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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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용 기자입니다.

parky@donga.com

취재분야

2026-02-23~2026-03-25
칼럼100%
  • ‘부동산 싱크홀’에 빠진 ‘박 과장’ 구하기 [오늘과 내일/박용]

    때론 영화가 현실의 아픈 지점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지난주 개봉해 6일 만에 100만 관객을 모은 재난코미디 영화 ‘싱크홀’(지반 환경에 변화가 생겨 갑자기 땅이 꺼지는 현상)은 어렵게 장만한 집이 500m 깊은 땅속으로 꺼진다는 ‘웃픈’ 상상력으로 눈길을 끈다. 영화는 고생 끝에 서울 마포에 신축 빌라를 장만한 ‘박 과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대한민국에 이런 무주택자 캐릭터는 너무 흔하다. 수도권의 자가 보유율이 53%이니 거리에서 만난 가장 둘 중 하나는 무주택자다. 박 과장이 11년 만에 서울에 집을 마련한다는 설정도 현실과 부합한다. 치솟는 집값으로 수도권의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배수는 2016년 6.7배에서 지난해 8.0배로 높아졌다. 박 과장이 수도권에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8년을 모아야 한다는 얘긴데, 월 소득의 18.6%가 매월 임차료로 들어가는 수도권의 평범한 샐러리맨들에겐 ‘재난’ 같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과장의 선택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다. 집을 얻는 대신 빚쟁이가 되는 또 다른 ‘재난’을 선택한 것이다. 현실도 그렇다. 지난달 말 현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40조2000억 원으로 한 달 만에 9조7000억 원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대출의 73%를 차지한다. 상품시장에선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고 공급은 늘어난다. 하지만 과시적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명품이나 부동산처럼 공급이 제한된 시장에선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더 줄 것으로 보고 추가 수요가 따라붙는다. 실제로 집값이 치솟는데도, ‘내 집이 꼭 필요하다’고 응답한 국민이 2019년 84.1%에서 지난해 87.7%로 높아졌다. 공급 제한과 집값 상승 신호가 깜빡거리면 언제라도 시장에 뛰어들 준비가 된 ‘부동산시장의 예비군’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생산량이 제한된 한정판을 만들거나 가격 인상설을 흘리고 무례하게 고객을 줄 세우는 상술을 부리는 건 이런 시장에서 공급을 통제하면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집값이 하염없이 오른 뒤에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고 공급의 어려움을 뒤늦게 실토한 정부에 집값 급등의 근본 책임이 있다. 정부가 만든 부동산 싱크홀에 빠져 음악이 흘러나오면 시장의 힘에 떠밀려 무대에서 춤을 출 수밖에 없는 무주택자에게 정부 당국자가 집값 고점 운운하며 겁을 주는 건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해법 역시 시장에 있다. 시장의 힘을 역이용해 시장이 원하는 곳에 공공이든 민간이든 주택 공급을 충분히 늘린다는 일관된 신호를 줘야 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이 누그러질 것이다. 집 때문에 생긴 박 과장의 재난은 이제 시작이다. 영화에선 그 귀한 집이 집들이 날 장대비 속에서 생긴 싱크홀 때문에 땅속으로 추락한다. 집값 급락이야말로 영끌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동산시장의 싱크홀이다. 3월 말 현재 가계 및 기업에 대한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2343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1.2% 증가했다. 부동산시장에선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더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곧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 대출 부실이 커질 가능성도 있는데, 집값을 잡고 시장도 연착륙시킬 수 있을까. 정부가 ‘부동산 싱크홀’에 빠진 박 과장들을 협박하고 훈계할 처지가 아니다.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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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용]공정도, 경제도 놓친 35조 K추경

    4472만 명에게 25만 원씩 나눠주기로 한 5차 재난지원금(국민지원금)의 발화점은 문재인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2월 간담회였다. 대통령은 이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 지원금, 국민 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다섯 달 뒤인 23일 국회는 국민지원금이 포함된 34조9000억 원의 역대 최대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통과시켰다. 한쪽에선 ‘4차 대유행’을 잡기 위해 방역을 강화해놓고 다른 쪽에선 소비 진작에 방점이 찍힌 국민지원금을 뿌리겠다는 거다. 코로나19 진정을 전제로 국민지원금을 거론한 대통령의 2월 발언과도 거리가 멀다. 이번 추경은 묘하다.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후하고 피해자들에겐 상대적으로 박하다. 국민 88%에게 국민지원금을 나눠주는 데 11조 원, 거리 두기 격상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 178만 명에겐 절반도 안 되는 5조3000억 원을 배정했다. 피해 유무와 상관없이 뿌리는 ‘상생 국민지원금’은 받으면 좋고 못 받으면 억울한 ‘공돈’으로 변질됐다. 공정성 논란을 자초했다. 11조 원은 그렇게 뿌릴 돈이 아니다. 한 해 국방비(52조8000억 원)의 약 5분의 1이며 백신도 접종하지 못하고 파병을 나간 청해부대가 소속된 해군과 공군의 1년 예산을 모두 합한 금액(10조6300억 원)보다도 많다. 이 돈을 보태면 대학들의 연구개발비(2019년 기준 5조278억 원)를 세 배로 늘려 세계 일류 대학과 경쟁시킬 수 있고, 지난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30만 명에게 준 생계급여(5조5962억 원)를 올해 세 배로 늘려줄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등으로 직장을 잃은 실업자 170만3000명에게 준 구직급여(11조8556억 원)를 감당할 수 있는 큰돈이다. 그런 목돈을 4472만 명에게 뿌리면 푼돈처럼 효과가 줄어든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 국민에게 나눠준 1차 재난지원금은 사용 가능 업종에서 전체 투입예산 대비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를 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원래 쓰려던 돈은 저축이나 투자를 하고 정부 돈을 쓰다 보니 소비 효과가 제한적이다. 현금 뿌리기보다 피해를 본 자영업자를 선별해 직접 지원하는 것이 가성비가 좋다는 뜻이다. 방역에 동참한 자영업자들은 빚을 내 근근이 버티고 있다. 3월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은 832조 원으로, 1년 전보다 132조 원(18.8%) 불었다. 연내 금리 인상도 예상된다. 당장은 정부 조치로 대출 원리금 상환이 연기됐지만,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다. 밀린 청구서들이 날아오는 코로나19 이후가 더 두렵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가 얼마 전 내년도 최저임금을 5.1% 인상한 것과 관련해 “코로나19가 끝난 후의 ‘정상 상태’를 가정해 결정했다”고 말했을 때 자영업자들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4.6%로 독일(9.6%), 미국(6.1%)은 물론이고 일본(10.0%)보다 훨씬 높다.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건 한국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국민 4472만 명에게 뿌릴 국민지원금 11조 원을 보태서 피해를 본 178만 명의 소상공인에게 나눠준다면 현재(1인당 평균 297만 원)의 약 3배인 평균 915만 원을 줄 수도 있다. 거리 두기 단계를 격상하더라도 덜 미안하고, 그들이 밀린 빚을 갚고 재기하게 거들 수 있다. 그런데도 선거에 정신이 팔린 정치권과 피해자를 선별할 능력이 모자란 정부가 현금 뿌리는 ‘헬리콥터 추경’을 반복하며 아까운 재원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가.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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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요금 고지서엔 ‘자유’가 없다[오늘과 내일/박용]

