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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라 방북 시 재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핵·미사일 과학 기술자 5명 중에 한국 국적의 40대 재일동포 교수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간부와 핵·미사일 기술자 등 모두 22명에 대해 제재 조치를 적용 중이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교토(京都)대 원자로실험소의 변모 준교수는 2월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으며 이와 관련 대학 측의 조사도 이뤄졌다고 한다. 재일동포 2세로 한국 국적인 그는 조사에서 “북한에 간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조치가 이뤄졌는지 모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 교수는 나고야(名古屋)대를 졸업하고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특별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미국 일본 원자력학회에 소속돼 있다. 교토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한 명문대이며 변 교수는 최근 2년 연속으로 일본원자력학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 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는 과학자다. 이 때문에 제재 대상 지정 배경에 국립대의 ‘핵 두뇌’가 북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총련과 밀접한 관계인 ‘김만유과학진흥회’에서 연구 장려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총련 거물이자 북한의 현대식 병원 설립자인 김만유 씨의 이름을 딴 이 재단은 재일 조선인 과학자 지원을 위해 1982년 설립됐다. 2005년 북한에 의약품을 불법 수출한 혐의로 총련 산하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와 함께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변 교수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원자력학회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한국 대학에서 특강을 하는 등 한국을 여러 차례 왕래했다. 하지만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면서 앞으로는 한국 활동에 제약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재일동포 관계자는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는 건 총련 또는 북한과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는 것”이라며 “일본 공안 당국에서 일종의 경고조치를 보낸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본보는 변 교수의 설명을 듣기 위해 전화하고 e메일을 보냈지만 휴일(헌법기념일)이라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일본 우익들은 제재 대상자의 명단을 인터넷에서 공유하며 “재입국 금지 대상을 전체 조선적(광복 후 일본에 남았지만 한국 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재일동포)‘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대낮에 재일동포 할머니, 학생 앞에서 ‘바퀴벌레 조센진(한국인을 낮춰 부르는 말)을 퇴치하자’, ‘구더기 조센진을 내쫓자’라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허용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가나가와(神奈川) 현 가와사키(川崎) 시 ‘후레아이칸(ふれあい館)’에서 최근 만난 재일동포 3세 최강이자 씨(43·사진)는 “지금도 시위대와 대치했던 건널목에 서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며 눈가를 훔쳤다. 후레아이칸은 ‘마음이 통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재일 인권운동가 고(故) 이인하 목사가 주도해 1988년에 만든 다문화 복지시설이다. 직원인 최 씨는 시위대가 지난해 11월과 올 1월 코리아타운에 진입하려 할 때 온몸으로 막았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3월 22일 일본 국회에서 증언했다. 수도권 공업도시인 가와사키 시에서 혐한시위가 시작된 것은 2013년이다. 식민지 시절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들이 자리 잡은 코리아타운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도 지역 주민의 20%가 한국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다. 최 씨는 “시위를 역 근처에서 할 때는 피해 다녔지만 지난해 11월 시위대가 코리아타운 진입을 시도하면서 피할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도쿄(東京)의 한류타운 신오쿠보(新大久保) 대신 가와사키 코리아타운이 우익들의 새 타깃이 된 것이다. 시위대의 언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은 적국이다”, “조센진을 죽이자”는 말을 면전에서 서슴지 않았다. 재일동포 할머니들은 “내 인생을 모두 부정당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최 씨는 “악몽 같던 시간”이라고 몸서리를 쳤다. 15명 남짓한 시위대는 경찰 수백 명과 함께 코리아타운 입구에 도착했다. 이들에 반대하는 ‘카운터 시위대’와 주민 150여 명이 막아섰고 혼란 끝에 시위대는 진로를 바꿨다. 올 1월에는 시위대 60여 명이 다시 진입을 시도했고 주민과 카운터 시위대가 팔짱을 끼고 길에 누워 막았다. 재일동포 학생들은 ‘정의의 편’이라 생각했던 경찰이 시위대를 호위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재일동포들은 시에 대책을 요구했지만 “근거 법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최 씨 등은 단체를 조직하고 서명을 받으며 발로 뛰었고 그 덕분에 혐한시위는 일본 사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회의원들이 가와사키를 방문했고, 여야는 이달 중 국회에서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 금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헤이트스피치가 ‘불법’이라거나 이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없고 처벌 규정도 마련하지 않았다.가와사키=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2014년 여름 히로시마(廣島) 평화기념공원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원폭 돔이었다. 바로 위에서 원폭이 터져 수직으로 핵 폭풍을 맞는 바람에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고 했다. 안에 있던 이들은 전원 즉사. 폭격 직후 사진을 보면 시내에서 이 건물 외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자료실에는 뒤틀린 철문, 구부러진 철근, 납작해진 병 등이 보존돼 있었다. 