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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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용 기자입니다.

park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칼럼100%
  • [오늘과 내일/박용]‘무저갱 세대’는 왜 분노하는가

    굳이 분류하자면 필자는 ‘외환위기 세대’다. 외환위기가 터지고 1998년 2월 대학을 졸업할 무렵 실업대란이 찾아왔다. 대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던 직원도 내보내는 판에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갈 곳은 없었다. 죄 없이 극심한 취업난의 ‘무저갱(無底坑·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빨려 들어간 듯 젊은이들은 하릴없이 허우적거렸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게 죄인가. 23년이 지난 올봄 청년들도 억울하다. 2월 취업준비생은 역대 최대인 85만 명. 취업난의 무저갱에 갇힌 이들의 약 90%가 2030세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핑계는 대지 말자. 그전에도 청년들이 원하는 괜찮은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책임자들은 큰소리만 쳤다. 인턴 몇 명만 뽑아도 수백 명이 몰려드는데 소득주도성장을 한답시고 최저임금도 한껏 올리고, 정규직 전환도 밀어붙이고, 주 52시간제까지 도입했지만 약속했던 소득주도성장은 오지 않았다.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755달러로 2019년에 이어 2년 연속 뒷걸음질쳤다.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마저 수출 경쟁력과 일자리 보호를 외치는 각자도생 시대에 국제 공조도 없는 일국 소득주도성장론은 칠판 경제학자들의 탁상공론이다.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자영업 비중이 유독 높은 한국 경제에 깊은 내상을 줄 것이라는 경고에도 고집을 피우더니 만성화된 청년 실업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조차 안 한다. 그러면서 제 일자리들은 잘도 챙긴다. 소득주도성장의 불씨를 댕겼던 장하성 고려대 명예교수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을 지내고 뜬금없는 주중 대사로 새 일자리를 얻어 갔다. 경제수석을 지낸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요즘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후보로 거론된다. 최근엔 “코로나 세대가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세대의 전철을 밟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모든 청년에게 최소 2년간 일자리를 정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청년일자리보장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랏돈으로, 실패한 소득주도성장 시즌2라도 하라는 건가. 코로나 세대가 정말 걱정이라면 진작 할 수 있는 일은 왜 안 했나. 일자리가 없다지만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에선 쓸 만한 개발자가 없어 난리다. 한 정보기술(IT) 기업 대표는 “중국 알리페이에만 개발자가 1만6000명이다. 우린 네이버와 카카오를 합쳐도 1만 명이 안 된다.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하나.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 달라고 10여 년 전부터 얘기했는데 달라진 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아예 IT 기업들이 돈을 모아 실력 좋은 개발자를 길러내는 세계 수준의 사설 교육기관이라도 만들자는 말들이 판교에서 나온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청산거래 관할권을 두고 수장들까지 나서서 험한 말을 주고받아 ‘밥그릇 싸움’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작 핀테크 업계는 교통순경을 누가 할 건지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금융위가 만든 이 법안으로 혁신과 청년 일자리 창출을 막는 규제가 하나 더 늘까 걱정이다. 금융과 관련 없는 부수 업무를 할 때도 금융당국에 먼저 신고하고 하라는 건 혁신을 막는 역주행 규제라며 분노한다. 청년들은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당국자들은 제 일이 아니면 귀담아듣지 않는다. 내 일자리만 소중한 ‘일자리 내로남불’ 시대, 무저갱 세대의 분노는 깊어만 간다.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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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몰랐던 미국 땅 ‘미나리들’[오늘과 내일/박용]

    “어린 딸아이 둘을 데리고 이 땅에 와서 엄청난 고생 끝에 겨우 살 만하니 이런 뚱딴지같은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 뉴욕에 무섭게 퍼지던 지난해 5월. 70대 한인 동포 A 씨가 뉴욕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던 필자에게 e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2개월 정도 집에서 꼼짝 못 하고 그냥 있다. 설사를 계속하며 걷기도 힘들다. (한인 의사들이 마련한) 항체검사라도 받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A 씨는 30대 초반 미국에 왔다. 마흔 줄에 들어선 딸이 둘이나 있지만 생각이 너무 달라 평소 대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증상이 있어도 코로나19 진단조차 받기 어렵던 뉴욕에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안타까웠다. 그저 동포 의사들이 운영하는 코로나19 상담 전화번호와 조태열 전 주유엔 대사가 부친 조지훈 시인의 시 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고 했던 ‘병(病)에게’를 적어 답장을 보낸 게 전부였다. 다행히 A 씨는 지난해 10월 “응급실에서 3번 검사를 받았는데 모두 음성이 나왔다”고 반가운 메일을 보내왔다. A 씨와 같은 이민 1세대들 중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이들이 꽤 있지만, 일부는 힘든 이민 생활 중 가족이 흩어져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병원 응급실에서 숨진 B 씨도 그랬다.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뉴욕주의 무연고 묘지에 묻혔다. 코로나19 위기는 특히 저소득층 한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뉴욕한인회가 지난해 기금을 모아 어려운 한인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줬는데, 금세 동이 났다. 한인회 관계자는 “‘한인회가 나눠준 식품 쿠폰으로 남편 제사상을 어렵게 차렸다’는 감사 인사를 받고 울컥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과 위협도 늘고 있다. 지난해 5월 말 뉴욕시에서 대규모 약탈 피해가 일어났을 때 한인 가게들도 피해를 입었다. 소호지역에서 옷가게를 하는 한인 2세 조너선 최 씨(25)는 “글로벌 브랜드 매장은 피해를 감수할 수 있겠지만 우린 밤을 새워서 가게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한인 동포들의 사연은 지금도 메일함에 날아든다. 어린 딸을 데리고 이민을 온 C 씨는 “20대 딸이 4년 전 재생불량성빈혈로 골수 이식을 받았는데 이제 혈액암으로 고생하고 있다. 돈이 되는 건 뭐든지 팔아서 버티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이민 1세대 비중이 줄고 있는 미 한인 사회에서는 일본계처럼 ‘민족성 소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걱정도 크다. 다행인 점은 우리말은 서툴러도 한국인의 문화와 자부심을 잊지 않고 있는 2, 3세가 많다는 점이다. K팝, 한국 화장품 등을 미국에 유통하는 사업가나 할머니에게 배운 한국 음식을 뉴욕에 소개하는 젊은 한인들이다. 한인 이민 가정의 가족애를 다룬 영화 ‘미나리’로 올해 미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리 아이작 정 감독(43)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미국에 뿌리내린 우리들의 ‘미나리들’이다. 한국은 그들을 잊고 살지 몰라도 그들은 그렇지 않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2019년 3월 1일(현지 시간) 정오 미 뉴욕 맨해튼 유엔본부 주변 광장에서 동포 4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운동을 재연했다. 뉴욕 한복판에서 큰 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글썽거리던 동포들이 기억난다. 미국 땅에 홀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며 고국을 잊지 않고 있는 미나리들에게 우린 알게 모르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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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소득 주술사들[오늘과 내일/박용]

    37년 전 미국 할리우드 영화 ‘터미네이터’는 지금 봐도 섬뜩하다. 2029년 미래에서 온 살인로봇 ‘T-800’의 위협에서 주인공을 지키려고 역시 미래에서 온 인류가 맞서 싸운다. 로봇이 초래한 핵전쟁, 살인을 서슴지 않는 무자비한 사이보그는 로봇이 지배하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켰다. 인류를 핵전쟁으로 몰고 간 ‘스카이넷’이 인간이 발명한 인공지능(AI) 시스템이라는 대목에선 소름이 돋는다. 기계에 대한 인류의 두려움은 꽤 오래됐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영국 방직공들은 방직기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기계파괴 운동)’을 벌였다. 물리학자가 사람 모양의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만든 괴물이 등장하는 영국 작가 메리 셸리의 괴기 소설 ‘프랑켄슈타인’도 이 무렵 나왔다. 최근 기본소득 논쟁은 이런 테크노포비아(기술공포증)에서 비롯됐다. AI와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일자리 없는 미래’는 인류의 숙명이니 받아들이고, 정부가 국민에게 최소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게 미 실리콘밸리에서 나온 기본소득 아이디어다. 그걸 수입해 2017년 대선 쟁점으로 만들고 코로나19 위기에서 재난지원금으로 포장해 되네 마네 하는 게 한국의 기본소득 논쟁이다. ‘일자리 터미네이터’라는 비난과 ‘제2의 러다이트 운동’의 표적이 되고 싶지 않은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이야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기 좋은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전에 일자리 없는 미래를 피할 대책을 내놓아야 할 정치인들이 한술 더 떠 당장 해보자고 덤비는 건 무모하다. 세계화와 자동화로 중산층 일자리가 줄고 있다지만 ‘기본소득’이라는 백기를 들 때는 아직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자동화 가능성이 70% 이상인 일자리가 회원국 전체 평균(14%)보다 낮은 약 10%다. 당장은 신기술이 한국에서 급격한 고용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OECD의 판단이다. 로봇과의 일자리 전쟁에서 반격할 시간이 우리에겐 남아 있다는 얘기다. 일자리는 생계유지 도구만도 아니다. 청년들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수단이다. 