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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고작 10대 소년이야. 넌 네가 뭘 원하는지 몰라!” 23일 개봉하는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스트레인지 월드’에서 농부 아버지 ‘서처’는 농부가 되길 거부하는 사춘기 아들 ‘이든’에게 이렇게 말한다. 서처는 아발로니아의 전설적인 모험가인 아버지 ‘예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판도’라는 식물 기반 동력원을 발견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다. 서처는 이든이 판도를 기르는 가업을 이어가길 바라지만 이든 역시 자신만의 꿈을 펼치려 한다. 각각의 개성을 가진 3대 예거와 서처, 이든은 위험에 빠진 아발로니아를 구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 ‘스트레인지 월드’로 떠나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다름’을 받아들인다. 작품 속 캐릭터의 모습과 움직임을 만든 한국 출신 디즈니 애니메이터 김상진, 이현민 씨를 22일 화상으로 만났다. 영화는 2015년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빅 히어로’의 돈 홀 감독이 연출했다. 김 애니메이터는 “외형적으로 3대가 대비되도록 했다. 예거는 박스처럼 보이는, 비현실적으로 크고 우락부락한 덩치로 디자인했다”며 “서처는 길쭉한 나무 막대기 같은 형태로, 이든은 둥글둥글한 타원형의 이미지로 표현했다”고 했다. 결국 서처는 마음을 열고 이든의 꿈을 지지한다. 젊은 시절 세상을 탐험하겠다며 집을 떠나 실종된 아버지 예거와는 스트레인지 월드에서 재회한다. 서먹했던 두 부자의 사이도 점차 풀린다. 그는 “3대가 외모는 굉장히 다르지만 티격태격하다 결국 한 가족으로 화합해 가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3대가 모험을 떠나는 ‘스트레인지 월드’는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다. 트림을 하고 춤추는 식물, 촉수가 달린 생물체, 도마뱀 모양의 구름까지 신비로운 생물들이 가득하다. 하늘색이나 초록색 등 인간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색깔 대신 분홍색과 연보라색을 사용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김 애니메이터는 “인간이 사는 아발로니아는 무채색이 주를 이루지만 스트레인지 월드는 들어가자마자 화려하고 강렬한 색으로 시선을 압도해 둘은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생물체를 만들어내면서 골머리를 앓았다. 심해 속 생명체나 색이 아주 화려하고 모양이 독특한 희귀식물 자료를 최대한 많이 모았고, 이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이든은 성별이 같은 친구 디아조를 짝사랑한다. 가족은 이든의 성 정체성을 지지하고, 예거는 손자에게 디아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이 애니메이터는 “엄마로서 내 아이가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교감하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길 꿈꾼다. 그런 세상을 작품에 담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 애니메이터는 “돈 홀 감독도 ‘내 아들에게 어떤 세계를 물려줄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에도 그 메시지가 잘 녹아들도록 했다”고 덧붙였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지금이 며칠, 몇 시인지 몰라요. 새벽 세 시에 인터뷰에 늦은 줄 알고 벌떡 일어났어요.”(영국 시티팝 밴드 ‘프렙’ 드러머 기욤 잠벨) 2018년 싱어송라이터 딘이 피처링한 ‘Cold Fire’, 새소년의 황소윤과 몬스타엑스의 셔누가 참여한 ‘Don‘t Look Back’을 차례로 발매하며 두꺼운 한국 팬덤을 자랑하는 영국 시티팝 밴드 ‘프렙(PREP)’이 18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여섯 번째 내한공연을 가졌다. 공연을 몇 시간 앞둔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1층 카페에서 프렙의 멤버 드러머 기욤 잠벨, 보컬 톰 해블록, 기타 댄 래드클리프, 키보드 르웰른 압 미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9월 네 번째 EP ‘Back To You’를 발매하고 이달 6일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 투어를 시작한 이들은 12일 태국, 16일 필리핀 공연을 마치고 18일 공연을 위해 전날 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멤버들은 “2주간 4개 나라를 도는 바쁜 일정으로 시간 감각은 잊은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프렙은 첫 번째 EP ‘Futures’(2016년)의 타이틀곡 ‘Cheapest Flight’가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음악 팬들의 귀를 사로잡으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곡은 가장 싼 비행기표를 구해 떠나겠다는 내용의 신선한 가사와 그루브를 타기 좋은 리듬감, 톰의 몽환적인 보컬 3박자가 어우러져 시티팝 팬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2017년 서울 마포구 한 클럽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이번이 여섯 번째 내한이다. 이번 공연에는 관객 2000명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우리 음악을 설명할 때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Smooth’(부드러운)예요. 프렙의 노래에는 어딘가 안심시켜 주는 구석이 있어요. 내부는 우울하고 슬프지만 그 세상을 감싸는 테두리에는 희망과 안도감을 주는 빛이 있죠.”(댄) 물 흐르듯 부드러운 음악이 나오기 위해선 음악을 만드는 과정 역시 자유로워야 한다. 프렙은 서두르지 않되 완벽을 기한다. 7년 동안 네 장의 EP와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냈고, 전체 앨범에 담긴 곡은 30곡 남짓. 숫자로는 소박하지만 한 곡 한 곡 뜯어보면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르웰른은 “‘Pictures of you’라는 곡을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다른 아티스트 곡을 쓸 때는 마감 기한에 쫓겨 하루 만에 정신없이 가사를 써서 보냈죠. 프렙의 작업이 행복한 건 완전히 만족하는, 프렙다운 음악이 나올 때까지 계속 고치고 또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에요.”(톰) ‘Steely Dan-type Project’(스틸리 댄 느낌의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프렙은 그 어떤 뮤지션의 아류도 아닌, 프렙만의 길을 걷고 있다. ‘우울하면서도 희망적인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이들의 설명처럼 프렙의 음악은 삶의 희비 순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지금처럼 세계를 돌며 투어를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재밌는 건 이제 관객들과의 소통이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영감이라는 거예요. 상상치 못했던 곡에서 사람들이 호응을 하면 그게 프렙을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기도 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을 포용(embrace)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에요.”(톰)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한국 가수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공식 주제가를 부르며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개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한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음원차트에서도 정상을 휩쓸었다. 정국이 20일(현지 시간) 발매한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공식 주제곡 ‘드리머스(Dreamers)’가 발매 12시간 만에 세계 102개국 아이튠스 ‘톱 송’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드리머스는 월드컵 주제곡 특유의 경쾌한 리듬과 정국의 청량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곡으로 ‘우리가 누군지 봐, 우리는 꿈꾸는 자들’이라는 가사에 월드컵의 도전과 투지의 정신을 담았다. 앞서 정국은 20일 카타르 알코르의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식 무대에서 드리머스를 열창하며 하이라이트 무대를 장식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날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개막식 공연 영상은 공개 12시간 만에 조회수 540만 회를 넘겼다. 