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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사랑하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이를 실천하는 게 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일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제8회 생명나눔 주간 기념식’에서 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은 이택조 경북 상주 예일교회 담임목사(64·사진)는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장기기증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목사는 1993년 신장, 2005년 간을 타인에게 기증했다. 2022년부터는 신장을 기증하고 이식받는 사람들의 모임인 새생명나눔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장기기증 홍보와 인식 개선 활동에 기여해 표창을 받았다. 1993년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는 신장투석을 하는 17세 농아가 병원에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아이가 투석을 받는 모습이 너무 힘들고 아파 보여 병원에 물어보니 신장을 기증하면 건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며 처음 장기기증을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신장과 간을 기증한 뒤에도 지난해 자전거로 국토 종주를 할 정도로 건강하다. 그는 “기증한 후에 내 몸이 약해지면 다른 이웃에게 생명과 사랑을 나누자고 권하지 못할 것 아니냐”며 “항상 몸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장기기증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웃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아픈 이웃이 있다면 지나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다가가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장기 등 기증 활성화 및 생명나눔 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유공자 36명과 2개 기관이 장관 표창을 받았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늘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이를 행함으로써 실천하는 것이 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8일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제8회 생명나눔 주간 기념식’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은 이태조 경북 상주 예일교회 담임목사(64)는 장기기증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목사는 1993년 신장, 2005년 간을 대가 없이 타인에게 기증하고, 2022년부터 신장을 기증하고 이식받는 사람들의 모임인 새생명나눔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장기기증 홍보와 인식개선 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다.이 목사는 1993년 장애인 시설 봉사 활동을 하다가 신장 투석을 받는 17세 농아의 병원 방문을 돕게 됐다. 그는 “아이가 투석을 받는 모습이 너무 힘들고 아파 보여 병원에 물어보니 신장을 기증하면 건강을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며 처음 장기기증을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이 목사는 신장과 간을 기장했음에도 지난해 자전거로 국토 종주를 할 정도로 건강이 좋다. 그는 “기증을 한 후에 내 몸이 약해지면 다른 이웃에게 생명과 사랑을 나누자고 권하지 못할 것 아이냐”며 “항상 몸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이 목사는 “장기 기증을 통한 생명나눔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웃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요즘같이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힘들고 아파하는 이웃이 있다면 지나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다가가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하면 좋겠다”고 했다.이날 기념식에서는 이 목사를 포함해 장기 등 기증 활성화 및 생명나눔 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유공자 36명과 2개 기관이 장관 표창을 받았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초고령화의 영향으로 4년 뒤인 2029년에는 복지 분야 법정 지출이 237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내년 적자로 전환된 뒤 5년 뒤인 2030년 준비금이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7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복지 분야 법적 지출은 본예산 기준 181조8110억 원이다. 이 금액은 2029년까지 연 평균 6.8% 증가해 2026년 196조4735억 원, 2027년 211조1749억 원, 2028년 224조1368억 원, 2029년 236조966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본예산과 비교하면 2029년에는 30% 가량 증가하는 셈이다.복지 분야 법정 지출이 늘어나는 이유로는 인구 고령화가 꼽힌다. 한국이 지난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수급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4대 연금 관련 법정 지출은 올해 85조4000억 원에서 2029년 118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기초연금은 올해 21조8146억 원에서 2029년 28조2229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상승률에 연동되는 기초생활보장 급여액 또한 오르면서 기초생활보장 관련 지출은 올해 20조4268억 원에서 2029년 26조269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건강보험의 재정에도 ‘빨간 불’이 켜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정부는 건보료 대비 12.95%인 장기요양보험료율을 유지하고, 수가를 연 평균 3.88% 인상한다는 가정 하에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내년에 당기수지 적자로 전환되고 2030년 준비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는 요양병원, 요양원, 재가요양서비스 등에 대한 이용 대상 및 기능 구분, 세대 간 형평성 제고를 위한 미래 준비금 조성 등이 제시됐다.건강보험은 2032년까지 보험료율 법정 상한 선인 8%에 도달한 뒤 동결한다는 가정 하에 내년에 당기수지 적자로 전환되고, 2033년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보험료율을 먼저 결정한 뒤 이에 근거해 수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을 검토하고, 병상 공급과잉 지역 내 병상 신·증설 제한, 비급여 관리 등을 통해 과도한 의료이용을 관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에 반발해 수련병원을 사직했던 박단 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하반기 세브란스병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모집에 지원했으나 탈락했다.29일 의료계에 따르면 박 전 위원장은 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2년차 레지던트에 지원했으나 최종 불합격했다. 박 전 위원장도 이날 자신의 SNS에 불합격 사실을 밝히며 “애증의 응급실, 동고동락했던 의국원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별 수 있느냐”며 “이 또한 다 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한 풀 더 식히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고민해 보려 한다. 