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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본선에서 양심껏 투표하세요. 우리의 자유를 옹호하고 헌법에 충실하기 위해 여러분이 신뢰하는 후보들에게 투표하십시오.” 20일(현지 시간) 오후 10시경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장인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퀴큰론스 아레나 메인 무대. 연사로 나온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트럼프가 당의 대선 후보가 된 것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한 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렇게 외치자 전대장은 순식간에 “부∼” 하는 야유와 고성으로 가득 찼다. 전날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트럼프 지지를 거부한 것은 물론이고 듣기에 따라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투표하라는 말로도 들렸다. 크루즈는 경선 막판까지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막말을 주고받으며 진흙탕 경쟁을 벌이다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이날까지도 트럼프 지지 선언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날 그는 트럼프의 이름을 단 한 차례만 언급했다. 크루즈 바로 앞에 있던, 트럼프의 고향인 뉴욕 주 대의원들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크루즈를 비난했다. 이방카 등 트럼프 자녀들의 표정은 돌처럼 굳어졌다. 전날 연사로 나서 트럼프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입을 벌린 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부 트럼프 지지자가 크루즈의 아내인 하이디 크루즈에게 다가가 험악한 표정을 짓자 백악관 비밀경호국(SS) 요원들이 급히 하이디를 전대장 밖으로 내보냈다. 트럼프의 오랜 측근인 로저 스톤은 전대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크루즈는 멍청한 ×자식”이라고 쏘아붙였다. 이날 연설 직전에도 해프닝이 있었다. 크루즈는 오후 2시경 클리블랜드 공항 인근에서 경선 기간 자신을 지지해 준 대의원과 자원봉사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상공에 등장한 대형 여객기의 소음으로 연설이 중단됐다. 뉴욕에서 막 날아든 트럼프 전용기였다. 크루즈는 “사전에 트럼프 측과 조율된 건가?”라며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전대장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정작 이날의 주인공인 마이크 펜스의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은 빛이 바래졌다. 크루즈 연설이 끝나고 1시간 뒤 등장한 펜스는 수락 연설에서 “민주당은 지금 이 나라 전체가 신물이 난 모든 것을 대변하는 그런 사람(힐러리)을 후보로 지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트럼프 외에 대안이 없다. 트럼프는 준비돼 있다. 이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크루즈의 연설이 끝나갈 무렵 가족들이 있는 VIP 지역으로 걸어 들어온 트럼프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특유의 제스처를 취했지만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전대 후 트위터를 통해 “나는 크루즈가 그런 내용의 연설을 할 것을 2시간 전에 미리 알았다. 별거 아니다”라며 애써 무시했다. 트럼프는 후보 수락 연설 하루 전인 이날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갖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침공받아도 미국이 무조건 보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나토 국가들의 방위비 증액을 거듭 요구했다. 이날 전대장 주변에선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성조기를 불태우다 17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공화당의 웨스트버지니아 주 하원 의원이자 유나이티드항공 조종사인 마이클 포크는 최근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반역죄, 살인죄 등으로 워싱턴에서 목을 매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항공사 측으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고 시카고트리뷴이 20일 전했다.―클리블랜드에서 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도널드 트럼프(70)가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19일(현지 시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에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공화당 경선주자였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등 당내 ‘빅 3’가 모두 연단에 나섰다. 세 사람 모두 지지 연설에 나섰지만 트럼프 지지 발언에는 온도차를 드러내 통합까지는 갈 길이 먼 공화당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공화당 서열 1위인 라이언 의장은 시종 ‘전대 의장 자격으로 지지 발언은 하지만 트럼프 후보 등극을 100%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떨떠름한 태도였다.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유지해 온 그는 종교적 차별 논란을 빚은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공약 등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보수주의는 그런 게 아니다”라며 공개 비판해 왔다. 라이언은 이날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공식 발표한 뒤 10여 분의 연설에서 당의 대선 승리를 강조했지만 정작 주인공인 트럼프의 이름은 딱 두 차례 언급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내년 신년 국정연설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의회 연단에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 라이언은 연설 내내 무미건조한 표정이었고 가끔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라이언의 밋밋한 연설에 맏딸 이방카 등 전대장 안에 있던 트럼프 가족들 표정도 밝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라이언은 “그동안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이는 (당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대선 승리를 위해선 트럼프가 더 변해야 한다고 에둘러 압박했다.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선언했던 크리스티 주지사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범죄자로 몰아붙이며 트럼프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보여줬다. 그는 “힐러리는 국무장관으로 미 역사상 최악의 협상인 이란 핵협상을 주도하고, 잘못된 이라크 정책으로 ‘이슬람국가(IS)’의 창궐을 방조했다. 이는 모두 유죄”라고 주장했다. 전대장 밖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외치는 ‘힐러리를 감옥으로’ 구호에 딱 맞는 연설이었다. CNN은 “한때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크리스티가 잠시 검사로 돌변해 트럼프에게 ‘이래도 내가 부통령감이 아니냐’라고 호소하듯 강렬한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변호사 출신인 크리스티는 뉴저지 주 검찰총장을 지냈으며 트럼프 정권에서 법무장관으로 거론된다. 