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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플랫폼 아트공간에서 미술과 영화를 결합한 전시를 선보이는 ‘씨감버스(CgamVerse)’의 프리오프닝 행사가 다음달 1일까지 열린다. ‘씨감버스’는 ‘사이버 세대를 위한 메타아트(CGAM·Cyber Generation Art Meta)’와 메타버스(Metaverse)의 ‘Verse’를 합친 말이다. 메타버스 플랫폼(saptioal.io)에 접속하면 아바타를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독특하게 만들 수도 있고, 자동 제공되는 아바타로 전시장에 입장할 수 있다. 다른 메타버스처럼 친구들끼리 약속시간을 정하여 단체로 함께 방문할 수도 있고, 아바타들끼리 서로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사회적 거리도 필요 없고 인원수 제한도 없다. 물론 마스크에서도 해방이다. 작품과 영상을 클릭하면 바로 오픈씨로 연동되어 NFT 작품의 가격도 알 수 있고, 경매에도 참여할 수 있다. 씨감버스는 프리오픈 전시를 기념해 ‘CgamVerse展’(기획 에스더 김), ‘메타씨네 리좀 프리뷰’(기획 하효선), ‘메타꽃밭 순회’展(기획 심은록)이 다음달 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방혜자, 권순철, 한홍수, 유벅, 오만철, 이소, 최효형, 허지나, 하석진 작가의 작품과 세네갈, 아르헨티나, 페루, 미국 작가의 영상 작업이 소개된다. 1관과 3관에 전시된 영상은 ‘메타꽃밭’ 순회전의 작업이다. 이 전시는 지리산 아트팜의 ‘지리산국제환경예술제2021(JIIAF)’, ‘아트광주 21’(김대중컨벤션센터), 창원국제민주영화제(씨네아트 리좀)에서 오프라인으로 개최된 바 있었고, 메타버스에서 순회전을 펼치게 됐다. 지속하게 된다. 세네갈(39명), 페루 (7명), 아르헨티나 (4명), 미국 (1명), 한국 (6명) 등 총 57명의 162개 작품을 영상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에스더 김 아트플러스 갤러리관장은 “CGAM은 단순히 가상현실을 넘어 영화와 미술의 결합, 아티스트와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3D 공간의 혁신, 예술성, 창의성에 중점을 둔 NFT들을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트플러스 갤러리에서는 같은 장소에서 에스더 김, 심은록 기획자가 만든 두 개의 전시가 함께 열린다. 전시실을 분리하지 않음으로 새로운 만남을 추구하는 것. 1관(Polaris)에서는 허지나, 최효형, 오만철, 유벅, 이소의 작품이, 2관(Onion)에서는 권순철, 3관(Castor)에서는 재불작가 방혜자, 한홍수의 작품이 소개된다. 또한 야외에서는 하석진 작가의 3D 모델링 작품이 선보인다. 이와함께 전시장 외벽의 야외 영화관 세 곳에서는 씨네아트 리좀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프리뷰가 소개된다. 제 1스크린(Polaris)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 신작 ‘페러렐 마더스’이 상영된다. 여성, 어머니, 바뀐 아이, 동성애 그리고 스페인 내전 민간인 학살 등 알모도바 감독 특유의 색깔과 스토리로 엮어낸 최신작이다. 제2스크린(Onion)에서는 29년을 함께한 부부의 황혼이혼을 다룬 윌리엄 니콜슨 감독의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제 3스크린(Castor)에서는 ‘불도저에 탄 소녀’, ‘천국에서 무덤까지’, ‘말임씨를 부탁해’, ‘곡녀’, ‘극장판 시그널’, ‘재춘언니’ 등 총 17편의 프리뷰가 소개된다. 창원에서 2015년도부터 예술독립영화전용관 씨네아트리좀을 운영하고있는 하효선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영화관보다 넥플릭스 등 OTT가 영화 관람 환경을 바꾸었다”며 “CgamVerse 내 메타씨네 리좀은 기존 영화관 기능과 OTT의 기능을 접목시켜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씨감버스는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NFT아트(아트플러스 갤러리), 영화감상(씨네아트 리좀 영화관), 교육(SimEunlog MetaLab.)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구성됐다. 씨감버스는 프리오프닝 기념으로, 작가들의 협조로 NFT가격을 최대한 낮추었으며, 수익금은 전쟁으로 고통 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의료비와 식료품 등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심은록 미술비평가는 “SimEunlog 메타랩은 영상과 3D모델링을 통해 최초의 메타미술비평을 시도하고 있다”며 “또한 미래 디지털 피카소의 탄생을 위해 아동들에게 AI기반 블록코딩 스크래치, 엔트리, kodular 등을 통해 미술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사업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엘리제궁은 프랑스 대통령의 집무실 겸 공관이다. 프랑스는 1990년 이후 매년 9월 셋째 주 주말 ‘유럽문화 유산의 날’에 엘리제궁을 개방해왔다. 지난 2010년 9월19일 파리 연수시절 엘리제궁 개방하는 날에 들어가 내부 구조를 속속들이 관람했다. 파리 8구 샹젤리제 대로 인근에 있는 포부르 생 토노레 거리에 이른 아침 가족들과 함께 줄을 시작했는데, 무려 8시간 동안 줄을 선 끝에 엘리제궁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리제궁은 1만1179m² 면적을 보유한 2층 건물.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집무실 책상까지 공개하는 화끈한 관람동선이어서 적잖게 놀랐다. 이렇게까지 개방을 해도 보안에는 문제가 없을까. 대통령 집무실에 삼성TV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은근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은 엘리제 궁의 2층 중심에 있어 정원을 한가운데서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집무실은 나폴레옹 3세가 황후 외제니를 위해 만든 금 장식방인 ‘살롱 도레(Salon Doré)’다. 베르사유 궁에 있는 ‘거울의 방’처럼 정원으로 난 창을 마주보는 벽에 창 모양의 거울이 있어 밝고 환하다. 샹들리에가 빛을 비추고 있는 대통령의 책상은 엘리제 궁의 최고 보물로 꼽힌다. 18세기 가구장식가 샤를 그레상이 루이 15세를 위해 제작한 이 책상이다. 책상에는 필기도구와 촛대모양의 등이 놓여 있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 방을 집무실로 사용하지 않았다. 왕실풍이 공화국의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왼쪽에 비서실장 집무실이나 간이 회의실로 쓰이는 초록색 방인 ‘살롱 베르(Salon Vert)’가 있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오른쪽에는 대통령과 참모진이 수시로 회의를 하는 회의실(Salon d‘Angle)이 있다. 비서실장 집무실과 회의실의 옆쪽으로도 각각 수석 보좌진들의 사무실이 있다. 불과 수십 m의 동선 내에 대통령과 핵심 보좌진의 방이 나란히 있어 효율성이 높다. 대통령의 하루 일과는 오전 8시 반에 출근해 집무실 옆 ‘살롱 베르’에서 참모들과 회의를 하면서 시작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임기 중 ’살롱 베르‘에서 카를라 브뤼니 여사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1층 ‘살롱 뮈라(Salon Murat)’에서는 매주 수요일 장관들이 참여하는 국무회의가 열린다. 원형 탁자에 대통령과 장관들이 둘러앉고 엘리제 궁 비서실장과 총리비서실장이 따로 창가 쪽에 자리 잡고 앉는다. 별로 크지 않은 방이어서 내각 장관들이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앉아서 회의를 하는 모양이 그려진다. 탁자에 마이크 시설은 없었다. 육성으로도 충분히 소리가 들릴만한 방이기 때문이다. 건물 1층에는 국가 공식 연회나 만찬이 열리는 ‘살 데 페트(Salle des Fete)’가 있다. 화려한 천장화와 샹들리에, 태피스트리로 꾸며진 연회장이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조성된 이 연회장은 붉은색과 황금색 컬러로 디자인 돼 있다. 테이블 위에는 최고급 도자기 식기 세트와 촛대, 꽃장식으로 국빈을 맞이하는 품격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역대 대통령 취임식 축하연과 외국 정상들과의 공식 만찬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 밖에도 엘리제궁에는 대통령 영부인의 집무실인 ‘살롱 블뢰(Salon Bleu)’, 대사들을 맞이하는 ‘대사방(Salon des Ambassadeurs)’가 있다. 대통령 전용 도서관(Bibliotheque)도 있다. 도서관에 있는 고색창연한 책꽂이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미테랑, 샤를 드골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찍은 장소이기도 하다. 엘리제궁의 야외 공간에는 정문 쪽에는 분수와 정원이 있어 산책을 할 수 있고, 뒷문 쪽 마당에는 역대 프랑스 대통령이 탔던 전용차량이 전시돼 있다. 시트로앵, 르노, 푸조 등 프랑스의 고유 브랜드 차량들의 클래식 모델부터 현대 모델까지 시대별로 볼 수 있다. 또한 대통령이 전시에 타는 군용트럭도 눈길을 끈다. 엘리제궁은 1722년 유명 건축가 아르망 클로드 몰레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왕족과 귀족의 저택 및 별장으로 쓰였고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불렸다. 루이 15세는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Marquise de Pompadour)에게 선물했다. 그녀를 혐오하던 정적들은 엘리제궁의 정문에 ’왕의 매춘부가 사는 집‘이라고 써있는 팻말을 써붙였다고 한다. 이후 1808년 나폴레옹 황제로부터 나폴리의 왕으로 임명된 뮈라 장군이 ‘엘리제-나폴레옹 궁전’이란 이름으로 황제에게 헌납했다. ‘엘리제 궁(Le Palais de l'Élysée)’이라는 이름은 18세기 말에 근처의 샹젤리제 거리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샹젤리제(Champs-Élysées)는 ‘엘리제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엘리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엘리시온’의 프랑스어식 표기로, 신들의 총애를 받은 영웅들이 지상의 삶을 마친 뒤에 들어간다는 축복 받은 땅이다. 나폴레옹 3세는 자신의 약혼녀인 외제니 드 몽티조에게 엘리제 궁전을 선물하기 위해 1853년에 건축가 조제프-외젠 라크루아를 시켜 전면 개축을 하였고 1867년에서야 끝난 대공사 결과, 오늘날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국가 원수의 공식 공관이 된 것은 제3공화국 때인 1874년부터였고, 제5공화국인 샤를 드골 대통령 취임(195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대령이 반드시 엘리제궁에 거주해야 할 의무는 없다. 사회주의 대통령이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거의 사적 공간으로 대통령궁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공식 업무가 끝나고 밤이 되면 그의 사택으로 돌아가기를 선호했다. 반면 후임자인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995년에서 2007년까지 2번의 임기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엘리제 궁에 머물렀다. 특히 시라크 대통령은 대통령궁의 예산을 105% 증가시켜 연간 9000만 유로에 달하는 비용을 썼다. 그 중 매년 1백만 유로가 엘리제 궁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마시는 와인 값으로 충당됐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사택에서 잠을 자고 엘리제궁의 집무실로 출퇴근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임기 중에 애인인 쥘리 가예의 아파트로 가기 위해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탄 채 엘리제궁을 몰래 빠져나가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스캔들을 낳기도 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엘리제궁은 프랑스 대통령의 집무실 겸 공관이다. 매년 9월 셋째 주 엘리제궁을 개방해 대통령 집무실 책상까지 공개한다. 대통령 집무실은 나폴레옹 3세가 황후 외제니를 위해 만든 금 장식방인 ‘살롱 도레(Salon Dor´e)’다. 집무실 옆에는 비서실장 집무실 등으로 쓰이는 초록색 방인 ‘살롱 베르(Salon Vert)’와 참모와 수시로 만나는 회의실이 있다. 한국의 새 대통령 집무 공간도 개방과 소통이 중시되기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과 들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800km를 걷는 ‘프랑스길(Caminos France)’이 가장 유명하지만, 포르투갈에서 출발해 해안길을 걸어가는 순례길은 색다른 풍광을 선사한다. 수백년 전부터 해외에서 온 순례자들은 돛단배를 타고 거센파도가 몰아치는 이베리아 반도 서북쪽 해안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보로 콤포스텔라까지 계속 걸어갔다. ‘세상의 끝’(The End of the World)으로 여겨졌던 대서양 바닷길. ‘죽음의 해안’으로 불리던 이곳은 신대륙 탐험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던 현장이었으며, 순례자들에게는 죽음을 명상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 길이었다. ● 세상의 끝, 피니스 테레 대서양은 유럽인들에게 ‘세상의 끝’이었다. 해가 지는 곳. 거센 폭풍우가 치는 바다. 사람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이었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이 해변으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야보고의 시신이 들어왔다. 