올해 국방비(52조 원)의 약 6배인 300조 원을 투입해 전 국민에게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쥐여 줘도 제대로 된 일자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폭등하는 집값과 취업난 속에서 좌절하는 청년들의 분노를 달랠 길이 없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 “코로나19 위기가 끝나더라도 수백만 개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기업 출장의 20%가 영원히 사라지고 노동자의 20%가 재택근무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미 실업자의 3분의 2가 직종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새 일자리와 전직 교육, 직업 훈련프로그램이 필요해진다는 걸 뜻한다. OECD는 신기술의 위협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차이가 큰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고 세계적으로 실업이 급증하는 코로나19 위기에도 파업하는 대기업 노조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새 시대에 맞는 노사협력 모델이 절실하다. 우리 대학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어떤가. 새 일자리로 가는 길을 청년들에게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해묵은 노동시장 구조개혁 과제는 놔두고 ‘기본소득 될 때까지’를 무한 반복하는 건 비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겠다는 주술사처럼 터무니없다. 진짜 ‘일자리 터미네이터’는 로봇이 아니다. 피할 수 있는 미래를 피하지 못하게 하고, 가능한 해법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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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F는 ‘거버너 리’까지 알고 있었다[오늘과 내일/박용]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을 만난 경제부처 관료들은 한국 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그들을 보고 놀랐다. IMF 측 인사들은 확장 재정정책과 관련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 정치적 논란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거버너 리(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안다”고 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이 지사가 “전쟁 중 수술비 아낀 것은 수준 낮은 자린고비임을 인증하는 것”이라고 기획재정부를 비판한 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논쟁을 벌인 일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선거를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유력 대선주자들의 발언은 국제사회도 주시한다. 재정당국에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는 건 한국 경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재정과 관련해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도 국제사회의 불신을 키운다.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주장하는 이 지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국가부채라는 건 서류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자들은 동의하기 힘든 얘기다. 국가부채가 많은 나라는 신용등급이 낮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렵다. 이자도 많이 물어야 한다. 기업이나 금융회사, 시민들의 먹고살 길이 달린 일을 서류상 존재하는 수치라고 폄하할 순 없다. 이 지사는 “국가부채를 늘리느냐 가계부채를 늘리느냐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가 돈을 안 쓰니 가계가 빚을 내야 한다’는 주장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부풀어 오르고 신용대출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빚투(빚내서 투자) 시대’에 할 얘긴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 상당수가 부동산 담보를 끼고 있고 자산가들이 낸 빚이다. 정부가 빚을 내서 돈을 푼다고 해서 줄어들 빚이 아니다. 오히려 생계가 막막해 빚을 내는 사람들을 두텁게 돕는 게 양극화를 막는 길이다. 위기가 터지면 민간부채는 국가부채로 전이된다. 은행이나 기업이 쓰러지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민간부채를 인수해야 할 수도 있다. 재정이 허약한 국가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남유럽 국가들은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재정위기를 겪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단기적으로 돈을 풀더라도 뒷날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건 IMF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조언이다. 부채 비율이 선진국보다 낮으니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여당 일각의 주장도 무책임하다. 적정한 국가부채 수준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안드레아스 바워 IMF 한국미션단장은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간편하게 말할 수 있는 최적 부채 수준은 없다”면서도 “한국의 부채 수준은 60%가 적절하다”고 했다. 위기가 닥치면 이것이야말로 장부상 수치에 불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땐 지금보다 재정 상황이 훨씬 나았는데도 해외 투기세력의 공격에 시달렸다.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7.3%에서 3년 뒤 IMF가 권고한 60%에 육박하는 58.3%까지 상승한다. 코로나19 재확산, 경기 회복 지연, 급격한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이마저도 안심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 믿음을 주는 탄탄한 국가재정이야말로 경제위기를 막는 백신이다. 선거에 눈이 멀어 개방경제인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상대가 있는 경기를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자신감이 지나쳐 IMF 등의 권고를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고 무시할 일도 아니다. 호통을 쳐서 기재부 공무원을 주눅 들게 하고 국내 여론을 움직일 순 있어도 해외 투자자들의 마음까지 돌릴 순 없다. 안타깝게도 위기의 순간 그들은 한국 정치인이 아니라 IMF와 국제신용평가사 등의 조언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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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의 펀드 투자도 다르지 않다[오늘과 내일/박용]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펀드 투자로 대박을 냈다. 2019년 8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필승코리아 펀드에 5000만 원을 투자했더니 90% 넘는 수익이 났다. 청와대에 따르면 대통령은 이 수익금에 신규 자금을 보태 ‘한국판 뉴딜펀드’ 5개에 1000만 원씩 넣기로 했다. 물론 대통령의 ‘투자 대박’이 불편한 이들도 있다. 한 누리꾼은 이 기사에 “이익공유 하실 거죠?”라고 댓글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의 펀드 투자는 정책 홍보 성격이 크지만 투자는 투자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폭락할 때도 펀드를 깨지 않고 버티며 만든 투자 수익을 새 펀드에 넣는 걸 문제 삼을 순 없다. 손실을 감수하고 번 투자 수익을 공유하라는 건 사유 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고, 경제 주체가 자기 책임하에 자유롭게 경쟁하고 이익을 내는 시장경제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익을 냈으니 망정이지 손실을 냈다면 그 손실마저 공유해 달라고 요구할 건가. 그렇지 않다면 이익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 안 된다.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투자 수익을 코로나19 사태로 손해를 본 이들과 공유하면 세금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은 어떤가. 세금도 결국 누군가가 낸 돈이고, 도움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이나 국가사업으로 가야 할 돈이다. 재정으로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대신하라고 하고 세금으로 다시 인센티브를 주는 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양극화 완화 해법으로 ‘이익공유제’를 꺼냈다. 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승자’ 기업들이 출연해 기금을 만들어 고통받는 계층을 도울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거들었다. 대통령에게 이익공유를 요구한 누리꾼이 괘씸하다면 정치권이 기업들에 이익공유를 요구하는 것도 부당하다고 말해야 정직하다. 내가 번 돈은 괜찮고, 남이 번 돈만 수상하다는 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이런 이중 잣대론 국민의 공감을 사지 못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등장했던 변종 이익공유제들도 그래서 흥행하지 못했다. 정치권의 이익공유제 재탕은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일이며 선거를 앞둔 책임 떠넘기기다. 일자리를 지킨 공무원과 국회의원보다 정부가 요구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한 음식점, 헬스장, PC방 사장님들과 이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본 건 사실이다. 이들을 선별하고 집중 지원하는 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구한 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다. 할 일은 제대로 안 하고 민간이 알아서 할 일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지나친 간섭이다. 세금은 어디에서 걷어 어떻게 쓴다고 법으로 규정한다. 이익공유 제안은 어디까지 이익이고 어떤 이익을 나눠야 할지 모호하다. 여당에서 쿠팡, 카카오페이 등 플랫폼 기업을 승자로 거론하지만 여태 투자를 하느라 아직도 적자다. 이익공유제의 타깃이 된 금융권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에다 대출 부실 등을 대비한 충당금을 쌓으며 위험을 감내하고 있다. 이런 투자 위험과 손실은 쏙 빼놓고 돈을 번 것만 거론하면 당사자들은 생살을 뜯기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기업들이 번 이익을 사회와 공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배당과 급여로 사회에 이익을 돌려주도록 유도하는 정공법뿐이다. 전체 일자리의 10%에 육박하는 공공부문은 코로나19 위기에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위기 속에서 세비까지 오른 의원들이야말로 진정한 승자다. 세비 반환 등으로 먼저 이익을 나눈다면 국민들이 모처럼 박수를 칠 것이다. 