안전자산일까?바로 이 점에서 은은 금과 다릅니다. 신뢰할 만한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통하는 금과 달리, 은 가격은 때론 미친 듯 널뛰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곤 하죠. 그래서 은을 ‘스테로이드 맞은 금’이라고도 부르는데요.그럼 왜 이렇게 변동성이 클까요. 일단 은 시장은 규모가 작습니다. 금 시장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죠. 그만큼 투기성 자금에 휘둘리기가 쉽고요.은은 독특한 원자재입니다. 귀금속과 산업재,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죠. 은이 모든 금속 중 열과 전기 전도성이 가장 높아서 산업적 가치가 높기 때문인데요. 생산되는 은의 절반 이상이 태양광패널,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의 핵심 소재로 쓰입니다. 이렇게 은이 쓰이는 곳이 많으면 은값엔 좋은 일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하고 은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따져보면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산업재로 많이 쓰이다보니, 구리나 철 같은 다른 금속처럼 경기를 너무 많이 타게 되죠. 경기가 고꾸라지고 산업수요가 줄면 가격이 되레 급락할 수 있는 겁니다.자고로 안전자산이라면 금처럼 경기가 나쁠수록 오히려 빛나야 하잖아요. 그래야 사람들이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해서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어할 거고요. 그런데 은은 그렇지 못합니다. 산업재로서의 유용함이 은의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셈이죠.사실 은은 금만큼 희귀하지도 않아요. 어떤 자산의 희소성을 판별하는 지표가 총 재고량(현재 유통되는 물량) 대비 연간 생산량(1년간 신규 공급 물량), 즉 ‘Stock-to-Flow(S2F)’인데요. 금은 이 지표가 62에 달하죠. 다시 말해, 현재 전 세계 금 보유량만큼을 추가하려면, 앞으로 금을 62년이나 더 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새로 추가될 수 있는 양이 너무 적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가치가 상승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거죠.그럼 은은? 이 비율이 22 정도입니다. 은을 앞으로 22년 더 캐면 지금의 재고량(산업재로 소비돼 사라진 건 제외)만큼이 추가된다는 의미이죠. 희소성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닙니다. 좀 애매하죠.역사의 반복 vs. 이번엔 다르다정리하자면 은은 금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썩 믿음직스럽진 못합니다. 하지만 ‘은=안전자산’이란 공식은 투자 세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요.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금값이 뛰는 시기엔 덩달아 은값도 뛰곤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의 양적 완화로 막대한 달러가 풀렸던 2010~2011년에도 그랬었죠.당시엔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 실패로 미국 신용등급이 하락할 거란 위기감이 고조됐고요. 전 세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 그 중에서도 은 매수에 뛰어듭니다. 이번엔 헌트 형제 같은 ‘고래’ 대신 레버리지 높은 투자에 나선 투기적인 개인 투자자가 중심이었죠. 그때도 지금처럼 중국 투자자들이 열성적인 은 투기세력이었는데요. 8개월 동안 금값이 26% 뛸 때, 은값은 165%나 급등했고요. 2011년 4월 정점에서 은값은 49.82달러로, 31년 만에 전고점을 뚫습니다.“마치 1999년(닷컴버블)으로 돌아간 것 같다”, “은은 여전히 금보다 저평가돼있다”, “은 가격이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투자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던 2011년 4월 말.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은 선물 계약의 증거금을 대폭 인상하며 방아쇠를 당깁니다. 동시에 조지 소로스의 헤지펀드가 은 매도에 나섰다는 보도가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었죠. 은값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고, 은 선물 시장에선 마진콜 폭탄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추가 증거금을 감당 못한 투기 세력의 청산이 이어졌고요. 5거래일 만에 은값은 30%나 폭락했죠.그럼 당시 투자자들은 ‘역시 은은 악마의 금속이야!’라며 바로 손 털고 은 시장을 떠났을까요? 아니, 그 반대였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달러 약세라는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며 “저가 매수 기회”를 외치는 전문가들이 많았죠. ETF와 달리 실물 은의 가치는 여전하다며 은괴를 사모으는 이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해 말 은 가격은 20달러대로 떨어졌고요. 이후 무려 14년 동안 40달러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1980년과 2011년, 그리고 2026년. 은 가격 폭등과 폭락의 패턴이 상당히 비슷하지 않나요? ‘달러가치 하락 우려→안전자산 쏠림→투기 세력의 레버리지 투자→은값의 가파른 폭등→투기 광풍’이 펼쳐지고요. 이어서 ‘거래소의 규제 강화→은값 하락→마진콜 도미노→강제청산 행렬→은값 폭락’이 벌어집니다. 몇 달 만에 은값이 몇 배로 뛰고, 단 며칠 만에 은값이 3분의 1토막 난 것도 비슷하죠.다만 현재(2월 3일 기준) 은값은 다시 반등해 10% 넘게 뛰었습니다. 개미투자자들이 몰린 레딧엔 “지금이 매수 적기”라며 투자를 독려하는 글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죠. ‘이번엔 다르다’라는 말, 얼마나 믿을 만할까요. 결말은 알 수 없지만 왠지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 청소년을 중독에 빠지게 만들고 있나요?소셜미디어 기업은 일부러 중독을 조장하고 있을까요?만약 그렇다면 소셜미디어는 담배처럼 위험한 제품으로 규제해야 할까요?오랫동안 제기된 이 질문들에 대해 이제 법적 판단이 나올 때가 됐습니다. 미국에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상대로 제기된 수천 건 소송 중 첫 번째 소송에 대한 재판이 이번 주에 시작됐죠. 만약 기업 측이 패소한다면, 그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재판인데요. 결과 예측은 그리 쉽지 않네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의 소셜미디어 소송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인스타가 날 망쳤어!우울증과 자살충동, 자해, 신체이형증(외모 결점 집착)에 시달리는 19살 미국 여성 KGM(가명). 그가 어머니와 함께 제기한 소송이 1월 27일 로스앤젤레스 법원에서 시작됐습니다. 피고는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와 구글(유튜브). 소셜미디어 플랫폼 운영 기업들이죠.원고는 메타와 구글의 플랫폼 설계 방식 탓에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소셜미디어에 중독됐다고 주장합니다. 무한스크롤과 자동재생, 추천알고리즘, 푸시 알림 기능 등을 문제 삼았죠. 기업이 야기한 중독으로 인해 정신건강이 악화됐으니, 책임지고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낸 겁니다.이와 비슷한 개인 상해 소송, 미국에선 캘리포니아 주법원에만 약 3000건, 연방 법원엔 약 2000건 제기돼 있습니다. 그중 맨 처음 재판에 회부된 게 이 KGM 사건이죠. 그만큼 획기적인 재판입니다. 만약 소셜미디어 기업이 여기서 패소한다면? 엄청난 손해배상에 직면하는 건 물론이고, 플랫폼 설계와 알고리즘을 싹 바꿔야 하겠죠.바로 그 점에서 이 소송은 1990년대 미국 담배소송과 비교되곤 합니다. 당시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알고도 이를 은폐한 게 결국 드러났고요. 1998년 2060억 달러(당시 기준 약 200조원)라는 천문학적 배상금에 합의해야 했죠. 동시에 이전까진 ‘기호식품’쯤으로 여겨졌던 담배가 이를 계기로 ‘사회적 유해물질’로 취급되기 시작했습니다.그럼 과연 소셜미디어에 대해서도 담배처럼 유해성과 중독성이 있는 해로운 제품이란 법의 판단이 내려질 수 있을까요?일단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소송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번 소송의 결과가 나머지 수천 건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당초 피고로 함께 지목됐던 스냅(스냅챗)과 바이트댄스(틱톡)는 첫 재판 직전 원고와 극적으로 합의하고 법정공방을 피했고요. 결국 메타와 구글만 남아 법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아마 이번 재판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가 직접 증인석에 서게 될 텐데요. 메타 측은 자사 제품이 원고의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할 거라고 밝혔죠. 또 구글 측은 “유튜브는 인스타그램·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플랫폼”이라며(소셜미디어가 아닌 ‘콘텐츠 배포 플랫폼’이란 주장), 함께 묶어서 취급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펼칠 예정입니다.중독적 설계 vs. 표현의 자유소셜미디어를 통한 따돌림과 언어폭력, 가짜뉴스 같은 각종 사회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강력한 방패로 이런 이슈를 모두 방어해왔습니다. 바로 1996년 제정된 미국의 ‘통신법 제230조’인데요. 사용자(제3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기업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내용이죠.203조는 사실상 플랫폼 기업을 위한 면책특권이 됐습니다. 별별 이상한 게시물이 올라오고, 그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졌지만 플랫폼 기업은 법적으로 책임지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 KGM 소송은 그 빈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사용자의 ‘게시물 내용’이 아니라 기업의 ‘플랫폼 설계(Design)’ 자체가 정신건강 악화의 원인이라며 플랫폼 기업을 정조준한 거죠. 클릭하지 않아도 추천 영상이 계속 재생되는 자동재생, 스크롤을 내리면 새로운 콘텐츠가 끝없이 나오는 무한스크롤, 도파민을 자극하는 추천 알고리즘. 이런 설계방식이 모두 사용자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광고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플랫폼 기업의 전략이란 비판은 이전부터 많았죠.이 중 무한스크롤은 2006년 미국 프로그래머 아자 라스킨(Aza Raskin)이 발명한 기능인데요. 이는 사용자 경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짧은 영상을 계속 넘겨가며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적, 아마 한 번쯤 있을 거예요. 라스킨은 훗날 무한스크롤이 매일 약 20만명의 인생에 해당하는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고 추정하며 후회했습니다. “무한 스크롤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사용 편의성을 최적화하는 것이 사용자나 인류 전체에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단 점입니다.”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쟁점. 어쩌면 플랫폼 기업도 이걸 다 알면서도 고의로 청소년의 중독을 야기하는 유해한 제품을 설계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의 핵심 주장인데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한 증거자료가 이미 공개돼 있습니다. 주로 플랫폼 기업의 내부 문서·이메일·녹취록인데, 꽤 놀라운 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우리가 최적화해야 할 것 중 하나는 화학 수업 중 책상 밑에서 몰래 휴대폰을 보는 거예요 :)” (2015년 2월 메타 내부 이메일)“마크는 2017년 상반기 회사 최우선 과제를 10대 청소년으로 정했습니다.” (2016년 메타 내부 이메일)“세상에, 인스타그램은 진짜 마약이야!” “하하, 모든 소셜미디어가 다 그렇지. 우린 사실상 마약상이나 마찬가지야”(2020년 9월 메타 연구원간 메시지 대화)“결론: 자동재생은 수면 패턴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음.” (2018년 2월 유튜브 내부 문서)“어린이들을 구글 생태계에 편입시키면 평생에 걸쳐 브랜드 신뢰와 충성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2020년 11월 구글 내부 자료)“쇼츠는 10대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핵심 콘텐츠입니다. 10대 고객 맞춤형 콘텐츠 제작을 위해 핵심경험 전반에 걸쳐 10대 중심 접근 방식을 도입했습니다.”(2023년 2월 구글 내부 이메일)물론 이런 자료를 들이민다고 기업 측이 순순히 인정할리는 없죠. 메타 측은 이를 두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별된 인용문”이라고 반발하고 있고요. 플랫폼 설계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로 맞설 거라고 합니다. 마치 신문사가 어떤 기사를 지면에 실을지 결정하듯이, 플랫폼 기업 역시 추천 알고리즘이나 무한 스크롤 같은 디자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논리이죠. 인과관계가 너무 약한데?역시 플랫폼이 소셜미디어 중독을 조장 내지 방치하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고요? 나쁜 기업들을 혼내줘야 한다고요? 그런데 이 소송에선 또 다른 쟁점이 있습니다. 과연 소셜미디어 이용이 원고(KGM)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킨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부분이죠.소셜미디어 중독이 청소년의 우울·불안·불면 같은 정신건강과 관련 있다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요? 물론 그런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긴 한데요. 놀랍게도 이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도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지난해 OECD는 아동·청소년의 디지털기기 이용과 관련한 전 세계적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고서(‘디지털 시대 아이들의 삶은 어떨까요’)를 발간했는데요. 그 중 소셜미디어 관련한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습니다.“전 세계적 과학 문헌에 따르면 디지털 자원 사용, 스크린 시간과 아동·청소년의 행복 사이엔 단일하고 선형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는 디지털 기술 접근성이 정신건강 추세의 주요 원인이란 주장을 명확하게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연구 결과는 인과관계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는 상관관계 데이터에 기반합니다. 이러한 연관성은 종종 작고, 다른 개인적·가족적 상황과 유사한 수준입니다.”아니, 이게 무슨 상식에 어긋나는 소리냐고요? 일단 최근 호주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를 한번 보시죠. 청소년(4~12학년) 10만명을 3년간 추적 조사했는데요. 소셜미디어 사용량에 따라 청소년의 행복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한 결과 역U자형을 보였습니다. 즉, 소셜미디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도. 또 소셜미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행복감이 낮아진 거죠.왜? 소셜미디어를 아예 이용하지 않는다는 건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있단 뜻이니까요. 결국 적당한 소셜미디어 사용이 청소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게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사회적 연결이란 긍정적 측면이 중독의 위험성과 공존하는 거죠. 참고로 이 ‘역U자형’ 연관성은 이전 비슷한 연구에서도 한결같이 나왔던 결론입니다.그리고 설사 소셜미디어 이용과 청소년의 우울·불안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해도, 그걸 인과관계로 볼 순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앤드류 프르지빌스키 옥스퍼드대 교수의 유명한 연구(미국·영국의 청소년 30만명 조사, 2019년)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은 청소년 행복 변동의 최대 0.4%만 설명합니다. 프르지빌스키 교수는 이렇게 말했죠. “감자를 식단에 포함하는 것이 청소년의 행복에 대해 (디지털 기술과) 비슷한 (부정적인) 연관성을 보입니다. 시력교정 렌즈 착용은 (디지털 기술보다) 오히려 더 부정적인 연관성을 보였고요.”그래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사설을 통해 이렇게 비판했어요. “바로 이런 이유(인과관계 부족)로 이 소송(소셜미디어 소송)들은 법정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소송은 결국 큰돈을 벌려는 변호사들 외엔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을 겁니다.”어떤가요. 너무 실망스러운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법원은 아직도 흡연과 폐암과의 인과관계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에서 담배회사 손을 들어줬는데요. 식습관이나 가족력 같은 다른 요인으로 발병했을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죠. 그만큼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법적으로 입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그리고 돌이켜보면 미국에서도 담배 소송에서 원고 측이 승리하기까지 40년 넘게 걸렸습니다. 1954년부터 제기된 약 800건의 개인 소송에서 담배회사들은 모두 승리했었죠.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내부 고발자의 폭로(기업이 담배의 위험성을 숨기고 니코틴 수치를 조작했다는 내용)가 나왔고요. 46개 주정부의 집단소송 제기로 기업의 방어논리(‘흡연은 개인의 선택’)가 무너지면서, 결국 담배회사는 항복했습니다.이제 막 시작된 소셜미디어 소송도 앞으로 갈길이 멀겠죠. 어쩌면 소송을 제기한 개인은 백전백패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질 거고, 어쩌면 새로운 진실도 드러나겠죠. 그게 조금이나마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을 줄이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지난해 12월 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했습니다. 이집트, 영국,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규제가 논의되고 있는데요.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상당히 뜨겁더군요. 올 한해 전 세계가 관심 가질 만한 이슈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미국에서 획기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19살 여성이 소셜미디어 기업을 상대로 자신의 정신건강 악화를 책임지라며 낸 소송이죠. 자동재생, 무한스크롤 같은 플랫폼의 설계가 소셜미디어 중독을 야기했다는 주장입니다. -지금까지 공개된 플랫폼 기업의 내부 자료는 다소 충격적입니다. “인스타그램은 마약이야” 같은 내부 대화 내용도 공개됐죠. 하지만 기업 측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맞설 예정입니다. -문제는 과학적으로 소셜미디어 이용과 정신건강 사이의 인과관계가 아직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껏해야 미미한 연관성만 있다는 게 현재까지의 결론이죠. “변호사만 돈 벌게 하는 소송”이란 비판도 나오는데요. 이 역사적 소송이 돈 낭비, 시간 낭비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이 기사는 1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주목하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바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이죠. 높은 지지율(78%)을 믿고 중의원 해산(1월 23일)과 조기 총선(2월 8일)이란 정치적 도박에 나선 다카이치 총리. 그가 선거 승리를 위한 필살기로 ‘소비세 감면’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입니다.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채권시장은 거의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4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가 한때 4%대로 폭등했을 정도였죠. 왜 금융시장은 이렇게까지 화들짝 놀랐을까요. 오늘은 일본 소비세 감면과 나비효과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여야 한목소리로 식품 소비세 0%“식품 소비세율 제로는 ‘나 자신의 비원(悲願, 간절한 염원)’이기도 합니다.”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렇게 말했죠. 현재 8%인 식품 소비세율을 2년간 전액 감면하는 방안을 자민당의 총선 공약으로 삼겠다며 한 발언입니다.그동안 소비세 감면은 일본 야당의 전매특허 공약이었죠. 이와 달리, 자민당은 ‘소비세는 사회보장 지출의 중요한 재원’이라며 감세만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요. 이번 조기 총선 선언과 함께 다카이치 총리가 입장을 뒤바꾼 겁니다. 이제 여야 할 것 없이 일본 정치권 모두가 ‘소비세 감면’을 약속하죠.이런 입장 변화, 당연히 표 때문입니다. 요즘 일본인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단연 물가인데요.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30년 동안 잠잠했던 물가가 2022년을 기점으로 무섭게 뛰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식료품 가격이 물가 상승을 견인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195개 제조사가 2만개 넘는 식음료 품목 가격을 인상했고요. 평균 가격 인상률은 15%에 달했죠. 장 보러 가기 무섭다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그래서 식음료 제품(채소, 육류, 가공식품, 포장음식)에 8%가 붙는 소비세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공약은 소비자들에게 상당히 위안이 됩니다. 최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한 노인은 소비세가 감면된다면 그 돈으로 “평소 사지 않는 귤을 살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죠. 소소하지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올 거라 기대하는 건데요. 4인 가구는 식료품 소비세가 0이 되면 연간 평균 6만727엔(약 56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옵니다.문제는 그만큼 재정엔 구멍이 생긴다는 점이죠. 식료품 소비세를 제로화하면 연간 5조엔(46조원) 세수가 사라집니다. 물론 공약대로 ‘2년간 한시적’ 감세라면 그리 큰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일본에서 소비세 인상은 정치적 ‘오니몬(鬼門, 악령이 들어오는 입구)’으로 불립니다. 1970년대부터 소비세 도입 또는 인상을 시도한 정권은 줄줄이 선거에서 패했어요. 심지어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두 차례나 연기한 끝에 간신히 2019년 일반소비세를 8%에서 10%로 올릴 수 있었죠. 그런데 이걸 감면했다가 2년 뒤 원상복귀한다? 어떤 간 큰 정치인이 감히 그걸 하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시행되면 원래 세율로 되돌리긴 거의 불가능하다”(다이이치생명연구소 구마노 히데오 이코노미스트)라고 모든 전문가가 얘기하는 거죠.그런데 이 5조엔의 구멍을 메울 다른 세수 확보 방안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상황. 오히려 다카이치 총리는 “과도한 긴축재정의 종식”과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약속했습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혹시 빚을 더 내겠다(국채 발행)는 얘기를 돌려 말한 걸까요? 일본 정부부채가 이미 1324조 엔, GDP의 240%인데, 여기서 더?채권시장엔 빨간불이 켜졌고요. 20일 일본 국채 수익률은 역대급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10년, 2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999년 이후 2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요. 40년 만기 국채(2007년 처음 발행)는 사상 처음 4%를 넘어섰습니다. 시장이 일본 국채 가격 폭락에 베팅한 셈이었죠. 채권 시장이 일본의 부채 증가에 대한 경고음을 울린 겁니다.일본이 그리스 꼴 나지 않는 이유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5년 1분기 기준 47.2%. 사상 최고로 치솟아서 걱정스럽다는 기사가 많았는데요. 그런데 일본은 이 수치가 무려 240%(2024년 기준)입니다. 이탈리아(134.6%), 미국(119%), 프랑스(109.7%) 같은 빚 많기로 소문난 선진국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르죠. 거품 붕괴 이후 펼친 경기 부양책+초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 지출 증가가 나은 결과입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예산의 4분의 1을 빚 갚는 데 쓰고 있습니다.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지난해 5월 다카이치 총리의 전임자인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이렇게 말했죠. “일본의 재정 상황은 매우 열악하며, 그리스보다도 더 나쁩니다.” 2009년 재정 파탄에 빠졌을 당시 그리스 정부부채 비율이 130%이었으니, 틀린 얘기가 아니죠.그런데 이시바 총리의 이 얘기에 코웃음 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굳이 그리스를 거론한 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다거나 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건데요. 적어도 일본은 그럴 위험은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즉, 빚이 아무리 많아도 일본 정부가 그걸 못 갚는 일은 아마 생기지 않을 거예요.왜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본은 국채 대부분을 엔화로 발행합니다. 달러나 유로화가 아니라요. 만약 엔화로 발행한 국채 만기가 돌아와서 상환해야 하는데, 정부가 갚을 돈이 없다? 정부가 일본은행을 동원해 엔화를 찍어내면 됩니다. 생각해 보면 1997년 대한민국이 국가 부도 위기에 빠졌던 건 단기로 달러 빚을 잔뜩 냈는데 외환보유고가 텅 비었기 때문이었잖아요. 그런 일은 일본엔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그리고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합니다. 2002년 일본 재무성은 국제 신용평가사에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죠. “일본과 미국 같은 선진국이 자국 통화로 발행한 국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은 디폴트에 빠질 위험도 없는데, 왜 굳이 힘들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긴축 재정을 해야 하는 거죠?이게 바로 전형적인 소비세 감세론자들의 논리인데요. ‘부담스럽고 싫은 소비세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소비세가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을 심화시켰다. 소비세를 없애면 가처분소득이 늘고, 그만큼 소비가 증가해서 경기가 활성화될 거다’라는 식의 주장입니다.‘소비세 감세 일본 부활론’이란 책을 쓴 후지이 사토시 교토대 공대 교수 같은 이가 대표적인데요. 의외로 이 논리에 열광하는 일본인이 많습니다. 이들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소비세가 필요하다는 재무성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소비세 폐지를 주장하죠.그래도 걱정스러운 시나리오이론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는 국채 디폴트 위험이 없고요. 아마도 엔화 표시 채권을 영원히 발행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일본 국채는 대부분(88%) 국내 투자자가 보유 중이고, 특히 46%는 일본은행이 사들였거든요. 만약 국채를 정 사줄 곳이 없다면, 일본은행이 돈을 찍어내서 국채를 사들이는 방법이 있습니다.