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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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선희 기자입니다.

teller@donga.com

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문학/출판50%
음악37%
인사일반10%
문화 일반3%
  • 방탄소년단, 국내 가요계 최초 앨범 누적판매 2000만장 돌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요계 사상 처음으로 앨범 누적 판매량 2000만 장을 돌파했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가온차트 3월 앨범차트 기준으로 방탄소년단 앨범의 누적 판매량이 2032만 장을 넘었다고 9일 밝혔다. 이전까지는 가수 신승훈이 1700만 장으로 최다 기록을 보유했다. 방탄소년단은 2013년 데뷔 앨범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부터 올해 2월 발매한 ‘맵 오브 더 솔: 7(MAP OF THE SOUL: 7)’까지 총 14개 앨범이 2032만9305장 판매됐다. ‘맵 오브 더 솔: 7’은 417만 장, ‘맵 오브 더 솔: 페르소나(MAP OF THE SOUL: PERSONA)’는 377만 장, 러브 유어 셀프: 결 ‘Answer’(LOVE YOURSELF 結 ‘Answer’)이 259만 장 나가는 등 7개 앨범이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의 앨범 누적 판매량이 1000만 장을 넘은 건 2018년 11월이다. 이어 1년 4개월 만에 2000만 장을 돌파했다. ‘맵 오브 더 솔: 7’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최신 차트에서 25위에 오르는 등 6주 연속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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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리어 의자… 금박 두루마리휴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집콕(집에 콕 박혀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우울증과 무력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집에 꼼짝 없이 있어야 하는 이때를 오히려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삼은 아티스트들의 기발한 작업이 활발하다. 리모와 캐리어는 최근 의자 모양으로 된 캐리어 디자인을 공개했다. ‘여행의 상징’이던 캐리어가 각국의 국경 폐쇄 탓에 이제는 ‘기다림의 상징’으로 변모한 현실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다. 리모와 측은 “지금 우리는 여행 대신 고요함과 마주했다”며 “집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고독을 함께 견디며 지난날의 여행과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곳들에 대해 꿈꾸고 공유하는 기다림의 시간에 놓인 것”이라고 전했다. 인스타그램에서 ‘@alon_art’란 아이디로 활동 중인 익명의 현대미술 작가는 금박으로 만든 두루마리휴지에 ‘2020년 버전 화장지’라는 제목을 붙였다. 일부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필품 사재기 현상을 황금이 돼버린 화장지를 통해 풍자한 것이다. 영국의 모션아트 브랜드 MRE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패러디한 손세정제 사용법, ‘stayhome’(스테이홈·집콕)’이라 쓰인 대형 패브릭 아래서 몸부림치는 사람 등 코로나19가 낳은 세태를 꼬집은 유머러스한 작품을 선보였다. 베르사체는 집에 있는 시간을 마냥 따분하게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도록 집콕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진 아카이브를 순차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선반이 된 남자나 사람이 앉은 의자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올린 드레시한 옷차림의 여성 등 1990년대 ‘베르사체 홈’의 광고사진 작품들을 다시 불러왔다. 베르사체 측은 “집은 항상 우리에게 영감과 위안의 원천이었다”며 “집과 관련한 흥미로운 사진 작업을 통해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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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검은색’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겨울밤이면 일산화탄소 중독을 막기 위해 공군 군악대 막사의 석탄 난로를 꺼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했다. 상명하복의 군대 문화에서 이의를 제기할 순 없었지만 ‘석탄의 음흉함’을 피하려는 순간, 차가운 추위와 무한한 밤에 동사(凍死)당할 또 다른 위험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애국적인 밤’의 추위 속에서 동료 중 하나가 샹송을 부른다. “어둠, 그것은 어둠일 뿐! 더 이상 희망은 없어.” 모두 함께 마치 자장가처럼 따라 부른다.(‘군대의 검은색’)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검은색’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것들에 대한 기록을 모았다. 잉크, 검은 개, 적과 흑, 블랙 유머, 검은 표범, 검은 대륙, 고래 등 그가 검은색에서 연상해낸 주제는 예술 정치 철학의 영역을 넘나든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단둘만의 여행을 위해 그를 피레네산맥 외딴 마을에 맡겨뒀을 때 밤길에서 만난 무서운 검은 개는 불안 두려움 괴물의 원형이 되고(‘어둠 속의 검은 개’) 글을 배우며 접하게 된 까만 잉크통은 문장이 굽이쳐 나오는 기적, 문자가 된 사유에 대한 경이로움을 발견케 하는 매개가 된다(‘잉크통’). 유년과 젊은 시절 경험담이 얽힌 글에서부터 가볍게 시작하지만, 검은색에서 변증법을 발견하고 우주의 암흑물질까지 다루는 만만치 않은 사유와 시적인 문장들이 어우러졌다. 검은색이란 매력적인 색에 얽힌 저명한 철학자의 통찰과 사유를 더 친근한 산문 형태로 엿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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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과 함께 돌아온 ‘물방울무늬’