    한국전력에 걸려오는 전기요금 민원의 상당수는 전기와 관련이 없는 TV 수신료에 대한 불만이다. KBS가 TV 보유 가정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핑계로 1994년부터 전기요금 고지서에 수신료를 함께 청구하는 통합징수 제도가 시작됐다. 모든 사람이 시청자라고 가정하고 수신료를 일방적으로 청구한 다음에 TV가 없다는 걸 입증한 사람만 면제하는 ‘옵트아웃(배제선택)’ 방식이다. “TV가 없다”는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구닥다리 방식이어서 민원이 발생한다.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독립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TV가 없는데도 수신료를 내라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고 한전에 항의한다. 지난해 역대 최다인 3만6273가구가 수신료를 환불받은 건 1인 가구 증가 등 인구구조 변화와 디지털 매체 증가, 시대 변화에 뒤처진 징수 방식 등과 관련이 있다. 이런데도 KBS 이사회가 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800원으로 52% 올려야겠다고 의결한 건 패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힘겨워하는 국민들에게 33조 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까지 편성해 지원금 등을 주는 마당에 한 달에 1300원씩, 연간 수천억 원이 넘는 돈을 수신료로 더 걷겠다는 건가. 이달부터는 월 200kWh 이하 전력을 사용하는 625만 가구의 주택용 전기요금 필수사용공제 할인액이 월 4000원에서 2000원으로 줄어든다. 2000원이 오르는 셈이다. 여기에다 국회가 KBS가 요구한 수신료 인상안(1300원)까지 덜컥 통과시켜 주면 이들은 한 달에 3300원을 더 내야 한다. 소비자물가가 치솟아 전기요금마저 2개 분기 연속 동결됐는데 같은 고지서의 수신료만 이렇게 파격적으로 올릴 수 있는가. 수신료와 전기요금의 불편한 동거는 관련이 없는 두 요금을 한 틀에서 움직이게 만든다. KBS가 수신료를 올리려면 직접 소비자 선택을 받는 게 정석이다. 두 요금을 한 번에 떼어내기 어렵다면 전기요금 고지서로 받는 수신료는 최대한 내리고, 나머지는 KBS가 직접 소비자들을 설득해 걷게 할 수도 있다.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함께 내는 게 편한 사람만 전기요금 고지서로 청구하게 선택권을 주는 ‘옵트인(승인선택)’ 방식으로 바꾸면 불만이 줄어들 것이다. 전기요금 고지서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숨은 요금이 또 있다.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사용으로 늘어난 신재생에너지 의무이행 비용이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 석탄발전 감축 비용 등의 기후환경 요금이다. 가정에서 내는 전기요금의 약 4.9%를 차지한다. 전력 생산비가 저렴한 원전을 줄이고 비싼 신재생에너지를 더 쓰면 비용이 늘어난다. 탈원전과 탄소제로를 서둘러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각성한 ‘친환경 엘리트’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좀더 부담할 수 있게 ‘녹색 프리미엄’ 선택권을 확대하는 건 어떤가. 통신요금은 다양한 요금제가 있는데, 가정용 전기요금만 요금제 선택권이 없다. 전력 공급과 수요에 따라 요금제를 다양하게 만들고 이용자들이 생활 방식에 맞게 선택하게 해주면 어떨까. 전력 수요도 분산되고 소비자 부담도 덜어줄 수 있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의존도가 커진 제주는 육지와 달리 낮에 전기요금이 싸다. 제주는 9월부터 시간대에 따라 요금을 달리하는 선택요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제주도처럼 스마트 계량기를 보급하면 못 할 일도 아니다. 소비자 선택권을 박탈한 공급자 중심의 행정편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뜯어고칠 때가 됐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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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용]영국이 골목사장님 MBA 보내는 이유

    미국 뉴욕 맨해튼 소호엔 2010년 창업한 온라인 안경점 ‘와비파커’ 뉴욕 본사가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고 시력과 얼굴에 맞는 맞춤형 안경을 집으로 보내주는 ‘D2C(생산자 직접판매)’ 모델을 내놓아 성공한 혁신기업이다. 창업자들은 명문 경영학석사(MBA) 과정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재학생들이었다. 여행 중 안경을 잃어버렸다가 비싼 안경값 때문에 한 학기를 안경 없이 보낸 고통이 창업의 동기였다. 젊은 MBA 학생들의 도전이 독점기업이 장악한 미 안경시장을 바꾼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정부가 사회적 타협제도인 ‘한걸음 모델’을 통해 온라인에서 도수 있는 안경을 살 수 있게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규제가 풀리면 소비자는 편해지고 시장은 더 커질 수 있으나 기존 안경점들은 와비파커 창업자들처럼 최신 기술과 MBA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도전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기존 사업자의 변화 의지와 혁신 역량이 없다면 규제 완화는 갈등을 부르고 한국 사회는 또 주저앉게 된다. 이런 점에서 골목사장님들을 ‘디지털 혁신 전사’로 키우려는 영국의 파격적 실험에 눈길이 간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은 서비스업종 상·하위 10% 격차가 독일 프랑스 미국에 비해 80% 이상 크다. 영세 서비스업종의 낮은 생산성이 영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억 파운드(약 3154억 원)를 투입해 3월부터 골목사장님들을 위한 12주짜리 미니 MBA 과정인 ‘성장을 위한 지원(Help to Grow)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경영역량이 높아지면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게 영국 정부의 분석이다. 미니 MBA 과정은 사업으로 바쁜 사장님들의 일정을 고려해 마케팅과 재무 등에 대한 2시간짜리 온라인 강의 8개와 강의실에서 배우는 MBA식 ‘케이스 스터디’ 4개 세션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다 1 대 1 사업계획 멘토링, 동료 및 졸업생 교류 프로그램 등을 지원한다. 1년 이상 사업을 하고 있는 고용원 5∼249명의 중소사업장 경영자가 지원할 수 있는데,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등록금의 90%만 국가가 지원한다. 이 프로그램은 영국의 침체된 지역과 지방대학에도 기회다. 35개 영국 경영대학원들이 참여할 계획이다. 이미 10개 프로그램이 학생 모집을 시작했고 4곳은 정원을 채웠다. 영국 정부는 올가을부터 골목사장님들이 사업을 디지털로 전환할 수 있도록 온라인 무료 상담을 해주고 소프트웨어 구매비의 절반을 지원하는 사업도 시작한다. 영국의 파격 실험이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자영업 비중이 24.6%로 미국(6.1%), 일본(10.0%), 독일(9.6%)보다 훨씬 높고 영세 자영업자의 낮은 생산성, 지역과 지방대학의 침체를 고민하고 있는 한국이 배울 점이 있다. 한국 자영업자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어렵다. 과거와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는데 최저임금만 올리면 골목사장님들은 직원을 줄이거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하지 않는 기본소득이나 전 국민 재난지원금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니 경영난을 겪는 자영업자들을 집중 지원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해법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게 생산적이다.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한 ‘물고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당장은 필요해도 중장기적으로는 변화에 적응하고 도전에 응전하는 생존기술인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다. 영국은 그 길로 이미 들어섰다.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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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용]‘경제안보시대’, 오원철 수석이라면 어땠을까

    요즘 한국 산업정책은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키를 쥐고 끌고 가는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회의를 열고 삼성전자까지 불렀다. 한국 기업들로부터 44조 원 규모의 투자 약속까지 받아내고 ‘생큐’를 연발했다. 수천억 원의 소송비가 들어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을 중재한 것도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법정다툼을 벌이는 데도 정부 관리들은 ‘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외면했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기업 간 분쟁에 정부가 일일이 개입할 필요는 없지만 국가 전략산업과 주력기업이 연루된 일은 다르다. 미국은 일자리와 미래산업 경쟁력이 걸린 사안으로 보고 대통령까지 팔을 걷고 나선 게 달랐다. 저쪽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나섰는데 우린 산업통상자원부 실장 주재 반도체 대책회의를 반복할 만큼 산업정책의 감도 떨어진다. 용인 반도체 공장에 산업용수를 대는 것도 개별 기업이 할 일이라고 뒷짐 지다가 뒤늦게 K반도체 전략에 끼워 넣었다. 반도체 인력도 향후 10년간 3만6000명 육성한다면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난감한 대학 내 정원 조정과 임시방편의 계약학과 신설 방안을 내놓았다. 한국 산업정책이 잘 돌아갔다면 기업 투자가 쇄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1∼2020년 국내 제조업의 해외직접투자(ODI)는 연평균 12조4000억 원,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직접투자(FDI)는 4조9000억 원에 그쳤다. 한국 기업은 떠나고, 외국 기업은 이보다 덜 투자하니 매년 4만9000여 개, 10년간 총 49만1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셈이고 지난해 실업률을 4.0%에서 3.7%로 낮출 기회를 잃었다는 분석이다. 대한민국은 1960, 70년대 한정된 자원으로도 정부 주도 중장기 산업정책을 통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시장을 중시하고 국가 간 경계가 희미해진 세계화 시대엔 빛을 잃었지만 최근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자국 우선주의가 득세하는 ‘경제안보 시대’엔 정부 역할이 다시 중요해지고 있다. 산업부 전신인 상공부 출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끈 고(故) 오원철 대통령 제2경제수석이 기업 분쟁이나 전략산업 투자를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뭉개는 후배들을 봤다면 죽비를 쳤을 것이다. 5년 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는 “산업을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건 정부에서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말”이라며 “공업을 발전시킬 책임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1960년대 상공부 공업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거쳐 1970년대 중화학공업기획단장을 맡아 한국 중화학기업의 초석을 놓았다. 전략 산업을 위한 예산을 따로 마련하는 ‘목돈 전략’과 거점 지역에 기업들을 집중시키는 ‘클러스터 전략’으로 한국 산업을 일으켰다. 서울대 공대 출신의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인 그는 산업부 후배 공무원들에게 강의를 하다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강연에 참석한 산업부 공무원 30여 명 중 이공계 출신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한 명에 불과했다. 그는 “전부 행정만 하는 사람들만 뽑아놓고 기술을 모르니까 나 같은 사람을 불러놓고 강의시키는 게 아니냐”고 화를 버럭 냈다고 한다. 경제안보 시대라는 지금은 산업과 기술을 아는 관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30일은 오 수석이 세상을 떠난 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요즘 같으면 그의 통찰과 열정이 그리울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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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용]대한민국엔 ‘화이자’가 없다

