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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종인가?” “양파 같은데.”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사람들의 발길을 붙드는 작품이 들어섰다. 국내에선 처음 실시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AP)’ 당선작인 프로젝트 그룹 ‘문지방’의 작품 ‘신선놀음’이다. YAP는 1998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신진 건축가 발굴 프로그램. 그늘, 쉼터, 물을 주제로 파빌리온(임시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미션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그늘이 없는 서울관 넓은 마당에 여름마다 젊은 건축가들의 파빌리온을 설치하기로 하고 YAP에 합류해 올해 1회 건축가를 선정했다. ‘신선놀음’의 미덕은 관람객이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 서울관 마당에 깔아놓은 돌을 들어낸 뒤 잔디를 깔고, 구름을 표현한 그러나 마늘종처럼 보이는 지름 2m, 높이 3∼5m의 풍선 60개를 설치해 그늘을 만들었다. 곳곳에 세워둔 안개기둥에선 물안개가 뿜어져 나와 시원함과 신비로움을 더한다. 풍선 사이에 나무로 설치한 구름다리에 오르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신선놀음을 경험할 수 있다. ‘문지방’의 최장원(33) 박천강(36) 권경민 작가(35)는 중앙대 한동대 숭실대를 나온 국내 건축계에선 ‘비주류’ 출신이다. 이들을 한데 모아준 인연은 건축가 조민석 소장의 설계사무실인 ‘매스스터디스’. 조 소장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 한국관 커미셔너로 참가해 황금사자상을 받아낸 인물이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신선놀음’에서 조 소장의 작풍(作風)을 읽어내는 이들도 있다. 최 작가는 “매스스터디스에 있으면서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건축뿐만 아니라 설치미술이나 전시와 같은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며 “‘문지방’이라는 프로젝트 이름도 장르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현대미술관, 현대카드와 공동 주최하는 서울관의 첫 건축전으로 10월 5일까지 제7전시실에서는 ‘문지방’을 비롯해 최종 후보군에 오른 3개 팀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과학과 역사를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남자가 아내에게 물었다. “왜 하루 종일 다큐멘터리만 틀어주는 TV는 없지? 내가 해볼까?” 아내가 되물었다. “멋진 생각인데, 왜 테드 터너(CNN 설립자)가 아직 만들지 않은 거지?” 때는 1982년. 뉴스 전문 CNN, 스포츠 전문 ESPN, 영화 전문 HBO가 주목받던 때였다. 논픽션 전문 채널을 떠올린 사람은 있었겠지만 다들 “될 거면 벌써 누군가가 했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CBS가 과학 프로그램 ‘유니버스’를 방영하다 관둔 선례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사업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결론을 내렸다. “테드 터너가 실수한 거다.” 이렇게 해서 1985년 6월 개국한 논픽션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는 개국 30년 만에 215개국 18억 명의 가입자에게 28개 채널을 제공하는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했다. 디스커버리의 설립자가 쓴 이 책은 오락물이 범람하는 TV 시장에서 교양물 전용 TV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경영전략을 담고 있다. ‘틀면 나오는 TV’에서 ‘장르 선택 TV’로, 다시 ‘프로그램 선택 TV’로 진행돼온 TV 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돌아보는 재미도 준다. 저자는 시장의 흐름을 앞서 읽어내고 먼저 움직였다. 1993년 주문형 비디오(VOD)와 비슷한 서비스인 ‘유어 초이스 TV’를 내놨고, 고화질(HD) 프로그램과 3차원(3D) 채널도 가장 먼저 선보였다. 1992년엔 전자책 아이디어까지 내 전자책 리더기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미디어 경영의 귀재인 그도 아직 해답을 얻지 못한 난제는 주문형 TV의 시대에 실시간 TV를 보존하는 방법이다. 원제는 ‘A Curious Discovery(호기심 많은 디스커버리)’.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다른 방송사는 정정보도를 했는데, KBS는 11시 26분경 전원 구조(됐다고) 방송을 했다.” “(MBC는) 전원 구조 보도를 시정했다는 11시 23분 이후에도 전원 구조 발언을 했다.” 언론의 오보 실태를 조명하는 세미나에서 오고 갈 법한 얘기들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7일 KBS와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를 불러 방송사의 세월호 오보 경위를 추궁하는 데 긴 시간을 할애했다. “왜 오보를 냈느냐”는 의원들의 질타와 관계자의 사과가 오갔을 뿐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특위는 이날 불참한 MBC 간부들에게 다시 출석을 요구하기로 했다. 공영방송 KBS와 MBC는 국회 국정감사 대상이므로 국회가 관계자 출석을 요구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언론 자유 침해”라며 출석 요구를 거부한 MBC에 대해 “오만하고 초법적이고 무책임한 국정조사 거부 행태”라고 의원들이 비난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MBC의 대응을 비판하기 전에 국회가 출석을 요구할 만한 사안이었는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이날 의원들은 세월호 탑승자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낸 경위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아무리 공영방송사지만 경영상의 문제나 불공정 방송이 아닌 오보를 이유로 국회가 방송사를 부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오보는 직업윤리에 관한 문제이지 국회가 따질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회가 나서지 않아도 방송사의 부실보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재하고, 부실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는 언론중재위원회가 맡는다. 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세월호 보도 경위가 이번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핵심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가 언론사를 부른 건 실효도 없을뿐더러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위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이 없는 보도 간부들의 법인카드 사용 명세까지 요구함으로써 “세월호 보도를 방송사 길들이기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MBC의 항의에 힘을 실어줬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기자들은 “내가 보도를 제대로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를 반문하며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언론 관련 단체들은 재난보도 윤리규정을 새롭게 손질하고 있다. 세월호 부실 보도는 “내 탓이오”를 외치는 언론인들의 자성 속에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책을 모색해야 할 일이다. 국회가 나설 일이 아니다.이진영·문화부 ecolee@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媛) 여사는 3일 방한 첫날부터 세련된 패션과 언행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국 국민가수 출신으로도 유명한 펑 여사는 이날 청와대 공식 환영식 참석 직후 곧바로 창덕궁으로 향하는 등 한국의 전통문화 체험에 나서며 공공외교 대사로서의 행보를 보였다. ○ 단아한 ‘패션 외교’ 펑 여사는 세계적 베스트 드레서다운 ‘공항 패션’을 선보였다. 