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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고종과 명성황후를 조종했던 무당 진령군(眞靈君)이 있었다.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당시의 세태를 기록하다 끝내 나라가 망하자 자살했던, 학자이자 우국지사 황현(1855∼1910)이 지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 등장하는 기록이다. “무당은 아무 때나 대궐에 나아가 임금(고종)과 중전(명성황후)을 뵈었으며… 금은보화를 상으로 주니 이루 셀 수 없이 많았다. 화와 복이 그의 말 한마디에 달렸으니, 수령 방백들이 자주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에 부끄러운 줄 모르는 대신들이 앞다투어 그에게 아부하니, 혹은 자매라 부르기도 했고 혹은 수양아들이 되기를 원하기도 했다.”(‘매천야록’·허경진 옮김·서해문집) 이 무당은 1882년 구식 군대의 군인들이 신식 군대와의 차별대우에 반발해 일으킨 임오군란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중전이 충주로 피란 가 있을 때 이 무당이 찾아가 환궁할 때를 점쳐 주었는데 들어맞자 신기하게 여겨 궁으로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이후 중전의 몸이 좋지 않을 때면 무당을 찾았고 날마다 총애가 더해지니 무당의 말이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 마침내 무당이 “나는 관성제군(關聖帝君·삼국지 속 관우를 신격화한 존재)의 딸이니 신당을 지어 정성껏 받들라”고 말하니 중전이 그 말대로 따랐다고 한다. 이런 진령군에게 접근한 사람 중에 이유인이라는 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진령군에게 자신이 귀신을 불러낼 수 있다며 산으로 데리고 갔다. 한밤중 산속에 미리 짜고 귀신 가면을 쓴 불량배들을 배치한 뒤 자신이 귀신을 부르면 나타나게 했다. 이에 속은 진령군은 이유인을 고종과 중전에게 아뢰었고 이유인은 벼슬을 얻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사실이었을까. 지방에 은거하던 황현이 직접 보고 확인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황현이 이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으니 당시에 이런 내용이 세간에 돌았던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진령군은 최근 사람들 사이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한국의 ‘최순실 사태’를 보도하는 해외 언론에도 주술적인 표현이 등장했다.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에게 은밀한 조언을 한 인물(shadowy adviser)이 야당으로부터 ‘무당 점쟁이(Shaman Fortuneteller)’로 비난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을 부채질한 요승 라스푸틴을 거론한 해외 언론들도 있었다. 진령군이든 라스푸틴이든 정권의 은밀한 장막에 숨어 있다 드러났으며 그 존재가 드러났을 때는 이미 그 정권의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주술적 표현과 요승의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최근의 사태가 너무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차라리 기이한 힘이 작동해서 생겨난 결과라고 믿고 싶어 나타난 현상은 아닐까. 그러나 최 씨가 문화체육관광부와 각종 관계 기관에 영향을 끼친 힘의 속성이 주술적인 것일 리가 없다. 그것은 권력의 칼날을 언뜻언뜻 보여주며 행사한 매우 물리적인 폭력에 가깝다. 이런 권력의 힘 앞에서 정부 관료들은 굴종했다. 100여 년 전 매천야록 속 대신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원칙을 지켜야 할 관료들이 권력 앞의 굴종을 자신의 안일과 출세를 위한 처세술쯤으로 여길 때 민초들을 짓누른 삶의 하중은 가중돼 왔다. 최 씨가 ‘공정성’을 상징으로 하는 스포츠 쪽에서 농단한 것은 역설적이다. 문체부는 스포츠 분야야말로 사회의 공정한 경쟁을 상징하는 영역이라는 인식 아래 스포츠 비리를 없애고자 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현 정권 들어서 유달리 많이 시도했던 그 수많은 체육단체에 대한 감사와 조사마저도 그 저의를 의심받고 있다. 믿음이 사라지고 남은 의심과 분노가 쌓여 절망을 이룬다. 국민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분노와 절망의 굿판을 걷어치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한국 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였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 신화를 이루었던 거스 히딩크에 이어 본선에서 연달아 네덜란드 출신 감독을 기용했다. 독일 월드컵에서 만난 네덜란드 기자로부터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를 비교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낳은 11명의 명감독을 분석한 책의 저자였던 코번 기자는 히딩크에 대해 ‘피플 매니저(People Manager)’라는 표현을 썼다. 한마디로 사람을 아주 잘 다룬다는 것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해서는 ‘전술 운용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했다. 누가 더 나은 감독이냐는 질문에 “역대 최고 감독은 요한 크라위프, 현재 최고 감독은 히딩크”라고 했다. 당시 히딩크는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루어낸 데 이어 호주 대표팀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0년 전 독일 월드컵 당시 들었던 네덜란드 기자의 이야기를 떠올린 건 최근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을 읽어 본 뒤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원칙 없는 선수 선발로 ‘의리 축구’ 논란을 빚었던 홍 감독은 이 논문에서 “팀을 새롭게 정비하고 본인이 원하는 방식을 체득시키기에는 그 기간이 촉박했고 때문에 과거에 나와 호흡을 맞췄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고참급 선수가 필요했던 것이 그 당시 상황이었다”고 적었다. 히딩크 감독이 최고 감독의 반열에 올랐던 것은 선수의 심리를 꿰뚫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분명한 비전과 신념을 지녔지만 권위를 앞세워 선수들에게 접근하지 않았고 선수 개개인에 대한 배려 및 지적 자극을 통해 선수들을 분발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많은 감독이 히딩크처럼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려면 선수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시간이 촉박했던 홍 감독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리려 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는 축구를 떠난 분야에서도 조직의 리더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자신이 잘 알고,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낯선 인물을 핵심 보직에 앉히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소속팀에서 활약이 미미한 선수는 뽑지 않는다는 원칙을 무너뜨리고 자신이 믿는 선수 위주로 뽑은 뒤의 부작용은 컸다. 홍 감독의 실패에는 분명히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이 있다. 이 점이 그의 논문이 지니는 유효한 점일 것이다. 그러나 홍 감독의 자성 어린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함께 거론되어야 할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질 월드컵 실패 요인을 분석할 때면 으레 홍 감독의 편파적 선수 선발이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감독 개인에게만 지울 수 있는가.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면 감독 교체 카드로 위기를 돌파하곤 했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대증요법일 뿐이다. 브라질 월드컵 실패 요인과 관련해서도 홍 감독의 ‘의리 축구’ 논란뿐만 아니라 감독 선임의 중장기 과정, 유소년 축구를 비롯한 전반적인 축구 인프라의 개선, 프로축구의 질적인 발전 등 복합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함께 논의했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홍 감독 개인에 대한 비판에 가려 적극적으로 거론되지 않은 느낌이 있다. 한국은 다시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있다. 성적이 좋지 않다면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비판도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감독에 대한 비판에 앞서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히딩크 같은 명감독을 모셔오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은 축구 발전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다.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통합대한체육회장의 시급한 과제는 기존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화학적 결합 및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등을 둘러싼 정부와 통합대한체육회 간의 체육 정책 노선 조정이다. 두 단체는 통합됐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상당한 갈등을 빚고 있다. 두 단체가 통합되면서 직급과 연봉 체계, 중복 업무 분담 등을 둘러싸고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두 단체 출신 직원들은 각각 별도의 노동조합을 구성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KOC 분리를 둘러싼 문제가 있다. 각국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국가별로 올림픽 관련 업무를 하는 단체로 인정하는 조직(NOC)이 있다. 각 NOC는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고 있다. KOC는 한국의 NOC이며 현재는 대한체육회에 속해 있다. 정부는 통합대한체육회 출범 이전부터 대한체육회로부터 KOC를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측은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해 왔다. KOC 분리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새 단체에서 KOC가 분리되지 않으면 올림픽 메달 성적 등에 치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엘리트 체육 위주의 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신임 회장을 비롯한 기존 대한체육회 멤버들 사이에서는 “새 단체에서 KOC가 분리될 경우 국가대표 선수 육성과 선발이 이원화돼 혼란을 초래한다”며 KOC 분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들은 정부가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는 KOC를 떼어내 통합체육회를 쉽게 관리하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는 향후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을 둘러싼 체육 정책 노선의 갈등 요인이기도 하다. 신임 이 회장과 정부 간에 상당한 조정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내년부터 프로스포츠 부정행위를 일으킨 선수나 심판 등에 대해 단체 또는 구단 차원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프로스포츠 부정행위 신고 포상금은 최대 2억 원으로 늘어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골프 등 5개 프로 종목 8개 관련 단체는 29일 프로스포츠 분야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번 개선안은 부정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먼저 한국프로스포츠협회 내에 프로스포츠부정방지위원회를 신설해 승부 조작, 불법 스포츠도박 등을 집중 관리하도록 했다. 기존에 해당 종목 단체별로 운영했던 부정행위 신고센터도 부정방지위원회 내로 통합 운영된다. 부정방지위원회는 독립적 상벌 기구인 특별상벌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했다. 특별상벌위원회는 종목별로 해당 종목 관계자 3명 및 외부 인사 6명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부정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해당 프로스포츠 단체에서 1심, 특별상벌위원회에서 2심을 통해 제재 강도를 최종 결정한다. 제 식구 감싸기로 제재 수위가 낮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부정행위가 발생했을 경우 구단에는 관리 책임을 물어 승점 삭감 및 선수 영입 제한 등의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부정행위를 한 개인에 대해서는 단체 또는 구단 차원에서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상의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아버지한테 맞기도 했지만 도박을 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A 군(17)은 그동안 도박으로 600만 원가량을 잃었다. 중학생이던 15세 때 선배의 권유로 온라인 도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홀짝을 맞히는 온라인 사다리게임, 불법 스포츠 도박, 온라인 카지노 등을 했다. 일주일에 6일 정도 도박을 했고, 금액은 평균 10만 원이었다. 주변에서 돈을 빌려 도박을 하다 100만 원이 넘는 빚이 생기자 부모가 이를 갚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돈이 필요해지자 주변의 물건을 훔쳤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기로 하고 돈만 받고 물건을 주지 않는 등 사기 행위도 저질렀다. 