    미국의 힘을 짧은 시간에 느끼려면 뉴욕 중심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42번가를 따라 걸어 보라고 한다. 18세기 옥수수 밭이던 동쪽 끝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축인 유엔 본부가 들어섰다. 서쪽으로 더 가면 20세기 초 미국 자동차산업의 성장과 마천루 시대를 상징하는 크라이슬러 빌딩, 세계 최대의 철도역 그랜드센트럴터미널, 지식강국의 저력이 녹아 있는 뉴욕공공도서관, 뮤지컬 등 문화산업 거점 타임스스퀘어와 극장지구로 이어진다. 서쪽 끝 허드슨강변엔 미 국방력의 상징인 항공모함과 전투기, 우주기술의 결정체인 우주왕복선이 전시된 해양항공우주박물관(46번가)이 있다. 길 하나에서 세계를 수호하는 유엔, 지식을 지키는 도서관, 미국을 보호하는 항공모함,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우주왕복선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 뉴욕 42번가다.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미국의 대표 제약사 화이자 본사도 이 길에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자 백신 개발에 착수한 지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접종까지 성공한 그 회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방문해 “치료제, 백신 개발만큼은 끝을 보라”고 당부하고, 우리 정부가 지원을 위한 범정부위원회까지 만들어도 안 된 일을 그들은 해냈다. 어떻게 했을까. 알베르트 부를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근호에서 비결을 소개했다. 화이자는 지난해 3월 ‘메신저RNA(mRNA)’ 기술을 보유한 독일의 바이오엔테크와 손을 잡았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코드를 합성하는 백신 신기술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개발 기간을 단축한 것이다. 또 백신 후보 물질을 차례차례 테스트하는 기존 방식을 버리고 여러 후보를 동시에 연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돈은 훨씬 더 들어도 시간은 아낄 수 있었다. 수조 원의 개발비가 들어가는 일인데도 미국과 독일 정부의 지원은 거절했다. 부를라 CEO는 “과학자들이 재무적 걱정을 하지 않게 해줬고 과도한 관료주의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했다. 정부 돈을 받지 않아 보고나 설명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미 정부는 대신 최대 3년이 걸리는 임상 2상과 최대 4년이 걸리는 3상을 동시에 진행하게 해달라는 화이자의 요청을 들어줬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돈 때문만은 아니다. 부를라 CEO는 “민간 부문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고 했다. 사회 문제 해결을 정부와 공공 부문에 의존하는 우리에겐 생소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1962년 ‘대기업과 국가적 책임’ 논문에서 “대기업이 기술 혁신이나 사업 방식의 혁신에 더해 국가 정책의 혁신을 이끄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최근엔 경영전략 대가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가 민간 기업의 창의적 혁신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도 성장하는 ‘공유가치 창출(CSV)’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당장 접종할 백신이 모자란 것도 문제지만 대대적인 투자와 혁신으로 사회 문제를 앞장서 해결하는 화이자와 같은 대기업을 키우고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는 게 더 아쉽다. 민간의 창의성과 혁신을 국가 경영에 접목하고 그들을 국가 리더십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인식 전환과 사회적 합의 없이 미래 경쟁력은커녕 시민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42번가의 기적’을 만든 화이자가 그 길을 보여준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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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용]정권 말 한국 vs 집권 초 미국

    2년 전인 2019년 3월 19일(현지 시간) 특파원으로 일하며 SK이노베이션의 북미 첫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의 첫 삽을 뜨는 현장을 취재했다. 기공식은 미국 조지아주 북동부 커머스시 외곽 허허벌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장에서 조지아 출신의 대가수 레이 찰스가 부른 1960년대 노래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내 마음속의 조지아)가 흘러나왔을 때 참석자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지역 인사들과 주민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2600여 개 미래 일자리를 따낸 감격에 젖었다. 당시 SK가 조지아주를 선택한 데는 기업 투자와 일자리를 끌어오려는 조지아주 공무원들의 열정이 한몫했다. 현지 시간 새벽에 한국에서 연락을 해도 그들은 1시간 만에 주지사의 결재까지 받아왔다. 새 공장에서 일할 인력을 기르겠다며 인재 육성 프로그램도 가동했다. 그렇게 얻은 귀한 일자리가 이번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으로 날아갈 위기에 놓였을 때 주지사와 정치인들이 똘똘 뭉쳐 ‘일자리 구명 운동’을 펼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에선 기업은 때려야 표가 된다는 분위기지만, 마스크조차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제조업 기반을 잃어버린 미국에선 기업 일자리는 표가 된다. 정파를 떠나 일자리가 있는 곳이라면 무섭게 덤벼드는 게 미 정치인들이다. 이번 LG와 SK 배터리 소송에서도 그랬다. 블룸버그뉴스는 미 12개 부처와 자동차 회사가 매일 회의를 열고 두 한국 회사의 분쟁을 중재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 무역대표부(USTR)까지 동원해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두고 ‘바이든의 승리’라고 규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슬리피 조’(졸린 조)라고 비웃던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석 달간의 행보에선 오히려 속도감이 느껴진다. 미 정보기술(IT) 대기업에 대한 유럽의 디지털세 공세에 대응하고 일자리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법인세 공조를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를 ‘21세기 편자의 못’과 같은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더니 반도체 인프라 재건과 공급대란 해결을 위해 삼성전자 등 글로벌 회사들을 불러 모았다. 벌써 바이든의 석 달이 ‘관세폭탄’으로 세계를 위협하던 트럼프의 4년보다 낫다는 말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이 바이든 대통령의 대담함을 배워야 한다”는 칼럼까지 실었다. 4년의 국정 경험이 있는 문재인 정부는 어떤가. 차량용 반도체가 없어 국내 자동차 공장이 멈출 상황이 될 때까지 두 달간 산업통상자원부 1급 실장 주재 회의 2번을 열었다. 뒤늦게 대만 반도체협회 등을 붙들고 반도체 공급을 사정하고 있지만 뾰족한 돌파구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선 아직도 기업이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성장 파트너가 아니라 개혁 대상이라는 인식도 강하다. 반도체 대란과 글로벌 법인세 공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글로벌 경제 새판 짜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아남으려면 사자는 가장 느린 영양보다 빨라야 하고, 영양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 세계는 기업과 일자리를 놓고 ‘의자 뺏기’ 경쟁에 돌입했는데 선거다, 개각이다 해서 느슨하게 움직이다간 먹던 밥그릇조차 지키기 어렵다. 우린 정권 말이지만 저쪽은 집권 초인 ‘한말미초(韓末美初)’의 시기다. 바이든 행정부에 보폭을 맞추려면 경제부처 수장들은 다시 출발점에 섰다는 생각으로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한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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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박용]‘무저갱 세대’는 왜 분노하는가