    물방울무늬가 돌아왔다. 올봄 해외 럭셔리 브랜드의 중심부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도트(dot) 바람이 심상치 않다. 흔히 물방울무늬라 불리는 폴카 도트(polka dot)는 오랫동안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된 클래식한 프린트지만 한동안 유행의 중심에서 조금 비켜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코스모폴리탄, 하퍼스 바자 같은 해외 패션전문지는 “‘만능 패턴’ 도트에 관한 디자이너의 관심은 꺾일 줄 모른다”며 올봄 가장 주목해야 할 패션 트렌드로 폴카 도트의 유행을 꼽았다. 폴카 도트의 화려한 귀환은 복고 트렌드에 따른 ‘할머니 스타일(그래니 룩·granny look)’의 강세 덕분이랄 수 있다. 지름 0.5∼1cm의 작은 물방울이 잔잔하고 균일한 간격으로 배치된 문양을 뜻하는 폴카 도트는 1950년대 유행한 오드리 헵번이나 메릴린 먼로의 원피스처럼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룩에 자주 쓰여 왔다. 그러면서도 마치 시골 할머니의 옷장에서 막 꺼낸 듯한 빈티지함이 풍기는 것이 매력. 물론 올해 유행할 물방울무늬는 마냥 그런 복고 감성에만 젖어 있지 않는다. 도트의 크기 색깔 형태 등에 변형을 주며 한층 도회적이고 세련된 느낌으로 업그레이드됐다. 도트를 시그니처 패턴으로 삼고 있는 카롤리나 에레라는 올봄 컬렉션에서 시어(sheer) 소재를 덧댄 도트 문양의 노란 오프숄더 미니 드레스를 선보였는데 구사마 야요이의 그림같이 동화적이고 몽환적 느낌을 준다. 도트 패션도 시대에 따라 진화함을 실감케 한다. 셀린의 에디 슬리만도 올 봄여름 컬렉션에서 도트를 응용한 디자인을 여러 벌 선보였다. 그가 이번에 해석한 도트는 범용성이 좋은 ‘에브리데이 도트’다. 보기엔 예뻐도 막상 입으려면 너무 튀는 게 아닐까 염려되는 것이 도트인데 출퇴근 룩으로도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고, 조끼 신발 가방 등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이브닝용으로도 가능하게끔 ‘한끝’을 살려냈다. 드리스 반 노튼은 도트의 크기를 오버사이즈로 키워서 재해석했다. 큼직한 원형 패턴을 활용한 원피스형 재킷은 도회적 감성을 물씬 풍긴다. 오버사이즈까지는 아니더라도 올해는 전반적으로 작은 도트보다는 큰 도트가 강세다. 오버사이즈와 마이크로 도트같이 서로 다른 크기의 폴카 도트를 섞어서 자신만의 도트 룩을 창조해 낼 수도 있다. 폴카 도트는 드레스, 투피스, 블라우스, 스커트뿐 아니라 가방이나 모자 같은 액세서리에서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베이직한 아이템에 과하지 않게 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강정아 롯데백화점 PB운영팀 바이어는 “국내에서는 여러 아이템 가운데 특히 도트 패턴의 롱 원피스가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한다”며 “도트의 크기는 커졌지만 색상은 컬러풀한 것보다는 블랙, 화이트의 기본형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컬러풀한 도트로 생기를 더하고 싶다면 민트나 바이올렛처럼 튀지 않는 파스텔컬러가 트렌드임을 감안해 고르도록 하자. 런웨이 룩이나 스트리트 패션에서 자주 보이듯 하늘하늘 여성스러운 폴카 도트 원피스에 과감한 액세서리와 가죽 부츠 등을 매치해도 멋스럽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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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빵’ 백희나 작가, 한국인 첫 린드그렌상

    그림책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49·사진)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스웨덴 아동문학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았다. 이 상은 2002년 스웨덴 정부가 ‘삐삐 롱 스타킹’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세계적 권위의 아동문학상으로 상금은 500만 크로나(약 6억460만 원)다. 한국 작가로는 첫 수상이다. 심사위원회는 “백 작가는 소재와 표정, 제스처에 대한 놀라운 감각으로 영화 같은 그림책을 통해 외로움과 결속력에 대한 이야기를 경이롭고 감각적으로 풀어냈다”며 “모든 이야기에 아이의 관점과 놀이와 상상력이 갖는 힘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백 작가는 “정말 받고 싶은 상이었지만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기적 같은 일”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꿈같은 세상에서 아이로 살고 싶어서 그림책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며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이 상이 계속 책을 쓸 힘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백 작가는 ‘구름빵’을 비롯해 ‘달 샤베트’ ‘장수탕 선녀님’ ‘알사탕’ 등 그림책 13권을 냈다. 그는 인형과 소품, 세트를 직접 제작하고 조명을 설치해 하나의 무대를 만든 뒤 각각 사진을 찍어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은 신선하고 따뜻한 이야기와 생동감 있고 깜찍한 장면으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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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가치를 만드는 ‘오랜 시간’의 힘

    “즉각적인 만족은 인간의 심오한 행복을 방해한다.” 초(超)연결 초능력시대이지만, 어떻게 돼선지 인간의 하루는 더 정신없어졌다. 원하는 정보와 관계를 실시간으로 장악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책 읽을 시간이, 산책하고 사색할 시간이, 가족들과 완전한 휴식을 누릴 시간이 전혀 없다. 문화사학자인 저자는 “모든 가치 있는 일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밥 딜런의 말을 인용하며 사색과 느림, 시간이 소요되는 일들의 가치를 재조명해나간다. 20년에 걸쳐 만든 뒤샹의 생애 마지막 작품과 639년 동안 공연되는 존 케이지의 오르간 연주를 비롯해 시골의 우체부가 33년에 걸쳐 만든 돌멩이 성, 1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역청을 관찰하는 과학 실험 등 ‘시간의 힘’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이 펼쳐진다. 저자는 이 책만은 느긋하게, ‘시간’을 할애해 천천히 읽어달라고 당부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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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집도 가족도 없는 아란, “홍시 보면 엄마 생각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이를 숨긴 채 동네 치킨집에서 일을 시작한 아란의 상황은 막막하다. 임대아파트에서 함께 살던 엄마는 아란을 또와 아저씨에게 맡기고 사라져버렸는데, 눈치껏 더부살이하던 그 집마저 손만 대면 족족 망하는 장사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파산해버린다. 졸지에 집도 일자리도 가족도 없어진 아란. 부모 품에서 공부하고 투정부리고 철없이 지내야 할 10대 소녀가 마주하기엔 가혹한 현실이다. 이 소설은 파란만장한 아란의 독립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흡인력 있게 그려낸다. 절제된 문장 속의 낙관과 긍정은 20년차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안정적 서사와 결합해 빛을 발한다. 소설 제목 ‘홍시’는 아란의 엄마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 아란은 엄마의 얼굴이자 목소리이고 웃음인 홍시를 보기만 하면 사 모은다. 2019 창비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인 소설가 윤성희 씨의 작가 인터뷰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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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상 최종심 후보작’이 책으로