결국 치료를 위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찾게 되었다. 17일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와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지정한 도박중독 추방의 날이었지만 연휴 분위기에 가려진 면이 없지 않다. 최근 우려되는 것은 10대들의 도박이다. 접근이 용이한 모바일 등을 이용해 청소년 도박이 늘어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동안 정책적으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본보가 불법 스포츠 도박의 세계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사설 사이트 운영 관계자 A 씨는 “남자 고교생 중 3분의 2는 스포츠 베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공식 실태조사 결과만으로도 청소년들의 도박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에야 전국 규모의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전국의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2학년 1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1.1%에 해당하는 학생이 문제 수준에, 4%의 학생이 위험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도박문제관리센터는 전국의 학생 2만9000여 명이 문제 수준, 11만여 명이 위험 수준의 도박 문제를 안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 수준은 지난 3개월간 반복적인 도박 경험이 있으며 심각한 정도의 자기 조절 실패를 겪었고, 그에 따른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폐해 역시 심각한 상태를 말한다. 위험 수준은 지난 3개월간 도박을 한 경험이 있으며 자기 조절 실패에 따른 심리 사회 경제적 폐해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박을 해 본 청소년의 비율은 도박을 해 본 성인의 약 3분의 1 수준이지만 도박중독 문제가 나타나는 비율은 비슷하다. 일단 도박에 발을 들이면 청소년들이 더 쉽게 중독된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주로 하는 사다리게임과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함께 운영하는 사이트도 늘고 있다. 한 사이트에 들어가 두 가지 게임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과 스마트폰 환경을 자랑하는 한국은 그만큼 청소년들의 도박 방지에 취약하다. 정부는 그동안 불법 도박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사감위와 경찰 등이 불법 도박 근절을 위한 특별사법경찰권 제도 도입 등 수사 권한과 조직 개편 등을 놓고 갑론을박해 왔다. 그 사이 정부의 대책이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명백하다. 지난해 불법 도박 규모는 총 83조8000억 원으로 2011년의 75조1000억 원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 도박 문제는 커졌고 그 폐해는 청소년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 요행수를 바라는 도박은 성실함과 노력을 등한히 하게 만든다. 잘못된 가치관은 결국 개인을 파탄으로 몰고 가고 사회를 흔든다. 미래의 기둥인 10대들의 도박을 방치할 경우 국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정부는 10대 도박 문제를 포함해 불법 도박 대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전 축구국가대표 최성국 등을 협박해 국내 프로축구 사상 최대 파문을 일으켰던 2010년 프로축구 승부 조작 사건의 주범이 이에 앞서 국내 축구단을 인수해 승부 조작에 이용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사설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던 A 씨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성국의 승부 조작 사건을 일으켰던 브로커 J 씨와 중국인 H 씨가 한국 프로축구 N리그 소속 S구단을 인수해 승부 조작으로 돈을 벌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투자를 권유했었다”고 말했다. A 씨는 또 “당시 J 씨가 S구단 선수들에게 급여를 지급하고 승부 조작을 지시했다고 말했다”며 “J 씨는 H 씨와 함께 중국에 있는 베팅 사이트에서 경기 결과를 놓고 베팅을 해 큰돈을 벌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N리그는 국내 프로축구 3부 리그에 해당하는 리그로 S구단은 2010년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N리그에서 퇴출됐다. 이에 대해 2009년 S구단의 단장 겸 감독이었던 최모 씨는 “실제 구단 인수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J 씨가 여러 차례 구단 인수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H 씨와 J 씨는 이어 2010년 중국인 W 씨 등과 함께 당시 상무 소속이었던 최성국에게 성남 일화와의 경기에서 패할 것을 지시했지만 무승부가 되자 최성국을 찾아가 “자살골이라도 넣으라”고 협박해 결국 다음 경기에서 상무가 0-2로 패하도록 승부를 조작했다. 중국 자금이 한국의 승부 조작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최근 스포츠도박 사이트들이 중국에 서버를 두고 활동하면서 이들과 중국 자금의 결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또한 승부 조작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스포츠도박단에 관여하고 있는 B 씨는 “요즘에는 전문직, 연예인 등이 전주 노릇을 하는데 이들은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마치 주식 매매를 대신하는 펀드 매니저를 고용하는 것처럼 도박사들에게 5억∼10억 원을 맡기고 뒤에서 수익을 얻는다”며 “전주들이 직접 선수들에게 협박까지 했던 몇 년 전과는 180도 다르다”고 전했다. 유재영 elegant@donga.com·이원홍 기자}

《 승부 조작과 관련돼 영구 제명당한 스타플레이어는 한두 명이 아니다. 26일엔 프로야구 NC 투수 이태양이 승부 조작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명예는 물론이고 선수 생명까지 끝날 수 있는 승부 조작은 불법 스포츠도박과 연결돼 있다. 승부 조작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두고 불법인 사설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던 A 씨, 10년 이상 사설 스포츠베팅 사이트를 운영하며 본인이 직접 베팅을 하고 있는 B 씨, 사설 스포츠베팅 사이트를 운영하다 실형을 살았던 C 씨를 만났다. 이들은 승부 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의 세계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 ○ 전주(錢主), 브로커, 그리고 승부 조작 이들은 수익률을 높이려는 불법 베팅사이트 운영 조직들과 높은 배당을 받으려는 고객들이 결탁해 승부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조직은 점점 기업화하고 있다. B 씨는 “이른바 베팅에 돈을 대는 전주, 전주로부터 억대 돈을 받아 여러 사이트에서 베팅을 전문으로 하는 ‘도박사(베터)’들, 그리고 도박사들이 고용하는 선수 출신 전문 브로커가 모기업과 계열사처럼 한줄기를 이뤄 승부 조작에 개입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B 씨에 따르면, 전주가 승부 조작 전면에 나섰던 과거와는 다르게 전주가 도박사를 고용한 뒤 도박사가 다시 승부 조작 대상을 물색하는 브로커를 고용하는 이중 고용 구조가 업계에 정착됐다. B 씨는 “도박사들 옆에 브로커들이 기생하듯 붙어 있다. 브로커 개인이 스포츠 에이전트처럼 활동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업체를 만들어 4, 5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고 말했다. 선수들과 직접 인연이 닿는 브로커들은 승부 조작을 성사시키는 일과 동시에 선수들의 구체적인 일과와 정보를 파악해 다른 베터들에게 팔기도 한다. 이 수익이 전주에게 가는 경우도 있고 브로커와 전주, 도박사가 나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B 씨는 “가격이 대폭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주식 정보는 아무나 받을 수 없듯이 이 업계에서도 선수의 ‘은밀한’ 일상에 관한 정보나 승부 조작 정보가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된다. 브로커에게서 여러 단계를 거쳐 나온 승부 조작 정보라도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이 넘기도 한다. 최초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나도 중간단계 관계자에게 2000만 원을 주고 승부 조작 정보를 받아 베팅을 해봤다”고 말했다. B 씨는 “전국 경기장을 가장 빨리 오갈 수 있는 대전 등 충남 지역에 전문 승부 조작 브로커 사무실이 대거 몰려 있다”며 “선수들의 음주 정도, 컨디션 상태 등 정말 친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정보와 개인 신상이 돈으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B 씨는 “운동을 함께 했던 선배 브로커가 선수들을 만나 술과 음식을 꾸준히 사주고 500만 원 정도 주머니에 넣어주면서 선수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이어 ‘형 믿고 한번 가보자’거나 ‘형 좀 도와줘’라고 하면 100명이면 100명 모두 넘어가게 마련”이라며 “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이 많은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정에 끌렸거나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열한 고객 유치 경쟁 “요즘엔 단속보다 무서운 것이 고객(유저)들의 이탈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가 늘면서 운영 조직끼리 치열한 고객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로 거액을 번 사례가 알려지면서 새롭게 뛰어드는 경쟁자가 많기 때문이다. A 씨는 “요즘 사이트들 사이에서는 유저들을 얼마나 끌어 모으느냐가 생명이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에 서버를 두고 사이트를 운영한 적이 있는데 별도의 홍보 마케팅 담당자를 두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저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생일을 모두 기록해 놓고 선물을 보냈다. 또 유저가 베팅을 하다 수사기관에 적발돼 벌금형을 받으면 벌금까지 대신 내줬다. 처음 가입하는 사람에게는 사이트 내에서 구매한 사이버머니 총액의 10%를 보너스로 줬다. 이렇다 보니 사이트 운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사이트당 하루 200∼300명은 놀아줘야 큰돈을 만질 수 있다”며 “요즘엔 단속보다 무서운 게 손님을 놓치는 것이다. 유저들이 우리 사이트가 아닌 다른 사이트에 가서 베팅을 할까 늘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규모가 큰 사이트에서 후발 주자인 작은 사이트를 상대로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로열티를 받는 경우도 빈번하다. C 씨는 “이쪽 업계에서도 소위 대기업 같은 업체가 있다”며 “신생업체에 운영을 지도해주고 수익의 20%를 로열티로 받는 게 관행이 됐다”고 말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5월 발표한 ‘제3차 불법도박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도박의 총 매출 규모는 약 21조8000억 원으로 2012년 발표한 ‘제2차 실태조사’ 때의 7조6000여억 원보다 크게 늘었다. 불법 스포츠도박단 수도 250∼365개에서 1000∼1520개로 4배 가까이로 늘었다. 그러나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당 1일 입금액은 2000만∼5억 원으로 큰 변동이 없다. 전체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은 커졌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이트별 수익률은 하락한 것이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내부 단속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직원들이 수사기관에 제보하거나 비밀이 노출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직원들은 철저하게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들만 쓴다. 직원들끼리는 서로 실명을 모르게 하고 외국인 이름을 쓰게 한다. A 씨는 “인센티브나 휴가를 적절하게 주면서 회사를 나가지 못하게 한다. 한 달에 500만∼1000만 원은 벌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직원이 여기 오기 전에 PC방에서 하루를 보내던 ‘폐인’이 많았다. 보수가 높다는 소문이 돌아 조직에 들어오려는 경쟁률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돈 세탁’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적발되면 그동안의 수익을 모두 몰수당하기 때문이다. A 씨는 “이쪽 업체들은 돈 세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쓴다. 의류나 시계 등을 수입하는 사업체로 가장해 정상적인 지출, 수입이 이루어진 것처럼 근거를 갖춰 놓는다”고 말했다. B 씨는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고 갈수록 사이트 가입도 신중하게 처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해외 인터넷주소(IP주소)로 들어오는 유저는 원천 차단한다. 외국 조직폭력배들이거나 수사 목적으로 접근한 유저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효율적인 단속 필요 B 씨는 “최근엔 스포츠를 좋아하는 고등학생도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어려서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그 나름의 보는 눈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며 높은 배당률이 걸린 쪽에 베팅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학생 2, 3명이 베팅을 하면 주변 친구 10∼15명이 순식간에 함께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불법 스포츠도박의 폐해가 청소년에게까지 미칠까 봐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재 불법 스포츠도박을 감시하는 곳은 사감위의 불법사행산업감시신고센터,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스포츠공정문화팀, 경찰청 사이버수사국 등이 있다. 