몇 번이나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아야 할 정도로 참혹했다. 당시 원폭 사용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평화기념공원은 방문자들에게 원폭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히로시마의 인구 35만 명 중 14만 명이 원폭 직후 숨졌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상처다. 히로시마의 가장 큰 행사는 원폭투하일인 8월 6일 열리는 위령식 겸 평화기념식이다. 시장의 큰 임무 중 하나도 핵실험을 한 국가에 항의 편지를 보내는 일이다. 북한도 벌써 몇 번이나 이 편지를 받았다. 공원에는 한반도와 관련된 기념물도 있다. 서편에는 한반도 출신 희생자들을 기리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가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희생자 10%가량은 한반도에서 자발적 또는 강제적으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이면서도 제국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동원된 무기에 희생된 이들의 기막힌 사연. 이들에게 원폭은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이다. 위령비 옆에는 ‘조선오엽’이라는 작은 팻말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한일 대학생들이 양국 우호를 기념하면서 2011년 8월 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방문 당시 팻말 옆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몇 달 전 한국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밤새 나무를 뽑아 갔다고 했다(이후 양국 대학생들이 “악의에 굴하지 않겠다”며 2015년 8월 그 자리에 다시 나무를 심었다). 공원에는 한반도 관련 기념물이 하나 더 있다. 남동쪽에 있는 5m 높이의 시계다. 히로시마 재일동포 중 북송사업에 참가한 이들이 1959년 세운 것이다. 니가타(新潟)를 거쳐 ‘지상낙원’이라던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은 기대와 달리 차별과 박해에 시달렸다. 일본에서 원폭을, 조국에서 냉대를 경험한 이들 역시 기막힌 역사의 희생자들이다. 최근 일본 언론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5월 말 히로시마를 방문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 여야를 막론하고 환영 일색이다. 미국 내 여론을 감안해 ‘사과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고 한다. 피해자들도 “핵 없는 세상을 만든다면 사과하지 않아도 좋다”는 반응이다. 임기 내내 ‘핵 없는 세상’을 외치던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돔 앞에서 연설을 한다면 그 자체로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다만 한국에선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일본을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며 우려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면 꼭 발길을 돌려 한국인 위령비도 찾아갔으면 한다. 말 그대로 ‘가장 낮은 곳’에서 원폭의 끔찍한 피해를 당한 이들이 잠든 곳이기 때문이다. 위령비를 찾을 경우 옆에 심어진 나무에도 잠깐 시선을 옮겨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역사를 뒤로 돌리고 싶어 하는 일부 일본 우익들에 맞서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젊은이들과 손잡고 미래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는, 그런 의지까지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30년 이상 한국은 내 마음의 한가운데 있었다. 한국에서나 한일 간에 문제가 생기면 내 일처럼 마음이 아팠다.”(2013년 1월 26일자 동아일보 인터뷰) 동아일보에 기명 칼럼 ‘와카미야의 동경소고(東京小考)’를 집필하던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사진) 전 아사히신문 주필이 28일 타계했다. 향년 68세. 와카미야 전 주필은 이날 오후 베이징(北京) 시내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8, 29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심포지엄에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던 그가 오전 일정에 나오지 않자 동행한 일본 국제교류센터 직원이 방에 찾아가 보니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한다. 사인(死因)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중국 공안당국이 조사하고 있다. 중국 공안은 “외상이 없어 병사로 보인다”는 소견을 냈다. 비보를 접한 가족들은 이날 밤 급히 중국으로 출발했다. 일본 내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언론인으로 꼽히는 고인은 194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70년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 아사히신문에 입사했다. 요코하마·나가노 지국과 정치부 등을 거쳤다.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9년과 1980년 취재차 한국과 북한을 방문한 후였다. 그는 상반된 두 경험을 하면서 “한반도 문제는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한국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그는 이듬해인 1981년 9월부터 1년 동안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한국어를 배웠다. 연수 후에는 논설위원, 정치부장, 논설주간, 주필 등을 지냈다. 1879년 아사히신문 창간 이후 6번째 주필이었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든 한일 관계 진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고인은 1995년 아사히신문에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제안하는 사설을 썼고 이는 공동 개최가 실현되는 밑거름이 됐다. 2005년에는 ‘한국의 독도 영유를 인정하되 섬 이름을 우정의 섬으로 하자’는 몽상(夢想)을 밝힌 칼럼을 썼다. 그는 이 칼럼 때문에 우익들의 표적이 됐고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았다. 2006년에는 요미우리신문의 보수 논조를 이끌어 온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회장과의 대담을 기획해 아사히신문사가 발행하는 월간지 ‘론자(論座)’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함께 비판해 화제가 됐다. 2013년 정년을 맞은 후에는 다시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 와서 한국어를 공부했으며 동서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지도했다. 지난해에는 저서 ‘전후 70년 보수의 아시아관’으로 일본의 권위 있는 학술상인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상을 수상했다. 2010년부터 동아일보에 ‘와카미야의 동경소고’라는 고정 칼럼을 게재하며 한일 관계에 대한 다양한 제언을 해 왔다. 