팔레스타인에서 참수를 당해 순교했던 야고보는 돌을 싣는 배에 태워져 파드론 이리스 플라비아 해안에 도착했다. 지중해를 건너고,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이베리아 반도를 거슬러 올라가 스페인 북부 앞바다에 도착한 기적의 바닷길이다.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지하에서 산티아고의 무덤을 찾은 순례객 중 일부는 대서양 바닷길까지 다시한번 순례에 나선다. 콤포스텔라에서 100km 가량 떨어진 ‘피니스테레’다. ‘Finis(끝)’ ‘Terre(땅)’는 그야말로 스페인어로 ‘땅끝 마을’이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목적지였다면, 산티아고의 시신이 도착한 이 곳도 또다른 종착지다. 그래서 피니스테레에 있는 조개껍데기 문양의 이정표에는 0.0km라는 표시가 돼 있다. 피니스테레는 대서양 바다 위로 툭 튀어나온 반도의 끝에 높이 솟은 바위다. 폭풍우와 암초가 많아 배의 항로를 유도하는 등대에서 밤이면 불빛과 기적소리를 낸다. 이 곳의 바위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등산화가 있다. 불어오는 거센바람에 몸이 날아갈 정도로 휘청거린다. 그래도 사람들은 바위 위에 앉거나 서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등대의 해안절벽 바위에는 누군가 ‘세상의 끝을 따라서’(Sego Fin du Monde)라는 글을 써놓았다. 사람들은 세상의 끝에서, 죽음의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 카미노를 통해 여기까지 걸어온 스스로의 여정으로 돌이켜보며, 자신이 살아온 인생도 돌아본다.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고독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순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여정의 끝은 죽음이라는 절벽이다. 중세시절부터 순례객들은 피니스테레의 바위 밑에서 옷과 신발을 태웠다. 수백 km에 이르는 순례길과 함께 해왔던 옷은 자신을 얽매여왔던 과거의 삶을 뜻한다. 세상의 끝에서 죽음을 마주하며,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의식이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아직도 바위 사이에는 시커먼 그을음 자욱이 있는 곳이 있다. 이 바다에서 숙연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죽음의 해안’(La Coast da Morte)이라 불렸기 때문이다. 워낙 폭풍우도 많이 불고, 암초가 많아 역사적으로 이 앞바다에서는 수많은 배가 난파했다. 로마인들은 태양이 바닷 속으로 빠져 죽음을 맞이하는 이 곳을 태양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이 앞바다에서는 사건이 요즘에도 해양조난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피니스테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무시아 해변에서는 2002년 유조선 프레스티지호(4만2000t 급)가 침몰해 자원봉사자들이 기름범벅이 된 바위를 닦아내기도 했다. 무시아 해변에는 그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는 커다란 쪼개진 돌로 된 조각상이 서 있다. 무시아 해변은 야고보 성인이 이베리아 반도에 선교여행을 왔을 때 들어왔다는 곳. 당시 폭풍우가 폈는데 바닷가 바위 위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모님이 발현한 두 개의 돌은 ‘아발라(움직이는 돌)’와 ‘카데라(콩팥 모양의 돌)’로 순례자들이 올라가거나 바위 밑에 통과하며 사진을 찍는 곳이다. 그런데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거센 파도 때문에 바위 근처도 가기가 힘들었다. 이처럼 위험한 대서양을 ‘죽음의 해변’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갈리시아 서북쪽 코루냐 항구에 로마시대부터 등대로 사용된 유명한 헤라클라스 타워 앞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샤론의 조각상이 서 있다. 사람이 죽으면 건너는 스틱스 강을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이다. 유럽인들에게 대서양은 스틱스강, 황천강, 요단강과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이며, 세상의 끝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콜롬부스의 항해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아무도 건널 생각을 못했던 ‘죽음의 바다’에 나아가 새로운 신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 신대륙 발견의 첫 뉴스, 바이요나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해안길은 바이요나 항구로 이어진다. 항구 주변에는 거대한 성채가 있다.바요나는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배가 가장 먼저 도착해, 아메리카 발견 뉴스를 가장 먼저 스페인에 알린 영광을 갖고 있는 항구다. 콜롬부스의 선단은 3대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났는데, 콜롬부스가 탔던 산타 마리아호가 폭풍우에 휘말려 바다에 침몰했다고 한다. 그래서 2대의 배가 귀국하던 중 바다에서 헤어졌는데, 핀손 형제가 선장으로 있던 라핀타호가 바이요나 항구로 1493년 3월1일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콜롬부스가 탄 ‘라니냐 호’는 사흘뒤인 3월4일 리스본으로 도착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요나 항구에는 ‘도착(Arribada)기념비’가 서 있다. 그리고 매년 3월1일이 있는 첫째주 주말에는 ‘도착기념 축제’(Festa da Arribada)가 성대하게 열린다. 바요나 성채 바로 아래에는 ‘두 세계의 조우’(Encounter between the two world)라는 조각상이 있다. 이사벨라 여왕이 한 손은 하늘로 뻗은 채 서 있고, 맞은편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엄마와 아기, 망치를 든 켈틱인 등이 조각된 5개의 군상이 표현돼 있다. 또한 바이요나 항구에는 라핀타호도 똑같은 크기로 복원돼 바다에 떠 있다. 전장 17m의 라핀타호는 테니스 코트보다도 작은 크기다. 그런데 저렇게 작은 범선으로 대양을 건너 인도까지 갈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무모하면서도 일생일대의 목숨을 건 도전이었음에 틀림없다. 라핀타호가 들어올 때 배에는 아메리카 원주민 3명도 노예로 끌고 왔다고 한다. 유럽에 온 최초의 아메리카 인디언이었다. 그들은 바요나에서 살다가 죽었다. 바요나에는 핀손 선장의 동상을 비롯해 선원들이 물을 담았던 우물, 항해루트를 그려놓은 타일, 기념비와 조각품 등 수많은 ‘도착’ 기념물이 있는데, 이 곳에 살았던 유럽 최초의 아메리카 인디안을 위한 어떤 기념물도 없는 것은 허전함을 느끼게 했다. 바이요나 항구 주변에는 거대한 성채가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성채를 한바퀴 돌며 4km 구간의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성채 속에 중세수도원을 개조한 5성급 국영호텔인 파라도르가 최고의 전망을 선사한다. 바다 위에는 굴, 조개, 홍합 등을 양식하는 ‘바테아(Batea)’가 군데군데 떠 있다. ● 포르투갈 해안길과 영국길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이베리아반도의 서쪽 해안은 남쪽은 포르투갈, 북쪽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포르투를 거쳐 스페인 국경과 마주하는 미뇨강 하구를 만난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들판을 유유히 흐르는 미뇨 강은 투이(Tui)에서 대서양으로 흘러나간다. 낙동강이나 한강 하구처럼 강폭이 넓어져 삼각주를 형성하면서 대서양과 만난다. 투이에는 미뇨 강 옆 언덕에 거대한 성채와 같은 산타마리아 대성당이 있다.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지붕 위에서 바라보면 미뇨 강 건너에도 성채가 보인다. 포르투갈의 도시 발렌사 도 미뇨다. 스페인의 뚜이와 포르투갈의 발렌사는 철교로 이어져 있다. 미뇨강 다리에서 산티아고콤포스텔라까지는 114km. 도보로 100km 이상만 걸으면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포르투갈길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포르투갈길은 카미노(순례길)는 내륙으로 가는 길이 있고, 해안을 따라 가는 길 두가지가 있다. 스페인 순례자 후안 씨(53)는 11일간 해안길을 249km를 걸었다고 한다. 화가이면서 취미로 록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한다는 그는 “카미노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든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 말했다. 갈리시아의 해변은 영국의 해적이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살던 켈트족들이 침입해오거나 살았던 흔적이 많다. 과르다 해안의 해발 350m 높이의 성 프란시스코 산에서는 주변에는 기원전 고대 로마시대 이전에 켈트족이 살던 돌집들이 3000여 개나 남아 있다. 중앙에 화덕을 중심으로 한 주거지는 지붕을 올렸던 지푸라기만 없을 뿐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항구도시 코루냐의 로마시대부터 사용됐던 등대인 헤라클레스 타워 앞에는 스페인에 건너온 켈트족의 영웅 ‘브레오강’의 석상이 서 있다. 수염을 기른 브레오강은 방패와 칼을 들고 있는 전사의 모습이다. 폰테베드라 광장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나 들을 수 있는 백파이프 연주 소리가 울려퍼진다. 스페인 프리메가리가 축구클럽인 셀타비고는 항구 도시 비고의 자랑거리다. ‘셀타(Celta)’는 스페인어로 켈트 족이라는 뜻이다. 유럽 각국의 치열한 전장이었던 비고 앞바다는 신대륙에서 싣고 온 황금 보물선이 수없이 침몰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1702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당시 펼쳐졌던 ‘비고만(Vigo Bay) 해전’이다.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긁어온 금은보화를 가득실은 스페인 보물선 3척과 상선 13척이 영국 해군에 의해 나포당하거나 침몰했다. 영국 함대는 금과 은 4512파운드를 약탈했는데, 스페인은 보물선의 약탈을 피해 자침(自沈)을 택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리(1869년)’에 영감을 주었다. 상상 속의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네모 선장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비고만을 찾아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에서 금을 찾아 쓰는 장면이 소설 속에 나온다. 포르투갈 해안길을 걷다보면 ‘파소(Pazo)’로 불리는 귀족들의 대저택의 아름다운 정원도 구경할 수 있다. ‘파소 도 파라메이요’는 1714년부터 1895년까지 왕립 제지공장으로 사용됐던 집이다. 틴토강 계곡의 물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정원 앞으로 흐르고 있고, 작은 채플과 와인 창고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틴토강은 산티아고의 유해가 바다로 도착한 파드론의 이리아 플라비아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 집의 10대 손인 곤잘로 리베로 씨는 “산티아고 유해를 발견한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틴토강을 따라서 별빛이 비치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갔다”며 “바로 이 길이 첫 번째 카미노(순례길)였다”고 말했다. @@@ ● 인디아노스의 성공과 눈물, 영국 루트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 배를 타고 온 순례자들은 갈리시아 북서쪽에 있는 페롤리나 코루냐 항구에 도착한 후 콤포스텔라까지 걸어서 이동한다. 상대적으로 짧은 구간이어서 1주일 정도 여행하는 유럽 순례자들이 애용하는 길이다. 영국길에 있는 가장 큰 항구도시인 코루냐는 1489년 영국의 해적왕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침입에 맞서 결사항전을 통해 도시를 지켜냈던 스페인 여성전사 마리아 피타(1565~1643)의 동상이 시청앞 광장에 서 있다. 스페인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여성 헤로인이다. 코루냐는 또한 1957년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패션브랜드인 ‘자라(Zara)’의 첫 매장이 오픈한 곳이기도 하다. 항구도시라 바람이 많이 불어 건물마다 비바람을 막고, 햇빛도 반사해주는 하얀색 발코니를 설치해놓았다. ‘갈레리아스’로 불리는 화이트 발코 덕분에 이 도시는 ‘유리의 도시’(City of Glass)로 불린다. 푸른 하늘과 흰색 창틀이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해낸다. 영국길 순례길의 주요도시인 베탄소스의 시청 앞 광장에는 1869년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가서 큰 돈을 벌어 온 가르시아 나베이라 형제의 동상이 서 있다. 부자가 된 가르시아 나베이라 형제는 24년 만인 1893년 고향으로 돌아와서 학교와 병원, 고아원과 양로원, 축구장과 성당 등을 짓는 데 엄청난 재산을 기부했다. 그들의 장례식 때 어마어마했던 행렬을 찍은 사진이 그들에 대해 주민들이 얼마나 고마워했는지를 증언해준다. 이렇듯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을 가서 성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을 스페인에서는 ‘인디아노스(Indianos)’라고 불렀다고 한다. 