그동안 원론적 수준의 지지에 그쳤던 매코널은 이날 “(경선을 치르면서) 트럼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 당내 중진인 세 사람은 트럼프 부상에 각기 다르게 대응해 온 당내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라이언 의장은 미 공화당 보수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아웃사이더’ 트럼프에게 거리감을 두는 주류 보수 진영을 상징한다. 매코널은 트럼프와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공화당의 권력 장악이라는 현실적 과제를 중시하는 실용적인 부류를 대표한다. 크리스티는 민심 흐름을 빨리 읽고 일찍, 그리고 적극적으로 ‘권력게임’에 뛰어든 축이다. 공화당은 이날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퀴큰론스 아레나’에서 열린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에서 트럼프를 당 대선 후보로,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트럼프는 이날 진행된 공개투표인 ‘롤 콜(Roll Call)’에서 전체 대의원의 과반인 1237명을 무난히 확보했다. 이로써 노예해방을 이뤄낸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을 낳은 160년 전통의 미국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으로 공식 탈바꿈했다. 트럼프는 전대 마지막 날인 21일 후보 수락 연설을 갖고 대관식을 마무리한다. 트럼프는 후보 지명 후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생중계된 화상 연설을 통해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돼 자랑스럽다”며 “워싱턴에 진짜 변화와 리더십을 보여주고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겠다”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 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70)가 19일(현지 시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퀴큰론스 아레나’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에서 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트럼프는 이날 진행된 공개투표인 ‘롤 콜’(Roll Call)에서 전체 대의원의 과반인 1237명을 무난히 확보했다.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도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이로써 노예 해방을 이뤄낸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을 낳은 160년 전통의 미국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70)의 당으로 공식 탈바꿈했다. 트럼프는 전대 마지막 날인 21일 후보 수락 연설을 갖고 대관식을 마무리하게 된다. 일부 반(反) 트럼프 진영은 전대장 안팎에서 막판까지 트럼프 후보 등극을 막았지만 대의원들이 몰표를 던져 ‘롤 콜’은 1시간여 만에 끝났다. 트럼프는 후보 지명 후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생중계된 화상 연설을 통해 “미국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돼 자랑스럽다”며 “워싱턴에 진짜 변화와 리더십을 보여주고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클리블랜드=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18일 오후 10시 20분(현지 시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미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퀴큰론스 아레나. 연단 조명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푸른빛이 도는 은색 장막이 드리워졌다. 이내 정장 차림의 거한(巨漢)이 실루엣(그림자를 통해 보이는 윤곽)만을 드리운 채 뚜벅뚜벅 등장했다. 새 둥지 모양의 헤어스타일에서 그가 이번 전대의 주인공인 도널드 트럼프(70)임을 알 수 있었다. 전대 마지막 날인 21일 등장하기로 돼 있던 주인공의 깜짝 등장에 대회장을 가득 채운 5만여 명의 대의원은 일제히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쳤다. 장내에선 경선 기간 사용하던 그룹 퀸의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이 우렁차게 흘러나왔다. 연단에 선 트럼프는 첫날 메인 연사이자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46)를 “차기 퍼스트레이디”라고 소개한 뒤 아내의 볼에 연신 키스를 했다. 슬로베니아 슈퍼모델 출신인 그녀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존 퀸시 애덤스 6대 대통령(1825∼1829년 재임)의 영국 태생 부인 루이자 애덤스 이후 188년 만에 처음으로 탄생하는 외국 태생의 미 퍼스트레이디가 된다. 멜라니아는 다소 흥분한 듯했다. 참모들과 5주 넘게 원고를 고치고 수차례 연습까지 했지만 영어 발음과 억양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는 “(남편은) 필요할 때는 (상대방에게) 날카롭다. 하지만 동시에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다. 사람들은 도널드의 친절함을 항상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곧 대부분이 알게 될 것”이라며 남편을 변호했다. 또 “(외국인과 결혼한) 도널드는 대통령이 되면 기독교인 유대인 무슬림은 물론이고 히스패닉 흑인 등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인종과 종교적 편견을 변호한 발언이었다. CNN은 “록스타처럼 등장한 트럼프가 첫날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아내에게 부여한 순간”이라며 “멜라니아가 트럼프 감독의 지시에 따라 홈런을 쳤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연설이 끝나자마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가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한 연설을 베꼈다는 의혹에 휘말리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멜라니아가 15분가량 이어진 연설 초반에 자신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다 “(부모님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열심히 일해야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가치를 명심시켰다. 사람들을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줬다”고 말한 대목은 단어와 배열이 8년 전 그대로였다. 이어 “앞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의 한계는 자신이 가진 꿈의 힘과 그것을 위해 일하려는 적극성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앞으로 올 세대들에게 전해줘야 한다”고 한 대목도 몇 글자를 제외하곤 똑같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 스피치 라이터 존 패브로는 “멜라니아의 표절”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CNN은 멜라니아와 미셸의 발언 영상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표절 부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며 “들어 본 적이 있지 않느냐? 단어 하나까지 같다”고 지적했다. 연설 시작 전 대회 초반은 반(反)트럼프 세력과 트럼프 지지자 간의 설전으로 혼란스러웠다. ‘구속 대의원’의 자유투표제를 주장하는 반대 진영은 대의원의 현장점호 투표를 뜻하는 ‘롤콜(roll call)’을 외치며 표결을 요구했고, 트럼프 지지자는 ‘USA’ 구호를 외치며 맞섰다. 