고인은 24일에도 한국에서 한중일 화해, 공존, 공영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을 해 안타까움이 더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이미 싸움은 시작됐다. 이번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헌법 개정은 안 된다는 생각으로 힘을 내고 있다.” 26일 저녁 일본 도쿄(東京) 미나토(港) 구 닛쇼홀. 우익 성향 헌법학자 모모치 아키라(百地章) 니혼대 교수가 이렇게 말하자 객석에 앉은 700여 명의 청중이 힘차게 박수를 쳤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이 주최한 이날 행사의 주제는 ‘지금이야말로 헌법 개정의 시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추진하는 헌법 개정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일본 내 우익보수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 강단에 선 우익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 씨는 현행 헌법에 대해 “국제사회의 선의(善意)에 매달리라고 하는데 이는 국가의 책임을 절반 이상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중국이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 일본인으로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어려울 정도의 상황이 되고 있다”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원인이) 일본을 전적으로 부정한 헌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최근 발생한 구마모토(熊本)지진을 거론하며 긴급사태 발생 때 국민기본권을 제한하는 조항을 헌법에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외 반발 때문에 전쟁 포기와 무력 보유 금지를 담은 헌법 9조를 고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만큼 먼저 긴급사태 조항을 넣는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모모치 교수는 “중의원에 이미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의 개헌 세력이 있고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오사카유신회가 약진하면 3분의 2를 넘을 것이 틀림없다”며 “전후 최대의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한다. 최대 난관은 국민투표인 만큼 본격적으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아비루 루이(阿比留瑠比) 산케이신문 정치부 편집위원은 “아베 총리는 올해가 정말 중요한 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총리는 자민당 내에 ‘내가 헌법 개정을 하겠다’고 나설 배짱 있는 사람은 자신 외에는 없다는 식으로도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중의원 의장을 ‘극좌’라고 불렀다. 개헌에 부정적인 제1야당 민진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에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 언제나 포인트가 어긋나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객석에서는 폭소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연 중 상영된 짧은 영상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등장했고 “전후 최대의 위기”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현행 헌법에 대해서는 초안을 만든 연합국군총사령부(GHQ) 민정국 담당자 중에 헌법 전문가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민정국에 공산주의자가 많았는데 그들의 의견이 포함됐고,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는 미국인들이 미국의 독립선언, 스탈린 헌법 등을 짜깁기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일본 최대 영향력을 가진 우익단체 일본회의의 대표인 다쿠보 다다에(田久保忠衛) 교린대 명예교수는 “일중, 미중 관계가 소원한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며 “만약 미중 관계가 개선되면 일본에 헌법 개정 안 해도 된다, 강해질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헌법 개정의 움직임을 본격화하겠다는 우익 세력의 강한 의지를 표출하는 장이었다. 입구에선 안내 직원들이 ‘일본 헌법의 100가지 쟁점’이라는 기사가 실린 산케이 계열 월간지 ‘정론’ 특별판을 나눠줬다.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대부분인 청중이 환호하고 박수를 쳐 강연장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연료소비효율 조작으로 파문을 일으킨 미쓰비시자동차의 마스코 오사무(益子修)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아이카와 데쓰로(相川哲郞) 사장이 조만간 사임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도 26일(현지 시간) 미쓰비시차에 연비 실험을 추가로 실시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명령하는 등 사태는 해외로 확산되고 있다. 미쓰비시차 자체 조사 결과 25년 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연비를 측정한 것으로 드러나 ‘회사가 존립 위기에 몰렸다’는 관측이 잇따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27일 “마스코 회장이 일부 계열 판매회사 및 부품업체에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외부 변호사 등이 참여해 연비 조작 경위를 조사하는 특별위원회가 7월경 보고서를 정리하면 이를 받아들이고 사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마스코 회장은 미쓰비시상사 출신으로 2005년 미쓰비시차의 사장이 된 후 10년 이상 경영을 지휘해 왔다. 신문은 “당분간 아이카와 사장이 내부 조사와 고객 보상 등의 업무를 주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아이카와 사장에 대해서도 “연비 조작 사태의 책임을 지고 특별위원회의 조사가 마무리되고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 사임할 방침을 굳혔다”고 전했다. 