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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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들의 ‘코리아 프리미엄’, 어디쯤 있나[오늘과 내일/박용]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프리미엄(고평가)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방역에 성공하고 2년 연속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대됐으니 코리아 프리미엄을 언급할 수는 있겠지만 너무 일렀다. 지금도 시민들은 상극인 방역과 경제를 잡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헬스장 노래방 당구장 등 자영업자들이 들고일어나는 마당에 ‘코리아 프리미엄’ 타령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어 보인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방역 실력을 인정하지만 프리미엄까진 아니다. ‘방역 프리미엄’이 그렇게 대단했다면 외국인투자가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주가가 바닥을 친 지난해 3월 19일부터 이달 6일까지 13조 원 넘게 한국 주식을 팔진 않았을 것이다. 구호도 참신하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7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넉 달 전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돼 코리아 프리미엄이 1%만 높아져도 약 5조 원의 이익이 발생한다”고 했다. 2013년엔 “지금보다 국격이 높은 때는 일찍이 우리 역사에서 없었다”며 ‘코리아 프리미엄’을 주장했다. 그 당시에도 믿지 못한 이들이 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2016년 3월 한국 문화와 우수문화상품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코리아 프리미엄’을 창출해야 한다”며 “그 해답을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자 ‘G20’에서 ‘창조경제’로 방점이 바뀐 것이다. 현 정부에선 누구도 창조경제를 입에 담지 않는다. 시장에선 다른 얘길 한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외친 두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정부가 시장과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꼽는다. 얼마 전 만난 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홍콩의 외국인투자가와 만났는데, ‘북한 핵과 기업 지배구조 외에도 규제를 쏟아내는 한국 정부가 오히려 디스카운트 요인’이라고 하더라.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한다. 해외 언론이 인정하는 ‘코리아 프리미엄’은 따로 있다. 반도체 배터리 전자 자동차부터 방탄소년단 등을 배출하는 민간 부문의 역동성, 금융위기를 막아낸 탄탄한 국가 재정, 한마음으로 외환위기 국난을 극복해낸 한국인의 힘을 꼽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상쇄하던 이 강점들이 무뎌지는 게 오히려 걱정이다. 기업들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에 경제 3법(상법 공정거래법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쏟아져 나오는 규제로 힘들다고 한다.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미국에서 가전제품 특수가 생겼는데도 주 52시간 근무제에 묶여 탄력적으로 생산을 늘리지 못한다고 발을 구르던 한 기업인의 모습도 떠오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방패막이가 돼준 탄탄한 국가 재정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 정치권의 선심 공세에 무너지고 있다. 술 취한 주인이 집사에게 곳간 열쇠를 내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이다. 지지자들만 보는 편 가르기 정치는 해외 언론이 부러워한 금 모으기 운동의 주역인 시민들을 분열시킨다. 배우 조승우가 나오는 은행 광고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정상에 오르는 게 아니야, 올라야지! … 생각만으론 아무것도 아냐.” 실행 없는 구호는 말잔치일 뿐이다. 코리아 프리미엄을 인정받으려면 있는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대통령들의 반복되는 ‘코리아 프리미엄’ 구호에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박용 경제부장 parky@donga.com}

    • 202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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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 봄 우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오늘과 내일/박용]

    7월 중순 미국 뉴욕 브루클린다리에서 마주한 맨해튼 야경은 스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며 관광객들로 붐비던 다리는 인적이 끊겼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화려한 불빛을 내뿜던 맨해튼 마천루는 재택근무로 직원이 줄고 주민들이 떠나자 빛을 잃었다. “이번 여름 우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날 브루클린에서 공사장 벽에 분필로 쓴 낙서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코로나19로 하루에 수백 명씩 사망자가 나오던 지난봄 뉴욕 시민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두려움의 시간을 보냈다. 정부와 정치인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30만 명의 코로나19 사망자를 낸 미국의 방역 실패는 자만이 부른 ‘인재’였다.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미국이 전염병 방역 경쟁력 1위’라는 조사 결과를 흔들며 “미국은 안전하다”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최고라던 미 질병관리본부(CDC)는 코로나19 진단키트조차 제때 보급하지 못해 전염병 대응의 기초인 추적과 격리조차 수행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라던 미국 의료 시스템도 밀려드는 환자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TV에선 증상이 심각하지 않으면 병원에 오지 말라는 안내방송까지 나왔다. 마스크조차 부족해 당국은 ‘얼굴가리개’를 써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에볼라 바이러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막아낸 미국의 성공 경험은 코로나19를 과소평가하고 신속한 대응을 막는 ‘성공의 덫’이 됐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마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선거에서도 졌다. 한국은 1, 2차 확산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백신 확보에 뒤처지면서 미국처럼 ‘성공의 저주’를 피하지 못한 모습이다. 정부는 “(백신을) 먼저 접종하는 국가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백신을 확보해놓고 신중하게 접종하는 것과 없어서 맞지 못하는 건 다른 문제다. 세계는 이미 ‘포스트 백신’ 시대로 가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백신을 접종한 사람만 출근을 하게 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프랑스는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대중교통과 공공시설을 제한하는 법안까지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내년 4월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있는 ‘백신 오픈 시즌’에 들어가면 백신 접종, 항체 형성, 음성 여부가 공공시설, 대중교통은 물론 세계를 오갈 수 있는 통행증이 되는 ‘백신장벽’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백신 확보만큼 ‘백신 없는 겨울’ 방역도 중요하다. 정부가 백신 확보에 전력을 기울여도 현재로선 백신이라는 외투 없이 올겨울을 나야 할 형편이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약자와 집단 요양시설의 감염을 막아 중환자실 입원율과 사망률을 낮추고 의료 인프라 붕괴를 막는 ‘수직적 거리 두기’와 역학조사 인력 확충, 병상 확보 및 생필품 공급 체계 등 겨울방역 대책을 재점검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백신을 맞지 않고 일하는 의료진과 필수 인력에 대한 지원책이 충분한지도 점검해야 한다. 걱정스러운 건 아직도 방역에 집중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정부가 공공의대 문제로 의료진, 의대생과 각을 세우고 실업의 1차 저지선인 기업을 개혁 대상에 올려놓는 건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려는 정치인들에게서 정권 심판이나 권력 연장의 의지는 꿈틀대지만 바이러스 위협에서 도시와 시민을 보호하겠다는 결기와 약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년 봄 우린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정치인들과 정부가 심기일전해 답할 차례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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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인인증서를 ‘괴물’로 만든 사람들[오늘과 내일/박용]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모 씨(38)는 지난달 말 미국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미 전자상거래 회사 아마존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문했다. 아마존은 45% 할인을 하고 한국 현대카드로 결제를 하면 10% 추가 할인을 해줬다. 99달러가 넘는 주문은 서울까지 배송료도 받지 않았다. 박 씨는 이렇게 해서 199.95달러짜리 스피커를 98.95달러에 손에 넣었다. 구매 금액이 200달러 미만이어서 관세도 없다. 소비세가 붙는 미 현지에 비해 서울에서 한국 카드로 20% 더 싸게 산 셈이다. 국내 판매가의 3분의 1도 안 됐다. 국경과 지리적 제약이 사라진 전자상거래 시대의 ‘마법’이다. 한국은 이런 시대에도 ‘재래시장 몇 km 내에선 대형마트를 열 수 없다’거나 ‘일요일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철 지난 유통 규제와 씨름한다. 철기시대에 돌칼을 날카롭게 갈고 있는 석기시대 사람들을 만난 것처럼 답답하다. 한국 전자상거래의 ‘손톱 밑 가시’이던 공인인증서는 도입한 지 21년이 지난 10일에야 독점적 지위를 내려놓았다. 1990년대 후반 공인인증서를 도입할 때 민간 인증서를 활용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당시 정보통신부는 세계에서도 드문 국가 차원의 공인인증 시스템 구축과 전자서명법 제정을 밀어붙였다. 한번 만들어 놓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 경직되고 폐쇄적인 관 주도 인프라는 한국 전자상거래 시장에 4가지 흉터를 남겼다. 첫째, 국가 차원의 공인인증 덕분에 인터넷 뱅킹과 전자정부 서비스는 빠르게 확산됐지만 다른 나라들에선 통용되지 않는 한국만의 표준이었다. 국경을 넘어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인터넷 시대의 여권이 필요한데도 주민등록증만 들고 비행기를 타게 한 셈이다.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이 입은 ‘천송이 코트’를 중국인들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둘째, 익스플로러 웹브라우저와 액티브엑스(X) 등을 내려받게 하는 기술 종속은 시장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됐다. 구글의 크롬 웹브라우저나 애플 아이폰 등에선 한국 공인인증서가 돌아가지 않았다. 