하지만 반대파의 시도는 표결에 부치기 위해 필요한 최소 7개 주의 지지를 얻지 못해 ‘트럼프 대관식’을 막지는 못했다. 공화당이 이날 발표한 정강정책에는 트럼프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을 포함해 불법 이민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조항이 대거 포함됐다.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동성 결혼을 인정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등 한층 보수적인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70)가 18일(현지 시간) 미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퀴큰론스 아레나에서 개막한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 “우리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아주 크게 승리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공화당이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1일 트럼프를 공식 후보로 확정하는 데 이어 민주당도 25∼28일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대선 후보로 확정짓는다. 이로써 11월 8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은 본격적인 막을 올리게 됐다. 미 역사상 최초의 ‘워싱턴 아웃사이더’ 대선 후보인 트럼프는 전대 마지막 날 후보 수락 연설을 위해 등장하던 관례를 깨고 첫날 메인 찬조 연사로 나선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46)를 소개하는 깜짝 이벤트를 연출했다. 멜라니아는 “트럼프는 미국을 발전시키고 안전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며 “남편은 해야 할 일을 반드시 성사시키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지지 연사로 나선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은 “미국인 대다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이 이끈) 현재의 미국을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이날 전대장에는 1996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이 모습을 보였을 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 당내 전직 대통령 및 대선 후보 대부분이 불참했다. 공화당은 이날 북한을 ‘김정은 일가의 노예국가(the Kim family‘s slave state)’로 규정한 새로운 정강정책을 확정했다. 정강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 등 트럼프의 그간 주장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클리블랜드=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박정훈 특파원}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시작된 18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전대장인 ‘퀴큰론스 아레나’를 홈구장으로 하는 지역 프로농구단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지난달 창단 후 첫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을 차지하면서 도시 전체에 일었던 축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조업으로 융성해 한때 ‘철의 도시’로 불렸던 클리블랜드 시 자체가 철과 장벽으로 겹겹이 쌓인 요새로 변한 상태였다. 21일 수락 연설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사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데 반대하는 폭력 시위와 흑인 소요 등을 우려해 경찰은 퀴큰론스 아레나를 중심으로 한 ‘전대 구역(2.73km²)’ 곳곳에 높이 2.4m의 검은 철조망과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한 콘크리트 차단벽을 설치했다. 총으로 중무장한 기마경찰과 오토바이순찰대 등 경찰 5000여 명에다 해안경비대와 주방위군까지 배치돼 출입객을 일일이 통제하고 있었다. 소요 진압에 배치된 경찰은 안면보호 장구를 착용한 채 거리 시위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전대장 일부 핵심 시설에는 폭탄을 탐지하는 로봇까지 동원해 만에 하나 설치됐을지 모르는 폭발물 등을 찾는 데 열을 올렸다. 전대장이 아닌 상점에 출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금속탐지기 검사가 실시됐다. 퀴큰론스 아레나에 대한 출입통제는 이중 삼중이었다. 백악관 비밀경호국(SS)과 공화당 전국위원회(RNC)가 발급한 최소 2개의 출입증이 있어야 접근이 가능했다. 1차로 철제 펜스 밖에서 현지 경찰이 출입증을 확인하고 2차로 철제 펜스 안의 임시검문소에서 SS 요원들이 폭발물 탐지견을 동원해 샅샅이 검문한 뒤에야 출입을 허가했다. 전대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은 아예 봉쇄됐다. 인근 상공조차 17일 오후부터 전대가 끝나는 21일까지 비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돼 비행기는 물론이고 드론(무인비행기) 비행까지 금지됐다. 그나마 전대장 상공에서 ‘힐러리를 감옥으로(Hillary for prison)’라는 문구를 달고 있는 비행선이 클리블랜드가 공화당 전당대회 개최지임을 짐작하게 했다. 하지만 총기 소지가 합법인 오하이오 주법에 따라 퀴큰론스 아레나 내부를 제외한 전대 구역 내에서는 총기 소유가 허용돼 전대장 주변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대형 유혈사태가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CNN은 “최근 잇따른 흑백 갈등에 17일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에서 흑인 예비역 군인의 경찰 저격 사건이 또 발생해 공화당 전당대회장에는 그야말로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고 전했다. 17일 오후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처음으로 전대장 주변에 몰려들었다. ‘셧다운 트럼프 & 공화당(Shut Down Trump & the RNC)’ 소속 시위대 150여 명은 이날 오후 4시 클리블랜드 시청 앞에 모여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무슬림의 생명도 중요하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물리적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지만 전대 기간 내내 벌어질 시위의 전초전으로 보였다. 더욱이 흑인 독립까지 추구하는 흑인 과격단체 ‘신(新)블랙팬더당’ 회원들은 총기를 휴대한 채 시위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경찰은 폭동 가능성에 대비해 지역 내 교도소 수감자들도 제3의 장소로 이감시킨 상태다.클리블랜드=박정훈 sunshade@donga.com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70)를 대선 후보로 선출하기 위한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18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개막되기 전날 흑인의 경찰관 총격 사건이 터지면서 미국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17일 오전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에서 흑인을 포함한 경찰관 3명을 저격해 숨지게 한 범인 개빈 유진 롱(29)은 텍사스 주 댈러스 저격범과 마찬가지로 해외에 파병됐던 미군 출신이다. 