    굳이 분류하자면 필자는 ‘외환위기 세대’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1998년 2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실업대란이 찾아왔다. 대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던 직원도 내보내는 판에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갈 곳은 없었다. 죄 없이 극심한 취업난의 ‘무저갱(無底坑·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빨려 들어간 듯 젊은이들은 하릴없이 허우적거렸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게 죄인가. 23년이 지난 올봄 청년들도 억울하다. 2월 취업준비생은 역대 최대인 85만 명. 취업난의 무저갱에 갇힌 이들의 약 90%가 2030세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핑계는 대지 말자. 그전에도 청년들이 원하는 괜찮은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책임자들은 큰소리만 쳤다. 인턴 몇 명만 뽑아도 수백 명이 몰려드는데 소득주도성장을 한답시고 최저임금도 한껏 올리고, 정규직 전환도 밀어붙이고, 주 52시간제까지 도입했지만 약속했던 소득주도성장은 오지 않았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755달러로 2019년에 이어 2년 연속 뒷걸음질쳤다.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마저 수출 경쟁력과 일자리 보호를 외치는 각자도생 시대에 국제 공조도 없는 일국 소득주도성장론은 칠판 경제학자들의 탁상공론이다.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자영업 비중이 유독 높은 한국 경제에 깊은 내상을 줄 것이라는 경고에도 고집을 피우더니 만성화된 청년 실업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조차 안 한다. 그러면서 제 일자리들은 잘도 챙긴다. 소득주도성장의 불씨를 댕겼던 장하성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지내고 뜬금없는 주중 대사로 새 일자리를 얻어 갔다. 경제수석을 지낸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요즘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후보로 거론된다. 최근엔 “코로나 세대가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세대의 전철을 밟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모든 청년에게 최소 2년간 일자리를 정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청년일자리보장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랏돈으로,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시즌2라도 하라는 건가. 코로나 세대가 정말 걱정이라면 진작 할 수 있는 일은 왜 안 했나. 일자리가 없다지만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에선 쓸 만한 개발자가 없어 난리다. 한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는 “중국 알리페이에만 개발자가 1만6000명이다. 우린 네이버와 카카오를 합쳐도 1만 명이 안 된다.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하나.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 달라고 10여 년 전부터 얘기했는데 달라진 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아예 IT 기업들이 돈을 모아 실력 좋은 개발자를 길러내는 세계 수준의 사설 교육기관이라도 만들자는 말들이 판교에서 나온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청산거래 관할권을 두고 수장들까지 나서서 험한 말을 주고받아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작 핀테크 업계는 교통순경을 누가 할 건지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금융위가 만든 이 법안으로 혁신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막는 규제가 하나 더 늘까 걱정이다. 금융과 관련 없는 부수 업무를 할 때도 금융당국에 먼저 신고하고 하라는 건 혁신을 막는 역주행 규제라며 분노한다. 청년들은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당국자들은 제 일이 아니면 귀담아듣지 않는다. 내 일자리만 소중한 ‘일자리 내로남불’ 시대, 무저갱 세대의 분노는 깊어만 간다.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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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몰랐던 미국 땅 ‘미나리들’[오늘과 내일/박용]

    “어린 딸아이 둘을 데리고 이 땅에 와서 엄청난 고생 끝에 겨우 살 만하니 이런 뚱딴지같은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 뉴욕에 무섭게 퍼지던 지난해 5월. 70대 한인 동포 A 씨가 뉴욕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던 필자에게 e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2개월 정도 집에서 꼼짝 못 하고 그냥 있다. 설사를 계속하며 걷기도 힘들다. (한인 의사들이 마련한) 항체검사라도 받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A 씨는 30대 초반 미국에 왔다. 마흔 줄에 들어선 딸이 둘이나 있지만 생각이 너무 달라 평소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증상이 있어도 코로나19 진단조차 받기 어렵던 뉴욕에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안타까웠다. 그저 동포 의사들이 운영하는 코로나19 상담 전화번호와 조태열 전 주유엔 대사가 부친 조지훈 시인의 시 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고 했던 ‘병(病)에게’를 적어 답장을 보낸 게 전부였다. 다행히 A 씨는 지난해 10월 “응급실에서 3번 검사를 받았는데 모두 음성이 나왔다”고 반가운 메일을 보내왔다. A 씨와 같은 이민 1세대들 중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이들이 꽤 있지만, 일부는 힘든 이민 생활 중 가족이 흩어져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병원 응급실에서 숨진 B 씨도 그랬다.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뉴욕주의 무연고 묘지에 묻혔다. 코로나19 위기는 특히 저소득층 한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뉴욕한인회가 지난해 기금을 모아 어려운 한인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줬는데, 금세 동이 났다. 한인회 관계자는 “‘한인회가 나눠준 식품 쿠폰으로 남편 제사상을 어렵게 차렸다’는 감사 인사를 받고 울컥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과 위협도 늘고 있다. 지난해 5월 말 뉴욕시에서 대규모 약탈 피해가 일어났을 때 한인 가게들도 피해를 입었다. 소호지역에서 옷가게를 하는 한인 2세 조너선 최 씨(25)는 “글로벌 브랜드 매장은 피해를 감수할 수 있겠지만 우린 밤을 새워서 가게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한인 동포들의 사연은 지금도 메일함에 날아든다. 어린 딸을 데리고 이민을 온 C 씨는 “20대 딸이 4년 전 재생불량성빈혈로 골수 이식을 받았는데 이제 혈액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돈이 되는 건 뭐든지 팔아서 버티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민 1세대 비중이 줄고 있는 미 한인 사회에서는 일본계처럼 ‘민족성 소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 다행인 점은 우리말은 서툴러도 한국인의 문화와 자부심을 잊지 않고 있는 2, 3세가 많다는 점이다. K팝, 한국 화장품 등을 미국에 유통하는 사업가나 할머니에게 배운 한국 음식을 뉴욕에 소개하는 젊은 한인들이다. 한인 이민 가정의 가족애를 다룬 영화 ‘미나리’로 올해 미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리 아이작 정 감독(43)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미국에 뿌리내린 우리들의 ‘미나리들’이다. 한국은 그들을 잊고 살지 몰라도 그들은 그렇지 않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2019년 3월 1일(현지 시간) 정오 미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주변 광장에서 동포 4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운동을 재연했다. 뉴욕 한복판에서 큰 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글썽거리던 동포들이 기억난다. 미국 땅에 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며 고국을 잊지 않고 있는 미나리들에게 우린 알게 모르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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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소득 주술사들[오늘과 내일/박용]

