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란

한애란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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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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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5~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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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이 최고라던 차세대 태양전지, 사우디·중국에 밀리기 시작했다[딥다이브]

    한국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분야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메모리 반도체, OLED, 이차전지? 이것도 빼놓지 말아 주세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이름이 너무 어렵다면 이렇게 불러도 됩니다. ‘차세대 태양전지’.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한계를 뛰어넘을 미래 기술이죠.한국이 꽤 오랫동안 기술을 리드해온 이 분야에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후발주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불과 1~2년 사이에 놀라운 속도로 치고 올라와 버린 겁니다. 이러다 기술 주도권을 놓칠까 걱정이라는데요. 태양전지의 미래와 기술 주도권 경쟁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마의 30%’ 벽 깬다세계적인 테크 미디어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해마다 가장 주목할 10대 미래기술을 선정합니다. 올해 초에도 10가지를 발표했는데요. 인공지능(AI), 애플 비전프로(VR 헤드셋), 체중감량 약물(위고비)처럼 가장 핫한 기술과 함께 이름을 올린 게 이겁니다. ‘초고효율 태양전지’. 기존 태양전지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종의 슈퍼 태양전지라 할 수 있죠.여기서 잠깐. 지금 우리가 쓰는 태양전지는 광활성층(햇빛을 받아 전력을 생산하는 층)이 실리콘인 것 아시죠. 실리콘 태양전지는 1950년대 미국에서 처음 개발돼, 한때는 유럽·일본을 거쳐 한국에서도 꽤 잘 만들곤 했는데요. 지금은 90% 이상이 중국산입니다. 치킨게임을 거쳐 중국이 완전히 시장을 장악해버렸죠.이 실리콘 태양전지엔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광변환효율이 최고 29.4%까지밖에 나올 수 없죠. 전지에 닿는 햇빛양이 100이면, 그중 29.4까지만 전기로 변환할 수 있단 뜻인데요. 이미 효율이 26%, 27%짜리 태양전지가 나오고 있거든요. 그 말인즉슨 이제 곧 한계에 다다른다는 거죠.효율이 높으면 당연히 더 작은 면적의 태양전지로 더 많은 전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비용도 줄이고 설치공간도 아낄 수 있습니다. 효율 30%, 40% 이상의 태양전지를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그 방법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올해의 10대 미래기술로 꼽힌 초고효율 태양전지가 바로 그것이죠.어떤 거냐고요? 구조는 간단합니다. 광활성층 두 가지를 겹쳐 쓰는 거죠. 실리콘 위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얹어 올리는 겁니다. 그러면 한계로 여겨졌던 ‘마의 30%’ 벽을 얼마든지 넘을 수 있습니다. 아마 40%까지도(이론 한계 효율 44%).얼마나 유망한 기술인지 감이 오시죠. 그런데 한가지 큰 걸림돌이 있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라는 이 신소재의 취약점이 있습니다. 수분과 열에 약해요. 태양전지는 비와 눈도 오는 야외에 설치돼야 하는데, 내구성이 떨어지면 쓸 수가 없겠죠. 그래서 보호층을 만들어서 내구성을 높이는 기술 개발이 진행 중이고요. 동시에 전지의 효율을 더 끌어올리려는 연구도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이 있죠.한국이 기술 선도국‘페로브스카이트로 태양전지를 만들어보자’라며 연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스위스였고요. 2009년 일본 연구진이 실제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은 그보다 좀 늦게 이 분야에 뛰어들었는데요.우리가 발견은 좀 늦어도 제조 기술은 탁월하지 않습니까. 페로브스카이트는 여러 가지를 섞어서 만들어야 하는데 그 최적의 제조방법을 2014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만들어냅니다. 태양전지를 만들려면 필름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얇게 입혀야 하는데요. 아주 치밀하고 균일하게 박막을 만들어야만 높은 효율을 낼 수 있거든요. 바로 그 레서피를 찾아낸 거죠.그 결과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에서 한국이 신기록을 쓰기 시작합니다. 최고 효율 기록을 계속 갈아치운 거죠. 국제 공인을 거친 태양전지 최고 효율은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 차트에 기록되는데요. 한국화학연구원(KRICT)이나 울산과학기술원(UNIST) 같은 한국 기관이 지난 10년간 상당히 자주 등장합니다. 발표 시점 기준으로 세계 최고 기록을 세웠단 뜻이죠.그래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에선 한국이 여전히 기술력에서 세계 선두권이긴 한데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실리콘 없이 페로브스카이트만으로 만든 태양전지에서만 앞서 나가고 있다는 거죠. 물론 그것도 참 대단하긴 한데요. 페로브스카이트만으로 만든 태양전지는 현재 최고 효율이 26% 정도이거든요. 실리콘 태양전지와 맞먹긴 하지만 ‘초고효율’까진 아니죠. 물론 앞으로 더 높아지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한참 더 필요한데요.결국 단기간 안에 ‘슈퍼 태양전지’로 가려면 앞에서 설명한 대로 페로브스카이트를 실리콘 위에 쌓아 올려야 합니다. 이걸 ‘페로브스카이트/실리콘 탠덤 태양전지’, 줄여서 ‘탠덤 태양전지’라고 흔히 부르죠.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말하는 초고효율 태양전지가 바로 이겁니다. 다시 말해 2024년 지금 시점엔 ‘탠덤 태양전지’가 단연 대세입니다.실리콘 태양전지야 이미 많으니까, 일단 우리가 페로브스카이트만 잘 만들면 실리콘 위에 올리는 거야 간단하지 않냐고요? 그럴 줄로 알았죠.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그렇게 마음 놓고 있을 수가 없게 됐습니다. 더 서둘러야 합니다!무서운 사우디와 중국2023년은 차세대 태양전지 분야에 대격변이 일어난 해입니다. 그 중심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있죠. 사실 사우디와 중국은 이전엔 이 분야에서 존재감이 없던 국가들인데요.사우디아라비아가 태양광 발전에 진심인 것 아시나요. 사우디엔 석유만 많은 게 아니죠. 일 년 내내 쨍쨍 내리쬐는 햇빛도 가진 나라인데요. 게다가 남아도는 땅(사막)도 많으니, 태양광 발전에 딱입니다. ‘포스트 석유시대’를 준비 중인 사우디는 태양광 발전을 대대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죠.사우디는 차세대 태양전지 쪽을 키우기 위해 유럽 과학자를 스카우트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데요. 그 결과 사우디의 KAUST(킹압둘라과학기술대)가 태양전지 연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합니다. 2022년까지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을 결합한 탠덤 태양전지의 최고효율기록이 독일의 HZB(헬름홀츠센터 베를린 연구소)가 세운 32.5%였는데요(참고로 한국의 탠덤 태양전지 효율은 아직 29.9% 수준). KAUST가 2023년 들어 33% 넘는 신기록을 내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6월엔 33.7%를 기록한 겁니다. 업계가 깜짝 놀랐죠.그런데 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중국의 거대 태양광 기업 론지솔라가 갑자기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겁니다. 론지솔라가 탠덤 태양전지를 개발했다며 처음 기술을 공개한 게 지난해 5월인데요. 5월 31.8%, 6월 33.5%로 효율을 높여가더니 급기야 11월엔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웁니다. 공인 효율이 무려 33.9%. 론지솔라 창업자 리전궈 회장은 기록 수립을 자축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태양광 산업은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계속 세계를 선도해야 합니다.”그동안 각국이 차세대 태양전지 연구에 매진해온 배경엔 ‘또다시 중국에 뺏길 순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실리콘 태양전지는 중국에 뺏겼지만, 미래 태양전지 기술은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였는데요. 경계 대상인 중국이 미래 신기술에서마저 빠르게 치고 나온 겁니다. 이만저만 큰일이 아닙니다.기반도 관심도 부족하다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페로브스카이트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인 석상일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특훈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10년 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페로브스카이트 레서피를 만든 장본인이죠.석상일 교수는 이렇게 얘기합니다.“이제 우리나라가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리드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닦아온 기반이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우리가 집중하고 협력한다면 따라잡을 수야 있겠지만, 이대로 1년만 더 머뭇거리면 상당히 어려워질 겁니다. 워낙 기술 진화 속도가 빠르니까요. 론지솔라의 기록도 불과 1년 만에 이뤄진 일이거든요.”그럼 왜 분위기가 바뀐 걸까요. 석 교수는 한국의 기존 태양광 산업 기반이 무너진 데다,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마저 시들해진 게 원인이라고 봅니다. 지금 단계에서 집중해야 하는 연구 분야는 단연 ‘탠덤 태양전지’인데요. 이건 페로브스카이트만 가지고는 개발할 수 없고, 실리콘 태양전지 쪽과 협력해야만 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선 연구용 실리콘 태양전지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중국 기업에서 들여오려니까, ‘너희가 연구한 걸 발표 전에 미리 보여달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걸고요. 탠덤 태양전지 연구를 하려고 해도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운 셈인데요. 아니, 예전엔 한국에도 실리콘 태양전지 만들던 좋은 기술자들이 참 많았는데 말이죠. 다 어디 갔느냐고요? 한국엔 설 자리가 없으니 해외로 많이들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주로 인도 같은 데로 말이죠.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정부 차원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이죠. 석 교수는 “정부가 태양광 쪽에 대한 드라이브를 많이 낮추면서 연구 지원도 소극적이 됐다”고 전하는데요. 그는 “연구자로서 좀 화가 난다”고 말합니다. “연구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다들 열심히 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는데, 뭔가 발목을 잡고 이러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요. 사실 에너지는 우리의 생존이 달린 분야잖아요. 정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 이상하게 에너지가 정치화됐어요.”한국화학연구원에서 차세대 태양전지를 연구하는 강봉주 선임연구원도 지금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하는데요. 얼마 전 올해 차세대 태양전지 관련 과제 연구비가 30~60% 깎였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하거든요. 앞으로 5년 안에 상업화가 되느냐 아니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만약 5년 안에 못 해내면 자칫 또 실리콘 태양전지처럼 될 수 있거든요. 한국이 아주 잘하던 걸 다른 나라에 뺏겨버리게 될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그는 다른 연구자로부터 최근 들었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애국심으로 연구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중국에 뺏길 순 없다고요.”분발하는 일본연구자들의 이런 한탄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옆 나라 일본은 차세대 태양전지에 대한 투자를 올해 들어 대폭 늘려 잡았는데요. 우리와 비슷한 상황(실리콘 태양전지 시장은 이미 중국에 뺏김, 페로브스카이트 기술은 일찌감치 개발)에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거죠.올해 일본이 이 분야에 배정한 예산은 548억엔(약 5000억원). 기업이 차세대 태양전지를 이른 시일 내 대량생산하도록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당장 2025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상당히 야심 찬 계획입니다.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일본은 일단은 ‘순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쪽에 집중한다는 겁니다. 실리콘 없이 말이죠. 태양광 자립, 즉 중국에 의존하지 않는 100% 국산화를 위해선 현재로선 그게 방법이라고 보기 때문인데요. 페로브스카이트의 핵심 원료는 요소인데, 이건 일본에 아주 풍부해서 조달 걱정이 없습니다. 희귀금속? 자원 민족주의? 그런 위험이 사라지죠.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국토가 좁아서 태양전지판을 넓게 펼쳐놓을 공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런데 페로브스카이트 전지는 아주 얇고 구부릴 수 있는 데다 투명하게도 만들 수 있어서 어디든 갖다 붙이면 되거든요. 곡면으로 된 고층 빌딩이라면 마치 선팅필름처럼 창문에 전지를 붙이면 됩니다.또 제조 공정에서 그리 많은 전기가 필요 없다는 것도 일본 정부가 페로브스카이트를 지원하는 이유인데요. 지금의 태양전지는 실리콘을 만들기 위해 석영 암석을 1000도 넘는 고온으로 녹이는 데 엄청난 양의 전기를 쓰거든요. 그래서 전기료가 싼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할 수 있기도 했는데요. 페로브스카이트는 필름에 얇게 펴 바르거나 증착시키는 방식으로 만드는 거라 그렇게 전기가 많이 들지 않습니다. 제조과정이 친환경적이죠.물론 일본이 이렇게 가니까 그게 꼭 답이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일본 정부와 기업이 차세대 태양전지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향해 손발을 맞춰서 열심히 나아간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한 일본 자원에너지청 이노우에 히로오 국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실리콘 태양전지) 기술에서 승리했지만 사업에서 패했습니다. 일본 기업은 액정디스플레이와 반도체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죠. (차세대 태양전지에서는) 투자규모와 속도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이런 분발의 자세가 부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다 일본에까지 추월당하게 될까 봐 조바심이 들기도 합니다. “차세대 태양전지는 우리가 우위를 계속 가져갈 수 있는 흔치 않은 분야다. 더 관심을 가져달라”는 석상일 교수의 당부를 대신 전합니다. By.딥다이브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초고효율 태양전지가 3~5년 안에 실용화될 거라고 내다봅니다. 그렇게까지 먼 미래가 아닌 생각보다 가까이 와있는 기술인 거죠. 지금까지 한국이 연구 단계에선 꽤 오랫동안 잘 해왔지만, 과연 상용화에서도 치고 나갈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르게 될 텐데요. 이대로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신소재 페로브스카이트를 이용한 차세대 태양전지는 각광받는 미래 신기술입니다. 태양전지 효율을 대폭 끌어올려 ‘마의 30%’ 벽을 돌파할 수 있게 될 겁니다.-페로브스카이트 관련 기술에선 그동안 한국이 세계 톱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사이 지각변동이 일고 있습니다. 후발주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놀라운 속도로 치고 나왔습니다.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을 결합한 태양전지 분야에서 현재 세계 기록 1위는 중국 론지솔라, 2위는 사우디 KAUST입니다.-분위기가 왜 달라졌을까요. 한국의 취약한 태양광 산업 기반, 정부의 태양광에 대한 관심과 지원 부족 때문이라는 게 연구자들 설명입니다. 전 세계가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상황에서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춤하다가는 영영 따라잡지 못할지 모릅니다.-반면 일본은 ‘태양광 국산화’를 목표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대폭 늘렸는데요. 비슷한 상황에 처한 두 나라의 다른 선택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게 될까요.*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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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플·TSMC 함께 날았다…뉴욕증시 반등 성공[딥다이브]

    모처럼 기술주들이 상승세를 타며 뉴욕증시가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애플 주가가 큰폭으로 올랐는데요. 18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54%, S&P500은 0.88%, 나스닥지수는 1.35% 상승으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핵심 기술주 100개를 모아 만든 나스닥100 지수는 1.47% 오른 1만6982.29로 마감해,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죠. 이날 애플 주가는 3.26% 급등했습니다. 애플은 중국시장에서 판매 부진을 겪으면서 올해 들어 투자은행들의 투자의견 하향 조정이란 수모에 시달려 왔는데요. 이날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애플이 올해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일 거라며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목표 주가도 208달러에서 225달러로 높여 잡았고요. BOA 웜시 모한 애널리스트는 올해와 내년 애플이 신형 아이폰에 생성형AI를 탑재하면서 업그레이드를 위한 수요가 늘어날 거라고 전망했는데요. 또 19일부터 미국에서 사전 판매를 시작하는 혼합현실(XR)헤드셋 ‘비전 프로’가 차별화된 사용경험을 제공할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중국 시장의 약세는 다른 국가의 강세로 대부분 상쇄될 것”이라고 분석했죠.이날 증시의 또다른 주인공은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인데요. 이날 주가가 9.79%나 급등했습니다.예상을 웃도는 4분기 실적을 발표한 데다, 올해 강력한 성장세를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덕분에 올해 매출이 20% 정도 증가할 거란 전망인데요. TSMC 효과로 엔비디아, AMD 주가도 덩달아 올랐습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QX) 역시 3.36% 뛰었고요.한동안 미국 증시가 주춤했던 건 연준이 일찍 금리인하에 나설 거란 기대감이 점점 식어가기 때문이었죠. 이날 발표한 고용지표 역시 이런 걱정을 가중시켰는데요. 지난주 미국의 실업수당 신규 신청건수는 18만7000건으로 이전 기간보다 1만6000건 감소했다고 합니다. 2022년 9월 말 이후 최저치라는데요. 이렇게 고용시장이 탄탄한데 과연 연준이 3월에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까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3월 FOMC가 금리 인하에 나설 확률을 55.7%로 보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70.2%)보다 많이 낮아졌죠.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이날 3월 금리인하 전망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내놨는데요. “경제활동 냉각을 고려해 연준이 금리 정상화 시작 시기를 3분기로 앞당겼다”고 말한 거죠. 물론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한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나오면 더 빨리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고 덧붙이긴 했지만요. 3월이냐, 3분기이냐. 아마도 그 신호를 찾기 위해 한동안 시장이 분주할 듯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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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 ‘차세대 태양전지’ 주춤하는 새… 후발주자 中 ‘최고 효율’ 신기록[딥다이브]