》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시작 전날인 17일 루이지애나 주 배턴루지에서 경찰관 3명을 살해한 흑인 개빈 유진 롱(29·사진)은 미주리 주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나 해병 하사관으로 복무하다 2010년 전역하기 전까지 이라크에 파병됐던 미군 출신이다. 롱이 이날 경찰을 저격한 AR-15 반자동 소총은 지난달 플로리다 주 올랜도 게이 클럽 총기 난사 사건에서도 사용됐던 모델이다. 롱은 당일 오전 9시경 배턴루지 동남부 올드 해먼드 에어플라자 쇼핑센터 인근 피트니스 센터와 주유소에서 검은 옷에 전투화를 착용하고 복면을 쓴 채 경찰관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롱은 댈러스 사건의 용의자 마이카 존슨처럼 매복한 채 경찰을 저격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경찰과의 교전은 8분간 이어졌고 롱은 결국 사살됐다. 로이터통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롱이 경찰들을 범행 장소로 유인하기 위해 긴급전화 911을 이용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숨진 경찰 3명 중 한 명은 흑인 경찰 몬트렐 잭슨(32)인 것으로 알려져 용의자가 인종을 가리지 않고 경찰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잭슨은 이달 8일 페이스북에 최근 잇따른 흑인의 경찰관 총격에 대한 고뇌를 토로하면서 “힘든 시간들이다. 증오가 당신의 마음에 전염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를”이란 감동적인 메시지를 올렸다. 병원에서 치료 중인 경찰관 1명도 위독한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롱은 배턴루지에서 CD를 팔던 흑인 남성인 올턴 스털링이 5일 경찰 진압 과정 도중 총에 맞아 사망한 데 격분해 자신의 29번째 생일을 맞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롱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배턴루지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 도시가 나를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희생자가 자신을 억압하는 자와 맞서 싸우는 모든 혁명은 피를 흘림으로써 성공했다”며 범행을 암시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슬람국가(IS) 등 테러세력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사건 직후 백악관에서 가진 긴급 연설에서 “경찰관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며 사회를 작동하도록 하는 법치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종이나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미국을 단합시킬 말과 행동에 집중하는 게 모두에게 중요하다”며 사회통합을 거듭 강조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한기재 기자}
터키의 쿠데타 사태에 가장 놀란 나라 중 하나는 미국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이라크, 시리아를 거점으로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을 수행하는 미국의 핵심 군사기지다. 터키가 쿠데타 후폭풍으로 혼란에 빠져들 경우 가뜩이나 해법을 못 찾고 있는 IS와의 전쟁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IS 거점지역에서 가까운 터키 남부 아다나 주 인지를리크 공군기지 사용 문제다. 터키 정부는 쿠데타 발생 직후 이 기지를 폐쇄하고 기지 사령관을 쿠데타 가담 혐의로 체포했다. 또 이곳에서 발진해 IS를 폭격하던 미 전투기의 기지 이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피터 쿡 국방부 대변인은 16일 성명을 내고 “인지를리크 기지에서 조속히 IS 격퇴 작전을 재개할 수 있도록 터키 측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지를리크는 미군과 군인 가족 2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터키 최대 공군기지로 나토 핵무기공유협정에 따라 미국의 핵폭탄 90여 기가 배치돼 있다. 미군은 인지를리크 공군기지에서 A-10, F-15 전투기 등을 운용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쿠데타 발생 직후인 16일 성명을 내고 “터키의 모든 당사자가 법치에 따라 행동하고 추가 폭력이나 불안정을 야기할 어떤 행동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이날 뉴욕에서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소개하는 자리에서 “터키의 불안정한 상황은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정책 실패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사드 레이더 전자파에 문제가 있다면 성주 참외를 내 아이들에게 먹이겠다.”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공화당 트렌트 프랭크스 하원 의원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경북 성주 배치 결정 후 일고 있는 전자파 유해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 하원 미사일방어 코커스(의원모임) 및 전자파 코커스 의장이기도 한 프랭크스 의원은 14일(이하 현지 시간) 방미 중인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사드 레이더는 인간이나 동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강도를 가진 전자파나 마이크로파를 방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백 의원이 전했다. 그는 이어 “사드 전자파는 농작물에도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전자파 밀도가 약하다”고 거듭 강조한 뒤 “한국이 직면한 위험은 사드 배치에 따른 게 아니라 북한 미사일이 남한을 타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육군은 사드의 레이더 전자파가 안전거리를 유지할 경우 인체와 환경에 유해하지 않다는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6일 보도했다. 미 육군 항공미사일방어사령부와 전략사령부가 지난해 6월 작성한 이 보고서는 사드 레이더가 5도 이상의 각도로 공중으로 향하기 때문에 전방 90도 축으로 안전거리 100m를 유지할 경우 전자파가 안전거리 밖의 사람과 주변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적시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사드 레이더 전자파에 문제가 있다면 성주 참외를 내 아이들에게 먹이겠다.”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공화당 트렌트 프랭크스(사진 오른쪽) 하원의원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경북 성주 배치 결정 후 일고 있는 전자파 유해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 하원 미사일방어 코커스(의원모임) 및 전자파 코커스 의장이기도 한 프랭크스 의원은 14일(이하 현지시간) 방미 중인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백승주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사드 레이더는 인간이나 동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의 강도를 가진 전자파나 마이크로파를 방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백 의원이 전했다. 그는 이어 “사드 전자파는 농작물에도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전자파 밀도가 약하다”고 거듭 강조한 뒤 “한국이 직면한 위험은 사드 배치에 따른 게 아니라 북한 미사일이 남한을 타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 육군은 사드의 레이더 전자파가 안전거리를 유지할 경우 인체와 환경에 유해하지 않다는 환경영향평가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6일 보도했다. 