아니 그럼, 부채비율 따윈 아예 잊고 계속 이렇게 세금 감면과 확장 재정에 나서도 되는 걸까요?그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런 일(단순히 돈을 찍어내서 국채를 사들이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금융시장이 눈치채는 순간, 엔화 가치가 추락할 테니까요. 디폴트는 없겠지만, 대신 통화위기가 발생할 겁니다. 환율이 치솟고, 에너지·식료품 같은 필수품을 포함한 수입 물가가 급등하겠죠. 해외에 투자해 둔 소수의 부자를 제외한 평범한 일본인들이 먹고살기는 한층 팍팍해질 겁니다. 일본이 가난해지는 거죠. 무엇보다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질 거고요.너무 극단적인가요? 다른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만약 빚이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부채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거죠. 이자를 깎거나, 만기를 연장하거나, 원금을 탕감해 버리는 식으로요.문제는 일본의 경우 이 부담을 지게 될 채권자 대부분이 일본 국민이란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쉬울 수도 있지만(국민이 희생을 감수해 줄 테니까), 동시에 그래서 더 고통스럽습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아니라 일본 국민이 국가를 믿고 모아둔 자산이 잘려 나가게 되니까요.물론 일본 정부는 이런 최악의 상황에 부닥치기 전에 펼칠 든든한 구명정이 있습니다. 정부가 보유한 막대한 금융자산이 그것이죠. 외화보유액만 1조3698억 달러가 있는 데다, 공적연금 적립금과 공기업 주식도 쌓여있습니다. 그래서 로빈 브룩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런 자산을 매각해서 얻은 수익으로 과도한 부채를 상환하는 것”만이 일본이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방법이라고 주장하는데요.하지만 배가 침몰하고 있지 않은 데, 왜 굳이 미리 구명정을 펼치겠어요?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지면 그때야 뒤늦게 움직이겠죠.다카이치의 감세 공약을 두고 일본경제신문은 사설을 통해 ‘소비세 감세 포퓰리즘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은 이미 그 길로 접어들었죠. 전 세계 금융시장은 앞으로 일본을 더 예의주시하게 될 겁니다. By.딥다이브1977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10%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1989년에야 소비세를 도입했죠. 그것도 처음엔 3%로 시작해 무려 3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했는데요. 일본의 소비세 인상 과정은 참 험난했지만, 인하되는 건 한순간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을 선언하면서 ‘식품 소비세 제로’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2년간 한시적 감세라고 말하지만,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보는 사람은 없죠. 연간 5조엔의 세수 구멍이 생깁니다.-이 소식에 일본 국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채권시장이 요동쳤습니다. 이미 정부부채 비율이 GDP의 240%나 되는 일본의 재정 규율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걱정 때문이죠. -일본은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적어도 디폴트 위험은 없는 나라입니다. 투자자 대부분이 일본인(또는 기관)이란 점도 안전한 이유로 꼽히죠. 하지만 재정위기 대신 통화위기가 발생해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인플레이션이 닥칠 위험은 있습니다. 세계 금융시장이 일본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유이죠.*이 기사는 1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세계 최고 가치의 비상장기업이 역사상 최대 기업공개(IPO)에 조만간 나설까요. 요즘 글로벌 투자업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스페이스X 얘기죠.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올 하반기 IPO에 나설 거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데요.‘이건 대박이야. 투자해야 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잠깐만. 정말 그만한 가치 있는 거 맞아?’라는 신중론도 나옵니다. 어찌 됐든 현실화한다면 올해 열릴 올림픽·월드컵 못지않은 이벤트가 될 건 틀림없는 스페이스X IPO를 미리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머스크 생각이 바뀌었나?2002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 ‘재사용 가능한 로켓’으로 우주 진입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우주여행에 혁명을 일으킨 기업이죠. 저궤도에 1만개 넘는 위성을 쏘아 올린 ‘스타링크’를 통해 전 세계 위성통신 서비스 시장을 장악했고요. 현재로선 맞설 만한 경쟁자를 찾기 어려운 글로벌 최대 우주기업입니다.비상장기업인 스페이스X는 지난해 말 비상장 주식거래에서 무려 8000억 달러(약 118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어요. 오픈AI(5000억 달러 기업가치)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비상장기업으로 올라섰죠.그리고 이 스페이스X가 올해 하반기 중 IPO를 추진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주주들에게 IPO 계획을 공유한 스페이스X는 현재 여러 은행과 면담을 진행 중이라는데요. 일론 머스크가 관련된 X 게시물에 ‘정확하다(Accurate)’라는 답글을 남기기도 했죠. 회사의 공식 발표는 아직 없지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IPO에서 최대 1조5000억 달러(2217조원)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해서, 300억 달러(44조원)를 조달할 거라고 합니다. 만약 이대로 된다면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기록(290억 달러 조달)을 깨는 거죠.엄청난 규모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일론 머스크의 생각이 바뀌었단 점이죠. 머스크는 설립 초기부터 스페이스X를 비상장회사로 유지하겠다고 거듭 밝혀왔어요. 화성의 식민지화, 즉 ‘행성 간 이동’이라는 스페이스X의 사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는데요.그는 2013년 스페이스X 직원들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화성 수송시스템이 완성되기 전에 스페이스X가 IPO 하는 것을 우려합니다. 화성에 생명체를 정착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게 스페이스X의 근본적인 목표입니다. 만약 상장이 그 목표 달성을 저해한다면, 상장을 미뤄야 합니다.” 일단 상장을 하고 나면 장기 목표보단 단기 이윤과 주가 흐름에 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피하고 싶어 한 거죠.무엇보다 스페이스X는 당장 돈이 급한 상황은 아닙니다. 스페이스X는 예상 매출이 2025년 155억 달러(23조원)에서 2026년 220억~240억 달러(32조~34조원)로 가파르게 성장 중이고요. 공개된 수치는 없지만 이미 흑자를 기록 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스타링크 가입자 수가 1년 만에 2배로(450만→900만명) 늘어나며, 성장세를 이끌고 있죠.그럼, 왜 머스크는 이 시점에 IPO에 관심 갖게 됐을까요. 이에 대한 회사 안팎의 설명은 이겁니다. AI(인공지능)의 부상으로 스페이스X의 계획이 일부 바뀌었다는 거죠.우주 데이터센터를 누가 만들까AI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러 국가와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금을 데이터센터 건설에 쏟아붓고 있죠. 그런데 그 많은 데이터센터가 쓸 전력은? 물은? 토지는? 인허가는? 지구상엔 제약이 너무나 많은데요.이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을 창의적 아이디어가 바로 ‘우주 데이터센터’입니다. 말 그대로 AI 칩을 탑재한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에 띄워서 데이터센터로 쓰는 거죠(토지 제로). 그럼 태양광패널을 통해 24시간 내내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고요(전기요금 제로). 이웃 주민들이 건설에 반대하고 나설 걱정도 없습니다(민원 제로). 또 위성의 그늘진 쪽에 방열판을 설치하면 칩에서 발생하는 열을 영하 250도의 우주 공간으로 방출할 수 있죠(물 이용 제로). 지상에서 데이터센터 설립을 허가받고, 건설하고, 전력 연결하는 데 몇 년이 드는 걸 생각하면 건설 기간도 절약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그리고 이 공상과학 같은 구상에 따라붙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현실적인 질문은 이거죠. 발사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경제성이 있을 정도로 싸게, 빨리, 많이 위성을 궤도에 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우주 데이터센터 사업엔 여러 스타트업뿐 아니라 구글과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같은 기업도 이미 뛰어들었는데요. 위성을 빨리 대량으로 쏘아 올릴 능력이 이미 입증된 기업은 사실상 전 세계에 한 곳밖에 없죠. 바로 스페이스X입니다.스페이스X는 이미 팰컨9으로 과거 ㎏당 6만5000달러에 달하던 저궤도 발사 비용을 1500달러(220만원) 이하로 낮춘 바 있고요. 지금은 팰컨9보다도 적재량이 6.5배 많은(150t) 초대형 로켓 스타십을 개발 중입니다. 이 스타십이 상용화된다면 발사 비용은 ㎏당 100달러까지 극적으로 떨어질 전망이죠. 스타십은 지난해까지 11차 시험비행을 했고, 올해 1분기 중 12차 시험비행을 앞두고 있는데요.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11월 X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스타십은 연간 약 300GW, 어쩌면 500GW에 달하는 태양광 발전 AI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간’이란 거죠. 미국의 평균 전력 소비량이 약 500GW인데, 우주 AI는 2년마다 정보 처리량만으로도 이를 넘어섭니다.”머스크 특유의 과장 어법을 생각하면 300GW 같은 수치가 근거가 있는지는 솔직히 따져봐야 하겠지만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이겁니다. 스페이스X가 IPO로 방향을 튼 건 결국 AI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는 걸요.스페이스X 출신으로 UC버클리 우주과학연구소 운영 책임자인 아비 트리파티는 기술 전문 매체 아르스(Ars)와의 인터뷰에서 머스크가 스타링크 위성을 분산형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게 결정적 전환점이라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던 IPO가 갑자기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순간이었어요. AI 경쟁의 핵심은 경쟁사보다 빠르게 자산을 축적하고 배포하는 데 있죠. IPO로 확보할 막대한 자금은 머스크의 목표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머스크는 이미 테슬라(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와 xAI(생성형 AI)를 통해 치열한 AI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스페이스X의 우주 데이터센터를 통해 AI 인프라 구축에서까지 앞서 나아가려는 겁니다. 화성으로 가기 전에 일단 지구의 AI부터 정복하겠단 뜻이죠.그래서 투자해도 되나요?AI와 우주, 두 핫한 주제의 결합이라니. 시장을 열광하는 분위기입니다. 아직 상장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해야 스페이스X에 투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죠. 그 결과 스페이스X에 일찌감치 투자해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예: 미래에셋증권) 주가가 뛰었고요. 스페이스X를 보유종목으로 두고 있는 해외 ETF(예: Destiny Tech100)가 주목받기도 했죠. 그럼 따져봅시다. 스페이스X, 투자할 만할까요?스페이스X가 우주산업, 특히 발사 분야에선 10년 이상 앞서 있는 선두 주자라는 점이야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요. 문제는 가치 평가가 적정하냐+도사리고 있는 리스크 요인은 무엇이냐는 점이겠죠.그런 점에서 IPO 전문가인 플로리다대 워링턴 경영대학의 제이 리터 교수가 기술 매체 기즈모도를 통해 지적한 점을 참고할 만합니다. 스페이스X의 2026년 예상 매출은 240억 달러, 목표로 하는 기업가치는 1조5000억 달러이죠. 주가매출비율(PSR, 시가총액÷매출)을 계산하면 62.5배입니다. 매출 1달러당 주가가 62.5달러라는 뜻인데요.리터 교수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PSR이 40배를 넘는 공모주는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1980~2021년 미국 상장 기업 중 연 매출이 1억 달러 이상이면서 PSR(공모가 기준)이 40을 넘는 기업은 단 13개뿐이었는데요. 이 기업을 공모가로 매수한 투자자의 첫 3년 투자 수익률은 시장 평균보다 38%나 낮았다고 하죠.그래서 그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회사가 매출과 이익을 빠르게 성장시켜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주가가 상장 첫날엔 공모가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지만, 장중 매수했다면 손실로 이어질 수 있죠. 스페이스X는 훌륭한 회사일 수 있지만, 훌륭한 회사라고 해서 반드시 주식 투자에 좋은 건 아닙니다.”사실 1조5000억 달러라는 목표 가치엔 일론 머스크의 야심 찬 계획-스타십 개발 성공, 스타링크 사업 확장, 우주 데이터센터 개척-이 모두 성공할 거란 가정이 담겨있죠. 하지만 지난해 스타십 시험비행은 5번 중 마지막 두 번만 성공했고요. 업그레이드된 V3 발사체의 시험비행은 아직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기대치를 충족하는 완벽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는 거죠.그리고 여전히 정말 머스크가 스페이스X IPO에 나설지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애초에 IPO를 망설였던 대로, 스페이스X가 증시 변동성에 휘둘리고 자신의 통제력이 줄어드는 걸 머스크가 원할 리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벤처 투자자 차마트 팔리하피티야는 최근 이렇게 추측합니다. “저는 스페이스X가 IPO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테슬라에 역합병될 거라고 보죠.”역시 빅이벤트답게 벌써부터 갖가지 예측이 나오는데요.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될지 한번 지켜보시죠. By.딥다이브기술기업의 AI 경쟁이 이제 우주까지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이 경쟁의 끝엔 도대체 뭐가 있을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올해 증시의 빅이벤트가 예고됐습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스페이스X가 하반기쯤 IPO를 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현재 기업가치만 8000억 달러. 상장 시 목표 시총은 최대 1조5000억 달러가 될 거라는군요.-화성 가기 전까진 IPO는 없다던 일론 머스크의 생각을 바꾼 건 우주 데이터센터 건설 구상입니다. 인공위성에 AI칩을 달아서 태양광패널과 함께 궤도에 띄우면 전력 공급 걱정 없는 데이터센터가 되는 거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관건은 발사 비용. 스타십 V3 시험비행을 앞둔 스페이스X가 가장 앞서있음엔 틀림없습니다.-벌써 관련주 주가가 들썩거립니다. 하지만 1조5000억 달러이면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나오죠. 무엇보다 일론 머스크가 변덕을 부릴 수 있단 추측도 나옵니다. *이 기사는 1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를 아시나요? 일반 주식계좌를 이용해 비트코인에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ETF인데요. 이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 증시에 처음 상장된 게 바로 2년 전인 2024년 1월 11일이었죠.비트코인 현물 ETF의 등장으로 가상자산 시장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됩니다. 개인뿐 아니라 기관투자자까지 끌어들이면서 가상자산이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거죠.여러 비트코인 현물 ETF 중에서도 시장을 평정한 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아이쉐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 인데요. 이 IBIT 출시의 주역인 케빈 탕(Kevin Tang)을 지난 14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블랙록 출신 비트코인 ETF 전문가가 말하는 가상자산 시장의 전망을 확인해보시죠.*이 기사는 1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래리 핑크가 생각을 바꾼 이유-블랙록에서 10년 넘게 일하셨죠. 어떻게 가상자산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됐나요?“2016~2017년쯤 블랙록 리서치팀 동료를 통해 이더리움을 알게 됐는데, 당시 이더리움이 딱 2달러였던 때였죠(현재는 3300달러). 조금씩 사면서 연구하다가 ‘토끼굴’에 빠지고 말았어요. 이건 정말 엄청난 기술이 될 거란 확신이 생겼죠. 그러다 (2019년 말) 블랙록에서 크립토(가상자산) 팀이 꾸려질 때 지원했고, 창립 멤버 3명 중 하나가 됐어요. 지난 5년 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iShares Bitcoin Trust ETF, IBIT)와 이더리움 현물 ETF(iShares Ethereum Trust ETF, ETHA), 그리고 이더리움 기반 토큰화 펀드 ‘비들(BUIDL)’을 만들어 출시했습니다.”-블랙록 회장 래리 핑크는 과거 유명한 크립토 회의론자였잖아요. 그는 2017년엔 비트코인을 ‘돈세탁의 지표’라고도 불렀는데요.“맞아요. 그런데 최근 인터뷰에서 본인이 틀렸었다고 인정했어요. 공부가 많이 필요했다면서요. 냉정히 말해 지난 10년간 크립토 산업 자체가 비약적인 성숙과 진화를 거듭했어요. 비트코인 ETF 출시까지 오래 걸린 것도 2017~18년 당시에는 파트너사들이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에요. 2023~24년쯤에야 시스템 수준이 블랙록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할 만큼 진화했죠. 긴 여정이었고, 래리도 초기에 본인이 틀렸음을 인정한 거죠.”-2022년 11월 가상자산 거래소 FTX 파산사태가 있었죠. 그 하락장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확신을 가진 이유가 뭘까요?“블랙록도 FTX에 투자했었고 큰 손실을 봤죠. 그래도 저희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자산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이 있었어요. 이더리움은 그 위에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을 올릴 수 있는 인터넷 같은 기초 기술이 될 거라 봤고요. FTX 사태, 루나-테라 사건 같은 온갖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이건 산업 내의 ‘소음’일 뿐이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확신했죠.”-블랙록은 언제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최종 결정했나요?“2023년이었어요. 그해 말 신청서를 제출해, 2024년 1월에 승인을 받아 출시했죠.”-불과 2년 전이네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입장에선 미국 최초의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한다는 건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인데요. 어떻게 경영진을 설득했죠?“첫 번째는 고객들의 꾸준한 관심이 있었어요. 스캔들과 급격한 가격 변동 속에서도 정말 똑똑한 투자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거든요. 궁극적으로 블랙록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회사이니까요.그렇다고 해서 아무 ETF나 출시하진 않아요. 해당 자산이 안전하고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가치가 있는지 분석하죠. 저희는 가격 변동성뿐 아니라 비트코인 자체의 가치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요. 경영진도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이나 지정학적 불안정 속에서 금과 유사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했어요.”비트코인 ETF, 어디까지 커질까-2024년 1월 IBIT는 출시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죠. 그렇게까지 잘 될 줄 예상했나요.“IBIT는 ‘역사상 가장 빠르게 자산규모(AUM) 1000억 달러를 달성한 ETF’가 됐죠. 사실 그 정도로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어요. 저희가 세웠던 가장 낙관적인 기대치마저 뛰어넘었죠. 내부적으로 1년 안에 운용 자산 200억 달러를 예상했는데, 정점에서 1000억 달러까지 갔으니까요. ETF라는 방식이 개인과 기관 모두에게 얼마나 강력하고 매력적인 도구인지 다시 한번 증명해준 사례입니다. 비트코인을 직접 코인거래소에서 살 수도 있지만, 많은 고객이 여러 이유로 ETF를 선택했으니까요.”-사람들이 코인거래소에서 직접 비트코인을 사는 대신 블랙록 ETF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요? 더 쉽고 안전해서?“정확히 그게 핵심입니다. 첫 번째는 안전성과 보안이죠. ‘IBIT’에 투자하면 블랙록의 운용 시스템을 이용해요. 마음 편하게 블랙록이라는 브랜드와 회사를 믿고 맡기려는 투자자들이 많았죠.두 번째는 유통망이에요. ETF는 대부분 증권사 플랫폼에서 거래가 가능하잖아요. 주식·채권과 함께 비트코인까지 포트폴리오에 한꺼번에 담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이 많은데요. 빗썸이나 업비트에 코인 따로, 삼성증권에 주식 따로 넣어두는 것보다 ETF로 한꺼번에 관리하는 게 훨씬 편하죠. 마지막으로 수수료입니다. ETF 수수료가 일반 거래소에서 현물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경우가 많아요.”-규제기관은 어떻게 설득했나요?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왜 결국 승인을 내줬을까요.“그들의 임무는 결국 투자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거잖아요. 규제기관은 비트코인 시장이 조작될까봐, 너무 작거나 너무 변동성이 커서 ETF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봐 걱정했어요. 저희는 비트코인 시장이 ETF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고, 충분히 깊고 유동적인 시장이라는 걸 입증하는 분석자료를 보여줬죠.그리고 SEC도 ETF가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안전한 방법이라는 걸 이해했어요. 만약 비트코인 ETF가 진작 나왔다면, 많은 미국인이 FTX라는 해외 플랫폼(본사는 바하마)에서 그렇게 큰돈을 잃지 않았을 거예요. 안전하고 편리한 국내 옵션이 있다면, 위험한 곳으로 눈을 돌릴 이유가 없으니까요.”-최근 미국 대형은행 모건스탠리가 비트코인 ETF 출시를 신청했더군요. 전통 은행도 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는데요. 이제 크립토가 주류 자산에 편입됐다고 평가해도 될까요?“아직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20%가 어떤 형태로든 가상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데요. 하지만 ‘ETF의 라이프사이클’로 보면 갈 길이 멀어요. ETF의 주요 유통 채널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피델리티·슈왑 등에서 직접 거래하는 개인 투자자, 두 번째는 프라이빗 뱅크(PB) 같은 자산 관리 전문가들, 세 번째는 기관 투자자이죠.개인 투자자 채널은 이미 상당히 성숙했는데요. 두 번째(자산관리)와 세 번째(기관) 채널은 이제 막 시작 단계예요. 아직 많은 자산 관리 플랫폼에서 비트코인 ETF를 완전히 승인하지 않았죠. 기관 투자자들도 실제로 크립토를 도입한 건 5~10%도 안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낙관적이에요. 두 번째, 세 번째 채널에서 성장할 여지가 엄청나게 많으니까요.”요즘 코인시장이 답답하다고?-한국 정부는 올해 안에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에요. 한국 가상자산 시장도 비트코인 ETF 출시 이후 많이 달라질까요.“네, IBIT가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ETF는 더 안전하고 편리하며 수수료도 저렴할 수 있죠. 특히 자산관리 서비스가 내 비트코인을 대신 관리해주길 원한다면, 업비트 같은 거래소 대신 ETF를 선택할 겁니다.무엇보다 ‘포트폴리오 통합’이 중요해요. 한국 금융회사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하면, 한국의 대형 자문 비즈니스에서도 이 ETF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가 훨씬 쉬워질 겁니다. 지금은 업비트 같은 거래소와 기존 자산 관리 플랫폼 간의 연동이 쉽지 않거든요.”-지난해 모든 자산 가격이 다 뛰었는데 가상자산만 홀로 부진했어요. 올해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사장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비트코인은 상당히 잘 해왔어요. 지금은 좀 답답하겠지만 3년 전 투자자들에게 비트코인 가격이 9만 4000달러가 될 거라고 얘기했다면 다들 엄청 기뻐했을 겁니다. 문제는 알트코인이죠. 이전 사이클에선 비트코인이 오른 다음 이더리움, 그 다음 소형 알트코인이 오르는 흐름이 있었는데요. 이번엔 그런 흐름이 나오지 않아서 투자자들이 답답해하는 것 같아요.시장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전 사이클에서는 비트코인에 투자하려면 온체인이나 중앙화된 거래소로 와야 했어요. 하지만 이번 사이클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등장하면서 기존 증권 플랫폼에서도 비트코인 투자가 쉬워졌죠. 그러다 보니 유동성이 알트코인이 아닌 비트코인으로만 몰린 겁니다. 두 번째로 알트코인이 너무 많아졌어요. 시장에 넘쳐나다 보니 유동성이 분산됐고, 알트코인들이 차별성을 갖기가 어려워졌습니다.올해 시장은 변동성이 클 것 같아요. 핵심은 유동성입니다. 금리 인하가 시작되고 연준이 양적 완화 움직임을 보이면 비트코인은 잘 될 거라 예상합니다. 반대로 유동성이 회수되고 통화 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선다면 비트코인엔 좋지 않겠죠.”-미국 SEC가 이더리움 스테이킹(Staking) ETF 출시를 조만간 승인할 것인지에도 관심이 많더라고요. 스테이킹 ETF는 지금의 이더리움 현물 ETF와는 차이가 있는 거죠?“일종의 ‘배당금’ 같은 개념이 있는 거죠. 저는 SEC가 곧 이더리움 ETF의 스테이킹 기능을 승인할 거라고 믿어요. 이건 투자자들에겐 엄청난 호재가 될 거예요. 지금까지 이더리움 현물 ETF의 가장 큰 단점이 스테이킹을 통한 2~3%의 추가 수익 기회를 놓치는 거였거든요.” -비트코인 ETF 시장은 궁극적으로 얼마나 더 커질 수 있을까요?“대형 원자재 시장은 ETF 규모가 전체 시가총액의 5~7% 수준까지 성장하거든요. 비트코인 ETF도 그 정도까지는 충분히 성장할 거고, 더 커질 잠재력도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 투자보다는 ETF를 선호하는 자산 관리사나 기관들이 많아질 겁니다.다만 전체 시총의 7~8%를 넘기긴 힘들 거예요. 왜냐하면 비트코인의 본질적인 장점 중 하나가 ‘자기 수탁(Self-custody)’이 가능하다는 점이거든요. ETF가 아무리 편리해도 비트코인을 진정으로 믿는 투자자라면, 제삼자에게 자산을 맡기기보다 직접 보유하는 방식을 택할 겁니다. 비트코인은 진정으로 탈중앙화된 가치 저장 수단이니까요. ”-글로벌 시총을 찾아보니 비트코인이 현재 8위이더군요. 아마존(7위)보단 낮지만 TSMC와 메타보다는 크더라고요. 이렇게 커진 데는 ETF 출시 영향도 있겠죠?“맞습니다. 비트코인 ETF는 이번 사이클에서 비트코인 대중화의 빗장을 연 아주 결정적인 사건이었어요. 시가총액과 가격 상승에 엄청난 순풍이 되었죠. 특히 ‘IBIT 옵션’ 거래가 활성화된 게 정말 큽니다. 비트코인과 IBIT를 둘러싼 옵션 거래량이 어마어마한데, 이게 다시 ETF의 채택과 유동성을 끌어올리는 ‘플라이휠’ 효과를 내고 있어요.”-이더리움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면, 이더리움은 실생활 유용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는데요. “저는 이더리움의 열성적인 팬이에요. 하지만 블랙록에서 지켜본 바로는, 비트코인의 서사가 훨씬 깔끔하고 명확하죠. 크립토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투자 논리가 훨씬 더 강력하게 다가가거든요. 그래서 비트코인이 유입 자금이나 가격 면에서 이더리움보다 훨씬 앞서 나간 거죠.두 번째로는 이더리움을 둘러싼 ‘소음’이 너무 많아요. 리더십 문제나 수많은 경쟁자의 등장 같은 것들이요. 