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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동안 열심히 쓴 것치고는 생각보다 원고 양이 많지가 않습니다. 요즘은 예전 원고들 보며 비감에 젖기도 하고 달콤한 꿈에 젖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경기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지난달 28일 만난 이문열 작가(72)의 작업대에는 두꺼운 국어사전과 함께 빨간펜으로 교정 표시가 된 ‘젊은 날의 초상’ 원고가 올려져 있었다. 지난해 민음사와의 계약을 끝내고 RHK로 둥지를 옮긴 뒤 대표작 ‘삼국지’ ‘사람의 아들’ 등을 개정판으로 내고 있다. 단순한 교정이 아니라 문체와 내용도 고친다. 이런 식으로 오랜 원고를 손봐 60여 권을 순차적으로 다시 낼 계획이다. 그가 35년을 지낸 부악문원은 한때 사숙하는 문청들을 받아 강의도 하며 붐비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고즈넉했다. 그는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시대와도 안 맞고 아예 없는 사람 취급당할 만큼 여러 일을 겪다보니 관두게 됐다. 이제는 안동(고향) 말로 ‘영감 할마이’ 둘만 산다”며 웃었다. ―지난 작품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소회가 어떤가? “글이란 게 한번 떠나면 그만이라지만 아직 살아 있으니 추고의 권리도 있는 게 아닌가. 고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싶으니 좀더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그때의 사려부족, 감정이 과장된 부분 등은 고친다. 욕심도 많고 후회도 많은 작업이 되고 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열 손가락 같은 것”이라면서 개정판 ‘사람의 아들’을 펼쳐 보였다. 등단 1년차 신인 작가인 그는 이 작품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고 일약 스타가 됐다. 그는 “이번에 고치고 나서보니 개정서문만 50여 쪽을 썼더라”며 웃었다. 요즘 붙들고 있는 ‘젊은 날의 초상’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되돌아보면 애잔해지는 작품이다. 그는 “가열했던 시절의 이야기”라며 “이런 작품들이 10여 편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정판 ‘삼국지’는 절판되기 전보다 4배 이상 팔리고 있다. ―인터넷 댓글을 보는지? ‘삼국지’를 비롯한 개정판 출간에 독자들이 무척 반가워한다. “그런 반응이라면 힘이 날 것 같은데 잘 안 보니 모른다. 세상이 망한 건 말이 망해서다. 인터넷 세계는 즉문즉답이다. 자기 몸보다 더 큰 도끼와 칼을 함부로 휘두르면서 책임은 안 진다. 그런데 지금 이 세계의 중요한 결정을 그런 식의 사람들이 하니 문제다. 정의기억연대 사태도 봐라. 인터넷이 또 요사를 부리면서 논점을 흐린다.” 그는 ‘우파작가’란 이유로 공격 받았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1년 작가로서 치명적 상처가 된 ‘책 장례식’이 벌어진 곳도 문원 입구 언덕길이었다. 그는 “아직도 피해의식 같은 게 있다. 이렇게 조리돌림 당하는 걸 보면 누군들 나 같은 목소리를 낼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오” 하다가 “그래도 글 쓴 게 50년인데 이런 걸로 징징대면 안 된다”며 웃었다. ―요즘의 보수 지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 “이 판세가 이해 안 된지 한 달 가까이 됐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쉽게들 나를 ‘보수우파 논객’ ‘보수당 지지자’라고 하더라. 다 시인했다. 하지만 현재의 이 정당(미래통합당)이 보수라면 나는 보수논객도, 우파도 아니다. 70년 분단사를 가진 나라의 보수 정당이 이념을 생각하면 안 된다니 무슨 수작인가.” ―작업에는 일정한 루틴이 있으신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0년 가까이 유지해온 루틴이 있었다. 새벽 2, 3시까지 쓰고 오전 9시 넘어 늦게 일어나는 식으로 매일 10시간 넘게 썼다. 신장암 수술을 한 후부터 부쩍 힘에 부친다. 낱말이 기억이 안 나 생산성이 반으로 떨어졌다. 생각나지 않는 단어는 컴퓨터나 사전이 있어도 불러 올 방법이 없다. 70세 넘은 늙은 작가는 이해할 것이다.” ―요즘 어떤 책을 주로 읽으시나. 책 읽는 이들이 자꾸 줄어드는 시대다. “이제는 읽어서 어떻게 써먹겠단 생각은 못한다. 내게 가장 흥미로운 게 우선이라 중국 역사책 위주로 본다. 지금까진 잠잠하다가도 한번씩 산문 붐이 크게 일었다. 또 한 번 올 때가 됐다 싶은데, 요즘은 그런 게 잘 없다. ‘삼국지’ 아니었다면 나도 이렇게나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다들 어떻게 사는지 걱정이다.”이천=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중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일하고 있는 르네는 매주 일요일 저녁 관례대로 동료인 엘로디와 함께 공연을 구경하러 간다. 그들이 보기로 선택한 것은 유람선에서 진행되는 ‘최면과 잊힌 기억들’이라는 공연. 오팔이라는 최면술사가 마지막 순서에 관객 가운데 한 사람을 무대로 불러내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하필이면 르네가 낙점된다. 내키지 않지만 분위기에 떠밀려 무대 위에 세워진 르네는 전생이라는 무의식의 심층 기억으로 도달하게 해주겠다는 오팔의 안내에 따라 영 마뜩잖고 못 미더운 기분으로 최면에 참여한다. 이 평범한 유람선 위에서의 저녁이 어떤 후폭풍을 부르게 될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말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 작가로 꼽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작은 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기억’은 인간의 무의식적 심층부에 있는 전생의 기억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상식의 세계에서 전생이나 전생 체험은 ‘신비주의’ ‘가짜 기억’ 혹은 ‘정신착란’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베르베르는 한 사람이 가진 수많은 전생의 기억들이야말로 그의 진짜 정체성과 인류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해 낼 수 있는 통로라는 독창적인 상상력에 착안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오팔의 안내대로 전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무의식의 문을 여는 데까지 성공한 르네. 그에게 붉은 카펫이 깔린 복도 통로 옆으로 흰색의 수많은 문이 보인다. 각 방은 모두 르네가 살아온 전생으로 통하는 문이다. 방문은 111번까지 번호가 달려 있다. 이번 생이 그에게 112번째란 뜻. 그는 ‘가장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전생을 엿보고 싶다고 말한다. 빨간색 불이 켜진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독일군과의 대치를 앞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장이 펼쳐진다. 자신의 끔찍한 죽음을 목도한 상황에서 르네는 충격으로 갑자기 눈을 뜬다. 최면에서 갑작스레 깨어난 그에게 그때부터 현실과 최면이 뒤섞이는 극심한 혼란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착란 때문에 우발적 살인까지 저지른 그는 경찰에 쫓기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팔과 함께 전생으로 가는 다른 문들을 열기 시작한다. 