또한 BTS는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2관왕에 오르며 5년 연속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BTS는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MA에서 ‘페이버릿 팝 듀오 오어 그룹’, ‘페이버릿 K팝 아티스트’ 두 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BTS는 2018년 ‘페이버릿 소셜 아티스트’ 부문에서 첫 수상을 했다. 이후 올해까지 5년 연속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BTS는 올해 신설된 페이버릿 K팝 아티스트 부문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지금이 며칠, 몇 시 인지 몰라요. 새벽 세 시에 인터뷰에 늦은 줄 알고 ‘큰 일 났다!’ 하며 벌떡 일어났어요.”18일 오전 9시 45분 서울 강남구 포 포인츠 바이 셰러턴서울 호텔 1층 카페. 졸음이 가시지 않은 눈, 흰색 티셔츠에 남색 자켓, 청바지 차림으로 약속 시간보다 15분 먼저 나타난 영국의 시티팝 밴드 프렙(PREP)의 드러머 기욤 잼벨은 깊은 잠을 못 잤다고 했다. 9월 네 번째 EP ‘Back to you’를 발매하고 이달 6일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 투어를 시작한 이들은 12일 태국, 16일 필리핀 공연을 마치고 18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의 한국 공연을 위해 전날 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2주 동안 네 개 나라를 도는 바쁜 스케줄로 날짜와 시간은 신경 쓰지 않게 된 지 오래다.“4년 전 첫 단독 내한 공연 때만 해도 매니저가 없어서 멤버들이 호텔 와이파이부터 공연장까지 모든 걸 확인했어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무대 스크린에 노트북 화면보호기가 뜬 적도 있죠. 하하.”(기욤)오전 10시 보컬의 톰 헤이블록, 기타의 댄 래드클리프, 키보드의 르웰른 압 말딘이 차례로 카페에 모였다. 한 시간 동안 프렙의 음악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각기 다른 장르에서 활약하던 뮤지션이 한 팀에 모이게 된 과정부터 음악을 하는 이유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인디밴드로 시작한 프렙은 첫 번째 EP ‘Futures’(2016년)의 타이틀곡 ‘Cheapest Flight’가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잡으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18년 싱어송라이터 딘이 피처링한 ‘Cold fire’, 새소년의 황소윤과 몬스타엑스의 셔누가 참여한 ‘Don‘t look back’을 차례로 발매해 한국 팬덤도 두터워졌다. 이번은 프렙의 여섯 번째 방한이다. ●“음악 어렵게 들린다면 잘못 만들었다는 뜻” 시차와 투어일정에 쫓기는 행복한 혼란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2015년 클래식 작곡가 르웰른과 하우스 DJ였던 기욤이 밴드를 시작해, 힙합 프로듀서 댄과 싱어송라이터 톰이 합류한 뒤 첫 EP를 발매할 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녹음활동을 하는 스튜디오 밴드를 예상했다. 각기 다른 개성의 런던 뮤지션은 1970년대에 활약한 미국의 록과 재즈 퓨전 밴드 ‘스틸리 댄’(Steely Dan)이라는 관심사로 한데 모였다. 스틸리 댄의 음악처럼 1970~1980년대의 부드러운(Smooth) 팝에 현대적인 감각을 넣어 보자는 공통의 목표가 프렙의 시작이었다. “제 전공은 클래식이었지만 재즈, 일렉트로닉 등 다른 음악들에도 관심이 컸죠. 특히 스틸리 댄에 관심이 많았는데, 런던 한 공연 백 스테이지에서 알게 된 기욤과 대화를 나누던 중 그도 스틸리 댄의 팬인 것을 알게 됐어요. 클래식 작곡은 혼자 하는 고독한 작업이에요. 스틸리 댄과 같은 음악을 같이 만들어 보자며 기욤과 밴드를 시작했어요.” (르웰른)프렙이라는 두 글자를 세계에 알린 곡은 첫 번째 EP의 타이틀곡 Cheapest Flight. ‘사랑조차도 가장 싼 비행기표를 구해 떠나려는 내 마음을 붙잡을 수 없다’는 내용의 신선한 가사, 그루브를 타기 좋은 리듬감, 공중에 흩날리는 듯한 톰의 가볍고 몽환적인 보컬 3박자가 어우러진 이 노래는 리스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스포티파이 등 개인 취향에 맞는 음악을 추천해주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은 이들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 “저희 음악은 굉장히 쉽게 들리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화성 진행과 멜로디는 아주 복잡해요. 그게 청자들에게 어렵고 복잡하게 들려서는 안 돼요. 들었을 때 까다롭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리가 음악을 잘못 만들고 있다는 뜻일 거에요.”(기욤)“우리 음악을 설명할 때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Smooth’(부드러운)에요. 프렙의 음악은 어딘가 안심시켜주는 구석이 있어요. 내부는 우울하고 슬프지만 그 세상을 감싸는 테두리에는 희망과 안도감을 주는 빛이 있죠. 그게 우리 음악의 장점이에요.”●그 어떤 뮤지션의 아류도 아닌, 프렙 ‘스무스한 음악’(Smooth Music). 프렙이 지향하는 음악세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음악이 나오기 위해선 음악을 만드는 과정 역시 자유로워야 한다. 그들은 무엇 하나 억지로 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되 완벽을 기한다. 7년 동안 네 장의 EP와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냈고, 앨범에 담긴 곡은 30곡이 채 되지 않는다. 숫자로는 소박하지만 한 곡 한 곡 뜯어보면 어느 한 곡 허투루 만든 것이 없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즐기지 않아요. 여행도 다니고 사람들도 만나고 삶을 즐겨야 음악적 영감도 떠오르죠.” (댄)“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쓸 때는 마감기한이 있었어요. ‘오늘까지 가사를 주세요’ 하면 하루 동안 정신없이 가사를 써서 보냈죠. 다음날 보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반드시 있어요. 그걸 고치면 훨씬 좋아지는데 너무 늦어서 손쓸 수 없죠. 프렙의 작업이 좋은 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완전히 만족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톰)“‘Pictures of you’라는 곡은 완성할 때까지 5년이 걸렸어요. 저와 기욤이 2015년 데모로 만들었고, 수정을 거쳐 2020년 나온 정규앨범에 담았죠.” (르웰른)이들에겐 작정하거나 의도하는 것이 없다. 마음이 가는 곳에 진심을 다하고, 그 뜻에 동감하는 누군가가 그들을 지지한다. 한국과의 인연도 그렇게 찾아왔다. 이들의 이름이 알려지기도 전인 2017년, 서울 마포구 클럽 ‘MODECi’에서 한 DJ가 Cheapest Flight를 틀었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유튜브 영상을 접한 프렙 멤버들은 “한국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해 클럽에 연락을 했고, MODECi에서 첫 번째 내한공연을 가졌다. 2018년 발매된 EP ‘Cold Fire’의 수록곡 ‘Snake Oil’의 경우 국내 영화감독들이 프렙에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들이 보낸 이미지들이 정말 맘에 들었어요. 저희도 흔쾌히 좋다고 했고, 이들의 영상이 공식 뮤직비디오가 됐죠.” (르웰른)‘Steely Dan-type Project’(스틸리 댄 느낌의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프렙은 그 어떤 뮤지션의 아류도 아닌, 프렙만의 색깔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우울하면서도 희망적인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이들의 설명처럼, 프렙의 음악은 삶의 희비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마지막으로 멤버들에게 “음악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돈! 농담이다. (웃음)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joy)이다. 이 일을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댄)“무대에서 관객들과의 상호작용이다. 라이브 공연을 하기 시작하면서 밴드의 방향성이 달라졌다. 단순히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을 포용(embrace)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상상치 못했던 곡에서 사람들이 호응을 하면 그 에너지가 프렙을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기도 한다.” (톰)“솔직히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 프렙을 시작하기 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도 했었는데, 프렙을 시작한 뒤로 접었다. 이게 내 갈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르웰른)“좀 오글거리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음악을 택했다기보다는 음악이 날 선택했다. 난 그저 그 선택을 따를 뿐이다.” (기욤)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그건 거짓말이야.” 미국 유명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단편 ‘거짓말’은 남편을 향한 아내의 항변으로 시작한다. 한 여성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아내의 주장과, 혼란스러워하는 남편의 모습이 교차한다. 