    낙선 이력을 밝힌 이 책은 좀 독특하다. 2002년 장르문학 계간지로 등단한 소설가 정혁용 씨(48)가 최근 출간한 첫 책 ‘침입자들’(사진)이다. ‘최종심 후보작’이긴 하지만 낙선은 낙선. 문학상 수상작임을 내세우는 많은 책 가운데서 단연 눈에 띈다. ‘행운동’이란 지역의 택배 기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이 작품을 알아본 이는 낙선작을 투고했던 여러 출판사 중 한 곳인 다산책방의 이호빈 편집자였다. 이 편집자는 “올해 초 투고된 원고가 너무 재밌어서 잡자마자 단숨에 다 읽어버린 후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랐다는 건 후에 작가를 만난 뒤 알게 됐다. ‘느낌이 왔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초고속 출간을 했다. 하지만 책을 처음 낸 무명작가를 어떻게 홍보할지가 고민이었다. 편집팀은 작가를 설득해 ‘최종심 후보작’임을 프로필과 띠지에 넣었다. “문학상 최종심 후보작 중엔 이렇게 단행본으로 충분히 출간할 만한 작품이 많을 수 있어요. 기존의 문학적 문법과 다르다는 등의 여러 이유로 ‘단 하나의 수상작’이 되지 못한 것뿐인 것 같아요. 독자들에겐 훨씬 재미있을 수 있는데 빛을 보지 못하는 거죠.”(이 편집자) 이 작품은 운이 좋은 경우다.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문학상 수상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출판계에서 무명작가가 장편 출간 기회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 작가 역시 책 낼 기회를 얻지 못해 지금까지 택배 기사로 일하며 소설을 썼단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두 개의 장편을 써서 문학상 두 곳에 응모했다. 둘 다 최종심에만 들었다”고 회고한다. 한 문학평론가는 “많은 문학상 응모작이 떨어진 뒤 다른 문학상을 전전하며 떠돈다. 공모전을 포함해 보다 다양한 기회를 통해 작품들이 발굴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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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끝에 핀 ‘현란한 봄’

    운동화가 트렌치코트부터 맥시 드레스에 이르기까지 어떤 스타일의 옷에도 어울리는 만능 템으로 부상한 이래 화이트 스니커즈는 언제나 확실하고 안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과감하게 발끝에 색을 입혀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색채연구소 팬톤은 올해 유행할 색상 트렌드로 ‘다양한 색의 강렬한 조합’을 꼽았다. 역동적인 색상의 향연이 두드러지는 한 해가 될 것이란 뜻이다. 신발에서 그런 트렌드가 읽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평범한 봄을 만끽하긴 어려워졌지만 런웨이에서부터 자유분방한 길거리 패션에 이르기까지 알록달록 현란한 색으로 가득 찬 스니커즈는 화사한 봄기운을 먼저 몰고 온다. 가장 먼저 주목할 건 업그레이드를 마친 ‘어글리 슈즈’(굵고 투박한 굽을 가진 운동화)다. ‘인기의 정점은 지났다’라는 의견도 있지만 1970, 80년대 ‘패션 테러리스트’ 아빠들이 신던 울퉁불퉁 못생긴 운동화에서 ‘힙트로’(hiptro·최신 복고패션)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이 신발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 패션 카테고리 가운데 하나로 연착륙하고 있다. 실제로 올 시즌에도 대부분의 디자이너 브랜드는 어글리 슈즈를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는 신발 전반에서 높고 두꺼운 굽을 자랑하는 이른바 ‘통굽’이 대세인데, 신상 운동화 역시 이런 유행이 반영돼 키높이 신발처럼 밑창이 높아졌다. 그 덕분에 어글리 슈즈는 외형을 크게 키우면서 한층 밝고 화사해진 색상으로 무장했다. 발맹, 클로에 등은 어글리 실루엣을 지키면서 핫핑크나 레몬, 네온그린 등 보색 관계인 여러 색상을 블록처럼 조립해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스텔라 매카트니 등 마치 팔레트에 풀어놓은 파스텔 물감처럼 밑창에 은은하게 그러데이션을 준 운동화는 ‘올 화이트(all white)’ 신봉자의 마음도 설레게 만든다. 어글리 슈즈의 물량 공세만은 못하지만, 몇 년간 지속되는 이 투박함에 조금씩 질려가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한결 얌전해진 단화형 스니커즈를 주력으로 내놓는 브랜드들도 있다. 이들 역시 색감을 강조하며 포인트를 준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구찌는 깔끔하고 날렵한 테니스화 실루엣 안에 미키마우스, 애플패턴 등 톡톡 튀는 캐릭터와 색을 담아냈다. 샤넬도 신발 끈과 밑창에 포인트로 네온컬러를 입혀서 과하지 않으면서도 차별화되는 전략을 꾀했다. 만약 현란한 레인보부터 전위적인 메탈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워진 색깔 중 무엇을 고를지 고민된다면 올 시즌 네온(형광)의 부상을 잊지 말자. 민트 그린, 탄제린(감귤색) 등 촌스럽지 않은 파스텔 느낌으로 진화한 네온 컬러들은 발렌티노, 샐리 라포인트 등 여러 브랜드의 2020 봄여름 컬렉션에서 공통적으로 선보였다. 의상으로 즐기기에는 쨍한 색깔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스니커즈로는 봄 기분을 내기 그만이다. 정진아 스타일리스트는 “다채로운 색상이 섞인 운동화를 선택할 때 전체적인 룩을 뉴트럴 톤으로 중화시키면 현대적인 느낌을 낼 수 있다”며 “상대적으로 유행을 타지 않는 트렌치코트나 심플한 재킷에 톤온톤(동일 색상 내에서 톤의 차이를 두는 배색)으로 하의를 선택하고 트렌디한 스니커즈를 신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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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난임이 찾아왔다,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임신과 출산을 기다리는 여성들의 커뮤니티에서는 ‘매직아이’란 말을 자주 쓴다. 임신을 너무 바라다 보니, 임신테스트기에서 실제로 보이는 건 시약선 한 줄밖에 없는데도 ‘희미하지만 두 줄이 보이는 것 같다’고 믿는 것이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두 줄인데, 일종의 ‘베이비 피버(baby fever)’다. 아기를 열망하는 인간의 본능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그중 스칸디나비아에서 베이비 피버라는 말을 쓴다. 헛것을 보기도 하고 통증도 느낀다. 