사감위와 공단은 불법 도박 신고를 받으면 확인한 뒤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 사감위와 공단 관계자들은 “수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을 적발하고 감시하는 데 따른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사감위나 공단에 수사권을 준다 해도 사감위나 공단이 전국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전국을 커버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 수사권을 주기보다는 경찰의 인력을 더 확충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사감위나 공단, 경찰이 별도로 단속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들 사이의 정보 공유가 잘 안 된다”며 “어느 조직이 중심이 되든 불법 스포츠도박을 근절하기 위한 전담 조직 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재영 elegant@donga.com·이원홍 기자이민형 인턴기자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가슴에 죄인의 낙인처럼 새겨진 주홍글씨는 지울 수 없는 것일까. 수많은 빛과 그림자를 남긴 채 올림픽이 끝났다. 눈이 멀어 버릴 것처럼 빛나는 조명과 환호 속에 무대를 내려온 선수가 있는가 하면 출전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주목받지 못하거나 패배의 어둠 속에 퇴장한 선수도 있다. 그 강렬한 명암의 대비 한가운데 박태환이 있다. 8년 전 8월 10일 베이징 하늘엔 간간이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몸이 무거워지는 박태환은 경기에 대한 긴장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였다. 1시간 정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태환은 이날 생애 최고의 역영을 펼치며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수영 사상 최초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따내며 역사적 영웅이 되었다.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를 보던 부모는 감격에 목이 메었다. 2년 뒤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또 다른 전설이 될 김연아도 박태환의 미니홈피에 ‘오빠 대박’이라는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 기자회견장에서 박태환에 대한 질문 기회를 얻지 못한 일본 기자가 푸념하던 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국민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박태환은 경기를 중도 포기하고 귀국했다.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와 200m 예선에서의 성적은 최하위에 가까웠으며 예정됐던 1500m에는 출전조차 하지 않았다. 한 차례 약물 파동을 일으켰던 박태환은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뒤 어렵게 올림픽에 출전한 상태였다. 그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졌다. 약물 관련 전과를 비난하는 내용과 함께 경기를 포기한 투혼의 상실을 지적한 내용이 많았다. 그와 관련한 뉴스에는 ‘약해지지 말자’ ‘약한 사람 아니야’ 등의 ‘약’자가 들어가는 댓글이 유행했다. 겉으로는 위로하는 척하면서 ‘약’이라는 말을 넣어 교묘하게 조롱한 것이다. 누군가의 몰락을 보는 건 운명의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운명은 자비롭지도 잔인하지도 않고 그저 무심할 뿐이며 그 몰락과 성패의 원인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성공의 가능성뿐 아니라 참혹한 실패의 가능성이 똑같이 열려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분명 등골이 시린 일이다. 우리는 모두 실패할 수 있다. 팬들이 박태환에게 강한 비난을 쏟아낸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망가진 공정성에 대한 강한 욕구 때문일 거라고 본다. 공정한 경쟁이 생명인 스포츠에서마저도 약물 등의 편법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데 대한 거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경위야 어찌 됐든 박태환이 약물을 사용했던 사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고의든 아니었든 부주의한 약물 사용은 그의 운명을 처참하게 망가뜨렸다. 그러나 선수가 아니라 인간으로 바라본다면 그는 아직 많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 한 명의 젊은이일 뿐이다. 선수로서의 과오가 크다 하더라도 그에게 남은 인간적인 삶까지 조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약물 파동 이전에 그가 열악한 한국 수영계의 환경을 딛고 세웠던 공로는 지워지지 않는다. 박태환이 언제 다시 팬들의 가슴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가 팬들의 가슴속에 돌아오려면 팬들이 분노했던 바로 그 부분에 대한 진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약물과 편법이 아닌 진정한 땀의 가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 가장 괴로울 사람은 박태환 본인이다. 고통을 통과해 본 자는 진실을 느낄 수 있다. 삶의 밝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이면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받은 자의 진정성으로 진심을 다한다면 그의 마음도 다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그것이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를 지울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올림픽에서는 엽기적인 사건도 많이 발생했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려고 속임수를 쓰다 일어난 사건이 많았다. 1960년 로마 올림픽 근대5종 단체전 경기에서였다. 근대5종은 수영 승마 펜싱 사격 크로스컨트리(육상)를 함께 치르는 종목이다. 튀니지 대표팀과 상대하던 선수들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펜싱 경기에 나선 튀니지 선수들의 경기가 너무 똑같았던 것이다. 알고 보니 튀니지 대표팀 선수 3명 중 1명이 다른 2명을 대신해 경기를 했다. 펜싱 경기에는 마스크를 쓰고 나서는 점을 이용했다.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들켰고 실격 처리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 1600m 계주에 나설 예정이던 푸에르토리코의 마델리네 데 헤수스는 대회 도중 부상으로 경기를 하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자신을 응원하러 온 쌍둥이 자매를 몰래 경기에 내보냈다. 푸에르토리코 여자 대표팀은 결선에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코치가 상황을 알아채고 사태가 커지기 전에 팀을 결선에서 철수시켰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여자 높이뛰기에 출전했던 독일의 도라 라트옌은 4위를 한 뒤 2년 뒤에는 세계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였다. ‘그녀’를 수상하게 여긴 동료들로 인해 그의 정체가 밝혀졌고 기록은 삭제됐다. 경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해 벌어진 사건도 많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태권도 80kg 초과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쿠바의 앙헬 발로디아 마토스가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킥을 날려 쓰러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외적인 이유로 올림픽을 이용하려 한 사건도 있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마라톤 선두를 달리던 브라질의 반데를레이 리마가 결승점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37km 지점에서 닐 호런이라는 괴한의 습격을 받아 쓰러졌다. 호런은 “세상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다 같이 춤을 추자”고 주장해 왔다. 호런은 춤이야말로 사람들을 평화로 이끌 수 있다며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호런은 올림픽 이전에도 시속 250km가 넘는 자동차 경주장에 뛰어들어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호런 자신은 세계 평화를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이런 사건을 일으켰지만 자신의 주장을 위해 올림픽을 방해했다. 리마는 결국 3위에 그쳤고 브라질은 금메달을 도둑맞았다며 분노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의 올림픽이 마주한 현실에 비하면 과거의 이런 사건들은 어쩌면 소극(笑劇)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성적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자매를 대신 출전시키거나 다른 선수를 대리 출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러시아의 예에서처럼 국가가 개입하는 대규모 도핑 사태로 번졌다.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신선한 피를 새로 수혈받거나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는 기괴한 행위들이 적발되고 있다. 춤으로 세계 평화를 이끌어내자는 주장은 돌이켜 보면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진다.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은 대규모 테러의 공포 아래 놓여 있다. 테러는 합리적인 소통을 거부한 채 일방적인 메시지만을 강요하는 가장 야만적인 형태의 폭력이다. 올림픽에 대한 다양한 위협은 역설적으로 올림픽의 광대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은 “올림픽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위한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올림픽 참가자는 성실성과 도덕성, 그리고 타락한 욕망의 유혹을 물리칠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요소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이런 점에서 참가자들은 모두 미래를 위한 전사들이기도 하다. 6일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개막한다. 당당히 싸우고 돌아오라.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9년 전 크리스마스에 형은 쓰러졌다.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거나 선물을 주고받던 그날, 형은 경기에 나섰다. 생의 도전이 멈추게 될 줄 모른 채. 그 순간 동생이 곁에 있었다. 형의 이름을 빛내고 기억하기 위한 동생의 오랜 노력이 이어졌다. 형의 뜻을 이은 동생에 의해 형제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는 승화되어 새로운 의미를 남기고 있다. 2007년 12월 25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털 플라이급 타이틀 매치에서 챔피언 최요삼은 마지막 12라운드 종료 10초를 남기고 도전자 헤리 아몰(인도네시아)의 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최요삼은 일어섰다. 두 주먹을 들어올리며 경기를 계속할 뜻을 밝혔다. 주심은 경기 재개를 선언했고 종이 울려 경기가 끝났다. 하지만 최요삼은 경기가 끝나자 다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마치 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투혼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를 붙잡고 있었던 것처럼. 경기에서는 판정승했지만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 한 차례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내려 온 뒤 다시 챔피언이 되기 위해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극한의 훈련을 계속했던 그였다. 최요삼은 2008년 1월 6명에게 장기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많은 국민을 울렸다. 한편으로는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최요삼이 세계복싱평의회(WB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실이 국내에 뒤늦게 알려졌다. 최요삼은 WBO 챔피언이 되기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라 3차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 선수가 WB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것은 WBC 라이트 플라이급 15차 방어에 성공했던 장정구에 이어 두 번째다. WBC에 따르면 최요삼이 명예의 전당에 입회한 것은 2009년이다. 그런데 왜 국내에는 이제야 알려졌을까. 최요삼이 WBC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사실을 국내에서 처음 밝힌 사람은 최요삼의 친동생이자 매니저였던 최경호 Y3복싱클럽 대표(40)다. 그는 형이 쓰러질 당시 매니저로서 형의 곁에 있었다. 그는 어머니 오순이 씨(72)와 함께 형의 뇌사 판정을 받아들이고 사망에 동의하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었다.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평소 WBC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왠지 들어가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예의 전당 코너 초기 화면에는 형의 이름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상세 검색을 해 보니 형이 이미 명예의 전당 회원으로 되어 있었어요. 