비트코인은 마땅한 경쟁자가 없지만, 이더리움은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투자자들이 확신을 갖기가 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더리움에 대해 여전히 매우 낙관적입니다. 가장 탈중앙화되고 안전한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s) 플랫폼이니까요. 결국 대형 기관들이나 거대 자본은 가장 안전하고 탈중앙화된 이더리움 생태계로 모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초보자에 맞는 가상자산 투자비율은?-지난해 블랙록을 떠나서, ‘헬로 트레이드(Hello Trade)’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하셨죠.“블랙록에서 크립토 엔지니어링 담당이었던 공동 창업자와 같이 나왔어요. 저희는 크립토 시장의 다음 진화 단계가 원자재·주식·채권 같은 ‘전통 자산의 온체인화’라고 믿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24시간 내내 거래하고, 상호 운용성을 확보하고, 디파이(DeFi)와 연결되는 혜택을 누리는 거죠.그래서 ‘헬로 트레이드’를 만들고 있어요. 전 세계 인터넷이 연결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24시간 내내 주식에 투자하고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죠. 토큰화된 현물 주식부터 퍼프(Perps, 무기한 선물) 같은 파생상품까지 다룹니다. ‘웹 3.0 버전의 로빈후드(‘금융 민주화’를 표방한 미국 온라인 주식 거래 플랫폼)’라고나 할까요. 올해 3월 출시를 목표로 합니다.”-한국에는 미래 고객들을 만나러 온 건가요?“네, 하지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한국 분들에게 출시 첫날부터 서비스를 바로 제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거든요. 한국 법을 준수하면서 한국 개인 투자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이 있는지 법무팀과 꼼꼼히 따져보고 있습니다.”-언젠가는 로빈후드보다 더 커질 수도 있으려나요?“(웃음) 작게 시작했지만 기대는 큽니다. 많은 분이 중앙화 거래소(CEX)의 높은 수수료나 불투명성, 자산 동결 문제 등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어요. 내 자산에 대해 온전한 권한을 갖는 ‘자기 수탁(Self-custody)’ 트렌드는 앞으로 더 강력해질 겁니다.”-본인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선 가장자산 비중이 얼마나 되나요?“20% 정도 됩니다. 좀 높죠? 아무래도 제가 크립토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요. (웃음) 나머지 포트폴리오는 주식, 채권, 원자재를 섞어서 가지고 있어요. 최근엔 금과 은 비중도 꽤 늘렸고요. 저는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과 크립토 관련 주식을 다 합쳐서 20%이지만, 보통 이제 막 입문하시는 분들에게는 5% 정도만 권해 드립니다.”-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어떻게 보세요? 얼마 전만 해도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이라고 했는데, 수익률이 예전만 못하다 보니 관심이 많이 식었는데요.“한국분들은 기술에 정말 능하잖아요. 바로 그 점 때문에 한국인이 블록체인 기술에 매료되는 것 같아요. 저는 결국 가격이 회복되면 한국 투자자 관심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봅니다. 마치 인공지능(AI)처럼 크립토 기술의 잠재력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거든요. 이번에 한국의 패밀리 오피스나 기관 투자자들을 만났는데, 다들 이 시장을 장기적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규제가 정비되면 시장은 더 크게 열리겠죠. 한국 정부가 스테이블 코인을 검토 중인 걸로 아는데, 5~10년 뒤 한국 크립토 산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 있을 겁니다.” By.딥다이브<용어설명>토큰화 펀드=현실 세계의 자산(미국 국채, 현금, 환매조건부채권 등)을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거래할 수 있는 ‘토큰’ 형태로 만든 펀드. 블랙록은 ‘모든 자산은 결국 토큰화될 것’이란 비전에 따라 이더리움 기반 토큰화 펀드인 ‘비들(BUIDL)’을 출시했다.자기 수탁(Self-Custody)=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기관에 자산을 맡기지 않고, 사용자 본인이 자산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 가상자산의 경우 자신이 직접 키를 관리하는 디지털 지갑을 이용해 자기 수탁을 할 수 있다.디파이(DeFi)=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금융회사를 끼지 않고도 인터넷만 열결되면 누구나 예금, 대출, 투자, 보험 같은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스테이킹(Staking)=보유한 가상자산을 블록체인에 예치하고, 그 대가로 추가 코인을 보상받는 것. 은행 예금 이자와 비슷한 개념이다.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s)=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 작동하는 자동화된 계약 시스템. 미리 정해둔 조건이 충족되면, 사람이나 중개인의 개입 없이 계약 내용이 자동으로 실행된다.중앙화 거래소(CEX)=업비트, 빗썸처럼 기업이나 기관이 운영하는 중앙 집중식 플랫폼. 제3자 없이 사용자가 직접 거래하는 탈중앙화 거래소(DEX)와 대비되는 개념이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1300%. 3년 주가 상승률이 엔비디아(1166%)보다도 높은 120년 역사의 제조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 롤스로이스이죠. 비싼 차 롤스로이스가 그렇게나 잘 팔리냐고요? 아니, 이 롤스로이스 기업은 자동차 안 만든 지 꽤 됐고요. 대신 항공· 방산·전력·원자력 같은 지금 가장 잘나가는 분야의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 질주하는 롤스로이스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침몰하던 영국 제조업의 자존심대문자 R 두 개가 겹친 고풍스러운 로고. 최소 가격이 한 대에 5억원이 넘는, 궁극의 럭셔리카 롤스로이스의 상징입니다.그런데 이 자동차 브랜드는 독일 BMW 그룹 소유가 된 지 오랩니다. 1971년 경영난에 처한 롤스로이스를 국유화했던 영국 정부가 이후 자동차 부문을 떼어내 팔았기 때문이죠. 럭셔리카와 똑같은 RR로고를 쓰는 기업인 롤스로이스 홀딩스. 그 핵심사업은 예나 지금이나 항공기용 엔진입니다. 에어버스 A350, 보잉 787 드림라이너 등에 롤스로이스 엔진이 들어가죠.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에 이은 세계 2위 항공기 엔진 제조사인데요.기술력에선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영국 제조업의 자존심’ 같은 기업이었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고질적인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돈을 너무 못 벌고, 빚이 너무 많았죠. 그 원인은 복합적인데요.우선 심각한 관료주의가 큰 문제였습니다. 2015년 FT 기사에 따르면 ‘부품 도면을 조금만 수정하려고 해도 6개월이 걸리고 80명의 서명이 필요’할 정도였다고 하죠. 복잡한 조직구조, 비대한 중간관리층으로 인해 의사결정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습니다.비용 낭비도 심각했어요.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2018년 당시 인사 최고 책임자는 투자자들에게 ‘프랑스 남부에 회사 간판을 하나 설치하기 위해 영국 본사 직원 세 명이 비행기를 타고 갔다’고 털어놨죠. 현지 업체에 시키면 될 일을 말입니다.또 롤스로이스는 항공 엔진 자체는 매우 싸게, 손해를 감수하면서 공급하는 대신, 이후 수십 년 동안 유지보수 서비스인 ‘토탈 케어’를 팔아서 돈을 버는 구조에요. 이때 항공사는 ‘엔진이 비행한 시간’에 비례해 서비스 이용료를 내게 됩니다. 엔진이 지상에 머무는 시간이 짧고, 오랫동안 공중에 떠 있을수록 롤스로이스가 버는 돈이 늘어나는 거죠.그러다 보니 리스크가 있는데요. 만약 엔진에 문제가 생기거나 해서 운항을 못 하면, 매출은 곤두박질치게 되는 겁니다. 2016년 보잉 787에 장착된 롤스로이스 엔진에서 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죠. 운항이 제한됐고, 이로 인해 롤스로이스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됩니다.롤스로이스 경영진은 조직개편, 인력 구조조정, 비용 절감을 통해 어떻게든 기업의 체질을 바꿔보려 애를 썼는데요. 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초대형 폭탄이 떨어집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닥친 거죠.느슨한 조직문화를 뒤바꾼 새 CEO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롤스로이스는 진짜 망할 뻔했습니다. 엔진 비행시간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현금이 고갈됐죠. 3조원 넘는 긴급 유상증자 덕분에 간신히 파산은 막았는데요. 주가는 30펜스(0.3파운드)대까지 급락하고 신용등급은 투기등급으로 추락했습니다.경영 위기가 이어지던 2023년 1월. 영국 정유회사 BP 임원 출신인 투판 에르긴빌직이 새 CEO로 취임합니다. 튀르키예·영국 이중국적자인 그는 ‘초식성’인 롤스로이스 문화와 대비되는 공격적인 추진력을 가진 인물이었죠.그는 취임하자마자 4만2000명 전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롤스로이스는 불타는 플랫폼이다.” 또 “모든 주요 경쟁사보다 실적이 저조”하고 “모든 투자가 가치를 파괴”하며 “엄청나게 관리되지 않은 회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죠.그의 메시지는 파이낸셜타임스 1면에 기사화됐을 정도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이 2011년 스티븐 엘롭 전 노키아 CEO가 했던 같은 발언()을 떠올렸죠. 노키아의 경우엔 그 발언이 휴대폰 사업 몰락의 시발점이 됐었기 때문에, 왠지 불길해하는 이들도 많았는데요.훗날 에르긴빌직 CEO는 그 메시지의 의도가 “직원들에게 회사의 현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거울을 비춰준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직원 사기를 꺾으려는 게 아니라 ‘자, 똑바로 봐. 이제 달라져야 해’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주려 했다는 거죠.이렇게까지 충격 발언을 했으면, 뭔가 해결책을 내놔야 하잖아요. 흔히 외부에서 CEO가 새로 오면 컨설턴트들을 대거 동원해서 새 전략을 짜곤 하는데요. 에르긴빌직 CEO는 그걸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약 500명의 내부 직원과 30개의 워크숍을 열고 브레인스토밍을 했죠. 자기 부서의 전략을 직원들이 스스로 짜게 만든 겁니다.그는 지난해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건 여러분입니다. 전기 사업(전기수직이착륙기)에서 철수하는 결정조차도, 전기 부문 책임자가 회의실 앉아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죠. 이렇게 하면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요. 첫째, 전략 수립 과정에서 전략적 실행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둘째, 공감대가 즉각적으로 생겨나죠.”그는 이렇게 롤스로이스의 ‘17개 전략 목표’를 정했고요. 그 성과 지표를 CEO가 직접 깐깐하게 체크합니다. 느슨할 정도로 사업부별 자율성을 존중하던 조직에 엄격한 규율이 생긴 거죠.“수익성 없는 모든 것에서 철수”에르긴빌직 CEO는 시장점유율 대신 철저히 수익성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이를 위해 과감한 행보에 나섰죠. “수익성 없는 모든 것”에서 철수하겠다면서,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오래전 맺은 항공 엔진 서비스 계약에 대한 재협상에 나선 겁니다. 그동안의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가격을 대폭 높여 받겠다고 한 거죠.갑작스러운 가격 인상 통보를 고객사가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죠. 재협상 과정은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에미레이트항공과 타이항공 등이 ‘롤스로이스 엔진에 결함이 있다’면서 공개 저격에 나섰을 정도였죠. 하지만 에르긴빌직 CEO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재협상을 밀어붙였고요. 그 결과, 불가능해 보였던 계약 수정이 실제로 이뤄집니다.2023년 11월 롤스로이스는 중장기 경영계획을 발표했는데요. 2027년까지 영업이익을 2022년의 네 배인 28억 파운드로 늘리고, 2.5%에 불과했던 민간항공부문 영업이익률을 17%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었죠. 전례 없는 과감하고 야심 찬 계획에 시장은 환호했습니다. 롤스로이스 주가는 2023년 한 해 동안 220% 급등했어요. 유럽 증시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죠.그리고 2년여가 지난 지금. 롤스로이스 실적은 어떨까요. 회사가 전망한 2025년 연간 영업이익은 32억 파운드이고요. 민간항공 부문 영업이익률(2025년 상반기 기준)은 24.9%에 달합니다. 2027년 달성하려던 목표를 이미 한참 초과해 버린 거죠.특히 주가는 3년 만에 14배로 올랐습니다. 2022년 말 1파운드도 채 되지 않았던(2022년 12월 30일 93펜스) 주가가 이제 13파운드를 넘어섰죠. 전 세계 언론과 투자 업계에서 ‘기적적인 회생’, ‘놀라운 반전’이라는 찬사가 쏟아집니다.데이터센터, SMR이 성장동력코로나 이후 항공산업이 빠르게 살아났으니, 그저 운이 좋았던 거 아니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이기도 하고요.하지만 롤스로이스 주가가 이렇게까지 고공행진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높아진 수익성과 안정된 현금흐름 덕분에 첨단 미래산업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게 된 거죠.롤스로이스는 전력 생산용 디젤엔진을 생산하는데요. 주로 선박용으로 팔렸던 디젤엔진에 새로운 수요처가 생겼습니다. 바로 데이터센터의 비상전력 시스템이죠.최근 AI 기술 발전에 대응해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이 데이터센터용 엔진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요. 롤스로이스는 발 빠르게 미국 현지 공장을 확장하고 나섰습니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데이터센터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는 거죠.또 AI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자력 발전이 다시 뜨고 있다, 이런 얘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원전 르네상스의 새로운 주역으로 각광받는 신기술이 바로 소형모듈형원자로, SMR이죠. 그런데 이 SMR의 선두 주자로 떠오르는 기업이 바로 롤스로이스입니다.롤스로이스는 영국 해군의 핵잠수함 수십 척에 들어간 원자로를 설계, 제조한 기업인데요. 이 기술을 활용해 SMR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SMR 3기 건설 사업자로 롤스로이스를 최종 선정했고요. 체코에서도 SMR 6기를 수주했죠.에르긴빌직 CEO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영국 시가총액 4위인 롤스로이스가 SMR 사업으로 시총 1위로 도약할 잠재력이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전 세계 어느 민간 기업도 우리만큼의 핵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계 시장을 선도하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 거예요.”물론 SMR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상용화된 적 없는 신기술이라 성공을 누구도 장담할 순 없긴 하지만요. 최근 투자은행 UBS는 롤스로이스 목표주가를 16.25파운드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장기적인 반등 가능성이 있다”는 낙관적인 평가와 함께 말이죠.만약 롤스로이스 주가가 더 오른다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건 바로 에르긴빌직 CEO가 될 겁니다. 그가 롤스로이스 CEO가 됐을 때 주변 사람들은 ‘지능검사 좀 받아보라’고 농담했다고 해요. 사모펀드 업계에서 한창 돈 잘 벌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왜 굳이 망해가는 회사 CEO를 맡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거죠.에르긴빌직은 CEO로 취임할 때 주식 830만주를 입사 보너스로 확보했어요. 이게 당시 기준 주가(91펜스)로는 150억원(755만 파운드)어치였는데요. 현재 주가로 환산하면 무려 2100억원(1억750만 파운드)어치로 불어났습니다. 이 주식 보상은 아직은 현금화할 수 없고, 2027년과 2028년에 나눠서 지급된다는군요.에르긴빌직 CEO의 과감한 베팅이 성공한 셈인데요. 그는 당시 롤스로이스 CEO직이란 위험한 선택을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롤스로이스는 훌륭한 인재와 위대한 역사, 그리고 상징적인 브랜드를 가진 훌륭한 회사입니다. 인재 유치에 최적의 환경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온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롤스로이스 같은 회사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으니까요.”오래된 제조기업의 놀라운 부활 사례, 롤스로이스의 앞으로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By.딥다이브몇 년에 한 번씩 구조조정을 반복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 없는 구제불능 기업. 2023년 이전까지 롤스로이스란 기업의 이미지는 이랬습니다. 투판 에르긴빌직 CEO가 이끄는 이 변혁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오래된 기업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120년 역사의 제조기업 롤스로이스가 3년 동안 1300% 주가 상승률이라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줬습니다. 코로나로 파산 직전에 몰렸던 롤스로이스의 변혁을 이끈 인물은 2023년 취임한 투판 에르긴빌직 CEO입니다.-그는 공격적인 추진력을 발휘해, 느슨한 조직을 개혁하고 수익성 낮은 계약을 재협상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급등했고, 2027년 목표를 2년 앞서 달성했죠. 시장은 ‘놀라운 반전’이라며 환호합니다.-롤스로이스는 전통적인 항공엔진 사업을 넘어서 이제 데이터센터 비상전력 시스템과 소형모듈형원자로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CEO가 “영국 시총 1위의 잠재력이 있다”고 자신할 정도이죠. *이 기사는 1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2026년 세상을 바꿀 혁신. 아마 다들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같은 화두가 떠오를 텐데요. 전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만치료제.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비만치료 주사가 이미 상용화됐는데, 왜 이게 또 이슈냐고요? 전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의 판이 또다시 뒤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죠. 주사 대신 먹는 비만치료 알약이 나오는 데다, 일부 시장에선 월 5만원으로 저렴한 복제약까지 조만간 출시됩니다. 올해가 원년이 될 비만치료 대중화 시대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월 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주사의 반값 ‘먹는 위고비’한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다이어트 비법으로 거론해 유명했던 위고비. 2024년 10월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한국에 위고비를 출시하면서, 한국에도 주사로 살 빼는 시대가 도래했죠. 이어 2025년 8월 위고비보다 감량 효과가 더 좋은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까지 출시됐고요.그런데 새로운 게임체인저가 등장합니다. 노보 노디스크의 경구용 비만치료제, 즉 ‘먹는 위고비’가 지난해 말 미국 FDA 승인을 받고 이번 주 월요일부터 미국 약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어요. 성분은 위고비 주사와 똑같은 GLP-1 유사체(세마글루타이드)인데 주 1회 주사를 맞는 게 아니라, 하루 한 알 알약을 먹으면 되죠.먹는 위고비는 임상시험에서 64주간 투여했을 때 평균 체중이 16.6% 줄었다고 해요. 주사와 효과가 비슷하죠. 대신 먹는 법이 조금 까다롭긴 합니다. 이 알약은 반드시 공복에 복용해야 하고, 약을 먹은 뒤 30분 동안은 아무것도(물조차) 먹지 않아야 해요. 약 성분이 혈류로 잘 흡수될 수 있도록, 위에서 분해되는 걸 30분 동안 막아주는 성분이 첨가됐기 때문이죠.매일 시간 맞춰 약을 먹는 거나 주 1회 주사 맞는 거나 번거로운 건 마찬가지인데, 왜 먹는 위고비가 게임체인저냐고요? 일단 ‘바늘 공포증’ 때문에 주사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원래 알약 선호도가 훨씬 높고요.보관도 더 쉽습니다. 주사는 냉장보관해야 하는데, 알약은 실온에 둘 수 있죠. 가족도 모르게 몰래 복용할 수 있단 얘깁니다. 아직은 비만치료 받는 걸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게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고요.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가격이죠. 알약은 주사기가 필요 없기 때문에 만들기 더 쉽고, 그만큼 훨씬 더 가격이 저렴한데요.미국에선 지난해 11월 트럼프 행정부와의 합의로 위고비와 마운자로 판매 가격이 이미 대폭 인하됐어요. 이제 미국에선 보험 적용 없이 주사형 위고비를 현금 구매하면 최소 용량 기준 월 349달러(51만원)인데요. 저용량 위고비 알약의 판매가는 월 149달러(약 22만원)로 책정됐습니다. 주사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거죠.물론 알약이 갖는 단점도 있어요.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정해진 시간에 매일 꾸준히 약을 먹는 게 중요한데요. 자칫 중간에 까먹거나, ‘오늘 하루는 좀 건너뛸까’라고 하기가 쉽죠. 그래서 정말 작정하고 살을 빼려면 주사가 더 효과적일 순 있습니다.‘먹는 마운자로’도 출시 대기 중부작용은 주사제와 알약이 똑같습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메스꺼움과 구토 같은 위장 문제이죠. 미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만치료 주사를 맞은 사람의 13% 정도가 이런 부작용 때문에 치료를 중단했다고 합니다.그래도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GLP-1 비만 치료제는 부작용이 약한 편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이죠.수십 년 전부터 식욕억제제 같은 다이어트약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나비약’이라고 부르는 펜터민 성분인데요. 최근 모 연예인의 ‘주사 이모’ 사태로도 알려졌죠. 이 펜터민은 향정신성의약품, 즉 마약류이고요. 우울·불안·환각·경련 같은 부작용이 있을 뿐 아니라, 과량투여 하면 사망할 위험까지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메스꺼움 정도의 부작용은 마일드한 겁니다.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와 미국 일라이 릴리, 두 제약사가 현재 비만치료 주사 시장의 양대 산맥이죠. 그리고 새롭게 열린 비만치료 알약 시장에서도 두 회사는 정면 대결을 펼칩니다. 이번에도 노보 노디스크가 먼저 신제품을 내놨고요. 일라이 릴리의 알약은 올 3월쯤 미국 FDA 승인을 받을 거라고 해요.릴리가 출시 준비 중인 비만치료 알약은 오포글리프론이란 성분인데요. 임상시험에서 72주 복용 시 평균 12.4%의 체중 감량 효과를 나타냈어요. 양호한 결과이긴 하지만, 마운자로 주사(72주에 20%)나 먹는 위고비(64주 16.6%)보다는 효과가 약하죠.대신 복용 방식은 더 편해요. 이 약은 위에서 잘 분해되지 않는 성분이라, 꼭 공복일 필요가 없고 밥 먹고 나서 먹어도 된다는군요. 가격은 먹는 위고비와 마찬가지로 최소 월 149달러가 될 전망입니다.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 둘 중 어느 회사 비만 알약이 더 인기를 끌지는 두고 봐야겠지만요. 두 회사 모두 예상 수요를 충족할 만한 충분한 양을 생산할 채비를 이미 마쳤고요. 비만치료제 시장의 가장 큰 장벽이었던 가격 문턱을 크게 낮췄다는 점에서 엄청난 성장 잠재력이 있습니다.위고비와 마운자로 같은 GLP-1 비만 치료제의 2025년 전 세계 매출액은 무려 705억 달러, 한화로 100조원 이상(유진투자증권 추정). 이런 추세라면 2030년엔 시장 규모가 1000억 달러(약 145조원)를 훌쩍 넘어설 겁니다.(위 그래프는 2025년 전 세계 의약품 매출액 추정치 톱 10 목록.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빨간색), 노보 노디스크의 오젬픽과 위고비(초록색)는 각각 같은 성분이기 때문에 이를 모두 합치면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총 매출액을 알 수 있다.)3월 인도·중국에 몰아칠 복제약 쓰나미2026년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을 뒤흔드는 이슈는 알약만 있는 게 아니죠. 더 파괴적인 변화는 따로 있는데요. 바로 ‘위고비 복제약’의 탄생입니다.위고비의 주성분은 ‘세마글루타이드’. 뇌가 포만감을 느끼도록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 유사체인데요. 노보 노디스크가 냈던 세마글루타이드 특허가 2026년부터 여러 시장에서 만료됩니다. 일단 올해 특허 만료 국가는 인도, 중국, 캐나다, 브라질, 튀르키예입니다.특허가 만료된다는 건 이 시장에선 제네릭의약품, 즉 동일한 성분의 복제약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단 뜻이죠. 복제약은 신약보다 훨씬 개발이 쉬워서 엄청 빨리, 낮은 비용으로 출시할 수 있습니다. 개발 비용을 최대 80% 정도 절감할 수 있다고 해요.즉, 이제 중국·인도 같은 시장에선 가격을 확 낮춘 위고비 복제약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이미 이들 나라 제약사 수십 곳이 세마글루타이드 복제약을 임상시험 중이거나 시판 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죠.인도·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잖아요. 전 세계 비만 인구의 약 4분의 1이 이 두 나라에 몰려있다는데요. 이 엄청난 시장을 잡기 위한 제약사들의 가격 전쟁이 벌써부터 불붙기 시작했어요.인도는 비만·과체중 인구수가 세계 2위(1억8000만명)인 나라죠. 지난해 인도에선 마운자로가 항생제 오구멘틴을 제치고 매출 1위 의약품이 됐을 정도로, 비만치료제가 불티나게 팔렸고요. 이에 질세라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해 말 위고비 판매가격을 33%나 대폭 낮춰 공세에 나섰습니다. 월 1만850루피(약 17만원)로 말이죠.그럼 올 3월 인도에서 위고비 특허가 만료된 뒤 나올 복제약은? 아직 인도 제약사들이 가격을 공개하진 않았는데요. 시장에선 위고비보다 50~70% 낮은 가격, 즉 월 3000~5000루피(약 5만~8만원)로 내놓을 거라고 전망합니다. 복제약 생산비용이 500루피(8000원) 이하여서, 그 정도만 받아도 크게 남는 장사라는군요. 비만·과체중 인구수로 세계 1위인 나라는 중국인데요(약 4억명). 중국 역시 3월이면 위고비 특허가 만료되면서, 이미 열 곳 넘는 중국 제약사가 복제약 출시를 준비 중입니다. 이에 초조해진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중국 내 위고비 판매가를 48%나 인하했고요(월 39만원→20만원). 일라이릴리 마운자로는 최근 온라인 쇼핑몰 메이투안에서 기존보다 80% 할인된 가격(약 45만원→9만원)에 팔렸죠. 복제약이 나오기도 전부터 가격 경쟁이 핫합니다.그럼 여기서 궁금하실 거예요. 한국에서도 값싼 복제약이 곧 나오는 건지 말이죠. 원래 위고비 특허는 한국에서도 올해까지였지만, 노보 노디스크가 식약처에 ‘특허 존속 기간 연장’을 신청한 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국내 특허는 2028년까지 유지돼요. 그때까진 한국에서 복제약 유통은 불법인 거죠. 참고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선 2031년에나 특허가 만료된다고 해요.따라서 다른 나라의 특허 만료가 당장 한국 약값에 크게 영향을 줄 것 같진 않지만,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이 순차적으로 가격파괴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만약 비만치료제 가격이 비타민제만큼이나 저렴해진다면? 비만치료제 대중화 시대가 순식간에 열릴 수 있습니다. 열나면 해열제 사 먹듯, 살찌면 비만치료제를 사게 되는 거죠.달콤한 디저트 대신 여기에 돈 쓴다 비만치료제가 감기약만큼이나 흔해진다면, 세상은 뭐가 달라질까요. 이에 대한 힌트를 주는 연구보고서들이 최근 속속 나오는데요. 위고비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투약한 미국의 변화를 추적한 내용입니다.미국 코넬대는 위고비 같은 비만치료 주사를 맞은 적 있는 수만 가구의 먹거리 구매 리스트를 추적했는데요. 위고비를 맞은 지 6개월 이내인 경우, 가구당 식료품비 지출이 평균 5.3%나 줄었다고 합니다.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지출도 8% 줄었고요. 어떻게 보면 당연하죠. 약물 자체가 뇌가 포만감을 느껴서 덜 먹게 만드는 그런 약이니까요.