이미 한번 알게 된 전생의 기억을 지울 수는 없지만 다른 긍정적인 기억으로 병적 효과를 약화시킬 수는 있다는 설명 때문이다. 르네가 기억의 문을 본격적으로 열면서 소설은 시대와 배경을 넘나들며 스펙터클해진다. 아틀란티스라는 전설 속 섬에 사는 남자 게브를 비롯해 고성에 사는 백작부인, 고대 로마의 갤리선 노잡이, 캄보디아 승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르네들’이 출연한다. 그를 정신병자로 규정하고 체포하려는 현생의 사람들과 수많은 전생의 ‘나’를 만나며 역사의 숨겨진 비밀을 알아가는 르네의 모험이 한 편의 영화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몰입도 높게 펼쳐진다. 프랑스에서는 2018년 출간됐다. 원제 ‘판도라의 상자’.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향기를 개발하게 됐을 때 홍연주 코스맥스 향료랩(lab)장(47·이사)은 연구원들과 함께 1920년 당시를 고증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홍 랩장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묵묵히 걸어온 동아일보 100년의 향기는 어떤 것일까 상상하며 당시 일들을 찾아보고 연구했다”고 말했다. 임시정부의 상징이던 오얏꽃의 향기, 여러 서원에 가득했던 목백일홍 등이 떠올랐다. 하지만 ‘먹의 향기’야말로 인쇄물로 태어난 동아일보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향료 같았다. 소나무향이 은은히 밴 송연묵향(松煙墨香)의 기품으로 동아일보 100주년을 표현해 낸 향수 ‘1920℃’의 출발이었다. 송연묵향 향수 ‘1920℃’는 소나무향과 먹향이 결합한, 지금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인 향이면서도 연령대나 성별 상관없이 편안함을 준다. 유서 깊은 우리 전통을 한국적 향으로 되살려낸 홍 랩장을 26일 경기 성남시 코스맥스에서 만났다. ―묵향은 표현하기 쉽지 않은 향료처럼 느껴지는데 선택한 이유는…. “소나무는 수백 년을 묵묵히 버티며 한결같은 지조를 나타내는 이미지다. 100년을 걸어온 동아일보가 앞으로도 수백 년 힘 있게 나아갔으면 했다. 인쇄 매체를 상징하는 먹과 소나무의 기품을 결합시킨 송연묵향이 제격이었다. 묵향이 피부에 닿을 때 향취가 편안하고 은은하도록 한국인이 좋아하는 머스크향 등을 더하고 젠더리스(성 구별 없는)한 요즘 트렌드를 반영해 무겁지 않게 표현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문방사우에 속하는 먹의 향기는 향을 강하게 발산하는 꽃향기 포집과는 달리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먹 상태나 사용법에 따라 향기도 천차만별이다. 송연묵 자체의 향, 관솔향, 가마 안에서 관솔이 타고 만들어진 재의 향, 벼루에 간 먹의 향 등 다양하게 향을 포집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 ―제품 용기도 예사롭지 않게 고급스럽다. “백색의 단아한 향수 및 디퓨저 용기는 코스맥스 디자인팀과 한국도자기의 디자이너, 기술자들이 협업해 만들어냈다. 향수 캡은 여인의 치마폭을 모티브로 했고, 디퓨저의 팔각 덮개는 정자의 팔각 형태를 차용해 제품 외형에서도 한국적인 단아함을 현대적으로 살리고자 했다.” ―이 제품이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 “조향사로서 정말 뜻깊은 작업이었다. 우리의 뿌리이자 조상들이 사랑했던 향기다. 우리가 간절하게 재현해 낸 향을 1920℃의 향기를 맡는 한 분 한 분이 공유해주시면 좋겠다.”성남=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사회학자인 한상진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중민재단) 이사장 겸 서울대 명예교수(75·사진)는 27일 “진보는 더 이상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과거의 진보가 아니라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집단 또는 기성체제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며 “독선적 자기 확신과 선악의 이분법에 빠져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테러에 가까운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중민재단과 한국연구재단이 개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정부 정책과 국민의식 조사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동 양상’ 결과 발표에서 ‘코로나19로 드러난 한국 진보·보수 정치지형의 탈바꿈’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이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56명을 대상으로 했다. 한 교수는 이날 발표를 마친 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사 결과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진보의 기득권화가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방심했던 서구 국가에 비해 코로나 위기를 비교적 잘 넘기면서 ‘내가 옳다’는 진보의 자기 확신이 더 강해졌다”며 “김대중 노무현 어느 (진보) 정부 때에도 시민사회를 대변한다는 진보 고유의 정체성이 이렇게 약화되고 독선적이 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로 인한 우려스러운 징후가 상당수 나타나고 있다며 한 교수는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예로 들었다. 그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친일파’ ‘친일세력’이라며 극단적으로 규정해 국민적 증오를 부르고 무력화시키려 한다”며 “상대를 공존의 대상,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적(敵)으로 보고 심지어 여권 내부의 문제 제기조차 ‘진보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해 공격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일종의 테러”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보수는 시민 우선 중심적 성향을 나타냈다. 한 교수는 보수 정치권이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야당이 합리적 세력으로 굳건히 서면 대안이 되는데 준비 안 된 야당이란 비대칭성이 한국 정치의 위험스러운 ‘(진보 보수의) 탈바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반공 같은 과거 패러다임을 벗어나 시민사회의 잠재력을 끌어안는, 상식에 기반한 보수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사회학자인 한상진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중민재단) 이사장 겸 서울대 명예교수(75)는 27일 “진보는 더 이상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과거의 진보가 아니라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집단 또는 기성체제로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며 “독선적 자기 확신과 선악의 이분법에 빠져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테러에 가까운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중민재단과 한국연구재단이 개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정부 정책과 국민의식 조사로 드러난 한국사회의 새로운 변동 양상’ 결과 발표에서 ‘코로나19로 드러난 한국 진보·보수 정치지형의 탈바꿈’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이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56명을 대상으로 했다. 