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란

한애란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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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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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4~202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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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진의 혼다’는 왜 전기차 앞에서 무너졌나(feat. 기술의 자만)[딥다이브]

    전기차 시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던 일본 혼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올해 양산 예정이던 전기차 3종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전기차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했죠.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자, 전기차 전략을 전면 수정한 건데요.역시 막대한 투자비가 드는 ‘전기차 올인’은 기업에 너무 위험한 전략인 걸까요. 글쎄요. 혼다가 왜 위기에 빠졌는지를 살펴보면 진짜 원인은 전기차가 아닙니다. 기술적 자만에 빠져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외면한 결과이죠. 레거시 기업의 혁신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사례, 혼다의 위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3월 25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물거품 된 전기차 전환 계획혼다 0 살룬(세단), 혼다 0 SUV, 아큐라 RSX. 혼다의 신형 전기차 3종은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 공장은 생산설비를 이미 갖췄고, 딜러 교육과 브로셔 인쇄까지 마친 상황이었죠. 2021년 ‘탈엔진’을 선언하며 전기차에 올인해 온 혼다의 미래차 전략이 빛을 보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그리고 3월 12일, 이 계획이 물거품이 됐죠. 미베 토시히로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적자 전환을 공식화하면서 신형 전기차 3종의 개발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면서 말이죠. 아울러 그는 향후 2년간 최대 2조5000억 엔(약 23조5000억원)의 기록적인 손실이 발생할 거라고도 예고했어요. 1950년대 상장 이후 혼다가 연간 적자를 기록한 건 처음입니다.미베 사장은 이런 결정의 이유로 미국 전기차 수요 급감을 거론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전기차 보조금은 중단되고, 환경 규제도 사실상 무효화되면서 전기차의 성장세가 꺾였다는 거죠. 어차피 생산해봤자 안 팔릴 게 생겼으니, 지금 접는 게 그나마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란 판단입니다.하지만 이게 전부 트럼프 행정부 탓이기만 할까요. 보조금 없이 겨루기엔 전기차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뜻은 아닐까요. 또 혼다가 돈 잘 벌고 있다면, 굳이 막대한 매몰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신형 전기차 개발을 포기할 필요까진 없을 텐데요. 문제는 혼다 승용차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단 점이죠. 2019년 정점(532만대)을 찍은 혼다의 전 세계 승용차 판매량은 지난해 352만대로 쪼그라들었어요.이런 상황에 대해 혼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놀랍도록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중국에선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기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혼다는 신규 전기차 제조업체들에 비해 가격 대비 가치를 더 잘 제공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했고, 결국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엔진의 혼다’라는 함정 차체 가볍고, 연비 좋고, 핸들링 정교하고, ‘운전의 재미’를 주는 차. 혼다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죠. 특히 엔진 기술에 진심인 회사라서 ‘엔진의 혼다’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혼다의 신화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미국은 배기가스를 10분의 1로 줄이는 초강력 규제를 시행했는데요. GM, 포드 같은 큰 기업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로비를 벌일 때, 혼다는 엔진 연소 기술을 업그레이드한 CVCC 엔진으로 이 규제를 세계 최초로 통과합니다. 오토바이 회사로 통하던 혼다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로 도약하게 된 계기였죠.역시 기술에서 앞서면 규제를 뚫고 성공할 수 있구나. 본래도 기술을 강조해온 혼다엔 ‘기술이 최고’라는 성공 공식이 자리잡았고요. 지금까지 고집스러울 정도로 하드웨어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엔지니어 중심의 문화를 지키고 있습니다.특히 혼다는 ‘세계 최초’의 기술을 유독 강조하는데요. 그래서 수소차나 전고체 전지 같은 혁신 기술에 대한 투자를 오랫동안 이어가고 있죠.그런데 이상합니다. 자동차 역사상 가장 큰 혁신이라 할 만한 전기차 분야에서 혼다는 왜 이렇게 뒤처지게 됐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기차를 너무 가볍게 봤고, 전기차에 진심이 아니었어요.혼다는 과거에도 피트EV(2012년), 클래리티 일렉트릭(2017년), 혼다e(2019년) 같은 전기차를 미국과 유럽에서 출시한 적 있습니다. 이 전기차들은 주행거리가 다른 전기차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도심형 소형 시티카 컨셉이었고요. 가성비가 워낙 떨어지다 보니 모두 저조한 판매량을 보이다가 얼마 못 가 단종되고 말았다는 공통점이 있죠. 간보기식으로 전기차를 출시했다가 단종하길 여러차례 반복해온 건데요. ‘전기차=도심 출퇴근용 차량’쯤으로 여겼기에, 그리 진지하지 않았던 겁니다. 당연히 전기차와 관련한 기술을 축적할 수가 없었죠.그런데도 혼다는 전기차 기술을 만만하게 봤어요. 복잡한 열역학과 기계 공학의 정점인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하면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를 연결하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구조이니까요. 세계 최고 기술력의 혼다라면 전기차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방심했던 건데요.혼다의 이런 착각이 드러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2022년 혼다 경영진이 언론 인터뷰를 했어요. 2021년 강화된 환경 규제에 맞춰 혼다가 ‘탈 엔진’, 즉 2040년까지 100% 전동화 달성이란 거창한 목표를 내건 지 막 1년이 지난 무렵이었는데요. 혼다는 당시 업계 선도주자였던 미국 GM과 파트너십을 맺었죠.왜 GM을 파트너로 선택했는지를 기자가 묻자 미베 CEO는 이렇게 답합니다. “(전기차) 기술적 측면에서 GM와 혼다는 비슷한 수준이거든요.” 도대체 뭐가 비슷하단 건지, 기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고요.이어 혼다의 전동화 총괄 임원은 GM의 뛰어난 점은 기술력이 아닌 마케팅 능력이라고 말했어요. 어차피 배터리 기술에선 별 차이가 없다면서 말이죠. “GM이 부럽습니다. 얼티엄(Ultium)처럼 브랜딩을 아주 잘하거든요. 마치 궁극의 리튬 이온 배터리처럼 들리잖아요.” 전기차에 무슨 대단한 기술이 있겠느냐는 식의 자신감 내지 자만심이 드러나는 발언이었죠.지난 5년간 혼다는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며 전기차 개발에 올인했고요. 업계는 그 거창한 계획을 믿었습니다. 일본 기업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할 거라 본 거죠. 2025년 1월 CES에서 혼다가 공개한 ‘0 시리즈’ 프로토타입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나름 호평을 받기도 했어요. 혼다가 약속한 레벨3 수준 자율주행 기능, 혼다의 과거 휴머노이드 로봇 이름을 딴 ‘아시모 OS’에 대한 기대도 있었고요.하지만 이번에 혼다는 이 모든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신형 전기차를 판매하는 것보다 이를 취소하고 손실처리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이로써 결국 확인된 셈입니다. 역시나 혼다는 경쟁력 있는 전기차를 만들어낼 역량도, 의지도 부족했단 걸요. 영국 자동차 매체 탑기어는 이를 “역대 가장 충격적인 자동차 뉴스”라고 평했더군요.미국 전기차 매체 인사이드EV는 칼럼을 통해 혼다에 이렇게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기술은 저절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기술 발전에는 투자와 시행착오, 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오직 남이 하는 것만 보고 배운다면, 당신은 항상 그들 뒤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혼다는 0 시리즈를 완전히 폐기하기 전에 뼈아픈 교훈을 얻었기를 바랍니다.”닛산과의 엇갈린 운명 혼다 스스로 밝혔듯이, 중국시장의 실패는 혼다를 적자 수렁에 빠지게 만든 주요 요인입니다. 2025년 혼다의 중국 내 신차 판매량은 64만대. 정점(2019년 155만대)과 비교하면 40% 수준으로 확 쪼그라들었죠.요즘 중국 자동차 시장은 하드웨어보단 자율주행이나 인포테인먼트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이 너무나 중요한데요. 혼다는 이 트렌드를 도통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선 음성 조작 반응속도가 너무 느리다, 현지 앱 생태계와 연동이 매끄럽지 못하다라는 비판이 쏟아지는데요.과거 혼다는 ‘H’로고가 주는 신뢰도 덕분에 중국에서 꽤 오랫동안 프리미엄을 누렸죠. 하지만 이젠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중국 젊은이들이 보기엔 그저 올드하고 가성비 떨어지는 내연기관차 브랜드일 뿐이죠. 같은 가격이면 혼다 대신 화웨이나 샤오미 전기차를 선택합니다.혼다의 추락은 동남아시아와 인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인데요. 왜 인도에서 혼다가 인기를 잃었느냐는 레딧 질문엔 이런 답변들이 올라왔어요. “시장은 변했지만 혼다 제품 전략은 그대로입니다. 구식 인테리어, 밋밋한 화면, 눈길 끄는 기능 없음. CVT(무단변속기)는 부드럽지만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오늘날 구매자들에겐 재미를 주지 못하죠.” “혼다는 고객이 원하는 걸 주지 않고, 자기들이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면서 판매량이 적다고 불평합니다.”혼다는 뒤늦게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전기차 개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상황입니다. “중국 시장의 특성을 감안해 상품력과 비용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카이하라 노리야 부사장)고 밝혔죠.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속도를 혼다가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한편 바로 이 부분에서 불과 1년 만에 혼다와 닛산, 두 일본차 브랜드의 뒤바뀐 신세가 눈에 띕니다. 지난해 2월 두 기업의 합병이 무산됐을 때만 해도, 닛산은 절체절명의 위기였고 혼다는 우위에 있는 듯했죠. () 하지만 이제 혼다의 연간 예상 적자(최대 6900억엔)가 지난해 닛산의 사상 최대 적자 기록(6708억엔)을 깰 판입니다. 재무적으로 어렵기로는 도긴개긴인 거죠. 그런데 닛산은 지난해 출시한 ‘중국형 전기차’ N7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중국시장에서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대폭 단축된 개발 기간(기존 4~5년→19개월), 파격적인 가성비(약 2600만원), 철저한 현지화(딥시크의 AI 기술 적용 인포테인먼트)로 이뤄낸 성과이죠. 자존심 따윈 버리고 현지 업체로부터 배운 덕분입니다.닛산이 이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있었던 건 기본기가 있기 때문이죠. 닛산은 2010년 전기차 리프(Leaf)로 시장을 휩쓸었던 전기차 업계의 개척자였고요. 지난 15년간 전기차 생산 경험과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왔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적어도 전기차엔 진심이었던 기업인 거죠. 최근 닛산은 2026년 하반기 도쿄에서 로보택시 시험 운행을 시작한다는 계획도 발표했어요.이게 닛산과 혼다의 다른 점입니다. 두 회사 모두 위기에 처했지만, 적어도 닛산은 미래로 나아가고 있고요. 혼다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전기차 계획을 접고 다시 과거로 후진 중이죠. 이 차이가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월 25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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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장부터 식탁까지, 이란전쟁이 아시아 일상을 뒤흔든다[딥다이브]

    1973년 11월, 일본 도쿄 긴자거리는 네온사인이 꺼져 암흑에 잠겼고, 서독에선 일요일 차량 운행이 금지돼 아우토반이 텅 비었습니다. ‘1차 오일쇼크’의 충격을 보여주는 역사 속 상징적인 장면들인데요.그럼, 이란전쟁으로 인한 에너지난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요.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각국, 특히 중동 석유와 가스 의존도가 큰 아시아 국가들은 비상 상황인데요. 공장부터 식탁까지 뒤흔드는 이란발 에너지 위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3월 20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이란전쟁이 덮친 인도 식탁LPG 가스통과 함께 충전소 앞에 긴 줄을 늘어선 사람들. 이란 테헤란에서 약 3000㎞ 떨어진 인도에서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LPG 운반선 운항이 중단되면서, 인도 전역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LPG 가스 재고량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죠. 인도엔 LPG를 취사용으로 쓰는 집이 무려 3억 가구가 넘거든요.가스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엔 몸싸움이 벌어졌고요. LPG 가스통을 실은 트럭은 도둑들의 표적이 됐습니다. 이를 틈 타 사기꾼까지 판치죠. “가스를 예약하라”며 악성코드가 심어진 앱을 휴대폰에 설치하게 하는 겁니다.인도 정부는 가정용 LPG 공급을 위해 산업용 LPG 공급을 확 줄였는데요. 그 결과 지금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건 식당입니다. 불이 없으니, 메뉴를 줄이거나 점심 장사를 포기한 식당이 늘어만 가죠. “많은 식당이 문을 닫았습니다. 주방을 유지하기 위해 (가스레인지를) 석탄, 나무, 전기밥솥으로 바꾸고 있죠.”(인도 전국레스토랑협회 만프리트 싱 이사 BBC 인터뷰)아마존 인도에선 인덕션 판매량이 30배 넘게 폭증했어요. 문제는 인도 음식이 인덕션과는 궁합이 썩 맞지 않는단 점인데요. 인기 레스토랑 ‘안나푸르나’는 메인 메뉴인 도사(남인도식 팬케이크) 판매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가스 불이 아니면, 도사의 바삭한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죠. “정말 잔인한 일입니다. 저희는 58년 사업을 했는데, 이런 건 처음이에요.”(제간 다모다라사미 CEO 블룸버그 인터뷰) 에너지 비상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최후의 카드가 바로 배급제이죠. 인구 1억 7000만명의 방글라데시는 지난 6일부터 ‘연료 배급제’를 시행했어요. 휘발유 사재기와 패닉 구매를 막기 위해서였죠.주유소마다 긴 줄이 늘어서면서 민심은 들끓었습니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 2L를 주유했다”는 오토바이 운전자, “어제는 기다리다 못 넣었는데, 오늘도 10L밖에 못 샀다”는 승용차 운전자의 한탄이 이어졌는데요.급기야 지난 14일 밤엔 사망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한 20대 남성이 대기줄 문제로 주유소 직원과 말싸움하다가, 직원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사망했어요. 이에 분노한 군중들이 주유소를 부수고, 버스 3대에 불을 지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요. 결국 정부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이튿날인 15일 배급제를 전격 해제했습니다. 에너지난이 치안 불안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죠.미얀마는 홀짝제, 필리핀은 주 4일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장 쓸 수 있는 효과적인 카드는 수요 억제, 즉 에너지 절약입니다. 이란전쟁 이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앞다퉈 짠내 나는 비상대책을 발표했는데요. 그중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태국: 공무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했습니다. 원격 근무 전환이 가능한 약 30%의 인원이 대상이죠. 공무원의 해외 출장도 중단했고, 더운 정장 대신 반팔셔츠를 입으라고 했어요. 사무실 에어컨 온도는 26~27도로 유지해야 하고요. 특히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라”는 아누틴 찬위라꾼 총리의 지시 내용이 화제가 됐죠.필리핀: 중앙 정부 부처와 공기업, 지방정부, 국립대학 등이 9일부터 주 4일 근무제에 들어갔습니다. 경찰·소방·병원 같은 필수 기관을 빼고 말이죠. 주 5일 근무 대신 하루 10시간씩 4일만 근무하는 식인데요. 또 불필요한 대면 회의를 금지하고, 에어컨 온도를 24도로 제한하는 조치도 함께 시행됩니다.미얀마: 군사정권이 7일 ‘차량 번호판 홀짝제’를 시행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만 차량 운행을 허용하는 초강력 조치죠. 위반하면 차량을 압수한다며 강한 처벌도 예고했는데요. 다만 이 홀짝제에서 전기차는 예외입니다. 그 결과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기차 가격이 순식간에 몇천만원씩 뛰었는데요. 덕분에 전기차 수입업체를 운영 중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군사정권 수장)의 두 자녀는 대박이 나게 생겼습니다.대만의 ‘11일 치 LNG’ 사투 동북아시아의 한국, 일본, 대만은 모두 ‘에너지 섬’ 같은 비산유국이죠. 석유와 LNG 공급 모두 해상을 통한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요. 그래서 위기에 대비해 다른 나라보다 비축유를 더 많이 쌓아두고 있는 편입니다. 한국 208일분, 일본 254일분, 대만은 146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죠.액화천연가스(LNG) 비축량은 석유보단 적습니다. LNG는 원래 보관하기가 까다롭거든요. 그냥 탱크에 담아두면 되는 석유와 달리 LNG는 초저온(영하 162도) 저장탱크가 필요한데, 이게 만들기 비싸고 어렵습니다. 우리나라가 법으로 정한 LNG 의무 비축량은 9일 치이지만, 실제 확보해 둔 물량은 훨씬 더 많다는데요. 정부는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지만, 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IEEFA)의 2023년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LNG 저장용량은 총 52일 치에 달합니다. 현재 일본은 21일 치의 LNG 재고를 보유 중이고요. 대만의 고작 11일 치를 탱크에 저장 중이죠.그래서 이란이 카타르의 LNG 생산시설 라스라판을 공격하자, 가장 불안해 하는 나라가 바로 대만입니다. 만약 LNG 부족으로 대만의 전력 공급이 불안해진다면, 그건 이만저만 큰일이 아니죠. TSMC의 반도체 공장 가동에까지 영향을 줄지 모르니까요.급해진 대만 국영 석유기업 CPC는 최근 현물시장에서 천연가스를 대량 구매했어요. 현물로 사면 가격이 비싸고 이미 지상 저장공간도 꽉 찼지만, 그래도 사들여서 선박에 실은 채로 두기로 한 거죠. 쿵밍신 대만 경제부 장관은 4월 말까지 천연가스 공급엔 차질이 없다면서 “천연가스 부족으로 인한 전력 배급제는 어떤 경우에도 시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하지만 이 전쟁이 4월에도 끝나지 않는다면 어쩌죠? 4월 말부턴 대만의 에어컨 사용량이 급증할 거라 더 걱정인데요. 대만에선 여러 대책이 논의 중입니다. 그 중 하나가 폐쇄하거나 출력을 낮췄던 석탄 화력발전소를 풀가동하는 거고요. 지난해 폐쇄된 마안산 원전의 재가동도 거론되죠. 한편, 이런 기회를 중국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18일 중국 대만사무판공실의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에너지 통일론’을 주장하며 이렇게 대만을 압박했어요. “평화로운 통일로 양안 연결망이 구축되면 대만의 전력, 천연가스, 원유 부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이란 전쟁이 길어지면서 한국 정부도 차량 5부제 또는 10부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죠. 만약 전국적으로 민간까지 10부제를 시행한다면 1991년 걸프전 이후 35년 만의 일이 될 겁니다.또 중동산 나프타 수입이 막히면서 요즘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완전히 비상입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이 줄줄이 ‘불가항력(Force Majeure)’, 즉 어쩔 수 없는 이유(이번엔 전쟁)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다고 선언했을 정도인데요. 이로 인한 연쇄적 생산 차질이 걱정스럽죠. 비닐 포장지와 플라스틱 용기가 동나게 된다면, 라면·과자 같은 식품 업계까지 타격이 불가피합니다.결국 에너지 수입국이라면 이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 보이는데요. 부디 더 이상의 확전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월 20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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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은 1박 200만원, 제주는 부활? K-호텔의 미래 전망[딥다이브]

    21일 BTS 컴백 공연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에 무려 26만명이 집결한다죠. 덕분에 서울 호텔들이 특수를 누립니다. 광화문 주변 호텔은 일찌감치 방이 동났고, 강남·잠실권 호텔까지 예약률이 치솟았죠.이런 서울 호텔의 대호황이 앞으로 5년 이상 이어질 트렌드라는 걸 아시나요. 요즘 ‘호텔을 개발하고 싶다’는 문의가 이곳으로 밀려들고 있다는데요.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서 호텔 개발과 매각에 관한 컨설팅을 담당하는 호스피탈리티 자문서비스팀을 16일 만났습니다. 민병은 팀장의 인터뷰 답변을 중심으로 뜨거워진 호텔 시장을 들여다봅니다. *이 기사는 3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방이 모자라다, 호텔을 짓자!-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대(1870만명)를 찍었고,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반면 서울은 코로나 이후 지난 수년간 새로 문 연 호텔이 별로 없어서 방이 모자라다고요?“저희가 2024년부터 공급 부족을 얘기했어요. 일단 서울에 (호텔을 개발할) 땅이 없고요. 원래 호텔은 부동산 중에서도 개발하기에 가장 비싼 자산인데, 코로나 이후 자재 원가가 확 올라서 공사비가 너무 비싸졌죠.또 숙박 수요라는 게 일정치가 않거든요. 과거 사드(THAAD) 여파가 있었고, 갑자기 코로나도 왔고요. 호텔 시장은 수급 불균형이 아니었던 때가 없긴 한데, 그게 호텔 개발의 큰 허들로 작용했어요.”-그럼, 향후 몇 년이나 공급 부족이 이어질까요?“5년, 길게 보면 한 7년까지요. 지난해부터 서울 호텔의 매입·매각이 활발했는데, 올해 안에 우량자산은 손바뀜이 다 이뤄질 거고요. 요즘엔 호텔 개발 검토에 대한 문의가 드라마틱하게 많아졌어요. 살 만한 좋은 호텔 물건을 찾기 어려워지자, 아예 새로 지어야겠다고 나서는 거죠.”-말씀하신 대로 서울에 땅이 없는데 어디에 개발하나요?“기존에 보유한 자산을 부수고 새로 짓거나, 원래는 오피스를 지으려던 개발부지를 호텔로 바꾸는 거죠. 요즘엔 투자자들이 오피스 쪽은 투자를 주저하고, 호텔이어야 투자나 대출이 잘 이뤄지거든요. 하지만 리스크가 큽니다. 개발 기간이 5년은 걸리니까요.”-검토에서 준공까지 5년이나 걸려요?“호텔은 원래 설계 기간이 오피스보다 훨씬 길어요. 오피스는 일단 표준대로 지어놓고 임차하면 되는데요. 호텔은 운영사(호텔 브랜드)별로 원하는 방향성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설계 단계부터 운영사가 관여하죠. 안전 시스템과 동선, 인테리어는 물론 가구 하나 놓는 것까지요.”영화관을 호텔로 바꿀 수 있나요? NO!-그에 비하면 원래 있던 건물을 호텔로 바꾸는 건 시간이 훨씬 단축되지 않을까요?“그 건물 상태에 따라 굉장히 다릅니다. 만약 사무실이었다면 물탱크 용량이 매우 작을 텐데, 숙박시설로 쓰려면 용량을 대폭 늘려야 하죠. 화장실도 층마다 하나만 있는데, 호텔은 방마다 있어야 하고요. 엘리베이터 대수도 늘려야 해요.”-사무실 공간에 벽을 세워서 방을 만들면 호텔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네요. 기본 설비 용량 자체가 달라져야 하는군요.“저희 팀이 작년에 12건을 검토했어요. ‘이 건물을 매입한 다음 호텔로 전환하고 싶은데, 할 수 있냐’는 식의 문의였죠. 물론 안 되는 자산이야 없어요. 부수고 지으면 되니까요. 다만 저희는 평면도를 딱 보면 나오죠. 이게 사이즈가 나올지, 안 나올지.” -부수지 않는 한 호텔 전환이 어렵겠다는 평면도가 있는 건가요?“많아요. 검토했던 건 중 건물 상층부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객실로 바꾸고 싶다는 게 있었어요. 영화관이 크니까, 그걸 여러 층으로 나누고 객실로 만들면 될 것 같다고 본 건데요. 저희가 물어봤죠. ‘거기 창문이 있습니까?’”-아…, 창문이 없네요.“그러면 결론이 이렇게 되죠. ‘다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합니다.’ 저희는 건축적으로 (호텔 전환을) 받아줄 수 있느냐, 소방 같은 안전규정에 부합하느냐를 따진 다음, 지하실에 가봐요. 소방펌프, 부스터 펌프, 보일러, 물탱크 같은 모든 설비를 전부 바꿔야 하거든요. 그대로 둘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호텔로 전환하면 괜찮습니다’라고 답한 게 12건 중 딱 한 건뿐이었어요.”해외 호텔 브랜드를 유치하는 방법-얼마 전 명동 눈스퀘어에 일본 캡슐호텔 브랜드 ‘퍼스트 캐빈’을 유치하셨죠. 여긴 왜 캡슐호텔로 했을까요? “눈스퀘어 7층은 2년 반 정도 공실이었어요. 임대인이 이걸 뭘로 쓸지 고민하다가 저희랑 얘기하면서 숙박시설이 좋겠다고 봤고요. 빠른 실행을 위해 일반 관광호텔이 아닌 캡슐호텔을 권해드렸죠. 다만 눈스퀘어는 명동을 상징하는 곳이잖아요. 안전과 소방 규정은 맥시멈 레벨로 지켜야 한다고 봤어요. ”-얼마 전 소공동 캡슐호텔에서 화재가 났더라고요.“한국 캡슐호텔 시장은 아직 개인 사업자의 영역이에요. 하지만 개인 사업자는 눈스퀘어의 격에 맞는 임차인이 되긴 어렵다고 봤고요. 시스템이 잘 구축된 글로벌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일본으로 겁 없이 나갔죠.” -그냥 ‘똑똑, 저희 한국에서 왔는데요. 혹시 눈스퀘어 아시나요?’ 이런 식으로 한 건가요?“사전 시뮬레이션 자료를 가지고 먼저 일본 브랜드와 비디오콜을 했는데요. 마침 도쿄나 오사카 캡슐호텔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인 상황이라 기류가 좋았어요. 하와이에 이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진출을 검토 중이었는데, 저희가 ‘서울로 먼저 들어오시라’고 얘기했죠.이후 제가 직접 일본에 가서 퍼스트 캐빈의 모회사 회장님을 만났는데요. 여기 두 분(정다정 차장, 이수민 과장)은 그 회의 시간에 맞춰 명동 눈스퀘어에서 핸드폰으로 라이브스트리밍을 했어요. ‘여기가 명동 거리, 눈스퀘어 앞입니다. 1층에서 지금 올라갑니다’라면서요. 그게 회장님의 마음을 건드렸죠.”서울도 ‘1박 200만원’ 시대 온다 -명동 타임워크 빌딩을 3성급(이비스 앰배서더 명동)에서 4성급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도 최근 하셨죠. 이렇게 호텔 브랜드 등급을 높이면 임대인 입장에선 그만큼 건물의 자산가치도 올라가나요.“그렇죠. 더 나은 객실가격을 받게 되면 그만큼 임대료도 올려받거든요. 저희가 예측하기로 명동 4성급 시장의 ADR(연간 1박 객실 평균가)과 3성급 시장은 약 5만원 정도 항상 차이가 나요.”-그 갭이 좁아지진 않고요?“주택시장에서 입지에 따른 가격 차이가 유지되는 것과 비슷해요. 명동 안에서도 3성급과 4성급의 위계는 늘 유지되고요. 또 같은 등급이어도 명동과 홍대 사이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한 4~5만원 차이가 나죠.”-서울의 톱은 항상 명동인가요?“명동을 이기는 동네는 없어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서울 호텔 숙박료가 싼 편이고, 그래서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도 하던데요. 그게 맞는 얘기인가요?“많이 저평가돼 있죠. 도쿄 긴자에서 하룻밤 묵는 것과 명동에서 자는 것, 얼마나 차이 날 거 같나요?”-왠지 긴자가 훨씬 비쌀 것 같네요.“긴자가 한 1.5~1.8배 정도 됩니다. 그만큼 서울이 저평가 돼있으니, 수요와 공급 논리에 따라 (객실료가) 올라갈 거고요. 또 호텔은 ‘브랜드가 곧 가격’이거든요. 한국에선 포시즌스가 마지막으로 들어온(2015년 오픈) 최고 등급의 호텔 브랜드이고, 지난해 ADR이 80만원 정도인데요. 이제 포시즌스에 준하는 새로운 브랜드가 들어오면서 가격을 들어올릴 거예요.”-어떤 최고급 브랜드가 서울에 들어오나요?“예정된 건 아만, 만다린 오리엔탈이 있고, 리츠칼튼도 다시 들어오죠. 그리고 이들은 포시즌스보다 더 비싸게 받을 거예요. 그동안 호텔 자산을 개발하는 데 드는 원가가 올랐으니까요.”-마치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하네요.“아만(AMAN) 서울(청담동 옛 프리마호텔을 재개발)이 오픈하면 우리나라도 ADR(1박 평균 객실단가) 200만원 시대를 보지 않을까 싶어요. 도쿄의 포시즌스나 불가리가 이미 다 200만원이 넘거든요.”-한국엔 지금 100만원 넘는 호텔도 없는데, 200만원대가 열릴 잠재력이 있는 거네요.“다만 그들이 예측한 오픈 시점은 2030년 즈음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초럭셔리 호텔 전성시대’는 우리가 5년 이내에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고요. 또 현재는 서류로만 존재하는 이 사업장들이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두고 봐야 하죠. 사실 한두 개만 완공돼도 성공이에요.”2~3년 뒤엔 제주가 다시 뜬다? -서울 호텔은 대호황이지만, 지방 호텔은 텅텅 비어서 울상이라는데요.“코로나가 끝나고 해외 여행을 많이 가면서 직격탄 맞은 게 제주였죠. 그런데 저는 2~3년 내엔 제주 시장이 돌아올 거라고 확신해요. 일단 지난해 시작된 중국 단체 관광객 비자면제 프로그램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났고요. 국내 관광객도 다시 올 겁니다.”-그동안 해외 여행 많이 다녔으니까요? “관광은 항상 사이클이 있는 법이거든요. 해외 여행할 건 거의 다 했으니까, 다시 ‘제주도 가서 노는 게 편하다’며 돌아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그래서 제주에 호텔이나 리조트를 소유한 법인들은 지금이 수선 타이밍이라고 보고 있어요. 2~3년 뒤에 손님맞이를 제대로 할 준비를 하는 거죠.사실 저희 팀의 꿈은 지방의 호텔 건립 사업을 지원하는 거예요. 지금은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가 너무 심하잖아요. 지방자치단체는 다들 호텔을 유치하고 싶어하는데, 민간 시장이 반응하지 않아서 어렵죠. 그 중간 연결고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만약 지방사업을 성공궤도에 올릴 수 있다면, 그게 서울 호텔 10개를 한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을 겁니다. 진짜 호스피탈리티 실력자라는 걸 보여줄 수 있죠.”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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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60% 수익률의 유혹? 중국 뒤흔든 ‘랍스터’ 광풍과 반전 [딥다이브]