짧은 재킷과 그러데이션(경계선의 색이 단계적으로 변하게 한 것)을 넣은 블라우스 등을 통해 단아하면서도 현대적인 패션 감각을 뽐냈다. 펑 여사의 옷에서 한국적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흔적이 보인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정연아 이미지컨설턴트협회장은 “재킷의 짧은 길이와 어깨 아랫부분에 들어간 주름, 곡선형의 소매 등은 한국의 저고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블라우스의 에메랄드 색은 고려청자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현숙 동덕여대 교수(패션디자인학)는 “전통복식과 문화를 고려한 의상을 통해 상대국을 배려하고 패션을 전략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날 펑 여사가 입은 의상들은 대부분 ‘메이드 인 차이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짙은 주황색 재킷을 입어 붉은색을 좋아하는 중국을 배려했다.○ 퍼스트레이디 역할 대행한 정무수석 펑 여사의 창덕궁 방문에는 조윤선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동행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나갈 때도 따로 두지 않았던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펑 여사의 의전을 위해 특별히 맡긴 것. 조 수석은 펑 여사가 전용기에서 내릴 때부터 의전을 시작했다. 펑 여사는 조 수석의 안내에 귀를 기울이며 창덕궁과 후원을 30여 분간 구석구석 둘러봤다. 펑 여사는 특히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보였다. “한국 드라마를 보느냐”는 조 수석의 질문에 “내 딸이 한국 드라마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조 수석이 한글 ‘별’과 ‘꽃’ 모양의 병따개를 선물하자 펑 여사는 중국에서 한류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언급하며 “우리 남편이 ‘별에서 온 그대’였으면 좋겠다”고 재치 있게 답했다. 비가 내리던 궂은 날씨가 개자 조 수석은 “날씨가 다행히 좋은 것도 펑 여사 덕택”이라고 덕담을 했고 펑 여사는 “박 대통령 덕분”이라고 답했다. 조 수석은 중국 고사 등을 인용하며 펑 여사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조 수석은 펑 여사 의전을 앞두고 기본적인 중국어 표현을 익히고 펑 여사에 대해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이 요청한 창덕궁 방문 펑 여사의 창덕궁 방문은 중국 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나선화 문화재청장과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달 만난 자리에서 “펑 여사가 방문한다면 창덕궁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중국대사관이 이를 본국 정부에 전달하면서 성사됐다는 것. 그동안 한국을 방문한 국빈들은 고궁 가운데 경복궁과 창덕궁을 선호했다. 문화재청이 선정하는 것은 아니고 각국 대사관이 한국 외교부에 요청하면 문화재청이 안내를 맡는 형식이었다.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이란 상징성이 크다.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관심이 큰 것으로 보인다.이현수 soof@donga.com·정양환·김범석 기자}

“앞을 내다보려면 지난 100년을 돌아봐야 하는데 우리는 앞만 내다보고 살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0년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개된 건축사를 짚어보는 전시는 매우 시의 적절했다.” 한국관을 총괄하는 조민석 커미셔너(48·사진)는 수상 소감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번 전시가 남북의 건축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보여주는 작지만 긍정적인 모범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관이 1등상을 차지한 비결에 대해선 “외국인들이 모더니즘 전파의 사각지대인 남북한에서 진행된 건축 작업을 보고 모더니즘의 마지막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 듯하다”고 해석했다. 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에 공동 전시를 하자고 제안했지만 불발됐다.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가 전시장을 찾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한국관 전시 제목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는 건축가 출신 시인 이상의 시 제목 ‘오감도’에서 따 왔다. 이 제목엔 북한의 불참으로 한반도 근대 건축사를 온전하게 ‘조감’하지 못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는 “언젠가 남북한이 국기 두 개를 무난하게 걸어놓고 어떤 극적인 요소도 없이 그냥 좋은 건축전시를 열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그땐 전시 제목도 단순하게 ‘조감도’라고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건축가들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에서는 “남북이 공동으로 온돌 문화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노력하자”는 제안도 했다. 이번 한국관 우승을 계기로 조 커미셔너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연세대 건축공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네덜란드 설계사무소 OMA에서 일한 뒤 2003년 귀국해 설계사무소 매스스터디스를 꾸려 활동해왔다. 서울 강남의 주상복합 빌딩 부티크모나코(2008년), 다음 제주 본사 사옥(2011년), 건축 부문 은상을 수상한 2010 상하이엑스포 한국관으로 국내 건축계에선 미래의 프리츠커상 수상 후보로 꼽힐 정도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올해 동아일보의 ‘한국을 빛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베네치아=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계 건축계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의 근대 건축이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한국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안창모 경기대 교수) “미술 올림픽에서 한국의 건축적 실천이 세계적으로 처음 인정받았다. 건축가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건축과 건축가가 모두 인정받은 것이다.”(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이탈리아에서 열린 세계 최대 건축 축제인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7일(현지 시간) 남북한 근대 건축을 다룬 한국관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198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하기 시작한 후 한국관이 1등상을 수상한 것은 미술전과 건축전을 합쳐 이번이 처음이다.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반다린 심사위원장은 “한국은 긴장이 고조된 정치 상황에서 새롭고 풍부한 건축 지식을 제공하고, 다양한 전시 형식을 통해 건축적 서사를 지정학적 현실로 확장했다”고 평가했다. 2등상인 은사자상은 칠레가, 3등상인 특별상은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가 받았다. 남북한의 근대 건축사 100년을 조망한 한국관의 전시 ‘한반도 오감도’는 5일 개관 직후부터 65개 참가국 중 최고라는 평과 함께 수상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개막식 전 각국의 전시관을 돌며 점수를 매기는 심사위원들이 유독 한국관에 오래 머물며 관심을 표했기 때문이다. 한국관의 1등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후 베네치아(베니스) 카스텔로공원 구석에 있는 240m²(약 73평) 규모의 한국관에는 외국인들이 몰려들어 전시를 관람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한국이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한 지 28년 만에 이룬 쾌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분단’은 세계가 주목하는 이슈 가장 큰 수상 비결은 분단이라는 소재의 힘이다. 