고심 끝에 남편은 아내의 말을 믿으려 하지만, 아내는 돌연 태도를 바꾼다. “용서해줘요. 걔가 당신한테 말한 게 다 사실이야.” ‘거짓말쟁이’라고 매도했던 여성의 말이 사실이라는 아내의 실토에 남편은 말을 잃는다. 단편소설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해온 카버는 ‘대성당’으로 198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다. 이번 소설집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거나 절판된 단편 등 11편을 엮었다. ‘거짓말’과 ‘오두막’, ‘해리의 죽음’, ‘꿩’은 국내에 처음 번역됐다. 거짓말은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꿩에서 주인공 재럴드는 생일을 기념해 여자친구 셜리와 함께 해변에 있는 그녀의 집에 다녀오기로 한다. 운전 중 꿩이 출몰하고, 꿩은 차에 부딪혀 죽는다. 재럴드는 자신이 꿩을 죽이고 싶은 충동에 가속페달을 밟았음을 깨닫는다. 재럴드는 셜리에게 “당신은 나를 믿어?”라고 물으며 그가 무언가를 숨겨왔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가 숨겼던 건 살해충동이 아닌 피해의식이었다. 무명 배우 재럴드는 열두 살 연상의 부자 여자친구 셜리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 왔다. 잘나고 무관심한 여자친구에 대한 자격지심은 애꿎은 꿩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표제작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은 잘못 걸려온 전화에 잠에서 깬 부부의 이야기다. 밤을 지새우는 이들의 대화에선 서로를 향한 불신의 냄새가 풍긴다. 이들은 간밤에 꾼 악몽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잡다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 못한다. 남편은 아내의 꿈에 자신은 절대 등장하지 않는 게 찜찜하지만 묻어둔다. 잘못 걸려온 전화기 너머의 정체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이야기의 맥락 없는 시작과 답답한 결말은 무한한 상상력을 허용한다. 속고 속이는 듯한 관계의 불안정함, 그 안에서 피어나는 공포는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사진)이 3년 연속 그래미 후보에 올랐다. 미국 리코딩 아카데미가 16일(현지 시간) 발표한 제65회 그래미 어워즈 후보에서 방탄소년단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와 ‘베스트 뮤직비디오’, 4대 본상 중 하나인 ‘앨범 오브 더 이어’까지 총 3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앞서 BTS는 2020년 ‘다이너마이트’, 지난해 ‘버터’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다. 앨범 오브 더 이어에는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의 9집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의 참여 아티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은 이 앨범의 수록곡인 ‘마이 유니버스’의 피처링에 참여했고, RM과 슈가, 제이홉은 송라이터를 맡았다. 그래미는 이 부문에서 피처링 참여 아티스트, 프로듀서, 송라이터, 엔지니어 모두를 수상 후보로 올린다. 방탄소년단은 ‘마이 유니버스’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다. 이 곡은 지난해 10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를 했다. 6월 발매한 앤솔러지 앨범 ‘프루프’의 타이틀곡 ‘옛 투 컴’은 베스트 뮤직비디오 후보에 올랐다. 미국의 한 사막에서 촬영한 이 뮤직비디오는 방탄소년단이 지나온 9년간의 여정을 풀어내 공개 10일 만에 조회수 1억 회를 넘겼다. 방탄소년단은 이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옛 투 컴과 함께 저희가 참여한 곡인 마이 유니버스도 그래미 후보로 선정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제65회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은 내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 영상 보고 투바투(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에 입덕(덕후 입문)할 것 같아.” 지난해 보이그룹 TXT의 팬튜브(팬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영상에는 자신이 리더임을 잊은 멤버 수빈이 한 음악방송에서 그룹 소개를 하지 않고 다른 멤버들을 쳐다보는 장면이 담겼다.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깜짝 놀란 뒤 “인사하겠습니다. 하나, 둘!”이라고 운을 떼는 수빈에게 “이 영상으로 투바투를 처음 알았는데 너무 귀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 영상은 유튜브의 쇼트폼(짧은 형식) 서비스인 ‘유튜브 쇼츠’로, 분량은 15초에 불과하다. 조회수는 875만 회, ‘좋아요’는 29만 개에 달한다.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찾아보는 Z세대(1996년 이후 출생자)가 많아지면서 아이돌 그룹의 ‘입덕’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쇼트폼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쇼트폼 서비스는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 틱톡이다. 유튜브 쇼츠는 1분, 릴스는 90초, 틱톡은 10분의 시간 제한이 있다. 쇼트폼은 아이돌 그룹의 강렬한 무대 퍼포먼스나 예능 프로그램의 재밌는 장면 등 ‘하이라이트’만 1분 내외로 편집돼 올라오기 때문에 그룹 또는 개별 멤버의 매력을 단번에 인지하기 쉽다. 쇼트폼은 원본 영상의 인기를 뛰어넘는다. 보이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이 검은색 가죽 의상을 입고 ‘후’라는 곡의 후렴에 맞춰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이는 20초 분량의 유튜브 쇼츠는 조회수가 238만 회에 달한다. 반면 3분 길이의 원본 영상 조회수는 4만8000회에 불과하다. 걸그룹 르세라핌이 이달 유튜브 채널 ‘디글’에 출연해 유튜버 조나단과 인터뷰하는 17분 분량의 영상 조회수는 87만 회인 데 비해 인터뷰 중 일본인 멤버 사쿠라가 “겸손이 일본어로 뭐지?”라며 헷갈려 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쇼츠의 조회수는 227만 회나 된다. 쇼트폼이 ‘입덕’ 경로가 되면서 팬들도 팬덤을 확장하기 위해 쇼트폼을 적극 활용한다. 기존에는 음악방송, 팬 사인회 ‘직캠’(팬 등이 직접 찍은 영상), 라이브 방송을 편집한 5∼15분 길이의 영상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쇼트폼 전용 팬튜브가 생겨나고 있다. 걸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전소연의 팬이 만든 ‘전소연 쇼츠’, 걸그룹 엔믹스 멤버 해원의 팬이 만든 채널 ‘또 오해원’이 대표적이다. 팬튜브 구독자는 1만 명을 넘기기 쉽지 않지만, ‘또 오해원’은 개설 5개월 만에 구독자가 7만6000명을 넘었고, 가장 인기 있는 영상 조회수는 740만 회에 달한다. 기획사 마케팅에서도 쇼트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곡 중 중독성이 강한 ‘킬링 파트’나 예능에서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을 따로 쇼트폼으로 제작해 자체 SNS에 올린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그룹뿐만 아니라 개별 멤버의 매력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쇼트폼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기획사들도 신곡의 댄스 챌린지 등 쇼트폼 기획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쇼트폼의 인기는 짧은 시간 안에 흥미를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을 반영한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쇼트폼이 Z세대에게 인기를 끌면서 이제 유튜브에 올라오는 5분 분량의 영상도 길게 느낀다. 아주 짧게는 10초, 길어도 1분 안에는 재밌는 장면을 보여주고 해당 영상을 통해 그룹이나 멤버에게 관심이 생기면 원본을 찾아보는 방식으로 콘텐츠 이용 방법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가왕’ 조용필(72·사진)이 18일 신보 ‘로드 투 20―프렐류드 1’(Road to 20―Prelude 1)을 발표한다. 그가 앨범을 발매한건 2013년 정규 19집 ‘Hello’(헬로) 이후 9년 만이다. 조용필은 15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30초 분량의 신곡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신곡 두 곡의 제목인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이 담긴 영상에는 경쾌한 리듬에 맞춰 “오오 격정적인 찰나”라고 노래하는 조용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팬들의 기대감을 더했다. 이번 앨범은 정규 20집 발매를 앞두고 선공개하는 형식의 앨범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앨범 이름에 들어간 ‘프렐류드’는 도입부 형식의 악곡을 의미한다. 