한 교수는 이날 발표를 마치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사 결과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진보의 기득권화가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방심했던 서구 국가에 비해 코로나 위기를 비교적 잘 넘기면서 ‘내가 옳다’는 진보의 자기 확신이 더 강해졌다”며 “김대중 노무현 어느 (진보) 정부 때에도 시민사회를 대변한다는 진보 고유의 정체성이 이렇게 약화되고 독선적이 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로 인한 우려스러운 징후가 상당수 나타나고 있다며 한 교수는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예로 들었다. 그는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친일파’ ‘친일세력’이라며 극단적으로 규정해 국민적 증오를 부르고 무력화시키려 한다”며 “상대를 공존의 대상,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적(敵)으로 보고 심지어 여권 내부의 문제제기조차 ‘진보 정체성’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해 공격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일종의 테러”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보수는 시민 우선 중심적 성향을 나타냈다. 한 교수는 보수 정치권이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야당이 합리적 세력으로 굳건히 서면 대안이 되는데 준비 안 된 야당이란 비대칭성이 한국 정치의 위험스러운 ‘(진보 보수의)탈바꿈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반공 같은 과거 패러다임을 벗어나 시민사회의 잠재력을 끌어안는, 상식에 기반한 보수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82년생 김지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조남주 작가가 이번에는 싱그러운 청소년 소설로 돌아왔다. 버겁지만 함께 있어 외롭지 않았던 사춘기 시절의 풋풋한 서사를 다룬 ‘귤의 맛’(문학동네)을 들고서다. 소설은 중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만난 소란 다윤 해인 은지 네 명의 단짝 친구가 고등학교에 함께 입학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정과 사랑,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며 사춘기의 감성이 폭발하는 시기. 늘 붙어 다니는 이 친구들은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귤밭이 지천으로 깔린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이들은 충동적인 한 가지 약속을 하고 타임캡슐을 묻는다. 작가는 이 약속을 중심으로 네 아이의 속사정을 번갈아 풀어간다. 단짝 친구와 어리둥절하게 멀어져버린 상처, 아픈 동생 때문에 힘든 마음을 내색하지 못하는 어려움, 가족 내에서의 갈등과 의사소통의 부재로 무너지는 마음, 또래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움. 의지하면서도 질투하고, 함께 있으면서도 외롭고 불안한 소녀들의 서사는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이다. 누구나 그 시절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자잘한 생채기들과 불안정한 감정들이 빚어져 공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 시절 특유의 감성을 작가는 노련하게 되살린다. 방송작가 출신으로 대면 인터뷰, 자료조사 등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디테일을 구현해내는 작가의 장기는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실제 10대들의 생활 말투 문화 등이 소설에 녹아들었다. 요즘 청소년들이 무엇을 할까 궁금했던 작가는 실제 청소년들을 만나보고 청소년 서적,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서 취재했다고 한다. 조 씨는 ‘작가의 말’에서 “이 시기의 인물들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쓰는 내내 저를 생각하고 제 아이를 생각하고 저와 다른 세대를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추면서 새 학기, 새 교실과 새 친구를 만나는 설렘과 기대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아이들에게 이 책이 인사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초보 ‘식물 집사’가 늘고 있다. ‘집콕(집에 콕 머무는 생활)’ 와중 자연의 생기를 느끼기에 식물만큼 좋은 것이 없어서다. 최근 방탄소년단(BTS)도 자그마한 다육이(다육식물) 화분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생명과 같이 지내면 크든 작든 좋은 변화가 생긴다”고 ‘식물 집사’ 입문을 신고했다. 식물과의 교감, 반려식물 기르는 법,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 등을 소개한 신간도 부쩍 늘었다. 출간 몇 주 만에 2, 3쇄를 찍을 정도다. 반려식물이 대세가 된 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연관이 깊다. 공동주택에 살며 출장이나 여행 비중이 높은 1인 가구가 늘면서 손이 많이 가는 반려동물보다 정서적으로 교감이 가능하면서도 키우기 수월한 식물이 잘 맞는다는 것.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를 쓴 임이랑 작가는 “거창한 미래 계획보다 지금 이곳에서 작은 공간을 꾸며 소소한 행복과 풍요로움을 느끼려는 이들이 많다 보니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른의 취미라고만 여겼던 ‘홈 가드닝(집에서 식물 가꾸기)’은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유되면서 폭발력을 얻었다. 식물은 푸른 색감이나 시원시원한 수형 등이 시각적이어서 유행에 민감하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의 저자 송한나 씨는 “요즘 대세는 몬스테라, 필로덴드론 등 열대식물”이라며 “꽃이 피고 화려한 식물보다 단조로우면서도 잎이 크고 시원해 보이는 식물이 인기”라고 말했다. 임, 송 작가에게 가장 핫한 반려식물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먼저 세계적으로 플렌테리어 열풍을 몰고 온 몬스테라가 꼽혔다. 어린 이파리가 자라면서 구멍과 갈퀴가 생기는데 북유럽풍 인테리어의 감초인 데다 초보도 키우기 쉽다. 열대식물 인기 트렌드를 반영한 아레카야자, 떡갈고무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아레카야자는 공기정화 효과가 탁월하고 쭉쭉 뻗은 이파리가 열대우림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낸다. 