핀란드의 가족사회학자 안나 로트키르흐는 이 현상을 연구하며 다양한 여성이 느낀 경험을 조사했는데 응답자 중 다수가 ‘아기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여러 고충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한 순간,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출산 육아의 기쁨과 고충을 논하는 숱한 책이 쏟아지는 와중에 이 책은 소설가인 저자가 실제 난임 여성으로 겪어야 했던 기약 없는 긴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임의 상황에 처한 다른 이들처럼 저자 역시 자신이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혼한 여성의 임신이 자연스러운 것이란 가정은, 난임을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잘못된 것으로 느끼게 한다. 매일 기초체온에 전전긍긍하고, 툭하면 눈물바람에, 성공 확률이 실낱같은 치료에 돈을 지불하며 5년을 넘게 고통받는 처지가 되자 모든 게 다시 보인다. 생물의 번식 습성, 인간의 모성애와 양육 욕구부터 아이 없는 상실감을 토로했던 버지니아 울프, 아이 없는 부부의 비참한 삶을 다룬 연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새로워진다. ‘나’를 낳은 엄마의 삶, 생산을 그친 여자의 몸을 생각하고, 입양제도 속의 상처와 아픔을, 가족에 대한 통념을 고민한다. 난임이라는 사적인 문제는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영역으로 끝없이 확장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포기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의료기술 발달은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저자는 결국 막대한 비용 때문에, 그럼에도 결과를 확신할 수 없으며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약물과 주사 때문에 망설이던 체외수정을 결심한다. 난임 부부가 기대는 마지막 보루인 체외수정은 산업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창조 섭리의 위협’ ‘실험실 아기’ 등으로 편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번식을 위해 울어대는 매미소리조차 견디기 힘들어지는 때, 그는 또 다른 기다림이 될 최후의 과정을 밟는다. 난임의 세밀한 기록 속에서 던져진 질문과 인터뷰는 생명을 기다리는 간절함과 그를 둘러싼 이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담론들을 돌아보게 한다. 난임 치료비용은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이다. 저자는 인종이나 지위, 재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다림의 시간’이 의미 있을 수 있도록 난임 치료 혜택이 확대돼야 함을 함께 피력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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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트로 타고… ‘빅백’이 돌아왔다

    맥시멀리스트(maximalist)가 설 땅이 갈수록 좁아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는 모노그램 패턴과 청청(靑靑) 패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패션계 전방위로 무르익은 레트로 무드는 결국 오버사이즈 백을 다시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작아지다 못해 가방인지 열쇠고리인지 분간이 안 가는 깜찍한 마이크로 사이즈로까지 축소됐던 미니 백 열풍 속에서 소지품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스타일리스트 레이철 조의 블로그 ‘더조리포트’는 “이제야 겨우 이 작은 가방에 뭘 넣고 뺄지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싶었는데 유행이 지나가 버렸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웬만한 잡동사니를 다 집어넣어도 넉넉했던 1990년대 스타일의 큼지막한 가방이 밀레니얼 감성으로 되살아나면서 크기가 슈퍼사이즈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이다. 수납공간이 넉넉한 가방을 캐리올 토트(carryall tote)라고 하는데 올해 보테가 베네타, 펜디, 에르메스 등의 봄여름 컬렉션을 장식한 가방은 소지품 정도가 아니라 세간을 통째로 넣어도 될 만큼 거대한 가방(carry-your-life-with-you tote)이다. 장담하건대 어떤 가방이든 들까말까 망설이는 이유가 크기 때문이라면 올해는 안심해도 좋다. 가방 사이즈에 대한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XXL 백 컬렉션을 두고 ‘보그’ 같은 해외 패션 전문지들은 선택의 기준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크면 클수록 더 좋다.” 그중에서도 보테가 베네타의 자신감은 단연 돋보인다. 인트레차토(격자무늬 가죽 직조 기법)를 확대 재해석한 ‘카세트 백’으로 새바람을 일으킨 대니얼 리는 가방 사이즈도 맥시로 키우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분명히 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적어도 대니얼 리만 보자면 정말로 빅 백은 다시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를 통해 볼 수 있는 올해 오버사이즈 백의 특징은 엄청난 크기와 대비를 이루는 부드러움과 가벼움이다. 딱딱하고 묵직한 큰 가방은 잠시 제쳐두자. 자연스러운 곡선형 핸들을 가진 유광의 맥시한 가죽가방은 무심히 툭 어깨에 메기만 해도 절로 시크해지는 빅 백의 감성을 살리면서도 데일리 백으로 선택하기에 부담이 없다. 몸에 둥글게 감기는 보테가 베네타 빅 숄더백은 이미 해외 스트리트패션을 장식 중이다. 에르메스가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대형 호보 백 역시 이런 트렌드를 보여준다. 뭐든 끝없이 들어갈 것 같은 크기로 압도하지만 몸의 움직임에 따라 굴곡이 흐르듯이 변모하는 원형의 부드러움과 경쾌함을 유지한다. 그동안 미니 백의 강세 속에서도 리애나, 제시카 알바를 비롯한 할리우드 셀럽들의 선택을 받으며 꿋꿋하게 완판 행진을 이어간 디올의 오버사이즈 캔버스 백 ‘북 토트’도 넉넉한 가방이 필요했던 이들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레트로 감성을 극대화한 2000년대 초반의 로고 플레이를 되살려와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가방은 올해 주목할 키워드인 ‘플로럴(floral) 프린트’ 등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뉴컬렉션의 특색을 가미하며 더 새로워졌다. 펜디 역시 휴양지 느낌의 라피아나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를 사용해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빅 토트를 다양하게 선보여 선택의 폭을 넓혔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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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이만 쉴게요」 구어체 제목이 내게 말을 걸었다