소속사 YPC는 “이번 신보는 조용필이 앞서 19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하는 동안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형태의 발매”라고 밝혔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조용필이 앨범 발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조용필은 이달 26, 27일과 12월 3, 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 ‘2022 조용필&위대한탄생’을 연다. 단독 콘서트는 2018년 ‘50주년 기념 콘서트’ 이후 4년 만이다. 이 공연은 예매 시작 30분 만에 전석 4만 석이 모두 팔렸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투바투(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영상 계속 뜨네. 입덕할 것 같아ㅠㅠ”지난해 빅히트 뮤직 소속 보이그룹 TXT의 팬튜브(팬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한 영상에는 TXT의 팬이 될 것 같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영상에서는 자신이 리더임을 잊어버린 멤버 수빈이 한 음악방송에서 그룹 소개를 시작하지 않고 다른 멤버들을 쳐다보는 장면이 담겼다. 2초 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깜짝 놀란 뒤 ‘인사하겠습니다, 하나, 둘!’이라고 운을 떼는 수빈에 ‘투바투를 이 영상으로 처음 알았는데 너무 귀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 영상은 유튜브가 제공하는 쇼트폼(짧은 형식) 서비스인 ‘유튜브 쇼츠’로, 분량은 15초에 불과하다. 이 짧은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875만 회, ‘좋아요’ 개수는 29만 개에 달한다.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찾아보는 Z세대가 많아지면서 아이돌 그룹의 ‘입덕’(입문과 덕후의 합성어)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쇼트폼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쇼트폼서비스는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의 ‘릴스’, 그리고 틱톡. 유튜브 쇼츠는 1분, 릴스는 90초, 틱톡은 10분의 시간제한이 있다. 쇼트폼 콘텐츠의 경우 무대 위 강렬한 퍼포먼스나, 예능에서의 재밌는 장면 등 ‘하이라이트’만 1분 내외로 편집된 영상이기 때문에 아이돌 그룹 또는 개별 멤버의 매력을 단번에 인지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쇼트폼은 원본 영상의 인기를 뛰어넘는다. 쏘스뮤직 소속 걸그룹 르세라핌이 이달 유튜브 채널 ‘디글’에 출연해 유튜버 조나단과 인터뷰를 하는 17분 분량의 영상 조회수는 87만 회. 반면 인터뷰 중 일본인 멤버 사쿠라가 일본어를 잊어버리고 “겸손이 일본어로 뭐지?”라며 헷갈려 하는 유튜브 쇼츠는 조회수가 227만 회에 달한다. 20초 분량의 쇼츠가 전체 인터뷰 영상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이다. 보이그룹 아스트로 멤버 문빈의 ‘후’라는 곡 무대영상 ‘직캠’(팬 등이 직접 촬영한 캠동영상)도 마찬가지다. 문빈은 한 무대에서 검정색 가죽의상을 입고 절도 있는 안무를 선보여 화제가 됐는데, 3분 분량의 전체 무대 영상은 조회수가 4만8000회에 불과하지만 후렴구에 맞춰 춤을 추는 20초 분량의 유튜브 쇼츠 조회수는 238만 회에 달한다. 쇼트폼이 인기를 끌면서 팬튜브에서 쇼트폼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기존에 팬튜브는 음악방송이나 팬 사인회 직캠, 예능, 라이브 방송을 짜깁기해 편집한 5~15분 짜리 영상이 주를 이뤘다. 최근에는 아이돌 팬덤이 쇼트폼 채널을 적극적으로 개설하는 추세다. 걸그룹 (여자)아이들 전소연의 팬이 만든 ‘전소연 쇼츠’, JYP의 걸그룹 엔믹스 멤버 해원의 팬이 만든 ‘또 오해원’ 등이 대표적이다. 팬튜브의 구독자는 1만 명을 넘기는 경우가 흔치 않는데 또 오해원 채널은 개설 5개월 만에 구독자가 7만6000명을 넘었고, 가장 인기 있는 영상은 조회수가 740만 회에 달한다. 기획사의 마케팅 차원에서도 쇼트폼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쇼트폼은 짧은 시간 안에 그룹 또는 개별 멤버의 매력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 신곡에서 중독성이 강한 ‘킬링 파트’나, 예능에서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을 따로 쇼트폼으로 제작해 자체 SNS에 올린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르세라핌 멤버 카즈하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해서 오랜 기간 운동으로 다져진 잔근육이 매력인데 이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쏘스뮤직이르세라핌의 공식 채널에 카즈하의 ‘운동루틴’, ‘복근운동’ 등을 쇼츠로 만들어 올리면서 팬덤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카즈하의 건강미 넘치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며 “그룹 전체뿐만 아니라 개별 멤버들의 매력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쇼트폼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쇼트폼의 인기는 짧은 시간 안에 흥미를 추구하는 Z세대의 특성을 반영한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쇼트폼이 Z세대에게 유행을 하면서 이제 유튜브에 올라오는 5분 분량의 영상도 길게 느낀다. 아주 짧게는 10초, 길어도 1분 안에는 재밌는 장면을 보여주고, 해당 영상을 통해 그룹이나 멤버에 관심이 생겼다면 원본을 찾아보는 방식으로 콘텐츠의 소비 습관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새로운 시작.’ 보이그룹 엑소의 멤버 첸(30·사진)이 14일 발매한 세 번째 솔로 미니앨범 ‘사라지고 있어’를 정의한 한 단어다. 이날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첸은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예전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를 더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앨범에는 타이틀곡 ‘사라지고 있어’를 비롯해 첸이 작사한 ‘아이 돈트 이븐 마인드’ 등 여섯 곡이 수록됐다. 2019년 10월 나온 두 번째 솔로 미니앨범 ‘사랑하는 그대에게’ 발매 후 약 3년 만에 내놓는 앨범이다. 그 사이 첸은 엑소 멤버 중 처음으로 결혼을 했고, 두 딸의 아빠가 됐다. 첸은 “3년 동안의 경험과 감정으로 제가 달라졌다.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많이 생각했다. 후회가 되는 점, 좋았던 점을 토대로 다시 시작해보자는 다짐을 담았다”고 했다. 이어 “수록곡마다 이별, 사랑, 행복 등에 대한 생각과 표현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타이틀곡 ‘사라지고 있어’의 뮤직비디오는 드라마 형식이다. 최근 대다수 K팝 뮤직비디오에 가수 본인이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별하는 두 연인 역의 배우 박해수, 황세온만 출연한다. 첸은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넣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오롯이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맞았다. 가편집본을 보고 박수를 쳤다. 두 배우의 손짓, 눈빛 하나하나가 제 마음을 건드렸다”고 했다. 그간 집중해온 발라드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발라드를 좋아했고 지금도 매우 사랑한다”면서도 “다채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 가벼운 안무가 들어가는 곡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한국칠보협회 40주년 기념전’이 16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안명선, 배창숙, 백은재, 양연영 등 작가 95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소나무 문양이 새겨진 공예품, 한국 전통 꽃문살을 응용한 장신구 등 다채로운 작품을 볼 수 있다. 일곱 가지 보석이라는 뜻의 칠보는 금속 표면에 유리질 유약을 바른 뒤 고온의 가마에서 구워 여러 색을 내는 공예다. 장미연 한국칠보협회 이사장은 “칠보는 금속이라는 재료와 불, 유약이 만나 창조하는 색채의 변주를 통해 색이 입체적으로 구현되는 장르”라고 했다. 최공호 전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칠보는 한국의 공예를 다양하게 확장하는 역할을 해 왔다”며 “작가들이 칠보로 새로운 시도를 하며 칠보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무료.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일흔두 살 가수 최백호의 늦가을은 낭만적이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건물 20층에 있는 그의 화실은 너른 유리창 사이로 햇살이 내리쫴 제법 포근했다. 검은색 상의에 회색 청바지를 입은 그를 9일 화실에서 만났다. “매일 오전 6시부터 그림을 그려요. SBS 라디오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오후 10시에 녹음하는데요. 서울 양천구의 방송국으로 가기 전까지 화실에서 그리는 거죠. 종종 글도 씁니다.” 