떡갈고무나무도 튼튼한 목대에 흐르는 듯한 선을 가진 커다란 이파리가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좁은 공간에서 흙 없이 매달아 키우는 에어플랜트(행잉플랜트)도 주목할 만하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분갈이도 필요 없어 관리가 편하다. 임 작가는 이 중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양치류 박쥐난을 추천했다. 이런 식물은 물에 푹 담가뒀다가 거꾸로 잘 말려줘야 한다. 해가 많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키울 수 있는 피토니아, 과습과 물 마름에 강해 ‘똥손’도 거뜬히 키울 수 있는 블루스타고사리도 추천 식물이다. 두 작가는 식물을 죽여본 경험 등 시행착오를 겪어야 경험치가 쌓인다고 입을 모은다. 임 작가는 “조금 더 들여다보고 검색해서 내 품의 식물이 뭘 좋아할지 관심을 가져보라”며 “그러다보면 살리는 식물이 많아지고 방치해 죽이는 일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송 작가도 “내가 어떤 식물을 좋아하는지, 그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인지 따져보라”며 “반려동물처럼 아껴준다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며 초보 ‘식물 집사’가 늘고 있다. ‘집콕(집에 콕 머무는 생활)’ 와중 자연의 생기를 느끼기에 식물만큼 좋은 것이 없어서다. 최근 방탄소년단(BTS)도 자그마한 다육이(다육식물) 화분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생명과 같이 지내면 크든 작든 좋은 변화가 생긴다”고 ‘식물 집사’ 입문을 신고했다. 식물과의 교감, 반려식물 기르는 법,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 등을 소개한 신간도 부쩍 늘었다. 출간 몇 주 만에 2, 3쇄를 찍을 정도다. 반려식물이 대세가 된 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연관이 깊다. 공동주택에 살며 출장이나 여행 비중이 높은 1인가구가 늘면서 손이 많이 가는 반려동물보다 정서적으로 교감이 가능하면서도 키우기 수월한 식물이 잘 맞는다는 것.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를 쓴 임이랑 작가는 “거창한 미래 계획보다 지금 이곳에서 작은 공간을 꾸며 소소한 행복과 풍요로움을 느끼려는 이들이 많다보니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른의 취미라고만 여겼던 ‘홈 가드닝(집에서 식물 가꾸기)’은 인스타그램, 핀터레스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유되면서 폭발력을 얻었다. 식물은 푸른 색감이나 시원시원한 수형 등 시각적이어서 유행에 민감하다.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그대에게’의 저자 송한나 씨는 “요즘 대세는 몬스테라, 펠로덴드론 등 열대식물”이라며 “꽃이 피고 화려한 식물보다 단조로우면서도 잎이 크고 시원해 보이는 식물이 인기”라고 말했다. 임, 송 작가에게 가장 핫한 반려식물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먼저 세계적으로 플렌테리어 열풍을 몰고 온 몬스테라가 꼽혔다. 어린 이파리가 자라면서 구멍과 갈퀴가 생기는데 북유럽풍 인테리어의 감초인 데다 초보도 키우기 쉽다. 열대식물 인기 트렌드를 반영한 아레카야자, 떡갈고무나무도 빼놓을 수 없다. 아레카야자는 공기정화 효과가 탁월하고 쭉쭉 뻗은 이파리가 열대우림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낸다. 떡갈고무나무도 튼튼한 목대에 흐르는 듯한 선을 가진 커다란 이파리가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좁은 공간에서 흙 없이 매달아 키우는 에어플랜트(행잉플랜트)도 주목해볼만하다.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분갈이도 필요 없어 관리가 편하다. 임 작가는 이중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양치류 박쥐란을 추천했다. 이런 식물은 물에 푹 담아뒀다가 거꾸로 잘 말려줘야 한다. 해가 많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키울 수 있는 피토니아, 과습과 물 마름에 강해 ‘똥손’도 거뜬히 키울 수 있는 블루스타고사리도 추천 식물이다. 두 작가는 식물을 죽여 본 경험 등 시행착오를 겪어야 경험치가 쌓인다고 입을 모은다. 임 작가는 “조금 더 들여다보고 검색해서 내 품의 식물이 뭘 좋아할지 관심을 가져보라”며 “그러다보면 살리는 식물이 많아지고 방치해 죽이는 일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송 작가도 “내가 어떤 식물을 좋아하는지, 그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인지 따져보라”며 “반려동물처럼 아껴준다면 그 자리에서 묵묵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답할 것”이라고 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저자가 펴낸 첫 산문집. 오랜 세월에 걸쳐 젊음, 선택, 집필 활동 등에 대해 써온 짧은 에세이와 프랑스 시 감상록, 스승과 친구 등 지인과의 에피소드, 문학 비평문 등을 두루 수록했다. 1부에는 젊은 날의 경험과 방황을 반추하면서 인생을 되짚어보는 글이 주로 실렸다. ‘가지 않을 뻔한 길의 파리’에서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연히 내린 선택이 훗날 비평가로서의 삶에 큰 자산이 됐던 경험을 떠올리며 선택의 기로에선 ‘유익’보다는 ‘가야 할 길’을 기준으로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2부에서는 보들레르, 프레베르, 랭보, 발레리 등이 쓴 프랑스 명시(名詩)에 대한 친근한 감상과 해설을 기술했다. 3부에서는 문학평론가 김현, 불문학자 김치수 선생 등의 인간적인 모습을 회고하고 4부에서는 신작 평론을 실었다.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의 안내를 따라 그의 문학세계와 함께 그를 빚어온 삶의 여정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외국인, 난민, 이민자, 성 소수자 등을 향한 증오와 혐오의 표현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특히 인터넷 문화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화가 발달한 초연결사회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사회의 중요한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이용자들은 혐오표현의 해악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 무방비로 노출된다. 하지만 정작 혐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기 때문에 논의를 제대로 진척시키고 문제를 극복하는 데 여러 가지 난관이 있다. 혐오는 전통적으로 인종, 민족, 종교, 성적 지향성 등에 근거해 폭력과 증오, 차별을 유발하는 모욕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여기에 한 국가의 사회 역사적 맥락과 특수성이 반영되며 좀 더 복잡해진다. 한국에서 혐오표현은 계층 간 증오, 여성, 성 소수자, 종북 세력 등을 향해 만연해 있다. 혐오표현은 증오 선동을 유발해 범죄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미디어케뮤니케이션 교수인 두 저자는 혐오표현의 학술적 정의부터 혐오표현과 관련한 선행 연구들을 되짚으면서 혐오표현에 대한 논의를 체계적고 정치한 방식으로 진전시켜 나간다. 혐오표현과 관련해 쟁점으로 떠오른 모욕죄의 성립과 판례들을 살피고 해외의 혐오표현 대응 사례를 소개한다. 