    37년 전 미국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는 지금 봐도 섬뜩하다. 2029년 미래에서 온 살인로봇 ‘T-800’의 위협에서 주인공을 지키려고 역시 미래에서 온 인류가 맞서 싸운다. 로봇이 초래한 핵전쟁, 살인을 서슴지 않는 무자비한 사이보그는 로봇이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켰다. 인류를 핵전쟁으로 몰고 간 ‘스카이넷’이 인간이 발명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이라는 대목에선 소름이 돋는다. 기계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은 꽤 오래됐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영국 방직공들은 방직기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을 벌였다. 물리학자가 사람 모양의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만든 괴물이 등장하는 영국 작가 메리 셸리의 괴기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이 무렵 나왔다. 최근 기본소득 논쟁은 이런 테크노포비아(기술공포증)에서 비롯됐다. AI와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일자리 없는 미래’는 인류의 숙명이니 받아들이고, 정부가 국민에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게 미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기본소득 아이디어다. 그걸 수입해 2017년 대선 쟁점으로 만들고 코로나19 위기에서 재난지원금으로 포장해 되네 마네 하는 게 한국의 기본소득 논쟁이다. ‘일자리 터미네이터’라는 비난과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의 표적이 되고 싶지 않은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이야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기 좋은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전에 일자리 없는 미래를 피할 대책을 내놓아야 할 정치인들이 한술 더 떠 당장 해보자고 덤비는 건 무모하다. 세계화와 자동화로 중산층 일자리가 줄고 있다지만 ‘기본소득’이라는 백기를 들 때는 아직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자동화 가능성이 70% 이상인 일자리가 회원국 전체 평균(14%)보다 낮은 약 10%다. 당장은 신기술이 한국에서 급격한 고용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OECD의 판단이다. 로봇과의 일자리 전쟁에서 반격할 시간이 우리에겐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일자리는 생계유지 도구만도 아니다. 청년들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수단이다. 올해 국방비(52조 원)의 약 6배인 300조 원을 투입해 전 국민에게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쥐여 줘도 제대로 된 일자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폭등하는 집값과 취업난 속에서 좌절하는 청년들의 분노를 달랠 길이 없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더라도 수백만 개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기업 출장의 20%가 영원히 사라지고 노동자의 20%가 재택근무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미 실업자의 3분의 2가 직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새 일자리와 전직 교육, 직업 훈련프로그램이 필요해진다는 걸 뜻한다. OECD는 신기술의 위협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차이가 큰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세계적으로 실업이 급증하는 코로나19 위기에도 파업하는 대기업 노조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새 시대에 맞는 노사협력 모델이 절실하다. 우리 대학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어떤가. 새 일자리로 가는 길을 청년들에게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해묵은 노동시장 구조개혁 과제는 놔두고 ‘기본소득 될 때까지’를 무한 반복하는 건 비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겠다는 주술사처럼 터무니없다. 진짜 ‘일자리 터미네이터’는 로봇이 아니다. 피할 수 있는 미래를 피하지 못하게 하고, 가능한 해법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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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F는 ‘거버너 리’까지 알고 있었다[오늘과 내일/박용]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을 만난 경제부처 관료들은 한국 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그들을 보고 놀랐다. IMF 측 인사들은 확장 재정정책과 관련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정치적 논란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거버너 리(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안다”고 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이 지사가 “전쟁 중 수술비 아낀 것은 수준 낮은 자린고비임을 인증하는 것”이라고 기획재정부를 비판한 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논쟁을 벌인 일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선거를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유력 대선주자들의 발언은 국제사회도 주시한다. 재정당국에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는 건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재정과 관련해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도 국제사회의 불신을 키운다.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주장하는 이 지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가부채라는 건 서류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자들은 동의하기 힘든 얘기다. 국가부채가 많은 나라는 신용등급이 낮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렵다. 이자도 많이 물어야 한다. 기업이나 금융회사, 시민들의 먹고살 길이 달린 일을 서류상 존재하는 수치라고 폄하할 순 없다. 이 지사는 “국가부채를 늘리느냐 가계부채를 늘리느냐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돈을 안 쓰니 가계가 빚을 내야 한다’는 주장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부풀어 오르고 신용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빚투(빚내서 투자) 시대’에 할 얘긴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 상당수가 부동산 담보를 끼고 있고 자산가들이 낸 빚이다. 정부가 빚을 내서 돈을 푼다고 해서 줄어들 빚이 아니다. 오히려 생계가 막막해 빚을 내는 사람들을 두텁게 돕는 게 양극화를 막는 길이다. 위기가 터지면 민간부채는 국가부채로 전이된다. 은행이나 기업이 쓰러지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민간부채를 인수해야 할 수도 있다. 재정이 허약한 국가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남유럽 국가들은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재정위기를 겪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단기적으로 돈을 풀더라도 뒷날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건 IMF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조언이다. 부채 비율이 선진국보다 낮으니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여당 일각의 주장도 무책임하다. 적정한 국가부채 수준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안드레아스 바워 IMF 한국미션단장은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간편하게 말할 수 있는 최적 부채 수준은 없다”면서도 “한국의 부채 수준은 60%가 적절하다”고 했다. 위기가 닥치면 이것이야말로 장부상 수치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땐 지금보다 재정 상황이 훨씬 나았는데도 해외 투기세력의 공격에 시달렸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7.3%에서 3년 뒤 IMF가 권고한 60%에 육박하는 58.3%까지 상승한다. 코로나19 재확산, 경기 회복 지연, 급격한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안심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 믿음을 주는 탄탄한 국가재정이야말로 경제위기를 막는 백신이다. 선거에 눈이 멀어 개방경제인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상대가 있는 경기를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자신감이 지나쳐 IMF 등의 권고를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고 무시할 일도 아니다. 호통을 쳐서 기재부 공무원을 주눅 들게 하고 국내 여론을 움직일 순 있어도 해외 투자자들의 마음까지 돌릴 순 없다. 안타깝게도 위기의 순간 그들은 한국 정치인이 아니라 IMF와 국제신용평가사 등의 조언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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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의 펀드 투자도 다르지 않다[오늘과 내일/박용]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펀드 투자로 대박을 냈다. 2019년 8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필승코리아 펀드에 5000만 원을 투자했더니 90% 넘는 수익이 났다. 청와대에 따르면 대통령은 이 수익금에 신규 자금을 보태 ‘한국판 뉴딜펀드’ 5개에 1000만 원씩 넣기로 했다. 물론 대통령의 ‘투자 대박’이 불편한 이들도 있다. 한 누리꾼은 이 기사에 “이익공유 하실 거죠?”라고 댓글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의 펀드 투자는 정책 홍보 성격이 크지만 투자는 투자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폭락할 때도 펀드를 깨지 않고 버티며 만든 투자 수익을 새 펀드에 넣는 걸 문제 삼을 순 없다. 손실을 감수하고 번 투자 수익을 공유하라는 건 사유 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고, 경제 주체가 자기 책임하에 자유롭게 경쟁하고 이익을 내는 시장경제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익을 냈으니 망정이지 손실을 냈다면 그 손실마저 공유해 달라고 요구할 건가. 그렇지 않다면 이익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투자 수익을 코로나19 사태로 손해를 본 이들과 공유하면 세금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은 어떤가. 세금도 결국 누군가가 낸 돈이고, 도움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이나 국가사업으로 가야 할 돈이다. 재정으로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대신하라고 하고 세금으로 다시 인센티브를 주는 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양극화 완화 해법으로 ‘이익공유제’를 꺼냈다. 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승자’ 기업들이 출연해 기금을 만들어 고통받는 계층을 도울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거들었다. 대통령에게 이익공유를 요구한 누리꾼이 괘씸하다면 정치권이 기업들에 이익공유를 요구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말해야 정직하다. 내가 번 돈은 괜찮고, 남이 번 돈만 수상하다는 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이런 이중 잣대론 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등장했던 변종 이익공유제들도 그래서 흥행하지 못했다. 정치권의 이익공유제 재탕은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며 선거를 앞둔 책임 떠넘기기다. 일자리를 지킨 공무원과 국회의원보다 정부가 요구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한 음식점, 헬스장, PC방 사장님들과 이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본 건 사실이다. 이들을 선별하고 집중 지원하는 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구한 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다. 할 일은 제대로 안 하고 민간이 알아서 할 일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지나친 간섭이다. 세금은 어디에서 걷어 어떻게 쓴다고 법으로 규정한다. 이익공유 제안은 어디까지 이익이고 어떤 이익을 나눠야 할지 모호하다. 여당에서 쿠팡, 카카오페이 등 플랫폼 기업을 승자로 거론하지만 여태 투자를 하느라 아직도 적자다. 이익공유제의 타깃이 된 금융권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에다 대출 부실 등을 대비한 충당금을 쌓으며 위험을 감내하고 있다. 이런 투자 위험과 손실은 쏙 빼놓고 돈을 번 것만 거론하면 당사자들은 생살을 뜯기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기업들이 번 이익을 사회와 공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배당과 급여로 사회에 이익을 돌려주도록 유도하는 정공법뿐이다. 전체 일자리의 10%에 육박하는 공공부문은 코로나19 위기에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위기 속에서 세비까지 오른 의원들이야말로 진정한 승자다. 세비 반환 등으로 먼저 이익을 나눈다면 국민들이 모처럼 박수를 칠 것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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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들의 ‘코리아 프리미엄’, 어디쯤 있나[오늘과 내일/박용]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프리미엄(고평가)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방역에 성공하고 2년 연속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대됐으니 코리아 프리미엄을 언급할 수는 있겠지만 너무 일렀다. 지금도 시민들은 상극인 방역과 경제를 잡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헬스장 노래방 당구장 등 자영업자들이 들고일어나는 마당에 ‘코리아 프리미엄’ 타령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어 보인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방역 실력을 인정하지만 프리미엄까진 아니다. ‘방역 프리미엄’이 그렇게 대단했다면 외국인투자가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바닥을 친 지난해 3월 19일부터 이달 6일까지 13조 원 넘게 한국 주식을 팔진 않았을 것이다. 구호도 참신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7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넉 달 전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돼 코리아 프리미엄이 1%만 높아져도 약 5조 원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했다. 2013년엔 “지금보다 국격이 높은 때는 일찍이 우리 역사에서 없었다”며 ‘코리아 프리미엄’을 주장했다. 그 당시에도 믿지 못한 이들이 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2016년 3월 한국 문화와 우수문화상품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창출해야 한다”며 “그 해답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자 ‘G20’에서 ‘창조경제’로 방점이 바뀐 것이다. 현 정부에선 누구도 창조경제를 입에 담지 않는다. 시장에선 다른 얘길 한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외친 두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정부가 시장과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는다. 얼마 전 만난 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홍콩의 외국인투자가와 만났는데, ‘북한 핵과 기업 지배구조 외에도 규제를 쏟아내는 한국 정부가 오히려 디스카운트 요인’이라고 하더라.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한다. 해외 언론이 인정하는 ‘코리아 프리미엄’은 따로 있다. 반도체 배터리 전자 자동차부터 방탄소년단 등을 배출하는 민간 부문의 역동성, 금융위기를 막아낸 탄탄한 국가 재정, 한마음으로 외환위기 국난을 극복해낸 한국인의 힘을 꼽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상쇄하던 이 강점들이 무뎌지는 게 오히려 걱정이다.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에 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쏟아져 나오는 규제로 힘들다고 한다.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미국에서 가전제품 특수가 생겼는데도 주 52시간 근무제에 묶여 탄력적으로 생산을 늘리지 못한다고 발을 구르던 한 기업인의 모습도 떠오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방패막이가 돼준 탄탄한 국가 재정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 정치권의 선심 공세에 무너지고 있다. 술 취한 주인이 집사에게 곳간 열쇠를 내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이다. 지지자들만 보는 편 가르기 정치는 해외 언론이 부러워한 금 모으기 운동의 주역인 시민들을 분열시킨다. 배우 조승우가 나오는 은행 광고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정상에 오르는 게 아니야, 올라야지! … 생각만으론 아무것도 아냐.” 실행 없는 구호는 말잔치일 뿐이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인정받으려면 있는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대통령들의 반복되는 ‘코리아 프리미엄’ 구호에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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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봄 우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오늘과 내일/박용]