올해 국가관의 공통 주제가 ‘근대성의 흡수: 1914∼2014’로 정해지자 조민석 커미셔너(48)는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성을 강조한 전시로 승부수를 던졌다. 남북한 공동 참여는 불발됐지만 전시물의 60%를 북한 관련 자료와 작품들로 채웠다. 건축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는 북한만의 독특한 건축사에 세계 건축계가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공동 큐레이터인 안창모 교수는 “한반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교류 없이 독자적인 도시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이념이 도시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일한 곳”이라며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전시여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분단이란 화두는 1995년 한국이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을 제치고 카스텔로공원에 26번째이자 마지막 국가관인 한국관 설립 허가를 받아낼 때 활용했던 카드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관 건립을 주도했던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은 1994년 베네치아 시장에게 그림 편지를 보내 “베니스비엔날레 100주년(1995년)을 맞아 이념으로 분단된 유일한 국가인 남과 북이 함께 참여해 핵 문제를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당신은 노벨 평화상을 받을 것이다”고 설득했다. ○ 다국적 작가들의 힘, 공개경쟁의 힘 한국관 참여 작가 29개 팀 가운데 한국 팀은 14개이고, 15개 팀이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스페인 리투아니아 등 외국 국적의 작가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는 건축가뿐만 아니라 사진작가, 화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미술품 수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해 이념과 건축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채로운 시각으로 흥미롭게 풀어내 한국 근대사에 문외한인 외국인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공동 큐레이터인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는 “북한과 건축 분야의 교류가 거의 없어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와 달리 북한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외국인들이 연구하고 수집해놓은 자료는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는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비공개 회의를 통해 커미셔너를 선정해온 관례를 깨고 올해 건축전부터 공개경쟁을 거쳐 커미셔너를 선정했다. 그 덕분에 조 커미셔너는 세계무대에서 먹히는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의 힘으로 국내 건축계의 선배들을 제치고 역대 최연소 커미셔너가 될 수 있었다. 조 커미셔너는 올해 건축전 총감독인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운영하는 설계사무소 OMA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건축전을 찾은 국내 건축가들은 한국관의 수상 소식에 “조민석의 전시 감각과, 유창한 영어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해외 인맥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경사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에는 못 미치지만 한국의 건축과 조민석이라는 건축가 개인이 모두 세계무대에서 상당한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베니스비엔날레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국제 미술전. 휘트니비엔날레, 상파울루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힌다. 홀수 해엔 미술전이, 짝수 해엔 건축전이 열린다. 한국은 1986년 이탈리아관의 작은 공간을 빌려 참가하기 시작했고, 1995년 26번째로 독립된 국가관인 한국관(김석철 설계)을 건립했다. 1995년 한국관 개관 첫 회 전수천 작가를 시작으로 1997년 강익중 작가, 1999년 이불 작가 등 미술전에서는 연속으로 3회 특별상을 받았다. 1993년 미술전에서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이 독일관 공동 대표로 참가해 독일관이 황금사자상을 받은 적이 있다. 베네치아=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이념은 남북한 도시 풍경을 어떻게 갈라놓았을까. 한반도는 도시와 건축 전문가들에게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서구의 근대 건축문화 수용 과정에서 이념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5일 오후(현지 시간) 개막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은 29개 팀이 참여해 한반도의 근대를 건축으로 돌아보는 전시로 꾸몄다. 주제는 ‘한반도 오감도’. 국가관의 공통 주제가 ‘근대성의 흡수(1914∼2014)’로 정해짐에 따라 남북으로 나뉘어 전개돼온 근대 건축의 역사를 북한과 공동 전시하려 했으나 불발되자 온전한 ‘조감(鳥瞰)’을 못한다는 뜻에서 ‘오감(烏瞰)도’라고 지은 것이다. 이 제목은 건축가 출신 시인 이상의 작품 ‘오감도’에서 따왔다.○ 양김이 주도한 재건 프로젝트 전시는 전후 남북한의 대표 도시인 서울과 평양의 재건을 주도한 건축가로 김수근(1931∼1986)과 김정희(1921∼1975)를 소개한다. 김수근은 일본 유학 후 돌아와 세운상가, 경동교회, 올림픽주경기장을 포함해 200개가 넘는 건축물을 설계했다. 모스크바 유학파로 ‘북한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희는 평양 재건 마스터플랜을 설계했고, 평양 도시계획국장을 지내면서 1960년대 재건 사업을 이끌었다. 미국 보스턴의 설계사무소 PRAUD 임동우 소장은 자본주의 도시와 비교되는 평양 도시계획의 특징으로 △도시 내에 생산 기능을 갖추고 △도농 간 격차 해소를 위해 녹지를 도시 내로 끌어들여 도시의 확장을 제한하며 △체제 선전을 위해 북한 전역에 14만 개가 넘는 선전용 기념비와 동상을 건설한 점을 들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도시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 서울 세종로와 평양 김일성광장이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정부청사와 문화 및 상업 시설이 혼재돼 있는 세종로와 달리 평양은 인민대학습당과 김일성광장을 중심으로 좌우에 종합청사와 조선혁명박물관, 중앙미술박물관을 배치했다. 안창모 경기대 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는 “도시 중심부엔 근로자를 위한 문화시설을 건설하라는 김일성 지침에 따른 것”이라며 “이는 도시의 주인이 근로자임을 밝혀 사회주의의 우월함을 드러내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건축으로 체제 경쟁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익숙한 서울보다는 평양의 거리다. 김일성종합대를 비롯해 광복 직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신고전주의 양식을 띤다. 소련의 지원으로 도시를 재건하던 시기여서 동유럽 건축 양식이 주류를 이룬 것이다. 1960년대 이후엔 평양대극장이나 옥류관 같은 기와지붕을 얹은 건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건축설계는 민족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김일성의 ‘주체건축론’에 따라 신고전주의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전통 건축 양식이 들어섰다. 흥미로운 점은 남과 북이 독자적인 근대 건축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도 서로를 의식했다는 점이다. 