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원홍]10대들의 도박과 국가불행의 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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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아버지한테 맞기도 했지만 도박을 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A 군(17)은 그동안 도박으로 600만 원가량을 잃었다. 중학생이던 15세 때 선배의 권유로 온라인 도박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홀짝을 맞히는 온라인 사다리게임, 불법 스포츠 도박, 온라인 카지노 등을 했다. 일주일에 6일 정도 도박을 했고, 금액은 평균 10만 원이었다. 주변에서 돈을 빌려 도박을 하다 100만 원이 넘는 빚이 생기자 부모가 이를 갚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돈이 필요해지자 주변의 물건을 훔쳤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기로 하고 돈만 받고 물건을 주지 않는 등 사기 행위도 저질렀다. 결국 치료를 위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찾게 되었다.

17일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와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지정한 도박중독 추방의 날이었지만 연휴 분위기에 가려진 면이 없지 않다.

최근 우려되는 것은 10대들의 도박이다. 접근이 용이한 모바일 등을 이용해 청소년 도박이 늘어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동안 정책적으로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본보가 불법 스포츠 도박의 세계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사설 사이트 운영 관계자 A 씨는 “남자 고교생 중 3분의 2는 스포츠 베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공식 실태조사 결과만으로도 청소년들의 도박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에야 전국 규모의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전국의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2학년 1만4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5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1.1%에 해당하는 학생이 문제 수준에, 4%의 학생이 위험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도박문제관리센터는 전국의 학생 2만9000여 명이 문제 수준, 11만여 명이 위험 수준의 도박 문제를 안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 수준은 지난 3개월간 반복적인 도박 경험이 있으며 심각한 정도의 자기 조절 실패를 겪었고, 그에 따른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폐해 역시 심각한 상태를 말한다. 위험 수준은 지난 3개월간 도박을 한 경험이 있으며 자기 조절 실패에 따른 심리 사회 경제적 폐해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박을 해 본 청소년의 비율은 도박을 해 본 성인의 약 3분의 1 수준이지만 도박중독 문제가 나타나는 비율은 비슷하다. 일단 도박에 발을 들이면 청소년들이 더 쉽게 중독된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주로 하는 사다리게임과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함께 운영하는 사이트도 늘고 있다. 한 사이트에 들어가 두 가지 게임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과 스마트폰 환경을 자랑하는 한국은 그만큼 청소년들의 도박 방지에 취약하다.

정부는 그동안 불법 도박 대응책 마련에 부심해 왔다. 사감위와 경찰 등이 불법 도박 근절을 위한 특별사법경찰권 제도 도입 등 수사 권한과 조직 개편 등을 놓고 갑론을박해 왔다. 그 사이 정부의 대책이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것은 명백하다. 지난해 불법 도박 규모는 총 83조8000억 원으로 2011년의 75조1000억 원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불법 도박 문제는 커졌고 그 폐해는 청소년에게까지 번져가고 있다.

요행수를 바라는 도박은 성실함과 노력을 등한히 하게 만든다. 잘못된 가치관은 결국 개인을 파탄으로 몰고 가고 사회를 흔든다. 미래의 기둥인 10대들의 도박을 방치할 경우 국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정부는 10대 도박 문제를 포함해 불법 도박 대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온라인 도박#10대 도박#도박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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