계층 간 대립을 부추기는 언론 보도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다룬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위험성으로 인해 논의되기 쉽지 않은 법적 규제의 가능성을 타진해본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수지도 신고 아이비도 신었다는 그 신발. 앞코가 양쪽으로 갈라져 일명 ‘족발 신발’ ‘말발굽 신발’ 등 다양한 애칭으로 불리는 별난 디자인의 신발이 요즘 화제다. 처음 보면 적잖게 당황스러운 비주얼이지만 패션에 관심 좀 있다 하는 이들이라면 차별화된 스타일의 완성을 위해 눈독 들이는 ‘패피 필수템’으로 빠르게 자리 잡는 추세다. 이 신발은 앞코가 양쪽으로 분리돼 있다고 해서 ‘스플릿 토’라고도 하고, 일본의 전통 버선인 다비(足袋)와 모양이 비슷하다 해서 ‘타비 슈즈’라고도 부른다. 세계 패션계의 복고 열풍 속에 타비도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다. 타비 슈즈의 유래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비 슈즈는 프랑스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가 1989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일본식 버선에서 얻은 모티브를 미니멀하고 아방가르드하게 재해석한 결과물로 당시 패션계에 충격을 줬다. 앞코가 갈라진 말발굽 모양은 이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돼 이후 부츠, 플랫 등에 다양하게 적용됐다. 하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일부 마니아 외에는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생소한 아이템이었던 것이 사실. ‘족발 슈즈’ 인기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셀럽들이 애장템이라며 신고 나오면서부터다. 메종 마르지엘라를 공식 수입하는 신세계인터내셔널(SI) 측은 “양준일 등 대중의 주목도가 높은 연예인들이 ‘최애템’이라며 신는 빈도가 늘면서 올 들어 인기가 더 뜨거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데일리 패션’을 올리기만 하면 곧바로 품절되는 영향력을 자랑하는 배우 차정원은 타비 마니아다. 나이키의 타비 스니커즈부터 메종 마르지엘라 타비 플랫까지 다양한 타비를 매치한 일상 패션을 선보이면서 일명 ‘차정원 신발’로 젊은 여성들에게 화제가 됐다. 직구 사이트에서 ‘차정원 신발’을 구매했다며 인증하는 게시물이 많은데 독특한 앞코가 “귀엽다”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미국 일본 등의 직구 사이트에서는 나이키 에어리프트 같은 스플릿 토 사이즈가 금방 동나는 ‘타비 대란’이 일기도 했다. 일반적인 양말을 신고는 신을 수 없어서 전용 양말과 덧신이 따로 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가수 아이비도 신발장을 공개하며 족발 신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앵클부츠에서부터 스니커즈, 플랫에 이르기까지 타비 슈즈도 다양했다. 아이비는 “옷을 심플하게 입을 때는 신발이 포인트가 돼준다”며 “미니스커트나 핫팬츠에 신으면 귀여워서 색깔별로 갖고 싶다”고 했다. “타비는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이라고도 했다. 타비 슈즈는 전위적 감각이 극대화된 청키(chunky)한 부츠로도 애용되지만 날씨가 포근해지면서 발레리나슈즈나 스니커즈 형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이번 시즌 처음으로 엄지발가락이 분리되는 특유의 ‘토 디테일’을 살린 타비 샌들도 선보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수지도 신고 아이비도 신었다는 그 신발. 앞코가 양쪽으로 갈라져 일명 ‘족발 신발’ ‘말발굽 신발’ 등 다양한 애칭으로 불리는 별난 디자인의 신발이 요즘 화제다. 처음 보면 적잖게 당황스러운 비주얼이지만 패션에 관심 좀 있다하는 이들이라면 차별화된 스타일의 완성을 위해 눈독 들이는 ‘패피 필수템’으로 빠르게 자리 잡는 추세다. 이 신발은 앞코가 양쪽으로 분리돼 있다고 해서 ‘스플릿 토’라고도 하고 일본의 전통 버선인 타비[足袋]와 모양이 비슷하다 해서 ‘타비 슈즈’라고도 부른다. 세계 패션계의 복고 열풍 속에 타비도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다. 타비 슈즈의 유래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비 슈즈는 프랑스 패션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1989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일본식 버선에서 얻은 모티브를 미니멀하고 아방가르드하게 재해석한 결과물로 당시 패션계에 충격을 줬다. 앞코가 갈라진 말발굽 문양은 이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돼 이후 부츠, 플랫 등에 다양하게 적용됐다. 하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일부 마니아 외에는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생소한 아이템이었던 것이 사실. ‘족발 슈즈’ 인기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셀럽들이 애장템이라며 신고 나오면서부터다. 메종 마르지엘라를 공식 수입하는 신세계인터내셔널(SI) 측은 “양준일 등 대중의 주목도가 높은 연예인들이 ‘최애템’이라며 신는 빈도가 늘면서 올 들어 인기가 더 뜨거워지는 추세”라고 말했다.인스타그램에 ‘데일리 패션’을 올리기만 하면 곧바로 품절되는 영향력을 자랑하는 배우 차정원은 타비 마니아다. 나이키의 타비 스니커즈부터 메종 마르지엘라 타비 플랫까지 다양한 타비를 매치한 일상 패션을 선보이면서 일명 ‘차정원 신발’로 젊은 여성들에게 화제가 됐다. 직구 사이트에서 ‘차정원 신발’을 구매했다며 인증하는 게시물이 많은데 독특한 앞코가 “귀엽다”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미국 일본 등의 직구 사이트에서는 나이키 에어리프트 같은 스플릿 토 사이즈가 금방 동나는 ‘타비 대란’이 일기도 했다. 일반적인 양말을 신고는 신을 수 없어서 전용 양말과 덧신이 따로 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가수 아이비도 신발장을 공개하며 족발 신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앵클부츠에서부터 스니커즈, 플랫에 이르기까지 타비 슈즈도 다양했다. 아이비는 “옷을 심플하게 입을 때는 신발이 포인트가 돼준다”며 “미니스커트나 핫팬츠에 신으면 귀여워서 색깔별로 갖고 싶다”고 했다. “타비는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이라고도 했다. 타비 슈즈는 전위적 감각이 극대화된 청키(chunky)한 부츠로도 애용되지만 날씨가 포근해지면서 발레리나슈즈나 스니커즈 형태가 인기를 끌고 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이번 시즌 처음으로 엄지발가락이 분리되는 특유의 ‘토 디테일’을 살린 타비 샌들도 선보였다. 박선희기자 teller@donga.com}