    한국이 10년 가까이 기술을 선도해 온 ‘차세대 태양전지’ 분야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후발 주자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며 선두를 뺏겼다. 일본도 이 분야 주도권을 되찾겠다고 나서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새로운 차원의 태양전지 이달 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간한 ‘테크놀로지 리뷰’는 2024년의 10대 미래 기술 중 하나로 ‘초고효율 태양전지’를 꼽았다. 신소재 페로브스카이트를 실리콘 위에 쌓아 올린 차세대 태양전지이다. 필름처럼 얇은 페로브스카이트를 얹으면 전지 효율은 놀랍도록 향상된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는 이론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효율인 ‘마의 30%’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태양전지판에 닿는 햇빛 양 중 30% 이상을 전기로 바꿀 수 있다는 뜻. 효율이 높아질수록 발전비용은 절감된다. 다만 이 차세대 태양전지가 대량생산돼 깔리려면 앞으로도 5년가량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문제는 페로브스카이트가 수분과 열에 취약하다는 점. 이를 야외에서 10년 넘게 쓸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이는 동시에, 효율도 지금보다 더 끌어올려야 한다. 그동안 이와 관련한 연구의 선두엔 한국이 있었다. 2014년 한국화학연구원은 페로브스카이트를 더 균일하고 치밀한 박막으로 만들 수 있는 ‘제조 레시피’를 개발해 냈다. 이후 한국 연구진은 줄곧 최고 효율 기록을 경신해 왔다. 이 분야를 우리보다 먼저 개척한 스위스·일본보다도 기술력 면에서 오히려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우디·중국의 놀라운 부상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 그전까지 존재감 없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석유 시대’에 대비해 태양광 발전에 과감하게 투자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럽 출신 과학자를 영입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킹압둘라과학기술대(KAUST)는 페로브스카이트와 실리콘을 결합한 ‘탠덤 태양전지’ 효율을 33.7%로 끌어올리며 신기록을 썼다. 이 기록은 불과 다섯 달 만에 깨진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거대 태양광 기업 론지솔라가 33.9% 효율을 공인받으며 세계 1위 자리에 오른 것.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중국은 값싼 전기와 노동력을 무기로 실리콘 태양전지 시장을 장악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동안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에선 한참 뒤진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론지솔라는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처음 선보인 지 1년도 채 안 돼 단숨에 선두로 치고 나왔다. 론지솔라 창업자 리전궈 회장은 “중국 태양광 산업은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통해 계속 세계를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제 우리나라가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을 리드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직은 우리가 집중하면 따라잡을 수 있지만, 이대로 1년만 더 머뭇거리면 상당히 어려워질 거다. 워낙 기술 진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페로브스카이트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석상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훈교수의 냉철한 진단이다. 대량생산이 머지않은 차세대 태양전지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중국을 포함한 각국이 투자를 아끼지 않으며 뜨거운 관심을 쏟고 있지만, 유독 한국만은 딴판이다. 이 분야가 ‘태양광 산업’으로 묶이면서 관심과 지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관련 올해 연구비는 과제에 따라 30∼60% 삭감됐다. 강봉주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연구비가 줄어들면 어쩔 수 없이 (기술 개발) 목표를 줄일 수밖에 없다”며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할 시기인데, 이러다 한국이 아주 잘하던 분야를 다른 나라에 빼앗겨 버리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탠덤 태양전지 효율은 29.9% 수준이다.● 일본은 ‘에너지 안보’로 접근 한국의 이런 흐름은 일본과도 대비된다. 일본은 지난해 4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페로브스카이트 대량 생산체제 구축에 대응하겠다”라고 밝힌 데 이어 올해 관련 예산 548억 엔(약 5000억 원)을 편성했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는 대부분을 중국 수입에 의존해야 하지만, 페로브스카이트는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국산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리콘 태양전지와 달리 제조 과정이 간단하고 전기가 적게 들어 친환경적이란 점도 일본 정부가 적극 나서는 이유다. 무엇보다 또다시 중국에 산업 주도권을 뺏길 순 없다는 경계심이 작용했다. 일본 자원에너지청의 이노우에 히로오 국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과거 실리콘 태양전지에서) 우리는 기술에서 승리했지만 사업에서 패했다”며 “(차세대 태양전지는) 투자 규모와 속도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공격적으로 확대 중인 미국 정부도 차세대 태양전지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4월 미국 에너지부는 관련 프로젝트에 1800만 달러(약 242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석 교수는 “차세대 태양전지는 한국이 우위에 설 수 있는 흔치 않은 미래 산업”이라며 “에너지는 우리의 생존이 달린 분야인 만큼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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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기다린 비트코인 ETF의 등장…승자와 패자는 누가 될까[딥다이브]

    지난주 미국 증시에 역사적 신상품이 등장했다는 소식, 들으셨죠. 바로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2013년부터 10년 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거부해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0일 마침내 이를 승인한 건데요. ‘드디어 비트코인이 제도권에서 투자자산으로 인정받는구나’라는 감탄은 잠시뿐. 비트코인 시세는 이후 10% 떨어졌고, 투자자 관심은 벌써 ‘다음 ETF 후보는 무엇일까’로 넘어갔죠. 역시 시장은 빠릅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한번 찬찬히 짚고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일으킬 효과를 다각도로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어떤 상품인가미국 증시에 지난 11일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가 한꺼번에 상장됐습니다. 블랙록·피델리티·아크인베스트 같은 유명 운용사들 상품이죠.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ETF에 이틀(11일, 12일) 동안 순유입(매수-매도)된 금액은 무려 8억1900만 달러(약 1조800억원). ‘출시 몇 주 안에 수억 달러가 유입될 것’이라던 보수적인 언론 예측을 크게 웃도는 실적입니다.그래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뭐냐고요?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일반 주식계좌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입니다. 투자자는 업비트·빗썸 같은 코인 거래소를 통할 필요도, 비트코인을 디지털 지갑(wallet)에 보관할 필요도 없죠. 비트코인을 실제로 소유하는 건 ETF 운용사입니다. 대신 매일(주말 포함)의 비트코인 시세를 ETF 가격에 반영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선 사실상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효과이죠.어차피 수익률에 차이가 없다면 사람들은 왜 비트코인 실물이 아닌 ETF에 투자할까요. 금 실물 대신 금 ETF를 사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원래 쓰던 주식계좌를 통해 사고파는 거 훨씬 더 익숙하고 간편하죠. 게다가 2022년 파산한 FTX나 얼마 전 유죄를 인정한 바이낸스 같은 못 미더운 거래소보다는 대형 증권사가 더 믿음직스럽습니다. 적어도 해킹이나 사기로 고객이 산 비트코인이 사라져 버릴 일은 없을 테죠.10년 걸렸다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의 누구인지 모를 인물이 비트코인을 처음 발행한 게 2009년. 비트코인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가상화폐 제왕’입니다. 하지만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2013년부터 이어진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줄줄이 거부했죠. ‘사기와 시장조작 가능성’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요. 지난해 8월 SEC가 그레이스케일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하면서(‘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 거부는 잘못’이란 판결) 10년의 줄다리기가 끝납니다. 물론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ETF 승인 직후에도 “(ETF가 아닌)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굳이 강조했지만요.그럼 10년 만에 가상자산 업계가 거둔 이 승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마디로 판이 확 커집니다. 제도권 기관투자자가 이제 본격적으로 비트코인을 투자 자산으로 인정하고 담을 테니까요. 미래에셋증권 디지털자산TF 이용재 선임매니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존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투자자에 치우친 반쪽짜리였습니다. 이젠 자산운용사·증권사·은행·보험사·연기금·공제회를 중심으로 비트코인 ETF에 투자하려 나서겠죠. ‘본격적인 기관투자자 시장이 개화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도약입니다.”이미 스탠다드차타드는 올해 안에 500억~1000억 달러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로 유입될 거라는 예상을 내놨죠. 미국에 등록된 투자자문사(RIA) 운용자금 중 0.1%만 비트코인 ETF로 들어와도 1120억 달러가 될 거란 계산도 나옵니다.단순히 돈이 아닌 지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조지타운대학 제임스 엔젤 부교수는 FT 인터뷰에서 이를 한때 술 판매가 불법이었던 시절에 비유하는데요. “(술과)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은 존경할 만한 투자공간 밖의 무법자로 여겨졌는데 이젠 올드보이 클럽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거죠. 아울러 그는 이렇게도 덧붙입니다. “월스트리트는 물건을 파는 데 정말 능숙해요. 돈을 벌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팔아치우죠.”한국은 왜?‘한국의 미국 비트코인ETF에 대한 경고가 주식에 타격을 입혔다.’12일 블룸버그는 이런 기사를 썼죠. 전날 한국 금융위원회가 ‘(국내 증권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가 기존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을 위반할 수 있다’고 밝히자, 가상자산 관련주 주가까지 흔들린 건데요. 14일 다시 낸 입장자료에서 금융위는 살짝 톤을 누그러뜨리긴 했지만(‘미국 사례를 우리가 바로 적용하기 쉽지 않다’,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에 이미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국내 증권사는 판매하지 말란 입장은 유지했습니다.사실 이건 너무 보수적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금융위가 근거로 든 정부 입장이라는 게 6년도 더 전인 2017년 12월 13일 대책회의에서 나온 거니까요.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17년 이후 다른 나라는 가상자산을 받아들이고 이용하려고 나서는데 한국은 달라진 게 없다”라며 “한국은 규제가 심한 게 아니라, 아예 생겨날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동안 뭐 하고 있었냐는 거죠.현실적으로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한국은 가상자산 투자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하죠. ETF 투자에도 아주 익숙하고요. 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아직 비트코인 현물 ETF를 출시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있지 않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위 조치는 국내에 앞으로 조성될 시장을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아직 국내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미국 ETF로 자금이 대거 쏠릴까 봐 일단 막았을 거란 겁니다.따져보면 한국 투자자가 미국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는 건 꽤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환전 수수료도 들고, 차익을 거두면 22%를 세금으로 떼죠. 현재 우리나라에선 가상자산 과세가 2025년으로 미뤄져 있으니(올해까진 양도소득세 없음), 올해 안에 사고팔 생각이라면 그냥 비트코인 실물에 투자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사토시는 과연 좋아할까‘비트코인:P2P 전자 화폐 시스템’. 2008년 10월 나카모토 사토시가 공개한, 이후 세계를 뒤흔든 비트코인 백서의 제목이죠. 이 백서엔 ‘어떤 금융기관도 거치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달되는’ 전자화폐라는 비전이 담겼습니다. 탈중앙화와 분권화. 그게 바로 비트코인의 정체성이었죠.그런데 지금의 비트코인 ETF는 어떤가요. 중앙화된 대형 금융사가 관리하는 금융시스템에 비트코인을 편입시켜 버렸죠.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나카모토 사토시는 이것(비트코인)이 분산형 시스템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중앙화로 이어졌다”면서 “이게 (비트코인 현물 ETF의) 아이러니”라고 꼬집습니다.그렇다면 비트코인 ETF의 등장은 월스트리트의 비트코인 점령을 뜻하는 걸까요. 전통 금융을 ‘비트코인의 적’으로 보는 시각이라면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전통 금융과의 협력 내지 혼합은 비트코인이 주류로 가기 위해 불가피한 길이라는 현실주의자가 당연히 더 많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니까요. 코인데스크 칼럼니스트 JP 코닝은 “처음부터 이상적인 ‘비트코인주의’조차도 항상 돈을 벌려는 욕구와 짝을 이뤘다”며 “비트코인과 전통 금융과의 긴밀한 통합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두 갈래 시장두 세계(비트코인과 전통 금융)의 융합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이런 질문이 남습니다. 과연 자신의 비트코인을 디지털 지갑에 직접 보관해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비트코인 ETF와 비트코인 실물, 둘 중 무엇이 더 ‘주류’ 내지 ‘대세’가 될까요.물론 아직은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국 IT전문지 와이어드는 “시장은 사실상 투자용 비트코인과 이데올로기자들만 보유하는 비트코인, 두가지로 분리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투자로 차익을 거두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지갑에 실물로 보관해둘 이유가 없으니까요. 어쩌면 지갑에 비트코인을 직접 보관해두려는 사람이 소수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P2P 거래 시장은 쪼그라들겠죠. FT가 “ETF로 인해 장기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건 (지금까지) 비트코인을 보유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선택이었던 가상화폐 거래소”라고 지적한 이유입니다. 실제 미국 코인베이스 주가는 비트코인 ETF 승인 소식에 연일 급락세를 보였죠.다음 타자는 이더리움?지난 11일 4만9000달러 선에 근접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이후 급락해 15일 4만2000달러대에 머물러있죠.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파는’ 현상인데요. 대신 비트코인 다음으로 시총이 큰 가상화폐인 이더리움 가격은 비트코인 ETF 승인 직전보다 10%가량 올랐습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나왔으니, 이제 다음 현물 ETF는 이더리움일 거란 기대감 때문이죠.자, 그럼 정말 이더리움 현물 ETF의 등장도 곧 이뤄질까요. 전문가 의견은 조금 다릅니다. 이세일 신한투자증권 블록체인부장은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명확한 차이점이 있어서 (현물 ETF 승인이) 빠르게 되기는 어렵다”고 말하는데요. 비트코인과 달리 누가 만들었는지가 알려져 있다는 점(비탈릭 부테린이 창시자), 지분을 많이 들고 있는 사람이 더 유리한 중앙화된 채굴방식(지분증명)이라는 점이 걸림돌입니다. SEC가 비트코인은 ‘상품’으로 취급하지만(증권이 아님), 이더리움은 ‘증권’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긴 한 거죠.이 부장은 “이더리움 ETF가 나올 수 있느냐는 올해 리플과 SEC의 소송 결과에 달렸다”고도 덧붙입니다. 리플은 또 다른 가상화폐인데요. 이 소송에서 법원이 리플(XRP)에 대해 증권성 없다고 판결한다면 이더리움도 덩달아 면죄부를 받을 거란 뜻입니다. 이번에도 가상화폐 ETF의 운명은 미국 법원에 달려있습니다.20년 전 금 ETF디지털 금. 비트코인을 이렇게 일컫곤 하죠. 그래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금 ETF에 비교되곤 하는데요. 미국에 최초의 금 ETF ‘SPDR 골드셰어즈’가 상장된 게 20년 전인 2004년 11월입니다.그래서 금 ETF가 상장되자 금값이 치솟았을까요?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반대였습니다. 금 ETF 출시 전 몇 달 동안 20% 넘게 올랐던 금값이 ETF 상장과 동시에 떨어졌습니다. 이후 직전 가격을 회복하는 데 300일이나 걸렸는데요.중장기적으로 보면 다르다고요? 이후 만 19년 동안 금값은 5배 가까이로 급등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S&P500 역시 4배 상승했으니, 그리 엄청난 성적까진 아니고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 하겠죠.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중장기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가상화폐 투자자 입장에선 살짝 실망스러울 수 있겠는데요.그래서 조수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물 ETF 승인이 다른 자산군보다 아웃퍼폼(초과 성과)하는 걸 담보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비트코인에 투자하든,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하든 높은 변동성에 노출된다는 점은 변함없다”는 그의 당부도 귀담아들으셔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초기 비트코인 신봉자들이 어떤 이상향을 꿈꿨는지 기억하시나요. 2014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마크 안드레센 칼럼(‘비트코인이 중요한 이유’)엔 비트코인의 쓸모로 이런 게 나열됩니다. 저소득 이주 노동자의 국제 송금, 은행 계좌 없는 이들을 위한 결제 서비스, 초소액 결제(예컨대 동영상 재생당 결제),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한 후원금 송금.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10년이 지나서 돌아보니, 참 순진하기 짝이 없군요. 과연 10년쯤 뒤엔 지금의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각종 전망을 어떤 식으로 돌아보게 될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10년의 싸움 끝에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돼 나왔습니다.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에서도 명실상부한 투자자산으로 인정받은 겁니다.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담기 시작하면서 판이 커질 전망입니다.-하지만 한국에선 당분간 이를 살 수 없습니다. 금융위가 일단 막았기 때문인데요. 아직 한국에서 비트코인 ETF를 출시할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미국에 시장을 내줄까봐서로 풀이됩니다.-현물 ETF 출시로 비트코인은 중앙화된 대형 금융사와 손을 잡았습니다. 탈중앙화, 분권화의 훼손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대중화와 주류 편입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합니다.-아마도 ETF 출시로 장기적으로 크게 타격을 받는 건 가상화폐 거래소일 겁니다. 다음 현물 ETF 후보 자산으로 꼽히는 이더리움은 최근 가격이 오르며 주목받았지만, ‘증권성’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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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 오른 실적 시즌…인도·일본 증시는 왜 뛸까[딥다이브]

    전 세계 관심이 미국 공화당의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에 집중된 15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문을 닫았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날’을 맞아 휴장한 건데요. 이번 주 미국 증시는 4분기 실적 시즌이 본격적으로 펼쳐질 예정입니다. 이미 지난주 금요일 JP모건체이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비교적 탄탄한 4분기 실적을 공개했죠. BOA의 알라스테어 보스위크 CFO는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충분한 화력을 갖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16일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가 실적을 발표할 예정입니다.투자자들은 17일 나올 미국의 12월 소매판매 데이터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미 연준의 금리 인하시기를 예상하는 가늠자가 될 수 있어서인데요. 만약 예상치(전월보다 0.4% 증가)보다 너무 좋게 나온다면, 연준이 3월에 금리 인하에 나설 거라는 시장 기대에 찬물을 끼얹게 될 수도 있습니다.한편 새해 들어 불을 뿜고 있는 증시는 인도와 일본이죠. 인도의 BSE센섹스30 지수는 15일에도 1.05% 올라 또다시 사상 최고치(7만3327.94)를 기록했습니다. 인도 대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가 이날 지수 상승을 이끌었는데요. 둔화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영향을 덜 받는 데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인도 증시의 상승 요인으로 꼽힙니다.일본 니케이225 지수는 15일 0.91% 상승해 6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장중 지수가 3만6000선을 살짝 넘기도 했는데요. 1990년 이후 3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 중이죠.이제 시장에선 과연 니케이지수가 1989년 12월의 사상 최고치(3만8195)를 넘어설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주가가 이미 많이 올랐는데도 긍정적인 전망이 나옵니다. BOA는 지금의 니케이 상승세가 지난해 4~6월 상승의 “데자뷰”라고 보는데요. 지난해 30년 만에 가장 높은 ‘춘투(노동조합의 4월 공동 임금인상 투쟁)’ 임금 인상 덕분에 주식 랠리가 시작됐듯이, 올해 춘투 협상에서도 급격한 임금인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라는군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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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고객에게 일 시키지? 셀프계산대와 무급노동[딥다이브]