콜롬부스가 서인도 제도를 발견했다고 믿었던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20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비고, 코루냐의 항구에서 아르헨티나, 쿠바, 멕시코, 미국 등 대규모 이민을 떠났다. 가이드 세르히오 씨는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아버지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이민을 갔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베탄소스 시내로 들어오는 올드 브릿지 게이트 앞에서 헝가리에서 온 아담(32)과 펀니(28)를 만났다. 각각 스위스와 헝가리에서 일하고 있는 남매는 7일간의 휴가를 내고 페롤 항구부터 코루냐, 산티아고에 이르는 123km 순례길을 걷고 있었다. 아담 씨는 “영국 루트가 가장 짧고 풍경도 좋기 때문에 이 길을 택하게 됐다”며 “오래 전부터 여동생이랑 함께 카미노를 걷기로 약속했는데, 여동생과 오랜만에 대화도 나누고 성당에 들러 가족을 위해 촛불도 켜면서 걷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럽의 순례객들은 짧은 구간을 1,2주 단위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카미노는 심각한 일생일대의 도전이거나 나 자신을 찾는 고행의 길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 들판, 별빛, 꽃을 바라보면서 노래 한곡, 시 한 구절이 떠올라도 좋은 길인 셈이다. 문어, 조개, 홍합 같은 싱싱한 해산물 요리와 갈리시아 특산 알바리뇨 품종의 화이트 와인은 여행의 좋은 동반자가 된다. 글·사진 산티아고 순례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과 들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800km를 걷는 ‘프랑스길’이 가장 유명하지만, 포르투갈이나 영국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콤포스텔라를 향해 걷는 해안길도 색다른 풍광을 선사한다. ‘죽음의 해안’으로 불리던 대서양 해안길은 신대륙 탐험의 치열한 각축장이었으며, 순례자들에게는 세상 끝에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는 길이었다.》○ 세상의 끝, 피니스테레 대서양은 유럽인들에게 ‘세상의 끝(The End of the World)’이었다. 해가 지는 곳. 거센 폭풍우가 치는 바다. 사람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이었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이곳으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야고보(산티아고)의 시신이 들어왔다. 팔레스타인에서 참수를 당해 순교했던 야고보는 돌을 싣는 배에 태워져 스페인 북서부 파드론 해안에 도착한 것이다.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 지하에서 야고보의 무덤을 찾은 순례객 중 일부는 다시 한번 바닷길 순례에 나선다. 콤포스텔라에서 100km가량 떨어진 ‘피니스테레’다. ‘Finis(끝)’ ‘Terre(땅)’는 스페인어로 ‘땅끝 마을’이다. 산티아고 대성당과 함께 또 다른 순례의 종착지다. 그래서 피니스테레에 있는 조개껍데기 문양의 이정표에는 0.0km라는 표시가 돼 있다. 피니스테레는 대서양에 툭 튀어나온 반도의 끝에 있는 바위다. 등대 밑 바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등산화가 있다. 거센 바람에 몸이 날아갈 정도로 휘청이는데도, 사람들은 바위 위에 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중세 시절부터 순례객들은 피니스테레의 바위 밑에서 옷과 신발을 태웠다. 얽매여왔던 과거의 삶(옷)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의식이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바위 사이에는 여전히 그을음 자욱이 남아 있다. 숙연한 기분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바다가 ‘죽음의 해안(A Costa da Morte)’이라 불렸기 때문이다. 폭풍우와 암초 때문에 이 바다는 수많은 난파선의 무덤이다. 피니스테레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무시아 해변에서는 2002년 유조선 프레스티지호(4만2000t급)가 침몰해 자원봉사자들이 기름범벅이 된 바위를 닦아내기도 했다. 무시아 해변에는 그 당시의 아픔을 기억하는 쪼개진 돌로 된 조각상이 서 있다. 무시아 해변은 야고보 성인이 이베리아 반도에 선교여행을 왔을 때 들어왔던 곳. 폭풍우 속에서 바닷가 바위 위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갈리시아 서북쪽 항구 코루냐에도 로마시대부터 등대로 사용된 ‘헤라클라스 타워’ 앞에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샤론의 조각상이 서 있다. 사람이 죽으면 건너는 스틱스 강을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이다. 이렇듯 유럽인들에게 대서양은 황천강, 요단강과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그런 의미에서 콜럼버스의 항해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아무도 감히 넘지 못했던 죽음의 바다를 용감하게 건너가 새로운 신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신대륙 발견의 첫 뉴스, 바이요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발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가는 해안길은 포르투를 거쳐 스페인 국경과 마주하는 미뉴강 하구를 만난다. 미뉴강 다리에서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110km. 도보로 100km 이상만 걸으면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포르투갈길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해안길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소식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됐던 바이요나 항구로 이어진다. 콜럼버스의 선단 중 핀손 선장이 이끄는 라핀타호가 1493년 3월 1일에 바이요나에 도착했다. 콜럼버스가 탄 ‘라니냐호’는 사흘 뒤인 3월 4일 리스본에 도착한다. 그래서 바이요나에서는 매년 3월 첫 주말에 ‘도착 기념 축제’가 성대하게 펼쳐진다. 바이요나 성채 바로 아래에는 ‘두 세계의 조우’라는 조각상이 서 있고, 항구에는 복제한 라핀타호(전장 17m)가 떠 있다. 테니스 코트보다 작은 범선으로 대서양을 건너 인도까지 갈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바이요나 항구 주변에는 성채에는 4km 구간의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갈리시아의 해변엔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살던 켈트족들이 살던 흔적과 문화가 남아 있다. 과르다 해안의 해발 350m 높이의 성프란시스코 산 주변에는 고대 로마시대 이전에 켈트족이 살던 돌집 유적이 3000여 개나 남아 있다. 코루냐의 헤라클레스 타워 앞에는 스페인에 건너온 켈트족의 영웅 ‘브레오강’의 석상이 서 있고, 도시의 광장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나 들을 수 있는 백파이프 연주 소리가 울려퍼진다. 이어지는 해안길은 항구도시 비고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축구클럽 ‘셀타비고’로 유명한 도시다. ‘셀타(Celta)’는 스페인어로 켈트족이라는 뜻. 비고 앞바다는 유럽의 치열한 세력다툼의 역사를 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702년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당시 펼쳐졌던 ‘비고만(Vigo Bay) 해전’이다.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긁어온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스페인 보물선 3척과 상선 13척이 영국 해군에 의해 나포당하거나 침몰했다. 스페인은 보물선의 약탈을 피해 자침(自沈)을 택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1869년)의 배경이 됐다. 상상 속의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네모 선장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비고만을 찾아 침몰한 스페인 보물선에서 금을 찾아 쓰는 장면이 나온다. 해안길에서 만난 스페인 순례자 후안 씨(53)는 “화가이면서 록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는데, 카미노를 걸으며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음악적 영감이 떠올랐다”고 말했다.○인디아노스의 성공과 눈물, 영국 루트 영국길은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 배를 타고 온 순례자들이 갈리시아 북서쪽 페롤이나 코루냐 항구에 도착해 콤포스텔라까지 걸어서 가는 길이다. 상대적으로 짧아 1주일 정도 여행하는 유럽 순례자들이 즐겨 애용하는 길이다. 1975년 스페인의 세계적인 패션브랜드인 ‘자라(Zara)’가 첫 매장을 열었던 항구도시 코루냐는 건물마다 화이트 발코니라고 불리는 ‘갈레리아스’가 아름답게 빛난다. 영국길 순례길의 주요 도시인 베탄소스의 시청 앞 광장에는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가서 큰돈을 벌어 온 ‘인디아노스(Indianos)’ 가르시아 형제의 동상이 서 있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와 학교와 병원, 보육원과 양로원, 축구장과 성당 등을 짓는 데 엄청난 재산을 기부했다. 이들처럼 아메리카 대륙 이민으로 성공한 뒤 귀향한 사람을 스페인에서는 ‘인디아노스’라고 불렀다. 순례길 가이드 세르히오 씨는 “코루냐, 비고 등의 항구는 20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중남미 대륙으로 대규모 이민을 떠나간 곳”이라며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의 아버지도 이곳 출신으로 이민을 갔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베탄소스로 들어오는 올드 브리지 게이트 앞에서 헝가리에서 온 남매 순례객 아담 씨(32)와 펀니 씨(28)를 만났다. 아담 씨는 “오랜만에 여동생과 만나 대화도 나누고 성당에서 가족을 위해 촛불도 켜면서 걷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처럼 카미노는 일생일대의 도전이거나 고행의 길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 들판, 별빛, 꽃을 바라보면서 노래 한 곡, 시 한 구절을 떠올려도 충분히 좋은 여행으로 여기며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어, 조개, 홍합 같은 싱싱한 해산물 요리와 갈리시아 특산 알바리뇨 품종의 화이트 와인은 여행의 좋은 동반자가 된다.글·사진 산티아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놀라웠던 것은 길 가에 가득 피어 있는 동백꽃이었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집집마다 빨간 동백꽃이 피어 있고, 항구도시 비고와 폰테베드라 같은 도시에서는 동백나무가 아예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붉은색, 연분홍색, 흰색 동백꽃, 애기동백꽃, 카네이션과 장미를 닮은 겹 동백꽃…. 호텔 식당에는 투명한 물 그릇 위에 분홍색 줄무늬 동백꽃이 띄워져 있는가 하면, 화장실에도 꽃봉오리째 떨어진 동백꽃이 꽃병에 장식돼 있다. 8000종이 넘는 동백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갈리시아는 유럽 최대의 동백나무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해안은 아래쪽은 포르투갈, 위쪽은 스페인 갈리시아 주가 차지하고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갈리시아의 주도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백꽃은 주로 남해안, 제주, 울릉도와 같은 해안에 많이 피어나는데, 갈리시아 지방도 대서양이 가까운 해양성 기후로 습하고, 기온이 온화하기 때문에 동백나무가 잘 자란다고 한다. 갈리시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도 있지만, 겨울부터 봄에는 ‘카멜리아 루트(Camellia Route)’를 따라 여행하는 사람도 많다. 프로축구팀 ‘셀타 비고’로 유명한 항구도시 비고의 한 식당에서 만난 독일 관광객 팀은 “갈리시아 북쪽부터 남쪽도시를 가로질러 동백나무가 많이 피기로 유명한 10곳의 정원과 6곳의 카미노(순례길)를 따라 산책하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갈리시아의 동백꽃은 18세기 중국, 일본 같은 동양에서 포르투갈 선원에 의해 수입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왕궁의 정원이나 ‘파소(Pazo)’라고 불리는 귀족들의 대저택 정원에 심어졌다. 폰테베드라의 교외에 있는 13세기부터 중세 귀족의 대저택으로 쓰였던 ‘파소 데 루비아네스’(Pazo de Ruibanes)는 ‘카멜리아 루트’ 여행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다. 파소 데 루비아네스 정문에는 ‘국제 카멜리아협회’가 인정하는 최고의 동백꽃 정원이라는 마크가 달려 있다. 17세기부터 조성된 이 정원에는 70헥타아르의 공간에 4500종 이상의 동백나무를 비롯해 유칼립투스, 목련, 포도나무 등 다양한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빨간 꽃잎에 노란 수술이 있는 홑겹 동백부터, 카네이션과 장미를 닮은 겹동백까지 비에 젖은 색색의 동백꽃이 매혹적인 정원이다. 개구리밥 풀이 연못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개구리 정원’ 주변에도 붉은 동백꽃이 툭툭 떨어져 있다. 