“세상의 모든 자원, 사람의 마음과 사랑, 어쩌면 생명까지도 잠시 빌려온 게 아닐까요? 비단 월세 낼 돈이 없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결코 온전하게 소유할 수가 없는 거죠.” 다음 달 16일 무대에 오를 뮤지컬 ‘렌트’에서 클럽 댄서 ‘미미’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아이비(38)는 18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기자와 만나 작품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그가 부르는 한 넘버의 가사처럼 가질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것도 결국 ‘오직 오늘뿐’인 것이다. 미국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렌트’는 터부시되던 마약, 에이즈, 동성애 등의 서사를 다양한 음악 장르와 혼합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1996년 초연됐고 국내에는 2000년 첫선을 보인 후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그는 “지금도 쉽지 않은 이슈를 1990년대에 이미 선보였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그는 제어되지 않는 젊음의 충동과 중독, 방황을 소화하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출연진이 연습 첫날 가장 먼저 한 것도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어려움을 극복했던 경험을 두세 시간에 걸쳐 허심탄회하게 서로 나누는 일이었다”고 귀띔했다. “등장인물이 대부분 20대 초반이에요. 또래가 보면 멋질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봤을 땐 철없는 나이죠. 돈이 없다면서도 돈 벌 노력은 전혀 안 하고, 내일이 없을 것처럼 마음대로 살아요. 그런데 우리도 그랬어요. 시대가 달라져도 ‘젊음의 아이러니’는 비슷한 거죠. 그 덕분에 순수한 열정이 있던 시절을 떠올려보고 지금의 나는 뭘 위해 사나 질문해 보기도 해요.” 에이즈에 걸린 클럽 댄서 미미는 파격적이고 섹시한 역할이라 “미미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많이 들었다. 그는 “섹시한 역할이야 많이 해봐서 ‘생활’인데(웃음) 약에 취해 춤추고 노래하는 10대의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과격한 안무가 많은 탓에 그의 다리에는 시퍼런 멍 자국이 많았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가는 ‘송 스루(Song through) 작품’도 처음이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연습에 몰두 중이란다.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이 많아 체중 조절에도 신경 쓰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연초 공연했던 ‘아이다’의 지방 공연이 무산돼 너무 아쉬웠다”며 “최근 상황이 염려되기도 하지만 힘든 시기에 좋은 공연이 더 큰 메시지와 위안을 줄 수 있는 만큼 ‘이 시대’ ‘지금 여기’에 여러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신앙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과 복음 전파의 역사는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주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통념과 달리 현재 중국의 그리스도교인은 (당국의 통제와 관리하에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인구의 2배인 1억 명에 달할 뿐 아니라 이미 당나라 때 실크로드를 따라 그리스도교가 전파돼 융성했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책은 당, 송, 원, 명, 청에 걸친 중국 5대 제국의 흥망성쇠와 함께했던 그리스도교의 전파 과정을 여러 사료와 답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복원해 냈다. 당나라 시대 그리스도교는 황실의 국가 공인 종교였다. 그 사실은 당의 수도였던 장안에 1000기 넘게 묻혀 있던 비석 ‘대진경교유행중국비’가 청나라 시절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실크로드를 따라서 동방교회 소속 시리아인 올로푼 일행의 선교 여행이 시작됐다. 635년 당 태종은 그들을 영접하고 호의를 표했으며 선교 의사를 전한 그들이 성경을 번역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신화와 신의 문명이라 할 수 있는 서양 그리스도교 문명과 유불도 삼교의 융합이 이뤄지던 중국 문명의 역사적 만남”이 시작된 장면이다. ‘경교’로 불렸던 그리스도교는 50년 정도 번성했으나 당나라 무종의 종교 탄압, 선종의 숭불 정책 등으로 급격히 약화됐다. 몽골인과 색목인(이주한 상인 세력, 서구인 등)이 지배층을 형성했던 원나라 때 이르러 오랜 시간 숨죽이고 있던 경교는 사회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이후 청나라의 개항과 근대화로 중국판 사도행전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고 상하이에서 번성한 서양의 과학문물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가 정착된다. 격동의 역사와 함께 부침을 겪으며 빈민 구제, 의료 활동과 교육, 선교에 일생을 바친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이어진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늘 주변 어딘가에 있는 친숙한 존재,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주목받거나 이해받지 못했던 우리들의 할머니.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며 각종 문학상을 휩쓰는 여성 작가 6명이 ‘할머니’를 테마로 한 단편소설집 ‘나의 할머니에게’(다산책방)를 펴냈다. 11일 오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이들 중 윤성희(47) 손보미(40) 백수린(38) 작가를 만났다. 청탁이 쏟아지는 인기 작가들이지만 (소설집) 제안이 왔을 때 다들 흔쾌히 응했다. 할머니란 테마가 가진 무한한 매력 때문이었다.》 ―할머니란 대상이 특별히 흥미로웠던 이유는 뭘까. ▽윤성희=할머니는 10대부터 60대까지의 특징이 층층이 쌓여있어 재미있는 존재다. 늙은 것이 아니라 층과 격이 있는 것이다. 우울했다가 때론 귀엽기도 하고 여러모로 입체적이지 않나. ▽손보미=색다른 관점에서 여성에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백수린=맞다. 여성 작가가 할머니의 관점에서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을 쓴다는 건 의미가 있다. 할머니라고 하면 보통 희생을 떠올리는데 그렇지 않은 할머니를 재현해보고 싶기도 했다. 작품에는 각 작가의 개성이 묻어난다. 친할머니 외할머니 이야기도 있지만, 아직 손주는 없으면서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이들도 나온다. 윤 작가는 복지회관에서 아쿠아로빅을 하며 장성한 자녀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평범한 주부의 일상(‘어제 꾼 꿈’)을 아기자기하게 그렸다. 백 작가는 우아한 할머니의 낭만적인 추억(‘흑설탕 캔디’)을, 손 작가는 권위적인 할머니를 중심으로 계층 문제(‘위대한 유산’)를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윤 작가가 “다들 어떻게 그렇게 자기처럼 썼는지”라고 하자 작가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동의했다. ―각자의 소설 속 할머니가 정말 다른데 서로의 작품을 어떻게 읽었나. ▽윤=다들 잘 썼더라. 귀여운 할머니의 연애소설도 누군가 쓰겠지 했더니 백 작가 작품이 있었고, 고택에 홀로 남은 할머니와 그의 이상한 자부심 같은 것도 욕심나는 이야깃거리였는데 손 작가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잘 살려서 썼다. 써보고 싶지만 내가 잘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라서 더 재밌게 읽었다. ▽손=윤 선배의 소설에 ‘나도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대목이 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내 소설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같은 대사가 다르게 읽힐 수 있어 재밌었다. 