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찰랑’ 투명한 음색…18세기의 옛 피아노를 찾아서[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2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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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건반악기 전문 연주자 최현영의 포르테피아노 독주회가 28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혜화동 JCC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최 씨는 서울예고와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중 옛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쳄발로)에 매료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하프시코드(Harpsichord)는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건반 악기로, 피아노가 상용화되기 이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독주 및 합주 악기였다.

그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를 전공한 후 학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에라스무스 장학재단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독일 프라이부르크 음대에서 수학했으며,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봅 판 에스페렌, 로버트 레빈 등 옛 건반악기 명연주자들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다. 유럽 체류 중 독주, 실내악, 오케스트라 연주, 오페라 코치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이날 독주회에서 최 씨는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 하이든(1732~1809)을 비롯해 빌헬름 프리드만 바흐(1710~1784), 카를 필립 에마뉴엘 바흐(1714~1788),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1748~1798) 등 18세기 중후반 시기에 포르테 피아노나 쳄발로로 연주됐던 곡들을 연주한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초기 포르테피아노 음악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반악기 환상곡들을 연주한다. 바로크 시대부터 이어져온 건반악기 즉흥연주의 전통은 토카타, 전주곡, 환상곡으로 발전해왔다. 18세기 중후반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작곡가들의 시도가 이어졌다.

―포르테피아노는 어떤 피아노인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쓰였던 피아노다. 모차르트가 가장 사랑했던 악기고, 베토벤도 초중기까지는 포르테피아노의 음역대를 염두에 두고 쓴 곡들이 많다. 초창기 포르테피아노는 현대의 피아노보다 훨씬 작아서 쳄발로(하프시코드)에 가까운 길이와 크기, 음역대를 갖고 있다.”



―포르테 피아노 전에 연주되던 쳄발로는 어떤 악기인가.

“쳄발로는 소리 자체가 피아노랑 완전 다르다. 건반을 치는 것은 같지만, 현을 튕겨서 내는 소리다. 건반에 연결된 막대의 끝에 조그맣게 손톱만한 ‘퀼(quill)’이 달려 있어서 현을 튕긴다. ‘퀼’은 예전에는 새의 뼈나 깃털 등을 깎아서 만들었다. 그래서 쳄발로는 기타나 하프, 류트처럼 현악기 소리가 난다. 원래 노래반주는 류트로 연주를 많이 했다. 왼손으로 여러 줄을 동시에 누르며 류트를 연주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건반을 눌러 현을 튕기도록 기계화 시킨 것이 쳄발로다. 열개의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면 화성을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다. 하프시코드는 현을 튕기기 때문에 ‘챙챙’ 거리는 소리가 난다. 개별 음은 명확히 잘 안들릴 수 있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음이 들리는 화성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악기다. 대위법적인 푸가를 많이 쓰던 바로크 음악에서는 화성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프시코드는 연주자가 음량을 마음대로 키우거나 줄일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포르테피아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질서, 조화, 균형을 강조하는 바로크 음악이 약 100년간 작곡되다가, 18세기 중반 장 자크 루소의 자연주의가 나올 즈음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게 된다. 대위법적인 엄격한 화성 구조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노래 선율이 흐르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취향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하프시코드는 건반을 누르면 현을 뜯는 소리가 났는데, 포르테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망치가 쇠줄을 땅하고 치고 내려가는 구조다. 건반을 세게 치면 큰 소리가 나고, 약하게 치면 작은 소리가 나도록 조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포르테피아노’란 이름부터 이탈리아어로 강한 소리는 ‘포르테’, 약한 소리는 ‘피아노’라고 하는 데, 강약을 잘 조절할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19세기부터는 쳄발로가 거의 사라지고, 포르테 피아노를 염두에 두고 작곡하는 작곡가들이 많아졌다.”



― 현대 피아노와 포르테피아노의 음색은 어떻게 다른가.

“88개의 건반을 가진 현대의 피아노는 강철 현을 커다란 해머가 때리는 구조라 음량의 표현이 거의 무한대다. 그야말로 0에서 100까지의 음량 범위 안에서 연주자가 조절하면서 원하는 다이내믹을 표현할 수가 있다. 포르테 피아노의 음량 범위는 0에서 50정도까지로 훨씬 적다. 음량이 작다는 것이 제한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표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항상 0에서 100까지의 음량을 모두 쓰고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말을 좀더 조리있게,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해서는 템포를 천천히 하거나, 끊어 읽거나, 아티큘레이션(각 음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연주하는 것)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쓰게 된다. 그래서 옛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사람이 말하는 것’에 더 가깝다고 표현한다. 보다 섬세한 뉘앙스를 살리기 위한 표현수단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옛날 악기의 표현방식이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에 더 맞다는 느낌이 든다.”