    대형마트의 셀프계산대 좋아하시나요? 일반 계산대 앞 긴 줄을 피해 셀프계산대로 갔다가 오류가 나서 쩔쩔맨 경험, 한 번쯤 있으실 텐데요. 셀프계산대가 실제로는 그다지 결제 시간을 줄여주지 못하는 데다, 절도가 늘어나는 부작용도 있다고 하죠. 이거 시간과 비용을 절약해주는 진보한 기술인 거 맞을까요.1986년 ‘슈퍼마켓의 혁명’으로 불리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래, 철수했다 설치했다를 반복하는 애증의 기계. 셀프계산대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소비자를 일하게 하라셀프계산대를 이용하면서 혹시 이런 생각 해보셨나요. ‘왜 내가 공짜로 계산원 일을 하고 있지?’그렇다면 본질을 꿰뚫어 본 겁니다. 마트 직원의 유급 노동을 소비자의 무급 노동으로 대체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 그게 바로 소매업체가 셀프계산대를 늘리고 있는 이유이죠.그런데 어디 셀프계산대만 그런가요. 키오스크나 은행 ATM기도 마찬가지이죠. 소비자들은 한때 누군가 해줬던 일(예금 인출, 민원 발급, 햄버거 주문 등)을 무료로 수행하는 데 상당히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그리고 생각보다 기업이 떠넘긴 일을 소비자가 기꺼이, 좋아서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 대표적인 예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인 1916년 미국 슈퍼마켓 체인 ‘피글리 위글리(Piggly Wiggly)’가 도입한 셀프 서비스 매장입니다.당시 미국 식료품점은 주문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고객이 점원에게 필요한 품목 리스트를 전달하면, 점원이 그 물건을 찾아왔죠. 마치 레스토랑에서 음식 주문하듯이 말이죠. 고객들은 점원이 물건을 담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결제만 하면 됐습니다. 편리한 듯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직원도 많이 필요한 비효율적 구조였죠.1916년 미국 테네시주에 설립된 피글리 위글리는 이런 쇼핑 방식을 완전히 혁신해 그때까지 본 적 없는 매장을 열었습니다. 손님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서 담는 셀프서비스 매장이었죠. 고객은 개방형 선반에 진열된 제품을 직접 골라 담은 뒤, 계산대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슈퍼마켓 시스템이 탄생합니다.처음엔 다들 이 셀프서비스 매장이 실패할 거라고 봤죠. 손님들이 귀찮아할 거고, 좀도둑이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웬걸. 피글리 위글리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습니다. 물건을 직접 고르게 되자 사람들이 예정에 없던 충동소비를 하게 됐기 때문이죠. 결국 다른 슈퍼마켓들이 앞다퉈 이 방식을 따라옵니다.1986년 시작된 계산대의 혁명느릿느릿한 서비스를 받느니, 차라리 소비자가 직접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 그 급한 성질머리가 슈퍼마켓 혁신의 배경이 된 셈인데요. 이와 상당히 비슷한 이유로 1986년 또 다른 혁신이 빛을 봅니다. 미국 대형 슈퍼마켓 체인 크로거(Kroger)가 ACM(Automated Checkout Machine)으로 불렸던 셀프계산대를 애틀랜타 매장에 처음 설치한 겁니다.이 최초의 셀프계산대는 지금과 작동원리는 같지만 생긴 건 사뭇 다른데요. 고객이 직접 바코드를 스캔한 뒤 제품을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리면 센서로 스캔된 제품과 동일한지를 확인한 뒤 통과시킵니다. 만약 스캔되지 않은 제품을 올리면 컨베이어가 역방향으로 다시 돌려보내죠. 계산이 끝나면 고객은 종이 영수증을 받아 들고 계산원에게 가서 결제하면 됩니다.38년 전 이 낯선 기계를 만난 소비자 반응은 어땠을까요. 일단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14주의 테스트 기간 이 매장을 찾은 고객 중 3분의 2가 셀프계산대를 한번 이상 사용했거든요. 이 중 38%는 셀프계산대를 선호한다고 답변했고요. 꽤 긍정적인 결과였는데요. 특히 사람들은 셀프계산대가 계산원보다 더 빠르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럼 진짜 빨랐을까요? 당시 크로거 부사장의 설명은 좀 다릅니다. “실제로는 셀프계산대가 결제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만, 고객이 스스로 작업하기 때문에 더 빠르다고 느낀다”는 거죠.하지만 이 혁신은 너무 시대를 앞서갔습니다. 시장은 생각만큼 열광하지 않았죠. 실제 미국 대형 마트가 본격적으로 셀프계산대를 도입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하지만 성장은 다소 울퉁불퉁했습니다. 예컨대 알버슨스(Albertsons)는 2011년 ‘쇼핑객에 더 많은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셀프계산대를 전면 철수했다가 2019년 다시 도입했죠. 미국 코스트코 역시 2013년 셀프계산대를 다 없앴다가, 2019년 다시 돌아왔고요. 지난해 초엔 월마트가 미국 뉴멕시코주 매장 3곳에서 셀프계산대를 없애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은 아니지만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 부스(Booths)는 최근 대부분 매장에서 셀프계산대를 폐쇄한다고 발표했고요.(참고로 한국에선 롯데마트 2017년, 이마트 2018년부터 셀프계산대 도입)왜 이렇게 기업들이 오락가락할까요. 2024년까지도 셀프계산대가 완벽한 사용경험을 선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종종 형편없는 결과를 초래하죠. 고객과 점원, 그리고 기업에도요.셀프계산대가 싫은 이유일단 셀프계산대의 장점부터 나열해볼까요.고객 입장에서 가장 큰 건 계산대 앞 긴 줄에 서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2019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매점을 찾은 고객들은 제품이 품절되거나(48%) 찾기 어려운 것(40%)보다 긴 계산 줄(60%)을 가장 짜증 나 했습니다.기업 입장에선 여러모로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일단 셀프계산대는 자리를 덜 차지하기 때문에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요. 당연히 계산하는 직원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1대에 보통 3만 달러가 넘는 비싼 비용(소프트웨어 포함)에도 셀프계산대를 설치합니다. 미국 식품산업협회(FMI) 통계에 따르면 전체 식품 소매점의 96%가 셀프계산대를 뒀다고 하죠. 셀프계산대에서 계산된 식료품은 2018년엔 18%뿐이었지만 2021년엔 30%로 늘었습니다.실제 사용경험은 어떤가요. 간단하게 서너가지 물건만 살 때는 셀프계산대가 간편하게 여겨지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사실 더 많죠. 술 사려면 나이 확인을 위해 직원 호출, 실수로 바코드 2번 찍으면 취소를 위해 직원 호출, 그냥 기계가 먹통돼서 직원 호출. 수시로 ‘직원 호출’ 상황이 이어집니다. 또 보통 도난 방지를 위해 스캔한 제품 중량을 인식하는 시스템을 두는데요. 이게 물건을 늦게 올려도 미리 담아도 오류가 발생하죠. 보통 예민한 게 아닙니다. 경고 메시지가 뜰 때마다 마치 기계가 이렇게 질책하는 것만 같죠. ‘당신, 혹시 도둑이야? 아니면 멍청한 건가?’ 실제 2021년 미국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67.3%의 쇼핑객은 셀프계산대가 잘 작동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바코드가 없는 포장되지 않은 신선식품을 셀프계산대로 구입하는 건 더 도전적인 일입니다. 수십 가지 품목 중 자신이 고른 농산물을 정확히 골라내고(내가 고른 사과가 홍로인지, 부사인지 구분해야) 개수를 입력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영국 슈퍼마켓 부스는 바로 이 점이 셀프계산대를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고 밝힙니다. “우리는 (바코드가 없는) 농산물과 빵 제품이 많습니다. 그로 인해 셀프계산대에선 모든 일이 느려지고 정말 복잡합니다.”(영국 부스의 나이젤 머레이 이사의 BBC 인터뷰)셀프계산대 앞에서 고객보다 더 바쁘고 힘든 사람은 마트 직원입니다. 미국 워싱턴주의 대형마트 점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스캐너와 터치스크린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물건을 훔치려고 시도하는 고객들을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중단없이 감시해야 한다고 자신의 업무를 설명하죠. 일반 계산대와 달리 셀프계산대에서 직원을 호출하는 고객들은 대체로 당황했거나 짜증 났거나 화가 나있는 상태입니다. 감정노동도 훨씬 심할 수밖에 없죠.쇼핑객 7명 중 1명은 도둑질 경험?, 딥다이브에서 전해드린 적 있는데요. 셀프계산대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명백하게 절도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셀프계산대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다양한 수법이 있다는데요. 바나나로 입력하고 무게가 비슷한 티본스테이크를 가져가는 식의 바코드 바꿔치기(일명 ‘바나나 트릭’)가 대표적이죠. 작은 품목을 다른 물건 안에 숨기거나, 손목에 붙여놓은 가짜 바코드를 스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요. 스캔은 다 제대로 했지만 결제를 안 하고 들고 나가버리는 대담한 수법도 쓰입니다.그런 도둑질이 얼마나 되겠냐고요?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소매업체들이 이 사실을 쉬쉬해서 정확한 통계가 없을 뿐이죠. 미국 온라인 금융플랫폼 렌딩트리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는데요. 응답자 중 15%가 셀프계산대에서 물건을 훔친 적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놀랍게도 7명 중 1명이 물건을 훔쳤다는 뜻이죠. 또 21%는 ‘실수로’ 스캔하지 않은 물건을 가져간 적 있다는데요. 그 물건을 매장으로 다시 가져가 돌려준 경우는 3분의 1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꿀꺽한 겁니다. 렌딩트리는 셀프계산대 기계가 도둑질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셀프계산대는 편리하지만 확실히 물건을 훔칠 위험이 큽니다. 소매업체는 셀프계산대의 비용절감 효과가 도난 증가위험을 감수할 정도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렌딩트리 매트 슐츠 최고신용분석가)또다른 분석 결과에 따르면 셀프계산대에서 도난이 일어날 확률은 사람 계산원이 있는 일반 계산대의 21배에 달합니다. 미국 스타트업 그라방고(Grabango)가 컴퓨터 비전 기술을 사용해 5000건의 거래를 추적한 결과인데요. 고객이 담아가는 물건보다 적게 계산되는 사례가 얼마나 되나 보니까 일반 계산대는 0.3%, 셀프계산대는 6.7%였죠. 금액 기준으로는 3.5%, 즉 셀프계산대를 통해 100만원 어치를 사갈 때 3만5000원 꼴로 덜 결제한다(훔치거나 실수하거나)고 합니다. 무시하기 어려운 비율인데요.그래서 절도를 막기 위한 여러 보안대책이 자꾸만 추가됩니다. 미국 코스트코는 셀프계산대에 직원을 늘리고, 출구에서 영수증을 일일이 확인하죠. 월마트는 셀프계산대 근처에 ‘스캔 누락 감지’ 기능이 있는 AI 기반 카메라를 설치했고요. 크로거 역시 스캔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오류 메시지를 띄우고 표시등을 깜빡거리게 하는 AI 기술을 배포했습니다. 점점 마트 계산대가 공항 검색대 스타일로 변해가는데요. 이런 식이면 셀프계산대가 비용을 줄여주긴 하는 건가, 다시 따져봐야 할 듯합니다.그럼 시간은 어떨까요?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고객(85%)은 셀프계산대가 확실히 더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은 좀 다릅니다. 사회학자 크리스토퍼 앤드류스는 셀프계산대가 실제로는 더 빠르지 않다고 지적하는데요. “고객들이 매초마다 주의를 기울이며 계산원을 대신한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더 빠르게 느껴질 뿐”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 소매업체들은 셀프계산대의 늘어지는 대기시간을 어떻게 줄일까 고민 중이죠. 미국 마트 타겟은 일부 매장에서 셀프계산대를 이용할 수 있는 물품 수를 10개 이하로 제한하기 시작했습니다.아니, 도난이 급증하고 대기시간도 별로 줄여주지 못하면 셀프계산대가 무슨 소용인가요. 그래서 일부 전문가는 셀프계산대의 멸종을 예언합니다. 소매업 전문가 필 렘퍼트는 무인매장 아마존고(Amazon Go) 같은 기술, 즉 물건을 들고 나가면 알아서 계산해 결제하는 기술이 더 대중화되면 언젠가는 셀프계산대를 대체할 거라고 보는데요.하지만 아마존고 방식은 투자비가 아직까진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그리 단기간에 거기로 넘어가진 않겠죠. 대신 그 중간지점이 모색 중입니다. 셀프계산대이긴 한데, 바코드를 일일이 스캔할 필요가 없이 그냥 바구니에 제품을 넣기만 하면 알아서 순식간에 계산해주는 방식인데요. 제품마다 주파수 칩을 붙여 이를 인식하는 기술로, 이미 유니클로가 일부 매장에 선보이고 있죠.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두고 “유급 직원의 노동을 무급 쇼핑객에 이전하는 전통적인 셀프계산대와 달리, 노동력을 완전히 제거한다”며 “셀프계산대를 싫어하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이 기술은 영국 테스코 역시 최근 테스트 중이라고 합니다.셀프계산대가 첫 선을 보인 지 38년. 기계는 아직 사람 계산원을 완전히 대체하기엔 한참 부족해 보입니다. 계산원 일자리를 빼앗는 적으로도 지목되는 셀프계산대.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이것저것 따져보고 차근차근 도입돼도 좋을 듯합니다. 사람이냐 기계냐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둘이 공존하는 게 고객 입장에서는 가장 나으니까요. By.딥다이브ATM처럼 셀프계산대에도 금방 익숙해질 줄 알았건만. 셀프계산대 도입 역사가 긴 미국에서도 이 기계는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는데요.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예측은 조금씩 빗나가곤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소비자가 직접 상품 바코드 스캔을 하게 하는 셀프계산대. 미국에서는 1986년 첫 선을 보였고, 2000년대 들어 대부분 대형 마트에 자리잡게 됐습니다. 직원의 유급 노동을 소비자의 무급 노동으로 전환하는 겁니다.-하지만 셀프계산대는 종종 고객을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오류는 잦고 직원의 개입은 빈번합니다. 일부 슈퍼마켓이 셀프계산대 철수를 결정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셀프계산대는 도둑질을 크게 늘렸습니다. 기계를 이용할 때 사람들은 더 쉽게 물건을 훔칩니다. 일부러, 또는 실수로 계산하지 않은 물품이 늘면서 소매점은 매출에 상당한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결국 직원을 더 배치하고, AI 감시 기술을 도입하는 식으로 보안을 강화하고는 있는데요. 이거 비용 절감 효과 있는 거 맞을까요? 아직은 셀프계산대 기술이 고객과 기업, 모두 만족시키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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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스닥 5일째 하락…애플은 또 등급 강등[딥다이브]

    나스닥지수가 또 하락했습니다. 벌써 5일 연속인데요. 2022년 10월 이후 가장 긴 하락세라고 합니다. 4일(현지시간) 나스닥지수는 0.56% 하락해, 12월 27일 종가와 비교해 거의 4% 떨어졌고요. S&P500은 0.34% 하락했는데, 4일째 하락입니다. 다우지수는 소폭(0.03%) 상승 마감했고요.왜 이런지 들여다보면 애플 탓이 크죠. 애플 주가는 이날 또 1.27% 하락했는데요. 새해 들어 5.5% 떨어진 겁니다. 시장가치로는 1640억 달러를 날린 거죠. 앞서 2일 바클레이즈가 애플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축소’로 낮췄단 소식에 애플 주가가 급락했는데요. 이날은 파이퍼샌들러가 중국의 취약한 거시경제 상황으로 인해 “아이폰 재고 수준을 우려한다”면서 애플 투자등급을 하향조정(비중확대→중립)했습니다.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이미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하는 거대 기술주입니다. 애널리스트 추정치 평균에 따르면 2024년 회계연도에 애플의 매출은 3.6%, 이익은 7.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죠. 애플 주식에 대한 매수 추천 의견은 33건인데요. 이는 아마존(68건), 메타(66), 엔비디아(59)보다 훨씬 낮은 겁니다.혹시 지난해 시장을 이끌었던 메가캡 주식의 후퇴가 시작된 건 아닐까요. 이번주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씨티그룹의 스콧 크로너트는 기술주에 대해 여전히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합니다. 그는 이날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메가캡 성장주 집단이 성장을 지속할 거라고 본다”면서 “통신서비스 섹터는 등급을 하향조정했지만 기술, 특히 소프트웨어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말합니다.이날 시장에서 눈에 띄는 종목은 자율주행 칩 제조업체 모빌아이(Mobileye)입니다. 주가가 무려 24.55% 급락했는데요. 모빌아이 측이 올해 매출과 수익이 모두 지난해보다 크게 감소할 거라고 투자자들에게 경고한 영향입니다. 모빌아이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고객의 과잉 재고를 인지하게 됐다”면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약 50% 감소할 걸로 내다봤죠.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 자동차 업계가 난리를 겪었던 것 기억하시죠. 이런 부족 현상 때문에 지난 3년 동안 차량용 반도체 산업은 오히려 수익을 높일 수 있었죠. 자동차 제조사들이 재고를 늘리려고 노력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재고를 거의 다 채웠고, 전기차 판매는 약화되고 있습니다. 재고 과잉 상태에 직면하면서 성장이 꺾이기 시작한 겁니다.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 스테이시 라스곤은 자동차 반도체 시장이 “안타깝게도 조정의 끝보다는 시작에 더 가깝다”고 분석합니다. 자동차 수요가 금세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날 모빌아이의 발표로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인 NXP반도체와 온세미컨덕터 주가도 3%대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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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침체도, 불평등 심화도 없다고? 도전받는 경제 비관론[딥다이브]