정말 기뻤죠.” WBC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최요삼에게 명예의 전당 회원 자격을 주었지만 관리 소홀로 정작 관련 사이트에는 그의 이름이 게재되지 않으면서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제가 알아내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알아냈겠죠. 하지만 이 사실이 더 늦게 알려졌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내년쯤 아시아 지역에서 WBC 총회가 열리게 되면 형의 명예의 전당 입회 기념행사를 할 생각입니다. WBC 측에서도 총회 기간에는 언제든 기념행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갑자기 명예의 전당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된 것에 대해 “형이 암시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형이 죽은 후 복싱계를 떠났다가 복귀한 그는 “내가 복싱 관련 일을 다시 하게 된 것도 형의 영향 때문이었다. 사고 후 몇 년이 지났을 때인데, 꿈에 형이 나타나서 ‘너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래. 복싱 관련 일을 해라. 네가 갈 길은 복싱이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꿈에서 형의 말을 들은 그는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고 했다. 형이 죽은 후 쇼핑몰 관련 회사에 다니던 그는 복싱계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꿈에서 형을 만난 후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고민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정말로 복싱 관련 일을 해야 하나. 침체기에 있는 복싱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했어요. 반면 당시 직장에서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고 있었지요. 현실에 안주해야 하나….” 부인이 큰아들을 낳고 둘째 아들을 임신했을 때였다. 그러나 결국 형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제 나이 30대 후반이었어요. 더 늦으면 다시는 제가 좋아했던 복싱 일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심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눈에 밟히는 사람이 아내와 어머니였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는 퇴직금 등으로 마련한 돈으로 아내에게 1년 치 생활비를 주고 난 뒤 복싱계에 뛰어들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한번 해보고 싶으니 이해해 달라”는 말과 함께. “처자식이 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수중에 돈도 없었어요. 하지만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삼이 형이 나를 보고 있다면 도와줄 것이라 믿었어요.” 그는 전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이었던 유명우 한국권투연맹(KBF) 실무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허락해 주신다면 같이 프로복싱을 위해 노력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 부회장이 이끌던 버팔로프로모션에 합류해 본부장으로 일하게 된 그는 “별다른 월급은 받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제2의 유명우 장정구 최요삼을 키우려는 꿈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했다. 버팔로프로모션은 국제복싱연맹(IBF) 슈퍼밴텀급 아시아 챔피언인 김예준을 비롯해 국내 유망주들을 발굴해 육성하고 있다. 최 씨는 버팔로프로모션에서 복싱 관련 활동을 재개한 데 이어 많은 노력 끝에 2014년 12월 형의 이름을 딴 Y3복싱클럽을 개관했다. 요즘은 관원들에게 직접 스파링을 해주고 있다. 많을 때는 연이어 20명의 스파링을 해주기도 한다. 이런 날은 온몸이 녹초가 된다. 그럴 때면 땀범벅 속에서도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입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형 생각 때문이다. “스파링 도중 맞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 형 이렇게 힘들었구나. 이렇게 힘들었을 텐데 왜 말리지 못했을까…. 형은 스파링 훈련을 할 때 아무리 힘들어도 ‘야 괜찮아 괜찮아 올라와’라고 했어요. 계속 링 위에 올라 자신과 스파링을 해달라고 했어요. 그 기억이 날 때면 ‘나도 여기서 한번 죽어보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스파링 대기자가 줄을 서 있어도 전부 올라오라고 합니다.” 생전의 최요삼은 쇼맨십도 강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풍겼지만 그의 내면에도 고독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가 사경을 헤맬 때 공개된 그의 일기에는 “이제는 끝내고 싶다 권투를…. 맞는 게 두렵다”고 적혀 있었다. 1999년 WBC 챔피언에 올랐지만 경기 침체와 복싱 인기의 하락으로 인해 방어전 일정을 잡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일기에는 “나를 버리고 간 사람들이 생각난다. 권투도 나를 버릴까” “외로움이 너무나 무섭다. 너무나. 더 외로워야 할까”라는 구절도 있었다. “벼랑 끝 승부라고 생각하겠다. 나는 밀리면 죽는다”며 경기에 대한 각오와 절박함을 드러냈던 그였지만 “저 푸른 초원 위에 예쁜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장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이제는 피 냄새가 싫다… 내일이 두렵다”고 적었었다. 35세로 사망한 최요삼은 미혼이었다. 최 씨는 “요즘도 형과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듣던 음반을 가끔 듣는다. 가사가 참 슬픈 게 많다. 그때는 형에게 ‘왜 이렇게 슬픈 노래를 듣느냐’고 했지만 이제는 형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내색하지 않으려 하지만 최 씨 자신도 삶이 힘들어 소주 한잔 마시고 혼자 눈물 흘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건 어쩌면 모든 가장(家長)들에게 공통된 게 아닐까. 링 위냐 링 밖이냐의 문제일 뿐 외롭고 치열하게 싸우는 건 모두 비슷할 거라고 본다”고 했다. 형은 그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형님이 24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세 살 터울인 요삼이 형과 저는 6남매 중의 다섯째와 여섯째였어요. 어릴 때 형에게 맞은 기억이 많아요. 아버지 돌아가신 후 형과 더 친해졌지요.” 최요삼은 권투를 해서 번 돈으로 프로골퍼 지망생이었던 동생을 뒷바라지했다. “나는 (매)맞는 운동을 하지만 너는 좋은 운동을 해라”던 형이었다. 최요삼은 집안의 기둥이었다. 최요삼은 세계챔피언에 도전하기 위해 합숙훈련을 하면서 동생에게 매니저 역할을 부탁했다. 이후 형제는 링 안팎의 고락을 함께했다. 형이 “신발 좀 화려하게 만들어 봐라”고 하면 동생이 동대문시장에서 각종 재료를 구해 신발에 꿰매어 꾸미기도 했다. 옷감을 끊어다 경기에 입고 나갈 형의 옷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최요삼이 체력훈련과 체중 감량의 고통에 힘겨워하며 잠을 못 이룰 때면 함께 밤을 새웠던 동생이었다. 최 씨가 매니저 역할을 맡았지만 주요 결정은 최요삼이 많이 내렸다. “형은 갈까 말까 망설일 바에는 가는 게 낫다는 스타일이었어요. 형의 결정을 따르면서 저도 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습니다. 형은 오늘의 저를 만들어준 존재입니다.” Y3복싱클럽은 서울에 3곳, 경남 김해에 1곳이 있다. 그는 “이 체육관 모두를 내가 출자해서 만든 건 아니다. 4곳 중 2곳은 같이 운동했던 후배들이 Y3라는 이름으로 체육관을 내고 싶다고 해서 개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Y3복싱클럽 본관 벽에는 최요삼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그의 꿈은 Y3복싱클럽을 10개 정도로 확장해 전국에서 문을 여는 것이다. “저는 없어질 수 있지만 Y3복싱클럽은 계속 남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저는 기억하지 못해도 요삼 형은 오랫동안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Y3복싱클럽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국내 복싱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결국 복싱 인구가 많아져야 복싱이 부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체육관에서 복싱을 익히는 사람들 중에는 의사 판사 등 엘리트 인사들도 많다고 했다. 최근 복싱클럽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다이어트와 건강증진 효과를 보려는 이들이 많다. 그는 “복싱이 더 이상 헝그리 스포츠로만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요삼이 떠난 이후 최요삼 추모 복싱대회를 2년 전까지 개최했다. 이제는 최요삼의 정신을 이어받은 선수들을 배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최요삼 정신’에 대해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을 이겨야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해 수백 km의 로드워크와 함께 혹독한 체력훈련을 했던 최요삼의 모습이 떠올랐다. 형의 죽음 이후 동생의 많은 활동은 형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생은 다시 형이 쓰러지던 그날을 회상했다. “경기를 정리하고 형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뇌사’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형 이렇게 가려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은 저를 강하게 키웠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형 내가 멋있게 보내주고, 내가 살아 있는 한 형 이름이 영원히 남을 수 있게 그렇게 한번 해볼게’라고요. 내가 안 해도 누군가 그런 활동을 했겠지요. 하지만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존경하는 형이었기 때문에 형을 잊지 않고 살려는 것이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최 씨는 덧붙였다. “언젠가 형을 만나겠지요. 사후세계에서든 꿈에서든. 이제는 형을 다시 만나도 떳떳할 거 같아요.”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마라도나 기원(紀元) 56년 7월 11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포르투갈)는 그라운드 위에 주저앉아 울었다. 마라도나 기원은 아르헨티나의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를 신(神)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들은 마라도나의 출생 연도인 1960년을 원년으로 삼고 있다. 2016년인 올해는 마라도나 기원 56년이 되는 셈이다. 축구광들을 중심으로 1998년 아르헨티나에서 창시된 ‘마라도나교’의 신도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마라도나야말로 신이 인간의 육체를 빌려 태어난 존재라고 여긴다. 호날두가 눈물을 흘린 것은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우승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전반전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자 안타까워 울었고 경기가 끝난 뒤엔 우승 감격 때문에 울었다. 이날은 76세의 축구황제 펠레(브라질)가 34세 연하의 일본계 브라질 여인과 생애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이었다. 호날두의 눈물 위에는 어쩔 수 없이 마라도나와 펠레의 모습이 짙게 떠오른다. 호날두가 그토록 원했던 메이저 대회(월드컵과 대륙선수권) 트로피는 그로 하여금 마라도나와 펠레로 상징되는 축구계의 ‘신’과 ‘황제’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167cm의 단신이었던 마라도나는 신체의 무게중심이 낮았다. 이를 이용한 안정적인 드리블이 장점이었고 강한 슈팅과 패스 능력을 겸비했다. 펠레는 양발 사용 능력 및 점프력을 비롯한 전체적인 운동 능력이 뛰어났다. 기술적인 면으로만 보면 호날두의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29·아르헨티나)가 마라도나와 펠레보다 낫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메시는 드리블 능력과 좁은 공간에서의 볼 컨트롤 능력이 높이 평가받는다. 호날두(185cm)는 메시(170cm)보다 큰 키를 이용한 제공권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보여 왔다. 팬들이 마라도나와 펠레를 추앙한 것은 혼자의 힘으로 경기의 흐름과 상황을 바꾸며 대회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 때문이었다. 과감함, 직관력과 창의력, 카리스마가 결합되어 나타난 이 능력은 마라도나에게 1986년 월드컵 우승컵을 안겨 주었고 펠레에게는 1958년, 1962년, 1970년 3차례의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호날두와 메시에게는 바로 이러한 능력이 마라도나와 펠레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고 그들의 국가대표팀을 한 번도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이끈 적이 없었다는 점이 그 증거로 거론됐다. 팬들은 이들을 비교하며 누가 가장 위대한 선수인가를 놓고 자주 격론을 벌인다. 그러나 기록과 업적으로만 선수를 평가하고 응원해야 하는가. 축구를 보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즐겁기 위해서다. 축구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주자는 것은 세계 각국의 축구협회가 내건 목표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계기에 따라 각자 응원하는 선수는 다를 수 있다. 이러한 계기는 승패를 떠나 다양하게 존재한다. 우리의 마음은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와 희생의 과정에서도 움직인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마라도나와 펠레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패배 속에 있던 주변의 많은 선수를 응원할 수 있다. 