―포르테피아노와 현대 피아노의 구조의 차이는?

“포르테피아노는 소리를 울리고 증폭시키는 공간에 사용되는 목재가 매우 얇다. 건반악기를 칠 때는 뚜껑을 열고 치는데, 소리가 나무 전체를 울린 뒤 반사판을 통해서 나온다. 포르테피아노는 나무판이 매우 얇아서 톡하고 부러질 정도다. 건반을 두드리는 해머도 작은 나무에 얇은 양가죽이 한두겹 싸여 있는 형태다. 연주자는 작은 해머가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건반을 쳐야 한다. 반면 현대의 모던 피아노는 굉장히 크고, 나무도 두껍고, 철로 된 견고한 보강물들이 있다. 낭만시대로 갈 수록 더 큰 소리를 내고, 더 많은 음역대를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의 크기 점점 커지고, 메카닉이 점점 복잡해져왔다.”

―포르테피아노가 더 맑고 투명한 음색이 나는 이유는.

“현대의 그랜드피아노는 저음역대와 중음역대의 현이 대각선으로 교차되도록 설계돼 있다. 악기의 크기 안에서 최대한의 음역대와 큰 소리를 내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교차된 현의 공명현상 때문에 소리가 섞여서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바흐나 모차르트와 같은 옛날 음악을 칠 때는 현대의 피아노로는 표현하기 힘들 때가 많다. 특히 저음 부분을 칠 때 명징하게 독립된 성부로 들리게 하기가 약간 어렵다는 게 느껴진다.

저는 대학시절에 원래 모던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처음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해봤을 때 부드러운 하얀 밥만 먹다가 잡곡이 섞인 밥을 먹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질감, 식감이 한꺼번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숨겨졌던 음이 하나하나 다 들렸다. 포르테 피아노의 현은 대각선으로 교차하지 않고, 평행하게 설치돼 있다. 때문에 중음역, 고음역 등 개별성부가 모두 명징하고 유리처럼 투명한 음색으로 들리게 된다. 소리 구분이 더 잘되니, 제가 개인적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아지고, 숨겨진 보물찾기를 하는 재미가 생겼다. 현대 피아노로 연주하면 아무래도 음이 뭉쳐지게 된다. 현대 피아노로 20세기 레퍼토리를 연주하면 무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작곡가들도 이 피아노를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날 베토벤, 모차르트 시대의 악기와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다.”

최 씨는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자기가 만든 피아노를 가지고 다닌다”고 설명했다. 겉모양은 현대의 피아노이지만 내부는 현이 교차돼 있지 않고, 옛 건반악기처럼 현이 평행하게 설치돼 있다고 한다. 각 성부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바렌보임 자신만의 피아노인 셈이다.



―모차르트는 어떤 건반악기를 많이 연주했을까.

“모차르트에게는 평생 가장 많이 연주한 악기가 ‘포르테 피아노’였다. 물론 쳄발로도 많이 연주했지만, 가장 좋아했던 악기는 포르테 피아노였다. 또한 포르테 피아노의 직속 선배 악기인 ‘클라비코드(Clavichord)’도 많이 연주했다. 클라비코드는 소리가 워낙 작아 연주용 보다는 개인용 악기였다. 모차르트는 마차에 클라비코드 하나를 싣고 다니면서 호텔방에서 오페라를 작곡하곤 했다. 요즘 디지털 건반 같은 느낌이다. 클라비코드는 ‘밤의 악기’라고 불린다. 사람이 소곤대는 목소리 정도의 데시벨로, 바로 옆에 앉아서 들어야 들릴 정도로 소리가 아주 작다. 저도 집에 클라비코드가 있는데, 밤에 연주해도 층간소음에 전혀 문제가 없는 악기다. 바로크 작곡가들도 밤에 연주를 해야 한다거나, 내밀한 분위기에서 연주할 때는 클라비코드를 이용했다고 한다. 호텔방에서 갖고 다니면서 작곡하기엔 좋은 악기다.”

―쇼팽은 주로 어떤 피아노를 사용했나?