    회사원 A 씨(32)는 주말에 서점 매대에 놓인 책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제목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였기 때문이다. 직장생활 5년 차. 상사들 눈치 보며 아등바등 쫓기듯 사는 데 지친 터였다. 그는 책을 산 뒤 커피숍 테이블 위에 제목이 잘 보이도록 올려놓고 인스타그램 사진을 올렸다. ‘#제목으로힐링 #취향저격 #직장인의주말’이란 해시태그와 함께. 서점가에 독자들의 취향과 기분을 대변해주는 제목이 인기다. 마치 책이 ‘지금 이런 기분이지?’ ‘딱 이런 게 필요하지 않았어?’라고 말을 걸어오는 식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제목에 열광하는 독자가 늘면서 책 제목은 과감한 구어체로 변모 중이다. ○ 제목으로 ‘나’를 표현하는 독자들 ‘좋은 아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과로에 지친 누군가의 투덜거림 같지만, 실은 요즘 나온 세 권의 책 제목을 연결한 것이다. 제목은 내용을 압축한 핵심어나 독자를 매혹시키는 미문(美文)이 아닌가 했던 이들에게 요즘 책 제목은 너무 구어적이어서 파격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책에서 배움보다는 공감을 원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서선행 가나출판사 차장은 “요즘 독자들은 멘토의 ‘한 말씀’엔 큰 관심이 없는 반면에 공감과 위안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독서 인증’을 하나의 문화로 즐기는 이들에게 책 제목은 자기표현의 도구다. “만약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면 ‘이젠 당하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하는 셈이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올린다는 건 ‘늘 최선을 다했지만 더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제목이 나를 대변할 수 있겠다 싶으면 사서 보는 거죠.”(서 차장) 실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두 책의 제목으로 올라온 인스타그램 게시물은 각각 2만 건에 달한다. 이 제목에 감정을 이입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 제목으로 ‘나’를 알리는 작가들 작가도 달라졌다. 에세이 시장이 커지면서 SNS에서 새 작가들이 대거 발굴되고 있다. 제목은 SNS 출신 신인을 알리는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다.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제목 장사’가 더 중요해진 데 영향을 미쳤다. 자그마치북스의 구소연 편집자는 “평소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이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선 ‘당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여기 있다’고 직관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어체 제목이 많아지다 보니 차별화를 위해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서술형) ‘그냥 다니는 거지 뭐’(자조형)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생략형) ‘여행이 나한테 이럴 수가’(감탄형) 식이다. 에세이 분야는 구어체 제목이 점령했다. 16일 현재 예스24 에세이 베스트셀러에는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2위),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8위),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9위) 등이 올라와 있다. 김태희 예스24 에세이 MD는 “제목 자체가 책의 킬러 콘텐츠가 되면서 공감을 자아내는 대화형 제목의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라고 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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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 쓰는 존재… 늘 안으로 탐독, 밖으로는 탐색하죠”

    시인의 감각이란 건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12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문정희 시인(73)의 대답은 이랬다. “안으로는 탐독, 밖으로는 탐색.” 그가 최근 펴낸 산문집 ‘시의 나라에는 매혹의 불꽃이 산다’(민음사)는 그중 탐색에 관한 이야기다. 시인은 20여 년간 프랑스 낭트에서부터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마케도니아 테토보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시인으로 초청받은 수많은 이국 도시를 여행했다. 낯선 언어와 환경 사이에서 예민하게 포착한 경험과 감각은 그의 안목과 취향이 됐고, 시가 됐다. 그는 “문학은 인간이고 인간은 결국 자유”라며 “‘시인 살기’에 관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산뜻한 필치로 그려지는 매력적인 여행기는 그래서 그의 진솔한 시작(詩作)노트이기도 하다. “어떻게 가는 곳마다 사건이 생기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그의 여행기는 흥미진진한 일화가 넘친다. 분홍색 넥타이를 풀어 즉흥 선물을 한 워싱턴 낭독회의 노신사나, 넝마 위 스카프를 칭찬하자 “가져라”며 던져준 델리의 걸인 이야기는 만남의 신비를 위트 있게 전한다. 뉴델리의 빈부 격차에 깊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당장 녹물 나오는 초청 숙소는 견디기가 어렵고, 10년 치 퇴직금을 공항에서 잃은 기내 네팔 근로자의 절망에 몰입하면서도 이륙 후 쏟아지는 졸음까지 이기진 못함을 고백하기도 한다. 요지 야마모토, 헬무트 랭 등 아방가르드 패션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글은 특히나 재밌다. 시인은 “작가가 패션에 대해 말하기엔 경직된 사회였지만 내겐 책만큼 옷이 많다”고 말했다. 철칙은 ‘똑같은 건 싫다’는 것. 강남 명품거리에서 독특한 직조의 코트를 사 입었는데 알고 보니 목욕가운이었던 일이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 옷을 입고 잡지 화보까지 찍은 일화는 시인의 유쾌한 개성을 잘 보여준다. 작가의 옷차림을 ‘투우사의 옷’이라 칭하며 창작열을 고무시키는 ‘작가의 스타일’에 대해 논의하는 이 글은 빈곤, 고통 등 무거운 주제에만 눌려 있던 한국 문학에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다. 과일 따위에 ‘스위트’란 단어를 쓸 순 없다는 시인 아도니스나 필터 없는 프랑스 담배 ‘지탄’을 즐겨 피우던 김환기 화백의 아내 김향안 여사와의 파리 데이트도 인상적이다. 