눈에 띄는 건 유독 더 많이 소비가 줄어드는 품목이 있단 거예요. 달거나 짠 간식류, 즉 스낵· 사탕·쿠키 같은 소비는 10% 정도 줄었고요. 반대로 요구르트나 신선한 과일은 오히려 판매량이 조금 늘었죠. 비만치료 주사 때문에 좀 더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쪽으로 입맛이 변하는 겁니다.식품업계, 외식업계라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인데요. 그런데 이 효과가 영구적이진 않았습니다. 투약을 중단하면 식품 소비가 다시 이전 수준으로 늘어났다고 하죠.시장조사업체 서카나(Circana) 보고서도 흥미로운데요. 비만주사가 먹는 것뿐 아니라 미국인의 다른 소비 생활까지 바꾸고 있다고 하죠.식품 소비가 줄어든 대신 외모 자신감이 높아지면서 옷과 핸드백, 화장품, 향수 등에 돈을 더 쓰고요. 스마트 워치·아웃도어 용품·스포츠장비 같이 레저 활동용 소비도 늘어났죠. 특이한 건 반려동물 관련한 지출은 상당히 줄었다는 거예요. 반려동물보단 ‘나’를 위한 소비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죠.비만치료제 대중화의 의학적 효과는 엄청날 겁니다. 최근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 당뇨병 환자 모두가 비만 치료제를 투약할 경우엔 연간 최대 310만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해요.또 심혈관 질환(심장마비·뇌졸중), 수면 무호흡증, 중독 행동까지 줄어드는 효과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비만치료제가 ‘장수 약물’ 역할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적정 체중으로 더 오래오래 살게 되겠죠. 그렇다면 전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는 더 심화할 수밖에 없을 거고요.비만치료제가 단순한 살 빼주는 약이 아닌 세상을 바꿀 제약 혁명으로 불리는 건 이런 사회적 파급력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10년, 20년 뒤가 아니라 아마도 당장 수년 안에 벌어질 일로 훌쩍 다가와 버렸죠. 누구나 약으로 살을 쉽게 뺄 수 있고 비만 환자가 사라지는 세상. 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되셨나요. By.딥다이브‘혁신’이라고 하면 우린 IT 기술을 주로 떠올리게 되지만, 제약 분야의 혁신이야말로 인류를 구하고 세상을 바꿀 기술이란 생각이 듭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살 빼주는 약 GLP-1 치료제. 지금까진 비싼 가격 때문에 일부 계층을 위한 약이었지만, 2026년부턴 대중화 시대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판이 펼쳐지는 거죠.-우선 주사 대신 알약이 등장합니다. 주사기가 필요 없으니 보관은 쉬워지고, 가격은 반값 이하로 떨어지죠. 일단 올해는 미국 시장부터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 릴리 두 제약사의 알약이 출시됩니다.-위고비 주사제의 복제약도 올해 3월부터 나옵니다. 인도와 중국에서 세마글루타이드 특허가 만료되면서 복제약이 합법적으로 출시되는 거죠. 복제약 가격이 오리지널약의 30%밖에 되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오면서, 벌써부터 위고비 가격이 떨어지고 있습니다.-비만 치료제는 이미 많은 이들의 먹는 습관, 소비 생활을 바꿨습니다. 더 건강히 오래 살 수 있게 만드는 ‘장수 약물’ 효과도 있죠. 세상이 바뀌고 있습니다.*이 기사는 1월 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2년 전 한 대학에서 처음 강의를 맡았을 때 일이다. 강의실에서 노트북을 펼친 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분위기가 왠지 묘했다. 전반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었다. 적극적으로 딴짓을 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강의를 제대로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학기가 끝날 때쯤에야 왜 그렇게 느꼈는지 알았다. 아무도 필기를 하지 않았다. 필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수업을 녹음하고 있었다.AI가 강의를 정리해주는 시대학기 초, 기말고사는 단답형과 짧은 서술형 문제가 섞인 지필고사가 될 거라고 예고했었다. 누군가에겐 C학점을 반드시 줘야 하는 상대평가 강의였다. 학점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를 피하려면 정해진 답이 있는 시험이 나았다. 솔직히 채점하기도 더 편하다.학생 입장에서 이런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잘 정리된 강의 녹취록이다. 그리고 인공지능(AI) 기술로 클릭 한 번이면 음성 녹음을 텍스트로 변환할 수 있다. 모두가 수업을 녹음하는 이유다. 아마도 학생들에게 그 대면수업은 빨리감기가 되지 않아 답답한 인터넷 강의와 다를 바 없었을지 모른다.그동안 AI 기술은 더 발전했다. 요즘엔 녹음파일을 올리면 AI가 기말고사 대비 자료와 예상 문제까지 척척 뽑아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를 끈다. 출석 체크만 아니라면 굳이 강의실에 가지 않고 녹음본만 구해도 웬만한 수업은 학점 따는 데 문제가 없게 됐다.만약 그런 수업이라면 굳이 대면으로 진행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AI 녹취록의 발전은 대면수업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이제 얼굴을 마주 보는 대면수업이라면 온라인 강의와는 달라야 하는 게 맞다. 수업 진행은 물론 평가 방식까지 말이다.수업 녹음본을 얻는 학원 강사들대학생의 강의 녹음은 그래도 이해할 만하다. AI 도움을 받긴 하지만 스스로 공부하려는 목적이니 말이다. 그런데 특목고 학부모들로부터 전해 들은 고등학교 이야기는 훨씬 심각했다. 수업 녹음파일이 통째로 사교육 시장의 내신 대비 강사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고등학교에선 시험 점수 1점 차이로 내신 등급이 바뀌고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 성적에 목맬 수밖에 없는 입시생들은 ‘OO고 내신 전문’을 내건 사교육에 의지한다.시험 문제를 내는 건 학교 교사인데, 학원 강사가 이를 가르치려니 비법이 필요하다. 예전엔 그 열쇠가 학생들이 제공한 노트 필기였다. 이젠 그게 학생들이 넘겨준 수업 녹음파일로 바뀌었다. AI 기술을 이용하면 수업 내용을 통째로 텍스트로 정리하는 건 물론, 교사의 어조나 반복되는 키워드까지 데이터화해 분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잘나가는 학원 강사들은 이런 AI 기술을 치밀하게 이용한다. 예를 들어 학교 교사가 여러 교실에서 한 수업 내용을 집약한 뒤, 이 반과 저 반에서 설명이 달랐거나 애매한 부분을 찾아낸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그 내용을 질문하도록 시킨다. 그렇게 학생 질문이 쏟아지면 해당 교사가 부담을 느끼고 그 문제를 출제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고교 수업 내용이 고스란히 학원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도 황당한데, 학교 시험 문제 출제에까지 학원 강사의 영향력이 미치다니.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높은 내신 등급을 받으려 애쓰는 교육 현실이 놀라울 따름이다.대학 입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교 수업의 가장 큰 목적은 내신 등급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이 AI 기술로 무장한 내신 사교육의 침범을 피할 도리가 있을까. 기술의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과 중심의 내신 상대평가가 공교육의 위기를 부추긴다. AI가 수업을 요약하고 학원이 시험 문제를 예측하는 시대, 공교육 대면수업의 의미를 찾으려면 새로운 평가 제도를 고민할 때다.한애란 경제부 기자 haru@donga.com}

석유, 석유, 석유.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뒤 첫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석유’라는 단어를 스무번이나 언급했습니다. 충격적인 급습 작전이 결국 베네수엘라 석유 때문이었음을 확인시켜 준 셈이죠. 독재자 마두로를 변명해 주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석유를 탐낸다”던 그의 주장은 사실이었습니다.트럼프 대통령은 왜 그렇게 베네수엘라 석유에 집착할까요. “18개월 안에 베네수엘라 석유 인프라를 완전 재가동하겠다”는 그의 공언은 믿을 만할까요. 오늘은 마두로 체포와 베네수엘라 석유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1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미국 정유사는 싸고 더러운 기름을 원한다2018년 미국은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원유 생산량 1위에 올라섭니다. 2010년대의 ‘셰일 혁명’ 덕분이었죠. 텍사스 퍼미안 분지를 중심으로 셰일 오일·가스가 펑펑 쏟아져 나오면서 미국은 압도적인 1위 산유국 지위를 유지 중이죠.이 미국산 석유는 저유황의 ‘경질유(Light Crude)’입니다. 석유는 가벼운 경질유와 무거운 중질유로 나뉘는데요. 경질유는 불순물이 적고 정제하기가 훨씬 쉬운, 한마디로 고급 석유이죠.그런데 이 질 좋은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미국도 석유를 수입합니다. 수입되는 건 주로 중질유(Heavy Crude)이죠. 무겁고, 끈적거리고, 정제 과정이 복잡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더러운 불순물이 많이 나오는 그런 석유입니다.비싸고 좋은 기름은 수출하고, 질 떨어지는 기름을 되레 수입하다니. 언뜻 보면 이상한데요. 여기서 중요한 건 원유의 질이 아니라 정유사의 마진입니다.멕시코만에 모여있는 미국 정유시설은 대부분 셰일혁명이 본격화된 2010년 이전에 만들어졌고요. S&P글로벌에 따르면 미국 전체 정유시설의 약 70%는 중질유 처리 시설이라죠. 끈적거리고 무거운 중질유를 싼값에 수입해 와서, 이를 분해하고 정제해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 예나 지금이나 이게 정유사의 핵심 수익모델입니다.이 중질유를 미국에 가장 값 싸게 공급해 주던 산유국은 원래 베네수엘라였어요.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량이 급감한 데다, 미국 제재까지 받으면서 이젠 수입량은 극히 미미하고요. 그 자리를 더 비싼 캐나다산 중질유가 채웠습니다. 미국 정유사 입장에선 원료가 비싸진 만큼 수익성은 악화된 거죠.그런데 불안한 건 캐나다산 중질유 공급도 영원히 안정적이란 보장은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트럼프 관세폭탄 충격파로 각성해 버린 캐나다. 석유를 미국 이외 나라로 수출하겠다며, 해안으로 연결되는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에 속도를 내는데요. 캐나다산 중질유의 대체품이 필요해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미국에서 가깝고 가격까지 저렴한 베네수엘라산 중질유를 다시 수입해 올 수 있다면? 미국 정유업계로선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마두로 체포 직후 뉴욕증시에서 발레로 에너지, 마라톤 페트롤리엄, 필립스66 같은 미국 정유사 주가가 급등한 게 이를 드러내 주죠. “정유사 시스템이 설계 목적에 맞게 운영되면서 생산량과 마진이 더 높아질 것”(S&P 글로벌의 데브닐 초우더리 부사장)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반면 캐나다 내추럴 리소시스 같은 캐나다의 석유생산업체 주가는 급락했습니다. 미국 수출을 둘러싼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테니까요.국제유가를 미국이 좌우한다면?여기까진 산업 측면의 좁은 얘기였고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 보죠. 이미 북미와 남미 석유 자원 중 상당 부분을 운영 중인 미국이 세계 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하비에르 블라스의 표현대로 “트럼프는 이제 자신만의 석유 제국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이 사실상 국제 유가를 좌지우지할 엄청난 힘을 쥐게 된다는 것을 뜻하죠.만약 미국이 원유 생산량을 콘트롤해서 유가 인상 또는 인하를 결정하는 스위치를 손에 넣는다면 가장 긴장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석유 수출에 경제를 의존해 온 적대국들, 즉 러시아와 이란입니다. 미국이 유가 급락을 초래하며 압박한다면 이들 나라의 경제는 고사 위기에 놓일지도 모르니까요.이를 간파한 러시아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만약 미국의 ‘파트너’들이 베네수엘라 유전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전 세계 석유 매장량 절반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분명히 미국의 계획은 석유 가격이 배럴당 50달러를 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이는 우리의 신성한 국가 자본주의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의미입니다.”동시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중동 국가와의 관계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될 겁니다. 그동안은 에너지 안보 때문에 사우디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리 미국이라도 중동 지역에서의 군사행동엔 섣불리 나서진 못했는데요. 더 이상 거리낄 게 없게 되는 거죠. 지정학적 ‘힘의 추’가 미국으로 확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꿈꾸고 있을 이 무시무시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큰 산이 있죠. 지난 20년 동안 무너진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재건하는 겁니다. 1990년대 하루 350만 배럴에서 지난해 90만 배럴 수준으로 크게 쪼그라든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을 되돌려 놔야 하죠.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대로 “거대한 미국 석유회사들이 들어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심각하게 망가진 석유 인프라를 재건해 돈을 벌기 시작해야” 하는 겁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그래서 얼마면 돼? 아무도 몰라!투자 부족, 기술력 상실, 노후화된 시설, 인력 이탈, 경영 부실과 내부 부패. 한때 세계 4위 석유회사일 정도로 잘 나갔던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공사(PDVSA)가 어떻게 완전히 망가졌는지를 이미 설명해 드린 적 있죠. ()베네수엘라에선 많은 시추 현장이 버려졌습니다. 송유관에선 기름이 줄줄 새고, 한때는 최첨단이었던 정유시설은 이제 고장 나서 가동이 쉽지 않죠. 무엇보다 이걸 다시 운영할 전문인력도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난 10년간 조국을 떠난 베네수엘라 국민만 780만명에 달하니까요.그래서 비관적 전망이 줄이어 나옵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트럼프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재건하겠다는 약속을 “위대한 도박”이라고 평했죠. 너무 오래 걸리고 천문학적인 투자비가 들 거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분석 기업 리스타드 에너지는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량을 15년 전 수준(하루 200만 배럴)으로 되돌리려면 2030년대 초까지 무려 1100억 달러(약 160조원)의 설비투자가 필요하다고 예상했죠. 2024년 미국 주요 석유회사 투자비의 2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하지만 좀 더 낙관적인 시각도 존재해요. 베네수엘라가 산유국으로서 갖는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인데요. 일단 유전 지도가 이미 작성돼 있기 때문에 새로 탐사에 나서야 할 위험이 없고요. 모든 유전이 해안 또는 마라카이보호수 같은 얕은 수역에 있기 때문에 채굴 비용이 매우 저렴합니다. 이웃 국가 가이아나처럼 석유를 찾아 심해까지 나갈 필요가 없는 거죠.그래서 또 다른 컨설팅 기업 우드 매켄지는 베네수엘라가 소규모 투자 만으로 1~2년 이내에 생산량을 하루 200만 배럴까지 회복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많은 유정이 간단한 보수작업만 필요할 걸로 예상합니다. 새로운 자본 지출(설비투자)을 많이 들이지 않고, 운영비용을 통해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을 거예요.”(우드 매켄지 아드리안 라라 애널리스트).세계적인 에너지 컨설팅 전문 회사의 분석조차 이렇게나 극과 극이라니. 좀 당황스러운데요. 그만큼 베네수엘라의 유전을 정상화하려면 뭐가 어디에 얼마나 필요할지, 전문가들도 아직 제대로 알 수 없단 뜻이겠죠.독재정권 2인자를 지지한 트럼프 지금처럼 국제유가가 낮은 상황에서, 돈이 얼마나 들지도 모르는 베네수엘라 석유 사업에 뛰어드는 게 맞을까요? 의문은 많지만,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재건에) 엄청난 금액을 지출할 거고, 비용은 석유기업들이 부담한다. 이후 우리(정부)로부터 또는 수익을 통해 그 비용을 상환받을 것”이란 구상을 이미 밝혔죠. 9일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석유기업 경영진을 직접 만날 예정이죠. 아마도 미국 석유회사들은 베네수엘라에 얼마나 투자한다고 할지, 지금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겠죠. 그리고 이 계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이겁니다. 베네수엘라 정치가 안정될 것인가. 독재자는 사라지고 나서, 되레 나라가 정치적 혼돈에 빠지는 경우는 흔합니다. 미국이 2003년 사담 후세인을 몰아냈지만, 내전에 빠지면서 극단주의 세력이 등장한 이라크가 바로 그 대표 사례이죠.가뜩이나 미국 석유기업은 이미 2004~2007년 우고 차베스 정부의 국유화로 베네수엘라에서 자산을 강탈당한 기억이 생생하거든요.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믿을 만한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한 흔쾌히 투자에 나설 리가 없는데요.바로 이 점을 트럼프 정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마두로 이후의 베네수엘라를 둘러싼 상황이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좀 다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두로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나라를 이끄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힌 거죠.독재자를 체포한 미국이 독재정권의 2인자를 지지한다? 이거 뭔가 어색한데요.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 대해선 이렇게 선을 그었습니다. “마차도는 차기 지도자 역할을 하긴 어려울 거다. 그는 내부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두로 체포에 환호했던 베네수엘라 야권에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결국 마두로 대통령만 쏙 빼놓고 나머지는 그대로 둔 ‘온건한 독재체제’가 당분간 이어질 판인데요. 트럼프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지금 미국에 필요한 건 어디까지나 미국 기업의 석유사업 진출을 빠른 속도로 성사시킬 수 있는 유능한 행정가이고요. 2024년부터 석유 사업을 총괄하며 해외 석유 기업들과 협상을 진행해 온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반체제 인사 마차도보다 더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특히 베네수엘라 국채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와 석유 업계 관계자들이 급진적인 마차도 대신 로드리게스를 강하게 밀었다는군요.베네수엘라의 민주화? 새로운 자유주의 정권 수립? 그런 건 미국 정부의 안중에도 없는 겁니다. 철저히 미국의 실리를 따른 선택인데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킴벌리 브라이어의 말대로 “매우 냉철한 현실주의적 접근 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트럼프의 방식이로구나, 새삼 깨닫게 됩니다. By.딥다이브마두로가 체포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카라카스의 모습은 변한 게 없습니다. 언론인들이 체포됐고, 총을 든 군 방첩요원들이 대통령궁 인근을 순찰하고, 친정부 성향의 오토바이 갱단이 거리를 활보하죠. “베네수엘라를 다시 위대하게 만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을 믿을 수 있을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미국의 마두로 체포, 역시 석유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정유사는 값싸고 끈적거리고 불순물이 많은 베네수엘라의 중질유가 필요했죠. 그게 더 수익성이 좋기 때문입니다.-이제 트럼프는 거대한 석유 제국을 운영할 기회를 잡았습니다. 국제유가를 좌지우지하는 버튼을 손에 넣게 된다는 해석도 나오죠. 지정학적 판도를 뒤바꿀 전환이 될 겁니다.-그러려면 일단 베네수엘라에 묻힌 막대한 석유를 파내야겠죠. 망가진 인프라를 고쳐서 석유생산량을 늘리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지에 대한 전망이 엇갈립니다. -더 빨리 베네수엘라 석유를 얻고 싶은 트럼프 정부. 마두로 뒤를 이을 지도자로 2인자였던 로드리게스를 지지했습니다.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을 따르고 있죠. 베네수엘라에 미국이 지지하는 ‘온건한 독재체제’가 유지되면서 ‘민주화의 봄’은 당분간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이 기사는 1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크리스마스도 지났고, 이제 한 해를 결산할 시점이 왔습니다. 2025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 경제가 요동친 격동의 해였죠. 이 혼란기를 헤치고 주가와 성장률 측면에서 가장 잘 나간 나라는 어디일까요. 반대로 경제적으로 유독 되는 일이 없었던 나라는 어디일까요. 오늘은 2025년 경제가 흥했던 나라와 침울했던 나라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12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주가지수 상승률 1위는?먼저 주식시장을 볼게요. 올해는 유독 주가 그래프가 극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4월 2월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 )’ 발표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폭탄 충격 때문인데요.이 고난을 딛고 주요국 중 연간으로 가장 높은 주가지수 상승률을 보인 나라는 어디냐.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올 들어 코스피 상승률 71.27%. 단연 1위이죠.왜 한국 증시가 유독 잘나갔을까요. 일단 2024년 12월 계엄의 충격에서 시장이 빠르게 벗어났고요. 반도체 수출 호황, 주주환원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지수를 끌어올렸죠. 역사적인 ‘사천피’ 시대를 연 한국 증시. 이젠 내년엔 코스피가 5000포인트를 넘을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대신증권 5300, 현대차증권 5500).2위는 스페인입니다. 지수가 47% 뛰었네요. 스페인은 2년 연속 선진국에서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잘 나가는 나라이죠. 견조한 소비, 급증하는 외국인 투자, 미국 관세의 영향을 덜 받는 산업 구조까지. 호재가 맞물리며 주가지수는 18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고요. 특히 스페인 대형은행 산탄데르그룹 주가는 올해 들어 127% 급등했습니다.다만 경제와 증시의 이런 호황을 정작 스페인 국민들은 잘 체감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인데요. 이민자 유입과 집값 급등으로 사회적 갈등은 커질 조짐이 나타납니다. 유례없는 호황의 그림자인 셈이죠.지수 상승률 3위는 남아프리카공화국. 39.23%를 기록했는데요.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인에 대한 역차별’을 문제 삼으면서, 외교적으로는 꽤 시끄러운 한해였죠. 그런데도 주식시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공행진을 이어갔는데요. 왜 이렇게 올랐냐, 이게 다 금 때문이죠.올해 국제 금값은 거의 70% 가까이 올랐죠. 12월 들어서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어느덧 온스당 4500달러 선에 근접했는데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세계 최대의 금광 지대를 보유한, 금 생산의 중심지입니다.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는 유독 광산주 비중이 높죠. 금을 채굴하는 광산기업인 앵글로골드 아샨티 주가가 올해 232%, 골드필즈가 194%나 뛰면서 지수 상승을 이끌었습니다. 주식시장 폭탄 맞은 나라들그럼 반대로 2025년 최악의 주식시장을 볼까요. 주요국 중 주가지수 하락률 최고, 그 불명예스러운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차지했습니다. 타다울 지수는 올해 들어 12% 넘게 떨어졌죠.왜 사우디아라비아 증시가 유독 부진했냐면 당연히 유가 때문이겠죠. 올해 국제유가는 20%가량 급락하면서 4년 만에 최저치인 배럴당 60달러 수준에 머무는데요.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 플러스가 공급량을 늘렸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2026년에도 국제유가 하락세가 지속될 거란 전망이 우세하단 겁니다. 2026년 브렌트유 평균 가격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과 ABN암로가 배럴당 55달러, 골드만삭스는 56달러로 전망하는데요. 만약 브렌트유 가격이 연 평균 60달러 아래로 떨어진다면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입니다.그래서 지금 대부분 투자은행들이 포트폴리오에서 사우디 투자 비중을 줄이기에 바쁩니다. 내년에도 전혀 나아질 것 같지가 않은 거죠.2위는 태국입니다. 태국 증시의 SET 지수는 올해 8% 넘게 하락했죠. 태국은 올해 내내 혼란기를 겪었습니다.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와의 통화내용이 유출되면서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잘렸고요.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이 촉발한 무력 충돌이 갈수록 확산되면서 ‘준전시 상황’으로 치닫고 있죠. 게다가 예상과 달리 외국인 관광객이 10% 가까이 줄어들면서 믿었던 관광산업마저 무너지고 있는데요. 태국은 2026년 2월 조기 총선을 치를 예정입니다. 총선으로 새 정권이 들어서고 정치적으로 좀 안정화된다면 좋겠지만, 요지경 태국 정치를 생각하면 그리 쉽진 않아 보입니다. 3위는 필리핀. 주가지수가 올해 7.4%나 빠졌는데요. 약한 경제성장률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큰 건 대규모 부패스캔들이 터지면서 투자자들이 필리핀 시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점입니다.필리핀은 매년 대형 태풍이 강타해서 홍수에 취약한 나라인데요.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인 홍수방지 사업 9000건 중 6000건 이상이 부실하거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프로젝트였다는 게 드러나면서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죠. 수천억원 예산을 건설사와 관료들이 꿀꺽 먹어버린 거예요. 국민들이 분노하면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고요. 사회가 불안해지면서 소비와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습니다.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는?좀 다른 기준으로 살펴볼까요. 2025년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 나라는 어디였을까요. IMF가 10월 발표한 전망치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는데요. 1위는 성장률 24.3%의 아프리카 남수단, 2위는 15.6%의 리비아입니다. 두 나라 모두 지난해 줄었던 석유 생산량이 다시 회복된 결과이죠. 석유에 의존하는 두 나라는 이렇게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특징이 있습니다.3위는 남미의 떠오르는 석유부국, 가이아나(10.3%)인데요. 가이아나는 10년 전인 2015년 바다에서 초대형 유전이 발견되며 ‘석유 로또’를 맞은 나라이죠. 인구가 고작 80만명 밖에 안 되는 가이아나는 올해 1인당 GDP가 3만 달러를 넘어 설 거라고 하고요. 2030년엔 7만5000달러로 미국과 맞먹을 거란 전망까지 나옵니다. 서구 국가 중 상위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국가는 유럽의 섬나라 아일랜드인데요. 무려 9.1%라는 놀라운 경제성장률이 예상됩니다.아일랜드 하면 ‘기네스의 나라’ 정도로 아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지금은 글로벌 기업들의 본거지로 통하죠. 유럽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과 영어 문화권이라는 강점 덕분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같은 미국 빅테크가 모두 아일랜드에 자회사를 두고 있고요. 