그것은 축구라는 무대를 떠난 인생극장 속에서도 우리가 업적과 재력 혹은 그 어떤 권력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때로는 감동과 애정이 그 어떤 위업을 나타내는 수치보다 소중할 때가 있다. 아무리 배운 것 없고 지위가 낮아도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것처럼. 혹은 아무리 고난에 처해 있어도 우리가 우리의 친구들을 응원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생의 어떤 순간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선수는 우리를 감동시킨 선수, 혹은 우리가 응원하는 선수이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무적함대’ 스페인에 당한 1-6 참패의 여운이 짙게 남아 있던 2일. 평가전 2차전을 위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공항에서 체코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일순 긴장에 휩싸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갑자기 선수들을 불러 모았기 때문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날 경기 후 믹스트존(자유 인터뷰 구역)에서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은 손을 들라’며 조사에 나섰다. 쭈뼛쭈뼛 손을 들었던 선수들은 슈틸리케 감독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꾸지람의 요지는 이랬다. ‘성원해준 팬들은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소통해야 한다.’ 한 마디로 팬들에 대한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믹스트존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감독이 선수들을 혼내는 건 이례적이다. 특히 개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는 외국인 감독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에겐 믹스트존 인터뷰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수 십 년간 유럽 무대를 누벼온 슈틸리케 감독이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선수들의 태도는 슈틸리케 감독을 참을 수 없게 했다. 기본을 중시하는 슈틸리케 감독의 철학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체코로 건너간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1시간 반 동안 쌓였던 말을 털어놨다. 선수들의 실력이나 정신력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한국축구 전반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유럽 원정 소집 때 이청용(28ㆍ크리스털팰리스)과 박주호(29ㆍ도르트문트), 김진수(24ㆍ호펜하임) 등 핵심 유럽파를 제외했다. 소속팀 경기에 제대로 출전하지 못 하는 선수들은 뽑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다. 당연한 내용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던 이 원칙은 이제 슈틸리케호의 기본이 됐다. 대신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의 발탁은 늘어났다. K리그 경기장을 꾸준히 찾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의 약속이 잘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임 초기, 슈틸리케 감독이 K리그 챌린지(2부) 안산 경기장을 찾았을 때 일이다. 당시 함께 갔던 축구협회 관계자는 “대표급 선수들이 없어 이용래(30ㆍ수원) 등 예전에 국가대표였던 선수들을 지목해 소개했더니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백지상태에서 선수들을 골고루 보고 싶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축구계는 한 때 대표팀 감독의 권위를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파벌을 조성해 위기를 겪었다. 원칙이 존중되면 생겨나지 않았을 문제들이었다. 대표팀의 16경기 연속 무패 기록은 깨졌고, 세계 수준과의 격차는 뼈저릴 만큼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아직 슈틸리케호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기본이 지켜지는 팀의 발전 여력은 충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치혁 채널A 기자 jangta@donga.com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몇 초 만에 승부가 결정되는 마당에 0.1초라도 빨리 기어를 바꿀 수 있다면 대단한 거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있는 조호성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은 자전거 기어를 바꾸는 ‘찰나의 순간’마저도 무한한 변수를 지닌 승부처라고 여긴다. 250km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사이클 개인도로 출전이 유력한 김옥철(서울시청)은 무선 장치를 이용해 기어를 바꿀 수 있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미국 스램사의 변속장치는 레버와 기어가 암호화된 무선 신호를 주고받아 자동으로 기어를 바꾼다. 예전의 자전거는 케이블로 연결된 변속장치를 사용했다. 기어를 바꾸는 데 힘이 들고 케이블이 끊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버튼만 누르면 작동하는 이 변속기는 그럴 염려 없이 더 빨리 기어를 바꿀 수 있다. 선수들은 달리면서 자신의 몸에 지닌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자신의 속도 및 소모된 열량, 맥박 수 등을 점검하는 한편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남은 거리와 코스를 측정한다. 자전거가 최근의 정보기술(IT)에 힘입어 ‘스마트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이원홍 bluesky@donga.com·이승건 기자 ▼ 방탄복만큼 강한 펜싱복… 철강 100배 강도 ‘울트라 활’ ▼선수들은 각자 자신의 체격 조건에 맞추어 부품을 따로 구입해 재조립하며 장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김옥철의 경우 자전거 프레임(뼈대)은 독일의 펠트, 타이어는 미국의 지프, 안장은 이탈리아의 산마르코, 브레이크와 체인 및 변속기 등 구동장치는 미국 스램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조 감독은 “자전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프레임이다. 최근에는 카본 소재가 대세이지만 같은 카본 소재라도 제조 공법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카본 소재를 몇 겹이나 입혔는지, 얼마나 압축이 잘됐는지 등에 따라 다르다. 좋은 프레임으로 만든 자전거는 시속 50km 이상의 고속 주행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벤츠와 다른 자동차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초창기 프레임의 무게는 1.5kg까지 나갔지만 최근에는 900g까지 감소했다. 타이어의 무게는 200∼250g 정도다. 길이 다소 평탄하면 가벼운 타이어를 쓰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좀 더 무거운 타이어를 쓴다. 안장은 주로 딱딱한 재질을 사용하는데 선수들의 체형과 골반 사이즈에 맞게 골라 쓴다. 안장이 푹신하면 편하기는 하지만 페달을 밟을 때 힘의 손실이 많다. 무게는 250g 안팎이 주류였지만 최근엔 135g짜리도 나왔다. 이렇게 여러 부품을 재조립했을 때 드는 비용은 보통 1000만∼2000만 원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자전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15만∼70만 원 선이다. 일반 자전거의 무게는 17kg 안팎이다. 산악자전거(MTB)는 산에서 들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가볍다. 14kg 정도다. 촌각을 다투는 경주용 자전거는 이보다 훨씬 가볍다. 6.8∼10kg이다. 선수들은 일반 자전거의 넓적한 페달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이클화 바닥에 페달을 끼워 고정시킨다. 넘어질 때 발이 빠지지 않아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위험하다. 선수들은 또 일반인보다 훨씬 큰 크랭크를 사용한다. 자전거 개발의 역사는 공기 및 무게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대표적인 자전거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영국의 크리스 보드먼이 타고 나왔던 ‘로터스 슈퍼바이크’가 꼽힌다. 그는 이 자전거를 타고 영국에 72년 만의 올림픽 사이클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보드먼이 타고 나온 자전거는 기존의 자전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뒤에는 바퀴살이 없는 원반형 바퀴를 달았다. 앞바퀴에는 칼날처럼 얇고 넓적한 바퀴살 3개가 달려 있었다. ‘윈드 치타’로도 불린 이 자전거는 포뮬러원(F1) 경주용 자동차 생산으로도 유명한 자동차 제조업체 로터스에서 제작했다. 공기와의 마찰을 줄여주는 원반형 바퀴는 이전부터 유행했다. 하지만 옆에서 바람이 불면 자전거를 제어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보드먼의 자전거는 이를 개량했다. 뒷바퀴에만 원반형 바퀴를 사용하고 앞바퀴에는 바퀴살이 달린 바퀴를 달았다. 그 대신 바퀴살에 대한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바퀴살을 얇게 만들고 개수를 줄인 것이다. 또 기존 자전거의 뼈대는 삼각형 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 자전거는 공기역학과 선수의 움직임을 고려해 삼각형 구조를 버렸다. 주 소재는 탄소섬유였다. 이 자전거에 가장 큰 자극을 받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사이클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던 미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사이클에서 한 개의 금메달도 따지 못하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유치한 미국은 자국에서의 승리를 위해 ‘프로젝트 96’이라는 슈퍼바이크 개발 계획을 추진했고 100만 달러(약 11억 원)의 연구비를 들여 ‘슈퍼바이크Ⅱ’를 만들었다. 미국 선수들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한 대에 3만 달러(약 3500만 원)∼4만5000달러(약 5300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고 출전했다. 우주항공 기술자까지 동원해 개발한 이 슈퍼바이크Ⅱ에는 방탄조끼로 사용되는 가볍고 튼튼한 케블라 섬유를 사용했다. 체인도 종이처럼 얇게 만들었다. 그러나 미국은 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또다시 실패했다.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에 그쳤다. 미국 여자 사이클 스타 레베카 트위그는 “코치들이 개개인의 의견과 특징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슈퍼바이크Ⅱ를 타라고 강요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선수들은 이 자전거가 빠르기는 했지만 튼튼하지 않고 다루기 어렵다고 평했다. 미국은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이때부터 첨단 자전거 개발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본격화됐다.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첨단 자전거를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고가의 최첨단 자전거를 소유한 나라와 이를 갖지 못한 나라의 불균형이 거론됐다. 올림픽이 선수의 능력을 겨루는 무대가 아니라 장비의 성능을 겨루는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국제사이클연맹(UCI)은 1996년 ‘루가노 헌장’을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헌장은 ‘사이클 경기가 선수의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선수와 기계의 조화에 더 의존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비밀리에 개발된 급진적인 형태의 자전거가 등장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자전거 개발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점에 대한 우려를 담았다. UCI는 이후 자전거의 기본 프레임을 전통적인 삼각형 구조로 제한하고, 무게를 6.8kg 이하로 줄일 수 없도록 규정했다. 급격한 형태 변화를 막아 개발 경쟁을 억제하고 지나치게 가벼운 자전거를 만들어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적용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UCI는 올해 1월 경기용 자전거에 대한 각종 규정을 보완했다. 한편에서는 최근의 발달된 자전거 제조기술을 반영하기 위해 UCI가 그동안 경기용 자전거의 개량 범위를 제한해 온 일부 핵심 규정을 없앨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UCI는 이러한 규정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강화했다. 김성주 전 대한자전거연맹 사무국장은 “루가노 헌장의 기본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사이클 경기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에서 장비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수영에서도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 맹위를 떨친 전신 수영복이 발단이었다. 전신 수영복은 1990년대 말 개발됐다. 상어의 피부에 나 있는 작은 돌기들이 물과의 마찰을 줄이는 데서 착안해 수영복 표면에 작은 돌기와 홈을 만들었다. 선수들의 근육을 압착해 피로물질인 젖산의 축적을 막아주기도 했다. 전신 수영복의 효과는 대단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수영 금메달 33개 가운데 25개를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가져갔다. 그러나 이로 인한 기록 단축 효과가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사이클의 경우와 같은 고민을 했던 국제수영연맹(FINA)은 2010년 전신 수영복 착용을 금지했다. 