백 작가 소설도 그의 감성이 잘 묻어나는 몽글몽글한 작품이다. ―작가들의 할머니는 어떤 분이고 소설에는 어떻게 반영됐나. ▽윤=할머니와 가까웠는데도 돌아가실 때까지 이름을 몰랐다. 참 당황스러워 주변에 물어보니 우리 세대에겐 의외로 그런 기억이 많더라. 외가에 가도 외할아버지는 문패가 있으니 보는데 외할머니는 장례식장에서야 이름을 처음 보는 것이다. ▽백=워킹맘이셨던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날 키우셨다. 지금이야 조손(祖孫) 육아가 흔하지만 우리 땐 드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60대라면 젊은데 할머니가 정말 나이 드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양가의 할머니는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하셨다. 소설에선 많이 배운 할머니를 상상해서 만들어냈지만, 당신의 것을 내어주고 포기했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할머니와 많이 연결된다고 느꼈다. 각자가 기억하는 할머니에 대한 수다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화투점을 봐주시고 민화투를 함께 치던 할머니, 여름방학마다 찾았던 할머니의 편안하고 따뜻한 품, 혹은 양육을 짊어지고 너무 빨리 할머니가 돼버린 분들. 작가들은 할머니를 회상하면서 “할머니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곁에 있지만 이름이 지워졌던 그들의 삶이 그 무엇보다 더 소설적이라고 말이다. 백 작가는 ‘유연한 할머니’, 윤 작가는 ‘너무 진지하지 않은 귀여운 할머니’, 손 작가는 ‘전력을 다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단다. 백 작가는 “작가들이 만들어낸 각양각색의 할머니를 만나면서 독자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할머니의 모습을 찾아본다면 좋겠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화장실도, 깨끗한 물도, 제대로 된 자리도 없는 화물칸 바닥. 끝없는 땅 위를 내달리는 그곳에 영문도 모르고 태워진 이들은 밤낮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 가운데 막막함과 두려움, 불안에 휩싸여 있다. 아이와 함께 러시아인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갓 낳은 아기를 안고 탄 부부, 배가 불러온 임신부,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모두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 모여 살다 소비에트 경찰의 명령에 따라 갑작스레 이주 통보를 받은 조선인이다. 찌든 냄새에 잔소음만으로 가득한 어둠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우린 들개가 되는 건가요? …우릴 버리러 가는 거잖아요.” 소설가 김숨 씨(46)가 2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소설 ‘떠도는 땅’(은행나무)은 가축을 실어 나르는 열악한 화물칸에 욱여진 채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한 옛 소련의 고려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출발은 한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러시아 캄차카에 노무자로 끌려간 조선인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본 오래된 사진 한 장이었다. “백발노인이 먼 곳을 바라보는 뒷모습이었는데 그때 어딘가로 갔다 평생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왔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저마다 인생의 굴곡이 있겠지만 자신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 없이 그런 삶을 살게 되는 이들이 있잖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한 명’ ‘흐르는 편지’같이 역사의 질곡에 희생된 이들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그는 이번 작품을 위해서도 고증에 힘을 썼다. 작가는 “고려인 이주에 대한 사료가 충분하지 않고 특히 집중했던 열차 안에서의 상황에 대한 증언은 한두 줄에 불과했기 때문에 다양한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소설 속 상황을 구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머릿속에서 이들이 이주 전 살던 신안촌 골목 풍경이 훤히 그려질 때까지 연구한 끝에 열차 안 장면이 소설적 상상력으로 탄생했다. 그 과정을 통해 탈선 사고로 동족의 처참한 비극을 목도하게 된 충격에서부터 피붙이를 잃고도 역병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 여행 도중 열차에서 떨어지거나 사고로 죽는 이들의 꿈과 환상이 생생히 되살아나게 됐다. 방대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등장인물들 사연이 화물열차 한 칸이란 무대에 집약돼 극적 긴장과 몰입도가 높다. 그는 “연극적인 설정을 좋아하는 편”이라며 “고려인 이야기를 쓰고자 했을 때도 그들이 하염없이 어디론가 가는 열차 안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쓰는 동안 감정이 이입돼 울컥할 때가 많았다는 작가의 회상처럼 객차 안에서 응집력 있게 펼쳐지는 수많은 서사는 마음을 먹먹히 울린다. 삶의 기반인 땅이 통째로 흔들리는 고통 가운데서도 살아남은 고려인들은 낯설고 척박한 땅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일군다. 그들이 뿌리 내리고 무성히 자랄 그곳은 아마도 이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한 독자들이 함께 일구어 갈 이해와 연대의 땅이기도 할 것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소설은 쥐덫에 걸린 요정 데르긴을 시하가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데르긴은 종말을 앞둔 인류 앞에 나타난 섬망(섬妄), 환각의 환상종이다. 인류는 이미 폐허가 돼 버린 세상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상황. 데르긴의 등장은 실제로 인류가 곧 멸망하리란 확실한 증거인 셈이다. 하지만 데르긴이 출연했음에도 시하가 몰래 마음에 품고 있는 칸타는 남아있는 인류의 역사를 목격하고 기록하겠다며 모험을 떠난다. 인류 부활의 꿈을 꾸며 전쟁까지 불사하는 인간 종족이 모인 ‘마트’란 곳이다. 칸타의 안위가 걱정된 시하는 데르긴과 함께 그를 찾아 나선다. 한국 판타지 소설의 ‘대부’ 이영도 작가가 내놓은 신작. 종말을 앞둔 세계를 그의 판타지 문법으로 치밀하게 창조해 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과 죽음을 앞둔 인류의 섬망이 불러낸 환상종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최근 해외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이 귀엽고 유머러스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코로나19 시대’에 위안과 연대의 메시지를 알리는 데 적극 나서고 있다. 화려한 런웨이 사진이나 화보로 가득했던 명품 브랜드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에르메스는 프랑스 그림책 작가인 알리스 샤뱅과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추천하는 일러스트 시리즈를 선보였다.