화이자, 로슈, 머크 같은 글로벌 제약사의 제조기지이기도 합니다. 특히 2025년엔 트럼프 정부의 관세폭탄을 피하기 위해 제약사들이 의약품의 미국 선적을 서두르면서 수출 대박을 기록했죠. 경제규모가 큰 나라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는 역시 인도인데요. 올해 6.6% 경제가 성장할 전망입니다. 트럼프 정부가 인도에 무려 50%의 고관세를 때렸는데도 여전히 잘나가고 있죠. 인도는 GDP 기준으로 이미 일본을 치고 세계 4위로 올라섰고요. 이런 추세라면 2027년 말이면 독일을 제치고 미국과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경제대국으로 커질 전망입니다.성장률 고작 0.2%인 선진국은?그럼 반대로 올해 경제 성장률 성적표가 가장 나쁜 나라는 어디일까요. 아이티(-3.1%), 미얀마(-2.7%). 이런 내전과 분쟁에 시달리는 최빈국들이 최하위권을 기록한 건 당연한데요.그렇지 않은 평화로운 선진국 중 성장률 최하위는 바로 독일입니다. IMF는 독일의 2025년 경제성장률을 고작 0.2%로 전망했죠.독일 경제의 위기는 사실 1, 2년 된 얘기가 아니긴 하죠. 갑자기 어려워졌다기보다는 수년에 걸쳐 서서히 몰락 중인데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천연가스가 막히면서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었고요. 무엇보다 경제를 떠받쳐온 독일 자동차 산업이 중국과의 경쟁으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독일 자동차 생산량은 2017년 560만대에서 이제 400만대 아래로 떨어졌고요.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는 1년 만에 5만개 넘게 사라졌죠. 한때 세계가 부러워했던 독일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시대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영토를 빠르게 잃어가는 건데요. 결국 얼마 전 유럽연합은 ‘2035년 내연기관차 금지’ 규제를 철회했죠. 이러다 유럽 자동차 산업이 다 죽게 생겼다는 위기의식 때문인데요. 하지만 추세를 역전시키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는 한탄도 나옵니다.IMF가 전망한 올해 한국의 2025년 경제성장률은 0.9%. 미얀마를 제외하면 아시아 국가 중에선 가장 낮은 수준이죠. 주식시장은 최고인데, 경제성장률은 상당히 낮습니다. 반도체, 조선, 방산 같은 일부 수출 대기업은 잘 나가지만 철강, 석유화학 같은 전통 산업은 너무 어렵고요. 무엇보다 높은 가계부채, 고물가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죠.다행히 내년엔 경제성장률도 좀더 오르고, 살림살이가 나아질 거란 전망이 이어지는데요. 그 전망이 부디 들어맞기를 기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2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업계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중에서도 유독 전쟁 같은 곳은 여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음식 배달앱 시장. 배달의민족이 여전히 선두를 지키는 가운데, 쿠팡이츠가 맹추격 중이죠.그럼 3위 요기요는 어떨까요. 지난해 3월 2위 자리를 쿠팡이츠에 뺏긴 뒤,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단행하며 움츠러들었는데요. 최근 포인트 ‘무한적립’ 프로그램을 론칭하며 마케팅 공세에 나섰습니다. 오랫동안 갈아온 칼을 꺼내든 듯한 모습이죠. 마침 쿠팡의 해킹사태가 시끄러운 터라 타이밍이 절묘한데요. 김혜정 요기요 마케팅본부장을 만나 치열한 배달앱 마케팅의 세계를 들여다봤습니다. *이 기사는 12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야놀자, 왓챠, 요기요의 공통점-IBM에서 2018년 야놀자(여행앱)로 이직한 뒤 왓챠(OTT서비스)와 에어프레미아(항공)를 거쳐 올해 5월 요기요에 입사하셨죠. 브랜드를 키운다는 점에서 하는 일은 비슷하지만, 업종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기셨네요.“많은 분들이 어떻게 이렇게 산업을 쉽게 옮기냐고 하시는데요. 사실 여기엔 숨은 비밀이 있어요. 모두 여가시간에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들과 관련된 유형이고요. 제가 메인으로 타깃하는 고객이 동일해요.”-야놀자를 이용하는 사람이 왓챠도 보고 요기요로 배달도 시키고요?“여유시간엔 항공기도 타고요. 마케팅을 하다 보면 자칫 이 시장만 바라보게 되는데요. ‘도대체 우리 고객들은 주말에 뭘 할까’를 고민하면, 다른 게 보이죠.”-익숙한 브랜드라 해도 업무적으로 새로 파악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요?“예전 직장에서 제가 배운 것 중 하나가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였어요. 임원급이 되면 잘 몰라도 ‘모른다고 하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를 고민하기 쉬운데요. 저는 모르면 ‘가르쳐달라’고 해요. 그 산업에서 저는 신입사원이니까요.”-음식배달업계는 연말이 가장 중요한 성수기이죠? 이번에 ‘포인트 무한적립’ 프로그램을 12월 초에 내놓은 것도 그래서인가 봐요.“연말엔 모임도 많고, 날씨도 추우니 배달 수요가 늘거든요. 일정이 무리 되긴 했지만, 그래도 수요가 있을 때 하자는 의견이 많아서 좀 힘들게 내놨어요.”왜 치킨배달만 할인해줄까 -포인트 무한적립은 멤버십에 가입하지 않은 일반 회원에도 적립률 1%를 제공하죠(멤버십 가입자는 5%). 이런 포인트 제도를 도입하자는 방향은 어떻게 정하게 됐나요?“국내 배달앱 시장 이용자가 약 3000만명인데요. 그중 55%가 2개 이상의 앱을 사용하고요. 15%, 즉 수백만 명이 3개 이상을 사용해요. 앱마다 혜택이 다르니까 여러 개를 비교하는 거죠.지금은 배달앱의 혜택이라는 게 멤버십(구독하면 배달비 공짜)이나 쿠폰 할인(OO치킨 최대 5000원 할인)이고요. 특히 최근엔 실제 주문보다 트래픽이 상당히 높게 나오는데요. 그만큼 어디가 더 할인이 많은지 비교를 매우 많이 하는 거죠.그래서 과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요기요가 혜택이 많다고 느끼게 할까, 다른 배달앱과 비교했을 때 뭐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했어요. 이번에 포인트 무한적립 프로그램을 론칭했지만, 사실 이건 저희가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로드맵 중 첫 번째입니다.”-그 로드맵이란 소비자에게 굳이 이것저것 안 보고도 요기요를 써야겠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가요?“맞습니다. 지금 배달앱 시장은 브랜드마다 특색이 없고 어떤 할인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요기요가 과연 괜찮을까?’를 걱정하지만, 반대로 저는 그래서 기회가 있다고 봐요. 고객들이 ‘절대적으로 난 이 브랜드 아니면 안 쓰겠어’라고 고착화되기 전이니까요.”-그건 그렇네요.“만약 2개 이상 앱을 교차사용하더라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앱 두 개를 두긴 쉽진 않아요. 쓰임이 다른, 하지만 꼭 필요한 앱이어야 쓰게 되죠.온라인여행플랫폼(OTA) 중 ‘클룩(Klook)’이 있는데요. 홍콩 여행 필수코스인 피크트램을 줄 안 서고 타는 표를 클룩이 저렴하게 판매하거든요. 홍콩 여행객이 반드시 깔아야 하는 여행앱이 됐는데요. ‘써봤는데 괜찮고 특색 있는 서비스가 있네’라고 여기면 그 앱을 지우지 않고 계속 쓰게 됩니다.그게 ‘넛징(nudging)’인데요. 한번 트리거 된 고객이 차별점이 있으면 그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는 거죠. 저희도 요기요만의 차별점을 만들어가는 데 방점을 찍고 있어요.”-할인 쿠폰으로 고객은 끌어올 순 있지만 ‘괜찮네, 이걸 계속 써볼까’로 넘어가려면 차별점이 필요하군요.“배달시장의 쿠폰 할인 경쟁, 사실 이게 모두에게 불편해요. 플랫폼 기업은 비용 부담이 있고, 고객들은 할인 폭이 큰 걸 찾다 보니 특정 카테고리에만 할인이 많거든요.”-주로 치킨만 할인 쿠폰을 주더라고요.“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다양한 음식을 더 즐길 수 있을까라는 점에서 포인트 적립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어요. 포인트 적립은 할인쿠폰과 달리 인기 브랜드부터 동네 맛집까지 다 혜택을 체감할 수 있고, 최소 주문 조건 같은 허들도 없으니까요.사실 치킨 마니아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왜 배달앱은 치킨만 할인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치킨·버거 같은 프랜차이즈 말고 다른 데서도 혜택을 보고 싶은 거죠. 어디에나 쓸 수 있는 포인트를 쌓아주면 (배달앱 사용) 빈도가 높아질 거라고 봐요.”-일주일에 한 번 치킨 시켜 먹던 고객이 국밥과 족발까지 시켜서 일주일에 세 번 이용하기를 기대하는군요.“저희가 커피, 편의점 포장 예약도 하거든요. 아침에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커피 포장 주문을, 저녁에 퇴근하면서 집 앞 편의점에 도시락 포장 주문을 할 때 요기요 앱을 써서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죠.”이 브랜드의 타인 추천 의향은 몇 점?-포인트 무한적립이 새롭긴 한데, 다른 데가 따라올 거란 부담은 없나요?“부담은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일단 한번 각인되고 나면, 다른 기업이 똑같은 걸 해도 사람들은 그 기업에선 그게 최우선 기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패턴이 있거든요. 그래서 최초 시작이 가장 중요합니다.그리고 그냥 ‘포인트를 적립해 주자’에서 끝나면 경쟁사가 따라 할 수 있고 더 좋은 혜택을 줄 수도 있는데요. 저희는 장기적으로 로드맵을 그리면서 그다음, 또 그다음이 있거든요. 따라와도 또 도망갈 전략을 가지고 시작했고요. 그래서 저희 개발팀이 지금 너무 바빠요.”-마케팅의 세계는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겠군요.“좀 그렇죠. 그래서 제가 스타트업 마케팅을 하면서 체득한 건 결국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마케팅의 반이라는 거예요.”-그런가요? 그 반대일 줄 알았는데요?“왜냐하면 예전엔 빅 모델을 쓴 TV 광고를 이용한 ‘푸시 마케팅(push marketing)’이 통했는데요. 이젠 고객분들이 저희보다 훨씬 똑똑해요. 모니터링하다 보면 ‘이건 천재다. 이런 건 우리도 생각 못 했는데’라는 의견이 되게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아무리 마케팅으로 포장해도, 실제 써본 고객들 반응이 너무 중요해요. 그리고 실제 제품과 서비스가 좋으면 그분들이 ‘이거 정말 좋아’라고 소문을 내죠.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풀 마케팅(pull marketing)’ 시대가 됐어요.그래서 저희는 고객이 우리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까를 가장 열심히 봐요. NPS(net promoter score), ‘타인 추천 의향’이란 지표인데요. 0점에서 10점까지 고객이 점수를 매기는 거죠.이번에 론칭한 포인트 적립 프로그램도 설문조사를 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아요. 제가 마케팅을 되게 오래 했는데, 이런 점수는 처음 볼 정도예요. 경험해 본 고객 대부분이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거죠.고객분들도 다양하게 검색하고 비교하면서 구매하는 게 사실 피로감이 있거든요. 따지지도 비교하지도 않고 그냥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조금 들던 타이밍이었죠. 그래서 더 공감대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타인 추천 의향을 중요하게 보는 건 최근 마케팅의 추세인가요?“맞아요. 글로벌 기업에선 10년 전부터 많이 보는 지표인데요. 긍정그룹(9, 10점을 준 고객) 비율에서 부정그룹(0~6점 고객) 비율을 뺀 수치이거든요. -100점부터 +100점까지 있고요. 0점 이상만 돼도 ‘그냥 좀 추천할 만해’라는 수준이고, 마이너스이면 ‘나는 쓰는데 남한테 추천하긴 좀 그래’라는 뜻이죠.나이키나 애플은 이 점수가 약 40점 정도로 굉장히 높아요. 항공사 중에선 에미레이트항공이나 캐세이퍼시픽이 40~50점 정도 되고요. 그런데 이번에 저희가 그보다 좀 더 높은 점수가 나왔어요. 그래서 포인트 적립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신다는 걸 확인했고요. 계속 쌓아나가면 저희의 충성고객과 팬덤이 조금 쌓이지 않을까 보고 있어요.”-40~50점이면 정말 상당하네요. 할인 쿠폰을 뿌리는 것처럼 단기간에 빵 터지진 않더라도, 서서히 고객에게 스며드는 효과가 있겠군요.“포인트가 쌓여있으면 계속 신경이 쓰여요. 되게 쓰고 싶어지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1원부터 쓸 수 있게 했어요. 그럼 ‘포인트 1000원이 쌓였으니, 내일 아침 커피 마실 때 써볼까’라며 설레는 마음이 들게 되죠. 쿠폰은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아요. 쿠폰을 A가 주든, B가 주든 다 똑같거든요. 그것과 포인트는 다르죠.”쿠팡의 위기, 네이버 생태계엔 기회?-포인트 적립을 내세운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사례도 참고했을까요?“네, 유심히 봤는데요. 쿠팡은 빠른 배달, 무료 배달 혜택이 크지만 ‘내가 쿠팡에서 많이, 자주 주문한다고 좋은 게 있나’에 대한 고민이 있거든요. 네이버 쇼핑은 주문할 때마다 포인트가 쌓이다 보니, 결제할 때 ‘어머, 이 포인트가 어디서 생겼지’라고 하는 효과가 있죠.요기요는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생태계 안에 들어가 있어요(네이버 플러스 멤버십 구독자엔 요기요의 무료 배달 멤버십 혜택 제공). 네이버 플러스 멤버십을 이용하면 ‘네이버 쇼핑 적립+넷플릭스 또는 스포티파이+요기요 무료 배달’의 종합적인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데요. 이제 쿠팡 와우 멤버십(빠른 배송+쿠팡플레이+쿠팡이츠 무료 배달)만큼 경쟁력 있다는 얘기가 많이 나와요.”-해킹 사건 이후 쿠팡 이용자가 줄었다는 보도가 나오더라고요. 혹시 그로 인한 반사 효과가 나타나나요?“지표로 영향이 보이긴 하지만, 아직 너무 초반이라 얘기하긴 조심스럽고요. 최근 쿠팡과 유사하게 C커머스(중국 온라인 쇼핑몰)도 좀 하락하는 패턴이긴 해요. 개인 정보 등에 대한 불안심리 때문이죠.”-쿠팡은 아까 말씀하신 타인 추천 의향 점수가 낮은 브랜드일 것 같은데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팡이 건재할 수밖에 없는 건 ‘대체 불가능한 상태’에 갔기 때문이에요. 카카오도 그랬죠. 카카오가 최근 큰 논란이 있었지만, 타격은 없었어요.”-배달앱 시장 경쟁이 워낙 치열하잖아요. 마케팅 일은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날그날 지표 때문에 스트레스도 너무 많을 것 같은데요.“많은 분들이 (어떠냐고) 물어보시는데요. ‘진짜 재밌는데, 진짜 힘들다’라고 얘기해요. 그런데 과거 야놀자에 입사했을 때도 야놀자가 여기어때에 밀렸고요. 거의 매일 엎치락뒤치락했는데요. 바로 거기에 기회가 분명히 있었어요.왜냐하면 둘이 비슷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니까 계속 물린 건데요. ‘이 서비스와 뭐가 달라?’라는 데 초점을 두고 분리시켜서. 결국 ‘초특가’라는 한 단어로 남겼고요. 그렇게 하고 나니 서로 각자 잘하는 걸 하는 타이밍이 왔어요.배달앱 시장도 지금은 다 한덩이로 묶여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조금 다른 게임체인저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저희가 단독으로 하는 그 무언가가 생기면 비교를 안 하는 시기가 좀더 빨리 올 거고요. 그럼 (이용자가) 누적적으로 쌓이고 이탈이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걸 만드는 게 지금은 힘들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있긴 한데요. 같이 하는 모든 분들과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간다는 느낌과 성취감이 있어요.”두바이 쫀득쿠키와 공감능력-목표 없이 엎치락뒤치락만 하는 게 아니라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게 다르네요. 그런데 마케팅을 하면 아무래도 요즘 핫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도 많이 아셔야 할 것 같아요.“맞아요. 사람들이 뭐에 열광하는지를 끊임없이 봐야 하니까요. 아마 마케팅 부서에서 밈을 가장 많이 아는 게 저일 거예요. 이건 제 영업 비밀이긴 한데, 저는 X(옛 트위터) 계정이 5개가 있어요. 아이돌 덕질 계정, 시네필 계정, 맛집 탐방 계정 등.”-그래야지 알고리즘에 따라 관련된 걸 쭉 볼 수 있군요.“X처럼 정보가 가장 빨리 올라오는 공간이 있거든요. 그걸 통해 트렌드 흐름, 어떤 식으로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는지 그 경로를 파악해요.”-마케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요. 마케터엔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요?“하나는 호기심, 달리 말하자면 공감능력이에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정리하는 마케터들이 많은데요. 사람들은 아무리 좋고 맛있는 거여도 ‘요즘 관심 있는 거’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해요.예를 들어 최근 검색 상위권에 있는 가장 핫한 키워드는 ‘두바이 쫀득 쿠키’이거든요. 그런 걸 빨리 캐치해서 보여드리는 게 저희 역할입니다. 저희는 플랫폼이니까요.그래서 공감능력이 뛰어난 게 1번이에요. 아무리 능력 있고 스펙이 좋아도 공감능력이 떨어지면 늘 뭔가 2% 아쉽죠.두 번째는 사실 모든 일이 그렇긴 한데 집요함이 있어야 해요. 캠페인을 하다 보면 기업은 이것저것 다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해요. 왜 A가 주력상품인데 A는 안 넣냐, A만 넣으면 B는 어떻게 하냐, 이런 의견이 정말 많거든요.하지만 마케터는 처음 냈던 그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가서 세상에 내보여줘야 해요. 그 모든 걸 설득해서 마지막까지 랜딩시키는 게 가장 어렵죠. 물론 그러려면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필요하고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2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중국판 스타벅스’ 신화에서 ‘사기 기업’으로 추락했던 루이싱커피(瑞幸, Luckin Coffee). 나스닥 상장폐지, 거액의 벌금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는데요.하지만 기사회생에 성공한 루이싱커피는 이미 중국 시장에서 스타벅스마저 제쳤고요. 이젠 나스닥 재상장을 추진한다며 블루보틀 인수설까지 나옵니다. 지난 5년 동안 이 기업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루이싱커피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2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매출 절반이 가짜였다“루이싱커피는 실적을 조작한 사기 기업이다. 매장 주문량은 최소 88% 부풀려졌다.”2020년 1월, 공매도 전문 투자회사 머디워터스 리서치의 89페이지짜리 보고서가 시장을 뒤흔듭니다. 창업 18개월 만인 2019년 5월 나스닥에 상장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기업’이었던 루이싱커피. 놀라운 주가 상승률로 전 세계 투자자들을 열광케 했던 기업의 실체가 까발려진 거죠.그해 4월 루이싱커피가 발표한 자체 조사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2019년 2~4분기 조작된 매출이 무려 22억 위안(약 4600억원). 공시한 매출의 절반이 가짜였습니다. 창업자 루정야오 회장 본인과 친척 소유 기업들이 거액의 커피 상품권을 구매한 것처럼 거래를 조작했던 거죠. 주가를 띄우기 위해서요.하루 만에 주가가 75% 급락했고, 시총 약 50억 달러(7.4조원)가 사라집니다.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졌고요. 결국 2020년 6월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됐죠. 한때 51.83달러를 찍었던 주가는 거래 마지막 날 1.38달러였습니다. 그해 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루이싱커피에 1억8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합니다.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루이싱커피의 현재 상황을 살펴볼까요.-2020년 4000여 개였던 중국 매장 수는 이제 2만9096개로 늘었습니다. 이미 2023년 중국 내 매장 수는 물론 매출로도 스타벅스를 제쳤고요. 중국에선 단연 1위 커피전문점입니다.-2020년 40억 위안(약 8400억원)이었던 매출은 올해 500억 위안(10.5조원) 돌파가 예상됩니다. 전년 대비 약 50% 성장입니다.-2023년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홍콩에도 진출했고요. 올해 6월엔 맨해튼 한복판에도 매장을 내며 뉴욕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망하기 일보 직전이던 과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게 부활했는데요. 신뢰를 잃고 사기 기업으로 손가락질당했던 루이싱커피. 이젠 ‘기사회생의 아이콘’이 됐습니다.이름만 빼고 다 바꾼 기업완전히 망가진 기업은 어떻게 재탄생할 수 있을까요. 사기 스캔들 이후 루이싱커피 경영을 이끈 건 창업멤버이자 전 제품 담당 부사장이었던 궈진이(郭謹一) CEO인데요. 그는 “진상 규명과 지배구조 개혁”이 재건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합니다.우선 스캔들이 터지자마자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한 특별위원회가 대대적인 진상조사를 벌였고요. 회계 부정을 주도한 창업자 루정야오 전 회장과 첸즈야 전 CEO는 곧바로 이사회에서 축출됐습니다. 부정행위에 가담한 팀 전원도 ‘영구 제명’됐고요. 행여 이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사기를 저지른 전 경영진은 주식 의결권을 가질 수 없다’라고 정관에 명시하기까지 했죠. 과거와 완전히 선을 그은 겁니다.새로운 최대 주주로 올라선 건 중국 사모펀드 센추리움캐피탈.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불투명한 가족 기업 체제에선 벗어나게 됐는데요. 이렇게 파산 위기는 간신히 넘겼지만, 사기가 땅에 떨어진 직원들을 다시 뭉치게 할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궈진이 CEO는 이걸 기업문화에서 찾았죠.“스캔들 이전, 루이싱엔 명확한 사명이나 가치관이 없었어요. 그런 걸 논의해본 적도 없었죠. 10만명 넘는 직원이 같은 목표를 나아가게 할 원동력은 무엇일까. 해답은 기업문화에 있었어요. 우린 사명과 핵심 가치를 재정의했고요. 부서 간 장벽을 허물었죠.”‘행운의 순간을 창조하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열정을 고취한다’라는 기업 사명이 새로 생겨났고요. ‘진실 추구와 실용주의’가 기업 핵심 가치가 됩니다. 예전엔 제품개발, 마케팅, 매장 운영 부서가 각각 따로 일했고, 서로 정보 공유도 되지 않았는데요. 이젠 모든 재무·운영 데이터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유됩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다른 기업보다 일부러 더 과도할 정도로 투명성을 강조한 거죠.커피를 판다? 트렌드를 판다!1999년 중국에 진출해 중국 커피 시장을 개척한 미국 스타벅스. 2020년대 초반까지 여전히 스타벅스의 벽은 높았습니다. 주요 상권의 가장 좋은 입지를 차지한 데다, 브랜드 면에서도 강력했으니까요. 궈진이 CEO는 스타벅스와 경쟁하기 위해선 스타벅스와는 전혀 다른 전략을 써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른바 ‘코카콜라 전략’이죠.“코카콜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부터 청소부까지 모두가 마십니다. 아무도 코카콜라를 저가 브랜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국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선 수익성이 높으면 반드시 도전받게 됩니다. 만약 루이싱이 컵당 5위안을 벌면, 3위안만 버는 경쟁사가 진입하겠죠. 하지만 우리가 컵당 3위안만 남긴다면 신규 진입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코카콜라 전략입니다. 코카콜라는 병당 3위안에 판매하는데, 신규 브랜드는 이 가격을 따라갈 수 없죠.”루이싱커피는 2017년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저렴한 가격과 ‘첫 잔 무료’ 같은 공격적인 프로모션으로 승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성비 전략을 이어가죠. 효율성을 높인 모바일 앱 주문과 테이크아웃 위주 매장으로 비용을 줄인 덕분에 가능하다는데요. 루이싱커피 앱에선 여전히 각종 할인과 프로모션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여기엔 중국 커피 시장이 지금보다 열배, 스무배로 커질 거란 믿음도 깔려있습니다. “중국 소비자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평균 10잔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2023년 기준 16.7잔). 선진국은 100~200잔 수준이죠(한국은 2023년 기준 405잔). 중국 커피 산업은 고속 성장 궤도에 올라왔고, 앞으로 최소 10년은 성장 기회가 존재합니다.”루이싱커피는 커피 맛으로 승부하는 브랜드는 아닙니다. 그리고 중국 소비자는 아직 커피 맛을 잘 모르거나 커피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많죠. 루이싱커피는 이들을 겨냥해 물량공세로 승부합니다. 매년 100개 넘는 신메뉴를 쏟아내고 있죠(2021년 113, 2022년 140, 2023년 102, 2024년 119개 메뉴 출시).마오타이주를 넣은 ‘마오타이 라떼’ 같은 콜라보(협업) 제품이 큰 화제가 됐고요. 벨벳라떼, 오렌지C아메리카노, 애플 피지 아메리카노 등 창의적인 베스트셀러 음료가 탄생했죠. 중국 소비자가 카페에 가는 건 커피 맛보다는 트렌디함 때문이란 걸 간파한 결과입니다. 사실상 커피시장이 아니라 전에 없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죠.특히 2021년 선보인 코코넛라떼는 ‘루이싱을 구했다’는 평을 받는 메뉴인데요. 중국인 입맛에 맞지 않는 귀리우유 대신 달달한 코코넛 밀크를 넣어 비건 메뉴로 개발했고요. 하루 200만 잔, 누적으로 17억 잔이 팔릴 정도로 대히트를 쳤습니다.가격전쟁과 뉴욕 상륙2023년 중국 내 매장 수와 매출에서 모두 스타벅스를 추월하며 선두로 올라선 루이싱커피.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경쟁자가 등장합니다. 2022년 10월 설립된 쿠디(庫迪·Cotti) 커피. 매장의 3분의 2가 직영점인 루이싱커피와 달리 100% 프랜차이즈 모델을 도입한 커피체인이었는데요.그 창업자는 루정야오와 첸즈야. 바로 2020년 회계부정으로 루이싱에서 쫓겨난 전 경영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일종의 ‘복수전’에 나선 셈이었죠.쿠디커피는 ‘가맹비 제로’와 보조금 지급을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매장을 늘려 나갑니다. 루이싱커피 매장 바로 옆에 쿠디커피 매장이 속속 들어섰죠. 쿠디의 가장 큰 무기는 뭐니 뭐니 해도 가격. 초반부터 ‘1000개 매장 커피 축제’를 열고 70여종 제품을 9.9위안(약 2000원) 할인판매하는 프로모션을 펼칩니다.루이싱커피도 가만히 있진 않았죠. 2023년 ‘만개 매장 동시 축하’ 행사를 열고 모든 매장에 9.9위안짜리 할인 쿠폰을 뿌리며 반격했는데요. 이를 기점으로 중국 커피 업계 전체가 치열한 가격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됩니다. 특히 쿠디커피는 주요 제품 가격을 8.8 위안, 4.8위안, 때론 1위안대까지 낮추는 프로모션까지 잇달아 선보이며 총공세에 나섰죠.6월 말 현재 쿠디커피 매장 수는 약 1만5000개. 중국 커피 브랜드 중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루이싱커피는 자기와 너무나 비슷한 경쟁상대와 맞붙게 된 거죠.2년 넘게 이어진 이 치열한 가격 경쟁은 루이싱커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3분기 실적을 보면 회사 전체 영업이익률(15.5→11.6%), 직영점 1곳당 마진율(23.5→17.5%) 모두 하락세입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가까워지고 매장이 너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전환점이 찾아오고 있는 거죠. 바로 그게 루이싱이 해외 진출 속도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현재 해외 매장 수는 100곳 남짓. 뉴욕의 경우, 올해 6월 처음 매장을 연 뒤 벌써 9개로 늘렸는데요. ‘첫 모바일 주문 시 1.99달러’ 같은 이벤트와 미국엔 없던 새로운 메뉴로 뉴요커를 공략 중이죠.루이싱커피 궈진이 CEO는 지난달 눈길을 끄는 발표도 내놨습니다. “미국 나스닥 메인보드 재상장을 추진 중”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건데요. 금융사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루이싱이 다시 나스닥에? 결코 쉽지 않을 텐데요. 3만개에 육박하는 매장 수와 10조원 넘는 연 매출을 보면 불가능하진 않을지 모르죠. 최근엔 루이싱커피가 네슬레 소유의 고급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인수를 검토 중이란 보도도 나왔습니다. 이 역시 나스닥 재상장을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오죠. 미국 스타벅스조차 두 손 들고 경영권을 매각하게 만든 치열한 중국 커피시장. 루이싱커피는 지금의 선두 지위를 지키고, 쿠디커피의 맹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까요. 알 순 없지만 일단은 무조건 전진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입니다. By.딥다이브한국 커피시장에서도 요즘 저가커피 브랜드가 판을 뒤흔들고 있죠. 결국 가성비를 이길 전략이란 없는 걸까요. 모두가 ‘코카콜라 전략’을 쓴다면 과연 누가 승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2020년 나스닥을 뒤흔든 회계부정 사기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루이싱커피. 