    7월 중순 미국 뉴욕 브루클린다리에서 마주한 맨해튼 야경은 스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며 관광객들로 붐비던 다리는 인적이 끊겼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화려한 불빛을 내뿜던 맨해튼 마천루는 재택근무로 직원이 줄고 주민들이 떠나자 빛을 잃었다. “이번 여름 우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날 브루클린에서 공사장 벽에 분필로 쓴 낙서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코로나19로 하루에 수백 명씩 사망자가 나오던 지난봄 뉴욕 시민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두려움의 시간을 보냈다. 정부와 정치인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30만 명의 코로나19 사망자를 낸 미국의 방역 실패는 자만이 부른 ‘인재’였다.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미국이 전염병 방역 경쟁력 1위’라는 조사 결과를 흔들며 “미국은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최고라던 미 질병관리본부(CDC)는 코로나19 진단키트조차 제때 보급하지 못해 전염병 대응의 기초인 추적과 격리조차 수행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라던 미국 의료 시스템도 밀려드는 환자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TV에선 증상이 심각하지 않으면 병원에 오지 말라는 안내방송까지 나왔다. 마스크조차 부족해 당국은 ‘얼굴가리개’를 써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에볼라 바이러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막아낸 미국의 성공 경험은 코로나19를 과소평가하고 신속한 대응을 막는 ‘성공의 덫’이 됐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마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선거에서도 졌다. 한국은 1, 2차 확산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백신 확보에 뒤처지면서 미국처럼 ‘성공의 저주’를 피하지 못한 모습이다. 정부는 “(백신을) 먼저 접종하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백신을 확보해놓고 신중하게 접종하는 것과 없어서 맞지 못하는 건 다른 문제다. 세계는 이미 ‘포스트 백신’ 시대로 가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백신을 접종한 사람만 출근을 하게 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프랑스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대중교통과 공공시설을 제한하는 법안까지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내년 4월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는 ‘백신 오픈 시즌’에 들어가면 백신 접종, 항체 형성, 음성 여부가 공공시설, 대중교통은 물론 세계를 오갈 수 있는 통행증이 되는 ‘백신장벽’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백신 확보만큼 ‘백신 없는 겨울’ 방역도 중요하다. 정부가 백신 확보에 전력을 기울여도 현재로선 백신이라는 외투 없이 올겨울을 나야 할 형편이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약자와 집단 요양시설의 감염을 막아 중환자실 입원율과 사망률을 낮추고 의료 인프라 붕괴를 막는 ‘수직적 거리 두기’와 역학조사 인력 확충, 병상 확보 및 생필품 공급 체계 등 겨울방역 대책을 재점검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백신을 맞지 않고 일하는 의료진과 필수 인력에 대한 지원책이 충분한지도 점검해야 한다. 걱정스러운 건 아직도 방역에 집중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정부가 공공의대 문제로 의료진, 의대생과 각을 세우고 실업의 1차 저지선인 기업을 개혁 대상에 올려놓는 건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려는 정치인들에게서 정권 심판이나 권력 연장의 의지는 꿈틀대지만 바이러스 위협에서 도시와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결기와 약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년 봄 우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과 정부가 심기일전해 답할 차례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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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인인증서를 ‘괴물’로 만든 사람들[오늘과 내일/박용]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모 씨(38)는 지난달 말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미 전자상거래 회사 아마존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문했다. 아마존은 45% 할인을 하고 한국 현대카드로 결제를 하면 10% 추가 할인을 해줬다. 99달러가 넘는 주문은 서울까지 배송료도 받지 않았다. 박 씨는 이렇게 해서 199.95달러짜리 스피커를 98.95달러에 손에 넣었다. 구매 금액이 200달러 미만이어서 관세도 없다. 소비세가 붙는 미 현지에 비해 서울에서 한국 카드로 20% 더 싸게 산 셈이다. 국내 판매가의 3분의 1도 안 됐다. 국경과 지리적 제약이 사라진 전자상거래 시대의 ‘마법’이다. 한국은 이런 시대에도 ‘재래시장 몇 km 내에선 대형마트를 열 수 없다’거나 ‘일요일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철 지난 유통 규제와 씨름한다. 철기시대에 돌칼을 날카롭게 갈고 있는 석기시대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답답하다. 한국 전자상거래의 ‘손톱 밑 가시’이던 공인인증서는 도입한 지 21년이 지난 10일에야 독점적 지위를 내려놓았다. 1990년대 후반 공인인증서를 도입할 때 민간 인증서를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당시 정보통신부는 세계에서도 드문 국가 차원의 공인인증 시스템 구축과 전자서명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 경직되고 폐쇄적인 관 주도 인프라는 한국 전자상거래 시장에 4가지 흉터를 남겼다. 첫째, 국가 차원의 공인인증 덕분에 인터넷 뱅킹과 전자정부 서비스는 빠르게 확산됐지만 다른 나라들에선 통용되지 않는 한국만의 표준이었다. 국경을 넘어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인터넷 시대의 여권이 필요한데도 주민등록증만 들고 비행기를 타게 한 셈이다.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이 입은 ‘천송이 코트’를 중국인들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둘째,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와 액티브엑스(X) 등을 내려받게 하는 기술 종속은 시장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됐다. 구글의 크롬 웹브라우저나 애플 아이폰 등에선 한국 공인인증서가 돌아가지 않았다. 한국의 전자상거래는 세계 시장에서 더욱 고립된 ‘갈라파고스섬’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셋째, 정부는 2002년과 2003년 인터넷 뱅킹과 온라인 증권거래에 공인인증서 사용을 각각 의무화했다. 정부 독점은 시장에서 혁신의 싹을 없앴다. 민간 기업들이 새로운 인증 수단을 개발하거나 보안기술에 투자할 유인은 사라졌다. 정보기술(IT) 예산 중 정보보호 예산이 5% 이상인 한국 기업은 전체의 2.9%에 그친다. 넷째, 금융사고 책임은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은행이나 인터넷 쇼핑몰들은 의무화된 공인인증서만 잘 챙기면 금융사고 책임을 지지 않았다. 소액결제에도 공인인증서를 요구하고 이용자에게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내려받게 해 인증서 관리 책임을 떠넘겼다. 미국에선 사고가 나면 1차 책임은 아마존이나 카드사가 진다. 신용카드사가 사기추적시스템(FDS)으로 감지해 부정거래를 선제적으로 막고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돌고 돌아 민간 회사들이 경쟁하던 1999년 공인인증서 도입 이전으로 겨우 복귀했다. 정부 실패를 바로잡는 데 수십 년이 걸린 셈이다. 공인인증서는 사라졌어도 인증만 까다롭게 하는 책임 전가 관행은 여전하다. 정부가 만든 공인인증서는 ‘공동인증서’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은행 등도 복잡한 사설 인증서들을 쏟아낸다. 아마존에선 지금도 쓰지 않는 것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름, 주소, 신용카드 정보 정도만으로도 물건을 쉽게 살 수 있게 한 걸까. 모르면 쫓아가지도 못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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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래서 부동산 정치가 ‘4류’ 아닌가[오늘과 내일/박용]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저금리에 따른 현상이다. 세금 문제와는 별개다. 정부는 전국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기 때문에 공급 확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재건축을 규제하면 공급이 억제돼 도리어 값이 오른다.” 서울의 한 민간 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 연구원 A 씨는 “집값 급등은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등의 시장 외적 요인과 양질의 주거 환경 선호 및 공급 애로 등의 시장 내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원인과 다른 세금 중과, 재건축 규제, 아파트 분양가 규제, 수급 문제를 주거 복지로 연결, 수도권 신도시 개발 규제 등 5가지 오류를 저질렀다는 비판이었다. 그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특징을 ‘수요를 투기세력으로 인식한다’ ‘부동산 이익에 대한 거부감으로 세금을 중과한다’ ‘부동산을 양극화의 시각으로 본다’는 3가지로 요약했다. 통치이념이 분배여서 부동산 정책 기조도 지역 간 계층 간 형평성을 중시하고, 정책 수단도 조세에 의존해 양극화 해소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해법은 이랬다. 먼저 사람들이 원하는 양질의 아파트 공급 확대를 주문했다. 또 탈세와 탈법은 엄격히 막되 ‘징벌적 세금’은 피해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유세를 내려고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문제가 아니냐” “미국은 투자는 있지만 탈세는 없는 반면 한국은 투기와 탈세는 있는데 투자는 없다”고 했다. 그는 “시장이 불안하면 비용을 치르는 것은 결국 정부가 아니라 국민, 1주택 아니면 모두 투기라고 하면 누가 임대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부동산이란 ‘역린’을 건드리자 일부 참석자들은 발끈했다. “정부 대책이 최선은 못 돼도 차선은 되지 않느냐” “세금이 너무 올랐다고 하는데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이다. 전남 해남의 집과 서울 강남 집의 재산세가 별로 차이가 없는 게 말이 되나”라는 반박이 나왔다. 누군가는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대책을 내놓았더니 이제는 문제가 많다고 하니 어떡하란 말인가” “언론은 일관성, 합리성 있는 보도를 해왔는가”라며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문재인 정부 4년 차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노무현 정부 4년 차인 2006년 6월 세미나 현장에 대한 취재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14년 전엔 강남 분당 등 일부 지역만 들썩거렸는데 지금은 규제가 없는 곳이라면 지방까지 들썩거린다. 그때는 저금리에 국토균형개발 사업으로 지방에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풀렸는데 지금은 위기 극복을 위해 유동성이 풀린 건 다르다. 하지만 저금리가 문제가 아니라 저금리로 시장에 ‘유동성’이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무모하게 규제와 세금으로 막겠다고 덤빈 게 문제라거나 수요를 잠재울 ‘공급 확대’ 카드를 외면해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비판은 지금도 나온다. 전 정부의 규제 완화, 언론 탓을 하는 건 그때도 그랬다. 14년 전처럼 수요를 투기로 간주하면 살 집이 없어 못 살겠다는 시민에게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동문서답을 할 법도 하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 14년간 같은 논쟁과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시장에서 조용히 도태될 것이다. 과오를 잘 아는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파수를 맞추고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 틀어대니 시민들만 죽을 맛이고,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비웃는 게 아닌가. 부동산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지 정쟁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부동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서서히 바뀔 것이다. 14년 후 취재 수첩을 뒤지며 오늘을 복기하는 일이 다신 없었으면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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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는 가도 ‘일자리 전쟁’은 계속된다[오늘과 내일/박용]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직인데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밀렸다. CNN 출구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경제 회복을, 바이든 지지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바이든 손을 들어준 대선 결과는 ‘방역이 경제 회복보다 시급하다’는 민심인 셈이다. 한편으로 박빙의 승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엉터리 방역으로 미국인들의 안전과 자존심을 추락시키지 않았다면, 선거 구도를 ‘트럼프 대 바이든’이 아닌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로 몰고 가지 않았다면 표심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게 한다. 바이든 당선인이 당장은 코로나19 방역에 전력을 다하겠지만 불길이 잡히면 경제 회복과 미국인 일자리 복원에 힘을 줄 수밖에 없다. 그가 약속한 ‘통합과 치유’의 정치를 하려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47.4%의 트럼프 지지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들과 공명할 수 있는 정책 공약수는 중산층 재건과 제조업 일자리다. 트럼프를 백악관 주인으로 이끈 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유산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시민’으로 불리며 국제사회에서 인기가 많았으나 안에서는 미국인 일자리를 챙기지 못한다는 반대 세력의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케어’ 등 사회 안전망을 늘려 저소득층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했으나 자국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 그는 집권 2기에 제조업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든다고 했는데 36만 개만 만들었다.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 해소에 집중하다가 경제의 허리인 ‘일하는 중산층’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일부 중산층은 열심히 일해 세금과 의료보험료 등을 내느라 등골이 휘는데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일자리까지 불안하니 자신들은 ‘잊힌 사람들’이라며 억울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 나라의 ‘잊힌 남성들과 여성들’이 더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건 우연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광산촌인 스크랜턴에서 태어나 자동차 영업 일을 하는 부친 밑에서 자란 바이든 당선인이 부잣집 아들인 트럼프 대통령보다 쇠락한 공업지대의 아픔과 잊힌 중산층의 고통을 모를 리 없다. 바이든 당선인은 7일 대선 승리 연설에서 중산층을 ‘국가의 중추’로 정의하고 재건을 선언했다. 선거 때는 ‘제조업은 미국 번영의 무기’로 규정했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바이 아메리칸’ 공약도 내걸었다. 연방정부 조달 사업에서 미국산 구매 기준을 엄격히 하고 세금으로 개발한 신기술로 해외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도 제한하겠다고 했다. 미 자동차 산업 부활과 미 항구 내 화물 운송을 미 선박에 맡긴다는 구상도 있다. 바이든 캠프는 “무역에 대한 모든 결정의 목적은 미 중산층을 재건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올리고 지역사회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불공정 관행, 환율 조작, 반덤핑, 국영기업 악용, 불공정한 보조금으로 미 제조업을 약화시키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대해 공세적 무역 이행 조치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우격다짐은 아니더라도 바이든식 보호무역 공세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주요 타깃은 중국이 되겠지만 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도 반덤핑 관세 등의 불똥이 튈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일하는 중산층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면 4년 뒤 ‘샤이 트럼프’(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트럼프 지지자)는 투표장에서 다시 결기를 보일 것이다. 못을 빼도 못 자국이 남듯이 ‘트럼프는 가도 트럼프주의는 남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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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테크’의 배신[오늘과 내일/박용]