한국의 전자상거래는 세계 시장에서 더욱 고립된 ‘갈라파고스섬’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셋째, 정부는 2002년과 2003년 인터넷 뱅킹과 온라인 증권거래에 공인인증서 사용을 각각 의무화했다. 정부 독점은 시장에서 혁신의 싹을 없앴다. 민간 기업들이 새로운 인증 수단을 개발하거나 보안기술에 투자할 유인은 사라졌다. 정보기술(IT) 예산 중 정보보호 예산이 5% 이상인 한국 기업은 전체의 2.9%에 그친다. 넷째, 금융사고 책임은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은행이나 인터넷 쇼핑몰들은 의무화된 공인인증서만 잘 챙기면 금융사고 책임을 지지 않았다. 소액결제에도 공인인증서를 요구하고 이용자에게 각종 보안 프로그램을 내려받게 해 인증서 관리 책임을 떠넘겼다. 미국에선 사고가 나면 1차 책임은 아마존이나 카드사가 진다. 신용카드사가 사기추적시스템(FDS)으로 감지해 부정거래를 선제적으로 막고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돌고 돌아 민간 회사들이 경쟁하던 1999년 공인인증서 도입 이전으로 겨우 복귀했다. 정부 실패를 바로잡는 데 수십 년이 걸린 셈이다. 공인인증서는 사라졌어도 인증만 까다롭게 하는 책임 전가 관행은 여전하다. 정부가 만든 공인인증서는 ‘공동인증서’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은행 등도 복잡한 사설 인증서들을 쏟아낸다. 아마존에선 지금도 쓰지 않는 것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름, 주소, 신용카드 정보 정도만으로도 물건을 쉽게 살 수 있게 한 걸까. 모르면 쫓아가지도 못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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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래서 부동산 정치가 ‘4류’ 아닌가[오늘과 내일/박용]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저금리에 따른 현상이다. 세금 문제와는 별개다. 정부는 전국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기 때문에 공급 확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재건축을 규제하면 공급이 억제돼 도리어 값이 오른다.” 서울의 한 민간 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 현장. 연구원 A 씨는 “집값 급등은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 등의 시장 외적 요인과 양질의 주거 환경 선호 및 공급 애로 등의 시장 내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원인과 다른 세금 중과, 재건축 규제, 아파트 분양가 규제, 수급 문제를 주거 복지로 연결, 수도권 신도시 개발 규제 등 5가지 오류를 저질렀다는 비판이었다. 그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특징을 ‘수요를 투기세력으로 인식한다’ ‘부동산 이익에 대한 거부감으로 세금을 중과한다’ ‘부동산을 양극화의 시각으로 본다’는 3가지로 요약했다. 통치이념이 분배여서 부동산 정책 기조도 지역 간 계층 간 형평성을 중시하고, 정책 수단도 조세에 의존해 양극화 해소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해법은 이랬다. 먼저 사람들이 원하는 양질의 아파트 공급 확대를 주문했다. 또 탈세와 탈법은 엄격히 막되 ‘징벌적 세금’은 피해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유세를 내려고 집을 팔거나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문제가 아니냐” “미국은 투자는 있지만 탈세는 없는 반면 한국은 투기와 탈세는 있는데 투자는 없다”고 했다. 그는 “시장이 불안하면 비용을 치르는 것은 결국 정부가 아니라 국민, 1주택 아니면 모두 투기라고 하면 누가 임대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부동산이란 ‘역린’을 건드리자 일부 참석자들은 발끈했다. “정부 대책이 최선은 못 돼도 차선은 되지 않느냐” “세금이 너무 올랐다고 하는데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이다. 전남 해남의 집과 서울 강남 집의 재산세가 별로 차이가 없는 게 말이 되나”라는 반박이 나왔다. 누군가는 “집값이 오른다고 해서 대책을 내놓았더니 이제는 문제가 많다고 하니 어떡하란 말인가” “언론은 일관성, 합리성 있는 보도를 해왔는가”라며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문재인 정부 4년 차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노무현 정부 4년 차인 2006년 6월 세미나 현장에 대한 취재 기록을 옮겨놓은 것이다. 14년 전엔 강남 분당 등 일부 지역만 들썩거렸는데 지금은 규제가 없는 곳이라면 지방까지 들썩거린다. 그때는 저금리에 국토균형개발 사업으로 지방에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풀렸는데 지금은 위기 극복을 위해 유동성이 풀린 건 다르다. 하지만 저금리가 문제가 아니라 저금리로 시장에 ‘유동성’이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무모하게 규제와 세금으로 막겠다고 덤빈 게 문제라거나 수요를 잠재울 ‘공급 확대’ 카드를 외면해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비판은 지금도 나온다. 전 정부의 규제 완화, 언론 탓을 하는 건 그때도 그랬다. 14년 전처럼 수요를 투기로 간주하면 살 집이 없어 못 살겠다는 시민에게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동문서답을 할 법도 하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이 14년간 같은 논쟁과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시장에서 조용히 도태될 것이다. 과오를 잘 아는 공무원들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파수를 맞추고 온수와 냉수를 번갈아 틀어대니 시민들만 죽을 맛이고, ‘정부는 3류, 정치는 4류’라고 비웃는 게 아닌가. 부동산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지 정쟁 대상이 아니다.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부동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서서히 바뀔 것이다. 14년 후 취재 수첩을 뒤지며 오늘을 복기하는 일이 다신 없었으면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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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는 가도 ‘일자리 전쟁’은 계속된다[오늘과 내일/박용]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현직인데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밀렸다. CNN 출구 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경제 회복을, 바이든 지지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바이든 손을 들어준 대선 결과는 ‘방역이 경제 회복보다 시급하다’는 민심인 셈이다. 한편으로 박빙의 승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엉터리 방역으로 미국인들의 안전과 자존심을 추락시키지 않았다면, 선거 구도를 ‘트럼프 대 바이든’이 아닌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로 몰고 가지 않았다면 표심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게 한다. 바이든 당선인이 당장은 코로나19 방역에 전력을 다하겠지만 불길이 잡히면 경제 회복과 미국인 일자리 복원에 힘을 줄 수밖에 없다. 그가 약속한 ‘통합과 치유’의 정치를 하려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47.4%의 트럼프 지지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그들과 공명할 수 있는 정책 공약수는 중산층 재건과 제조업 일자리다. 트럼프를 백악관 주인으로 이끈 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유산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시민’으로 불리며 국제사회에서 인기가 많았으나 안에서는 미국인 일자리를 챙기지 못한다는 반대 세력의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케어’ 등 사회 안전망을 늘려 저소득층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했으나 자국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중산층 일자리가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 그는 집권 2기에 제조업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든다고 했는데 36만 개만 만들었다.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 해소에 집중하다가 경제의 허리인 ‘일하는 중산층’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일부 중산층은 열심히 일해 세금과 의료보험료 등을 내느라 등골이 휘는데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일자리까지 불안하니 자신들은 ‘잊힌 사람들’이라며 억울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 나라의 ‘잊힌 남성들과 여성들’이 더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건 우연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광산촌인 스크랜턴에서 태어나 자동차 영업 일을 하는 부친 밑에서 자란 바이든 당선인이 부잣집 아들인 트럼프 대통령보다 쇠락한 공업지대의 아픔과 잊힌 중산층의 고통을 모를 리 없다. 바이든 당선인은 7일 대선 승리 연설에서 중산층을 ‘국가의 중추’로 정의하고 재건을 선언했다. 선거 때는 ‘제조업은 미국 번영의 무기’로 규정했다. 일자리 보호를 위한 ‘바이 아메리칸’ 공약도 내걸었다. 연방정부 조달 사업에서 미국산 구매 기준을 엄격히 하고 세금으로 개발한 신기술로 해외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것도 제한하겠다고 했다. 미 자동차 산업 부활과 미 항구 내 화물 운송을 미 선박에 맡긴다는 구상도 있다. 바이든 캠프는 “무역에 대한 모든 결정의 목적은 미 중산층을 재건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임금을 올리고 지역사회를 강화하는 것”이라며 “불공정 관행, 환율 조작, 반덤핑, 국영기업 악용, 불공정한 보조금으로 미 제조업을 약화시키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대해 공세적 무역 이행 조치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우격다짐은 아니더라도 바이든식 보호무역 공세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주요 타깃은 중국이 되겠지만 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도 반덤핑 관세 등의 불똥이 튈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일하는 중산층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면 4년 뒤 ‘샤이 트럼프’(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트럼프 지지자)는 투표장에서 다시 결기를 보일 것이다. 못을 빼도 못 자국이 남듯이 ‘트럼프는 가도 트럼프주의는 남는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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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테크’의 배신[오늘과 내일/박용]