    최근 중국을 들썩이게 만든 ‘랍스터 키우기’를 아시나요. 랍스터란 별명으로 불리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 오픈클로(OpenClaw) 붐이 중국을 휩쓸고 있습니다.하지만 무료 분양이라던 이 랍스터, 키워보니 하루 먹이값만 몇만 원씩 나간다죠. 게다가 주인 은행 계좌까지 털 수 있는 위험천만한 존재입니다. 한편에선 오픈클로 설치 열풍이 한창이지만, 다른 편에선 이걸 다시 지워주는 ‘제거 서비스’까지 등장했는데요. 중국의 ‘오픈클로 현상’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3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집게발 가진 디지털 비서3월 6일 금요일, 중국 선전의 텐센트 본사 앞에 1000명 넘는 사람이 몰려 줄을 섰죠. 텐센트 엔지니어들이 무료로 오픈클로를 설치해 준다는 소식에 몰려든 인파였습니다. 9살 초등학생, 70세 무형문화재 전문가, 가정주부 등 IT 업계와 거리가 먼 일반인이 많았죠. 중국에서 오픈클로가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요.요즘 중국은 베이징·선전·항저우 등 전역에서 연일 ‘오픈클로 배우기’에 대한 강연과 행사가 이어집니다. 9일 푸셩 치타모바일 CEO가 진행한 ‘오픈클로 활용법’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엔 55만명의 동시 시청자가 몰렸어요. 온통 ‘랍스터(오픈클로의 별명)’ 이야기로 가득합니다.이 광풍의 실체를 들여다보기 전에 오픈클로가 뭔지부터 정리해 볼까요.오픈클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설치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입니다. 오스트리아 개발자 피터 슈타인베르거가 2025년 11월 처음 선보였죠. 미국과 한국에서도 기술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상당히 인기를 끌었는데요.오픈클로는 챗GPT 같은 AI 챗봇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챗봇은 말만 잘하지만, 오픈클로는 손이 있거든요. 이름에 ‘집게발(Claw)’이 들어간 이유이죠. 집게발처럼 컴퓨터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제어해서 업무를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데요.예를 들어 “OO에게 이메일 답장을 써줘”라고 하면 챗봇은 그 초안만 작성해 주잖아요. 오픈클로는 실제로 메일 앱을 열어 수신인을 지정하고 내용을 쓴 뒤 전송 버튼까지 누릅니다. 진짜 비서처럼 부릴 수 있는 거죠.오픈클로는 로컬, 즉 내 PC나 스마트폰에서 작동한다는 것도 다른 점입니다. 챗GPT 같은 다른 AI 서비스는 클라우드 기반이에요. 그래서 내가 챗GPT에 한 질문, 공유한 자료는 오픈AI의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되죠. 그게 왠지 찜찜할 수 있는데요. 오픈클로는 내 컴퓨터 안에서만 데이터가 돕니다. 외부 서버를 통하지 않고도 그 안에 있는 자료를 AI가 읽고 분석하죠. ‘내 책상에 앉아서 내 컴퓨터를 직접 만질 수 있는 비서’인 셈입니다.또 오픈클로는 일반 메신저를 통해 이용해요. 예컨대 챗GPT를 쓰려면 보통 챗GPT 전용 앱을 다운받아 사용해야 하는데요. 이와 달리 오픈클로는 텔레그램, 왓츠앱, 시그널, 아이메시지 같은 일반 개인용 메신저에서 대화하듯 사용합니다. 특히 중국에선 국민메신저인 위챗(WeChat)과 연동되면서 붐이 일었죠. 참고로 오픈클로는 오픈소스 기반이고, 누구나 공짜로 설치할 수 있습니다.AI 벼락부자가 될 기회?어떤가요. 분명 혁신적인 서비스이긴 한데, 그렇게까지 열풍이 불 정도인가 싶기도 합니다. 중국엔 유독 AI 기술에 관심이 큰 얼리어답터가 많은 걸까요?그런 건 아니고요. 지금 중국에서 오픈클로 광풍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잘만 하면 그걸로 대박 날 수 있다는 (섣부른) 희망, 그리고 남이 다 하는데 트렌드에 뒤처질 수 없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이죠.이메일 정리, 주간 보고서 작성, 경비 정산, 회의실 예약, 엑셀 시트 업데이트. 이런 정도의 작업이라면 오픈클로에 맡긴다고 해서 그리 큰돈이 되진 않겠죠. 하지만 이런 건 어떨까요? 주식 자동 매매.‘오픈클로에 50달러의 투자금을 줬더니 48시간 만에 2980달러로 불려 무려 5860% 수익률을 달성했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이런 글이 지난달 온라인에서 퍼져나갔습니다. 오픈클로로 미국의 예측 사이트 ‘폴리마켓’에서 투자해 대박을 냈다는 내용이었는데요.누가 썼는지 모를 이 영문글이 중국어로 번역돼 소개됐고요. 2월 설날 연휴를 기점으로 중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나도 한번 랍스터(오픈클로)에 주식 투자를 맡겨볼까’라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었고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랍스터 주식투자법’을 알려준다는 동영상 강의가 마구 생겨났죠. 심지어 여러 증권사까지 이에 가세해, 오픈클로를 이용해 투자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특별 보고서를 앞다퉈 내놨습니다.일단 오픈클로가 뜨자, 돈벌이에 이걸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각종 성공 사례가 속속 쏟아져 나옵니다. 대표적인 게 소셜미디어 계정 관리이죠. 오픈클로는 소셜미디어에 글과 사진, 동영상을 올리고 댓글까지 달 수 있어요. 사람처럼 메시지를 보내거나 그룹 채팅도 할 수 있고요. 수십, 수백개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아주 손쉽게 관리하게 됩니다.또 온라인 쇼핑몰 운영도 일부 맡길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이런 걸 오픈클로에 시키는 거예요. ‘매일 아침 6시에 경쟁업체 가격을 검색해서 그 최저가보다 50위안 저렴하게 내 판매가격을 조정해 줘.’ 예전 같으면 사람이 시간을 들여 일일이 찾아보거나, 엔지니어를 고용해 프로그램을 짜야만 가능했던 일을 이젠 오픈클로로 쉽게 할 수 있게 된 거죠.‘그렇게 쉽고 편하다고? 그러면 나도 이걸로 부업이나 해볼까?’ AI 기술과 별 상관없던 가정주부나 은퇴자들까지 오픈클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오픈클로가 ‘24시간 지치지 않고 일하는 슈퍼 직원’ 역할을 할 테니, 1인 창업도 충분히 가능할 거란 기대가 커지죠.중국 지방정부들은 오픈클로 열풍을 더욱 부추기고 나섰습니다. 벌써 20개 이상 도시가 ‘오픈클로 기반 프로젝트를 우리 도시에 유치하겠다’며 각종 지원책을 발표했어요. 임대료 면제, 컴퓨팅 파워 제공은 물론이고요. 최대 600만 위안(약 12억원)의 보조금 지원을 발표한 도시(쑤저우 창수시)도 나왔죠.이로 인해 웃게 된 건 중국 기술기업들입니다. 자체 AI 모델을 보유한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즈푸, 키미, 미니맥스 같은 AI 기업들이죠. 오픈클로 이용자 중 자기네 AI 모델을 선택한 사람이 많아지면 매출이 급상승하게 되니까요.랍스터 양식엔 돈이 든다 3월 들어 중국 내 오픈클로 열풍은 극에 달했고요. 아직도 그 열풍이 이어지고는 있는데요.하지만 미묘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실제 오픈클로를 이용해 본 사람이 늘어나면서 두 가지 사실을 깨우치게 됐기 때문이죠. ①랍스터를 키우려면 꽤 비싼 먹이를 줘야 합니다. ②랍스터는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조심해야 합니다.앞에서 오픈클로는 오픈소스라서 무료라고 얘기했는데요. 하지만 오픈클로에 일을 시키는 데는 돈이 듭니다. 왜? 오픈클로는 프레임워크(뼈대)일 뿐이라서, 실제 일을 할 땐 외부의 거대언어모델(LLM), 예를 들어 GPT-4나 제미나이를 매번 호출하는데요. 그 이용료는 사용자가 내야 하죠. 랍스터를 공짜로 분양받더라도, 키우려면 먹이를 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랄까요.그리고 그 비용이 생각보다 훨씬 클 수 있습니다. 오픈클로에 맡기는 복잡한 작업은 단순 챗봇 대화보다 수백, 수천 배 더 많은 토큰을 소모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자동화된 작업을 24시간 내내 하면 하루 400위안(8만6000원)쯤 든다고 해요. 랍스터 먹이값이 장난이 아닙니다.이보다 더 큰 문제는 랍스터에 내재한 위험성입니다. 앞에서 오픈클로가 내 컴퓨터를 조작하는 비서와 같다고 설명했는데요. 만약 그 비서가 내 이름으로 이상한 이메일을 보내거나, 은행 계좌에서 돈을 빼돌리거나, 아니면 컴퓨터를 초기화시켜서 데이터를 몽땅 날려버리면 어쩌죠?생성형 AI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환각(Hallucination)이고요. 이로 인한 오작동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실제 오픈클로가 명령을 오해하고 15년 치 가족사진을 날리거나, 받은 편지함 전체를 일괄 삭제해 버린 사례가 이미 있는데요. 그래서 일론 머스크는 오픈클로 사용을 두고 이렇게 경고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삶 전체에 대한 루트 액세스(관리자) 권한을 넘겨주고 있다.”오픈클로는 너무 높은 수준의 시스템 권한을 부여받은 탓에 보안 면에서도 대단히 취약합니다. 해킹에 일단 뚫리면 사용자의 모든 정보가 탈탈 털리게 될 테니까요. 실제 오픈클로를 이용하다 신용카드 정보가 도용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중국 국가인터넷응급센터(CNCERT)는 오픈클로의 심각한 보안 위험이 발견됐다며 이렇게 당부했어요. “오픈클로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지 마세요. 신뢰할 수 있는 채널에서 검증된 프로그램만 설치하고, 보안 패치를 설치하세요.”금을 캐느냐 삽을 파느냐 결론적으로 오픈클로는 아직까진 ‘만능 도구’라기엔 부족한 실험단계 제품에 가깝습니다. 효용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들고, 보안이 너무 취약하죠.게다가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는 일반인 입장에선 초기 설치 작업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선 신종 사업이 생겨났죠. 오픈클로 원격 또는 방문 설치 서비스. 한 번에 300~500위안(약 6만~10만원)을 받고 오픈클로를 설치해 주는 사업자들이 수도 없이 생겼고, 대활황입니다. 며칠 만에 이 사업으로 26만 위안(약 5500만원)이나 벌었다고 인증한 이가 있을 정도인데요.그런데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오픈클로 무료 설치를 위해 텐센트 본사 앞에 긴 줄이 늘어섰던 게 불과 지난주 금요일인데요.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11일 중국 언론엔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가정 방문 오픈클로 제거 서비스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299위안의 가격으로 조용히 등장했다.’ 랍스터를 분양했던 업자들이 이제 ‘랍스터 죽이기’까지 발 빠르게 사업화했다는 소식입니다. 비용과 보안 등의 문제로 오픈클로 제거를 원하는 이용자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겠죠. 한쪽에선 여전히 열풍인데, 다른 쪽에선 벌써 열기가 식어가고 있군요.참, 시장의 순환이 빠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교훈은? 골드러시 시대에 돈을 버는 건 금을 직접 캐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에게 ‘삽과 곡괭이’를 파는 사람이란 점이죠. 사용법도 잘 모르는 AI 에이전트 설치를 위해 다들 서두르는 동안, 누군가는 그들을 상대로 양쪽(설치와 제거)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역시 기술 혁명은 항상 새로운 사업 기회를 동반하는 법이로군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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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전쟁 끝나도 ‘유가 60달러 시대’ 돌아오지 않는 이유[딥다이브]

    이란전쟁은 언제나 끝날까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전쟁이 “매우 빨리(pretty quickly)”, “곧(very soon)” 끝날 거라며 시장을 안심시켰죠. 그 ‘곧’이 언제쯤인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요.그런데 미국이 이대로 ‘승리’를 선언하고 이란과의 전쟁을 끝내면, 세계 경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그러면 좋겠지만, 그리 간단하진 않을 거란 비관론이 우세한데요.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이란전쟁의 여파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3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이번에도 TACO 하나요?전 세계 금융시장이 간절히 원하던 신호가 포착됐습니다. 바로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이죠.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전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분위기가 심상찮아지자, 입장을 바꾼 거죠. 그 덕분에 배럴당 110달러를 뚫었던 원유 선물 가격은 90달러 아래로 급락했고, 주요국 증시는 상승 반전했어요.하지만 10일에도 여전히 이란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여러 나라에 미사일 또는 자폭 드론이 떨어졌고요.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사실상 봉쇄된 상태입니다. 이날 이란혁명수비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이 지역에서 단 1리터의 원유 수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죠. 프랑스·러시아·중국·튀르키예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아직까진 양측이 협상테이블에서 마주하게 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요.그래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쟁과 호르무즈 봉쇄의 장기화라는 시나리오에선 어떻게 해도 ‘세계 경제 공멸’이란 매우 우울한 결론에 이를 테니까요. 그보단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에 공언했던 대로 몇 주 안에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든 끝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린다고 한번 가정해 봅시다. 현재로선 금융시장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이죠. 자, 그럼 그 이후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평온했던 저유가 시대는 안녕이란의 정권 교체는 현재로선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죠. 전쟁이 끝나더라도 아마 이란 정권은 건재한 채 남아있을 겁니다. 게다가 강경파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새로운 최고지도자가 됐으니, 이란의 대외정책은 전보다 더 예측 불가능해졌죠. 미사일 굉음이 사라져도,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이란 정권이 계속 집권한다면 경제적 여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 세계 석유·가스 가격엔 지속적인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될 겁니다.”(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이코노미스트) 이 지역에 일종의 ‘모즈타바 프리미엄’이 추가될 거란 전망인데요.고위험 지역으로 낙인찍힌 이 지역의 각종 보험료와 인건비가 상승할 거고요. 이런 고비용 구조가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국제유가를 끌어올릴 겁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처럼 국제유가가 4배씩 폭등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 이전 같은 60달러대 저유가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순 없는 거죠. “설령 오늘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앞으로도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유가가 상승할 것”(하버드대 경제학과 제이슨 퍼먼 교수)이란 분석입니다.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유전과 가스전이 얼마나 빨리 복구되느냐도 유가엔 관건입니다. 일단 가동을 중단한 유전과 가스전은 스위치 켜듯 바로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건 수도꼭지가 아니라, 거대한 지질학적 압력이 작용하는 매우 정밀한 시스템이기 때문인데요.유전은 가동을 중단하면 내부 압력 평형이 깨지면서 원유층으로 물이 섞여 들어갑니다. 그래서 가동을 재개하면 처음엔 기름 대신 물이 섞인 진흙탕 같은 액체가 나오죠. 이걸 다 걷어내고 다시 순수한 원유가 나오게 만드는 데 보통 몇 주가 걸리고요. 최악의 경우엔 생산량이 100% 회복되지 못할 위험도 있어요.이렇게 원유 공급은 차질이 불가피하지만, 수요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주요 7개국(G7)은 역사상 최대 규모인 3억~4억 배럴의 공동 비축유 방출을 준비 중인데요. 이 비상 상황이 끝나면 그 비축유를 다시 채워둬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에너지 안보에 각성한 여러 나라들이 석유 비축 늘리기에 나설 테니까요. 2023년부터 이어져 온 석유 시장의 ‘구조적 과잉 공급’ 기조는 깨지게 됩니다.이미지 공든 탑 무너지나 상처 입긴 했지만 한층 강경해진 이란 정권의 생존. 주변 걸프 국가 입장에선 최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 또 이란이 두바이나 도하로 미사일을 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니까요. 게다가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보호망이 그리 완벽하진 않다는 게 확인된 상황. 결국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며 중동 국가는 군비 확장에 나서게 될 겁니다.“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은 안보에 대한 기존 가정을 재평가함에 따라 군사비 지출이 급증할 겁니다. 이번 전쟁으로 미국 안보 역량의 한계와 첨단 기반 시설이 저렴한 무기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드러났으니까요. 국방비 증가는 자원 다변화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잠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프레드릭 슈나이더 중동국제문제협의회 연구원) 중동 국가에 무기를 판매할 한국 방산기업엔 호재가 될 겁니다. 반면 스마트시티 같은 첨단산업의 수혜를 기대해 온 기술기업엔 달갑지 않은 전망이죠.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공들여 구축해 온 ‘매력적인 글로벌 투자처’라는 이미지에 금이 갔다는 겁니다. 부유층이 몰리는 ‘중동의 스위스’ 두바이, ‘글로벌 AI 허브’를 자처한 아부다비, 관광과 국제행사의 중심지 카타르 도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거점’을 노리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그 화려한 도시들 뒤편에 알고 보니 이란이란 거대한 화약고가 있더라는 게 이번 전쟁으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특히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중동지역 데이터센터 3곳이 이란 드론의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요.그렇다고 당장 투자자들이 짐 싸서 떠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추가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합니다. “중동전쟁으로 기존 투자가 더 이상 경제성이 없다는 걸 깨달은 기업이 많습니다. 그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투자를 미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하죠. 다음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미시간대 경제학과 저스틴 울퍼스 교수)에너지 패러다임 바꿀 수 있을까일상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꾸곤 합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석유를 쓰는 화력발전소는 자취를 감췄죠. 비싼 석유 대신 저렴한 석탄과 천연가스가 발전원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요. 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이후엔 유럽에선 원자력 발전이 부활했어요.그럼, 이번엔 어떨까요? 휘발유 가격 급등을 확인한 미국에선 다시 이런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미국은 중국처럼 전기차에 투자해야 합니다.”(로드메리 켈라닉 디펜스프라이어리티 연구원)흔히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라 국제유가가 올라도 별 타격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석유는 세계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가격이 어디나 비슷한 법이니까요. 켈라닉 연구원 표현을 빌리자면 “석유시장은 여러 개의 수도꼭지와 배수구가 있는 거대한 욕조”나 마찬가지이거든요. (참고로 석유와 달리 천연가스는 지역마다 가격 차이가 큰 편입니다.)따라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이란전쟁으로 인한 휘발유 가격 급등으로 고통받는 건 똑같고요. 오히려 미국 소비자가 가장 취약할 수도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미국 가정이 유럽이나 일본보다 더 크고 연비가 낮은 차를 운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바로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외쳐온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구호의 공허함이 확인됩니다. 미국이 석유를 더 많이 캐면 석유기업엔 좋겠지만, 일반 미국인도 살기 좋아지느냐? 그건 아닌 거죠. ‘석유 체제’ 안에 있는 한은 모즈타바 하메네이 같은 예측 불가능한 인물에 미국인의 삶이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막을 방법은 결국 ‘탈석유’와 ‘전기화’이죠. 이란전쟁이 보여준 중요한 교훈인데요.과연 이런 깨우침이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에너지 전환 속도가 유독 느린 한국도 되새길 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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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은 미사일이 부족하다? 현대전 바꾼 ‘가성비의 역습’[딥다이브]