염려와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고 덧붙였다.박 전 위원장은 2023년 8월 대전협 회장으로 당선됐다. 지난해 2월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대전협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됐다. 이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전공의 단체 대표로 전공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박 전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세브란스병원을 사직하면서 “현장 따위는 무시한 엉망진창인 정책 덕분에 소아응급의학과 세부 전문의의 꿈, 미련 없이 접을 수 있게 됐다”며 “저는 돌아갈 생각 없다”는 입장을 남긴 바 있다. 지난해 4월 윤 전 대통령간 140여 분 간 면담한 뒤 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그는 올해 6월 전공의 내부에서 ‘박 위원장이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사퇴했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아동수당 지원 대상이 현재 7세에서 내년 8세까지 확대된다. 비수도권이나 인구감소지역 아동은 추가로 최대 월 3만 원을 지원받는다.29일 보건복지부의 2026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복지부 전체 예산은 137조6480억 원으로 올해 대비 9.7% 증가했다. 복지부는 아동수당 지원 연령을 현행 8세 미만에서 9세 미만으로 확대하고, 비수도권이나 인구감소지역 아동은 월 5000원에서 3만 원까지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아동수당은 아동 1인 당 월 10만 원 씩 지급되고 있다.아동수당 대상이 확대되면서 아동수당 예산은 올해 1조9588억 원에서 내년 2조4822억 원으로 5000억 원 가량 늘어났다. 지원 대상 아동은 현재 214만8000명에서 내년에는 264만5000명으로 증가한다. 앞서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기존 8세 미만에서 2030년까지 13세 미만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내년 3월 전국 시행 예정인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에는 777억 원이 배정됐다. 통합돌봄은 장애, 노쇠 등으로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살던 곳에서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이다. 복지부는 서울 강남구 등 재정 여력이 충분한 곳을 제외한 183개 기초지차체 위주로 예산을 배정할 예정이다.초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내년도 기초연금 예산은 23조3726억 원으로 올해보다 1조5461억 원 늘었다. 노인 인구 증가로 대상자가 43만 명 늘어나고, 기준연금액이 올해 34만2510원에서 내년 34만9360원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세종=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내년 건강보험료율이 7.19%로 3년 만에 인상된다. 이에 따라 월 소득 300만 원인 직장가입자는 월 건보료가 10만6350원에서 10만7850원으로 1500원, 연간 1만8000원 늘어난다. 건보료율 인상은 올해까지 2년 연속 건보료율이 동결되면서 보험료 수입이 정체되고, 지난해 의정 갈등으로 인한 비상진료로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급증한 것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건보료율 인상에도 적자 전환 시점 등 재정 전망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건보료율 3년 만에 인상28일 보건복지부는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2026년 건보료율 인상을 의결했다. 내년 건보료율은 현행 7.09%에서 7.19%로 높아졌다. 건보료율 인상으로 직장가입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월평균 보험료는 올해 15만8464원에서 내년 16만699원으로 2235원 오른다. 직장가입자는 건보료 절반을 고용주가 부담한다. 지역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는 올해 8만8962원에서 내년 9만242원으로 1280원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건보료율 인상은 3년 만이다. 건보료율은 2017년 이후 물가 상승과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고려해 계속해서 인상됐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에는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국민 경제 부담을 이유로 2년 연속 건보료율이 7.09%로 동결됐다. 건보료율 인상은 건보료율 동결로 인한 수입 정체와 지난해 의정 갈등으로 비상진료체제가 지속되며 건보 지출이 증가하면서 추진됐다. 복지부는 “그간 건보료율 동결과 저성장 기조로 인해 건보 수입 기반이 약화된 상황이고, 지역·필수의료 강화 등을 위한 국정과제 수립에 따른 향후 지출 소요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앞서 복지부는 국정기획위원회에 2%대 건보료율 인상을 건의한 바 있다. 건보료 동결로 인해 건보 재정이 중장기적으로 악화돼 결국 추후에 더 큰 폭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2월 의대 증원 사태 이후 의료개혁과 비상진료대책을 모두 고려할 때 건보 적자 전환 시점이 기존 2026년에서 1년 앞당겨진 올해,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은 기존 2030년에서 2년 당겨진 2028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지난해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총 2조9874억 원을 투입하면서 건보의 정부 지원금을 제외한 보험 수지는 10조4414억 원의 적자를 냈다.● 건보료율 인상에도 적자 전환 불가피다만 건보료율 인상에도 내년도 건보 보험 수지는 적자일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보 보험 지출을 보험료 수입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3% 중후반대 인상이 필요하다”며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보험료율 인상보다 국고 지원을 확대하고, 의료 이용을 합리화해 지출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형훈 복지부 2차관은 “적극적인 지출 효율화를 강구하겠다”면서도 “새 정부에서는 국민께서 많은 부담을 느끼는 간병비, 중증·난치 질환 등에 대한 보장성 강화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고물가, 저임금 시대에 건보료율 인상이 서민 부담을 늘릴 수 있다며 반발했다. 이번 건보료율 인상을 두고 건정심 위원들 사이에서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의정 갈등 이후 국민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급격한 인상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저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삶이 너무 힘들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6세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아이리스 하위징아 씨는 10년 이상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오랜 기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결국 정신질환을 이유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지난해 9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 동반 안락사 등이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자기 결정권과 자살 방조 사이에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 위원회(RTE)에 따르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는 2010년 2건에서 2023년 138건, 지난해 219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정서적 불안정을 