아이카와 사장은 전날 국토교통성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는 회사의 존속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잘못된 방법으로 연비를 측정한 것은 1991년부터 25년 동안”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에서는 미쓰비시차가 자동차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미쓰비시차는 2000년과 2004년에도 리콜 사항을 숨겨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적이 있어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리콜 사태 때 미쓰비시차를 도왔던 최대 주주 미쓰비시중공업의 미야나가 슌이치(宮永俊一) 사장은 25일 기자회견에서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미쓰비시차 지원설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에는 미쓰비시 차량이 1316대 등록돼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연비 조작 파문에 휩싸인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의 마스코 오사무(益子修)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아이카와 데쓰로(相川哲郞) 사장이 결국 사임할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언론이 27일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27일 “마스코 회장이 이미 일부 계열 판매회사 및 부품업체에는 사의를 전달한 것 같다”고 전했다. 마스코 회장은 연비 조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변호사 등으로 구성한 특별위원회가 7월 경 조사보고서를 완성하면 사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마스코 회장은 미쓰비시상사 출신으로 2005년 미쓰비시자동차 상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이후 10년 이상 경영을 지휘해왔다. 신문은 “당분간 연비조작 조사와 고객 보상 등의 업무는 아이카와 사장이 주도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아이카와 사장에 대해서도 “연비조작 사건의 책임을 지고 특별위원회의 조사가 마무리되고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 사임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아이카와 사장은 전날 국토교통성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는 회사의 존속이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고 밝혔으나 진퇴에 대해서는 “조사위원회의 보고를 받기 전까지는 사장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만 밝혔다. 일본 언론은 “25년 동안 이어진 연비 부정으로 미쓰비시자동차가 존립 위기에 놓였다”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미쓰비시는 이미 2000년과 2004년에도 리콜을 숨겨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어 더 이상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대주주인 미쓰비시중공업도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지원에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올해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전쟁할 마음은 없다. (그런데) 외교 쪽 사람(외무성 당국자 등)이 미국 측에 접근하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이민다. 욱해서 미사일을 쏘고 있다”고 말했다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요리사를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69·사진) 씨가 26일 전했다. 12∼23일 북한을 방문한 뒤 전날 저녁 중국 베이징(北京)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온 후지모토 씨는 평양에 도착한 12일 저녁 평양시내 연회시설에서 김정은과 그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등과 3시간 동안 저녁식사를 했으며 이 자리에서 김정은이 이같이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 인터뷰에서 밝혔다. 12일은 북한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가 3일 대변인 담화를 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 제재 결의안(2270호)이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북-미 대화 재개 의사를 밝힌 후 9일 뒤다. 후지모토 씨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의 만찬 발언은 미국에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 위한 의도된 발언으로 평가된다. 또 북한이 15일 중거리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하기 3일 전이어서 이후 자신들의 도발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려는 속셈도 엿보인다. 후지모토 씨는 “숙소인 고려호텔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김 제1비서가 직접 벤츠를 운전하고 와서 놀랐다”고 밝혔다. 1989년부터 김정일의 전속요리사로 일했던 후지모토 씨는 2001년 아내와 딸을 북한에 남겨 두고 혼자 탈북해 2003년 ‘김정일의 요리사’라는 책을 냈다. 후지모토 씨는 탈북 이후 한동안 암살 우려에 시달렸다. 그러다 김정은의 메시지를 받고 2012년 다시 북한을 방문해 가족들을 만났고 이후 북한을 드나들 수 있게 됐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미쓰비시의 황태자.” 20일 연료소비효율 조작을 시인하고 퇴진 위기에 몰린 아이카와 데쓰로(相川哲郞·62·사진) 미쓰비시자동차 사장이 2014년 2월 취임했을 때 일본 언론은 그를 ‘황태자’라고 불렀다. ‘미쓰비시의 제왕(帝王)’이라 불렸던 아이카와 겐타로(相川賢太郎) 전 미쓰비시중공업 회장의 장남이기 때문이다. 아이카와 전 회장은 전후 재벌 해체로 오너가 없는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사장과 회장직을 합쳐 10년(1989∼99년) 동안 회사를 경영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아이카와이즘’이라는 단어도 남겼다. 아이카와 사장은 아버지 영향을 받아 도쿄대에서 선박기계를 공부했지만 도쿄모터쇼에서 본 미쓰비시의 ‘미라주’ 초기 모델에 감명받아 1978년 미쓰비시자동차에 입사했다. 미쓰비시자동차가 중공업에서 분리되고 나서 8년 뒤였다. 아버지 후광을 업고 입사 때부터 주목받던 그는 2001년 수석엔지니어를 맡아 경차 ‘eK왜건’을 선보이며 돌풍을 일으켰다. 심플한 디자인과 우수한 연비를 갖췄고 안전성을 강화했지만 가격은 91만 엔(약 950만 원·현재 환율 기준)밖에 안 됐다. eK왜건은 첫달 2만8000대를 주문받으며 창사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 치웠다. 당시는 회사가 30년 가까이 브레이크 클러치 연료탱크 등 온갖 결함을 숨기며 리콜 신고를 하지 않아 위기에 몰린 직후여서 그는 일약 ‘미쓰비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후 최연소 상무에 오른 그는 2004년 회사가 다시 리콜을 은폐한 사실이 적발되고 최대 주주인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자금 지원 중단을 선언했을 때 상품개발본부장으로 전면에 나섰다. 그는 엔지니어들이 줄줄이 짐을 쌀 때도 “미쓰비시의 DNA를 가진 차를 개발하고 싶다”며 구조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회사는 계열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났고 이후 계열사 모임의 리더 격인 미쓰비시중공업이 최대 주주가 됐다. 10년 동안 회사 최일선에서 함께 위기를 극복한 그가 사장에 취임할 때는 사내에서 반대가 하나도 없었다. 