파소 데 루비아네스는 또한 포도밭에서 키우는 알바리뇨 품종의 포도로 담은 화이트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동백꽃 마크를 단 ‘파소 데 루비아네스 와인’은 2021년 갈리시아 베스트와인으로 선정돼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대저택 안에 도서관에 있는 책상 위에는 각도기와 나침반, 조개 모양의 은그릇이 놓여 있었다. 가이드인 누리아 씨(34)는 “이 집의 최근 소유주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컬렉션을 수집한 선장이었다”며 “그 중에서도 각도기와 나침반은 선장에게 꼭 필요한 네비게이션 도구”라고 말했다. 1730년 대에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소개한 이는 예수회 선교사이자 식물학자였던 게오르그 카멜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까멜리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수석 외과의사였던 독일 출신 엥겔베르트 켐퍼는 동백을 ‘일본 장미’로 불렀다.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은 “원래 중국과 한국에도 자라는 동백에 ‘카멜리아 자포니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엥겔베르트 켐퍼가 일본에 있는 동안 처음으로 이 식물에 대해 기술했기 때문”이라며 “만약 그가 한국에서 동백나무를 처음 봤다면 코레아나(koreana)라는 종명이 붙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카멜리아는 19세기에 유럽 사교계에서 몸을 치장하는 장식품으로 사용되면서 전성기(1848~1860)를 맞이했다. 파리에서는 귀족들이 카멜리아를 액세서리로 착용했다. 극장이나 야외 나들이를 갈 때 여성들은 이 꽃을 목과 머리에 달았다. 알렉상드르 뒤마피스가 ‘춘희(椿姬·La Dame aux Camelias)’를 발표한 해가 1848년이다. 뒤마는 19세기 프랑스의 급변하는 사회상을 반영해 부르주아 사회의 편견과 인습을 고발하면서 신분 차이로 이뤄지지 못한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그녀(마르그리트 고티에)는 연극을 반드시 처음 상연하는 날 관람하여, 나 역시 그 시각에 가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몰래 보았다. 그녀는 극장의 가장 비싼 박스석에서 감상을 하는데, 그녀 곁에는 항상 쌍안경과 눈깔사탕과 동백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동백꽃은 한 달에 25일간은 흰 동백꽃이었고, 나머지 5일 동안은 붉은 꽃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동백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이다.” 파리 사교계의 유명한 고급 창부 마르그리트와 지방 명망가 집안 출신으로 파리로 유학 온 청년 아르망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인 ‘춘희’.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가 1853년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라는 제목의 오페라로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하면서 더욱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극 중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순수한 정절과 그리움을 간직하고자 늘 가까이했던 동백꽃은 당시 사교계에서 이 꽃이 어떤 의미와 상징으로 사람들의 문화 속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비련의 여인 고티에는 폐결핵에 걸려 동백꽃과 같은 선혈을 토하며 쓸쓸하게 시들어간다. 그녀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된 아르망은 몽마르트 공동묘지에 묻힌 그녀의 묏자리 전체를 평소에 그녀가 지니고 다녔던 ‘흰 동백꽃’으로 꾸며놓는다. 슬픔의 이미지가 가득한 흰 동백꽃은 이 소설의 비극적 결말을 잘 표현한다. 19세기 말 동백꽃의 인기는 잠시 시들했다가 20세기 초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 샤넬(CHANEL)에 의해 세련되고, 우아함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냈다. 프랑스 남서부의 수녀원에 딸린 고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코코 샤넬은 그곳에 핀 동백꽃을 아주 좋아했다. 훗날 그녀는 동백꽃을 샤넬의 대표 이미지로 디자인해 드레스와 모자, 가방뿐 아니라, 목걸이와 귀걸이 같은 주얼리에도 동백꽃 장식을 사용했다. 검은색 포장 상자를 두른 리본에 달린 한 송이 흰색 동백꽃은 확실한 시그니처가 됐다. 동백꽃의 낙화는 꽃잎이 시들어 낱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싱싱한 꽃잎을 가진 통꽃으로 툭하고 떨어지는 게 특징이다. 꼿꼿하게 통째로 떨어지는 낙화에서 장렬한 기개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처연한 슬픔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가톨릭에서는 동백꽃을 순교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겨울에도 짙푸른 잎을 달고 한기가 채 가시기 전에 붉게 피어나 한겨울 매서움을 무색하게 만들고, 한창 꽃이 아름다울 때 하얀 눈밭에 자기 목을 쳐내듯이 시들지 않는 붉은 통꽃으로 툭 툭 떨어지기 때문이다. 눈 위에서 흐트러진 낙화는 진한 핏빛 순교를 연상시킨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목적지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인 성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다. 성 야고보는 팔레스타인에서 참수당해 순교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순교자의 상징인 동백꽃이 피어나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국내 숙박할인 쿠폰 100만 장을 잡아라!’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겐 여행숙박 할인혜택을 주고, 위기에 빠진 관광업계엔 비성수기 여행수요 증대로 업계 회복을 지원하는 ‘ESG와 함께하는 2022 대한민국 숙박대전’이 시작된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와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는 7일 오전 10시부터 국내 숙박 할인쿠폰 발급을 개시한다. 발급될 쿠폰 수량은 총 100만 장으로, 숙박비가 7만 원 이하면 2만 원 권, 초과하면 3만 원 권 쿠폰을 사용할 수 있다. 할인 적용 시설은 호텔, 콘도, 리조트, 펜션, 농어촌민박, 모텔 등 국내 숙박시설이며, 미등록 숙박시설과 대실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발급 기간은 5월 8일까지이나 선착순으로 100만 장이 소진되면 조기 마감된다. 쿠폰은 1인당 1회 받을 수 있으며, 사업에 참여하는 총 49개 온라인여행사를 통해 발급된다. 쿠폰을 받으려면 매일 유효시간인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쿠폰 발급과 함께 숙박 예약과 결제를 해야 한다. 시간 내 예약과 결제를 안 했거나 예약을 취소하면 발급된 쿠폰은 자동 소멸되며 쿠폰 수량이 남아 있을 경우 다음 유효시간에 재발급 받을 수 있다. 한편 공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ESG 가치 확산을 위한 친환경·상생·지역경제 활성화 등 다양한 연계 프로모션을 추진한다. 특히 오는 6월 산불 피해지역 조기회복을 위해 숙박대전 참여 온라인여행사와 함께 특집관 운영, 추가 할인혜택 제공 등 ‘산불피해지역 특별 지원 프로모션’도 준비 중이다. 또한 지자체와 함께 특별 할인쿠폰을 발행하는 ‘대한민국 숙박대전 지역편’을 추진, 코로나 대유행 후 본격적인 지역관광 활성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추가 할인쿠폰, 카드사 할인, 경품이벤트, 레저체험 특가, 렌터카 할인 등 숙박대전과 연계한 여행업계의 다양한 추가혜택도 준비돼 있으며 쿠폰 사용방법, 발급채널 등 자세한 사항은 공사 ‘대한민국 구석구석’ 누리집 내 숙박할인쿠폰 안내페이지(ktostay.visitkorea.or.kr)를 참조하면 된다. 한편 지난해 11월 단계적 일상회복 시행에 따라 재개된 숙박대전 성과 분석 결과, 동 사업으로 78만여 명에게 숙박 할인혜택을 제공됐으며 숙박매출액 944억 원, 여행소비액 3108억 원, 판매금액 대비 생산유발효과 1920억 원, 소득유발효과 505억 원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새로운 국내여행 계획을 세운 관광객이 90만 명에 달하는 등 국내여행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신규여행수요 창출을 통한 지역관광 활성화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공사 마정민 국민여행지원팀장은 “본 프로모션이 산불피해지역 및 국내 여행업계의 조기회복을 지원하고 국내여행을 통해 코로나에 지친 국민들이 재충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수많은 동백꽃을 만난다. 집집마다 빨간 동백꽃이 피어 있고, 동백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유서 깊은 동백나무 정원과 순례길만 찾아다니는 ‘카멜리아 루트’ 여행도 인기 있다. 가톨릭에서는 동백꽃을 순교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겨울에 붉게 피어나고, 한창 꽃이 아름다울 때 자기 목을 쳐내듯이 통꽃으로 툭툭 떨어지기 때문이다. 눈 위에 흐트러진 낙화는 진한 핏빛 순교를 연상케 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판소리와 오페라가 결합된 ‘판페라’를 개척하며 판소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온 명창 오지윤(57) 다음달 7일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콘서트를 연다. 공연 제목은 ‘오지윤과 함께 하는 판페라 힐링콘서트-삶의 소리’. 기존 판소리 공연을 뛰어넘어 판소리 명창과 성악가, 국악기와 클래식 60인조 모스틀리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함께 콜라보를 이루는 새로운 판페라 장르를 선보인다. 콘서트에는 ‘판페라단’ 단장을 맡고 있는 오지윤 명창을 비롯해 특별게스트로 프리마돈나 소프라노 김희정과 ‘조선 판스타’ 결승 진출했던 박성우, 판소리명창 허애선, 양은희,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 등이 출연한다. 콘서트는 문화예술전문채널 아르떼TV로 중계될 예정이다. 콘서트 관계자는 “판페라 공연은 우리의 뛰어난 판소리가 세계 무대에서 한류를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하고, 동양과 서양의 소리가 얼마나 훌륭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도 보여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인 오지윤 명창은 제2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문 금상을 수상했으며,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공부했다. 오 명창은 판소리 눈대목(두드러지거나 흥미 있는 대목)을 오페라의 아리아처럼 편곡해 부르는 ‘판페라(판소리+오페라)’ 장르를 만들어 판소리의 현대화, 세계화를 위한 공연을 펼쳐왔다. 오지윤 단장은 “우리의 깊고 울림있는 소리를 매개로 지역간, 세대간 벽을 허물고 나아가 세계가 하나가 됨을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며,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도 따듯한 위로를 드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요르단 페트라의 와디 아라바 사막 한가운데에는 약 2000년 전에 지어진 로마 시대 원형극장이 남아 있다. 계곡의 바위를 깎아 만든 이 극장의 수용 인원은 무려 8500명. 나바테아인이 이집트와 아라비아의 교차로에 건설한 페트라가 엄청나게 큰 사막의 대상(隊商) 도시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극장은 마이크 없이도 무대에서 말하는 소리가 객석 끝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최고의 음향 효과를 자랑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맞은 새 봄. 해외여행의 빗장이 하나둘씩 풀리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에도 다시 배낭에 조개껍데기를 매달고 걷는 발걸음이 생겨나고 있다. 하루에 8유로(약 1만원)면 잘 수 있는 공공 순례객 숙소(알베르게)도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여행지다. 코로나 전인 2018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은 한국인은 5665명으로 전세계 9위, 아시아 1위다. 일본(25위), 중국(28위)에 비해 월등히 많다. 종교적인 이유로 순례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 여행자가 많다. 들꽃이 피어나는 산티아고 순례길‘땡~땡~땡~’스페인 북서부 산 속 고갯길. 하얀 눈이 수북히 쌓인 ‘산타마리아레알 오 세브레이로’ 성당의 종소리가 고즈넉하게 울렸다. 담벼락 근처에 심어진 호랑가시나무의 뾰족뾰족한 이파리와 빨간 ‘사랑의 열매’ 위에도 흰눈이 쌓여 크리스마스 엽서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 곳은 중세시대 사제가 미사를 드리던 도중 성배에 담긴 포도주가 실제 피로 변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기적의 성배 앞에 한국어로도 비치돼 있는 ‘순례자를 위한 축복 기도’를 읽어본다. 마지막 구절이 특히 마음에 다가온다.‘행복하세요. 그리도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세요.’성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Camino)은 전 유럽에서 출발한다. 프랑스, 포르투갈, 영국, 독일 등 다양한 지점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향해 걸어오는 지도는 조개 무늬를 닮았다. 