이유로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를 선택한 219명 중 29명(13%)은 20대였고 16∼18세 청소년도 있었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 게 인생의 중요한 경험인데 안락사가 삶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지를 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는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자택에서 한 살 연상 부인과 동반 안락사를 선택해 93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반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지만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동반 안락사 사례가 보고된 2020년 26명(13쌍)이 동반자와 함께 생을 마감했으며 2023년 94명(47쌍), 지난해에는 108명(54쌍)이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배우자에게 동반 안락사를 강요한 사례도 발견돼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0년 네덜란드 자유민주당이 발의한 일명 ‘완성된 삶 법안’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심각한 질환이 없더라도 75세 이상은 삶이 어느 정도 완성됐기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안락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네덜란드에서조차 이 법안은 하원에 계류 중이다. 의사인 마르욜라인 세브레흐츠 씨는 “자기 결정권은 의학적 상태로 한계를 지을 수 없다”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사람도 자기 삶이 완성됐다고 느낄 때 이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법안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재도 안락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노인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내면적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아버지께서 오래전부터 마지막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치매 환자처럼 몇 년간 더 고통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락사 지원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NVVE) 사무실에서 만난 마리아 흐레이프마 씨(65)는 2023년 4월 치매를 앓던 90세 아버지를 안락사로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10여 년 전 ‘안락사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며 “중증 치매 진단을 받거나, 건강 문제로 혼자서 생활할 수 없게 되면 살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이후 매년 주치의와 상의하며 서류를 갱신했다. 아버지는 2018년부터 치매를 앓았고 2022년 건강이 크게 악화했다. 흐레이프마 씨는 “치매가 악화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아버지 자신을 잃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버지에게는 매우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2023년 1월 주치의에게 안락사 의사를 전했다. 주치의 등 안락사 평가 의료진은 아버지가 매우 심각하게 고통스럽다는 점을 인정했고 안락사를 허가했다.● 네덜란드 안락사 20여 년 새 5배 증가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신체적 정신적 환자는 의료진 확인 등 상당한 절차를 거쳐 안락사를 허가받을 수 있다. 보통 약물을 주입하거나 먹는 방법이 사용된다. 안락사 논의는 1973년 법원 판례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의사인 딸이 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을 앓는 어머니에게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입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후 안락사와 관련해서 의료 가이드라인과 판례가 쌓였고 2002년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활동가 롭 에던스 씨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요청으로 안락사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RTE)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안락사는 2002년 1882건에서 지난해 9958건으로 22년 만에 약 5.3배 증가했다. 전체 사망자 중 안락사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32%에서 5.8%로 약 4.4배 늘었다. 지난해 안락사 9958명 중 8970명(90.1%)은 60세 이상이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회복 불가능’을 전제로 신체적 질병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 정신질환자 등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RTE에 따르면 지난해 안락사 약 86%(8593건)는 신체질환 관련이었다. 이어 치매(427건), 고령 질환 누적(397건), 정신질환(219건), 기타 질환(232건) 등의 순이었다. 네덜란드가 치매 환자나 정신질환자까지 안락사 대상을 넓히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절차 덕분이다. 환자는 반드시 주치의와 여러 차례 면담을 거쳐 고통의 심각성과 대안 부재를 입증해야 한다. 주치의는 단독으로 안락사를 허가할 수 없으며 반드시 안락사 자문 의사 네트워크(SCEN) 등 독립된 의사들의 2차 의견을 받아야 한다. 특히 치매, 정신질환 등은 이런 절차를 거쳐 안락사 허가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안락사 시행 후에는 변호사 의사 윤리학자 등이 참여하는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가 안락사 절차의 적법성을 심사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실제 지난해에도 6건이 부적절하다는 판정을 받아 검찰 조사가 진행됐다. 비영리 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는 전국에 7개 지부를 두고 안락사에 대한 상담을 제공한다. 지난해 3만3500건의 문의를 받았고 8000건에 대해 심층 상담을 진행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법률고문 변호사 이베트 스카우트 씨는 “협회는 안락사 준비 및 시행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환자들의 ‘죽을 권리’ 보장에 앞서고 있다”며 “문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이해와 제도가 사회에 어느 정도 안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락사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법적 논쟁을 떠나 유교, 불교 등의 정서가 깔려 있는 아시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외에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 일부 국가가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조력 존엄사가 가능하다. 20년 넘게 유지된 제도이지만, 네덜란드 내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환자의 극심한 고통 경감 등을 이유로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40명의 안락사에 관여한 의사 베르트 케이저르 씨는 “현대 의학은 환자를 불행한 상태에서도 살려낼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 하지만 ‘좋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다. 