    갓 3년을 넘긴 신생 은행 몸값이 국내 4대 금융지주회사보다 높다고 한다면 예전엔 웃어넘겼을 것이다. 요즘엔 그랬다간 물정 모른다는 소릴 듣는다. 2017년 카카오가 세운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최근 유상증자로 7500억 원을 조달한다고 했더니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들이 주당 2만3500원을 쳐서 지분을 사기로 했다. 내년 상장을 추진하는 이 은행의 지분가치를 약 8조5800억 원으로 평가한 것이다. 국내 4대 금융지주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하나금융(9조 원대)에 근접하고 우리금융(6조 원대)보다 높다. 이런 일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다. 중국의 빅테크(거대 기술기업)인 알리바바가 설립한 금융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은 다음 달 중국 상하이와 홍콩 증시 동시 상장을 추진한다. 이 회사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약 345억 달러로 세계 최대 공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상장에 성공하면 시가총액은 3130억 달러로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3163억 달러)와 맞먹는다. 빅테크가 금융시장으로 몰려들면 기존 금융사와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29일 열린 제2회 동아 뉴센테니얼포럼 기조연사로 나선 타일러 카우언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서로 영역을 확대하다가 충돌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규제 전쟁’을 예고했다. 박관수 캐롯손해보험 뉴비즈앤서비스 부문장도 “2000년대 유통회사와 충돌하던 전자상거래 시장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빅테크가 더 편리하고 저렴하며 안전한 금융 서비스를 내놓는다면 소비자들은 환영할 것이다. 규제로 막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개방과 공유의 공간인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 덕분에 성장하고도 덩치가 커진 뒤엔 다른 경쟁자가 진입하지 못하게 문을 닫아걸고 통행세나 다름없는 수수료를 거두는 철옹성을 쌓는다면 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미국 정부는 구글을 시장 지배력을 악용해 경쟁자들을 배제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반독점 위반 혐의로 제소했다. 제프리 로즌 미 법무부 부장관은 “정부가 반독점법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세대 혁신의 물결을 잃을 것이고 미국인들은 ‘차세대 구글’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빅테크가 소비자들의 정보를 끌어모아 만든 플랫폼은 한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리함을 주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공짜는 아니다. 공짜 플랫폼을 열고 소비자를 모은 뒤에 플랫폼을 이용하려는 금융사 등에서 수수료를 받는 식의 양면 전략을 구사한다. 결국 소비자들이 어딘가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라면 독과점 플랫폼에 따른 소비자 이익의 훼손이 일어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빅테크 네이버가 세운 금융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기존 금융사와 제휴하는 형태로 금융시장에 우회 진출했다. 실상은 ‘네이버 통장’처럼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연결해 주거나 플랫폼에 입점한 온라인 상인들에게 금융사 대출을 알선하는 일종의 금융 중개 서비스다. 문제는 편리함을 미끼로 지나친 수수료를 요구할 때 발생한다. 수수료 받아가는 거간꾼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네이버는 보험시장 진출을 추진하다가 이 문제로 발목을 잡혔다. 보험사들은 전화마케팅 수수료(5∼10%)보다 높은 건당 11%의 수수료를 줘야 할지 모른다고 반발한다. 이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의자 뺏기’와 같은 수수료 싸움을 혁신이라고 부를 순 없을 것이다. 금융 관료들이 요즘 ‘성을 쌓는 자는 쇠할 것이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할 것’이라는 유목민의 격언을 자주 얘기한다. 혁신은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편익을 가져다주는 길을 개척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빅테크가 정말로 새 길을 뚫고자 한다면 소비자 편에 서는 개방과 공유의 ‘인터넷 초심’으로 되돌아가길 바란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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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스 형, 펀드가 왜 이래?’[오늘과 내일/박용]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수술대에 올린 ‘집도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76)의 이름이 뜬금없는 데서 등장했다. 거액의 펀드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의 로비 창구로 의심을 받고 있는 고문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경제 원로의 명성에 큰 금이 갔다. 한국 펀드시장은 중병이 들었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옵티머스 사태의 기본 틀은 19세기부터 반복된 ‘폰지 사기’와 비슷하다는 게 검찰의 분석이다. 투자 수익을 약속한 뒤 다른 투자자의 돈을 끌어와 돌려 막으며 돈세탁을 거쳐 투자금을 빼돌린 전형적 사기수법이라는 거다. 옵티머스 펀드 자금 5100억여 원 중 절반 정도가 ‘돌려 막기’에 쓰였고 4000억 원 정도는 돈세탁을 거쳐 누군가 주머니에 녹아 들어가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는 말도 들린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유동화 작업이 필요한 공공기관 매출 채권으로 투자자를 속이고 공공기관들의 기금과 유력 인사를 고문으로 끌어들인 수법은 한국 금융계의 약한 고리를 잘 아는 ‘꾼’의 냄새가 난다. 배후엔 대담한 ‘매스터마인드(범죄 지휘자)’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사고 규모는 3108억 원으로 전년보다 1812억 원(139.8%) 늘었다. 100억 원이 넘는 대형 사고는 2018년 1건에서 6건으로 증가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반대를 무릅쓰고 1월 서울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폐지했다. 노련한 꾼들은 ‘여의도 저승사자’의 해체를 ‘그린라이트’ 신호로 여겼을 것이다. 금융사기만 문제는 아니다. 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굴리는 ‘금융 집사(스튜어드)’들의 일탈과 무능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한국 금융사들은 미국 투자은행들이 설계한 파생 금융상품에 멋모른 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냈다. 당시 한 시중은행장은 “정장을 빼입고 서류 가방을 든 외국계 은행 영업사원들이 들고 온 상품설명서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돈을 넣었다”고 후회했다. 10년 넘게 흐른 지금도 ‘깜깜이 투자’는 반복된다. 2015∼2017년엔 없던 환매 연기 펀드가 2018년 10개로 늘더니 올해 7월과 8월 각각 21개, 22개가 발생했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입수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지적이다. 이 중에는 해외 금융상품이나 자산 등에 돈을 밀어 넣었다가 환매 중단된 펀드들이 포함돼 있다. 잘 키운 펀드는 혁신기업 생태계의 동맥이지만 견제 장치가 고장 난 펀드는 멀쩡한 기업 생태계마저 망가뜨린다. 옵티머스 자금 중 일부는 기업 사냥꾼들이나 쓰는 무자본 인수합병(M&A)의 돈줄로 동원됐다. 국민의 은퇴 자산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인력들이 대마초까지 흡입할 정도로 기강이 흔들리고 기금 운용 전문 인력을 제대로 뽑지 못하는데도 한국 기업 경영에 대한 견제 책임까지 압박을 받고 있다. 미국에선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했던 미 기업을 망가뜨리고 1 대 99의 양극화 논란을 불러온 원인 중 하나로 단기 실적과 거액의 배당을 요구하는 ‘펀드 자본주의’를 꼽기도 한다. 펀드에 맡기면 잘될 거라는 ‘펀드 만능주의’도 불안하다. 정부나 정치권은 툭하면 펀드 타령이다. 정부가 수익성과 성장성이 떨어지는 정책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다 보니 정권마다 ‘관제 펀드’들이 생겨난다. 제대로 된 기업을 키우고, 인재를 육성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면 자본은 민간에서 흘러 들어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고장 난 펀드 자본주의를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나훈아 노래처럼 펀드 투자자들이 ‘테스 형, 펀드가 왜 이래?’라고 따져 묻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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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통역병을 제비뽑기해야 하는 나라[오늘과 내일/박용]

    2월 영화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은 현지 통역 최성재(샤론 최) 씨의 맛깔스러운 통역 덕분에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다. 2018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역사적 정상회담도 전문 통역관의 입을 통해 이뤄졌다. 미묘한 어감과 말의 맛까지 살려야 하는 통역은 실력과 경험이 검증된 프로들의 세계다. 대한민국은 이런 일도 제비뽑기로 정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서모 씨(27)의 휴가 특혜 논란으로 국방부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투입할 통역병을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발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카투사들이 평소에 영어를 쓰며 근무를 한다지만 다는 아니다. 통역은 일상 업무와도 다르다. 사람마다 어학 실력도 제각각이니 누가 돼도 문제없는 일은 아니었다. 당시 주한 미8군 한국군 지원단장이었던 이철원 예비역 대령은 “‘서 군과 관련해 여러 번 청탁 전화가 오고, 2사단 지역대에도 청탁 전화가 온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제가 2사단 지역대에 가서 서 군을 포함한 지원자 앞에서 제비뽑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추 장관의 해명은 달랐다. 그는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 아들인 줄 알고 군이 방식을 바꿔 제비뽑기로 떨어뜨렸다”며 조사를 요구했다. 한쪽은 권력자의 청탁 논란을 피하려고 그랬다고 하고, 다른 쪽은 군이 여당 대표 아들을 떨어뜨리려고 선발 방식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외압과 음모 어느 쪽이든 외부 요인으로 선발 과정이 변질된 건 심각한 문제다.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 로또 추첨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구시대엔 부와 권력이 계급, 재산, 연고 등에 따라 배분됐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지지자들에게 공직을 나눠주는 ‘엽관제도(Spoils system)’가 횡행하던 미국에서는 1881년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공직을 받지 못해 불만을 가진 지지자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이후 대대적인 개혁이 이뤄졌다. 공직을 당적이 아닌 실력에 따라 선발하는 ‘실력주의(Meritocracy)’가 그때 자리 잡았다. 재능과 노력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을 세계 최강 국가로 밀어 올렸다. 