    연말입니다. 내년 경제 전망을 이야기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죠. 하지만 전망 기사를 쓰지 않을 핑계를 찾았습니다. 바로 1년 전 나왔던 올해 글로벌 경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측치가 완전히 빗나갔다는 점이죠.2023년 미 연준이 물가를 잡으려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실업률이 치솟고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증시도 고꾸라질 거라던 1년 전의 그 예측. 다들 기억하시나요? 결국 이런 전망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지금 확인하고 있는데요. 도대체 경제학자들은 왜 이렇게 많이 틀렸을까요.경기 전망만 빗나간 게 아니죠. 소득 불평등과 관련된 피케티의 연구가 사실 과장됐다는, 즉 실제로는 불평등이 그다지 심화하지 않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미국에서 나왔는데요.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오늘은 빗나간 경제학과 그 의미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2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경기침체는 오지 않았다1년 전 주요 경제학자 중 85%는 2023년에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미국 실업률은 5.5%까지, 어쩌면 7%까지도 치솟을 거라고 봤고요. 지난해 12월 7일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던 암울한 설문조사 결과였는데요. 기사엔 “연착륙은 극히 어렵다. 경기침체를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조르지오 프리미세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비관적인 전망이 함께 담겼죠. 당시엔 경착륙 또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이션) 같은 단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자, 그래서 결과는? 미국 3분기 GDP 성장률이 4.9%를 기록했다는 소식 얼마 전 전해드렸죠. 미국은 호황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1년 내내 3%대를 유지 중입니다(11월은 3.7%). 기준금리가 치솟고, 물가상승률이 꺾였는데도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는 조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올해 내내 경제 낙관론을 펼쳤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제학자들을 조심하세요’)에서 이렇게 승리를 선언합니다. “연착륙을 달성했습니다.”경제학자들이 너무나 많이 틀렸기 때문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요.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를 ‘공급망 문제 해결’로 설명합니다. 2021~2022년 인플레이션 급등은 사실 일시적인 공급망 대란(코로나+우크라이나 전쟁) 탓이었고, 이 문제가 풀리자 자연스럽게 해결됐다는 거죠. 반면 비관론에 빠진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간과했기에 엉뚱한 전망을 했던 거고요.그러면 왜 그렇게 집단적으로 공급망 이슈를 간과했을까요. 혹시 폴 크루그먼이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인 것과 달리, 나머지 경제학자들은 공화당 지지자이기라도 할까요. 올해 전망이 크게 빗나간 경제학자 중 가장 거물이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인 걸 보면 꼭 그렇게 얘기할 순 없겠는데요(서머스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바로 이와 관련해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가 쓴 블룸버그 칼럼을 소개합니다. 그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기침체를 예측한 이유는 재닛 옐런(현 재무장관), 폴 크루그먼 같은 많은 전문가가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요. 옐런이나 크루그먼 같은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케인스주의 거시경제학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금리 인상→총수요 감소→고용 감소→경기침체’라는 케인스주의적 공식이 현실세계엔 도통 통하지 않더라는 거죠.코웬 교수는 케인스주의와 대척점에 있었던 로버트 루카스 교수(199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합리적 기대 이론(똑똑한 개인들이 정부 정책에 맞춰 합리적 기대를 하기 때문에 경제정책은 효과가 없다는 이론)’이 오히려 지금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고 보는데요. 그래서 그의 결론은 이겁니다. “좀 더 솔직해집시다. 거시경제학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유명 경제학자들의 경제 전망과 정책 조언을 전달하기 바쁜 경제기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허무한 결론이 아닐 수 없는데요. 동시에 전설적인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저서에 남긴 경제학자에 대한 비판이 오버랩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은 대부분 헤어나지 못하는 그들만의 코르셋에 꽉 끼여 분석과 논평을 한다. 경제학자들은 계산만 하고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책에서 배운 내용을 모두 알지만 학습 내용과 현실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서 인용)소득격차가 커지지 않는다고?원래 예측이라는 건 늘 빗나가기 마련이죠. 경제 전망이 틀린 게 한두 번도 아니고요. 하지만 경제 예측이 아닌 냉철한 실증적 경제학 연구도 도전에 시달립니다. 최근 10년 새 가장 유명한 스타 경제학자라 할 수 있는 토마스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의 소득 불평등에 관한 연구가 그중 하나인데요.2013년 ‘21세기 자본’을 펴낸 피케티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켰죠. 상위 1%가 차지하는 소득 비중이 갈수록 커진다는 그의 연구 결과는 양극화 심화에 대한 경종을 울렸는데요. 그가 공동 저자들과 쓴 논문(2018년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서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은 이렇습니다. 1962년 10.1%→1979년 9.1%→2014년 15.7%(세후 소득 기준). 수십 년의 소득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상위층 소득이 하위층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늘면서 격차가 갈수록 커졌다는 결론입니다. 왜 부의 재분배가 시급하고, 더 누진적인 세금제도가 필요한지를 뒷받침하는 결과이죠.그런데 이런 피케티의 연구를 조곤조곤 반박해 결론을 뒤집는 새로운 논문이 나왔습니다. 저명한 학술지 정치경제저널 게재가 지난달 승인된 따끈따끈한 논문 ‘미국의 소득 불평등 : 세금 데이터를 사용해 장기적 추세 측정하기’인데요. 미국 재무부의 제럴드 오텐과 미 의회 조세합동위원회 데이비드 스플린드는 피케티의 방법론을 수정·보완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합니다. ‘미국의 세후 소득 불평등은 1960년대 이후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들의 새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가 차지하는 세후 소득 집중도는 1962년 8.6%→1979년 7.4%→2014년 9.1%입니다.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연구자들은 피케티와 달리 소득세 신고에서 누락되는 소득까지 추정해 계산했습니다. 정부 복지로 인한 이전소득(사회보장급여·실업급여·메디케어급여 등)이나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추가했고요(=저소득층의 최근 소득이 피케티 연구보다 늘어남). 소득세율의 극적인 변화(1964년 이전 91%였던 개인 소득세 최고세율이 37%로 하락)로 과거엔 고소득층이 일부러 사업소득을 줄여서 신고했다는 점도 반영했습니다(=고소득층의 과거 소득이 피케티 연구보다 늘어남). 이렇게 세금 신고서로는 잡히지 않는 소득이 전체의 40% 가까이 됐다는데요. 어떤가요. 소득세 신고 데이터만 가지고는 실제 소득 분포를 정확히 알아낼 수 없어 보완해야 한다는 이들의 논리, 어느 정도 설득력 있지 않나요. 워낙 꼼꼼하게 각종 변수(혼인율 감소와 부부 별도 신고 증가, 부양가족 감소 등)를 죄다 연구에 반영하고 있어서, 그 집요함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논문이기도 한데요(소득세법 오타쿠 느낌).문제는 이 결론을 사람들이 얼마나 받아들이겠냐는 점입니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대중적으로 호소력이 짙어서 웬만해선 이를 깨기가 쉽지 않죠. 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피케티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반박한 이 연구에 대해 이렇게 평했습니다. “(기후 부정에 이어) 불평등 부정은 그다지 유망한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건 마치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뜻의 답변인데요.실제로 이번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수십 년 동안 소득 격차가 커지지 않았다고? 뭐야. 그럼 아무 문제도 없다는 얘기인가?’ 그리고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도 딴판이기 때문이죠. 이 연구 결과를 다룬 FT 기사엔 연구가 ‘사기’ 내지 ‘거짓말’이라는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그런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연구 결과는 희망적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불평등이 심화하지 않은 건 세금과 이전소득을 모두 반영한 세후 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 얘기입니다. 세전 소득으로 따지면 역시나 과거보다 소득 격차가 더 커진 걸로 나오죠. 이게 무엇을 말하느냐.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이전소득과 세금 감면 혜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즉, 그동안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해왔던 각종 노력이 어느 정도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뜻이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제도를 늘리고, 누진적인 세금 정책을 펼쳐온 덕분에 그나마 현상 유지 중인 겁니다.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헛되진 않은 셈입니다.그럼 한국은 어떨까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데요.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 역시 상위 1%의 소득 집중도가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높아진 국가입니다(1998년 7.1%→2016년 12.2%). 그리고 이 기간에 다양한 복지제도(2008년 기초노령연금·근로장려금, 2010년 장애연금) 도입과 여러 차례의 소득세법 개정(최고세율 2011년 35%→현재 45%)이 있었는데요. 과연 이런 정책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요. 아니면 별로 효과가 없었을까요. 앞으론 정치인이 아닌 경제학자가 나서서 이 이슈를 좀 더 정교하게 다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따라서 경제학은 좀 더 힘을 내야 합니다. 할 일이 참 많아요. By.딥다이브고백건대 언론은 원래 비관론을 좋아합니다. 경제 기사는 더 그렇죠. 왜냐고요? 비관론이 더 똑똑하고 우아하게 들리니까요. 모건 하우절은 ‘돈의 심리학’에서 이렇게 썼죠. “낙관주의는 제품 홍보처럼 들리고 비관주의는 나를 도와주려는 말처럼 들린다.” 경제학 중에서도 특히 비관론에 힘이 실리는 건 이런 심리적 요인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1년 전 쏟아졌던 2023년 경제 전망이 모조리 빗나갔습니다.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지고 실업률이 치솟을 거라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미국 경제는 호황이고 고용은 안정돼있습니다. -왜 그렇게 집단적으로 틀렸을까요. 아마도 이들이 신봉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통화정책과 총수요, 고용시장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을 의심할 때입니다.-‘피케티 신드롬’을 일으켰던 소득 불평등에 관한 경제학 연구도 도전받고 있습니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소득격차는 지난 수십 년간 커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습니다.-양극화가 심해지지 않았다? 믿기 어렵고 불편한 결론인데요. 달리 보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조금은 효과가 있긴 하다는 뜻 아닐까요. 절망에 빠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호로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이 기사는 12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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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500, 최고치까지 13포인트 남았다… 산타 효과?[딥다이브]

    뉴욕증시가 보합권으로 마감했지만 S&P500은 사상 최고치 경신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올해 거래 마감을 하루 남긴 28일(현지시간) S&P500지수가 1.77포인트(0.04%) 오른 4783.35를 기록했는데요. 2022년 1월 3일 기록한 종가 최고치(4796.56)의 턱밑에 다가가 있죠. 이날 다우지수는 0.14% 상승, 나스닥지수는 0.03% 하락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뉴욕증시의 3대 지수가 9주 연속 랠리를 이어가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올해 다우지수는 14%, S&P500은 25% 올랐습니다. 나스닥은 무려 44% 상승했죠. AI 열풍으로 ‘매그니피센트 7’으로 불리는 대형기술주 중심의 장세가 펼쳐졌기 때문인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7개 기업(엔비디아·MS·아마존·애플·알파벳·메타·테슬라)은 내년에도 S&P500 평균을 웃도는 좋은 실적을 이어가겠지만, 관건은 이 부분이 주가에 이미 얼마나 반영되어 있느냐입니다. 전 메릴린치 트레이더 톰 에사이는 블룸버그에 “이 업계에 오랫동안 몸담아 오면서 속담대로 ‘카누의 한쪽에 기대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중앙으로 이동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죠. 단기적으로는 산타클로스 랠리가 계속 이어질지가 관심거리인데요. 한해의 마지막 5거래일과 다음 해의 첫 2거래일에 주가가 상승세를 타는 걸 가리키죠. 일단 첫 4거래일엔 3대 지수가 0.8~0.9% 오르며 산타랠리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증시에 산타랠리가 나타나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일단 투자자들이 연말에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경우가 많고요. 또 연휴 기간엔 거래량이 적어서 시장 움직임을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산타가 오느냐, 오지 않느냐가 새해 증시의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설명하죠. 역사적으로 산타랠리가 펼쳐진 경우에 새해 증시 성적이 더 좋았다는 겁니다(산타가 온 경우 평균 10.2% 상승, 안 오면 평균 5% 상승).내년 증시를 전망할 때 이 변수도 빠지지 않죠. 바로 미국 대선이 있는 해라는 점인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연도엔 역사적으로 미국 증시가 상승세를 탔다고 합니다. 1949년 이후 재선 도전 해의 S&P500 연간 상승률이 평균 13%였다는데요. 현직 대통령이 출마하지 않은 해의 저조한 성과(평균 –1.5%)와 대조됩니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현직 대통령이 출마하는 경우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정책이나 세금 감면책이 나오기 때문일 거라는 분석이 뒤따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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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체소금’으로 원자로 냉각… 안전성 높아 美-中 등서 개발 경쟁[딥다이브]

    안전한 차세대 원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됐다. 중국에 이어 미국도 물 대신 액체소금을 냉각재로 쓰는 용융염 원자로 건설에 나섰다. 한국은 후발주자이지만, 민관 합동 연구개발로 해양용 용융염 원자로 시장을 개척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미국도 액체소금 원자로 건설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이달 중순 원자력 스타트업 카이로스파워의 시험용 원자로 건설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총 1억 달러를 들여 테네시주에 2026년 완공할 이 원자로는 용융염 원자로(MSR·Molten Salt Reactor)이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차세대 기술로, 냉각재로 물이 아니라 고온으로 녹인 액체소금을 쓴다는 점이 다르다. 마이크 라우퍼 카이로스파워 창업자는 “미국이 수냉식(물로 냉각)이 아닌 원자로 건설을 승인한 건 50년 만에 처음”이라며 “더 깨끗하고 안전하고 저렴한 핵에너지를 제공하는 능력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카이로스파워 외에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세운 에너지 기업 테라파워,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출신들이 세운 소콘도 용융염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민간기업 중심인 미국과 달리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10여 년 전부터 용융염 원자로에 투자해왔다. 2021년 이미 용융염 원자로를 고비사막에 건설한 중국은 안전평가를 거쳐 올해 6월 원자로 시험 가동을 승인했다. 중국과학원 상하이응용물리연구소가 맡아 시험 운영 중이다. 진행 속도로 볼 땐 중국이 세계 최초의 용융염 원자로 상용화에 가장 다가가 있다. 이 밖에 캐나다 테레스트리얼에너지, 영국 몰텍스에너지 등 전 세계적으로 20개 이상의 기업이 용융염 원자로 개발에 뛰어들었다.● 치명적 사고 위험이 없다용융염 원자로는 1954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기술이다. 몇 주 동안 급유 없이 날 수 있는 핵 추진 전투기를 만들기 위한 미 공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이후 이 프로젝트가 취소되면서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 있던 시험용 용융염 원자로 가동은 1969년 멈췄다. 원자력 업계는 물로 원자로 열을 식히는 ‘수냉식’이 평정했다. 잊혀진 기술이었던 용융염 원자로가 다시 주목 받는 건 뚜렷한 장점 때문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치명적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원전 사고 중 가장 위험한 건 노심용융(멜트다운·Meltdown).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온도가 급격히 치솟으면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것을 뜻한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의 경우 정전으로 냉각수 순환이 멈추자 원자로 안에 있던 냉각수가 증발해 버리면서 노심용융이 발생했다. 물이 아닌 용융염을 냉각재로 쓰면 사고가 나더라도 증발해 버릴 일이 없다. 액체소금의 끓는점이 1500도 정도로 매우 높기 때문이다. 냉각재가 밖으로 유출돼도 큰 문제 없다. 녹는점이 높은 용융염이 고체로 굳어 버려 방사성 물질 누출을 막는다. 이에 대해 퍼 피터슨 버클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용융염은 끓어오르지 않는다”며 “이것이 원자력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로 떠오른 이유”라고 설명한다. 4m에 달하는 긴 연료봉 다발인 ‘핵연료 집합체’를 쓰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대부분 용융염 원자로는 액체 핵연료를 쓴다. 카이로스파워처럼 고체 연료를 쓰는 경우에도 그 크기가 탁구공 정도로 작다. 따라서 원자로를 작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금처럼 18개월에 한 번씩 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원전 운전을 멈출 필요가 없다. 온라인으로 연료를 추가하는 식의 무인 운전이 가능하다. 사용후 핵연료도 훨씬 덜 발생한다. ● 선박용 원자로에 집중하는 한국한국은 용융염 원자로 기술에 있어 후발 주자이다. 올해 4월부터 국가연구개발 사업으로 선정해 정부 지원을 시작했다. 일단 2026년까지 용융염 원자로의 원천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이후 인증을 거쳐 2030년 이후 해양용 원자로 1호기를 건설한다는 로드맵이 짜여 있다. 용융염원자로 원천기술 개발사업단을 이끄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이동형 단장은 “우리가 조금 늦긴 했지만 분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기술 개발 초기 단계인 데다 그동안 연구원 차원에서 용융염 관련 기술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 기업과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 중이라는 게 고무적”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공동 연구에 참여한 기업은 현대건설, 삼성중공업, HD한국조선해양, 센추리. 연구원은 상업용으로 쓸 수 있는 해양플랜트와 선박 추진용 용융염 원자로에 중점을 두고 기술을 개발 중이다. 용융염 원자로에서 가장 큰 난제는 부식이다. 소금의 강한 부식성을 견딜 만한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 단장은 “부식을 막기 위한 해결책이 하나씩 나오고 있는 중”이라며 “가급적 30년 동안 교체할 필요 없는 안전한 원자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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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세대는 복제품 쇼핑에 열광 중…싸서? 아니 힙해서![딥다이브]