중환자실에서 죽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종교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생명은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안락사가 죽음의 당연한 방식(normal way to die)이 돼 버렸다”라며 “죽음을 일종의 ‘프로젝트’로 생각하는 흐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내년 건강보험료율이 7.19%로 3년 만에 인상된다. 이에 따라 월 소득 300만 원인 직장가입자는 월 건보료가 10만6350원에서 10만7850원으로 1500원 늘어난다. 건보료율 인상은 올해까지 2년 연속 건보료율이 동결되면서 보험료 수입이 정체되고, 지난해 의정 갈등으로 인한 비상진료로 건강보험 재정 지출이 급증한 것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건보료율 인상에도 적자 전환 시점 등 재정 전망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건보료율 3년 만에 인상28일 보건복지부는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2026년 건보료율 인상을 의결했다. 내년 건보료율은 현행 7.09%에서 7.19%로 높아졌다. 건보료율 인상으로 직장가입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월평균 보험료는 올해 15만8464원에서 내년 16만699원으로 2235원 오른다. 직장가입자는 건보료 절반을 고용주가 부담한다. 지역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는 올해 8만8962원에서 내년 9만242원으로 1280원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건보료율 인상은 3년 만이다. 건보료율은 2017년 이후 물가 상승과 고령화 등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를 고려해 계속해서 인상됐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에는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국민 경제 부담을 이유로 2년 연속 건보료율이 7.09%로 동결됐다.건보료율 인상은 건보료율 동결로 인한 수입 정체와 지난해 의정 갈등으로 비상진료체제가 지속되며 건보 지출이 증가하면서 추진됐다. 복지부는 “그간 건보료율 동결과 저성장 기조로 인해 건보 수입 기반이 약화된 상황이고, 지역·필수의료 강화 등을 위한 국정과제 수립에 따른 향후 지출 소요를 고려했다”고 밝혔다.앞서 복지부는 국정기획위원회에 2%대 건보료율 인상을 건의한 바 있다. 건보료 동결로 인해 건보 재정이 중장기적으로 악화돼 결국 추후에 더 큰 폭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2월 의대 증원 사태 이후 의료개혁과 비상진료대책을 모두 고려할 때 건보 적자 전환 시점이 기존 2026년에서 1년 앞당겨진 올해, 누적 준비금 소진 시점은 기존 2030년에서 2년 당겨진 2028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지난해 비상진료체계 유지를 위해 총 2조9874억 원을 투입하면서 건보의 정부 지원금을 제외한 보험 수지는 10조4414억 원의 적자를 냈다.● 건보료율 인상에도 적자 전환 불가피다만 건보료율 인상에도 내년도 건보 보험 수지는 적자일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보 보험 지출을 보험료 수입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3% 중후반대 인상이 필요하다”며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일부에서는 보험료율 인상보다 국고 지원을 확대하고, 의료 이용을 합리화해 지출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형훈 복지부 2차관은 “적극적인 지출 효율화를 강구하겠다”면서도 “새 정부에서는 국민께서 많은 부담을 느끼는 간병비, 중증·난치 질환 등에 대한 보장성 강화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시민단체는 고물가, 저임금 시대에 건보료율 인상이 서민 부담을 늘릴 수 있다며 반발했다. 이번 건보료율 인상을 두고 건정심 위원들 사이에서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의정 갈등 이후 국민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급격한 인상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서울대병원 하반기 레지던트 지원율이 21일 78.9%로 마감됐지만 필수의료과 지원율은 평균을 밑돈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응급의학과는 전체 지원율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다른 필수의료과 지원율도 평균을 밑돌았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본원 1∼4년 차 레지던트 511명 모집에 총 403명이 지원해 지원율 78.9%를 나타냈다. 사직 전공의 복귀율은 72.6%였다. 레지던트 모집 중 필수의료과인 응급의학과(34.6%), 흉부외과(43.8%), 소아청소년과(58.9%) 등은 평균 지원율에 미치지 못했다. 병리과(22.2%)와 비뇨의학과(50.0%) 등도 상대적으로 낮은 지원율을 나타냈다. 반면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등 인기과 지원율은 평균을 웃돌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지원율이 117.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이비인후과 100% △내과 95.4% △정형외과 95.2% △재활의학과 95.0% 순이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기존 4년 차 레지던트 9명 중 4명만 이번 모집에 지원했으며, 1년 차는 15명 중 8명만 지원했다. 필수의료과 지원율이 낮은 이유는 과중한 근무 강도와 긴급 상황 대응, 높은 소송 리스크 등 기존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필수의료과의 한 사직 전공의는 “최근 수액 치료 후 뇌 손상을 입은 신생아에 17억 원 배상 판결이 난 것을 보면서 착잡했다”며 “소송 위험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있어도 가족을 생각해 (수련을) 선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

다음달부터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일부만 지급하더라도 양육비 선지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비양육자 부모가 소액만 지급하거나, 비정기적으로 지급하면서 양육비 지급을 회피하는 ‘꼼수’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26일 여성가족부는 21~22일 제44차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를 열고 비양육자 부모가 양육비를 일부만 지급하는 경우에도 양육비 선지급이 가능하도록 양육비 채무 불이행 기준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현재는 양육자가 중위소득 150% 이하이면서 직전 3개월 동안 양육비를 전혀 지급 받지 못한 경우에만 양육비 선지급을 신청할 수 있다. 양육비 선지급금은 미성년 자녀 1인 당 월 20만 원이다.개선안에 따르면 선지급 신청일이 속한 달의 직전 3개월 동안 비양육자 부모로부터 받은 월평균 양육비가 선지급금인 월 2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도 양육비 선지급을 신청할 수 있다. 소득 조건은 기존과 동일하다. 현재는 비양육자가 법원에서 결정된 양육비 지급 금액이 50만 원 중 10만 원만 이행했다면 현재 양육자는 양육비 선지급금을 신청할 수 없지만, 개선안이 적용되면 선지급금 월 20만 원을 전액 지급 받을 수 있다. 개선안은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며, 시행 이후 신청분부터 적용된다.이와 함께 여가부는 200명의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를 대상으로 한 총 226건의 제재를 결정했다. 제재 유형은 출국금지 143건, 운전면허 정지 72건, 명단공개 11건이다. 올해 1~8월 제재 건수는 79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4% 증가했다. 여가부는 지난해 9월부터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대상 제재 조치 절차에 감치명령을 제외하면서 제재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지난달 22일 오전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치매(인지증) 돌봄 시설 ‘사랑의 집 그룹홈’. 