    이란과의 전쟁에서 압도적 화력을 보여준 미국. 하지만 세계 최강 군사 대국 미국을 두고 이런 의문이 자꾸 제기됩니다. 아무래도 무기가 부족할 수 있겠는데?왜 미국의 미사일 재고가 고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걸까요. 자폭드론 수백 대가 날아다니는 현대 전쟁터에서 가장 필요한 무기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경제적 소모전이 되어버린 현대 전쟁의 아이러니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3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누구 미사일이 먼저 바닥날까“미군의 중급과 고급 무기 비축량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질적으로 매우 우수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무제한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죠. 이러한 무기만으로도 전쟁은 ‘영원히’, 그리고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3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SNS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죠. 이어 댄 케인 합참의장도 이렇게 장담했어요. “우리는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주어진 임무에 필요한 정밀 무기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이 무기가 충분한 건 당연하지 않냐고요? 미국의 재래식 무기 비축량이 단연 세계 1위인 건 틀림없는데요. 지금 문제는 공격용 무기가 아닌 공중 방어용 시스템입니다. 이란이 날리는 미사일과 드론을 격추하는 데 필요한 요격 미사일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죠.미국 육군의 지상 방공망은 대표적으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패트리엇(PAC-3)이 있죠. 해군 이지스함에 탑재된 SM-3(Standard Missile-3)도 있고요.미군의 무기별 재고량은 기밀이라 공개되진 않는데요. 전략국제연구센터(CSIS)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사드 미사일 약 380발, SM-3 미사일은 414발 남아있을 걸로 추정됩니다. 패트리엇 미사일의 경우 재고량은 알 수 없지만, 2025년 한 해 동안 록히드마틴이 새로 납품한 물량이 620대였다고 하죠. 그나마 역대 최대로 생산량을 늘려서 이 정도입니다.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이란은 주변국 미군 기지와 에너지 생산 시설을 타격했어요. 개전 후 나흘 동안 이란이 날린 탄도미사일이 약 500기, 자폭드론은 약 2000대에 달하는데요.이를 방어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은 패트리엇 같은 요격 미사일 수천 발을 발사해야 했죠. 미사일이나 드론 하나를 격추하려면 요격용 미사일도 하나 이상 필요한 법이니까요. 이런 물량 공세 덕분에 이란의 공격을 상당 부분 막아낼 수 있었는데요.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걸프 국가 모두 요격용 미사일 재고량엔 한계가 있습니다. 무한정 이런 수준의 방어를 계속할 순 없는 노릇이죠. 스팀스센터의 켈리 그리코 연구원은 이 전쟁이 공중전에 막대한 물자를 쏟아붓는 “소모전”이 되어버렸다며 이렇게 설명합니다. “문제는 누가 먼저 미사일이 바닥나느냐는 겁니다. 방어 측(미국과 동맹국) 요격 미사일이 부족해질까요? 아니면 이란의 미사일 또는 미사일 발사 능력이 부족해질까요?”‘미사일 수학’을 해보자결국 이란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변수는 ‘미사일 수학’입니다. 그리고 장기전이 될수록 상황은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습니다. 미국은 강력한 성능의 요격용 미사일을 보유했지만, 이걸 빨리 제때 생산할 수가 없거든요.이는 마크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이란은 한 달에 100발 이상의 미사일을 생산합니다. 반면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요격 미사일은 6~7발에 불과합니다.”이란은 전국 산악 지대 수십 곳에 있는 지하 기지에서 무기를 마구 찍어내고 있어요. 월 100대의 미사일만이 아니라, 샤헤드(Shahed) 드론을 하루에도 수백 대씩 대량생산한다는데요.미국은? 일단 사드(THAAD)는 수년 전에 미국 정부가 주문한 걸 2027년 4월에나 받을 수 있고요. 지난해 620발에 그친 패트리엇 생산량은 2030년에나 연 2000발로 늘어날 계획입니다. SM-3 미사일 납품량은 올해 대폭 늘려서 고작 66대가 될 거고요. 미사일 보충 속도가 턱없이 느립니다.이란 전쟁 이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무기 납품 속도를 높이라고 재촉했어요. 올 1월엔 납기가 지연된 방산기업엔 배당금 지급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기도 했죠. 괜히 주주 환원 같은 데 돈 쓰지 말고, 공장 증설해서 무기를 더 많이 만들라고 기업을 압박한 건데요.하지만 원래 이런 정밀한 첨단 무기는 매우 복잡해서 만드는 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쥐어짠다고 해서 갑자기 생산량을 몇 배로 늘릴 순 없죠. 또 돈도 큰 문제입니다. 무기 구입을 위한 국방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니까요.바로 이 지점에서 또 다른 수학이 작용합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비용 차이가 너무하거든요. 이란의 자폭드론 샤헤드 제조 비용은 대당 2만~5만 달러(2900만~7300만원). 알리익스프레스에서도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중국산 전자 부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단가가 상당히 낮은데요.이에 비해 미국의 패트리엇 미사일은 한 발에 300만 달러(약 44억원), 사드는 1500만 달러(219억원), SM-3는 2400만 달러(350억원)에 달합니다(최근 납품 단가 기준). 비용 교환비, 즉 공격무기 대비 방어무기 가격의 비율을 따지면 최소 60대 1 이상인 거죠.3000만원짜리 드론 잡자고 수십억원 짜리 미사일을 쏜다? 이런 비효율적인 상황을 가리켜, 영국 더 타임스는 이렇게 표현했어요. “플라스틱 표적에 금으로 만든 총알을 발사하는 셈.”미국이 값비싼 무기를 이렇게 허비하는 건 경제적 낭비일 뿐 아니라, 군사 전략 면에서도 치명적입니다. 중동에서 미사일을 소모하는 만큼 미래에 다른 지역, 특히 중국의 대만 침공 같은 충돌이 발생했을 때 쓸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미국이 고가의 첨단 무기를 이란에 많이 퍼부어댈수록 중국이 웃게 되는 겁니다.우크라이나의 아이러니그래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제 이란 지상에 있는 미사일 발사대를 파괴하는 데 집중합니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기보다는 아예 미사일을 날리지 못하도록 선제 타격하는 거죠. 그럼 요격용 미사일도 아끼고, 이란의 공격 능력도 약화할 수 있으니까요. 댄 케인 합참의장은 실제 이란의 탄도 미사일 발사 빈도가 개전 초기보다 86%나 줄어드는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어요. “이란은 미사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발사대가 부족한 것”(오슬로대 파비안 호프만 연구원)이란 해석이 나오죠.하지만 미사일과 달리 자폭 드론은 거대한 발사대 없이 어디서나 띄울 수 있거든요. 크기도 작아서 평범한 창고나 민간 가옥, 트럭 같은 데 숨길 수도 있고요. 선제적으로 타격할 곳이 보이지 않으니, 결국 날아오는 걸 맞춰 떨어뜨리는 방법밖에 없는데요.이 골칫거리를 막기 위해선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란제 자폭 드론을 막는 기술에 통달한 전 세계 유일한 나라가 있으니, 바로 우크라이나입니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드론전쟁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전해드린 적 있는데요. 이 전쟁 초기부터 러시아의 주력 공격용 무기 중 하나가 이란제 샤헤드-136 자폭드론이었습니다.2022년 개전 이후 샤헤드 드론은 우크라이나를 아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는데요. 하지만 전쟁이 만 4년 넘게 이어지면서 우크라이나의 방산 기술력은 놀랍도록 향상됐고요. 이제 샤헤드를 잡는 요격용 드론을 생산하는 기업만 열 곳이 넘습니다.우크라이나가 개발한 고속 요격기로는 ‘스팅(Sting)’이 대표적인데요. 스팅은 샤헤드보다 더 빠른 속도(최고 시속 280㎞)로 날아가 적 드론에 충돌합니다. 조종사가 표적을 지정만 하면 AI 자율주행으로 끝까지 추격할 수 있죠. 요격 성공률은 70~80%에 달하고요. 가격은 단돈 2000달러(294만원)로 샤헤드의 10분의 1 수준이죠. “요격기 가격이 목표물보다 비싸다면 드론을 100% 격추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우크라이나 제25공수여단 소속 파블로 베르호보드 중령).적의 자폭 드론을 가장 싼 값에 막을 수 있는 똑똑한 요격 드론의 탄생. 이 혁신은 유럽 국가들을 고무시켰고요. 지난 2월 19일 유럽 5개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폴란드)이 우크라이나와 손잡고 ‘저비용 타격체 및 자율 플랫폼(LEAP)’ 프로젝트를 공식 출범했죠. 우크라이나 같은 가성비 방공망을 유럽도 구축하려고 나선 겁니다.유럽도 탐내는 고효율의 방어체계라면, 이란과 싸우는 미국에도 유용하지 않을까요. 3일 기자회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렇게 제안했어요. “그들(미국과 중동 국가)이 패트리엇 미사일을 준다면, 우리는 드론 요격기를 제공하겠습니다. 공평한 교환이죠.”당장 이란의 드론 공세를 막아내야만 하는 미국이나 걸프만 국가 입장에선 상당히 솔깃한 제안입니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는 5일 “미국 국방부와 최소 한 곳의 걸프만 국가 정부가 우크라이나산 요격용 드론 구매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죠.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무기 지원을 간절히 요청하는 입장이었어요. 지난해 2월 젤렌스키 대통령은 백악관 회담 중 트럼프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다가 쫓겨나는 굴욕을 당했고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없으면 당신은 아무런 카드도 없다”고 젤렌스키를 쏘아붙였는데요.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바뀔 줄이야.이것이 바로 새로운 전쟁의 시대입니다. 값싼 드론 앞에선 전통적인 무기체계가 힘을 잃고, 모두 평등해지는 거죠. 과연 우크라이나산 요격용 드론이 이란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겠지만요. 적어도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제 카드 한 장을 쥐게 된 건 분명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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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가 120달러?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봉쇄의 경제학[딥다이브]

    쏟아지는 뉴스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과 하메네이 제거로 시작된 전쟁. 이란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초강경 반격에 나서면서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데요. 이거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워낙 상황이 급변해서 예측이 쉽진 않은데요. 하지만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지금 알아두어야 할 팩트 위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이 기사는 3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2~3일이면 된다더니, 5주 이상?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를 포함한 이란 핵심 수뇌부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데 성공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에픽 퓨리(Epic Fury)’ 군사작전. 전례 없이 신속하고 성공적인 지도부 제거였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초기엔 이 사태를 “이틀이나 사흘 안에 끝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는데요.어라, 이후 점점 말이 바뀝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3월 1일)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선 작전 기간을 “4주”로 수정했고요. 이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선 이 작전이 “4~5주를 예상한다”고 언급했죠. 그리고 월요일(2일)엔 군대가 4~5주보다 “훨씬 오래 버틸 능력이 있다”고 말했어요.공습 목적에 대한 설명도 달라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습 직후에 이란 국민을 향해 “정부를 장악하십시오”라고 촉구했어요. 민중 봉기를 통한 정권 교체를 기대한 건데요. 하지만 즉각적인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요. 그러자 이후 애틀랜틱 인터뷰에서 그는 “생존한 이란 지도부와 대화하고 싶다”고 말을 바꿨죠. 지도자만 제거하고 정권 체제는 유지하는 ‘베네수엘라 모델’로 방향을 튼 겁니다. JD 밴스 부통령도 이번 작전의 목표를 이란 정권의 “사고방식(mindset)”을 바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죠.이렇게 메시지가 혼선을 빚는 건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전략에 오판이 있었다는 의미이겠죠. 예상보다 이란의 반격은 강력하고, 미국 내 지지율은 약한 상황인데요.로이터통신이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27%만이 이번 이란 공습을 지지했어요(반대 43%, 잘 모름 29%). 군사행동 개시 직후의 지지율로는 전례없이 낮은 수준입니다(9.11 테러 후 아프가니스탄 보복 공격에 대한 지지율은 90% 이상).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이 빗나가고 있습니다. 이란의 물귀신 작전과 그 파장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과 카타르 LNG 생산 시설, 쿠웨이트 공항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항구와 두바이 호텔, 협상을 중재해 온 오만과 카타르까지. 이란은 지금 주변 걸프국가에 무차별 미사일·드론 공격을 퍼붓고 있습니다.폭력과 혼란을 주변국으로까지 퍼뜨리는, 일종의 물귀신 작전인데요. 어차피 미국과 군사적으로 맞서서 이길 순 없으니, 미국과 가까운 주변 나라를 인질로 삼은 겁니다. 특히 경제적 거점을 타깃으로 하고 있죠.파이낸셜타임스는 이 모든 게 하메네이가 미리 짜뒀던 계획에 따른 것이라는 이란 정권 관계자 말을 전합니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사태를 확대하고 큰불을 지르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국제법을 위반해 우리의 레드라인이 넘어가자, 우리는 더 이상 게임의 규칙을 따를 수 없게 됐죠.”실제 그 파장은 즉각 전 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석유 시설인 라스 타누라 정유공장, 카타르 라스라판 LNG 시설이 이란 드론 공격 때문에 가동을 중단했는데요. 이 소식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단숨에 약 50%, 아시아도 40%가량 급등했죠.물론 걸프국가들은 패트리엇과 사드(THAAD), 천궁2 같은 방공망을 이용해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대부분을 격추시켜 막아냈습니다. 다만 이란의 3000만원짜리 ‘샤헤드-136’ 자폭 드론을 격추하느라 한 발에 15억원(천궁2 기준)짜리 요격 미사일을 쓴다는 게 문제이죠. 워싱턴 스팀슨센터의 켈리 그리코 연구원은 “이란이 드론에 1달러를 쓸 때마다 아랍에미리트는 드론 격추에 약 20~28달러를 지출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막대한 방어 비용을 계속 감수할 수만은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특히 중동 국가는 전력망과 해수 담수화시설이 파괴된다면 재앙적 상황에 처할 수 있거든요. “에어컨과 해수 담수화 시설이 없다면 걸프국가는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진정한 악몽 같은 시나리오이죠.” (뉴욕대학교 아부다비 캠퍼스의 중동정치학 교수 모니카 마크스의 알자지라 인터뷰)그래서 이란의 도발이 계속되면 인내심이 바닥날 거고요. 전직 아랍에미리트 관료인 타렉 알로타이바는 아부다비가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테헤란 공군은 아부다비 공군에 비해 몇 세대나 뒤처져 있습니다. UAE는 전투력뿐만 아니라 실전에서 검증된 공중 급유 능력을 갖췄죠. 아부다비는 반격은 물론 장기간 전투를 지속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사태가 ‘중동 전면전’으로 번진다면 그건 진짜 재앙이 될 겁니다.유가는 얼마나 더 오를까3월 2일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발표했습니다. 알자지라가 입수한 에브라힘 자바리 혁명수비대 사령관 고문의 발언은 다음과 같았죠.“원유 가격이 81달러에 달했고 세계는 최소 200달러까지 오를 것을 기다리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폐쇄됐다. 이슬람 혁명수비대 해군과 육군 영웅들은 이 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선박에 불을 지를 것이다. 미국은 이 지역의 석유에 목말라 있지만, 그들은 단 한 방울도 얻지 못할 것이다.”아울러 국제 조난 주파수를 통해 모든 선박에 “통항 불허”를 통보했습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할 거라고 협박한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나선 건 처음이죠.물론 법적으로 따졌을 때, 호르무즈 해협은 아직 폐쇄된 건 아닙니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이란의 순찰 활동도, 기뢰 부설도 없다”며 여전히 폐쇄되지 않았다고 반박하죠. 하지만 이란은 실제로 민간 상선 최소 4척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항해할 선주도, 보험사도 없을 수밖에요. 사실상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인 겁니다.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한다는 건? 한마디로 이란이 ‘다 같이 죽자’고 달려들었단 뜻입니다. 걸프산 원유의 하루 수출량 약 2200만 배럴 중 다른 우회로를 택할 수 있는 건 최대 700만 배럴 정도(모건스탠리 추정). 크플러(Kpler)에 따르면 이 지역 원유 수출량은 이미 하루 280만 배럴로 8분의 1토막 났습니다.3일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82달러를 기록했는데요. 이러다 마느냐, 더 오르느냐는 어디까지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언제 풀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OPEC이 아무리 생산량을 늘린다 한들 유조선이 운항을 못 하면 아무 소용 없으니까요.봉쇄가 신속히 풀리지 않으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나옵니다. JP모건은 장기 분쟁이란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번스타인은 120~150달러까지 갈 수 있다고 경고했죠. 우드매켄지 앨런 겔더 부사장 역시 “최근의 비교 사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유가가 배럴당 125달러를 넘어섰던 때”라며 세자릿수 유가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봅니다. 유례없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원유 수입의 70%를 중동지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엔 이만저만 큰일이 아닙니다. 약 7개월 치 원유를 비축하고 있긴 하지만, 국제 유가 상승이 물가를 자극하는 건 피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씨티그룹은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82달러를 유지하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60%포인트 오르고 한국 GDP 성장률은 0.45%포인트 떨어질 거란 예측을 내놨습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주요국 중에서도 유독 큰 타격을 받게 될 텐데요.만약 여기 그치지 않고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다면, 그때부턴 유가만이 문제가 아니게 될 겁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장기적인 폐쇄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필연적으로 초래할 겁니다.”(밥 맥널리 래피던에너지그룹 설립자) 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 즉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거죠.시장 불안감이 고조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3일(현지시간) “필요할 경우, 미국 해군은 가능한 한 신속히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대한 호위 작전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죠. 또 미국 국제금융개발공사(DFC)에 이 해역 통과 선박의 보험료를 보증하도록 지시했다는데요. 부디 이런 조치가 큰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앞으로 추이를 지켜보시죠.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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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의 위기, 범인은 넷플릭스와 위고비? [딥다이브]

    미국에선 위스키 재고가 넘쳐나고, 프랑스에선 남아도는 와인이 대거 폐기 처분됩니다. 중국 바이주, 유럽 맥주, 멕시코 테킬라까지 모두 판매가 급감하며 전 세계 술 시장이 동시에 침체하고 있는데요.이게 다 술을 멀리하는 Z세대 때문이라고요? 글쎄요. 솔직히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워낙 여러 요인이 겹쳐있기 때문이죠. 그럼, 이대로 주류 산업은 담배처럼 사양산업이 되어가는 걸까요. 역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요. 오늘은 글로벌 술 시장의 침체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위스키도, 맥주도 남아돈다 갑자기 다들 금주라도 하는 건가요. 지난해부터 술이 안 팔려서 난리라는 뉴스가 전 세계적으로 쏟아져나옵니다. 그중 눈에 띄는 몇 가지 소개하자면.-미국 버번위스키의 상징인 짐빔이 2026년 한 해 동안 켄터키주에 있는 주력 증류소 가동을 중단합니다. 미국 금주법 폐지로 1933년 증류소를 재가동한 이후, 9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죠. 위스키 재고는 쌓였는데, 소비는 줄었기 때문입니다.-세계 2위 맥주 기업인 네덜란드 하이네켄이 얼마 전 2027년까지 최대 60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어요. 전체 직원의 7%를 감원하는 거죠. 2025년 이 회사의 맥주 판매량은 전년보다 1.2% 감소했는데, 특히 미국과 유럽 시장 판매가 급감했다는군요.-중국에선 마오타이 가격이 지난해에만 30% 넘게 폭락했습니다. 소매시장 판매가격이 공식 출고가를 밑도는 기현상이 벌어졌죠. 마오타이를 수십 상자씩 사재기해 뒀던 상인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습니다. ‘마오타이=확실한 투자 상품’이란 공식은 깨지고 말았죠.-한때 뜨거웠던 ‘데킬라 붐’은 2025년 급격히 식었습니다. 데킬라 원료인 아가베 가격은 3년 전 ㎏당 30페소(약 2500원)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엔 2페소(약 170원)로 폭락했죠. 뒤늦게 아가베 재배에 나선 멕시코 농부들은 직격탄을 맞았고요. 돈 훌리오, 카사미고스 같은 고급 데킬라 브랜드를 보유한 디아지오 역시 경영 위기에 처했습니다.이렇게 술이 안 팔리고 재고가 넘치면서 전 세계 주류업체 주가도 급락했는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50대 주류 기업의 시가총액은 정점이었던 2021년 6월과 비교해 46% 하락했다고 하죠. 약 8300억 달러(1185조원)의 시장가치가 사라졌습니다. 모건 스탠리 애널리스트인 사라 사이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사람들이 술을 덜 마셔요.”이건 단순한 사이클이 아닐지도? 팬데믹 때 ‘홈술’로 반짝 늘어났던 술 소비의 정상화 과정이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탓이다…. 2022년 정점을 찍은 미국 술 소비가 2023년 꺾였을 때, 업계에선 이런 분석이 나왔습니다. 술을 덜 마시는 건 어디까지나 경기 사이클 탓이고, 좀 지나면 다시 소비가 살아날 거라고 봤던 거죠.그런데 웬걸. 추세가 반전될 기미는 없고, 점점 늪에 빠지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지난해 미국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가 놀라웠죠. 미국 성인의 음주율은 54%로, 1939년 조사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금주법 시대 이후 미국인이 가장 술을 적게 마신단 뜻인데요. 미국은 세계 2위 주류 시장(1위는 중국)이기에 업계엔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거 그냥 지나가는 사이클이 아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점 고조됩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주류업계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죠. ‘술은 제2의 담배가 될 것인가?’ 마치 담배회사처럼 주류기업도 성장을 멈춘 채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죠.만약 이게 구조적 변화라면, 주류 산업을 위기로 몰아넣은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요. 많은 분석이 쏟아지는데, 그중 다수의 지지를 받는 건 다음과 같습니다.①Z세대의 웰빙과 절제 트렌드Z세대(1997~2012년생)가 술을 덜 마시는 건 한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등의 공통 현상이죠. 특히 한 번에 많이 마시는 폭음이 크게 줄었다는 게 특징인데요.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20대 고위험 음주율은 9.9%로 40대(20.9%)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특히 2018년 17%였던 20대 남성의 고위험 음주율은 가파르게 줄어서 9.7%에 그쳤어요. 지난해 처음으로 20대 여성(10.2%)에 역전됐죠. (다만 남성은 1회 7잔, 여성은 5잔 이상으로 ‘고위험’의 기준 자체가 다릅니다.)왜 Z세대 남성은 폭음을 덜 하게 됐을까요. 이를 두고 소셜미디어 영향이란 분석이 나오는데요. 괜히 술 취해서 실수라도 하면 자칫 SNS에 평생 ‘박제’될 수 있단 공포가 작용한다는 겁니다. 또 몸매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이유로 꼽히고요. 한마디로 술 취하는 건 더 이상 힙하지 않아요. 술 잘 마시는 게 남자답다고 여겨지던 시절은 끝났죠.②술 마실 시간에 넷플릭스 본다퇴근 후 자기 전까지 3~4시간, 뭘 하며 노는 게 가장 즐거울까요. 친구들과의 술자리? 아니면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 정주행? 술과 OTT 서비스는 인간의 자유시간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입니다.일본 아사히의 아츠시 카츠키 CEO는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술 소비 감소 이유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과거엔 술이 사람들의 오락과 즐거움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게임을 포함한 오락거리가 늘어나면서 술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 행복이 줄어들었죠.” 그는 건강에 대한 관심보다는 디지털 미디어가 술 소비 감소의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확신했는데요.물론 넷플릭스를 보면서도 한잔할 순 있지만, 캔맥주나 하이볼 같은 가벼운 술이 주를 이루죠. 부어라 마셔라 식의 폭음은 덜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③위고비 맞으면 술 생각이 사라진다위고비·마운자로 같은 비만치료제를 맞으면 술 마시고 싶은 욕구 자체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죠. 물론 이게 진짜로 술 소비량을 줄이고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진 않았는데요.하지만 그럴 거란 예측은 파다합니다. 지난 1월 영국의 유명 펀드매니저 테리 스미스는 15년간 보유한 디아지오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비만치료제를 꼽았죠. 비만치료제가 주류시장의 성장을 위협한다고 본 겁니다.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인데…주류 시장이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는 업계 관계자들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제프리스의 에드 먼디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8.3L로 추정되는 미국의 1인당 연간 주류 소비량이 앞으로 추가 감소해 7L까지 줄어들 거란 비관적 전망을 내놨죠.미래를 알 순 없지만,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술은 이대로 우리 삶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걸까요. 일단 이 그래프를 한번 보시죠.1935년 이후 미국의 1인당 주류 소비량을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오른쪽 부분에 골짜기가 패어있는 게 보일 거예요. 1980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미국 주류 시장의 대침체기입니다.1980년대 미국 주류 업계는 여러모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1982년 배우 제인 폰다가 출시한 에어로빅 비디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미국엔 에어로빅 열풍이 불었고요. 나이키가 이끈 조깅 붐까지 겹치면서 건강과 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습니다. 칼로리와 건강 관리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이 술, 특히 독주를 멀리하기 시작했죠.사회적으론 음주 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어요. 1980년 ‘음주 운전 반대 어머니회’가 조직돼 워싱턴을 움직였고요. 1984년 레이건 행정부는 주마다 달랐던(18~21세) 음주 연령을 21세로 상향, 통일했죠.비디오와 케이블TV의 보급으로 집에서 즐길 거리가 늘어난 것도 1980년대입니다. 집안 엔터테인먼트가 바깥의 술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한 거죠.술에 각종 규제와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면서 ‘사회적 쿨함’이 줄어들었고요. 이 15년 동안 미국의 1인당 술 소비량은 23%나 줄었습니다. 특히 위스키 같은 증류주 소비는 35~40% 급감해 ‘독주는 끝났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그나마 맥주는 약 10% 감소에 그쳐, 상대적으로 선방했는데요. 일반 맥주 대신 칼로리를 낮춘 라이트 맥주로 시장이 재편됐습니다.어쩐지 요즘 상황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은데요. 당시 주류업계는 그 긴 침체기를 어떻게 끝내고 되살아날 수 있었을까요. 한마디로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 덕분입니다. 다시 술을 힙하게 만든 건데요.1990년대 후반, ‘섹스 앤드 더 시티’ 같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마시는 칵테일이 인기를 끌면서 독주가 세련된 음료로 탈바꿈했고요. ‘프랑스인이 심장병이 적은 이유는 레드 와인 덕분’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와인 한 잔은 건강에 좋다’는 (지금 보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또 고급 샴페인이나 테킬라 등이 성공한 사람이 마시는 럭셔리의 상징으로 통하게 됐죠. 결국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마케팅의 승리였습니다.지금 주류 업계도 비슷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도수 0%의 무알코올 맥주, 캔에 든 하이볼 같은 저도주에 대한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죠. 취하게 만드는 술이 아닌 ‘맛있는 성인용 음료’로 정체성을 바꾸려는 건데요. 술을 못 마시거나 건강을 생각해 멀리하던 사람까지 끌어 들일 수만 있다면, 업계엔 희망이 있습니다.하지만 지금은 마운자로와 넷플릭스가 버티고 있어서 쉽지 않을 거라고요? 단기에 분위기를 반전하긴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인류는 무려 8000년 전부터 술을 만들어 마셨다고요. 인류의 유구한 ‘술 사랑’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리는 없어 보이는데요. ‘부어라 마셔라’ 시대는 저물었지만, 대신 좀더 맛있고 멋있는 술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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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한애란]서울을 비우려면 재택근무가 답이다