벽에 잔뜩 포개져 있는 그림들과 바닥에 어지러이 놓인 물감은 어린 시절 미술선생님을 꿈꿨던 그의 삶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하게 했다. 본업은 가수이지만 2009년부터 그림을 그린 그는 개인전을 여섯 차례나 연 화가이기도 하다. “최근 비결핵성 항상균 폐질환으로 심하게 아팠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좋아 보였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부터 ‘낭만에 대하여’ ‘영일만 친구’ 등 숱한 명곡을 쓴 싱어송라이터 최백호가 10일 새 앨범 ‘찰나’(사진)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은 그가 2018년부터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 CJ ENM의 신인 작곡가 육성 프로젝트 ‘오펜 뮤직’ 출신과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룹 PNP 소속 작사·작곡가와 함께 냈다. 경험한 것을 소재로 직접 가사를 쓰는 게 그의 철칙이지만 이번엔 마지막 트랙 ‘책’을 제외한 여섯 곡의 작사, 작곡을 후배들에게 맡겼다. 각 곡에는 20대부터 70대까지 세대별로 소중했던 ‘찰나’가 담겼다. 동년배 가수 정미조를 비롯해 후배 가수 타이거JK, 지코, 죠지, 콜드, 정승환이 피처링에 참여했다. 앨범 프로듀싱은 오펜 뮤직 1기 작곡가 헨(Hen)이 맡았다. “타이거JK와 협업하며 처음 힙합 음악을 들었어요. 수록된 발라드도 제 시대의 것과는 달라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죠. 음악이라는 게 맞닿는 지점이 있더군요. 힙합에 흥미가 생겨서 지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와 함께 힙합 앨범도 내려고 합니다.”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 탓에 학창 시절 음악시간에 노래를 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었다. 하지만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뒤 생계를 책임져야 해 친구의 제안으로 부산의 라이브 클럽 무대에 올랐다.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을 꼽자면 무대에 서라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거예요. 그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면 전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 희망 없이 매일 폭탄주만 마시고 다녔거든요.” 1976년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신인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지만 생계는 여전히 어려웠다. 돈을 벌기 위해 부산 라이브 클럽을 하루 6, 7군데씩 돌았다. 이 생활에 지쳐 1988년 아내와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정착에 실패해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95년 ‘낭만에 대하여’를 내놨다. 곡은 이듬해 김수현 작가의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나오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었다. “얼마 전 김 작가님과 식사할 때 제 생명의 은인이라 말씀드렸어요. 20년이 지나도 ‘낭만에 대하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걸 보며 이 노래가 가진 힘을 찬찬히 생각해보곤 합니다.” 후배 가수들은 그를 보며 미래를 그린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는 힘들 때마다 최백호의 ‘바다 끝’(2017년)을 들으며 위로받는다고 밝혔고, 트로트 가수 김호중은 그를 롤모델로 꼽았다. “저만큼 늙어서도 노래하고 싶다는 뜻 아닐까요.(웃음)” 그는 과거에 묶여 있길 거부한다. “70대에게도 사랑은 있어요”라는 그는 소년 같았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하기에 애쓰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70대에도 좋은 노래를 불렀으니 80대, 90대에도 틀림없이 그럴 수 있을 겁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일흔 두 살의 겨울에 접어든 노가수의 화실은 통유리로 햇살이 내리 쬐어 따뜻했다. 부스스한 흰 머리에 검정색 티셔츠, 회색진 차림의 최백호(72)는 6개월 전 서울 영등포구 한 건물 20층에 위치한 이 작업실을 구했다.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SBS 라디오 ‘최백호의 낭만시대’ 녹음을 가기 전까지 여기서 그림을 그리거나 곡을 쓴다. 벽에 잔뜩 기대어있는 그림들과 바닥에 어지러이 놓인 물감들은 유년시절 시골학교 미술교사를 꿈꿨던 최백호의 일상 속 단면들이었다. 줄곧 나무를 그려왔던 그는 최근 ‘미니멀리즘’ 사조에 관심이 생겨 유튜브로 공부를 하고 있다. “요즘 데상(소묘)에 한계를 느껴 홍대입구 근처의 미술학원을 알아보고 있어요. 1년만 데상을 바짝 공부하면 대단한 화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웃음)” 72세에 ‘화가’가 되겠다는 그의 포부가 농담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부터 ‘낭만에 대하여’, ‘영일만 친구’ ‘바다 끝’ 등 숱한 명곡을 내놓은 싱어송라이터이자 14년 째 라디오를 진행하는 DJ인 그는 안주하는 법이 없었다. 여섯 번의 개인전을 연 화가이자 멜로와 SF 장르의 단편 영화 시나리오를 쓴 영화감독 꿈나무, 그리고 다음달 책을 출간하는 작가로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올해 초부터 비결핵성 항상균 폐질환으로 심하게 아팠다”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한 한 해를 보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와중에 앨범도 만들었다. 10일 오후 6시 발매되는 기획앨범 ‘찰나’는 그가 지난해 12월 발매한 EP ‘세상보기’에 이어 11개월 만에 선보이는 앨범. 최백호가 2018년부터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 CJ ENM의 신인 작곡가 육성 및 발굴 프로젝트 ‘오펜 뮤직’ 출신 작곡가와 작사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룹 PNP 소속 작곡가들과 의기투합했다. 통상 경험한 것을 소재로 직접 가사를 쓰지만 마지막 트랙 ‘책’을 제외한 여섯 곡의 작사, 작곡은 모두 후배들에게 맡겼다. 20대 청춘부터 70대 노년까지 세대별 소중하고 아팠던 찰나를 담은, 한 권의 책과 같은 앨범이다. 동년배 가수 정미조를 비롯해 후배 가수 타이거JK와 지코, 죠지, 콜드, 정승환이 피처링에 참여했다. “타이거 JK와 협업하며 처음 힙합 음악을 들었어요. 이번 앨범에 EDM 팝 ‘개화’라는 곡도 있고, 수록된 발라드들도 제 시대의 것과는 달라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이었죠. 결국 음악이라는 게 맞닿는 지점이 있더군요. 힙합에 흥미가 생겨서 지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와 함께 내년에 힙합 앨범도 발매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찰나라는 앨범이 제겐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마흔 여섯에 히트한 ‘낭만에 대하여’, 지금의 나를 생존하게 한 곡”그의 유년시절 꿈은 시골학교 미술교사였다. 가수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허스키한 목소리 탓에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노래를 하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스무 살 때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친구의 제안으로 부산 라이브 클럽 무대에 올랐다. 그 우연이 그를 가수의 길로 인도했다.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일을 하나 꼽자면 친구가 무대에 한 번 서 보라고 권했을 때 그냥 받아들이고 올랐던 거에요. 그날 그 순간은 정말 잘 한 결정 같아요. 그 때 그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면 전 지금쯤 죽었을 거에요. 그때 매일 폭탄주 먹고 다녔거든.”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빛은 젊은 시절 미처 소진되지 못한 열정일 것이다. 1976년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신인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탔지만 20년간 이렇다할 히트곡 없이 ‘애매한 시간’을 보냈다. 돈을 벌기 위해 부산 라이브 클럽을 하루 6, 7군데씩 돌았다. 업소 생활에 지쳐 1988년 아내와 딸을 데리고 미국 이민을 떠났다. “30대가 쭉 힘들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노래고 뭐고 다 포기하려 했다. 적당하게 술집에서 노래하며 살려 했다”고 회고했다.1995년 발매된 ‘낭만에 대하여’가 이듬해 김수현 작가의 KBS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나오면서 대성공을 거뒀을 때는 그의 나이 마흔 여섯이었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는 첫줄에서부터 곡을 써내려간 그날은 아직도 최백호의 가슴 속에 어제처럼 생생하다. 생후 5개월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스무 살 되던 해엔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30대엔 생계 걱정으로 하루도 발 뻣고 잠들지 못했다. 청춘의 고통은 ‘낭만에 대하여’에 응집됐다. “그 노래가 날 생존할 수 있게 했어요. 