아침 식사를 마친 노인들이 20분 넘게 TV 화면의 건강 체조를 따라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리토 씨(84)는 “집에선 혼자였는데, 여기선 가족 같은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입소자 9명이 함께 쓰는 거실엔 종이로 접은 꽃과 인형 등이 가득했다.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 만든 작품이다. 그룹홈 관리자인 나가쓰카 씨는 “어린이들과 핼러윈 파티도 하고, 지역 요양시설 입소자들이 모이는 ‘오렌지 카페’라는 행사를 열어 교류도 한다”며 “인지증 노인이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올 7월 기준 약 471만 명. 고령화가 일찍 진행된 일본은 2000년부터 치매 노인 공동 주택인 ‘그룹홈’을 도입했다. 치매 노인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병원에 고립시켜선 안 되고, 최대한 늦게까지 몸을 움직이고 이웃들과 만나는 교류를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치매 노인은 무섭거나 불쌍한 존재가 아니고, 주위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입소자 자녀도 ‘노인’, 노노케어 부담 덜어 2022년 기준 일본 전역의 그룹홈은 1만4079곳, 거주 치매 노인은 약 21만 명에 이른다. 치매 노인이 97만 명에 이르는 한국에선 이런 소규모 전문 요양시설을 찾기 힘들다. 자녀 또는 배우자의 돌봄을 받거나, 치매에 특화되지 않은 대규모 요양시설에 머무는 경우가 대다수다.지난달 21일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사랑의 집 그룹홈’. 입소자 2명이 주방에서 9명분의 점심 식사 준비를 돕고 있었다. 그룹홈 책임자 무라타 씨는 “인지증 환자는 집안일 등 쉽게 하던 일을 못 하게 되면 자존감을 잃고 상태가 더 나빠진다. 서툴더라도 식사 준비, 빨래 정리 등 최대한 집에서처럼 생활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 시설엔 3개 유닛에 9명씩, 총 27명의 치매 노인이 거주 중이다. 전체 요양보호사는 25명으로, 항상 9명 이상이 근무한다. 인지력이 떨어지고, 환자마다 특성이 다른 치매는 익숙한 직원들과 소규모로 생활하는 것이 좋다. 대규모 요양시설은 환경 적응과 개별 관리가 어려워 치매를 악화시킬 수 있다. 호텔처럼 깔끔한 1층 오노 씨(91)의 방에 들어서자, 창가의 오래된 불단(佛壇)이 눈에 띄었다. 오노 씨는 “소원을 빌고 싶어서 조상을 모시던 불단을 집에서 가져왔다. 이곳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요즘엔 소원을 빌 필요가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산책하며 동네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린이집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공간 지각 능력과 기억력 감퇴, 불안에 시달리는 치매 환자에겐 배회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그룹홈에선 입소자들의 배회를 억제하기보단 요양보호사와 함께 매일 산책하러 나가 건강까지 챙기도록 한다. 집에서 쓰던 이불과 식기 등 익숙한 물건을 갖다 놓는 것도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서다. 입소자들은 상당수가 자녀도 노인이다. 그룹홈은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老老)케어’의 부담도 덜어준다. 무라타 씨는 “고령화로 인해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의 부담도 커졌다. 소규모 그룹홈은 개인 건강 상태나 증상에 따라 맞춤형 돌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룹홈은 같은 지역 거주자만 입소할 수 있다. 이타바시구 그룹홈의 월 부담 이용료는 밥값 등을 포함해 18만 엔(약 171만 원)가량이다. 한국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이 월 30만 엔을 지원해 일본 중산층 가정이 이용할 수준으로 비용을 낮췄다.● 치매 카페 만들고, 가족 지원도 그룹홈은 치매 환자가 생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보내도록 돕는다. 야마모토 노리오 메디컬케어 대표는 “그룹홈이 처음 생겼을 땐 입소자 배회 등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인지증 환자의 행동을 억제하기보단 더 개방적인 환경에서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령화에 대비해 1990년대부터 치매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2004년엔 ‘어리석다’는 의미가 담긴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꿨다. 정책 총괄도 후생노동성보다 상위 부처인 내각부에서 맡고 있다. 인지증 카페를 운영해 지역 교류를 활성화하고, 인지증 환자 가족을 통합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후생노동성 치매 정책 담당자는 “인지증 환자가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생활하도록 인지증 재택의료 지원 의사 양성, 인지증 초기 집중 지원팀 지원 등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산소포화도, 혈압은 다 괜찮네요.” 지난달 24일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외곽 단독 주택. 방문진료 기관인 홈온클리닉 히라노 구니요시 원장이 치매와 간경변을 앓고 있는 재일교포 김태희 씨(96)의 배를 연신 주물렀다. 2주 전보다 복수(복강 내 물 고임)가 더 많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4년 전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았던 김 씨와 가족은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딸 마채희 씨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라 입원은 무의미했다. 무엇보다 집에 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비를 넘긴 김 씨는 현재는 주 3회 주간돌봄센터도 다닌다. 매주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한 번씩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23년 전 방문진료를 시작한 히라노 원장은 현재 약 60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중 절반은 집에서, 나머지는 요양시설에서 말년을 보낸다. 80, 90대 고령 환자들이 많다 보니 임종을 맞는 환자도 한 주에 5명가량 발생한다. 환자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오면 한밤중에도 달려간다. 히라노 원장은 “병원에선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는 “환자와 가족에게 단순히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느냐’ 묻는 게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86년 방문진료 수가를 처음 도입한 뒤, 1990년대부터 재택의료가 본격 시작됐다. 의료와 돌봄의 중심을 병원에서 지역사회와 집으로 옮긴 것이다. 전체 병의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4000여 곳이 재택의료기관이다. 일본의 재택의료 활성화는 고령화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쓰루오카 고키 일본사회산업대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초고령사회가 되면 병상 부족, 고독사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최소화해 의료비 지출을 낮추는 효과도 있었다. 재택의료를 이용하는 환자 만족도는 높다. 입원비에 비하면 비용 부담도 작다. 올해 기준 임종기 환자가 월 2회 방문진료를 받으면 요양등급과 소득 수준 등에 따라 7260∼2만1780엔(약 6만8400∼20만5000원)을 낸다. 히라하라 사토시 일본재택의료학회장은 “방문진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 2년 동안 별도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암 환자 돌봄, 노년 의학, 치매 돌봄, 소아 재택의료 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2040년 85세 이상 인구 급증으로 재택의료 수요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가 익숙한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의료·간병 서비스를 더 강화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고려대 안암병원이 2028년 의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진행되는 의료기술 전수 사업의 일환으로 캄보디아 의료진을 초청해 ‘K의료’를 전수했다. 22일 고려대 안암병원은 ‘글로벌 호의 펠로우십’ 목적으로 진행된 캄보디아 의료진 연수 수료식을 20일 열었다고 밝혔다(사진). 