특히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군사적 경쟁이 완화되자 체제 우위 경쟁은 도시와 건축으로 옮겨왔다. 불국사와 법주사의 팔상전을 본떠 만든 국립민속박물관(1975년)은 크고 작은 기와지붕을 얹은 인민대학습당(1982년)과, 전통 한옥의 목조 공법 양식을 차용한 세종문화회관(1978년)은 지붕 부분에 한옥의 자취가 남아 있는 개선문(1982년)과 다른 듯 닮았다. 서울과 평양은 아파트 의존도가 높다는 공통점도 있다. 참여 작가인 스페인 건축가 마르크 브로사 씨와 임동우 소장의 전시 자료는 아파트가 남한에선 중산층의 상징이고, 북한에선 인민을 위한 주거 형태임을 보여준다. 안전을 무시한 속도전도 남과 북이 닮은 걸까. 1957년에는 ‘평양의 속도’라는 표어 아래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의 아파트를 짓는 운동이 전개됐다. 조립식 아파트를 14분 만에 완성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회주의 건축을 연구하는 세르비아 건축가 옐레나 프로코플례비치 씨는 “김정은도 마식령 스키 리조트를 지으면서 ‘마식령 속도’를 주문했다. 기록적인 시간 내에 건설을 마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시스템과 이념, 조직의 경직성으로 북한의 건축적 혁신은 이미지 영역에서만 일어나고 있다”며 “북한은 여전히 중앙집중화된 배타적인 사회주의 성채이고, 건축은 그것을 충실히 반영하는 존재”라고 평가했다.베니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나는 KBS 최초의 민선 사장이다.” 서영훈 전 KBS 사장(1988년 11월∼1990년 3월)은 재임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의 성과로 KBS엔 자율적 의결기구인 이사회가 생겨나 사장의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서 전 사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친 최초의 사장이었다. 집권당이 KBS 사장을 내려보내는 관행을 끝내려는 의미 있는 제도 변화였다. 그러나 최초의 민선 사장은 최초로 해임된 민선 사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물러났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약 17억 원의 수당을 부당 지급한 것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그는 “KBS가 정부에 비협조적이어서 일어난 일”로 보고 “사임 압력을 느껴”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사표를 냈고, 이사회는 사장의 해임안을 의결했다. 서 전 사장부터 지금의 길환영 사장까지 KBS의 ‘민선’ 사장은 모두 9명이다. 이 중 3년 임기를 다 채운 사장은 서기원(1990년 4월∼1993년 3월), 김인규 전 사장(2009년 11월∼2012년 11월) 둘뿐인데 이들도 험한 꼴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노조는 친정부적 인물이라며 사장의 출근길을 막아섰고, 서 전 사장은 경찰의 무력 진압과 직원 연행에 힘입어 출근할 수 있었다. 노조는 36일간 제작 거부를 했다. 김인규 전 사장도 같은 이유로 노조의 출근 저지를 당했고, 임기 후반엔 노조가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93일간 총파업을 벌였다. 홍두표(1993년 3월∼1998년 4월) 박권상 전 사장(1998년 4월∼2003년 3월)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정권이 바뀌자 자진 사퇴했다. 연임된 정연주 전 사장(2003년 4월∼2008년 8월)은 정권이 바뀐 뒤로도 임기를 채우려다 쫓겨났다. 그는 이사회가 해임한 두 번째 사장이다. 이번엔 길 사장 차례다. 양대 노조가 파업 중인 가운데 이사회는 5일 길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안을 논의한다. 해임 사유는 사장의 보도 통제 논란으로 KBS의 공신력을 훼손했고, 세월호 부실 보도의 최종 책임자이며, 올 3월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듯 경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KBS 사장의 잔혹사가 27년째 되풀이되는 이유는 민선 사장제가 도입된 후로도 정치권이 방송으로 재미 보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아서다. 여야의 추천을 받아 구성된 이사회는 국민을 대신하는 감독자가 아니라 정치적인 대리인 역할을 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돌아온다. 지난달 19일 시작된 방송 파행은 3일까지 16일째 이어지고 있다. KBS 구성원들이 자인했듯 ‘재난이 돼 버린 재난 주관 방송사’를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는 정부라면 더욱 그렇다. 민선 사장이 임기를 채우기 힘들고, 노조가 시청자를 볼모로 연례행사처럼 파업하고, 부실 방송을 보면서도 수신료는 꼬박꼬박 내야 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KBS 문제는 국정 개혁 과제가 돼야 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공영방송이 꼭 있어야 하나. 만약 공영방송이 필요하다면 사장은, 그리고 이사회는 어떻게 뽑는 것이 정치적 독립성을 담보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KBS의 방만 경영과 무책임한 파업을 수신료 거부운동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수신료와 전기료 통합 징수제를 폐지할 필요는 없는가. 막장 드라마보다도 더 막나가는 KBS 사장 잔혹사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소설이 아니라 시(詩)다. 그의 사진은 수다스러운 법이 없다. 빛과 그림자가 건축 공간에 그려내는 움직임을 아날로그 필름에 조용히 담아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건축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독립된 예술품으로 평가받는다. 건축 사진작가 헬렌 비네(55)가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와 SPLK건축사사무소의 경북 청도 혼신지 주택 촬영을 위해 21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진과 예술사를 공부한 뒤 영국 런던에서 일한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스위스의 페터 춤토르와 영국의 자하 하디드, 뉴욕 세계무역센터 재건 마스터플랜 설계자인 미국의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비네의 눈으로 본 내 건물이 궁금하다”며 촬영을 맡기는 단골 고객이다. 혼신지 주택과 DDP를 4일씩 찍은 뒤 호텔에서 쉬고 있는 그를 SPLK의 김현진 소장과 함께 출국 전날인 지난달 31일 만났다. ―DDP(8만6574m²·약 2만600평)와 혼신지 주택(200m²·약 60평)은 규모가 다르다. 왜 사진 찍는 데 똑같은 시간이 걸리나. “빛에 따라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달라지기 때문에 작은 건물도 시간이 필요하다. 빛은 공간을 드러내고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필수적이다. 내겐 보스(Boss) 같은 존재다. 사진가는 농부 같다. 해 뜨면 일어나 해질 때까지 일하고, 겨울보다 여름에 오래 일하고.” ―DDP는 서울의 역사와 주변 맥락을 무시한 건물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많은 사람이 모여 즐기는 건물이다. 그럼 된 것 아닐까. DDP는 제스처가 강한 건물이다. 그래서 반응도 강렬한 것이다. 무난하게 지었다면 아무런 반응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하 하디드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독일 비트라소방서(1993년) 촬영 때 만나 지금껏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20년 지기에 대해 “결코 돌아가지 않고, 타협하는 법이 없다. 그는 아름답게 직선적인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사진을 보고 건물이 예뻐 보러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리베스킨트는 “비네의 사진은 건물에 아양 떨거나 건물을 예쁜 그림으로 바꿔놓지 않는다. 건물 내면의 긴장감을 개념적으로 드러낸다”고 했다. 좋은 건축 사진이란…. “건물에 대해 비평하려는 게 아니다. 건물에 대해 꿈꾸게 하고, 건물이 내 고유의 목소리로 노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이어야 한다.” ―왜 필름만 고집하나. “아날로그 사진은 하루 20∼30장밖에 못 찍는다. 