    서울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집값이 2년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다주택자 압박과 대출 규제가 실효를 거두는 모양새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은 비거주 1주택자로 규제 전선을 넓히며 고삐를 더 바짝 죄고 있다. 하지만 투기 수요를 틀어막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집값 불안 배경엔 ‘똘똘한 한 채’를 향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핵심지 주택을 무한정 늘릴 순 없는데, 다수가 그걸 열망하니 문제다. 어떻게 하면 서울로 집중된 수요를 전국으로 분산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정부가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한 것이 ‘5극 3특’ 국가 균형성장 전략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탈피해 전국을 5개의 메가시티와 3개의 특별자치도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업을 유치하고 인프라를 깔아 지방을 살기 좋게 만들겠다는 취지다.수요 분산의 해법, 재택근무 방향은 맞다. 문제는 시간이다. 대규모 인프라 구축과 산업 생태계 조성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더라도, 그 효과를 체감하려면 최소 10년은 지나야 한다. 당장의 집값 불길을 잡기엔 너무 먼 이야기다. 그보다 더 빨리, 단기간에 수요를 분산할 방법은 없을까. 한 가지 해결책이 있긴 하다. 바로 재택근무 확대다. 재택근무가 대도시 도심 집값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팬데믹 기간 미국에서 확인됐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같은 주요 대도시에서 직주근접 필요성이 약해지자, 값비싼 도심 대신 저렴한 외곽 지역으로 주택 수요가 분산됐다. 이른바 ‘도넛 효과(Donut Effect)’다. 공실이 늘어난 도심에서는 사무실을 주거용으로 개조하는 사업이 활발해졌다. 도심의 주택 수요는 줄이고 공급은 늘렸으니 일석이조다. 모든 노동자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조업 공장이나 대면 창구에서 일하는 직군이라면 현장을 떠나기란 불가능하다. 사무직이라고 해도 재택근무에 적합한 근로자는 따로 있다. 재택근무가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기 주도적으로 일하는 전문성 높은 고숙련 근로자는 재택근무로 오히려 성과를 높일 수 있다. 불필요한 대면 접촉과 출퇴근의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업무 특성에 따라 잘 활용하면 재택근무만 한 효율적 수단도 드물다. 서울은 제조업 기반이 약한 대신 사무·전문직 근로자 비중이 유독 높은 도시다. 통계에 따르면 서울 취업자 3명 중 1명 이상이 관리자나 전문가, 사무 종사자다. 여의도와 강남·서초구 같은 핵심 업무지구는 이 비중이 절반을 훌쩍 웃돈다. 금융회사와 대기업 본사, 민간 연구소 등이 서울에 몰려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재택근무에 적합한 고숙련 사무직군에 해당한다. 재택근무 전면 도입이 서울에 특히 효과적인 이유다. 출산율 제고 위한 저비용 해법 재택근무 효능은 집값 안정에만 그치지 않는다. 스탠퍼드대 니컬러스 블룸 교수팀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재택근무는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상당하다. 부부가 모두 주 1일 이상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 여성 1인당 기대 출산율을 무려 0.32명이나 높일 수 있다고 한다. 0.80명에 그친 지난해 출산율을 생각하면 재택근무 도입이 시급하다. 연간 수십조 원의 예산을 쏟아붓는 현금 지원책보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저비용 고효율의 해법이다. 재택근무를 위한 디지털 기술은 이미 성숙해 있다. 사무실 출근을 고집하며 효율화를 꾀하지 않는 기업의 낡은 관습이 걸림돌이다. 서울은 비우고 가정을 채우는 재택근무는 집값 불안과 저출산의 복합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빠른 정책적 우회로다.한애란 경제부 기자·부장급 haru@donga.com}

    • 202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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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페부터 쓰레기장까지…사모펀드는 왜 우리 삶을 쇼핑할까?[딥다이브]

    투썸플레이스, bhc, 남양유업, 롯데카드, 오스템임플란트, 락앤락, 하나투어, 잡코리아…. 여러분이 알 만한 이 브랜드의 공통점은? 모두 주인이 사모펀드라는 점이죠. MBK파트너스가 대주주인 홈플러스처럼 말이죠. 시내버스와 쓰레기 소각장처럼 우리 생활과 관련이 큰 산업에도 사모펀드가 속속 진출하는데요.사모펀드의 탄생지인 미국에선 최근 사모펀드가 어린이집과 병원, 요양원과 장례식장까지 뻗어나갔다고 하죠. 그리고 이렇게까지 사모펀드가 삶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미국에선 점점 이런 반응이 늘어갑니다. ‘(제품 또는 서비스가) 점점 나빠지고 있잖아. 이건 아무래도 사모펀드 탓인 것 같은데?’ 물론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건 아니고 다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그런 의심을 품을 만한 배경이 있는 건 사실이죠. 사모펀드 비판론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이게 다 사모펀드 소유? “당신은 사모펀드 소유 아파트에서 일어나, 사모펀드 소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사모펀드 소유 병원에서 진료받고, 사모펀드 소유 식당에서 저녁을 사서 집에 돌아와 사모펀드 운영 TV 방송국에서 지역 뉴스를 시청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최근 미국의 한 금융전문가가 “모든 게 사모펀드”라며 지적한 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더군요. 미국에서 사모펀드는 치과부터 세차장까지, 아주 광범위한 분야에 진출했습니다. 2025년 말 기준 사모펀드가 소유한 미국 기업 수는 약 1만3000개. 15년 전(2010년 6000여 개)의 두배가 넘는다고 하죠. 그럼, 사모펀드는 왜 이런 산업에 투자할까요. 거기서 어떻게 돈을 벌까요. 이를 설명하기 전에 일단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 PEF)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하는데요. 개념은 어렵지 않습니다.-일단 공모(Public)가 아닌 사모(Private), 즉 돈 많은 소수정예 투자자만 조용히 받아 운영하는 펀드입니다. 국민연금 같은 연기금이나 국부펀드, 고액 자산가가 보통 투자자가 되죠.-이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을 인수해서 경영권을 확보합니다. 인수 과정에서 상당한 대출을 일으키곤 하죠.-이른바 ‘오퍼레이션 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입니다. 구조조정을 하고, 여러 기업을 통합하고, 원자재 구매 단가를 낮추는 식으로 ‘효율화’하는 거죠. 일반적으로 3~7년 뒤 인수한 기업을 매각하고 그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나눠줍니다.미국의 사모펀드 운용사로는 미국 블랙스톤, KKR, 칼라일그룹,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베인캐피털이 유명하고요. 한국 토종 사모펀드 운용사는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프라이빗에쿼티가 대표적이죠. 이런 사모펀드 운용사의 목표는 단 하나, 투자자 수익 극대화입니다. 펀드 수익률이 높아질수록, 운용사가 받는 성과보수(초과수익의 20%)도 불어나는 구조이니까요. 그들은 오로지 자기네 펀드에 돈을 댄 투자자에 충성할 뿐입니다. 그게 맡은 역할인 거죠.문제는 사모펀드의 이익이 해당 기업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단 겁니다. 때론 사모펀드엔 좋은 전략이 기업엔 해가 되는 경우도 있죠. 일반적인 상장사 투자자, 또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인데요. 이를 잘 보여주는 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모펀드 업계의 인수 방식 ‘차입매수(Leveraged Buyout, LBO)’입니다.기업에 빚 떠넘기는 ‘금융의 마법’1979년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 KKR이 자동차 부품업체 후다일 인더스트리를 3억90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금융계는 화들짝 놀랐죠. 거래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자금조달 방식이었는데요.KKR은 인수 대금 3억9000만 달러 중 무려 3억 달러를 대출로 조달했습니다. KKR이 투자한 자체 자금은 단 100만 달러였죠. 극단적인 레버리지의 차입매수(LBO)로 무엇이 가능한지, 현대 사모펀드의 힘을 처음 보여준 사례라 하겠는데요.여기서 중요한 건 차입매수로 진 막대한 빚을 갚아야 하는 건 사모펀드가 아니라 인수된 기업이라는 점이죠. 사모펀드나 그 운용사는 대출에 대해선 책임이 없어요.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요? 놀라운 ‘금융의 마법’이죠. 사모펀드가 세운 페이퍼컴퍼니(특수목적회사, SPC)가 먼저 은행에서 거액을 빌려요. 담보는 ‘앞으로 인수할 기업의 자산과 미래 벌어들일 돈’이죠. 그럼 사모펀드는 자기 돈은 조금(약 20%), 대출은 많이(약 80%) 섞어서 기업을 인수해요. 인수가 끝나면 SPC와 인수 기업을 합병하죠. 그렇게 거대한 빚이 고스란히 인수한 기업으로 넘어갑니다.차입매수(LBO)는 사모펀드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200억원짜리 사모펀드가 빚을 내서 1000억원짜리 기업을 산다면, 나중에 1200억원에만 팔아도 투자 수익률은 100%가 될 테니까요. 5배 레버리지 투자인 셈이죠.그럼, 차입매수 방식은 인수된 기업엔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이와 관련한 아주 유명한 미국 사례가 있죠. 2018년 청산된 미국 장난감 전문점 ‘토이저러스’입니다. 토이저러스는 누가 죽였나 2005년, 58년 역사의 장난감 전문 소매점 토이저러스가 사모펀드 KKR과 베인캐피털 컨소시엄에 팔립니다. 매각가는 66억 달러. 그중 사모펀드 자금은 13억 달러뿐이었고, 나머지 53억 달러는 빚(대출)이었죠. 전형적인 차입매수(LBO)였습니다. 이 빚을 떠안으면서 토이저러스 부채비율은 순식간에 30%에서 78%로 불어났죠.은행 이자로만 매년 4억~5억 달러를 갚아나가야 하는 상황. 장난감 팔아 번 영업이익의 80% 이상이 이자로 나갔습니다. 대출 원금은 당연히 갚지 못했고요. 장사가 잘돼도 손에 남는 게 없었습니다.경영진은 이른바 ‘린(Lean) 운영’이라며 비용 절감을 위해 직원을 줄였습니다. 동시에 사모펀드 업계에서 ‘자산 효율화’라고 부르는 전략도 썼죠. ‘매각 후 임대(Sale-Leaseback)’입니다. 토이저러스는 미국 전역에 수백개 매장을 직접 소유했는데요. 인수 후 몇 달 만에 이를 부동산 회사에 매각했고요(사모펀드 투자자들은 이 돈으로 배당금을 챙김). 대신 토이저러스는 계속 장사를 하기 위해 부동산 회사와 장기 임대 계약을 맺습니다. 참고로 그 부동산을 매입해 임대한 건 토이저러스를 인수한 사모펀드 컨소시엄에 속한 보네이도였어요. 애초에 토이저러스가 보유한 부동산을 노리고 컨소시엄에 들어왔다고 봐야겠죠.막대한 이자 비용에 매월 임대료 부담까지. 순이익이 거의 제로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요. 당연히 매장 리모델링이나, 온라인 플랫폼에 투자할 여력이 없으니 점점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그렇게 서서히 가라앉으며 체력이 고갈된 토이저러스는 결국 2018년 청산되고 말았죠. 토이저러스가 사모펀드에 인수된 이후 십수 년 동안 금융회사에 낸 이자 비용만 총 50억 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미국인의 사랑을 받던 브랜드 토이저러스의 청산. 이 엄청난 실패로 토이저러스 투자를 주도한 사모펀드 운용사 KKR와 베인캐피털도 손해가 막심했을까요?아니요. 미국 사모펀드 문제를 파헤친 책 ‘배드 컴퍼니(Bad Company)’의 저자 메간 그린웰에 따르면 두 회사 모두 손실을 보지 않았습니다. 펀드 투자금의 2%를 매년 꼬박꼬박 기본 수수료로 챙기고, 각종 경영·컨설팅 수수료까지 챙겼으니까요. “토이저러스의 경우, 대부분 차입매수와 마찬가지로 회사의 최종 운명은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모펀드 운용사는 어쨌든 돈을 벌기 때문이죠. 유일한 위험이라면 수백억 달러가 아닌 수백만 달러만 벌게 될 수 있단 겁니다.”토이저러스의 3만3000명 직원은 퇴직금을 한 푼도 챙기지 못한 채 직장을 잃게 됐습니다. 청산 과정에서 돈을 가장 먼저 돌려받는 건 담보가 있는 은행 대출이기 때문이었죠. 결국 5배 레버리지 차입매수의 고위험을 감수한 건 사모펀드 투자자나 운용사, 은행이 아니었습니다. 기업과 직원들이었죠.고수익 전성기 지나가나이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토이저러스 청산 이후 미국에선 대대적인 사모펀드 비판론이 일었습니다. 의회에선 사모펀드의 차입매수를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죠. 물론 통과되진 않았습니다. 사모펀드 업계는 정치 기부금의 큰손이니까요.쏟아지는 비판 여론에 대응해 사모펀드 업계가 내세우는 방어막은 연금 수급자입니다. 미국의 대부분 공공연금이 사모펀드 투자에 참여하고 있으니까요. 2023년 인터뷰에서 피트 스타브로스 KKR 글로벌 사모펀드 공동대표는 인수한 기업 직원의 급여를 인상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죠. “교사 연금을 관리하면서 (인수한 기업) 직원의 급여를 올리는 건 교사를 희생시키는 겁니다. 윤리적이지 않고 우리 돈도 아니죠.” 어때요? 설득력이 있나요. ‘배드 컴퍼니’ 저자 메간 그린웰은 시니컬합니다. “그들(사모펀드 업계)은 한쪽에서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는 게 다른 쪽에서 노동자 은퇴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아메리칸 컴패스의 이코노미스트인 오렌 캐스는 더 신랄하게 비판하죠. 그는 최근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금융화(Financialization)는 사기”라며 사모펀드 업계에 맹공격을 쏟아냈습니다. “사모펀드에 인수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파산할 확률이 5~10배 높습니다. 사모펀드에는 (기업 파산이) 그저 사업상의 비용일 뿐이지만, 노동자와 지역 사회에는 재앙입니다. (…) 금융화는 노동자와 소비자, 경제, 사회 전체에 순수익을 창출하지 못합니다. 아무런 투자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경제학자와 언론은 ‘투자’라는 용어 사용을 중단해야 합니다. ‘투기’나 ‘도박’이 훨씬 적절한 표현이죠.”물론 사모펀드가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다면 투자자 입장에선 솔깃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랬었고요. 고수익이 곧 사모펀드의 존재 이유였는데요.하지만 그 시대도 이제 끝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MSCI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5년 3분기까지 사모펀드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5.8%로, S&P500 지수(11.6%)의 절반에 그쳤어요. 고금리와 기업공개(IPO)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거죠. 높은 수익률이란 면죄부가 사라진다면, 사모펀드를 지탱할 힘은 무엇일까요. 사모펀드의 본고장 미국에서 먼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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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권하는 중국 로봇, ‘쇼’인 줄 알았더니 ‘데이터 스펀지’였다?[딥다이브]