별명은 ‘황태자’였지만 겸손한 성격 덕이었다. 하지만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성격의 아이카와 사장에게 회사 체질을 확 뜯어고칠 만한 역량은 부족했다. 아이카와 사장은 “직원들에게 부담을 준 적이 없다”고 했지만 신형 eK왜건 개발진은 L당 29.2km 이상이라는 연비 목표에 집착했고 연비를 5∼10% 과장한 차를 시장에 내놓게 됐다. 2002년부터 회사 내부에서 상습적으로 이뤄지던 연비 조작은 도를 넘어 아예 달려 보지도 않고 책상 위에서 계산해 제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조작이 사장 취임 전부터 있었다는 점에서 억울할지 모르지만 그의 자동차 인생 38년은 이제 불명예 퇴진으로 끝나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회사가 안정적이었다면 좋은 리더였을 것”이라는 한 종업원의 말을 전했다. 위기 돌파형이라기보다는 안정적인 경영을 우선적으로 추구했다는 지적이다. 일본 언론 추산에 따르면 연비를 잘못된 방법으로 측정한 차량은 27종, 200만 대 이상에 달한다. 아이카와 사장은 자신의 대표작인 eK왜건의 연비마저 조작된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닛산에 납품한 차에서 연비 조작이 발견돼 닛산과의 협력 관계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미쓰비시 계열사들 모임인 ‘금요회’에서 도와주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가 많다. 엔지니어 경영자의 쓸쓸한 퇴장만이 기다리고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고양이는 야행성이니 늦게까지 일해도 괜찮다?” 일본에서 고양이 카페의 영업시간 연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25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현재 동물애호법에 근거한 환경성 규칙에는 강아지 등을 가게에 전시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8시~오후 8시로 한정돼 있다. 애완동물의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하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2012년 만들어진 규정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야행성’이라는 이유로 ‘영업활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고양이 카페 업계의 불만이 나오자, 환경성은 한시적으로 5월 말까지 고양이 카페의 영업시간을 10시로 연장했다. 일본에는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314개의 고양이 카페가 있으며 이 중 27%인 86개 점포가 오후 8시 이후에도 영업을 하고 있다. 환경성은 6월 이후에도 고양이 카페의 밤 영업을 허용한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세웠으며, 이달 27일 이를 확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은 “환경성이 배설물을 통해 고양이의 스트레스를 측정한 결과 오후 8시까지 영업하는 카페의 고양이와 그 이후까지 영업하는 카페의 고양이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고양이 애호가 사이에서는 “고양이도 늦게까지 오래 일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나이든 고양이의 경우 스트레스가 건강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양이는 원래 ‘야행성’이 아니라 ‘황혼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수의행동학 전문의인 이리마지리 마미(入交眞巳) 일본수의생명과학대 강사는 “고양이는 새벽과 해질 무렵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물”이라며 “밤에는 푹 자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27일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제2차 세계대전 피폭지인 일본 히로시마(廣島)를 찾는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2일 보도했다. 히로시마평화공원에 헌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라는 역사적 사실을 희석시키고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역사 왜곡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신문은 복수의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다음 달 26, 27일 일본 미에(三重) 현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직후 히로시마를 방문한다고 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과 동행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유럽 방문을 마치고 워싱턴에 돌아오는 대로 이를 정식으로 결정해 다음 달 초 일본에 전달할 방침이다. 임기 내내 ‘핵무기 없는 세상’을 추구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에서의 비핵화 연설을 정치적 업적으로 남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산 스텔스기가 22일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이로서 일본은 미국 러시아 중국에 이어 유인 스텔스기 비행에 성공한 4번째 국가가 됐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이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 ‘X-2’는 이날 오전 아이치(愛知) 현 나고야(名古屋) 공항에서 굉음과 함께 날아올랐다. 전투기는 30분가량 기체의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안정성을 확인한 뒤 기후(岐阜) 현 기후기지에 무사히 착륙했다. X-2는 전파를 흡수하는 탄소섬유 등으로 만들어져 적군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다. 개발비용으로 2009년부터 약 400억 엔(약 4100억 원)이 투입됐으며 길이 14.2m, 폭 9.1m, 높이 4.5m로 비교적 소형이지만 고출력 엔진을 장착해 기동성이 크다. 미쓰비시중공업 등은 시험비행을 한 차례 더 하고 정부에 X-2를 납품할 방침이다. 이번 스텔스기 개발로 일본의 무기 수출 사업이 한층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시험 비행은) 미래 전투기를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며 “항공기 산업 전체의 기술 혁신 및 다른 분야에의 활용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4개 차종, 62만5000대의 연비를 조작했다고 발표한 미쓰비시자동차가 실제로는 더 많은 차의 연비를 조작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22일 미쓰비시가 ‘i-MiEV’에서도 일본 국내법과 다르게 연비 데이터를 측정한 사실이 확인됐으며 ‘RVR’, ‘아웃랜더’, ‘파제로’, ‘미니캡 미브’ 등 4개 차종도 잘못된 방법으로 측정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쓰비시가 발표한 4개 차종 외에도 약 10개 차종에 대해 최소한 2002년부터 법에 정해진 방법과 다르게 연비를 측정해 왔다”고 전했다. 