옥타비오 파스, 심보르스카 등 탐독으로 걸러진 다른 문인의 촌철살인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이 긴 탐색의 끝에 시인은 어디에 도착했을까. 그는 “쓰는 존재”라고 말했다. “지금껏 투사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인생과 문학의 미완성과 불안감을 통렬히 수긍하게 됐어요. 나이가 아니라 탐색으로 얻게 된 감각이에요. 쓰는 존재, 그거면 된 거예요.”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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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어떤 전염병도 우린 이겨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유례없는 상황에 당면했다. 하지만 세계 역사를 뒤바꾼 범유행성 질병은 과거에도 있었다.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매독 등은 최초 발병 이후 교통수단을 통해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백신과 치료약이 나올 때까지 인류를 괴롭히며 역사를 바꿔왔다. 그렇다면 과거의 패턴에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는 안토니우스 역병부터 소아마비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시달려온 전염병의 역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페스트로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생양파 썰어 집 안에 두기’ ‘에메랄드 부숴 먹기’ 등이 효능 있다고 믿었다. ‘역병의 악마’를 쫓는 독수리 가면을 쓴 의사들의 치료법도 개구리나 비둘기를 가져와 독을 빨게 하는 정도였다. 실소가 나오는 대처지만 미래의 인류가 우리 시대 질병을 되돌아보며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반면 결핵은 유사 이래 가장 미화된 전염병이다. 19세기에 유행하는 동안 작가 화가 등 예술가들이 잘 걸리는 질병으로 여겨졌다. 세균성 질환이 아름답고, 고상한 상류층만 공략한다고 여긴 듯한 그릇된 관념은 이 병을 제대로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전염병이 세계사의 위대한 인물과 역사에 어떤 변곡점을 안겨줬는지에 좀 더 치중했다. 16세기 신대륙에 유입된 천연두는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 인구 30%를 사망시켰고 덕분에 유럽인은 그 땅을 손쉽게 정복했다. 수인성 질병 콜레라는 19세기 이후 도시 공중위생환경 개선 등을 낳았다. 메르스 사스 등에서 보듯 20세기 이후 병원체 변이가 잦아지고 항공을 통한 고속 대량 이동이 시작돼 전염병의 위협이 더 커졌다. 누구도 코로나19의 후폭풍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예단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전염병이든 인류는 견뎌왔고, 결국 이겨냈다는 것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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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플랫폼업체들 확진-격리자 무상 서비스… “코로나와의 싸움 응원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가 급증한 콘텐츠 플랫폼업체들이 확진자, 자가 격리자 등을 위한 무상 서비스 지원에 나섰다. 사회와 단절돼 불안과 우울감 등을 겪는 이들에게 심리적 지원이 중요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책 구독 서비스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코로나19 환자나 스스로 격리하는 사람에게 5만 권 이상의 독서 콘텐츠를 두 달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11일 밝혔다. 확진자에게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통해 개별 QR코드를 제공하고, 자가 격리자에게는 행정안전부 ‘자가격리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업체 ‘왓챠플레이’도 격리 기간 해당 플랫폼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하도록 한다. 자발적으로 외출을 자제하는 이용자를 위해 ‘왓챠와함께이겨내요’라는 문구를 쿠폰 등록 페이지에 입력만 하면 무료로 영상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직전 대비 최근 총시청시간이 40% 가까이 증가하는 등 콘텐츠 소비가 급증했다”며 “미약하지만 피해 회복에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국 저널리스트 대니얼 튜더가 개발하고 혜민 스님이 콘텐츠를 제공하는 명상·심리앱 ‘코끼리’도 19일까지 선착순 3000명에게 무료 이용 코드 ‘힘내라대한민국’을 제공한다. ‘집콕’(이동과 외출을 꺼려 집에만 있는 현상)이 늘면서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독자와 만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작가와 독자의 모임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업체 ‘북크루’는 매일 에세이 한 편으로 작가의 일상을 전달해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출판사 문학동네도 웹진 ‘주간 문학동네’를 창간해 무료로 연재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오픈 플랫폼을 만들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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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마틸다’ 관객층 다변화로 시장확대 견인

    올 한 해 뮤지컬계는 대형 라이선스 작품을 완성도 높게 소화한 무대에서부터 한국 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준 수준 높은 창작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어느 때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동아일보가 뮤지컬 및 연극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정체기를 맞았던 국내 뮤지컬 시장의 도약을 위해 관객층 저변 확대, 새로운 작품 발굴 등의 노력이 다각도로 이뤄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연극계는 블랙리스트 파문과 미투 운동의 직격탄으로 악재가 겹치며 우울한 한 해를 보냈다. ○ 뮤지컬 ‘마틸다’ ‘웃는 남자’ 성공 전문가들은 올해 뮤지컬계가 관객층 다변화와 시장의 저변 확대를 위해 본격적인 시동을 건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올해 최고의 공연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천재 소녀를 다룬 웨스트엔드 원작 뮤지컬 ‘마틸다’가 꼽힌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20, 30대 여성 관객이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획일화되던 한국 뮤지컬 산업에 새 돌파구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사 신시컴퍼니에 따르면 이 작품은 가족 단위로 추정되는 예매자(티켓을 3장 이상 구매한 30대 이상)가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등 관객층이 초등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했다. 