    한 발로 연속 공중제비를 돌고, 물구나무선 채 7바퀴 반을 회전합니다. 쌍절곤을 능수능란하게 휘두르고 취권도 그럴듯하게 선보이죠. 2월 16일 중국 CCTV가 방송한 ‘춘절 갈라쇼’의 하이라이트는 올해도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군무였는데요.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상을 두고 전 세계에서 놀랍다, 무섭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도 제기되죠. ‘그래서 이걸로 뭘 할 건데?’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휴머노이드 로봇 톱4는 중국두 발로 걷고 두 손으로 물건을 집는, 인간처럼 생긴 로봇.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이 이제 실험실을 벗어나 현장에 발을 딛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전 세계 설치 대수는 1만6000대(카운터포인트리서치 기준). 전년보다 5배 이상 늘었죠. 2025년을 기점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량생산 시대가 열린 건데요.아직 새싹 단계인 이 산업의 선두 주자는 누구일까요. 연간 설치 대수를 기준으로 할 때 1위 애지봇(AGIBOT)과 2위 유니트리(Unitree)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어 유비테크(UBTECH), 러쥐(Leju), 테슬라 순이죠.눈치채셨겠지만, 이 톱5 로봇 기업 중 테슬라를 제외한 상위 4곳은 모두 중국 기업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에 설치된 로봇 5대 중 4대가 중국산일 정도로,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을 휩쓸고 있죠. 그리고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겁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배 이상인 2만8000대로 늘어날 거라 전망했죠. 아울러 2030년 26만2000대, 2035년 260만대의 기하급수적 성장세를 보일 거란 예측을 함께 내놨습니다.물론 너무 낙관적인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만큼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가능성을 보여줬단 뜻이겠죠. 그럼 중국에서 이 시장을 이끄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춤추는 로봇을 빌려줍니다특별한 결혼식을 원하세요? 휴머노이드 로봇이 걸어 나와 신랑 신부에게 반지를 전달해 주면 어떨까요. 가게 개업식을 연다고요? 춤추는 풍선 인형 대신 춤추는 로봇이 시선을 끌 수 있지 않을까요.모두 중국에선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생일파티, 명절 모임, 기업행사, 전시회,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을 불러 쇼를 펼치곤 하죠. 휴머노이드 로봇의 대량생산 시대와 함께 ‘로봇 렌탈’이란 신종 사업이 탄생한 겁니다.휴머노이드 로봇은 아무리 보급형이라고 해도 한 대에 천만원이 훌쩍 넘거든요. 선뜻 구입하기엔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게 로봇을 몇시간, 또는 며칠 대여해주는 서비스 사업인 거죠. 마치 렌터카처럼 말이에요. 소프트웨어 시장의 SaaS(Software-as-a-Service)에 비견해, 로봇 렌탈 사업을 가리키는 RaaS(Robotics-as-a-Service)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죠.이런 로봇 대여 사업, 중국에선 상당히 활황입니다. 소비자는 수천만 원짜리 로봇을 하루 수십~수백만 원에 빌려 체험할 수 있으니 좋고, 업체는 잘하면 몇 달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남는 장사이죠. 일단 이렇게 돈이 된다고 알려지자, 수많은 중소사업자가 생겨났고요. 최근엔 유명 기업까지 이 시장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애지봇과 즈푸AI(Zhipu AI)가 지난해 12월 공동 설립한 세계 최초 로봇 렌탈 플랫폼 ‘칭톈렌탈(영문명 Botshare)’이 대표적이죠. 소비자와 로봇 렌탈 업체를 연결시켜주는 서비스로, ‘로봇판 우버’를 추구합니다.칭톈렌탈을 통하면 애지봇의 최고급형 휴머노이드 로봇 ‘위안정 A2’(판매가 약 4200만원)를 하루 210만원(9999위안), 유니트리의 인기 보급형 로봇 G1(판매가 약 2100만원)을 하루 105만원(4999위안)에 빌릴 수 있습니다. 최근엔 명절 연휴를 앞두고 ‘999위안(21만원) 로봇 체험 프로그램’도 선보였어요. 999위안을 내면 엔지니어가 로봇을 데려와 맞춤 공연을 펼쳐준다는군요. 칭톈렌탈 공식 발표에 따르면 출시 초기 기준 하루 200대 이상이 대여될 정도로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어떤가요? 그 정도 가격이면 이용할 만해 보이나요? 아니면 궁금하니까 한번은 빌려봐도, 두 번은 안 할 것 같다 싶으신가요?중국 내에서도 로봇 렌탈 사업에 대한 회의론은 나옵니다. 결국 신기함을 파는 사업일 뿐이고, 그 인기가 오래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보는 건데요.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쇼’가 있기에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파티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죠.생각해 보세요. 고급형 로봇은 웬만한 자동차 한 대 값이잖아요. 비싸서 안 팔리니까 대량 생산이 어렵고, 많이 만들지 않으니까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죠. 그 결과 로봇 스타트업은 초기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채 망하기 십상입니다. 이른바 ‘죽음의 계곡’에 떨어지는 거죠.그런데 중국에선 로봇 렌탈 산업의 성황 덕분에 비싼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척척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로봇 제조사는 아직 초기인데도 현금흐름을 창출하며 로봇 생산과 개발을 이어갈 수 있고요. 점점 더 많은 물량을 생산하면서 주요 부품 단가를 떨어뜨릴 수 있게 됐죠.무엇보다 중요한 건 로봇이 학습을 통해 점점 똑똑해질 수 있단 점인데요. 이제 휴머노이드 로봇은 연구실이 아닌 결혼식장, 식당, 쇼핑몰, 공장, 가정 등 실제 현장을 경험하고 있고요. 이를 통해 수집한 시각·촉각·행동 데이터가 로봇의 AI 학습에 활용됩니다. 춤추는 렌탈 로봇이 조금 우습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들은 현장 데이터를 빨아들이며 AI 모델을 진화시키는 중입니다.진짜 소비자 시장 열리려면기술적으로 어설픈데도 제품을 사주는 고객이 있기에, 스타트업은 성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로봇청소기나 전기차 같은 중국 기술 제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한 건 거대한 내수시장이 일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죠. 이제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도 그 길에 막 들어섰는데요.그럼 궁금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언제쯤 진짜 삶의 일부로 들어오게 될까요.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서 진짜 ‘1가구 1로봇’ 시대로 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일단 굳건했던 가격 장벽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노에틱스는 지난해 ‘부미(Bumi)’라는 9998위안(210만원)짜리 아담한 체구의 가정용 로봇을 출시했어요. 휴머노이드 로봇 가격이 아이폰 한 대 수준으로 떨어진 거죠. 휴머노이드 로봇은 감속기(로봇 관절의 인대 역할)와 서보모터(로봇의 근육 역할) 같은 핵심부품이 생산비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요. 일본이 장악했던 이런 부품을 중국도 직접 생산하게 되면서 가격을 확 낮출 수 있게 됐습니다.문제는 부품의 신뢰성이죠. 가정에서 냉장고나 세탁기 사듯이 로봇 한 대를 들이려면 ‘최소 5~10년은 큰 고장 없이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요. 산업현장에서 이미 충분히 검증된 일본·유럽산 부품과 달리, 값싼 중국산 액추에이터(감속기+서보모터)의 내구성은 아직 확인할 만한 장기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만약 중국산 휴머노이드 로봇을 사서 10년 동안 매일 사용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현재로선 ‘잘 모르겠다’가 답일 거예요. 시간이 더 필요하죠.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소비자 눈높이를 충족할 만한 성능까진 갈 길이 매우 멉니다. 소비자가 진짜 바라는 건 만능 로봇이죠. 빨래, 청소, 물건 나르기, 요리까지 척척 다 해주는. 하지만 규격화되지 않은 물체를 다뤄야 하는 집안일은 로봇에겐 너무나 어렵습니다. 구겨진 빨래를 보고 뒤집힌 소매를 바로잡는 것, 두부와 당근의 단단함 차이를 인지하고 칼질하는 건 현재 AI 지능엔 너무 어려운 과제니까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를 익히기 위해선 현실 세계와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물리적 감각에 대한 학습을 엄청나게 추가해야 한다는 뜻이죠. 몸을 통해 배우는 ‘체화된(Embodied) AI’ 가 필요한데요.체화된 AI 모델 전문가인 왕중위안 베이징 즈위안 AI연구원(BAAI) 원장은 기술 발전이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저는 여러 자리에서 강조하고 호소해 왔어요. 체화된 AI는 5~10년의 주기, 심지어 더 긴 시간이 필요한 분야예요. 우린 더 많은 인내심과 관용이 필요하죠. 역사적 법칙에 따르면 거품이 너무 빨리 생기고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앞으로 2년 내엔 이 분야(휴머노이드 로봇)가 침체기에 빠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스마트폰 가격에 세탁기만큼 튼튼하고 사람 손처럼 섬세한, 그런 휴머노이드 로봇이 우리 집에 찾아올 날. 왕 원장 말대로 10년은 더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이미 시작된 이 장거리 레이스에서 한국 로봇 업계가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해 역전극을 펼칠 수 있기를 응원해 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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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년 공짜 세금 끝…절벽에 선 中전기차 시장 ‘최후 생존게임’[딥다이브]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 중 하나는 아마 여기일 겁니다. 중국 자동차 시장. 잔혹한 가격전쟁이 잦아드나 싶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기술과 자본으로 승부하는 최후의 생존게임에 접어들었는데요. 중국 자동차 시장은 왜 전 세계의 관심사일까요. 내수에서 활로를 찾기 어려워진 중국 차가 밀려 나올 곳은 해외 시장뿐이기 때문이죠. 글로벌 자동차 업계를 떨게 만드는 중국 자동차 시장의 최종 대결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진짜 경쟁이 시작되다2026년 새해를 맞이한 중국 자동차 시장은 잔뜩 얼어붙었습니다. 1월 내수 판매량은 1년 전보다 15%나 줄어든 166만5000대. 2014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진 ‘신에너지차량 구매세 전액 면제’ 혜택이 지난해 말 사라졌기 때문이죠. 올해부턴 전기차를 살 때도 5% 구매세가 붙습니다. 표준세율(10%)에서 절반 깎아준 거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갑자기 거액의 세금이 추가되니 부담스럽죠. 지난해 말 ‘막차 수요’로 전기차 판매가 급증했고, 1월이 되자 판매량이 급락하는 ‘수요 절벽’에 처한 겁니다.중국 정부가 전기차 세제 혜택을 거둬들인 데는 이런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전기차, 그동안 정부가 많이 키워줬지? 이제 휘발유차와 동등한 조건에서 겨뤄봐. 지원 없이도 할 수 있잖아?’ 그럴 만도 한 게, 2014년 중국 신차 판매에서 신에너지차(순수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32%로 미미했는데요. 정부 지원과 민간 투자에 힘입어 중국 전기차 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2025년 중국 승용차 신차 판매에서 신에너지차 비중은 무려 54%. 내연기관차(1093만대)보다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 1281만대)가 훨씬 많이 팔린 거죠. 연간 판매량이 역전된 건 처음입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대세가 전기차로 완전히 넘어갔단 뜻인데요. 정부로선 연간 수조 원에 달하는 세제 혜택을 거둬들일 때가 된 겁니다.이를 보면 알 수 있는 건? 중국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기가 끝났다는 거죠. 중국자동차공업협회는 올해 신에너지차 판매량이 15.2% 성장할 걸로 내다봤어요. 지난해 성장률(28.2%)의 절반밖에 되지 않죠.성장률이 이렇게 뚝 떨어지면 게임의 양상이 달라집니다. 그동안은 전기차 시장 전체 파이를 빠르게 키워가면서 제조사들이 각자의 몫을 늘려왔는데요. 이제 파이가 그렇게 커지지 못한다면,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죠. 남의 걸 빼앗아 오는 수밖에요. 점유율 뺏기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겁니다.그래서 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의 창립자 허샤오펑 CEO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자동차 기업이 극도로 신중하게 움직입니다. 1년 전만 해도 이런 변화를 상상하기 어려웠죠. 많은 변화가 있을 텐데, 한 가지 확실한 건 2026년 자동차 시장 경쟁은 더욱 잔혹하고 치열해질 거란 점입니다.”그럼 또다시 무자비한 가격 할인 레이스가 펼쳐질까요? 지난해 초 중국 자동차 시장의 제 살 깎아먹기식 가격 할인 경쟁을 전해 드린 적 있죠. 2022년 시작된 이 가혹한 가격전쟁은 2025년 상반기 절정에 다다랐는데요. 그 이후엔 자취를 감췄습니다. 보다 못한 중국 정부가 자동차 업계를 불러 모아 그만하라고 강하게 경고했기 때문이죠.그래서 이제부턴 기술과 자본의 진검승부를 펼쳐야 합니다. 기술에서 밀리거나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제조사는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전망대로 100개 넘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 중 2030년까지 살아남는 건 단 15개에 불과할 테니까요.EV부스터스 분석에 따르면 중국에선 2018년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400개가량의 전기차 스타트업이 사라졌다는데요. 그동안은 일종의 예선전이었고, 100개 정도 남은 지금부터가 결선이라 하겠습니다.웨이샤오리 지고 화미링 뜨다웨이샤오리(蔚小理).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3대장으로 꼽히는 브랜드 니오(웨이라이), 샤오펑, 리오토(리샹)을 묶어 이렇게 불렀죠. 시장 트렌드를 선도하는 중국 전기차 1세대 스타트업이라 할 수 있는데요.그런데 이 웨이샤오리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비수기인 올 1월의 전기차 내수 판매량 순위를 들여다보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전통의 강자(BYD, 지리, 테슬라) 뒤를 잇는 중국의 신흥 브랜드 3강은 바로 ‘화미링(华米零)’, 즉 화웨이, 샤오미, 리프모터 순이었습니다. 웨이샤오리는 그 아래로 밀려났죠. 화미링을 각각 설명하자면.① ‘똑똑한 럭셔리’ 화웨이중국 대표 기술기업 화웨이는 직접 차량을 제조하진 않습니다. 대신 자동차 제조사에 ‘지능형 자동차의 뇌와 신경망’을 공급하죠. 여러 차량 제조사에 화웨이의 ‘하모니 운영체제(OS)’와 ‘첸쿤(乾坤) 지능형 솔루션’을 탑재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겁니다. 화웨이의 첸쿤은 중국에선 가장 진보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로 통해요. 그리고 요즘 중국 소비자들은 차를 살 때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매우 중요하게 따지죠. 화웨이가 자동차 제조사 세레스와 선보인 대형 SUV ‘아이토 M9’는 가격이 약 50만 위안(1억원)이나 되는데요. 그럼에도 출시 직후부터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럭셔리 SUV 세그먼트에서 BMW X5를 제치고 20개월 연속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럭셔리카의 정의가 ‘브랜드’에서 ‘기술’로 바뀌었단 걸 알 수 있죠. ② ‘반값 포르셰’ 샤오미화웨이가 지능형 기술의 편의성에 집중한다면 샤오미 전기차는 달리기 성능으로 승부합니다. 특히 샤오미 SU7 울트라가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포르셰 타이칸 터보 GT의 기록을 깼다는 걸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데요. 유선형 디자인까지 어딘가 포르셰와 닮아있어서 “가성비 포르셰”로 통합니다.또 스마트폰-가전-전기차가 샤오미의 ‘하이퍼 OS’를 통해 연결되도록 생태계를 통합시켰어요. 운전 중 음성으로 집 안 로봇 청소기를 돌리거나 에어컨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거죠. 자동차가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 되었습니다.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이 제시한 올해 판매 목표치는 55만대. 이런 추세라면 샤오미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100만 대를 판매한 자동차 제조사’로 기록될 겁니다. ③ ‘전기차계의 유니클로’ 리프모터화웨이처럼 똑똑하거나 샤오미처럼 화려하진 않아요. 대신 ‘압도적인 제조 효율’이 리프모터의 특장점이죠. 부품의 60% 이상을 자체 설계·생산하는 수직 계열화로 중간마진을 확 줄여서 가격 경쟁력을 극대화했는데요.얼마나 싸냐고요? 리프모터의 중형 SUV C10 가격은 12만2800위안(2567만원). 비슷한 크기의 테슬라 모델Y나 현대 아이오닉5와 비교하면 반값이죠. 또 소형 전기차 T03은 5만9900위안(1205만원). 이 가격대에선 드물게 레벨2 주행보조시스템까지 갖춘 가성비 끝판왕입니다.리프모터는 지난해 60만대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기차 시장 신흥 강자로 우뚝 섰는데요. 올해는 판매목표를 100만대로 더 끌어올리며 공격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내수 경쟁 밀리는 BYD의 살길은?정리하자면, 소프트웨어가 점점 중요해지면서 IT 기술에서 앞서는 빅테크(화웨이·샤오미)가 급부상 중이고요. 그게 아니면 아예 저렴한 극가성비 브랜드(리프모터)로 선택이 쏠리는 분위기입니다. 트렌드가 달라지면서 중국 전기차 제조사 순위가 요동치는데요.그래서 중국 전기차 시장 1위 BYD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BYD는 수년간 주행거리를 늘린 고효율 배터리와 하이브리드 기술을 앞세워 중국 전기차 시장을 장악해 왔는데요. 하지만 이제 다른 경쟁사도 비슷한 배터리 기술을 이미 갖췄거든요. BYD의 수직통합 전략을 모방한 리프모터는 가성비 면에서 한발 앞서 나가고요. 하드웨어 제조 역량만으론 이제 차별화가 어렵게 됐습니다.무엇보다 요즘 중국 소비자는 인포테인먼트나 자율주행 같은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상당히 민감한데요. 이게 바로 IT 기반이 약한 BYD의 결정적인 약점이죠. ‘BYD=소프트웨어가 구식인 아저씨 차’ 이미지가 강해지면서, 젊은 층의 외면을 받는 겁니다.지난해 BYD의 내수 판매량은 13% 넘게 감소했어요(405만→350만대). 할인 프로모션이 막히자 약점이 드러나면서 판매량이 뚝 떨어진 거죠. “기술적 리더십이 약해지고 업계 내 동질화가 심해졌습니다.” 결국 왕촨푸 BYD 회장도 지난해 말 주주총회에서 이렇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요.그럼, BYD의 성공 신화도 이대로 빛이 바래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BYD는 이미 더 넓은 시장, 해외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BYD 지난해 수출량은 105만대로, 전년보다 150% 급증했고요. 올 1월에도 총판매량 21만대 중 절반 가까운 10만대를 수출했습니다. 1년 전보다 수출이 43% 급증한 거죠. 줄어든 내수 수요를 수출로 대체하면서 ‘세계 1위 전기차 제조사’로서의 위상은 오히려 더 공고해졌죠.특히 BYD는 유럽과 남미,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기록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인데요. 브라질에선 지난 1월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5위(7.8%)로 급상승하며 토요타를 제쳤고요. 태국에서도 압도적인 전기차 1위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일본 차 일변도였던 시장 판도를 뒤흔들었습니다.올해 2분기엔 BYD 헝가리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죠. 현재 유럽에서 팔리는 중국산 BYD 차량엔 27% 관세가 붙거든요. 그런데도 지난해 유럽 판매량이 270% 급증하면서 테슬라를 무섭게 추격 중인데요(BYD 18만8000대, 테슬라 23만8000대). 헝가리산 BYD가 팔린다면 관세는 제로가 될 테니, 유럽 시장 공략은 한층 수월해질 겁니다. 어쩌면 테슬라를 따라잡는 ‘골든 크로스’를 보게 될지도 모르죠. BYD만이 아닙니다. 지리그룹이 소유한 ‘볼보의 후광’에 힘입어 유럽 시장에 안착한 지커, 스텔란티스와의 합작을 통해 폴란드 생산 거점을 마련한 리프모터, ‘2026년 해외 판매 2배’를 외치며 해외 시장에 열을 올리는 샤오펑 등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이 앞다퉈 중국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데요.올해는 비야디에 이어 지커와 샤오펑까지 한국 시장 공습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내수 시장에서 단련된 중국 전기차들의 진검승부, 아마 우리가 조만간 안방에서 목격하게 될 얘기일 겁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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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67배 땅 빼앗아 무상급식? 인도네시아가 ‘손절’ 당하는 이유[딥다이브]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의 ‘문제아’로 떠오른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인도네시아. 경제는 견조하게 성장 중인데도, 증시와 외환시장은 심하게 요동치는데요. 해외 투자자들이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죠. 국가 주도 성장을 통해 ‘강한 인도네시아’를 이루겠다는 프라보워 대통령의 약속. 국민들은 지지하지만, 글로벌 투자자들은 시대착오적이라며 고개를 젓는데요. 경고음이 울린 인도네시아 경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2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금융시장에서 날아든 옐로카드인도네시아 경제엔 최근 옐로카드 두 장이 연이어 날아들었습니다. 먼저 포문을 연 건 세계 최대 주가지수 산출기관인 MSCI. 1월 27일 성명에서 인도네시아를 신흥시장(Emerging Market)에서 프런티어 시장(Frontier Market)으로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어요. 인도네시아 상장사의 “불투명한 주주 구성과 담합 가능성”을 지적하며, 5월까지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못 박으면서 말이죠.만약 신흥시장에서 탈락한다면? MSCI 신흥시장 지수를 추종해온 글로벌 펀드 자금이 줄줄이 빠져나가며 증시가 주저앉을 게 뻔합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화들짝 놀랐고, 대형 기관들은 미리부터 발을 뺐죠. MSCI 성명이 나온 지 불과 이틀 만에 시가총액 800억 달러(116조원) 증발해버렸는데요. 올해 초 사상 처음 9000선을 돌파했던 자카르타 종합지수는 순식간에 8000선으로 밀려납니다.그리고 MSCI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2월 5일. 이번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나섭니다. 인도네시아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건데요. 이날 인도네시아 통계청이 ‘2025년 5.11%’라는 경제성장률을 발표하며 좋았던 분위기에 무디스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죠. 무디스는 “정책 결정의 예측 가능성 저하”를 이유로 들었습니다.가뜩이나 MSCI 강등 공포가 퍼진 상황에서 무디스까지 일격을 날렸으니, 외환시장이 요동칠 수밖에요. 이날 환율은 장중 달러당 1만6900루피아에 육박했어요. 환율이 1만7000루피아를 찍었던 1998년 외환위기 수준에 다시 근접한 거죠. 인도네시아에선 ‘환율 1만7000루피아=외환위기 악몽’으로 통하기에 시장의 불안감은 커집니다.그런데 인도네시아 경제 자체는 꽤 잘나가고 있거든요. 4년 연속 5%대 경제성장을 기록했고요. 올해도 정부가 5.4% 성장률 달성을 자신합니다. 실물 경제가 이렇게나 좋은데, 왜 금융시장에선 자꾸 시끄럽게 경고음을 울려대며 제동을 거는 걸까요.호주국립대 코럴벨 아태연구소의 이브 워버튼 연구원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반적으로 프라보워 정권에선 국가 권력이 더욱 중앙집권화되고 약탈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민간 부문이 불안해하고 외국 투자자들이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스위스 면적 땅을 국유화하다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프라보워 대통령. 1998년 외환위기로 수하르토 정권은 무너졌고, 그는 군에서 불명예 전역한 뒤 해외로 망명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어요. IMF를 포함한 외세를 향한 그의 반감은 뿌리가 깊은데요.그래서일까요. 프라보워 대통령은 외국 자본에 대한 거부감이 강합니다. 2024년 12월 취임 후 그가 ‘강한 인도네시아’를 주창하며 줄곧 강조해온 건 해외투자 유치가 아닌 ‘자급자족’이죠. 외국 자본에 소중한 천연자원을 뺏길 수 없다,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식의 논리인데요.그가 자급 경제라는 목표를 위해 내놓은 파격적인 정책들이 여러가지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①쌀과 설탕 수입 중단“2026년엔 소비용 쌀과 설탕, 사료용 옥수수 수입이 한톨도 없을 겁니다.” 인도네시아 농업부 장관이 얼마 전 한 말이죠. 프라보워 대통령이 취임 직후 내린 ‘식량자급’ 명령에 따라 지난해 생산을 늘려 재고를 충분히 쌓아놨고, 그 결과 올해부턴 주요 전략 식량 수입 물량이 제로가 될 거라 선언한 건데요.아니, 식량 자립은 좋은데 그렇다고 굳이 “수입 제로” 선언까지 하는 건 너무 오버 아닐까요. 날씨에 따라 수확량은 들쑥날쑥하기 마련인데 말이죠. 이러다 자칫 식량 인플레이션 오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벌써부터 나옵니다.하지만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쌀을 구매하지 않아서, 세계 쌀값이 하락했다”며 성공적 정책이라 자화자찬 중인데요. 팩트체크를 하자면, 세계 쌀값이 떨어진 건 인도네시아 때문이 아니라 인도의 쌀 수출 재개 덕분이었습니다.②경유에 팜유 50% 혼합 의무화식량 자급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에너지 자립이죠. 이를 위해 프라보워 대통령은 B50, 즉 경유와 팜유를 50%씩 섞어 사용하는 걸 의무화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밝혔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팜유 생산의 60%가량 차지하는 1위 생산국이자 수출국이잖아요. 그러니 팜유의 연료 사용량을 대폭 늘려서 경유 수입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발상이었죠.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오겠죠. 그럼 식용유는 어쩌지? 에너지 자립하려다 먹을 식용유가 모자라는 상황이 닥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고요. 또 팜유 생산 늘린다고 숲을 베어 팜 농장을 만들면, 그게 과연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느냐는 논란도 일었는데요.다만 애초 프라보워 대통령이 2026년 시행한다고 밝혔던 B50 의무화 정책은 최근 내년 이후로 보류됐습니다. 국제 팜유 가격이 아직은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는군요. ③불법 농장·광산 대대적인 국유화식량이든 에너지든 자립하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게 땅이죠. 쌀농사, 사탕수수농사, 팜농사 등을 더 많이 지어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프라보워 정부는 대대적인 땅 확보에 나섰습니다. 어떻게? 압류해서 국유화하는 겁니다. 환경 규제를 어겼거나 부패 혐의에 연루된 불법 자산이란 딱지를 붙여서 말이죠.이런 식으로 지난해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 소유가 된 땅이 얼마나 되느냐. 놀라지 마세요. 자그마치 400만 헥타르. 서울 면적의 67배, 남한 전체 영토의 약 40%에 달합니다. 경기도와 강원도, 충청북도를 합친 것보다 더 넓고요. 스위스 국가 전체 면적과 맞먹죠. 외국 자본이나 재벌기업이 보유했던 돈 되는 알짜 농장과 광산이 속속 정부에 넘어갔습니다.이런 땅과 지분, 광산채굴권은 누가 관리할까요. 다난타라(Danantara), 지난해 2월 설립된 인도네시아 국부펀드로 대통령 직속기관인데요. 인도네시아의 핵심 7대 국영기업과 민간에서 압류된 자산을 모두 관리하는 거대한 지주회사 형태입니다. 그 운영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이뤄지죠.다난타라가 프라보워 정부 핵심 사업(무상급식, 군 현대화)의 돈줄 역할을 하게 될 거란 전망은 파다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재정적자를 엄격히 제한하는데(GDP의 3% 이내), 다난타라를 통하면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난타라는 정부 예산안에선 빠져 있는 일종의 ‘장부 외(Off-balance sheet)’ 지갑이니까요.다난타라에 몰아주기 위한 대대적인 자산 국유화 물결. 투자자들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데요. 인도네시아 최대 금광인 마르타베 광산 사례를 볼까요. 지난해 12월 환경규제를 위반해 홍수를 야기했단 이유로 정부는 마르타베 금광을 포함한 28개 기업의 허가를 취소했고요. 최근엔 국부펀드 다난타라가 마르타베 금광을 인수해 운영하는 걸 검토 중이란 보도가 나왔어요. 금광의 소유주인 홍콩 기업 자딘 매티슨엔 투자자들의 문의가 쏟아졌고요. 자딘 매티슨 측은 “공식 통보 받은 바 없다”며 당혹스러워했죠.총칼 들고 협박해서 강탈한 건 아니지만, 이건 사실상 정부가 인허가권을 무기로 기업 자산을 빼앗는 것 아닌가요? 갑자기 이렇게 계약이 휴짓조각이 되어버리면 어쩌란 걸까요. 이거 어디 불안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할 수 있을까요. 이게 바로 무디스가 지적한 “예측 가능성 저하”의 대표 사례인데요.하지만 프라보워 대통령은 불법 농장·광산의 압류가 법치주의 수호를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지난달 다보스 포럼 특별연설에서 그는 대대적인 국유화가 “탐욕 경제”에 맞서 “부패와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죠. 자신은 “가난하고 약한 인도네시아 사람”을 위해 “부패, 조작, 부정행위와 맞서 싸우고 있다”는 주장입니다.79.9%의 압도적 지지율프라보워 대통령이 추구하는 ‘국가 주도의 자급자족 민족주의’ 노선. 왜 전 세계 투자자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지 아시겠나요. 인도네시아 경제가 잘 나가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룰이 깨지면 곤란하다는 경고음이 나오는 상황인데요.그럼 흔들리는 주가와 환율 탓에 민심도 흔들리고 있을까요. 그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이를 통쾌하게 여기고 있죠. 그동안 법을 어기며 숲을 파괴하고 이익을 챙겨온 부도덕한 기업에 철퇴를 내렸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특히 마르타베 금광 사례처럼 외국자본 소유 자산을 건드릴수록, 민족적 자부심은 고취됩니다. ‘프라보워는 자본의 눈치 보지 않고 진짜 부패와 싸우는 리더’라며 열광하죠.최근 여론조사(2월 8일 발표)에서 프라보워 대통령 지지율은 무려 79.9%. 취임 1년이 지났는데도 이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특히 젊은층과 농촌지역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물론 이런 높은 인기엔 프라보워 대통령의 대표 정책인 무상급식도 한몫했죠. 지난해 프라보워 정부가 무상급식 공약 이행에 나서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재정부담을 둘러싼 논쟁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건 있는데요.프라보워 정부가 속도전을 펼치면서 무상급식은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됐고요. 현재 수혜자가 총 6000만명(학생, 영유아, 임신부가 대상)에 달합니다. 올해 말이면 최종 목표인 8290만명 전원에게 급식을 제공할 거라는군요.‘서민 자녀에게 밥을 먹이는 대통령’이라니. 국민들은 열광합니다. 낮은 급식단가(1끼에 874원) 때문에 식단이 부실하단 지적이 나오지만, 그것조차 아쉬운 가난한 국민이 워낙 많으니까요. 또 다난타라가 국유화한 농장들은 앞으로 무상급식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역할을 할 예정입니다. 국유화 역시 애들 밥 먹이는 데 도움이 되니, 환영할 만한 일인 거죠.해외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프라보워의 정책들이 국내 여론 공략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입니다. 금융시장에서 뭐라고 하든 프라보워 대통령이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이유인데요. 과연 프라보워 대통령은 이 경고음을 무시한 채 ‘자립의 기적’을 쓸 수 있을까요. 아니면 1998년의 악몽을 연상시키는 환율 1만7000루피아 파도에 휩쓸리고 말까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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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똘똘한 한 채’ 열풍…자가 비율 1위 싱가포르도 못 막았다[딥다이브]

    요즘 부동산 시장, 정부가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선포한 상황이죠. 다주택자들이 항복하고 급매를 내놓으면, 무주택자들이 저렴하게 집을 장만하고 부동산 가격 급등을 잠재울 거라고 보는 건데요.그럼 ‘1가구 1주택 실거주’가 기본이 된 세상에선 집값 걱정과 투기 열풍이 사라질까요? 자가 보유율 세계 1위의 나라, 싱가포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이 있어도 집 걱정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집은 단순한 거주 수단이 아닌 ‘욕망의 재화’이기 때문이죠. 싱가포르의 ‘똘똘한 한 채’ 열풍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싱가포르 공공주택의 힘90.8%. 싱가포르의 주택소유 비율은 단연 세계 1위입니다. 1960년대부터 펼친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주택 정책 덕분이죠. 국민의 80%는 주택개발청(HDB)이 건설한 공공주택에 거주합니다.전 세계 도시 계획가의 찬사를 받는 싱가포르식 공공주택 모델. 이게 가능했던 건 일단 국토의 약 90%가 정부 소유이기 때문이고요. 또 모든 근로자가 월급을 20%씩 강제저축해 조성한 막대한 ‘중앙적립기금’이 뒷받침됐습니다. 무려 700조원이 넘게 적립된 이 기금이 싱가포르 공공주택 건설의 거대한 자금줄 역할을 하죠. 왜 사람들이 기꺼이 공공주택에 사냐고요? HDB 주택은 법적으론 ‘99년 장기 임대’이긴 한데요. 사실상 소유한 것과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입주민은 5년 의무 거주기간(일부 인기 지역은 10년)만 채우면 이걸 팔 수 있죠. 만약 99년 임대로 분양 받았는데 5년이 지났다면, 나머지 94년치 권리를 재판매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는 거죠.물론 공공주택은 ‘콘도미니엄’이라 불리는 민간주택처럼 엄청 고급스럽진 않아요. 민간 콘도미니엄은 단지 내 수영장, 헬스장 같은 편의시설을 갖추고 보안요원이 상주해서 훨씬 호화롭죠. 하지만 비슷한 입지·크기라면 공공주택은 가격이 반값 이하입니다. 관리비도 훨씬 저렴(월 몇만원 수준)하고요. 가성비 면에선 비교가 되지 않죠.나중에 팔아서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다니, 솔깃하신가요? 물론 아무나 공공주택을 분양받을 순 없죠. 일단 외국인이나 다주택자는 불가능하고요. 기혼 가구인 경우엔 월 소득 1만4000싱가포르달러(1600만원) 이하여야 신규 분양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만약 미혼이면 소득과 나이 요건이 더 까다롭고요(월 소득 7000싱가포르달러(800만원) 이하이면서 35세 이상). 또 미혼자는 작은 평형(거실+방1개 구조)만 분양받을 수 있다는 제한도 있어요.‘1인 가구는 35살까지 기다리라니 너무하다’라는 청년층 불만도 터져나오는데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해야 하는 정부로선 제도 변경에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랑 BTO 신청할래?이런 제도 때문에 싱가포르엔 독특한 청혼 문화가 생겼습니다. 청혼할 때 ‘나랑 결혼해줄래?’ 대신 이렇게 묻는 거죠. “나랑 BTO 신청할래(Shall we BTO)?”BTO(Build-to-Order), 즉 공공주택 신규 분양 신청을 함께 하자는 아주 로맨틱한(?) 제안입니다. 보통 분양 당첨부터 입주까진 4-5년 걸리는데요. 결혼 전 분양 신청을 한 뒤, 나중에 입주하기 전까지만 혼인신고를 마치면 되거든요. BTO 물량 대부분은 생애 첫 신청자에 몰아주기 때문에 신혼부부에 유리한 편입니다. 만약 5년 안에 결혼할 생각이 있다면 둘이 얼른 함께 BTO부터 신청해야죠.한국에선 보통 결혼 날짜를 정하고 그에 맞춰 집을 구하죠. 싱가포르는 그 반대예요. BTO에 당첨되고 입주날짜가 정해지면 그에 맞춰 결혼식 날짜를 잡곤 하죠.만약 공공주택에 당첨됐는데 입주 전에 헤어지면 어떻게 되냐고요? 당연히 입주권은 날아가고, 이미 낸 예약금과 인지세까지 포기해야 합니다. 손해가 막심하죠. ‘BTO 위약금이 무서워서 결혼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인데요.그래도 합리적 가격으로 공공주택을 분양 받을 수 있으니, 싱가포르 신혼부부들이 부럽다고요? 제도로 보면 확실히 그런데요. 실제 사례를 들여다 보면 좀 복잡합니다. 왜? 다들 원하는 입지가 비슷하다보니, 쏠림현상이 극심하기 때문이죠.싱가포르는 국토가 서울보다 20% 정도 큰 나라인데요. 서울에서도 강남, 강북이 다른 것처럼, 싱가포르도 입지에 따라 선호도 차이가 큽니다. 특히 자동차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다보니, 지하철역 근처냐 아니냐가 중요한데요.도심 중심부와 가깝고 학군이 좋으면서 편의시설이 풍부하고 지하철(MRT)역과 가까운 아파트. 이런 인기 단지는 경쟁률이 수십대 1까지 치솟기도 합니다. 반면 도심과 떨어진 외곽지역은 경쟁률이 일대 일에도 못 미치는 미달 사태가 벌어지곤 하죠.퀸즈타운, 부킷 메라 같은 ‘서울 강남급’ 입지만 고집하다가 줄곧 BTO에 떨어지는 사례는 매우 흔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공급을 늘렸다는데 왜 내 집은 없냐!’라는 항의도 이어지는데요.아니, 신혼 때는 좀 외곽에서 살다가 돈 모아서 나중에 더 좋은 집으로 가면 되지,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입지 타령이냐고요? 바로 여기서 싱가포르 공공주택 제도의 아이러니가 드러납니다. 저렴한 공공주택이 단순한 내 집 마련 수단이 아닌 자산증식의 통로가 되어버린 거죠. ‘똘똘한 HDB 공공주택 한 채’를 생애 최초로 분양 받는 건 싱가포르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건 국가가 지원해 주는 일생일대의 로또이자 저위험 고수익의 투자 기회이니까요.정부가 지원하는 합법적 로또도심과 가깝고 조망 좋은 싱가포르의 핫한 주거지 부킷 메라. 30평대 신축 고급 콘도미니엄 가격이 320만~450만 싱가포르달러(약 37억~52억원)를 호가하죠. 서울로 치면 반포 내지 압구정 같은 입지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도 공공주택은 들어섭니다. 지난해 10월 부킷 메라에 공급된 30평대 공공주택 분양가는 58만 싱가포르달러. 우리 돈으로 6.7억원인 거죠. 만약 싱가포르 시민권자인 신혼부부라면 최대 12만 싱가포르달러(1.4억원)의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실질 구매가는 그만큼 낮아집니다. 우리로 치면 반포 신축의 국민평형 아파트를 5억원 대에 분양받을 수 있는 거죠.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저렴한 건데요.이렇게 분양받은 공공주택, 의무거주 기간(10년)이 끝나면 얼마에 팔 수 있을까요? 현지 부동산 분석 업체들은 최소 150만 싱가포르달러(17억원), 조망 좋은 고층은 200만 싱가포르달러(23억원)는 충분히 갈 거라고 내다봅니다. 업자들의 설레발 아니냐고요? 이미 지난해 이 지역 준신축 공공주택의 재판매 가격이 130만 싱가포르달러(15억원)를 찍었거든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그 정도 상승은 충분히 가능하겠죠.왜 그렇게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핵심지 분양’에 목매는지 아시겠죠? 이들에게 첫 BTO 공공주택은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자산 뻥튀기를 위한 일종의 투자 상품이죠. 의무 거주 기간(5년 또는 10년)이 끝나자마자 집을 팔아 시세차익을 챙긴 뒤, 이를 발판으로 고급 민간 콘도미니엄으로 ‘업그레이드’해 갈아타는 것. 싱가포르에선 이게 중산층 도약을 위한 성공공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핵심지 공공주택 당첨인 거고요.‘소박한 46만 달러(5억2000만원) BTO로 시작해 민간주택으로 이사한 뒤 345만 달러(40억원)에 매각한 여정.’ 소셜미디어엔 이런 류의 콘텐츠가 넘쳐납니다. 주로 부동산 중개 업자들이 투자를 부추기려 만든 영상인데요.이런 영상이 강조하는 건 두가지이죠. ①‘똘똘한 HDB 한 채’ 청약 당첨은 정부가 지원해주는 일생일대의 투자 기회다. 당장 신청하라! ② HDB에 만족하고 계속 살면 절대 안 된다. 의무기간만 채우고 얼른 민간주택으로 갈아타라! 이와 관련한 수많은 성공사례를 열거하며 젊은층의 자본주의적 열망을 강하게 자극합니다.‘똘똘한 한 채’에 대한 열망공공주택이 로또처럼 변질되면서 나타난 ‘BTO 광풍’. 당연히 싱가포르 정부로선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죠. 그래서 2024년 10월 정부는 전례 없는 강한 규제를 내놨습니다. 일부 인기 지역의 의무거주 기간을 2배로 늘렸고요(5년→10년). 이 지역에선 나중에 집을 팔았을 때 매매가의 6~12%를 ‘보조금 환수’ 명목으로 국가에 반납하게 했죠. 하지만 이런 규제도 똘똘한 한 채를 향한 열망은 꺾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수익률이 낮지만 당첨확률 100%인 곳, 10여 년 뒤 대박이지만 당첨확률이 10%도 안 되는 곳. 기회가 한 번이라면 둘 중 뭘 택하는 게 합리적일까요. 평생 한 번 뿐인 생애 첫 보조금 혜택인데, 가장 수익률 높은 곳에 베팅하게 되지 않을까요. 싱가포르 공공주택 모델은 1961년 ‘버킷 호 스위(Bukit Ho Swee) 대화재’ 참사를 계기로 탄생했어요. 화재로 잿더미가 된 무허가 판자촌에서 리콴유 당시 총리가 “정부가 여러분에게 깨끗하고 안전한 콘크리트 집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고요. 이를 현실화한 게 HDB 공공주택이었는데요. 하지만 60여 년이 지나 싱가포르는 1인당 GDP 9만 달러(1억3000만원)의 부자 나라로 성장했고요. 이 나라 젊은이들은 이제 단순히 ‘판잣집이 아닌 깨끗하고 안전한 집’에 사는 것만으론 더이상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주거안정이란 필수적 욕구가 채워지자 ‘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작동하는 건데요. 그 본능을 과연 누가, 무슨 정책이 막을 수 있을까요. ‘1가구 1주택 실거주’라는 성공 신화를 쓴 싱가포르가 맞닥뜨린 풍요의 역설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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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은 안전자산? 악마의 금속? 은값 반등에 속으면 안되는 이유[딥다이브]