이번 연수에는 캄보디아 프놈펜 루앙메 병원 의사 쿠이 몬타 씨와 산 킴셍 씨가 참여했다. 이들은 6월 2일부터 약 3개월간 각각 병리과와 마취통증의학과에서 임상 현장 참관과 학술 및 연구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글로벌 호의 펠로우십은 고려대의료원 국제 사회공헌 사업이다. 개발도상국의 보건의료 수준 향상과 지속 가능한 의료시스템 구축이 목표다. 의료원은 2028년 의대 100주년을 맞아 총 100명의 개발도상국 의료진 연수를 진행할 계획이다. 윤을식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앞으로도 로제타 홀 여사의 생명 존중 정신을 이어받아 글로벌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했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정부가 계획대로 아동수당을 2030년까지 매년 1세씩 올려 지급하면 3조50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전망이 나왔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필요한 총 예산은 13조3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6~2030년 아동수당에 국비 13조3355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아동수당은 8세 미만 아동 1인 당 월 10만 원 씩 지급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기존 8세 미만에서 2030년까지 13세 미만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복지부는 현행대로 아동 1인 당 지급액을 10만 원으로 유지하고, 국정위 계획대로 지급 대상을 내년부터 2030년까지 매년 1세 씩 올리는 경우 2030년까지 3조5000억 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급 대상을 확대하면 아동수당 대상자는 올해 8세 미만 아동 215만 명에서 2030년 13세 미만 아동 344만 명으로 늘어난다. 추계에 따르면 내년도 소요 재정은 2조2201억 원, 2027년 2조4379억 원, 2028년 2조6600억 원, 2029년 2조8903억 원, 2030년 3조1272억 원으로 전망된다.김미애 의원은 “상임위 차원에서 추계의 전제 조건과 민감도를 면밀히 점검하겠다”며 “보편과 선별의 비용 대비 효과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재정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팔을 움직일 때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허벅지에 힘을 주세요. 함께 외쳐요.” 싱가포르 동부 시메이 지역 주택개발청(HDB) 아파트 단지. 필로티 1층 빈 공간에 화려한 운동복을 입은 할머니 등 주민 45명이 줌바 교실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근력과 유연성, 균형감 강화 등 3가지로 나뉜 수업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사 크리스틴 촉 씨(60)는 “수강생 중 노인이 많아 허벅지 근력을 강화하는 동작을 많이 배치했다”며 “허벅지 근육이 약하면 활동량이 줄고 배변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3년 5월부터 개인별 건강 계획을 수립하고 건강한 운동과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더 건강한 싱가포르(Healthier SG)’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0세 이상 국민과 영주권자가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주치의가 배정된다. 가입자는 주치의와 3개월마다 면담하고 운동, 수면 등 생활습관을 관리받는다. 싱가포르는 질병을 예방해서 건강하게 오래 살고 궁극적으로 의료비를 줄이려고 한다. 김성훈 싱가포르경영대(SMU) 경제학과 교수는 “싱가포르인 건강 수명은 남성 73.9세, 여성 76세”라며 “(이미 건강 수명이 길어)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생활 습관을 개선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건강 수명은 2021년 기준 72.5세다. 정부 건강증진위원회(HPB)가 운영하는 ‘헬시 365(Healthy 365)’ 애플리케이션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헬시 365’ 앱에 가입하면 일단 20싱가포르달러(약 2만1600원) ‘포인트’가 주어진다. 이후 K팝 댄스, 요가, 킥복싱 등 정부가 지정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식습관과 수면습관을 개선하면 포인트를 받는다. 포인트는 바우처로 교환해 마트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현금성 보상에 힘입어 ‘더 건강한 싱가포르’에는 이달 17일 기준 130만 명이 넘게 가입했다. 40세 이상 싱가포르 인구가 22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40세 이상 2명 중 1명이 참여하는 셈이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차우 쿡 란 씨(86)는 도보 10분 거리 자택에서 걸어와 줌바 교실에 참여했다. 차오 씨는 “줌바 교실에 참여하기 전에는 다리가 아팠는데, 춤을 추면서 오히려 다리가 좋아졌다”며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혼자 있을 때보다 건강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더 건강한 싱가포르’는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 촉 씨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줌바 강사로 일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그는 평일에는 병원에서 의료 데이터 관리자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줌바 강사로 활동한다. 5년 전 줌바를 배운 뒤 무릎 통증이 사라져 아예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촉 씨는 “줌바 수업 1시간을 할 때마다 75싱가포르달러(약 8만 원)를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며 “운동을 통해 이웃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싱가포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자밀라, 왼팔을 주세요. 요즘은 어떤 TV 프로그램을 주로 시청하나요.” 싱가포르 동부 베독 지역 주택개발청(HDB) 공공아파트. 간호사 셰릴 샤즈와니 빈테 자카리아 씨가 치매를 앓고 있는 자밀라 씨(80) 자택을 방문해 혈압을 재며 이같이 물었다. 자밀라 씨는 3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이나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택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그 대신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활동적 노년 센터(Active Ageing Centre·AAC)’ 소속 간호사 등이 찾아와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기준 214개 AAC가 싱가포르 전역에서 운영 중이다. 한국의 노인복지관이 주로 여가활동 중심으로 운영되는 반면에 싱가포르 AAC는 병원과 연계해 의료, 식사, 청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한다.● 의료-식사-청소 모두 제공하는 동네 돌봄 센터 싱가포르는 2009년 통합돌봄청(AIC)을 설립하면서 노후에도 입원하지 않고 자택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AAC와 지역사회 중심의 ‘원스톱’ 돌봄 체계를 구축했다. 