한국 사회의 실력주의 믿음은 필자가 미 2사단에서 카투사로 근무했던 20여 년 전보다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엔 국사 국민윤리 영어 필기시험을 치러 뽑았다. 이 지식이 미군과 생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그때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발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토익 780점 이상 등 어학 실력이 어느 정도 있는 지원자 중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다. 자대 배치도 컴퓨터 추첨이다. 추첨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도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공정한 기회와 절차의 수단은 아닐 것이다. 미국식 실력주의가 과도한 경쟁을 부르고 승자 독식 사회를 만든다는 지적도 있지만 계층 이동의 공정한 사다리를 복원하려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회와 평가가 공정해야 한다. 특정 계층에 유리한 방식이면 엘리트들이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실력주의를 교묘히 악용할 수도 있다는 게 미국 싱가포르 등 실력주의 사회의 교훈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 부모들의 ‘자녀 스캔들’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패자를 배려하되 기회와 평가가 공정한 ‘따뜻한 실력주의’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청탁’과 ‘제비뽑기’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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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지원금 중독’으론 자영업 눈물 못 닦는다[오늘과 내일/박용]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오래된 식당이 5일 문을 닫았다. 유력 정치인 단골 때문에 정권이 바뀌고 손님이 줄어 힘든 적도 있었지만 꿋꿋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막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앞에선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식당 직원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걱정에 “이젠 실업자”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식당의 마지막을 함께한 단골들의 마음은 돌덩이를 안은 것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인근 무교동에서 51년째 구두 수선을 하고 있는 70대 A 씨는 지난달 오랜만에 1주일 쉬었다. 몸도 불편한 데다 수입마저 줄자 문을 닫았다. 주변 건물을 돌며 직장인들의 구두를 걷어와 닦아 주고 인당 월 2만 원을 받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외부인의 건물 출입이 막혔다. 출근한 직장인도 줄었다. 일감도 끊겼다. A 씨는 “요즘 참 힘들다”고 했다. 코로나19 재난의 최대 피해자는 환자와 가족이지만 식당 빵집 슈퍼 등 동네 가게 주인과 직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3%)을 크게 웃도는 20%대를 맴돈다. 코로나19 대책에서 자영업자 맞춤 대책이 더 긴요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된 상황에선 긴급재난지원금을 1차 때처럼 모두에게 주는 건 자영업자들에게 당장 도움을 주지 못한다. 가게 영업을 제한하면서 소비를 하라고 돈을 푸는 격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장기전이다. 거리 두기 3단계 격상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인당 1200달러의 현금을 지급한 건 우리의 3단계에 해당하는 봉쇄령으로 미국인 98%가 자택 대기 명령을 받고 경제가 마비된 상태에서 소득이 끊긴 사람을 위해 ‘비상금’을 나눠준 것이다. 우리는 K방역의 성공을 해외에 자랑하면서 나라 곳간을 열고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 줬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재난지원금을 또 풀어야 한다면 격상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해 피해를 본 영세 상인과 소상공인에게 집중하는 맞춤형 대책이 맞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재난 피해자를 돕는다는 취지에도 부합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4∼6월) 도소매 숙박 음식점업 등 서비스업 대출이 전 분기보다 47조2000억 원 늘었다. 가게 주인들이 대출로 버티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도 주인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게 ‘급여보호프로그램(PPP)’을 마련했다. 먼저 대출을 해주고 그 돈을 직원 인건비로 쓰면 상환을 면제하는 식으로 신속하게 지원한 점이 우리와 다르다. 자영업자들이 이런 지원금보다 더 간절히 원하는 건 바이러스 걱정 없이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최전방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가장 먼저 매달려야 할 일은 급한 불을 끄는 방역이다. 환자가 느는데 재난지원금 타령을 하는 건 ‘재난지원금 중독’ 소리를 듣기 딱 좋다. 그들이 할 일은 따로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제는 상극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했더니 도소매 음식 숙박업 등 소상공인의 61.4%가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격상을 반대했다. 매출이 줄고 경기 침체가 우려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자영업자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사회적 거리 두기도 성공할 수 없다. 뉴욕시는 코로나19 환자가 줄자 가게 앞 도로 주차공간을 야외 식당처럼 이용하게 규제를 풀었다. 감염 위험이 높은 실내 영업은 제한하되 야외 영업을 양성화해 장사할 공간을 내준 것이다. 식당 1만여 곳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있었다. 방역과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온라인이든 야외든 거리 두기 속에서도 자영업자들이 숨 쉴 공간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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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슬라만 타면 ‘친환경 엘리트’인가요”[오늘과 내일/박용]

    미국 전기차 테슬라 주가가 20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2000달러를 넘었다. 두 달여 만에 주가가 갑절로 뛴 셈이다. 서울 거리에서 테슬라 차량이 자주 보이고 한국에서 이 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테슬라는 올해 상반기(1∼6월) 국내 친환경차 보조금의 절반 가까이를 싹쓸이했다. 5년 전 미 실리콘밸리에서 연수를 하면서 방문한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기업 주차장에는 1억 원이 넘는 전기차 모델인 테슬라S가 흔했다. 당시 월가 금융인은 벤츠, BMW를 타지만 실리콘밸리의 성공한 사업가들은 테슬라로 갈아타는 게 유행이었다. 기후변화 방지에 기여하는 ‘친환경 엘리트’라는 걸 과시하려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전기차는 친환경이지만 동력원인 전기 생산은 그렇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석탄화력 발전 의존도가 높고 제조 공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많은 중국, 인도에서는 전기차가 오히려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미국은 중국 다음으로 석탄화력 의존도가 높다. 한국은 세계 8위의 석탄화력 발전 대국이다. 그들이 전기차를 탄다고 으스댈 일은 아니다. 친환경 엘리트들의 주장처럼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보조금을 줘 전기차를 보급하기 전에 더 깨끗하고 저렴한 전기부터 생산하는 게 맞는다. 미국의 분석기관인 서드웨이는 석탄을 대체하는 원자력발전소 1기가 테슬라 차량 54만1353대를 보급한 만큼의 탄소 배출 절감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연료비 단가는 원전이 6원, 유연탄이 56원, 천연가스 93원이다. 서민은 전기요금이 무서워 찜통더위에도 에어컨을 못 켜는데도 원전만은 안 된다는 친환경 엘리트들도 많다. ‘환경적 올바름’에 매달려 딛고 서 있는 발판마저 걷어차는 일도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에 공공기관의 지원을 막는 ‘해외석탄발전투자금지법 4법’(한국전력공사법, 한국수출입은행법, 한국산업은행법, 무역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에너지 사정에 따라 석탄화력 발전이 불가피한 나라가 있는 데다 한국 기업이 일본 등과 경쟁하며 플랜트 사업을 따내야 하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도 산업계에서 나온다. 기후변화 위협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도 무책임하다. 이명박 정부는 기후변화에 따른 대홍수와 가뭄을 막기 위해 4대강 사업을 시작했고, 현 정부는 기후변화 대책으로 산비탈을 깎아 태양광발전소를 세웠다. 막상 홍수 피해가 나고 산사태가 발생하니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네 탓 공방’만 벌인다. 피해를 입은 서민들은 기후변화 대책에 쓴 내 세금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그들을 붙들고 따지고 싶을 것이다. 5년 전 실리콘밸리에서는 다른 각도의 ‘테슬라 논쟁’이 벌어졌다. 값비싼 전기차를 타는 친환경 엘리트들은 정부나 회사가 제공하는 무료 전기 충전소를 이용하고 보조금까지 받는데 서민들은 낡고 오래된 싸구려 차를 몰며 비싼 기름값을 도로에 뿌리고 다니는 게 현실이었다. 소수의 환경 엘리트들이 독점한 환경 정책에서 다수의 서민들이 ‘기후 악당’으로 전락하고 불이익을 받는 ‘정책의 역진성(逆進性)’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기후변화는 현재 진행 중인 위협이다. 인류가 대책을 마련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부담과 불편을 서민과 시장에 전가하고 생색만 내려 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기후변화 대응을 막는 진짜 ‘기후 악당’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 정책이라야 기후변화와의 긴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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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준병의 월세시대, 김진애의 뉴요커처럼[오늘과 내일/박용]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시 부시장 출신의 도시 전문가다. 그가 “국민 누구나 월세 사는 세상이 온다”며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게 나쁜 현상이냐’고 반문했을 때 이래서 정부·여당이 23번의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전·월세 전환은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 보증금의 덩치가 커 생각처럼 월세 시대가 금방 닥칠 거라고 보긴 어렵다. 문제는 정부의 인위적 개입으로 시장이 뒤틀리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된다는 말에 계약을 끝내자고 하거나 보증금을 월세로라도 올려 받겠다는 집주인들의 요구에 밤잠을 설친 세입자가 한둘이 아니다. 