    요즘 금융시장이 어지러울 정도로 요동치고 있죠. 그중에서도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던 자산은 바로 은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눈부신 급등세를 보였던 은 가격이 불과 하룻밤 사이에 30% 넘게 빠졌기 때문이죠.미친 듯이 급등하던 은 가격이 갑자기 고꾸라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죠. 1980년과 2011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는데요. 은은 왜 ‘악마의 금속’일까요. 금과는 뭐가 다른 걸까요. 역사가 알려주는 은 시장의 교훈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빚으로 쌓았던 은값 거품지난 1월, 모두가 은에 열광했습니다. 석 달 만에 150% 넘는 가격 상승, 역사상 첫 온스당 100달러 돌파. 은에 투자하는 상품인 ‘아이셰어즈 실버 트러스트(iShares Silver Trust) ETF’의 하루 거래량은 1월 26일 394억 달러까지 치솟았죠. 엔비디아(약 230억 달러)나 테슬라(220억 달러) 주식보다도 더 인기를 끈 겁니다.은 투자 열풍은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월 한 달간 ‘코덱스(KODEX) 은선물 ETF’에 무려 8151억원의 개인 순매수가 유입됐다죠. 다들 반짝이는 은을 갖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그리고 미국 시간으로 1월 30일, 갑자기 시장이 뒤집혔습니다. 온스당 121달러를 돌파했던 은 가격이 하루 만에 31% 곤두박질친 거죠. 2월 2일엔 장중 온스당 75달러까지 추락했어요. 고점보다 38%나 빠졌죠.물론 이때 코스피도, 금값도 급락을 맞았습니다. ‘워시 쇼크’, 즉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이란 평가를 받는 케빈 워시가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된 영향이란 해석이 나왔는데요. 하지만 은값이 다른 자산보다 몇배로 크게 요동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빚(레버리지)을 써서 은값 상승에 베팅한 투기적 수요가 워낙 많이 쌓여있었고, 그게 한꺼번에 무너졌기 때문이죠.지난 1월 말 은값이 미친 듯이 뛰자,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은 선물 증거금을 연이어 크게 인상했죠. 여기에 케빈 워시가 연준 의장으로 지명될 거란 소식까지 나왔어요. 악재가 겹치면서 무섭게 뛰던 은값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요. 일단 은값이 떨어지자, 높은 레버리지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은 투기 세력이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직면하게 됐고요. 이를 막지 못한 투자자들이 줄줄이 강제 청산당하고 맙니다. 이로 인해 은값이 추가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졌고, 결국 역대급 폭락으로 이어진 거죠.투기세력이 그동안 빚으로 쌓아올렸던 은값의 거품이 순식간에 빠지고 말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하루 만에 31%는 정말 심하네요. 이를 보며 은의 오래된 별명을 떠올렸습니다. 은은 역시 ‘악마의 금속(Devil‘s metal)’이에요!은빛이 잿빛 된 ‘실버 목요일’‘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내 현금 자산은 인플레이션에 녹아내릴 거야. 지금은 실물자산에 투자할 타이밍이야.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는 안전한 자산이라면 금 아니면 은이 아닐까?’아마 최근 은을 산 투자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약 5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한 유명한 투자자가 있었죠. 바로 헌트 형제. 텍사스 출신 석유재벌 해롤드슨 라파예트 헌트의 세 아들(넬슨 벙커 헌트, 윌리엄 허버트 헌트, 라마 헌트)입니다.1970년대 초 달러 약세와 초인플레이션 시대를 예견한 헌트 형제. 당시 온스당 2.5달러이던 은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확보한 은 가격이 뛰면 그걸 담보로 대출 받아 다시 은 선물계약을 싹쓸이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은을 축적해나갔죠. 1979년 말, 이들이 확보한 은 실물과 선물계약은 무려 2억 온스 어치에 육박합니다. 전 세계 은 공급량의 약 3분의 1이 헌트 형제 손에 있었던 거죠.시중엔 은이 동나면서, 은값은 수직으로 치솟습니다. 1979년 초 온스당 6달러였던 가격이 1980년 1월 18일 49.45달러를 찍었죠. 1년 만에 700% 넘게 폭등한 겁니다. 미친 은값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집집마다 대대로 물려받은 은 식기와 아기용 은수저를 내다 팔았고요. 곳곳에서 은 절도 사건이 급증했죠. 감광재료인 은 때문에 필름 가격이 덩달아 급등하면서 병원에선 엑스레이 필름마저 구하기 어려울 지경이 됩니다.보다 못한 미 연준과 뉴욕상품거래소(COMEX)는 대대적인 은 시장 규제에 나섭니다. 헌트 형제의 추가 은 매입이 막혔고요. 드디어 은 가격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는데요.1980년 3월 26일, 뉴욕타임스에 티파니앤코의 ‘비양심적(UNCONSCIONABLE)’이란 제목의 광고가 실렸습니다. 은값 폭등에 분개한 월터 호빙 티파니앤코 회장이 헌트 형제를 “수십억 달러 상당의 은을 사재기해 가격을 폭등시켰다”며 공개 저격한 거죠.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3월 27일, 하루 만에 은값이 33% 급락합니다. 헌트 형제가 COMEX의 1억 달러짜리 마진콜을 막지 못하면서 청산 당했기 때문이죠. 이른바 ‘실버 목요일(Silver Thursday)’입니다.수십억 달러를 잃은 헌트 형제는 시장 조작 혐의로 막대한 벌금까지 부과받았고요. 결국 파산을 신청하는 처지가 됩니다. 실버 목요일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10달러로 추락한 은값은 이후 아주 오래, 약 30년 동안 10달러 안팎에 머물렀습니다.강렬한 급등과 처절한 붕괴. 그 극심한 변동성 때문에 은에는 ‘악마의 금속’이란 별명이 붙었죠. 눈부시게 빛나다가도 한순간 잿빛으로 변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투자자산으로서 은이 갖는 무서운 속성입니다. 은은 금 같은 안전자산일까?바로 이 점에서 은은 금과 다릅니다. 신뢰할 만한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통하는 금과 달리, 은 가격은 때론 미친 듯 널뛰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곤 하죠. 그래서 은을 ‘스테로이드 맞은 금’이라고도 부르는데요.그럼 왜 이렇게 변동성이 클까요. 일단 은 시장은 규모가 작습니다. 금 시장의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죠. 그만큼 투기성 자금에 휘둘리기가 쉽고요.은은 독특한 원자재입니다. 귀금속과 산업재,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죠. 은이 모든 금속 중 열과 전기 전도성이 가장 높아서 산업적 가치가 높기 때문인데요. 생산되는 은의 절반 이상이 태양광패널,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의 핵심 소재로 쓰입니다. 이렇게 은이 쓰이는 곳이 많으면 은값엔 좋은 일 아니냐고요? 그렇게 생각하고 은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따져보면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산업재로 많이 쓰이다보니, 구리나 철 같은 다른 금속처럼 경기를 너무 많이 타게 되죠. 경기가 고꾸라지고 산업수요가 줄면 가격이 되레 급락할 수 있는 겁니다.자고로 안전자산이라면 금처럼 경기가 나쁠수록 오히려 빛나야 하잖아요. 그래야 사람들이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해서 대대손손 물려주고 싶어할 거고요. 그런데 은은 그렇지 못합니다. 산업재로서의 유용함이 은의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셈이죠.사실 은은 금만큼 희귀하지도 않아요. 어떤 자산의 희소성을 판별하는 지표가 총 재고량(현재 유통되는 물량) 대비 연간 생산량(1년간 신규 공급 물량), 즉 ‘Stock-to-Flow(S2F)’인데요. 금은 이 지표가 62에 달하죠. 다시 말해, 현재 전 세계 금 보유량만큼을 추가하려면, 앞으로 금을 62년이나 더 캐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새로 추가될 수 있는 양이 너무 적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가치가 상승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거죠.그럼 은은? 이 비율이 22 정도입니다. 은을 앞으로 22년 더 캐면 지금의 재고량(산업재로 소비돼 사라진 건 제외)만큼이 추가된다는 의미이죠. 희소성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닙니다. 좀 애매하죠.역사의 반복 vs. 이번엔 다르다정리하자면 은은 금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썩 믿음직스럽진 못합니다. 하지만 ‘은=안전자산’이란 공식은 투자 세계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요.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금값이 뛰는 시기엔 덩달아 은값도 뛰곤 합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준의 양적 완화로 막대한 달러가 풀렸던 2010~2011년에도 그랬었죠.당시엔 미국의 부채한도 협상 실패로 미국 신용등급이 하락할 거란 위기감이 고조됐고요. 전 세계 투자자들이 안전자산, 그 중에서도 은 매수에 뛰어듭니다. 이번엔 헌트 형제 같은 ‘고래’ 대신 레버리지 높은 투자에 나선 투기적인 개인 투자자가 중심이었죠. 그때도 지금처럼 중국 투자자들이 열성적인 은 투기세력이었는데요. 8개월 동안 금값이 26% 뛸 때, 은값은 165%나 급등했고요. 2011년 4월 정점에서 은값은 49.82달러로, 31년 만에 전고점을 뚫습니다.“마치 1999년(닷컴버블)으로 돌아간 것 같다”, “은은 여전히 금보다 저평가돼있다”, “은 가격이 15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투자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던 2011년 4월 말.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은 선물 계약의 증거금을 대폭 인상하며 방아쇠를 당깁니다. 동시에 조지 소로스의 헤지펀드가 은 매도에 나섰다는 보도가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들었죠. 은값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고, 은 선물 시장에선 마진콜 폭탄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추가 증거금을 감당 못한 투기 세력의 청산이 이어졌고요. 5거래일 만에 은값은 30%나 폭락했죠.그럼 당시 투자자들은 ‘역시 은은 악마의 금속이야!’라며 바로 손 털고 은 시장을 떠났을까요? 아니, 그 반대였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달러 약세라는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며 “저가 매수 기회”를 외치는 전문가들이 많았죠. ETF와 달리 실물 은의 가치는 여전하다며 은괴를 사모으는 이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해 말 은 가격은 20달러대로 떨어졌고요. 이후 무려 14년 동안 40달러 근처에도 가지 못했습니다.1980년과 2011년, 그리고 2026년. 은 가격 폭등과 폭락의 패턴이 상당히 비슷하지 않나요? ‘달러가치 하락 우려→안전자산 쏠림→투기 세력의 레버리지 투자→은값의 가파른 폭등→투기 광풍’이 펼쳐지고요. 이어서 ‘거래소의 규제 강화→은값 하락→마진콜 도미노→강제청산 행렬→은값 폭락’이 벌어집니다. 몇 달 만에 은값이 몇 배로 뛰고, 단 며칠 만에 은값이 3분의 1토막 난 것도 비슷하죠.다만 현재(2월 3일 기준) 은값은 다시 반등해 10% 넘게 뛰었습니다. 개미투자자들이 몰린 레딧엔 “지금이 매수 적기”라며 투자를 독려하는 글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죠. ‘이번엔 다르다’라는 말, 얼마나 믿을 만할까요. 결말은 알 수 없지만 왠지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월 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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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스타는 마약이다” 법정에 선 메타[딥다이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 청소년을 중독에 빠지게 만들고 있나요?소셜미디어 기업은 일부러 중독을 조장하고 있을까요?만약 그렇다면 소셜미디어는 담배처럼 위험한 제품으로 규제해야 할까요?오랫동안 제기된 이 질문들에 대해 이제 법적 판단이 나올 때가 됐습니다. 미국에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상대로 제기된 수천 건 소송 중 첫 번째 소송에 대한 재판이 이번 주에 시작됐죠. 만약 기업 측이 패소한다면, 그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재판인데요. 결과 예측은 그리 쉽지 않네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미국의 소셜미디어 소송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인스타가 날 망쳤어!우울증과 자살충동, 자해, 신체이형증(외모 결점 집착)에 시달리는 19살 미국 여성 KGM(가명). 그가 어머니와 함께 제기한 소송이 1월 27일 로스앤젤레스 법원에서 시작됐습니다. 피고는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와 구글(유튜브). 소셜미디어 플랫폼 운영 기업들이죠.원고는 메타와 구글의 플랫폼 설계 방식 탓에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소셜미디어에 중독됐다고 주장합니다. 무한스크롤과 자동재생, 추천알고리즘, 푸시 알림 기능 등을 문제 삼았죠. 기업이 야기한 중독으로 인해 정신건강이 악화됐으니, 책임지고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낸 겁니다.이와 비슷한 개인 상해 소송, 미국에선 캘리포니아 주법원에만 약 3000건, 연방 법원엔 약 2000건 제기돼 있습니다. 그중 맨 처음 재판에 회부된 게 이 KGM 사건이죠. 그만큼 획기적인 재판입니다. 만약 소셜미디어 기업이 여기서 패소한다면? 엄청난 손해배상에 직면하는 건 물론이고, 플랫폼 설계와 알고리즘을 싹 바꿔야 하겠죠.바로 그 점에서 이 소송은 1990년대 미국 담배소송과 비교되곤 합니다. 당시 담배회사들은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을 알고도 이를 은폐한 게 결국 드러났고요. 1998년 2060억 달러(당시 기준 약 200조원)라는 천문학적 배상금에 합의해야 했죠. 동시에 이전까진 ‘기호식품’쯤으로 여겨졌던 담배가 이를 계기로 ‘사회적 유해물질’로 취급되기 시작했습니다.그럼 과연 소셜미디어에 대해서도 담배처럼 유해성과 중독성이 있는 해로운 제품이란 법의 판단이 내려질 수 있을까요?일단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소송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번 소송의 결과가 나머지 수천 건의 향방을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당초 피고로 함께 지목됐던 스냅(스냅챗)과 바이트댄스(틱톡)는 첫 재판 직전 원고와 극적으로 합의하고 법정공방을 피했고요. 결국 메타와 구글만 남아 법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아마 이번 재판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가 직접 증인석에 서게 될 텐데요. 메타 측은 자사 제품이 원고의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할 거라고 밝혔죠. 또 구글 측은 “유튜브는 인스타그램·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플랫폼”이라며(소셜미디어가 아닌 ‘콘텐츠 배포 플랫폼’이란 주장), 함께 묶어서 취급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펼칠 예정입니다.중독적 설계 vs. 표현의 자유소셜미디어를 통한 따돌림과 언어폭력, 가짜뉴스 같은 각종 사회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죠. 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강력한 방패로 이런 이슈를 모두 방어해왔습니다. 바로 1996년 제정된 미국의 ‘통신법 제230조’인데요. 사용자(제3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기업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내용이죠.203조는 사실상 플랫폼 기업을 위한 면책특권이 됐습니다. 별별 이상한 게시물이 올라오고, 그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졌지만 플랫폼 기업은 법적으로 책임지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 KGM 소송은 그 빈틈을 파고들었습니다. 사용자의 ‘게시물 내용’이 아니라 기업의 ‘플랫폼 설계(Design)’ 자체가 정신건강 악화의 원인이라며 플랫폼 기업을 정조준한 거죠. 클릭하지 않아도 추천 영상이 계속 재생되는 자동재생, 스크롤을 내리면 새로운 콘텐츠가 끝없이 나오는 무한스크롤, 도파민을 자극하는 추천 알고리즘. 이런 설계방식이 모두 사용자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광고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플랫폼 기업의 전략이란 비판은 이전부터 많았죠.이 중 무한스크롤은 2006년 미국 프로그래머 아자 라스킨(Aza Raskin)이 발명한 기능인데요. 이는 사용자 경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짧은 영상을 계속 넘겨가며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적, 아마 한 번쯤 있을 거예요. 라스킨은 훗날 무한스크롤이 매일 약 20만명의 인생에 해당하는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고 추정하며 후회했습니다. “무한 스크롤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사용 편의성을 최적화하는 것이 사용자나 인류 전체에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단 점입니다.”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쟁점. 어쩌면 플랫폼 기업도 이걸 다 알면서도 고의로 청소년의 중독을 야기하는 유해한 제품을 설계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의 핵심 주장인데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법원에 제출한 증거자료가 이미 공개돼 있습니다. 주로 플랫폼 기업의 내부 문서·이메일·녹취록인데, 꽤 놀라운 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우리가 최적화해야 할 것 중 하나는 화학 수업 중 책상 밑에서 몰래 휴대폰을 보는 거예요 :)” (2015년 2월 메타 내부 이메일)“마크는 2017년 상반기 회사 최우선 과제를 10대 청소년으로 정했습니다.” (2016년 메타 내부 이메일)“세상에, 인스타그램은 진짜 마약이야!” “하하, 모든 소셜미디어가 다 그렇지. 우린 사실상 마약상이나 마찬가지야”(2020년 9월 메타 연구원간 메시지 대화)“결론: 자동재생은 수면 패턴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음.” (2018년 2월 유튜브 내부 문서)“어린이들을 구글 생태계에 편입시키면 평생에 걸쳐 브랜드 신뢰와 충성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2020년 11월 구글 내부 자료)“쇼츠는 10대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핵심 콘텐츠입니다. 10대 고객 맞춤형 콘텐츠 제작을 위해 핵심경험 전반에 걸쳐 10대 중심 접근 방식을 도입했습니다.”(2023년 2월 구글 내부 이메일)물론 이런 자료를 들이민다고 기업 측이 순순히 인정할리는 없죠. 메타 측은 이를 두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별된 인용문”이라고 반발하고 있고요. 플랫폼 설계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로 맞설 거라고 합니다. 마치 신문사가 어떤 기사를 지면에 실을지 결정하듯이, 플랫폼 기업 역시 추천 알고리즘이나 무한 스크롤 같은 디자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논리이죠. 인과관계가 너무 약한데?역시 플랫폼이 소셜미디어 중독을 조장 내지 방치하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고요? 나쁜 기업들을 혼내줘야 한다고요? 그런데 이 소송에선 또 다른 쟁점이 있습니다. 과연 소셜미디어 이용이 원고(KGM)의 정신건강을 악화시킨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부분이죠.소셜미디어 중독이 청소년의 우울·불안·불면 같은 정신건강과 관련 있다는 건 너무 당연하다고요? 물론 그런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긴 한데요. 놀랍게도 이를 부정하는 연구 결과도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지난해 OECD는 아동·청소년의 디지털기기 이용과 관련한 전 세계적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고서(‘디지털 시대 아이들의 삶은 어떨까요’)를 발간했는데요. 그 중 소셜미디어 관련한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습니다.“전 세계적 과학 문헌에 따르면 디지털 자원 사용, 스크린 시간과 아동·청소년의 행복 사이엔 단일하고 선형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는 디지털 기술 접근성이 정신건강 추세의 주요 원인이란 주장을 명확하게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연구 결과는 인과관계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는 상관관계 데이터에 기반합니다. 이러한 연관성은 종종 작고, 다른 개인적·가족적 상황과 유사한 수준입니다.”아니, 이게 무슨 상식에 어긋나는 소리냐고요? 일단 최근 호주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를 한번 보시죠. 청소년(4~12학년) 10만명을 3년간 추적 조사했는데요. 소셜미디어 사용량에 따라 청소년의 행복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한 결과 역U자형을 보였습니다. 즉, 소셜미디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도. 또 소셜미디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행복감이 낮아진 거죠.왜? 소셜미디어를 아예 이용하지 않는다는 건 사회적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있단 뜻이니까요. 결국 적당한 소셜미디어 사용이 청소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게 이 연구의 결론입니다. 사회적 연결이란 긍정적 측면이 중독의 위험성과 공존하는 거죠. 참고로 이 ‘역U자형’ 연관성은 이전 비슷한 연구에서도 한결같이 나왔던 결론입니다.그리고 설사 소셜미디어 이용과 청소년의 우울·불안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해도, 그걸 인과관계로 볼 순 없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앤드류 프르지빌스키 옥스퍼드대 교수의 유명한 연구(미국·영국의 청소년 30만명 조사, 2019년)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은 청소년 행복 변동의 최대 0.4%만 설명합니다. 프르지빌스키 교수는 이렇게 말했죠. “감자를 식단에 포함하는 것이 청소년의 행복에 대해 (디지털 기술과) 비슷한 (부정적인) 연관성을 보입니다. 시력교정 렌즈 착용은 (디지털 기술보다) 오히려 더 부정적인 연관성을 보였고요.”그래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사설을 통해 이렇게 비판했어요. “바로 이런 이유(인과관계 부족)로 이 소송(소셜미디어 소송)들은 법정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소송은 결국 큰돈을 벌려는 변호사들 외엔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을 겁니다.”어떤가요. 너무 실망스러운가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법원은 아직도 흡연과 폐암과의 인과관계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2심에서 담배회사 손을 들어줬는데요. 식습관이나 가족력 같은 다른 요인으로 발병했을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죠. 그만큼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법적으로 입증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그리고 돌이켜보면 미국에서도 담배 소송에서 원고 측이 승리하기까지 40년 넘게 걸렸습니다. 1954년부터 제기된 약 800건의 개인 소송에서 담배회사들은 모두 승리했었죠.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내부 고발자의 폭로(기업이 담배의 위험성을 숨기고 니코틴 수치를 조작했다는 내용)가 나왔고요. 46개 주정부의 집단소송 제기로 기업의 방어논리(‘흡연은 개인의 선택’)가 무너지면서, 결국 담배회사는 항복했습니다.이제 막 시작된 소셜미디어 소송도 앞으로 갈길이 멀겠죠. 어쩌면 소송을 제기한 개인은 백전백패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질 거고, 어쩌면 새로운 진실도 드러나겠죠. 그게 조금이나마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을 줄이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By.딥다이브지난해 12월 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금지했습니다. 이집트, 영국,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규제가 논의되고 있는데요.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상당히 뜨겁더군요. 올 한해 전 세계가 관심 가질 만한 이슈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미국에서 획기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19살 여성이 소셜미디어 기업을 상대로 자신의 정신건강 악화를 책임지라며 낸 소송이죠. 자동재생, 무한스크롤 같은 플랫폼의 설계가 소셜미디어 중독을 야기했다는 주장입니다. -지금까지 공개된 플랫폼 기업의 내부 자료는 다소 충격적입니다. “인스타그램은 마약이야” 같은 내부 대화 내용도 공개됐죠. 하지만 기업 측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맞설 예정입니다. -문제는 과학적으로 소셜미디어 이용과 정신건강 사이의 인과관계가 아직은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껏해야 미미한 연관성만 있다는 게 현재까지의 결론이죠. “변호사만 돈 벌게 하는 소송”이란 비판도 나오는데요. 이 역사적 소송이 돈 낭비, 시간 낭비가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이 기사는 1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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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라빚 1경2320조원 日, 총리는 선거용 ‘감세’ 카드…괜찮을까[딥다이브]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못지않게 주목하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바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이죠. 높은 지지율(78%)을 믿고 중의원 해산(1월 23일)과 조기 총선(2월 8일)이란 정치적 도박에 나선 다카이치 총리. 그가 선거 승리를 위한 필살기로 ‘소비세 감면’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입니다.갑작스러운 정책 변화에 채권시장은 거의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4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가 한때 4%대로 폭등했을 정도였죠. 왜 금융시장은 이렇게까지 화들짝 놀랐을까요. 오늘은 일본 소비세 감면과 나비효과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여야 한목소리로 식품 소비세 0%“식품 소비세율 제로는 ‘나 자신의 비원(悲願, 간절한 염원)’이기도 합니다.”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렇게 말했죠. 현재 8%인 식품 소비세율을 2년간 전액 감면하는 방안을 자민당의 총선 공약으로 삼겠다며 한 발언입니다.그동안 소비세 감면은 일본 야당의 전매특허 공약이었죠. 이와 달리, 자민당은 ‘소비세는 사회보장 지출의 중요한 재원’이라며 감세만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는데요. 이번 조기 총선 선언과 함께 다카이치 총리가 입장을 뒤바꾼 겁니다. 이제 여야 할 것 없이 일본 정치권 모두가 ‘소비세 감면’을 약속하죠.이런 입장 변화, 당연히 표 때문입니다. 요즘 일본인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단연 물가인데요.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30년 동안 잠잠했던 물가가 2022년을 기점으로 무섭게 뛰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식료품 가격이 물가 상승을 견인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195개 제조사가 2만개 넘는 식음료 품목 가격을 인상했고요. 평균 가격 인상률은 15%에 달했죠. 장 보러 가기 무섭다는 말이 나올 만합니다.그래서 식음료 제품(채소, 육류, 가공식품, 포장음식)에 8%가 붙는 소비세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공약은 소비자들에게 상당히 위안이 됩니다. 최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한 노인은 소비세가 감면된다면 그 돈으로 “평소 사지 않는 귤을 살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죠. 소소하지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올 거라 기대하는 건데요. 4인 가구는 식료품 소비세가 0이 되면 연간 평균 6만727엔(약 56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옵니다.문제는 그만큼 재정엔 구멍이 생긴다는 점이죠. 식료품 소비세를 제로화하면 연간 5조엔(46조원) 세수가 사라집니다. 물론 공약대로 ‘2년간 한시적’ 감세라면 그리 큰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일본에서 소비세 인상은 정치적 ‘오니몬(鬼門, 악령이 들어오는 입구)’으로 불립니다. 1970년대부터 소비세 도입 또는 인상을 시도한 정권은 줄줄이 선거에서 패했어요. 심지어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두 차례나 연기한 끝에 간신히 2019년 일반소비세를 8%에서 10%로 올릴 수 있었죠. 그런데 이걸 감면했다가 2년 뒤 원상복귀한다? 어떤 간 큰 정치인이 감히 그걸 하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시행되면 원래 세율로 되돌리긴 거의 불가능하다”(다이이치생명연구소 구마노 히데오 이코노미스트)라고 모든 전문가가 얘기하는 거죠.그런데 이 5조엔의 구멍을 메울 다른 세수 확보 방안은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상황. 오히려 다카이치 총리는 “과도한 긴축재정의 종식”과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을 약속했습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혹시 빚을 더 내겠다(국채 발행)는 얘기를 돌려 말한 걸까요? 일본 정부부채가 이미 1324조 엔, GDP의 240%인데, 여기서 더?채권시장엔 빨간불이 켜졌고요. 20일 일본 국채 수익률은 역대급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10년, 2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1999년 이후 2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요. 40년 만기 국채(2007년 처음 발행)는 사상 처음 4%를 넘어섰습니다. 시장이 일본 국채 가격 폭락에 베팅한 셈이었죠. 채권 시장이 일본의 부채 증가에 대한 경고음을 울린 겁니다.일본이 그리스 꼴 나지 않는 이유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5년 1분기 기준 47.2%. 사상 최고로 치솟아서 걱정스럽다는 기사가 많았는데요. 그런데 일본은 이 수치가 무려 240%(2024년 기준)입니다. 이탈리아(134.6%), 미국(119%), 프랑스(109.7%) 같은 빚 많기로 소문난 선진국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르죠. 거품 붕괴 이후 펼친 경기 부양책+초고령화로 인한 사회복지 지출 증가가 나은 결과입니다. 현재 일본 정부는 예산의 4분의 1을 빚 갚는 데 쓰고 있습니다.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지난해 5월 다카이치 총리의 전임자인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이렇게 말했죠. “일본의 재정 상황은 매우 열악하며, 그리스보다도 더 나쁩니다.” 2009년 재정 파탄에 빠졌을 당시 그리스 정부부채 비율이 130%이었으니, 틀린 얘기가 아니죠.그런데 이시바 총리의 이 얘기에 코웃음 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굳이 그리스를 거론한 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다거나 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건데요. 적어도 일본은 그럴 위험은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즉, 빚이 아무리 많아도 일본 정부가 그걸 못 갚는 일은 아마 생기지 않을 거예요.왜냐고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본은 국채 대부분을 엔화로 발행합니다. 달러나 유로화가 아니라요. 만약 엔화로 발행한 국채 만기가 돌아와서 상환해야 하는데, 정부가 갚을 돈이 없다? 정부가 일본은행을 동원해 엔화를 찍어내면 됩니다. 생각해 보면 1997년 대한민국이 국가 부도 위기에 빠졌던 건 단기로 달러 빚을 잔뜩 냈는데 외환보유고가 텅 비었기 때문이었잖아요. 그런 일은 일본엔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그리고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합니다. 2002년 일본 재무성은 국제 신용평가사에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죠. “일본과 미국 같은 선진국이 자국 통화로 발행한 국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은 디폴트에 빠질 위험도 없는데, 왜 굳이 힘들게 허리띠를 졸라매며 긴축 재정을 해야 하는 거죠?이게 바로 전형적인 소비세 감세론자들의 논리인데요. ‘부담스럽고 싫은 소비세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소비세가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을 심화시켰다. 소비세를 없애면 가처분소득이 늘고, 그만큼 소비가 증가해서 경기가 활성화될 거다’라는 식의 주장입니다.‘소비세 감세 일본 부활론’이란 책을 쓴 후지이 사토시 교토대 공대 교수 같은 이가 대표적인데요. 의외로 이 논리에 열광하는 일본인이 많습니다. 이들은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소비세가 필요하다는 재무성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소비세 폐지를 주장하죠.그래도 걱정스러운 시나리오이론적으로 보면, 일본 정부는 국채 디폴트 위험이 없고요. 아마도 엔화 표시 채권을 영원히 발행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일본 국채는 대부분(88%) 국내 투자자가 보유 중이고, 특히 46%는 일본은행이 사들였거든요. 만약 국채를 정 사줄 곳이 없다면, 일본은행이 돈을 찍어내서 국채를 사들이는 방법이 있습니다.아니 그럼, 부채비율 따윈 아예 잊고 계속 이렇게 세금 감면과 확장 재정에 나서도 되는 걸까요?그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런 일(단순히 돈을 찍어내서 국채를 사들이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금융시장이 눈치채는 순간, 엔화 가치가 추락할 테니까요. 디폴트는 없겠지만, 대신 통화위기가 발생할 겁니다. 환율이 치솟고, 에너지·식료품 같은 필수품을 포함한 수입 물가가 급등하겠죠. 해외에 투자해 둔 소수의 부자를 제외한 평범한 일본인들이 먹고살기는 한층 팍팍해질 겁니다. 일본이 가난해지는 거죠. 무엇보다 정부와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질 거고요.너무 극단적인가요? 다른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만약 빚이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부채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거죠. 이자를 깎거나, 만기를 연장하거나, 원금을 탕감해 버리는 식으로요.문제는 일본의 경우 이 부담을 지게 될 채권자 대부분이 일본 국민이란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쉬울 수도 있지만(국민이 희생을 감수해 줄 테니까), 동시에 그래서 더 고통스럽습니다. 외국인 투자자가 아니라 일본 국민이 국가를 믿고 모아둔 자산이 잘려 나가게 되니까요.물론 일본 정부는 이런 최악의 상황에 부닥치기 전에 펼칠 든든한 구명정이 있습니다. 정부가 보유한 막대한 금융자산이 그것이죠. 외화보유액만 1조3698억 달러가 있는 데다, 공적연금 적립금과 공기업 주식도 쌓여있습니다. 그래서 로빈 브룩스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런 자산을 매각해서 얻은 수익으로 과도한 부채를 상환하는 것”만이 일본이 재정건전성을 회복할 방법이라고 주장하는데요.하지만 배가 침몰하고 있지 않은 데, 왜 굳이 미리 구명정을 펼치겠어요?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발등의 불이 떨어지면 그때야 뒤늦게 움직이겠죠.다카이치의 감세 공약을 두고 일본경제신문은 사설을 통해 ‘소비세 감세 포퓰리즘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은 이미 그 길로 접어들었죠. 전 세계 금융시장은 앞으로 일본을 더 예의주시하게 될 겁니다. By.딥다이브1977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10%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1989년에야 소비세를 도입했죠. 그것도 처음엔 3%로 시작해 무려 3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했는데요. 일본의 소비세 인상 과정은 참 험난했지만, 인하되는 건 한순간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조기 총선을 선언하면서 ‘식품 소비세 제로’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2년간 한시적 감세라고 말하지만,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보는 사람은 없죠. 연간 5조엔의 세수 구멍이 생깁니다.-이 소식에 일본 국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채권시장이 요동쳤습니다. 이미 정부부채 비율이 GDP의 240%나 되는 일본의 재정 규율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걱정 때문이죠. -일본은 자국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적어도 디폴트 위험은 없는 나라입니다. 투자자 대부분이 일본인(또는 기관)이란 점도 안전한 이유로 꼽히죠. 하지만 재정위기 대신 통화위기가 발생해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인플레이션이 닥칠 위험은 있습니다. 세계 금융시장이 일본을 유심히 지켜보는 이유이죠.*이 기사는 1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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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 대신 AI 택했나? 스페이스X, 2200조 IPO 카운트다운[딥다이브]