자밀라 씨처럼 혼자 사는 치매 환자도 자택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은 내년 3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두 국가 모두 2030년 국민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일 것으로 전망돼 고령화 속도는 비슷하지만 싱가포르가 17년가량 일찍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AAC 확대 및 지원을 위해 2024∼2028년 9억4000만 싱가포르달러(약 1조227억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직접 신청하거나 병원을 통해 의뢰하면 AAC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평가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AIC는 지역사회에 마련된 여러 돌봄 서비스와 연계하고 중복 지원을 방지하는 등 조정자 역할을 맡는다. 자밀라 씨는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타이화콴자선재단 산하 베독 AAC가 방문간호, 도시락 배달, 병원 진료 동행, 교통 지원, 방문 요양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와 별도로 AAC와 연계된 후원 단체는 각종 식품을 지원한다. AAC가 노인들의 건강과 일상생활을 모두 관리해 치매를 앓으며 혼자 사는 노인도 자택 생활이 가능하다. 자밀라 씨는 과거 화장실이 아닌 곳에 배뇨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AAC의 도움을 받으며 현재는 해당 문제가 해결됐고 보행기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증세가 호전됐다. 베독 AAC는 창이종합병원 간호팀과 함께 지역 보건지소를 운영한다. 창이종합병원 의사가 매주 방문해 노인 건강 상담과 진료를 한다. 복용하는 의약품을 가져오면 겹치는 성분이 있는지 따져 조정하고 다른 병원으로 연계해야 하는 경우 진료의뢰서를 써준다. 최근 퇴원한 노인을 위해 낮 시간 동안 한시적으로 돌보는 일시 보호소도 운영한다. 보호자가 출근한 시간대에 머물며 간호사들의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식사, 빨래, 목욕 서비스도 제공한다. 베독 AAC를 운영하는 타이화콴자선재단 소속 의사 탕문렁 씨는 “병원에 입원하면 환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도 인건비가 발생하지만, 자택에 머물면 환자가 필요한 것만 AAC가 지원하면 된다”며 “지역사회가 건강 관리를 책임지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과 연결해 사회적 비용 줄이고 고독 방지AAC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보드게임, 치매환자를 위한 식습관 교육, 디지털 문해력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택시 기사로 일하다 은퇴한 초 추잉 씨(80)는 매주 3, 4일 AAC 등을 찾아 거동이 어려운 노인의 휠체어를 밀어준다. 이른바 ‘마이크로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병원 진료가 있으면 동행한다. 초 씨는 “아직 나 자신은 잘 돌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AAC를 중심으로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자원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AAC를 통해 이웃이 만나고 교류하면 고독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사적 도움도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시티 아이샤 빈테 모하맛 유누스 베독 AAC 센터장은 “노인들은 대부분 한 동네에 오래 살기 때문에 이웃들과 가깝게 연결되길 원한다”며 “AAC를 통해 연결된 노인들이 서로를 돕는 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에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지내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폴린 스트라우겐 싱가포르경영대(SMU) 성공적 노화를 위한 연구소장(사회학과 교수)은 “노후에도 병원에 누워 있지 않고 살던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노화를 겁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싱가포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희귀병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삶을 마무리한 어머니. 그 선택을 곁에서 지켜본 의사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기록해 책 ‘단식 존엄사’를 펴냈다. 대만 중산대 의대 재활의학과 비류잉 교수 이야기다.스스로 물과 음식 섭취를 중단해 사망에 이르는 단식 존엄사는 ‘VSED(Voluntarily Stopping Eating and Drinking)’라는 용어로도 불린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미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일부 시행되고 있다.비 교수의 어머니는 64세 때 소뇌에 이상이 생겨 사지가 점점 마비되는 희귀병인 소뇌실조증을 진단받았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며 고통이 심해지자 단식 존엄사를 결심하고 2020년 8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만난 비 교수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통해 어떤 종류의 사랑은 손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어머니는 어떻게 단식을 결심했나.“평소 어머니는 억지로 치료해 고통을 연장하지 말자는 말씀을 자주 했다. 2019년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고 어떻게 해야 잘 떠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즈음에 어머니가 일본 의사가 단식 존엄사에 대해 쓴 책을 읽고 단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가 20년 동안 병으로 고통받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물과 음식을 끊어 죽음에 이르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가.“물론 본인의 강한 의지와 가족의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일반인에게 굶어 죽는 아사는 고통스럽지만 임종을 앞둔 이에게는 다르다는 점이다.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는 고령의 중증 질환자는 일반인처럼 허기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어머니가 21일 동안 단식했다. 그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처음 10일 동안에는 음식 섭취량을 천천히 줄이면서 죽과 삶은 채소, 연근물을 드셨다. 11일째부터는 고형 음식을, 13일째부터는 연근물을 끊었다. 갈증이 나면 면봉에 물을 묻혀 입술을 축이는 정도였다. 21일째 어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셨다.”―단식 존엄사는 대만에서 논란의 대상이다.“대만 호스피스 학회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자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네덜란드 등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하기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다. 죽음의 방식은 환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식 존엄사에 대한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죽음은 누구나 겪는 마지막 길이다.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족과 일상적으로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논의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최대한 내려놓을 수 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타이베이·신베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은 내가 스스로 합니다.’대만 신베이시 단수이구 매카이 메모리얼 병원. 호스피스 병동 곳곳에는 이렇게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히는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ACP) 등록을 안내하는 문구다. 팡춘카이 호스피스 센터장은 “대만은 국민이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 왔다”고 설명했다.