미쓰비시는 국토교통성에서 실제 주행이 아니라 검사장의 장비로 연비를 측정하고 여기에 업체에서 제출한 주행저항값을 반영한다는 점을 악용해 거짓 수치를 제출했다. 주행저항값은 자동차가 달릴 때 받는 공기 저항과 도로 마찰을 수치화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연비 조작의 배경에 경차 업계의 치열한 경쟁과 리터 당30km의 연비를 달성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앞으로 연비 측정 방식을 실제 주행을 통해 측정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쓰비시자동차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수습에 1조 원 넘는 비용이 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연비가 조작된 차량을 산 구입자들은 “판매한 차량을 되사가라”며 항의를 쏟아내고 있으며 주가도 연일 하락세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1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물을 보냈다. NHK 등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의 봄 제사 첫날인 이날 ‘내각 총리대신’ 이름으로 ‘마사카키(眞신)’라고 불리는 공물을 바쳤다고 보도했다. 다음 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일본에서 열리는 것을 감안해 주변국의 반발이 큰 직접 참배 대신 공물을 보내는 간접 참배로 자신의 보수 성향을 국내 지지 세력에게 확인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공금을 쓰지 않았고 사인(私人)으로서 공물을 보낸 것이기 때문에 정부로서 할 말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1차 내각 당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을 ‘통한의 극치’라고 말해 왔던 아베 총리는 재집권 1년 뒤인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한국과 중국이 강력히 반발했고, 미국에서조차 “아베 총리가 미국의 따귀를 때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아베 총리가 공물을 바친 이날 아베 총리의 측근인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총리 보좌관과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납치문제대책본부장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22일에는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일본 국회의원들이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한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는 아베 총리가 과거 식민침탈과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범죄자를 합사한 야스쿠니신사에 또다시 공물을 헌납한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이 침략역사를 철저하게 직시하고 깊이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일본 미쓰비시자동차가 4개 차종 총 62만5000대의 연료소비효율을 조작해 정부에 신고했다고 20일 발표했다. 미쓰비시는 “다른 차량도 국내법과 다른 시험 방법으로 연비를 측정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혀 파장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아이카와 데쓰로(相川哲郞) 사장은 이날 오후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국토교통성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교통성에 제출한 연비 테스트 데이터에서 연비를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한 부정한 조작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연비가 조작된 차는 2013년 6월부터 생산돼 미쓰비시 이름으로 팔린 ‘eK왜건’ ‘eK스페이스’ 15만7000대와 닛산자동차에 납품한 ‘데이즈’ ‘데이즈 룩스’ 46만8000대 등이다. 연비 조작 사실은 납품 모델의 연비가 표시된 것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닛산이 미쓰비시에 확인을 요청하면서 드러났다. 나카오 류고(中尾龍吾) 부사장은 조작 경위에 대해 “사내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부정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정상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연비가 5∼10%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카와 사장은 “고객과 모든 주주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해당 차량의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며 보상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미쓰비시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조사 과정에서 다른 국내 판매 차량도 국내 법규가 정한 것과 다른 방법으로 시험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혀 다른 차종에서도 광범위하게 연비 조작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어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해외시장에 판매한 차량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은 “미쓰비시가 과거에도 대규모 리콜로 이어질 결함을 두 차례나 은폐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1917년부터 자동차를 만든 100년 역사의 자동차회사다. 현대자동차가 1975년 국산차 1호인 ‘포니’를 생산할 때 기술을 전수했다. 일본에서는 도요타 혼다 닛산에 이은 마이너 그룹으로 분류되지만 2014년 연결 기준으로 매출이 2조1800억 엔(약 22조7000억 원)에 이르고 전 세계에 종업원 3만여 명이 있다. 지난해 폴크스바겐의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스캔들로 반사 이익을 얻었던 일본자동차업계에서도 연비 조작 사건이 터져 미쓰비시뿐 아니라 일본차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날 미쓰비시자동차 주가는 연비 조작 관련 내용이 발표될 것이란 소식이 퍼지면서 전날보다 15.16% 떨어진 733엔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만에 사라진 시가총액이 약 1조3000억 원에 이른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현 일대에서 발생한 강진은 일본의 정치 경제 일정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개헌 구상에도 타격을 입힐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아베 총리는 8%인 소비세를 예정대로 10%로 올리지 않는 대신 이를 빌미로 중의원을 해산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이후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중·참의원 합동선거에서 승리해 개헌 작업에 