수정도 못한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한순간에 100% 집중해야 한다. 디지털로 찍어 수정 작업을 하니 요즘 사진을 보면 모든 사람과 건물이 똑같아 보인다. 난 리얼리티를 원한다.” ―흑백 사진을 주로 찍는 이유는…. “건축에서 받은 감정을 전달하기란 매우 어렵다. 거기에 색까지 들어가면 더욱 방해받는다. 나는 많은 걸 보여 주려 하지 않는다. 하나에만 집중한다. 어둠 속에서 잘 들리듯 단순해야 강렬해진다.” ―세계 여러 도시와 건축가를 경험해봤다. 어디서 누가 설계한 집에 살고 싶은가. “강한 과거에 기대어 사느라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에너지가 없는 로마보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런던이 일하기엔 좋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가 지은, 디자인이 과한 집은 싫다. 여기저기 고장 났더라도 오래된 집이 좋다. 집이란 그런 거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지배구조를 개선하자.’ KBS의 정치적 외압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대책이다. 이 역시 수년째 되풀이돼 온 ‘KBS 공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공영방송 이사회가 사회의 다양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고 사장 선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3월 여야 의원 18명이 참여하는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가 꾸려졌다. 위원회는 여야 나눠먹기식으로 구성되는 KBS 이사회 선임 절차부터 문제 삼았다. 여야 추천 이사 비율이 7 대 4이고, 사장 선임은 재적이사 과반수로 결정하다 보니 여권이 선호하는 인물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여야 5명씩 동수로 추천한 방송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은 △사회적인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사 수를 11명에서 13명으로 늘리고 △여야 추천 비율을 7 대 6으로 조정해 과도한 불균형을 바로잡으며 △사장 임명 제청과 같은 ‘정치성 짙은’ 안건은 재적이사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 또는 5분의 4가 합의해야 하는, 일명 ‘특별다수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현행 11인 체제에서 특별다수제를 도입할 경우 사장 임면 제청권을 행사하려면 8명 이상, 다시 말해 야당 추천 이사가 최소한 1명은 동의해야 결정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하고 지난해 11월 활동을 종료했다. 18, 19대 국회에서도 특별다수제 도입을 포함한 여야 의원들의 방송법 개정안이 5건 제출됐지만 진전은 없었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야당은 언제나 특별다수제를 요구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입장이 바뀌어왔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방송학자는 “여당 추천 자문위원들도 합의한 특별다수제를 위원회에서 채택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며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차기에 집권할 것을 기대하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에 미온적인 편”이라고 비판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저자는 나무 위에 집을 짓는 일을 한다. 트리하우스 빌더다. 그동안 작업했던 트리하우스를 사진 위주로 소개한 책이다. 트리하우스의 시초는 인도네시아 파푸아 밀림에 사는 코로와이족이 나무 위에 지은 집이다. 이들은 지상에서 46m 높이로 올라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는 아찔한 절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맹수와 모기와 적들을 피해 안전하게 쉴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생존을 위한 주거 유형이 ‘새로운 아웃도어의 세계’로 해석된 때는 15세기 후반에 시작된 대항해 시대다. 유럽인들은 동남아시아 원주민들이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게 부러웠던지 귀향해 트리하우스를 짓기 시작했다. 저자에게 트리하우스 제작을 의뢰한 이들의 사연은 가지가지다. 숨진 딸의 생전 소원이었다며 집 옆 나무 위에 집을 지어달라는 부모, 매장 홍보를 위해 도시형 트리하우스를 지어달라는 패션 브랜드, 태풍에도 끄덕 없는 트리하우스가 필요하다는 오키나와 사람…. 도쿄 아가리에 유치원의 트리하우스엔 계단이나 사다리가 없어 가운데 봉처럼 생긴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한다. 아이들의 체력과 담력을 키워주기 위한 ‘배려’란다. 트리하우스가 세계적인 유행이라지만 원폭과 패전, 지진과 쓰나미를 겪은 일본의 경우 다른 해석이 나온다. 폐허에 대한 트라우마가 원시적인 건축물을 찾게 했다는 것이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특종 욕심 때문에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기자정신과 직업적 민폐는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정부의 발표 내용을 여과 없이 보도해 유족들에게 상처를 준 나도 가해자다.” 21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관훈클럽이 주최한 세미나 ‘재난보도의 현주소와 과제’는 세월호 참사를 보도했던 기자들이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드는 자리였다. 먼저 방문신 SBS 8시뉴스 편집부장이 말문을 열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는 매몰돼 있다가 막 구조된 사람에게 조명을 들이대며 취재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 재난보도는 개선됐다. 그럼에도 이번에 한국 언론은 뭇매를 맞았다.” 방 부장은 그 원인으로 △총체적 부실 대응으로 살 수도 있었던 생명들(대부분 학생)이 숨져 안타까움과 분노가 컸고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모든 언론 보도가 검증 대상이 됐으며 △정부의 잘못된 발표 내용을 언론이 그대로 전달해 불신을 자초했고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의 부재 논란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는 “방송사들은 세월호가 서서히 가라앉는 장면을 쉴 새 없이 보여줬다”며 “피해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심리적 충격도 고려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은 취재 경쟁으로 피해자들을 배려하지 못한 점을 후회했다. “구조된 생존자들에게 사고 당시 상황과 친구들의 안부, 휴대전화 동영상이 있는지를 물었다. 방송기자들은 ‘방금 했던 얘기를 다시 한번 해달라’며 카메라를 들이댔다.”(강은지 동아일보 기자) “현장 취재기자들이 어리다 보니 피해자들을 배려하기보다 서울에 있는 데스크의 지시를 따르기 급급했다.”(박기용 한겨레신문 기자) “유족들에게 왜 언론을 불신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이 상황이 발생하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을 텐데 그것은 보도하지 않고, 이제 와서 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받아들고 울고 불며 공무원의 멱살을 잡는 우리 모습만 보도하느냐’고 반문했다.”(박소영 한국일보 기자) 방청석에서는 “왜 대형 사고가 났는데 경험이 없는 신참 기자들만 현장에 갔느냐” “재난보도 준칙이 있음에도 왜 재난보도는 나아지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기자들은 몇 가지 개선책을 제안했다. 박만원 매일경제 지방팀장은 “현장에 취재진이 수백 명 몰려와 방을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들이 무제한 취재 경쟁에 돌입했을 때 결과는 뻔하다”며 “앞으로는 재난지역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협의체를 꾸려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연합뉴스 사진부 기자는 “배 위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취재하다 바다에 빠질 뻔했다. 