    세계 최고 가치의 비상장기업이 역사상 최대 기업공개(IPO)에 조만간 나설까요. 요즘 글로벌 투자업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스페이스X 얘기죠.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올 하반기 IPO에 나설 거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데요.‘이건 대박이야. 투자해야 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잠깐만. 정말 그만한 가치 있는 거 맞아?’라는 신중론도 나옵니다. 어찌 됐든 현실화한다면 올해 열릴 올림픽·월드컵 못지않은 이벤트가 될 건 틀림없는 스페이스X IPO를 미리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머스크 생각이 바뀌었나?2002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 ‘재사용 가능한 로켓’으로 우주 진입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우주여행에 혁명을 일으킨 기업이죠. 저궤도에 1만개 넘는 위성을 쏘아 올린 ‘스타링크’를 통해 전 세계 위성통신 서비스 시장을 장악했고요. 현재로선 맞설 만한 경쟁자를 찾기 어려운 글로벌 최대 우주기업입니다.비상장기업인 스페이스X는 지난해 말 비상장 주식거래에서 무려 8000억 달러(약 1180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어요. 오픈AI(5000억 달러 기업가치)를 제치고 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비상장기업으로 올라섰죠.그리고 이 스페이스X가 올해 하반기 중 IPO를 추진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주주들에게 IPO 계획을 공유한 스페이스X는 현재 여러 은행과 면담을 진행 중이라는데요. 일론 머스크가 관련된 X 게시물에 ‘정확하다(Accurate)’라는 답글을 남기기도 했죠. 회사의 공식 발표는 아직 없지만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IPO에서 최대 1조5000억 달러(2217조원)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해서, 300억 달러(44조원)를 조달할 거라고 합니다. 만약 이대로 된다면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기록(290억 달러 조달)을 깨는 거죠.엄청난 규모의 계획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일론 머스크의 생각이 바뀌었단 점이죠. 머스크는 설립 초기부터 스페이스X를 비상장회사로 유지하겠다고 거듭 밝혀왔어요. 화성의 식민지화, 즉 ‘행성 간 이동’이라는 스페이스X의 사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는데요.그는 2013년 스페이스X 직원들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화성 수송시스템이 완성되기 전에 스페이스X가 IPO 하는 것을 우려합니다. 화성에 생명체를 정착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게 스페이스X의 근본적인 목표입니다. 만약 상장이 그 목표 달성을 저해한다면, 상장을 미뤄야 합니다.” 일단 상장을 하고 나면 장기 목표보단 단기 이윤과 주가 흐름에 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피하고 싶어 한 거죠.무엇보다 스페이스X는 당장 돈이 급한 상황은 아닙니다. 스페이스X는 예상 매출이 2025년 155억 달러(23조원)에서 2026년 220억~240억 달러(32조~34조원)로 가파르게 성장 중이고요. 공개된 수치는 없지만 이미 흑자를 기록 중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스타링크 가입자 수가 1년 만에 2배로(450만→900만명) 늘어나며, 성장세를 이끌고 있죠.그럼, 왜 머스크는 이 시점에 IPO에 관심 갖게 됐을까요. 이에 대한 회사 안팎의 설명은 이겁니다. AI(인공지능)의 부상으로 스페이스X의 계획이 일부 바뀌었다는 거죠.우주 데이터센터를 누가 만들까AI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러 국가와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금을 데이터센터 건설에 쏟아붓고 있죠. 그런데 그 많은 데이터센터가 쓸 전력은? 물은? 토지는? 인허가는? 지구상엔 제약이 너무나 많은데요.이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을 창의적 아이디어가 바로 ‘우주 데이터센터’입니다. 말 그대로 AI 칩을 탑재한 인공위성을 우주 궤도에 띄워서 데이터센터로 쓰는 거죠(토지 제로). 그럼 태양광패널을 통해 24시간 내내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고요(전기요금 제로). 이웃 주민들이 건설에 반대하고 나설 걱정도 없습니다(민원 제로). 또 위성의 그늘진 쪽에 방열판을 설치하면 칩에서 발생하는 열을 영하 250도의 우주 공간으로 방출할 수 있죠(물 이용 제로). 지상에서 데이터센터 설립을 허가받고, 건설하고, 전력 연결하는 데 몇 년이 드는 걸 생각하면 건설 기간도 절약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그리고 이 공상과학 같은 구상에 따라붙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현실적인 질문은 이거죠. 발사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경제성이 있을 정도로 싸게, 빨리, 많이 위성을 궤도에 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우주 데이터센터 사업엔 여러 스타트업뿐 아니라 구글과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오리진 같은 기업도 이미 뛰어들었는데요. 위성을 빨리 대량으로 쏘아 올릴 능력이 이미 입증된 기업은 사실상 전 세계에 한 곳밖에 없죠. 바로 스페이스X입니다.스페이스X는 이미 팰컨9으로 과거 ㎏당 6만5000달러에 달하던 저궤도 발사 비용을 1500달러(220만원) 이하로 낮춘 바 있고요. 지금은 팰컨9보다도 적재량이 6.5배 많은(150t) 초대형 로켓 스타십을 개발 중입니다. 이 스타십이 상용화된다면 발사 비용은 ㎏당 100달러까지 극적으로 떨어질 전망이죠. 스타십은 지난해까지 11차 시험비행을 했고, 올해 1분기 중 12차 시험비행을 앞두고 있는데요.일론 머스크는 지난해 11월 X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스타십은 연간 약 300GW, 어쩌면 500GW에 달하는 태양광 발전 AI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간’이란 거죠. 미국의 평균 전력 소비량이 약 500GW인데, 우주 AI는 2년마다 정보 처리량만으로도 이를 넘어섭니다.”머스크 특유의 과장 어법을 생각하면 300GW 같은 수치가 근거가 있는지는 솔직히 따져봐야 하겠지만요.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이겁니다. 스페이스X가 IPO로 방향을 튼 건 결국 AI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는 걸요.스페이스X 출신으로 UC버클리 우주과학연구소 운영 책임자인 아비 트리파티는 기술 전문 매체 아르스(Ars)와의 인터뷰에서 머스크가 스타링크 위성을 분산형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게 결정적 전환점이라고 말합니다. “오랫동안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던 IPO가 갑자기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순간이었어요. AI 경쟁의 핵심은 경쟁사보다 빠르게 자산을 축적하고 배포하는 데 있죠. IPO로 확보할 막대한 자금은 머스크의 목표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머스크는 이미 테슬라(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와 xAI(생성형 AI)를 통해 치열한 AI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스페이스X의 우주 데이터센터를 통해 AI 인프라 구축에서까지 앞서 나아가려는 겁니다. 화성으로 가기 전에 일단 지구의 AI부터 정복하겠단 뜻이죠.그래서 투자해도 되나요?AI와 우주, 두 핫한 주제의 결합이라니. 시장을 열광하는 분위기입니다. 아직 상장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해야 스페이스X에 투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죠. 그 결과 스페이스X에 일찌감치 투자해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예: 미래에셋증권) 주가가 뛰었고요. 스페이스X를 보유종목으로 두고 있는 해외 ETF(예: Destiny Tech100)가 주목받기도 했죠. 그럼 따져봅시다. 스페이스X, 투자할 만할까요?스페이스X가 우주산업, 특히 발사 분야에선 10년 이상 앞서 있는 선두 주자라는 점이야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요. 문제는 가치 평가가 적정하냐+도사리고 있는 리스크 요인은 무엇이냐는 점이겠죠.그런 점에서 IPO 전문가인 플로리다대 워링턴 경영대학의 제이 리터 교수가 기술 매체 기즈모도를 통해 지적한 점을 참고할 만합니다. 스페이스X의 2026년 예상 매출은 240억 달러, 목표로 하는 기업가치는 1조5000억 달러이죠. 주가매출비율(PSR, 시가총액÷매출)을 계산하면 62.5배입니다. 매출 1달러당 주가가 62.5달러라는 뜻인데요.리터 교수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PSR이 40배를 넘는 공모주는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1980~2021년 미국 상장 기업 중 연 매출이 1억 달러 이상이면서 PSR(공모가 기준)이 40을 넘는 기업은 단 13개뿐이었는데요. 이 기업을 공모가로 매수한 투자자의 첫 3년 투자 수익률은 시장 평균보다 38%나 낮았다고 하죠.그래서 그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회사가 매출과 이익을 빠르게 성장시켜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주가가 상장 첫날엔 공모가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지만, 장중 매수했다면 손실로 이어질 수 있죠. 스페이스X는 훌륭한 회사일 수 있지만, 훌륭한 회사라고 해서 반드시 주식 투자에 좋은 건 아닙니다.”사실 1조5000억 달러라는 목표 가치엔 일론 머스크의 야심 찬 계획-스타십 개발 성공, 스타링크 사업 확장, 우주 데이터센터 개척-이 모두 성공할 거란 가정이 담겨있죠. 하지만 지난해 스타십 시험비행은 5번 중 마지막 두 번만 성공했고요. 업그레이드된 V3 발사체의 시험비행은 아직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기대치를 충족하는 완벽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는 거죠.그리고 여전히 정말 머스크가 스페이스X IPO에 나설지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애초에 IPO를 망설였던 대로, 스페이스X가 증시 변동성에 휘둘리고 자신의 통제력이 줄어드는 걸 머스크가 원할 리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벤처 투자자 차마트 팔리하피티야는 최근 이렇게 추측합니다. “저는 스페이스X가 IPO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테슬라에 역합병될 거라고 보죠.”역시 빅이벤트답게 벌써부터 갖가지 예측이 나오는데요.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될지 한번 지켜보시죠. By.딥다이브기술기업의 AI 경쟁이 이제 우주까지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이 경쟁의 끝엔 도대체 뭐가 있을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올해 증시의 빅이벤트가 예고됐습니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스페이스X가 하반기쯤 IPO를 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현재 기업가치만 8000억 달러. 상장 시 목표 시총은 최대 1조5000억 달러가 될 거라는군요.-화성 가기 전까진 IPO는 없다던 일론 머스크의 생각을 바꾼 건 우주 데이터센터 건설 구상입니다. 인공위성에 AI칩을 달아서 태양광패널과 함께 궤도에 띄우면 전력 공급 걱정 없는 데이터센터가 되는 거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관건은 발사 비용. 스타십 V3 시험비행을 앞둔 스페이스X가 가장 앞서있음엔 틀림없습니다.-벌써 관련주 주가가 들썩거립니다. 하지만 1조5000억 달러이면 너무 비싸다는 지적도 나오죠. 무엇보다 일론 머스크가 변덕을 부릴 수 있단 추측도 나옵니다.  *이 기사는 1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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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트코인 ETF 성공 주역의 통찰,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딥다이브]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를 아시나요? 일반 주식계좌를 이용해 비트코인에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ETF인데요. 이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 증시에 처음 상장된 게 바로 2년 전인 2024년 1월 11일이었죠.비트코인 현물 ETF의 등장으로 가상자산 시장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됩니다. 개인뿐 아니라 기관투자자까지 끌어들이면서 가상자산이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거죠.여러 비트코인 현물 ETF 중에서도 시장을 평정한 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아이쉐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 인데요. 이 IBIT 출시의 주역인 케빈 탕(Kevin Tang)을 지난 14일 서울에서 만났습니다. 블랙록 출신 비트코인 ETF 전문가가 말하는 가상자산 시장의 전망을 확인해보시죠.*이 기사는 1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래리 핑크가 생각을 바꾼 이유-블랙록에서 10년 넘게 일하셨죠. 어떻게 가상자산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됐나요?“2016~2017년쯤 블랙록 리서치팀 동료를 통해 이더리움을 알게 됐는데, 당시 이더리움이 딱 2달러였던 때였죠(현재는 3300달러). 조금씩 사면서 연구하다가 ‘토끼굴’에 빠지고 말았어요. 이건 정말 엄청난 기술이 될 거란 확신이 생겼죠. 그러다 (2019년 말) 블랙록에서 크립토(가상자산) 팀이 꾸려질 때 지원했고, 창립 멤버 3명 중 하나가 됐어요. 지난 5년 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iShares Bitcoin Trust ETF, IBIT)와 이더리움 현물 ETF(iShares Ethereum Trust ETF, ETHA), 그리고 이더리움 기반 토큰화 펀드 ‘비들(BUIDL)’을 만들어 출시했습니다.”-블랙록 회장 래리 핑크는 과거 유명한 크립토 회의론자였잖아요. 그는 2017년엔 비트코인을 ‘돈세탁의 지표’라고도 불렀는데요.“맞아요. 그런데 최근 인터뷰에서 본인이 틀렸었다고 인정했어요. 공부가 많이 필요했다면서요. 냉정히 말해 지난 10년간 크립토 산업 자체가 비약적인 성숙과 진화를 거듭했어요. 비트코인 ETF 출시까지 오래 걸린 것도 2017~18년 당시에는 파트너사들이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에요. 2023~24년쯤에야 시스템 수준이 블랙록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할 만큼 진화했죠. 긴 여정이었고, 래리도 초기에 본인이 틀렸음을 인정한 거죠.”-2022년 11월 가상자산 거래소 FTX 파산사태가 있었죠. 그 하락장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확신을 가진 이유가 뭘까요?“블랙록도 FTX에 투자했었고 큰 손실을 봤죠. 그래도 저희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자산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이 있었어요. 이더리움은 그 위에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을 올릴 수 있는 인터넷 같은 기초 기술이 될 거라 봤고요. FTX 사태, 루나-테라 사건 같은 온갖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이건 산업 내의 ‘소음’일 뿐이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확신했죠.”-블랙록은 언제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최종 결정했나요?“2023년이었어요. 그해 말 신청서를 제출해, 2024년 1월에 승인을 받아 출시했죠.”-불과 2년 전이네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입장에선 미국 최초의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한다는 건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인데요. 어떻게 경영진을 설득했죠?“첫 번째는 고객들의 꾸준한 관심이 있었어요. 스캔들과 급격한 가격 변동 속에서도 정말 똑똑한 투자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배우고 싶어 했거든요. 궁극적으로 블랙록은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회사이니까요.그렇다고 해서 아무 ETF나 출시하진 않아요. 해당 자산이 안전하고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가치가 있는지 분석하죠. 저희는 가격 변동성뿐 아니라 비트코인 자체의 가치에 대해 깊이 연구했고요. 경영진도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이나 지정학적 불안정 속에서 금과 유사한 가치 저장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했어요.”비트코인 ETF, 어디까지 커질까-2024년 1월 IBIT는 출시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죠. 그렇게까지 잘 될 줄 예상했나요.“IBIT는 ‘역사상 가장 빠르게 자산규모(AUM) 1000억 달러를 달성한 ETF’가 됐죠. 사실 그 정도로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어요. 저희가 세웠던 가장 낙관적인 기대치마저 뛰어넘었죠. 내부적으로 1년 안에 운용 자산 200억 달러를 예상했는데, 정점에서 1000억 달러까지 갔으니까요. ETF라는 방식이 개인과 기관 모두에게 얼마나 강력하고 매력적인 도구인지 다시 한번 증명해준 사례입니다. 비트코인을 직접 코인거래소에서 살 수도 있지만, 많은 고객이 여러 이유로 ETF를 선택했으니까요.”-사람들이 코인거래소에서 직접 비트코인을 사는 대신 블랙록 ETF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요? 더 쉽고 안전해서?“정확히 그게 핵심입니다. 첫 번째는 안전성과 보안이죠. ‘IBIT’에 투자하면 블랙록의 운용 시스템을 이용해요. 마음 편하게 블랙록이라는 브랜드와 회사를 믿고 맡기려는 투자자들이 많았죠.두 번째는 유통망이에요. ETF는 대부분 증권사 플랫폼에서 거래가 가능하잖아요. 주식·채권과 함께 비트코인까지 포트폴리오에 한꺼번에 담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이 많은데요. 빗썸이나 업비트에 코인 따로, 삼성증권에 주식 따로 넣어두는 것보다 ETF로 한꺼번에 관리하는 게 훨씬 편하죠. 마지막으로 수수료입니다. ETF 수수료가 일반 거래소에서 현물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경우가 많아요.”-규제기관은 어떻게 설득했나요?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왜 결국 승인을 내줬을까요.“그들의 임무는 결국 투자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거잖아요. 규제기관은 비트코인 시장이 조작될까봐, 너무 작거나 너무 변동성이 커서 ETF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봐 걱정했어요. 저희는 비트코인 시장이 ETF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고, 충분히 깊고 유동적인 시장이라는 걸 입증하는 분석자료를 보여줬죠.그리고 SEC도 ETF가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안전한 방법이라는 걸 이해했어요. 만약 비트코인 ETF가 진작 나왔다면, 많은 미국인이 FTX라는 해외 플랫폼(본사는 바하마)에서 그렇게 큰돈을 잃지 않았을 거예요. 안전하고 편리한 국내 옵션이 있다면, 위험한 곳으로 눈을 돌릴 이유가 없으니까요.”-최근 미국 대형은행 모건스탠리가 비트코인 ETF 출시를 신청했더군요. 전통 은행도 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는데요. 이제 크립토가 주류 자산에 편입됐다고 평가해도 될까요?“아직은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20%가 어떤 형태로든 가상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데요. 하지만 ‘ETF의 라이프사이클’로 보면 갈 길이 멀어요. ETF의 주요 유통 채널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피델리티·슈왑 등에서 직접 거래하는 개인 투자자, 두 번째는 프라이빗 뱅크(PB) 같은 자산 관리 전문가들, 세 번째는 기관 투자자이죠.개인 투자자 채널은 이미 상당히 성숙했는데요. 두 번째(자산관리)와 세 번째(기관) 채널은 이제 막 시작 단계예요. 아직 많은 자산 관리 플랫폼에서 비트코인 ETF를 완전히 승인하지 않았죠. 기관 투자자들도 실제로 크립토를 도입한 건 5~10%도 안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낙관적이에요. 두 번째, 세 번째 채널에서 성장할 여지가 엄청나게 많으니까요.”요즘 코인시장이 답답하다고?-한국 정부는 올해 안에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에요. 한국 가상자산 시장도 비트코인 ETF 출시 이후 많이 달라질까요.“네, IBIT가 성공한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ETF는 더 안전하고 편리하며 수수료도 저렴할 수 있죠. 특히 자산관리 서비스가 내 비트코인을 대신 관리해주길 원한다면, 업비트 같은 거래소 대신 ETF를 선택할 겁니다.무엇보다 ‘포트폴리오 통합’이 중요해요. 한국 금융회사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하면, 한국의 대형 자문 비즈니스에서도 이 ETF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가 훨씬 쉬워질 겁니다. 지금은 업비트 같은 거래소와 기존 자산 관리 플랫폼 간의 연동이 쉽지 않거든요.”-지난해 모든 자산 가격이 다 뛰었는데 가상자산만 홀로 부진했어요. 올해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사장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비트코인은 상당히 잘 해왔어요. 지금은 좀 답답하겠지만 3년 전 투자자들에게 비트코인 가격이 9만 4000달러가 될 거라고 얘기했다면 다들 엄청 기뻐했을 겁니다. 문제는 알트코인이죠. 이전 사이클에선 비트코인이 오른 다음 이더리움, 그 다음 소형 알트코인이 오르는 흐름이 있었는데요. 이번엔 그런 흐름이 나오지 않아서 투자자들이 답답해하는 것 같아요.시장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전 사이클에서는 비트코인에 투자하려면 온체인이나 중앙화된 거래소로 와야 했어요. 하지만 이번 사이클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등장하면서 기존 증권 플랫폼에서도 비트코인 투자가 쉬워졌죠. 그러다 보니 유동성이 알트코인이 아닌 비트코인으로만 몰린 겁니다. 두 번째로 알트코인이 너무 많아졌어요. 시장에 넘쳐나다 보니 유동성이 분산됐고, 알트코인들이 차별성을 갖기가 어려워졌습니다.올해 시장은 변동성이 클 것 같아요. 핵심은 유동성입니다. 금리 인하가 시작되고 연준이 양적 완화 움직임을 보이면 비트코인은 잘 될 거라 예상합니다. 반대로 유동성이 회수되고 통화 정책이 긴축으로 돌아선다면 비트코인엔 좋지 않겠죠.”-미국 SEC가 이더리움 스테이킹(Staking) ETF 출시를 조만간 승인할 것인지에도 관심이 많더라고요. 스테이킹 ETF는 지금의 이더리움 현물 ETF와는 차이가 있는 거죠?“일종의 ‘배당금’ 같은 개념이 있는 거죠. 저는 SEC가 곧 이더리움 ETF의 스테이킹 기능을 승인할 거라고 믿어요. 이건 투자자들에겐 엄청난 호재가 될 거예요. 지금까지 이더리움 현물 ETF의 가장 큰 단점이 스테이킹을 통한 2~3%의 추가 수익 기회를 놓치는 거였거든요.” -비트코인 ETF 시장은 궁극적으로 얼마나 더 커질 수 있을까요?“대형 원자재 시장은 ETF 규모가 전체 시가총액의 5~7% 수준까지 성장하거든요. 비트코인 ETF도 그 정도까지는 충분히 성장할 거고, 더 커질 잠재력도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 투자보다는 ETF를 선호하는 자산 관리사나 기관들이 많아질 겁니다.다만 전체 시총의 7~8%를 넘기긴 힘들 거예요. 왜냐하면 비트코인의 본질적인 장점 중 하나가 ‘자기 수탁(Self-custody)’이 가능하다는 점이거든요. ETF가 아무리 편리해도 비트코인을 진정으로 믿는 투자자라면, 제삼자에게 자산을 맡기기보다 직접 보유하는 방식을 택할 겁니다. 비트코인은 진정으로 탈중앙화된 가치 저장 수단이니까요. ”-글로벌 시총을 찾아보니 비트코인이 현재 8위이더군요. 아마존(7위)보단 낮지만 TSMC와 메타보다는 크더라고요. 이렇게 커진 데는 ETF 출시 영향도 있겠죠?“맞습니다. 비트코인 ETF는 이번 사이클에서 비트코인 대중화의 빗장을 연 아주 결정적인 사건이었어요. 시가총액과 가격 상승에 엄청난 순풍이 되었죠. 특히 ‘IBIT 옵션’ 거래가 활성화된 게 정말 큽니다. 비트코인과 IBIT를 둘러싼 옵션 거래량이 어마어마한데, 이게 다시 ETF의 채택과 유동성을 끌어올리는 ‘플라이휠’ 효과를 내고 있어요.”-이더리움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면, 이더리움은 실생활 유용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는데요. “저는 이더리움의 열성적인 팬이에요. 하지만 블랙록에서 지켜본 바로는, 비트코인의 서사가 훨씬 깔끔하고 명확하죠. 크립토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투자 논리가 훨씬 더 강력하게 다가가거든요. 그래서 비트코인이 유입 자금이나 가격 면에서 이더리움보다 훨씬 앞서 나간 거죠.두 번째로는 이더리움을 둘러싼 ‘소음’이 너무 많아요. 리더십 문제나 수많은 경쟁자의 등장 같은 것들이요. 비트코인은 마땅한 경쟁자가 없지만, 이더리움은 정말 많거든요. 그래서 투자자들이 확신을 갖기가 더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더리움에 대해 여전히 매우 낙관적입니다. 가장 탈중앙화되고 안전한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s) 플랫폼이니까요. 결국 대형 기관들이나 거대 자본은 가장 안전하고 탈중앙화된 이더리움 생태계로 모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초보자에 맞는 가상자산 투자비율은?-지난해 블랙록을 떠나서, ‘헬로 트레이드(Hello Trade)’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하셨죠.“블랙록에서 크립토 엔지니어링 담당이었던 공동 창업자와 같이 나왔어요. 저희는 크립토 시장의 다음 진화 단계가 원자재·주식·채권 같은 ‘전통 자산의 온체인화’라고 믿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24시간 내내 거래하고, 상호 운용성을 확보하고, 디파이(DeFi)와 연결되는 혜택을 누리는 거죠.그래서 ‘헬로 트레이드’를 만들고 있어요. 전 세계 인터넷이 연결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24시간 내내 주식에 투자하고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죠. 토큰화된 현물 주식부터 퍼프(Perps, 무기한 선물) 같은 파생상품까지 다룹니다. ‘웹 3.0 버전의 로빈후드(‘금융 민주화’를 표방한 미국 온라인 주식 거래 플랫폼)’라고나 할까요. 올해 3월 출시를 목표로 합니다.”-한국에는 미래 고객들을 만나러 온 건가요?“네, 하지만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한국 분들에게 출시 첫날부터 서비스를 바로 제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거든요. 한국 법을 준수하면서 한국 개인 투자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방법이 있는지 법무팀과 꼼꼼히 따져보고 있습니다.”-언젠가는 로빈후드보다 더 커질 수도 있으려나요?“(웃음) 작게 시작했지만 기대는 큽니다. 많은 분이 중앙화 거래소(CEX)의 높은 수수료나 불투명성, 자산 동결 문제 등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어요. 내 자산에 대해 온전한 권한을 갖는 ‘자기 수탁(Self-custody)’ 트렌드는 앞으로 더 강력해질 겁니다.”-본인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선 가장자산 비중이 얼마나 되나요?“20% 정도 됩니다. 좀 높죠? 아무래도 제가 크립토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요. (웃음) 나머지 포트폴리오는 주식, 채권, 원자재를 섞어서 가지고 있어요. 최근엔 금과 은 비중도 꽤 늘렸고요. 저는 비트코인·이더리움 현물과 크립토 관련 주식을 다 합쳐서 20%이지만, 보통 이제 막 입문하시는 분들에게는 5% 정도만 권해 드립니다.”-한국 가상자산 시장은 어떻게 보세요? 얼마 전만 해도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이라고 했는데, 수익률이 예전만 못하다 보니 관심이 많이 식었는데요.“한국분들은 기술에 정말 능하잖아요. 바로 그 점 때문에 한국인이 블록체인 기술에 매료되는 것 같아요. 저는 결국 가격이 회복되면 한국 투자자 관심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봅니다. 마치 인공지능(AI)처럼 크립토 기술의 잠재력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거든요. 이번에 한국의 패밀리 오피스나 기관 투자자들을 만났는데, 다들 이 시장을 장기적으로 보고 있더라고요. 규제가 정비되면 시장은 더 크게 열리겠죠. 한국 정부가 스테이블 코인을 검토 중인 걸로 아는데, 5~10년 뒤 한국 크립토 산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 있을 겁니다.” By.딥다이브<용어설명>토큰화 펀드=현실 세계의 자산(미국 국채, 현금, 환매조건부채권 등)을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거래할 수 있는 ‘토큰’ 형태로 만든 펀드. 블랙록은 ‘모든 자산은 결국 토큰화될 것’이란 비전에 따라 이더리움 기반 토큰화 펀드인 ‘비들(BUIDL)’을 출시했다.자기 수탁(Self-Custody)=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기관에 자산을 맡기지 않고, 사용자 본인이 자산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 가상자산의 경우 자신이 직접 키를 관리하는 디지털 지갑을 이용해 자기 수탁을 할 수 있다.디파이(DeFi)=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금융회사를 끼지 않고도 인터넷만 열결되면 누구나 예금, 대출, 투자, 보험 같은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스테이킹(Staking)=보유한 가상자산을 블록체인에 예치하고, 그 대가로 추가 코인을 보상받는 것. 은행 예금 이자와 비슷한 개념이다.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s)=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 작동하는 자동화된 계약 시스템. 미리 정해둔 조건이 충족되면, 사람이나 중개인의 개입 없이 계약 내용이 자동으로 실행된다.중앙화 거래소(CEX)=업비트, 빗썸처럼 기업이나 기관이 운영하는 중앙 집중식 플랫폼. 제3자 없이 사용자가 직접 거래하는 탈중앙화 거래소(DEX)와 대비되는 개념이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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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산 위기에서 주가 14배 신화로…롤스로이스의 반전 질주[딥다이브]