“쇼팽은 플레이엘사의 피아노와 에라르 사 피아노를 주로 연주했다. 흔히 ‘낭만 피아노’라고 부르는 악기다. 소리가 거의 모던 피아노와 비교해도 그렇게 약하지 않은 소리가 난다. 내부는 평행한 줄로 제작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낭만시대 피아노는 공장식으로 제작돼 현대에도 많이 남아 있다. 피아노 회사마다 메카닉이 다르고, 음색의 차이가 컸다. 리스트는 에라르 피아노를 선호했고, 쇼팽은 플레이엘을 선호했다. 에라르는 파워풀하고 깊이 있는 소리가 났다면, 플레이엘은 둥그렇고 달콤한 음색이 특징이다.”

―시대악기를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됐나.

“서울대 음대에서 전공수업 중에 쳄발리스트 오주희 선생님에게 옛 건반악기 수업을 들었다. 음반이나 영화에서만 듣던 찰랑찰랑한 소리를 들었을 때, 음악이 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빠져들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거치고 음대에 들어갔는데, 회의감이 들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세상에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있는데, 굳이 한 명의 연주자를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음악이론을 배워보기도 하고, 다른 진로를 찾아 전과를 할 생각도 했다. 그런데 쳄발로 소리를 듣는 순간 ‘다시 음악하고 싶다.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건반악기를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짐을 싸서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에서 포르테 피아노까지 전공하게 된 계기는.

“챔발로를 전공하러 파리 19구에 있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했다. 학교 옆에는 악기박물관이 있었는데, 거기서 플레이엘 초기 피아노를 발견해 쳐보게 됐다. 별 생각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는데, 내가 상상만 해오던 소리가 피아노에서 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유리구슬이 또르륵 굴러가는 소리’였다. 그동안 모던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대가들만 이렇게 모차르트를 연주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절대 안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포기하다시피했던 소리였다. 그런데 내가 연주해도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나서 포르테피아노도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쳄발로에서 바로 그 다음시대의 악기로 자연스럽게 넘어오게 된 것이다.”

최현영 씨는 2019년 귀국 후 하우스 콘서트와 살롱 콘서트를 통해 옛 건반악기의 아름다움을 관객들과 나누고 있다. 시대악기로 고음악 연주는 물론 국악, 현대음악, 인문학, 미술사 등 다른분야와의 협업도 열정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이번 독주회에서는 18세기 중후반 ‘환상곡’ 레퍼토리를 연주하는데….

“바로크 음악에서 즉흥연주는 오랜 전통이었다. 성당에서 오르간으로 미사곡을 연주할 때는 즉흥연주를 해야할 순간이 굉장히 많다.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도중 예식을 할 때 배경음악을 깔아야할 때도 있고, 성체성사 줄이 굉장히 길 때는 오랫동안 음악을 연주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새로운 성가를 부르기 보다는, 연주자가 찬송가 주제를 활용해 즉흥연주를 하게 된다. 예식에 맞춰 연주하다가 언제든지 바로 끝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음악가가 귀족 집에 초대받아서 연주할 때도 처음에 피아노를 조율하고, 테스트하면서 손을 푸는 ‘자유로운 전주곡’도 즉흥연주였다. 16~17세기에는 악보로 표기 안된 즉흥연주가 많았는데, 18세기에 들어서 ‘환상곡’이라는 이름으로 악보가 출판되면서 지금까지 악보가 남게 됐다. 18세기 중반에는 미술계에서는 낭만주의가 시작된다. 음악에서도 바로크와 고전주의 사이의 짧은 기간에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다. J.S 바흐가 1750년에 사망했는데, 바흐의 아들 세대 작곡가들부터 기상천외한 시도를 많이 한다. 예전같으면 말도 안되는 화성을 과감하게 넣기도 하고,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으로 ‘환상곡’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후기 바로크, 로코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당시에 포르테 피아노도 생겼다. 제가 연주하는 곡 중에 1801년에 쓰여진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3번이 있는데, ‘Quaisi una Fantasia’(거의 환상곡처럼)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소나타는 엄격한 형식(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이 있는데, 베토벤은 이 곡에서 환상곡이라는 장르를 활용해 실험적인 시도를 한다. 이번 독주회에서 바흐 사후 약 50년 동안 좀더 과감한 표현을 하기 시작한 건반악기의 흐름을 보여주고 싶다.”