재난 취재 장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방 부장은 “참사보도일수록 정확해야 하고 피해자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언론에 ‘닥치고 책임’을 요구한다. 감시와 견제라는 기본으로 되돌아가라는 메시지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19일 KBS 노조의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역대 KBS 사장들은 취임식을 갖기 전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과 함께 출근 저지 투쟁의 주인공이 됐다. 임기를 온전히 채운 사장도 드물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청와대의 인사 및 보도 통제가 이명박 정부 때인 김인규 KBS 전 사장 시절 시작됐다고 했다. 그러나 KBS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극에 달한 때는 이념 갈등이 격렬했던 노무현 정부의 정연주 전 사장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정부 출범 후 첫 KBS 사장으로 노 전 대통령 후보의 언론정책고문을 지낸 서동구 씨가 임명됐다. 하지만 그는 임명장을 받은 지 8일 만에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 속에 사표를 썼다. 서 전 사장의 후임으로 2003년 4월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을 지낸 정연주 전 사장이 임명됐다. 그는 이후 ‘인물 현대사’ ‘생방송 시사투나잇’ ‘미디어 포커스’, 드라마 ‘서울 1945’ 등을 통해 정권 편향적인 방송을 내보내 KBS는 그의 임기 내내 ‘코드 방송’이라는 비난을 샀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방송은 편파적이라는 지적을 받았고(한국언론학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피습 사건 때는 메인 뉴스에서 이를 축소해 다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 전 사장은 2006년 11월 연임됐지만 KBS 노조는 출근 저지 투쟁을 벌였고,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8월 부실 경영을 이유로 해임됐다. 후임자인 이병순 전 사장 때도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이 되풀이됐으며 그는 전임자의 잔여 임기만 채우고 물러났다. 이 전 사장과 함께 KBS 사장에 응모했다 사장이 된 김인규 전 사장은 드물게 임기를 채웠다. 그러나 노조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방송전략팀장을 지낸 전력을 문제 삼아 그의 출근을 막았으며, 본관 공개홀에서 열린 취임식 때는 조명을 꺼버려 김 전 사장은 비상등을 켜고 취임식을 했다. 김 전 국장은 “김인규 사장 시절부터 사장이 메인 뉴스의 큐시트를 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KBS가 바람 잘 날 없는 이유는 KBS 사장 자리를 집권에 따른 전리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KBS 사장은 방송법상 여당 쪽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KBS 이사회의 임명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이런 임명 방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누가 사장이 되건 정치적 외압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해적은 묘한 직업군이다. 해상 강도질로 먹고사는 범법자이지만 숱한 소설과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다. 학자들도 해적 사회를 오랫동안 추적해왔는데 이들의 연구 결과는 놀랍다. 해적 무리들이 17, 18세기에 일찌감치 민주주의를 시행했고, 분권을 통해 민주적 견제와 균형을 꾀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해적들의 정치 사회 의식이 남달랐기 때문일 리는 없다. 경제학자인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분석한다. 범죄적인 이기심이 해적선의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원제가 ‘보이지 않는 후크’(The invisible hook)다. 애덤 스미스 경제론의 해적판인 셈이다. 해적들은 1인 1표제의 원칙하에 선장을 다수결로 뽑았다. 이는 당시의 상선들이 선장의 독재체제로 운영됐던 것과는 대조된다. 그 원인은 소유 구조에 있다. 상선의 경우 선주가 있고, 배에 타지 않는 선주는 선장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선원들을 감시하게 했다. 반면 훔친 배인 해적선엔 선주가 없다. 해적선은 바다를 항해하는 주식회사 같은 것이었다. 해적들은 사무장을 따로 뽑아 선장의 권력 남용을 견제했다.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전시엔 선장이 해적선을 진두지휘했지만, ‘평시’에 전리품과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고, 분쟁의 시시비비를 가려 징계하는 권한은 사무장에게 있었다. 해적 규약의 경제학, 해골과 뼈다귀가 그려진 무시무시한 해적 깃발의 브랜드 전략, 해적선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까지 경제이론으로 들여다본 해적 사회가 흥미롭다. 해적 얘긴 데다 문장이 쉬워 경제학 개념이 낯선 청소년에게도 쥐여주고 싶은 책이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4·16 세월호 참사는 미국 뉴욕의 9·11 테러와 비교된다. 9·11은 외적의 공격을 받은 비극이고 세월호는 우리의 무능이 부른 참사지만, 9·11이 그러하듯 세월호 참사도 한국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분기점이 됐다. 본토는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자신감은 자살 테러로 무너졌고, 세계 15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던 우리는 침몰하는 배에서 선장이 가장 먼저 도망가는 나라로 전락했다. 2001년 발생한 9·11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공간이 사고 현장에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는 이름으로 조성한 9·11 추모공원이다. 이스라엘 출신 미국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와 조경 건축가 피터 워커의 작품이다. 이들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각각 깊이 9m, 면적 4000m²(약 1210평) 규모로 쌍둥이 연못을 만들었다. 테러 희생자 약 3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가장자리에서 그라운드 제로 쪽으로 물이 떨어지는 분수 연못이다. 연못 주변에 심어놓은 나무 가운데는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아 ‘생존 나무’라 불리는 배나무가 있다. 15일에는 공원 인근에 완공한 추모박물관 헌정식도 열린다. 송하엽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땅값이 비싼 맨해튼에 조성된 대형 추모시설은 테러의 아픔을 드러내며 세계인들에게 교훈을 주는 상실의 기념비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자리엔, 사고 몇 시간 뒤면 말끔해지는 교통사고 현장처럼 여전히 더 높은 빌딩이 지어지고 더 빠르게 차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사고를 기억하는 데 인색하다. 선원을 모두 살리고 배와 함께 침몰한 선장을 기리는 추모 동상은 있지만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참사를 증언하는 시설물은 없다. 502명이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2명을 잃은 성수대교 붕괴사고도 마찬가지다. 9·11 추모공원은 쌍둥이 빌딩 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9·11 당시 항공기가 건물 벽을 들이받아 184명이 목숨을 잃은 펜타곤은 파괴된 부분을 복구한 뒤 희생자들을 기리는 예배당과 추모의 복도를 짓고, 건물 밖엔 추모공원을 만들었다. 한국 국방부라면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남기는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부끄러움을 기억하기로는 독일이 한 수 위다. 베를린 중심의 2만 m²가 넘는 땅엔 2711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묘지처럼 늘어서 있다. 