저금리와 소득 증가로 전세가 월세로 자연스럽게 전환되고 있다면 정치권이 굳이 전·월세 전환율까지 규제하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월세시대가 팍팍하다는 건 살아본 사람은 다 안다. 월세를 꼬박꼬박 낼 현금이 없으면 살기 팍팍한 주변부로 하염없이 밀려난다.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통장의 ‘현금 흐름’이 좌우할 월세시대의 도시 양극화에 우린 얼마나 준비가 돼 있나. 월세시대는 ‘신용의 시대’다. 미국 아파트 보증금은 한 달 월세 정도다. 세입자는 월세가 밀려도 보증금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집주인들은 월세의 2, 3배 이상의 월수입 증명을 요구하고 집세 공과금 연체 등의 세입자 신용 기록을 따진다. 세가 밀린 세입자와 내보내려는 집주인들의 갈등도 빈번하다. 우린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 건가. 월세시대가 온다면 시민들은 이런 걸 묻고 싶을 것이다. 월세시대엔 공공 임대주택도 중요하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도시계획학 박사 학위를 받은 미국 유학파 전문가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주택청이 생기면 좋겠다”고 불쑥 말했다. 주택청을 만들어 주택 통계나 공공 임대주택 관리, 민간 표준 임대료 제시 등을 맡기는 법안을 내겠다는 것이다. 일만 터지면 세금으로 조직부터 만들겠다고 덤비는 건 익숙하게 봐 온 일이다. 미국에서 주택청은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방만한 운영과 열악한 주거의 질로도 악명이 높다. 공공 아파트 56만 채를 관리하는 뉴욕시 주택청(NYCHA)은 최악의 ‘임대인’으로 2년 연속 선정됐다. 곰팡이가 피고 물이 새고 난방이 잘 안 된다거나 범죄, 화재를 걱정하는 민원이 쏟아진다. 시영 아파트 보수 예산만 수십조 원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공공 아파트 관리를 민영화하는 방안까지 추진되고 있다. 김 의원은 또 “차를 안 가지고 다니게만 하면 우리도 상당 부분 뉴요커가 된다”고 말했다. 고밀도 도심개발을 지지하면서 교통 문제 해법으로 뉴욕을 제시한 것이다. 맨해튼 주민이 차를 갖지 않는 건 비싼 주차비 탓도 있지만 24시간 운영되는 지하철과 페리 케이블카 우버 등 다양한 교통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 지하철 편도 요금은 2.75달러(약 3200원)로 비싼 편이나 버스 지하철을 무제한 탈 수 있는 한 달 정액권은 127달러(약 15만 원)다. 지하철 청결, 막대한 대중교통 적자는 고민거리다. 서울은 24시간 지하철도 없고 한 달 정액권도 없다. 승차 공유 등 혁신적 교통 서비스 도입도 더디다. 이런 얘긴 빼놓고 뉴요커처럼 차 없이 살라고 얘기할 수 있나.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에 성공하고 있는 건 미국과 달리 과학과 사실에 입각한 방역 대책을 전문가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혼란과 불안을 해소하려면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더 신중하고 정교한 해법을 내야 할 책임이 그들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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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도시 ‘벌집 아파트’ 시대가 흔들린다[오늘과 내일/박용]

    2주 전 미국 뉴욕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왔을 때 거리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3년 전 퇴근길 직장인들과 차량으로 밀리던 오후 8시경 광화문 주변 도심은 주말처럼 한산했다. 꼬리를 물고 가다 서다를 하던 차들이 거리를 씽씽 내달리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해외 입국자 전용 택시의 기사는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직장인들의 퇴근이 빨라진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 거리가 더 한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더 기가 막힌 건 이런 경기 침체 속에서도 서울 아파트값은 3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3년간 서울 25평 아파트값이 4억5000만 원(53%) 상승했다고 한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막대한 돈을 풀어 유동자금은 넘쳐나는데 서울에서 아파트만 한 주거 환경과 투자 가치를 갖춘 곳이 별로 없으니 아파트 시장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것이다. 서울에서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아파트에 투자한다는 얘길 들으면서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뉴욕시의 아파트에서 지난 석 달간 갇혀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3월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되고 뉴욕에 봉쇄령이 내려지자 아파트 주민들이 누리던 헬스장, 루프톱 등 공용 편의시설은 문을 닫았다. 집 밖에 나가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던 식당이나 백화점, 박물관, 극장도 문을 닫았다. 도심 아파트의 장점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아파트의 불편함과 고통은 커졌다. 가족들이 학교나 직장을 가는 것을 전제로 좁은 공간을 선택했던 사람들은 가족들과 24시간을 아파트에서 갇혀 지내야 한다는 막막한 현실에 직면했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층간 소음도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맨해튼의 오래된 아파트 주민들은 집 안에 세탁기가 없어 건물 내 공용 세탁시설이나 동네 빨래방을 이용했다. 바이러스 감염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소형 세탁기를 사서 욕조에 설치했다. 초기 방역에 실패하고 의료시설 포화를 걱정하던 뉴욕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코로나19 증상이 있더라도 심각하지 않으면 병원에 오지 말고 집에 머물도록 권했다. 증상이 있건 없건 주민들은 숨넘어갈 정도로 아프지 않으면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를 떠날 수 없었다. 집 밖보다 안이 더 위험한 게 아니냐는 아파트 주민들의 걱정도 커졌다. 공중보건 위기에 속수무책인 ‘벌집 아파트’의 한계를 체감한 뉴욕 시민들은 고층 아파트에 ‘영끌’까지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맨해튼에서는 돌을 사둬도 돈이 된다’는 말까지 있었지만 6월 맨해튼에서 거래된 아파트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6% 줄었다. 떠나는 이는 늘어나는데 부동산 거래가 중단돼 빈집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아파트를 찾는 이들은 발코니 등 야외 공간이나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홈 오피스’가 있는 집을 찾는다. 대도시의 빠른 회복력을 감안하면 코로나19 확산이 멈추고 경제 활동이 본격 재개되면 맨해튼 아파트 거래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다른 한편에서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등이 보편화되는 ‘언택트 시대’에 도심 고층 아파트 인기는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서울 등 세계 대도시의 ‘롤 모델’로 여겨지던 뉴욕 아파트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당분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 인기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는 히트곡 ‘뉴욕뉴욕’에서 ‘이 도시에서 아침에 눈을 떴으면 좋겠다’고 노래했지만, 돌이켜 보면 코로나19 봉쇄령 속에서 뉴욕 아파트에서 아침을 맞는 일은 설레고 흥분되는 일만은 아니었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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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홍콩 특별지위 박탈 행정명령 서명…中 “난폭한 내정간섭”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간)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를 없애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 및 시행에 관여한 중국 관리들에게 금융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홍콩자치법에도 서명했다. 미국 정부의 초강수에 중국 정부는 “난폭한 내정간섭”이라고 강력 반발하면서 미중 갈등도 한층 악화될 전망이다.● 홍콩 특별지위 박탈 가속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콩은 이제 중국 본토와 똑같이 취급될 것”이라며 행정명령에 서명한 사실을 밝혔다. 이어 “(홍콩에 대한) 특권, 특별한 경제적 대우, 민감한 기술의 수출은 이제 없다”고 선언했다. 이날 조치는 중국 정부가 홍콩보안법 제정을 의결한 직후인 5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밝혔던 관련 계획의 후속조치. 미국은 앞서 지난달 29일 홍콩에 대한 국방물자와 첨단기술의 수출 규제를 단행한 것을 시작으로 분야별로 속속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홍콩에 대한 중국의 위협과 관련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앞으로 홍콩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조치다. 이민과 국적, 국방물자 등 수출통제 등에 대해 홍콩에 부과하던 특혜를 없애는 내용도 담겼다. 구체적으로는 △홍콩 여권 소지자에 대한 미국 내 입국 특혜 △수출통제 물자 등 특정 분야의 수출 특혜 △국제선박 운항과 관련한 상호 세금 면제 △경찰 교육 협력 △풀브라이트 교육 교류 프로그램 △지리 및 우주 분야 정보 공유 등을 모두 중단 혹은 폐지했다. 홍콩 주민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이 중국인 수준으로 강화되면 중국도 맞대응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홍콩의 기업환경에 큰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과 홍콩 간의 범죄인 인도 협정을 중단하고, 국제 수용자 이송을 폐지시킨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에서 정치범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인사가 망명 또는 탈출을 해서 미국으로 갔을 경우 중국이 송환 요청을 하더라도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향후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관세·금융 분야는 포함 안 해 트럼프 행정부는 이날 무역과 관세, 금융 분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밝히지 않았다. 홍콩과 중국은 물론 미국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핵심 분야에 대해서는 일단 여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 정부의 후속조치가 이어지면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허브’ 위상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폭스뉴스는 “이번 행정명령에 따라 홍콩 수출품의 관세는 중국 본토와 같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홍콩의 특별지위를 인정해 중국 본토(25%)보다 훨씬 낮은 관세(1.7¤2%)를 부과해왔지만, 앞으로는 중국과 똑같은 관세를 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관세와 금융 분야 조치까지 이뤄지면 홍콩 경제와 금융산업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는 홍콩에서 활동하던 다국적 기업과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엑소더스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주 홍콩 미국 상공회의소가 홍콩 내 180개 회원사를 조사한 결과 30%가 홍콩 밖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들과 함께 홍콩 경제를 떠받쳤던 고급 인력들도 대거 유출될 우려도 적지 않다. 