조개처럼 한쪽 끝을 중심으로 부채꼴모양으로 길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총 연장 800km나 되는 프랑스길(Camino Frances)은 가장 인기가 높은 순례길이다. 프랑스 생장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2018년 산티아고순례길을 걷는 연간 30만여 명의 순례객 중 60%가량이 프랑스길을 걸었다. 그러나 순례길은 100km 이상만 도보로 걷거나, 200km 이상을 자전거로 걸으면 순례 인정증을 주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1주일~열흘 정도 코스를 걷기도 한다. 프랑스길의 경우 산티아고에서 약 100km 남짓 떨어진 사리아 또는 세브레이로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해발 1300m 고지대인 세브레이로 마을에는 아직도 눈이 내렸다. 산티아고순례길은 워낙 다양한 지역을 지나가기 때문에 요즘엔 사계절의 날씨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는 봄꽃이 한창이다. 카미노(순례길) 주변에는 우리나라 개나리꽃처럼 노란 ‘또쇼(Toxo)’가 가득 피어 있다. 병아리의 솜털처럼 동글동글한 ‘미모사’가 숲을 이루고 있고, 땅 위로 솟아오른 수선화는 산들바람에 흔들리며 꾸벅 절을 한다. 자목련, 백합, 철쭉까지 봄꽃이 한꺼번에 피어난다. 그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동백이었다. 대서양 해변을 걷는 산티아고순례길 포르투갈 루트는 요즘 그야말로 ‘동백꽃필 무렵’이다. 동백꽃은 18세기 말 일본과 중국에서 포르투갈 선원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로 들여왔다고 한다. 갈리시아 지방의 리아스식 해안지역은 습기가 높고, 온화한 날씨, 비옥한 토질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동백나무 밀집 지역이 됐다. 스페인 프로축구팀 ‘셀타 비고’로 유명한 항구도시 비고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한 독일 여행객은 “갈리시아 북부 코루냐에서 남부 폰테베드라까지 관통하는 12개의 동백꽃 정원을 찾아가는 ‘카멜리아 루트(Camelia Route)’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폰테베드라의 동백나무 정원 ‘파소 데 루비아네스(Paso de Rubianes)’는 중세시대 귀족의 대저택이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정원에는 800여 그루의 다양한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분홍색, 붉은색, 흰색 등 다양한 동백꽃이 꽃잎채 뚝뚝 떨어져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 여수, 제주 등 남해안 풍경만큼 멋지다. 갈리시아의 도심 곳곳에는 동백나무가 가로수처럼 심어져 있어 밤에도 활짝 피어난다. 다시 문여는 알베르게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가는 길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참수당했던 순교자 야고보의 주검은 제자들에 의해 배에 실려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의 해안에 도착했다고 한다. 서기 813년 경 별빛이 비추는 곳에 가보니 그의 무덤이 발견됐다고 한다. 콤포스텔라는 ‘별빛(Stella)이 비추는 들판(Campos)’이라는 뜻이다. “누군가 자신의 길을 발견했을 때, 잘못된 시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필요하다. 실망, 실패, 의기소침은 신이 길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이다.”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의 책 ‘순례자’에서도 밤하늘에 선명하게 흐르는 은하수는 주인공이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해준다. 코엘료의 책 외에도 수많은 국내외 저자들의 답사기는 21세기에도 종교와 관계없이 현대적인 사색과 명상의 길로 손꼽히게 했다. 스페인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순례객 중 1위는 회사원(25.85%), 2위 학생 (17.92%), 3위는 퇴직자(13.06%)였고, 연령대로도 30대 이상이 73%나 차지한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멀리 동쪽 끝에서 온 한국인들이 특히 이 길을 많이 걷는 것에 대해 스페인 사람들도 놀라워한다. 그러나 코로나가 휩쓴 지난 2년. 산티아고순례길을 찾는 사람은 2018년 총 32만여 명에서, 지난해에는 17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는 산티아고순례길의 모든 공립 순례객 숙소(알베르게)가 폐쇄됐었다. 지난 10일 포르투갈 루트의 레돈델라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았다. 지난해 7월부터 알베르게는 3분의1 수준으로만 제한적으로 문을 열었지만 순례객은 스페인 국내인들로만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스페인의 모든 ‘거리제한’이 풀려 42명 정원인 침대를 제한없이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순례객이 10명이 채 안된다. 이 숙소의 호스피탈레라(관리인)인 소니아 씨는 “각국에서 자가격리 여행규제가 풀리면서 4월 부활절부터 예전처럼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갈리시아의 독특한 풍경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는 갈리시아의 수도다. 모든 순례길이 모여드는 갈리시아를 걷다보면 끊임없이 만나는 상징물들이 있다. 먼저 교차로에 서 있는 돌로 만든 십자가 ‘크루세이로(Cruseiro)’다. 갈리시아 전역에만 1만2000여 개나 서 있는 돌십자가는 여행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십자가의 앞뒤에는 예수, 성모마리아, 아담과 이브, 성 야고보, 아시시의 프란시스코 성인 등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마을 앞에 마치 석등이나 장승처럼 서 있는 돌십자가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순례길 임을 문득문득 일깨워준다. 시골 마을 집 앞마다 세워져 있는 직사각형의 자그마한 창고도 갈리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옥수수나 감자 등을 저장하는 창고인 ‘호레오(Horreo)’다. 지붕 위 양쪽에 십자가 장식 때문에 언뜻 보면 무덤 같아 보이기도 한다. 신에게 드리는 추수감사와 보호를 기원하는 창고다. 호레오 밑이 돌기둥 받침으로 바닥에서 떠 있는 이유는 습기와 곡식을 훔쳐먹는 야생동물을 막기위한 장치다. 호레오는 집집마다 크기와 색깔이 다른 데, 교회나 수도원, 부유한 집 앞에는 커다란 호레오가 있어 굴뚝 크기와 함께 집의 살림살이 규모를 파악하게 해준다고 한다. 순례길에서는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 가리비 조개껍데기, 화살표가 가야할 방향과 남은 거리를 알려준다. 조개가 순례길의 상징이 된 이유는 산티아고의 유해가 스페인 해안에 도착했을 때 조개껍데기에 싸여 있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그런데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처럼 조개가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순례길 가이드 세르히오 씨는 “어린아이 세례식도 조개모양의 그릇 위에서 행해지는데, 조개는 새로 태어나는 삶을 의미한다”며 “조개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카미노(순례길)를 상징하는 알레고리”라고 해석했다. 프랑스길 사모스의 베네딕트 수도원 인근에는 순례자의 발을 치유해주는 높이 27m의 거대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자라고 있다. 500살 가량 된 이 나무는 두 사람이 마주 안아야 손이 닿을 정도로 두껍다. 안내문에는 “순례자가 이 나무를 안고 가면,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발이 아프지 않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만난 패트릭 씨(32·독일)는 지난 2월11일에 출발해서 3월8일까지 약 620km를 걸어왔다고 한다. 하루에 25~30km 씩 걸어온 셈이다. 레스토랑 셰프로 일했다는 그는 “코로나로 힘들었던 지난 2년 동안 이 길을 걷는 것을 꿈꿔왔다”고 말했다. 프랑스길을 걷다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 가까워지면 언덕 위에 올라가면 저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과 종탑의 실루엣이 보이는 지점이 있다.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 기쁨의 언덕이란 뜻이다. 언덕 위에는 두 명의 순례자 동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는 도착한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자전거를 타고 온 순례자,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건 반려견과 함께 걸어온 사람도 보인다. 산티아고 대성당 지하에는 은으로 도금한 사도 야고보의 무덤을 볼 수 있다. 대성당에 들어갈 때 이용하는 ‘자비의 성문(聖門·Porta Sancta)’은 ‘성 야고보 희년(禧年)’에만 열리는 문이다. 원래 2021년에만 열려야 하는데, 코로나19의 여파로 교황청의 특별허가로 올해까지 열린다고 한다. 산티아고대성당에서는 매일 낮 12시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린다. 미사 때에는 사제가 순례자의 이름과 국적을 직접 불러주며 기도해준다. 제대 앞에 천장에서부터 늘어뜨려져 있는 무게 60kg, 높이 1.6m에 이르는 대향로(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징이다. 중세시대 수많은 순례자들이 24시간 성당의 회랑에서 머물렀는데,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수시로 대향로의 줄을 잡아당겨 향을 뿜어댔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법순례자는 여권인 ‘크레덴시알 데 페레그리노(Credencial de Peregrino)’를 발급받아야 한다. 순례길의 주요 지점에서 도장을 받아 방문 인증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 도장은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 사무소에서 받을 수 있다. 90% 이상은 도보로 순례를 마치지만, 말을 타고 중세시대의 왕과 기사들처럼 순례길을 종주하는 사람도 있고, 요트를 타고 대서양에 있는 17곳의 항구를 통과한 후 걸어서 산티아고콤포스텔라로 들어오기도 한다. 숙소는 2층 침대에서 잘 수 있는 저렴한 공공 숙박시설(1만원대)인 알베르게에서 숙박할 수 있으며, 호텔도 많다. 그 중에서도 최고급 호텔(4~5성급)인 ‘파라도르’는 경치가 뛰어난 장소나 중세시대 고성, 왕궁, 예배당, 수도원, 현대적 건물, 자연환경 등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시설을 현대식으로 개조해 국영으로 운영하는 호텔이다. 스페인에서는 100개 이상의 파라도르가 운영되고 있는데, 일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기도 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는 산티아고대성당 앞에 중세시대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이었던 건물을 개조한 5성급 ‘로스 레예스 카톨리코스 호스텔’이 있다. 포르투갈 루트에 있는 바이요나 항구의 장엄한 요새를 개조해 만든 ‘파라도르 데 바이요나’는 최고의 바다전망을 즐길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 2년간 ‘코로나19’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맞은 새봄. 해외여행의 빗장이 조금씩 풀리면서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도 다시 배낭에 조개껍데기를 매단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생겨나고 있다. 하루에 8유로(약 1만 원)면 잘 수 있는 공공 순례객 숙소(알베르게)도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스페인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순례길 완주 공식 인증을 받은 사람 중 한국인은 전 세계 9위, 아시아 1위다. 종교적인 이유로 순례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변화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 여행자가 많다.》○ 들꽃이 피어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땡∼땡∼땡∼.’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주 해발 1300m 산속 고갯길. 3월인데도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인 ‘산타마리아 레알 오세브레이로’ 성당의 종소리가 고즈넉하게 울렸다. 담벼락 근처에 심어진 호랑가시나무의 뾰족뾰족한 이파리와 빨간 ‘사랑의 열매’ 위에도 흰눈이 쌓여 크리스마스 엽서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이 성당은 중세시대 사제가 미사를 드리던 도중 성배에 담긴 포도주가 실제 피로 변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 기적의 성배 앞에 한국어로도 비치돼 있는 ‘순례자를 위한 축복 기도’를 읽어본다. 마지막 구절이 특히 마음에 다가온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세요.’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카미노)은 전 유럽에서 출발한다. 프랑스, 포르투갈, 영국 등 다양한 지점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이베리아반도 서쪽 끝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향해 부채꼴 모양으로 걸어오는 지도는 조개 무늬를 닮았다. 