    갓 3년을 넘긴 신생 은행 몸값이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보다 높다고 한다면 예전엔 웃어넘겼을 것이다. 요즘엔 그랬다간 물정 모른다는 소릴 듣는다. 2017년 카카오가 세운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최근 유상증자로 7500억 원을 조달한다고 했더니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들이 주당 2만3500원을 쳐서 지분을 사기로 했다. 내년 상장을 추진하는 이 은행의 지분가치를 약 8조5800억 원으로 평가한 것이다. 국내 4대 금융지주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하나금융(9조 원대)에 근접하고 우리금융(6조 원대)보다 높다. 이런 일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다. 중국의 빅테크(거대 기술기업)인 알리바바가 설립한 금융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은 다음 달 중국 상하이와 홍콩 증시 동시 상장을 추진한다. 이 회사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약 345억 달러로 세계 최대 공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장에 성공하면 시가총액은 3130억 달러로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3163억 달러)와 맞먹는다. 빅테크가 금융시장으로 몰려들면 기존 금융사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29일 열린 제2회 동아 뉴센테니얼포럼 기조연사로 나선 타일러 카우언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서로 영역을 확대하다가 충돌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규제 전쟁’을 예고했다. 박관수 캐롯손해보험 뉴비즈앤서비스 부문장도 “2000년대 유통회사와 충돌하던 전자상거래 시장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빅테크가 더 편리하고 저렴하며 안전한 금융 서비스를 내놓는다면 소비자들은 환영할 것이다. 규제로 막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개방과 공유의 공간인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 덕분에 성장하고도 덩치가 커진 뒤엔 다른 경쟁자가 진입하지 못하게 문을 닫아걸고 통행세나 다름없는 수수료를 거두는 철옹성을 쌓는다면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구글을 시장 지배력을 악용해 경쟁자들을 배제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반독점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제프리 로즌 미 법무부 부장관은 “정부가 반독점법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세대 혁신의 물결을 잃을 것이고 미국인들은 ‘차세대 구글’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가 소비자들의 정보를 끌어모아 만든 플랫폼은 한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리함을 주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공짜는 아니다. 공짜 플랫폼을 열고 소비자를 모은 뒤에 플랫폼을 이용하려는 금융사 등에서 수수료를 받는 식의 양면 전략을 구사한다. 결국 소비자들이 어딘가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라면 독과점 플랫폼에 따른 소비자 이익의 훼손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빅테크 네이버가 세운 금융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기존 금융사와 제휴하는 형태로 금융시장에 우회 진출했다. 실상은 ‘네이버 통장’처럼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연결해 주거나 플랫폼에 입점한 온라인 상인들에게 금융사 대출을 알선하는 일종의 금융 중개 서비스다. 문제는 편리함을 미끼로 지나친 수수료를 요구할 때 발생한다. 수수료 받아가는 거간꾼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네이버는 보험시장 진출을 추진하다가 이 문제로 발목을 잡혔다. 보험사들은 전화마케팅 수수료(5∼10%)보다 높은 건당 11%의 수수료를 줘야 할지 모른다고 반발한다. 이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의자 뺏기’와 같은 수수료 싸움을 혁신이라고 부를 순 없을 것이다. 금융 관료들이 요즘 ‘성을 쌓는 자는 쇠할 것이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할 것’이라는 유목민의 격언을 자주 얘기한다. 혁신은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편익을 가져다주는 길을 개척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빅테크가 정말로 새 길을 뚫고자 한다면 소비자 편에 서는 개방과 공유의 ‘인터넷 초심’으로 되돌아가길 바란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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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스 형, 펀드가 왜 이래?’[오늘과 내일/박용]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수술대에 올린 ‘집도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76)의 이름이 뜬금없는 데서 등장했다. 거액의 펀드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로비 창구로 의심을 받고 있는 고문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경제 원로의 명성에 큰 금이 갔다. 한국 펀드시장은 중병이 들었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옵티머스 사태의 기본 틀은 19세기부터 반복된 ‘폰지 사기’와 비슷하다는 게 검찰의 분석이다. 투자 수익을 약속한 뒤 다른 투자자의 돈을 끌어와 돌려 막으며 돈세탁을 거쳐 투자금을 빼돌린 전형적 사기수법이라는 거다. 옵티머스 펀드 자금 5100억여 원 중 절반 정도가 ‘돌려 막기’에 쓰였고 4000억 원 정도는 돈세탁을 거쳐 누군가 주머니에 녹아 들어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는 말도 들린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유동화 작업이 필요한 공공기관 매출 채권으로 투자자를 속이고 공공기관들의 기금과 유력 인사를 고문으로 끌어들인 수법은 한국 금융계의 약한 고리를 잘 아는 ‘꾼’의 냄새가 난다. 배후엔 대담한 ‘매스터마인드(범죄 지휘자)’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사고 규모는 3108억 원으로 전년보다 1812억 원(139.8%) 늘었다. 100억 원이 넘는 대형 사고는 2018년 1건에서 6건으로 증가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반대를 무릅쓰고 1월 서울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했다. 노련한 꾼들은 ‘여의도 저승사자’의 해체를 ‘그린라이트’ 신호로 여겼을 것이다. 금융사기만 문제는 아니다. 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굴리는 ‘금융 집사(스튜어드)’들의 일탈과 무능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한국 금융사들은 미국 투자은행들이 설계한 파생 금융상품에 멋모른 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냈다. 당시 한 시중은행장은 “정장을 빼입고 서류 가방을 든 외국계 은행 영업사원들이 들고 온 상품설명서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돈을 넣었다”고 후회했다. 10년 넘게 흐른 지금도 ‘깜깜이 투자’는 반복된다. 2015∼2017년엔 없던 환매 연기 펀드가 2018년 10개로 늘더니 올해 7월과 8월 각각 21개, 22개가 발생했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입수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지적이다. 이 중에는 해외 금융상품이나 자산 등에 돈을 밀어 넣었다가 환매 중단된 펀드들이 포함돼 있다. 잘 키운 펀드는 혁신기업 생태계의 동맥이지만 견제 장치가 고장 난 펀드는 멀쩡한 기업 생태계마저 망가뜨린다. 옵티머스 자금 중 일부는 기업 사냥꾼들이나 쓰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의 돈줄로 동원됐다. 국민의 은퇴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인력들이 대마초까지 흡입할 정도로 기강이 흔들리고 기금 운용 전문 인력을 제대로 뽑지 못하는데도 한국 기업 경영에 대한 견제 책임까지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에선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했던 미 기업을 망가뜨리고 1 대 99의 양극화 논란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로 단기 실적과 거액의 배당을 요구하는 ‘펀드 자본주의’를 꼽기도 한다. 펀드에 맡기면 잘될 거라는 ‘펀드 만능주의’도 불안하다. 정부나 정치권은 툭하면 펀드 타령이다. 정부가 수익성과 성장성이 떨어지는 정책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다 보니 정권마다 ‘관제 펀드’들이 생겨난다. 제대로 된 기업을 키우고, 인재를 육성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면 자본은 민간에서 흘러 들어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고장 난 펀드 자본주의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나훈아 노래처럼 펀드 투자자들이 ‘테스 형, 펀드가 왜 이래?’라고 따져 묻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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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통역병을 제비뽑기해야 하는 나라[오늘과 내일/박용]