모두가 망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죽지 않고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어느덧 매장 수가 3만개에 육박하죠.-스캔들 직후 부정행위 가담자와 연을 끊고 지배구조를 바꿔 기업을 재탄생시켰습니다. 기업의 핵심가치는 ‘진실 추구’가 됐죠.-가성비가 중심이 되는 ‘코카콜라 전략’은 루이싱커피의 가장 큰 무기이죠. 매년 100개 넘는 신메뉴를 쏟아내는 물량공세를 펼치며 스스로 소비트렌드를 만들어냅니다.-하지만 루이싱커피 전 경영진이 만든 쿠디커피의 등장으로 중국 커피 시장은 치열한 가격전쟁 소용돌이에 빠졌는데요. 나스닥 재상장으로 이를 뚫고 나가려 하는 루이싱커피. 한번 신뢰를 잃은 기업을 시장이 다시 받아줄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2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요즘 우리나라는 고환율, 즉 원화 약세가 큰 이슈죠. 치솟은 원달러 환율 때문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하를 멈추고, 정부는 수출 기업의 달러 환전을 독려할 정도인데요.이와 정반대로 통화가치가 너무 강해서 난리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태국이죠. 12월 16일 기준 태국 바트화 환율은 1달러당 31.4바트. 올해 들어 통화가치가 10% 넘게 뛰면서 관광산업도, 농산물 수출도 비상 상황인데요. 경제 성장이 그리 강하지도 않은데, 바트화 가치만 무섭게 뛰는 게 영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 숨은 이유가 서서히 드러나는 중이죠. 태국 바트화 강세의 미스터리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2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바트화가 뛴 만큼 관광객이 줄었다-9.8%. 태국 관광청이 예상하는 2025년 외국인 관광객 수 증가율입니다. 전 세계 하늘길이 막히다시피 했던 팬데믹 시기도 아닌데, 이 정도로 급감하다니. 관광대국 태국으로선 굴욕이 아닐 수 없는데요.홍수, 국경 분쟁, 범죄 증가 등. 여러 원인이 거론되지만, 무엇보다 큰 건 환율입니다. 바트화 환율이 2021년 6월 이후 최저로 떨어지면서(=바트화 강세) ‘가성비 좋은 동남아 관광지’라는 장점이 사라져 버렸고요. 다른 동남아 경쟁국(예-베트남)으로 관광객을 뺏기게 된 거죠.관광 성수기에 접어든 파타야 지역 언론은 이렇게 한탄합니다. “파타야를 찾는 관광객에 이번 시즌 가장 큰 충격은 교통 체증, 무더위, 치솟는 식료품 가격이 아닌 환율이다. 한때는 합리적이었던 것들이 이젠 빠듯하게 느껴진다. 술집, 식당, 마사지샵, 시장 상인들은 고객들이 방문할 때 쓰는 돈이 줄어들고 가격에 더 민감해졌다고 말한다.”올해 초 1달러당 34.61바트였던 환율은 이제 31.41바트. 이를 통화가치로 환산하면 10.1% 넘게 뛰었습니다. 통화가치 상승률과 관광객 감소율이 거의 일치하죠.관광산업만 비상이 아닙니다. 태국 수출 기업도 타격을 받았죠. 안 그래도 미국의 트럼프 관세 충격이 여전한데, 환율 때문에 가격 경쟁력마저 떨어졌습니다. 특히 쌀, 고무, 과일 같은 예전엔 저렴했던 태국산 농산물이 이제 해외에서 비싸지면서 수출이 내리막입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태국으로선 큰일이죠.이전과 똑같은 물량을 수출한다 해도, 손에 쥐는 바트화 기준 수익은 줄어드니 수출 기업은 울상일 수밖에 없는데요. 포즈 아람왓 타나온 태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정부의 환율 대책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바트화의 과도한 강세는 태국 경제의 잠재력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저해합니다.”이게 금 투기 때문이라고?태국 통화가치는 왜 이렇게 올랐을까요. 한동안 태국 정부는 ①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인한 달러화 약세 기조와 ②경상수지 흑자 확대, 이 두 가지를 이유로 설명해 왔는데요. 하지만 약달러 영향은 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 공통이고요. 경상수지 흑자라고 무조건 다 통화가치가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1~10월 누적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이지만, 원화 약세에 시달리는 한국을 보면 알 수 있죠.그리고 올해 태국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바트화가 약세로 가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이웃 나라 캄보디아와 국경 분쟁으로 무력 충돌을 빚었고요. 패통탄 친나왓 전 총리가 취임 1년 만에 해임될 정도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했거든요. 신흥국에서 이 정도 혼란이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자가 발을 빼면서 통화가 약세를 보이기 마련인데요. 그 반대로 간 겁니다.도대체 중력을 거스르는 바트화 가치 급등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각종 분석이 쏟아졌고요. 지난 9월 태국 중앙은행이 한 곳을 지목합니다. 태국의 금 거래 시장이었죠.올해 내내 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투자처였죠. 국제 금값은 60% 넘게 급등했는데요. 전통적으로 태국인은 금을 좋아하고 금에 많이 투자합니다. 대대로 금을 물려주는 집이 많고, 그래서 민간이 보유한 금의 양이 상당한데요. 올해처럼 금값이 무섭게 뛸 때면 태국인들은 집안에 고이 간직해뒀던 금을 내다 팔곤 합니다. 그리고 금은방은 이렇게 확보한 금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팔죠. 그러면서 태국의 금 수출이 급증했는데요.올해 1~9월 태국의 금괴(가공되지 않은 금) 수출액은 3645억 바트(약 17조원). 2024년 같은 기간보다 100% 넘게 급증했습니다. 유례없는 대호황이었죠.전 세계적으로 금 투자가 유행하면서 금을 사려는 외국 자금이 이례적으로 밀려들었고, 그래서 바트화 가치가 이상 급등했다. 이게 당시 태국 중앙은행의 해석이었습니다.“금값은 바트화의 주요 변동 요인입니다. 금값이 오르면 바트화는 다른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반대로 금값이 하락하면 다른 통화보다 더 큰 폭으로 약세를 보입니다.” (태국 중앙은행 금융시장부의 파비니 짓몽콜세마 수석이사)정체불명의 자금 수십조원이 들어오다미친 금값 때문에 태국 통화가치가 덩달아 널뛴다? 제법 설득력 있는 해석이었습니다. 올해 금 투기 열풍이 유별나긴 했으니까요. 이에 태국 중앙은행은 바트화 강세를 막겠다며 금을 살 때 붙이는 세금, 즉 ‘금세’ 신설까지 검토하고 나섰는데요.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았습니다. 왜 금 투기 수요가 다른 데가 아닌 유독 태국으로만 몰리는 거죠? 그 금을 사 간 외국인들은 도대체 누구죠?이렇게 바트화 미스터리가 말끔히 풀리지 않던 중, 태국의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해석을 내놓습니다. 키앗나킨 파트라금융그룹의 수석 경제학자인 피팟 루앙나루미차이 박사, 국가경제사회개발위원회의 수파부드 사이추 위원장이 그 주인공인데요. 바트화 강세의 진짜 원인은 금 수출이 아니라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의 대량 유입이란 주장이었죠.그들은 태국의 국제수지 통계에서 경상수지나 자본수지로 설명되지 않는 ‘오차 및 누락(Net Errors & Omissions)’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데 주목했습니다. 특히 2024년 연간 통계에선 이 규모가 무려 5300억 바트(약 25조원)로 불어났는데요. 통계에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구멍이 커도 너무 큽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해외 자금의 비정상적 유입. 이건 혹시 불법 자금세탁의 흔적 아닐까요?경제학자들의 이런 문제 제기는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범죄집단의 불법 자금이 태국으로 밀려들고 있다’, ‘태국이 세계적인 자금세탁 중심지로 전락했다’며 여론이 들끓었고요. 중앙은행이 나서서 “국제수지의 오차·누락 규모가 꼭 불법 자금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차피 그게 불법 자금인지 아닌지는 중앙은행도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결국 정부가 움직였습니다. 총리 지시로 재정정책국·중앙은행·증권거래소·자금세탁방지국·증권거래위원회가 특별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죠. 바트화 강세의 주범으로 지목된 설명할 수 없는 대규모 자금 유입, 그 출처를 밝혀내기 위해서입니다.뒷문 열린 태국, 불법자금 놀이터 됐다그럼, 범죄자금은 어떤 식으로 태국으로 흘러 들어갔을까요. 아직 정부 TF의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오진 않았는데요. 많은 이들이 의심하는 유력한 통로는 가상화폐 거래소입니다.범죄집단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불법 자금을 가상화폐로 관리하는 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죠. 하지만 검은돈을 영원히 코인으로 둘 순 없고, 언젠가는 이를 현금화해야 할 텐데요. 한국처럼 법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도 깐깐하게 고객 신원을 확인하는 나라에선 이게 쉽지 않죠. 규제가 가장 약한 곳을 통해 빠져나갈 텐데, 태국이 바로 그런 나라입니다.태국은 가상화폐의 바트화 환전을 규제하는 법률이 아직 없고요. 따라서 별다른 고객 신원확인 절차 없이 가상화폐를 얼마든지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는데요. 이렇게 바트화로 바뀐 불법 자금은 다시 태국에서 금괴나 호화 콘도, 회사채, 주식 매입으로 흘러갑니다. 검은돈이 태국의 금융·부동산 시장을 거치면서 합법적인 자금처럼 완전히 세탁되는 거죠. 그 결과 시장에선 바트화 유동성이 고갈되면서, 통화가치는 급등하게 됩니다.왜 태국의 금 수출, 특히 캄보디아로의 수출이 급증했는지도 짐작할 수 있죠. 캄보디아를 기반으로 한 범죄집단이 가상화폐를 거쳐 태국에서 바트화로 환전한 돈으로 금을 사고요. 그 금괴를 캄보디아로 보내 자금세탁을 완결하는 겁니다. 즉, 금 수출의 비정상적 급증은 바트화 강세의 원인이 아니라 최종 결과물인 셈이죠.그리고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달 초 태국 정부는 미국 연방수사국(FBI) 정보를 받아 국제 사기 조직이 태국에서 보유해 온 불법 자산 약 100억 바트(약 4600억원) 어치를 압류했는데요. 적발된 건 캄보디아를 기반으로 하며 국경을 넘나들며 사기 행각을 벌여온 조직-‘임 리악-벤 스미스’, ‘콕 안’, 프린스그룹 천즈 회장-이었고요. 압류된 자산엔 은행 예금, 토지, 콘도미니엄, 유가증권, 요트, 고급승용차 등이 포함됐습니다. 그만큼 막대한 범죄자금이 태국으로 흘러들어와 있었던 거죠.특히 일부 태국의 전현직 고위급 정치인들이 사업가를 가장한 이 범죄조직 수괴들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드러났는데요. 혹시 이 사기꾼들이 태국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었던 걸까요. 사건이 정치 스캔들로 번질 조짐입니다.역대급 바트화 강세가 태국 경제의 성장 때문이 아니라 범죄집단의 불법 자금 유입 탓이었다니. 태국 국민들로선 분통 터질 일입니다. 어차피 해외여행을 즐기거나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상류층이 아닌 한 바트화 강세로 덕 볼 일은 거의 없고요. 오히려 그로 인한 피해를 쌀 수출이 줄어든 농가, 관광객 감소로 타격받은 상인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으니까요.태국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일단 금융기관의 정보를 한 데 묶어서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을 감시하는 ‘데이터국’을 설립했고요. 내년엔 자금세탁방지법을 개정해 규제를 더 촘촘히 할 예정이죠. 금융 범죄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도 약속했고요. 중앙은행은 금은방들이 매일 거래 내역을 보고하도록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참, 뒤늦은 대응이 아닐 수 없는데요. 정부가 제 역할을 소홀히 하면 이런 황당한 상황에 처할 수 있군요. 바트화 급등의 미스터리는 어느 정도 풀렸지만, 이 비정상적 상황이 언제쯤 바로잡힐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지난 6월 1바트에 41원이던 바트화 환율이 이제 46.8원까지 뛰었습니다. 우리 원화는 약세, 바트화는 강세인 탓이죠. 두 나라 모두 환율 때문에 난리로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태국 바트화 강세가 심상찮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10% 넘게 통화가치가 뛰었는데요. 그 결과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크게 줄면서 관광산업은 비상이고요. 쌀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에도 타격이 큽니다. -태국 경제 성장이 그리 강하지도 않은데, 통화가치만 왜 이리 뛰었을까요. 한동안 태국 금시장의 이례적 호황이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세계적인 금 투기 열풍이 불면서 태국의 금 수출이 급증한 탓이란 해석이었죠.-하지만 진짜 원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요. 전문가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의 대량 유입을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동남아 사기 범죄 집단이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 범죄 수익을 태국에서 현금화하고 있다는 추측이죠. 실제 이런 식으로 태국에 유입돼 부동산, 주식시장으로 흘러든 불법 자금이 적발되고 있습니다. 태국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 중이죠.*이 기사는 12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12월 10일. 미국 해안경비대가 베네수엘라의 대형 유조선을 해상에서 나포했습니다. 독재자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찮은 가운데, 베네수엘라가 다시 글로벌 뉴스의 핫이슈로 떠오르는데요.한때 중남미 최고 부국이었지만 이제 ‘망한 나라’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베네수엘라. 여기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가 매장된 축복받은 땅이라는 걸 아시나요. 땅만 파면 석유가 펑펑 쏟아질 텐데, 어째서 나라 경제는 이 지경이 됐을까요. 흔히 ‘이게 다 포퓰리즘 탓’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오늘은 자원의 저주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2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너무 가난해진 석유부국지난 12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3분의 1토막 났습니다(2012년 3725.9억 달러→2024년 1198억 달러). 최근 10년 동안 780만명 국민이 나라를 떠나 난민 신세가 됐죠. 인구의 82%가 빈곤층, 특히 53%는 기본적인 식료품조차 살 수 없는 극빈곤층인 나라(UN 특별보고관 성명). 바로 남미 베네수엘라 이야기입니다.전쟁이나 내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화 시기에 이런 심각한 경제위기라니. 현대사에선 전례 없는 일인데요. 과거 1970년대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베네수엘라이기에 더 극적이면서도 자멸적인 몰락입니다.그리고 이 이야기 중심엔 석유가 있습니다. 1922년 마라카이보 호수 근처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된 이래, 지난 100년 동안 석유는 베네수엘라 경제를 지탱해 온 기둥이었죠. 베네수엘라의 확인된 매장량 규모는 무려 3030억 배럴. 전 세계 매장량의 17%로 압도적인 1위입니다.하지만 베네수엘라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고작 100만 배럴 수준. 전 세계 생산량의 1%가량을 차지할 뿐입니다.그럼 베네수엘라는 왜 그 많은 석유를 파내지 못하는 걸까요. 흔히 ‘미국 제재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1954~2013년)이 등장하죠.혁명의 돈줄이 된 석유공사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유가 폭락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휘청거렸던 1998년. 붉은 베레모를 쓴 카리스마 넘치는 전직 공수부대원 우고 차베스는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킵니다. 부유한 나라였지만 정치를 지배한 소수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상당했거든요. 가난한 이를 위한 의료·교육 확대 같은 이른바 ‘볼리바르 혁명’ 약속과 함께 차베스가 대통령에 오릅니다.혁명엔 돈이 필요한 법. 차베스는 국영석유공사 PDVSA 장악에 나섭니다. PDVSA는 그 나라 최고의 돈줄이니까요.이전까지 PDVSA는 공기업이지만 매우 독립적으로 운영됐습니다. 당시 세계 4위 석유회사였을 정도로 수익성 좋고 잘 나가는 기업이었죠. 최첨단 시설은 하루 350만 배럴의 생산량을 기록했고요. 조만간 이를 두 배로 늘린다는 야심 찬 계획도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상당한 고임금을 받는 그 나라 최고 엘리트들이었고요. 당연히 서민 기반의 차베스 정권과는 정치 성향이 크게 달랐는데요.차베스는 기존 임원들을 줄줄이 내쫓고 요직을 전문성 없는 측근들로 채워갑니다. PDVSA 노조는 이에 저항해 대대적으로 들고 일어났고요. 무려 두 달에 걸친 총파업이 벌어집니다. 이들이 생산시설 가동을 중단시키면서, 한때 이 나라 석유 수출이 마비될 정도였는데요.파업은 결국 진압됐습니다. 차베스의 인기가 워낙 높았고, 기득권 귀족 노조의 파업에 일반 대중들이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파업에 참여한 PDVSA 직원 중 즉각 복귀 명령을 따르지 않은 1만8000명이 한꺼번에 해고됐습니다. 주로 중간 직급 이상의 숙련된 엔지니어들이었죠. ‘석유 뿌리기’의 마법적 효과차베스가 장악한 PDVSA는 혁명의 재정적 동력이 됩니다. 무료 진료소, 저렴한 국영 식품 가게 ‘메르칼’, 새로운 공공주택 건설, 무료 안과 진료·수술, 장학금, 무료 교육 프로그램. 각종 파격적인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이 PDVSA가 석유 팔아 번 돈으로 펼쳐집니다. 이른바 ‘석유 뿌리기(Sowing the oil)’ 정책이었죠.PDVSA는 아예 기업 차원에서 이런 사회사업을 직접 운영했습니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공무원 조직보다 PDVSA가 유능하다고 본 차베스가 이를 맡긴 거죠. 그 결과 PDVSA는 본업을 위한 운영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사회 사업에 쏟아붓게 됩니다. 거의 석유기업이라기보다는 ‘유전을 보유한 사회적 기업’이나 마찬가지가 된 거죠.무료 의료, 무상 교육,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휘발유. 복지 수혜를 입게 된 서민들은 열광했습니다. 언론인 피터 마스는 2005년 PDVSA가 운영하는 2만평 규모의 ‘자생적 개발센터’에 방문했던 기록을 책에 남겼는데요. 센터 내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작업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PDVSA는 이제 모든 베네수엘라인의 것입니다. 이전엔 소수 집단만이 그 이익을 누렸죠.”실제 통계로 봐도 차베스 집권기인 1999~2012년, 빈곤율은 극적으로 감소했습니다(49.4→23.9%). 실업률도 절반(15→7.4%)으로 뚝 떨어졌고요. 경제 지표는 분명 좋아졌고, 많은 이들은 차베스의 경제이념 차비즘(Chavism)의 마법이라고 환호했습니다.하지만 사실 이 마법을 만든 진짜 주인공은 차베스가 아니라 국제유가였습니다. 차베스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로 폭락해 바닥일 때 당선됐고요. 그가 취임하자마자 국제유가는 뛰기 시작해 배럴당 100달러대로 치솟았습니다. 베네수엘라는 고유가라는 일종의 복권에 당첨된 셈이었죠. 그리고 차베스는 이 행운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그렇게 지출을 늘렸습니다. 베네수엘라 경제 전체가 정부의 재정 지출에 의존하게 됐고요. 그 돈줄은 사실상 석유, 하나뿐이었죠.파티가 끝나자 초인플레가 닥쳤다2012년 말,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차베스 대통령은 외무장관이던 니콜라스 마두로를 후계자로 정합니다. 버스 운전기사 출신 노동운동가였던 마두로는 카리스마도, 소통 능력도 떨어지는 인물이었죠. 2013년 차베스 사망 뒤 열린 대선에서 그는 50.6%의 낮은 득표율로 간신히 집권합니다.그리고 2014년, 수년간 100달러대로 고공행진하던 국제유가의 추락이 시작됩니다. 유가 거품으로 떠받쳐온 베네수엘라 경제도 무너지기 시작하죠.베네수엘라 경제엔 이런 위기에 대비한 안전장치가 없었습니다.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다른 산유국처럼 석유 팔아 번 돈을 ‘국부펀드’로 모아두질 않았던 거죠. 오히려 호황기에 워낙 공격적으로 복지지출을 늘린 탓에 정부 부채만 1000억 달러 넘게 쌓여있었는데요.유가 추락으로 수출이 급감하자 외환보유고는 텅 비어갔고요.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재정적자는 더 무섭게 불어나고 수입 물가는 뛰기 시작합니다. 총체적 난국이었죠.이럴 땐 사실 방법은 하나뿐. 세수 늘리고 지출 줄이는 긴축재정으로 재정 구멍부터 메워야 하는데요. 마두로 정부는 이를 거부합니다. 대신 중앙은행을 동원했죠. 화폐를 마구 찍어내서 예산을 충당하게 됩니다. 통화 공급량이 매달 20~30%씩 증가했죠.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네,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물가가 급등했고, 그러자 정부는 재정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돈을 더 찍었고, 그 결과 미친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덮쳤습니다. 중앙은행이 발표한 2018년 물가상승률은 무려 13만%. 볼리바르화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티슈 대신 지폐로 닦는 게 낫다는 말이 나왔죠.정부는 인플레이션에 맞서 가격 통제를 실시했습니다. 하지만 제품 팔아서 원가도 못 건지게 된 제조업체들은 줄줄이 생산을 포기했고요. 마트에선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사라집니다.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게 된 국민들이 베네수엘라를 탈출하기 시작하죠. 페루, 칠레, 콜롬비아, 멀게는 미국과 스페인까지. 이주 행렬이 이어집니다. 로사리오대학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조국을 떠난 베네수엘라 국민은 약 780만명.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죠.땅속 석유를 파낼 수 없는 이유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2015년 말 30달러대까지 급락했던 국제유가는 이후 다시 회복세를 보였고, 2022년엔 100달러를 넘기도 했거든요. 베네수엘라는 왜 이런 유가 상승 덕을 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수렁에 빠져있을까요.여기서 과거 차베스 경제정책의 실책이 드러나는데요. 바로 2003년 대규모 해고로 석유공사 PDVSA의 기술 경쟁력을 무너뜨린 겁니다.땅속에 묻힌 석유, 그냥 구멍 뚫어서 파내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류층의 지질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엔지니어의 전문지식이 필수인데요. 그런 최고의 전문 인력들이 20여년 전 뭉텅 잘려 나갔습니다.이후 PDVSA 요직은 속속 정부 충성파 측근들로 채워졌고요. 특히 마두로 대통령 취임 뒤엔 그나마 남아있던 전문가들마저 잘리고, 경영진을 군부 출신 비전문가들로 죄다 채웠는데요.전문성 없는 낙하산들이 무슨 경영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전문인력을 기르지도, 최신 설비에 투자하지도 않았죠. 자연히 생산량은 줄어들고, 시설은 노후화되고, 인력 이탈은 더욱 가속화됐습니다. 로이터 기사에 따르면 PDVSA는 국가방위군 신병을 기술직에 배치할 정도로 인력 부족이 심각하고요. 베네수엘라의 송유관은 지난 50년 동안 개보수된 적이 없을 정도로 낡았죠.지질학적 조건도 불리하게 작용했는데요. 이제 베네수엘라는 정제가 쉬운 경질 원유는 거의 다 파냈고요. 걸쭉하고 끈적한 타르 샌드 중질유만 남았거든요. 이런 중질의 고유황 원유는 생산에 특수 장비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죠. PDVSA 역량으론 역부족입니다.게다가 2019년부터는 미국의 제재까지 겹쳤습니다. 부정선거로 재선에 성공하며 독재체제를 굳힌 마두로 대통령. 그를 축출하기 위해 트럼프 1기 행정부는 PDVSA와의 거래를 차단했죠. 사실상 외국 기업의 투자가 막히고 맙니다.그 결과 1999년 355만 배럴에 달했던 베네수엘라 일일 석유 생산량은 곤두박질쳤고요. 이제 그 3분의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원유 매장량 1위 국가라는 명성이 무색한 수준인데요.유가에 따라 극단적인 호황과 불황을 오가다 결국 이 지경에 이른 베네수엘라 경제. 이를 보며 드는 생각은 이겁니다. 차라리 석유 대박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어마어마한 석유 매장량이란 일확천금의 횡재가 오히려 이 나라엔 독이 된 게 아닐까요.그리고 이런 현상을 일컫는 용어들이 이미 있죠. 네덜란드병, 자원의 저주, 풍요의 역설 등.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예언이 있는데요. OPEC 창설의 주역인 베네수엘라 정치인 후안 파블로 페레스 알폰소(1903~1979년)가 1976년 한 연구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OPEC을 연구하지 말고, 석유가 베네수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세요. 10년 후, 20년 후면 알게 될 겁니다. 석유가 우리를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그건 악마의 배설물입니다.” By.딥다이브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약 밀매 등을 이유로 베네수엘라에 공세를 펼치지만, 실제론 석유 때문이란 해석이 많죠. 베네수엘라엔 미국엔 부족한 중질유가 풍부한데요. 미국이 이를 얻으려면 외국 기업의 사업권을 보장해 줄 새로운 베네수엘라 정부가 필요하단 해석이죠. 역시나 결국 석유가 문제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GDP는 3분의 1로 쪼그라들었고, 국민 4분의 1이 나라를 떠났습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가 너무나 가난해졌습니다.-1999년 ‘볼리바르 혁명’을 내세워 집권한 우고 차베스. 그는 국가 부의 원천이었던 베네수엘라 석유공사를 장악해 혁명의 돈줄이자 수행기관으로 삼았습니다. 마침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치솟던 시기였고, 그의 혁명은 번영을 가져온 것처럼 보였죠.-하지만 후임 마두로가 집권한 직후 유가가 급락하면서 파티는 끝납니다. 마두로 정부가 화폐공급을 무분별하게 늘린 탓에 베네수엘라는 연 13만%라는 경악스러운 초인플레이션에 빠졌죠. 유가는 다시 반등했지만, 베네수엘라엔 이제 원유 생산을 늘릴 인력도, 설비도, 기술도 부족합니다. 땅 밑엔 석유가 잔뜩 있지만 이를 파내지를 못하고 있죠. *이 기사는 12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요즘 인공지능(AI) 기업 간 기술 경쟁이 한층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죠. ‘제미나이 3’을 내세운 구글의 맹추격에 오픈AI가 ‘코드 레드’를 발령했습니다. 그야말로 AI 시장이 격동기에 놓여있는데요.온 세상 전문가들이 이에 대한 각자의 분석을 쏟아내는 가운데, 눈에 띄는 두 가지 시각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대표적인 ‘AI 버블론자’ 마이클 버리의 “오픈AI는 제2의 넷스케이프”라는 주장이고요. 다른 하나는 세일즈포스 CEO 마크 베니오프의 “LLM(대규모언어모델)은 새로운 디스크 드라이브”라는 주장입니다. 이들 말대로 챗GPT가 이끌어온 LLM 전성시대는 이제 끝물인 걸까요. 오픈AI 회의론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2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챗GPT 독주체제, 이제 끝?오픈AI가 인공지능(AI) 챗봇 챗GPT를 불쑥 대중에 처음 공개했던 2022년 11월 30일. 이후 AI 열풍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전 세계를 덮쳤죠. 지난 3년간 기술업계가 정말 숨 가쁘게, 정신없이 달려왔는데요.대규모언어모델(LLM) 기술을 개척하고 선두주자 자리를 지켜온 오픈AI. 챗GPT의 이용자 수는 놀라운 속도로 증가해 2025년 9월 기준 주간 활성 사용자 수가 이제 8억명에 달하고요. 비상장기업인 오픈AI의 기업가치는 올해 10월 기준 무려 500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뛰어넘는 ‘세계 최대 스타트업’이 된 거죠.CEO 샘 올트먼이 가는 곳마다 슈퍼스타 대접을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해 왔던 오픈AI. 그런데 분위기가 갑자기 급반전됐습니다. 11월 18일 구글이 새 대규모언어모델(LLM) ‘제미나이 3.0’을 공개했는데요. 어, 이게 핵심 벤치마크에서 오픈AI의 최신모델(GPT-5.1)을 앞서면서 현존하는 최강 성능의 AI 모델로 올라섰네요?언제나 오픈AI가 성능 면에서 한참 앞서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저력의 구글이 단숨에 따라붙으면서 이제 동등한 경쟁을 펼치게 된 겁니다.물론 여전히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를 기준으론 오픈AI가 한참 앞서는데요(챗GPT 8억1000만명>제미나이 3억3600만명). 최근 3개월 MAU 증가율로 따지면 제미나이가 훨씬 높죠(챗GPT 6%, 제미나이 30%). 