현재 FINA는 남자의 경우 수영복이 배꼽 위나 무릎 아래를 덮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자 수영복은 어깨부터 무릎까지만 덮을 수 있다. 수영복 표면은 평평해야 하고 수영복 두께의 최대 얇은 부분이 최대 두꺼운 부분의 50% 이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 수영복은 0.5뉴턴(N) 이상의 부력을 지닐 수 없게 하고 있다. FINA는 매년 대회에서 입을 수 있도록 허가한 수영복 리스트를 발표하고 있다. 수영 유망주 안세현 등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은 올해 국내 수영복 업체 동인스포츠 아레나가 제작한 아쿠아포스 라이트닝을 지원받는다. 이 수영복에는 폴리우레탄이 기존의 2배인 63% 정도 함유돼 있다. 이 수영복은 허리와 허벅지 부분의 신축성을 강화해 킥할 때 다리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사이클과 수영 등에서의 논란이 있었지만 많은 종목에서 올림픽 장비의 진화는 장비 자체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기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 더욱 돋보이도록 도왔다. 양궁에서는 경기에서 선수의 의도가 정확하게 반영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다. 주된 노력은 화살의 속도를 높이고 슈팅 순간의 충격과 진동이 화살에 나쁜 영향을 주는 활의 ‘불량운동’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핸들(손잡이 부분)과 날개가 정확한 정렬을 이루고 있어야 좋은 활이다. 날개가 틀어져 있을 경우에 활을 당기면 슈팅할 때 불량운동의 원인이 된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 및 감독 출신인 박경래 대표가 세운 한국의 윈엔윈은 세계 최초로 활에 최적화된 나노카본 소재를 개발하여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윈엔윈 측은 “철강보다 100배 뛰어난 강도를 지닌 소재로 튼튼하고 비틀림이 적은 날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활의 날개와 핸들 등을 분리 구입해 각자 자신의 특성에 맞게 조립할 수 있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부분 국산 활 제조업체 윈엔윈이 만든 날개를 사용한다. 핸들은 미국의 호이트 제품을 쓰는 경우도 있다. 선수들이 어떤 제품을 조립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활에 드는 비용은 보통 300만 원 정도이다. 장비 발달 덕에 기록이 크게 향상된 대표적인 종목으로는 장대높이뛰기가 꼽힌다. 초창기 선수들은 대나무 장대를 사용했다. 대나무 장대는 이후 섬유유리로 만든 장대로 대체됐고 탄소화합물로 구성된 장대도 등장했다. 새로운 장대의 뛰어난 탄력성 덕분에 장대높이뛰기 최고 기록은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장대높이뛰기에서 섬유유리로 만든 장대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건 1960년대부터다. 현재 장대높이뛰기 최고 기록은 2014년 프랑스의 르노 라빌레니가 세운 6m16이다. 1957년 당시의 세계기록이 4m78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난다. 장비의 발달은 올림픽을 더욱 안전한 무대로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펜싱에서는 경기 도중 선수가 부러진 칼에 찔려 사망한 적도 있다. 펜싱계는 이에 따라 장비의 성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근에는 경기 중 칼이 부러져 다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탄소강철보다 훨씬 강한 마레이징 강철로 칼을 만들고 있다. 마레이징 강철은 제트 전투기에 사용하는 합금강철이다. 선수 보호용 재킷은 방탄조끼 재료인 케블라 섬유를 사용해 만든다. 보통 선수들은 3∼5자루의 칼을 가지고 다니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한 자루만 사용할 수 있다. 칼의 가격은 사브르의 경우 4만∼5만 원, 플뢰레 12만∼13만 원, 에페 13만∼15만 원이다. 이렇듯 현재 올림픽에서는 장비가 인간 본연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규제하려는 움직임과 장비의 발달을 더욱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섞여 있다. 스포츠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홍식 한국체육대 교수는 “과학의 발달은 계속해서 올림픽에서 사용될 장비의 수준에 대한 논란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경기방식 자체를 바꾸거나 새로운 종목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렇다면 순수한 인간의 육체를 단련하고자 하는 올림픽의 기본 정신은 사라지고 말 것인가. 김 교수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능력을 겨루고자 하는 올림픽 정신을 살리고 한편으로는 과학의 성과를 접목하기 위해 미래에는 올림픽이 분리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고 말했다. 순수한 인간끼리 겨루는 ‘자연인의 올림픽’, 웨어러블 로봇이나 첨단 기구를 착용한 ‘개조인간의 올림픽’, 그리고 순수한 ‘로봇들의 올림픽’이 등장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이 어떤 형태가 되어가든 그 속에는 일관된 인간의 의지가 들어 있다. 그것은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도약과 발전을 향한 의지이다. 이종석 wing@donga.com·유재영·황규인 기자}

“올림픽 떠나는 길에 6월 14일 밤 연락선 안에서 술 취한 경관에게 맞았다.… 너무도 몹시 때리므로 올림픽이 지나기까지는 어찌 되었든 중대한 책임이 있으니 때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아아 ‘올림픽’이다.… 영문도 모를 매를 실컷 맞고 또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안 되는 자는 권태하 한 사람뿐일까?”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권태하(1906∼1971·사진)가 1932년 6월 24일자 동아일보에 보낸 글이다. 일제하에서 올림픽 대표로 나섰으나 불심검문에 응하는 태도가 불량하다고 일본 경관에게 얻어맞은 조선인으로서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경관 3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경기에서의 선전만을 굳게 다짐했다. 그 무대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다. 그는 동료 김은배(1907∼1980)와 함께 마라톤에 출전했다. 그의 올림픽 경험은 4년 후 손기정(1912~2002)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권태하는 연습 때 교통신호를 위반했다며 경관에게 구타를 당하고 감기로 인한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선발전을 1위로 통과했다. 이러한 정신력은 올림픽에서도 발휘됐다. 그는 결승선 4m를 앞두고 탈진해 쓰러졌지만 주위의 도움을 뿌리치고 기어서 골인해 9위를 기록했다. 9만 관중은 두 번의 기립박수로 그를 기렸다. 이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손기정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손기정은 동아일보 기고에서 “내 마라톤 인생은 권 선배의 격려와 충고에 큰 자극을 받았다. 권 선배는 베를린 올림픽을 내 인생 최대의 결전장으로 설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그의 고향인 충북 충주시(시장 조길형)는 2일 충주시청 탄금홀에서 잊혀졌던 권태하의 마라톤 인생을 재조명하는 ‘권태하 선생 탄생 11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연다. 내년 충주 전국체전 성공 기원을 겸해 열리는 이번 세미나에는 1950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인 함기용 씨, 권오륜 부산대 교수, 박귀순 영산대 교수, 김희찬 아이들의 하늘 간사, 김형목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남중웅 한국교통대 교수가 참석한다. 동아일보는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출전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종세 전 동아일보 체육부장이 권태하와 동아일보 및 한국마라톤에 대한 주제 발표를 한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산행 도중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발병해 죽음에 이르는 산악 돌연사가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 21개 국립공원에서 접수한 산악사고 141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돌연사가 이 기간에 발생한 산악 사망사고 133건의 57.1%인 76건을 차지했다. 산악 돌연사는 평소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의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하는데, 평소 별다른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 올랐다가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발병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산악 돌연사의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산악 돌연사의 경우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에 집중됐고 5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와 운동 부족, 비만, 고지혈증 등 위험인자를 많이 지닌 중장년층 남성에게서 돌연사가 많다. 아무리 가벼운 산행이라도 등산을 시작하면 심장에 무리가 가기 쉬운데, 특히 산행을 시작하고 하산할 무렵에 체력 소진으로 인해 돌연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국 국립공원 코스별로 보면 북한산 지리산 한라산 등지에서의 돌연사가 많았다. 또한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접수된 월별 사고 현황을 보면 1∼4월 월평균 56.7건이었던 사고 건수(사망 및 탈진, 골절)가 5월에 109건, 6월에 116건으로 급증했다. ▼ 북한산서 한해 6명꼴 숨져… 인수봉-노적봉 가장 위험 ▼인수봉에서의 사고가 많았다. 부상자 41명을 비롯해 추락사 3명, 낙석으로 인한 사망도 1명 있었다. 인수봉에는 초보자부터 노련한 등반가까지 즐겨 찾는 80여 개의 길고 짧은 다양한 암벽 루트가 있다. 휴일이면 많게는 200∼300명의 등반가가 몰려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다. 윤재학 코오롱 등산학교장은 “누구든지 암벽 등반에 입문을 하고 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인수봉이다. 한국 암벽 등반의 역사를 대표하는 상징적 지역이기 때문이다. 초보자들도 그만큼 많이 몰리기 때문에 사고도 잦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일부 코스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기 때문에 바위가 닳아 미끄러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난도가 높아진 구간들이 있다. 미끄러운 데다 사람들까지 많이 몰리니 사고 발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 인수 대피소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강균석 반장은 “길이 미끄러운 것도 문제지만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이 더 문제다. 사람들이 몰리면 길을 비켜주기 위해 등반을 서두르게 되고 서두르다 보면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인수봉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그 대안으로 눈길을 끌었던 노적봉에서도 사고가 빈발했다. 윤 교장은 “인수봉에 비해 대체로 완만한 노적봉은 산악인들이 즐겨 찾던 곳은 아니었다. 인수봉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새로운 곳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최근 10여 년 전부터 20여 개의 코스가 개척됐다. 이 중에는 자연스러운 바윗길을 따라 개척된 코스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부자연스럽게 만든 코스가 있어 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백운대 염초봉 숨은벽 등의 바위능선 구간(리지)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수직 암벽에 비해 옆으로 이동하는 구간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방심 탓에 등산 장비를 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 관계자는 “수직 암벽에 비해 옆으로 이동하는 구간이 많은 이 지역에서는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도 ‘이까짓 거쯤이야’ 하는 방심 때문에, 혹은 귀찮아서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 지리산 종주 세석평전-장터목서 3명 돌연사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향해 오르는 대표적 코스인 오색∼대청봉과 한계령∼대청봉 구간에 사고가 집중되고 있다. 특히 오색∼대청 구간은 부상 22명과 돌연사 2건이 발생해 설악산 내 최다 사고지로 분석됐다. 이 구간은 다른 곳보다 코스가 짧은 대신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김기창 계장은 “한계령 휴게소 쪽에서 대청봉에 오른 뒤 코스가 짧은 오색 쪽으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력을 이미 많이 소진한 상태에서 급경사 지역을 내려오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단풍 관광객과 불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흘림골과 봉정암에서도 사고가 빈발했다. 국도변에 있는 흘림골은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빼어난 계곡미와 주변 풍경을 지녀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오르막 구간이 많다. 봉정암은 국내 5대 적멸보궁(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 중 하나로 나이 지긋한 불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지만 설악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해발 1244m)인 데다 등산로도 쉽지 않은 곳이라 주의를 요한다. 