객관적인 시각에서 봐도 대단한 곡이죠. 20년이 넘어도 반응이 똑같아요. 지금도 새로운 버전의 ‘낭만에 대하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요. 얼마 전 김수현 작가님과 식사를 하면서 ‘당신이 제 생명의 은인’이라 말씀드렸어요.” ●“70대에게도 사랑은 있어요” 과거에 묶이길 거부하는 ‘영원한 소년’때가 늦었다는 말은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하다. 후배 가수들도 그런 최백호를 보며 ‘왕년의 스타’로 남지 않는, 죽을 때까지 노래하는 가수를 꿈꾼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는 최백호가 2017년 발매한 ‘바다 끝’을 팬들에게 추천하며 “힘이 들 때 위로를 받는 곡”이라고 언급했고, 가수 김호중은 그를 롤모델로 꼽았다. “저만치(저만큼) 늙어서도 노래하고 싶다는 뜻 아닐까요. 드라마에도 노인정이 필요하듯 노래에도 노인 목소리가 필요하니까요. (웃음)” 꿈꾸는 소년과 온화한 노년의 얼굴은 음악에 대한 철칙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한 치의 타협 없는 엄격한 거장의 얼굴로 바뀌었다. “제 딸과 손자, 손녀에게 부끄러운 노래는 안 하겠다는 게 가수로서의 기준이에요. 특히 표절은 안돼. 그건 도둑질이에요. 표절을 용서한다면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을 다 풀어줘야 해요. 그래서 전 노래도 너무 많이 듣진 않아요. 은연중에 그 멜로디가 작곡 중에 나올 수도 있어서요.” 여러 인터뷰에서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언급한 최백호. 그는 과거에 묶여있기를 거부하며, 지금 현재의 열정에 집중한다. “70대에게도 사랑은 있어요”라며 웃던 그는, 사랑할 대상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영원한 소년이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하다고 생각해요. 노력하고 집착하면 어떤 일이든, 어떤 세계든 이룰 수 있어요. 제가 70대에도 좋은 노래를 불렀으니 80대, 90대에도 틀림없이 부를 수 있겠죠.”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어제 야구 경기(한국시리즈)를 보러 갔어요. 아무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지 않더군요. 모두 경기에 몰입한 모습이 정말 멋졌어요.” 미국 그래미 12관왕, 롤링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70위에 이름을 올린 뮤지션 잭 화이트(47)가 공연 시작 1시간 후 관객 1300명에게 처음 건넨 인사말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채 경기를 즐긴 한국 관중을 향한 찬사였다. 모든 콘서트마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엄격히 금하는 그의 첫인사다웠다. 8일 오후 8시 서울 광진구 예스24홀에서 열린 그의 첫 내한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연 전 “사진 및 영상 촬영 시 삭제 후 퇴장시킨다”는 안내가 있었고, 화이트가 105분 동안 20여 곡을 열창하는 동안 객석에서는 단 한 줌의 스마트폰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천주교 신자 부모님 밑에서 자라 신부가 되려 했던 화이트는 아버지가 사준 피아노를 독학으로 치며 가수를 꿈꿨다. 1997년 메그 화이트와 듀오 록 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를 결성한 뒤 정규 3집 ‘White Blood Cells’(2001년)로 처음 빌보드에 입성했다. 대표곡 ‘Seven Nation Army’가 수록된 정규 4집 ‘Elephant’(2003년)로 두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1년 팀 해체 후 솔로활동을 시작한 화이트는 두 번째 솔로앨범 ‘Lazaretto’(2014년)로 그래미 ‘베스트 록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다. 4월 발매한 네 번째 솔로앨범 수록곡 ‘Taking Me Back’의 전주와 함께 무대에 등장한 화이트는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한국, 오늘 기분 어때요?”라는 짤막한 인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의 쉼 없이 노래를 이어나갔다. 한쪽 다리로 방방 뛰며 무대 좌우를 오간 탓에 파란색 머리는 헝클어졌고, 재킷은 공연 중간에 벗어 던졌으며 격렬한 연주를 견디지 못한 기타 피크를 곡이 끝날 때마다 허공에 날렸다. 관객도 동화됐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이마가 부딪힐 듯 머리를 흔들며 ‘You Don‘t Understand Me’를 연주하는 그의 선명한 타건에 환호를 보냈다. 앙코르곡 ‘Seven Nation Army’에선 2절 초반 갑작스럽게 화이트가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겼고, 관객이 주저 없이 가사를 읊자 화이트는 “맞다(That’s Right)”며 기뻐했다. 화이트는 올 4월 영국 매체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팬데믹으로) 투어를 못 하는데 앨범을 만드는 게 이상했다. 안개가 돼 사라져버릴 것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았다”며 2020년 음악에서 손을 뗀 이유를 밝혔다. 이날 공연에서 화이트는 관객들에게 음악이 주는 몰입과 전율을 선물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어제 야구 경기(한국시리즈 5차전)를 보러 갔어요. 아무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지 않더군요. 모두 경기에 몰입한 모습이 정말 멋졌어요. 미국인도 그런 열정을 배워야 해요.” 미국 그래미 12관왕, 롤링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70위에 이름을 올린 파란 머리의 뮤지션 잭 화이트(47)가 공연시작 1시간 후 관객에게 처음 건넨 인사말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채 경기를 즐긴 한국 관중들을 향한 감동어린 찬사였다. 모든 콘서트마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엄격히 금하는 화이트의 첫인사다웠다. 8일 오후 8시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그의 첫 내한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연 전 “사진 및 영상 촬영 시 삭제조치 후 퇴장시킨다”는 경고성 안내가 있었고, 105분 동안 1300명이 가득 찬 객석에선 단 한 줌의 휴대폰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콘서트 사진이나 동영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 부모님 밑에서 자라 신부가 되려했던 화이트는 신학교 입학도 마쳤던 14살 여름, “우리 세대를 위한 목소리는 누가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뒤 아버지가 사준 피아노를 독학하며 가수를 꿈꿨고, 밴드활동을 거쳐 스물 두 살 되던 해인 1997년, 전 아내 멕 화이트와 듀오 록 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를 결성한다. 1996년 결혼한 두 사람은 2000년 이혼했다. 정규 3집 ‘White Blood Cells’(2001년)로 처음 빌보드에 입성하며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이들의 대표곡 ‘Seven Nation Army’가 수록된 정규 4집 ‘Elephant’(2003년)로 두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멕 화이트의 무대공포증으로 2011년 팀 해체 후 솔로활동을 시작한 화이트는 두 번째 솔로 앨범 ‘Lazaretto’(2014년)로 그래미 ‘베스트 록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면서 과거의 명성에 머무르지 않는 현시대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기타와 물아일체 된 현시대의 전설에 관객들 전율 “한국에 처음 와 기쁘다”거나 내한한 해외스타들의 필수 코스가 된 ‘볼 하트’도 없었다. 3월 발매한 네 번째 솔로앨범 ‘Fear Of The Dawn’의 수록곡 ‘Taking Me Back’의 전주와 함께 무대에 등장한 화이트는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How are you doing, Korea?”라는 짤막한 인사를 제외하고 단 한번의 쉼도 없이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나갔다. 매 공연마다 정해진 세트리스트 없이 즉흥적으로 원하는 곡을 연주하는 탓에 관객들은 다음에 어떤 곡이 나올지 예상하지 못한 채 기타와 물아일체가 된 화이트의 본능과 호흡에 몸을 맡겼다. 통상 해외 아티스트는 앵콜곡까지 똑같은 순서로 공연을 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미리 세트리스트를 숙지한 채 공연장을 찾는다. 숨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그의 연주에 1층 스탠딩석 관객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추거나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며 열광했고, 2층 지정석 관객들 중 일부는 접신한 듯한 그의 퍼포먼스에 고개를 좌우로 내젓기도 했다. 화이트는 겉핥기식의 인사치레 대신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했다. 