미 육군 항공미사일방어사령부와 전략사령부가 지난해 6월 작성한 이 보고서는 사드 레이더가 5도 이상의 각도로 공중으로 향하기 때문에 전방 90도 축으로 안전거리 100m를 유지할 경우 전자파가 안전거리 밖의 사람과 주변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적시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14일(현지 시간) 부통령 후보로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57·사진)를 지명했다. CNN 등에 따르면 아일랜드계 이민자 후손인 펜스 주지사는 2001년부터 인디애나의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2012년 인디애나 주지사에 당선됐다. 공화당 내 대표적인 ‘보수 원칙론자’로 통하는 그는 하원의원 시절 동성결혼금지법을 공동 발의했다. 2008년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됐을 정도로 보수 진영에서는 입지가 튼튼하다. 의회 전문지 ‘더 힐’은 “펜스 주지사가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와 공화당 당료 및 보수 진영 인사들과의 관계를 강화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트럼프가 성향이 비슷한 ‘펜스 카드’로는 지지층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CNN은 “트럼프와 펜스의 조합은 ‘오른쪽 날개 2개로 나는 애국적인 독수리’와 같다”고 평가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14일(이하 현지시간) 부통령 후보로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57)를 지명했다. CNN 등에 따르면 아일랜드계 이민자 후손인 펜스 주지사는 2001년부터 인디애나의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2012년 인디애나 주지사에 당선됐다. 공화당 내 대표적인 ‘보수 원칙론자’로 통하는 그는 하원의원 시절 동성결혼금지법을 공동 발의했고, 성 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직무 차별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2008년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됐을 정도로 보수 진영에서는 입지가 튼튼하다. 의회전문지 ‘더 힐’은 “펜스 주지사가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와 공화당 당료 및 보수 진영 인사들과의 관계를 강화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트럼프가 성향이 비슷한 ‘펜스 카드’로는 지지층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CNN은 “트럼프와 펜스의 조합은 ‘오른쪽 날개 2개로 나는 애국적인 독수리’와 같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에 따른 후폭풍을 논의하기 위해 14일 긴급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장. 박근혜 대통령의 자리 옆엔 ‘북한 탄도미사일 방어 개념도’가 놓여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금은 사드 배치와 관련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며 강한 어조로 정쟁 중단을 요구한 뒤 지도를 짚어 가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 참석을 위해 이날 몽골로 출국하기에 앞서 사드 관련 갈등 확산을 막고 국론 결집을 호소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 직접 나선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은 NSC 회의를 주재하면서 “수도권을 공격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비행 고도가 낮고 비행시간이 짧기 때문에 사드보다는 패트리엇 미사일이 가장 적합한 대응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어 개념도를 가리키며 “(지금은) 패트리엇만으로 주요 공항 등 핵심시설 위주로 방어하고 있어서 국민의 안전 확보가 안 되는 지역이 많다”며 “사드가 성주 기지에 배치되면 중부 이남 대부분을 방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을 향해서는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여야 지도부를 포함해서 의원들의 관심과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면서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한 협력을 구할 것”이라고 했다. 사드 배치를 논의하는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여론의 지적에는 “위중한 사안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며 몸을 낮췄다. 박 대통령은 사드 레이더 전자파 유해 논란에 대해서도 “레이더는 마을보다 400m 높은 곳에 위치하고 그곳에서도 5도 각도 위로 발사가 되기 때문에 지상 약 700m 위로 전자파가 지나가게 된다”며 “그 아래 지역은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는, 오히려 우려한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안전한 지역”이라고 역설했다. 또 “국가 안보를 위해 지역을 할애해 준 (성주) 주민들에게 보답해야 한다”며 보상책을 내놓을 것임을 시사했다. ○ 선제적 설명과 설득은 왜 못 하나 박 대통령까지 설득에 나섰지만 안보 당국이 사드 문제를 결정하고 이를 설명해 온 방식에 문제가 적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보 부처의 중견 공무원은 “마치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전격 합의하고 ‘결정됐으니 받아들이라’고 한 방식과 닮았다”고 말했다. 당사자를 사전에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는 점도 위안부 해결 과정과 비슷하다. 올 초 북한의 4차 핵실험(1월 6일) 이후 정부가 ‘대북 압박외교’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을 때 사드 도입은 기정사실화됐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날 ‘사드 배치 논의 공식화’를 발표했고, 지난달 22일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자 이달 8일 ‘사드 한반도 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지난 2년 동안 ‘3No(요청도, 협의도, 결론도 없었다)’라는 말로 시간을 끌던 한미 당국은 5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배치 장소까지 결정했다. ‘3No=낮은 사드 도입 가능성’이라고 인식했던 여론이 끓고 있는 이유다. ○ 주변국 설득도 문제 주변국 설득도 아쉬운 대목이다. 지난달 26∼30일 닷새간 중국을 공식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으로부터 ‘사드 반대’ 얘기를 듣고도 이렇다 할 대응이나 설명을 하지 못했다. 6월 말 사드에 대한 정부 방침이 확정된 만큼 황 총리가 직접 시 주석에게 설명하거나 차라리 방중을 미루는 게 나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 총리는 13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사드 포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 뒤 추가 배치 여부에 대해선 “예산 측면도 있고 미국과도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존 브레넌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3일(현지 시간) 한반도 내 사드 배치에 대해 “미국의 의무”라고 밝혔다. 