    듀프(dupe)를 아시나요? 복제품을 뜻하는 영어 ‘duplication’을 줄여 쓴 단어인데요. 미국을 포함한 서구권 Z세대의 올해 소비 트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듀프 시대’입니다. 복제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브랜드 제품을 따라 만든 ‘저렴이’ 제품 소비 열풍이 일고 있는데요.저렴한 카피제품? 그건 수십 년 전부터 있었던 것 아니냐고요. 그렇긴 한데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있습니다. 요즘 Z세대는 이런 듀프 소비를 숨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대놓고 자랑한다는 점인데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상당히 지속될 것만 같은 복제품 소비 트렌드를 들여다봤습니다.*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저렴한 카피제품 열풍“쇼핑몰에서 쇼핑하다가 정말 귀여운 걸 발견하게 돼요. 그럼 가격표를 보고서 ‘아, 이거 듀프(dupe)를 찾아야지’라고 생각하죠.”미국 여대생 엘라 린은 비즈니스인사이더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리치아(aritzia), 룰루레몬(lululemon), 어반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 같은 패션 브랜드를 좋아하는 19살 소녀는 주로 아마존에서 이런 식으로 검색하죠. ‘아리치아 듀프(aritzia dupe)’. 그리고 그렇게 구입한 37달러짜리 아리치아 스웨트셔츠 복제품을 침대 위에 던지는 영상을 찍어 틱톡에 자랑합니다. 정가(118달러)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아리치아 저렴이를 샀다고 말이죠. 그는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비싼 브랜드 이름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데요.듀프(dupe), 혹은 둡(doop)이라고 부르는 저렴한 카피제품 소비 열풍이 심상찮습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dupe’로 검색한 건수는 미국에선 최근 13개월, 영국에선 6개월 만에 100% 증가했죠. 틱톡에선 ‘dupe’로 검색하면 향수부터 가구까지, 각종 카피제품 구매를 자랑하는 무수한 영상이 뜹니다. 이런 영상의 조회수가 무려 63억 회에 달하죠. 듀프 소비가 Z세대, 즉 2012~1997년에 태어난 이들의 새로운 트렌드라는 게 보그 같은 패션지부터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경제매체까지 공통적으로 내놓은 분석입니다.좀 더 구체적인 수치를 담은 설문조사 결과도 있죠. 시장조사업체 모닝컨설트의 설문조사(10월)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31%가 이런 복제품을 의도적으로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요. 밀레니얼 세대(44%)와 Z세대(49%)에선 이 비율이 훨씬 높았습니다.Z세대는 단순히 복제품을 더 많이 살 뿐 아니라, 복제품을 사는 이유가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는 점이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인데요. 젊은이들이 돈이 없어서, 돈을 아끼려고 카피제품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틀렸습니다. Z세대에게 듀프 소비는 놀이이자 자랑거리입니다.싸서? 아니 힙해서!여기서 잠깐. 이렇게 지적할 분들 있을 겁니다. 카피제품은 그 오리지널 브랜드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아닌가?네, 아닙니다. 복제품(듀프)이 이른바 ‘짝퉁’이라 불리는 위조품과 다른 점인데요. 가짜 로고를 새겨 상표권을 침해하거나 특허를 침해하는 위조품은 불법이지만, 그냥 디자인이나 주요 특징을 비슷하게 따라 하기만 한 복제품은 대체로 법적으로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뉴욕대 법대 크리스토퍼 스프리그먼 교수는 “복제품 문화는 오랫동안 매우 활발했고, 일반적으로는 불법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죠. 물론 ‘불법이 아니라고 해서 과연 복제품은 무해한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요(뒤에서 다시 설명).카피제품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달라진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①인기 브랜드 제품을 복제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습니다. ‘쉬인(Shein)’이나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미친 속도와 가격으로 유명한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여기에 한몫 했고요. ②Z세대는 복제품을 샀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기꺼이 공개한다는 점입니다. 복제품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도대체 왜 그들은 듀프 구입을 좋아할까요. 미국 시장조사업체 와이펄스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위 그래프)에 따르면 MZ세대 응답자들은 복제품 구입에 대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요. 복제품 구입은 큰돈 들이지 않고 ‘럭셔리’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69%). 특히 60%는 오리지널 제품을 살 여유가 있어도 여전히 복제품을 선택한다고 답했죠. 또 절반가량은 ‘복제품을 찾는 건 흥이 나는 일’(51%)이라고 응답했습니다. 한마디로 저렴한 복제품을 찾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겁니다.이를 두고 모닝컨설트는 쇼핑이 일종의 게임화됐다고 분석하는데요. 디자인과 성능은 크게 빠지지 않는데 가격은 훨씬 저렴한 ‘최고의 복제품 찾기’ 게임을 벌이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복제품을 잘 사면 ‘예산에 민감하면서도 안목 있는 소비자’임을 과시할 수 있게 되는 거죠.마케팅 전문가인 노스웨스턴대학의 자클린 밥 교수는 “이들은 복제품을 ‘명예의 휘장’으로 여기기 때문에 일부러 복제품을 구매한다”면서 “(돈을 아끼려는) 경제적 결정이 아닌 의도적인 큐레이션”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다른 마케팅 전문가인 찰스 린드시 버팔로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하죠.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돈을 절약했는지 보여주는 걸 좋아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구매하는 제품이 유명 브랜드인지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FT는 이를 Z세대의 ‘동지애’로 설명합니다. 소셜미디어 사용이 일상화된 이들은 쏠쏠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데요. 마치 화장법이나 투자 팁을 틱톡으로 공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제품 구입 정보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나누고 싶어하는 겁니다. 크리에이터 에이전시 더피프스의 벨라 할스 연구원은 “저렴한 가격 제품을 찾는 건 승리이자,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며 “이들은 정보 공유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패션 비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대놓고 베끼는 저렴이 브랜드이런 복제품 소비 열풍에 맞춰 인기를 끄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은근히, 또는 대놓고 유명 브랜드의 ‘저렴이’ 제품으로 마케팅하는 경우인데요.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에서 현재 가장 잘 나가는 화장품 기업 엘프뷰티(ELF)이죠. 2004년 설립된 이 저가 메이크업 브랜드는 틱톡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2019년 이후 무섭게 성장 중인데요. 주가도 급등해 올해 들어서만 161% 상승했을 정도이죠(55달러→145달러). 엘프의 성장세를 설명하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가성비, 식물성 원료, 틱톡 마케팅) 유명 럭셔리 브랜드 화장품의 ‘저렴이’ 버전이라는 게 핵심 이유입니다. 예컨대 14달러인 엘프의 ‘헤일로 글로우’ 제품은 유명한 샬롯티벌리 파운데이션(49달러)의 대체품으로 통하면서 엄청나게 팔렸죠. 또 5달러짜리 엘프의 ‘시어 슬릭’ 립스틱은 클리니크의 20달러짜리 베스트셀링 립스틱의 듀프라는 별명이 붙었고요.제2의 엘프뷰티를 노리는 또 다른 브랜드들이 있죠. 향수 브랜드 도시어(Dossier)는 대놓고 럭셔리 브랜드와 거의 비슷한 상품을 70~9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컨셉으로 광고합니다. 상품 설명에 아예 ‘조말론 우드세이지앤씨솔트에서 영감을 받았음’이라고 써놓고 가격까지(조말론 205달러, 도시어 49달러) 비교해놨죠.CRZ요가는 32달러짜리 레깅스를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브랜드인데요. 틱톡에선 룰루레몬의 98달러짜리 얼라인 레깅스의 저렴이 버전으로 통합니다. 전자상거래 분석회사 정글스카우트 데이터에 따르면 CRZ요가는 한 달에 8만개 이상의 제품을 판매 중이라는 군요.복제품 열풍에 편승해 새로 나오는 브랜드도 있습니다. 온라인 패션브랜드 퀸스(Quince)는 유명 브랜드와 같은 공장에서 옷·가방·신발을 제조해 반값에 판매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예컨대 데인도버(Dagne Dover)의 195달러짜리 백팩 복제품을 99달러에, 버겐스톡의 140달러짜리 코르크 밑창 샌들 복제품을 70달러에 판매하면서 ‘50% 싸다’고 광고합니다.복제품이 인기 끌면 손해? 이익?복제품 소비가 당당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니, 이를 이용하려는 기업이 늘어나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죠. 오리지널 브랜드가 제품 개발과 마케팅까지 다 해놓은 걸 그대로 베껴서 돈을 벌다니. 불법은 아니더라도 문제 있는 것 아닐까요.실제 복제품을 매우 불편해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미국 가구 브랜드 헬러의 존 에델만 CEO는 “당신이 구매하는 모든 복제품은 디자인의 미래를 죽인다”고 비판하죠. 복제품으로 인해 진품 소비가 줄어든다면 창작자는 어떻게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한탄인데요. 이 때문에 또 다른 가구업체 블루닷은 아예 복제품 감시를 위한 전용 예산을 따로 마련해뒀습니다. 블루닷의 제품 사진을 무단 도용하거나, 베껴도 너무 심하게 많이 베낀 복제품 판매 사이트를 발견하면 회사 변호사가 직접 연락을 하죠. 존 트리스타코스 블루닷 창업자는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복제품이 늘어난다고 해서 오리지널 제품 판매가 줄어드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아예 소비하는 사람 자체가 다르다는 건데요. 이런 시각으로 보면 복제품이 인기를 끄는 건 오리지널 브랜드 입장에서 썩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유명한 브랜드라는 걸 증명해주는 일일 뿐인 거죠.복제품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 역이용한 브랜드가 바로 룰루레몬인데요. 지난 5월 룰루레몬은 ‘듀프 스왑’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인기 제품인 얼라인 레깅스의 복제품을 산 소비자를 대상으로 이를 진품과 무료로 교환해준 건데요. LA에서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이 행사에 약 1000명의 고객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 중 절반은 룰루레몬 정품을 한 번도 사본 적 없는 고객이었죠. 룰루레몬 CEO 캘빈 맥도널드는 이 행사를 두고 “주요 목적은 새로운 손님을 확보하고 레깅스의 독창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거였다”면서 “대단한 성공이었다”라고 평가합니다. 룰루레몬 레깅스에 관심 있는, 하지만 98달러를 주고 살 생각을 못했던 고객에게 실물을 보여주며 ‘역시 비싼 정품은 다르긴 다르네’라는 반응을 끌어내는 기회로 삼은 거죠.복제품이 판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는 기업도 많습니다. 화장품 브랜드 이솝(Aesop)도 그런 경우인데요. 이솝의 최고고객책임자인 수잔 산토스는 보그 인터뷰에서 “그것(복제품)은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대안 브랜드가 적절한 선택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게 바로 민주주의”라고 말하죠.그런데 궁금합니다. 과연 Z세대는 더 나이가 들고 경제력이 생긴 뒤에도 지금처럼 복제품에 열광할까요. 아니면 돈이 많아지면 선택이 달라질까요.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모닝컨설트는 ‘듀프 문화가 젊은 소비자들의 습관에 영구적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기본적으로 브랜드 충성도가 매우 낮은 세대이기 때문이라는데요. 2031년이 되면 미국에선 Z세대 소득 수준이 밀레니엄 세대를 추월하게 될 거라고 하죠. 단순히 ‘가성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제품 소비 트렌드에 앞으로 더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By.딥다이브시성비(타이파)에 이어() 저렴이 복제품(듀프)이라니.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를 따라잡긴 해야겠는데, 그것이 참 알듯 말듯하단 말이죠. 오늘 기사는 주로 미국 이야기를 다뤘지만 아마 한국 시장도 이를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올해 미국 Z세대 소비 트렌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듀프(Dupe)입니다. 저렴한 복제품이 젊은 층 사이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향수나 화장품, 레깅스는 물론 각종 생활용품에서도 다양한 복제품이 팔리고 있습니다.-카피제품이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달라진 건 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랑한다는 점입니다. 쇼핑을 일종의 게임처럼 하기 때문인데요. 오리지널보다 훨씬 싸게 복제품을 사는 걸 ‘승리’로 여깁니다.-이런 트렌드에 맞춰 대놓고 저렴한 복제품임을 내세우는 브랜드도 생겨났습니다. 유명 럭셔리 상품과 품질은 비슷한데 가격은 절반임을 광고하는 식인데요. 동시에 트렌드를 역이용해 품질과 브랜드력을 과시한 룰루레몬 사례도 있습니다.-복제품이 불법은 아니라지만 창작자의 의욕을 꺾는 것 아닐까요. 반면 어차피 소비자층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 오리지널 브랜드에 피해가 될 건 없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당분간 복제품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쉽게 식을 것 같지 않기는 합니다.*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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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크론 8.6% 급등에 반도체주 질주…뉴욕증시 반등 성공[딥다이브]

    급락 하루 만에 뉴욕증시가 다시 상승으로 돌아섰습니다. 전날 차익실현에 나섰던 투자자들이 다시 내년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인데요. 21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87%, S&P500 1.03%, 나스닥지수 1.26%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이날 미국의 3분기 GDP(국내총생산) 확정치가 발표됐죠. 기존에 나왔던 잠정치(5.2%)보다 낮은 4.9% 성장으로 확인됐는데요. 예상보다 다소 둔화된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시장에서 좋은 소식으로 통했습니다. 경기가 연착륙하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지기 때문이죠. 연준의 내년 금리인하 방향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월가는 22일 장 시작 전 발표될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데이터에 기대하고 있는데요. 이 수치는 연준이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로 알려져있죠. CNBC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11월 근원 PCE 가격지수가 전월보다 0.1%, 전년 동월보다 3.2% 상승해 둔화세를 이어갈 걸로 내다봅니다. 이 역시 주식시장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요. 씨티그룹은 “앞으로 변동성을 예상해야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연준이 중심이 될 것”이라며 주가 하락시 주식 매수를 권고하기도 했습니다.이날 눈에 띄는 종목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입니다. 전날 시장 추정치를 웃도는 좋은 분기 실적을 기록하면서 이날 주가가 8.6% 급등했는데요. 덕분에 반도체주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도 2.8% 상승했습니다. 마이크론은 내년 초부터 HBM3E(고대역폭메모리) 제품을 대량생산할 예정인데요. 산제이 메로트라 CEO는 이 제품이 “엔비디아의 GH200, H200 플랫폼에 사용될 인증의 마지막 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HBM 후발 주자인 마이크론이 SK하이닉스·삼성전자와 경쟁을 벌이게 될 전망입니다.이날 국제유가는 하락했습니다. 아프리카 2위 산유국인 앙골라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했다는 소식이 영향을 미쳤는데요. 이날 브렌트유 선물은 배럴당 31센트 하락한 79.39달러,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선물은 33센트 내린 배럴당 73.89달러를 기록했습니다.11월 말 OPEC+ 회의에서 앙골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석유 감산에 반대했었죠. 결국 이날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과연 OPEC의 결속력과 영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데요. 다만 앙골라의 일일 생산량 120만 배럴이 OPEC+ 동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밖에 되지 않습니다. 앙골라가 빠졌다고 OPEC 전체가 무너지는 건 아니겠죠. 하지만 감산을 통해 국제유가를 지탱하려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계획이 예전만큼 잘 통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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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잘 쓰던 중국 관광객들, 이제 안 와요? 사라진 유커와 그 대안[딥다이브]