유대인 출신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의 설계로 종전 60주년인 2005년 5월 개관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수도 한복판에 ‘우린 가해자’라고 어두운 과거를 공언하는 이 상징물은 독일의 성숙한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명작으로 꼽힌다. 우리도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자. 그곳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의사자들의 살신성인 정신과 구조작업에 나섰던 이들의 희생적인 활동을 기록하는 곳이어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왜 일어났고, 구조를 책임진 이들은 소임을 다했는지 낱낱이 따져 묻는 곳이어야 한다. 뱃일을 하려는 이들에겐 ‘시맨십(뱃사람 정신)’을 다짐하고, 우리 모두가 다시는 못난 어른이 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유족들은 소중한 이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 공간이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할 용기가 없다면 부끄러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세월호 참사 보도를 둘러싸고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자사 보도가 정부에 우호적이라고 공개 비판하며 보도국장의 인사 철회를 요구하는가 하면, 사석에서 한 간부의 발언까지 공론화하고 있다. 1997년 이후 MBC에 입사한 기자 121명은 12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한 자사의 보도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7일 뉴스데스크에서 방송된 박상후 전국부장의 보도가 “국가의 무책임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세월호 피해자)을 훈계하면서 조급한 비애국적 세력인 것처럼 몰아갔다”고 비판했다. 박 부장은 당시 보도에서 민간잠수부 이광욱 씨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느냐며 그를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언급했다. 또 “사고 초기 일부 실종자 가족은 현장에 간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구조 작업이 느리다며 청와대로 행진하자고 외쳤다”며 “쓰촨 대지진 당시 중국에서는 원자바오 총리의 시찰에 크게 고무돼 대륙 전역이 애국적 구호로 넘쳐났고, 동일본 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놀라울 정도의 평상심을 유지했다”고 보도했다. MBC 기자들은 성명에서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였다. 한마디로 ‘보도 참사’였다”며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 저희 MBC 기자들에게 있다. 가슴을 치며 머리 숙인다”고 세월호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MBC 3개 노조 중 진보성향인 언론노조 MBC 본부는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박 부장이 세월호 피해자에 대해 ‘그런 ×들은 (조문)해 줄 필요 없다’ ‘관심을 가져주지 말아야 한다’며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MBC는 “해당 부장에게 확인한 결과 그런 내용의 발언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허위 주장을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KBS는 이날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를 비교했다는 논란을 빚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후임으로 백운기 시사제작국장을 임명했다. 이에 KBS 2개 노조 중 진보성향인 언론노조 KBS 본부(새노조)는 백 국장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새노조는 성명에서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과 고교(광주 살레시오고교) 동문인 인물을 보도국장에 임명한 것은 뉴스의 정상화를 염원하는 사내 구성원들의 요구에 맞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노조는 또 “길환영 사장은 물러나기 전에 뉴스를 하루라도 빨리 정상화하기 위한 보도본부 간부들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하라”고 요구했다. KBS 기자협회는 이날 저녁 길 사장의 보도 통제와 퇴진 문제 등을 다루는 긴급 기자총회를 열었다. 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KBS와 MBC의 내분 사태에 대해 “방송사의 지배구조가 정치권력에 종속되다 보니 보도국이 주류와 비주류로 분열되고 뉴스 가치를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하면서 이런 소모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인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구가인 comedy9@donga.com·박훈상 기자}

저자만 보고도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브라질 생태도시에 관한 책 ‘꿈의 도시 꾸리찌바’로 알려진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이 격월간지 ‘녹색평론’에 쓴 글을 위주로 묶어 낸 책이다. 고속성장에 기댄 블링블링한 라이프스타일을 버리고 환경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살자는 내용이다. 생활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이유는 ‘피크오일(Peak Oil)’ 때문이다. 이는 세상에 묻혀 있는 모든 석유의 절반을 뽑아낸 시점을 뜻하는데 이미 이 지점을 지났다는 사람도 있고 곧 닥친다는 이들도 있다. 문제는 남아 있는 석유가 북극이나 깊은 바다 같은 곳에 묻혀 있어 싸고 쉽게 빼내 쓸 수 없고, 마땅한 대체 에너지원도 없다는 데 있다. 책은 석유 없이 살기 위해 애쓰는 도시들의 다양한 시도를 소개한다. 먼저 자동차를 몰아내고 도로를 보행자들에게 내주는 노력이다. 미국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재임 시절 상습 정체구역인 브로드웨이 대로의 포장을 걷어낸 뒤 사람들이 모여 운동하고 문화 이벤트를 즐기는 공간으로 바꿨다. 해마다 여름이면 3주 연속 토요일 오전 7시∼오후 1시 시내 일부 도로를 폐쇄해 시민에게 개방하는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저자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지하철보다는 간선도로를 달리는 급행버스 시스템을 제안한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시는 간선급행버스 체계의 성지로 인정받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2000년 간선급행버스 개통 이후 교통사고 사망자가 89% 줄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40% 줄었다고 한다(2006년 기준). 석유 없는 세상을 경험한 나라는 일본(제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의 경제봉쇄) 북한 쿠바 등 세 곳인데, 저자는 이 중 쿠바를 석유 위기를 극복한 모범 사례라고 평가한다. 특히 쿠바의 친환경 도시농업은 인류 미래의 희망을 제시해주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쿠바의 환경오염이나 빈부 격차, 극심한 경제위기에서 막 벗어난 현실을 생각하면 균형 잡힌 평가인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남의 성공 비법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순 없겠지만 피크오일에 대비한 도시 계획을 세우는 데 참고가 될 만하다. 서울의 버스 준공영제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약으로 나온 무상버스의 문제점도 짚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인구 280명, 동서가 1.5km, 남북이 1.6km로 중간 지점에서 출발하면 어디든 걸어서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면적 87만1000m²(약 26만 평)의 작은 섬이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의 섬 가파도다. 