총연장 800km나 되는 프랑스길은 가장 인기가 높은 순례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연간 30만여 명의 순례객 중 60%가량이 프랑스길을 걷는다. 프랑스 생장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그러나 순례길은 100km 이상만 도보로 걷거나, 200km 이상을 자전거로 완주하면 순례 인정증을 주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1주일∼열흘 정도 코스를 걷기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과 들, 바다 등 워낙 다양한 지역을 지나가기 때문에 흰눈부터 소나기까지 사계절 날씨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요즘 길가에는 봄꽃이 한창이다. 카미노 주변에는 개나리꽃처럼 노란 ‘또쇼(Toxo·톡소)’와 솜털처럼 동글동글한 ‘미모사’가 숲을 이루고 있다. 수선화는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자목련, 백합, 철쭉까지 순서 없이 피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동백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모여드는 갈리시아 지방은 요즘 그야말로 ‘동백꽃 필 무렵’이다. 동백나무가 아예 가로수처럼 심어져 있을 정도다. 동백꽃은 18세기 말 일본과 중국에서 포르투갈 선원이 이베리아반도로 들여왔다고 한다. 폰테베드라에 있는 중세시대 귀족의 대저택인 ‘파소 데 루비아네스(Paso de Rubianes)’의 정원에는 유칼립투스 나무와 8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곳에서 만난 아일랜드 여행객은 “갈리시아 북부 코루냐에서 남부 폰테베드라까지 관통하는 12개의 동백꽃 정원을 찾아가는 ‘카멜리아 루트(Camelia Route)’ 여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문 여는 알베르게 콤포스텔라는 ‘별빛(Stella)이 비추는 들판(Campos)’이라는 뜻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참수당했던 순교자 야고보의 주검은 제자들에 의해 배에 실려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의 해안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잊혀져 있던 무덤은 서기 813년경 별빛이 비춰 사람들에게 다시 발견됐다고 한다. 요즘에도 밤하늘에 선명하게 빛나는 은하수는 순례자들의 여정과 함께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를 비롯해 수많은 현대의 산티아고 순례길 답사기는 종교와 관계없이 사색과 명상의 길로 유명하게 했다. 스페인 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순례객 중 1위는 회사원(25.85%), 2위는 학생(17.92%), 3위는 퇴직자(13.06%)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든 공립 순례객 숙소(알베르게)가 폐쇄됐었다. 10일 찾아간 레돈델라의 알베르게는 코로나 이전에는 4∼9월 모든 침대가 꽉 찼던 유명한 숙소. 올해 1월부터 스페인의 모든 ‘거리제한’ 규제가 풀렸지만 42명 정원 중 하루 손님은 5∼10명에 불과하다. 이 숙소의 호스피탈레라(관리인)인 소니아 씨는 “각국에서 여행 규제가 풀리면서 다음 달 부활절 휴가 이후부터는 예년처럼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갈리시아의 독특한 풍경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과 들판, 강과 바다를 끝없이 지나간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독특한 상징물은 갈리시아 지방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먼저 성당이나 교차로, 다리 앞에 서 있는 돌로 만든 십자가 ‘크루세이로(Cruseiro)’다. 갈리시아 전역에만 1만2000여 개나 세워져 있는 크루세이로는 여행자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시골 마을 집 앞마다 세워져 있는 십자가가 달린 자그마한 창고도 이 지역의 명물이다. 옥수수나 감자 등을 저장하는 창고인 ‘오레오(Horreo)’다. 순례길에서는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 가리비 조개껍데기와 화살표가 길을 알려준다. 야고보의 유해가 스페인 해안에 도착했을 때 조개껍데기에 싸여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순례길 가이드 세르히오 씨는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가 조개 위에서 태어난 것처럼, 조개는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뜻한다”며 “조개껍데기는 자신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순례자를 상징하는 알레고리”라고 설명했다. 프랑스길 사모스의 베네딕트 수도원 인근에는 순례자의 발을 치유해 주는 사이프러스 나무(높이 27m)가 자라고 있다. 수령 500년가량 된 이 나무는 두 사람이 마주 안아야 할 정도로 굵직했다. 안내문에는 “순례자가 이 나무를 안고 가면,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발이 아프지 않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만난 파트리크 씨(32·독일)는 2월 11일에 출발해서 3월 8일까지 약 620km를 걸어 왔다고 한다. 하루 25∼30km씩 걸은 셈이다. 레스토랑 셰프로 일하고 있는 그는 “지난 2년간 코로나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데, 길을 걸으며 내가 진정 원하는 삶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었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는 도착한 순례자들로 북적인다. 자전거를 타고 온 순례자, 조개껍데기 목걸이를 건 반려견과 함께 걸어온 사람도 보였다. 대성당 지하에 있는 사도 야고보의 무덤과 제대 앞에 매달려 있는 무게 60kg, 높이 1.6m에 이르는 대향로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상징이다. ○ 순례 방법산티아고길 순례자는 여권인 ‘크레덴시알 데 페레그리노(Credencial de Peregrino)’를 발급받아야 한다. 숙소는 저렴한 알베르게가 있지만, 곳곳에 호텔도 많다. 특히 성당, 수도원, 왕궁, 성채 등 역사적 유적지를 활용한 국영 ‘파라도르 호텔’은 멋진 뷰와 럭셔리한 시설, 미식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산티아고=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독일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브란덴부르크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광장에는 물결치는 파도처럼 2700개의 콘크리트 조각이 놓여 있었다. 200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맞아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이 설계한 ‘유대인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콘크리트 무덤’을 걷다 보면 돌덩이가 어느새 사람 키보다도 커져 강제수용소에 갇힌 듯한 음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지하에는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크푸르트는 독일 라인강의 지류인 마인강 하류에 있는 도시로 독일의 교통과 경제의 중심지다. 현재는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세계 10대 금융기관 중 9곳이 이곳에 지점을 두고 있다.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뢰머광장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이 대관식 이후 연회를 열었던 장소로 지금도 박람회 등 각종 행사가 열린다. 뢰머광장은 앙증맞은 뾰족지붕 목조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동화 같은 풍광에 친밀감이 전해진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잘 지어놓은 건물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건축과 공간의 힘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색다른 체험을 한다. 종교건축도 마찬가지다. 깊은 산 속의 사찰이나 유럽의 대성당에서는 종교와 관계없이 명상을 하며 위로와 안식을 얻고, 치유의 힘을 얻기도 한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왕릉이 있는 경기 화성은 한때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배경이 됐던 과거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공간이 속속 들어서면서, 건축과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여행지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모여드는 남양성모성지계곡의 끝에 우뚝 솟은 거대한 두 개의 기둥. 10만 평 규모의 화성 남양성모성지 입구에서부터 멀리 보이는 대성당은 순례자의 발걸음을 끌어들인다. 숲과 돌, 조각품이 어우러진 산책길에는 엄마의 치마를 붙잡고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서 있는 한국적 성모자(聖母子) 상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붉은 벽돌에 화강암 줄무늬. 고딕성당처럼 우뚝 솟은 외관과 달리 내부로 들어가면 펑퍼짐하고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52m의 원통형 타워는 ‘빛의 기둥’이다. 타워를 비스듬히 잘라낸 천장의 유리창 격자를 통과해 내려온 빛은 제대 벽면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무늬를 그려 넣는다. 여름의 하지 때는 그림자가 기다란 천사의 날개처럼 정확히 바닥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1886년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은 60만 장의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서울 강남 교보타워와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79)의 작품이다. 르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의 종교건축에서처럼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의 건축에서도 빛은 핵심 요소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충격을 던져주는 것은 ‘21세기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91)의 십자고상과 성화(聖畵)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일반적인 예수상과 달리, 두 눈을 뜨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예수상을 보며 사람들은 낯설고 충격적인 인상을 받는다. 십자가 뒤에서 거꾸로 박은 날카로운 못은 손과 발을 뚫고 나와 45도가량 하늘로 솟아 있다. 이상각 주임신부는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못이 아니라 빛이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천장에 줄로 매달려 있는 ‘최후의 만찬’과 천사가 성모마리아의 잉태를 알리는 ‘수태고지’를 그린 성화는 신기하게도 뒷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청바지 같은 현대인의 남루한 옷차림을 한 주인공들을 그린 ‘최후의 만찬’ 뒤편으로 돌아가면, 예수와 제자들의 뒷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누군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에 제자들이 수군대며 서로 손가락질하는 순간의 소란스러움과 쓸쓸한 예수의 뒷모습이 큰 울림을 준다. ‘수태고지’ 그림의 뒷면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 모습도 그려져 있다.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건축에서 또 하나의 놀라움은 바로 ‘소리’다. 성당의 천장과 벽을 둘러싸고 있는 이중의 벽은 막혀 있지 않고 뚫려 있다. 그 사이를 단풍나무 패널이 촘촘히 에워싸고 있다. 마치 거대한 오디오 스피커나 악기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유럽의 성당의 기원은 동굴이었다. 사방이 막힌 동굴에서 공명되는 음악은 울림이 좋지만, 사람의 목소리 발음은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보타가 지은 대성당은 충분한 울림과 명확한 소리 전달이 이뤄지도록 설계돼 있어 오케스트라, 실내악, 오페라, 대중가요 공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대성당의 전면 두 기둥 사이에 설치돼 있는 7개의 종도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7개의 종은 각각의 음계가 있어 망치로 두드릴 때마다 멜로디가 생음악으로 연주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시간에 한 번씩 종소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파티마의 성모’ 찬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종지기 콰지모도가 밧줄을 당겨 종을 울렸는데,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에서는 작은 망치가 두드리는 7개의 종소리 음악이 화성의 들판으로 조용히 퍼져나간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다. 