    코로나 혹한기를 간신히 버텼건만, 볕이 들긴커녕 한파가 몰아치는 업종이 있습니다. 바로 면세점인데요. 다시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려온 ‘큰손’ 중국 단체관광객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한국 얘기만이 아닙니다. 홍콩과 동남아시아, 유럽에서도 ‘중국 단체관광객 실종’ 현상에 애가 타는데요. 도대체 그 많던 중국 관광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과연 기다리면 언젠가 돌아오긴 돌아올까요. 오늘은 전 세계 관광업계를 좌절시킨 중국 여행객의 사정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다시 돌아올 줄 알았는데…‘중국인 입국자 수는 올해 4분기 85% 정도까지 회복돼, 올해 약 220만명을 기록할 것이다. 단체 관광 재개에 따른 중국 관광객 증가로 인한 올해 GDP 성장률 제고효과는 +0.06%포인트이다.’지난 8월 한국은행 ‘경제전망보고서’에 담긴 내용입니다. 8월 10일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행 단체관광을 허용하면서,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때였죠. 2017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단체 관광이 끊긴 지 6년 여만이었는데요. 이에 면세점·카지노·화장품주 주가가 며칠 만에 수십 퍼센트 급등하며 환호했습니다.그리고 넉 달이 지난 지금, 업계가 당황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돈 잘 쓰는 중국 단체관광객들은 다 어디로 간 거죠?일단 통계부터 볼까요. 올해 10월 방한한 중국 관광객은 24만9000명. 전달보다 줄었고,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0월(56만7000명)과 비교하면 44% 수준에 그쳤습니다. 다른 나라 관광객은 그럭저럭 회복했는데, 중국만 유독 반토막을 면치 못합니다. 국경절 황금연휴 효과? 그런 거 없었습니다. 지난 9월 정부는 중국 단체관광객 전자비자 발급수수료(1만8000원) 면제 등 지원책을 내놓으며 ‘올해 연간 중국 관광객 200만명’을 내다봤지만, 목표 달성이 만만찮아 보입니다(1~10월 154만명).중국 관광객이 돌아오지 않아 울상인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인이 가장 많이 가는 해외 여행지 하면 단연 태국이 1위로 꼽히는데요. 태국은 올해 1~10월 280만명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그쳤습니다. 올해 연간 목표치(500만명) 달성은 물 건너간 지 오래고, 2019년(1100만명)의 30% 수준에 그칠 걸로 보입니다.일본도 비슷합니다. 올해 10월 일본에 여행 간 중국 관광객은 25만6000명. 4년 전의 35%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회복률 면에서 한국이 나은 편이라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랄까요.먹고 살기도 빠듯하다‘제로 코로나 끝=보복 해외여행 수요 폭발’이란 공식이 전혀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나가 놀고 싶어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돈 쓰는 걸 주저하기 때문입니다.지난 국경절 연휴 때 중국 만리장성이 밀려든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는 보도 보셨나요? 이 연휴기간 중국 국내 여행객은 지난해보다 71% 급증해 8억2600만명에 달했다고 하죠. 즉, 놀고 싶은 중국인들이 해외로 나가는 대신 국내 여행을 한 겁니다.현지 언론에 따르면 동남아 단체관광 상품 가격은 1인당 5000위안(약 90만원) 정도. 항공·호텔·교통비가 올라 코로나 이전(3000위안)보다 비싸졌죠. 일본이나 한국 여행을 위한 항공권 가격도 이전보다 뛰어 부담스럽고요. 하지만 ‘꼬치구이 성지’가 된 산둥성 쯔보(淄博)시로 바베큐 여행을 떠나는 데 비용은 몇백 위안이면 충분합니다.이렇게 가성비 국내 여행만 뜨는 배경엔 경기침체가 있습니다. 대만 단장대학의 차이밍팡 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젊은이들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외로 여행하겠어요? 중국인이 해외 여행을 떠날 유인이 크게 줄었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추세입니다.”중국은 청년 구직난이 심각합니다. 지난 6월 청년(16~24세) 실업률이 21.3%에 달해 석 달 연속 20%를 웃돌았는데요. 다섯 명 중 한 명이 실업자란 거죠. 이후 중국 정부는 청년실업률 공개를 중단했지만, 올해 여름 대학 졸업생이 역대 최대인 1158만명이나 쏟아져 나왔으니 상황은 더 악화했을 게 뻔합니다.게다가 멀쩡한 직장과 집이 있더라도 예전처럼 여유가 없습니다. 집값과 주가가 고꾸라지면서 예전보다 가난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블룸버그와 인터뷰한 상하이 출신 금융인 토마스 저우는 올해 주식은 30%, 부동산 가격은 20% 떨어졌다고 털어놓는데요. 그는 “나를 지탱하는 건 대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직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대도시 주요 지역 집값은 이미 15% 빠졌고,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보다 비싸진 해외여행까지 갈만한 마음의 여유는 줄어듭니다.아시아태평양항공협회의 수바스 메논 회장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모든 아시아 항공사들이 중국의 여행 수요 증가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의 거시경제적 요인이 아시아 전역 항공 여행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중국인을 부유하게 만들었던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았고, 인플레이션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매우 높고요.”돈 아껴서 인스타 사진 찍는다여행업계가 중국 여행객을 애타게 기다리는 건 그 규모뿐 아니라 중국인이 ‘큰손’이라는 이유도 있죠. 한국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싹쓸이 해가거나, 홍콩 쇼핑몰에서 지칠 때까지 쇼핑하는 중국 관광객은 큰 환영을 받는 존재였습니다.이제 그게 옛날얘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중국 관광객들은 더 이상 버스를 타고 우르르 가게로 몰려다니지 않습니다. 면세점에서 브랜드 화장품을 사는 대신 올리브영에서 중저가 화장품을 사고, 동네 저렴한 음식점 또는 사진 찍기 좋은 카페를 찾아다닙니다. 왜냐. 가성비가 좋을 뿐 아니라 샤오홍슈(중국판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핫스팟으로 통하거든요. 비씨카드의 통계를 확인해보면 중국인이 유니온페이를 이용해 한국에서 올해 1~9월 쓴 돈 중 면세점 비중은 35.9%에 그쳤습니다. 2019년(63.1%)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로 줄었죠.한마디로 중국 관광객들이 이제 예전처럼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훨씬 검소해졌죠. 쇼핑이나 명승지 투어보다는 현지인의 생활방식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요.이런 달라진 트렌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최근 홍콩에서 있었는데요. 영국 명품 백화점 하비 니콜스가 지난달 홍콩 센트럴 랜드마크몰 매장을 철수한다고 발표한 겁니다. 2005년 처음 문 연 지 18년 만의 일이죠. 하비 니콜스 측은 “홍콩을 찾는 중국 관광객들은 더 이상 팬데믹 이전처럼 쇼핑에 열을 올리지 않는다”고 철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올해 이 백화점 방문자 수가 팬데믹 이전의 60% 수준에 머물렀다는데요. 홍콩소매관리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 관광객의 지출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가운데, 특히 전자제품·시계·보석류·의류가 가장 크게 타격을 받고 있죠.하지만 동시에 홍콩의 에그타르트 맛집 베이크하우스나 배우 위엔윙이(양영의) 부부가 좋아한다는 작은 식당 ‘투 그린스’는 본토 관광객이 북적거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성수동·안국동 카페를 찾아가거나 편의점에서 약과 같은 먹거리를 사는 중국 관광객들이 늘고 있죠. “중국인 관광객이 유커(단체 관광객)에서 싼커(개별 관광객)로 변화한 만큼, 이전과 다른 마케팅 전략-지역별 핫플레이스나 체험상품 발굴-이 필요하다”(현대경제연구원 ‘중국인 관광객 회복 지연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인도에 구애하는 동남아“우리는 중국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합니다.”차이 임시리 타이항공 CEO가 지난달 아시아태평양항공협회 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경기 둔화에 발목 잡힌 중국의 부진을 만회할 다른 여행 수요를 찾아내야 한다는 뜻인데요. 그럴 만한 나라가 과연 있을까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11월 보고서에 따르면 어쩌면 인도가 유력한 후보입니다.인도의 지난해 해외 여행은 1300만 건에 달했는데요.이를 2019년 중국 기록(1억400만 건)과 비교하면 너무 적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도의 1인당 GDP(2021년 2250달러)는 중국의 2006년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중국의 지난 십수년간의 해외 여행 급증세를 인도가 앞으로 따라가게 되겠죠. 그래서 맥킨지는 2040년까지 인도의 해외 여행 건수가 연간 8000만~9000만 건으로 늘어날 걸로 전망합니다.이미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관광객을 잡기 위해 각국이 발빠르게 나서고 있는데요. 태국은 11월, 말레이시아는 이달부터 인도인에 대해 최대 30일의 무비자 여행을 도입했고요. 인도네시아 역시 인도를 포함한 20개국에 대한 무비자 입국 허용을 검토 중입니다. 지난해 일찌감치 인도인에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며 선수를 친 베트남의 경우, 올해 인도 관광객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자, 그럼 우리도? 글쎄요. 올 1~10월 한국을 찾은 인도 관광객 수는 10만명 남짓입니다. 절대 수는 적지만 증가율(10월 한달 기준 2019년보다 46% 증가)면에선 꽤 높긴 하죠.하지만 인도인이 선택하는 해외여행 목적지 톱 20위 안에 한국은 물론 일본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거리 탓이 큰데요. 맥킨지에 따르면 인도인은 비행시간이 4시간 이내인 목적지를 선호하는데, 이는 주로 중동과 동남아시아이죠. 뉴델리 기준 서울까진 6시간이 걸립니다. 거리를 기준으로 보자면 예컨대 튀르키예 같은 나라와 경쟁해야 하는 겁니다.물론 높은 성장 잠재력을 고려하면 투자를 할 만한 가치는 있겠죠. 글로벌 DMC 그룹인 유로믹의 라지브 콜리 회장은 “인도 관광객은 중국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 중국인이 다시 여행을 시작하면 (인도 관광객을 유치한 국가는) 두 배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데요. ‘중국 과의존’은 문제이고 ‘다변화’가 해답이라는 이야기가 관광산업이라고 예외는 아니겠습니다. By.딥다이브물론 내년엔 올해보다 더 많은 중국 관광객이 돌아올 거란 긍정적인 전망이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한한령 이전인 2016년 시절로 다시 돌아갈 거란 확신은 없죠.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여러가지가 변했습니다. 달라진 세상에 맞춰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중국이 한국행 단체 관광을 다시 허용하면서, 온 여행 업계 주가가 치솟을 정도로 들떴던 게 지난 8월. 하지만 김칫국만 마셨다는 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유커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나 동남아시아도 중국 관광객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요. 부동산 시장 침체와 청년 실업률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국 경제의 영향입니다. -무엇보다 중국인의 여행 트렌드가 바뀌었습니다. 면세점 쇼핑 대신 인스타그래머블한 동네 가게나 카페를 찾아갑니다. 중국 관광객들이 예전보다 훨씬 검소해지면서 홍콩 명품 백화점은 문을 닫게 됐습니다.-이대로 중국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습니다. 동남아시아는 새로운 시장인 인도 해외 관광객을 붙잡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는데요. 한국도 잠재력 큰 인도 시장에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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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관론 가득한 뉴욕증시…골드만 “내년 S&P500 5100 간다”[딥다이브]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으로 뉴욕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18일(현지시간) S&P500 지수는 0.45%, 나스닥 지수는 0.61% 상승했죠. 다우지수는 0.86포인트 올라 거의 변동이 없었습니다. 지난주까지 S&P500은 7주 연속 상승했는데요. 이는 2017년 이후 가장 긴 상승세라고 합니다. 그만큼 현재 월스트리트는 낙관론에 가득 차 있죠. 연준이 경기침체를 피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은 2% 목표치로 되돌리는 연착륙을 할 거라고 보는 건데요. 도이체방크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메모에서 “투자 심리가 2021년 4월 이후 최고치로 뛰어올랐다”고 밝혔습니다. 지난주 주식형 펀드와 ETF로의 자금 유입은 253억 달러로 21개월 만에 최고치에 근접해있죠.S&P500이 8주째 상승세를 이어갈지는 이번 주 나올 지표들(내구재 주문, 개인 소비 지출 등)이 좌우할 텐데요. 모건스탠리의 크리스 라킨 이사는 “S&P500은 1964년 이후 20번만 7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고, 그중 12번은 8주까지 늘어났다”고 설명합니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S&P500지수 목표치를 4700에서 5100포인트로 높여 잡았죠. 한 달 만에 전망치를 상향한 건데요. 앞으로 지수가 8%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이번 주의 큰 이슈 중 하나는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이죠. 오늘(19일) 오전에 금융정책회의 결과가 발표될 텐데요. 일본은행이 세계 마지막으로 남은 마이너스 금리 체제를 조만간 종료할 거란 추측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일본은행은 2016년 1월 단기 정책금리를 –0.1%로 낮추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는데요.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 안팎으로 높아지면서 정책 전환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 금리 인상 시기를 두고는 내년 4월쯤이 될 거라는 전망이 아직까진 우세한데요. 일본 기업이 내년 봄 춘투(임단협) 때 임금을 얼마나 올리는지를 확인하고 통화정책을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시장은 이날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어떤 발언을 할지에 주목합니다. 일본은행이 내년 1월이나 4월에 정책 전환을 하기 위해 이번에 ‘포워드 가이던스(사전 안내)’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어서죠. 전 일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하야카와 히데오는 블룸버그에 “우에다 총재가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 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바꿀지가 중요한 포인트”라며 “만약 그가 이 관점을 업그레이드한다면 금융시장 전반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어떤 발언이 나올지 관심 갖고 지켜보시죠.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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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년 전 ‘핵추진 항공기’로 시작된 꿈…안전한 ‘액체소금’ 원자로[딥다이브]

    요즘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게 시급한 과제가 되면서 원자력의 필요성이 부각되는데요. 하지만 방사능 사고 위험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만약 치명적인 사고 발생 가능성을 없앤 원자로를 만들면 어떨까요. 중국에 이어 미국도 4세대 원자로 중 하나인 용융염 원자로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약 70년 전 ‘핵 추진 항공기’ 구상에서 유래한 기술인 용융염 원자로(MRS, Molten Salt Reactor)를 알아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원자력 항공기와 액체 소금잠시 옛날이야기부터 해볼게요. 몇 주 동안 계속 하늘을 날 수 있는 전투기가 개발된다면 얼마나 강력할까요. 냉전시대엔 실제 이런 항공기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이 개발을 추진했던 ‘핵 추진 항공기’입니다.인류 최초의 핵 추진 잠수함 노틸러스호(1954년 진수)엔 물로 냉각하는 가압경수로 원자로가 장착됐죠. 이 가압경수로 방식은 이후 전 세계 원자력 발전의 표준이 됐고요. 하지만 비행기에 들어가려면 훨씬 더 작고 가벼운 새로운 방식의 원자로가 필요했습니다. 미국이 고체 대신 액체연료를 쓰고, 물 대신 용융염(고온에 녹아 액체가 된 소금)이 냉각재 역할을 하는 ‘용융염 원자로’ 개발에 나선 이유입니다. 1954년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용융염을 이용한 소형 원자로 개발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죠.미 공군은 정말 원자력 항공기를 개발하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1955~57년 ‘NB-36H’ 폭격기에 소형 원자로를 싣고 수십 차례 시험비행을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꼬리에 방사선 마크가 박힌 이 폭격기는 실제 원자력 에너지로 구동되진 않았습니다. 대신 원자로를 싣고 다녀도 비행 시스템과 승무원들은 안전하다(납과 고무로 방사선을 차폐)는 건 확인했죠.하지만 이 핵 추진 항공기 계획은 논란 끝에 1961년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취소됐습니다. “약 1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가까운 미래에 군사적으로 유용한 항공기를 개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이유였는데요. 그 후에도 한동안 미국의 용융염 원자로 실험은 계속됐습니다. 오크리지국립연구소는 1965~69년 실험용 용융염 원자로를 가동하기도 했는데요. 그게 끝이었습니다. 1969년 12월 이 원자로는 폐쇄됐고, 미국 정부는 프로젝트를 중단했죠.시험가동 시작한 중국, 건설 허가 내준 미국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잊혀진 기술이었던 용융염 원자로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가장 앞서 나간 건 중국입니다. 2018년부터 고비사막에 용융염 원자로를 건설해온 중국은 지난 6월에 드디어 이 원자로의 시험 가동을 승인했습니다. 중국 상하이응용물리연구소가 시험 운영을 맡았죠.기술 원조인 미국도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다만 정부가 아닌 민간이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데요. 이달 12일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용융염 원자로 스타트업인 카이로스파워(Kairos Power)의 시범 원자로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미국 테네시주에 건설될 이 1억 달러짜리 프로젝트는 2026년 완공될 예정인데요. 카이로스파워 측은 “미국이 수냉식(물로 냉각)이 아닌 원자로 건설을 승인한 건 50년 만에 처음”이라고 설명합니다.카이로스파워 외에도 용융염 원자로 개발에 뛰어든 스타트업은 미국과 유럽에 약 25곳이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TerraPower)도 그중 한 곳이죠.수십 년에 걸쳐 원자력 시장은 물로 냉각하는 수냉식(경수로, 중수로)이 평정한 상태이거든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다시 액체소금 냉각 방식(용융염 원자로)에 여러 국가와 기업들이 주목하는 걸까요.멜트다운 없는 안전한 원자로용융염 원자로의 뚜렷한 장점 때문입니다.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거의 없다는 거죠.원전 사고 중 가장 위험한 게 노심용융(멜트다운, Meltdown)입니다. 냉각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해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걸 뜻하는데요. 역사상 중대한 원전사고, 즉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 사고 모두 노심용융이 원인이었습니다.우라늄원자로는 핵반응을 중단해도 남은 방사선 원소들이 붕괴열을 냅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계속 냉각수를 공급해서 열을 식혀줘야만 하는데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 1 원전은 정전으로 냉각수 주입 펌프의 가동이 중단됐죠. 냉각수 순환은 멈췄고, 원자로 안에 있던 냉각수가 증발해버리면서 핵연료봉이 공기 중에 노출됐고요. 연료봉 온도가 1200도까지 상승해 노심용융이 발생하면서 방호벽이 녹아내리고 수소폭발까지 일어납니다.만약 끓는 점이 매우 높아서 증발할 일 없는 냉각재를 쓰면 어떨까요. 그럼 냉각재를 보충해줄 필요가 없고요. 사고로 전력이 끊겨도 냉각재가 계속 남아서 열을 식혀줄 테니 훨씬 안전하죠. 바로 이런 장점을 지닌 게 용융염입니다. 용융염의 끓는점은 대기압에서도 1500도 이상으로 매우 높죠. 만약 어떤 사고가 발생해서 용융염 원자로에 전기 공급이 끊긴다면? 그냥 두면 저절로 냉각될 겁니다. 퍼 피터슨 버클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용융염은 끓어오르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매력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원자력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떠오르는 이유입니다.”우라늄핵연료봉을 묶은 커다란 다발인 ‘핵연료 집합체’를 쓰지 않는다는 것도 용융염 원자로의 큰 특징입니다. 보통은 액체 핵연료를 쓰고요. 카이로스 파워 경우엔 탁구공만 한 크기의 작은 고체연료를 씁니다.핵연료 집합체를 쓰지 않으면 좋은 점이 참 여러가지인데요. 일단 원자로 크기를 줄일 수 있고요(핵연료 집합체는 길이가 4m에 달함). 또 지금처럼 18개월에 한 번씩 연료를 교체하기 위해 운전을 정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계속 가동하면서 연료를 보충해주면 되죠. 아마 온라인으로 연료를 추가하는 식의 무인 운전도 가능할 겁니다. 또 연료봉 폐기물도 덜 생기게 되고요.용융염은 고온에 강하기 때문에 원자로 운전온도를 기존보다 더 높일 수 있는데요. 작동 온도를 높이면 열효율(시스템에 투입된 열 대비 생산되는 유용한 에너지양)은 높아집니다. 기존 수냉식 원자로의 열효율은 약 32%이지만 용융염 원자로는 45%에 달한다고 하죠.정리하자면 용융염 원자로는 더 안전하고 편리하고 효율적입니다. 하지만 상용화에 이르려면 실증도 거쳐야 하고, 갈 길이 먼데요. 특히 가장 큰 걸림돌은 이겁니다. 부식.소금은 여러 금속에 부식을 유발할 수 있죠. 자칫 원자로 용기나 배관이 부식되기라도 하면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수 있으니, 여간 큰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부식에 강한 소재 개발이 중요한 과제입니다.한국의 MSR 개발 현황은?이쯤에서 궁금하실 겁니다. 우리나라는 이 새로운 원자로 기술에서 얼마나 와있는지 말이죠. 그래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용융염원자로원천기술개발사업단을 이끄는 이동형 단장과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용융염 원자로를 몇 년 전부터 연구해오셨죠?“네. 다만 정부의 공식적인 국가연구개발 사업이 된 건 올해 4월부터라서 조금 늦긴 했습니다. 중국은 약 10년 전부터 개발에 나섰고요. 미국과 유럽에선 2018~2019년부터 정부 지원뿐 아니라 민간 자본이 엄청나게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 연구원이 설계기술이나 용융염 관련 기술을 어느 정도 확보해놓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라서요. 이제 우리가 좀 더 분발하면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중국과 미국을 보면 상업화까진 멀었고, 이제 시범 운영을 막 시작하려는 단계인데요. 우리나라는 아직 그 시범가동 단계까지 가기에도 시간이 좀 걸리겠죠?“저희 사업은 일단 2026년까지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고요. 이후 실증을 위해서는 다시 계획을 세워 재원을 투입해야 할 겁니다. 다만 고무적인 건 연구원 단독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들, 현대건설·삼성중공업·HD한국조선해양·센추리가 들어와서 같이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연구개발에 그치지 않고 상업 목적의 개발을 서두른다는 게 정부 방침입니다.”-개발할 용융염 원자로의 사용처가 혹시 정해져 있나요? 선박 추진용일까요, 일반 내륙 전기 생산용일까요?“현재는 해양플랜트, 그리고 선박 추진용을 우선 타깃하고 있습니다. 용융염 원자로를 활용해 해양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미국·중국·덴마크에서 이미 많이 시도가 되고 있어서, 저희도 그쪽을 목표로 잡았죠. 그런데 해양플랜트이든 선박추진이든 결국 모두 전기를 만드는 것이라서요. 해상에서 실증이 되면 그걸 내륙으로 들여오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조선사가 용융염 원자로에 특히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그동안 조선사가 암모니아·수소·메탄올을 친환경 에너지로 보고 개발해왔는데, 이제는 원자력이 또 하나의 옵션으로 떠올랐습니다. 아무래도 연료탱크가 크면 화물을 많이 싣기 어렵잖아요. 그런 점에서 원자력에 메리트가 있습니다.”-용융염 원자로는 핵폐기물 발생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고요?“최근 모든 원자로가 핵연료 교체 주기를 매우 길게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기술 개발 중입니다. 지금처럼 18개월마다 교체하는 게 아니라 12~20년 이상 연료를 배출하지 않는 방향으로요. 사용 후 핵연료 발생량을 줄이는 거죠.또 우리 연구소가 민간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기술이 있는데요. 사용 후 핵연료 안에 플루토늄이 많이 쌓이거든요. 그걸 재처리하지 않고 그 안에서 태울 수 있는 원자로를 개발 중입니다. 그렇게 하면 폐기물 발생량을 더 줄일 수 있죠.”-그 기술은 어느 정도 개발된 건가요?“개념적으로는 오래전, 그러니까 60년 전부터 나와 있던 기술입니다. 물론 설계에 여러 방법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실증이죠.”-용융염 원자로를 만들기 힘든 이유가 부식이라는데요. 아직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중인가요?“저희뿐 아니라 각 나라의 연구용 원자로 개발회사들이 부식에 강한 물질로 코팅해서 보호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자금과 인력을 많이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솔루션들이 하나씩 발표가 되고 있죠. 물론 핵심 내용은 공개하지 않지만요. 그 부분이 원자력에서는 가장 큰 토픽 중 하나입니다.”-부식을 막는 건 어렵지 않은 기술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업계에선 훨씬 중요한 이슈이로군요.“안전을 담보해야만 하니까요. 또 선박의 경우엔 수명이 30년인데, 가급적 중간에 교체하지 않는 것이 폐기물이나 모든 측면에서 좋기 때문에 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노력을 많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요즘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e Reactor)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SMR이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테마로 자리잡았을 정도인데요. 오늘 설명드린 용융염 원자로(MSR) 역시 이런 SMR의 종류 중 하나에 속하죠. 우리가 아는 기존 원자로와는 다른 점이 많아서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중국이 올해 6월 용융염 원자로 시험가동을 시작한 데 이어, 미국도 스타트업 카이로스파워의 시범 원자로 건설을 승인했습니다. 액체상태의 소금, 즉 용융염을 이용한 차세대 원자로 개발 경쟁이 본격화됩니다. -용융염 원자로는 1950년대에 이미 나온 기술입니다. 애초엔 ‘핵 추진 항공기’의 동력원으로 쓰기 위해 개발됐는데요. 이 계획이 취소된 뒤 추진력을 잃고 프로젝트가 중단됩니다.-수십 년 만에 다시 용융염 원자로가 주목 받는 건 뛰어난 안전성 때문입니다. 소형화, 무인화가 가능하고 열효율이 높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한국도 올해부터 국가개발사업으로 이를 선정해 원천기술 개발에 나섰는데요. 특히 친환경 선박과 해양플랜트 쪽에 중점을 두고 개발할 계획입니다. *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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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월 훈풍 이어진 뉴욕증시…올해 1000% 뛴 종목은?[딥다이브]