즉, 구글의 추격 속도가 보통이 아닙니다.챗GPT 독주체제가 흔들리는데? 시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요. 그러자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사내에 ‘코드 레드(적색경보)’를 발령합니다. 전사적 역량을 챗GPT 성능 개선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죠. 당초 이달 말 선보일 예정이었던 새 추론모델 GPT-5.2 출시를 2~3주 당겨 공개할 예정입니다. 확실히 급하긴 급했네요.“제2의 넷스케이프”라는 의미생성형 AI 웹의 트래픽 점유율을 따지면 챗GPT은 여전히 71.3%로 압도적 1위입니다. 구글 점유율은 아직 15.1%에 불과하죠(시장조사업체 시밀러웹 기준). 하지만 지난해 말(챗GPT 87%, 제미나이 5.7%)과 비교하면 저울추가 움직이고 있는 게 확연히 드러나는데요.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혁신기업이 경쟁이 격화되면서 흔들리고, 결국 추격자에 따라잡힌 사례. 기업 세계에선 드물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챗GPT와 제미나이의 경쟁 구도를 보면서도 ‘이거 어디서 봤던 장면 같은데?’라는 기시감이 들던 참이었는데요. 마이클 버리가 얼마 전 X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오픈AI는 제2의 넷스케이프처럼 파산 직전에 몰리고 현금 유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넷스케이프라. 절묘한 비유라며 많은 이들이 공감했습니다. 참고로 마이클 버리는 2008년 금융위기를 예견했고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인물이죠. 하지만 최근엔 AI 관련주에 하락 베팅했던 게 빗나가면서 자신의 헤지펀드를 청산했고요. 이후 작가로 변신해 서브스택에서 유료 뉴스레터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요.그가 왜 하필 넷스케이프를 거론했는지를 알려면 그 스토리부터 알아야겠죠. 사실 넷스케이프의 흥망성쇠는 스타트업의 고전동화 같은 너무나 유명하고도 극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시작은 일리노이대 졸업생 마크 앤드리슨과 실리콘그래픽스 창업자 제임스 클락, 두 사람이 ‘인터넷 관련 사업을 하자’고 의기투합한 199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넷스케이프는 설립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상용 브라우저를 개발해 베타 버전을 출시했고요. 1994년 12월 첫 정식 제품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1.0’을 선보이면서 돌풍을 일으킵니다.내비게이터는 단숨에 시장을 휩쓸며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죠. 1995년 세계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했고요. 매출은 분기마다 두배 넘게 불어났습니다. 1995년 8월 넷스케이프는 증시에 상장했는데요. 공모가 14달러였던 주가는 장이 열리자마자 71달러로 치솟았고요. 창사 이래 16개월 동안 이익을 내지 못한 회사의 기업가치가 하루 만에 30억 달러로 불어납니다. 그 시절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위상은 독보적이었습니다. 사실상 인터넷 세상으로 가는 유일한 관문으로 통했죠.넷스케이프의 이 엄청난 성공은 잠자고 있던 IT 공룡, 마이크로소프트(MS)를 깨웁니다. 1995년 8월, MS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1.0’을 출시했죠. 급조된 소프트웨어였고, 기능 면에서도 내비게이터에 뒤졌는데요.하지만 운영체제의 절대 강자 MS는 익스플로러를 윈도우에 기본 탑재하는 ‘끼워팔기’로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해 나갔고요. 무엇보다 막강한 자본력을 믿고 그해 12월 승부수를 던졌는데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영원히 무료로 제공할 것”이라고 발표한 겁니다. 개인용 39달러, 기업용 99달러로 내비게이터를 팔던 넷스케이프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죠. ‘브라우저 전쟁’이 시작됩니다.예나 지금이나 MS는 세계 최강의 IT 기업이죠. MS는 이 공짜 소프트웨어에 엄청난 투자비(매년 1억 달러 이상)와 인력(1999년까지 1000명 이상)을 쏟아부으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섭니다. 난공불락 같던 넷스케이프의 지위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하죠. 1996년 86%였던 넷스케이프 점유율이 1997년 말 51%로 떨어졌고요. 1998년 9월, 급기야 역전됩니다.여기엔 넷스케이프의 실책도 한몫했죠. 1997년 6월 출시된 ‘넷스케이프 4’는 기업을 위한 ‘그룹웨어’로 방향을 전환하며 새로운 기능을 대거 추가했는데요. 이로 인해 브라우저는 버그투성이가 되면서 느려졌고요. 이전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인터넷 익스플로러4’로 고객들이 이탈한 거죠.넷스케이프는 1998년 AOL에 인수됐지만, 다시 살아나지 못했고요. 2008년 3월, 지원이 종료되며 영영 사라졌습니다. 종료 당시 시장 점유율은 고작 0.6%.혁신 기업 넷스케이프의 몰락은 여러 교훈을 남겼죠.-기술 세계는 빠르게 변화합니다.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난 선도 기업이라고 해도, 기술 우위는 영원한 게 아닙니다.-제품 품질만큼이나 유통이 중요합니다.-기술 싸움은 자본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거대 기업이 작정하고 자본과 인력을 쏟아붓는다면 기술 격차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이런 교훈은 지금의 AI 모델 경쟁 구도에도 대입할 수 있습니다. AI 기술, 특히 대규모언어모델(LLM)은 훈련과 실행을 위해 막대한 컴퓨팅 비용 투자가 필요한 사업인데요. 오픈AI의 수익은 챗GPT 구독료와 API 라이선싱 정도. 이걸론 운영 비용을 메우기란 불가능하죠. 보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오픈AI 매출은 43억 달러, 순손실은 135억 달러에 달했는데요. 컴퓨팅 비용이 워낙 많이 드는 데다, 그동안 끌어다 쓴 부채 중 일부가 손실로 잡힌 탓에 적자가 더 커졌습니다.2029년 흑자전환을 목표로 한다는 오픈AI. 하지만 돈 들어갈 곳(특히 데이터센터 운영)은 많은데, 돈 벌 만한 새로운 수익모델(예-광고수익)은 아직 찾지 못했고요. 샘 올트먼 CEO가 돈줄을 열심히 끌어오고 있긴 하지만(예를 들어 소프트뱅크)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데요.이에 비해 구글은 30년 전 MS 못지않은 IT 공룡. 최근 12개월 순이익(2025년 11월 기준)이 무려 1243억 달러(약 183조원)로 전 세계 1위입니다.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기업인 거죠. 게다가 디지털 유통망까지 완전히 장악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의 약 90%를 차지하는 구글 검색과 동영상 플랫폼의 절대 강자 유튜브가 있으니까요. 여기 맹렬한 추격으로 어느새 따라잡은 기술력까지. 기시감이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그런데 여기서 하나 질문. 그 브라우저 전쟁, 최종 승자는 그래서 누구였을까요? MS 익스프로러가 아니죠. 지금 브라우저 시장 1위는 구글 크롬입니다(세계 시장 점유율 68%). 이게 바로 이 넷스케이프 스토리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인데요.그러니까 인터넷 산업에서 중요한 건 브라우저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중요한 건 사람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였고요. 그중 가장 큰 게 바로 검색엔진이었죠. 구글은 바로 이 분야에서 승자로 올라섰고요. 이후 구글이 2008년 출시한 웹브라우저 ‘크롬’은 구글 검색을 통한 대대적인 홍보에 힘입어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즉, 진짜 혁명이 일어나는 분야는 따로 있었는데, 이를 넷스케이프와 MS 모두 놓친 거죠. 사실 브라우저는 그 자체로는 돈이 되지 않는, 일종의 기본 인프라 같은 거였는데 말이죠. 차라리 브라우저 전쟁에 쏟아부을 자본으로 야후나 구글, 아마존을 일찌감치 인수했다면 어땠을까요?그럼 AI 기술 경쟁으로 돌아와서. 지금의 이 치열한 LLM 경쟁에서 승리하면 AI 시대의 승리자로 올라설 수 있는 걸까요. 혹시 이 LLM 전쟁도 사실은 옛 브라우저 전쟁 같은 건 아닐까요?세일즈포스 CEO 마크 베니오프는 조금 다른 비유를 써서 이렇게 일갈합니다. “LLM은 새로운 디스크 드라이브입니다: 가장 저렴하고 우수한 업체로 핫스왑하는 범용 인프라이죠. 이 모델이 해자라는 환상은 이제 끝났습니다.”오픈AI나 구글 같은 기업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 개발하는 최첨단 LLM을 고작 디스크 드라이브에 비유하다니.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그는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실 지금 LLM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탠퍼드대 AI 전문가 페이페이 리가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는데요. 그는 다음 모델은 다중감각(multi-sensory) 모델이 될 거라고 봐요. 카메라, 오디오 같은 다양한 구성요소가 필요하고, 4차원으로 이뤄져야 하는 거죠. 이건 LLM이 아니에요. 이게 언젠가 출시되고, LLM을 대체할지도 모르죠. 그러니 현실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챗GPT 쿨에이드(Kool-Aid, 미국 음료 이름)에 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만약 베니오프 CEO 말대로 GPT(오픈AI)나 제미나이(구글), 클로드(앤트로픽) 같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은 모두 AI시대를 열기 위해 필요한 기본 인프라일 뿐이고, 이 인프라를 활용하는 AI 서비스의 진짜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다면? 조금 허무하지만, 동시에 희망적이기도 하네요. 본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뜻이니까 말이죠. By.딥다이브3년 전 챗GPT를 보고 세상이 뒤집어졌던 게 생생한데, 이젠 ‘그건 범용 인프라일 뿐’이라니. 기술 트렌드란 적응할 새 없이 순식간에 변화하는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인공지능 모델 개발 경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구글의 ‘제미나이 3.0’ 출시를 계기로 구글과 오픈AI가 기술력에서 동등한 경쟁을 펼치게 됐죠. 선두주자 오픈AI가 급해졌습니다.-혹시 오픈AI가 넷스케이프와 비슷한 함정에 빠진 걸까요? 브라우저 시장을 개척한 혁신기업 넷스케이프가 거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에 결국 당하고 말았던 30년 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토록 치열했던 브라우저 전쟁의 최종 승자는 결국 구글이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을지 모릅니다. “LLM은 디스크 드라이브 같은 범용 인프라”라는 베니오프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이 기사는 12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는 ‘휴대용 공기청정기’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요즘 인도에서 뜨는 아이템인데요. 가격은 5만대. 이게 과연 효과가 있긴 할지 의심스럽지만 인도, 특히 수도 뉴델리 지역에선 날개 돋친 듯 팔립니다. 왜? 공기 오염 때문에 도무지 견딜 수 없을 지경이니까요!인도 수도권의 늦가을~겨울철 대기 오염은 심하다 못해 재앙적인 수준이죠. 경제 급성장기엔 원래 그러기 마련이라고요? 그렇게 보기엔 그 속에 숨은 사회 불평등과 리더십의 부재 문제가 심각한데요. 떠오르는 강대국 인도의 치명적인 대기 오염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2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연일 공기질 ‘위험’ 단계 경고오늘 아침 공기, 상쾌했나요? 인도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한다는 대기질 지수(AQI) 수치를 확인해 봤는데요. 4일 오전 현재, 서울의 AQI는 28로 ‘좋음(good)’, 같은 시간 인도 뉴델리시는 325로 최고 단계인 ‘위험(hazardous)’을 기록했습니다.위험 단계는 얼마나 나쁜 거냐고요? 한마디로 비상 상황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심혈관·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위험이 클 정도로 공기가 유독하단 뜻이죠. AQI를 담배 연기로 환산한 수치에 따르면 AQI가 324이면 하루 24시간 동안 담배 14개비를 피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그럼, 뉴델리시가 포함된 델리 주정부는 이날 재택근무, 학교 휴교 같은 비상조치를 취했을까요. 아니요. 그냥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사람들은 아침에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심지어 조깅과 산책도 했습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도 많지만, 위험 단계에서 권장되는 N95(한국에선 KF94라 불림) 마스크를 쓴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건 비싸거든요.아니, 왜 이렇게 평온하냐고요? 이게 일상이니까요. 10월부터 1월까지, 인도 북부 수도권 지역에 수년째 되풀이되고 있는 일입니다. 스모그로 앞이 뿌옇고, 하늘은 회색빛이고, 기침과 콧물이 끊임없이 나고, 목이 아프고, 눈이 충혈되고, 입 안이 텁텁하기까지 하죠.그나마 지금은 11월보다는 나아진 겁니다. 11월 말엔 AQI 지수가 500을 넘기도 했는 걸요(=하루 담배 약 30개비에 해당). 수치가 그 정도는 됐을 땐 델리 주정부가 직원 절반 재택근무 조치를 취하긴 했습니다.델리의 공기는 왜 이렇게 최악인 걸까요. 원인은 복합적인데요. 일단 델리는 분지 지형이어서 공기 순환이 잘 안되고요. 10월부터 바람이 약해지면, 차갑고 무거워진 공기가 갇히면서 짙은 스모그를 형성합니다. 공장의 매연과 자동차 배기가스가 주요 오염원이고요. 특히 수도권 인근의 농촌지역에선 여전히 고체연료-나무, 동물 분뇨, 볏짚 등-를 쓰는데, 이게 심각한 오염을 초래하죠. 게다가 10월 말 디왈리 축제를 맞이해 터뜨린 폭죽의 영향까지 겹쳤고요.이 심각한 대기오염은 얼마나 해로울까요. 이를 연구한 결과는 너무 많은데요. 대기오염은 호흡기 질환은 물론, 장기간 노출 시 인지장애와 암 발생 위험, 사망률을 높이고요. 특히 초미세먼지는 혈류로 유입되기 때문에 태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죠. 이 정도 수준의 대기오염이 지속된다면 인도 전역의 평균 기대수명을 3.5년, 델리 주민으로 한정하면 8.2년 감소시킬 수 있고요. 인도 전체 사망자의 17.8%(167만명)가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이란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불평등을 호흡하다여기서 매우 불편한 진실. 대기 오염이 이렇게 심하다고 해서, 모두가 오염된 공기를 흡입하는 건 아니란 점이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에 따라 마시는 공기가 달라집니다. 이젠 공기청정기라는 게 있으니까요.인도에선 요즘 공기청정기가 엄청나게 팔리죠. 더 이상 사치품이나 계절상품이 아닌 사계절 필수품이라고 얘기할 정도인데요. 특히 최근엔 가정용 공기청정기 제품이 품절 현상을 보일 정도로 수요가 폭증했습니다. 소매업체는 올해 들어 공기청정기 판매량이 30% 급증했다고 전하죠.인도 언론과 유튜브엔 어떤 공기청정기를 사야 할지에 대한 구매 정보가 넘쳐납니다. 현재 시장 점유율은 필립스, 하니웰, 샤프, 유레카포브스 순. 특히 최근엔 프리미엄급 제품 판매가 늘었다는데요. 지난해 102만대였던 인도의 공기청정기 판매 대수는 2032년이면 423만대로 늘어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하지만 이 공기청정기 판매 열풍은 인도에선 어디까지나 일부 중상류층 이야기일 뿐이죠. 서민들에게 한 대에 최소 1만 루피(16만원)를 훌쩍 넘는 공기청정기는 그림의 떡입니다. 주기적으로 필터를 사서 갈아줘야 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부담이 너무 크죠. 오죽하면 요즘 인도 SNS에선 ‘2000루피(약 3만원)로 DIY 공기청정기 만들기’ 게시물이 큰 호응을 얻고 있을 정도인데요.집과 사무실은 물론이고, 차 안에까지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상류층의 모습은 서민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줍니다. 얼마 전 레딧에 인도인이 올린 게시물이 화제였는데요. 한 정부 기관의 공무수행용 차량에 달린 필립스 공기청정기 사진이었죠. 거기엔 이런 글이 달렸습니다. “의사결정권자들은 문제의 불편함과 긴박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래서 긴급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건지도 몰라요. 숨 쉬는 공기조차 더 이상 공평하게 공유되지 않습니다. 이제 이 나라엔 희망이 없어요.”물뿌리기가 오염 방지책? 이쯤 되면 당연히 정부는 뭐하냐는 분통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많이 늦긴 했지만 주정부도 조치를 취하긴 했습니다. 10월 초부터 석탄·장작 사용 금지를 포함한 ‘단계별 대응 조치’를 발동한 거죠.하지만 이게 큰 의미가 없는 게, 가정에서 나무 장작으로 밥 지어 먹는 건 수도권 도시민이 아니죠. 인근 다른 지역 농민들이 땔감을 태워서 나온 연기가 바람을 타고 델리까지 날아옵니다. 즉, 주정부 혼자 나선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화끈한 해결책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법원은 자꾸 엇나간 판결로 발목을 잡습니다. 지난 10월 법원은 2020년부터 금지해 온 디왈리 축제 기간의 폭죽 터뜨리기를 허용했죠. 기존 제품보다 오염물질을 20~30%로 적게 배출하는, 이른바 ‘그린 크래커(Green Crackers)’에 한해 허용한다는 판결이었는데요. 친환경 폭죽이라는 게 가능한 개념일까요.또 델리 주정부는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노후 차량(10년 이상 된 경유차, 15년 이상 된 휘발유차)의 도로 주행을 막기 위해 7월부터 모든 주유소에서 연료 공급을 중단했는데요. 서민들만 먹고살기 힘들어진다는 반발이 컸고요. 결국 이 조치 역시 법원 판결로 무력화되면서, 연료 공급은 재개됐습니다.그 결과, 현재로선 눈에 띄는 조치라면 ‘안티 스모그 총’ 정도. 큰 물탱크를 실은 트럭이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분무기로 물을 쏘아 미세먼지를 가라앉히는 건데요. 델리 주정부는 올해 11월부터 이런 차량 200대를 수도권에 배치해 운행 중이죠. 아주 일시적이긴 하지만, 물을 뿌린 곳의 오염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긴 합니다.하지만 시민들은 이를 반기긴커녕 의심합니다. 도심 곳곳엔 공기질 측정을 위한 관측기가 있는데요. 이 안티 스모그 총이 일부러 관측기 근처에 물을 뿌려서 수치를 좋아 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죠. 특히 야당은 ‘대기질 측정 관측기 주변에 밤낮으로 물을 뿌려서 데이터를 조작하고 있다’고 비판을 이어가는데요. 많은 이들이 이 ‘조작설’을 상당히 믿는 분위기입니다.얼마 전 인도 언론이 ‘델리의 올해 1~11월 평균 대기질 지수(AQI)가 187로 2020년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8년 만에 최저’라는 통계 기사를 썼는데요. 레딧에선 이런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 “뭐야! 정신 나갔어?!”비상상황인데 중앙정부는 어디에?이대로는 도저히 안 됩니다. 아무리 나라 경제가 연 7~8%대 고도성장을 하면 뭘 하나요. 국민들이 숨 쉬고 살기조차 힘들다는데. 설사 공기청정기를 살 만큼 부유하다 해도 대기오염을 옹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 뿌리기 같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건 주정부가 아닌 중앙정부, 즉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나설 일이죠.인도가 지방분권이 매우 강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3000만명이 사는 수도권의 대기오염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2018년쯤부터. 언제까지 이렇게 두고 볼 수만은 없죠. 아직은 무능한 주정부를 탓하지만, 언제 그 화살이 모디 정권으로 향할지 모릅니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미히르 샤르마가 “중앙정부는 이상하게도 지속가능한 해결책 마련에 소극적”이라며 “그건 (모디 총리의) 오판”이라고 지적하는 이유이죠.그리고 중앙정부가 나서서 일관되고 강력하게 정책을 펼친다면, 대기 오염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걸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이 있는데요. 바로 영국과 중국이죠.1952년 12월 5~9일 런던에 ‘그레이트 스모그(Great Smog)’가 덮치면서 1만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던 영국. 이를 계기로 영국 의회는 1956년 세계 최초로 청정대기법을 제정합니다. 가정 연료를 석탄에서 전기나 가스로 전환하고, 화력발전소를 외곽으로 옮기고 굴뚝은 높이 올렸죠. 이후 검은 연기와 이산화황 농도는 극적으로 떨어졌고, 대기질은 확연히 개선됐습니다.2013년 1월, 중국은 북동부 지역을 덮친 끔찍한 스모그는 무려 한달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중공업 공장에서 배출하는 가스와 차량 매연이 합쳐져 하늘이 회색빛으로 변한 사진이 전 세계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요. ‘에어포칼립스(airpocalypse·공기오염 대재앙)’라 불렸는데요.2013년 3월 출범한 시진핑 정부는 대기오염 해결을 부패 척결에 버금가는 시급한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정권을 흔들만한 큰일이라고 판단하고, 칼을 빼 든 거죠. 대기오염과의 전쟁을 위한 1조7000억 위안(354조원) 규모의 대대적인 계획(2013-2017 대기오염 방지 행동 계획)이 실행됩니다. 불법 탄광과 비효율적 제철소를 폐쇄하고, 석탄 난방을 단속하고, 태양광·풍력 발전소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자동차 배출 기준을 강화했죠.2013년 정점을 찍은 중국의 초미세먼지(PM-2.5) 수치는 10년 만에 54% 감소했습니다. 물론 스모그가 가장 극심했던 허베이성은 지금도 겨울만 되면 공기질이 악화되곤 합니다. 하지만 과거 AQI 수치가 500으로 치솟았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150 정도. 공기질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에어포칼립스’나 ‘에어마겟돈’에선 벗어났습니다. 해외 전문가들이 ‘놀라운 반전’이라고 평가할 정도인데요.결국 얼마나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국가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지방 분권의 나라, 인도는 언제쯤 ‘대기오염과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될까요. By.딥다이브혹시 인도 북부 여행을 갈 일 있으시다면 마스크를 꼭 챙기시길 당부드리며.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대기질 수치 300 이상. 인도의 수도권 델리 지역은 10월부터 극심한 스모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델리 주민 수명을 8년 이상 줄일 정도의 심각한 대기오염이죠.-공기청정기가 품절될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기청정기를 살 여유가 있는 이들은 인도에선 중상류층뿐. 서민들은 ‘이제 숨 쉬는 공기마저 다르다’면서 분통을 터뜨립니다.-하지만 주정부의 대응은 느리고 부족합니다. 기껏해야 ‘안티 스모그 총’이라며 분무기를 뿌리는 수준. 시민들은 데이터 조작용이라고 의심합니다.-중앙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결국 의지와 실행력의 문제인데, 아직까진 너무 소극적입니다. *이 기사는 12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인공지능 시대, 전 세계가 갖고 싶어서 안달난 산업이 있죠. 바로 반도체 제조업인데요. 이 반도체 제조업을 키우기 위한 ‘쩐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활’을 외치며 마구 내달리는 일본, ‘반도체 제조국’ 문턱에 이제 막 선 인도, 오일머니를 내세운 아랍에미리트까지.특히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가파르게 성장한 중국 반도체 기업의 최근 기세는 무서울 정도입니다. 왜 각국이 지금 반도체에 이렇게까지 사활을 거는 걸까요. 오늘은 글로벌 반도체 쩐의 전쟁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2월 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일본판 TSMC? 그게 돼?“정부가 추진하는 위기관리 투자의 핵심이며, 국가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국가적 프로젝트입니다.”지난 11월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산업성 장관이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의 제 2공장 신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죠. 라피더스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비장한가 싶은데요. 위탁생산, 즉 파운드리를 전문으로 하는 반도체 기업입니다. 토요타·키옥시아·소니·NTT 등 일본 대기업 8곳이 공동으로 2022년 설립했죠. 사실상 일본 정부가 대기업들을 동원해서 만든 신생 ‘반도체 연합군’입니다.일본은 이걸 왜 하게 됐을까요. 2020년 코로나가 일어나고 한동안 공급 차질로 반도체가 동나서 전 세계가 난리였잖아요. 그때 일본이 깨달은 거죠. 아, 반도체를 우리 스스로 못 만들면 이러다 큰일 나겠구나. 특히 초미세 공정 반도체를 만드는 곳은 대만과 한국, 미국밖에 없는데, 계속 이들 국가에만 의존해선 안 되겠구나.일본은 이미 2000년대 초반, 반도체 미세화 경쟁에서 탈락했습니다. 현재 일본에선 40나노짜리 범용 제품만 양산할 수 있죠. 그런데 일본에서 대가 끊긴 지 오래인 미세공정 파운드리 산업을 되살리겠다고 국가가 깃발을 들고 나선 겁니다. ‘일본의 TSMC’를 만든다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요.당연히 쉬울 리 없죠. 최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은 양산 경험이 누적되면서 단계적으로 쌓여가는 겁니다. 18, 14, 10, 8, 7, 6, 5, 4, 3나노. 이런 식으로 단계를 거쳐야 2나노, 1.4나노 초미세 공정을 위한 기술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거죠. 경험 없이 돈과 장비만 쏟아붓는다고 갑자기 점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현재 라피더스는 미국 IBM으로부터 미세공정 기술을 공여받아, 이제 막 2나노 공정 시제품을 만드는 단계이고요. 2027년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인데요. 하지만 업계에선 ‘저게 되겠냐’, ‘만들어봤자 사줄 고객사가 없다’라며 회의론도 나옵니다.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2027년 두 번째 공장 착공을 새롭게 발표한 겁니다. 이 새 공장은 1.4나노 공정을 채택한다고 하죠. ‘반도체 부활’의 마지막 희망, 라피더스의 성공에 일본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일본 언론은 제2공장 건설에 정부 지원과 대출 보증, 민간기업 출자로 2조엔(약 19조원) 이상이 들 거라고 전망했죠.이렇게 되면 2022년부터 2031년까지 라피더스에 총 7조엔(약 66조원)을 투자한다는 뜻이 되는데요. 일본 정부는 이례적으로 민간기업 라피더스에 대해 대출 보증까지 서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지원하고 있죠.솔직히 성공 확률 면에서 여전히 무모한 도전 같아 보이는데요.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는 ‘첨단 반도체는 경제 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그만큼 진심이고 집요한 거죠.“21세기 디지털 다이아몬드”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반도체 제조의 중요성에 눈을 뜬 건 일본만이 아닙니다. 세계 최대 인구 대국, 인도도 마찬가지인데요. 사실 인도는 반도체 설계 분야에선 역량이 상당한 나라입니다. 인텔, AMD 같은 글로벌 기업이 연구개발 센터를 운영 중이니까요. 전 세계 반도체 설계 인력의 20%(약 12만5000명)가 인도에 있습니다.하지만 반도체 제조에선 완전히 불모지이죠. 설계만 하고 만들지를 못합니다. 저사양 반도체를 주로 중국에서 수입해서 쓰곤 있는데, 인도와 중국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죠. 이러다 중국이 갑자기 반도체 수출을 중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늘 있습니다.그래서 2021년 인도 정부가 이래선 안 되겠다, 우리도 국산 칩을 만들어야겠다면서 ‘인도 반도체 미션(ISM)’이라는 걸 출범시켰어요. 해외 반도체 기업이 인도에 제조공장을 만들면 아주 파격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한 거죠. 지원이 어느 정도냐면 인도 정부가 투자비의 절반을 직접 대주고요. 주 정부가 세금 감면과 보조금으로 추가로 20~25%를 지원해 줍니다. 작정하고 마구 퍼주기로 한 건데요.지금까지 ISM 승인을 받은 프로젝트는 10개. 총 예상 투자비가 1조6000억 루피, 한화로 26조원에 달합니다.그리고 이렇게 설립한 반도체 공장에서 최초의 ‘메이드 인 인디아’ 칩이 올해 말쯤 처음 출시될 예정이죠. 물론 저사양 반도체이지만, 그렇게 꿈꿔왔던 반도체 제조국으로 올라선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반도체를 21세기의 “디지털 다이아몬드”라고 칭합니다. 20세기에 “검은색 금”으로 불리던 석유와 맞먹는다는 뜻인데요. 