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말(馬)이 유니콘처럼 귀엽게 등장해서 함께 요가를 하거나 화상으로 수다를 떨고,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책을 읽는다. 에르메스는 이 일러스트에 ‘#책벌레들의 연대’ ‘#고전 따라잡기’같이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 선뜻 연상하기 어려운 해시태그를 함께 달면서 알찬 ‘집콕’(집에만 콕 박혀 있는) 생활을 응원한다. 디오르는 디오르 주얼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이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연이어 공개했다. 카스텔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을 피해 집에서 머무는 다양한 방법을 자신과 창립자 크리스티앙 디오르를 캐릭터화해서 귀엽게 표현했다. 집에서 느긋하게 ‘디오르플릭스’를 시청하거나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고 정원을 가꾼다. 거실에서 운동하면서 ‘집에 머무는 것이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다’며 활기찬 집콕 생활도 독려한다. SNS 구독자들은 ‘예쁘면서도 패셔너블한 영감을 준다’며 호응했다. 마크제이콥스는 아예 인스타그램에서 아티스트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드론 투게더(drawn together)’ 수업을 3월 말부터 시작했다. 격리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활력을 더해주기 위해서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제니 월턴 등 패션계 유명 아티스트가 자택 생활을 공개하고 스케치 팁과 기술을 전수한다. 참여한 구독자는 자신이 직접 따라서 그려본 일러스트를 인스타에 인증해서 올린다. 명품 브랜드들이 친근하고 귀여운 일러스트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소비자와의 진정성 있는 접점을 찾는 일이 당면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패션쇼가 중단되고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으며 물류가 멈춘 상황에서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유지하려면 이들과의 연대감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명품 브랜드가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인스타그램에는 최근 일러스트 시리즈뿐만 아니라 음악, 요리를 비롯한 다방면의 콘텐츠가 올라온다. 랄프 로렌은 홈메이드 요리 레시피를 올리고, 로에베는 공방(工房) 장인들이 직접 작업실을 공개한다. 경제 전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명품 담당 대표를 인용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뉴노멀이 어떤 모습일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소비자는 분명히 더 건강과 환경에 예민하게 바뀔 것이며, 오프라인에서 디지털과 온라인으로의 이동이 훨씬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FT는 “패션 브랜드들이 고가의 화려한 런웨이만으로 가능했던 컬렉션 홍보 시스템을 바꿀 절호의 기회인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진짜 나’를 찾아가는 동안 맞닥뜨리는 상실과 좌절, 사랑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다룬 두 소설이 나란히 출간됐다. 김봉곤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문학동네)과 김병운 소설가의 첫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민음사)다. 김봉곤 작가는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를 통해 국내 문단에서 생소하던 퀴어문학을 섬세하고 감수성 넘치는 문장으로 그려내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도 첫사랑, 첫 연애, 첫 키스의 순간들을 날카롭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낸다. 표제작인 ‘시절과 기분’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여자친구 혜인과 재회하게 된 일을 다룬다. 혜인에게만은 진짜 내가 누구인지 직접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만난 뒤에는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으며, 혜인에 대한 감정은 무엇이었으며, 지금 찾았다고 믿는 새로운 나는 누구일까. 혼란 가운데서 ‘나’는 “뛰는 심장의 무늬를 구별하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소설집 수록작들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이면서도 용기를 내야만, 결단을 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진짜 나’를 찾아가는 탐색의 여정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는 국민 연하남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 공상표가 자신의 진짜 정체성을 마주하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을 치열한 연예계를 배경으로 그려냈다. 원치 않는 배역을 기계적으로 연기하고, 가족과 대중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며 성(性) 정체성 문제에 깊이 갈등한다. 작가는 간결하고 드라이하게 그가 용기를 내게 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지 못하는 한 배우의 삶을 통해 타인을 억압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함께 되돌아보게 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앉으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발코니의 순한 잎들, 그리고 들려오는 춤, 기억, 꿈, 지시, 나무, 눈, 귤, 찬물로 만 국수와 안녕안녕 같은 말들. 그렇게 일렁이는 말들이 마음의 안팎으로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오후가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서문 ‘안팎의 말들’)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의 서정적 작품으로 주목받은 소설가 김금희가 11년 만에 선보이는 첫 산문집. 서문에서의 언급처럼, 마음의 안팎으로 일렁이는 여러 기억과 추억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며 빚어낸 듯한 따뜻한 산문들이 수록됐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귤에 관한 기억, 가족과 반려견에 관한 이야기부터 소설 창작 과정과 작업 중의 상념, 작가로서 바라본 사회의 풍경에 관한 짧은 기록이 다양하다.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작가의 목소리를 좀 더 내밀하고 편안하게 즐기기 좋은 산문집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