    산타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었군요. 전날 나온 파월 의장의 금리인하 논의 발언에 들뜬 뉴욕증시가 또다시 상승했습니다. 14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43%, S&P500 0.26%, 나스닥 0.19%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6거래일 연속 상승입니다. 중소형주는 더 크게 올라 러셀2000지수는 2.7% 뛰었습니다. 국채금리는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이날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0.1%포인트 넘게 떨어지면서 4%선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지난 8월 이후 처음인데요. 장중엔 3.883%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10년물 금리가 장중 5% 선을 처음 돌파했던 게 10월 19일이었는데,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뚝 떨어진 겁니다.전날 파월 연준 의장은 “언제 정책 제약을 되돌리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분명 오늘 우리 회의에서도 논의됐다”라고 말했죠. FOMC 회의에서 금리인하 논의가 있었다는 뜻인데요. 그동안 ‘갈 길이 멀다’는 식의 모호한 표현을 써가며 금리인하 신호를 주지 않으려 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겁니다. 그야말로 ‘피벗(태세 전환)’이죠.달러화 가치는 이날 하락하고, 유로화와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뛰었습니다. 이날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 모두 미 연준의 피벗에 동참하기 위해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 영향을 미쳤는데요. 파이낸셜타임스는 익명의 ECB 운영위원회 참석자가 “(파월 의장의 발언에)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놀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연준의 피벗으로 인플레이션 하락 속도가 늦춰진다면 “삶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이죠.다만 이날 주식시장 상승세는 전날만큼 강하진 않았는데요. 시장이 너무 빨리 달린 게 아니냐는 경계감도 작용했다는 해석입니다. 투자기업 이토로의 칼리 콕스 분석가는 블룸버그에 “10월 말 이후 S&P500은 1% 이상 하락한 적이 없다”며 “주식시장은 ‘열 체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투자중개회사 밀러 타박의 매트 말리 전략가 역시 증시가 너무 과열됐다고 보는데요. 그는 블룸버그에 “뉴스에 팔아라, 대규모 랠리 후 건강한 조정 같은 오래된 문구가 앞으로의 하락세를 나타낼 수 있다”면서 “어떤 시장도 직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죠.이날 높은 상승률로 눈에 띄는 종목은 온라인 중고차 판매업체 카바나(티커 CVNA)입니다. 이날 주가가 12.31% 급등해 올해 들어 상승률이 무려 993%에 달하는데요(1월 초 5달러였던 게 50달러가 됨). 과도한 부채로 파산 가능성까지 나왔던 그 기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성적입니다. 이로써 통신 장비업체 옵토일렉트로닉스(AAOI, 올해 들어 1133% 상승), 바이오기업 솔레노테라퓨틱스(SLNO, 상승률 1597%)와 함께 올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종목에 이름을 올리게 됐네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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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조 ELS 물린 홍콩증시, 올해 19% 급락… 美中 악재 해소가 관건

    중국과 미국발 악재가 겹치면서 홍콩 증시가 역사적 침체에 빠졌다. 올해 들어서만 주가지수가 20% 가까이 빠지면서 글로벌 주요 증시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홍콩 당국이 세금을 깎아주며 증시 부양에 나섰지만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홍콩, 전례 없는 증시 침체올해 초 20,000 선에서 출발했던 홍콩 항셍지수는 급락을 거듭해 16,000 선으로 내려앉았다. 국내에서 판매된 주가연계증권(ELS)이 주로 기초자산으로 삼는 H지수의 올해 하락률도 18.8%에 달한다. H지수는 최근 들어 특히 하락 폭이 크다. 13일에도 전날보다 1.13% 떨어진 5,550.90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23일 이후 20일 만에 10%가 빠졌다. 내년 만기를 맞는 은행권 홍콩 ELS 규모는 13조 원에 이른다. 이는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국의 주가지수가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글로벌 증시 호황기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경제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보다 훨씬 나쁜 성과다. 홍콩 증시는 4년 연속 하락세로 1969년 항셍지수가 등장한 이래 최장기 하락이다. 홍콩 증시는 최근 인도에도 따라잡혔다. 세계거래소연맹 집계에 따르면 11월 말 인도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의 시가총액(3조9890억 달러)이 홍콩(3조9840억 달러)을 추월했다. 세계 7위 주식시장 지위를 인도에 뺏긴 것이다. 지난달 28일엔 항셍지수가 대만 자취안지수에 추월당하기까지 했다. 3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홍콩 증시의 부진은 기업공개(IPO)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홍콩의 IPO 규모는 51억 달러로 10년 평균치(310억 달러)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닷컴 버블 붕괴 직후였던 200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중국·미국발 악재 겹쳐 홍콩 증시는 상장사 중 70% 이상이 중국 본토 기업이다. 올해 초만 해도 중국이 제로 코로나에서 벗어나면서 홍콩 증시가 수혜를 볼 거란 전망이 나왔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중국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채 위기가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어서다. 비구이위안 같은 중국 부동산 개발사, 알리바바·메이퇀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이 상장된 홍콩 증시가 직격탄을 맞았다. 첨단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알리바바는 알짜배기 사업부인 클라우드 부문의 분사·상장 계획을 철회해 홍콩 증시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중요한 반도체를 공급받기 어려운 게 철회 이유였다. 중국과 별개인 구조적 요인도 있다. 홍콩은 통화(홍콩 달러) 가치를 미국 달러에 연동하는 페그제를 채택한다. 이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자, 홍콩도 따라서 금리를 16년 만에 최고 수준인 5.75%까지 올려야만 했다. 가뜩이나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 관련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홍콩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유동성을 더 메마르게 만들었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이익은 중국 본토 경기, 이자율은 미국 통화정책 영향을 받는 특이한 구조”가 홍콩증시 부진의 이유라고 설명한다. 중국과 미국 시장 악재가 겹친 셈이다.● 내년엔 반등할 수 있나 올 10월 홍콩 정부는 증시 부양을 위해 2021년 인상했던 주식 거래세를 원상 복구(0.13%→0.10%)하는 세금 감면책을 내놨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주식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올해에만 중소형 증권사 30곳이 문을 닫았다. 홍콩 브라이트스마트증권의 에드먼드 후이 최고경영자는 블룸버그에 “홍콩의 증권사 폐쇄와 해고 물결은 본 것 중 최악”이라고 말했다. 2020년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홍콩의 중국화가 가속화한 것도 홍콩에 대한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무디스는 6일 홍콩의 신용등급 전망치를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본토와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더 긴밀해졌고, 국가보안법으로 자율성이 약화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홍콩 증시가 내년에 반등하려면 미국과 중국발 악재가 해소돼야 한다. 일단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긴축이 끝나간다는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를 예단하긴 어렵다. 중국 경제는 정부가 각종 부양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회복 속도가 아직 더디다. 특히 두 달 연속 소비자물가지수가 하락해 소비 위축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달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미중 갈등이 해소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증권사들은 눈높이를 낮춰 잡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내년 상반기 H지수의 구간을 5,000∼7,000으로 제시했다. NH투자증권 박인금 연구원은 “중국 경기 회복 강도가 약하다”며 H지수의 하한선을 5,400으로 전망했다. 삼성증권 전종규 연구원은 H지수 5,500을 하단으로 제시하면서도 “보수적으로 대응하라”고 당부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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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증권거래소는 유적지? 농담인데 뼈가 있다[딥다이브]

    요즘 부쩍 신경 쓰이는 해외 주식시장이 있습니다. 바로 홍콩. 국내 투자자가 8조원 넘게 투자했다는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만기가 내년 상반기로 다가왔기 때문인데요.홍콩 주식시장은 올해 역사적인 침체를 기록하고 있죠. 부랴부랴 홍콩 정부가 주식 거래세 감면을 포함한 부양책에 나섰지만 도통 약발이 먹히지 않습니다. 증시 침체로 증권사 폐업이 줄이으면서 홍콩의 금융중심지 위상마저 휘청거리는 판국인데요. 오늘은 흔들리는 홍콩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홍콩 거래소가 유적지라고?“홍콩 여행, 아시아 금융중심지 유적지를 꼭 한번 방문해보세요.”지난 10월 국경절엔 중국 SNS 플랫폼(웨이보·샤오홍슈·위챗 등)엔 이런 글과 함께 홍콩 증권거래소가 있는 센트럴 익스체인지 스퀘어의 사진이 줄이어 올라왔습니다. 홍콩 증시 침체로 인해 금융중심지 홍콩이 이젠 진시황릉 병마용처럼 폐허로 남은 ‘옛 유적지’로 전락했다는 조롱인데요.이를 일부 네티즌의 농담쯤으로 치부하고 넘기지 않고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홍콩의 부동산 재벌인 시윙칭 프라퍼티 대표는 “(금융중심지 유적이란 말을) 가벼이 여기고 최선을 다해 살리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 말이 예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고요.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는 ‘송교수’라는 필명의 중국 블로거는 “세계 3대 금융중심지를 건설하는 데 100년 이상 걸렸지만 홍콩이 폐허로 변하는 데는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탄했습니다.급기야 이달 1일 홍콩의 후이칭위 금융서비스 장관은 공식 블로그에 이렇게 반박글을 올렸습니다. “실제 데이터로 판단할 때 홍콩 금융시장은 국제적, 통합적, 성장적이란 특징을 갖고 있으며 ‘세계 금융중심지의 유물’이 되었다는 주장은 전혀 성립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국제 금융중심지로서의 홍콩의 위상은 압력에 의해 무너질 수 있는 높은 건물이나 기념비가 아닙니다.”홍콩 증시, 최악의 성적표홍콩 정부는 질색하지만, 유적지 운운하는 농담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각종 지표가 현재 홍콩 증시의 침체를 여실히 보여주는데요. 몇 가지만 뽑아보자면①홍콩의 대표 지수인 항셍지수는 올해 들어 20% 하락했습니다. 주요 글로벌 주식 지수 중 최악입니다. 일본(니케이225 +27%), 한국(코스피 +13%), 인도(센섹스지수+14%)와 비교해 한참 부진할 뿐 아니라, 중국 본토(상하이종합지수 –4%)보다도 더 크게 떨어졌습니다(11일 기준).②홍콩 항셍지수는 4년 연속 하락세입니다. 이는 항셍지수가 1969년에 공개된 이래, 역사상 가장 긴 하락세입니다. 이전에 3년 연속 하락(2000~2002년)은 있었지만 4년 연속은 처음이죠. 역사적 침체기라 하겠습니다.③홍콩의 IPO(기업공개) 시장은 닷컴버블 붕괴 직후였던 2001년 이후 최악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IPO 규모는 51억 달러로 지난 10년 평균(310억 달러)과 비교해 84%나 감소했습니다. ④홍콩 항셍지수가 대만 가권지수에 추월당했습니다. 11월 28일 가권지수가 31년 만에 처음으로 항셍지수를 앞서간 뒤 항셍지수는 1만6000대로 더 떨어지고, 가권지수는 1만7000대를 유지하면서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죠. 시가총액이나 거래량을 기준으로 하면 당연히 홍콩 증시가 훨씬 앞서지만, 지수 역전 자체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⑤홍콩 증권거래소는 인도에 추월당했습니다. 세계거래소연맹이 집계한 인도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의 전체 시가총액은 11월 말 현재 3조9890억 달러, 홍콩은 3조984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인도 증권거래소가 홍콩을 제치고 세계 7위 시장으로 올라선 겁니다. 이후 12월 들어서도 인도 증시는 호황을 보이며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홍콩 항셍지수는 13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으니 차이는 더 벌어졌을 겁니다.중국과 미국 경제의 악재 종합판이쯤에서 도대체 왜 홍콩증시는 이 모양인지를 따져봐야겠죠.홍콩 증시는 상장사의 70%가 중국 본토 기업으로 구성돼있는데요. 사실 올 초만 해도 홍콩 증시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습니다. 지난해 말 지긋지긋했던 제로 코로나에서 벗어난 중국 경제가 올해는 빠르게 살아날 거라며 해외 IB 들이 앞다퉈 중국·홍콩 증시 낙관론을 펼쳤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실제로는? 보시다시피 완전히 빗나갔습니다.그 이유는 짐작하시는 대로입니다. 일단 중국 경기가 심상찮습니다. 부동산 시장이 급랭으로 대형 부동산 개발사가 디폴트 위기에 빠지면서 부채 위기로 번지고 있죠. 비구이위안을 포함한 주요 중국 부동산 기업이 홍콩 증시에 상장된 터라 그 충격이 특히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중국 소비자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0월과 11월 두 달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는데요. ‘디플레이션’, 즉 물가하락을 동반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집니다. 특히 홍콩 증시엔 알리바바·징둥닷컴·메이투안 같은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이 상장돼있는데요. 전반적으로 소비가 부진한데다, 신흥 강자 핀둬둬(拼多多)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고 있어 어려운 상황입니다(참조).게다가 첨단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은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달 알리바바는 알짜배기 사업부인 클라우드 부문의 분사·상장 계획을 철회해 홍콩 증시에 충격을 안겼는데요.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인해 중요한 칩을 공급받기 어려워진 게 이유였습니다.중국 경제와는 별개로 홍콩만의 어려운 점도 있는데요. 홍콩은 1983년부터 통화(홍콩 달러) 가치를 미국 달러에 연동하는 페그(peg)제를 채택해왔습니다(1 미국 달러=7.75~7.85 홍콩 달러).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무섭게 인상하자 홍콩도 따라서 금리를 5.75%까지 올려야 했는데요. 가뜩이나 외국인 자금 유출로 유동성이 메말라가는 홍콩 금융시장엔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합하자면 중국과 미국 금융시장의 악재가 동시에 겹쳐있는 게 지금 홍콩 증시가 유독 부진한 이유라 하겠습니다.이런 경제 사이클 이슈와는 별도로 해외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점점 홍콩이 중국화되어 가고 있단 점이죠. 2020년 중국은 홍콩 내 반중국 활동을 최대 종신형에 처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이 제정했습니다. 홍콩의 자치권을 부정한 조치였죠. 이는 외국인 투자자가 홍콩에서의 비즈니스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든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지난 5일 중국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강등한 무디스는 연이어 6일엔 홍콩 전망까지 하향 조정했는데요. “중국 본토와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고, 국가보안법 시행으로 자율성이 약화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중국 본토와의 긴밀한 링크는 “오히려 홍콩 강점의 원천”이라고 반박했습니다.도전 받는 금융중심지홍콩은 전체 GDP의 22%를 금융이 차지할 정도로 금융이 경제의 중요한 축입니다. 이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홍콩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죠.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에선 2022년 49개 증권사가 폐업한 데 이어, 올해도 30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거래량이 급감하면서 거래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하던 중소형 증권사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인데요. 홍콩 브라이트스마트증권의 에드몬드 후이 CEO가 “브로커리지 폐쇄와 해고 물결은 내가 본 중 최악”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는 “터널 끝에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는다”고 업계의 우울함을 전했죠.대형 투자은행의 정리해고도 이어집니다. JP모건체이스와 UBS 그룹은 아시아 지역 IB 직원을 수십명 해고했는데, 주로 홍콩 직원들이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IB 업계는 과거엔 ‘주 80시간 근무와 엄청난 보너스’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너무 일거리가 없어서 장기 휴가를 떠나는 고위직이 크게 늘었다고 하죠. 알프스·피오르드 하이킹 여행은 부럽지만, 그들이 돌아왔을 때 일할 자리가 남아있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금융산업이 시들하자 높은 임대료로 악명 높던 홍콩 부동산 시장도 함께 꺾였습니다. 홍콩 주택가격은 6년 만에 최저이고, 사무실 공실률(17.7%)은 2004년 이후 최고치입니다. 또 다른 금융중심지 싱가포르가 중국 부자를 포함한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며 매우 낮은 공실률(3.9%)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이죠.홍콩 정부도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지난 10월엔 2021년 인상했던 주식 거래세를 원상복귀하고(0.13%→0.10%), 비거주자의 주택 취득세를 절반으로 뚝 떨어뜨리는(30→15%) 세금 감면책을 내놨죠. 사실 주식 거래세는 워낙 홍콩 정부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내리기가 쉽지 않았는데도 증시 부양을 위해 과감하게 조치를 취한 건데요. 보시다시피 그리 효과를 보진 못하고 있습니다.전망은 어떨까요. 홍콩이 금융중심지 지위를 조만간 잃을 거라고 볼 결정적 근거는 없지만, 상당히 도전적인 상황인 건 틀림없습니다. 특히 라이벌 싱가포르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죠. 금융허브 지위 유지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홍콩이 더 개방돼야 한다는 조언이 가장 눈에 띄는데요. “중국에만 집중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으로 다각화해 중동과 아세안에서 더 많은 IPO를 유치해야”하고(버나드 챈 우리홍콩재단 회장) “아세안의 인재와 자본에 문을 열어야 할 때”(다릴 응 홍콩-아세안재단 회장)라는 겁니다. 하지만 중국화가 가속화되는 홍콩이 과연 이전의 강점이었던 개방성과 다양성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중국 네티즌들의 ‘유적지’ 조롱은 어쩌면 시진핑 정부를 향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By.딥다이브홍콩 증시에 대한 전망은 썩 좋지 않습니다. 저평가 국면에 있는 건 맞지만, 증시 반등을 위해선 중국 경기 회복과 미국 금리 인하가 모두 필요해 보이는데요. 과연 투자자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느냐도 중요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홍콩 증시가 역사적인 침체에 빠졌습니다. 올해 들어 지수가 20% 빠졌고, IPO 시장은 쪼그라들었습니다.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홍콩을 두고 “세계 금융중심지였던 유적지”라고 조롱합니다. -홍콩 주식시장은 상장된 기업 상당수가 중국 기업인 동시에, 통화는 미국 달러에 연동된 페그제입니다. 중국 경제의 부진과 미국 금리 인상의 악영향을 한꺼번에 받다보니 유독 더 부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형 증권사가 폐업하고 대형사는 정리해고에 나서면서 홍콩 증권가가 흉흉합니다. 부동산 시장도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고요. 정부가 세금 감면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그닥입니다. -홍콩은 싱가포르의 도전을 물리치고 금융중심지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관건은 개방성과 다양성을 지키고 더 확대할 수 있느냐일 겁니다.*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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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흘째 상승한 뉴욕증시…강세론자 목소리 커진다[딥다이브]