끓어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한쪽 다리로 방방 뛰며 무대 좌우를 오간 탓에 그의 정체성과도 같은 파란색 머리는 잔뜩 헝클어졌고, 파란색 반짝이가 달린 자켓은 공연 중간에 벗어 던졌으며, 곡이 끝날 때마다 격렬한 연주를 견디지 못한 기타 피크를 허공에 그대로 날렸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붙는 화이트에 관객도 동화됐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이마가 부딪힐 듯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며 ‘You Don‘t Understand Me’의 간주 부분을 연주하는 그의 선명한 타건에 관객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진 이들을 부탁하는 노래 ‘If I Die Tomorrow’를 부를 땐 관객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후레쉬를 켜고 공중에 흔들었다. 이날 공연에서 유일하게 스마트폰 불빛이 객석에서 새 나온 순간이었다. 공연은 매 순간이 클라이막스였다. 마지막 곡 후 밴드가 퇴장한 뒤 무대 불이 꺼지자 Seven Nation Army의 멜로디를 힘껏 외치며 앵콜을 성원했다. 검정색 반팔티를 입은 채 무대에 다시 등장한 화이트는 앵콜곡 ‘Steady As She Goes’을 부를 때 “내가 ‘Steady as she goes’를 부르면 ‘Are you steady now’를 불러달라”며 관객들과 함께 노래했다. 마지막 앵콜곡 Seven Nation Army를 부를 때엔 2절 초반 갑작스럽게 관객에 마이크를 넘겼음에도 주저하지 않고 정확히 가사를 읊으며 떼창하는 관객에 ‘That‘s Right!’이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화이트는 4월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팬데믹으로) 투어 공연을 못 하는데 앨범을 만드는 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안개가 돼 사라져버릴 것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았다”며 2020년 한 해 동안 음악에서 손을 뗐던 이유를 밝혔다. 은둔과 단절의 시간동안 느꼈던 생경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출했고, 올해 4월과 7월 솔로 앨범 두 장을 연거푸 발매했다. 무대에서 연주하지 못할 곡은 공기 중에서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다던 본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는 4집이 발매된 4월 그의 고향 디트로이트에서 세계 투어의 스타트를 끊었다. 무대에 서야 비로소 음악이 완성된다고 믿지만 온라인상 ‘되감기’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만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몰입과 전율, 화이트가 관객에게 남긴 선물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징그럽고 성가신 존재.’ 사람들이 곤충을 떠올렸을 때 흔히 갖는 생각이다. 정작 곤충의 중요성에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다. 영국 서식스대 생물학과 교수인 저자는 곤충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곤충은 먹이사슬 기본 단계의 단백질원이기에 곤충이 사라졌을 때 포식자들이 연쇄적으로 멸종한다. 인구의 80%가 2000종에 달하는 곤충을 먹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 식량 공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곤충은 식물에게 꽃가루를 옮기고 해충을 없애는 등 생태계 유지에도 큰 역할을 한다. 저자는 곤충이 생명체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며 환경 파괴로 곤충이 감소하고 있는 현실에 경고를 던진다. 생물다양성이 줄어드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저자는 날아가던 곤충이 부딪히면 갇히는 텐트를 독일 각지에 설치해 매년 텐트에 갇히는 곤충 무게를 추적했는데, 1989년부터 2016년까지 26년 사이 덫에 걸린 곤충의 무게가 75% 감소했다. 월동기간 멕시코의 한 산맥에 모이는 제왕나비 개체수를 센 결과 이곳에서 발견된 제왕나비는 1997년 120만 마리에서 2019년엔 3만 마리로 줄었다. 곤충 감소의 가장 큰 책임은 원시 자연 서식지를 무차별적으로 개발해온 인간에게 있다. 실제로 위성 영상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열대림은 연간 7만5000m², 하루에 약 200m²의 속도로 개간되고 있다. 비료, 농약 등 화학물질 증가도 심각하다. 해충이 농약에 내성을 띠기 시작하면서 농민들은 80여 년간 더 많은 농약을 뿌려야 했고, 살충제가 수십 년간 잔류하면서 먹이사슬을 따라 독성이 축적됐다. 저자는 곤충 보존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변화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19년 독일 바이에른 주민들은 곤충 감소에 대한 우려로 곤충 친화적 서식지를 조성하자는 내용을 담은 자연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청원했고, 200만 명이 서명했다. 농약 업체로부터 로비를 받던 당시 집권당은 이를 기각하려 했지만 풀뿌리 운동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법안 통과로 이어졌다. 중고등학교에서 자연 탐구 시간을 마련하고, 자연사를 대입 시험에 포함시키자는 제안도 눈여겨볼 만하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꺄아악, 어떡해! 빨리 들어가자!” 지난달 29일 오후 1시 반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 가상 캐릭터를 앞세운 버추얼 아이돌 ‘레볼루션 하트’의 쇼케이스를 앞두고 600여 명의 팬이 몰렸다. 지난해 7월 데뷔한 4인조 보이그룹 레볼루션 하트는 쇼케이스가 진행된 1시간 내내 극장 스크린을 통해 팬들과 만났다. 애니메이션 속 미소년 모습의 멤버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될 때마다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멤버 제미니가 윙크를 하며 “사랑해용”이라고 하자 “귀여워!”라고 외치는 팬도 있었다. 데뷔 1주년을 기념해 팬들을 위해 만든 노래 ‘슈퍼스타’가 나오자 팬들은 후렴구를 ‘떼창’했다. CGV 왕십리(608석), CGV 용산아이파크몰(192석), CGV 영등포(303석) 등 3곳에서 동시에 열린 쇼케이스는 티켓 오픈 3분 만에 전체 1103석이 매진됐다. 가상 캐릭터를 앞세운 버추얼 아이돌이 1020세대에게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은 기업 광고에 출연해 유명해진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처럼 외모부터 목소리, 움직임까지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가상 인간’과는 결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버추얼 아이돌은 아바타를 연기하는 실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성우처럼 인간이 아바타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팬들과 대화하며 노래도 부른다. 센서를 부착한 인간의 움직임을 가상현실(VR)에 반영하는 ‘트래킹’ 기술로 아바타의 표정과 몸동작도 만들어낸다. 3차원(3D) 기술을 활용해 뮤직비디오, 퍼포먼스 영상도 만든다. 버추얼 아이돌을 연기하는 인간은 인터넷 방송에서 활동하는 이들로 추정되지만 누구인지 공개하지 않는다. 버추얼 아이돌 중 가장 주목받는 그룹은 지난해 8월 데뷔한 6인조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이다. 콘텐츠 창작자 ‘우왁굳’이 가상세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멤버로 구성한 이세계 아이돌은 지난해 12월 데뷔 곡 ‘리와인드’로 음원 차트 벅스, 가온에서 각각 1위에 올랐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걸그룹 멤버들이 정체를 숨긴 채 가상세계 속 아바타로 오디션에 참가하는 서바이벌 예능 ‘소녀 리버스’를 28일 선보인다. 버추얼 아이돌이 인기를 끄는 이유로는 우선 활발한 소통을 꼽는다. 보통 아이돌은 방송 출연을 포함해 각종 일정이 많아 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쉽지 않다. 이에 비해 버추얼 아이돌은 물리적 공간에 직접 갈 필요가 없어 시간 여유가 있고, 온라인 생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를 겸하는 경우가 많아 팬들과 매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쇼케이스에서 만난 이모 씨(23·여)는 “아미(방탄소년단·BTS 팬덤)였는데 소통도 불규칙적이고 (BTS가) 예능 프로그램에 안 나오기 시작하면서 ‘내 손안의 아이돌’처럼 느껴지는 레볼루션 하트로 팬덤을 갈아탔다”고 말했다. 1020세대는 버추얼 아이돌의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레볼루션 하트가 소속된 카론유니버스의 신예지 대표는 “젊은 세대는 아바타 뒤 인간이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고 멤버의 캐릭터와 세계관에 온전히 몰입한다”며 “팬들이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한 웹툰, 웹소설도 활발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버추얼 아이돌 시장이 점차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1020세대는 어릴 적부터 온라인 캐릭터를 접해 버추얼 아이돌을 친숙하게 여긴다”며 “앞으로 버추얼 아이돌이 인간 아이돌의 대안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꺄아악, 어떡해! 