제주도는 현대카드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를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섬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예술의 섬으로 유명한 일본의 나오시마 섬을 떠올리게 해 ‘한국의 나오시마 프로젝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마스터플랜 설계자가 최욱 원오원 건축 대표(51·사진)다. “가파도는 땅 바다 하늘 바람 모두 가장 제주다운 극한의 자연 환경을 지닌 섬입니다. 바다의 식생이 다양하고, 구릉이 없는 평평한 섬이어서 시야에 막힘 없이 천문을 살필 수 있는 곳이죠. 육지에서 5.5km 떨어져 가기도 쉽고요. 가파도를 자연사, 인문사 박물관으로 설계 중입니다.” 최 대표의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우선 섬 주변을 빙 둘러 닦아 놓은 도로를 없애 자연 식생을 살릴 계획이다. 어차피 섬 전체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규모여서 교통수단이 거의 필요 없다. 건물은 새로 짓기보다는 기존 시설을 활용한다. 섬에는 105채의 집이 있는데 이 중 30채가 빈집으로 버려져 있다. 또 전교생이 3명뿐인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빈집과 학교 시설은 천문대, 도서관, 문학관, 특산물 포장 가공 시설, 숙박시설로 새로 단장할 계획이다. 제주도가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이 재생 프로젝트를 승인하면 완성되기까지 약 3년이 걸린다. 최 대표는 가파도 프로젝트에 붙는 친환경 ‘관광명소’라는 수식어를 불편해했다. “섬은 밀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망칩니다. 가파도의 적정 인구 수는 300명, 적정 관광객 수는 일평균 300명입니다. 관광객이 너무 많으면 정주 인구가 줄어들지요. 가파도 고유의 생활 풍경을 찾고 마을의 문화를 만들면 주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자녀들도 떠나지 않겠지요. 관광객만을 위한 섬으로 설계하진 않을 겁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옥상은 야누스적이다.’ 사회학자인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저서 ‘옥상의 공간사회학’에서 옥상의 이중적인 면모를 짚었다. 옥상은 존재하면서 부재한다. 분명 존재하지만 일상생활의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옥상은 사용(私用)과 공유(共有)의 공간이다. 권력과 자본이 지배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겐 저항의 무대이고, 구조와 탈출의 관점에선 희망의 장소이지만 추락과 사고의 시각에선 절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 버리는 공간이자 가꿈의 대상이다. 부산의 부부건축가인 오신욱(44) 노정민(42) 건축사사무소 라움 공동대표는 옥상의 밝은 면모를 발견하고 신작 ‘옥상라움’을 완공했다. 옥상라움은 지난해 말 부산의 번화가인 부산진구 부전동에 14층짜리 오피스텔을 지으면서 옥상에 마련한 라움의 설계사무실과 야외 갤러리인 ‘아트스페이스 라움’으로 구성돼 있다. “공사를 하던 어느 날 옥상이라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어요. 도심 빌딩의 옥상은 엘리베이터와 주차타워용 옥탑만 덩그러니 놓고 버려두는 공간이죠. 잘만 활용하면 형편이 어려운 건축가나 예술가들의 작업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개는 용적률을 꽉 채워 짓지 않기 때문에 작은 사무실을 지을 면적은 남아 있거든요.” 부부 건축가는 남아 있는 법정 용적률의 한도 내에서 사무실 면적 195.47m²(약 59평)를 뽑아내 1억 원에 분양받았다. 옥상 면적(395.12m²)의 약 절반 크기다. 이 오피스텔의 평당 분양가가 850만∼880만 원임을 감안하면 매우 싼 가격이다. 건축주로서는 어차피 버릴 공간이었기 때문에 헐값에 내준 것이다. 이들은 공사비 1억 원을 들여 7명이 일하는 설계사무실을 짓고 나머지 옥상 공간은 전시 공간으로 꾸몄다. 배롱나무 연산홍 남천이 심어져 있는 화단도 있다. 옥상라움의 배치는 이곳이 원래 옥상임을 강조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에서 내리면 하늘이 열려 있는 야외 전시장을 거쳐 사무실로 들어가게 돼 있다. 사무실 건물은 옥탑과 분리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이곳이 옥상임을 일깨워 준다. 옥상라움은 주변에 2.4m 높이의 난간을 설치해 불안한 전망보다는 닫힌 안정감을 택했다. 그래서 중정형 주택에 들어와 있는 듯 조용하고 아늑하다. 사무실에 있으면 야외 전시장 쪽으로 달아놓은 접이식 유리문을 통해 바깥 공기와 볕이 들어온다. 북쪽으로 낸 커다란 창으로는 도심 전망이 내려다보인다. 옥상라움의 미덕은 옥상의 혜택을 독점하지 않는 데 있다. 야외 전시장은 설치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무료로 이용한다. 오피스텔 입주자들과 외부인들도 이곳까지 올라와 작품과 조경과 도심 전망을 감상한다. 격주 토요일 오전에는 접이식 유리문을 열고 회의실과 야외 전시장을 연결해 건축과 문화 세미나도 연다. 내년에 구청의 옥상 텃밭 가꾸기 사업비 지원을 받아 사무실 옥상에 텃밭을 꾸며놓으면 공용 공간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처음엔 사람들이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어질러 놓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작품을 전시해 놓으니 함부로 하지 않더군요. 옥상에 문화 시설이 있고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작업실이 있다고 하니 분양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옥상을 활용하면 도시 가용 면적이 크게 늘어날 수 있어요. 높이가 같은 저층 건물의 경우 옥상 공간을 연결해 쓸 수도 있습니다. 옥상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옥상에 대한 상상력만 있다면.”부산=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작가들이 수학자인 줄은 몰랐다. 이들의 학력은 대학 교수진보다 화려하다. 앨 진은 16세에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한 영재다. 제프 웨스트브룩은 하버드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프린스턴대에서 컴퓨터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예일대 부교수를 지냈다. 스튜어트 번스는 하버드대 수학과 졸업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수학 석사이고, 켄 킬러는 하버드대 응용수학 박사, 데이비드 코언은 하버드대 물리학 학사에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컴퓨터과학 석사다. 코미디 작가가 되고 싶어 수학자의 꿈을 접고 할리우드로 향한 이 수학 괴짜들은 TV 역사상 가장 ‘수학적인’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심슨 가족’에는 무수한 수학적 코드가 숨어 있다. 천재소녀 리사 심슨은 기하학을 활용해 퍼팅 한 번으로 홀인 할 수 있는 골프공의 이상적 궤적을 계산해낸다. 야구장 에피소드에서는 스크린에 오늘의 관중 수를 맞히는 문제가 뜬다. 보기는 ‘1) 8191명 2) 8128명 3) 8208명’인데, 이들은 예사 숫자가 아니다. 8191은 ‘메르센 소수’이고, 8128은 ‘완전수’이며, 8208은 ‘나르시시즘 수’이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서 대중적인 글쓰기 솜씨를 인정받은 저자는 수학 마니아들만 알아챌 ‘심슨 가족’의 수학코드를 수학의 역사와 야사로 살을 붙여 입담 좋게 풀어낸다. 등장인물끼리 “무한대로 아냐” “무한대+1로 아냐”라며 말싸움을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무한에 관한 가장 유명한 설명인 ‘힐베르트 호텔’ 이야기로 ‘무한+1’이 ‘무한’보다 크지 않음을 설명한다. 수학 영재들이 쓰는 ‘심슨 가족’은 TV 역사상 최장기 시리즈이자 에미상을 20회 넘게 받을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며 대학 교수들이 수학 강의 때 요긴하게 활용하는 교재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경제학과에서는 ‘심슨 가족’의 가위바위보 장면을 활용해 게임이론을 가르친다. 수학자가 코미디도 잘 쓰는 비결이 뭘까. 작가들은 말한다. “수학적 사고는 조크를 쓰는 데 도움이 된다. 수학의 핵심이 논리인데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모순된 상황에서 굉장한 유머를 찾아낸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