―바로크 음악에서 통주저음이란.

“통주저음(通奏低音·Basso continuo)은 앙상블에서 즉흥연주를 할 때 쓰는 저음 반주다. 왼손 악보는 첼로의 베이스 선율을 따라가고, 오른손은 그 코드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통주저음은 요즘의 재즈하고도 비슷하다. 콘트라베이스가 통주저음을 연주해주면, 나머지 악기는 기본 코드 안에서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는 것이 재즈다. 바로크 음악도 그런 요소를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어 샤콘느라는 양식에서 첼로랑 쳄발로 파트 악보에는 네가지 음밖에 없다. 곡 전체에서 계속 반복이 된다. 네가지 음만 연주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그걸 변주하기도 하고, 분위기에 따라서 피치카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연주해 나간다. 음악이란 것이 악보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현대의 연주자와 옛 작곡가들의 생각과 느낌이 서로 연결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음악을 더 살아 있게 만든다.”

―시대악기를 연주하는 원전연주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바로크나 고음악을 한다고 하면 흔히 옛날 연주를 고증해서 똑같이 재현해서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1세대 연주자들은 ‘정격연주’ ‘원전연주’의 연주법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 저희 세대는 그 혜택을 많이 받았다. 300~400년 전의 악기로 연주하는 고음악은 당시의 작곡가들과 접점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격연주라고 해서 옛날 연주법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더 깊이 와 닿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목표가 옮겨가고 있다.”

―고음악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고음악을 즐기는 분들은 현재 소수다. 그러나 굉장히 깊게 사랑한다. 고음악 연주를 ‘한번도 안들은 사람은 있지만, 한번만 들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고음악 연주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아니라 작은 살롱 음악회에서 들어야 악기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역사와 문학, 미술, 무용과 함께 렉처 콘서트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바로크 미술, 무용과 고음악의 연관성이 있다면.

“바로크 시대는 장식적인 게 엄청 유행하던 시기다. 음악에도 장식음이 풍부하다. 유학시절 옛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바로크 무용도 배웠다. 특히 프랑스 바로크 음악은 춤곡이 대부분이다. 사라방드, 쿠랑트, 미뉴에트와 같은 바로크 시대의 무용 스텝을 알지 못하면 바로크 음악을 이해할 수가 없다. 스텝을 이해해야 프레이징을 이해할 수 있다. 어디까지가 한 문장이고, 한 세트라는 것을 모르고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왈츠만해도 스텝을 몰라도 음악 리듬자체로도 확 와 닿는다. 그러나 바로크 춤곡은 바로 이해하기 힘들다. 귀족들만 향유했던 예술이기 때문이다. 사라방드는 우아한 느린 세박자 춤곡이다. 두 번째 박자에 엄청난 장식음이 들어가는데, 그 이유는 두 번째 스텝에서 발을 들어올려서 다양한 동작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간을 음악으로 채워주기 위해 트릴, 꾸밈음을 넣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음대에서는 필수로 바로크 무용을 배운다. 별도의 바로크 무용 캠프에 가서도 배웠다. 한국에서 전통무용을 배우는 사람이 있듯이, 프랑스에서 은퇴하신 분들이 취미로 궁정에서 추던 바로크 무용을 배우는 사람들도 많다.”

―국악하고 협업을 하는 이유는.

“서양 바로크 음악이랑 국악은 굉장히 유사하면서도,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조선시대 궁중음악을 연주하는데, 만약에 서양의 음악가들이 와서 같이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실제로 우리나라 꼭두각시 선율과 스코틀랜드 민요의 춤곡은 굉장히 유사한 선율이 반복된다. 또한 옛날 바로크 선율을 국악기가 연주해도 전혀 무리가 없고, 꾸밈음을 붙이는 방식에서 굉장히 접점이 많았다. 서양 바로크 음악 연주자들과 국악연주자들이 한국의 즉흥음악인 ‘시나위’를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장구 리듬에 맞춰 시나위를 각자의 방식으로 연주하니 연주자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기본적인 틀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해보니 굉장히 재밌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나왔다. 이러한 시나위 연주는 유럽에서도 굉장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국악도 현대적인 요소와 결합해서 세계인들과 호흡하고 있는데, 저희 서양 고음악 바로크 연주자들도 서로 영감을 받는 부분이 많다. 옛 음악이 박물관 유리창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살아 있게 하는 것이 현대 연주자들의 역할인 것 같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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