설악산에서도 특히 위험한 곳으로 꼽히는 곳은 용아장성이다. 높이 수십 m의 바윗길이 좁게 이어지는 이곳은 사고 위험이 높아 전면 출입금지 지역이다. 지난 5년간 이곳에서 부상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3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모두 사망(추락사) 사고뿐이었다. 천불동계곡과 공룡능선 사이를 이어주는 바위 능선 지대인 천화대, 길게 이어지는 너덜바위 지대가 있는 서북능선과 대승령 일대의 장수대 일원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희운각 대피소는 공룡능선과 소청봉 사이의 깊은 골짜기에 있다. 힘들여 대청봉을 오른 뒤 소청봉을 지나 희운각 대피소로 향하는 길은 급격한 내리막길이다. 이때 부상 위험이 높아진다. 이미 체력을 많이 쓴 상태에서 난도가 높은 공룡능선이 시작된다. 시간과 체력을 적절하게 안배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하기 쉽다. 지리산에선 세석평전과 장터목 일대에서의 사고가 많았다. 세석평전과 장터목은 약 25km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 코스(노고단∼임걸령∼벽소령∼세석평전∼장터목∼천왕봉)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공단 최수원 과장은 “지리산 종주 코스의 인기가 높은데, 이러한 코스의 끝부분에서 지친 등산객들이 사고를 당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종주를 하지 않을 때에도 세석평전과 장터목은 상당한 체력을 쓴 뒤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보통 당일 코스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를 때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거쳐 세석평전과 장터목을 지나 천왕봉에 오르는 등산객이 많다. 지리산의 계곡미와 능선의 장엄함을 느끼며 빠른 시간에 천왕봉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코스를 이용할 때도 급경사의 산기슭을 오른 뒤에야 세석평전과 장터목에 닿는다. 특히 한신계곡에서 세석평전에 이르기까지의 기슭 후반부는 매우 가파르다. 세석평전 일대에서는 부상 6건과 돌연사 3건이 발생해 부상자 대비 사망 비율이 높았다. 종주를 시작한 등산객들이 대개 1박을 하고 가는 중간 지점인 벽소령에서도 하루 산행이 끝날 때쯤 지친 등산객의 사고가 많았다. 천왕봉과 중산리를 잇는 중산리 코스(약 5.4km)의 개선문에서도 사고가 많았다. 중산리 코스는 짧아서 종주를 마친 사람들이 하산 코스로 많이 이용하지만 지리산에서도 손꼽히는 급경사 지역이어서 체력과 심장이 약한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 한라산 최장구간 성판악 코스 탈진사고 많아백록담으로 이어지는 두 코스인 성판악 탐방로와 관음사 탐방로에서 사고가 많았다. 성판악 탐방로는 9.6km로 한라산에서 가장 긴 코스다.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속밭 대피소, 사라오름 입구, 진달래밭 대피소를 거쳐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5∼8월에는 오후 1시부터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길이 통제된다. 하산 길에서의 일몰 등을 고려한 것이다. 성판악 탐방안내소에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통과하기 까지는 보통 3시간이 걸린다. 체력과 산행 속도를 고려하여 오전 일찍 넉넉하게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라산 국립공원 관계자는 “오전 늦게 입산하신 분들이 서둘러서 진달래밭 대피소를 통과하려고 욕심을 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초반부터 체력을 급격히 소진하기 때문에 탈진 가능성이 높아진다. 속리산 월출산 월악산에서는 사망 사고 비율이 높았다. 북한산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등에서는 전체 사고 중 사망 사고 비율이 7.1∼15.8%였으나 속리산은 30%, 월출산은 26.6%, 월악산은 25.8%에 달했다. 속리산은 계곡에서 익사 사고, 문장대 등에서 돌연사가 발생했고, 급경사 지역이 많은 월출산과 월악산에서는 돌연사와 추락사가 모두 발생했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서는 지난 5년간 2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는데 모두 전남 고흥의 팔영산(해발 608m) 일대에서 발생했으며 2건 모두 돌연사였다. 팔영산은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봉우리가 잇달아 있어 주의를 요한다. ○ 등산중 심장마비 막으려면산에 오르기전 충분한 준비운동 필수… 가슴 뻐근한 통증 느끼면 즉시 중단을돌연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병이다. 돌연사 관련 전문가인 인제대 상계백병원 심장내과 이혜영 교수는 “‘급사’ 혹은 ‘급성 심장사’라고도 불리는 돌연사로부터 생존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 통계로 보았을 때 1% 미만이다. 응급체계가 잘 확립되어 있는 미국에서조차 생존율이 5% 정도로 낮게 보고될 정도로 사망률이 높은 질환이다”고 설명했다. 돌연사의 원인으로는 심장세포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혀서 산소와 영양소 부족으로 심장근육세포가 죽어가는 ‘심근경색증’이 먼저 꼽힌다. 돌연사 원인의 70∼8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돌연사가 발생하기 수일 또는 수개월 전부터 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흉통, 호흡곤란, 피로감 등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바쁜 일상에 쫓겨 미리 진찰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또 “25% 정도의 환자는 아무런 조짐이 없다가 첫 증상이 나타났을 때 돌연사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관상동맥 질환은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당뇨병, 비만, 과도한 스트레스, 운동 부족 등에 의해 가속화된다. 따라서 이러한 위험인자를 지니고 있으면서 갑자기 무리한 산행 등을 하는 경우에는 돌연사의 위험이 높다. 대한산악연맹 등산의학위원장을 지낸 윤현구 제일병원 내과 교수는 “갑작스러운 산행은 심근의 산소 요구량을 증가시켜 더 많은 혈액 공급을 필요로 한다”며 “심혈관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부하는 심장 기능의 이상을 불러올 수 있다. 평소의 건강 관리 및 산행 전 워밍업과 스트레칭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산에서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무협 영화에서는 종종 혈기 넘치는 젊은 무술인이 주름지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넘어뜨리지 못해 당황하는 장면이 나오고는 한다. 젊은이는 땀을 뻘뻘 흘릴 뿐 자신보다 힘이 약해 보이는 노인을 쉽게 제압하지 못한다. 어찌 된 일일까. 이런 질문을 받자 이찬 사단법인 대한태극권협회 명예회장(61)은 자신의 손목을 내밀며 말했다. “한번 밀어 보시지요.” 그의 손목에 손을 대고 밀어내려 하자 그가 그 속도에 맞추어 자신의 손목을 쓱 뒤로 뺐다. 태극권 고수의 손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허공만을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의 손목에 아무런 힘도 가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간단히 설명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힘쓸 곳이 없게 하는 것이지요.” 손뼉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 상대방의 주먹도 그에 맞서거나 맞아 주는 대상이 있어야 파괴력을 발휘한다. 천하장사가 벽을 밀더라도 벽이 그 미는 만큼 뒤로 물러난다면 천하장사의 힘은 허공에 머물 뿐 벽에 미치지 못한다. 힘이 넘치는 젊은 무술인이 노인을 넘어뜨리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영화 속의 장면은 젊은이가 힘과 주먹을 쓰려고 하는 방향과 속도에 맞추어 몸을 젖히거나 물러서면서 노인이 그 젊은이의 힘과 주먹을 받아 주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스승인 국홍빈 선생과 처음 마주했을 때 젊고 패기만만했던 무술인이었던 자신이 그분을 제대로 밀어내지 못했던 순간을 자신의 글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스승을 밀어내려고 하면 마치 허공 중의 수건을 미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오랜 시간 태극권을 수련해 온 이 회장은 이렇게 ‘덜어냄’과 ‘맞서지 않음’으로 상대방의 힘을 무력화하는 이치를 설명했다. 그가 수련해 온 태극권은 부드러움과 온유함으로 강함과 거침을 상대하고자 한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위협과 모욕에 맞서는 마음의 자세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국내에 태극권을 본격적으로 보급한 사람이다. 태극권은 중국 송나라 말 장삼봉이 창안한 무예로 청나라 때 양(楊)씨 가문을 통해 궁중의 호위무사들에게 전수되다가 청나라 몰락 이후 일반인들에게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이 이른 아침 곳곳에 모여서 천천히 체조하듯 수련하는 것이 바로 태극권이다. 영어권에서는 타이치(Taichi)라고 한다. 이 회장의 저서에 따르면 태극권은 부드러운 동작 위주의 양식(楊式), 강한 동작 위주의 진식(陳式)이 있고 양식과 진식에서 파생된 오식(吳式) 무식(武式) 손식(孫式) 등이 있다. 이 회장은 양식 태극권을 개량한 정자(鄭子) 태극권을 수련했고 몸이 허약한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치유태극권(테라피 타이치)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태극권의 목적을 “부드러움에 이르는 데 있다”라고 하며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고요함으로 격렬함을 누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친절하게 웃으며 태극권의 유래를 설명해 준 이 회장이지만 거친 젊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경기 양평군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10세 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동네 이장이 인근 군부대 태권도 교관에게 마을 청소년들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 계기였다. 마을회관에서 태권도를 배웠다. 그러다 18세 때 중국 무술로 전향했다. 소림권 당랑권 등을 익혔다. 젊은 시절 사소한 이유로 싸움도 많이 했고 ‘누가 시비 좀 안 걸어 주나’ 하고 바라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배운 것을 실전에서 활용해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고 했다. 극장과 영화사에서 일종의 해결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는 영화 개봉관이 몇 개 없었어요. 영화가 개봉되면 사람들이 극장 앞에 길게 줄을 섰지요. 암표 장수들이 극성이었어요. ‘외팔이와 맹협’이라는 무협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암표 장수는 3개월 동안 암표를 팔아 집을 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죠.” 그는 극장에서 이런 암표 장수들을 단속하고 공짜로 극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도 막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영화사 제작부장도 했다고 한다. 지방에 촬영을 가면 지역 건달들이 시비를 걸곤 했는데 이를 막아 주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아는 형’들이 나이트클럽 이권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질 듯하니 좀 와서 도와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거칠게 지내던 그는 중국 무술 도장을 차렸다. 자신의 도장 인근에 다른 무술 도장이 생길 때면 찾아가서 실력 대결을 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침 그가 찾아간 도장의 관장이 그에게서 중국 무술 심사를 받은 사람이어서 소주를 마시며 화해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고 했다. 동네 건달들이 도장으로 찾아오기도 했고 스님이 찾아와 대결을 청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몇 차례 신체 접촉을 해 보면 상대의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초반 몇 번의 동작을 취해 보고는 금방 승패를 인정했다고 했다. 당시의 자신에 대해 그는 “눈빛이 살벌했고 주변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고 했다. 무술 고수가 되기로 결심한 뒤 머리와 눈썹을 밀고 두문불출하기도 한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렇게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속의 각오와 결의를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 되지 꼭 삭발까지 했어야 하느냐는 겁니다. 하하. 젊은 혈기로 차 있던 때죠.” 이러한 모습의 그는 이후 변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 태극권을 수련하며 온화함과 여유로움을 추구하면서 생긴 변화였다고 그는 자평한다. 태극권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고 회고했다. “저에게 중국 무술을 가르쳐 준 한국인 스승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승님에게는 또 중국인 스승님이 계셨고요. 중국인 스승님이 한국인 스승님에게 기회가 되면 태극권을 배워 보라고 권하셨는데 인연이 닿지 않아 배우지 못하셨어요. 그 한국인 스승님이 저에게 본인은 태극권을 배우지 못했지만 저보고 기회가 있으면 배워 보라고 하셨어요. 스승님의 스승님으로부터 내려온 태극권 입문 권유였지요.” 처음에는 친구가 구입해 온 태극권 서적을 화교학교에 다니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가며 독학으로 태극권을 익혔다. 그러던 중 1988년 대만으로 중국 무술 심판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태극권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대만의 태극권 고수인 국홍빈에게 본격적으로 태극권을 배웠다. 