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원홍]마라도나 펠레, 그리고 패배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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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마라도나 기원(紀元) 56년 7월 11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포르투갈)는 그라운드 위에 주저앉아 울었다.

마라도나 기원은 아르헨티나의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를 신(神)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사용한다. 이들은 마라도나의 출생 연도인 1960년을 원년으로 삼고 있다. 2016년인 올해는 마라도나 기원 56년이 되는 셈이다. 축구광들을 중심으로 1998년 아르헨티나에서 창시된 ‘마라도나교’의 신도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마라도나야말로 신이 인간의 육체를 빌려 태어난 존재라고 여긴다.

호날두가 눈물을 흘린 것은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우승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전반전에 부상으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자 안타까워 울었고 경기가 끝난 뒤엔 우승 감격 때문에 울었다. 이날은 76세의 축구황제 펠레(브라질)가 34세 연하의 일본계 브라질 여인과 생애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이었다.

호날두의 눈물 위에는 어쩔 수 없이 마라도나와 펠레의 모습이 짙게 떠오른다. 호날두가 그토록 원했던 메이저 대회(월드컵과 대륙선수권) 트로피는 그로 하여금 마라도나와 펠레로 상징되는 축구계의 ‘신’과 ‘황제’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167cm의 단신이었던 마라도나는 신체의 무게중심이 낮았다. 이를 이용한 안정적인 드리블이 장점이었고 강한 슈팅과 패스 능력을 겸비했다. 펠레는 양발 사용 능력 및 점프력을 비롯한 전체적인 운동 능력이 뛰어났다.

기술적인 면으로만 보면 호날두의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29·아르헨티나)가 마라도나와 펠레보다 낫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메시는 드리블 능력과 좁은 공간에서의 볼 컨트롤 능력이 높이 평가받는다. 호날두(185cm)는 메시(170cm)보다 큰 키를 이용한 제공권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보여 왔다.

팬들이 마라도나와 펠레를 추앙한 것은 혼자의 힘으로 경기의 흐름과 상황을 바꾸며 대회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 때문이었다. 과감함, 직관력과 창의력, 카리스마가 결합되어 나타난 이 능력은 마라도나에게 1986년 월드컵 우승컵을 안겨 주었고 펠레에게는 1958년, 1962년, 1970년 3차례의 월드컵 우승을 안겼다.

호날두와 메시에게는 바로 이러한 능력이 마라도나와 펠레에 비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고 그들의 국가대표팀을 한 번도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이끈 적이 없었다는 점이 그 증거로 거론됐다.

팬들은 이들을 비교하며 누가 가장 위대한 선수인가를 놓고 자주 격론을 벌인다. 그러나 기록과 업적으로만 선수를 평가하고 응원해야 하는가. 축구를 보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즐겁기 위해서다. 축구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주자는 것은 세계 각국의 축구협회가 내건 목표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즐거움과 감동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계기에 따라 각자 응원하는 선수는 다를 수 있다. 이러한 계기는 승패를 떠나 다양하게 존재한다. 우리의 마음은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와 희생의 과정에서도 움직인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마라도나와 펠레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패배 속에 있던 주변의 많은 선수를 응원할 수 있다. 그것은 축구라는 무대를 떠난 인생극장 속에서도 우리가 업적과 재력 혹은 그 어떤 권력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때로는 감동과 애정이 그 어떤 위업을 나타내는 수치보다 소중할 때가 있다. 아무리 배운 것 없고 지위가 낮아도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것처럼. 혹은 아무리 고난에 처해 있어도 우리가 우리의 친구들을 응원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생의 어떤 순간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선수는 우리를 감동시킨 선수, 혹은 우리가 응원하는 선수이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호날두#마라도나기원#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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