그는 한 토론회에서 “미국은 지역에서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14일 몽골에 도착해 ASEM 및 몽골 공식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 측 참석자인 리커창(李克强) 총리와의 양자회담 계획은 없다고 청와대는 밝혔다.조숭호 shcho@donga.com·장택동 기자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미국이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서 촉발된 글로벌 무역전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카드로 해석된다. 미중 간 무역전쟁의 전초전은 이미 곳곳에서 치러졌다. 미국은 5월 중국산 냉연강판에 무려 500% 이상의 관세를 물렸다. 4월에는 중국 일본 독일 대만 등을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으로 발표하며 중국에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이 이보다 더한 WTO 제소까지하고 나선 것은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12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해 중국 입지가 크게 좁아졌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세계의 여론이 악화될 때 내친김에 무역 공격까지 가해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무역전쟁에서는 세계적인 경기 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보호무역’으로 해결하겠다는 속셈이 엿보인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가 13일 발표한 ‘세계무역경보(GTA)’에 따르면 국제교역량은 2015년 1월부터 1년 반이 넘게 정체됐다. 사이먼 에버넷 스위스 장크트갈렌대 교수는 “국제교역이 이렇게 장기간 늘지 않은 건 경제사에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게다가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로 세계 무역 판도가 재편될 상황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통상질서로 이끌기 위해 각국을 통제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에 우호적인 영국이 EU에서 분리되면 미국이 유럽을 자국의 이익에 맞게 활용하기가 힘들어진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국제 통상질서가 복잡하게 변해 미국에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각국의 환율전쟁 움직임도 거세다. 브렉시트로 엔화 가치 강세에 고전하던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2일 일본을 방문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게 “일본의 디플레이션 탈출을 촉진하겠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재정 정책과 함께 통화 정책으로 엔화 가치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장기적으로 수출량을 떠받치기 위해 위안화 절하를 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브렉시트 진원지인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은 14일 사상 최저인 0.5% 기준금리를 유지키로 발표했으나 다음 달에는 기준금리를 내릴 것을 예고했다. 미중 간엔 유례없는 특허전쟁도 격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 휴대전화 회사인 화웨이(華爲)는 이달 초 미국 텍사스 주에서 미국 통신사 T모바일을 상대로 이동통신기술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중국 휴대전화업체 바이리(伯利)는 중국 내에서 미국 애플사의 아이폰이 설계를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닝링 왕 헨더슨 패러보 개릿&더너의 파트너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다른 기업들도 특허 공격에 가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 국제회의에서 보호주의 자제를 거듭 요구하고 무역 및 금융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둘러싼 미중 간의 안보 갈등이 무역전쟁으로 확산됐다. 주요 2개국(G2)이 무역전쟁에 적극 나서고 각국의 환율전쟁에 특허전쟁까지 겹쳐 글로벌 ‘보호주의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정부는 13일(현지 시간) 원자재를 수출할 때 부당한 관세를 매긴다는 이유로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성명을 내고 “구리와 납 등 9가지 원자재를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부과하던 5∼20%의 관세를 2001년 WTO 가입 이후 없애야 하는데 중국은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중국을 상대로 이뤄진 13번째 WTO 제소다. 미국은 전날 중국산 스테인리스 철강재 일부에 대해 중국이 57.3∼193.12%의 보조금을 지급했다며 상계관세 부과 예비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중국 상무부는 14일 성명에서 “미국이 이 같은 요구를 제출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세계 주요국들의 환율전쟁과 특허전쟁 움직임도 일어나는 등 세계 보호무역주의가 공고해지고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으로 미국 중심의 통상 질서가 불안해지자 상대국을 단속하고 있어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12일 오후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시 모턴 H 마이어슨 심포니센터. 이달 7일 흑인 용의자의 저격으로 사망한 백인 경찰관 5명의 추도식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임자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내외가 나란히 섰다. 9·11테러 이후 최악의 경찰 참사로 불리는 국가적 비극에 인종과 정치적 이념이 다른 전현직 대통령이 손잡는 장면을 선보인 것이다. CNN 등 미 언론을 통해 생중계된 이날 행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사망한 경찰관들의 영정 사진이 놓인 의자 옆에 마련된 연단에 올라 30여 분 동안 사회 통합을 강조했다.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지만 흑백 갈등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현실에 오바마 대통령은 다소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특유의 감성 어린 목소리로 “미국은 보기만큼 그렇게 분열돼 있지 않다”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자고 역설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분열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최근에 더 악화돼 왔다”며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절망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그동안 불가능에 맞서 얼마나 진전해 왔는가”라고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된 경찰 5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제복을 입는 순간부터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지만 당신들은 신성한 의무를 다해왔다”고 애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밤 늦게까지 성경을 찾아가며 연설문 대부분을 직접 썼다고 백악관은 전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인 텍사스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우리는 결코 피와 출신 배경으로 묶인 적이 없다. 