빨리 들어가자, 빨리!” 지난달 29일 오후 1시 반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 “‘레볼루션 하트’ 쇼케이스 입장 시작합니다”라는 안내 목소리와 함께 600여 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극장 입구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데뷔한 4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레볼루션 하트의 팬들. 서둘러 극장 안으로 들어간 팬들은 멤버 모습이 띄워진 스크린을 배경으로 응원봉을 높이 들어 인증샷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쇼케이스 시작 후 멤버들의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 될 때마다 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멤버 제미니가 “사랑해용”이라며 애교를 부리자 “너무 귀여워!”라고 소리를 지르는 팬도 있었다. 데뷔 1주년 기념 팬송 ‘슈퍼 스타’가 나오자 팬들은 후렴구를 ‘떼창’하기도 했다. 여느 쇼케이스와 다르지 않은 팬들의 열기였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날 쇼케이스에는 실제 인간이 단 한 번도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 레볼루션 하트는 가상 캐릭터를 앞세운 ‘버추얼 아이돌’로, 한 시간 내내 극장 스크린으로 팬들을 만났다. 첫 디지털 싱글 ‘트리거’ 발매를 앞두고 열린 첫 번째 쇼케이스에 팬들 천여 명이 몰렸다. CGV에 따르면 이날 쇼케이스가 열린 CGV 왕십리, CGV 용산아이파크몰, CGV 영등포 세 개 극장 1103석 전석이 예매 3분 만에 매진됐다. 가상 인물을 앞세운 ‘버추얼 아이돌’이 1020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은 ‘로지’나 ‘수아’ ‘한유아’ 처럼 외모는 물론 목소리, 움직임, 대화 내용까지 AI가 만들어낸 ‘가상 인간’과는 다르다. 버추얼 아이돌은 아바타를 연기하는 실제 인물이 숨어있다. 목소리는 실제 인간이 내고, 얼굴 표정과 몸동작은 신체 움직임을 감지해 가상현실(VR) 영상에 반영하는 ‘트래킹’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버추얼 아이돌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은 지난해 8월 데뷔한 6인조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이세돌).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트위치’의 게임 크리에이터 ‘우왁굳’이 가상세계 속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여섯 멤버로 만든 이세돌은 지난해 12월 데뷔곡 ‘RE:WIND(리와인드)’로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도 실제 걸그룹 멤버들이 아바타로 오디션에 참가하는 서바이벌 예능 ‘소녀 리버스’를 28일 선보일 예정이다. 버추얼 아이돌의 강점은 팬들과의 활발한 소통이다. 보통 아이돌은 소속사가 정해준 시간에만 라이브 방송을 하거나, 방송출연, 콘서트 등 일정이 많아 소통에 한계가 있다. 버추얼 아이돌은 물리적 공간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고, 온라인 생방송을 하는 ‘스트리머‘를 겸하는 경우도 많아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쇼케이스에서 만난 정세민 씨(19·여)는 “레볼루션 하트는 매일 라이브 방송을 하고 팬들의 채팅을 일일이 다 읽어준다. 1~2주에 한 번씩 라이브 방송을 하는 실제 아이돌 그룹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모 씨(23·여)는 “원래 아미(방탄소년단 팬덤)였는데 몇 년 전부터 브이앱(실시간 소통 플랫폼)을 켜는 빈도도 불규칙적이고 예능도 거의 안나오기 시작했다. 일대일 대화를 하며 ‘내 손 안의 아이돌’ 느낌을 주는 레볼루션 하트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실제 인간이 아바타의 뒤에 있을 경우 ‘불쾌한 골짜기’를 줄여준다는 강점도 있다. 불쾌한 골짜기란 아예 인간과 다르거나 똑같은 가상인간에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지만, 그 중간 단계의 어설픈 가상 인간을 봤을 때 거부감을 갖게 된다는 이론이다. 버추얼 아이돌의 경우 인간이 대화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거부감이 줄어든다는 것.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허무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버추얼 아이돌은 완벽한 가짜가 아닌, 어느 정도 인간의 모습을 갖춘 존재라 친근감을 준다”며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의 가상 인간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색한 AI를 접했을 때의 불쾌감을 줄여줄 수 있는 과도기적 존재들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1020세대는 아바타 뒤의 인간이 누구인지 궁금해 하기보다, 캐릭터와 세계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레볼루션 하트가 소속된 카론유니버스의 신예지 대표는 “버추얼 아이돌은 명확한 성격과 독특한 능력 등을 각 멤버에게 부여한 세계관을 만들 수 있어 그 세계관에 온전히 빠지는 1020세대 팬들이 많다”며 “캐릭터를 활용한 웹툰, 웹소설 등 팬들이 2차 저작물도 활발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블랙핑크와 아이브, (여자)아이들…. 최근 ‘대세’ 걸그룹엔 공통점이 있다. 올해 발매한 신곡 중에는 기존 곡의 일부 음원을 재편집해 활용하는 샘플링을 한 곡이 있다는 것. 가요계에서 샘플링은 꾸준히 사랑받았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샘플링한 H.O.T.의 ‘빛’(1998년),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해 인기를 얻었던 신화의 ‘T.O.P’(1999년)가 대표적이다. 아이브는 8월 발매한 신곡 ‘애프터 라이크’에서 1978년 미국 디스코 가수 글로리아 게이너의 히트곡 ‘아이 윌 서바이브’를 샘플링했다. 통상 팝송 샘플링에서는 후렴구를 활용하는데 애프터 라이크는 간주 부분을 활용해 신선함을 더했다. 빌보드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은 “아이 윌 서바이브는 빌보드 핫백 차트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곡이라 아이브는 기존 팬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블랙핑크는 클래식을 택했다. 19세기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샘플링해 지난달 선보인 곡 ‘셧 다운’으로 인기를 끌었다. 곡 시작부터 라 캄파넬라 도입부의 강렬한 바이올린 선율이 등장해 팬들 사이에서 ‘이 곡을 샘플링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빌보드는 “친숙한 클래식과 힙합의 만남으로 까다로운 청중을 만족시켰다”고 평했다. 17일 컴백한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신곡 ‘누드’는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 ‘하바네라’의 멜로디를 차용했다. ‘누드’라는 노래 제목에 대중은 섹시 콘셉트를 예상했으나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나다운 모습을 찾자’는 메시지를 담아 반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4세대 걸그룹들이 과거 명곡을 샘플링한 건 친숙한 멜로디가 신곡을 듣는 이들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요계에서는 세대를 넘어 울림을 주는 명곡이 K팝에 녹아들어 새롭게 재탄생함으로써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2015년 일본 고베시의 한 지역신문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교 시절 도서 대출 기록을 입수했다. 신문사는 학문적 연구 가치가 있다며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도서관 사서로 일했던 저자는 이에 대해 “16세 이상 이용자의 도서 대출 목록은 가족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도서관은 빅데이터 시대에 감시당하지 않고 정보를 얻는 마지막 장소”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라 여기지 않는다. 공공도서관은 성별과 인종,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니 사회적 소외 계층의 안식처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미 시애틀중앙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이들은 노숙인이라고 한다. 도서관은 이들을 위해 정신건강 및 취업, 주거 관련 상담 서비스도 진행한다. 사서로 일할 때 도서관에서 ‘미확인비행물체(UFO)’ 관련 책이 모두 사라졌던 경험도 소개했다. 일부 이용자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없애버린 것이다. 실제 미 도서관에선 점성술, 낙태 등과 관련된 민감한 책들이 종종 없어진다고 한다. 저자는 “도서관은 검열의 공간이 아닌, 누구나 정보를 얻을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변한다. 절간처럼 조용한 도서관보다 아이들이 함께 웃음을 터뜨리거나 왁자지껄한 토론이 벌어지는 사람 냄새가 나는 도서관을 꿈꾼다는 시각도 신선하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