    뉴욕증시가 사흘 연속 상승으로 마감했습니다. 다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둔 터라 움직임은 크지 않았는데요. 다우지수 0.43%, S&P500 0.39%, 나스닥 0.20% 상승을 기록했습니다.이날은 올해 미국 증시를 이끌었던 빅7 종목(애플·MS·알파벳·아마존·메타플랫폼스·엔비디아·테슬라)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중소형주로 몰리면서 빅7의 하락을 상쇄했는데요. 최근 들어서 가치주나 중소형주처럼 올해 상승장에서 소외됐던 종목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이 뚜렷해졌습니다.이날 특히 눈에 띄는 종목은 백화점인 메이시스입니다. 이날 하루 주가가 19.44% 급등했는데요. 부동산 투자회사 아크하우스매니지먼트와 자산운용사 브리게이드 캐피탈 매니지먼트가 최근 메이시스 주식을 주당 21달러, 총 58억 달러(약 7조64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는 소식 덕분입니다. 주당 21달러는 지난주 금요일 종가(17.39달러)보다 약 32% 높은 가격이었는데요. 이날 급등으로 메이시스 주가는 20.77달러로 치솟았습니다. 메이시스 측이 이 제안을 어떻게 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이 소식으로 다른 경쟁 소매업체 주가까지 들썩였습니다. 노드스트롬은 7.16%, 콜스는 7.02% 상승했죠.이번주는 12일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12~13일 FOMC 정례회의가 예정돼있습니다. 이번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거라는 전망엔 이견이 없는데요. FOMC가 내놓을 점도표와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발언 내용이 시장의 관심거리입니다.11월 이후 미국 주식의 강세는 2024년 경기 연착륙과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 때문이죠. 블룸버그의 최근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내년 미국 주식이 글로벌주식 수익률을 능가할 것이란 응답(43%)이 글로벌 수익률과 비슷하거나(31%) 그에 못 미칠 것(26%)이란 답변보다 많았습니다.특히 올해 랠리를 정확하게 예측한 오펜하이머 애셋 매니지먼트의 수석전략가 존 스톨츠퍼스는 2024년 S&P500이 5200포인트에 올라설 걸로 전망했죠. 스톨츠퍼스 전략가는 내년에도 올해 증시 강세를 이끈 기술주와 경기순환주(통신서비스, 임의 소비재)가 양호한 성과를 보일 거라고 내다봤습니다.씨티그룹의 스콧 크로너트 애널리스트도 S&P500이 내년에 사상 최고치인 5100을 기록할 걸로 내다봤죠. 섹터 수준의 이익 성장이 지속되면서 메가캡 기술주를 넘어선 랠리를 펼칠 거라는 낙관적 전망입니다.하지만 좀 더 신중한 이들도 있습니다. UBS프라이빗웰스매니지먼트의 그렉 마커스는 연준이 내년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경제 둔화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하죠. 그는 “어떤 경우엔 시장이 지금과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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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는 1.5배속, 책은 요약본…‘시성비’의 경제심리학[딥다이브]

    ‘가성비’라는 말, 이제 익숙하시죠. ‘가격 대비 성능’을 일컫는 이 신조어가 널리 쓰이면서 동아일보 지면 기사에까지 등장한 게 2012년부터인데요. 이 가성비의 원조는 1990년대 후반 경기침체에 빠진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 ‘코스파(Cost Performance의 약자)’였습니다.일본에선 요즘 코스파 못지않게 주목받는 트렌드가 ‘타이파’입니다. ‘Time Performance’의 줄임말로, 번역하자면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쯤 되겠는데요. 지난해 생긴 이 신조어를 두고 최근까지도 심층 분석 기사와 서적 출간이 이어집니다. 그냥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 하겠는데요. 알고 보면 우리에게도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타이파’ 현상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볼 때 혹시 1.2배속, 1.5배속으로 빨리 감기를 하는 편인가요? 보다가 중간 부분을 건너뛴 경험은요?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대신 유튜브의 요약 영상으로 줄거리를 대강 파악해본 적 있나요?아마 ‘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이 꽤 많을 겁니다. 얼마 전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9.9%가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로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니까요.일본 칼럼니스트 이나다 도요시가 지난해 출간한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여기서 꼽은 빨리 감기의 이유가 ‘타이파’이죠.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추가 비용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 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남들과의 대화에 끼어들려면 SNS에서 인기 끄는 콘텐츠의 기본 내용쯤은 웬만큼 파악해둬야 하는데요. 이를 따라잡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세상에 콘텐츠가 넘치는 가운데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많은 걸 보고 싶다’는 생각, 즉 타이파를 추구하게 된 이유입니다.디지털화로 ‘전환’이 너무나 쉬워진 게 그 배경이겠죠. 음악을 예로 들자면 LP판 시절엔 곡을 뛰어넘으며 듣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이후 CD의 등장으로 곡을 건너뛰는 건 한층 쉬워졌지만, 앨범을 바꾸기 위해 CD를 갈아 끼우는 건 여전히 귀찮은 일이었는데요. 지금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곡도, 앨범도, 아티스트도 아주 손쉬운 터치로 한순간에 바꿀 수 있죠. 디지털 도구로 생긴 ‘유연한 소비 능력’이 타이파형 소비를 부추깁니다.그런데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요. 사실 합리와 효율은 인류가 늘 추구하던 바입니다. 그래서 언뜻 생각하기에 타이파는 너무 평범한(또는 당연한) 개념입니다. 간혹 로봇청소기나 밀키트·냉동식품까지 타이파 사례로 언급되기도 하는데요. 솔직히 그게 뭐 그리 새로운 현상인가 싶어 심드렁해지죠.그래서 타이파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오야마대학의 쿠보타 진히코 교수(마케팅학)가 제시한 기준을 참고할 만한데요. 그는 타이파를 추구하는 사람은 크게 두종류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시간이 정말 없어서, 즉 육아나 직장생활로 너무 바빠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사람이고요. 다른 하나는 시간에 쫓기진 않지만 ‘일정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소비하고 즐기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후자, 즉 시간이 있는데도 타이파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는 현상입니다.결말 알고 볼지 말지 정한다이런 타이파 현상의 예를 좀 더 들어볼까요. 일본의 플라이어(Flier)는 모바일 독서 앱인데요. 책 한권을 10분 만에 읽을 수 있도록 요약해서 제공합니다. 주로 경제·경영 관련 서적이나 직장인을 위한 교양서적을 요약해서 텍스트와 음성으로 제공하는데요. ‘6시간 걸릴 독서 시간을 10분으로 줄여준다’는 컨셉입니다. 누적 이용자 수가 110만명에 달할 정도로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죠. 직원 복리후생의 일환으로 플라이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고객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타이파를 추구하는 30~40대가 메인 유저로, 일반적인 비즈니스 서적 독자층인 40~50대보다 10세 정도 젊다”는 게 플라이어측 설명이죠.유튜브에 넘쳐나는 영화·드라마 리뷰 영상도 타이파 트렌드의 전형입니다. 보통 영상을 따서 자막과 나레이션을 붙여 10분 정도로 정리하곤 하죠. 특히 ‘결말 포함’이라고 밝힌 리뷰 영상이 꽤 높은 조회수를 올리는 경우 종종 보는데요. 이런 영상에 저작권 승인을 받았다는 별도 표시가 없다면 그건 저작권을 침해한 영상이라는 거, 알고 계시죠? 아마도 저작권을 침해한 걸 알면서도 보는 시청자도 상당수일 걸로 추정됩니다. 다만 아직까진 콘텐츠 홍보 차원에서 나쁘지 않다고 보고 저작권자가 그냥 두는 경우도 많다는데요. 지난해 일본에선 이런 영상을 제작한 20대 유튜버에게 피해보상금 5억엔을 영화사에 지급하라고 판결한 사례가 있었습니다.책이나 영상 요약본은 일종의 ‘스포일러 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을 보고 괜찮으면, 그때 그 책을 사거나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식이죠. 유튜브 영상 중에서도 1분 이내인 ‘쇼츠’도 비슷합니다. 쇼츠에선 일반 동영상의 흥미로운 포인트만 잘라놓은 게 많은데요. ‘이 영상이 지루해서 시간 낭비일까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쇼츠를 본 뒤 안심하고 원본 영상을 즐기곤 합니다.손해 보지 않기 위한 소비 전략도대체 왜 요즘 소비자들은 스포일러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찾아볼까요. 알 듯 말 듯한데요. 닛세이기초연구소의 히로세 료 연구원이 지난 9월 낸 책 ‘타이파의 경제학’은 이를 자세히 분석해서 소개합니다.일단 가성비(코스파)와 타이파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가성비는 돈에 여유가 없어서, 돈을 유익하게 쓰려고 추구하는 건데요. 타이파는 시간이 없어서도 아니고, 절약한 시간을 유용하게 쓰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심리인가 하면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①손해를 회피하기 위한 소비요즘 소비자들은 돈도, 시간도 손해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만약 기껏 시간을 들였는데 지루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다른 재미있는 걸 소비할 기회를 잃었으니 손해인 거죠. 바로 이 점에서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상당히 리스크가 큰일입니다.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영화에 시간과 돈을 모두 걸어야 하니까요. 특히 영화를 보면서 다른 일(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는다거나)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하죠. 예기치 않은 감정의 기복을 겪어야 한다는 점도 스트레스 요인입니다.그래서 미리 줄거리를 다 알아본 뒤에 영화를 볼지 말지를 정합니다. 책도 요약된 내용을 보고 나서야 읽고요. 그 작품을 사전 정보 없이 처음 접하면서 받게 될 감동 따위는 포기한 거죠. 그래서 히로세 료 연구원은 “콘텐츠가 감상의 대상이 아닌 소비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타이파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완전 영양식’도 이런 심리와 연관됩니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완전 영양식이란 하루에 섭취해야 할 영양소의 3분의 1 이상을 포함하는 빵이나 음료를 말하는데요. 일반적인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는 시간은 줄여주지만 효율(영양소)은 별로이잖아요. 완전 영양식은 영양소 면에서 실패할 염려 없이 조리 시간까지 단축해주죠. 어떤 식품을 사야 할지 헤맬 수고를 줄여주는 겁니다.②소비는 목적이 아닌 수단영화를 2배속으로 보거나 요약본으로 보는 목적은 뭘까요. 히로세 료 연구원에 따르면 이를 소비(시청)함으로써 즐거움과 감동을 얻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닙니다. 바로 주위와의 커뮤니케이션, 즉 대화에 낄 수 있도록 ‘영화를 본 상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소비는 도구일 뿐이고 ‘소비한 상태가 되는 것’이 목적이라는 거죠. 어차피 SNS 트렌드는 너무 빠르게 바뀌니까요.‘남에게 ~한 상태로 인식되고 싶다’는 욕구가 본질인 건데요. 그래서 심지어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조차 타이파로 소비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가 있어도 그의 모든 음악을 다 듣거나 그가 과거에 출연한 작품을 정주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남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추천 리스트’를 보고 쏙쏙 골라서 보거나 듣죠. 그런 건 진짜 팬이 아니라고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의 팬’이라는 정체성으로 남들에게 인식되는 것이기 때문이죠.이런 심리가 공감되시나요? ‘타이파의 경제학’에선 이를 숙제에 비유에 설명하는데요. 보통 숙제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숙제로 학력을 높이는 것, 다른 하나는 숙제를 끝낸 상태로 만들어서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는 것. 첫 번째 목적이라면 숙제에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겠죠. 하지만 후자, 즉 ‘숙제를 끝낸 상태’가 되기 위해서라면 숙제를 붙잡고 끙끙댈 필요가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답을 베끼든, 다른 사람이 대신해주든 빨리 끝내는 게 최고이죠. 바로 이 심리-○○한 상태가 되고 싶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시간 대비 효율을 추구합니다.충성도 낮고 변덕스런 소비자들그런 건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 특징 아니냐고요? 타이파는 젊은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이 고객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2023년 2월)에 따르면, 동영상을 빨리 감기해서 보느냐는 질문에 20대 남성(56.5%) 못지않게 50대 남성(46.9%)도 그렇다고 답했죠. 사실상 전 세대에 퍼진 현상입니다.따라서 타이파를 일부 Z세대 얘기로만 치부하고 방심하는 기업은 위험합니다. 이 흐름을 얼른 따라가야만 하죠. 시간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소비자들에 맞추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답은 아직 찾아가는 중이라서 뚜렷하진 않은데요.쿠보타 교수는 타이파 추구현상을 ‘리퀴드(Liquid) 소비’와 연결 지어 설명합니다. 시간 효율적으로 여러가지를 즐기고 싶어 하는 변덕스러운 소비자 집단이라는 거죠. 좋은 브랜드 물건을 사서 오래 보유하는 걸 추구했던 전통적인 ‘솔리드 소비’와는 정반대 트렌드라 하겠습니다. 보통 기업들은 고객에게 계속 사랑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충성도 낮고 빠르게 변화하고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런 소비자들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데요. 그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고객을 도망칠 수 없게 하려는 ‘락인 효과’는 위험합니다. 그들이 선호하는 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고객과 밀당에 능숙하고 ‘치고 빠지기’를 잘해야 하는 셈입니다. 고객마다 생각하는 ‘시간의 가치’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같은 콘텐츠라도 시간을 최소로만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차분히 마주하는 시간에서 가치를 얻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죠. 유튜브의 경우엔 재생속도를 8단계(0.25배속부터 2배속까지)로 나눴는데요. 유저의 다양한 감상 스타일에 맞춰 대응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이제 기업은 소비자뿐 아니라 직원의 타이파 욕구도 신경 써야 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기사에서 젊은 직장인들이 커리어에서도 타이파를 추구한다며 이직 급증 현상을 다뤘는데요. 젊은 직원(34세 이하)이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견기업이나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경우가 5년 전과 비교해 18배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스타트업에선) 나이에 관계없이 큰일을 맡아 대기업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요. 연공 서열이 확실한 대기업에선 관리자로 성장하기까지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시간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타이파가 나쁘다)는 겁니다. 올해 3월 전기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이직한 28세 직원은 니케이와의 인터뷰에서 “고속도로로 갈아탄 기분이다. 3배의 스피드로 성장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죠. 이런 추세에 맞춰 일부 대기업은 관리자 승진에 필요한 연한을 대폭 줄였다고 합니다. 영화뿐 아니라 인생마저 1.5배속으로 살고 싶은 타이파 현상. 이게 바람직하냐 아니냐, 찬성하느냐 마느냐를 논하는 이들도 많은데요. 그러기엔 이미 우리에게도 현실로 훅 다가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By.딥다이브타이파에 대한 뉴스레터인데 너무 길어 시간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쓰는 내내 조바심이 납니다. 다 읽는 데 너무 오래 걸리겠다 싶은 독자님들을 고려해(고객님이 추구하는 다양한 시간 가치를 존중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영화를 1.5배속으로 빨리 감기 해서 보고, 책 1권을 10분 분량으로 요약한 서비스를 이용하고, 드라마 결말까지 포함된 리뷰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들. 시간 대비 효율성을 추구하는 ‘타이파’, 즉 ‘시성비’ 현상이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시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시간을 아껴 다른 유용한 데 쓰기 위해서도 아니고요. 시간을 소비하는 데 있어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심리입니다. 시간 낭비일지 아닐지 모르는 일에 굳이 뛰어들지 않는 거죠.-무언가를 소비하는 게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소비한 상태’가 되는 게 목적이죠. 영화 감상이 아니라 ‘영화를 본 상태’가 돼서 그 영화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 그것이 타이파 소비가 추구하는 진짜 목적입니다.-충성도 낮고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이런 고객들을 잡기 위해 기업은 더 민첩하고 세심해져야 합니다. 아울러 성장에 있어서도 시간 효율성을 추구하는 젊은 직원들에 맞춰 기업 인사도 달라져야 하겠죠.*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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