돌입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문제는 대규모 지진이 발생해 소비세 인상 연기를 이유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중·참의원 합동선거를 치르기가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이번 지진에 따른 일본 전체의 경제적 손실액이 660억 달러(약 75조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일본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선거보다는 지진 피해 복구와 부흥에 매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진 피해자들의 부담을 고려할 때 동시 선거는 어렵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7월 참의원 선거는 예정대로 진행되겠지만 이 경우에도 개헌론을 부각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선거 후 개헌 작업을 본격화하기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규슈 지진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심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국회는 지진 복구 중에도 TPP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총선 전에 법안을 통과시켜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겠다는 아베 총리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라며 논의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민주당 정권이 미숙한 초동 대처로 자멸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일단 복구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여론은 아베 총리의 초반 위기대처 능력에 ‘합격점’을 줬다. 마이니치신문은 19일 자체 여론조사(16, 17일 실시) 결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적절했다’는 답변이 65%라고 보도했다. ‘적절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13%에 그쳤다. 아베 내각 지지율도 44%로 소폭(2%포인트) 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원 물자가 신속하게 피해민에게 도달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라 아베 정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베 총리도 18일 국회에서 “(구호물품이) 대피소에 도착하지 않고 막혀 있는 곳이 있다”고 인정했다. 한편 이번 지진으로 사망자는 19일까지 47명, 부상자는 1135명에 이른다. 이날 오전 구마모토 현의 한 주택 주차장에선 차 안에서 생활하던 50대 여성이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폐혈관에 피가 뭉친 ‘패혈전색전증’으로 숨졌다. 좁은 차 안에 오래 머무르다 이른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 생겨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진은 600회를 넘었다. 이날 구마모토 공항의 일부 비행편 운항이 재개되는 등 복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아직 11만 명 이상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16일 오전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역 앞에는 ‘지진으로 모든 구간 운행 중단’이라는 역장 명의의 안내문이 붙었다. 여진 우려로 역이 폐쇄됐지만 직원들은 평소처럼 제복 차림에 모자를 쓰고 역 앞에 책상과 의자를 놓고 앉아 주민들의 문의에 답하느라 바빴다. 두꺼운 열차 안내책자를 책상 위에 두고 한 답변은 똑같았다. “죄송하지만 해당 구간은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역에서 출발하는 모든 열차가 운행 중단된 상태입니다. 언제 운행이 재개될지 알 수 없습니다.” 지진이 마치 자신의 탓인 양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그들의 앞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흥분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중교통이 일절 중단된 상황이어서 취재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택시뿐이었다. 백발에 제복을 차려입은 택시 운전사는 ‘지진이 났는데 괜찮으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릇이 좀 깨지고 가구도 파손됐지만 다행히 가족들은 다치지 않았다. 지진보험에 들어 있으니 나중에 보상을 받으면 된다. 일단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미터기를 눌렀고 일부 도로가 끊어져 돌아가게 되자 “죄송하다”며 목적지에 도착하기 한참 전에 미터기를 껐다. 지진으로 신호등이 고장 난 사거리에선 헬멧을 쓴 경찰들이 수신호로 차량을 인도했다. 호루라기 한 번 불지 않았지만 경찰 신호를 어기는 차량은 없었다. 자기 자리를 꿋꿋이 지키며 무질서와 혼란을 막은 ‘제복의 힘’은 급박한 재난 상황에서도 발휘됐다. 규모 7.3의 강진이 일어난 직후 기자가 묵은 호텔 직원은 “건물 붕괴 우려가 있으니 주차장으로 모이라”고 방송을 한 뒤 방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고객의 피난 여부를 확인했다. 유니폼을 입고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불안한 표정을 짓던 투숙객들도 조금씩 평정을 되찾았다. ‘제복의 힘’은 사명감과 매뉴얼을 통해 반복된 훈련에서 나온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등 재해 때마다 활약했던 자위대는 이번에도 최대 피해지인 마시키(益城) 정에 투입돼 실종자를 수색하고 구호물자를 날랐다. 간이목욕탕을 만들고 기와를 치우는 노력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얻자 정부는 투입 규모를 20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늘렸다. 기차역 직원도, 택시 운전사도, 호텔 직원도 지진 피해자였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재해로 생긴 커다란 공백을 메웠다. 국민들은 한마디 불평 없이 따랐다. 일본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구마모토=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어, 어 엇!” 16일 오전 1시 25분. 어둠 속에서 침대가 심하게 흔들렸다. 몸이 어딘가로 내던져지는 느낌이었다. ‘지진이다!’라는 생각에 눈을 떠 일어나려 했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었다. 굴러떨어지듯 내려와 침대 옆에 몸을 낮췄다. 스마트폰에선 일본 기상청에서 보낸 경보가 다급하게 울렸다. “지진입니다. 지진입니다.” 14일 밤 구마모토(熊本) 현에서 발생한 지진을 취재하기 위해 급하게 현지 출장을 온 기자는 16일 새벽 구마모토 시의 한 호텔에서 규모 7.3의 강진을 직접 경험했다. 이틀 전 발생한 규모 6.5의 지진은 전진(前震)이었고 이날 새벽에 더욱 강력한 본진(本震)이 발생했다. 평소 배운 대로 우선 ‘탁자 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부터 퍼뜩 들었다. 