남양성모성지에는 앞으로도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어가 짓는 명상과 치유의 공간인 ‘티 채플’과 이동준 건축가가 설계한 연극, 영화, 뮤지컬을 감상할 수 있는 ‘평화 문화 나눔센터’, 승효상 건축가의 ‘순교자의 정원’이 들어서고 산책길과 조경도 다듬어질 계획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일반 관광객이나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도 고즈넉한 공간에서 명상과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89년부터 남양성모성지 조성 작업을 해온 이상각 신부는 “이곳은 교황청에서 선정한 세계 30곳의 성모성지 중 하나”라며 “지난해 여기서 열린 팬데믹 종식을 위한 로사리오 기도회가 전 세계에 중계됐다”고 말했다. 또 남양성모성지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에는 보타가 설계한 기념관과 전망대가 완성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찜질방을 리모델링한 소다미술관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촬영지로 유명한 화성시 안녕동 ‘소다미술관’은 짓다만 불가마 찜질방, 목욕탕을 리모델링해 만든 미술관이다. 숲과 논두렁에 오랫동안 방치된 콘크리트 벽체는 해가 갈수록 을씨년스러운 우범지대로 변모했다. 그런데 8년 전 이곳이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출신 건축가 권순엽, 미국에서 디자인 컨설팅을 전공한 장동선 씨 부부에 의해 소다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불가마의 내화벽돌은 바닥길이 됐고, 찜질방으로 짓던 콘크리트 벽체는 지붕 없는 야외 전시장(Roofless Gallery)이 됐다. 이곳에서 정원 전시회가 진행되는가 하면, 여름에는 높은 곳에 설치된 파이프에서 물을 비처럼 내리게 하는 ‘스카이 샤워(Sky Shower)’가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다. 화성시 최초의 사립미술관이 된 소다미술관 내부로 들어가 보면 냉탕, 온탕, 기둥 같은 목욕탕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남탕이 있던 자리는 살짝 밑으로 꺼져 있는데, 그 아래로 내려가서 벽에 설치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은 남다르다. 2층의 루프톱 전시장이 된 여탕으로 올라가 보면 컨테이너 건물 너머로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다미술관 장동선 관장은 “원래 이 동네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배경지로 낙후된 지역이었다”며 “주변이 재개발되고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 문화적으로 지역이 환하게 변모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융릉과 건릉, 혜경궁 베이커리융건릉은 뒤주에 갇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정조의 화려한 행차의 목적지였다. 사도세자로 알려져 있는 추존왕 장조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가 모셔져 있는 융릉, 정조와 효의왕후가 합장돼 있는 건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에는 왕릉을 지키는 용주사(龍珠寺)가 있다. 용주사 입구에는 왕릉 입구에나 있는 홍살문이 있어 엄숙함을 더하고, 용주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호성전에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혜경궁베이커리(화성시 정남면 보통내길)는 3층짜리 대형 한옥 건물에서 빵과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다. 본관 1층에서 빵과 커피를 주문한 후 정자, 화빈관, 수빈관, 놀이터, 산책로 등 넓은 야외 공간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야경도 아름답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잘 지어놓은 건물은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건축과 공간의 힘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색다른 체험을 한다. 종교건축도 마찬가지다. 깊은 산속의 사찰이나 유럽의 대성당에서는 종교와 관계없이 명상을 하며 위로와 안식을 얻고, 치유의 힘을 얻기도 한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왕릉이 있는 경기 화성은 한때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배경이 됐던 과거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공간이 속속 들어서면서, 건축과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여행지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모여드는 남양성모성지 계곡의 끝에 우뚝 솟은 거대한 두 개의 기둥. 10만 평 규모의 화성 남양성모성지 입구에서부터 멀리 보이는 대성당은 순례자의 발걸음을 끌어들인다. 숲과 돌, 조각품이 어우러진 산책길에는 엄마의 치마를 붙잡고 있는 아기의 모습으로 서 있는 한국적 성모자(聖母子)상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붉은 벽돌에 화강암 줄무늬. 고딕성당처럼 우뚝 솟은 외관과 달리 내부로 들어가면 펑퍼짐하고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52m의 원통형 타워는 ‘빛의 기둥’이다. 타워를 비스듬히 잘라낸 천장의 유리창 격자를 통과해 내려온 빛은 제대 벽면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무늬를 그려 넣는다. 여름의 하지 때는 그림자가 기다란 천사의 날개처럼 정확히 바닥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은 60만 장의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서울 강남 교보타워와 한남동 리움미술관을 설계한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79)의 작품이다. 르코르뷔지에, 안도 다다오의 종교건축에서처럼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의 건축에서도 빛은 핵심 요소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충격을 던져주는 것은 ‘21세기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이탈리아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91)의 십자고상과 성화(聖畵)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일반적인 예수상과 달리, 두 눈을 뜨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예수상을 보며 사람들은 낯설고 충격적인 인상을 받는다. 십자가 뒤에서 거꾸로 박은 날카로운 못은 손과 발을 뚫고 나와 45도가량 하늘로 솟아 있다. 이상각 주임신부는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못이 아니라 빛이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천장에 줄로 매달려 있는 ‘최후의 만찬’과 천사가 성모 마리아의 잉태를 알리는 ‘수태고지’를 그린 성화는 신기하게도 뒷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청바지 같은 현대인의 남루한 옷차림을 한 주인공들을 그린 ‘최후의 만찬’ 뒤편으로 돌아가면, 예수와 제자들의 뒷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누군가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에 제자들이 수군대며 서로 손가락질하는 순간의 소란스러움과 쓸쓸한 예수의 뒷모습이 큰 울림을 준다. ‘수태고지’ 그림의 뒷면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 모습도 그려져 있다.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건축에서 또 하나의 놀라움은 바로 ‘소리’다. 성당의 천장과 벽을 둘러싸고 있는 이중의 벽은 막혀 있지 않고 뚫려 있다. 그 사이를 단풍나무 패널이 촘촘히 에워싸고 있다. 마치 거대한 오디오 스피커나 악기의 내부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다. 유럽의 성당의 기원은 동굴이었다. 사방이 막힌 동굴에서 공명되는 음악은 울림이 좋지만, 사람의 목소리 발음은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보타가 지은 대성당은 충분한 울림과 명확한 소리 전달이 이뤄지도록 설계돼 있어 오케스트라, 실내악, 오페라, 대중가요 공연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대성당의 전면 두 기둥 사이에 있는 7개의 종도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7개의 종은 각각의 음계가 있어 망치로 두드릴 때마다 멜로디가 생음악으로 연주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 시간에 한 번씩 종소리가 연주하는 음악은 ‘파티마의 성모’ 찬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종지기 콰지모도가 밧줄을 당겨 종을 울렸는데,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에서는 작은 망치가 두드리는 7개의 종소리 음악이 화성의 들판으로 조용히 퍼져나간다.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다. 남양성모성지에는 앞으로도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어가 짓는 명상과 치유의 공간인 ‘티 채플’과 이동준 건축가가 설계한 연극, 영화, 뮤지컬을 감상할 수 있는 ‘평화 문화 나눔센터’, 승효상 건축가의 ‘순교자의 정원’이 들어서고 산책길과 조경도 다듬어질 계획이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일반 관광객이나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도 고즈넉한 공간에서 명상과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89년부터 남양성모성지 조성 작업을 해온 이상각 신부는 “이곳은 교황청에서 선정한 세계 30곳의 성모성지 중 하나”라며 “지난해 여기서 열린 팬데믹 종식을 위한 로사리오 기도회가 전 세계에 중계됐다”고 말했다. 또 남양성모성지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에는 보타가 설계한 기념관과 전망대가 완성돼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 찜질방 리모델링한 소다미술관 드라마 ‘그해 우리는’의 촬영지로 유명한 화성시 안녕동 ‘소다미술관’은 짓다 만 불가마 찜질방, 목욕탕을 리모델링해 만든 미술관이다. 숲과 논두렁에 오랫동안 방치된 콘크리트 벽체는 해가 갈수록 을씨년스러운 우범지대로 변모했다. 그런데 8년 전 이곳이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출신 건축가 권순엽, 미국에서 디자인 컨설팅을 전공한 장동선 씨 부부에 의해 소다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불가마의 내화벽돌은 바닥길이 됐고, 찜질방으로 짓던 콘크리트 벽체는 지붕 없는 야외 전시장(Roofless Gallery)이 됐다. 이곳에서 정원 전시회가 진행되는가 하면, 여름에는 높은 곳에 설치된 파이프에서 물을 비처럼 내리게 하는 ‘스카이 샤워(Sky Shower)’가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다. 화성시 최초의 사립미술관이 된 소다미술관 내부로 들어가 보면 냉탕, 온탕, 기둥 같은 목욕탕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남탕이 있던 자리는 살짝 밑으로 꺼져 있는데, 그 아래로 내려가서 벽에 설치된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은 남다르다. 2층의 루프톱 전시장이 된 여탕으로 올라가 보면 컨테이너 건물 너머로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다미술관 장동선 관장은 “원래 이 동네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배경지로 낙후된 지역이었다”며 “주변이 재개발되고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 문화적으로 지역이 환하게 변모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 융릉과 건릉, 혜경궁베이커리 융건릉은 뒤주에 갇혀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정조의 화려한 행차의 목적지였다. 사도세자로 알려져 있는 추존왕 장조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헌경 왕후)가 모셔져 있는 융릉, 정조와 효의 왕후가 합장돼 있는 건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에는 왕릉을 지키는 용주사(龍珠寺)가 있다. 용주사 입구에는 왕릉 입구에나 있는 홍살문이 있어 엄숙함을 더하고, 용주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호성전에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혜경궁베이커리(화성시 정남면 보통내길)는 3층짜리 대형 한옥 건물에서 빵과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다. 본관 1층에서 빵과 커피를 주문한 후 정자, 화빈관, 수빈관, 놀이터, 산책로 등 넓은 야외 공간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야경도 아름답다. 화성=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론알프 지역의 안시는 알프스산맥과 호수가 조화를 이룬 호젓한 풍경이 아름답다. 중세 석조건물과 운하가 어우러진 구시가는 ‘프랑스의 베네치아’라 불린다. 운하 중앙에는 배 모양의 석조건물 ‘섬의 궁전’이 있다. 12세기 이후로 행정관청, 법원청사, 조폐국, 감옥, 박물관으로 사용돼 왔다.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선정에서 평창에 고배를 마셨지만 아웃도어 밀레, 주방기구 테팔 등이 탄생한 저력 있는 도시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테인리스 스틸은 차갑지만 구리는 따뜻한 것 같아요.