정신과 이상에 관한 약속으로 맺어져 왔다”며 단합을 강조했다. 연설 후 성가대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군가인 ‘공화국 전승가’를 부르자 오바마와 부시 부부는 일어나 일부 소절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부시 전 대통령은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해 다소 신이 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포착돼 소셜미디어에선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중국의 완패를 선언한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의 12일(현지 시간) 남중국해 판결 이후 미국과 중국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사실상 미중 대리전 성격을 띤 이번 재판에서 참패한 중국은 판결 자체가 무효라고 반발했고, 미국은 ‘법의 지배’를 받아들이라고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중국 정부는 급기야 ‘남중국해 방공식별구역(ADIZ) 선포’까지 언급했다. 중국이 국제법적으로 영유권을 인정받지 못한 남중국해에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할 경우엔 미중 간 군사충돌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남중국해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이익이 걸린 남중국해에 눈을 감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이날 오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CSIS 특별좌담회에서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시작하면서 분란이 시작됐다. 미 정부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이 분쟁의 시작”이라며 미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베이징(北京)에선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나서 남중국해 ADIZ 선포 가능성을 흘리며 으름장을 놨다. 류 부부장은 “중국은 이미 동중국해 상공에 ADIZ를 설정한 바 있다. 만약 우리 안보가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그런 구역을 설정할 권한이 있다”고 밝혔다. PCA 판결에 불만을 품은 중국 해커들은 PCA 웹사이트와 필리핀 정부 당국의 웹사이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둥팡(東方)일보는 13일 “전날 오전 11시(네덜란드 시간)부터 오후까지 해외에서 PCA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Error 403’이란 표시가 뜬 채 접속되지 않았다”며 중국 해커의 공격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중국 해커들의 공격을 받은 일부 필리핀 정부 당국의 사이트도 마비됐거나 접속되더라도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뜨고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 흘러나왔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조지프 필 전 주한 미8군사령관은 2013년 이임한 뒤 돌연 중장에서 소장으로 강등 전역했다. 노장의 ‘불명예 제대’ 이유는 한국 지인들에게서 기념으로 받은 선물을 정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시아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낮은 싱가포르는 부패방지법 제정 8년 전인 1952년부터 검찰과 독립된 부패행위조사국(CPIB)을 만들어 엄격한 반(反)부패 정책을 펴왔다. 이처럼 세계 선진국들은 공직자의 부패 행위를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 해악으로 보고 강력히 대처하고 있다. 필 전 사령관은 1500달러(약 166만 원)짜리 도금한 몽블랑 펜 세트와 2000달러(약 222만 원) 상당의 가죽가방을 선물로 받았고 가족 중 한 명도 한국인에게서 현금 3000달러(약 333만 원)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위반한 법은 1962년에 제정된 ‘뇌물 및 이해충돌 방지법’이다. 공직자의 청렴을 기본 원칙으로 삼은 이 법에 따라 공직자가 정부 급여 이외의 금품을 받으면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징역 1∼5년 또는 벌금형으로 처벌받는다. 공무원과 가족은 한 번에 20달러(2만3000원), 연간 50달러 이하 선물만 받을 수 있고 범위를 벗어나면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이 때문에 워싱턴 주요 부처와 관공서 주변 식당들의 점심 메뉴는 20달러 이하가 대부분이다. 상원 인근에 있는 유명 식당 ‘모너클’의 경우 쇠고기 샐러드가 18달러 선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유명 정치인들이 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정부부처 건물에는 카페테리아 등 구내식당이 잘 차려져 있다. 싱가포르 CPIB는 부패 행위 수사에 민관을 가리지 않는다. 민관 유착 사건이 부패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사 대상은 공무원, 국회의원, 공공단체 구성원, 신탁관리자, 공기업 직원, 법인, 공공단체 수탁기관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 등으로 매우 포괄적이다. 공무원의 경우 별도 행동강령까지 제시해 가장 강하게 규제한다. 뇌물을 받지 않았더라도 받을 의도를 드러냈다면 범죄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 돈과 선물뿐만이 아니라 대출, 일자리 제공, 식사 또는 여행, 향응의 제공은 물론이고 성 접대까지 뇌물에 포함된다. 뇌물을 받거나 제공한 경우 10만 싱가포르달러(약 8500만 원) 이하의 벌금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뇌물은 전부 국가에 반환된다. 반환이 불가능할 경우엔 징역형이 추가된다. 프랑스도 공무원법 윤리규정을 통해 ‘공무원은 관례적이거나 저렴한 가격 이상의 선물이나 접대 표시, 다른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되며 이런 것을 받았을 때는 제공자에게 돌려주거나 국가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 외에 민간인인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특정해 법으로 규제하는 선진국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 일본 언론인은 “한국의 김영란법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법률 대신 자체 윤리강령으로 사학 교원 및 언론인들의 청렴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들은 자체 ‘기자 행동기준’에 따라 취재원에게서 취재 자료나 통상의 기념품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김윤수 기자}