그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지난 세기는 석유가 지배했지만, 이젠 (세계 경제가) 작은 반도체 칩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인도와 함께 반도체의 미래를 건설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제조업에 취약한 인도가 ‘반도체 제조 허브’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요.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 자체가 만만찮고요. 벌써부터 인도 국민들 사이에선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죠.그래도 인도 정부의 의지만은 확고해 보입니다. 인도의 싱크탱크 탁샤실라 연구소의 프라나이 코타스타네 부소장은 인도 같은 큰 나라가 반도체 육성에 자원을 대대적으로 쏟아붓는 건 당연하다고 평가하죠.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인도는 단순히 경기에서 밀려나는 게 아니라, 경기장에 들어가지도 못할 겁니다.”중동에 반도체 제조 허브를?반도체 제조국이 되려는 야망에 불타는 부자나라도 있죠. 바로 중동의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UAE)인데요. ‘포스트 오일 시대’를 준비 중인 UAE는 반도체 제조 거점이 되겠다며 해외 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부다비 경제개발부는 아예 홈페이지에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겠다”라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죠.올봄엔 대만 TSMC가 아랍에미리트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란 블룸버그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일단 TSMC 측이 그럴 계획이 없다고 이를 부인했지만, UAE가 반도체 제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건 틀림 없는데요. 첨단 반도체 생산이 가능한 제조공장(업계 용어로 ‘팹’)을 하나 건설하려면 200억~400억 달러(29조~58조원)가 들죠. 패키징, 테스트, 연구개발까지 전체 생태계까지 구축하려면 투자액은 1000억 달러(127조원)를 훌쩍 넘을 거고요. 그리고 이에 있어 UAE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자본력입니다. 총 2조4900억 달러(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에 달하는 막대한 국부펀드를 보유한 나라니까요.또 풍부한 에너지, 물류 인프라, 규제 유연성 역시 UAE가 가진 장점으로 꼽히는데요. “UAE는 대규모 장기 전력 공급이 가능하고,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공항이 있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미국 중동연구소의 모하메드 솔리만 선임 연구원)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죠.물론 반도체 공정엔 깨끗한 물이 필수인데 이를 어디서 끌어오느냐(아마도 담수화?), 그리고 제조 역량을 가진 전문가를 유치할 수 있느냐(대만이나 한국에서 유치?)가 관건인데요. 결국 중요한 건 국가의 확고하고도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되느냐이겠죠.미국 시장조사업체 IDC의 마리오 모랄레스 반도체 그룹 부사장은 “이 지역에서 (반도체 제조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합니다. “이런 것들은 개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릴 뿐이죠.”CXMT와 차이나머니의 힘이렇게 정부가 온 힘을 다해 밀어주면 반도체 자립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얼마 전인 11월 23일 중국 D램 반도체 제조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 약자로 CXMT가 DDR5 신제품을 내놔서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요.DDR5는 2020년 SK하이닉스가 처음 상용화했고, 현재로선 가장 최첨단 D램입니다. 중국 CXMT는 이 전 모델인 DDR4를 주력으로 하는 곳이죠. 프리미엄급이 아닌 범용 제품을 싸게, 가성비 좋게 만들어 파는 기업이고요. 작년부터 DDR5 칩을 내놓긴 했지만, 성능 면에서 한국 제품과 차이가 컸는데요.이번에 CXMT가 8000Mbps 속도의 초고성능 DDR5를 선보인 거예요. 갑자기 기술 격차가 사라진 거죠. 물론 수율, 즉 정상 제품 비율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이긴 하지만, 예상보다도 추격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앞으로 양산 경험이 쌓이면서 기술이 성숙해진다면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죠.그럼, CXMT는 도대체 어떤 기업이냐. 중국 지방정부가 만들고, 중앙정부가 키운 D램 제조기업입니다. 일단 본사가 있는 허페이시가 최대 주주이고요.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만든 ‘국가 집적회로 산업투자 기금’이 주요 주주로 돈을 댔죠. 정확한 금액은 확인되지 않지만, 업계에선 중국 국유펀드에서 총 343억 위안(약 7조원)가량을 투자받았을 거라고 추정합니다.여기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주요 기업도 투자자로 참여했습니다. 한마디로 민관이 똘똘 뭉쳐서 밀어주고 있어요. 2016년 설립돼 2019년에야 처음 생산을 시작한 CXMT가 단기간 이렇게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이런 아낌없는 지원 덕분이죠.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이 빅3가 94% 점유율을 기록하는 과점체제인데요. 시장 분석기관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1분기 6%인 CXMT 점유율이 올 연말이면 8%로 높아질 전망입니다(생산량 기준). 특히 1%에 불과했던 DDR5 시장 점유율이 7%로 커질 거라고 하죠. 물론 아직까진 고객이 중국 기업이긴 한데요. 그래도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가는 데다, 첨단 제품까지 진출한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그리고 CXMT는 막대한 돈이 드는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카드도 준비 중인데요. 바로 주식시장 상장입니다. 이미 IPO를 위한 예비 심사를 끝냈다고 하고요. 아마도 내년 초쯤 상장을 신청하지 않을까 싶은데요.벌써부터 CXMT 상장이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 사상 최대 규모의 IPO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죠. 성공적인 상장으로 투자금을 끌어모은다면, CXMT의 내년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3E) 양산은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엔 위협요인이 될 거고요. 반도체 시장의 ‘차이나 머니’ 공습이 더 거세집니다. By.딥다이브글로벌 분업화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던 반도체 산업. 하지만 미·중 갈등과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분업화에 대한 믿음은 깨졌고, 각 나라가 ‘부활’과 ‘자립’을 외치며 제 살길 찾기에 나서는 양상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반도체 제조업을 키우기 위한 쩐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대가 끊긴 미세 반도체 공정의 부활을 위해 반도체 연합군 라피더스를 2022년 출범시킨 데 이어, 2027년 두 번째 공장 착공을 최근 선언했죠. 반도체 제조를 경제 안보의 문제로 보기 때문입니다.-반도체 제조의 불모지였던 인도도 육성에 대단히 적극적입니다.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 덕분에 올해 말 드디어 첫 ‘메이드 인 인디아’ 칩을 생산할 수 있게 됐죠. 20세기 석유가 ‘검은색 금’이었다면 21세기 반도체는 ‘디지털 다이아몬드’입니다.-UAE 역시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유치를 위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중동의 반도체 제조 허브’가 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깨끗한 물과 제조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중국은 최근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가 8000Mbps 최첨단 DDR5 칩을 선보이며 업계를 놀라게 했죠. 정부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단기간 성장한 중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이제 IPO로 다시 한단계 도약할 전망입니다. *이 기사는 12월 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임대차 계약. 그런데 세입자가 제시된 임대료가 싼지 비싼지도 모른 채 ‘그냥 하던 대로’ 재계약하자는 임대인 얘기만 믿고 덜컥 사인한다면?설마 내가 살 집 구할 때야 이럴 일 없겠죠. 하지만 기업이 사무실을 구할 때, 특히 해외 오피스를 계약할 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데요.최근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급격히 늘면서 새롭게 뜨는 영역, 기업의 해외 부동산 관리에 대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요즘 가장 뜨거운 오피스 시장은 어딘지도 알려드릴게요.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전혜원 글로벌코리아데스크 팀장입니다.*이 기사는 11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기업의 해외 부동산 운영은 주먹구구식?-최근 들어 한국 여러 대기업의 해외 부동산 자산 관리를 맡으셨더라고요. 대기업은 해외에 조직과 인력이 많잖아죠. 그런 큰 기업은 부동산 업무도 자체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전문업체가 필요하죠?“물론 매우 큰 기업이고, 유능한 직원들을 뽑아 해외로 내보내고 있는데요. 문제는 주재원 임기가 보통 4년이란 점이죠. 엔지니어나 경영직 분들은 보통 부동산 업무를 해본 적도 없고요. 또 매출과 수익성 같은 본업 챙기기 바쁘다 보니, 부동산 임대차 계약을 분석할 시간도 없죠. 그래서 저희가 임대차 계약서를 들여다보면 ‘왜 이 가격에?’라고 할 때가 많아요. 시장이 고꾸라져서 임대료 시세가 하락했는데 10년, 15년째 별다른 협상 없이 계약 연장 중인 거죠. 무엇보다 4년마다 바뀌니까 인수인계도 안 되고 계약서 원본이 없는 경우도 있고요.”-4년 있다 떠나는 주재원이 챙기기엔 역부족이군요.“해외사업이라는 게 지정학적 이슈에 따라 특정 지역이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하거든요. 그럼 어딘가는 추가 투자를 하고 어딘가는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비용 절감에 가장 효과적인 게 부동산이에요. 본사가 전 세계 부동산 정보를 투명하게 알고 있으면, 그걸 컨트롤할 수 있죠. 구글이나 MS 같은 글로벌 기업은 아예 부동산만 담당하는 전문 팀이 본사에 있거든요. 거기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데, 우리 기업들은 이제 시작 단계이죠.”-그럼 기업의 목표는 결국 효율화이로군요. “그래서 지금 임대차 계약서들을 하나씩 다 들여다보고 있어요. 만약 시장 평균가보다 임대료를 높게 내고 있는 경우엔 뜯어고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하니까요.”-그런데 과거보다 임대료가 고꾸라진 지역이 있나요? 미국에도?“미국 오피스 시장은 지금도 아직 두 자릿수대 공실률을 보이고 있어요. 신축과 프라임, A등급 빌딩 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서요. 10년 이상 된 오피스빌딩은 평균적으로 공실률이 높죠. 그래서 투자자들이 이걸 재개발해서 호텔, 아파트, 연구개발 센터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브루클린 핫플은 왜 공실일까 -최근에 미국 뉴욕에 진출한 토스증권과 키움증권의 오피스 신규 임대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는데요. 뉴욕 오피스 시장은 분위기가 어떤가요?“뉴욕은 언제나 전 세계에서 가장 우량한 핵심 안정형 자산이죠. 특히 나스닥 IPO를 노리는 기업이라면 특히 뉴욕을 거점으로 선호하는데요. 투자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뉴욕 오피스 시장은 완전히 저점을 쳤습니다.오피스 빌딩 가격이 가장 비쌌을 때가 코로나 직전이었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공실이 늘다 보니까 투자자들은 임대 수익률도 안 나고, 팔리지도 않아서 골치 아팠는데요. 지금도 여전히 (매매가격은) 코로나 이전 대비 거의 20% 저렴해요.그런데 미국 동료들과 얘기해 보면 지금이 확실히 저점이고요. 조금씩 투자 기조가 회복되고 있어요. 또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까지 고려하면 내년, 내후년엔 거래가 활성화될 전망이고요. 만약 오피스 매물에 투자를 고려한다면 지금 사는 게 맞는 거죠. 다만 팔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재택근무도 끝나가고 금리도 내리면서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로군요.“그런데 임대 관점에서 보자면 좀 달라요. 사실 오피스라는 게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근무한다’는 직원들의 자부심이나, 브랜드 마케팅적인 부분도 있거든요. 그런데 뉴욕은 지난 7월에도 총기사고로 블랙스톤의 유명한 임원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로 보안이 중요해서요. 보안이 잘 된 신축의 좋은 오피스 자산과 그렇지 않은 자산의 선호도 차이가 커요. B, C등급 자산은 여전히 임대가 잘 안되죠.오피스 자산의 양극화가 분명한데요. 뉴욕 안에서도 주요 대기업과 금융사가 밀집한 미드타운은 거래가 아주 잘 되고요. 그보다 아래쪽에 있는 오피스 자산은 좀 힘들죠. 브루클린에선 오래된 ‘도미노 설탕정제 공장’을 고급 오피스로 만든 게 상당히 주목받고 화제가 됐는데요. 지금은 그걸 보유한 개발사가 임대가 잘 안돼서 힘들어하고 있다고 해요.”-도심 한복판이 아니어서 그럴까요?“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또 규제 때문에 옛 공장 벽면을 유지하면서 오피스를 만들어야 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채광이 안 좋아요. 오피스 자산은 교통과 채광, 그 두 가지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업계에선 ‘저걸 왜 오피스로 만들었을까. 주거시설로 만들었으면 참 잘 됐을 텐데’라는 의견이 나와요.”-듣기엔 성수동 같고 멋지겠다 싶은데, 오피스로는 아닌 거군요. 그런데 미국만이 아니라 타이베이, 홍콩, 자카르타, 암스테르담, 리야드 등.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는데요. 요즘 특히 뜨는 도시가 있을까요?“리야드와 두바이, 중동의 이 두 시장이 오피스 쪽에선 가장 핫해요. 리야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비전 2030’을 발표한 이후에 우리 기업들이 기술 이전을 위해 많이 나가고 있고요. 두바이는 지금 전 세계 기업이 몰리면서 경쟁이 치열할 정도예요.또 인도는 하이드라바드, 벵갈루루같이 IT 중심인 도시들이 핫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미국이 수요가 많죠. ‘메이드 인 USA’ 기조가 심해지고, 고관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보니 현지 생산에 대한 니즈가 커졌고요. 그래서 기업들이 공장과 물류 창고 쪽으로 신규 거점을 많이 찾아보고 있어요.”미국 공장 매입을 말리는 이유 -기업과 일하시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현지 관행에 대해 이해시켜 드리는 게 좀 어려운 점인데요. 예를 들어 우리 기업들의 약간 특징적인 게,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꼭 임대가 아니라 매수만 찾는 경우가 있어요. 특히 공장이나 물류창고의 경우에요. 워낙 큰 비용이 드니까, 나중에 팔아서 수익을 올리고 싶어 하는 거죠.”-땅값이 올라서 남을 거라고 계산하나 보네요. 한국에선 그런 경우가 많았으니까.“그런데 미국의 경우 이미 공장을 운영했던 땅을 ‘브라운 필드’라고 부르는데요. 기존 공장을 철거하고 새 공장을 짓기 위해 이런 땅을 매입하는 경우엔 리스크가 있습니다. 만약 해당 주나 도시에서 환경 오염 문제로 소송을 거는 경우, 그 책임을 땅 소유자가 져야 해요.”-그런 소송이 많은가 보죠?“네. 만약 소송으로 가서 손해배상금 판결이 나면 소유자가 물어줘야 해요. 그래서 저희는 브라운 필드를 매매하기보다는 ‘99년 임대’를 추천해 드리기도 하죠.”-99년 임대가 있어요?“네. 사실 미국 기업이 이미 많이 쓰는 전략이에요. 구글도 실리콘밸리 근처에 있는 나사(NASA) 부지를 그런 식으로 장기 임대해서 캠퍼스로 쓰고 있죠.”-99년 임대이면 임대료 같은 건 어떻게 될까요?“저희가 그 99년 동안 임대료가 매년 크게 상승하지 않도록 캡(상한선)을 씌우는 작업을 하고요. 중도해지권도 넣을 수 있어요. 중간에 당국의 규제 등이 바뀌면 해지를 요구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사실 99년이라고 하면 거부감을 많이 갖긴 하는데, 중도 해지도 가능하고, 소유해서 지게 되는 법적 책임도 피할 수 있죠. 또 99년이면 초기 공사비용과 인테리어 비용은 충분히 뽑게 되고요. 다만 이런 부분을 실무진뿐만 아니라 그 위 경영진에도 이해시키는 게 좀 어려운 것 같아요.”-여러 기업을 담당하셨는데, 앞으로 이런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사가 더 많아질까요?“좋은 브랜드를 가진 한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계속 늘어만 가잖아요. 얼마 전 농심의 암스테르담 오피스 신규 계약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네덜란드가 K-푸드 수출액 성장률 1위 국가라고 해서 뿌듯했어요. 우리 기업이 계속 해외로 확장해 나갈 거기 때문에 저희가 할 일은 더 많아질 거고요. 한국을 잘 모르는 해외의 빌딩 임대인에게 좋은 한국 기업들을 소개하는 것도 이 업무를 하는 재미이자 보람입니다.” By. 딥다이브*이 기사는 11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을 아시나요. 일상 언어로 인공지능(AI)과 대화하며 ‘느낌(vibe)’을 전달하면 AI가 알아서 코딩을 해준다는 의미인데요. 오픈AI 공동창업자 안드레이 카파시가 올해 2월 처음 소개한 용어로, 얼마 전 영국 콜린스 사전이 ‘올해의 단어’에 선정한 화제의 기술 트렌드입니다.프로그램 개발의 장벽을 허물어버린 AI.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1인 창업이 가능하다’, ‘1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도 나올 거다’라는 말이 나오는데요.이런 트렌드를 생생하게 보여준 한 인물이 최근 미국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특이한 점은 그가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중국인 개발자라는 점이죠. ‘초생산성’을 달성한 바이브 코더는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1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도대체 이 슈퍼 헤비유저는 누구야?월 200달러(29만원) 요금제 가입자가 한 달 동안 무려 5만 달러(7300만원)어치 토큰을 사용한다면? 지난 7월 AI 모델 ‘클로드(Claude)’를 운영하는 미국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누군가가 하루 24시간 내내 말도 안 될 정도의 엄청난 사용량을 기록한 거죠.화들짝 놀란 앤트로픽은 부랴부랴 전체 사용자를 대상으로 속도 제한을 건다고 공지했습니다. 이를 두고 미국 SNS 플랫폼 레딧에선 ‘이 슈퍼 헤비유저는 착취자인가, 정당한 사용자인가’에 대한 한바탕 토론이 벌어졌죠.이 사태를 초래한 주인공은 중국 베이징에 사는 개발자 류샤오파이(刘小排). 중국 IT 기업 치타모바일에서 일하다 10년 전 독립한 프로그래머입니다. 그는 클로드 코드, 커서 같은 ‘바이브 코딩’ 제품을 이용해 AI 소프트웨어 12개를 개발해 출시했고요. 이를 통해 연간 약 100만 달러(약 14.7억원)의 수익을 창출한다는데요.에이, 과장 아니냐고요? 그가 출시한 제품은 이런 겁니다. 이미지 생성기 ‘라파엘AI’, 음성 생성기 ‘애니보이스’, 텍스트나 이미지를 3D로 변환하는 ‘패스트3D’. 들어가 보시면 알겠지만 중국색은 전혀 찾을 수 없죠.12개 제품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약 20만명. 대부분이 무료 이용자이지만, 매일 약 200건의 새로운 유료 구독자가 발생한다는데요.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 1위는 미국, 2위 독일, 3위 일본 순입니다.아마 이용자들은 이 사이트 개발자가 영어를 거의 못 하는 중국인이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겁니다. 언뜻 보기엔 미국이나 유럽 어딘가의 스타트업이 만들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니까요. 혹독한 현실이 혁신을 낳았다바이브 코딩으로 나 홀로 창업자가 연 매출 15억원이라니. 흥미가 좀 생기시나요? 미국의 IT 전문 작가 아프라 왕이 얼마 전 이 류샤오파이를 인터뷰했는데요. 그는 중국 IT 업계의 혹독한 현실이 중국 바이브 코더들을 강하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중국 시장은 경쟁이 무지막지하게 치열한 데다, 소비자들이 유료 소프트웨어에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죠. 중국 내수 시장에선 웬만해선 AI 스타트업으론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은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노리는데요.중국 IT기업 개발자의 평균적인 삶-‘996(하루 12시간 주 6일 근무)’에 연봉 3만 달러 남짓(중간소득 기준)-이란 실리콘밸리처럼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업에 도전할 만한 거죠.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 사업 모델은 간단합니다. 제 아이디어로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들고 선진국 사용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코딩과 운영입니다.”그는 월 5만 달러어치 토큰 사용은 어렵지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컴퓨터 여러 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클로드를 계속 실행해서 작업을 처리하면 됩니다. 어렵지 않아요. 잠자는 동안에도 클로드를 계속 작업시키면 하루 1000달러 이상 토큰 사용량은 쉽게 달성할 수 있죠.”그는 코딩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작업을 AI를 이용해 자동화했는데요. 예를 들어 제품 이름을 정하고 웹사이트 도메인을 정하는 작업을 AI에 맡깁니다. “제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작성한 뒤, 클로드에게 이 정보를 조합해 1만개의 적절한 도메인을 자동 생성하고 등록 상태를 조회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죠. 5~6시간 뒤 결과가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표준 운영 절차를 자동화했어요.”류샤오파이는 베이징 자신의 사무실을 다른 바이브 코더들과 함께 쓰는 공유오피스로 운영합니다. 일종의 바이브 코더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한 건데요. IT 대기업 출신의 전직 프로덕트 매니저(PM)가 커뮤니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는 “주요 기술 기업 출신 프로덕트 매니저(PM)들이 AI 시대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하는데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기술 대기업이 관료화되면서 천문학적인 내부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지출하고 있어요. 무언가를 만들려는 PM은 팀원과 상사, 더 위의 상사를 설득해야 하죠.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몇 달이 지나갑니다. (…) PM들은 (제품 개발의) 프로세스를 본능적으로 이해해요. 이전엔 코드 작성만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오늘날 AI 바이브 코딩이 그 공백을 메웠습니다. 이제 아이디어가 생기면 누구에게 구걸할 필요가 없죠. 일주일 만에 직접 만들어 냅니다. 잘 팔리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죠. 다음 주에 다른 걸 시도하면 되니까요.”그러면서 지난해 11월 텐센트를 그만두고 나와서 바이브 코딩을 독학한 뒤, 올해 5월 중국식 사주팔자를 영어로 알려주는 앱을 개발한 바이브 코더 사례를 소개합니다. 처음엔 고작 월 100달러 남짓 벌었지만, 이젠 제품을 추가하면서 하루 1000달러씩 벌고 있다죠.하지만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기술 대기업들이 전부 AI에 올인하고 있는데. 그 고래들 틈에서 바이브 코더 1인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류샤오파이는 오히려 개인 개발자나 소규모 팀에 기회가 열려있다고 말합니다. 대기업은 포착하지 못하는 틈새시장이 널려있기 때문이라는데요.“핵심은 매우 구체적인 사용자 요구사항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예컨대 틱톡에 올라온 AI 생성 영상을 직접 복제해서 자기 모습을 그대로 옮겨 담을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한다면, 사용자는 돈을 낼 겁니다. 이 도구 없이 구글 베오(Veo)나 오픈AI 소라2(Sora2)를 이용해선 이런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바이트댄스나 구글 같은 대기업은 이런 기회를 감지조차 할 수 없습니다. 대기업은 기술을 강조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승리하기 위해 ‘기술적 해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AI 앱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건 기술에 달린 게 아니라, 사용자 니즈를 파악하는 데 달려있으니까요. 제 주변엔 바이브 코딩만으로 월 5만 달러(약 7400만원) 넘게 버는 사람이 12명쯤 있습니다.”‘초생산성’의 시대가 온다AI 기술로 솔로프리너(Solo+Entrepreneur) 시대가 왔다고들 얘기하죠. 혼자서도 AI 기술을 이용해 기업 수준의 시스템을 갖추고 성과를 낼 수 있단 뜻인데요. 베이징의 바이브 코더들이 바로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미국 실리콘밸리의 연쇄 창업자이자 골든게이트AI 연구소를 운영하는 스티브 뉴먼은 류샤오파이로 대표되는 AI 기술의 이런 새로운 트렌드를 “초생산성(Hyperproductivity)”이라고 명명합니다. 거의 모든 직접적인 업무는 AI에 위임하는 대신, 인간은 이를 관리하고 최적화하는 데만 집중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거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자체가 바뀝니다. “초생산적인 개인은 자신의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 업무를 인공지능(AI)에 위임하죠. 그들은 시간을 들여 AI가 자신의 업무를 더 잘 수행하도록 최적화하는 데 집중합니다.”물론 이렇게 초생산적으로 일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이 필요하고요. 무엇보다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운 점이죠. 반복되는 일상은 이미 자동화됐기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끊임없이 익혀야만 합니다. 상당히 도전적인 일인데요.스티브 뉴먼은 ‘초생산성’이란 새로운 트렌드가 지금처럼 소규모 틈새 현상에 머물고 말지, 아니면 더 광범위하게 퍼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초생산성이 기술 업계의 일하는 방식으로 대세가 된다면? 아마도 “빠르게 움직이는 스타트업의 쓰나미”가 일어날 거란 게 그의 전망이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 거대한 파도에 속절없이 휩쓸려 버리고 말까요, 아니면 파도에 올라탈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각자 답을 찾아야 할 겁니다. By. 딥다이브 바이브 코딩을 두고는 ‘그것이 바로 일의 미래’라는 시각과 ‘오류투성이의 쓰레기를 만들 뿐’이란 회의론이 공존하죠. 하지만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이미 뛰어들어 성과를 올리고 있었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월 200달러 요금제로 5만 달러어치 토큰을 소진한 클로드 유저. 그 정체는 12개 AI 소프트웨어를 출시한 베이징의 바이브 코더였습니다. 연 100만 달러 수익을 올린다는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베이징의 바이브 코더 커뮤니티를 소개했죠.-이들의 타깃 고객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사용자들. 구체적인 사용자의 니즈를 해결해 주면 선진국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동시에 운영과 관련한 대부분 작업은 AI로 자동화해서 해결하죠. 그렇게 끊임없이 제품을 만들어 나갑니다.-AI 기술로 ‘초생산성’의 시대가 오는 걸까요. 이제 인간이 하는 일은 업무의 직접적인 수행이 아니라, 관리와 최적화로 바뀌고 있습니다. AI를 무기로 삼은 스타트업의 쓰나미가 몰려옵니다.*이 기사는 11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