    1300%. 3년 주가 상승률이 엔비디아(1166%)보다도 높은 120년 역사의 제조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 롤스로이스이죠. 비싼 차 롤스로이스가 그렇게나 잘 팔리냐고요? 아니, 이 롤스로이스 기업은 자동차 안 만든 지 꽤 됐고요. 대신 항공· 방산·전력·원자력 같은 지금 가장 잘나가는 분야의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파산 위기에서 벗어나 질주하는 롤스로이스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침몰하던 영국 제조업의 자존심대문자 R 두 개가 겹친 고풍스러운 로고. 최소 가격이 한 대에 5억원이 넘는, 궁극의 럭셔리카 롤스로이스의 상징입니다.그런데 이 자동차 브랜드는 독일 BMW 그룹 소유가 된 지 오랩니다. 1971년 경영난에 처한 롤스로이스를 국유화했던 영국 정부가 이후 자동차 부문을 떼어내 팔았기 때문이죠. 럭셔리카와 똑같은 RR로고를 쓰는 기업인 롤스로이스 홀딩스. 그 핵심사업은 예나 지금이나 항공기용 엔진입니다. 에어버스 A350, 보잉 787 드림라이너 등에 롤스로이스 엔진이 들어가죠.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에 이은 세계 2위 항공기 엔진 제조사인데요.기술력에선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영국 제조업의 자존심’ 같은 기업이었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고질적인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돈을 너무 못 벌고, 빚이 너무 많았죠. 그 원인은 복합적인데요.우선 심각한 관료주의가 큰 문제였습니다. 2015년 FT 기사에 따르면 ‘부품 도면을 조금만 수정하려고 해도 6개월이 걸리고 80명의 서명이 필요’할 정도였다고 하죠. 복잡한 조직구조, 비대한 중간관리층으로 인해 의사결정 속도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습니다.비용 낭비도 심각했어요.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2018년 당시 인사 최고 책임자는 투자자들에게 ‘프랑스 남부에 회사 간판을 하나 설치하기 위해 영국 본사 직원 세 명이 비행기를 타고 갔다’고 털어놨죠. 현지 업체에 시키면 될 일을 말입니다.또 롤스로이스는 항공 엔진 자체는 매우 싸게, 손해를 감수하면서 공급하는 대신, 이후 수십 년 동안 유지보수 서비스인 ‘토탈 케어’를 팔아서 돈을 버는 구조에요. 이때 항공사는 ‘엔진이 비행한 시간’에 비례해 서비스 이용료를 내게 됩니다. 엔진이 지상에 머무는 시간이 짧고, 오랫동안 공중에 떠 있을수록 롤스로이스가 버는 돈이 늘어나는 거죠.그러다 보니 리스크가 있는데요. 만약 엔진에 문제가 생기거나 해서 운항을 못 하면, 매출은 곤두박질치게 되는 겁니다. 2016년 보잉 787에 장착된 롤스로이스 엔진에서 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죠. 운항이 제한됐고, 이로 인해 롤스로이스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됩니다.롤스로이스 경영진은 조직개편, 인력 구조조정, 비용 절감을 통해 어떻게든 기업의 체질을 바꿔보려 애를 썼는데요. 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초대형 폭탄이 떨어집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닥친 거죠.느슨한 조직문화를 뒤바꾼 새 CEO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롤스로이스는 진짜 망할 뻔했습니다. 엔진 비행시간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현금이 고갈됐죠. 3조원 넘는 긴급 유상증자 덕분에 간신히 파산은 막았는데요. 주가는 30펜스(0.3파운드)대까지 급락하고 신용등급은 투기등급으로 추락했습니다.경영 위기가 이어지던 2023년 1월. 영국 정유회사 BP 임원 출신인 투판 에르긴빌직이 새 CEO로 취임합니다. 튀르키예·영국 이중국적자인 그는 ‘초식성’인 롤스로이스 문화와 대비되는 공격적인 추진력을 가진 인물이었죠.그는 취임하자마자 4만2000명 전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롤스로이스는 불타는 플랫폼이다.” 또 “모든 주요 경쟁사보다 실적이 저조”하고 “모든 투자가 가치를 파괴”하며 “엄청나게 관리되지 않은 회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죠.그의 메시지는 파이낸셜타임스 1면에 기사화됐을 정도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이 2011년 스티븐 엘롭 전 노키아 CEO가 했던 같은 발언()을 떠올렸죠. 노키아의 경우엔 그 발언이 휴대폰 사업 몰락의 시발점이 됐었기 때문에, 왠지 불길해하는 이들도 많았는데요.훗날 에르긴빌직 CEO는 그 메시지의 의도가 “직원들에게 회사의 현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거울을 비춰준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직원 사기를 꺾으려는 게 아니라 ‘자, 똑바로 봐. 이제 달라져야 해’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주려 했다는 거죠.이렇게까지 충격 발언을 했으면, 뭔가 해결책을 내놔야 하잖아요. 흔히 외부에서 CEO가 새로 오면 컨설턴트들을 대거 동원해서 새 전략을 짜곤 하는데요. 에르긴빌직 CEO는 그걸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약 500명의 내부 직원과 30개의 워크숍을 열고 브레인스토밍을 했죠. 자기 부서의 전략을 직원들이 스스로 짜게 만든 겁니다.그는 지난해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결정을 내리는 건 여러분입니다. 전기 사업(전기수직이착륙기)에서 철수하는 결정조차도, 전기 부문 책임자가 회의실 앉아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이었죠. 이렇게 하면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요. 첫째, 전략 수립 과정에서 전략적 실행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둘째, 공감대가 즉각적으로 생겨나죠.”그는 이렇게 롤스로이스의 ‘17개 전략 목표’를 정했고요. 그 성과 지표를 CEO가 직접 깐깐하게 체크합니다. 느슨할 정도로 사업부별 자율성을 존중하던 조직에 엄격한 규율이 생긴 거죠.“수익성 없는 모든 것에서 철수”에르긴빌직 CEO는 시장점유율 대신 철저히 수익성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이를 위해 과감한 행보에 나섰죠. “수익성 없는 모든 것”에서 철수하겠다면서, 회사에 손실을 끼치는 오래전 맺은 항공 엔진 서비스 계약에 대한 재협상에 나선 겁니다. 그동안의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가격을 대폭 높여 받겠다고 한 거죠.갑작스러운 가격 인상 통보를 고객사가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죠. 재협상 과정은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에미레이트항공과 타이항공 등이 ‘롤스로이스 엔진에 결함이 있다’면서 공개 저격에 나섰을 정도였죠. 하지만 에르긴빌직 CEO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재협상을 밀어붙였고요. 그 결과, 불가능해 보였던 계약 수정이 실제로 이뤄집니다.2023년 11월 롤스로이스는 중장기 경영계획을 발표했는데요. 2027년까지 영업이익을 2022년의 네 배인 28억 파운드로 늘리고, 2.5%에 불과했던 민간항공부문 영업이익률을 17%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었죠. 전례 없는 과감하고 야심 찬 계획에 시장은 환호했습니다. 롤스로이스 주가는 2023년 한 해 동안 220% 급등했어요. 유럽 증시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죠.그리고 2년여가 지난 지금. 롤스로이스 실적은 어떨까요. 회사가 전망한 2025년 연간 영업이익은 32억 파운드이고요. 민간항공 부문 영업이익률(2025년 상반기 기준)은 24.9%에 달합니다. 2027년 달성하려던 목표를 이미 한참 초과해 버린 거죠.특히 주가는 3년 만에 14배로 올랐습니다. 2022년 말 1파운드도 채 되지 않았던(2022년 12월 30일 93펜스) 주가가 이제 13파운드를 넘어섰죠. 전 세계 언론과 투자 업계에서 ‘기적적인 회생’, ‘놀라운 반전’이라는 찬사가 쏟아집니다.데이터센터, SMR이 성장동력코로나 이후 항공산업이 빠르게 살아났으니, 그저 운이 좋았던 거 아니야?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이기도 하고요.하지만 롤스로이스 주가가 이렇게까지 고공행진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높아진 수익성과 안정된 현금흐름 덕분에 첨단 미래산업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게 된 거죠.롤스로이스는 전력 생산용 디젤엔진을 생산하는데요. 주로 선박용으로 팔렸던 디젤엔진에 새로운 수요처가 생겼습니다. 바로 데이터센터의 비상전력 시스템이죠.최근 AI 기술 발전에 대응해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이 데이터센터용 엔진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요. 롤스로이스는 발 빠르게 미국 현지 공장을 확장하고 나섰습니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데이터센터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는 거죠.또 AI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자력 발전이 다시 뜨고 있다, 이런 얘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원전 르네상스의 새로운 주역으로 각광받는 신기술이 바로 소형모듈형원자로, SMR이죠. 그런데 이 SMR의 선두 주자로 떠오르는 기업이 바로 롤스로이스입니다.롤스로이스는 영국 해군의 핵잠수함 수십 척에 들어간 원자로를 설계, 제조한 기업인데요. 이 기술을 활용해 SMR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지난해 영국 정부는 SMR 3기 건설 사업자로 롤스로이스를 최종 선정했고요. 체코에서도 SMR 6기를 수주했죠.에르긴빌직 CEO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영국 시가총액 4위인 롤스로이스가 SMR 사업으로 시총 1위로 도약할 잠재력이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전 세계 어느 민간 기업도 우리만큼의 핵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세계 시장을 선도하지 못한다면, 뭔가 잘못된 거예요.”물론 SMR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상용화된 적 없는 신기술이라 성공을 누구도 장담할 순 없긴 하지만요. 최근 투자은행 UBS는 롤스로이스 목표주가를 16.25파운드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장기적인 반등 가능성이 있다”는 낙관적인 평가와 함께 말이죠.만약 롤스로이스 주가가 더 오른다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건 바로 에르긴빌직 CEO가 될 겁니다. 그가 롤스로이스 CEO가 됐을 때 주변 사람들은 ‘지능검사 좀 받아보라’고 농담했다고 해요. 사모펀드 업계에서 한창 돈 잘 벌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왜 굳이 망해가는 회사 CEO를 맡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거죠.에르긴빌직은 CEO로 취임할 때 주식 830만주를 입사 보너스로 확보했어요. 이게 당시 기준 주가(91펜스)로는 150억원(755만 파운드)어치였는데요. 현재 주가로 환산하면 무려 2100억원(1억750만 파운드)어치로 불어났습니다. 이 주식 보상은 아직은 현금화할 수 없고, 2027년과 2028년에 나눠서 지급된다는군요.에르긴빌직 CEO의 과감한 베팅이 성공한 셈인데요. 그는 당시 롤스로이스 CEO직이란 위험한 선택을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롤스로이스는 훌륭한 인재와 위대한 역사, 그리고 상징적인 브랜드를 가진 훌륭한 회사입니다. 인재 유치에 최적의 환경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온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롤스로이스 같은 회사를 변화시키는 것은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으니까요.”오래된 제조기업의 놀라운 부활 사례, 롤스로이스의 앞으로의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By.딥다이브몇 년에 한 번씩 구조조정을 반복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 없는 구제불능 기업. 2023년 이전까지 롤스로이스란 기업의 이미지는 이랬습니다. 투판 에르긴빌직 CEO가 이끄는 이 변혁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오래된 기업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120년 역사의 제조기업 롤스로이스가 3년 동안 1300% 주가 상승률이라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줬습니다. 코로나로 파산 직전에 몰렸던 롤스로이스의 변혁을 이끈 인물은 2023년 취임한 투판 에르긴빌직 CEO입니다.-그는 공격적인 추진력을 발휘해, 느슨한 조직을 개혁하고 수익성 낮은 계약을 재협상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급등했고, 2027년 목표를 2년 앞서 달성했죠. 시장은 ‘놀라운 반전’이라며 환호합니다.-롤스로이스는 전통적인 항공엔진 사업을 넘어서 이제 데이터센터 비상전력 시스템과 소형모듈형원자로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CEO가 “영국 시총 1위의 잠재력이 있다”고 자신할 정도이죠. *이 기사는 1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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