몇 개월씩 스승 댁에 머물며 태극권을 익히고 돌아와서는 다시 찾아가 배우는 등 스승이 3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배우고 익혔다고 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태극권을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에 전무하다시피 했던 국내 태극권 인구는 현재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평생 수련해 온 태극권의 특징에 대해 그는 ‘움직이는 선(禪)’과 같다고 설명했다. 태극권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수련하므로 이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관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가다듬게 된다는 것이다. 또 격렬하지 않고 부드러움과 온유함을 지향하기 때문에 성격도 차분해진다고 했다. 천천히 내장을 움직이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수련을 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노년층에서도 배우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는 태극권을 본격적으로 익히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10년간 매일 기본 수련인 권가(拳架)를 10번씩 반복하고 잠들었다고 한다. 권가를 한 번 하는데 7∼8분이 걸린다. 국내에 생소한 무술을 보급하느라 초창기에는 생활고에도 시달렸다. 부인이 조그만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지금은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존경받는 위치에 올랐지만 그의 삶은 이렇듯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운동하면 깡패가 된다는 주위의 시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가족을 풍족하게 부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등에 힘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수십 년 동안 무도인의 길을 걸었다. 격투에 필요한 기술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무술(武術)’이 되고 신체의 아름다움을 펼치는 측면을 강조하면 ‘무예(武藝)’가 되며 신체의 건강을 바탕으로 정신적인 고양을 추구하는 측면을 강조하면 ‘무도(武道)’가 된다. 그는 “결국엔 다 같은 말이지만 태극권에는 무도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동양의 전통 무술 속에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하고자 하는 오랜 꿈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현대에 있어서 이러한 무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두뇌와 몸을 대신하려는 시대가 아닌가. 이에 대해 그는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을 거론하며 자신의 견해를 말했다. “제가 볼 때 인공지능은 아직까지는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을 지니지 못했으므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봅니다.” 그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아무리 편리함을 가져다주더라도 인간 스스로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고 칩시다. 맛있는 음식을 로봇이 직접 가져다준다고 하면 그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직접 몸을 움직여 찾아가는 과정의 고단함을 모릅니다. 고단함이나 슬픔이 있어야 그 뒤의 편리함이나 기쁨을 더 잘 알게 되는 겁니다. 기쁨과 슬픔은 상대적입니다.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있는 겁니다. 편리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계가 모든 것을 다 해 주어서 이 세상에 고단함은 없고 편리함만 있다고 하면 과연 편리할까요. 그때는 편리함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겁니다.” 그의 말이 이어질 때 서울 서초구 법원로에 있는 그의 도장에서는 초로의 여성들이 서서히 몸을 풀며 태극권을 익히고 있었다. 그는 그 수련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저렇게 수련하는 과정은 힘이 듭니다. 땀을 흘리는 거죠. 땀을 흘리며 태극권을 수련하면서 어느 경지에 오르게 되면 삼매경에 빠지며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어요. 이는 직접 자기 몸을 움직여서 얻는 즐거움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했을 때의 성취감, 고통을 극복한 뒤의 행복감, 직접 노력해서 얻은 것의 소중함 등과 맞닿아 있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편리함을 주더라도 인간이 ‘땀 흘리며 얻는 보람’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생 자체가 땀을 흘리며 많은 난관을 극복해 온 과정이었다. 또 기계가 아무리 편리함을 주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해 주더라도 건강 없는 수명 연장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폴로 신에게 무한에 가깝도록 오랜 생명을 달라고 했던 무녀(巫女)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깜빡하고 무한한 젊음을 함께 부탁하는 것을 잊은 그 무녀는 영원히 늙어 가며 쪼그라들어 괴로워한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것이 이후 그녀의 소망이었다. 신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과 건강을 지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첨단 기계 문명 속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수련하는 노력은 기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또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한 계산을 대신해 준다 해도 인간의 정신을 높이는 것은 역시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렸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단련하고자 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중요하다.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하는 무도는 그래서 계속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신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하는 것은 비단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武道)일 뿐만 아니라 보통의 인간들이 모두 추구해야 하는 ‘인간의 길’인 것처럼 들렸다. 고요한 도장에서 명상에 잠기듯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진지해 보였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체육특기자 입학 비리에 연루된 선수와 지도자는 앞으로 한 번만 적발돼도 스포츠계에서 영구 퇴출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5일 발표한 입학 비리 재발 방지책에 따르면 입학 비리에 연루된 선수와 지도자는 대학은 물론이고 프로에서도 활동이 금지된다. 또 입학 비리가 발생한 대학 운동부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가 주최하는 전국 규모의 리그 및 토너먼트 대회, 스포츠총장협의회 주최 리그 대회에 일정 기간 출전이 금지된다. 또 사안에 따라 해당 대학 운동부 입학 정원의 10% 내에서 모집이 정지되고 정부 지원 예산이 삭감된다. 이와 함께 학생을 뽑는 과정에서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평상시 학생들의 주요 경기 동영상을 대한체육회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대학이 면접과 미니 게임 등을 실시할 경우 타 대학 교수 등 외부인사가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호주와 독일 미국 등 스포츠 강국들은 일찍부터 선수들의 은퇴 이후 삶을 돕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선수 개인이 운동과 직업 훈련의 이중 부담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 아래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 왔다.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은퇴 이후 삶과 관련된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는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최근의 국제적인 흐름은 고등학교 시절을 비롯한 선수 생활 초기부터 일반 직업인으로서의 경력을 준비하도록 조기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대한체육회의 해외 사례 연구에 따르면 호주는 1995년부터 엘리트 선수 직업교육(ACE·Athlete Career and Education)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고등학교 엘리트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수 은퇴 후 진로를 미리 설계하도록 했다. 이에 맞추어 선수들은 공대 경영대 법대 등 다양한 학과로 진학하고 있으며 스포츠 관련 학과 진학률은 오히려 낮은 편이다. 39개의 협력 대학에서는 이들이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취업할 수 있도록 보충수업과 과외 수업 등을 실시한다. ACE 프로그램은 운동 학업 취업 준비를 병행하기 위한 시간 관리, 심리 및 재정 상담, 면접 교육 등을 실시한다. 호주는 최근 ACE를 PE(Personal Excellence)로 발전시켜 대중의 관심을 받는 선수들이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영향력 있고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리더십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엘리트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전국의 19개 올림픽훈련센터마다 경력상담사를 배치해 선수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각종 기업과 연계해 일찍부터 직업훈련을 시키고 있다. 독일은 기부금 및 복권 이익금 등으로 스포츠지원재단을 만들어 이 같은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올림픽 및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ACP)을 운영해 왔다. 국내 은퇴 선수를 위한 복지제도로는 입상 실적에 따라 매월 일정액 또는 일시금을 지급하는 ‘경기력향상연구연금제도’가 대표적이다. 국제대회에서 입상할 경우 평가 점수에 따라 월 30만∼100만 원의 연금을 받는다. 일시금으로 받기도 한다. 올림픽 금메달의 경우 일시금은 6720만 원이다.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현재 월정액을 받고 있는 사람은 장애인체육 포함 1252명이다. 일시금 및 특별 장려금을 받은 사람은 지난해 56명이다. 체육인들은 현금 위주의 이러한 지원 제도는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데 비해 수혜 대상자가 제한돼 있고 실질적인 직업훈련이나 경력 개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또 대한체육회 체육인복지부에서 은퇴 체육인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3명의 직업상담사를 고용해 선수들의 취업을 돕고 있으나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해외와 비교하면 인력과 시스템을 확대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체육인들은 외국처럼 체육인들을 위한 재단 또는 공제회를 만들어 이 기금으로 은퇴 체육인들을 위한 취업 교육 및 취업 관련 서비스를 확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체육인 출신인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은 이러한 내용을 근간으로 하는 체육인복지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기관을 계속 늘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은퇴 선수의 재취업을 도와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새 재단을 설립하기보다는 현행 체육인 복지 규정을 통해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가톨릭관동대 박종훈 교수는 “현재의 체육인 복지제도는 소수의 선수 및 지도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전체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적다. 현재의 체육인 복지 사업을 재검토해서 은퇴 선수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이원홍 bluesky@donga.com·강홍구 기자}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 겸 아시아산악연맹회장이 6일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황금피켈상 시상식에서 일본의 타다오 간자키 아시아산악연맹 고문과 함께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이 회장은 대한산악연맹과 아시아산악연맹을 이끌면서 산악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타다오 고문은 1970년 일본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지원하는 등 일본 산악계에 남긴 업적으로 수상자가 됐다. 산악전문지 ‘사람과 산’이 개최하는 ‘아시아 황금피켈상’은 신루트 개척 및 초등 정 등 고난도 등반 업적을 남기거나 진보적이고 친환경적인 등반을 펼친 산악인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산악전문가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한다. 10회 째인 올해 ‘아시아 황금피켈상’ 후보로는 중국과 일본의 등반대가 추천을 받았으나 등반도중의 사고와 낮은 등반 난도 등의 이유로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