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킬 수 있거든요. 구리는 그런 면에서 다른 금속들보다 훨씬 인간적이죠.” 구리 파이프와 철사 등을 활용해 소나무 등을 조각,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해온 이길래 작가가 10일부터 4월7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갤러리 BK 이태원’에서 개인전 ‘Re-Vitality’을 갖는다. 이 작가의 ‘소나무 조형물’ 앞에 서면 금속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까칠한 나무의 질감과 형태를 비롯 실제 소나무를 쏙 빼닮은 형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마치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 속 소나무를 무생(無生)의 동(銅) 파이프를 이용해 철필 드로잉을 하듯이 정교하게 재현해낸다. 자연의 벌집 같은 형상을 작업에 녹여내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유기체적 생명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는 파이프의 단면을 세포 단위로 생각하여 선이나 고리 모양으로 자르고 용접 작업을 통해 높이 2m에서 크게는 3m에 이르는, 전체적인 소나무 형태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 위에 세심한 붓터치를 더해 나무 표피의 중첩된 거친 마티에르까지 묘사한다. 소나무 표피는 동파이프로, 솔잎은 구리 철사로 만든다. 이 작가는 “자유분방한 형태를 지닌 소나무는 여러 가지 색감, 세월의 풍화를 머금고 있는 듯한 표피 껍질 등 많은 조형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며 “소나무 한 그루의 형태에서 자연 생태의 모든 작품이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하 전시장과 지상 3개 층까지 총 4개의 전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에는 벽과 바닥, 천장까지 입체적으로 활용된다. 작가가 땀과 불꽃을 주고 받으며 용접을 통해 빚어낸 소나무와 바위의 울퉁불퉁한 생명의 기운과 아우라가 전시장 곳곳에 묵직하게 뿜어져 나온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2020년 초 화재로 문을 닫았던 서울 중구 장충동 앰배서더서울풀만 호텔이 2년간의 리뉴얼을 끝내고 1월 말 새롭게 개장했다. 앰배서더서울풀만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영 호텔이다. 1955년 문을 연 서양식 여관인 ‘금수장’이 모태(母胎)다. 1965년 호텔 이름을 앰배서더호텔로 바꿨다. 이후 여러 차례 증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2008년 413실 규모의 특1급 호텔로 탄생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앰배서더서울풀만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의 대형 아트월 ‘금강의 빛’ 작품이다. 겸재 정선이 72세 때인 1747년에 그린 ‘금강내산(金剛內山)’을 바탕으로 10분 8초 동안 금강산의 사계절 변화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봄이 와서 나비가 날고, 가을 풍악산에는 단발령과 금강내산이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겨울 개골산 설경에는 도시 야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림 속 금강산의 산세 곳곳에는 금수장 여관부터 앰배서더호텔그룹의 역사가 담긴 호텔들이 깨알처럼 숨어 있다. 화재를 계기로 뼈대만 남기고 모든 시설을 새롭게 만들었다는 앰배서더서울풀만은 객실을 269개로 줄이는 대신 49개의 레지던스 객실을 새롭게 만들었다. 19층에 남산과 북한산, 북악산 등 서울 시내 전망이 훤히 내다보이는 연회장도 새롭게 꾸며졌다. 피트니스센터, 실내수영장을 고급화하고, 특히 4층에 포토존이 될 수 있는 야외 수영장을 신설해 젊은층을 불러들이고 있다. 신라호텔에서 42년 동안 근무하며 ‘불도장의 원조’로 불리는 허우더주(侯德竹) 마스터 셰프가 운영하는 중식당 ‘호빈’ 등 다양한 세대를 겨냥한 레스토랑도 눈길을 끈다. 서정호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69·사진)은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 프랑스 계열 호텔체인 아코르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앰배서더아코르 호텔 체인은 현재 국내에서 25개 호텔을 운영 중이다. 최근 장충동에서 서 회장을 만났다. ―코로나19로 관광업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화재로 문을 닫고 리모델링을 진행했던 2년간을 뒤돌아본다면…. “전화위복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장충동 앰배서더서울풀만 호텔만 보면 이 기회에 뼈대만 남기고, 모든 시스템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룹 내 다른 호텔들까지 생각하면 무척 힘든 시기였다.” ―리모델링 콘셉트는…. “호텔은 이제 잠자고 먹는 곳만은 아니다. MZ세대들은 호텔에서 나만의 체험을 하기를 원한다. 휴식하고, 즐기고, 재밌게 놀고, 웰니스를 경험할 수 있는 세련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반복되는 팬데믹 속에서도 호텔업의 지속성을 위해 레지던스 객실을 늘렸다. 재택근무가 일상화됨에 따라 호텔에서도 5세대(5G), 6세대(6G) 초고속 인터넷을 갖춘 친환경 스마트시스템을 갖췄다.” ―앰배서더 호텔 이름은 어떤 뜻인가.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몰려왔다. 당시 금수장을 운영했던 아버님이 ‘한국을 홍보하는 민간대사’라는 뜻에서 앰배서더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현재 해외 호텔업 관계자들 이야기로는 코로나19로 여행이 중단된 2년간 패션, 음식, 영화(기생충), 드라마(오징어게임), 케이팝 등 문화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점을 한국 사람들만 모른다고 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한국에 오고 싶었던 해외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호텔과 관광업계가 본격 준비해야 할 시기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2020년 연초에 화재로 문을 닫았던 서울 중구 장충동 앰배서더서울풀만 호텔이 2년간의 리뉴얼을 끝내고 지난 1월 말 새롭게 개장했다. 67년 역사를 가진 앰배서더서울풀만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민영호텔이다. 1955년 문을 연 서양식 여관인 ‘금수장’이 모태다. 1965년 호텔 이름을 앰배서더호텔로 바꿨으며, 이후 여러 차례 증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2008년 413실 규모의 특1급 호텔(5성급)로 탄생했다. 새 단장한 앰배서더서울풀만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의 대형 아트월 ‘금강의 빛’ 작품이다. 겸재 정선이 72세 때인 1747년에 그린 ‘금강내산(金剛內山)’을 바탕으로 10분8초 동안 금강산의 사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봄이 와서 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여름의 봉래산과 가을의 풍악산에는 단발령과 금강내산이 케이블카로 연결되고, 겨울의 개골산의 설경에는 도시의 야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림 속을 잘 살펴보면 금강산의 산세 곳곳에 금수장부터 앰배서더 호텔그룹의 역사가 담긴 호텔들이 깨알처럼 숨어 있다. 화재를 계기로 뼈대만 남기고 첨단 IT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앰배서더서울풀만은 객실을 269개로 줄이는 대신 49개의 레지던스 객실을 새롭게 만들었다. 19층에 남산과 북한산, 북악산 등 서울시내의 전망이 훤히 내다보이는 연회장도 새롭게 꾸며졌다. 피트니스 센터, 사우나, 실내수영장을 고급화하고, 특히 4층에 포토존이 될 수 있는 야외수영장을 신설해 젊은층과 가족단위 투숙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신라호텔에서 42년 근무하며 ‘불도장의 원조’로 불리는 후덕죽(侯德竹) 마스터 셰프가 운영하는 중식당 ‘호빈’ 등 다양한 세대를 겨냥한 레스토랑도 눈길을 끈다. 서정호(69) 앰배서더호텔그룹 회장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 프랑스 계열 호텔체인 아코르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앰배서더 아코르 호텔 체인은 현재 국내에서 23개 호텔을 운영 중이다. 다음은 최근 장충동에서 만난 그와의 일문일답. ―코로나19로 관광업계가 최악의 상황에서 화재로 문을 닫고 리모델링을 진행했던 2년간을 뒤돌아 본다면.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문을 닫고 리모델링을 할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장충동 앰배서더서울풀만 호텔만 보면 이 기회에 뼈대만 남기고, 모든 시스템을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룹 내의 17개 직영호텔을 비롯해 프랜차이즈 호텔들까지 생각하면 무척 힘든 시기였다.”―리모델링의 컨셉은. “더 이상 호텔은 잠만 자고, 먹는 곳이 아니다. 에어비앤비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MZ세대들은 호텔에서 나만의 색다른 체험을 하기를 원한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호텔은 양극화됐다. 해외에서 온 손님이 없으니 비즈니스호텔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5성급 호텔은 더욱 호황을 누렸다.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호텔은 휴식하고, 즐기고, 재밌게 놀고, 웰니스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MZ세대는 사고방식이 다르다. 호텔의 개념을 젊은층에 맞춰 새롭게 리포지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호텔에 첨단 IT시스템을 구축한 이유는. “재택근무가 일상화됨에 따라 업무공간으로서의 호텔이 주목받고 있다. 그래서 5G, 6G 초고속 인터넷을 갖춘 친환경 스마트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객실에서 리모컨이 필요없이 내가 가진 휴대폰만으로 TV, 커튼, 전등 등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IT시스템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전체 객실 중에 30% 가량을 레지던스 객실로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다. 반복되는 팬데믹 속에서 관광호텔만으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텔의 개념이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객실 상품도 다변화를 해야한다.” ―앰배서더 호텔 이름은 어떤 뜻인가. “아버지가 6.25전쟁이 끝나고 1955년 장충동 언덕에 서양식 여관인 금수장을 처음으로 열었다. 그런데 1965년 한일협정 이후 한일간의 국교가 정상화되자 일본 관광객이 본격적으로 몰려왔다. 당시 금수장을 운영했던 아버님이 ‘한국을 홍보하는 민간대사’라는 뜻에서 앰배서더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당시 민간이 갖고 있는 큰 호텔은 앰배서더가 유일했다. 앰배서더가 가장 크고, 역사도 오래됐다. 조선호텔, 반도호텔, 워커힐호텔은 전부 정부나 관광공사가 갖고 있는 호텔이었는데, 나중에 삼성(신세계), 롯데, SK 등 재벌그룹의 손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께서 ‘앰버서더 호텔’ 이름을 알리려고 공항의 택시운전 기사들을 모시고 대접하면서 홍보했던 에피소드도 기억이 난다. ‘앰배서더 호텔’이란 이름을 외우기 어려워하자 ‘안비싸다 호텔’로 기억하도록 선전했다. 택시기사들의 입소문을 활용한 놀라운 홍보 마케팅 기업이었다.” ―프랑스 체인인 아코르 그룹과 35년간 협력하면서 성장해왔는데.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국 호텔 체인들이 어마어마하게 국내로 입성했다. 미국의 유명 글로벌 브랜드 호텔 체인은 국내 재벌그룹의 호텔들이 전부 제휴했다. 앰배서더도 해외 호텔체인을 찾던 중에 프랑스의 아코르 그룹을 만났다. 1977년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만난 두 명의 설립자가 미국의 홀리데이인의 성공을 보고, 프랑스 파리 근교에 노보텔이란 브랜드를 처음 만든게 아코르 호텔체인의 시작이었다. 1987년부터 앰버서더호텔과 아코르그룹은 장충동 소피텔, 강남 노보텔부터 시작해 35년 넘도록 함께 성장해왔다. 아코르그룹은 제일 후발주자였지만 유럽 최대의 호텔체인이 됐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5대 호텔체인 중의 하나로 성장했다. 미국의 호텔체인이 대부분인 국내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유럽 호텔체인과 손을 잡았다.” ―향후 호텔업의 전망은. “해외 호텔업 관계자들 이야기로는 코로나19로 여행이 중단된 2년 간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패션, 음식, 영화(기생충), 드라마(오징어게임), K팝(BTS) 등으로 한국의 위상이 엄청나게 달라졌는데, 해외에 나가보지 않은 한국인들만 모르는 현실이다. 현재도 해외에서 한국음식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한류를 간접 체험하는 열풍이 대단한데, 코로나가 끝나면 한국에 오고 싶었던 해외 관광객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호텔과 관광업계가 본격적으로 준비해야할 시기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