“이른바 미국 정부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이 분란을 만들어낸 것 아닙니까?” 12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2층 대회의실. 이날 오전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의 남중국해 판결을 계기로 급히 마련된 ‘중국의 반응’ 특별좌담회에 참석한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연단에 서자마자 웃음기 없는 얼굴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시내 한복판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외교정책에 대해 직격탄을 날리자 미중 관계자 500여 명이 가득 들어찬 대회의실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일부 미국 관계자는 나지막이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중국 관계자들은 연신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고 연설을 지켜봤다. 추이 대사는 “미국이 평화를 원한다며 남중국해에서 벌이고 있는 ‘항행의 자유’ 작전 때문에 분쟁과 갈등이 시작됐다”며 “미국이 군사력을 투입할 곳은 남중국해가 아니라 이라크나 시리아 같은 곳”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이 영유권을 갖고 있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엉뚱하게 군사력을 쏟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남중국해 영유권 이슈는 미중 간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문제”라며 “이번 판결이 중재 절차의 악용 가능성을 열었고 힘이 곧 권리임을 대놓고 선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협상과 협의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도 했다. 이번 재판의 원고인 필리핀은 물론이고 또 다른 영유권 분쟁 대상국인 베트남 등과는 추후 대화로 문제를 풀어갈 수도 있으니 미국은 이제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앞서 이날 오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영유권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방침을 명확히 했다. 그는 “미국은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남중국해에 최고의 국가 이익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해왔다”며 “미국은 수십 년 동안 태평양의 중심 세력이었고, 우리의 리더십을 원하는 지역 내 국가들의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해상 교역량의 40%를 차지하고 석유, 천연가스 등 막대한 지하자원이 매장된 남중국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것처럼 역내 개입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남중국해의 긴장을 조성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며 “모든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을 평화롭고 적절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 정부의 고위 당국자도 이날 익명으로 가진 콘퍼런스 콜(전화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이 판결이 대화와 합의의 기반이 되도록 관련 당사국들을 독려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적극 개입할 뜻을 분명히 했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공화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중국은 국제법과 규범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강압의 길을 추구할 것인지 선택에 직면했다”며 의회 차원에서도 초당적으로 중국을 압박할 것임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강제력이나 법적 구속력은 약하지만 중국에 상당한 외교적 압박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매사추세츠공대(MIT) 테일러 프레블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역사적 연원을 들어 남중국해에서 주장해 온 ‘9단선(九段線)’의 법적 타당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촉발된 미중 간의 신(新)냉전 구도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굴욕적인 결과가 나온 만큼 중국의 분노가 이제 미국을 향할 것”이라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남중국해에 새로운 긴장과 대립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공화당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자유무역 기조를 상당 부분 포기하고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70)의 보호무역 정책을 정강에 대거 포함했다. 민주당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주장을 반영해 기존 무역협정에 대한 재검토와 환율조작국에 대한 응징을 담은 정강을 마련함에 따라 11월 대선에서 누가 이기더라도 미국 무역정책은 보호무역 기조로 급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과의 통상 마찰도 불가피해 보인다. CNN에 따르면 공화당은 11일 트럼프의 핵심 노선인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무역협정 협상이 필요하며 상대국이 공정무역을 위반할 경우 대항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뼈대로 한 새 정강 초안을 마련했다. 공화당은 18일부터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정강을 확정한다. 공화당이 마련한 A4 용지 58쪽 분량의 정강 초안은 트럼프의 경제공약을 대거 담았다. CNN은 “공화당이 2012년 대선에서 마련한 정강에 비해 가장 큰 변화는 무역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를 거쳐 조지 부시 행정부에 이르러 완성된 공화당의 자유무역 이념이 확연히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로 바뀌게 됐다”고 지적했다. 초안에는 트럼프의 주장을 직접 인용해 “미국을 우선에 놓고(put America first) 무역정책들을 더욱 잘 협상할 필요가 있다”는 문구가 실렸다. 또 “기존의 무역협정에서 탈퇴하려고 해야만 협상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며 “공화당 대통령은 무역에서 동등을 주장할 것이며 다른 국가들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대항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내용도 담았다. 트럼프의 대선공약을 사실상 거의 수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중산층 이하 백인 노동자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정책을 급선회한 것이다. “상대방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협상력이 높아진다”는 트럼프의 평소 주장과도 맥이 닿아 있다.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미국이 체결한 모든 무역협정의 재검토와 폐기를 주장했다. 공화당은 2012년 정강에서 적극 추진을 명시했고 지금까지 찬성해 오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는 트럼프의 반대 견해를 반영해 추진 여부를 명시하지 않았다. 또 트럼프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도 포함시켰다. 초안은 “최우선 순위로 멕시코와의 국경 전체에 장벽을 설치한다. 차량은 물론이고 사람의 통행도 막을 정도로 충분히 높아야 한다”고 적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대선의 향배를 좌우할 주요 경합 주에서 트럼프의 장벽 설치 공약에 부정적인 히스패닉 유권자 수가 사상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이날 보도했다. 대표적인 경합주인 콜로라도 플로리다 네바다 등에서 유권자 등록을 한 히스패닉 수가 크게 늘어 해당 주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히스패닉 유권자단체인 ‘파밀리아 보타’는 콜로라도를 포함한 6개 주에서 올해 히스패닉 12만 명이 유권자 등록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4년 전 대선 때보다 3만 명 늘어난 것이라고 WSJ는 전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