조용신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예술감독은 “전 연령층이 관람할 수 있는 드라마와 우화적 상상력의 무대”라고 호평했다. 최나미 창작컴퍼니다 대표는 “한국에서 성공이 불확실했던 작품인데 완성도 높게 무대에 올라왔고 최고 기량을 뽐내는 아역 배우의 활약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 ‘빌리 엘리어트’와 월트디즈니 원작의 ‘라이온 킹’ 등 한국 뮤지컬의 저변을 넓힌 작품들이 추천받은 점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와 박민선 CJ ENM 공연사업본부장 등 여러 전문가들이 “가족 뮤지컬 저변 확대의 시작”을 올해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꼽았다. 빅토르 위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형 창작 뮤지컬 ‘웃는 남자’의 성공도 올해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작품을 필두로 해외 라이선스 공연 못지않은 완성도 높은 국내 창작 뮤지컬이 여럿 배출된 것도 의미가 있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지평을 넓힌 작품”(송한샘 쇼노트 부사장) “‘라이선스 뮤지컬’ ‘창작 뮤지컬’이란 구분 짓기에 이별을 고하게 한 작품”(한승원 HJ컬쳐 대표)이란 평이 나온다. 탄탄한 대본과 감각적 연출이 돋보인 ‘레드북’도 호평을 받았다. ○ 연극은 ‘오슬로’ 호평 올해 연극계는 블랙리스트 사태에 미투 운동까지 겹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연극계 전체가 아직 여파로부터 회복되지 못해 작품도 예년에 비해 풍성하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연극평론가 이경미 씨는 “지원금 문제 등 창작 환경도 어려워졌고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연극계의 동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며 “여전히 공연은 올라가지만 소위 말하는 ‘좋은’ ‘잘된’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나마 전문가들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은 국립극단의 ‘오슬로’였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이뤄진 중동 평화협정 이야기를 차용해 현재 대한민국의 평화 정국을 효과적으로 환기시켰다. 허순자 평론가는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사실을 예리한 필치, 놀라운 상상력으로 길어 올렸던 원작에 걸맞게 견실한 무대미학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김방옥 평론가 역시 “남북 교류가 재개된 한국 현실에 시의 적절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다”고 평가했다. ▼조승우-박효신-차지연, 실력과 티켓파워 거듭 확인▼공연계 빛낸 인물들구자혜-전인철, 연출계 차세대 주자 올해 공연계를 빛낸 인물들은 주로 실력은 물론이고 티켓파워를 지닌 스타 배우들이 골고루 표를 가져갔다. 장르를 넘나들며 깊어진 연기를 선보이는 ‘지킬앤하이드’의 조승우와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해 팬 층이 두꺼운 ‘웃는 남자’의 박효신, ‘광화문 연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차지연이 공동 1위(3표)에 올랐다. 소극장에서부터 실력을 쌓은 뒤 올해 뮤지컬 ‘웃는 남자’에서 대극장 무대까지 휘어잡는 연기력과 가창력을 발휘한 배우 박강현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차세대 주자로 꼽혔다. 연출가로는 왕용범 김태형 이지나 등이 주목받았다. 왕 연출가는 “창작과 라이선스를 넘나드는 연출력으로 대중 선호도에 가장 가까운 작품을 연출”(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하며, 김 연출가는 “연극과 뮤지컬을 넘나들며 실험성과 대중성을 접목해 향후 극 예술계를 대표할 연출로의 성장이 기대”(송한샘 쇼노트 부사장)된다는 평이다. 이 연출가는 “작품 영역이 넓고 경륜과 작품을 풀어내는 힘이 있다”(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고 봤다. 공연계 차세대 주자로는 작가 겸 연출가인 구자혜 씨에 대한 기대가 컸다. 현재도 훌륭한 기량을 펼치고 있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 주목된다는 지지가 많았다. 특히 올해 ‘타즈매니아 타이거’ ‘셰익스피어 소네트’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연극의 새 가능성을 제시했다. “왕성한 창작욕으로 사회적 문제의식과 연극 미학적 탐구를 동시에 수행”(김방옥 평론가)했고, “기존의 한국 연극 문법을 벗어난 실험적 작업을 미학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이진아 평론가)고 호평했다. 전인철 연출가도 기대되는 차세대 주자다. “새롭고 실험적인 작업을 모색하며 공감대를 확보했다”(허순자 평론가), “희곡을 정확히 분석해 입체적으로 공간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다”(이경미 평론가)는 평가를 받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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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철거 앞둔 텅빈 동네 누가 지키고 있을까요

    비탈길을 따라 크고 작은 집이 늘어선 아기자기한 동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떠나고 빈집만 남았다. 인적 없는 집에 손때 묻은 가구, 고장 난 가전제품이 버려져 있고, 창문은 깨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이곳에서도 나무는 여전히 우거지고, 동네를 누비고 다니던 고양이, 개, 새들은 여전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텅 빈 동네에서,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는 동물들은 마지막으로 한 곳에 모여 아름다웠던 지난 기억을 되짚어 본다. 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옛 동네의 모습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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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동물 여행객의 쉼터 펭귄호텔로 오세요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펭귄호텔’. 