벌써부터 홍콩을 떠나 대만 싱가포르 등 주변국으로 향하는 전문직과 유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 이례적으로 즉각 반박한 中 중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즉각 반박했다. 통상적으로 오후에 열리는 정기 브리핑을 통해 입장을 밝혔던 것과 달리 이날은 오전 외교부 홈페이지에 성명을 올렸다. 중국 외교부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며 “중국은 정당한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반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이라면서 “미국이 계속 고집한다면 중국은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번 제재에 관여한 미국 고위 인사들에 대한 ‘개인 제재’가 유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동시에 ‘우군’ 확보에 나섰다.15일 런민일보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전날 싱가포르, 태국 총리와 연쇄 전화 통화를 했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데도 정상 간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홍콩 및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우군을 확보하려는 중국 측의 노력으로 해석되고 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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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이 코로나19 위기에서 배운 네 가지 교훈[오늘과 내일/박용]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컸던 뉴욕시가 위기를 딛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식당이 야외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백화점도 다시 문을 열었다.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300만 명을 넘어 ‘2차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뉴욕시의 최근 상황은 꽤 안정적이다. 뉴욕주에서는 7일(현지 시간) 현재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코로나19 환자가 97명에 그쳤다. 인공호흡기 환자가 100명 밑으로 떨어진 것은 3월 16일 이후 처음이다. 뉴욕은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당한 뒤에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첫째,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감염 확산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컸다. 뉴욕 응급의료시설인 시티엠디(CityMD)에 따르면 저소득층 노동자가 많은 퀸스 지역에서 코로나19 항체 형성률이 68.4%가 나왔다. 검사를 받은 10명 중 7명 가까이가 코로나19에 걸려 항체가 형성됐다는 뜻이다. 항체 검사가 의심 증상이 있어 의료시설을 방문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됐기 때문에 실제 주민들의 항체 형성률보다 높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전염병 전문가들이 집단면역의 ‘매직 넘버’로 꼽은 항체 형성률 60%를 넘어선 셈이다. 반면 브루클린에서 백인과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코블힐 지역의 병원에서는 항체 양성 반응자가 13%에 그쳤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지난달 26일 현재 뉴욕시에서 31만4000명을 조사한 결과 항체 형성률은 26%로 조사됐다. 둘째, 감염 확산의 속도가 지역, 소득에 따라 차이가 있는 만큼 2차 확산을 대비한 맞춤형 대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식당, 식품점, 의료시설, 건설 노동자 등 코로나19 위기에도 출근해야 하는 필수업종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서 감염률이 높았다. 필수업종 근로자들이 밖에서 감염된 뒤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는 집으로 돌아가 가정 내 ‘슈퍼 전파자’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2차 위기를 대비해 필수업종 노동자 보호 대책과 취약지역 의료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셋째, 1차 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선방했던 안전지역이 2차 위기의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항체 형성률이 얼마나 지속될지, 집단면역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검증이 필요하지만 1차 위기에서 감염자가 적었던 지역은 2차 확산이 시작되면 감염자가 급증할 잠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넷째, 방역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공감대다. 사태 초기엔 마스크를 쓴 동양인이 지하철역에서 폭행을 당할 정도로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요즘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상점도 갈 수 없다. 상점마다 ‘No Mask, No, Entrance(마스크 없으면 입장 못 합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렸다. 한적한 공원 산책길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면 서로 멈춰 서서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게 상식이 됐다. 3년간의 뉴욕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9일 인천공항에 도착해 한국의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을 체험했다. 뉴욕에서 느낄 수 없던 체계적 관리를 경험하며 이래서 ‘K방역’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덕분에 한국의 감염자와 사망자가 적고 코로나19 항체 형성률도 0.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차 방역엔 성공했지만 2차 감염의 잠재 위험이 큰 나라인 셈이다. 집단면역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의 선택은 딱 하나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긴장을 풀지 말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맞춤형 대책’을 보완해 혹시 모를 2차 위기에 대비하는 길밖에 없다. K방역의 성공은 우리에겐 기회이자 위기인 ‘양날의 검’이다.  박용 경제부 차장 parky@donga.com}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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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므누신-파월 “추가 경기부양”… 2분기 다우 33년만에 최대 상승률

    미국 재정과 통화 정책의 사령탑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나란히 의회에 출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미 의회가 3월 승인한 2조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 법안에 따라 마련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 자리였다. 뉴욕 증시는 이날 코로나19 위기 대응 사령탑들의 ‘입’에 주목하며 장 초반 혼조세를 보였다. 므누신 장관과 파월 의장의 추가 경기 부양 의지 등에 힘입어 2분기(4∼6월) 마지막 장은 상승세로 끝났다. 마스크를 쓰고 나온 므누신 장관과 파월 의장은 팔꿈치 인사를 나누고 투명 유리벽이 설치된 좌석에 앉아 의원들의 질의에 답했다. 므누신 장관은 마스크를 벗고 발언했지만, 파월 의장은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파월 의장은 “우리는 중요한 새 단계에 진입했고 예상보다 더 빨리 해냈다”면서도 “경제 활동의 회복은 환영하지만 바이러스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새로운 과제 또한 던져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완전한 경제 회복은 사람들이 광범위한 활동에 다시 참여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정책 조치들에 경제의 앞날이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위기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경기 부양책을 일찍 중단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다. 미 의회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3조 달러가 넘는 경기 부양책을 마련했지만 핵심 프로그램이 이달 종료될 예정이다. 6700억 달러 규모의 중소기업 고용 유지를 위한 급여보호프로그램(PPP) 대출 신청은 이날 마감됐다. 연방정부가 실직자들에게 지급하는 주당 600달러 추가 실업급여도 7월 말로 끝난다. 므누신 장관은 “7월 말까지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추가 경기 부양책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미 상원은 이날 밤 늦게 PPP 대출 신청을 8월 8일까지 5주 더 연장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뉴욕 증시는 경제 사령탑들의 경기 부양 의지 등에 힘입어 홍콩 국가보안법(보안법) 시행에 따른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재확산 우려 등의 악재를 이겨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에 비해 0.8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54%, 나스닥 지수는 1.87% 올랐다. 이 결과 다우 지수는 2분기에 3895.72포인트(17.7%) 오르며 1987년 1분기 이후 분기 기준 최대 상승률을 보였다고 WSJ는 전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도 이 기간 515.70포인트(19.9%) 올라 1998년 4분기 이후 가장 훌륭한 성적을 냈다. 나스닥 지수도 2분기에 30.6% 올랐다. 2분기 주식시장의 ‘깜짝 상승세’는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봉쇄령 등으로 급격히 위축된 실물 경제와 동떨어진 흐름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연방정부와 연준의 돈 풀기로 주식 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진 데다 경제 활동 재개에 따른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요 지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하반기(7∼12월)에는 코로나19 재확산, 홍콩 국가보안법 서명에 따른 미중 무역 갈등 확대, 11월 미 대선 등이 증시 변수로 꼽힌다.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202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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