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2000년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권리를 한국보다 폭넓게 보장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며 고통을 적절히 완화시키는 호스피스도 잘 정착돼 있다. 2021년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발표한 ‘임종 및 돌봄 전문가 평가’에서 대만은 81개 평가 대상국 중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내 생명은 내가 결정한다” 인식 자리 잡아“대만은 20여 년 전부터 ‘내 생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사회적으로 논의해 왔습니다.”대만 위생복리부(보건복지부) 류위핑 의료부 국장은 대만의 연명의료 관련 법과 제도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류 국장은 “반대하는 의견도 물론 있었지만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 건 인권 문제라는 인식이 더 컸다”고 덧붙였다.대만에서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는 이른바 ‘왕샤오민’ 사건이다. 1963년 고교생이었던 왕샤오민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그의 어머니가 1982년부터 정부 등에 딸의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2000년 ‘안녕완화의료조례’, 2019년 환자 자주 권리법이 시행되면서 현재 제도가 완성됐다.대만에서는 병원에서 의료진과 상담한 뒤 ACP를 등록하면 향후 △말기 환자 △비가역적인 혼수 상태 △영구적인 식물 상태 △극중증 치매 △그 밖에 고통을 참기 어렵거나 질병이 회복될 수 없고 현재 의료 수준으로는 적절한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이 왔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도 ‘사망 직전’일 때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대만이 한국보다 연명의료 중단 범위를 훨씬 넓게 인정한다.등록 절차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보건소나 민간 기관에서 담당 직원과 간단한 상담을 받은 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지만, 대만에서는 의료진과 1시간가량 상담한 뒤 ACP를 등록한다. 국립 대만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청사오이 가정의학과 교수는 “ACP는 전국 280개 병원에서 상담을 통해 등록할 수 있다. ACP에 등록하면 해당 정보가 건강보험 카드에 등록되고 이후 모든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른바 ‘웰다잉(Well-Dying)’ 관련 민간 움직임도 활발하다. 비영리단체(NPO) 대만 호스피스 재단에서는 무료 전화 상담을 한다. 재단의 창샤팡 이사장은 “ACP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걱정되고 고민되는 점에 대해 누구든 전문 간호사와 상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에도 제한 없어대만이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방법은 호스피스 활성화다. 대부분 암 환자만 호스피스를 받는 한국과 달리 대만은 호스피스 대상 질환에 제한이 없다. 매카이 메모리얼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도 절반가량이 암 환자였고, 나머지 절반은 암이 아닌 다른 질환 환자들이었다.병동에서 만난 쑨보펀 씨(68)도 입원한 96세 노모와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쑨 씨는 “3년 전 투병 중이던 아버지의 상태가 급작스레 악화돼 모르핀을 맞다가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어머니만큼은 편안하게 보내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이곳의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어머니가 떠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병상에 누운 노모는 담당 의사가 지나가자 손짓을 하며 천천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팡 센터장은 “사람은 숨이 멎어 관이 닫힐 때 비로소 그 인생이 정의된다는 말이 있다”며 “호스피스는 인생의 가장 끝에서 마지막 길을 함께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타이베이·신베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맨다 해도 당신 같은 사람은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지난달 14일 영국 런던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정원. 높이 3m가 넘는 거대한 나무 앞에서 로이 벤슨 씨(81)가 손에 종이를 쥐고 자신이 쓴 시를 한 자씩 읊었다. 벤슨 씨는 호스피스에서 아내와 사별한 뒤 느낀 감정을 담아 시를 썼다. 행사에 참여한 30여 명의 유가족은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고 때로는 웃으며 벤슨 씨가 낭독하는 시를 들었다. 유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가족이 머물던 호스피스를 찾아 고인을 기리면서 함께 추억했다. 호스피스는 유가족을 공동체의 일부로 보고 사후에도 유가족에 대한 정서적 지원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나무에 리본을 매는 행사도 열렸다. 정원에 놓인 나무에는 300개가 넘는 리본이 흩날렸다. 리본에는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 등의 문구가 적혔다. 이날 행사에는 20년 전 호스피스에 머무른 가족을 떠나보낸 이도 참석했다. 호스피스 곳곳에는 쪽지와 함께 작은 인형도 놓여 있었다. 쪽지에는 ‘내가 당신을 미소짓게 만든다면 집에 들고 가 달라. 당신이 슬프다면 나를 꼭 잡고 있어 달라. 그러면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적혀 있었다. 3년 전 이곳에서 아내와 사별한 애덤 분 씨(61)는 “아들은 이곳에서 정신건강 상담을 꾸준히 받고 있다”며 “가족을 잃은 사람들끼리 슬픔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일종의 공동체에 가입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매년 1000명이 넘는 유가족이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방문한다. 호스피스는 유가족들이 찾아오는 기념행사 외에도 정기적인 애도 모임을 통해 유가족 간 교류 기회를 제공한다. 심리 상담 프로그램 또한 제공된다. 피오나 워킹쇼 유가족 지원 책임자는 “유가족 돌봄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유가족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돕고, 또 슬픔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대 호스피스 운동을 제안한 영국 간호사 시실리 손더스는 ‘총체적 고통’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단일한 고통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인 차원에서 고통을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영적 고통은 종교와 무관하게 자아와 관련한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고통에 가깝다. 호스피스 소속 목사인 앤드루 굿헤드 씨는 “총체적인 고통의 관점에서 최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러한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총체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호스피스에서도 유가족에 대한 정서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프린세스 앨리스 호스피스의 지역사회 돌봄 담당자 레이철 바삭 씨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게 애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슬퍼하는 이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정서적, 재정적 지원을 연결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