    2월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현지 통역 최성재(샤론 최) 씨의 맛깔스러운 통역 덕분에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다.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정상회담도 전문 통역관의 입을 통해 이뤄졌다. 미묘한 어감과 말의 맛까지 살려야 하는 통역은 실력과 경험이 검증된 프로들의 세계다. 대한민국은 이런 일도 제비뽑기로 정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27)의 휴가 특혜 논란으로 국방부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투입할 통역병을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발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카투사들이 평소에 영어를 쓰며 근무를 한다지만 다는 아니다. 통역은 일상 업무와도 다르다. 사람마다 어학 실력도 제각각이니 누가 돼도 문제없는 일은 아니었다. 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 지원단장이었던 이철원 예비역 대령은 “‘서 군과 관련해 여러 번 청탁 전화가 오고, 2사단 지역대에도 청탁 전화가 온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제가 2사단 지역대에 가서 서 군을 포함한 지원자 앞에서 제비뽑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추 장관의 해명은 달랐다. 그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 아들인 줄 알고 군이 방식을 바꿔 제비뽑기로 떨어뜨렸다”며 조사를 요구했다. 한쪽은 권력자의 청탁 논란을 피하려고 그랬다고 하고, 다른 쪽은 군이 여당 대표 아들을 떨어뜨리려고 선발 방식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외압과 음모 어느 쪽이든 외부 요인으로 선발 과정이 변질된 건 심각한 문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 로또 추첨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구시대엔 부와 권력이 계급, 재산, 연고 등에 따라 배분됐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지지자들에게 공직을 나눠주는 ‘엽관제도(Spoils system)’가 횡행하던 미국에서는 1881년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공직을 받지 못해 불만을 가진 지지자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후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공직을 당적이 아닌 실력에 따라 선발하는 ‘실력주의(Meritocracy)’가 그때 자리 잡았다. 재능과 노력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세계 최강 국가로 밀어 올렸다. 한국 사회의 실력주의 믿음은 필자가 미 2사단에서 카투사로 근무했던 20여 년 전보다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엔 국사 국민윤리 영어 필기시험을 치러 뽑았다. 이 지식이 미군과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그때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발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토익 780점 이상 등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지원자 중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다. 자대 배치도 컴퓨터 추첨이다. 추첨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공정한 기회와 절차의 수단은 아닐 것이다. 미국식 실력주의가 과도한 경쟁을 부르고 승자 독식 사회를 만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계층 이동의 공정한 사다리를 복원하려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회와 평가가 공정해야 한다. 특정 계층에 유리한 방식이면 엘리트들이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력주의를 교묘히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게 미국 싱가포르 등 실력주의 사회의 교훈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 부모들의 ‘자녀 스캔들’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패자를 배려하되 기회와 평가가 공정한 ‘따뜻한 실력주의’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청탁’과 ‘제비뽑기’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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