이곳에는 늘 새로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세계를 여행 중인 사자, 날개를 쉬러 온 고니, 가족여행 중인 북극곰…. 손님들이 가장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펭귄호텔은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늦은 밤 찾아온 거대한 북극고래에게도 딱 맞는 방을 마련한다. 펭귄이 운영하는 환상적인 호텔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세밀한 그림으로 표현돼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다양한 손님들과 추억을 만들어가는 상상 속 호텔을 통해 아이와 함께 멀리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만끽하기 좋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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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박선희]운 중에 최고 운은 ‘옆자리 운’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작품 수준과 무관하게 주변 사람들로 인해 공연의 성패가 결정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이른바 ‘좌석 운’이 영 따라주지 않는 경우다. 스마트폰의 환한 불빛을 드러내며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부주의하게 앞좌석을 툭툭 치는 정도는 애교다. 얼마 전 연극을 보러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 공연 시작 전 기분 좋던 설렘은 옆자리에 술 냄새를 진탕 풍기는 관객이 앉으며 날아가 버렸다. 개의치 않으려 애썼지만, 커튼콜 때까지 진동하는 냄새에 쾌적한 관람이 무척 어려웠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한 뮤지컬을 관람할 때는 뒷자리 관객들이 공연 내내 ‘생중계’를 쏟아냈다. “지금 저 장면 실수한 것 아니야?” “대사가 너무 빨라” 등 굳이 목소리를 낮추려는 노력도 없었다. 거리낌 없이 수다 떨며 웃어댈 때마다 공연의 감동은 반감됐다. 심지어 한 공연장에서는 양반다리를 한 여성 관객 옆에 앉는 불운도 겪었다. 뭔가 부대껴서 봤더니, 신발까지 벗고 편안히 가부좌를 틀어 무릎이 내 자리까지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웃으며 즐겁게 관람을 했지만, 당하는 입장은 사뭇 난감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좌석 등급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진정한 VIP석’은 ‘양식을 갖춘 주변 관객들이 있는 바로 그곳’이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아무리 값이 비싸고 무대에서 가깝고 시야가 좋은들 운 나쁘게 이런 이들을 만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적지 않은 티켓 가격을 지불하고 기껏 시간을 내서 왔는데 부주의한 관객 때문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공연 관람이 즐거운 이유는 그곳이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대가 살아 있고 배우들이 살아 있고 관객들이 살아 있다. 모든 게 생동하는 열기로 가득하며 서로 상호 작용한다. 배우가 관객에게 에너지를 주듯 관객의 에너지도 서로에게 전달된다. 매너를 지키며 함께 작품에 몰입할 때 공연은 몇 배나 더 즐거워진다. 반대의 경우 불쾌한 경험이 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연말 성수기를 맞이한 공연계는 연극부터 뮤지컬, 무용까지 볼만한 작품들이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공연 관람 문화가 성숙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이렇게 아쉬운 경험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다. 큰마음 먹고 나선 연말 공연 관람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배려’가 필요한 때다. 성공적인 공연을 만드는 건 객석의 매너에도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 201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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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해가는 연극, 이렇게 유쾌해도 되나

    평소에는 주변 세계가 얼마나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지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실수투성이 초보들이 덤벙대며 저지르는 크고 작은 혼란을 마주하고서야 느끼게 된다. 뭔가 무탈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의 훈련되고 절제된 노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란걸. 코미디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은, 한 편의 작품을 제대로 공연하기도 기실 얼마나 어려운가를 ‘갈수록 망해가는 연극’이란 참신한 소재를 통해 유쾌하게 그려낸다. 줄거리는 이렇다. 콘리 대학의 드라마 연구회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해버샴 저택의 살인사건’이란 미스터리 작품을 야심 차게 무대에 올린다. 그간 제작 여건상 구구절절한 문제로 제대로 된 작품을 올리지 못했던 연출가는 들뜬 상태로 작품을 소개한다. 하지만 곧이어 진행되는 공연에선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배우들은 대사를 못 외워 손바닥을 흘끔거리고, 등장인물이 나와야 할 문이 잠겨 열리지 않는 정도는 애교에 불과하다. 벽 선반과 전화기가 떨어지고, 소품이 뒤바뀌며 극 전개가 꼬이더니, 전기 장치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출연 배우가 무대 위에서 부상당한다. 그 와중에 무대감독과 배우들은 손발이 전혀 맞지 않고, 끝내는 무대가 붕괴하기 시작한다. 무대 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의 모든 것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단원들은 어떻게든 극을 마무리 짓기 위해 난장판이 된 무대 위에서 사투를 벌인다. 영국의 한 펍에서 단막극으로 공연된 뒤 입소문을 타고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끈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라이선스 초연이다. 관객에게 대놓고 웃을 시간을 주기 위해 무너지는 무대와 육탄전을 벌이는 배우들의 열연이 감탄스럽다. ‘망해가는 연극’이란 주제를 이렇듯 슬랩스틱 코미디의 진수로 승화시켰으니 아무래도 이 작품은 ‘성공적’이라 해야겠다. 2019년 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4만∼7만 원. ★★★☆(★ 5개 만점)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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