하지만 방 전체가 놀이공원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흔들렸다. 나는 한 걸음조차 뗄 수가 없었다. 진동이 수십 초 이어지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침대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밖에 없었다. 이러다 정말 어떻게 되는 게 아니냐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가족 얼굴부터 떠올랐다. 진동이 조금 수그러지자 호텔 복도 스피커에서 “침착하게 주차장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불을 켜니 방 안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라디에이터, 의자, 쓰레기통이 넘어졌고 찻잔과 책 등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노트북컴퓨터 등 필수품을 챙겼다. 세탁실 벽에 붙어 있던 건조기가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수도관이 파손돼 복도 천장 곳곳에서 물도 줄줄 떨어졌다. 유니폼 차림의 호텔 직원들이 침착하게 안내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직원들은 당황하는 손님들과 달리 얼굴에 미소까지 지으며 대피 장소로 이동할 것을 권했다. 반복된 훈련에 따른 것이었다. 직원이 투숙객들에게 “건물과 나무로부터 떨어지라”고 얘기하는 순간 다시 땅이 강하게 흔들렸다. 도저히 서 있기 힘들어 손을 땅에 짚으며 주저앉았다. 주차장에서 모포를 덮고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땅은 계속 흔들렸다. 도저히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새벽 4시경 동이 트기 직전에야 안내에 따라 일부는 로비로, 일부는 방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은 이후에도 큰 진동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확인했다. 날이 밝은 뒤 본 구마모토 시내는 마치 전쟁터 같았다. 오래된 목조주택들은 지붕이나 벽 일부가 무너진 곳이 수두룩했다. 건물 전체가 휘어지거나 비틀려 손만 대면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운 빌딩도 적잖았다. 전봇대는 기울어졌고, 고장 난 신호등 대신 경찰들이 사거리마다 수신호로 교통을 통제했다. 도로는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버렸다. 흙이 무너지거나 커다란 바위가 굴러 내려와 도로를 막아선 곳도 많았다. 구마모토 공항은 전면 폐쇄됐고 여진 우려로 신칸센과 고속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구마모토 역 앞에는 해외 관광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진을 치고 있었다. 역 근무자들은 “구마모토를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차를 빌리거나 택시를 타는 것뿐”이라고 안내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기다림에 지친 일부 여행자는 아예 역 앞 길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역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 커플은 “전날 신칸센을 타고 오다 비상 탈출해 택시로 시내까지 들어와야 했다. 지진에 정전까지 겹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울상을 지었다.구마모토=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하는 일본과 남미 에콰도르에서 강진이 잇따르면서 ‘도미노 지진’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밤 규모 6.5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현에서 16일 오전 1시 25분경 규모 7.3의 강진이 또다시 발생해 사망자가 늘고 있다. 18일 0시 현재 최소 42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다. 부상자 1037명 가운데 중상자가 200명 이상이다. 여진이 440차례 이상 계속되면서 집을 떠나 피난 생활을 하는 이재민도 18만 명을 넘어섰다. 구마모토 현과 오이타(大分) 현에서 약 40만 가구의 수도 공급이 차단됐고 10만 가구가 정전, 가스 공급 차단을 겪고 있다. 산사태로 도로가 차단됐고 철도 공항 등 교통도 마비됐다. 일본 정부는 현지에 자위대원 2만5000명을 파견했다. 주일미군도 구호 작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7일 피해가 큰 구마모토 현에 대해 격심재해(특별재해) 지역으로 조기 지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구마모토 강진 이후 환태평양 조산대 국가인 에콰도르에서도 16일 오후 6시 58분경(한국 시간 17일 오전 8시 58분경)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서북쪽으로 170km 떨어진 태평양 해안 지점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18일 0시(한국 시간) 현재 이번 지진으로 23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또 CNN은 15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했다.구마모토=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이세형 기자}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하는 일본과 남미 에콰도르에서 강진이 잇따르면서 ‘도미노 지진’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밤 규모 6.5의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 현에서 16일 오전 1시 25분경 규모 7.3의 강진이 또다시 발생해 사망자가 늘고 있다. 18일 0시 현재 최소 42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다. 부상자 1037명 가운데 중상자가 200명 이상이다. 여진이 440차례 이상 계속되면서 집을 떠나 피난 생활을 하는 이재민도 20만 명에 이른다. 구마모토 현과 오이타(大分) 현에서 약 40만 가구의 수도 공급이 차단됐고 10만 가구가 정전, 가스 공급 차단을 겪고 있다. 산사태로 도로가 차단됐고 철도 공항 등 교통도 마비됐다. 일본 정부는 현지에 자위대원 2만5000명을 파견했다. 주일미군도 구호 작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7일 피해가 큰 구마모토 현에 대해 격심재해(특별재해) 지역으로 조기 지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구마모토 강진 이후 환태평양조산대 국가인 에콰도르에서도 16일 오후 6시 58분경(현지 시간·한국 시간 17일 오전 8시 58분경)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서북쪽으로 170km 떨어진 태평양 해안 지점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진원 깊이는 19.2km인 것으로 관측됐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18일 0시(한국 시간) 현재 이번 지진으로 233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또 CNN은 15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구마모토=장원재특파원 peacechaos@donga.com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